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에게 대한 사대관


선지자선교회 1982년 7월 14일 수야

 

본문 : 요 1:1-18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하나님께로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났으니 이름은 요한이라 저가  증거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거하고 모든 사람으로 자기를 인하여 믿게  하려 함이라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거하러 온 자라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거하여 외쳐 가로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니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본문 : 요한복음 1장 1절∼18절  제목 : 예수님에게 대한 사대관  요절 :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의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요1:18)

 서론  예수님에게 대한 네 가지를 본문에서 가르치고 있다.

 ⑴ 예수님이 오시기 전 어떤 일을 하고 오신 것과  ⑵ 오시기 전 어떤 분으로 계시다가 오신 것과  ⑶ 오실 때에 무엇을 하시려고 오신 것과  ⑷ 성도된 우리들의 할 일은 무엇인가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1. 오시기 전 영계와 물질계와 그 가운데 있는 크고 작은 모든 것을 홀로 다  지으셨다. 오늘까지 재창조(재창조란 말은 하나님이 지으신 것 가지고 새로 짓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부모를 지으셨는데 부모를 통해서 또 그 자녀를 짓는  것을 가리켜서 재창조라 말합니다.)의 모든 역사도 주님이 하신다. 또 세상을  그가 지으시고 지금도 계속 운영하고 계신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은 그의 땅이요 그의 것들이다. 이것이 오시기 전에 하신 일이요.


 2. 오시기 전 그분은 영원 자존하신 하나님이시요. 이름은 말씀이라는 이름을  가지신 하나님이시다.(1절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하신 말씀은 신구약 성경  말씀 진리가 아니고 하나님의 이름을 말씀이라 했습니다. 진리가 아니고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영원전 하나님이 일을 시작할 때부터 시작하신 모든 일을  같이 하시고 계속하신 삼위일체 중 성자 하나님이시다.


 3. (오실 때) 생명을 가지고 오셨으니 이 생명은 하나님의 본체가 가지신 모든  능력을 가리키심이다. 이 생명에 접하면 사람들은 비로소 빛이 되고 빛으로  영원히 살게 된다. 어두움이라 함은 인생의 사망과 모든 불행을 가리키고 빛은  생명과 행복의 것들을 빛이라 칭한다. 그러므로 어두움이 된 인생을 빛되게  하시려고 오셨다. (모든 사망과 불행으로 되어있는 인간을 영생하는 생명과  행복되게 하려고 오셨는다는 말입니다.)  4. 지극히 크심의 대상인 우리의 할일이 무엇인가? (예수님은 지극히 크신  분인데 그분보다 큰 분이 없고 또 그분이 모든 것을 다 지으셨습니다. 아무리  크다 해도 그분이 지으신 그분의 것이요. 이렇게 지극히 크신 분의 상대자가  되었다. 그분을 상대하는 지극히 존귀함을 우리가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지극히  크심의 대상인 우리의 할 일이 무엇인가? 일국의 위대한 사람을 상대해도  크다고, 아주 자기보다 좀 높은 사람, 또 유식한 재산 있는 사람, 권세 있는  사람, 이런 사람을 상대해도 '아, 저런 분이 나같은 사람은 아주 사람 같지 않게  여길 건데 나를 상대해 준다. 나를 귀히 여겨 준다.' 얼마나 감사하겠습니까?  이런데 이 지극히 크신 이분을 우리가 상대하게 됐으니까 얼마나 큰 행복인지  모릅니다.)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나 우리는 그를 알았고 우리가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자녀되는 권세를 이루어가게 된다. 믿는다는 말은 우리의 지식으로 하나님의  지식을 영접하고 우리의 능력은 그의 무한한 능력을 영접하는 데 써서 우리의  지능으로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영접하는 이 일을 계속해야 한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라는 것은 하나님의 온갖 충만을 상속받고 그 무한 상속을  감당할 만한 하나님 같은 자로 성화 되어져 가는 것을 말씀한다. 그런고로  우리의 할 일은 어디서나 지체 말고 믿음에서 믿음으로 달려 종착을 향하여야  한다.

 우리는 이제 본문에서 다 안 줄 압니다. 우리가 먼저 지식하지 못하면, 먼저 이  사실을 알지 못하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될 것을 모르게 됩니다. 이제 이  요한복음 1장에서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어떤 일을 하신 것과 또 오시기 전에  어떤 분으로 계신 것과 또 오실 때 무엇을 가지고 무엇 하러 오신 것과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나 하는 것을 간단하게 이 본문에서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먼저 우리는 이것을 바로 알아야겠습니다. 알고 난 다음에는 그대로  실행을 해야 우리에게 구원이 되지 아는 것만 가지고는 소용이 없습니다. 사람이  추울 때에 따뜻이 하면 추위가 없어질 줄 알지만 따뜻하게 하지 안하면 그  추위는 아는 것 가지고 없어지지 않습니다. 또 사람이 배고플 때에 음식을  먹으면 배부를 줄 알지만 음식을 안 먹으면 소용없습니다. 또 음식이 옆에 있다  할지라도 아무리 자기 옆에 있어도 그 음식이 자기 입에 들어가야 되지 들어가기  전에는 소용없습니다. 아무리 옆에 따뜻한 온돌방이 있다 할지라도 제가  온돌방에 들어가지 안 하면 밖에서 얼어서 동상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아무리 이 네 가지를 우리가 안다 할지라도 이 네 가지 아는 대로  우리가 살아야 되지 살지 않으면 아무 효력이 없는 것입니다. 살아야 효력이  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는 것은 어떤 것이 사는 것인가? '아, 주님이 이 우주와 우주 안에  있는 모든 것과', 우리가 영계 것은 가끔 접하지 많이 가보지를 못했지만 영계는  더 큰 것인데 영계와 영계에 있는 모든 것을 주님이 다 만드셨다고 말씀한 것을  우리가 압니다. 알면, 주님이 만드셨으니 주님이 만드신 것을 알기만 해서는  소용없고 모든 것을 접할 때, 우주 안에 있는 것이나 이거나 저거나 그것을 접할  때 '이것이 우리 주님이 만드신 것이다. 이것은 내가 사랑하는 주님의 것이다.'  하는 것을 그대로 내가 알고 그대로 살아야 됩니다. 그대로 상대를 해야 됩니다.

내가 그대로 알고 그대로 아는 대로 행동해야 그것이 믿음입니다.

 성경에서는 배웠지만 실제로 세상에 아주 큰 것을 만났을 때는 이것을 주님이  지으셨다는 것을 말로만 들었지. 그것을 실제 요것 주님이 지으셨다. 이것  주님의 것이다. 주님이 날 위해 지으셨다. 이것을 실제로 자기가 인정하고  그대로 그것을 상대하는 이것이 위대한 것입니다. 이것을 주님이 원하십니다.

이럴 때는 주님의 능력은 역사를 하십니다.

 말로는 해도 큰 것이 보일 때, 이 바다가 만경창파의 바다를 자기가 떡 대해서  바다가운데 빠졌을 때 '아이고, 이 바다는 무변대해인데' 그러면 바다 큰 데에  빠져가지고는 이 바다도 주님이 사랑하셔서 내 구원을 위해서 지으셨는데 이것  주님이 지으신 것인데 그것을 믿을 때 그때에 주님은 나의 주님으로 나는 주님의  자녀로 만경창파의 주인공으로, 내가 거기서 권세를 가지고 살 수 있지만 안  믿을 때는 빠져 들어가고 헛일입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어떤 아주 훌륭한 사람, 두렵고 위대한 사람을 만날 때에 '이 사람은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이 만든 사람이요, 주님의 것이요 주님이 이 사람 만드신 것은  내 구원 위해서 만드셨다. 이 사람은 내 구원에 필요한 것이다. 주님이 만드신  주의 것이니 내 것이다. 주의 사람이니 내 것이다.' 자꾸 이렇게 해석해 가지고  그 사람에 대해서 말을 하면 그 사람이 화를 내가지고 달려들 것이니까 말은 안  하지만 딱 알기는 이분은,  그래, 사랑하시는 주님의 것임을 인정할 때는 자기는 달라집니다. 주님의  것이니 내것이라고 확실히 인정할 때, 인정한만큼 달라집니다. '이 사람은 내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이 지으셨다는 것을 인정할 때 달라집니다. 이러니까 이는  사랑하는 주님이 만드셔서 내 구원 위해서 만드셨기 때문에 이걸 내가 귀중히  취급해야 되겠다. 소중히 취급해야 되겠다.' 믿을 때에, 그때에 내라는 사람은  아주 달라집니다. 마음도 달라지고 태도도 달라지고 거기에 대한 견해도  달라지고 행동도 달라지고 달라집니다. 이것이 달라지게 되면 이 실상이 있어야  된다 그거요.

 아, 자기가 어디 가서 보니까 아주 건들건들한 좋은 젖소가 열 마리 있는데  젖소 열 마리를 보고 '소가 아주 잘 생기고 좋구나.' 이랬는데, 자기가 듣기는  자기 아버지가 '어디 목장이 있다.' 하는 그 말을 들었지만 '있는가 없는가?'  이랬는데 소■■■실지로 보고 '소가 좋다.' 이러니까 '어디서 왔습니까?'  '아무데서 온 아무것입니다.' '아, 그러면 우리 주인어른 아드님이군요.' '어찌  압니까?' '이게 내나 자기네들 목장 아닙니까?' 이럴 때에, '아, 아버지가  목장이 어디 있다더니 이게 우리 목장이로구나. 자기 목장인 것을 깨닫고 알고  나서 보니까 그 목장에 대한 생각이나 태도나 정신이나 모든 마음이 확  달라집니다. 그것은 실지로 믿기 때문에 달라지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자기가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을 대할 때에 참 믿느냐 안  믿느냐 하는 것은 자기가 거기 대해서 변화되고 안 되는 것이 그것이 증거하는  것입니다. 변화되도록 믿는 거기에서 효력이 나타나는 것이지 암만 입으로  알아봤자 소용이 없습니다.

또, 자기가 보기에 아주 흉한 사람이 있습니다. 아주 자기에게 어떻게 밉상스런  일을 하든지 이거는 당장 없애버렸으면 싶을 만치 원수같이 그래 되고 어떻게  밉상만 지기고 나쁜지, 이랬는데 '이것은 주님이 이 사람을 만드셨다. 이 사람은  내가 사랑하는 주님의 사람이다. 주님의 것이다. 이 사람은 내 구원 위해서  지으셨다.' 이렇게 주님이 만드신 이것을 자기가 생각하고 깨달으니까 그 원수에  대해서 자기의 마음이 변화가 되어지고 생각이 변화되어지고 태도가  변화되어지고 거기 대해서 행동이 변해집니다. 이것이 변해지기까지 믿어야 된다  말입니다. 믿느냐 안 믿느냐 하는 것은 내가 변화되고 안 되는 것이 믿고 안  믿는 증거입니다. 아무리 제가 입술로는 말해도 변화되지 않는 것은 믿지 않는  증거입니다.

 하나 비유가 될는지 몰라도 어떤 병에 걸렸는데 '그 병에는 콩은 먹으면  직사하고 팥은 먹으면 대번에 살아난다.' 이렇지만 콩팥이 어디 있느냐? 콩은  먹으면 당장 죽고 팥은 먹으면 당장 살아난다고 의사들마다 말하는데 여기 뭐  팥이 있나? 팥만 먹으면 대번에 살아난다 하는데 이 사람은 콩 박사요, 팥  박사입니다. 콩과 팥에 대해서는 아주 잘 아는 박사입니다.

 이런데 누가 가져오기를 '여기 콩팥을 가져왔습니다.' 하면서 콩하고 팥하고  섞인 것을 가져왔는데, 아, 거기서 팥만 가려내가지고 먹으면 당장 살아날  것인데 팥을 먹지를 못하겠다 말이오. 왜 못 먹겠소? 입으로는 팥에 대서 어떻게  잘 가르치니 팥 박사이고 콩에 대해서 잘 가르치니 콩 박사인데 막상 딱 죽을  지경이라 팥은 먹으면 살고 콩은 먹으면 직사한다 하는데 팥하고 콩하고 갖다  놨는데 먹지를 못한다 말이오. 왜 먹지를 못하겠습니까? '이게 팥은 팥 같은데  확실히 모르겠다.' 이러니까 잘못 먹으면 직사할 터이니까 먹지를 못하겠다  말이오. 못 먹는 그거는 뭐이냐 하면 제가 팥 박사, 콩 박사지만 거짓부리라  말이오. 입술만 말하지 실상은 모르는 자라 말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모든 것을 주님이 다 창조하셨다는 것을 자기가 지식으로는  안다 할지라도 그것에 대해서 자기의 마음과 태도와 행동이 거기에 합당한  행동이 안 되면 그 사실을 인정치 않는 증거라 말입니다. 자기가 거기 대해서  필연적으로 변화가 될 그 변화가 되지 않으면 거기 대해서 확실히 믿지 않는  증거입니다.

 그러기에 믿을 때 된다. 확실히 인정을 하므로 내 마음이 달라지고 내 태도가  달라지고 내 정신이 달라지고 내 행동이 달라지기까지, 달라진 이것은 믿는  증거란 말입니다. 달라지기까지 믿을 때에 달라진다. 달라지는 그것이 뭐이냐?  그것이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다. 이러니까 안 믿으면 소용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슨 노력을 하느냐?  볼 때에, '이거는 하나님이 지으셨다. 하나님이 내 구원 위해서 지으셨다.

하나님의 것이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므로 지으셨기 때문에 이거는 내게  유익되다.' 자꾸 말을 해도 믿어지지 안 해. 안 하니까 또 말을 하고 또 금식  기도하고 또 말을 하고 또 명상을 하고 자꾸 이러니까 차차 차차 인정이  되어집니다. 인정이 되어져서 '주여, 믿습니다! 옳습니다! 주님이 지으신 주의  것입니다! 주님이 내 구원 위해서 지으셨습니다. 이는 내게 필요한 것입니다.

보배입니다. 주의 것이기 때문에 내가 귀중히 소중히 취급해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마음에 확신이 생겨지다가 실제로 가 당하니까, 엎드려 기도할 때는  확신이 생겨졌는데 눈뜨고 대하니까 또 달라진다 말입니다.

 또 와야 됩니다. 또 와가지고 또 기도하고 생각이 되어가지고서 이제는 확실히  그를 내가 이렇게 주님이 창조하신 것을 인정하므로 말미암아 그만 내 마음이  변화가 됐고 내 생각이 변화가 됐고 내 행동이 변화가 됐고 내 모든 정신이  변화가 되고 믿음으로 변화가 된 그 변화가 일어나야 됩니다. 변화가 있어야  그것이 하나님의 자녀되는 권세요, 변화가 일어났을 때 변화가 일어나 그대로  그것에게 대해서 내가 행동을 하면 그것이 뭐이냐? 그것을 잘 바로 이용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선물로 쓰는 것이요 내 구원이 이루어진 것이요, 그것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내게 지어주신 목적이 다 달성되는 것이라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네 가지 중에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을 지식으로 알고 내가  지식으로 아는 것이 내가 변화가 되기까지 내가 지식으로 확실히 알아서  인정하는, 내가 변화되기까지, 변화 안 되면 인정 안 하는 것이야, 거짓부리야.

말로만 하는 거지 인정 안 하는 것이야. 변화가 되기까지 인정을 하려고 애를  쓰니까 변화가 되어집니다. 변화가 되어지기는 되어지는데 막상 행동을 하려고  하니까 또 주저하고 안 된다 말입니다. 변화가 되겠지만 이 변화가 실력 있는  변화가 아닙니다. 이 변화된 이것이 그대로 그것에게 대해서 행동이 되어졌으면  비로소 거기 대해서는 올바른 순서와 결실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식으로 알고 지식으로 안 그것이 인정하는 데에 도달하게 한  지식이라야 되고 인정하는 그 인정이 내가 변화되기까지 인정을 해야 그 인정이  산 인정이고 내가 변화가 되기는 됐는데 막상 행동하려고 하니까 안 되니 그것은  가짜요. 변화가 됐는데 행동을 할 때 행동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면 결실이 이룬  것입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이것을 원하십니다. 이것이 무엇이냐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주신다.

 이렇게 믿음으로 이제 지식하는 지식도 하나님의 지식이 됐는데 이것만  가지고는 죽습니다. 인정하는 그 인정을 가졌으니까 이것도 보배지만 인정만  가지면 헛일입니다. 인정가지고 자기가 변화가 되어졌습니다. 변화가 되어진  이것만 해도 아직까지 완성은 아니요. 변화가 된 것이 그대로 행동이  되어버립니다. 이러면 그것이 완성된 것인데 그것이 무엇이냐? 그것이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라, 그것이 하나님의 자녀의 실력이라. 그것이 무엇이냐? 우주와  영계의 모든 것과 아버지의 모든 것을 자기가 상속받을 수 있는 그 자격이  마련되는 것입니다. 그것 됐다고 다 받는 것 아니라 그것 된 것만큼 상속받고 또  된 것 만큼 상속받고,  그렇지 않습니까? 부자들도 자녀에게 줄 때에 '야, 너는', 그 총재의 아들  하나에게 '야, 너는 구멍가게 이것 하나 봐라.' 큰 회사가 있지만 회사는 안  맡깁니다. 그 구멍가게 맡겨주니까 그 구멍가게를 잘 합니다. 잘 하니까 조그만  회사를 하나 맡겨 줍니다. 또 그 회사 일 잘 하니까 또 큰 회사를 맡겨 줍니다.

아, 잘 하니까 두 회사, 두 개, 세 개를 맡겨 줍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것이 믿을 때에 하나님의 자녀의 실력이 갖추어짐에 따라서  하나님의 모든 충만한 것을 자기 실력에 따라서 줍니다. 그 재간에 따라서 금  닷냥쭝, 두냥쭝, 한냥쭝 맡겨준다고 재간에 따라서 주신다고 말씀하신대로 그  실력 갖춘데 따라서 주십니다.

 이러니까 이 세상에서 무궁세계에 무한한 것을 자기가 하나님이 맡겨 주심을  받을 수 있는 이 상속받을 수 있는 상속권을 지금 마련하는 것입니다. 상속권을  마련하는 동시에 상속받은 것을 자기가 감당할 수 있는 그런 실력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상속받을 만한 실력이 있으면 하나님이 자꾸 상속시켜  주십니다.

 이러니까 그것을 마련하는 것을 가르쳐서 하나님의 자녀되는 권세를 준다. 뭐  믿으면? 이제 창조, 이것을 여러분들이 시험해 봐요. 자꾸 이것을 연습합니다.

'그분■■■오시기 전에 어떤 분으로 계셨는가? 그분이 영원 자존하신  하나님이시다. 모든 것을 주권하시는 하나님이요. 주재의 하나님이요. 계시지  않는 곳이 없고 알지 못하심이 없고 모든 것이 당신의 것이다. 이분이 영원  자존하셔 가지고 목적을 정하실 때에도 내나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목적 정하실  때 내나 이분이 정했고 이분이 삼위일체 중에 하나요 하나님의 본체시다.

이러니까 모든 것이 이분으로 말미암아 생겨졌다. 이러니 제일 크시다.'  이러니까 하나님께서 보여 주십니다. 모든 존재를 보일 때, 이것 떡 보이니까  '아이고, 크다. 이거는 주님보다 크다.' 낙제해 떨어졌어. '아, 주님이 이것도  만드셨습니다. 참 솜씨 좋습니다. 귀한 것을 만드셨습니다.' 이제 당신이 모든  것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인정을 하느냐 안 하느냐? 인정하고 그대로 행동하느냐  안 하느냐? 이거 시험하는 것이요. 우리를 세상에 두신 것은 딴 것 아무 것도 안  합니다. 이것 시험합니다.

 '또, 주님은 자존하신 하나님이시다.' 아무리 큰 것을 대해도 '아, 이것도  주님이 만드셨다. 이것의 머리도 주님이시다. 이것보다 크신 분이 주님이시다.'  이러니까 아무리 커도 주님보다 큰 것이 없어. 주님이 제일 커. 아무리 능력  있어도. 주님이 제일 능력 있어. 아무리 권세가 있어도 그것도 주님이 더 권세  있어. 주님에게 속했어. 이렇게 이것으로 시험하고 저것으로 시험해서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자존하신 하나님이신 모든 것의 주권자 주재가 되시는 하나님이신  이분으로 인정을 하나 안 하나? 이것을 시험하십니다.

 자기 주관 감정으로 확실히 인정을 합니다. 인정하면 인정한대로 정말로 행동할  만큼 인정을 하나 행동을 하나 안 하나 그 행동해야 될 그것을 보여 주십니다.

그때에 인정한대로 행동에 떨어지는 수가 있습니다. 그 행동하면 그 면은  완성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가 됐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생각 없이 지나가지만 하나님께서는 매 시간, 범사에 하나님이 시험하십니다.

 날 하나님으로 아느냐? 나는 여호와 하나님이다.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것을  구약에 얼마나 많이 말씀했습니까? "네가 나를 하나님인줄 알기 때문에 내가  너를 높이리라." 주님이 하나님이심을 알고 확실히 인정하고 하나님으로  상대해서 그분을 그분으로 상대해서 내가 행동을 할 때에, 그 행동이 인간이  자꾸 올라가는 것입니다. 올라간다 말은, 사람이 커지는 것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아는 이것으로만 커지지 딴 것으로는 커지는 길이 없습니다.

 올라가는 길도 그렇습니다. 인간이 궁지에서 솟아오르는 것은 주님을 사랑하는  이것만 가지고 솟아나지 딴 것으로는 솟아나는 길이 없습니다. 딱 요래 놨는데  이것은 그렇게 말로만 하지. 여러분들이 이 시간에 그래 살아가지고 어떤  사람은, 기도를 많이 한 사람은 자기 속에 아멘이고 느껴지지만 이렇게 실지로  이 사실을 믿는 믿음이 되는 데는 그렇게 쉽게 되는 것 아닙니다. 밥도 굶고  기도도 하고 공연히 기도하러 가 가지고 금식 기도한다고서. 밥만 굶고 날만  채우면 되는 줄 알고. 아무 소용없습니다. 암만 철야해도 소용없습니다. 산에  가도 소용없습니다. 이것을 믿으려고 자꾸 발성해. 성경 연습.

 이러다가 나중에, 처음에는 말로는 그렇지만, 이러다가 애를 쓰면서 믿음이  생겨진다 말입니다. 그때는 '주여, 믿습니다. 주여 확신을 주옵소서.' 그때에  오면 '■■■믿음 외에는 더 큰 것이 없다. 이 사실을 믿으면 모든 것 다  성공이다.' 믿음이 보배라는 것을 자기가 알고 확신을 달라고 기도하고 또  그러고 난 다음에는 자기에게 믿어집니다. 믿어지면 모든 것이 탁 펴입니다.

모든 것이 해결입니다. 모든 것이 성공입니다. 모든 것이 희망입니다. 이 희망할  것이 없는데, 이렇게 자신이 변화되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것, '아, 이분이 그 안에 생명이 있다. 생명을 가지고  오셨다.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니 어두움이니 말하는 것은 어두움은  인간이 타락한 그때부터 영원히 멸망하는 그 상태를 가리켜서 어두움이라 그렇게  표현을 했고 빛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전에는 빛이 없었었는데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죄, 칭의, 화친의 생명, 하나님의 자녀, 영생, 의, 진실, 거룩,  사랑, 주권, 의, 이 모든 생명과 평강, 행복, 기쁨, 영원히 가고 가도  행복스러운 것, 여기에 속한 것을, 생명■■■평강과 행복에 속한 것을 표시해서  빛이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생명을 가져왔지 인간에게 인간이 빛되게 인간이 빛으로 살도록  인간이 어두움을 벗고 빛으로 살도록 인간이 어두움의 멸망을 벗고 빛의  생명으로 살도록 하는 이 능력을 가지고 오신 분은 주님뿐이십니다. 뭐 이종교  아무데도 없습니다. 주님뿐입니다. 구약에 있는 성도들도 다 구원을 얻지  못했습니다.

 구원을 얻지 못하고 예수님을 모형하는 짐승을 잡아서 제사드리는 이것으로서  예표를 믿고 기다리고 있다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난 다음에 비로소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죄의 담이 헐어진다는 증거로서 휘장이 갈라졌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난 다음에 무덤 속에서 자던 성인들이 다 이제 그때사  새생명을 얻어가지고 일어났습니다. 그거는 뭐이냐? 구약 성도들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바라보던 구원이 이제 완성됐습니다. 내가 온 것은 율법을 온전히  이루기 위해서 왔다 말씀하신 것이 그것입니다.

 이러니까 인간의 영이나 육이나 금생에나 내세나 개인이나 가정이나 사회나  국가나 인간에게 좋은 것은 다 빛이라고 표시한 것인데 좋은 것은 빛인데, 이  좋은 것은 예수님이 가지고 오신 이 생명에 접선이 되어야 되지 접선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러니까 이 생명을 예수님이 가져오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이 생명을 가지고 오셔가지고 우리에게 나타날 때 무엇으로  나타냅니까? 신구약 성경 말씀과 영감으로 우리에게 나타내는데 진리의 말씀과  영감이 이것이 생명이 아니라, 사죄와 칭의와 화친의 새생명을 통하여서 이  진리와 영감으로 하나님에게 접선시킵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사심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사심에 접선이 됩니다. 하나님의 사심에 접선이  되는데 하나님의 사심을 가지고 왔다 그 말입니다.

 또 "항상 있는 말씀이라" 그 말은 하나님의 역사에, 하나님이 역사할 때는  그분에게는 역사가 나오면 진리가 나옵니다. 당신의 뜻이 나옵니다. 영감이  나옵니다. 이러니까 당신의 움직이심에 접선 됐다. 이러니까 하나님이 영원히  움직이시니까 영원히 움직입니다. 오늘은 이래 움직이고 내일은 저래 움직이고  모레는 저래 움직이고 당신이 움직이는 대로 따라 움직입니다.

 움직이는 움직임에 떨어져 나온, 한 번 움직여 놓은 그 움직임으로 우리가  살아납니다. 한 번 움직여 놓은 그것으로 살아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영원히  움직이시는 움직이심에 우리가 접선되어가지고 그분이 이러하니까 나도 이러하고  그분이 저러니까 나도 저러하고 그분의 움직이심에 접선되어가지고 살아나는  것이 우리 육이요. 그분의 존재하심에 접선되어가지고 살아난 것이 우리 중생된  영입니다.

 그러면 그분의 존재와 그분의 역사, 이것을 가지고 오신 것을 가리켜서 "생명을  가져 왔다." 이러니까 이 생명과 접선이 되면 빛이 된다. 우리 중보자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과 관계된 우리 구원이 어떻게 큰지  모릅니다. 지금 모두 입술로 사죄니 칭의니 하나님의 자녀니 중생이니 이렇게  말을 하지만 중생에 대해서 말하는 교리 학자가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도 없어!  여러분. 중생이 어떤 것이라 하는 것을 말하는 학자들이 하나도 없어.

 성령으로 중생됐다. 진리로 중생됐다. 이 말은 다 하지만 성령으로 중생되고  진리로 중생된 깨달음은 요한복음 3장에 말씀했는데, 베드로전서에 1장에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으로 우리가 살아났다. 중생됐다. 항상 있는 말씀으로  중생됐다." 이미 한 번 말씀해 놓은 그 말씀으로 중생되는 게 아니라 말씀하신  거기에 연결되어 가지고 중생됐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원토록 하나님이 말씀하는 그 말이 우리에게 나옵니다.

어제도 하나님이 말씀한 말이 내 입으로 나왔고 오늘도 말씀한 말이 내 입으로  나왔고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말하는 것은 내 말이 아니요 아버지가 내  안에서 말하는 그 말이 내 입으로 나온다. 내 입은 또 아버지가 무슨 말하든지  나오지. 내가 말하는 것이 아버지가 말하는 것이라. 꼭 그대로 우리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명을 가지고 오셨다. 뭐할라고? 빛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세상을  ?하는 빛이 아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하는 그 말은 우리가 자체가 빛이라  그 말 아니요. 우리는 하나님과 떨어지면 당장에 새카매집니다. 우리 자체는  빛이 아니요. 우리는 하나님의 그 생명에 연결되어가지고 연결 힘으로 우리가  빛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 빛이 우리를 통해서 나타나요. 그래 참 빛이 있으니  곧 도성인신하신 분인데 예수님이 빛이시라. 예수님이 빛이라 말은 생명의  근원이라 말이요 행복의 근원이라 말입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말은 이제 생명과 빛을 가지고 와가지고 생명에  접선되어서 우리를 다 빛 되게 합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요한복음은 보면 어떻게 좋고 어떻게 참 크고 만사가 다  해결이라. 예수님 믿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없어.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안 하더라." 그 사람의 주인이 누구요? 사람의 주인은  주님 아니요? 그러기 때문에 아무리 원수라도 그게 내가 사랑하시는 주님의 그  사람의 주인이기 때문에 내가 그걸 만만히 못해.

 오늘 아침에(머리를 들어. 대가리 숙이면 자꾸 마귀 들어가.) 그런 비유한  비유가 맞을런지는 몰라도 어떤 집에 보니까 지팡이가 꾸불텅하이 얄궂은  지팡이가 '어디 누가 이런 쓰지 못할 지팡이를 가지고 왔어?' 지팡이를 들고  내버리려고 하니까 '왜? 이 지팡이를 대통령이 지금 짚고 오셨어. 대통령  지팡이라.' '아, 그래? 큰 일 날 뻔 했구나.' 아주 이 지팡이를 잘 모십니다.

그것은 무엇이냐 하면 그 지팡이를 업신여기면 대통령을 업신여긴 것이 된다  그거요.

 대통령이 강아지를 한 마리 데리고 왔어. 그 강아지가 어떻게 촐랑거리는지  옷에 올라오고 촐랑거려 쌓아서 옆에 있다가 '아, 그 강아지 못됐다. 저 바깥에  집어던져 버려라.' 이러니까 옆에서 말하기를 '이 대통령이 데리고 온  강아지인데 대통령이 사랑하는 애견이야.' '아, 그래? 큰 일 날 뻔 했다. 그러면  뭘 잘 주고 잘 다독거려라. 기쁘게 해라.' 아, 이러니까 그게 좀 못 마땅하다고  낑낑하고 나가려고 하니까 그만 대통령 때문에 겁이 나가지고 '아, 이 좋은 것  먹어라.' 좋은 것 주면서 자꾸 달래는데 왜 그러느냐? 저 안에 대통령이  들어앉아서 가만히 볼 때, 강아지를 대우하는 것은 강아지가 밉상이지만 자기를  봐서 대우하는 것이니까 자기 대우라 말이오. 강아지 대우인데 자기 대우라.

강아지 박대인데 자기 박대라. 이러니까 그 사람들이 그렇게 대우하지 않습니까?  그와 마찬가지로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 하더라" 자기 백성이라 말은 자기  사람이란 말 아니요? 이러니까 사람의 주인도 주님이시오. 이 모든 땅덩어리의  주인이시오. 우주도 당신의 것이오. 이러니까 이걸 정말로 사랑하는 내 주님의  것인 줄 알고 자기가 인정하고 느끼고 이런 실감을 가지고 실지로 그대로 행동이  나올 때, 이것이 결실 있는 믿음입니다. 행함이 있는 믿음입니다. 이러니까  아무리 그 사람이 못됐지만 그 사람에게 대해서 화를 내지 못합니다.

 그래서 손양원 목사님 말 들으면, 손양원 목사님 사모님이 좀 거석한  부인입니다. 이러니까 뭐 어떨 때는 기가 막힐 때도 있는데, 손 목사님이  그런데요. '아, 하나님의 따님인데 내가 함부로 했다가는 큰일난다.' 하나님의  따님이니까 하나님 때문에 뻘뻘 매고 하나님 때문에 거기 대해서 하나님 안면을  보고 조심해서 그래 했다 말이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일등 목사가 됐다  그거요. 이러니까 말로는 '이거 다 사람의 주인은 주님이시지.' 이랬지만 내가  어느 정도 실감이 있으며 내가 어느 정도 변화가 되며 어느 정도 행동이  되어지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되는 권세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굉장한 것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영접지 아니하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 당신이 한  순서 한 순서 이렇게 행동으로 가지고 우리에게 한 순서씩 던져 줄 때 그 순서  거기에, 이걸 믿는 자. 주님이 그 행동하시는 그 행동을 내가 믿는 자. 그  행동을 어떻게 믿는 자? 그 행동을 하나님의 지식으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내 것  삼으려고 내 지식, 내 능력 바쳐가지고 하나님의 지식을 영접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영접해서 나는 완전히 하나님의 지식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 현실을  행동하는 그것으로 통과한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네 가지를 첫째는 알아야 되겠고, 알면 어느 정도 알아야  되겠느냐? 인정이 되기까지 알아야 그 앎이 산 앎이 되겠고 인정이 되는 그  인정이 내가 행동을 하기까지 인정이 되어져야, 그러면 내가 인정이 되니까 내가  변화가 되어버리고 내가 변화가 되니까 행동이 되어지고, 그러면 인정하는 것이  내가 변화되어가지고 행동이 되면 이것이 믿음이라.

 이러니까 이것은 당장에 되지 않습니다. 자꾸 연습해야 됩니다. 얼마든지  연습해야 됩니다. 이 시간에는 됐는데 저 시간에는 안 됩니다. 자꾸 연습하고  연습을 해 가지고 이것이 되도록 연습한다 말이오. 자꾸 되도록 연습을 해서  그렇게 연습을 해 가지고, 이러니까 저번에 여기 보니까 어떤 청년이 기도하는데  이래. 막 확신 달라고 '주여, 확신을 주옵소서! 주여, 확신을 주옵소서!' 이래  하더니만 그라다가 나중에 '주여, 믿습니다! 주여, 믿습니다!' 그때는 확신이 좀  들어오는 모양이라.

 그게 뭐이냐? 속에 실감이 생겨지고 인정이 생겨지고, 그래도 그것 가지고는  아직까지는 미결이라. 그러는 가운데서 자기가 변화가 되어지고 그 일 딱 닥칠  때, 그 행동을 착 할 수 있는 거기까지 돼야, 행동까지 돼야 비로소 결실을 맺은  것이라 말이오. 이게 뭐이냐 이것이 뭐 부자 되는 방법이라고 해도 사람들이 할  건데 하나님의 자녀 되는 권세를 자꾸 성장시켜 나가는 것이니까 할 만하지  않습니까? 어떻소? 이 일을 자꾸 연습하고 주력하는 것이 이것이 한국에 제일 큰  회사를 경영하는 것만 못합니까? 미국의 대통령 되는 것만 못합니까? 세계를  점령한 것만 못합니까? 너무 크니까 사람들이 '과장한다' 과장 아니오.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라는 것은 그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란 말은 하나님의 것을  내가 상속받는다는 말입니다.

 또 아버지가 상속했을 때는 아들을 볼 때, '저놈은 내 아들이지만 똑똑하기는  해도 나는 민주주의자인데 저거는 공산주의자라.' 상속해 주겠소? 아버지를  닮아서 아버지 비위에 딱 맞고 아버지 성미에 딱 맞고 아버지 지식에 딱 맞고  아버지 행동에 딱 맞고 아버지의 실력에 딱 맞다 말이오. '저놈은 틀림없어.

이것 주면 잘 보관할 거야.' 그것이 실력 아니오?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란 말은  두 가지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큰 수입이 어디 있소? 이것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것을 믿는 것이 천하보다 보뱁니다.

 아는 것은 소용없소. 아무리 알아도, 배고픈데 밥 먹으면 배부를 줄 알아도 안  먹으면 소용없소. 밥이 없어도 소용없고 밥이 있어도 안 먹으면 소용없어.

우리는 밥도 있어요. 다 돼 가지고 있어요. 먹으면 돼. 내 지식과 내 힘만  기울이면 돼.

 그러기에 이것 어려운 말인데 우리의 지식은 하나님의 지식을 영접하는 데만  전용합니다. 딴 데는 쓸데없어. 여기만 전용하면 성공이요. 전용할 때에 이  자리에 있어도 전용하고 저 사건에서도 전용하고 그래가지고 우리의 지식은  하나님의 지식을 찾아가는 데만 쓰이지 딴 데는 필요 없어. 딴 데 쓰이는 것은  다 사망이라. 우리의 능력은 하나님의 능력을 영접하는 데만 쓰여져. 그게  뭐이냐?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다음은 인계해 가지고 다  해주신다." 그 말은 자기 능력가지고 있는 힘 다 기울여도 하나님이 하셔야 되지  자기는 할 수 없는 그 일을 우리는 다 기울여 할 때에, 내 힘을 다 드렸을 때에  하나님께서 내가 해주마. 인계 받는다 말이오.

 우리의 지식은 하나님의 지식을 영접하는 데만 전용물이요. 우리의 능력은  하나님의 능력을 영접하는 데만 전용물이오. 이런데 여기는 전용하지 안하고  엉뚱하게 쓰니까 다 그 사람은 잘되고 복 받은 것 같지만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지어졌어. 성공 같으나 실패입니다. 행복 같으나 다 불행스러운 사람이오.

이러기 때문에 "살리는 것은 영이오. 육은 무익함이라." 말씀했습니다.

 이제 이 네 가지를 지식하고 그 다음에 인정하도록 노력하고 인정이 되므로  자기가 이 사람으로 변화되기까지 노력하고 변화되고 그대로 행할 수 있는  행함이 되어질 때에 비로소 완성이라. 이 네 가지 단계로 우리가 노력합시다.

 광고합니다. 종전같이 철야기도 있습니다.

 또 건축에 대해서 일곱 가지 기도를 빼지 말고 하십시오.

 첫째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 주시도록, 또 온 성도들이 이 건축에 대해서 복을  받도록, 또 관민이 우리 건축에 대해서 협조해 주도록, 또 넷째로는 시공하는  분들에게 지혜와 총명과 충성을 달라고 건강을 달라고, 다섯째는 사고가 나지  아니하도록 우리가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좋은 재료를 달라고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또 좋은 일기를 달라고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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