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11 13:35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1989. 4. 5. 수야.
본문: 계1:4-5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와 그 보좌 앞에 일곱 영과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이 말씀은 장기간 계속해서 증거를 하고 있습니다. 아주 어렵고 또 여게 대한 은혜를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드는지 모릅니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자기 주관을 부인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자기 주관에 너무 맞지 안하고 주관과 거리가 먼 하나님의 약속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믿지를 못합니다.
여러날 계속하는데 이 아시아 일곱 교회에게 이 사실을 편지해서 알린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 편지는 곧 하나님께서 계시 성경을 기록해 주신 것을 가리켜 말함인데 이 계시 성경 안에 있는 것 중에 근본이 되는 세 가지를 여게 말씀하셨습니다.
첫째는 하나님 곧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 하나님, 주권 의지로 과거에 예정하셨고, 또 주권 능력으로 예정하신 대로 그대로 성취를 하시고, 주권 개별 섭리를 하셔서 당신의 목적을 이루실 그 하나님을 가리켜서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라'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 아버지라고 이렇게 깨달으면 됩니다 신약 교회에 속한 우리들이 이 하나님에 대한 은혜를 받는 것이 중요하고, 그 다음에는 성령의 은혜를 받는 것이 중요하고, 그 다음에는 성자의 은혜를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러 시간을 걸쳐서 증거를 했습니다. 그래도 여러분들이 양심을 써서 이 말씀의 그 실상인 이 권위를 믿을라고 애를 써야 합니다.
이 말은 자기를 자꾸 부인할라고 애를 써야 됩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믿을라고 애를 써야 깨달아지고 믿어지지 그렇지 안하면 믿어지지를 아니합니다.
아주 어려운 말씀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제까지 모든 요한계시록을 접하는 하자들이 여게 대해서 그저 근방에 가다가 말았지 여기 깊은 뜻을 찾아 잡지를 못한 것인데, 여러분들에게 이렇게 하나님이 주셔서 우리가 이거 이 계시를 접하기는 접하지마는 깨닫고 인정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이러기에 재독을 여러 수십 번 계속 들어 가지고 거게서 여러 가지로 의문이 나오고 혼돈이 되고 혼미가 되어지는 그런 모든 어려운 그 암흑 세계를 통과하고 들어가면 거게서 부터 깨달아짐이 여러분들에게 있을 것입니다.
요사이는 우리 진영에서 이제 가롯 늦게 지금 또 망령을 부리고 있습니다. 벌써 일반 교회는 이 신앙이라는 것보다도 기독교 도덕주의로 벌써 전락해 간지가 오래 됐습니다. 이래서 교인들도 겨우 이 복음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이 도덕면을 말하면 좀 취미가 있고 알아 들려지고 거기서 하나님을 향한 믿음은 말하면 다 머리를 흔들고 듣기를 싫어합니다. 도덕이 좋기는 좋지마는 그것은 아주 껍데기 중에 껍데기입니다. 믿음이 아닌 도덕은 그것은 다 헛일이요, 생명이 없습니다.
이래서 사랑을 말하고, 진실을 말하고, 정직을 말하고, 또 성결을 말하고, 충성을 말하고, 화평을 말하고, 기쁨을 말하고 하면 이런 것은 사람들이 기뻐 즐거워 듣지마는 참으로 이 신앙을 말하면 아예 들리지도 안하고 그만 '머리 아프다' 하고 취미 없어서 곤두박질을 칩니다. 그저 이 말씀은 몇 해라도 계속해서 이 말씀을 해서 사람들이 들어 깨달아 여게 대한 이 은혜를 받았으면 좋겠는데 사람들은 듣지도 안 할라고 합니다.
이래서 오늘밤에는 하나님에게 대한 은혜도 과거에 증거를 했고, 또 성령님에 대한 은혜도 과거에 증거를 했고 성자에 대한 이 증거를 하기는 했었는데 하다가 아직까지 중간도 가지 못하고 있어서 지금 오늘밤에 증거를 할라고 합니다.
여게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먼저 나시고 하는 이 말씀은 첫 열매라 하는 그런 뜻입니다. 첫 열매라. 먼저 나시고. 제일 처음된 일호가 된다. 그러면 예수님은 일호가 되고 모든 성도들은 그 첫 열매인 예수님을 근거해 가지고 그 다음으로 예수님에게 다 속해 가지고 이루어지는 것들이라. 이래서 '먼저 나시고' 하는 말씀을 했습니다. '먼저 나시고' 먼저 나시고란 말은 내나 처음 나시고란 말이라. 먼저 나시고 처음 나시고,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땅의 임금이라는 말은 영계는 내비두고 이 물질계 우주에서 우주의 모든 권세를 다 점령하는 것을 가리켜 말합니다.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된다는 이 말씀은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땅에 있는 모든 권세를 다 사로잡아서 자기 권세 아래에 복종을 시킨다 하는 그런 뜻과 다릅니다.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된다 이 말은 땅의 임금들이라는 것은 이 물질계의 모든 권세를 다 총칭해서 땅의 임금들이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땅에 있는 모든 권세 이 권세들을 정복해서 사로잡아서 이 권세를 다 발 아래 복종케 하도록 이렇게 정복성을 가지고 하는 그것을 말하지 안하고, '땅에 있는 모든 임금들의 머리가 된다' 그 말은 머리는 그 몸이 다 원하고, 또 그 머리를 좋아하고, 머리 아니면 제가 살 수 없는 줄 알기 때문에 온 몸뚱이는 머리를 위하고 머리를 보배롭게 이렇게 제가 힘이 있는 대로는 이 머리를 잘 간수할라고 그렇게 애를 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몸뚱이에 대해서 머리는 그 머리가 몸을 강제적으로 강압해서 머리 아래에 몸이 복종케 하는 것이 아니고, 이 몸이 평가적으로 몸도 다 소중하지마는 머리가 더욱 소중해서 저희들이 자원해서 '아무래도 이 머리가 없으면 안 된다.' 제일 평가적으로 귀하게 여기고, 또 소망도 모든 지체가 있지마는 머리에 소망을 제일 두고 보배롭게 여겨서 이 머리를 온 전신의 다른 것보다도 이 머리를 제일로 삼아서 거게 속하고. 그를 위하고, 그를 보호하고, 또 거게 본능적으로 피동될라고 하는 그것이 머리입니다. 요것도 여러분들이 자꾸 알라고 하면은 알아집니다.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그러면 땅에 있는 모든 권세들을 복종시켰다 말이 아니고, 땅에 있는 모든 권세들이 평가적으로 그 앞에 복종하게 되고, 또 주라 시인해서 높이 섬겨 모시고, 위하고, 존귀히 여기고, 거게 따르고, 또 모든 것을 다 거게 기울여서 그로 인해서 살라고 애를 쓰는 그것이 머리입니다. 온 몸이 머리를 제일 소중히 여깁니다. 또 머리가 없으면 그만 죽었습니다. 머리에서 모든 좋은 것이 다 나오는 것입니다.
이래서 예수님이 땅에 있는 모든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것은 강제로 된 것이 아니고, 빌립보 2장 9절 이하에 보면은 '하늘의 것과 땅의 것과 땅 아래 있는 모든 것이 다 예수님에게 무릎을 꿇었다 그 말은 예수님을 존대하고 숭배했다, 다 그를 평가적으로 제일 높였다, 또 주라 시인해서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주라 시인했다. 그러면 모든 존재들이 주님을 주로 모시고 다 그렇게 해서 찬양을 함으로 아버지 하나님이 이 주님을, 저희가 모시고 살 이 주님을 주신 데 대해서 아버지 하나님에게까지 감사를 했다 하는 그런 뜻으로 주라 시인하여 아버지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렸다 그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됐다' 이것을 제가 말로 표현해서 증거하는 것보다도 여러분들이 땅에 있는 임금이라는 것은 모든 권세라는 것, 힘이라는 것을 다 총칭해서 임금들이라 이렇게 말을 했는데 '그 모든 것의 왕이 됐다' '그 모든 것의 주인이 됐다' 하는 말과 '그 모든 것의 머리가 됐다' 하는 말과 어떻습니까? 말이 같습니까 다릅니까? 땅에 있는 모든 임금들의 대왕이 됐다.
임금들의 대장이 됐다. 임금들을 주권하는 자가 됐다. 임금들을 다 복종시켜서 굴복하게 했다 하는 말과 머리가 됐다는 말과 같습니까 다릅니까? 좀 다릅니까? 이 기록할라면 은 세상에도 둘 만한 곳이 없는 것을, 더우기 다른 성경도 그렇지마는 이 계시록은 축소 축소해 가지고 성신의 감화를 받지 아니하면, 진실로 알려고 하는 자기의 전부를 다 기울이지 안하면, 자기의 그 착한 양심을 써서 찾지 아니하면 알 수 없도록, 그런 사람들만 알 수 있도록 그렇게 기록해 놓은 것이 요한계시록입니다.
왜? 이거는 사람과 가깝게 기록해 놓으면 전부 예언서라 이 세상이 어떻다는 것을 환하게 다 맞보기로 말씀해 놨기 때문에 사람들이 알기에 가깝게 해 놓으면 이 연약한 인간들에게 요한계시라는 이 문서 계시가 보존이 될 수가 없고, 보수할 수가 없게 되기 때문에 특별히 이렇게 상징적으로도 기록을 했고, 또 거리 멀게 그렇게 기록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임금들의 머리가 됐다 이거는 강제가 아니고 모든 존재들이 자원하고 원해서, 마치 그저 여기 민주 치하에서는 투표를 하면은 자기가 원하는 자를 대통령으로 국회의원으로 이렇게 투표해서 세우는 거와 같이 이렇게 이런 성질에 좀 가깝지, 권력을 가지고 강압적으로 강제로 이래 한 것이 아니고 평가적으로 모든 권세들이 왕들이 다 원하고 원해서 이렇게 존대해서 뽑아 세운 거와 같은 그런 방편의 성질로 '머리가 됐다' 하는 것입니다.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그래 여게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하는 요 '먼저 나시고' 하는 여게다가 마음을 둬서 요 진리를 깨달을라고 자기가 애를 써야 합니다. '먼저 나시고' 하는 말은 첫 열매라는 말과 같고 제일호라 하는 그런, 모르니까 그렇게라도 말해서 일호라 하는 그런 말과 비슷한 뜻을 가졌습니다. 그 다음에 그러면 첫 열매가 실었으니까 그 다음에는 다음 열매가 계속 열려 지겠습니다. 일호가 나왔으면 그 다음에 이호 삼호로 자꾸 계속해서 나오게 되겠습니다.
여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한다 그 말은 예수 그리스도를 중보로 삼아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은혜와 평강이 있는 것을 말하고, 또 예수 그리스도의 그 방편과 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방편과 같은 그 방편으로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있다.
그러면 그로 인해서 우리에게는 은혜와 평강이 온다. 또 방편도 그 방편으로 우리에게 은혜와 평강이 온다. 또 이 은혜와 평강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 은혜와 평강은 원형이라고 하면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온 은혜는 모형적 은혜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있다 이라는데,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다 이랬는데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와 꼭 같은, 예수 그리스도가 만일 원형이라고 하면은 우리는 그와 같은 꼭 같은 모형적인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우리에게 와서 있다. 여게 '있기를 원하노라' 하는 것은 와서 이 은혜가 있는데 이 은혜를 은혜로 모르고 하기 때문에 문제인데, 이 은혜가 은혜인 것을 깨닫고 믿으신 곧 그 은혜가 자기 것이 되는데 이것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있기를 원하노라' 하는 건 믿어서 이 은혜를 가진 자가, 자기에게 온 은혜를 자기가 이 은혜를 자기 은혜로 삼는 자 되기를 원하신다 하는 그런 뜻입니다. 뭐 어떻게 첩첩으로 그런지 이것을 참 자기가 마음을 써서 간절히 알라고 하는 사람이면 알아지지마는 그리 안 하면 이거는 알아지지를 못합니다.
내가 이제 말하기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한다' 그러면 이 은혜와 평강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다 이랬는데 말미암아 온다는 것은 이 세 가지를 지금 말했습니다. 하나는 이 은혜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를 통해서 우리에게 왔다.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에게로 올 사람이 없다 말씀하신 거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아니하면 이 은혜와 평강은 우리에게 오지 못한다. 그러면 예수님의 중보성을 첫째 말합니다. 예수님의 중보성. 중보성을 말하고, 또 그 다음에 둘째로는 뭘 가리켜 말하는고 하니 이 은혜가 예수 그리스도는 원형이요, 우리가 받을 은혜와 평강은 모형이라. 여게 만일, 이거 참 이거는 다 세상 공부 좀 하면 이런 건 잘 알 수 있는데. 이 종(鐘)이 있습니다. 종이 있으면 이 종은 이것은 지금, 이걸 보고 이 종을 보고 이 종과 꼭 같은 것을 만들었으면 이 종은 무엇이며 종과 같이 꼭 같이 만든 것은 뭐이겠습니까? 이 종은 원형이라고 할 수 있고 이 종과 꼭 같이 만든 것은 이 종의 모형이라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원형과 모형이라는 이것을 발표가 잘된 거는 아니지마는 그래도 그래 밖에는 발표 할 수 없기 때문에 원형과 모형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혹 이것은 실화요 이거는 조화라, 그러면 실화는 꼭 그거 꽃 자체인데 그것을 보고 그와 꼭 같이 만든 것을 가리켜서 조화라 이렇게 말하는 것같이 예수 그리스도는 원형이요, 예수 그리스도는 원형이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꼭 같은 모형의 은혜와 평강이다. 예수님이 가지신 은혜와 평강은 원형이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가진 은혜와 평강과 꼭 같은 은혜와 평강을 우리가, 꼭 그와 같은 것을 가졌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버지를 과거에도 못 봤고 현재도 못 봤고 앞으로도 볼 수 없는 그 하나님을 하나님의 품 속에 있는 독생자가, 독생하신 하나님이 볼 수 없는 하나님을 나타내셨느니라 그렇게 말씀했어. 그러면 예수님께서 아버지를 나타내신 것은 아버지는 원형이요, 본형이요, 예수님은 아버지의 원형과 꼭 같은 형상으로 돼서 아버지와 꼭 같은, 그 인격성이나 속성이나 꼭 같은 그 형상을 나타냈다.
이래서 빌립이 '아버지를 빌립이 보여 주십시오' 이라니까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떻게 아버지를 보여 달라 하느냐! 내가 너희들과 이렇게 오랫 동안 있어도 아버지를 모르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본 것이다.
너희들이 나를 본 거와같이 아버지는 꼭 요런 아버지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는, 예수님은 아버지의 그 형상과 꼭 같은 형상으로 나타나셨는데 이 나타나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불러서 구원 얻게 한 것은 그 목적이 어데 있는가? 예수님이 아버지와 꼭 같은 형상을 가진 거와 같이 우리들은 예수님과 꼭 같은 그 형상을 가지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를 부르셨다 이랬습니다. 그 형상을 본받도록 하기 위해서, 덧입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두 가지 뜻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평강이 오는데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 중보자를 통해 가지고 이 은혜와 평강이 우리에게 왔지 다른 길로는 올 수가 없다. 그런데 이 온 은혜가 꼭 예수 그리스도와 꼭 같다. 다르지 않다. 예수 그리스도와 꼭 같다. 꼭 같다. 하나만 더 말합니다. 꼭 같은데 예수 그리스도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 은혜와 평강을 조성하느라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평강을 만드느라고 조성하시느라고 예수님이 조성하시는 그 방편을 쓰신 거와 꼭 같은 그 방편으로 우리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우리가 가지게 된다. 가지게 된다 그러면 몇 가지 지금 말했습니까, 손가락으로! 몇 가지를 지금 내가 오늘밤에 설명을 했습니까? 여기 여반에도 한번 손가락 한번 들어 보이소. 몇 가지? 세 가지를 말했습니다. 하나는 중보성, 하나는 모형성, 또 하나는 그 방편성. 요 세 가지를 말씀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먼저 이 일을 달성을 하셔 가지고 먼저 달성을 하셔 가지고 그 다음에 따라서 우리들이 계속 이 성공해서 달성이 되어지도록 그렇게 주님이 역사하십니다.
이런데 우리 단독은 안 되지마는 예수님의 이 사활의 대속의 공로가 중보가 돼 가지고 이 공로의 중보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우리에게 왔고, 이 중보를 통해서 우리에게 왔고, 온 이 은혜와 평강이 생기기는 어떻게 생겼으며 은혜와 평강의 그 본질과 본성은 어떤 것이냐? 예수 그리스도의 바로 그 은혜와 평강의 본질과 본성과 꼭 같은 모형이라, 꼭 같은 것이라.
그런데 하나만 더 남았습니다. 하나만 남았는데 그러면 중보를 통해서 왔고 또 은혜와 평강의 그 본질과 본성이 꼭 같고, 예수님이 가지신 그 은혜의 모양과 우리가 가진 은혜의 모양과 예수님이 가지신 평강의 모양과 우리가 가진 평강의 모양이 같습니다. 예수님이 가지신 평강은 이 세상에는 없는 것입니다.
피조물들에게는 없는 것이오. 그 평강을 예수님이 가지셨고 은혜를 가지셨는데 우리도 그와 꼭 같은 종류의 것을 우리가 가지게 됩니다.
그러면 두 가지, 중보를 통해서 온다는, 예수 그리스도를 중보로 삼아서,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은혜와 평강이 우리에게 온다, 오는데 이 은혜의 형태는 어떠냐? 예수 그리스도의 가지신 그 은혜와 평강과 꼭 같은 것이다. 그는 원형이라면 이는 모형으로 돼 가지고 있고 꼭 같다.
그런데 한 가지만 남았습니다. 이제 세 가지 가르친 가운데 한 가지만 남았습니다. 한 가지는 무엇입니까? 한 가지는 무엇입니까? 녜, 한 가지는 방편입니다. 방편. 예수 그리스도가 쓰신 방편과 같은 그 방편으로서만 이 은혜와 평강을 내가 가질 수 있지 그리 안 하면 가지지 못합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는 이 일을 하시느라고 당신이 이것을 조성하셨고, 조성하셨고, 이 방편으로 조성을 하셨고 우리는 조성해 놓은 이 은혜와 평강을 네가 공짜배기로 받는 데에 그 방편은 예수 그리스도가 조성한 그 방편과 같은 그런 방편으로야 우리가 이것을 자기 것을 삼을 수 있기 다른 방편으로는 삼는 길이 없습니다. 요것만 단단히 기억하시고, 5절에 '또 충성된' 요 '충성된' 요 충성이라 말은 하나님 아버지에게 대해서 충성이라는 말입니다. 충성은 자기를 빼서 그 일꾼으로 세운, 자기를 뽑아서 일꾼으로 세운 그자가 일꾼으로 세움을 받은 그자가 일꾼으로 세운 그 이의 요구에 만족하도록 그 일을 완료하는 그런 것을 가리켜서 충성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주인이 그 종을 돈으로 사든지 사서 종으로 세웠으면 그 종이 거를 종으로 세운 그 주인의 요구와 기대와 계획에 만족을 할 수 있도록 그 사명을 다 완료할 때에 그것을 가리켜서 충성이라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충성된 증인'이라 말은 영원 자존하신 하나님께서, 영원 자존하신 하나님께서 당신이 영원 전 정하신 목적이 있으니, 영원 전 당신이 정해 놓은 목적이 있는데 요 목적을 당신이 요것을 이루실라고, 누가? 영원 자존하신 하나님이 목적을 정하시고 요 목적을 달성할라고 당신이 지금 소원하시고 계획을 하시는데, 그러면 그 목적은 어떤 것인가? 그 목적은 영원 자존하신 하나님과 꼭 같은 자를 만드셔 가지고 하나님이 지으신 영계와 물질계의 수많은 피조물을 그에게 다 상속시키고 위임시켜 가지고 모든 것을 다 통치하고, 또 모든 것을 영원히 하나님 은혜로 충만하도록 그렇게 하기 위해서 당신이 당신의 무한하심을 다 주실 수 있고 무한함을 다 받을 수 있고, 또 하나님이 창조하신 무한한 것들을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 시켜 줄 수 있는 요런 당신의 소원에 만족할 수 있는 요런 자를 만드시기 위해서 당신이 소원을 하신 것이 그것이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인데, 그러면 하나님이 소원하신 그 목적 그것이 곧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요렇게 소원하신 목적이 있는데 그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 목적을 다른 말로 누가 한번 말해 보십시오. 자, 우리 OOO목사님 한번 대답해 보십시오.
영원 자존하신 하나님이 당신이 소원하신 대로 만족할 수 있는 이런 존재를 하나 만드시려고 원하고 계시는 그 목적을 정했는데, 이거는 이래 만들어 가지고 뭐할라고! 하나님의 무한을 그에게 다 맡기고 또 그는 하나님의 무한함을 맡아 가지고, 무한함을 맡아 가지고 하나님의 영계와 물질계의 창조한 수많은 피조물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시켜서 줄 수 있는, 말하자면 모든 피조물의 중보자가 되고 하나님의 모든 것을 다 유업으로 주고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고 하나님의 계대자가 된다고 이렇게 말씀한 그 계대자를 만들기 위해서 하셨으니까 그것이 뭐입니까? 이것이 뭐입니까? 그것이 뭐이지요? 그것이 우리의 구원이 아니고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알겠습니까? 하나님의 교회. 구원은 이 교회가 되는 그 모든 방편을 가리켜서 구원이라 하고 교회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교회는 만물 위 하나님의 몸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러기에, 이 은혜와 평강이 우리에게 오는 데에는 중보자를 통해서 왔고 왔는데 그 은혜는 곧 예수 그리스도가 가진 거와 꼭같은, 그는 원형이고 모형으로 꼭 같은 그 은혜와 평강이라. 이랬는데 서이를 배웠는데 둘은 말했습니다. 이제 하나 남았는데 그 하나는 뭐입니까? 하나는 무엇입니까? 아까 여기 누가 말하데요? 방편. 방편 남았습니다. 방편. 여게 이 세 가지를 여게다가 말씀해 놨습니다.
그러기에 이 은혜를 우리가 받는 데에는 중보자가 아니면 안 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는 것은 중보자를 통해서 되는 것을 뜻을 한 것입니다. 또 '먼저 나시고' 하는 것은 예수님은 원형이요 우리 그 다음에 모형으로 된 것을 가리켜서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이래서, 여게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한다' 이제 뭐 시간 다 됐고 여러분들에게 그저 간단하게 또 그 뿌럭지는 말하지 못하고 지나갑니다.
우리의 구원은, 요 예수님께서, 참 어렵습니다. 어려운데 이걸 어려운 줄 알고 해야 될 터인데, 여기 충성된 증인이라 이랬는데 충성된 증인이라, 이 증인이라 말은 무슨 말입니까? 양성원 학생들 좀 한번 대답해 보이소. 증인이라 말은 무슨 말이지요?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그 참사람을 '이렇다' 이렇게 증거한 것을 가리켜서 증인이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영원 자존자가 원하는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예수님께서 '이런 사람이다' 하고 당신이 나타내 증거한 그 사람이 참사람입니다. 이래서 그걸 가리켜서 충성된 증인이라 이랬는네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그러면 이 증인은 지나가니까 지나가서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그러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이 은혜와 평강을 이루신 그 방편이 우리가 이 은혜와 평강을 얻는 방편인데 예수님이 이 은혜와 평강을 이룬 방편이 어떤 방편이냐 하면은 죽고 사는 그 방편입니다. 그만 뭐 지나가서 껍데기로밖에 말할 수 없어. 죽고 산 그 방편입니다. 예수님이 죽으시고 사신 그 방편을 가지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됐습니다.
모든 존재들이 예수님을 주라고 시인한 그 인정을 받고 그렇게 당선을 당하고 인정을 받게 된 인정받게 된 그것은 어떤 방편을 썼기에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이 다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고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이렇게 존대하고 소망하게 됐느냐? 그것은 죽고 산 그것 때문에다. 죽고 산 그것 때문에다.
그러면 죽고 살았기 때문에. 죽고 살았기 때문에 땅에 있는 모든 권세의 머리가 됐다. 권세의 머리가 됐다. 이러니까 그만 간단하게 말해서 오늘 우리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내가 받는 방편은 어떤 방편이냐? 죽고 사는 방편 외에 다른 방편은 없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신 것은 그분은 죽을 이유가 없는데 죽으신 것은 우리가 영원히 사망받는 영원한 사망을 받는, 사망 속에 있는, 사망을 받고 있는 이 사망 속에 있는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셨습니다.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셨는데 죽으신 것은 우리의 죄 값을 대신해서 죽으셨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죄는 몇 가지 죄인가? 세 가지라고도 하고 네 가지 죄입니다.
우리의 죄로 멸망받는 그 죄의 값을 당신이 대신 받으시느라고 죽으셨습니다. 또 죽으심은 우리 죄를 대신 형을 받기 위해서 죽으실 뿐만 아니라 우리 대신 완전을 달성하기 위해서 죽도록 있는 걸 다 바쳐서 또 예수님이 죽으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한 죽음은 우리의 대형을 해서 죽으셨고 또 한 죽음은 아버지가 요구하시는 그 요구에 다 완전 응종을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몇 가지 죽음을 죽었습니까? 손가락으로! 몇 가지 죽음 죽었습니까? 두 가지 죽음 죽었습니다. 두 가지 죽음을 죽었습니다.
이러니까 예수님이 처음 죽으신 것은 아버지가 원하시는 대로의 사람을 만들라 하니까 우리가 이 마귀로 말미암아 잘못돼 있으니까 여게서 해결을 지워야 되기 때문에 요 해결을 완전히 지웠기 때문에 '충성된' 충성이라고 인정했습니다. 또 그 다음에는 아버지가 요구하시는 것을 다 요구에 만족을 이루기 위해서 의를 건설하기 위해서, 아버지가 하지 말라는 거 안 했고 또 하라는 것 다 했고, 또 하나님을 따라서 이렇게 피동되는 완전한 연결을 가졌고 이것 때문에 죽기까지 하셔 가지고 이 충성을 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아버지가 소원하시는 대로 아버지가 소원하시는 대로 우리를 대신해서 형을 받아서 아버지의 명령을 순종했고, 또 아버지의 소원하시는 대로 우리가 행할 대신 예수님이 행하셔 가지고 대신 행하시느라고 예수님께서 죽기까지 하셔 가지고 또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죽으심은 아버지 하나님의 그 소원하시는 대로 거게 충성하느라고 이 일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아버지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은 이것은, 이것은 아버지가 예수님의 소원을 위해서 아버지가 예수님을 대우한 것입니다. 죽은 가운데서 살아난 것은 어떻게 대우한 것이냐? 우리들을 영원히 살리고자 하시는데 우리가 죄 문제도 해결됐고 의 문제도 해결됐지마는 우리가 죄 문제 의 문제 해결했지마는 하나님을 향하여 영원히 살아야 되겠는데 사는 이것을 하지 못하면은 일은 다 해 놓고 그것을 아무런 활용하지 못하고 효력을 누리지 못하고 이용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에 그 실효를 영원히 누리고 거두도록 하기 위해 가지고 예수님을 다시 죽은 가운데서 부활을 시키신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은 여러분들이 자꾸 생각하면 알 것이고, 이래서 우리 기독자의 구원은 죽고 살아야, 죽고 살아야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는 모든 존재에게 환영을 받는 이 환영이 됩니다. 죽고, 뭐 이거 다 그거 다 냅두고 죽고 살아야 모든 존재들에 게 환영받는 그 열매가 맺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뭐 죽음은 어떤 죽음인가? 그만 시간 다 돼서, 죽음은 예수님이 나를 대신해서 내가 죽을 대신 예수님이 죽으셨기 때문에 예수님의 죽으심은 내가 죽은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내신 죽으셨는데 나는 살아 있습니다. 살아 있으면서 예수님이 나를 대신해 죽었기 때문에 나는 예수님의 죽음에 동참해서 내가 죽는 것, 내가 죽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죽는 것은 뭐이냐? 죽는 것은 이제 내맘대로 하고자 하는 그걸, 예수님 만나기 전에 있던 옛사람 그것을 죽이는 것입니다. 내가 소원하는 것을 죽이고, 내 성질을 죽이고, 내 비위를 죽이고, 내 뜻을 죽이고, 내 욕심을 죽이고 내게 이제 나로 살라 하는, 나로 살라 하는 것을 다 죽이는 이것이 첫째 우리의 모든 존재에게 환영을 받는 방편의 일호입니다. 방편의 일호가 내가 사는, 내가 내것으로, 내 주장으로 내 뜻대로 내가 사는, 내가 사는 요것을 완전히 죽이는 거, 나로 사는 것, 그러면 나를 완전히 죽이는 것, 나를 완전히 죽이는 요 죽이는 것을 하나 해서 예수님이 내 대신 죽으신 그 죽음에 동참하고 연합하는 것이 됩니다.
주님이 내 대신 죽으셨기 때문에 나는 살아 있지마는 대신 죽으셨기 때문에 나는 죽은 것인데 대신 죽으셨기에 내가 죽은 것이, 법적으로 내가 죽은 것이지마는 실지로 내가 죽지 안하면 법적으로 대신 죽으신 것을 벗어버리는 것이라 그 말이오. 이러니까 실질적으로 내가 죽는 것, 내가 사는 것은 내가 나로 사는 것이 죽고, 내가 나로 사는 것이 죽고 이제는 예수님으로 사는 것이 다시 살아나서 사는 것. 그러면 이것이 예수님이 제일 먼저 죽고 사신 일을 하셨기 때문에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됐는데 예수님이 하신 것이 나 대신 했기 때문에 예수님에게 연합해서 우리가 죽고 사는 일, 그러면 우리는 우리는 어떤 현실을 당하든지 그 현실에서 죽는 일 하나 있고 사는 일 하나 있으니까 이제 거게서 내가 죽고 내가 다시 살면 내가 죽고 살면, 먼저 죽고 살아나신 예수님을 따라서 죽고 살면 그 다음에는 어찌 됩니까? 우리가 죽고 살면 그것은 영생이 되는데 죽고 살면 우리가 뭐 됩니까? 죽고 살면 뭐이 됩니까?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됩니다.
우리가 죽고 사는 요 방편만 가지고 모든 존재에게 환영을 받고 모든 존재가 기대와 소망을 가지고 모든 존재에게 내가 없어서는 안 되는 그런 혜택을 그에게 입힐 수 있는 그 실력을 갖추는 것은 죽고 사는 요 순서 외에 딴거는 없습니다.
그러면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요 순서를 가져 가지고 뭐이 되느냐? 예수가 됩니다. 예수가 됩니다. 그리스도가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또 은혜와 평강이 되어집니다. 이거 시간이 다 됐으니까 이거 언제 요번에 대구 가 가지고 혹 하나님이 시간을 주실란지 모르는데 요걸 알아야 됩니다. 알아야 이 세상을 이기지 지금 모두 다 껍데기 예수를 믿고 있어. 이렇게 지극히 큰 구원인데 이 구원을 모르고 있습니다. 오늘 저녁에 벌써 시간이 많이 갔는데 잠깐 기도합시다.
주님, 무한하시고 완전하시고 영원하신 이 구원은 주님만이 계획하실 수 있고 주님만이 성취하실 수 있고 주님만이 아시는 이 도리를 어떻게 저들이 알 수가 있겠습니까? 무한하신 공로로 이미 우리에게 주셨고 우리에게 성신의 감화 감동을 주사 깨달을 수 있게 하신 주님, 이 시간에도 이 도리를 증거해 주셨사오니 우리 각자들에게 성령으로 감동시켜 주님은 원형이요 우리는 모형이요 주님으로 말미암아 이 중보자로 인하여서 우리에게 이 생명길을 주신 것을 밝히 깨닫게 해 주시옵소서.
살라고 하다가 영원히 죽어 멸망받은 것을 여게서 구출하기 위해서 주님이 대신 죽으심으로써 여게서 해방을 시키셨고, 또 주님이 죽기까지 행하심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마련한 이 사실을 저희들로 확실히 깨닫게 하사 바울과 같이 날마다 현실 현실에서 죽는 일에 전심 전력 기울일 수 있는 저희들되게 하시고, 죽음 너머 다시 사는 이 일로 계속하는 저희들 되게 하사 날마다 죽고 살고, 죽고 살고, 죽고 살아 주님이 만족하시고 모든 피조물들에게 만족의 그들에게 은혜의 시은 기관이 될 수 있는 지극히 큰 구원을 성령으로 깨닫게 해 주셔야 되지 저희들은 깨닫지를 못합니다.
성령으로 깨닫게 하사 한 사람도 깨닫지 못하는 형제들이 없어서 다 깨달아서 이 지극히 큰 소망에 남은 때가 많이 남았든지 적게 남았든지 전심 전력 다 기울이고 소유와 몸과 생명을 다 기울여서 이 구원 하나에 전부 매진할 수 있는 깬 저희들이 되도록 은혜를 주시옵소서 이러면 모든 것을 다 더하여 주시마고 하신 것은 이는 진리이기 때문에 변할 수가 없고 이루어집니다. 마귀의 유혹을 벗어나시 확신을 가지고 사는 저희들되게 해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