2015.12.11 14:22
예수님으로 인하여
1981. 1. 27. 새벽 (화)
본문:요한복음 10장 10절∼15절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삯꾼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늑탈하고 또 헤치느니라 달아나는 것은 저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아보지 아니함이나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오늘 아침에도 세 가지를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하나는 절도 강도는 양을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으로 인한 생각, 예수님으로 인한 모든 움직임, 또 예수님으로 인한 모든 소망, 소망이든지 또 경영이든지 움직임이든지, 소망이든지 그 소망을 이루려고 경영하는 경영이든지 움직임이든지 예수님으로 인한 것은 이것은 다 목자 소망이요, 목자 소망이요, 목자 경영이요, 목자 움직임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것은 자기도 살리고 복되게 하는 것이요 자기가 모르든지 알든지 자기에게 관련된 자기에게 속한 모든 자를 다 살리고 또 생명으로 충만케 하는 역사입니다.
살린다는 것은 하나님과 연결되어 잘 되는, 모든 면이 잘 되는 것을 다 그것을 생명이라 이랬는데 우리가 육의 생명도 있는데 육의 생명 그것도 그 사람이 뭐 총명 있는 것이나, 지혜 있는 것이나, 민첩한 것이나, 힘있는 것이나, 움직이는 것이나 그 모든 것이 다 생명에서 나옵니다. 육의 생명에서 나오는데 생명 떠나버리면 그것 아무것도 없습니다.
힘이 어데서 나오느냐? 생명에서 나오요. 지혜가 어데서 나오느냐? 생명에서 나오요. 그 사람의 아름다운 것도 생명에서 나오요, 선도 생명에서 나오요 모든 것 다 생명에서 나옵니다. 생명 떨어지면 모두가 다 끝나버립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간에게 금생이나 내세나 참 자기에게 생명에 속한 것, 참 좋은 것, 자기에게 유익된 이것은 전부 하나님과 연결된 거기에서만 나옵니다.
하나님과 연결된 거기에서만 나오지 다른 데서는 나오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과 연결된 데서만 나옵니다.
이런데 “생명을 얻고 더 생명을 풍성케 하려 함이라”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과 연결이 돼서 잘 되고 또 더 연결이 돼서 더 잘 되게 하려 함이라 이랬습니다.
목자가 온 것은 목자가 오면 이렇게 하고 절도 강도가 오면은 이렇게 망치고, 절도 강도가 오면은 이렇게 망치고 목자가 오면은 이렇게 유익되게 하고 요것을 여기에 말씀했는데 요걸 단단히 잡아야 됩니다.
목자가 오다니? 목자는 어떤 게 목자인데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는 것이 목자라 했습니다, 출입하는 것이. 양의 우리에 문은 뭣인가? 양의 우리에 문은 “내가 양의 우리에 문이라” 예수님이 그랬습니다. 예수님으로 인하여 소망하는 것, 자기가 소원하고 소망하는 것도 예수님으로 인해서, 예수님으로 인하여, 예수님 때문에 소망하는 것, 이것은 자기가 살고 살고 잘 되고 잘 되는 것이오.
예수님 때문에, 예수님을 위해서, 예수님을 따라, 그러면 예수님으로 인한 것은 다 목자 행동이요 예수님으로 인하지 아니한 것 자기 명예나 지위나 권세나 민족이나 국가나 전인류나, 그것 좋은 것 아니겠소? 전인류를 위하면 좋은 것 아니겠소? 그것도 절도요 강도입니다.
그러기에 “목자는 생명을 얻고 더 생명을 더 충만케 하기 위함이요 절도와 강도가 오는 것은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라” 이랬습니다. “뿐이라”요 말을 기억해야 됩니다.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뿐이요” 이 외에 아무것도 없어. “뿐이요” 참 이것이 하나님이 요렇게 해 놨기 때문에 여기에 변동을 못 합니다.
그 사람이 ‘참 이 일은 중한 일이다.’ 세상에 문화 건설을 위해서 문화 건설에 공로자라면, 또 전인류를 위했다면 그 사람이 노벨상도 받고 굉장하겠습니다.
자, 그 사람이 민족으로 인해서라면 다른 데는 몰라도 그 민족에서는 공로자가 되어서 다 표창을 받을 것입니다. 국가를 인해서 나라를 인해서라면 그 나라에서는 그 사람이 아주 유명하고 다 공로자라고 존대를 받을 것입니다.
나라가 다가 아니라. 나라 외에 또 딴것 있어. 전인류를 위해서, 암만 인류를 위했다 할지라도 인류 외에 딴것이 있어, 인류 위의 것이 있어. 이러니까 하나님을 위하지 안한 것이라면 소용없습니다.
앞으로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때는 어떤 심판을 하시느냐? 하나님이 심판하실 때는 예수님으로 인한 것 외에는 전부 모조리 불태워 버립니다. 왜? 그것은 창조주에게 다 거슬리고 그것은 창조주 아닌 그것이 왕이기 때문에 결국은 창조주 하나님과 대립이 되니까 하나님 앞에 깨질 것 아니겠소? 그러기에 예수님으로 인한 것은 자타를 살리는 것이요 잘 되게 하는 것이요 금생과 내세를 다 유익되게 하는 것이지마는 예수님으로 인한 것이 아닌 것 다른 무엇으로 인한 것 그것은 다 절도요 강도라, 요것을 우리가 굳게 잡아야 됩니다.
자기가 ‘나는 하늘나라 가 가지고서 아주 영광스러운 구원을 얻어야 되겠다.’ 그것도 절도요 강도입니다. ‘내가 하늘나라에 좋은 곳에 가야 되겠다.’ 그것도 절도요 강도요. 그것도 실상은 보면은 땅의 것을 사욕같이 그것도 사욕입니다.
어쨌든지 우리는 “내 피와 살을 먹는 자는 나로 인하여 살리라.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 같이 내 피와 살을 먹는 자는 나로 인하여 살리라.” 예수님으로 인하여 사는 것, 예수님으로 인하여 예수님 때문에 소망하는 것, 예수님 때문에 소원하는 것, 예수님 때문에 경영하는 것, 예수님 때문에 움직이는 것, 예수님으로 인해서 소망하는 것, 예수님이 이렇게 소망하라 하기 때문에 소망하는 것. 예수님으로 인하여 경영하는 것, 예수님이 이렇게 경영하라 하기 때문에 경영하는 것. 예수님으로 인하여 움직이는 것, 예수님이 움직이라 하기 때문에 움직이는 것. 이것이 목자입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할 때에 잘못하면 이 뿌리 없는 화초가 되기 쉽습니다.
뿌리는 끊어 내버려 버리고 위에 화초만 꺾어 심어놔 봤자 그까짓 것 대번 마르지 않습니까? 우리가 뿌리는 예수님이신데 예수님이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요 사람이신데 이분이 내 중보기 때문에 이분이 내 책임을 맡았기 때문에 이분으로 인하는 것입니다.
이분은 하나님이오. 나를 전부를 다 기울여서 나를 구원하려 하는 이 하나님, 이분으로 인해서 움직여야 되지, 이분 시키는 대로 해야 되지, 이분 소원대로 해야 되지, 이분을 의지해야 되지, 이분을 바라봐야 되지, 이분과 연결이 돼야 되지 안 되면 안 된다 그거요.
이러기 때문에 예수님은 신인양성일위인 예수님이 내 중보이기 때문에 내 생명이기 때문에, 내 생명이기 때문에 내 중보기 때문에, 나와 모든 것을 나에게 잘 되도록 조화시켜서 연결시켜 주시는 이 생명이요 하나님과 연결된 중보요, 연결케 하는 것이라 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이분으로 인하면 이분이 하나님과 나와 연결시켜 버립니다.
이분으로 인하면 이분이 모든 존재와 나와 바른 관계를 가지도록 나를 조화시키고 나를 지도하고 인도하십니다.
또 이분이 뭣 하느냐? 이분이 나를 죄 없게 하요. 이분이 나를 의롭게 하요.
이분이 나를 하나님과 동거 동행하게 하요. 이분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모든 충만을 다 내것 되게 하는 그 연결점이 예수님이오. 그 중보가 예수님이오.
이러기 때문에 예수님으로 인하면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는 자는, “내가 양의 우리에 문이라” 예수님으로 인하여 소원하는 그 소원은 다 영원한 소원입니다. 그 소원은 할수록 자기에게 복이 되는 것이오. 예수님으로 인하여 경영하는 것은 그는 다 영생입니다. 영원히 멸하지 안할 것이오.
예수님을 인해서 움직이는 것, 예수님으로 움직이는 것, 예수님의 지혜로 움직이고, 예수님의 힘으로 움직이고, 예수님의 속성으로 움직이고, 예수님의 사랑으로 움직이고, 예수님으로 움직이는 것, 예수님의 것 가지고 하는 것, 이것이 목자니 이것은 생명을 얻고 또 생명으로 충만케 합니다.
그러나 절도 강도 이것은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지 안하고 다른 데로 출입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예수님으로 인하지 안한 다른 것으로 인하는 것, 자기 가정을 인하는 것 참 좋습니다. 자기 가정을 인하는 그것도 자타를 망치는 것이오. 자기를 인하는 것 그것도 자타를 망치는 것이오. 국가를 인하는 것도 자타를 망치는 것이오. 민족을 인하는 것도, 전인류를 인하는 것도, 이 좋은 것 같지마는 이것 다 자타를 망치는 것입니다. 그게 생명을 끊는 것이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평소에 작은 것이든지 큰 것이든지, 하루 자기 직장에 가서 일을 해도 그 사람이 목자로 살 수도 있고 절도와 강도로 살 수 있습니다.
그날 하루 일을 하면서 ‘내가 월급이 올라가야 될 건데. 어느 감독에게 잘 보여야 되겠는데.’ 하면 그게 절도요 강도 생활입니다.
‘내가 예수님의 이름이 욕되지 않도록, 예수님이 나를 여기에 보내셨으니까 내가 예수님 버려두고 이 일 거석하면 이 일이 우상된다. 예수님 모시고, 예수님 생각하면서, 예수님과 함께, 예수님을 영광스럽게 기쁘게 하기 위해서, 예수님의 역사인 이 복음이 영광스럽도록 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기뻐하시도록, 이분은 자꾸 생각을 하니까,그날 일하는 것이 ‘주인의 눈을 보고 하자. 감독 눈을 보고 하자. 내 지위가 올라가는 걸 보고 하자. 월급을 보고 하자. 다른 사람에게 자존심 꺾어지지 않기 위해 하자.’ 뭐 오만 것 다 좋은 것 같지마는 전부가 다 육백육십육입니다. 전부 육백육십육이오.
다만 예수님을 인해서 하니까, 다른 것 아무것도 보지 안하고 예수님을 인해서 하니 요것이 전부 다 생명적으로 되어지고 자기가 잘 되고, 자기는 잘 되려고 생각지 안했는데 자기가 잘되고, 그날 그렇게 사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보고, 자기가 그렇게 사는 것을, 자기만 알지 다른 사람은 모르지요. 모르지만 자기가 그렇게 종일 살고 보니 다른 사람이 자기를 볼 때 ‘아, 그 사람 오늘은 참 보니까.’ 그 사람들이 다 놀랄 만치 좋아집니다.
자기는 자기 좋게 하려고 하지 안했소. 또 그 사람이 다른 사람 좋게 하려고 하지 안했습니다. 주인 좋게 하려고 하지 안했소. 이런데 주인도 그 사람 하는 것도 보고 좋아하고, 태도도 보니까 좋아하고, 그 사람 안면도 보니까 좋아하고, 감독도 좋아하고 일도 잘 되고, 자기도 좋고 모든 사람도 좋고 일도 잘 됩니다.
왜? 예수님이 완전이기 때문에, 이 참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우리의 생명이시요 우리의 복의 근원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중보기 때문에.
그런고로 자기가 신앙 생활 하는 것이 뭣 때문에 하는 것은 그것이 뭣이냐? 절도요 강도요 그것이 삯꾼입니다. 그것 바라서 하는 것이 그게 삯꾼이오. 양을 바라서, 목자로 양을 바라서, 목자라면 뭣입니까? 예수님이 때문에 예수님이 인간 구원하는 요 구원 때문에 하는 것이 양 위해서 하는 것이요 그외에 딴걸 바라서 하는 것은 그게 삯꾼이라 그말이오.
삯꾼은 제가 암만 해도 마지막에 절정에 다다르면 예수님도 양도 버리고 도망칩니다. 제가 양을 위해서 희생할 수 없습니다. 자기 뭣 때문에 하다가 마지막에 주님 위해서만 하고 양을 위해서만 할 수 있는 그 시기가 딱 닥치면 집어던져 버립니다.
왜? 자기가 그 소망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고로 삯꾼이요 절도요 강도는 예수님으로 인하지 아니하는 것, 또 다른 걸 소망하는 것, 그게 삯꾼이라. 다른 걸 소망하는 것이 삯꾼이요 예수님으로 인하지 아니한 것이 절도요 강도요,
목자는 다른 것을 소망하지 아니하고 양을 소망하는 것, 그 사람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구원 얻는 것, 그 사람이 성화되는 것, 그 사람이 신앙 잘 지키게 되는 것 요것만 소망하니까 그것만 소망하니 자기가 버리면 그 사람의 신앙이 절단날 것이고 자기 신앙이 절단날 것이기 때문에 단지 자기가 소망은 그것밖에 없어.
양밖에는 소망이 없어. 자기가 예수님의 양되는 것, 또 자기에게 양된 그 양을 바로 기르는 것 요것만 소망돼. 요게 목자요 양의 우리에 문으로 출입하는 것이 목자입니다.
그런고로 모든 동기나 방편이나 움직임이나 시발은 예수님으로 인하고, 소망은 삯이 아니라 소망은 양이라. 소망은 양이라. 소망은 양이라.
자기가 하나님의 양으로 잘 자라는 것, 또 자기가 자기로 인해서 구원시키는 그 사람을 잘 길러서 예수님의 형상을 입히는, 양이라는 것은 비유입니다. 양이라 말은 비유요. 예수님을 목자로 삼았을 때에 그 양으로 비유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목자로, 예수님을 목자로 비유할 때는 구원 얻은 성도는 양으로 비한 것입니다. 그러면 이 양이라 말은 구원이라 말이오. 소망이 구원뿐이라.
양이라는 것은 구원을 말하는 것이요 목자라는 것은 구원을 잘 보호하고 구원을 잘 기르고 잘 준다 그말이오. 그런고로 예수님은 목자요. 우리의 구원을 잘 보호하고 구비하고 잘 기르고 잘 치료하요. 양은 이 구원을 말합니다.
그러면 소망은 양이라. 소망은 구원이라. 우리의 소망은 구원만이어야 되지 세상과 세상에 있는 어떤 것, 피조물이 우리 소망이 아니라. 구원. 그러면 하나님같이 온전하고 거룩하고 깨끗한, 온전한 자가 되어지는 요것만 소망이라.
이것만 소망이니까 이것 손해보고 이것만 소망하니까 돈 때문에 이 소망 버릴 수가 없어, 이것만이 소망이니까. 구원만이 소망이니까. 돈 때문에 구원 버릴 수 없고, 목숨 때문에 구원 버릴 수 없고, 고난 때문에 구원 버릴 수 없어.
그러니까 선한 목자가 되지.
그런고로 오늘 아침에 기억할 것은 “절도와 강도는 양을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목자는 양에게 생명을 주고 더 충만케 하려는 것이라” 목자는 예수님으로 인한 것이 목자요, 절도요 강도는 예수님으로 인한 것 외에 다른 것으로 인한 것이 그것이 절도요 강도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우리가 평소에 작은 것이나 큰 것이나 ‘내가 뭐 뭣 때문에 내가 이 말을 하느냐? 예수님 때문에. 내가 뭣 때문에 지금 이런 고생을 하느냐? 예수님 때문에. 내가 뭣 때문에 이렇게 참고 견디느냐? 예수님 때문에. 내가 뭣 때문에 이렇게 이런 일을 손해보는 일을 계속하느냐? 예수님 때문에.’ 예수님 때문에 하는 그 일만이 자타에게 구원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