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한 구원

 

1986. 7. 12. 토새벽

 

본문:베드로전서 1장 4절∼7절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간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얻을 기업은 하늘에 있습니다. 영원 무궁세계에 있습니다. 거기 가서 받아서 누립니다. 거게서 받아 가지고 누리고 또 우리가 이행하고 감당하게 됩니다.

5절에,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그러면 우리 구원은 언제 받느냐 하면은 우리 구원은 이 세상에서 받습니다.

이 구원은 구약 시대에 있는 그런 사람들이 받는 구원과 다른 큰 구원을 우리에게 주실려고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 말세는 신약 시대를 다 가리켜서 말세라고 했는데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이라. 그러면 이 구원은 언제 나타나느냐? 신약 시대에 나타납니다.

그런데 이 구원은 우리가 이룰 구원이 아니고 예비하신 구원이라. 다 준비 돼 가지고 있는 구원입니다. 그러면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그러면 구원은 다 준비돼 가지고 있는데 우리가 얻으면 됩니다. 이 구원은 준비돼 가지고 있는데 얻으면 됩니다. 우리가 구원을 만드는 것 아니고 이 구원은 얻기만 하면 됩니다.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그러면 이 구원을 우리가 바로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 구원은 무슨 구원인고 하니, 우리의 영은 이 구원을 얻어 가지고 있고 우리의 이 심신으로 된 육은 이 구원을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영은 얻었으나, 영은 이 구원을 얻어 가지고 있지마는 이 구원 얻은 것이 영에게 그렇게 효력을 주지를 못합니다.

이유는 영이 이 구원은 얻어 가지고 있지마는 얻어 가지고 있는 이 구원의 효력은 어데서 나타나는고 하니 육에서 나타나는 것인데 육이 아직까지 이 구원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영에 아무 효력이 없습니다.

영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와 영감과 진리로 살아났기 때문에 그 자체는 그러하지마는 영은 무엇으로 활동하느냐 하면은 영은 그 영 단독이 활동하지 못하고 이 육체를 통해서 활동을 합니다.

비유컨대, 우리 마음이 아무리 명철하고 실력 있다 할지라도 마음의 그 실력은 이 육을 통해서 나타나고, 또 마음이 자체에게 유익되게 하는 그것은 이 육체를 통해 가지고 나타나는 것인데 육체가 그것이 이 마음의 행복을 줄 수 있도록, 또 육체가 마음의 가진 이 행복을 이루어 가져 누릴 수 있도록 그렇게 육체가 돼야 되는데, 그 사람이 마음에는 온갖 포부를 가졌습니다. 온갖 포부를 다 가졌다 할지라도 세계에 제일가는, 제일가는 그런 지능을 지혜를 가지고 있다, 세계 제일되는 지혜를 가지고 있고, 제일되는 과학을 가지고 있고, 제일되는 그런 지식을 가지고 있고 이렇게 그 마음이 온갖 걸 참 마음으로 말하면 세계 제일되는 그런 실력을 가지고 있는 마음이라 합시다.

그래도 그 몸이 벙어리라서 그것을 입으로도 발표를 못 합니다. 또 그러면 수족이 병신이 돼 가지고서 그 수족으로도 발표를 못 합니다. 암만 그 마음이 세계에 제일되는 그런 실력 있는 마음을 가졌다 할지라도 그 마음이 입으로 그 가진 실력을 다 사용을 해서 이래 발표를 하고 사용을 하고, 가진 실력을 또 그 손으로 이런 것으로서 다 발표할 수 있는데 그것을 발표할 만한 아무런 그 지체가 없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암만 알지마는 만일 벙어리라 할지라도 손이 그걸 알면 손으로 뭐 이렇게 그려 가지고도 되겠는데, 손이 없으니 그리지도 못하지, 또 입이 없으니 또 발표도 하지 못하지 이러니까 그뭐 만일 발이 있다면 또 그 발이 이렇게 저렇게 해 가지고서 그걸 그 행복 된 것을 뭐 걸어가든지 찾아가든지 할 수 있는데 이거는 몸뚱이가 하나도 마음이 가지고 있는 그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그런 실력이 하나도 없다고 하면은 그 마음에 암만 가져 봤자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이 가진 것을 아주 입이 잘 들어서 입으로 그것을 잘 발표해서 아주 가진 그 실력을 입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말을 하고 세계에다 말해서 그 실력을 세계에 퍼뜨려 가지고 효력을 낼 수가 있겠고, 또 만일 그 입이 그걸 발표하지 못하도록 입이 그만 아주 붙어 있고 혀가 뭐 잘라져 있고 아무것도 발표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 수족이 그걸 발표할 수 있으면 불편하기는 하지마는 수족이 무슨 그림을 그린다든지 뭐 이래 가리킨다든지 불편해도 다소라도 나타낼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마음의 가진 실력은 몸으로 통해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몸이 병신되면 안 된다 그거요.

또, 그 몸에 있는 실력은, 몸에 가지고 있는 실력은, 몸이 오만 걸 다 할 줄 압니다. 몸이 뭐 마음이 아주 명철한 지능을 몸이 받았지 몸이 오만 것 다 할 줄 압니다. 그 사람이 세계 제일가는 과학자가 됐고 아주 모든 것을 구비하고 이래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또 그 몸이 아무리 마음에서 받은 실력 또 제가 가지고 있는 실력이 있다 할지라도 그 물질이라는 것이 듣지를 안하면 아무 소용 없어.

그 사람이 뭐 세계에 제일가는 원자의 그 실력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그 물질이 없으면 그거 없으면 소용 없습니다.

이 세상에 과학자들이 아무리 떠들어 쌓지마는 그만 과학이, 그 과학자들이 다 손으로 하고 입으로 하고 그래 하는 것 아닙니까? 입이 없고 손이 없고 이라면 안 돼. 그러면 손으로 하고 입으로 하고 다 할 수 있는데, 손도 입도 있어서 뭐 머리도 있고 기능도 있고 다 있어서 다 할 수 있어도 그것을 수종 들어서 나타낼 수 있는, 자기 머리 속에 있는 과학을, 자기 수족에 있는 기술을 그 나타낼 만한 물질이 없으면 안 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거 좀 생각해 봐요. 물질이 없으면 안 돼요. 만일 어떤 유력한 의사라 할지라도 그 의사가 뭐 아주 수술을 세계에 잘하는 의사라 할지라도 수술 그 기구가 하나도 없으면 안 돼. 그 손으로 어떻게 잡아 째겠소 어짜겠소? 뭐이든지, 그러기 때문에 육체에 있는 실력은 물질을 통해서 발휘되고, 마음에 있는 실력은 몸을 통하여서 발휘되고, 영에 있는 실력은 마음과 몸 이 육체를 통해서 발휘가 되는 것인데 영은 아무리 가지고 있어도 이 마음이 그것을 얻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그말이오. 영은 다 얻어 가지고 있지마는 꿀 먹은 벙어리 모양으로 아무 효력을 나타내지 못해요.

못 하는데, 다만 이제 이 육체가 지금 영이 얻어 가지고 있는 것을 전부 이 마음은 그것을 다 받아 가지고 몸에다가 전달해서 발휘할 수 있어야 되고, 영은 마음에다가 다 발휘할 수 있어야 되고, 마음은 그 영에게서 받은 그것을 육에게다가 발휘할 수 있어야 되고, 또 육은 받은 그것을 모든 이 물질이라는 자기 밖에 있는 물질이나 사람이나 어찌됐든지 자기 육체가 아닌 그 모든 것에게 접해 가지고 그것을 다 발휘할 수가 있어야 되지 없으면 안 된다 말이오.

아무리 그 사람이 머리 있고 육체 있고 심신의 좋은 기능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그 사람이 사람을 통해서, 사람을 통해서, 우주를 점령할 만한 그만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그 통할 사람이 없으면 소용 없다 말이오. 또 그 사람이 물질을 가지고서 세계를 점령할 만한 그런 지능이 있다 할지라도 물질이 재료가 없으면 안 돼.

그러기 때문에, 영은 저의 가진 실력을 마음을 통해서 나타내는데 마음이 그 영의 수종을 들 만한 그게 돼 가지고 있어야 되지 그게 안 돼 가지고 있으면 소용이 없다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영의 구원은 꼭 같지마는 마음이 천층 만층이라 그 영의 실력을 발휘하는 것은 천층 만층으로 관계돼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에 보면은 거게 뭐 형체로 말했고 육체로 말했는데 그 차이로 말하면 이 세상에서는 뭐이 그렇게 차이 있는 게 없다 그거요.

또, 육체의 가진 실력은 이 자기 육체 외에 있는 모든 다른 물질이 있어야 그것을 할 수 있다 말이오. 그러면 물질이라면은 다른 사람의 그 육체, 또 모든 물건 이런 모든 것들이 있어야, 물이나 물건이나 공기나 뭐 이런 것 다 물질인데 그런 게 있어야 발휘되고, 그러면, 또 하나님은 어찌 되느냐? 하나님은 당신이 완전자시고 영원 불변 자존자시고 이렇지마는 그분 혼자 있어 가지고는 그분에 있는 것을 아무것도 나타내지 못한다 그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그분이 모든 것을 목적도 정하시고 또 예정도 하시고 창조도 하시고 보존, 섭리, 관리하시는 이것이 뭐냐 하면은 자기를 나타내는 것이라 그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요한복음 1장 1절에는 나타내는 하나님, 하나님은 자존하신데 자존하신 그 하나님을 나타내는 하나님의 이름을 가리켜서 말하기를 말씀이라 이렇게 말했다고.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말씀이라.

그 말씀은, 하나님은 완전자로 자존만 하고 계시는데 자존하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라 하는 것을 그분의, 자존하신 그분의 무한하심을 나타내는 역사를 하고 있는 분이 누구냐 하면은 말씀이신데, 말씀이 나타내는데 말씀이 어떻게 나타내고 있느냐? 나타내고 있는 것은 그 목적으로 처음에 나타냈고, 목적으로 나타낸 그것을 예정으로 나타냈고, 예정으로 나타낸 것을 창조로 나타냈고, 그 예정 창조 그것을 활용해 가지고서 대속으로 나타냈고, 대속으로 나타내 가지고 하나님의 형상과 꼭 같은 교회를 일으켜 가지고서 나타내는 것이라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교회가 아니면 당신이 나타날 수가 없어. 그러기 때문에 교회를 통해서 나타내고, 교회는 모든 이 영계와 이 우주에 있는 피조물을 통해서 나타내고, 이러기 때문에 교회를 위해서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시키는 역사를 하고, 또 교회를 뭐 할라고 하느냐? 교회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하나님의 모형이요 하나님을 나타내기 위해서 교회를 이렇게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그 무한하시고 영원 무궁하심은 교회를 보아서 알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교회를 말하기를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기 위함이라 이래 놓고, 나중에는 영광의 찬미라 했고, 또 교회를 가리켜서 하나님의 기업이라 했다 말이오.

하나님은, 그거 다 그런 각도, 이 면 각도를 말하고 저 면 각도를 다 말해서 한 것인데 사람이 그 사람이 아무리 자기 혼자 잘 났다 할지라도 기업이 없으면 그거 못난 사람입니다. 기업이 없으면 그 사람이 뭐 어떻게 활동하겠습니까? 자기 기업이 있어야 되지.

아무것도 못나고, 또 그 사람이 물질 기업이 있어, 무슨 또 무슨 행정 기업이 있어, 그 사람이 또 무슨 사상 기업이 있어, 도덕 기업이 있어, 이런 기업이 있으면 그것 때문에 그 사람이 커지고 작고, 사람이 크다 작다 하는 것은 그런 것으로 크다 작다 이렇게 말씀을 하는 것이라 그거요.

그래, 이런 것을 지금 말하는 것은 여러분들에게 뭐 때문에 자꾸 이런 말을 하느냐? 이 말을 할 때에 여러분들이 사람의 말로 발표하기 어려운 그 속에 있는 그것을 받아 가지지 안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영감이라 그렇게 말하는데 인간의 방언으로 표시하지 못하는 것이 “예수님이 행하신 것을 다 기록할라 하면은 이 세상에도 차지 못한다’ 그말은 기록 못 한다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뭐 일생 동안 행하신 것을 만일 사진으로 박았다면은 사진으로 다 박을 수 있겠고 필림에다 다 넣을 수가 있겠고 말한 것은 다 녹음에다 다 넣을 수 있을 것입니다. 뭐 그것이 얼마나 많아서 이 우주에다가 이 세상에다가 둬도 둘 만한 곳이 없이 많겠습니까? 그게 아니라 그말이오.

예수님이 하신, 발표하신 거는 그렇지마는 그 속에 인간의 방언으로 발표하지 못한 것, 예수님의 형상으로 다 발표하지 못하고 그 속에 들어 있는 영감이 발표할 수 있는 영감 의지, 은밀 의지 영감 의지 또, 은밀 의지 속에 영감 의지인데 영감은 우주뿐 아니라, 영계뿐 아니라, 이 세상뿐 아니라 우주와 영계에 가득 차고도 남음이 있는 그 무한을 그 영감이 가지고 있고, 영감은 어데서 나왔습니까? 영감은 어데서 나왔습니까? 영감은 어데서 나왔지요? 영감은 어데서 나왔습니까? 장생골에서 마구 그거는 시간을 두고서 상관 없이 얼마든지 말하지 안했어? 영감은 어데 나왔습니까? 하나님 본체에서 나왔습니다.

하나님 본체에서 나왔는데 그 본체는 이 우주와 영계 당신이 창조하신 피조물 창조했는데 이 당신이 창조한 그 모든 것의 억억억억억만 배도 더 되는데 그 영계나 물질계나 당신이 오늘까지에 창조하시고 역사하셨다고 해도 당신의 비유컨대 억억억억억만 분의 일도 지금 나타내지를 못하고 있다 그말이오.

알아듣겠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이 행하신 그 일로 말하면, 지난밤에도 말했는가 언제 말했는가, 요 삼각이 있으면 이 삼각으로 되어 있는 끄트머리는 뾰쪽하게 요 바늘 끄트리만할 수 있습니다. 바늘 끄트리만한데 그 바늘 끄트리만한 뾰쪽한 그것을 거머쥐고 들어가 보면은 그것이 이 삼각이니까 들어가 보니까 너르고 너르고 넓어서 십 리 들어가면 그만침 너르고 백 리 들어가면 그만치 너른 모양으로 이 신구약 성경에 문서 계시는 이 은밀 계시를 나타내는 이 삼각으로 나타낸 거와 마찬가지로 뾰쪽한 요 끄트머리 요것이지 이것을 잡고 들어가면 한이 없다 그말이오. 이걸 잡고 들어가면 한이 없어.

그런 것을 가리켜서 “온 세상에 둬도 둘 곳이 없다” 이렇게 말했는데 그 말을 잘못 깨닫고 나면 예수님이 하신 말, 그리 안 하면 예수님이 하신 무슨 행동 그런 것 뭐, 행동이 암만 예수님이 말하셨다 해도 찍해야 삼십삼 년 사 개월 동안 했으니까 말한 것 다 만일 녹음한다면 그 녹음 그까짓 것 뭐 얼마 안 될 것입니다. 얼마나 되겠습니까? 아마 부산에도 다 안 찰 것이오. 아무리 말 많이 해도 부산에 다 차겠습니까? 또 그 한 일을, 한 일을 사진에다가 박아서 촬영한다고 하면은 그 촬영하는 필림이 뭐 여게 얼마나 되겠습니까? 뭐 한국에도 다 못 채울 것이라. 그런데 왜 세상에 다 둘 곳이 없다고 말했겠습니까? 그걸 가리켜 말한 것이기 때문에 그런 걸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이런 거는 자꾸 여러분들이 좀 이래 듣는 가운데에서 성화가 돼지고 변화가 돼지고 인간의 방언으로 표시 안 되는 그것을 지금 가져라 하는 건데 그 면에 대해서 알라고, 그 면에 대해서 눈 뜬 사람들이 많지를 못해요, 눈 뜬 사람들이.

이걸 모르기 때문에 만날 그래 놓고 설교 들어보면 항상 껍데기에서만 얼른거려지고, 껍데기를 다 같이 껍데기를 말하는데, 껍데기를 말하는데 그 속에 깊은 것이 없는 껍데기뿐을 말하고 있다 말이오. 속에 알맹이 없는 껍데기뿐을 말해. 이러기 때문에 사람의 말로 말하면 말하는 그것뿐이지 사람의 말로서 표현할 수 없는 알맹이가 속에 들어 있는 그게 없다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들을 때에 그 껍데기와 알맹이를 이래 벌써 그 면을 들어서 안 사람은 ‘저 사람은 말하자면 그 설교의 깊이가 얼마다, 그의 사상의 깊이가 얼마다, 영감의 깊이가 얼마다, 높이가 얼마다, 넓이가 얼마다.’ 하는 그것을, 표시 못 하는 그게 그 속에 들어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거요.

이러니까 한 마디 듣고서 ‘요것은 어느 정도의 희망이 있어 어디까지는 지금 가고 있다, 요것은 암만 앵무새 모양으로 떠들어 쌓아도 요거는 속에 알맹이는 없고 순전히 이거는 참 필림이다, 이거는 필림에서 녹음기에서 나오는 그것이지 이 속에 무슨 생명은 없다, 깊이는 없다, 능력은 없다.’ 그렇게 평가할 수 있는데 하나님처럼은 완전히 평가 못 하지마는 그게 거의 정평 정가가 된다 그거요.

이런 말 하는 것은 내가 뭣할라고 이렇게 말하느냐 하면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이니까 이 구원은 다 예비가 돼 가지고 있는 구원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언제 나타내느냐? 이 신약 시대 성도들에게 나타내 주십니다.

신약 시대의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십 년을 살든지 뭐 백 년을 살든지 세상에서 사는 그 기간은 무슨 기간인고 하니 예비하신 구원, 이 구원을 나타내는 것을 지금 얻기 위해서 이렇게 세상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늘에 있는 기업은 뭐인가? 하늘에 있는 기업은 그것은 이 세상에서 나타내는 구원을 얻으면 구원 얻은 것만치 하늘에 있는 기업을 그것을 자기가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산 소망도 가졌는데 산 소망은 어떤 것을 가리켜서 산 소망이라고 말하는고 하니,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있게 하시며」 소망이 또 다르다 말이오. 「산 소망이 있게 하시나니」 또 그다음에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며」 소망이 있는 소망과 기업이 다르다 그말이오. 소망, 뭐이 소망인고 하니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해 놓은 그 구원,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해 놓은 그 구원 그것이 우리 소망이라.

또, 우리의 기업은 뭐인고 하니 하늘에 지금 간직해 놓은 것인데 썩지 안하고 쇠하지 안하고 더럽지 안하고 낡아지지 않는 그 기업이라. 그러면 기업은 하늘에 지금 간직해 가지고 있고, 또 우리 구원은 지금 다 예비돼 있는데 말세에 나타낼 때에 그 구원을 얻어야 된다 말이오. 그 구원을 얻지 안하면 소용이 없어.

그러면 그 구원은 뭣을 가리키는고 하니 구원은 자체 구원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자체가 얻는 것이고, 기업이라고 말하는 것은 자기의 소유, 소유와 자기의 그 직위 그것을 가리켜서 기업이라고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난밤에 그 기업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의 모든 것, 예수님께서 하늘에 있는 거와 땅에 있는 것을 다 상속받았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상속받은 것은 하나도 빠짐 없이 아버지의 것은 다 받았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받은 그것을 또 우리가 하나도 남김 없고 빠짐 없이 다 받습니다. 받는 그것이 뭐이냐 하면은 우리의 기업이라 그말이오.

그러면 기업이면 그것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그 모든 것 그것이 기업이요, 또 자기 그 직업으로, 직위의 기업은 뭐인가? 그것은 만물들에게 충만케 하시는 하나님의 충만, 이제 하나님이 피조물들에게 대해서 하시는 그 일을 예수님이 맡아서 하시고 예수님이 맡아 하는 일을 교회가 다 맡아 가지고 하는 그것이 우리의 기업의 소유 기업이 아니고 우리의 직위의 권위의 기업이라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만물에게 충만케 하시는 하나님의 충만 그것이 곧 우리가 하는 일이라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하늘나라에서 봉사의 일을 하기 위해서, “봉사의 일을 하기 위해서 했다” 봉사의 일을 하기 위해서, 은혜 베푸는 일을 하기 위해서, 그러면 하나님이 피조물에게 은혜 베풀고 피조물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만 사는 거와 마찬가지로 그때는 이 교회에게 은혜를 얻어 가지고 살고 또 교회가 봉사하는 그 봉사를 받아서 힘입어야 살지 못 산다 그말이오.

그러면 모든 하나님의 창조가, 창조된 것들이 이 교회의 도움을 입지 안하면 살 수 없고 은혜를 입지 안하면 살 수 없고 하기를 마치 하나님의 도움과 은혜를 받지 안하면 그런 것이 살 수 없는 거와 같은 그런 직책을 상속받은 것이 그것이 다 기독자요 교회라 말이오. 우리라 말이오.

우리가 받는데, 그것을 가리켜서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기업이 하늘에 있게 했다” 그거는 하늘에 가서 이제 누리는 것입니다. 하늘에 가서 누린다 그말은 뭣을 가리켜서 말하는 것인고 하니 영계와 물질계가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이 됩니다. 영계와 물질계가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통일되어 하나가 됩니다. 통일이 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이 되는데 통일된 그 나라를 가리켜서 하늘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통일되면은 거게는 다시 변동이 없고 타락이 없고 이 통일할 때에 이 물질계라 하는 것은 지금 물질계는 우리 구원에 필요하도록 만들어져 가지고 있는 이 모든 물질계의 우주지마는 우주에 우리가 아는 것 모르는 것 전체는 우리 구원을 간접 간간접으로 이렇게 구원을 위해서 다 지음받아 가지고 있는 것이지마는, 앞으로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이 통일될 때 그때는 다시 우리들이 영원 무궁토록 그것을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이 모든 것이 일단 불살라진다 말이오.

불살라져 가지고 모든 체질들이 다 녹아져 가지고서 이 물질이나마 원소로 다 돌아가 가지고 만물을 새롭게 할 때에 새로운 창조로서 이것이 새롭게 돼 가지고 이제 영계 것과 이 물질계의 이것이, 물질계는 물질이고 영계는 영계지마는 구속을 받은 성도들이 영원 무궁토록 누리기에 합당한 자로 다 이것이 개조된다 그거요. 그라기 위해서 모든 만물이 다 불에 타서 녹아집니다.

녹아지나 이것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땅은 영원히 있다” 말은, 땅은 영원히 있다 말은 원소가 영원히 있다는 것을 가리켜서 말하는 것이고, “이 하늘 이 땅 이거는 다 간 것이 없고” “하늘과 땅은 다 불에 타서 살라진다” 이래.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진다” 이랬어.

이러면, 다시 만든 것은 새 하늘과 새 땅이라. 이래 만들어서 하늘의 거와 땅의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될 그때의 나라가 뭐이냐? 가리켜서 하늘이라, “하늘에 간직했다” 그때 우리가 누린다 그말이오.

그러면 그 기업을 그때 가서 누리는데 그 기업은 어데 속한 것이냐? 우리의 소망, 우리가 소망은 다 같은 소망을 가지고 있는데 이 소망하는 것이 뭐이냐 하면 구원입니다. 구원인데 이 땅 위에서 구원이 된 그대로 무궁세계 가서 기업을 누리게 된다 그거요.

그러면, 구원된 그게 뭐인가? 구원된 그것은 우리 자체, 우리 본체인데, 우리 본체가 구원되는 것을 가리켜서 여게 구원이라고 말했는데 우리 본체가 구원 얻는데 이 본체가 구원 얻는 것은 어떤 것이 우리 본체의 구원을 얻는 것이냐? 그것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되어 있는 그 구원” 얻는 그것이 우리 본체 구원이라 그거요.

그런데, 고린도전서 3장 20절 이하에 보면 “사람으로서 아무도 자랑치 말아라” 아, 동양에는 이런 위인이 있다, 서양에는 이런 위인이 있다, 뭐 있다 뭐 있다, 뭐 있다 이렇게 다 위인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뭐 세계 위인들을 말하면 얼마나 많습니까? 또 이 학 박사들이 모두 말하면은 학자들이 얼마나 많소? 학자들이 아는 것은 도덕으로는 이런 위인이 있다, 예술로는 이런 위인이 있다 그런 것을 모두 많이 아는 것 그것이 세계를 점령하고 있고 세계 대학자들이요 유식한 사람들이라 다 이렇게 지금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인간들을 자랑하지 말아라. “사람으로 자랑하지 말아라” 거기 말 해 놨어. 사람으로 자랑하지 말아라. 그런 인간을 여게 위인이 있다, 여게 가치 있는 인간이 있다, 여게 큰 인간이 있다 이렇게 말하지 말아라.

그까짓 거는 다 형이하학에 속한 것들이요, 어떤 단계 이하의 것들이기 때문에 다 멸망과 사망의 것들이고, 인간의 가치는 어데 있느냐? 인간의 가치는 어데 있느냐? 하늘의 것과 땅의 것과 이제 것과 장래 것과 사망과 생명과 모든 것이 다 자기 것이 될 수 있는 이 기업이 있다. 이 기업이 있다. 이 기업이 있으니 이 기업 가진 거게서부터 가치가 생겨지는 것이지 그 이하의 거는 하나도 가치가 되지 않는다.

또, 이 기업은 자기가 가지고 누릴 것인데 자체 구원은 무엇인가? 자체 구원은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것이 되는 것이다. 내 자체 구원은 그리스도의 것이 되는 것은 자체 구원,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이 구원을 가리켜서 그리스도의 것 되는 것이고, 또 이 썩지 안하고 쇠하지도 낡아지지도 안할 그런 기업은 말하자면 하늘에 있는 것과 땅에 있는 것과 이제 것과 장래 것과 모든 전부 그것, 죽고 사는 것 모든 관리 말이요, 피조물들의 사망과 생명 하는 건 모든 피조물들의 관리를 가리켜서 “사망과 생명과” 하는 것을 가리켜서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이 죽고 사는 그것이 제일 큰 관리 아닙니까? 그러면 이것이 다 통일된 말이라. 통일된 말인데, 이것을 이 각도로 나타내고 저 각도로 나타내기 때문에 이 나타내는 이것을 알지 못하면 헛일이라 말이오.

이러니까 자꾸 한 쪽으로 치우쳐서 이 면만 자꾸 말해 가지고 하는 사람은 ‘저 사람은 어느 면으로 치우쳐서, ○○○, 요새 그 뭐 영어 강좌하니라고 인제 죽을 지경인 모양인데 그거 되지, 이제 그거 결혼한 첫 사랑이라고 되지, 그때가, 그때가 중요한 때라. 그때 고비고 그게 마디를 만드는 것인데, 그 마디에서 말이요, 식물을 보면은 그 마디에서 약했던 것이 확확 굵어질 수도 있고 굵었던 것이 마디에서 팍 망하는 수도 있습니다. 그 마디가 중하요.

그러기 때문에, 미나리 심으는 사람들이 미나리를, ‘미나리를 쭝쭝 썰어서 심으니까 다시 싹이 나 가지고 되더라. 그러니까 미나리 씨는 미나리를 썰어 가지고 심으면 된다.’ 이러니까 ‘미나리를 썰어 심으면 된다' 하고서, 마디하고 마디하고 사이가 그 긴 거는 이만 합니다. 마디하고 마디하고 사이가 긴 거는 이만해요. 이만 하니까 그거 된 줄 알고 그 마디 없는 걸 썰어 가지고서 한 짐 뿌려 보십시오. 그 싹이 하나도 안 나옵니다. 다 썩어 버리고 마요. 요만하고 짤막한 요만해도 마디 그놈이 마디 그게 하나 끊겨서 있으면 고거는 다 싹이 난다 그말이오. 마디가 중요해.

그러기 때문에, 그런 그 교체되는 고비, 고비라면 그거 다 일마다 절정이 돼 있는 건데 그 절정이 다 있어. 그 절정에서 그게 잘돼야 되는 것인데 그것을 가리켜서 결실이 잘돼야 된다 그말이오. 결실이 잘돼야 된다.

그러기 때문에, 여게 믿는 사람들 지금 예수 믿는 사람들이 있지마는 이것이 아직까지 6 5 마디를 만들지 못했고 왜정 말년 마디를 만들지 못했고 이랬기 때문에, 그것은 전체적으로, 사회적으로, 지역적으로 마디를 만들 수 있는 그런 마디는 만들지를 못했다 말이오. 만들지 못했으나 그 개인 마디를 만들 수 있는 그런 기회를 많이 당했으니까 개인마다 그런 마디를 만드는 그런 기회에 마디를 잘 만든 사람은 그것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제가 그때 시무할 때에 개명교회 시무했는데 개명교회서 시무한 사람들은 그 복음을 받아 가지고 그대로 사니까 뭐 왜정 말년 신사참배 때 오기 전에 벌써 그 자잔한 마디들을 다 만들었습니다. 만들어 가지고서 산 순교자들이라.

그러니까 개명 교인들은 전부 그 뭐 생명을 내놓아야 되는 그런 마디를 많이 만들었고, 또 그랬기 때문에 왜정 말년에 그 신사참배를 한 사람도 안 했습니다.

신사참배 하라고 저희들이 와 가지고서, 와서 신사참배 하라 말도 안 했습니다.

그러면, 개명교회가 유명하지 않은가? 개명교회는 유명한 것은 개명교회는 그 골짝에 들어서면 예수 믿으라고 전하기 때문에 그 모든 사람들이 제일 유명하게 알고 잘 알고 예수 독종이라고도 하고 예수 미치괭이라고도 하고 그렇게 믿는 사람들이라. 소문이 없어 그런 거 아니오.

또 제가 고제 있을 때 고제에 농산, 개명, 봉산, 봉계 일 면에 교회가 너이 있는데 너이 있는 교회 가운데에 개명교회가 제일 잘 믿는다고서 유명했었습니다. 또 개명교회 박해가 제일 많았습니다. 이러니까 그때 유명을 안 해 그런 게 아니라 그 왜정 말년 때 하나님께서 다 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그 신사참배 그렇지마는 다 그런 것 뭐 필요가 없고 그보다 더한 마디들을 다 만들어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분들은 신사참배 하라고 와서 말하지를 안했어. 그래 신사참배 안 한 것은 한 사람도 안 했습니다.

그 면에는 다른 면보다 달랐어요. 예수 믿는 사람 하나하나 불러 왔습니다. 하나 하나 불러다가서 다 이렇게 조사해 가지고서 예수 안 믿겠다는 것 다 도장 찍고 날인했습니다. 다 날인하고, 또 그리 안하면 그래 한 사람은 그만 신사참배 하겠다고서, 말만 하는 거 아니라. 하겠다고 딱 날인까지 다 했어. 하나 하나 불러 가지고 다 날인했어.

그러니까, 그때 넷 교회를 유급의 전도사로서 책임진 사람은 황부 유안 전도사님이었는데 그 싱가파 함락 때에 그때 오라 해 가지고 다, 만일 그때에, 축하할 때에 이름 있는 사람 주목받는 사람들이 안 가면 당장 가둬 버리라 하기 때문에 안 갈 수가 없습니다. 그 위협에 안 갈 수가 없어. 위협에 안 갈 수가 없는데 그때 가 가지고서 모든 사람 앞에서 황보 유안 조사님에게 저거 신에게 제사하는 그 제주를 먹였습니다. ‘나는 술을 먹을 줄 모른다, 안 먹는다.’ 이라니까 막 붙잡고 이래 가지고 제주를 먹여서 한 컵을 ‘안 먹으면 안 된다’ 하니까 이거 뭐 입에다 대고 이래 가지고서 안 먹으면 안 된다고 조그매라도 먹으라 이라니까, 속에 얼마나 마셨는지 모르지만 강제로 마셔서 어쨌든지 그 술잔을 입에 대고 강제로 마셔. 강제로 마셔. 그렇게 혹독한 곳입니다.

혹독한 곳인데, 개명교회 교인들은 주일 학생이고 뭐이고 신사참배라 하는 것을 하라는 그런 말도 안 했고 오라 소리도 안 했고 그저 늘 나하고, 와 가지고 나한테 와 가지고 날마다 조우기를 꼭 육 년을 조았습니다. 육 년을 조우기만 조았지, 싱가파 함락할 때는 농산교회 그때 다 모이라고 이래서 거기 갔다가 대예배는 거기 가 보고서 여기서 분교 예배는 여게서 봤는데, 그래 모이라고 할 때에 가니까 제일 아주 혹독한, 군내에서 혹독한 부장을 고제로 옮겨 놨어요. 그것 때문에, 개명 때문에.

옮겨 가지고서 이랬는데, 그분이 있다. 말하기를, 사정하기를 내일은 싱가파 함락 축하하는 날이니까 그때 축하 때에 꼭 와 달라고서 그렇게 사정을 해요. 그래 내가, 그건 뭐 내일 일을 알 수 없기 때문에 보자고. 내일 어찌 되는가 알 수 없으니까, 내가 간다고 말해도 하나님이 생명 부르면 그만일 것이고 또 내가 뭐 어찌 될지 모르니까 내일 일은 내일 봐야 되지 오늘 내가 말 못 하겠다고 이라니까 신신 부탁하고 이랬는데 그날은 제가 거기 있으면 잡아 끌려 가지고 갈 것이라서 그만 아침 먹고 그만 살랑살랑 그만 산으로 가서 그만 기도하러 산으로 가 버렸습니다.

가 버리니까 올라왔더래요. 올라왔지마는 제가 없으니, 어디로 간지 압니까? 산으로 갔으니 어디로 가서 어데가 찾겠소? 그날은 못 찾았다 그거요. 그러면 끌고 가 가지고 여럿이 앞에서 붙들고, 황보 유안 조사님에게 제주 마셔 가지고 강제로 저거 위해 놓은 그 신 앞에 꺼꾸려서 막 강제로 절을 시키고 강제로 제주를 먹이고 그렇게 욕을 보일 거라 하나님께서 그렇게 피하게 했다 말이오.

또 그 자리에서 지금 강하게 말하면 아예 안 올상바르니까 살살 달래서 오라 했는데 하나님께서 또 달래라 하니까 달랬지, 그때 거거서부터 막 강제로 거머쥐고 이라면은 내가 아무리 안 한다 하지마는 강제로 거머쥐고 꺼꿀뜨리면 내가 힘이 모자라니까 한 여러 사람이 달라들어 가지고 꺼꿀뜨리면 내가 꺼꾸러졌지 안 꺼꾸러지고 어찌 있겠소? 하나님께서 자신만 양보하지 안하면 하나님이 요걸 지켜 주셔 다 조절하신다 그말이오.

이래서, 어제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를 해석할 때에 하나님이 조절하신다 하는 그걸 암만 말해야 여러분들이 못 알아 듣는다 그말이오. 조절하신다. 우리 구원에 필요하고, 또 내게 은혜 주셔서 내게 있는 힘으로서 감당할 수 있는 그 정도의 것을 하고 그 정도에 하나도 외의 거는 하나도 하지 못하게 합니다. 내게 필요한 것만 딱 하도록 하지 필요 없는 것은 하나도 못하게 해요. 또 이외 것은 하지 못하게 해요.

이렇게 그 조절을 하시고 방어를 하시고 그들이 월권하지 못하도록 이거 방어하고 그 모든 것을 그래 해 가지고서 그들이 어떻게 한다 해도 나만 힘쓰면 다 승리할 수 있는 그런 능력의 보호라 그말이오.

그러면, 능력의 보호, 뭐 능력의 보호받은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요셉이가 여러가지 어려움을 당했지마는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가 있기 때문에 저만 하면 됐지, 저만 하면 됐지, 인간이 이 세상 일 저만 한다고 됩니까? 세상 일 무슨 전쟁하는데 저만 하면 되는 일이 어디 있어? 요것도 못 알아들어, 무슨 말인지. 저만 하면 되는 일이 어디 있어? 제 힘만 쓰면 되는 일이 어디 있어? 이제 이것은 능력의 보호가 있기 때문에 요셉이도 저만 힘쓰니까, 저만 힘쓰면 됐지, 저는 힘썼는데 그 힘을 우리 힘을 꺾어서 그 복종시키는 그런 일을 하지 못하도록 딱 조절해 놨다 말이오. 알겠소? 이러니까,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불미 속에다 집어 넣었지마는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저만, 제 힘만 기울이니까 됐지 제 힘을 기울인다고, 사람이 무슨 전심 전력을 다 기울인다고 해 가지고서 불에 안 탈 인간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렇지 안해요? 사람의 힘을 태우지 못할 불이 어디 있겠느냐 말이요? 그러나 사람의 힘만 기울이니까 불이 해하지 못하도록 조절을 딱 해서 그게 능력의 보호라 말이오. 사람이 또 사자를 이기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면, 저만 하면은 되는데 저만 하면 되는 요것만, 저만 이 구원을 믿고 소망하고 또 그 구원을 내것인 것을 내가 내것인 것을 깨닫고 양보하지 안하고 그 구원을 입고 나만, 나만 ‘이 구원은 이것보다 가치 있다’ 나만 `이 구원은 이것보다 크다’ 나만 ‘이 구원은 이런 것보다 능력 있다' 나만, 나 혼자 작용이라. 나 혼자만 하면 된다 그말이오.

나 혼자만 하면 되는, 이 세상 일은 저 혼자 한다고서, 둘이 달라들면 혼자 하는 그것을 능가하는 것이요, 열이 달라들면 하는 건데 이 세상 온 천하에 있는 마귀, 악령 악성 악습의 단체가 돼 가지고서 그것들이 가지고 있는 온 세상을 거머쥐고 달라드는데 어떻게 우리가 이길 수 있어? 나 하나만 이기면 그외의 것은 다 상관하지 못하도록 한 요것이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라 그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내가 어제, 이거는 조절하는 것이다, 방어하는 것이다, 구원에 필요한 그 필요한 요소 그 외의 것은 하나도 관리치 못하게 한다. 그러면 우리만 믿고 나만 힘쓰면 다 이길 수 있도록 하는 모든 그것이다.

이제 줄을 타는데 연습할 때에 떨어지면, 이거 툭 떨어지면 솜에 푹 떨어져 죽지 안하도록 그렇게 해 놓고 연습시키는 거와 마찬가지로 이렇게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를 이래 뭐 가지고서 우리에게 하나님이 예비해 놓은 구원을 받도록 지금 받는, 이 구원을 받는 것, 법적으로는 내것 돼 가지고 있지마는 아직까지 내 심신은 전능의 심신이 안 됐다 말이오. 전지의 심신이 안 됐어. 안 됐으니까 이것을 받도록 할라 하니까, 받도록 하다가, 만일 하나님이 이 솜으로 밑에 해 놓은, 그물 위에 솜으로 펴 놓은 것같은 이런 것이 없는,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가 없다면 이거 받도록 하다가 하나님이 눈이라도 깜짝 졸든지 또 잠깐만 잊어버린다고 하면은 그 틈을 마귀란 놈이 타 가지고서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것,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것, 우리 정도에 넘은 것 그런 걸 하나만 꼭 찔러 버리면 우리는 턱 넘어져 버리고 만다 말이오.

그런 것이 하나도 없도록 이 보호하기 때문에 그걸 내가 비유해서 말하기를 이제 그 줄 타는 사람이 떨어지면 죽을터이니까 떨어져도 상하지 안하도록 밑에 그물을 쳐놓고 거기다가 솜뭉텅이를 이렇게 펴놓고 툭 떨어져도 아주, 떨어지면 또 올라가 또 하고 또 하고 이래 가지고 연습해서 마지막에는 줄줄줄 타고 다니도록 하는 거와 마찬가지로 이렇게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가 비유컨대는 이와 같은 것이다라고 지난밤에 많이 말한 것이 그런 것입니다.

이러나, 거게 대해서 생각지 안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도를 말할 때에 자기가 이미 깨닫고 받아 가지고 있는 속에 있는 사람은 여게서 도가 들어가면 안에 있는 도와 딱 마주쳐서 깨달아지고 아멘이 돼지는데 자기 속에 없는 것은 이거 안 들어갑니다.

안 들어가니까 자기 속에 없는 것은 이라면 그 속에 없는 것이니까 암만 말해도 들어가지 안하나, 속에 아멘이 안 되고 거부됩니다. 거부되나 이 말씀은 좌우에 날선 검과 같기 때문에 넣으면은 들어간다 말이오.

들어가니까 들어가 가지고서 그때는 거석하지만 들어가 가지고서 얼마 그 속에서 이것이 작용을 하요. 말씀이 들어가서 작용을 이렇게 하고 나면은 그다음에는, 그다음에 이 말씀을 들으면 속에서 이해가 돼서, 납득이 돼 가지고 아멘이 간다 그말이오. 아멘이.

이래서, 지금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 이거는 뭐이냐? 이거는 지난밤에 몇 가지를 말했습니까? 지난밤에 몇 가지 말했습니까? 세 가지 말했지요? 세 가지. 피, 성령, 진리라 말이오. 피, 성령, 진리.

피가 세 가지. 세 가지를 합해서 한 말로 피라고 말했고, 이거는 다 완성해 놓은 것, 이거는 대신 해서 완성해 놓은 거라. 대신 해서 완성해 놓은 것인데 이 완성해 놓은 이 완성과 나와 연결이 돼야 되는데 완성과 나와의 연결되는 건 누가 연결시킵니까? 연결시키는 것이 진리가 연결시키고 영감이 연결시킨다 말이오.

진리와 영감이 이 완성해 놓은 이것을 연결시키는데 이것이 지금 말세에 졸졸 나오는데, 그러면 진리 연결이 영감 연결이 되고 진리와 영감 연결이 사죄 연결이 되고 칭의 연결이 되고 화친 연결이 돼 가지고서 이 연결이 되어지는 것이니까 우리의 현실은 뭐이 나오는 것이냐? 우리의 현실은 뭐이 나오느냐? 예비한 구원이 나옵니다.

예비한 구원이 나오다니? 예비한 구원이 뭐인데? 우리 현실에는 이 피와 성령과 예수님의 대속과 나와 연결시킬 진리가 나옵니다. 우리 현실에는 나를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내나 피,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가, 사죄는 죄를 다 없애고, 칭의는 하나님의 전지의 율법을 다 완전 이행을 했고, 하나님으로 더불어 완전 화친 흠 없는 그것을 지금 베풀어 놓은 완성해 놓은, “다 이루었다” 하는 것은 우리 구원을 다 이루었다 말이오.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신 것은 우리의 대속이 다 이루었다 말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예수님이 다 하셨다 그말이요, 다 이루었다는 거는. 이 이루어 놓은 것인데 그 이루어 놓은 그것이 지금 우리 현실에, 이루어 놓은 이것이 우리에게 현실에 오는 것이라 말이오.

현실에 오는데, 뭘로 오느냐? 현실에 진리가 우리에게 와 가지고서 그 현실에 그 진리가 오는데 그 진리를 내가 통해서, 그 진리가 나에게 갖다 주는 예수님의 대속을 내가 받아서, 진리와 연결되고 보니까 진리 속에 대속과 연결되고, 또 영감과 연결되고 보니까 영감 속에 대속과 연결이 돼 가지고서 이제 이것이 완전 구원인데 이거 자꾸 연결되는 것이라 말이오.

그러면 우리 현실에는 뭐이 나오느냐? 진리가 나오고 영감이 나온다. 그러기 때문에 현실에 나오는 그 진리와 영감만이 현실에서 나와 연결되는 것이지 제가 뭐 백번 천번 진리를 외우고 뭐 알고 설교 많이 하고 암만 해도 소용 없습니다.

현실에 나오는 그 진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이 지금 나타나고 있는 거라 말이오. 구원이 나타나고 있는 거라.

그러면 진리가 나타나고 있으니 그 진리가 나타난 그 진리 내 진리 삼고 영감이 나타난 영감 그 영감 내 영감 삼고 그 둘이 나타내고 둘 속에, 진리와 영감 속에 싸 가지고 오기를 뭘? 진리와 영감이 뭐 싸 가지고 왔어요? 뭘 싸 가지고 왔어? 예수님의 피의 대속을, 완전 구원의 대속을 싸 가지고 온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그뭐 비유가 될란지는 모르지마는 아이들이 우리 어릴 때, 약이 쓰워서 안 먹을라 하면은, 안 먹을라 하면은 이거 뭣을 싸 가지고, 뭣으로 싸 가지고 이래 뭐 김으로 싸든지 뭐 채소로 싸든지 이래 싸 가지고서 그만 위에 지끈지끈 그래 가지고 꿀떡 넘어 삼키라 그래 가지고 거기다가 싸 가지고 먹이던 그런 일들 하더라 그말이오. 그래 가지고 또 요새는 뭐꼬? 비타민마다 다 뭘로 쌌습니까? 뭐 싼 것 있지? 뭐 녹는 풀 가지고 싸지 안했어요? 갑이라 하던가, 그걸? 피갑.

피갑으로 싸지 안했어? 비타민이면 비타민 그냥 먹으면 씨워서 용욕해서 못 먹어요. 피갑 속에다 싸 가지고서.그놈만 꼴딱 넘어 삼키면 그만 나중에 속에 가서 녹아진다 말이오.

그것 모양으로 이제 진리와 영감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지금 속에다 싸 가지고 왔다 말이오. 싸 가지고 왔으니까 내가 요 현실에는 뭐이 나타나느냐? 현실에는 예수님의 완전 구원, 사죄 칭의 화친 완전 구원을 싸 가지고 오는 진리가 현재 나타나니 그것이 뭐이냐? 예비되어 있는 구원이 지금 나타나고 있으니까 그때 네가 얻어야 된다. 그때 얻어야 된다.

그때 얻는 것은 아직까지 육체는 법적으로 얻었지만 실상으로는 못 얻었어.

얻어야 된다 이라니까 요 현실에서 진리를 얻어야 된다 하는 그것이 뭐이냐 하면은 진리 얻어야 된다는 것은 전지 전능을 얻어야 된다. 그러니까 그 현실에 전지 전능 조금 얻고 전지 전능 조금 얻고 자꾸 이래 가지고서 얻어서 이제 사죄가 내것 되고 칭의가 내것 되고 화친이 내것 되어 가지고서 되는 것이니, 그 현실에, 현실은 뭐하는 것이냐? 예비된 구원을 우리에게 나타내 주는 것이 현실이요, 우리가 그 현실에는 뭐하는 것이냐? 나타내 주시는 그 구원을 내가 내것 삼는 것이 그것이 우리 현실이라 그말이오.

그러니까 그때에, 이걸 얻으니까 이 구원을 얻으면은, 구원을 얻으면 우리 심신의 구원 얻는데 우리의 심신은 지금까지는 뭘 입고 있습니까? 우리 심신은 무엇의 것이 돼 가지고 있습니까? 사망의 것이 돼 가지고 있습니다. 악령의 것이 돼 가지고 있습니다. 악성의 것이 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그 악습에게, 악습은 뭐이냐? 본죄가 악습이라.

자기가 지어서, 자기가 지은 죄 뭉쳐 놓은 것이 그것이 악습입니다. 그것을 가리켜 본죄라 합니다. 그러면 악성은 뭐이냐? 악성은 에덴 동산에 선조가 짓던 그 원죄, 원죄는 뭐이냐? 하나님과 자기를 바꿔 버린 것이 원죄라. 하나님을 치워 버리고 자기가 하나님 된 게 그게 원죄라. 그러니까 악령 악성 악습에게 우리 심신이 붙들려 가지고서 우리 심신은 악령 악성 악습의 것이 돼 가지고 있다 말이오.

악령 악성 악습의 것이 돼 가지고 있으니 이놈이 지금 내 심신을 악령 제 마음대로, 악성 제 마음대로, 악습 제 마음대로, 제 마음대로 내 심신을 이용해 먹고 제것으로 삼아 가지고 이용해 먹는데 그러면 지금 그 목적이 뭐입니까? 목적이 우리 심신을 지옥에 가지고 가는 것이 그것이 저희의 목적이요 저희의 성공이라 그말이오.

이러니까, 이 현실에서 악령 악성 악습의 것이 되어 있는 심신의 이 기능을 이것을 성령과 진리와 피 세 가지, 피와 성령과 진리 이 셋의 것을 만들라 하니까 지금 피와 성령과 진리는 내 심신의 기능을 뺏들어서 그의 것을 만들라고 애를 쓰고 악령과 악성과 악습 이거는 뺏기지 안할라고 애를 쓰고, 그러면 지금 나는 어떤 틈바귀 속에 있느냐 하면은 이 하나는 옛날 주인 묵은 주인, 묵은 주인 그놈은 나를 안 뺏길라고 하는 거게서 자꾸 뺏지 말라고 나를 거머쥐고 팔을 거머쥐고 잡아 당기지 또 피와 성령과 진리는 내 팔을 거머쥐고 이리 와야 된다고 자꾸 이렇게 말하지 그 사이에 끼여서 죽을 지경이라 그말이오.

이래서 바울이 말하기를 “이 두 사이에 끼여서 내가 심히 곤고하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러니까, 이놈이 지금 이게 돼 버리고 나면 저는 이제까지 제 도구로 삼고 제 소유로 삼아서 마귀의 소유는 사망이 제 소유요 이제 멸망이 제 소유라. 그 권세라. 이러니까 제것 되었던 것을 내 줄라 하니까 내 주고 싶습니까? 안 내 줄라고 지금, 우리가 어려움당할 때에 환난에 큰 고통을 당하는 것은 누가 고통당하느냐? 내 마음이 고통을 당하는데, 내 몸이 고통을 당하는데 고통을 당하는 그거는 벌로 고통을 당할 게 아니라 잘 분석을 해야 됩니다. 요 진리를 모르면 못 이긴다 말이오.

그 고통을 당할 때에 내 마음이 고통당하고 내 몸이 고통하는데, 내가 고통당한다 말이오. 영 뭐, 영은 우리가 잘 모르는 사람은 몰라요. 자기라 하는 건 항상 그 심신을 자기라 합니다.

그러면, 자기가 고통을 당하는데 고통당하는 것을 가만히 분석해 보면 그 속에 고통당하는 것이 두 종류가 있어. 하나는, 하나는 이 현실에서ㅡ요렇게 배우지 못한 사람은 그걸 몰라도ㅡ요 현실에서 그 구원을 이루지 못할까 고통, 이 원청 고문과 고형이 어려움이 있으니까 이 구원 이루지 못할까 하는, 구원을 이루지 못할 이 일을 인해서 번민 고통당하는 그 고통이 있고, 또 하나는 지금 내가 지금 이라면은 죽는다, 이라면은 지금 망한다, 말씀대로, 말세에 나타내시기로 예비한 이 구원을 얻을라고 하면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이 망해지니까 망함을 인해서 고통, 망하는 그걸 인해서 고통, 또 하나는 뭐이냐 하면은 그게 망하는 것이 아니고 그게 성공하는 것인데 구원을 얻지 못할까 해서 고통, 그러면 이 고통이 한 사람 속에 두 가지입니다.

두 가지인데, 둘이 있는데, 자, 믿음이 장성한 사람은 어느 고통이 크겠습니까? 예? 저 뒤에, 어느 고통이? 믿음이 장성한 사람은 어느 고통이 크겠습니까? 이기지 못해서 구원을 받지 못할까 하는 고통이 더 크고, 또 믿음이 어린 사람은 어느 고통이 더 크겠습니까? 어느 고통이 더 크겠소? ‘이 믿음 지킨다가는 내 육체와 세상이 망한다’ 하는 그 고통이 더 클 것 아닙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그 고통이 더 크지 않습니까? 이게 여러분들 이해가 돼져야 돼. 그 고통이 더 큽니다.

그 고통이 더 큰데, 그러면 그때에 시험을 당할 때에 본인만 이길라고 하면은, 본인만 이길라고 하면은 본인의 실력 이상의 실력이 와 가지고서 그 사람을 패전하도록 만들지 못하도록 하고 있는 그것은 뭐입니까? 그것은 뭐이지요?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라 그말이오.

이러니까, 이러니까 이것을 참 구원을 많이 이룬 신앙이 좋은 사람, 신앙이 좋은 사람 그 좋은 사람이 당하는, 좋은 사람과 어린 사람이 있는데 어린 사람은 이쪽편의 고통이고, 또 신앙이 좋은 사람은 구원 이루지 못할까 하는 고통이고, 그러니까 그 고통이 전부 ‘구원 이루지 못할까’ 하는 고통이지 ‘이라다가 육체 망한다’ 하는 그 고통은 적다 그말이오. 적지 않습니까?

이러니까, 하나님이 그 구원을 줄 때에 믿음 장성한 사람의 당한 현실과 같은 그런 그 현실을 주면은 믿음이 어린 신앙의 사람이 그 구원을 받을 수가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없다 말이오. 그렇지 안해요? 없기 때문에 그것을 조절해 가지고서 신앙 어린 거는 어린 것으로 감당할 수 있고, 장성한 사람은 장성한 것 감당할 수 있고 이렇게 하기 때문에 그 시험이 다르다 말이오.

그러니까 꼭 같은 시험을, 꼭 같은 시험을 당했는데 장성한 사람에게는 웃음으로 그까짓 거 있거나 말거나 웃고 가고 약한 사람은 고통을 받고 간다 그말이오.

이것을 가리켜서 “감당치 못할 시험을 당치 않게 하신다” “주는 미쁘시사” “주는 미쁘시사” 그분은 참 든든히 우리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그분은 미쁘셔서 우리에게 감당치 못할 시험을 당치 않게 하시고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하는 걸 허락지 안하시요. 허락지 안해요. 누가 허락지 안해? 지극히 큰 능력이 딱 잡고 어림도 없어.

그러니까, 감당할 시험만 당하게 하는데 어떤 거는 보면은 미리 피할 길을 내서 주어 가지고서 감당하는 것도 있고, 또 미리 우리가 기도하고 준비해 가지고 미리 실력을 배양해서 감당하도록 하는 것도 있고 이렇게 한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만, 이 능력의 보호가 있기 때문에 자기에게 조절해서 딱 능력이 딱 거머쥐고 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 지금 전투, 그러면 우리가 전투 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악령 악성 악습으로 더불어 전투하고 또 피와 성령과 진리의 편이 돼 가지고 전투하고, 우리는 쪼개 가지고 있어. 악령 악성 악습의 것이 되어 가지고 있는 심신도 있고 피와 성령과 진리의 것이 돼 가지고 있는 심신도 있기 때문에 이제 여기에서 지금 싸움이 있다 말이오.

싸움은 누구하고 싸우느냐 하면은 악령 악성 악습과 이제 피와 성령과 진리와 이와 같이 지금 배경에 싸우고 있는데 그 일선에서 지금 당사자는 누구냐 하면은 우리 마음이요 우리의 몸이라 그말이오.

이래 지금 이렇게 싸우고 있는데 이 싸우는 것에 대해서 그 정도를 조절하고, 똑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로만, 감당한 시험 외에는 안 주고 감당할 수 있는 것으로만 준다 그말이오. 우리가 ‘나는 감당 못 하겠다’ 뭐 감당 못 하겠다고 떠들어 쌓아도 하나님께서는 전지 전능자가 감당할 수 있는 시험을 주지 감당치 못할 시험을 주지 않는다 그말이오.

그러니까, 그 시험을 줄 때에 미리 “피할 길을 내사” 하는 그 피할 길을 낸다는 그거는 뭐이냐 하면은, 피할 길을 낸다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우리가 미리 예비 기도하는 그 기도를 가리켜서 피할 길이라고 말하는 것이고, 또 피할 길 낸다 말은 그게 뭐이냐 하면은, 여게서 시험이 오기를 예를 더어서 한 자 높이, 한 자 높이가 가로막습니다. 한 자 높이가 가로막는데 피하는 길은 뭐이냐 하면, 한 자 높이가 가로막는데 내가 거기에서 두 자를 뛰어 넘을 수 있는 실력만 길러 놓으면 그거 다 피해 버렸다 말이오. 한 자 그까짓 것 있어야 뭐 슬쩍 지나 넘어가 버리지.

이게 뭐이냐 하면은 우리가 기도로 되는 것이고, 하나님의 도움을 자꾸 구해 가지고 도움으로 되는 것이니까 기도로 되는 것, 기도 많이 한 사람은 그 시험을 많이 당해 봐요. 시험을 실지로 당하는 게 아니라 그와 같은 예비 시험을 자기가 기도 명상 가운데 수십 번 겪어봐. 수십 번.

그러니까, 이 공산주의 고문 고형하는 것을 수십 번 겪어봐서 공산주의가 아예 지금할 터이니까 이만침 많이 우리 시험을 할 것이다 했는데 그 사람은 기도로 벌써, 기도로 이만침 마귀가 시험할 것을 그 사람이 기도로 막 이만침 지금 시험을 당해 봤다 말이오. 여러번 당해 보니까 나중에 ‘그런 시험이 올 것이라’ 하고 보니까. 이거 오니까 항상 ‘이거는 시험이 아니지, 이거는 아니고 이보다 더 큰 시험 오지, 더 큰시험 오지.’ 자꾸 이렇게 기다리고 있는데 나중에 그걸로 지나 가니까 ‘아무 어려움도, 나는 아무 고통도 당하지 안하고 어려움도 당하지 안하고 아무 뭐 시험도 되지 안하고 지나갔다. 내게는 그 시험이 안 왔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나를 불쌍히 여겨서 내게 시험하지 안했다.’ 그말이오.

벌써 시험의 실력을 길렀기 때문에 그것이 시험이 되지 안했다 그거요.

그러니까, 그거 뭐이냐 하면 이미 예비 기도하라 할 때 예비 기도를 하지 안한 사람은 그렇고 예비 기도하고 그대로 조그만한 시험에 자꾸 연습한 사람은, 예비 시험에서, 예비 시험에서 확실히, 예비 시험을 확 통한 사람은 그 실지 시험 웃으며 치지 그럴 것 뭐 있어야지? 그러니까 시험칠 때 다른 사람, 요새도 그럴 거야. 저는 학교서 공부다닐 때, 시험 칠 때 그 날은 운동장은 내 운동장이라. 시험 딱 문제 나면 벌써 딱 요래, 쓰지는 안해도 요래 딱 보고 ‘써라’ 하면 다 알고 있기 때문에 잠깐 잠깐 이래 써 가지고 한번 잠깐 보고서 그라면 다른 사람 지금 둔한 사람 시험 문제 읽어 보기도 전에 벌써 다 답안 썼다 말이오. 그러면 제일 먼저라. 언제든지 제일 먼저 첫째 아니면 두번째라. 첫째 갖다 넣어 놓고 나면 운동장에 아무도 없어. 공이 있거든. 그거는 한 시간 내 공은 나 혼자 가지고 노는 거라. 가지고 놀아. 이래 한참 가지고 놀면 또 다른 사람 하나 들어오면 둘이 가지고 놀고 또 서이 가지고 놀아. 공은 학교에 하나뿐인데 그뭐 약한 사람은 차지 못해요. 그런데 그때는 독차지라.

그 시험을 미리 준비한 사람은 그거 시험 시간이 제일 편하고 즐겁고 영광스럽고 기쁜 날이라 말이오. 그 시간이 기쁘고 시험 준비 안 한 사람은 시험 치는 그 시간이 제일 고통이고, 준비 많이 해 놓은 사람이면 그 시간이 제일 영광이고 기쁨이라 그말이오.

이러니까, 우리가 요것을 깨닫고 능력의 보호가 우리에게 있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나만 하면 되는 것. 나만 다 하면 되는 것 고것을 우리가 믿어야 됩니다.

능력의 보호가 있기 때문에 나 할 일만 하면 다 돼요. 그 피해 없어요. 밑에 이래 딱 받쳐 가지고 있어요. 상하지 안하도록 다해 가지고 있어요. 나 할 일만 하면 돼요.

나 할 일만 하면 되는데 뭐 하느냐?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 그러면 현실에 나타나는데 현실에 나는 것 뭐합니까? 그거 이제 진리와 나와 연결을 시켜. 현실에서만 진리와 나와 연결되지, 그러면 연결이 됐다고 다 됐습니까? 무한한 진리 남아 있어. 현실에서만 지금 내가 진리와 연결돼. 그 현실에 진리와 나와 연결되고 영감과 나와 연결되고 예수님의 사죄 칭의 화친과 나와 실상으로 연결, 실상으로 연결되는데 그 연결되기를 지난밤에 내가 두 쇠를 이래 대고서 이 용접을 할라 하면은, 이 둘이 용접할라 하면은 뭐 전기 용접할라 하면 막 찌르르 하며 튀튀튀튀 불이 터지고 이라지 안해요? 그라면 딱 연결이 용접이 돼. 이와 마찬가지로 현재에 이거 연결이 될라하니까 거게서 막 찌륵찌륵 하고서 불이 튀어 나오고 야단을 지기는데, 그러나 능력의 보호가 있기 때문에 조절을 하니까 우리가 감당하지 못할 그런 시험은 닥치지 안하도록 하나님께서 다 하신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나만 하면 돼. 다니엘이 사자 입 막은 것 아니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불기세 막은 것 아니라. 아니고, 저 할 일만 하니까 저 할 힘 외의 거는 하나님이 다 해 주셨다 말이오. 제 할 일 그 외의 것은 다 해 주셨어. 이게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를 우리가 입었다 말이오.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를 입었다” 그 말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믿음은 내가 ‘믿습니다’ 믿음이 있어야 됩니까, 그 믿음은 내 믿음입니까 하나님이 주신 선물의 믿음입니까? 선물의 믿음이라, 선물의 믿음.

그걸 가리켜서 믿음의 씨라 그렇게 말해. 믿음의 씨라 그래 말했어.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삼십 분씩 기도하는 거 잃지 말고 꼭 계속합시다. 이것이 지금 시험을 피할 길을 주시는 것이고, 또 이기는 그런 실력을 마련케 하는 것입니다. 지금 뭐 삼십 분 기도하는 것 그게 거석해서 안 하는 사람들 뒤에 큰 낭파당할 것이오. 이제 삼십 분 기도한 사람은 그때, 그 실상 시험을 이긴 사람들은 다 시험인 줄을 모르고 웃으며 이겼어.

왜정 말년에도 그 시험을 이기면서 어려움 없이 ‘더 큰 게 왔으면 좋겠다’ 하는 사람 있고, 그 최덕지 선생 내가 말을 직접은 안 듣고 들었는데 같이 있던 사람, 같이 있던 사람이 나한테 말을 하는데, 그이는 항상 조금 더 바라기를 ‘좀 더 한 게 왔으면, 좀 더한 게 왔으면.’ 자꾸, 더한 게 왔으면 더 주님을 위해서 더 고통되는, 더 고통되는 그 고통이 오기를 원했지 ‘이 고통이 물러갔으면’ 하는 그런 생각을 한번도 안 가졌답니다.

뭐 그때 여기 남반들 이기고 뭐 한 그런 사람들은, 뭐 ○○교파에 이긴 그런 분들은 참 거기다 비하면은 부끄러워서 머리를 못 듭니다. 그러니까 그때 ○○교회가 나설 때 ○○교인들이 말하기를 ‘너거 마귀당이라’ 했어.

○○교회가 여기 뭐 이거 모두 다 ○○○목사님이니, ○○○목사님이니 뭐 이런 분들 말할 때에 ‘마귀당아, 마귀 새끼야.’ 대해서 마귀 새끼라 해요.

○○○목사님에게.

마귀당이라 하는 거, 내가 ○○교회 집회 갈 때 ○○○목사하고 둘이 오니까 그 사람들이 만나서, 이래 떡 만나 가지고서, 만나 가지고 척 말하기를, 안 믿는 사람은 그 말 안 해요. 만나 가지고 ‘마귀 새끼, 쉬, 물러가거라.’’ 이래, 가니까. 이 길을 가니 이래 서로 바꿔 가면서 ‘마귀 새끼야 물러가라. 쉬.’ 하고 지내가요.

이라니까, ○○○목사님이 있다가서 ‘그래. 자기네들 말이 옳기는 옳다. 참 우리는 마귀 새끼다.’ 그라면서 설명을 해요. 그분들은 황거요배 안 할라고서 그 내치 감옥에 나올 때까지 고랑을 그 여름에도 차고 있었어. 살이 다 썩어서 구더기가 있지만 구더기 있고 그뭐 그러니까 얼마나 쑤시고 아프겠습니까? 요 딱 매어놓으니까 뭐 꼼짝이나 할 수가? 요래 감옥에 늘 고랑을 채이고 있다가서 나왔고 이분들은 그거 할라고 당하다가 당하다가 못 견뎌서 황거요배를 하고 거게서 신사참배 안 하고 있었다 말이오. 그거 다 그 현장에 자기네들 다 겪었으니까 그 앞에야 머리를 들 수가 있어야지? 이러니까 ‘마귀 새끼, 마귀당들아. 마귀 새끼.’ 말 안 하고 이렇게 대항해도 그 앞에서는 말을 못 했더라 그말이오. 인제 이 앞에 하늘나라 가면 그게 다 나타나요.

이러니까, 자기가 요만치 있고 외의 칭찬 받은 것, 외의 칭찬 받은 것 외의 높임 받은 것 이것 참 뒤에 가서 게워낼라면 큰 일입니다. 나는 외의 칭찬 받는 게 뭐냐? 개명교회 있을 때라도 그랬는데 교인들이 다 잘 믿어서 내가 그랬고, 지금도 이거 교회 부흥되는 것은 모두 반사 선생님들, 권찰님들 이분들이 전도해서 심방해서 그렇지 나는 가만히 앉아서 전도도 안 하고 있으면서 다 다른 사람들이 ‘아따 그분 목회 잘했다’ 목회는 딴 사람이 하고 있는데 목회 잘했다 이래 칭찬 받으니까, 그래 내가 늘 그전에 말했어. ‘나는 앞으로는 지금, 안 하고 칭찬받았기 때문에 하고 욕 얻어먹는 이 욕이 있어야 내게 이 굴지가 메이지 앞으로는 하고 욕 얻어먹는 그 시기가 오고 그것이 이제 남은 때에 있어야 되지 그거 안 되면 하늘나라 가서 부끄러워 못 견딜 것이다’ 이라는데, 그 욕 얻어먹는 것, 어떤 분이 뭐 신고함에 써 넣었는데 오만 욕을 다 해 놨어, 막. 오만 욕을 다 해 놨는데, 그걸 보고 ‘나는 이 욕 얻어 먹을 사람이니 이런 욕을 가지고 좀 때워서 좀 면할 것인가?’ 그래 싶어서 일변적 기쁩니다. 오만 욕 다 써 놨어요. 뭐 흉측하고 추접하고 한 그런 욕 다 써 놔. ‘뭐 같은 놈 뭐 같은 놈아’ 이래 가지고서 막 욕을 많이 써서 넣어 놨어. 지금 내가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 볼라 하면은 내가 보여 줄 거고.

그런데, 참 그런 욕을 얻어먹을 만한 자인데 지금 칭찬받고 있으니까 이제 지금부터는 욕 얻어먹을 일 안 하고 욕을 얻어먹어야 그 굴지가 메여지겠어요. 혹 그게 댓가가 치러질까 그런 생각 했어요.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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