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바로 믿으면 다된다

 

1988. 09. 10. 토새.

 

본문: 마 5:14-16  너희는 세상에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지난밤에도 증거한 거와같이 세 가지를 언제든지 상시로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에 성경을 읽는 데에다가 더 힘을 쓰고 깨닫는  데에다가 또 더 힘을 쓰고 그럴 게 아니고, 읽는 것보다 자기가 깨닫는 것보다  성경을 읽고 대할 때는 하나님과 예수님과 진리를 대하는 이를 자기가 대하는,  이를 대하는, 우리보다 크기 때문에. 이를 오시는 이것을 자기가 믿는 것을 더  힘써야 됩니다.

 이거 없이 성경을 자꾸 많이 좔좔좔좔 읽기만 하고 외우기만 하고 이러니까  학생들 때는, 어릴 때는 그들이 깨달음은 아직까지 가질 때가 시기적으로 아니기  때문에 외워만 놓으면은 자연히 자기 생활에서 깨닫게 되는 때가 옵니다. 변소  가서도 깨닫고 길 걸을 때도 깨닫고 생각만 있으면은 또 이야기 할 때도 깨닫고  이래 깨달아지지마는 조금 더 장성한 사람들은 잘못하면 자꾸 외식으로  삐끌어지기 쉽다 말이오.

 성경 읽는 데는 외식이 어떤 게 외식인가? 그저 성경을 자기가 읽을라고만 하는  것, '내가 하루 몇 장이니까 읽어보자' 이래 가지고 자꾸 읽을라고만 하는 애쓰는  그것이 성경 읽는 제일 외식입니다. 이러니까 성경을 읽어 가지고서 외워도 속에  뜻은 하나도 몰라. 또 그 사람이 그보다 조금 덜 외식은, 제일 외식은 읽을라고만  해 가지고 읽는 것이 성경 읽는 데에 제일 큰 외식이고, 그보다 조금 적은 외식은  어떤 건가? 거게 대해서 '성경이 무슨 뜻을 가르치고 있는가?' 거게서 뜻을  깨달을라고 이와같이 하는 것이 조그만한 외식 속껍데기요. 제일 겉껍데기가  성경을 읽을라고만 하는 것이 겉껍데기, 그것도 없는 것보다 낫지. 또 그보다 조금  안에 들어가서 이제 속껍데기는 자기가 깨달을라고만 애를 쓰는 그것이 속껍데기,  이래서, 뭐 성경을 읽고 뭐 신학자들이 그렇게 암만 그래도 아무 변화가 되지  않는 것과 또 이분이 뭐 가르쳐 주지를 안해. 그러니까 제가 암만 깨달을라고서  뭐, 설교 준비할라 하면은 월요일부터 한대요, 월요일부터 설교 준비를 하고  그래도 뭐 그래 하는 사람 하는 사람 있다면 하지마는 그래도 그거 가지고는  설교가 참말로 생명 있는 설교가 안 나가. 그것도 속껍데기, 껍데기 생활이라.

 성경을 읽을 때에는 바로 성경하면 말씀인데. 성경 말씀과 진리와 또 우리를  대속하신 예수님과 하나님과 하나입니다. 하나이니까 이분을 접하고 이분을  만나고 이분과 가까와지기 위해서 그래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그러면 성경 읽을  때에는, 이러기 때문에 이분은 지극히 크신 분이요 높은 분이기 때문에,  사람이라는 것이 자꾸 애를 써서 그래 해야 돼.

 그러기 때문에, 주기철 목사님이 그분이 베드로전후서를 제일 많이 읽었는데 혹  보면은 베드로전후서를 자기 서재에 앉아서 읽을 때에 울어. 베드로전후서를  그라면 울다가 또 두려워 떨다가 또 새파랗게 질려 가지고서 또 자복을 하다가  이렇게 성경을 읽을 때에 이렇게 상대해서 읽기 때문에 그분이 신앙에 참 위대한  걸음을 걸었습니다. 이래 좀 전에도 뭐 통지 보니까 주기철 목사님 뭐 기념관  짓는다고서, 어데 지어 놨다 하더라? 진해? 어데 지어 놨어? 몰라요, 모두?  진해든가 어데 지어 놨다고 통지 왔던데?  그래서 이것이 바로 진실되게 성경을 읽는 것입니다. 아주 제일 껍데기 제일  겉껍데기, 그 다음에는 속껍데기, 그 다음에는 성경을 바로 읽는 것. 이제는 좀  장성해서 그렇지 저는 처음에 거석할 때에 언제든지 성경을 읽을 때에는 이제  하나님을 찾아와서, 하나님하고 지금 나하고 대면하는 것으로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 제가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래 설교할 때는 언제든지 그걸 발표를  했습니다. '오늘 밤에는, 오늘 낮에는, 이 시간에는 주님이 무슨 말씀으로 찾아  오셨습니다.' 이렇게 늘 하면서 설교를 시작했지 그냥 설교 시작한 일 없습니다.

내가 서부교회 와 가지고도 다른 사람들이 조롱을 하기는 자꾸 해요. '그거 무슨  소리를 그런 소리를 하는가?' 이래 조롱을 하기는 해도 제가 몇 해 동안을 그래  하다가 이제 차차 차차 다 그래 알고 이래서 너무 그래 또 할 거는 없고 이래  속으로만 가지만 가지면 되지 않느냐 해서 그래 말 안 했습니다.

 내가 그렇게 '오늘 밤에는 이 시간에는 주님이 하나님이 무슨 말씀으로 찾아  오셨습니다.' 그러면 말씀으로 찾아오신 그 말씀이 곧 껍데기는 말씀이지만 속은  주님이라 말이오. 내가 설교할 때마다 그렇게 서부교회 와서도 그렇게 한 것을  들은 사람 손 들어 봐. 그때 예수 믿은 사람들은 다 들었어. 그때 예수 믿은. 그거  안 들은 사람 또 그 뒤에 모두 다 후물이라. 후물이니까 뭐 인제 찍해야 예수  믿기 시작해 가지고서 열심히 믿는 척해도 아직까지 멀었어. 마디가 없기 때문에  얼마나 애를 쓰고 얼마나 노력을 해야 될 것인지? 예수 믿는 줄 알면 안 돼. 지금  못 믿는 그 면을 잡아 가지고 자꾸 애를 써야 되지. 무슨 조그만한 일만 있으면  다 휘떡휘떡 넘어지는데 모두 다 절름발이 신앙. 또 기절하는 신앙, 뭣 하는 것  있으면 다 신앙 다 죽어 버리고 없는데, 뭐? 시집만 가도 죽고, 장가가면 죽고,  취직하면 죽고, 또 학교 입학하면. 죽고, 고렇게 그런 신앙인데 그거 무슨 세상을  이기겠소?  이러니까, 그렇게 상대하는 사람들은 성경으로써 하나님을 만났고 주님을 만나고  또 진리를 만나고, 이렇게 진리도, 진리는 그냥 이치가 아니라. 우주와 영계의  모든 것을 실지로 시공할 때 누가 시공했느냐 말이요? 시공, 하나님이 하지  안했어. 하나님이 지었다 해도 하나님은 말씀하시고 시공은 진리가 했습니다.

진리. 이 진리는 이렇게 큰 능력을 가졌어. 하나님이나, 삼위일체 하나님이나  진리나 꼭 같은 능력을 가졌어.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의 이 잘못된 것을 다  책임지셔서 해결됐고 우리가 할 의무와 책임과 본분을 다 완수를 했고  하나님으로 더불어 완전한 화친을 이루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삼위 일체 중에  우리에게 제일 큰 일을 실상을 이루었기 때문에 이분을 통해서 성부도 성령도  진리도 이렇게 그 관계를 가질 수 있어. 그라기 때문에 예수님은 중보자라.

 그러면 중보자인데, 그러면 예수님이 제일 가깝고 큰가 보다 이렇게 또  생각하는데 예수님이 도성인신하신 것도 성령으로 도성인신 하셨고, 또 모든  생애도 성령과 진리의 도우심으로 이렇게 했고, 십자가에 못 박힐 때도 내나  성령으로, 부활하실 때도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이렇게 부활하셨어, 진리로  부활하고. 이러니까 진리와 하나님과 예수님과 이 셋이 뭐라 했어요? 하나라.

하나인 걸 알아야 돼요.

 이래서 주님 하든지 또 아버지를 부르든지 또 자기가 성경 말씀을 대하든지  내나 하나이라. 이걸 믿어야 돼요. 어떤 사람은 이거 자꾸 주님 하다 보니까 너무  주님에게만 치우치고 하나님 아버지가 섭섭해하고 삐꾸겠다 하니까 예수님! 또  성령님! 또 '성부님! 이라다 보니까 인격만 상대하고 무인격인 지극히 큰 능력을  가지신 진리를 상대 안 하니까 또 진리! 이래 가지고 낱낱이 할 필요가 없이,  이것은 믿지 않는 사람은 낱낱이 말해야 돼. 주님을 말해 '주님' 또 '성령님' 또  '하나님 아버지' 또 '진리' 이렇게 불러야 돼. 불러도 그게 실상 온전하지를 못하다  그거야. 이 셋은 하나인 것을 언제든지 믿어야 돼요. 이 셋은 하나인 것을 믿고,  하나를 대할 때에 이 셋을 다 대한 이 사실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서 대해서 뭣을  상대해야 되지 그렇지 안하면 안 돼요. 이러니까, 설교할 때에 '오늘밤에는, 오늘  오전에는, 이 시간에는 하나님께서 - 예를 들어서 무슨 탕자비유라 하면 - 몇 장  몇 절로부터 몇 장 몇 절에 있는 탕자비유의 말씀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내가  이렇게 말해 놓고 늘 설교를 했어. 여기 서부교회 와 가지고도 아마 한, OOO  집사님, 얼마나 했는지 알아요? 내가 얼마나 했지? OOO권사님, 얼마나 내가  그랬어? 한 달 동안? 한 십년 가량, 아마 약 십년 될 거야. 한 십년 가량 내치  설교할 때 그래 했어. 그 알라고 말이지.

 이래서, 말씀을 상대할 때는 바로 주님 상대하는 것이요, 말씀을 무시하는 것은  주님을 바로 무시하는 것이요, 말씀대로 행하는 것은 주님과 동행하는 것이라.

이걸 믿어야 돼요, 믿어야, 믿는 게 이게 큰 믿음인데 이거 믿지 안하고, 뭐  사소한 거 그런 것도 믿어야 되지마는서도 원줄기를 믿지 안하면 다 헛일입니다.

 이래서, 매일 성경 읽는 것, 이러면 매일 성경 읽으라 그말은 매일 성경 읽을  때에 매일 주님과 동행인데 주님과 동행 어떻게 해요? 진리로 사는 게 주님과  동행이오. 또 사람이 기도할 때도 이렇게 자기가 눈에 보이지 않는, 주님 부르고  아버지 부르고 자꾸 이래 가지고서는 나중에 가서 잘못된 불건전한 신비주의가  돼 가지고서 탈선되기 쉬워. 그래 가지고 자꾸 삐뚤어진 사람들 많아.

 여기 OOO씨는 그래 삐뚤어졌어. 지금도 지금 정신이상자가 돼 가지고 전국에  돌아다녀요. 돌아다니면서 서부교회 백영희 목사님은 사람이 아니라 재림하실  예수라 하면서 그라고 자꾸 전하고 돌아다녀. 그 귀신에게 들려 그라고 다녀, 내가  그리 말라 해도. 그거 그래 하도 그래서 야단을 쳤더니만 인제 오지도 안해요.

그래 그렇게 되기 쉽다 그말이오.

 그러니까, 꼭 기도할 때에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 아버지를 보이지 않는 성령님을,  보이지 않는 대속하신 예수님을 대할 때에는 뭘로 대해야 됩니까? 틀림없이 그  위험성 없이 건전하게 상대할라고 하면은 뭣 상대해야 됩니까? 뭘 상대해야  돼요? 성경 말씀을 상대해야 돼. 거창집회에 가서 몇 시간 계속 가르치지 안했어?  무형의 하나님이 뭘로 나타나요? 무형의 하나님이 뭘로 나라나? 성령의 감화로  나타나. 무형의 하나님이 성령의 감화로 나타나. 성령의 감화가 뭘로 나타나?  진리로 나타나. 진리가 또 뭣로 나타나? 성경 말씀으로 나타나. 이러니까 제일  우리가 하나님 만나기 쉬운 하나님이 성부, 성자, 성령 이 진리를 제일 만나기  쉽게 만나는 방법이 뭐이야? 성경 말씀을 상대하는 것이라.

 이렇게 가르쳐도 모르면 스스로 깨달을 거라, 깨닫기를? 저는 예수 믿은 지 몇달  돼서 이걸 깨달았어. 그래서 그때부터 설교할 때에, 저는 예수 믿은 지 한 이 주일  지나고 난 다음에 설교했어요. 설교하고 가정에서는 그만 그때부터 설교하고,  집사로 지내면서 집사로 있을 때에 다니면서 부흥회 인도했습니다.

 세례 받은 지 삼 년이 돼야, 그때는 엄격했어. 성경학교를 가는데 저는 세례를  받지 안하고 갔었어. 왜? 세례는 너무 세례받을 기한이 안 되니까 예수 믿은 지  석 달밖에 안 됐으니까 세례 안 받았지마는서도 가니까 받아 줘. 그때 다른  사람은 어림도 없소. 그래 세례는 그때 한 너덧 달 돼 가지고 세례를 받는데  소문이 나 놓으니까 저 선교사하고 그때 여게 경상남도 그때 교육처장이던가 뭐  있는 OOO씨라 하는 그 사람하고 둘이 왔어. 둘이 와 가지고 어짜든지 준비해  가지고 와서 뭐 문답하는데 신구약 성경을 다 아는 걸 다 물어. 그때는 내가  성경을 외웠기 때문에 그 대답을 다 잘했어. 그래 그만 학습받지 안하고 세례를  바로 받았어요.

 그때부터 내가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서 성경을 대할 때에 하나님 대하는 것으로,  성부 대하는 것으로, 성령을 대하는 것으로, 곧 나를 대속하신 주님을 대하는  것으로 이렇게 내게 믿어져서 그렇게 믿고 이래 상대한 그것이 내가 성경을  깨닫는 것이나 행함에 상당한 은혜를 입은 셈입니다.

 그거 나는 뭐 그런 간보가 있는 사람이 아니야. 이런데 왜정 말년에서 뭐 한  것도 하나님이 날 도와 주셔서 그렇지 어떻게 그때 신사참배 안 하면 다 죽인다  하고 이래 가둬 놓고서 그때 뭐 교회들이 전부 굴복을 다 했는데 어떻게 그  일본부장 앞에서 내가 '신사참배를 너희들이 공연히 우상 섬긴다. 그거 날 달라.

너거 앞에 내가 불에 태울께.' 어떻게 그말. 일본부장 앞에서 가서 하겠소, 주재소  가 가지고. 그때는 주재소요.

 그거 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알면, 저가 나를 안즉 내가 저를 높히리라. 우리가  뭐 하나님은 '하나님이 이래 생겼나 저래 생겼나' 자꾸 이래 생각하면 헛일이고  하나님이 우리가 알기 쉽도록 진리로 나타났는데 진리도 참된 이치라만 생각하지  알기 어렵지 안해? 신구약 성경 말씀으로 맨 겉어머리 나타났어. 그래 성경  말씀을 상대하면 진리를 상대함이 되고 성경 말씀을 상대하면 성자, 성령, 성부,  삼위일체 하나님을 상대함이 돼. 이런 줄 알고 성경을 읽을 때 이분인 줄 알고  조심있게 상대하고 또 그분을 의지하고 그분에게 의논하고 그분에게 바라보면  그분이 해 준다 그말이오.

 매일 성경 읽고, 그러기에 성경을 이렇게 읽을 때에 성경을 이렇게 상대하는  것을 여러분들이 실지로 만들어야 돼. 이렇게 상대해야 되지 암만 지식으로 알아  봤자 소용없어. 매일 성경을 읽을 때에 이 성경은 삼위일체 하나님과 진리와 이제  하나이기 때문에 이를 상대하면 저를 상대하고 어느 것이든지 다 한가지라.

이렇게 상대하고,   또, 그 다음에는 매일 기도하고, 기도하는 거는 뭐이 기도하는 것인가? 이분하고  교제하는 거라. 무슨 교제? 자기가 감사한 것 있으면 이분에게 감사해. 성경을  읽을 때에 성경을 읽으면서 곧 성경과 성령과 예수님은 함께 있어, 성경과 진리와  그 하나님과 나를 대속하신 하나님과 함께 있어. 함께 있으니까 같이 상대하는  것인 것을 깨닫고 그분과 같이 높이고 두려워하고 조심있게 이렇게 해서  처음에는 무릎을 꿇고 읽다가 또 다리 아프면 나중에 퍼대고 앉아 했고, 또  나중에 되게 거석하면은 누워서 읽어도 돼. 누워서 읽어도 돼. 그런데 처음부터  누워서 읽으면 못써. 자기가 힘을 들여 가지고서 하나님을 섬기되 차차 차차  모자랄 때는 누워서라도 안 읽은 것보다는 낫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나중에  기도할 때는 누워서 기도해, 누워서. 이렇게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을 상대해서  감사할 걸 감사하고 또 잘못된 것을 자복하고 또 의논할 것 의논하고 구할 것을  구하고,  그래 가지고 이 성경 말씀을 읽으면서, 성경 말씀은 함께 있어. 그래서  신학적으로 성령이 성경 안에 계시는 것을 내재적 영감이라, 내재적. 내재적 영감.

내재하는 영감이라. 성경 안에 계시는 영감이라. 성경 안에 있어요. 성경 안에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성경 안에 있어요. 성경이 진리요.

 그러기 때문에, 이 성경을 대할 때에 하나님과 예수님과 진리와, 예수님도  예수님이라고, 예수님도 하나님인데 왜 예수님을 또 들먹이는가? 그거는 예수님의  대형, 대행, 대화친, 우리를 대신 부활 이를 대속했기 때문에 대속한 주님을  말하는 거라. 성경을 상대할 때에 하나님과 나를 대속하신 주님과 진리가 이  하나인 것을 믿고 이래 대해요. 믿고, 곧 성부를 대한 것인 것을 믿고, 성자를  대한 것인 것을 믿고, 성령을 대한 것인 것을 믿고, 진리를 대한 것인 것을 믿고,  그러면 이 셋은 권리가 얼마나 크요? 지극히 능력이 크요. 큰 줄 알고  두려워하면서, 이분을 이분으로 대접을 하면은 효력이 있습니다. '저가 나를 안즉'  하는 것은 뭐이냐? '저가 나를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하는 것은, 안다 말은  인정한다 말이요, 대우한다 말이오.

 이러니까, 성경을 이것을 그냥 책으로만 생각하고 읽으면 되는 줄 알고  지식으로만 가질라 하는 사람은 그것은 아주 겉껍데기야, 아주 제일 껍데기. 그  안에서 깨달을라고 애를 쓰는 사람은 속껍데기, 그것도 다 외식이라. 실제의  하나님을 상대하는 인격 상대로 지극히 큰 능력 상대로 이렇게 돼야 알맹이가 돼.

 그래 가지고 상대해서 매일 기도하고. 기도하고. 매일 이분과 서로 교제해. 무슨  교제해? '참 이거 감사합니다. 이거 내가 잘못됐습니다. 이거 지금 이렇고 이렇고  사정이 이렇습니다. 여게 대해서는 어떻게 해서 이겨 좀 도와 주십시오.' 이렇게  마치 자기 아무 거리낌 없는 부모와 자녀 사이에 그 자녀가 부모에게 대해서  그렇게 참 의지하고 바라보고 제일 좋아하고 높이면서도 만만하기가 짝이 없이  이렇게 자유롭게 위논하는 것처럼 그렇게 교제를 해야 된다 그거요   그거 하고. 그라면 '매일 성경 읽고 기도하고' 뭐 어짜라 말이요? 자기 일에  충성하는 게 뭐이요? 자기 일에 뭐이 충성인데? 이제 자기 일에 충성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 일 하라 한 그 일을 하는 것이 자기 일이라. 이 일 해라. 그러면  현실을 누가 줘요? 현실을 주님이 주시요, 하라 이럴 때에 그러면 주님이 지금  주님이 도와 주실라 했기 때문에 도와 주시는 고 도우심을 자기가 실지로 한번  입어 보는 거라. 입어 보는 것이 뭐이야? 자기 일에 충실한 것이라. 그라면 그  일이 잘 돼요, 자기 혼자 하는 게 아니라 진리, 하나님이 자기라 합해 가지고 하기  때문에 일이 잘 돼. 일이 잘 되니까 사람들에게 존대도 받고 존경도 받고  두려움도 받고, 아브라함이 그러니까 모든 사람이 두려워했어, '아, 저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같이 한다.' 이래 가지고서 두려워서 그거 뭐 개인으로 사는데도  나라들이 와 가지고서 화친을 청하고 이래 쌓았어. 또 나중에 가서 사대 강국하고  전쟁했지마는서도 이기고 말았어, 자기 집에 살림살이 지키는 파숫군만 해도 사대  강국을 이겼어, 큰 부자지? 이러니까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지.

 그것이 이제 셋째 빛인데 셋째 빛을 다음 주일에 가르칠 터이니까 그것을 반사  선생님들이 잘 알고, 부장 선생님들이 알고 또 통반할 때에 상단에서  어짜든지간에 이것을 가르치면 또 거게서 배운 반사들이 여게 참석 못 한  반사라도 그걸 알아 가지고서 잘 가르칠 거라 그거요. 그래 가르치면 실제의  효력이 나서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려.

 그래서, 우리 주일학생들이 실은 다른 교회 주일학생들과 좀 다릅니다. 실행력이  강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학교 가 가지고도 뭐, 지금은 그게 없어 좀 있으면 나을  거라. 국기 배례니 그런 것 할 때 안 하고 또 주일 안 범하고 지키는 학생들이 다  우리 학생들이라. 이 학생들은 뭐, 집회도 가지 또 예배시간에는 아무리  중학생이고 고등학생이고 한다 해도 예배시간에 딱딱 와요. 와도 학교에서 아예  말도 안 해. 왜? '저거는 암만 붙들어 봤자 아예 그라면 공부를 안 했으면 안  했지 저거는 할 터이니까 아예 저거 할 수가 없다.' 그만 이렇게 돼. 자기 자녀들,  저 OOO장로님 그 큰 아이가 몇학년이요? 중학교 삼학년? 중학교 삼학년이면,  그거 뭐 과외 공부한다고서 그 예배 시간에 빼는 일 없는가? 빼면 애비가 아니라.

자식 죽이는 거라. 그것 봐. 안 빼지, 봐. 안 빼요. 어림도 없어, 아예.

 이러니까, 옳은 서부교회 학생들은 이거 뭐 마귀란 놈이 아예 달라 들지를  안합니다. 그라면 신강도 안 해. 뭐 집회 간다고서. 이 오윌집회 가면 결석하지  안해? 5월집회 간다고 이래도 그런 학생들은 아예 뭐 갈래 안 갈래 얘기 할 것도  그만, 가도 저것들은 할 수 없다. 그래도 그걸 멸시를 못 하는 것은 공부가  일등이거든. 행실이 일등이거든. 그래 놓으니까 그만 학교서 아예 머리를 숙여요.

예수 믿는 게 이런 것입니다. 예수 믿는 것이 천대받는 거는 더럽게 믿어  천대받아, 소금이 맛을 잃으면 사람에게 걸려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예수 잘못  믿으니까 사람에게 밟히지 바로 믿는데 왜 밟혀요?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는데.

 녜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참 우리가 복덩이는 붙들기는 붙들었는데 믿음 없어서 이 복을 자기가 자기  복을 삼지 못하니까 불쌍하고 가련합니다. 어짜든지 깨어서 예수님 바로 믿어요.

바로 믿으면 다 돼요.

 아무리 강한 나라라도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무서운 것이라도 예수님만치  무섭지 못해. 그까짓 거 주님이 다 만들어 놓은 것 그거 쓸어버리면 쓸어지는데  그거 무슨 힘이 있어? 이런데 이분을 내버려 버리고 난 다음에 그만 시집갔다고  그거 저 예수님도 배반하고 직장 얻었다고 배반하고 장가갔다고 배반하고, 그  몰라 그래. 깨닫지 못해 그래요. 담대해요. 그라면, 그랬어. 성경에 '네가 세상을  두려워하면' 뭐라 했소? '내가' 뭐라 했소? '너에게 두려움을 줄까 염려하노라'  이랬어, 소용없는 세상을 보고서 두려워하면 하나님께서 당신이 두려움을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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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86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요한계시록 1장 4절-6절/ 890417월새 선지자 2015.12.11
3385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요한계시록 1장 5절/ 890407금야 선지자 2015.12.11
3384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요한계시록 1장 5절/ 890406목새 선지자 2015.12.11
3383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요한계시록 1장 4절-5절/ 890405수야 선지자 2015.12.11
3382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빌립보서 2장 5절-11절/ 890302목새 선지자 2015.12.11
338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요한계시록 1장 5절/ 890408토새 선지자 2015.12.11
3380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요한계시록 1장 1절-3절/ 890320월새 선지자 2015.12.11
3379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요한계시록 1장 5절/ 890410월새 선지자 2015.12.11
3378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요한계시록 1장 5절-6절/ 890411화새 선지자 2015.12.11
3377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요한계시록 3장 7절-13절/ 890415토새 선지자 2015.1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