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11 12:52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본문 : 요한계시록 1장 1절-3절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하였느니라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요사이 늘 계속해서 이 말씀을 증거하는데 우리가 이 말씀을 듣고 깨달아서 그 전체를 생각하고 또 자꾸 연구해야 됩니다. 연구해야 된다는 것은 자꾸 생각하면 연구가 나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네 가지 기억 할 것을 말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 말은 계시의 주인이 예수 그리스도라 하는 그뜻을 첫째로 가지고 있고, 또 둘째오는 이 계시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지 무엇을 하는지 우리에게 이 계시가 알려 주고 있다 하는 말이오. 이 계시록은 신구약 육십오 권을 총괄해서 결론을 기록한 것이 계시록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세기 장으로부터 계시록까지에 기록된 그 내용은 이런 것 저런 것이 기록되어 있지만 그 중심이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을 우리에게 계시해 주신 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알려 주신 것이, 그것이 계시록인데, 여기에 요한계시록은, 요한계시록만을 말한 게 아니고 신구약 육십오 권이라는 계시를 다 총괄해서 기록한 것이기 때문에 신구약 육십오 권 이 계시는 다 예수의 계시요 그리스도의 계시입니다. 요것을 확고히 잡아야 됩니다.
첫째는 이 계시록의 주인공이 예수 그리스도라 말이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말이오. 거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서는 이 계시록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계시하고 있다. 그러면 이 계시록만이 아니고, 계시록은 마지막 결론이기 때문에 육십육 권 신구약 성경은 전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계시하고 있는 것이 신구약 육십육 권이다 하는 것을 단단히 기억해야 됩니다.
또. 세째로는 뭐입니까? 세째로는 뭐라고 배웠소? 지금 둘째 말했고, 첫째는 주인공이 예수 그리스도라 말이고, 둘째는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나타내 보이는 책이라 그게 둘째고, 또 세째는? 세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다 이 계시록에 기록돼 있다 계시록 속에 들었다. 계시록 속에 들었다 그말은 육십육 권 계시록 속에 들었다. 창세기도 계시록이요 모두 다 계시록입니다. 그런데 육십육 권 전부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그 속에 담겨 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의 은혜를 받는 데는 육십육 권 도리를 자기가 읽고 듣고 지켜야 이 은혜를 입을 수 있다. 그리스도의 은혜도 그러하다 하는 말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은혜는 뭐라고 했지요? 예수님의 은혜는 하나님과 원수된 우리들을 하나님과 이렇게 화친의 결합을 해서 결합 연결시키는 은혜가 예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성경에 나타나 있는데, 실상으로 하나님과 우리와의 화친을 이루는 것은 성경을 읽고 듣고 지킴으로만 됩니다. 딴걸로는 안 됩니다.
읽기만 하는 거 가지고도 안 되고. 듣기만 하는 것 가지고도 안 되고 또 지키는 것만 가지고도 안 됩니다. 지킬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읽고 듣고 해야 지키지.
또 그리스도의 은혜는 뭐인고 하니, 하나님파 연결된 자가 어떤 일을 할 건가? 세 가지 직책의 일을 할 터인데. 제사장직 선지직 왕 직입니다. 그 직책을 할 수 있는 그 실력이 어디서 마련되는가? 읽고 듣고 지키는 데서 마련됩니다. 그 실력이 신구약 육십육 권 속에 이렇게 퍼져 있습니다. 이 면이 여기에 들어 있고. 저 면이 들어 있기 때문에 육십육 권에 만일 반을 그 사람이 커고 듣고 지킨다면 반만 받지 반은 받지 못합니다. 전폭을 읽고 듣고 지켜야만 됩니다.
그것은 한 진리라도 읽고 듣고 그 대로 지키면 그 한 진리 속에는 모든 진리가 다 들어 있습니다.
그러기에 성경, 명문 성경을 글로 가지고 써 놓아 있는 명문 이 성구를 다 몰라도 다 듣지 못했어도 그 사람이 구원을 완전히 이룰 수가 있고, 신 구약 육십육 권을 다 통달하고 외워도 구원을 하나도 못 이룰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에게 충성이 있어야 됩니다. 자기에게 있는 힘대로 다 기울여서 이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이 하라 하시는 대로 이렇게 충성하면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기독교는 다른 종교와 달라서 자기의 주관의 실력이 많고 적고 상관이 없습니다. 다른 이종교들은 주관의 실력이 많은 사람은 놀면서 해도 잘 되고 주관의 실력이 없는 사람은 있는 걸 다 기울여도 모르고 일이 안 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창조주. 자존주의 이 생명의 도이기 때문에 그 본인의 실력이야 있든지 없든지 하나님과 하나님이 우리에게 계시해 놓은 이 사실을 믿고 있는 대로 힘을 다 기울이면 그 사람은 제일 일등 구원을 이루어갈 수가 있고 천하에 제일 명철하고 유식한 사람이라도 그 사람이 자기에게 있는 것을 다 기울여서 구원 준비하지 안하고 '나는 이만침 있으니까 저까짓 것 뭐 새벽 기도 항상 돌아다니는 것보다도 나는 한 시간? 가도 내가 더 깨닫는 것도 많고 아는 것도 많고 구원을 더 잘 이루리라' 저는 그렇게 했지만 제 교만으로써 제가 어두워져서 깨닫지 못하는 자입니다. 안 됩니다.
그러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 보이고 있다.
이러기 때문에 이 계시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다, 그러면 이 예수 리스도가 이 계시의 주인이면 무슨 말인가? 예수 그리스도가 이 신구약 육십육 권의 계시 속에는 내재해 계시고 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다른 말도 이런 말도 많이 있지만 그 전부가 다예수 그리스도를 중심해서 다 기록돼 있는 것이다.
그러면, 예수의 은혜가 따로 있고 그리스도의 은혜가 따로 있는데, 그리스도의 은해는 제사장 은혜인데 제사장 은혜는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에 조화를 일으키는 중보의 직이요, 중보직. 하나님의 것이 피조물에게 올 때에 바로 오면 피조물이 죽습니다. 또 피조물의 것이 하나님에게 바로 가면 소멸을 당해 버리고 안 됩니다. 그 속에 제사장이 들어서 이렇게 무마를 시키고 잘 조화를 시켜 가지고 그렇게 하게 합니다. 또, 선지직은 뭐이냐 하면 하나님의 모든 은혜를 피조물들이 받을 수 있도록 그것도 잘 조화를 해서 전달해 줍니다. 받을 수 있도록 전달해 주는데 그게 뭐이냐? 영감과 말씀이 선지직입니다. 또 왕직은 하나님의 단일 통치를 모든 피조물들에게 다 조화 있게 잘 감당할 수 있도록 고장이 나지 않게 그렇게 잘 조절해서 전달하고 모두 다 통솔해 가지고 단일 정치가 통일 정치가 되도록 그런 역할을 하는 그런 실력을 가리켜서 왕 직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영원히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에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이 중보직을 해야만 하는 분자들입니다. 그러면. 중보직은 예수님께서 다 이루어 놓으셨는데 이루어 놓으신 것을 우리가 그 은혜를 입어 가지고 그의 남은 십자가를 우리가 진다는 것이 그분이 중보직을, 완성해 놓은 그 중보직을 우리가 다 각각 자기를 위해서 자기에게 담당된 모든 피조물들을 위해서 역사하는 데에는 예수님이 십자가의 대속하신 거와같이 그 성질과같이 우리들도 그런 본질과 본성적인 그런 십자가로 그 중보의 사명을 다 감당하게 된다. 그래서 남은 십자가를 우리를 지고 간다 그렇게 성경에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는 반드시 속히 될 일이란 말은 신속히 된다는 말인데. 신속히 된다는 말은 이는 두 번 없고 단번에 자꾸 이루어갑니다. 뭐 우리에게 구원은 그 현실 주시는 그 현실에는 그 현실 단번으로 영원한 영생이 되는 것도 있고 안 되면 영원한 사망 둘째 사망으로 영원한 사망이 됩니. 다. 우리 현실 이라는 것은 단번 단번 그 현실 현실에서 영생과 영멸이 결정되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러면, 그게 둘째고, 신속히 된다는 것.
그러면 세째로 우리가 기억할 것은 뭐입니까? 종. 여기에 보니까 이 계 시를 누구 때문에 이 계시 하느냐 하면 "그 종들에게" 종들에게 알려 줄라고 합니다.
종들 아니면 모릅니다. 종들 아닌 자에게는 하나님이 이거 알려 줄 필요도 없고 줄 필요도 없습니다. 종은 무엇을 가리켜 말하는고 하니 예수님의 대속의 큰 은혜에 팔렸다 그 말이오. 피로 값 주고 샀다 그 말이오. 피로 값 주고 샀다 이랬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예수님와 대속을 받은 자이기 때문에 종이 됐고 받은 자기 때문에 이제는 제 자유라는 것은. 주장은 하나도 없고 완전히 대속한 그분의 뜻대로 나는 쓰여지고 그분은 나를 자유하시고 나는 그분에게 종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대형, 대행. 대화친을 하신, 대신하신 그 대속을 내것을 삼는 데에는 나를 또 주님의 것을 만들어야 됩니다. 그러면, 주님의 것은 영영하고 완전하고 참 불변한 그 보배로움을 내가 차지하고 내게는 더럽고 못쓸 것 그 모든 못쓸 것인데 그것을 전적 주님에게 다 맡깁니다. 그러면 주님과 나와 바꾸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꾸는 그 의미와 뜻에서 종노릇 하는 것입니다. 그 자라야 이 계시를 받지 그 자가 아니면 계시를 못 받습니다. 계시가 저에게 필요가 없습니다. 신구약 성경은 그 사람들에게 그런 사람에게 주신 것이고 그런 사람에게만 필요 있는 것입니다. 예수의 은혜 그리스도의 은혜는 종에게만 필요하다. 그러면 예수님의 대속을 입은 자에게만 필요하고 예수님의 대속을 입고 예수님의 대속 입은 노릇을. 행동을 하는 자에게 필요찹니다. 대속을 입은 자로서의 합당한 행동하는 것, 합당 행동하는 거는 뭐 간단하게 말하면 뭐인가? 그분에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순종하는 것. 순종은 두 가지 순종인데, 하나는 마음으로 순종하는 것이니 마음으로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육십육 권 도리에 이렇게 저렇게 모든 것을 말씀하신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마음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인정하는 것. 그러면 마음으로 하나님 하신 걸 인정하고 확신을 가지는 것이 순종하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순종하는 것. 마음으로 순종하는 게 뭐 감정으로 순종하는 것, 욕심으로 순종하는 것 그런게 다 마음에 속한 것입니다. 아무리 성경에서 '네가 이런, 이것을 네가 욕심을 품어라.' 해도 '아, 나는 돈 욕심 품는 거 이거는 버릴 수 없습니다.' 하면 그자는 마음으로 순종치 않는 자라 그 말이오.
마음으로 순종, 마음으로 순종하는 것은 육십육 권 도리에 나타난 것은 전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인데, 이 은혜를 자기가 확신을 마음으로 가지는 것이, 그것이. 그 마음이 자기 마음대로 있는 게 아니고 하나님의 마음에 따라가. 는 것이라 말이오. 마음으로 하나님 마음에 따라가는 거니까 그게 순종이라 그 말이오. 그라고 난 다음에 몸으로 순종하는 것. 그대로 내가 내 마음대로 내 행동하지 못하고 이 말씀대로 행동하기 때문에 또 봄으로 또 순종하는 것.
마음으로 순종, 몸으로 순종하는 이것이 뭐이냐 하면 종이라 그 말이오, 종. 이 종들만이 이 계시를 주시고 이 계시는 종들만이 받아 가질 수가 있지 다른 사람은 받아 가지지를 못한다. 여기에는 특별히 종이라는 것을 강조 했습니다.
그래서 그 종들에게 보이실려고 그 천사를. 천사도 종입니다. 하나님 시키는 대로만 하는 게 천사요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그 종 요한에게. 그러면 사도라고도 하지 안하고 그 종 요한이라. 큰 역사가 일어날 때마다 종이란 말을 썼습니다.
나면서 앉은뱅이된 앉은뱅이가 나았을 때에도 베드로를 통해서 성령이 말씀하시기를 '곧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그 종 예수를 영화롭게 했다.' '하나님의 종 예수를 영화롭게 했다' 거기에도 역사할 때에 예수님이 땅 위에서 온갖 역사한 그 역사한 것은 무슨 능력으로 역사했는가? 종이 됐기 때문에 그런 능력으로 역사했지 종이 아니면 그런 능력으로 역사 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도성인신 하셔서 신인양성일위를 가지신 분으로서는 종의 위치를 가지지 안하면 아무것도 못 합니다. 그 종으로 그 일을 다 성공했습니다.
우리도, 제이 예수. 첫열매인데 우리는 그 다음 열매인 우리 믿는 사람들도 종 노릇하는 이 종으로만 능력이 나타나고 그 은혜도 다 받지 이 종을 빼 버리면 아무것도 안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종이라 하는 것은 믿는 것이 종입니다.
믿는다는 말은 뭐인가? 딿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마음으로 하나님의 의사에 딿고, 하나님의 지식에 딿고, 하나님의 모든 계시한 그 말씀을 내가 따라서 확신하고. 몸으로 또 그대로 따라서 순종하는 것이, 그것이 종이요 믿음인 것입니다.
이랬는데 네째로는 뭐입니까? 예? 네째로는 복입니다. 네째로는 복 이라.
그러면 복이 몇 가지인고 손가락으로 한번 가리켜 보이소. 네, 이 세 가지. 세 가지 복인데, 하나는 무슨 복인고 하니 읽는 복입니다. 읽는 복 읽는 복은 신구약 성경 말씀을 자기가 읽는 것, 읽어서 아는 것. 또 둘째로는 듣는 복 들어서, 다른 사람이 가르칠 때에 배워서 들어서 아는 것. 그러면 읽는 복 듣는 복이 무슨 복입니까? 읽는 복 듣는 복이 무슨 복이 지요? '실행' 말은 그거 제로라. 빵점이야. 안 돼. 구별을 똑 해야 되지 범벅타령 사람은 평생 그렇게 그만 구별해 가지고 정확성이 없이 그래하는 사람은 모든 일이 그래 되기 때문에 참신앙을 지킨다는 것은 그거는 심히 힘듭니다. 다 고쳐야 됩니다. 복은 그 복은 무슨 말이냐 하면 인정 복이라 말이오. 인정 복. 인정 복.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면서 하나하나 인정해 나가야 됩니다. 믿 어 나가야 됩니다. '아. 이 말씀은 내가' 이 말씀을 자기가 확실히 이 말씀을 내가 믿습니다.' 요라고, 또 자기가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 또 시험을 해 보고 자꾸 믿는 자가 읽는 자도 그 읽은 것을 자기가 확신하는, 인정하는 복을 받아야 됩니다. 인정하는 복을 받아야 되고, 또 듣는 자도 설교 들으면서.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가르칠 때라도. 들으면서 확실히 믿는 인정하는 복을 받습니다. 그러면 읽으면서 인정하는 복받고, 들으면서 인정하는 복 받는 그 복은 어떤 인정이라야 됩니까? 어떤 인정이라야 복이 됩니까? 그 인정은 실행 안 할래야 안 할 수 없는, 누가 실행을 하라 해야 하는 게 아니라 다 믿고 보면 죽어도 실행합니다. 마태복음 3장 44절에 하늘나 라의 비유를 말하기를 '보화를 만난 자, 진주를 만난 자마다 자기의 있는 소유를 다 팔아 가지고 그것을 산 거와 같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읽고 듣는 계시 사실을 자기가 확실히 발견하고 인정을 한다고 하면 말이오. 인정하고 확실히 믿으면, 확실히 믿으면 이 계시 속에는 뭐이 들어 있습니까? 예수의 은혜가 들어 있고, 그리스도의 은혜가 들어 있습니다. 예수의 은혜, 그리스도의 은혜가 제일 크지 뭐 땅 위에 모두 다 온 천하를, 차지하면 그까짓 거 뭐 할 것입니까? 그다도 뭐 비교 못할 만침 지극히 큰 소망이요, 권세요, 영광이겠습니다. 이렇게 읽는 데에서 듣는 데에서 확신을 가지니까, 확신을 가지니 자기는 필연적으로 아무리 이대로 행하지 못하게 해도 그 자기의 소유를 다 뺏들라 하면 뺏기고라도 행할 것이고 자기의 생명을 뺏올라고 하면 자기의 생명을 뺏기고라도 지키는 일은 뺏기지 안한다 그 말이오.
지키는 일은 뺏기지 안해. 그러면 생명을 원수가 빼앗아도 생명을 줬으면 줬지 읽고 들은 그대로 내가 믿는, 읽은 대로 믿고 들은 대로 믿는 이 내가 믿는 이대로 하는 것을 온 세상이 달라들어 가지고 무엇을 해 해를 한다 할지라도 몸을 거머쥐고 방해하면 몸을 내줬으면 내줬지 이는 내 줄 수가 없고, 생명을 내놓으라 해서 내주면 내줬지, 생영을 내줬지 믿고 지키는 이것은 니줄 수가 없는 그것이 이제 생명 있는 믿음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 네 가지 복인네. 그 안에 뭐 여러 가지 있는 그런 것은 이 네 가지만 지키면 저절로 그 다음에 알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말씀을 간추려서 말하면 우리 할 일이 뭐입니까 말씀을. 이 말씀 속에 예수의 은혜가 있고. 말씀 속에는 하나님과 나와의 결합되는 은혜가 있고, 이 말씀 속에는 내가 영원 무궁토록 하늘나라에 가 가지고 하나님이 맡겨 주신 이 세 가지 지극히 존영한 직분이 있는데 이 직분을 감당할 수 있는 이 실력이 이 속에 들어 있다 말이오.
이 속에 들어 있는데, 그러면 이 속에 들어 있는 것은 그 실력을 그때 가 받을 건가? 이 실력을 지금 이 세상에서 실험하고 경험하고 체험해 가지고 실력을 실지로 지금 내가 받아 강직하는 것이라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지금 우리 할 일은. 하는 일은 무슨 일인고 하니 제사장 일을 우리가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선지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왕의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교회에 교회 정치를, 제가 ○○신학교에 그때 가서 다닐 때에 그때가 이학년 때인가 ○○신학교 갔는데. 가니까 ○○○목사님을 정치학 강사로 그렇게 정해 가지고 가르치고 있습디다. 가르치고 있는데 내가 배워 보니까 그분은 법을 공부한 분이라서 송사 잘 아는 분인데 이 세상 법칙을 가지고 가르치고 있읍디다. 그래서 제가 그때 ○○○목사님이 교장인데, 저 아미동 거기에 계셨습니다. 그래 내가 집을 찾아서 물어 가지고 찾아 갔습니다. 가 가지고 둘이 세 시간 시비했습니다. 세 시간 시비하면서 어떻게 교회 정치는 성경 정치가 교회 정치인 것인데 이 세상 정치는 교회 정치의 정 원수가 되고 반대가 되는 것인데 학생들을 모아 놓고 이렇게, 성경 정치를 가르치지 안하고 이 세상 정치를 가르치고 있느냐? 하나님의 단일 통치를, 이것을 하나님에게 속한 자들이 다 그 통치를 받아 가지고 그대로 통치해서 어떻게 많은 사람이라도 다 그것이 통일이 돼 가지고 통일 정치하는 것이, 그것이, 성경 정치가 그것이 우리가 공부 할라 하는 신학에서 가르치는 정치일터인데 어떻게 그 성경 정치는 안 하고 성경을 모르는 사람. 이 세상 법만 가르치는 그런 걸 신학교에서 가르치느냐?' 그러니까. 처음에 그때 그분이 세력이 있었습니다. 그분이 중국에 가 가지고 ○○○박사도 모셔 오고 그때 아주 세력이 있고 참 똑똑했었습니다.
모두 다 그분이 아니면 안 된다고 다 환영하고 이랬는데, 그때 예배당 소송 문제도 약간 좀 있고 계기가 되고 할 그때입니다. 그때 시작할 그때인데. 그래 가지고 세 시간 만에 마지막에는 합의를 봤습니다. 그래 내가 이런 거 저런 것 자꾸 주 대면서 '이것을 가르쳐 가지고 뭐할 건가? 이것을 가르친다면 이거는 사회에는 이보다 더 훨씬 더 잘 가르 치는데 그러면 우리가 사회학을 공부하는 것이지 이거 할 필요가 뭐 있겠느냐? 신학교에서 성경 정치는, 성경 정치가 교회 정치인데 성경 정치는 가르치지 안하고 일반 이 세상 정치 그런 것만 가르쳐 가지고 되겠느냐?' 이래서 마지막에는. 처음에는 자꾸 '그렇지만 지금 형편상 그렇다. 그렇다.' 이래 하다가 마지막에는 합의를 봤습니다. 합의 봐 가지고 그라면 이 다음 학기부터는 바꾸겠다 해 가지고 그 다음 학기부터는 ○○○목사님이 교회 정치학을 가르치는 강사에 사면을 당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바꾸어졌습니다. 바꾸어졌었는데, 그런 것이 다 그만 주 자꾸 몰려 가지고 그때 제가 미움을 당한 것 중에 그것도 하나입니다. ○○○목사님께서 살아 계시니까 그분이 아마 뭐 설교록 간 걸 혹 이걸 딱 봤으면 자기가 느낄 것입니다. 그때 완월동에 계셨던가 뭐 아마 그 어디입니다. 완월동. 네, 그랬었는데.
우리가 이 신구약 성경에는 두 가지 은혜가 들어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두 가지가 은혜가 들어 있는 것, 예수의 은혜가 들어 있고. 그리스도의 은혜가 들어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의 은혜를 받고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는 것은 이 신구약에 계시된 이 계시를 하나 차지하고 둘 차지하고 차지하는, 이 계시를 차지하는 것이 그것이 곧 그리스도의 은혜를 차지하는 것, 하나님과 결합을 차지하는 것이고 이 세 가지 직책을 자기가 차지하는 것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 차지는 뭐로 차지하는가? 차지는, 그러면 신구약 성경에 있는, 한말로 말하면 진리요 영감이라고 할 수 있고, 또 예수의 결합, 하나님과 결합이라 할 수도 있고 또 세 가지 직책이라 이렇게 할 수 있는데 이것을 차지하는 데에는 어떻게 차지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해야 차지를 할 수가 있습니까? 어떻게 해서. 무슨 방편 가지고 차지할 수 있습니까? 무슨 방편 가지고? 읽고 믿고, 듣고 믿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안 행할 수 없어서 필연적으로 행하게 되고. 행할 때에 세상 어떤 게 와 가지고 '바꿔라 이거하고 그거 하지 말아라.' 해서 생명을 샛으며 네가 생명할래, 이거 읽은 것. 들은 것, 지키는 것이 세 가지 이 믿는 일 할래?' 할 때에 내 생명을 빼앗겨도 나는 이거는 빼앗길 수 없다는 그것이 최종의 신앙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현실에서 자기가, 현실에서 믿는 믿음. 들은 것을 믿고, 읽은 것을 믿고 들은 것을 믿고 또 지키어서 믿음으로 지키는 것. 이런데. 지키는 것도 믿음이요, 지키는 것도 믿음이요. 인정하는 것도 믿음이요, 확신하는 게 다 믿음인데, 그 믿음은 언제 믿음이라야 합니까? 미래로 두고 '앞으로는 내가 이렇게 하겠다' 미래에 속한 믿음도 있고, 또 과거에 속한 믿음도 있습니다.
'과거에 내가 이렇게 믿었으면 좋을 터인데 과거에 이렇게 믿지 못했다 과거에 믿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믿음, 또 앞으로 이렇게 믿겠다 하는 결심하고 소원하는 믿음 또 현재에 믿는 믿음. 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과거에 속한 믿음.
미래에 속한 믿음. 현재에 속한 믿음인데 이 믿음은 어떤 믿음이 필요합니까? 현재에 속한 믿음 아니면 소용 없어. 그거다.
그러면. 현재에 속한 믿음이 어디서 나오는가? 현재에 속한 믿음은 어디서 나옵니까? 이거 도를 생각하면 그만 환하이 뚫혀서 다 알게 되는데. 실행 안 하는 사람은 몰라요. 실행하면 그만 등신이 실행하면 잘 알아. 주남선 목사님이 ○○교회 와 가지고 세례 문답 하면서 물어야 한 마디도 모릅니다. '아, 이 사람들, 어떻게 이 세례를 줘야 되겠습니까 안 줘야 되겠습니까?' '그리 말고, 목사님, 그 문답을 그래 하지 말고 이래 한번 해 보시이소. 자. 이렇고 이런 일이 있는데 이런 일에는 요래야 되느냐 조래야 되느냐, 그래 한번 물어 보십시오.' 주남선 목사님이 나중에 마지막에 생명까지 기울여지는 일도 요럴 때 이렇고 요할 때는 어째야 됩니까? '요래 해야 됩니다.' 또 '이렇고 요럴 때는 어째야 되는가?' 논술을 몰라요. 그러니까 답을 못 하고 이래도 딱딱 물으니까 다 알거든. 최고의 신앙이라 하는 걸 그때 보고 놀랬습니다. '아, 그러면 이 사실을 보면 그때 다 판정하는구나.' 이렇게 말은 못 해. 무식하기 때문에 말은 못 해도 일을 딱 '이런 이런 일이 닥쳤을 때에는 어떻게 됩니까? 하니까 그걸 딱딱 옳게 말하거든. 그때 말하기를 '이 사람들이 다 순교적 신앙이다' 하는 것을 그때 주남선 목사님이 말하면서 감탄을 했습니다. 말을 못 해도. 이러니까.
실행하는 사람은 다 그거 알고 있다 말이오. 실행 하는 사람은 아는데, 말해도 실행 안 하니까 소용이 없어.
그때 그 ○○교회는 다 순생의 사람들입니다. 다 생명 내놓기를 한 두 번 내놓은 게 아니라 믿음 때문에 뭐 여러 차례씩 내놓은 사람들이라, 그때. 제가 제일 처음에 세운 교회인데. 그것을. 아마 그것이 만일 다 기록이 됐다고 하면 굉장할 것입니다. 그거 뭐 감옥에 신사 참배 때문에 갔다 온 그런 거는 소분지요. 그래도 그 사람들은 신사 참배 하나도 안 했어. 아. 6. 25지나고 난 다음에 빨갱이들 토벌한다고 왔는데, 토벌대가 왔는데 토벌대가 공산주의가 토벌대 가면을 쓰고 왔어. 와 가지고. 그래 가지고 그 예수 믿는 사람들을 공연히 지금 분풀이 하느라고 뚜드리면서 공산주의로 그렇게 몰아 붙여 가지고 그때 저도 많이 뚜드려 맞았습니다. 그 뚜드려 맞고 저는 이제 그만 뚜드려 맞고 다른 교회 집회하러 이래 가 버렸는데, 나 없을 때에 교인들 전부 마당에 덕석 펴 놓고 전부이온 믿는 사람들 다 모여라 하니까 그 숨을 건데 하나도 안 숨고 전부 다 모였다 말이오. 그런 신앙들이었습니다. 다 모였어. 하나도 안 숨고 다 모였어. 여기 지금 아마 ○○○씨 손 들어 봐요. 그때 참석했지? 참석 했대.
막 모아 놓고 그 뚜드려 패는데 그때 뚜드리 패기는, 토벌대 토벌대라도 공산주의자들이 뚜드리는 건데, 뚜드리는 데에 그때 박해를 받은 사람, 심한 박해를 받은 사람은, 그 사람이 압니까? 박해받은 사람은 하나도 매 맞지 안하고 꼭 예수 믿어 안일주의로 믿는 사람들만 매 맞았읍디다 보니까. 그래 내가 뒤에 가서 보고 우리가 웃었어요. 그만 성돌아가면서 조 사람은 지금 안일주의로 예수님을 위해서 고난 한번도 안 당해 봤으니까 조거는 맞아야 될 거다 이랬는데. 그것만 어째 똑 유월절이라. 그 사람만 가지고 죽도록 뚜드려 패고 주를 위해서 고난받은 사람들은 그 옆에 있는 데도 그거는 냅두고. 유월절이라.
그 사람은 때리지 안 하고 그거 넘어가서 또 때리고 그래 가지고 ○○○목사님도 그때 많이 뚜드려 앝았어. ○○○목사 예수 믿어도 하나도. 안일주의로 믿었지 예수님 위해서 진리 때문에 고난받은 일이 아니거든. 그때 ○○○집사 맞았어요 안 맞았어요? 예? 안 맞았어 저분도 고난 많이 당해 안 맞았어. 그 사람들은 모르는데 어떻게 똑똑히 아는지 그래 가지고 꼭 박해당한 사람들은 안 때리고.
그런 박해 안 당한 사람만 뚜드려 팼어. 그래 무더기 그때 은혜를 받았습니다.
참 하나님이 역력히, 그러기 때문에 그 시련을 받아야 되지 안 받으면 안 된다 그거요.' 그러니까 자 믿음은 언제 믿음이라야 됩니까? 현실 믿음이라야 돼. 여러분들이 말이오 현실 믿음은 어디서 나옵니까? 현실 믿음은 어디 나오지요? 현실 믿음은 과거 믿음 미래 믿음에 나온다 말이오. 현실 믿음은 과거 믿음 미래 믿음에 있어. '과거에 아이구 내가 이랬을 터인데 내가 요때 믿지 못했다. 그때 믿지 못했다.' 믿지 못했다 하는 그게서 지금 현실에 믿을 수 있는 믿음이 나와야 됩니다. 또 앞으로 내가 이렇게 믿겠다 믿겠다 했는데, 앞으로 이렇게 믿겠다 했는데 앞으로 믿겠다 하는 것이 조금 있으니까 현실에 닥쳐왔다 말이오. 그러면 과거 믿음과 현실 믿음에서 이 믿음의 뿌럭지가 생겨 가지고 그것이 자라기는 현실 믿음이 와서 자라야 된다 그 말이오. 그런데, 과거 믿음 미래 믿음만 가지고 있지 사람들이 현실 믿음을 가지지 안하는 사람은 아무 소용이 없어. 잘 믿는 척 하지만 현실을 떡 그만 닥치면 그만 못 믿는 다 그 말이오.
그러면 현실 믿음을, 현실 믿음을 기르는 데에는 어떻게 해야 현실 믿음을 기릅니까? 현실 믿음을 어째 기르요? 큰 데는 안 돼 기르는 것은. 나오기는 거기서 나왔는데 기르는 거는 그래 길러 가지고 안 돼요. 기르는 거는 뭐이냐 하면 이 현재에 하기 쉬운 것을 행한다 말이오. 자기가 그 말씀대로 믿은 대로 행해 봐요. 쉬운 대로 행해 봐요. 행해 보니까, 아, 행하니까 나는 믿음이 있는 줄 알았는데 행할라 하니까 믿음이 달아 버렸습니다. 닥치기 전에 내가 요래요래 믿겠다. 과거에는 후회되고 이러니 이래 믿겠다 했는데, 아. 믿겠다 하고 나서 그 일을 턱 닥치고 나니까 그만 믿음이 어디로 간 곳이 없어. 가 버리고 그만 믿음이 없다 말이오. 그러니까 현재에 행합니까 못 행합니까? 못 행한다 말이오.
못 행하니까 자기가 지내 보내고 난 다음에는 그것이 또 후회 믿음이 된다 말이오. '아 나는 믿는 줄 알았지만 그 일 닥치니까 왜 그때 내가 그래 안 믿었던고?' 이러니까 그 다음에 하나님이 '그러면 네가 또 한 번 연습해라' 하고 또 그런 현실을 준다 말이오. 현실을 주니까 이번에는 내가. 이번에는 달라들어 가지고 믿겠다 했지만 현실 닥치니까 불리한 조건들이 많이 나오는데 그 불리한 조건 그 불리보다도 믿음 지키지 못하는 것이 더 손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렇지만 이 세상 불리가 믿음보다도 더 손해라 하는 사람은 큰 손해 안 보기위해서 믿음 버리고 만다 그 말이오. 그러니까 그 다음에 하고 난 다음에는 또 후회가 된다 말이오. 세번째 닥쳤을 때는. '이번에는 내가 앞으로는 닥치면 내가 죽어도 내가 안 버릴란다' 이렇게 두 번 실패하고 난 다음에 세번째는 단단히 결심하니까 그 세번째는 비로소 지키게 된다 말이오. 지키게 된다 그거요.
그러면, 현실에서 믿는 그 믿음, 공산주의가 와 가지고도 거기서도 용감스럽게 하나님의 진리를 증거하고, 또 일본 나라의 신사 참배 때도 용감스럽게 하나님의 진리로만 현실 믿음. 권위있는 믿음을 가지는 것은 어디서 나옵니까? 연습에서 나온다 말이오. 연습에서. 연습에서 나와. 또 조그만한 현실에 지켜 보니까 자꾸 지켜 보니까, 지켜 보니까. 또 안 됐거든. 지켜 보니까 또 실패고. 또 지켜 보니까 실패하고 그러면 세 번 지키면 세 번 실패하고 난 다음에는 네번째는 이길 만한 힘이 나옵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쩌든지 신앙생활을 자꾸 하는 사람은 신앙생활 시작했다가 또 실패하고, 또 실패하니까 또 시작하고 시작하고, 이래서 실행으로 자꾸 연습하는 사람이라야. 자꾸 실행하는 사람이라. 실행을 하는 사람이라야 실행에서 실돼하고 나서 또 이제 실행을 하니까 또 실패하고. 자꾸 실패하는 데에서 성공할 수 있는 현실에 능력 있는 믿음 이 나오는 것이지 실행도 하지 안하는 사람은 '이 다음에 순교를 당할 때는 목숨 내대지 목숨 내대지.' '어리석은 자야 네가 어리석은 자라. 네가.' 그것을 현실에 자꾸 지금 연습을 해야 된다 말이오. 연습을 해서.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 말씀대로 신앙의 열매를 맺는 것은 그 말씀대로 살라고 할 때에 어려움이 없을 때도 있고 어려움이 있을 때도 있습니다. 어려움 없을 때 그때 실행을 하면서 실패당한 것 또 하고 또 하고 또 하고 이래 가지고 최고로 밤중의 그때 그 부분적인 신앙 의 성공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때 완전한 완성이 되는 거라. 그전에는 준비했는데 준비를 '준비해라 준비해라' 이러니까 준비는, 준비는 우리가 뭐로 준비해야 됩니까 실행으로 준비해야 됩니다.
준비하는데, 준비는 뭐로 준비해야 됩니까? 실패 준비해야 됩니다. 그말 맞소? 실행으로 준비하는데 실돼로 준비합니다. 실행으로 준비하니까 실패의 답안이 나옵니다. 자꾸 실패를 실패하고 또 실패, 실행으로 실패하고 실행으로 실패하고 실행으로 실패하고 자꾸 실행으로 실패하고 실행으로 실패하면 그 다음에는 뭐이 나옵니까? 실행으로 실패해 가지고 실행으로 성공할 수 있는 그것이 나온다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이 밤중 전에는 자꾸 실행으로 실괘하고 실행으로 실패해 가지고 자꾸 실행력은 강해지고 실패력은 적어지고 이래 가지고 그때 그 준비한 사람은 밤중 닥쳤을 때에 그만 신랑을 맞이 해 가지고 성공을 한다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 뭐이냐 하면 믿는 것과 그 실행하는 일을 자꾸 계속해서 하는 사람이 성공하지 실행하려고 달라들지 안하고 냅두고 '내가 그때 환난 오면 그때 내가 이기지' 그때 이기자, 하고 현재 실행 안 하는 그런 자는 다 헛일입니다. 여러분들이 믿는 줄 알았는데 믿는 것이 현실이 닥치니까 그 믿음이 도망쳐 버리고 없다는 것을 자꾸 자기가 느끼고 느껴서 '이 내 믿음은 거짓부리 믿음이라' 내가 믿는 줄 알았는데 현실만 닥치면 실행만 할라 하면 도망가 버려. '이놈의 믿음은 내 믿음은 실행만 할라면 도망가 버리네. 이놈의 믿음은 다 죽은 믿음이다.' 이래 가지고 자꾸 믿음을 새로새로 잡아 가지고 이제 행할라 할 때에 믿음이 가지 안하고 꼭 지키고 있는 그것이 뭐이냐 하면 산 믿음이라 그 말이오.
이러니까 우리 연습할 거는 뭐이냐? 자꾸 읽는 것 듣는 것. 읽으면서 들으면서 자꾸 믿어야. 요거는 미래의 믿음이라 말이오. 또 그래. '나는 과거에 이렇게 내가 못 살았다.' 후회 믿음이라. 그러니까 자꾸, 여러분들 이 기도하러 가거들랑은 읽으면서, 읽는 신앙을 가져야 됩니다. 성경을 내가 뜻을 다 몰라도 아는 대로 알 수 있으니까. 아는 대로 알 수 있으니까. 그라면서 '아 이대로 믿습니다.' 그래 가지고 자꾸 성경을 읽으면서, 읽으면서 줄줄 그 장 수만 넘어갈라고 말고, 읽으면서 그 읽는 것을 그대로 내가 '아 믿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확신을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 도하옵나이다.' 자꾸 구구 절절에 내가 믿을라고 애를 쓰고, 내가 믿느냐 시험을 하고 또 주님에게 믿음을 달라고 기도하고, 고라다가 또 현실을 딱 닥칠 때 그때 그만 이대로 행해 볼라고 딱 달라들고, 이렇게 하는 사람이라야 이제 자신이 예수의 은혜.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아 가지고 기본구원 또 기본구원으로 말미암아 이제 건설구원이 이루어지는 것, 기본 구원을 확실히 믿는 데에서 건설구원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기본 구원은 믿든지 안 믿든지 기본구원은 얻기는 얻지만 기본구원을 믿지 않는 자에게는 건설구원을 이룰 만한 능력이 그 속에 나오지를 안해. 그러기 때문에 구원은 하나라, 똘똘 뭉쳐서. 자꾸 성경을 듣고 읽고 믿어야 돼요.
우리 교회 집회는 이인재 목사님이 지난주 토요일날 오셨는데 어제 제가 대화를 했습니다. 했는데. 천상 약속한 데가 있어서, 그전에 약속을 다 해 가지고 있어서 주일날은 여기에 지키지를 못하고 토요일 밤까지만 여기서 집회를 하기로 그렇게 어제 약속을 다시 봤습니다. 이러니까 그리 아시고 기도 많이 하시고 교역자들도 그때 참석해서 은혜받도록 그렇게 힘쓰는 게 좋습니다.
그 어른이 참 아주 은혜를 깊게 받은 어른이고, 또 그때 옥중에서 같이 있던 어른들은 다 세상을 떴고 남아 있는 분들은 몇 남아 있지 않는데 그 들이 남아 있습니다. 그분 그때 신앙을 잘 지켰습니다. 지금 그때 출옥 성도가 ○○○씨가 남아 있고, 또 아따 누가, ○○○씨가 남아 있고, ○○○목사님이 남아 있고, 내가 아는 대로는 그 네 분이 남아 있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