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

 

1984. 3. 12. 월새벽

 

본문: 베드로후서 1장 1절. 예수 그리스도의 종과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같이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선지자선교회  특별히 이 베드로를 통해서 하나님이 영감으로 성경을 기록한 것이  베드로서인데, 베드로 자기 생각대로 말한 것은 아니고 성령님이 그를 감화  감동시켜서 말씀한 것이나, 그 베드로에게 감동시켜서 말씀하신 그 말씀은 우리  각자들에게 이와 같은 감화를 받아서 말하고 생각하는 것이 옳기 때문에, 이 성경  기자들이 감동받아 가지고 기록한 것은 그 성경을 보는 우리들도 그와 같은 자가  되도록 하시기 위해서 그 성경을 기록해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라, 그러면, 예수님이라든지 그리스도라든지 이럴 건데 그 '예수  그리스도'라. 고 다음에도 또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예수 그리스도라 이렇게  이중적인 말을 했습니다. 예수님이란 말이나 그리스도란 말이나 같은 말인데  '예수 그리스도'라. 예수라는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대속하신 신인 양성  일위의 대속을 나타내서 예수님이라 이라고 주님을 부를 때는 언제든지, 이  베드로에게 영감된 그 영감은 주님을 부를 때에 예수님이라 이렇게 불러서.

예수님이 하나님이 사람되셔 가지고 신인 양성 일위이신 주님이 내게 어떤  역사를 하셨나 그것을 기억하게 해서 그것을 기억하고 여기에 '예수님'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말이면 그 속에 있는 것을 발표하는 것이 말입니다. 그러면, 말과 속이 달라서  속에는 이러하면서 말은 또 달리 발표하는 이중적인 그런 행위도 있을 수 있고  나쁜 이중적인 나쁜 행위도 있을 수 있고, 또 이중적인 좋은 행위도 있을 수  있습니다. 남을 속이기 위해서 이중적인 행위를 한다든지, 자기를 변호하기  위해서 이중적인 행위를 하는 그런 것은 다 악령에게 속한 것이고, 또 다른  사람을 유익되도록 하기 위해서, 자타의 구원 방편으로, 이중이 안 되고 하나로,  안퍆이 같은 것으로 이렇게 해 버리면 혹 상대방들의 대인 관계가 잘못 돼  가지고 손해될까 해서 그렇게 이중하는 일도 있습니다.

 바울이 율법 아래 있는 자에게는 율법 아래 있는 자같이 하고 또 야만에게는  야만같이 하고. 유식한 자들에게는 유식한 자같이 하는 것은, 다만 한 사람이라도  더 얻기 위해서 그와 같이 한다고 말씀하는 그것은 분명히 이중생활입니다. 속은  아니면서 그저 그 사람의 정도에 맞춰 가지고서 이와 같이 하는 그것은 사람을  구원하는 방편으로 썼기 때문에 성신의 감동도 그렇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과 말이 다른 것도 있을 수 있습니다. 나쁘게 다른 것도 있고 좋게 따른 것도  있고 이렇지마는 대개는 그 말이면 그 속에 있는 마음을 알수가 있고 또 안에  있는 마음은 발로 발표가 됩니다. 그런데, 이 베드로에게 영감된 이 영감은 내나  성신은 한 분뿐이시기 때문에 성신의 감화인데, 이 성령이 베드로에게 이렇게  감화된 이것은 우리에게도 이런 사람이 되기를 원해서 성경을 기록해 가지고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마음 가운데에 그렇게 한 가지면 한 가지 요렇게 단순히  요렇게만 생각지 안하고 마음 가운데에, 복잡한 것을 마음 가운데에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  그러면, '예수님'하면 좀 단순할 건데 예수 그리스도라고 그렇게 부를 때에, 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 이렇게 말한 것은 하나님이 사람되셔 가지고 십자가에서  대속하시고 또 우리를 온전케 하기 위해서 죽은 가운데서 부활까지 하셨다,  예수님이 하나님으로서 사람되는데까지 낮아지시고 가난해 지시고, 또 인간이  되어서 사생활도 삼십 년 공생활 삼 년 또 십자가상에서 대속하신 죽음, 또 삼  일만에 부활하셔서 우리를 영원히 책임지신 그 은혜 거기에 대해서 내가 어떠한  죄가 있던 자이면 또 내가 어떤 형 가운데 있었고 어떤 영원한 형을 받을  자이었는데, 그걸 알아야 예수님이 내걸 담당하신 것이 얼마나 담당하신 것을 알  수가 있지 그걸 모르는 사람은 담당한 걸 알 수가 없습니다. 이러니까 성신의  감화는 자기가 어떤 죄인이었으며, 어떤 형에 처하여 있었던 자이며, 그 자기를  구원하시기 위해서는 주님이 어떤 희생을 하셔서 하늘에서 희생하신 것, 땅에  오시기까지의 희생하신 것, 땅에 오셔 가지고서 삼 십년 동안 하나님이  사람되어서 그렇게 사람 생활을, 우리 사람 생활의 모든 것을 대속하실라 하니까,  사람이 사생활로서 범죄한 그 모든 것을 대속할라 하시니까 하나님이 사람되어서  삼 십 년 동안 사생활을 하셨고, 또 우리의 이 모든 공생활에 대한 속죄 할라  하니까 공생활을 하셨고, 또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죽음을 대속할라 하니까  죽으시고, 또 우리에게 죽음을 대속할 뿐만 아니라 영원히 새로 새 생명 가지고  살아 가지고 살아야 되기 때문에 다시 살리기 위해서 죽은 가운데서 부활 하시고,  또 우리에게 대속은 베풀었지마는 베풀어 놓은 대속을 우리가 다 실상으로  자기가 자기 몫을 가지고서 이래 해야 되기 때문에 그것을 가지도록 해 주시기  위해서 다시 사람으로 부활하신 이 예수님의 신인 양성 일위가 대속하신 그 모든  은혜를 낱낱이 이렇게 생각해 가지고서 '예수님'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그러면 고만 주님이라 하면 될 터인데 예수님이라 하든지 뭐 주님이라 하면 될  터인데 예수님이라고 한 것은, 그 예수님이 우리와의 관계된 그것을 생각해서  '예수님'이라고 보니까 또 예수님이라고 해 가지고는 또 마음에 만족치 안하기  때문에 그리스도라 이랬는데,  그리스도라고 하는 것은 무엇을 그리스도라고 하는고 하니, 잘 여러분이 배워서  벌써 아는 대로 그리스도는 기름 부음을 받았다는 뜻인데, 기름 부음을 받았다는  뜻은 제사장직. 선지직, 왕직을 받을 때는 기름을 붓습니다. 이러니까, 예수님께서  다시 그리스도가 돼 가지고서 이렇게 오신, 그리스도로 나타난 것. 그러면  그리스도가 돼 가지고 왔다는 그 말은 그리스도로 나타났다는 말이지, 그리스도는  영원 전 이름이요 예수님은 동정녀 마리아에게 탄생 후의 이름입니다. 탄생후의  이름자요, 그리스도는 영원 전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예택을 입을 때에 그리스도  안에서 예택을 입었습니다. 또 하나님이 목적을 정하실 때에 그리스도 안에서  목적을 정하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리스도는 순전히 인성이 아닌 신성만인  하나님의 이름인데 영원한 이름입니다. 영원한 이름인데, 그 이름의 뜻을 아무도  몰랐습니다. 몰랐는데, 신정 국가인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직접 통치하실 때에 이  기름 부음을 세 가지 직책에 기름을 부었기 때문에 '아, 이 그리스도의 기름 붓는  것은 이 세 가지 직책이라' 하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됐고 또 그 후에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에 첨부돼 가지고서 세 가지 직책인 제사장직은 어떤 것인가, 선지직은  어떤 것인가. 왕직은 어떤 직인가 하는 그것을 또 우리가 미루어서 알게 돼  가지고 그리스도라는 뜻을 바로 알게 됐습니다. 구약에 있는 사람들은 잘 모르고  선지를도 잘 모르고 사도들보다도 지금 이것 잘못 들으면 안됩니다. '아, 그라면  사도들보다 낫다 말인가?' 사도들도 성경을 기록하기는 기록했지마는서도 기록한  성경을 자기네들이 다 모릅니다. 이러니까, 사도보다 사초 후 시대의 세대가 더  죄악이 관영해지고 마귀의 궤휼이 아주 최고로 발달되기 때문에 발달됨에 따라서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발달된 그 마귀의 역사를 다 알고 그것을 대항해  나갈 수 있도록 하시기 때문에 점점 주님의 재림 때가 가까워올수록이 그렇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천국에서는 어린, 지극히 작은 자라도 세례요한보다는 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더 풍부히 가지고 있다 하는 것을 주님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 그리스도라는 것은 제사장이란 말인데. 그러면, 하나님이  제사장 된 것은 벌써 십자가에 못박혀서 그리스도의 영이 예수님 안에 와 가지고  역사해서 예수님이 제사장 노릇 했고 선지자 노릇 했고 왕 노릇 했고 이 세  가지를 완성한 것이 예수님의 대속의 완성입니다. 완성했는데 또 뭐하려고 이  그리스도가 나타났는가? 우리를 대속하셔 가지고 제사장으로 우리에게 하실 일을  다 하신 그 공로를 힘입어 가지고 우리들도 제사장이 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공로로 제사장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그리스도가 나타났고  선지자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 그리스도가 나타났고, 또 왕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그리스도가 나타났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에 우리들을 제사장이라 '아버지  하니님을 위하여 제사장으로 우리를 세웠다.' 계시록 1장 6절 이하에 보면  말씀했습니다. 또 우리를 선지자들이라 이랬습니다. 또 우리를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 한다 이렇게 해서, 우리를 계시장 선지자 왕을 만드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그리스도 직책을 가지고 우리에게 나타나서 우리를 제사장으로 만든 다 선지자로  만든다 왕으로 만든다.

 그러면, 제사장은 어떤게 제사장인고 하니, 이 피조물들 중에 사람, 사람 뿐만  아니라 모든 만물도 미루어서 타락하게 됩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잘못된 모든 것을 책임지고 또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대해서 지성  지공법으로 지성 지공법대로 처리하면 사람들은 다 멸망 받습니다.

멸망받을-하나님은 사람들에게 대해서 지성 지공법으로 처리하면 다 멸망받게  되는데 이 멸망시킬 하나님, 또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대항해 가지고  멸망받을 이 행위 이 둘은 상극이라 그말이오 마치 이렇게 둘이, 음전기 양전기가  둘이 한테 부딪히면 불이 확 나는 것처럼 이렇게 하나님과 사람이 부딪히면  이거는 멸망할 수밖에 없는, 멸망밖에는 없는 이런 처지에 있는 사람, 그다음에  이어서는 피조물 창조주와 피조물이 마주 부딪히면 이게 절단날 수 있는 이  절단을 제사장이 그 속에 들어서 조화를 해 가지고서 그 하나님에게서 오는  진노를 제사장이 받아 가지고서 그것을 무마시키고, 또 사람들에게, 사람들이  하나님을 노엽게 해서 하나님의 진노를 격발시키는 그것을 또 제사장이 받아  가지고서 무마시켜서 이래 가지고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이렇게 무마시키고  조화시켜서 화합을 시키는 그것이 제사장 직입니다. 제사장직.

 그러기에, 예수님을 대제사장이라 했습니다. 대제사장이라 했고, 예수님은 화목의  재물이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래서, 이게사장으로 인해서 하나님은, 이  피조물들에게서 노해서 피조물들을 멸망시킬라고, 멸망 시킬 수밖에 없는  하나님의 공의인데 이제사장을 통해서 하나님이, 멸망 시킬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긍휼과 사랑을 베풀도록 이래 만든 것이 제사장이라 그거요 또 인제 사람들은  하나님을 노엽게 할 수밖에 없는 노엽게 하는 이런 행위를 제사장이 여기에서  조화를 해 가지고서 하나님을 기쁘시게하는 그 행위를 만들었다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제사장은, 이것을 말하면 중보 역, 중보 직이라, 중보 직이라. 또  중매, 하나님으로 더불어 중매하는 중매 직이라. 그래서, 바울이 하나님에게 우리  성도들을 중매한다, 중매하고 난 다음에는 중매쟁이는 신랑하고 신부하고 둘이  친근해지고 난 다음에는 중매쟁이는 그 사이에 끼여 있지 않는다, 그와  마찬가지로 늘 바울이 생각하기를 하나님과 성도와 그 사이가 밀접하도록 그렇게  만들고 난 다음에는 차차 차차 중매쟁이인 자기는 그 사이를 빠져 나와서 이제는  그 사람과 하나님과에 직접 들어붙어서 그렇게 살도록 하고서 자기가 그 사이에  끼여 있지를 않는다. 그러기에, 세례 요한도 말하기를 이제 그것을 말했습니다.

중매하는 자는 신부와 신랑을 만나면 그 사이가 좋아지는게 좋기 때문에. 나는  차차 삭아져서 쇠해져야 되고 이제. 주는 흥해져야 된다고서 주님과 이 교회.

교회가 둘이 합작되고 자기는 중매 역활을 했으니까 차차 거기서 비켜져 나와야  된다 하는 그것을 말을 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믿는 사람들도 자기가, 복음을 전해서 교역자든지  권찰들이든지 반사들이든지 그걸 우리가 목적하는 것이 뭐이냐? 중매 역할을  하는 것인 것을 알고, 어쩌든지 처음에는 자기를 신임해서 자거보고 자기로  인해서 하나님과 이렇게 관계가 맺어졌지마는서도 차차 차차 하나님과 직접  관계가 맺어지도록 하고 자기는 그 사자에 빠져 나와서, 그 사람과 하나님과에  관계하는 그 관계에 완전히 그 관계가 빠져 버리고 자기는 거기서 없는 것으로  돼 버리고 직접 관계 가지도록 이런 정상적인 방편을 가지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 사이에 항상 자기가, 중매쟁이가 이거 뭐 중매하고 난 다음에도 일 년이  지내도 그 사이 항상 제가 들어 가지고서 남편은 또 자기를 통하고 또 아내는 또  자기를 통하고, 자기가 중간에 항상 중매쟁이 때와 같이 그렇게 그러니까 이  남편도 중매쟁아가 아니고 저 아내와 가까와질 수가 없고 아내도 중매쟁이가  아니고는 그 남편과 가까워질 수 없으니까. 평생 그 사이에 들어 가지고서 제가  들어서 조화를 붙이는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은 그것은 안 된다는 것을 가르쳐서,  우리 사람들도 그렇지 않습니까? 결혼 됐으면 저거 둘이 붙어 가지고서 이래  지금 친밀해져야 될 건데 꼭 중매쟁이를 통해서라야 남편에게 하지 많으면  중매쟁이가 방해를 지기고 또 중매쟁이를 통해서 아내에게 하지 않으면 방해를  지기고 하는 요것은 고 중매쟁이가 아니라 고거는 도적이라 그말이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 믿는 사람들이 그렇게 해 가지고 직접 그 성도가 하나님에게  관련되도록 하고 자기는 그 사이에 빠질려고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집회에 가 가지고 일 주일동안 사경회를 하고 나면 그 교인들이 은혜를 받으니까,  아주 고만 은혜를 받아서 뭐 몇십 년 그 교회에서 목회한 것보다도 일 주일 동안  집회하고 나면 온 교인들이 완전히 강사에게 마음이 기울어지고 은혜를 받고  이러니까 그 목사보다도 가까워지고 이리 돼진다 말이오. 그러면, 그것을  좋다고서 그걸 기회로 삼아 가지고 그 집회하고 난 다음에는 그 은혜받은  교인들에게 본교역자 모르게 서로 사서를, 서로 사사 편지를 이렇게 보내면서  안부도 하고 또 얘기도 하고 이래 가지고 이러니까 또 그 교인은 어리석어서,  은혜 받았으니까 그이에게 매달려 가지고, 그이에게 은혜 받았기 때문에 그를  섬기고 그를 통해서 은혜 받았다 이래 가지고서 심지어 어떤 사람은 자기의  십일조를 그리 드립니다. 십일조를 그 강사에게 드리요. 강사에게 십일조를  바치요, 본교회에 바치지 안하고. 십일조 바치고 이러니까 이 집회 돌아 다니면  얼마 돌아다니고 나면은 고만 자기 밑에, 말하자면 자기의 기업체가 됐다 이거요  그러니까, 많은 사람들이 그래 가지고서 그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돈 쓸 일이든지  무슨 일이 있으면 편지를 하면서 이런 이런 일을 하겠는데 그 일에 대해서 혹  도울 수 있느냐 그라면은 '아. 제가 돕겠습니다.' 이래 가지고 실은 그 교회에  있지마는서도 그 부흥사가 그 사람을 총 다 관리해 가지고서 이렇게 하고 있다  말이오. 그래 가지고 모든 경제면이나 모든 것을 권세를 잡고서 이래 있는 사람  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들은 그렇게 하는 사람이 어찌 되느냐? 그렇게 하는  사람들은 그 은혜가. 은혜가 계속되질 않습니다. 은혜가 계속되지를 안해서 얼마  동안 그렇지 나중에 그 다음에는 그 사람에게 하나님이 은혜를 거둬 가지고서  그렇게 암만 가서 그렇게 하려고 지금 뭐 요번에 가면은, 집회를 혹 간다고 하면  그런 사람을 만들어 가지고 내가 하겠다 이렇게 계획하고 가지마는 고만 은혜가  없으니까 그런 사람이 안 생긴다 그거요.

 여기에 동래에 거기에 어떤 여의사가 있었습니다. 그 말은 내가 하지 않습니다.

그 여의사가 있었는데, 병원의 십일조를 어디다가 붙이느냐 하면 병원의 십일조를  저 대구에 어떤 여성에게 부칩니다. 거기서 은혜 받았다고서, 그래 가지고서 그  사람이 모두 다 이래 가지고 고아원도 차리고 돈을 주 모아 가지고 모금을 한다  이거요 그것은 바로 되지 안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집회를 하고 난 다음에는 그 뒤에 다시는 그때  작별하고 난 다음에는 편지를 안 합니다. 전혀 편지를 안 합니다. 편지를 안 하고,  다시 소식을 전하지 안하고, 뭐 그 뒤에 그 사람들이 혹 만나 가지고서 어떻게  인사를 하고 이렇게 반갑게 해도, 거기에 대해서 반갑게 인사하면 그저 정도를  맞춰서 너무 박하게 하면 그 사람이 그때 받은 바의 은혜를 쏟아 버릴 것이기  때문에 너무 박정하게 그렇게 하지 안하고 그저 또 은혜를 보존할 만침 정도로서  '안녕하십니까? 그동안에 신앙생활 잘 하시지요? 열심히 믿음 준비를 하십시요.'  요런 정도로 말하고 합니다. 하니까, 그 본교회 인본주의 교역자는 있다가서 그걸  보고서 '보십시요. 말로만, 입으로만 아주 앵무새 모양으로 짜다라 말만 그렇게  많이 했지마는서도 실행을 보십시요 가 가지고 편지 한 장이나 있습니까? 어데  소식이나 있습니까? 여러분들에게 무슨 전화나 있습디까?' 이렇게 말해 가지고서  그 교인과 은혜끼친 그 목사와 그 사이를 확 이간을 붙여 떨어뜨려 가지고서 그  사람에게 은혜받은 것을, 까뭉캔다 말이오. 그걸 놔 두면 제가 목회 못 하니까.

이런 악질들도 있습니다. 이것이 양의 껍질을 입었으나 이리입니다. 이게  삯꾼이요 이리입니다. 권찰도 그러하고, 목사가 본교회에 목사 노릇 해도  그러합니다. 그저 진리나 이래 가르쳐 가지고서 그 사람들을 하나님으로 더불어  밀접하게 관계를 가지도록 자꾸 이렇게 만들고 자기는 그 사이가 멀어질라고  이렇게 애를 써서 자기는 그 사이에 빠져나가고 하나님과 직접 연결되도록  이렇게 하려고 애를 쓰면은 이것을 참 자기들을 살리는 것인 줄 알지 못하고 '아,  나한테는 뭐 아마 뭐 섭섭하든지 뭐 있는가 보다. 또 나는 인정하지 안하고  사이가 좋지 안하다. 내게 대해서는 언제든지 뭐 그런가?' 이런 색경을 써 가지고  그 뒤에는 무슨 말을 해도 '나를 무슨 공격으로나 미워서나 이래 하는가' 이렇게  오해를 가지는, 또 오해를 가질 때 그 마귀란 놈이 또 고걸 알고서 얼른 가  가지고 그것을 떡 자기 편을 만듭니다. '봐라. 그이가 지금 이렇고 이렇고 이렇게  이라니까 뭐 네게 대해서는 이렇지 않느냐?' 고렇게 또 이간을 붙인다 그말이오.

 그 사람이, 만일 목회자가 교인을 거석할 때에 그 교인이, 은혜받은 교인을  자기에게 끌여붙여 가지고서 이렇게 자기 것으로 할라 하면 그 뭐 당장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마는 그거리 사이를 붙이지 안하고 자꾸 멀리 띄우고 자꾸  하나님하고 붙일라고 애를 씁니다. 그것이 진실된 책임을 아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이래서, 이 제사장 직이라는 것은 이것은 자꾸 하나님하고 그 사람하고  그 사이에 조화를 붙여 가지고 자꾸 이래 조화를 붙이다가 이제 직접 연결 될수  있는 거는 직접 연결 다 되도록 이래 하도록 하고, 또 안 되면, 둘이 서로 충격이  될 때는 또 제사장이 가 가지고서 이 사이를 조화를 붙이고 이래서, 제사장  직이라는 것은 하나님, 창조주와 피조물 그 사이를 조화 붙여서 서로 화합해서  하나님은 피조물을 좋아하셔서 애낌없이 모든 것을 다 줄 수 있고, 피조물은  자기의 전부를 다해서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이런 조화로써 올바른 관계를  가지도록 하는 이것이 제사장 직이라 이거요.

 이러니까, 베드로가 말하기를 '예수' '예수' 이랄 때에, '예수' 이랄 때에, '예수'  이랄 때에 자기의 범죄, 그 형, 예수님이 대속하신 그 고난 의 대형 대행하심 또  대화친 하신, 그로 말미암아 이제 부활 하셔 가지고서 산 중생한 새 생명, 산  기업, 영원한 기업 이것을 주시는 그 모든 것을 자기 마음으로 이래 생각하면서  '예수님' 이라고 보니까 그리스도를 또 안 부를 수가 없다 그말이오.

 이래서 후란시스가 이거 늙으면 할 수 없어요. 여러분들 젊을 때 자꾸 일해야  되지 늙으면 뭐 가래 나오지 뭐 아프지. 나는 오늘 아침에 저 ○○○ 집사를  전화로 깨울 때 나는 거의 준비가 다 됐었소 거의 준비가 되고도 이제, 내가 거기  뭐 할 부탁이 있어서 내가 전화를 했었는데, 네시 조금 전에 전화했는데,  전화하고 이라니까 오늘 아침에는 일찍 나올거다 이랬는데, 나는 그래 서둘러  가지고 그래 전화 해 놓고 일찍 서둘러 가지고서 나온다고 나오니까 사람은  저만치 앉았는데 ○○ 집사는 여기 앞에 앉았어. 나이가 많으면 이거 준비,  입기도 몇 배나 힘이 들고 더디지, 무겁기는 또 더 무겁지. 눈도 보면 되는데 또  여기다 안경을 또 써야 되지 이러니까 이거 뭐 늙어 놓으면 얼마나 모든게  불편하고 여기서 안 됐는지 모릅니다. 그러기에, 젊을 때 깨닫고 일하는 것은  그것 참 뭐 몇 배 일할 수 있고 가장 좋은 시기라요 시기 놓치면 안돼.

 그래서, '예수님'하면서 자기와 주님과 그것을 생각하면서 이래 기록한 건데  후란시스라 하는 사람은 참 성자입니다. 성자인데, 그 제자들이 '이 선생님은  어떻게 기도를 하는고 보자.' 그거 내 잘 기억이 없는데 석 달 이던가 한 달  이던가 모르겠습니다. 석 달인가 한 달인가 기도를 하자고 제자들하고 기도하러  가자 이래 가지고서 고 동안은 밥을 한 끼만 해다 달라 하고서 한 끼만 먹고서  이래 지금 기도를 하는데, '기도를 어찌 하는고 보자.' 그때 한 달이던가  모르겠습니다. 그 제자들이 가서 엿들어. 살그머니 가서 엿들어니까 기도한다는게  만날 그거라. 떡 이래 가지고 있다가서 '예수님'하면서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또  이라고 난 다음에 벌벌 떨고 또. '예수님이 내게 무슨 일을 하셨습니까?' 또  이라고 난 다음에 울고 그저 석 달 동안 기도하는데 다 들어 봐야 '예수님이  누구십니까? 아버지는 누구십니까? 여호와는 누구십니까? 나는 누굽니까?' 그 말,  그 말뿐이라. 기도한다는 것이. 기도하는 것이 그 말뿐이라. 그러니까 제자들이  '내나 그것만 하더라' 이랬는데 그 책에 기록하기를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아버지는 누구십니까. 나는 누굽니까?' 서너 마디 기록해 놨지만 그 기록한 것을  그들이 들은 것을 기록했지마는서도 후란시스와 같이 자기가 자꾸 성장해 가지  않으면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른다 그거요.

 여기에 베드로가 '예수님' 이렇게 하고서 안 되니까 또 '그리스도' 이래 한 것은  그 후란시스가 그래 물은 것은, '예수님'하고는 뭣 때문에 두려워하고 뭣 때문에  울고 그랬느냐 하는 그것은 자기가 어떤 자인 것을 이렇게 연구할라 하니까.

깨달을라 하니까 평생 깨달아도 모자라지 않습니까? 자기를 대속하신 주님을  깨달을라 해도 평생 깨달을라 해도 모자란다 그말이오. 그걸 자꾸, 자꾸 기억하는  거라. 그게 중해요. 인제 이것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 성경에 이런 것 저런 것.

이래라 저래라 하는 그 모든 것이 한 말로 말하면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어떤  분인 것을 깨닫는 것과 자기가 어떤 자인 것을 깨닫는 것과 모든 존재에게  대해서 어떻게 자기가 행할 것, 하나님께 대해 어떻게 행할 것 요걸 깨달으면  됩니다. 요걸 깨닫도록 하기 위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며칠 전에 말하기를 우리가 범죄한 죄가, 죄가 하나님이 참 알스럽고  애터져서 '그만 그만 그만' 자꾸 하시면서 하나님이 만류하시고, 하나님께서 참  원하고 원해서 그이에게 대속하신 것만이 만족이 아니고 그 뒤에 얼마든지  그에게 베풀고저 하는 그런 죄가 될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닭 울기전에 세 번  주님을 부인한 그 죄에 대해서는 아마 주님이 그럴 거라. '베드로야, 이제 내가  알았으니까 자꾸 그럴게 뭐 있느냐? 평생 죽을 때까지 닭소리를 들으면은 자기가,  닭 울기 전에 나를 세 번 부인하리라 말씀하신 그 말씀대로 닭 울 때에 자기가  세번 주님을 부인한 그것을 자꾸 생각하면서 평생 그 닭 소리를 들을 때마다  눈물을 흘렸다 합니다. 베드로가 이러니까, 그 베드로가 세 번 주님을 부인한 그  죄는 주님에게 기쁨이 되고 위로가 되고 만족이 되고 이라다가 마음에 동정이  되서 '베드로야, 그만, 자꾸 그렇게 그랄게 뭐 있느냐?' 이렇게 주님이 긍휼과  동정과, 당신이 베드로 위해서 모든 걸 해 줄 수 있는 그런 죄악이 됐을 것이라  그 말이오. 그런 죄도 될 수가 있고, 내나 같이 범한 죄라도 또 그 죄가 주님  앞에 마음에 섭섭하게 하는, 주님을 섭섭하게 하는 죄도 될 수가 있고, 주님이 '그  괘씸하다 그럴 수가 어데 있나?' 괘씸한 그 죄가 될 수도 있고, 또 하나님에게  '분하다. 그놈 분하다' 분하다 분하다 이라다가 하나님께서 나중에는 원수가  되어지고 소멸할 불로 이래 소멸할라 하는 그런 소멸을 만들 수 있는 그런 죄가  되어지는 것이 우리가 거기에 대해서 어떻게 깨달으며 어떻게 느끼며 어떤  감상을 하며 거기에 대해서 어떻게 언행 심사의 행위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주님이 우리에게 대하는 대함이 달라진다 그거요.

 그래서, 그리스도, 그리스도는 제사장입니다. '주님이 나를 제사장 이 직책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 하셨으니' 이걸 생각하니까 항상 베드로는 그 저 평생 울  수밖에 없는 것이, 보니까 하나님이 자기와의 그 화목하게 하는 제사장 직을 하기  위해서 어떻게 하셨는데 자기는 형제를 위해서 아무리 해도 그렇게 못 했다  그말이오. 제사장 노릇을 못 했고, 그리스도가 제사장 되게 하려고 와서 역할을  하는데 제사장 만들라고 하는 그 은혜를 받은 것도 너무 성글고 너무 배은했고.

또 만들어져 가지고 있는 것도 또 시행과 이행을 하지 못 했으니 기가 막히고,  이러니까 평생 자꾸. 자꾸 괴수 죄인만 되고 자꾸 죄인만 되고 주님 앞에 거역한  것만 자꾸 나타나고 불충만 나타나고 이것이 주님의 마음에 위로와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선지자, 선지자는 창조주가, 창조주는 피조물둘에게 주실 때에 다른 걸로 주지  않습니다. 돈을 줄 때도 말씀으로 주고, 영광을 줄 때도 말씀으로 주고. 권세를 줄  때도 말씀으로 줍니다. 없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할 때에도  말씀으로 창조했습니다.

 이러니까, 선지자는 하나님의 그 뜻을 인간들에게 말로해서 전하는 것이  선지자라 그말이오.

 그러면, 전한 그게 뭐이냐? 생명도 되고, 지위도 되고 권세도 되고 성결도 되고,  영광도 되고, 평강도 되고 그걸 어기면 멸망도 되고 다 그래 되는 것이라 말이오.

이러니까, 하나님의 것을 인간에게 전해 주는 그 일에 대해서 항상 바울이 내가  너거에게 필요한 것은 다 전했다 이래도 그분이 또 빌립보서에다 기도한 것을  보면 말하기를 나를 위해서 기도해라. 기도할 것은 내가 너거들에게 필요한 것을  하나도 숨김없이 다 전할수 있는 이 사람이 되도록 기도해라. 항상 전해도 못  전했고, 그러면 전하는 말이 그 복 전해 주는 건데 복을 못 전해 줬다, 생명을 못  전해 줬다. 권능을 못 전해 줬다 이렇게 마음이 아파서 늘 그것을 원했습니다.

 또 하나, 왕 직이라 하는 것은 뭐이냐? 왕 직은 하나님이 한 분이 통치 하는 그  통치를 가지고서 모든 사람을 통치하고 그 통치 그 한 통치를 가지고 모든  인간이 그 통치에 복종하도록 하는 그것이 뭐이냐? 왕 직을 감당하는 것이라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라 이렇게 말합니다.

 계속 그 뒤에, 보면 자꾸 그렇게, 꽂감 겹말한다 하더마는 자꾸 겹말을 했어요  '예수 그리스도의 종' 하면 다 안됐습니까? 자기를 자기를 소개 할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 이러니까, 나는 주님의 종이라 할 때에는 그 속에 여러  가지를 생각했을 거라 말이오. 종이라, '나를 주님이 대속하신 대속으로 값 주고  산 나는 주의 것이라. 주님의 종이라. 주님이 쓰시고자 하시는 대로 쓰시지 내  주장이나 내 의견이 없는 것이라.' 종은 말하는 종이 있고 움직이는 종이 있고,  그는 움직이는 종인데 그것은 뭐 잡아 먹어도 또 말 안한다 말이오 또 움직이지  않는 종은 집안에 있는 농구나 도구인데 도구 그까짓 거야 암만 써도 도구가  불평이 있습니까? 쓰는 대로 쓰여지지. 그 종이라는 뜻이 말하는 종, 움직이는 종,  말도 못 하고 움직이도 못하는 종, 그와 같이 주인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그것이  종의 본성인데 그 종을 생각하면서 그러니까 주님이, 어떻게 자기가 종이 됐노  어떤 값을 받고 자기가 값에 팔렸노? 죽도록 충성해도 값에 비교하면 너무  무익한 종이고. 주님이 아주 가치 없는 것을 큰 값을 주고 샀다. 이러니까, 자꾸  무익한 종이라 이래 돼지지. '종 '종' 하면 될 건데 '종'하고서 또 말하기를 또  '사도인' 또 주님께서 이렇게 자기를 직접 불러 가지고서 사명을 맡기셨다. 나는  주님의, 주님의 사자다. 주님의 대사다. 주님의 심부름꾼이다 그말이오. 대사라.

그러면, 사도라 말은 주님이 자기에게 교회 건설을 하게 했고, 하나님의 예언을  해서 성경을 기록하게 했고 이렇게 한 이 일에 대해서 자기가 감당할라 하니 장  감당 못한 것밖에 안 보여. 항상 무익한 종이요 불충한 종이요 이루지 못한  미진의 종이라. 이것을 생각하면서 사도인.

 시몬 베드로라 시몬은, 시몬은 주님을 부인할 때 이름을 가리켜서 시몬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시몬아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베드로라고 하지 안하고 자꾸 시몬이라고 불렀어. 이러니까 이 베드로는 평생  시몬이라는 것을 잊지 안했어요 시몬이라는 것. 시몬이라는 것은 옛사람의  이름인데, 옛사람의 이름인데 시몬아 시몬아 세 번이나 불러 가지고 나를  사랑하느냐 그렇게 말씀하신 부른 것은 네가 옛 사람이 될 때에 나를 잊어버리지,  옛사람이 될 때에 나를 생각지 않지, 나를 사랑하지 못하지, 그걸 경고하기  위해서 옛사람 이름을 부른 그것을 생각해서 나는 시몬이라 나는 시몬이라, 또  시몬이라는 데만 있지 안하고 나는 사도라 나는 사도라. 나는 종이라 나는  종이라, 나는 베드로라 나는 베드로라, 주님께서 나에게 말하기를 베드로라는 새  이름을 줬으니 내 위에 교회를 세운다 했다. 아, 내가 영감대로 고대로 할 때는  내가 베드로 된다. 이러니까 주님에게 대해서도 이렇게 골고루 전부를 이렇게  자기 마음 가운데 많이 넓게 이렇게 생각을 하면서 그 이름을 불렀고, 자기가  자기를 말할 때도 그 모든 면을 넓게 넓게 생각하면서 자기의 이름을 종. 사도  시몬, 베드로 이렇게 했던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이것이 중요합니다.

 그러기에, 그저 우리 속에는 생각이 이렇게 있는 그 생각을 그저 요만한 것으로  축소시켜서 나타내는 것이, 우리의 정상이요, 또 하나님도 성경에 그렇게  했습니다. 이러니까, 그냥 뭐 '주님' 이렇게 할 것이 아니라 주님 부를 때에는  자꾸 이렇게 해서 '주님' 할 때는 주님이 나를 책임지셨다는 그분을 가리켜서  주님이라 이렇게, 나를 책임지신 분이라 이라는 건데, 어떤 책임을 졌으며 그분이  어떻게, 과거에는 어떻게 신실히 책임을 졌으며 앞으로는 어떻게 책임지실 건가  자꾸 이걸 좀 깊이 생각하면서 말을 해야 되지 입에 발린 그런 일을 하지 말라  말이오. 이라기 때문에 우리가 자꾸 신앙이 떨어지고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어제 주일 학교 부장들 와 가지고서 주일 학교가 떨어지는 거기에 대해서 많은  염려를 하고 이렇게 의논을 했습니다. 의논을 했는데, 여러 가지 이런 저런 말을  하고서 마지막에 총 결론은 뭐이냐 하면 교훈 문제라, 교훈 때문에 그렇다.

그다음에 총 결론은 말하기를 교훈 때문에 그런데 교훈을 받지 않는다. 교훈을  모른다. 교훈을 받아서 그 교훈 그 성구의 한 성구라도 지킬려고 하면 제가  죽도록 충성하고도 부족해서 자꾸 불충성함이 내게 있지 망령과 패역과 강퍅을  부릴 수가 없고, 하나님 앞에 어떻게 자기 모든 행동이 하나님의 진노의, 진노의  죄, 자기가 진노의 대상, 하나님이 원수로 불로 소멸하겠다. 내가 심판 하겠다  하는, 이런 대상이 될 수 있는 그런 일을 해서 사람이 보기에도 위험하다  위험하다 하는 그런 일을 자꾸 하는데 그 뒤에 가서 닥쳐지면 어찌 됩니까?  하나님이 버리면 없습니다.

 '성전 밖마당으로 그거 버려 둬라.' 자식들도 이렇게 교훈하다가 안 들으면 버려  둡니다. 방림. 그 보다 더 큰 벌이 없고, 아주 버려서 그까짓거야 어데 가든지  그만 다 버려 둬 버려라. 버리는 것. 그것이 성전 밖마당입니다. 하나님이 불쌍히  여길라 하면 자기가 깨달을 수 있는 것을 될 수 있는 대로 깨달을 수 있고  상하지 안하고, 적게 상하고 깨달을 수 있도록 하나님이 자꾸 이렇게 섭리해서  그럴 때에 주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안하고 그걸 '아이구, 이게 주의 징계로구나.

내가 주님이 원하시지 안하고 이거 섭섭해서 이렇구나' 그렇게 깨달으면 되는데,  그 주의 징계를 경히 여기면 나중에 가서는 그는 비참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성찬을 잘 못 먹을 때에 '약한 자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들도 있다.' 그 잠자는  자들이라는 이것은 최고의 형 아닙니까? 최고의 형, 그거는 죽게 만들어 버리요  죽도록 해 버려요 고만 죽여 버려요 죽는다 그말이오 그 병보다 더한 형이니까  죽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이 보실 때에 안 돼서, 이게 너무 방해하면 하나님이  죽여 버린다 말이오.

 고라의, 고라의 당파가 이백 오십 명입니까? 몇 명이고? 예? 고라의 당파 죽은  사람들의 숫자가 얼마라? 예? 예? 얼마? 이백 오십 명이 땅이 벌어져서 한목  죽은 것이 그이의 생명이 같이 된 것이 아니고 그런 것은 기한 전에 죽었다  말이오 그 기한 전에 죽을 수가 있어. 기한 전에 죽일 수가 있어. 이러니까,  그들은 내비 두면, 그들을 내비 두면은 안 되겠다 싶으니까 이백 오십 명을 한목  죽여 버렸다 그말이오 이게 잠자는 것이요 또 이것도 잠자는 것이지마는서도  영적으로 말하면 그 사람에게 영감을 안 줘 버려요 그만. 영감을 안 주니까 평생  제 맘대로 불신자 모양으로 그렇게 살다가 비참하게, 다 다른 사람이 볼 때에는  '저게 저렇기 때문에 저거 결말이 저렇다' 하는 것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서 한다 그거요.

 그런고로 우리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지 맙시다. 주일 학교 반사들이 어쩌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저거가 몰라서 망하고 몰라서 자멸하는 일 하기 때문에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들이 이 세상 공부 그 까짓 걸 모르면 이 세상 처세하는 데  좀 불편하다 하는 그거는 느끼면서, 그거는 몰라도 성경 알면 그것 다  알아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인 진리를 모르면 우리가 멸망할 길을 모르고  우리가 구원 얻는 길을 모르기 때문에 스스로 자기가 자기를 멸망시키고 마는  것이라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주일날 밤에 재독할 때는 꼭 재독에 와서,  주일학교 반사는 다 와서 들으십시오. 여러분들이 그 설교를 그렇게 귀로 들어도  속에 느낄라면은, 그 장성하기를 그래 애를 써도 몇 십 년 돼야 장성하지 그래 안  됩니다. 쉬운 것 아니야. 재독도 듣고 새벽 기도 나와서 자꾸 이래 듣고 이래서,  자꾸 들어서 알아야 회개를 하고 예수를 믿을 건데, 예수를 믿는 것.

 나는 그때 예수를 믿어도 여러분같이 그래 안 믿었습니다. 이 가운데 여러분들이  믿는다 하지만 나는 여러분들보다 잘 믿었습서다. 그래 믿지 안했소. 믿은 열심이  그래 열심이 되지 안했소.

 나는, 술도가 직업이라 하면 지금으로 말하면 여기 ○○○씨 사업 같은 그런,  그때는 한국 사람으로서는, 조선 사람으로서는 술도가가 제일 존영하고 돈벌이  많이하는 그런 제일 좋은 기업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벌써 그 지방에서 술도가  하면 그 지방에 고만 이것(주: 엄지손가락을 펴 보이심)이요 이런데, 그 술도가  직업을 예수 믿은지 사흘 만에 없애 버렸어. 누룩도 열 이레 만에 없애 버렸어.

그렇게, 믿고 난 다음에 한번도 새벽 기도, '누가 새벽기도 안 했지마는 안 빠졌소  다른 사람이 거석하기 전에 산기도 가고 금식기도 하고 그러니까 모두, 나는  모르는데 여기 부산에 여기 오니까 거창에 기도 많이 한 사람, 산기도 많이 한  사람 금식기도 많이 한 사람이라고 이름이 났는데, 나는 실상으로 그래 안 했지만  그래 났었어 이 지금 청년들 여러분들 신앙같이 그런 열심으로 믿지 안했습니다.

그런 열심보다 뛰어난 열심으로 믿었소. 왜? 그것은 내가 뭣 때문에 그랬느냐?  하나님이 나에게 진리를 줘서 성경을 많이 읽었어. 내가 성경을 읽으면서 그  궁둥이가 터져서 방석을 놓고 앉아서 읽어도 궁둥이 터졌어. 터졌다가 또 낫고  터졌다가 또 낫고 그랬소. 꼼짝 안 하고 뭐인지 모르게 자꾸 아픈 것도 모르고  자꾸 이래 읽었기 때문에 그 성경을 읽어서 깨달으니까 그런 실행이 나왔다  말이오. 이건 내 자랑이 아니라 여러분들 성경을 모르고, 성경을 모르기 때문에  강퍅을 부린다 말이오. 성경을 아는 사람이 어떻게 이 세상에 속화 될 수가  있겠습니까?  이러니까, 반사 선생들이, 어제도 말했지마는 이 반사직을. 이것은, 어릴 때 하는  직분이라 장성되고 난 다음에 하는 직이라. 이러니까 다른 교회서 와서 보고서,  여기에서는 장로가 장성하면, 장로가 이제 장성하면 반사 된다, 장로가 장성하면  반사된다 그러면, 반사가 다 장로보다 다 났다 그 말이 아니오 그러나 장로가  지금 반사 못 될 사람 있어. 장로가 장성해서 자기가 반사 노릇을 하면 '과연  예수 믿는 것이 이것이로구나' 하는 것을 깨달아서 자기의 성화의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을 깊이 체험할 거라 그 말이오. 이러니까, ○장로님도 지금 반사  노릇을 하지, 반사하기 전과 다를 것이라. 또 ○장로님도 반사하지 그 전과 다를  거라. ○○○장로님도 반사하지 그 전과 다를 거라. 장로님은 뭐 반사해서 그와  같이 됐지마는서도.

 이러니까, 이것이 젊을 때 소년 직이 아니고, 또 이것이 일생 동안 가장 성숙한  사람의, 성숙자의 직이지 소년 직이 아니라. 또 이것이 우리의 무슨 부업입니까?  아니요. 주일 학교 반사 이것이 본직인 줄 알아야 됩니다. 자기 본직 천직이요.

자기가 대통령을 해도, 카터 대통령은 대통령 해도 그 사람이 주일 학교 반사  노릇은 고대로 꼭 하고서, 대통령 하고 난 다음에 지금 대통령 다시 두 번  출마하지 안하고 그 사람은 주일 학교 반사로 오라해서 반사 일 착실히 할  겁니다. 이것이 원직이요 본직이요, 이 반사 노릇을 하기 위해서 밥벌이를  하느라고 뭐 시장 노릇도 하고 무슨 뭐 대통령 노릇도 하지, 그게 본직이 아니라,  우리 주일 학교, 대통령이 주일 학교 한다면 주일 학교 반사 이것이 자기  천직이요. 본직이요. 그거는 그다음에 이 본직을 위한 보조직이라 그 말이오.

보조직. 자기가 회사 사장 이면 사장은 보조직이요 반사직은 본직이라 그 말이오.

다 그렇게 이 가치를 깨달은 사람이 아니면, ○○○목사님 그분 ○○회사에  본회사에 사장으로 세울라고 그렇게 해도 사장을 거부했습니다. 그러니까, '아마  이 사람이 무슨 환난 때문에 하는가 보다.' 미국의 그 지사장으로 세울라고 해도  거부했습니다. 그때 내가 월급을 계산해 보니까 한 달에 한 오백만 원 갑니다. 한  오 백만 원수입이 되는데 그것 말고 삼만 원짜리 개척 교회를 했습니다. 삼만  원짜리 보수 받고 개척 교회 했습니다. 그러나 삼만 원짜리 보수 받으면서도 그  사람들 부부, 이 삼만 원 거석하면 '아이구 내가 일도 못하고 이거 죄송해서,'  오백만 원짜리가 삼만 원 받았는데, '오백만 원 받는데 삼만 원 이까짓 거야' 그래  볼 건데 그래 보지 안했어. 바로 봤다. 항상 '아, 내가 일도 못했는데 내가 이거  그저….' 그 뭐 무슨 뭐 만 원짜리 월급쟁이 억만 뭔이나 주는 것처럼 이렇게  크게 여겨서 느끼고 받고 그라면서, 그 사모님이 우는 사모님이 됐소. 이름을  우는 사모님이라고 내가 지었소 남해 있을 때 무슨 일이 있으면 와서 또 울고 또  나한테 와서 울고 뭐 지금은 인제 요새는 어북 자라서 안 그렇습니다. 이것이  기독자가 주님에게 관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보다도 이게 낫기 때문에  그랬소.

 내가 그전에도 말했지마는서도 마산에 인애원에 가 가지고 앉았으니까 어떤  집사가, 그때 겨우 추럭 하나 사 가지고서 추럭 하나 부리고 있는데,  주목사님하고 이래 있으니까, 주 목사님이 있다가 '내일은 주일이니까 여기서  주일을 보고서 그래 가라 주일을 범하면 안 된다' 그때 차는 여기서 거창 까지  갈라하면 사흘 걸려요. 사흘. 이랬는데, 그라라 하니까 떡 뭐라 하는게 아니라  '목사님, 안 됩니다. 손해가 많습니다.' 떡 나하고 모두 여럿이 앉았는데 그래  '내가 오늘 안 들어가고 내일 들어가면 목사님 두 달 월급이 없어집니다. 그만한  금액이 손해갑니다.' 그때 내가 목사님 아니면 뭐 대번 그 뭐 반쯤 죽였을 거라.

'이놈의 새끼 어데, 네가 임마 돈이 얼마나 많아서 그 행세하느냐' 고서  이랬지마는서도 목사님 때문에 많이 참았소 그때 나도 젊와 때라서 뭐 안 내둬요  아. 지서 가 가지고 일본 부장하고 순경하고 와 가지고 뭐 예수 믿는다고 하기  때문에 내가 그 자리에서 그만 싸워 가지고 둘을 둘러 메고 하니까 막달라 들어.

부장은 말려요. 다른사람들은 달라드는데. 그래 가지고 그라고 '자, 그 국기랑  천조 대신을 내놔라 내가 너거 앞에 불로 사르께. 그까짓게 무슨 신이고? 그라면  내가 죽을 것 아니가 벌 받아서?' 이렇게 말했는데, 내두지 안하지마는서도 참  분하기는 분했어요. 내 안 잊어버리요. 그거는 내가 얼마든지 말합니다. 그 사람  뒤에 그 차 몰고 가 가지고서 주일날 일랑 냅두고 뭐 사흘 후인가 들어갔어요.

그때 한 것은 전부 왕창 손해도 갈 뿐 아니라 물건 배상도 해 주고 뭐 전부  전멸이 됐소.

 이러니까 우리의 이 주의 일하는 것을. 주의 일을 하나님에게 가치 두지 안하고  대통령이 와 가지고서 '아, 이 일 하나 해라' 뭐 하나 심부름 하나 시켜도 그게  대단히 크다 하는데 지극히 크신 하나님의 심부름이요 하나님이 원하시는데  하나님에게 가치를 두지 안하고서 돈. 월급으로 가치 둡니다. 아 우리 월급  찍해야 오륙만 원 받는 것, 칠판만 원 받는 것, 다른 데 가면 이런데 네가 돈으로  그라면 돈하고 망하리라. 이 하나님의 지극히 크신 하나님의 심부름이요 하나님의  일이요 한 생명이 우주보다 큰 이 생명을 구원하는 이 일이라는 것을 못  깨달으니까 암만 말해야. 설교를 암만 말해야 여러분들에게 주신 양식은 그만하면  족합니다. 이 양식을 여러분들에게 준 양식이 가장 영양 있고 고급 양식입니다.

이 뭐 양식은, 말씀은 그만하면 남고 남고 넘습니다. 여러분들이 공과를 가르치면  공과 한 공과나 바로 알고 새기는 공과가 있습니까? 몰라. 그러기 때문에 힘이  떨어지는 것이라.

 뭐 어제도 조건이 많이 나왔소. 이웃 교회서 자꾸 서둘기 때문에 이래 된다. 또  그것도 있지요. 있지마는 그까짓 거 상관 없어. 오늘 참으로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이 시킨 일인 줄 알고 인간 구원하는 그 가치가 어떻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이 자기와 동행한다는 이 사실을 아는 종이라면 그한 사람이 천 명도 만  명도 더 당합니다. 또 뭐 테레비니 뭐 하는 거, 테레비 그것 때문에 그때  말하니까 ○총무가 문공부 장관에게 보내는 진정서를 써 가지고 보냈어요. 그걸  내가 보다가 다 접어서 불에 넣어 버렸습니다.

 왜? 그거 필요가 없어. '마귀야, 동남풍아 불어라 서북풍아 불어라 가시 밭에  백합화는 예수 향만 날린다.' 그저 문공부에서 뭐 할 것 없이 테레비를 만들든지,  너거 마귀는 뭐 얼마든지 만들어 예수 못 믿구로 만들어 내고 우리는 하나님의  권능으로 하자. 그러나 하나님의 권능이 최고로 강하니까 그까짓 것 다 능가하고  남을 것 아닙니까? 이러니까, 이 진리가 속에 없어서 그래. 속에, '내 말이 너희들  속에 있을 곳이 없는고로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이 진리가 없으니까 저  자멸하는 행위를 자꾸 하고 있다 그 말이오. 보십시오. 고라를 왜 그래  죽였습니까? 고라가 이 복음 운동을 거슬렸기 때문에 그렇게 참혹하게  죽었습니다. 또 사울 왕을 통해서 생명 있는 것은 다 전멸하라, 그때 족속은  요만해. 그때 족속은 요만하면 그 뒤에 큰 족속을 만들어 가지고서 생명 있는  짐승 한 마리도 안 남기고 전멸시켜 죽인 것이 뭐입니까? 그 족속 이름이  뭐입니까? 아말렉 족속. 아말렉 족속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인도해 낼 때에 그  선민 구원, 운동에 방해 했다 그 말이오.

 여러분들! 이 목회에 방해하지 말라 말이오. 주일학교, 이 주일학교에 방해하지  말아! 내가 알아. 주일 학교 반사들 가운데 그런 방해하는 못된게 있어! 안 들으면  내가 뒤에 만내 가지고서 너는 딴 데로 가라든지 하고 한 판으로 싸울거라.

모세가 고라를 놓고서 둘이 싸워서 '하나님이여 저 편이든지 내 편이든지 어느  것인가 하나님이 여기 판단하십시요' 할 거라 그 말이오! 다 강퍅을 부리지 말고,  '내가 이렇게 하면 이것이 이 주일 학교 반사들에게 힘이 되겠나 주일 학교  반사들을 힘을 떨어 뜨리는 것이 되느냐? 얼마나 힘이 있는데? 젊으면 무슨  힘인데? 고 요래 버리면 포로록 하고 뒈지는데. 무슨 힘이 있어? 당장 이 시간에  가다 차 안에서 쭉 뻗으러져 가지고 송장이, 돼서 막 피투성이가 되고 할란지도  모른다 그 말이오. 이분이 우리 하나님이신데. 하나님 앞에 너무 강퍅해. 우리서부  교회 이 반사들, 그저 애 쓴다 힘 쓴다 자꾸 이래 말하지마는 너무 강퍅해.

 그러니까, 어쩌든지 반사들이, 이것이 무슨 부직이 아니요, 이게 본업이오. 이게  부업 아니라 본업이라. 죽는 날까지 이 업을 하는 이것이 자기의 제일 천직이라.

하나님이 맡겨 놓은 직분이라. 가치를 알아야지? 오늘 새벽에는 조금 많이  나왔는데 뭐 그래도 별로이 나온 사람들 나오지 그렇게 많이 나오지 안했소  조만치 장 비어 가지고 있어. 이러니까 어쩌든지 우리가 알아야 되지 모르면 안  됩니다.

 그래서, 어제 그런 결정 했어요. 암만 해도 이거 안 됐다. 자, 이것을 개인 개인  불러 가지고서 치료를 하면 상처를 받을 것이고-내가 모르는게 아니라 알고  있습니다. 누가 나한테 말해서 아는게 아니라 몰라서, 내가 알고 있어 ○○○교회  있을 때에 내가 한 달에 한 번씩 올라가면은 올라 가 가지고는 누구 누구 불러  가지고서 '이렇게 안하니까 너는 이렇게 해라 왜 이런 짓을 했노?' 이라니까 그  사람들이 모두 말하기를 지금은 전화가 있지만 그때 전화가 없으니까 아마  조사님에게 편지를 해서 이래 고자질을 했는가 보다 이랬는데 나중에 저거가  뒤에 가서 보니까, 저 사람이 내게 대해서 고자질했는 것같다 했는데, 제기에,  다른 사람에게 대해서 그라니까 다른 사람 말하기를 이거는 아무 것이가 고자질  했을 것이다, 전부 아무 것이가 고자질 했을 것이다. 제가 고자질 한 일이 없는데.

고자질 한 일은 없고 알리지도 안하고 편지도 안 했는데 조사님이 알고 말하거든.

그 꼴을 한편 두번 돌아가고 난 다음에는 그아이구 시거고 자질해서 그런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영감으로 알려 주셔서 알았는가 보다 그래 가지고 고자질  했다고 저기끼리 찌드락 찌드락하는 그것이 없어져 버리고 나중에 그래 가지고  삼 년 동안 금족령 내렸습니다. 삼 년 동안 금족령을 내려서 집사와 집사 사이는  서로 말을 하지 못하게 했소. 통화를 못 하게랬어. 이렇게 해 가지고 그 교회가  다른 교회보다 뛰어나게 된 교회가 됐는데 이 교회를 이 교역자 이거 양성한다고  그 교회 가 가지고서 얄궂은 것만 그 교회 보내 가지고서 교역자 양성은  양성인데, 교역자는 양성해 나왔지마는서도 그 교회는 절단이 났소. ○○ 교회를  그렇게 했어요. ○○ 교회를 그래해서 교역자 양성한다고 그저 뭐. 거기 가면 좀  새로와지고 새로워졌는데, 지금 ○○○조사님이 가 있는데 인제 그 ○○조사님을  옮길 마음이 없어. 안 옮깁니다. 자꾸 옮기니까 자꾸 교회가 절단나. 이렇게, '누가  자꾸 고자질을 해서. 고자질을 해서 아는가?' 이래도 그렇지 안하고 안다 그  말이오.

 여러분들이 수첩을 가지고 자꾸 이래 기도 하면 알아집니다. 학생에 대해서  어떻다는 형편을 하나님께서 알려 주시오.

 이러니까, 개인을 거머쥐고 네가 이리 이리 한다 하면 그 사람이 잘 소화를 해서  받으면 다행이지만 또 안 받고 반감을 해서 '날 지금 이렇게 하는 것은 누가  일러서 그런가 보다' 이렇게 되면 마귀 역사만 자꾸 일어 나니까 이것보다도.

이거 아무래도 지금 병은 들었으니까 고래 하나 하나 고렇게 직접 치료하는  것보다도, 저거들도 몰라서 마귀에게 팔려 가지고서 지금 마귀의 유혹을 받아  자꾸 이와 같이 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것이니까, 전부 마귀란 놈이 요런 거짓말  저런 거짓말 전부 거짓말 하는 거짓말을 참 말로 들어 가지고 다 저거가 죽는 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이걸 치료하는 데는 이래 치료할 것이 아니라 아무래도 이 산기도를  가야 되겠다.' 그 모두 부장들도 고백이 공동 고백이 돼 가지고서 함께 동감이라.

이래서, 인제 주일 날은, 다른 때는 가면. 저녁 먹고 오며 안 되니까 저녁 먹기  전에 오후에 반사회를 좀 일찍 마치고 반사회 마치고 난 다음에는 '자. 가자' 이래  가지고서 모두 이 부장이 인솔해 가지고 이리 가고 저 부장이 인솔해 가지고  저리 가고, 또 차도 요번주간에 차 두 대 삽니다. 삼십인용 하나 사고, 또 뭐 뭐  무슨 차라 하더라? 곰보차라 했나? 봉고차인가 그거 한 대 사고 두 대 사  가지고서 또 꽃마을로 가는 여반사들은 꽃마을로 보내는데. 남반사는 저기 안 가.

꽃마을로 보내는데 우리 교인 가운데 뭐 그 차가 작은게 두 대 있다 하니까 이  세 대, 한 대 사면 세 대 가지고서 열 다섯 타면은 한번이면 마흔 다섯이니까 두  번이면 구 십명, 세 번이면 백 삼십 오명 그러니까 한 서너 번 실어 날라  가지고서 꽃마을에 가 가지고 기도하고, 또 삼십 명 타는 것은 태워 가지고서 저  동래로 보내 가지고서 기도하고 동래 가서는 그저 많이 살고 한 시간씩, 가서  차에서 딱 내려 가지고서. 차에서 딱 내려 가지고 한 시간, 또 여기에서 걸어가는  사람들은 걸어가는 시간까지 한 시간, 걸어가는 공을, 애를 썼으니까 타고 가는  것보다 애를 그만침 썼으니까 그만하면 돼요. 한 시간. '요렇게 해서 하자'  내가 그랬소. 그라는 데는, 그라는 데는 이거 내가, 내가 먼저 나서야 되는데,  내가 먼저 나서면 문제가 없어요. 내가 지금 한 오십 세 청년만 된다면 뭐 내가  그렇게 합니다. 그전에 내가 집회 할 때, 내가 저 금정산이니 거창이니 다  집회하는 그걸 만들어 낼 때는 전부 천막 내가 다 쳐 주고 장소도 내가 닦고  이래 가지고 만들고 만들어 가지고 지금 저거가 천막 치고 뭐 어쩌고 이라는  것이지, 이렇게 하지마는 나는 반 송장이라. 이제. 내가 오늘 아침에도 그랬소.

내가 전할 것은 말씀만 전하지 내가 그 외에 딴 거는 못 하겠다. 새벽 기도,  대예배 세 번, 그것 전하는 것으로서는 내가 그 이상은 할 수 없다. 그 이상  한다는 것은 이거 무리기 때문에 자꾸 개인의 뭐 이런 것 뭐 이래 가지고는  아무것도 안 되겠다. 이러니까, 그 이상을 내가 할 수 없으니까 요것만 내가 해서  감당하는 것이 내가 바로 감당하지 달리는 안 되겠다. 고걸 내가 자꾸 몇 번이나  외웠소. 자꾸 사람 접촉 해 이래하는 데서 사람이 고만 절단나 버리니까.

 이랬는데, 그리 하려면 부장 선생님. 첫째는 제일 거기서 연만하니까 ○○○부장  선생님이 먼저 나서야 되고. '가자,' 나사야 되고 또 그 다음에는 ○○○ 부장  선생님이 또 나서야 되고 또 그다음에는 ○○○ 부장 선생님이 나서 가지고서  통솔해 나가야 됩니다. 여러분들이 앞서 나서지 안 하면 백지 자기는 안 가면서  가라 가라 이래 암만 해 봤자 소용없다 말이오. 실지로 하라고 그라고 또 부장  선생님들이 다 일등 반사가 돼 가지고서 봐라, 나는 일등 반사인데 너거도 이래  해라 이래야 되지 '나는 꼼뱅이지마는서도 너거는 일등 해라' 그래 가지고는  헛일이다 그걸 말했습니다. 사는 법이 거기 있어.

 그리고 또 말했어. 그 뿐 아니라 '아, 이라면은 뭐 반사들이 할 일이지' 해서, 서  ○○○ 목사님도. 또 ○○○ 장로님도, 또 이 ○○○ 목사님 ○○○ 목사님이  목사님들, 또 그다음에 ○○○ 장로님 모두 이런 분들이 척 나서 가지고,  그분들이 나서고 또 ○○○장로님 저런 분들이 작대기 집고라도 이래 떡 나서  가지고 이래 간다면은, 그래서, '일파동 만파동'이라. 하나가 살아서 움직이는 것  보고 모든 사람이 일어난다 말이오. 이렇지 안하면 살릴 도리가 없어. 일어날  수가 없어.

 이 마귀들은 자꾸 여러분들에게 오해를 줍니다. '아, 이래 가지고서 뭐 세계  제일되는 어린이 교회라고 이라고 자꾸 서부 교회를 찾고 이라니까 백 목사에게  영광이 되고 백 목사에게 명예가 되니까 자꾸 그래 하는가 보다' 요런 마귀  생각을 가지지 말라 그 말이오. 그런 걸. 그런 걸 내가, 내가 그 영광을 내가 받을  권리도 없고 내것도 아니고 아니야. 다만 그들에게 왔는데 그들의 기대에  어긋져서. 소망을 가지고 왔는데 실망을 줄까 하는 것이 문제라 말이오. '아, 서부  교회 어찌 되지?' 이랬는데 뭐 팔천 명이니 얼마니, 구천 명이 모인 교인들이.

학생이, 주일 학교가 지금 오천 명에 푹 내려 갔으니까 그 뭐이 됩니까? 그런  명예를 원하는 그 자는 말을 들을 때에 아마 명예 때문에 하는 것같다 고래  생가하지마는 벌써 명예라는 것은 없기를 원합니다. 명예 그것이 있어 봤자 아무  유익도 없는데 명예 그것 때문에 고생이 얼마나 되는 줄 압니까? 명예 그거.

명예라 하는 그 댓가가 얼마나 큰 줄 압니까? 명예 댓가에 일 전도 드리기가  싫은 데 공연히 다른 사람이 명예라 하고 자꾸 이라기 때문에 명예라는 걸 아는  사람은, 명예 댓가가 심히 큽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런 명예라 하는 것 어째 벗을  수 있으면, 벗지 그걸 가질라고 하지를 안해.

 이러나, 하나님이 우리를 들고서 쓰셔 가지고 '봐라, 서부 교회 봐라.' 자꾸  이랄라고 지금 이렇게 하고 있는데. 이렇게 해 놨는데 서부 교회가 가라 앉으면  이거 어찌 됩니까?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을 낭패 안 되도록 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 이라니까, 반사들이 마귀가 들어 가지고 꺼꾸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라. '아따 자꾸 이라니까 뭐 그래 봐야, 자꾸 그라면 명예는 목사님이  올라가지.' 그러니까, 여기에 방문하러 오는 사람들에게 내가 나타나기를 참,  나타나면 내가 거기 말하면 내가 죽을 지경이라. 골병이 들어. 이라기 때문에 안  나타나고 다른 사람에게 자꾸 나타나라고 이렇게 해도 만나면 그들에게 유익을  주는 것이 좀 차이가 있기 때문에 또 부득히 내가 질질끌면서 또 나타나 이래  말하고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어쩌든지,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를 들고 쓰신다는 것이 얼마나  영광됩니까? 이러니까, 그런 마귀 생각 가지지 말고. 하나님이 우리 서부 교회를  하나님이, 반사, 예를 들면 반사 누고, 여기 반사 이름이 뭐고? 내가 아는 이름이  없다. 주일 학교 반사가 누고? 저 이름이 뭐이지? ○ 뭐이지? 예? ○○○? 서부  교회 ○○○이는 ○○○이 아니라 '아, 하나님께서 ○○○이 나를 통해서 이 주일  학교를, 나를 통한 주일 학교를 가지고서 세계에 이렇게 높이 등대로 드러내  가지고서 세계교회의 이 주일학교 힘을 소생시킬라고 하는 것이니 나, 나 ○○○  나에게, 나에게' 요렇게 생각해야 되는 것이지, 뭐 서부 교회라면, 서부 교회  그라면 반사들 다 빼 내 버리면 뭐가 있소? 누가 있소? 이것을 깨닫지 못하니까  여러분들이 몰라 그렇다 그말이오. 이 직에 죽도록 충성하다가 순교하면 그거  바른 길입니다.

 실은 그까짓 것 대학 암만 해 봤자 대학 그게 우상이 돼 가지고. 대학 졸업 한  사람과 안한 사람이 달라. 대학 졸업한 그거는 대학 그놈이 들어 우상이 되고  그게 들어서 그만침 교만하고, 그만침 못됐고 그만침 뺀드랍고, 고만침 마귀  미혹을 더 들고, 고만침 자기를 나타내기 때문에 자기가 원수 중에 원수가  자기입니다. 바로 알아야 그게 유익이 있지.

 그러니까, 어쩌든지 여러분들도 기도를 하고 좀, 그거 좀 나서면 좋겠어요.

주일날 오후에 말이지, 오후에는 여기에서 나 이래 앉아서 이래 하지 나 이라고  난 다음에는, 하나님이 은혜 줘서 말할 때 이래해도 가면 고만 꼼짝 못 하고  드러누워 버립니다. 드러 누워 가지고서 아무것도, 눈만 뜨고 있지 아무 것도  하기 싫어. 고게 있는 것도 하기 싫어요. 우리 방에 와 봐. 막 지저분하이 이래  가지고 아무것도 손대기가 싫어.

 이런데, 주일 학교 오후에 반사 보고 할 때도 장로님들이 전부 다 이래 나와서  가지고 이래 가지고서 함께 움직이면, 초짓장도 마주 들어야 힘이 덜 든다고 이래  와 가지고 전부 해서, 그라면서 뭣이 좀 내려가면 같이 울고 또 올라가면 같이  기뻐하고 이렇게 하면 일이 날 건데 그것 다 안 하고 목사님이 혼자 나와서,  목사님이 나와서 뭘 막아 주고서 은혜 되는 말을 하고 또 이래 뭐 해 주면.

젊으면 할 수 있어. 할 수 있지마는 인제 목사를 바라지 말아야 돼. 내가 그렇게  할 힘이 없어. 의례히. 과거에는 어데 다른 교회 목사가 지금 주일 학교 그래  하는 목사가 천하에는 없습니다. 있는 줄 압니까? 없어. 이걸 말하면 또 '아  감사합니다.' 하나 하나한테 '감사합니다.' 자꾸 이라는 것은 그 좀 시기를 돋궈서  이래 하려고, 그라면 유익이 되는 줄 알아요. 이러니까, 의례히 그래 하면 좋은 줄  알지마는서도 내가 그 힘이 미치지 못해. 할 수만 있으면, 그런 힘만 있으면 자꾸  하려고 나도 지금 기도를 자꾸 그래 하고 있습니다. 있는데 아직까지 그 힘을  앞으로 줄는지 안 줄는지 몰라도 아직까지는 그 힘이 안돼. 조금씩 조금씩 좀  낫아지기는 낫아져요. 보니까, 하나님이 조금 씩 더 줘요.

 이러니까, 우리 장로님들 전부, 권사님들도 이름이 권사라 하니까 보는 눈이  많다 말이오. 권사님들도 떡 와 가지고서 반사들 여기 있으면은 반사들 보는 옆에  새에 끼어 앉지 말고 저 따로 나 앉아서 '아, 저 권사님들 도 전부 다 나와 저기  와 가지고 지금 우리 주일 학교를 보고 있구나 장로님들도 다 하고 있구나.'  이러니까, 이 반사들도 좀 각성이 있고 거기에 대해서는 느끼는 점도 달라질  건데, 다 안 하는데 자꾸 목사 혼자만 그래 쌓으니까 어제는 내가 하도 기가 차서  '속에 무슨 느낌을 가지고 있노?' 하니까 '해 봐라. 암만 해 봐라' 하면서 아예  '암만 해 봐라 해 봐도 구경이나 하고…' 나를 똑 원숭이 모양으로 자꾸 앞에,  배우 모양으로 날뛰는 그 구경하는 정도로 그러면 내가 아예 '그걸 말해라. 그걸  말하면 내가 여기 말하지 않는다' 내가 어제 그걸 말했소. 여북 답답하면 말이지.

 이러니까, 앞으로 이거 움직여야 하나님께 돌릴 영광을 다 돌리게 됩니다.

이러니까, 차 두 대 사 가지고 다음 주일날은 오후에 주일 학교 반사를, 반사회  시간을 잠간 간단하게 가지고, 또 저게 분교에 가 가지고서 할 사람들은 거기  갔다가 오든지 이렇게 하고, 가서 실어다 주고서 갔다 와도 와 가지고 그래  하든지, 또 어제 ○○○집사님은 그렇게 말했어요. 부장은 그래 말했어요. 그 뭐  요게는 걸어도 얼마 안 되니까 요게 가 가지고서 가깝고 좋은 데가 있으니까  고만 '자, 몇 시에 가자' 하고서 부장이 통솔해 가지고서 가면 고 가까운 데 가  가지고서, 많이 말고 그저, 가서, 거기 가서 산에 가서 한 시간, 뭐 한 시간 안  해도 여기서 출발하는 시간부터 산에서 줄발하는 시간까지 잡아서 한 시간만  잡아도 우리 마음이 이렇게 땅에 안 앉아. 어쩌든지 마귀가 들어서 땅에만 자꾸  들어 붙습니다.

 그래 가지고서, 어제 결의한 것 뭐 결의 했지요? 어제 뭐 결의 했소? 예? 또  잊어버렸는 가베? 테레비, 길게 안 보면 죽을 거라. 길게 안 보면 죽을 거기  때문에 테레비, 어제 주일날부터 다음 월요일까지, 다음 월요일까지만 테레비를  안 보기로 그렇게 우리 반사들이 작정했습니다. 작정 했으니까, 다른 사람도 그걸  알고서 좀 협조를 해서, 그놈이 대마귀요. 그게 음행의 독주라, 독주. '술 취하지  말아라 이는 방탕한…' 그 술은 교훈을 말한 것입니다. 이 독주, 아주 최고로 독한  독주가 요새 보면 테레비니 뭐 이거 방송이니 이런 거라. 이러니까, 테레비 그거  안 보기로 그렇게 했습니다. 일주일간 동안만 안 보기로 해요. 그라면 좀 효력이  나는가 안 나는가 볼라고.

 우리가 함께 모두 힘을 써서 주님이 하시는 이 일을 '지도자와 좋은 것을 함께,  좋은 것을 같이 함께 하자' 말씀하신 대로 그래 해서, 어쩌든지 뭐 우리가, 오늘  주님 오시면, 어제도 말했소. 그걸 자꾸 넘어 듣기 때문에. 나는 그거 실지로 본  걸 말하고 체험한 걸 말합니다. 이북에서 월남한 사람들 내가 자꾸 물어 봐요.

'월남할 때에 무슨 죄가 회개 되더냐? 월남할 때 모든 사람들이 무슨 죄를 회개  하더냐?' 회개하기를 모두 '주여, 요번만 살려 주옵소서. 내가 가 가지고는 옷을  두 벌 옷 안 둘 것이고 내가 물질 위해 살지 안하고 주님 위해 살겠습니다.' 전후  공동 고백이 물질 위해서 살지 않겠다고 그거 회개 하더래요. 그거 회개  하더래요. 이북 신앙은 대개 유물주의입니다. 이북에는 표어가 '예수 믿어 십 년  만에 부자 안 되면 예수 잘못 믿었다' 그게 표어라.

 '예수 믿어 십 년 만에 거지 노릇 못해 보면 헛일이다.' 주를 위해서, 어떻게  하면 주를 위해서 거지 될 자, '자, 주님 위해서 여기 거지 될 사람 손 드시오'  이라니까, 그때 ○○○목사님이 언제 서부 교회 집회할 때 그랬더래요. 그라니까  ○○ 교회 장로 사모들이 와 가지고 말하기를 '에이, 집회도 더러운 놈의 집회.

아, 예수 믿어 부자가 되어야 되지 예수 믿어 거지 될 사람 여기 있습니까?'  이란다고. 그게 진짜입니다. 진짜. 주님, 하나님은 나 위해서 거지가 됐으니까  나도 주를 위해서 이제 거지가 되는 것이 그게 우리 갈 길 아닙니까? 그게 바로  깨달은 거라 말이오. 이렇게 꺼꾸로 인본주의.

 오늘 베드로후서 2장에 있는 모든 거짓말쟁이들에 대해서 증거할라 하다가 이제  1장을 말했는데, 베드로 1장에서부터 계속해서 지금 좀 증거를 앞으로 계속해서  할 것입니다.

 이러니까 어쩌든지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이 천직, 하나님이 주신 직분입니다.

이걸 알고 잘 감당하도록, 요다음에 주일날은 함부레 장로님들, 여기 권사님들도  다 알아요. 이랬다 하더라. 이러니까 다음 주일에는 아예 여기 주일 학교  반사회할 때 권사님둘도 다 저 권사님들이 어머니 중에 어머니라. 다 처음에  그분들이 낳아서 이만한 숫자가 났다 말이오. 장로님들도 다 그분들이 낳았소. 다  그분들이 낳은 분들이라. 이러니까 이제 권사님들도 이제 떡 와서 앉고.

장로님들도 다 이래 와서 앉았고 이래 가지고 이래 보고 있다가 '자 오늘 어데  산기도. 갑시다' 이라면은 장로님들이 먼저 떡 나서 가면은 모두 다 운동이  되고서 그러면 성령이 같이 할 거라. 갔다 와 보면 자기네들이 알게 될 거라  말이오. 그래서, 어쩌든지 세제에 최대의 어린이 교회라고 하는 말은 있지마는  우리가 실상은 그리 안 됐다 말이오. 주님이 그렇게, 우리가 그 말을 냈습니까?  그 말 낸 것은 우리를 그렇게 되도록까지 하시기를 목적하고 하는데 우리가 벌써  권태가 나 가지고 게을해 가지고 안 된다 그거요. 혼자 그래 쌓으니까 자꾸 '아  목사님 자기에게 돈벌이가 되든지 자기가 자기에게 좋기 때문에 그란다. 뭣  때문에 우리가 목사 좋도록 해 줄게 뭐이냐?' 요런 마귀 마음을 가지고 있다  말이오. 아 제가 처음에 거창서 믿을 때에 이라니까 우리 장모가 와 가지고서  자기 딸더러 묻기를 '야야, 너거는 예수를 그렇게 믿으라고 자꾸 그래쌓고 또  술도가 할 때보다 자꾸 돈은 더 많아 부자가 되고 이러니까 너거 예수 믿는 사람  하나 만드는데 돈 얼마나 받노?' 그래 묻더래요. '하나에 돈을 얼마나 받노?'  얼마나 받기에 부자가 되고 그렇게 예수를 믿으라고 하는고. 제가 거창 개명 있을  때에는 그 개명 골짜기에는 똥그란 손(狹) 골짜기로 들어 가 가지고 그 안에 가면  좀 너릅니다. 그 안에 이름이 났어 '아, 이 골짝에는 요 모서리만 돌아 들어 가면  나올 때까지는 만나는 사람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자 만나는  사람마다 예수 믿으라 하는 소라 귀에 따른다.' 만나는 사람마다 예수 믿으라  소리를 전도 안 하는 사람 하나도 없고, 만나는 자람마다 다, 전도하기로 고렇게  작정한 그런 사람들이 그 ○○교회 교인들이었습니다.

 저도 ○○ 교회 있을 때에, 거창 장에 올라 하면 오십 리라. 오십리를  걸어오면서, '오늘은 내가 갔다가 집에까지 갈 때까지 한 사람도 빠지지 말고  전도하지' 이렇게 작정을 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나서 놓으니까 처음에는  '예수님 믿습니다' 또 이러다가 나중에는 많이 있으니까 고만 통틀어 가지고 '예수  믿습니다.' 또 인자 요게 있고 조게 있으니까 '예수 믿읍니다 예수 믿읍시다 예수  믿읍니다.' 자꾸 이래 나가다가 나중에는 시장에 가서는 사람이 많으니까 할 수  없어 고함을 질러. '예수 믿습니다!' 또 이라며 걸어가고, 다른 사람은 미친  사람같이 그렇게 생각하지만 그랬고 기차에 탈 때 기차에 차에 타 가지고는,  기차에 타 가지고 칸칸이 전도 안한 일 없었고 기차를 탈 때 일어서 가지고  전도하고 그렇게 다 처음에 믿었습니다. 이랬는데, 지금은 그 직책이 달라서 내가  자꾸 이제 성경 연구로 이렇게 돼가는데, 예수를 믿을 때에 다 그렇게 믿는다고.

이러니까 여기서 교역자 될 사람들도, 여기 교역자들 내가 지금 보고서 '너거  게을하기 때문에 목사 못 한다' 내가 그렇게 지적 안할 사람이 없고. 지적하는 것  내가 다 바른 말이야. 왜? 그들보다 내가 늙어서 아주 송장이 됐지마는서도  그들보다는 내가 더 열심을 내고 힘을 들여. 젊을 때 일 안 하면 못 합니다.

 요다음에 주일날 오후에는 전부 장로님들 권사님들이 다 이래 둘러 가지고  있다가서, '자' 권사님들은 못 가. 가면. 가면 고장이 나. 뭐 비틀거리고 거기  갔다가는 다른 일도 못 봐요. 나는 권사님들은 누워서 일 하라 해요. 그러나  장로님들도 못 갈 장로님은 못 가지마는 다 젊은 장로님들은 갈 수가 있다  그말이오. ○○○ 장로님은 내가 모르겠어. ○○○ 장로님 말고는 다 갈 수  있어요. 그래야 뭐, 뭘 해야. 뭘 먹어 봐야 맛이 있고 뭐 하지 그래 은혜를 받아  봐야 뭐 알지. 안 받아 보면 모른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그럴 때는 또 다른  분들도 다 이래서, 이 수원지도 낮에 밝을 때는 괜찮답니다. 밝을 때는 괜찮아.

 그러니까, 어떤 사람은 오후 예배 딱 마치고 나면은 수원지 가요. 수원지 가  가지고서 그래 다녀 오는 사람은 건강하고. ○○○ 권찰님은 뭐 오만 것 다 해도  병이 안 낮고 뭐 오만 것 의사 다 돌아다니고 뭐 저기 무슨 온천이고? 부곡  온천이가? 부곡 온천에 거기 좋다 한다고 이래서. '부곡 온천에 암만 가 봐라.'  이라니까 떡 말하기를, 나한테 실지 왔어. '아 목사님, 실지로 효험이 있는데 부곡  온천에 가야 소용이 없다고 이런 말 하니까, 광고를 하니까 목사님 위신 때문에  내가 말합니다.' 진정 내한테 와서 말해. 위신 때문에. 그래 위신 때문에 말하길래  나는 진정 그래 말하니까 '그러면 부지런히 다녀 봐라 보자. 낮는가.' 죽자껏  돌아다녀 매일 갔어. 매일 갔다 와야 돈만 들였지, 돈 쫄닥 다 들였어. 다  들였지마는서도 낫아야지? 안 낮았는메, 저 수원지 매일 한 번씩 꼭 갑니다.

아침에 여기서 새벽기도 마치고 난 다음에 거기 가서 기도하고 오고 또 주일날은  오후에 또 예배 마치고 또 기도하고 주일 날은 뭐 두 번 간다던가. 이라니까 자꾸  병이 낮고 지금은 뭐 저벽으로 잠자고 다리 아픈데가 없대요. 아픈데가 없대요.

자꾸 밥맛 있고 건강하고. 내가 그 수원지 산에 간다고 되는게 아니라. 어제 또  ○○○권사님이 와 가지고 떡 말하기를 아, 목사님 내 얼굴을 보십시오. '예,  얼굴에 화색이 있습니다. 화색이 돕니다.' 내가 온 것은 목사님도 지금 이래 거가  가시면은 좋을 것 같습니다. 수원지 그래 꼭 한번씩 그래 가고 난 다음에는  이렇게 얼굴에 화색이 도는 것 보니까 아마 좋은가 싶어서 내가 전하려고  왔습니다. 그래 내가 말하기를 '네, 좋습니다. 수원지 산이 좋은게 아니라 수원지  산에 가 가지고서 주님을 만났는 것 같습니다.' 내가 그래 말했어. ○○○  집사님도 주님 만났기 때문에 그래요. 그러니까, 우리 사는 거는 이겁니다.

 이래서 집에서 기도회를 조직해 놓고 기도하고 또 산에 가서도 한번 씩 우리  기분을 한번 소생시켜 가지고서 한 번 경성을 해야 되고 이래서 다음 주일날  우리 장로님들이 쭉 나서 가지고서 '우리도 다 산기도 갑시다' 이라면서 가  가지고서 기도하다가 또 그 지방에서 무슨 말 한다 하면 장로님이 나서 가지고,  이러니까 용서해 달라고. 이 지금 부하니까. 얼마든지 이거 반사들이 기도해도 할  수 있도록 이렇게 다 모든것을 둘려서 옹호해 주고 그거 다 싸 주고 다 싸매  주고 이렇게 해서, 이래서 한테 합해야 이 주의 뜻이 이루어지지 아, 우리가 전체  합해 가지고 한 몸인데 다른 거는 다 가만 있고 손만 자꾸 이래 날뛰면 뭣  됩니까? 손도 날뛰야 되고 눈도 날뛰야 되고 입도 날뛰야 되고 귀도 날뛰야 되고  다 한목 날뛰야 되고, 발도 날뛰야 되고 다 날뛰야 되지. 이러니까 하나만 가지고  안 된다 그거요.

 네, 오늘 아침 많이 나와서 감사합니다.

 통성으로 기도 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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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2022.07.04-5596 김반석 2022.07.04
공지 백영희와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2.07.04
공지 순생 순교의 종 백영희 목사님 [1] 선지자 2021.02.22
공지 법전과 주해서 · 성경과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0.05.30
공지 백영희목사님의 ‘목회설교록’에 관한 교훈 모음집 선지자 2019.12.18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자료 1,2,3차 통계표 [3] 김반석 2015.12.20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1] 선지자 2015.10.19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3356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요한계시록 1장 1절-3절/ 850925수새 선지자 2015.12.10
3355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요한계시록 1장 1절-3절/ 1985. 9. 22. 주일학교 공과 선지자 2015.12.10
3354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요한계시록 1장 1절-3절/ 850923월새 선지자 2015.12.10
3353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요한계시록 1장 1절-3절/ 850922주후 선지자 2015.12.10
» 예수 그리스도/ 베드로후서 1장 1절/ 840312월새 선지자 2015.12.10
3351 예수 그리스도/ 베드로후서 1장 1절/ 840314수새 선지자 2015.12.10
3350 예수 그리스도/ 베드로후서 1장 1절/ 840313화새 선지자 2015.12.10
3349 예수 그리스도/ 베드로후서 1장 1절/ 840315목새 선지자 2015.12.10
3348 예수 그리스도/ 베드로후서 1장 1절/ 840316금새 선지자 2015.12.10
3347 예비한 구원/ 베드로전서 1장 4절-7절/ 860712토새 선지자 2015.12.10
3346 예비하신 구원/ 베드로전서 1장 3절-7절/ 860710목새 선지자 2015.12.10
3345 예비의 도/ 마태복음 24장 43절-44절/ 860404 지권찰회 선지자 2015.12.10
3344 예비 심판/ 요한복음 9장 39절-41절/ 800201금새 선지자 2015.12.10
3343 예배관/ 창세기 5장 21절-24절/ 850803토새 선지자 2015.12.10
3342 예배관/ 창세기 5장 21절-24절/ 850802금야 선지자 2015.12.10
3341 영적싸움/ 마태복음 10장 34절-38절/ 890310 지권찰회 선지자 2015.12.10
3340 영이 무엇인가/ 베드로전서 2장 1절-2절/ 860215토새 선지자 2015.12.09
3339 영육이 축복받는 길/ 디모데전서 6장 17절-19절/ 1983년 48공과 선지자 2015.12.09
3338 영육이 축복받는 길/ 디모데전서 6장 17절-18절/ 1983. 11. 27. 주일학교 공과 선지자 2015.12.09
3337 영육이 축복 받는 길/ 창세기 13장 1절-18절/ 840523수야 선지자 2015.1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