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관


선지자선교회 1985년 8월 2일 금야 

 

본문 : 창세기 5장 21절∼24절  에녹은 육십오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드셀라를 낳은 후 삼백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삼백 육십오세를 향수하였더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 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우리가 날 중에는 제일 귀중한 날이 주일날이라는 것을 늘 말하고 있고, 또  시간 중에는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시간이 제일 귀중한 시간이라는 것을  우리가 늘 말도 하고 또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렇게 알고 있는 지식과  그 실상이 어느 정도인지 그것을 우리가 늘 살펴서 정확한 판단을 가지고 참 날  중에 귀중한 날로 시간 중에 귀중한 시간으로 이렇게 진실되이 알고 그대로의  사람이 되어지면 살고 그것을 무시하면 우리는 다 실패합니다.

물론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이 중요하지만 진리를 아는 지식이 중요한 것은  그대로 행하면 구원이 되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지 그 지식을 그대로 행하지  아니하면 우리를 심판해서 정죄해서 멸망시키기 때문에 우리는 그 아는 것이  우리에게 해가 되지 유익될 것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저 참 형식적으로 예배드릴 때에는 찬송 한 장이나 두 장  하고 또 기도하고 또 성경 읽고 성경 해석하면 설교 잘 한다. 못 한다 그렇게 한  논평이나 하고 좀 나으면 설교에 대해서 그 시간 이렇게 살아야 되겠다 하는 그  마음 그 시간에 가지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이것도 다 좋지만 그라고 나서는  그만 잊어 버려서 그 말씀과 나와의 아무 관련 없는 그런 사람이 된다면 우리는  예배드리는 것이나 하나님 말씀을 들은 것이나 내가 안 것이나 그런 것이 다  소용이 없는 것이 됩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예배드리는 이 시간에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세우시고 말씀을 하시든지. 마태복음 23장 1절 이하에 말씀하신 거와 같이  '너희들이 바리새교인과 서기관들의 말을 들으라 하나남께서 그들을 모세의  위치에 앉혔으니' 하는 말은 하나님 백성들을 통솔하시고 인도하시는 그 위치에  하나님이 앉히셨은즉 그들의 말을 무엇이든지 듣고 그대로 행하라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종들을, 그 종이 뭐 볼품이 있든지  없든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교회에 하나님의 종으로 세우시고 하나님 말씀을  증거하게 할 때에는 우리가 하나님이 세우신 것인 것을 알고 우리는 강단에서  증거하는 그 말씀을 심각히 들어서 그 말씀과 내 지식이 하나가 되고, 또 그  말씀과 내 모든 욕망이 하나가 되고 또 그 말씀과 내 행위가 하나가 되도록  우리가 이 일을 힘써서 이루도록 해야 되겠고, 그러면, 그 일을 했으면 우리는  다 했다고 생각하는가? 다했다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말씀대로 행동하는 그  소망은 어디 있는고 하니 말씀대로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은 내가 그 지식을 내 지식으로 가지기  위해서 듣는 것이고 또 그 지식을 내 지식으로 가지는 것은 내가 그 지식대로  모든 언행심사의 행동을 하려고 그 지식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 지식이 소원하라  하는 대로 소원하고 그 지식이 희로애락을 하라 하는 대로 희로애락을 하고 그  지식이 내게 시키는 대로 내 마음도 생각도 모든 몸도 움직여서 그 지식대로  행동하기 위해서 그 지식을 내가 갖추어 가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그 지식대로 말도 하고 행동도 하고 생각이나 모든 언행심사를  그 지식대로 했다고 하면 우리는 다 한 것인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언행심사의 행위를 하는 그 목적은 어디 있는 고 하니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만일 그 사람이 하나님 말씀대로  행동을 했다 할지라도 그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변화되는 일이 없다고 하면  그 행동은 아무 소용이 없는 외식이 되겠습니다.

또 그 사람이 아무리 그 지식을 가지고 자기가 있어서 달통하고 있다 할지라도  그 지식 가진 것이 그 지식대로의 행동이 되지 안한다고 하면 그 지식은 그  사람에게는 정죄의 율법이 되지 아무 은혜 될 것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예배의 잘못된 습성을 완전히 고쳐야 하겠습니다. 예배의  잘못된 습성을 완전히 고쳐야 합니다. 이거 안 고치면 우리는 참 성경에  말하기를 죽음에서도 기뻐하고 환난 중에서도 기뻐하고 감옥에서도 기뻐하고  어제든지 항상 기뻐할 수 있는 것이 기독자의 생활이요, 항상 강하고 담대할 수  있는 것이 기독자의 생활이요, 어떤 데서라도 청청하고 인생의 결실을 맺을 수  있는 것이 기독교인데 우리가 이 은혜를 바로 받지 못하고 바로 믿지 못한다고  하면, 우리 믿는 사람들은 도리어 이 세상과 마찰되는 벌써 세상을 이별하고  나온 사람들입니다. 주님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을 세상에서 내가 불러냈다.

너희가 세상에 있으면 저희 것이라고 해서 사랑하고 기뻐하지만 내가 너희들을  세상에서 불러냈기 때문에 세상은 너희들을 미워하게 된다. 너희들을 미워하는  것은 너희들만 미워하는게 아니라 너희들을 불러낸 나를 먼저 미워하고 그  다음에 너희들을 미워한다. 나를 미워하는 것은 나를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를  먼저 미워하고 그러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아버지가 당하는 미워 내가 당하는 미움 너희들이 당차니까  그것이 얼마나 족하고 얼마나 영광이 되느냐'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우리는 이 거치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얼마든지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평안하고 강하고 담대히 살아갈 수 있는, 참 지상의 행복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기독자들인데, 세상을 초월해서 세상을 발 아래 두고 세상이 따라오지  못하는, 세상이 우리와 상관하지 못하는, 세상을 초월한 영원한 한없는 행복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우리들인데 이 예배 시간에 은혜를 받지 못하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항상 괴로운 사간이 되겠고 불만 불평을 품지 안할 수 없는 사람이  되겠고 원망하는 사람이 되겠고 가장 불쌍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에 사도 바울이 말하기를 만일 우리에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  은혜가 아니라면 우리는 세상 모든 사람 가운데에 가장 불쌍한 사람이라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온갖 그 은혜, 우리에게는 영생도 있고  부활도 있고. 또 하나님과 동행하면 이상한 모순 같은데 납치된 그런 일이  있습니다. 누가 봐도 우리가 저거 예수 때문에 손해 본다 하는 그 손해 본다는  그것이 손해가 아니고 그것이 참 진짜 알맹이 유익이 되는 그 비밀이 우리  기독자들에게는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이 세상을 참 행복되게 살려고 하면 그 행복되게 사는 그  능력을 어디서 받는가? 시간 중에는, 모든 시간 가운데는 예배드리는 시간이  제일 중요하다 하는 그 예배 시간에 그 은혜를 우리가 받습니다. 이 은혜를  받으면 세상을 기쁨으로 살아갈 수 있고 또 세상에게 누를 끼치지 안하고  세상에게 영원히 환영을 받을 수 있는 생활을 살아갈 수 있고 담대히 평안히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세상이 빼앗지 못하는 그런 기쁨으로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대구에 십자가 노인이라고 있었는데 지금은 다른 데 가고 없습니다. 언제든지  역에 가면 십자가 깃대 들고 그 사람은 거기 다니면서 예수님을 전하고  다녔습니다. 그 사람은 차도 언제든지 그만 다 인정해서 차비 없이 타고 또  어디든지 가면 십자가 깃대 들고 전도하고 그렇게 지내는데. 그 사람을 내가  하룻밤에 같이 자면서 물어보니까 자기는 그렇게 다니려고 하면 마찰도 있고  몽둥이 맞는 일도 있고 갇히는 일도 있고 또 발길로 차이는 일도 있고 욕  얻어먹는 일도 있고 어떨 때는 그만 볼끈 묶어 가지고 사람 없는데 쳐 박아 놓는  일도 있고 했을 건데 '어떻게 지냅니까?' 그라니까 그분이 말하기를 '나는  집에서 나설 때에 언제든지 내가 오늘 전도하고 도로 집에 돌아가리라 하는 그런  생각은 내가 아직까지 한 번도 가져 보지를 못 했습니다' 그런 말 합디다. 그런  말 하고, 또 하나 말하는 것은 '주님은 나한테 이렇게 큰 사랑을 베푸셨는데  나는 주님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아직까지 죽기까지 사랑 못 했으니까 나도  주님을 사랑함으로 죽을 수 있는, 죽기까지 주님을 사랑할 수 있는 그런 기회를  하나님이 주셨으면. 참 좋겠다 그것만 소원하니까 항상 소원에 미달돼서 행여나  소원하는 그 소원이 되어 질까 하고 기다리다 보면 그만 처음에 시작하다  흐지브지 말고 이래서 항상 마음에 주님에게 대해서 늘 황송하고 불만스러운  그런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하는 것을 하룻밤, 같이 지내면서 얘기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렇게, 사도 바울도 그는 항상 기뻐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참 말할 수 없는  그런 여러 가지의 어려움을 당한 것을 고린도후서에 말씀했는데, 당했지만 그는  항상 기뻤습니다, 감옥에서도 항상 기뻤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항상 기뻐하라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빌립보서 4장에 말씀을  하셨습니다. 항상 기쁘게 살 수 있고, 또 모든 성경에 기록된 성도들을 보면  그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역경에서도 언제든지 기뻐 즐거워서  살았는데 우리는 이 기쁨을 우리가 가지기는 가졌지만 이 기쁨 이 자주 변동이  됩니다. 이래서, 기쁨을 잊어 버렸다가 또 도로 찾았다가 잊어 버렸다가 도로  찾았다가 이렇지 잊어버리지 않고 가질 수 있는 그런 항상 기쁜 이 기쁨을  가지지 못하는 우리들인 것을 우리는 항상 반성해서 탄식할 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그 모든 성도들이 상상도 못 할 그런 역경에서도 기뻐하고  즐거워했는데. 순교자 복자전이라는 그 책이 지금 아마 나와서 많이 유행됐을  겁니다. 그때는 그 책이 별로 없었었는데. 그 책에 보면 순교한 사람들만 다  기록을 해 놨는데, 그 순교한 사람들이 형언도 못 할, 말도 하기 어려운 그런 참  아주 심히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그런 어려움을 다 당해서 순교할 때에 순교하는  사람들이 모두 기쁘고 즐거워했지 그 기쁨을 아무도 꺾지를 못했습니다. 그  순교는 로마 교회에서 차차 자라나와 가지고 천주교가 시발되고 또 천주교를  반대하고 이라는 그때에 그 신앙가들의 모든 순교자들의 순교입니다.

 그러기에 모든 사람들이 참 상상도 못 할 그런 형벌 가운데서도 모두 다  기뻐하고 즐거워했습니다. 또 성경에 기록한 모든 선지자들이나 사도들이나 모든  성도들을 봐도 그들의 전기를 보면 참. 사람이 이해 못 할 그런 기쁨과 즐거움을  누렸고 담대함을 가겼고 또 용감스럽게 그 역경에 대해 승리를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자신들은 혹 그런 참 씩씩하고 깨끗한 그 신앙생활 아주 세상  성도들에게 빛과 양식을 주는 그런 깨끗한 신앙 승리 행위를 다 원하기는 원하고  있으나 그 행위를 하지 못하는 것이 아마 우리 기독자들에게는 다 탄식이고  갈망이 되는 줄 압니다.

 기독자 쳐놓고 죽음에서도 주님을 사랑하고 어떤 경제의 어려움에서도 주님을  사랑하고 몸에 어떤 처형이 와도 주님을 사랑하고 어떻게 억울하고 애매한  매장되는 그런 가운데서라도 주님을 사랑함이 변치 않기를 다 원하고 있는 줄  압니다. '어디서든지 주님을 사랑함이 변치 않게 해 주옵소서. 주님을 제일  두려워함이 변치 않게 해 주시고, 주님을 제일 높이는 이 높임이 변치 않게  하시고. 주님을 사랑함이 변치 않게 하시고. 주님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주님에게  복종하는 이 복종이 변치 않게 해 주시고, 어떤 환경과 상대를 만나도 주님이  우리를 안보하고 계시기 때문에 평안하고 즐겁고 강하고 담대한 이 담대함이  요동치 않는 그런 믿음을 주시옵소서.' 하는 아마 그 믿음의 간구를 안 하는  성도들이 하나도 없을 줄 압니다.

그러면, 이런 간구를 우리가 하는데, 어떤 성도들은 그렇게 은혜를 입어 가지고  참 우리가 그 전기를 읽어 볼 때에 마음에 기분이 좋고 양식이 되고 찬 아주  마음에 우리가 다 힘이 날 만치 그렇게 깨끗하고 아름다운 토막을 자기가 생활해  낸 그런 걸 볼 때에 아주 부럽기도 하고 마음에 아주 감사하기도 하고  상쾌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런 분들이 다 어디서 그 능력을 얻었을까 하는 그것을 좀 궁금해서  저도 생각해 봤습니다. 자, 그분들이 그 능력을 어디서 얻었을까, 그렇게  경제면으로나 신체면으로나 또 자기의 사업면으로나 출세면으로나 명예면으로나  자기의 무슨 행락이나 안일면으로나 가정면으로나 뭐 사회면으로나 뭐 모든  그거야 뭐 말할 수 없이 다 다각의 그런 면들을 우리가 다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세상입니다.

그러면, 이런 여러가지 좋은 것도 있지만 참 나쁜 것도 있는 이 다종 다각의 이  면을 가지고 사는 우리들로서 어떻게 변하든지 어떤 것을 가지든지 주님에게  대한, 주님에게 대한 내 신앙이나 소망이나 두려워함이나 섬김이나 사 모함이나  위함이나 그분으로 인해서 기뻐함이나 또 그분을 믿음으로 인해서 그분을 인해서  평안하고 든든함이나 이런 것이 변동되지 안하기를 원하는 그런 소원은 아마  성도들이 다 가지리라 생각됩니다.

 혹 그런 소원을 해 보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그런 소원을 지금이라도 가지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소원을 가지고 그런 사람이 돼야 되지 그런  사람이 되지 못하면 앞으로 우리에게는 어떤 일이 부딪힐지 모르니까, 우리가  주여 주여 한다고 하지만 나중에는 주님을 배반하고 참 아주 가룟 유다와 같은  그런 자가 될는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쨌든지 우리는 그렇게,  요동치 않는 반석 같은 믿음. 세상을 이기는 믿음, 다니엘 같은 믿음, 요셉 같은  믿음, 아브라함 같은 믿음, 사도 바울 같은 믿음 엘리야와 같은 그런 믿음,  다니엘 같은 믿음 이런 믿음을 우리가 가지기를 원하는 마음 우리가 가져야  됩니다. 그런 믿음을 하나님에게 달라고 자꾸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기도할 때에 우리가 기도는 간단하게 해야 된다 간단하게 하자 하는 것을  그것을 며칠 동안 공부했습니다. 그저 기도를 길게 하다 보면 그만 바람이  빠져서 거기 하나님이 들어 주실 만한 믿음도 새 나가 버리고 간절도 새 나가  버리고 소원도 새 나가고. 말만하지, 소원도 없고 입만 놀리기 쉬우니까  어쩌든지 기도는 간단하게 해서 믿음도 고게 알차고. 믿음도 알차고 소원도  알차고 간절도 알차고, 성심성의도 알차고 그 알찬 것이 그것이 변동되기 전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하옵나이다. 아멘' 요래서 끝을 맺어 버리자 요렇게  이제 기도하는 기도식을 우리가 얼마 전에 공부를 했습니다. 거기 대해서  통쾌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다, 속으로 가지고 있겠지만, 내가 듣지 못했는데  오늘 내가 누구를 만났는지 그런 기쁜 소식을 들었습니다. '아, 참 기도를 길게  하지 안하고 기도를 간단하게 해야 된다는 참 기도의 비밀을 우리가 하나님께  배워서 참 기쁘다' 고. 그렇게, 기도를 그렇게 하니까 힘이 있고 밤새껏  기도해도 기도할 것이 있고, 기도하고 나니까 또 기도할 것이 나오고 또 기도를  그래 하고 나니까 또 기도할 게 나오고 이래서 밤새껏 기도해도 피곤치도 안하고  자꾸 힘이 나서 기도를 하 그 그렇게 힘이 나지고 자꾸 이렇게 되더라 그렇게  말하는 사람. 내가 오늘 누구에게 듣고 마음에 기뻤습니다. '이 사람이 이제  깨닫고 거기 대해서 은혜를 입었구나' 뭐 다른 사람은 말해 봐야 항상  강단에서는 백 목사는 설교하는 사람이니까 '만날 하는 설교' 이렇게 듣지 거기  대해서 그렇게, 실상으로 들어 가지고 이 들은 말씀으로 인해서 자신의 마음이  변해지고 생각이 번해지고 모든 행동이 변동되고 이렇게 사람이 변동될 만치  이렇게 크게 자극성 있게 듣는 사람들이 심히 적은 것이 그것이 참 우리의  불행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모든 사람들이, 그러기에, 능력있는 큰 믿음을 가지고 세상을  부러워하지 안하고 세상에게 끌려가지 안하고 세상에 담대히 세상을 다스리고  세상을 점령하고 세상을 자기 것으로 삼는, 닥치면 세상을 제것 만들고 닥치면  세상을 제것 만들고 닥치면 세상을 제것 만들어서 닥치는 대로 세상을 자기  세상으로 만들어 버리는 이런 신앙의 사람들이 있는 것을 우리는 부러워하는  맘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세상을 자기 것 삼는다 그 말은 나는, 세상은 내 세상은 내 현실인데 내 현실을  대했을 때에 나는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대로 살라고  하는데 세상은 나를 그대로 살지 말라고 달래다가 꾀우다가 왈 기다가 쥐 박다가  이렇게 합니다. 세상은 날 하나님이 내게 이 세상에 대해서 네가 이렇게  해라시키시는 대로 나는 세상을 대해서 살라고 하는데 세상은 그렇게 살지  말라고 살지 못하게 이렇게 강압하고 강제합니다.

이러니까, 나는 그 세상에 대해서 하나님 말씀대로 살라고 하고 세상은 그렇게  살지 말라 하고 둘이 시비 붙는 것이 그것이 믿음의 싸움입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입니다. 이럴때에 어떤 사람은 그만 세상이 그러니까 세상에 픽 져 가지고  세상이 하라 하는 대로 하고 하나님 말씀을 배반해서 세상에서 세상에게  졌으니까, 세상에 졌으니까 세상의 종이 돼 가지고 세상에게 점령을 당하고  말았지만 믿음의 사람들은 그럴 때에 세상이 뭐라고 뭐 어떻게 하든지 말든지  저는 제 할 일 제 하고 꼭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세상에 대해서 그렇게 행하는  것으로 그 현실을 딱 통과해 버리니까, 이 사람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했으니까 세상을 이겼고 세상은 그 사람을 말씀대로 하지 못하게 하다가서  하지 못하게 못 했으니까 세상은 져 버리고 세상은 종이 됐고 자꾸 그 사람은  세상을 점령한 사람이 됐습니다. 이렇게 살아 나가는 이런 사람들의 신앙을  우리가 부러워하고 그렇게 되기를 원해야 되지 그런 거는 원하지 안하고 썩을  것만 자꾸 원해서 암만 해봤자 썩을 거 이런 거만 원하는 그런 사람들이 되어  있는 것은 참 우리가 탄식입니다.

 그러면, 그렇게 모든 성도들이 그런 능력을 어디서 얻었을까? 세상을 이기는  그런 믿음을 어디서 얻었을까? 얻었으면, 세상을 이기는 그런 믿음을 어디서  얻었을까? 얻은 장소를 알면 우리도 그 장소에 가 가지고 세상을 이기는 믿음을  우리가 얻어야 되겠고.

그러면, 세상을 이기는 믿음을 어떤 방편으로 가지고 그 믿음을 얻었는가?  그러면 그 방편을 우리도 배워 가지고 그 방편으로 우리가 세상을 이기는 그런  이김을 우리가 받아야 되겠습니다. 장소나 그러면, 시기로 말하면 어느, 어느  시기에 봄인가 여름인가 가을인가, 어느 계절에, 어느 시기에 이제 세상을  이기는 그런 믿음을 받는가? 그 시기를 우리가 안다면 그 시기를 기다리고  찾아가 가지고 받도록 해야 되겠습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세상을 이기면  세상은 내것 되는데, 세상이 날 이기면 나는 세상 것이 되고 마는데, 그러면  내가 세상 것이 되어서 세상이 망할 때 나도 망할 건가, 내가 세상을 이겨서  세상을 내것 만들어서 세상이 망할 때 그것은 내가 망하지 않는 영원한 내  세상으로 내것으로 가지고 가도록 그렇게 할 건가? 참 우리에게는 포부가  큽니다. 아주 포부가 포고 희망이 크고 아주 소망이 지극히 큽니다.

 그런데, 이것을 가만히 생각해 봤습니다. 자, 어느 장소에서, 어느 때에, 어떤  방편으로 이런 모든 믿음의 능력들을 얻었던가? 그것을 성경에 기록된 그런  사람들을 성경 인물들을 연구해 보든지 또 모든 이 교회사에 기록 돼 있는 그런  인물들을 연구해 보든지 연구해 보면 그것은 다 그 능력얻은 것이 꼭 같습니다.

같은 자리에서 얻었고 같은 시간에 얻었고 같은 방법으로 얻었습니다. 따른 데서  얻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면, 그 방법이 뭐인가? 그것이 세상들이 업수이 여기는 그런 방법인데 거기  있습니다. 그거 뭐인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때입니다. 예배드리는  때입니다. 예배드린다는 예배드리는 것이 어떤 게 예배드리는 건가? 예배드리는  것이 모여 앉아 가지고 찬송하고 기도하고 또 성경보고 설교하고 하는 이것만을  예배보는 것으로 한다고 생각하지만 여기에서는 껍데기가 많습니다. 껍데기가  많고, 예배는 어떤게 예배인가? 하나님과 나와의 교제하는 그것이 예배입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교제하는 거. 에덴동산이 예배입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교제하는 그 교제하는 그 시간, 교제하는 그 행동 그것이 중한 시간인데 그것을  가리켜서 예배시간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를  찾느니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들을 찾느니라.'  예배는 우리 정통에서 예배 의식으로 말하면 예배 의식은 어떤 것을 정통들의  예배 의식이라 이렇게 말하느냐 하면 찬송하고 기도하고 성경 읽고 성경에 대한  뜻을 깨닫고 자기가 거기서 은혜 받는 이것이 예배입니다.

그러기에, 이단이라고 하는 것은 예배 의식이 찬송하고 성경보고 또 기도하고  설교하고 또 거기 대해서 은혜 받아서 사은의 기도를 하고 그래 마치는 것이라면  그 예배 의식이 다 정통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배 의식이 그렇다고 하면 그것을 이단이라고 하지를 못합니다.

천주교를 타락했을 때에 '이단이라고 말한 것은 천주교가 예배 의식을 완전히  변경했습니다. 거기에는 이 순서가 없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전도사 인허에나 목사 시취 문답에서 문답할 때에 이  예배 의식과 예배 조리를 이대로 다 옳다 인정하고 받아들이느냐 하는 그것을  문답에서 묻습니다.

그러기에, 예배는 이렇게 하나님 앞에 찬송하고 기도하고, 찬송 기도 성경 읽고  그러면, 자기가 혼자만 깨닫든지 또 다른 사람이 깨달은 것을 해석을 하든지,  성경 깨달음, 찬송 기도 성경 깨달음 그 다음에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거 이것이  예배입니다.

 그러면, 모든 성도들이 어디서 다 그런 능력 얻었느냐? 찬송하고 기도하고  성경보고 깨닫고 기도하고 하는 여기서 전부 능력 얻었습니다. 딴 데서 얻지를  못했습니다. 얻지를 못했는데, 그렇게 하는 것도 혼자도 그렇게 하고 또 둘이  모여 앉아 가지고도 그렇게 예배드릴 수 있고. 혼자도 예배드릴 수가 있고, 또  몇 백 명 몇 천 명이 모여, 몇 만 명이 모여 가지고 예배드릴 수도 있고,  그런데, 성경에 보면 예배드린 사람의 수가 많은 데 따라서 하나님의 은혜가  크다 요렇게 성경에 말씀을 해 놨습니다. 하나님에게 예배드리는 수가 많은 데  따라서 하나님의 은혜가 크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그대로 실지로 우리가 느껴 볼 때도 그러합니다. 자기 혼자  예배드리는 가운데서 권능의 은혜를 받은 그런 사람들의 수가 많지를 못하고, 그  수보다는 가족끼리 모여 가지고 예배를 드리는 데에서 능력 받은 사람의 숫자가  좀 많고, 또 그거보다는 사회 교회들이 모여 가지고 몇 십 명이든지 몇 백  명이든지 모여 가지고 예배드리는 데서 그 능력 받은 사람들이 더 많고, 더 많은  사람은 많은 사람들이 예배를 드리는 그때에 능력 받은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이 신앙생활을, 세상을 이겨서 자기 것을 만드는 그런  신앙생활 하는 사람도 있고, 이 세상이 천도 만도 넘은데 이것에게 져서 이것의  종이 되고 이것의 것이 되고 이것의. 세상을 가리켜서 간부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세상의, 이 세상의 계집이 되고 저 세상의 계집이 되고 저  세상의 계집이 되고, 뭐 돈이고 뭐이든지 닥치면 그만 거기 그만 음행해 가지고  그것에게, 그것에게 팔리는 그런 아주. 그것을 가리켜서 호세아서에는 보면  하나님이 그렇게 미워해서, 음행하는 것을 제일 미워했습니다.

요한계시록에도 보면 예수님의 재림 때도 음행하는 것을 제일 미워했습니다.

그러면, 그 음행하는 것을 가리켜서 또 다른 말로서는 우상 섬기는 것이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음행하는 것이나 우상 섬기는 것이나 다 같은 것인데 음행은 뭐이냐?  하나님으로 더불어 십자가의 보배 피 공로로 서로 약속을 맺은 하나님은 내 것  됐고 나는 하나님의 것 됐고 이렇게 대속을 받아서 하나님과 맺어진 이런 이  대속의 결합이 됐는데 그 대속을 이런 현실에다가 팔고 저런 현실에다가 파는  그것을 가리켜서 음행이라 그렇게 성경에 말씀을 했습니다. 또 세상에  하나님으로 전부를 삼아서, 하나님으로 내 전부를 삼아 그분만 바라보고  그분에게만 얻고 그분에게만 구하고 그분을 제일 높여서 그분 한 분만 내  소망으로 내 모든 배경으로 섬기기로 했는데 그거 외에 이거는 돈도 섬기고  권세도 섬기고 인간도 섬기고. 뭐 제게 필요할 상 바르면 거기다가 그만 머리  숙여 가지고 섬기는 이 우상 섬기는 거, 그래서. 하나님이, 성경을 쭈욱 내리  보면 음행하는 것과 우상 섬기는 것을 제일 미워했습니다. 음행하고 우상 섬기는  것을 하나님이 제일 미워한 것을 여러분들이 성경을 훑어보십시오. 하나님이  제일 미워하기를 어떤 걸 미워했느냐? 음행하고 우상 섬기는 것을 제일  미워했습니다.

 우상 섬기는 것은 하나님만이 우리를 참 행복되게 해 주실 수 있는데, 하나님  외에 무슨 자기 기술이나 지식이나 젊음이나 무슨 돈이나 무슨 어떤 무엇이나  그것이 들어서 자기를 행복스럽게 해 줄 수 있다고 하나님을 섬기는 숭배하는  거처럼 그것을 섬기는 그런 자가 돼서 그것에게 피동되어서 동하고 정하고  그것을 맞추어 가지고 사는 그런 것을 다 가리켜서 우상 섬기는 것이라 그렇게  했습니다. 음행하는 것은 하나님으로 더불어 하나 짝되어야 되는 것이 세상의  어떤 것으로 더불어 짝이 돼서 그만 저게 유혹을 받든지 거기 필요성을 느끼든지  어떻게 거기 혹해 가지고 하나님 배반하고 그거와 하나 되는 그런 걸 가리켜서  음행이라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성경에 주욱 내리보면 사람이 여러가지 죄가 있지만 제일. 우상 숭배 죄가 제일  하나님이 미워하셨고 그 다음에는 음행죄를 제일 미워 하셨습니다. 음행은 종교  음행입니다. 종교 음행 그것을 하나님이 제일 미워하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이 세상에서 같이 신앙생활 하지만 한 사람은 한 시간 한  시간에 참 뭐 이 우주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우주 이까짓 거 다 없어질 거  아닙니까? 우주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그런 보배를 자꾸 수입해 가고 있는데  어떤 사람은 일생을 살아도 하나도 수입하지 옷하고 다 허송세월만 하고 가는  그런 사람 있지 않습니까? 이러니까, 아무래도 우리는 마귀와 죄와 사망을  이겨야. 마귀와 죄와 사망으로 가득차 가지고 있는, 이것으로 되어 있는. 이  마귀 뭉텅이 사망 뭉텅이 죄 뭉텅이로 되어 있는 이것을 가리켜서 세상이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있다 그렇게 요한 1서 5장에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세상에서 신앙생활 할 때에 아무래도 승리 생활을 해야  되겠는데 승리 생활해야 되겠고 참 성공 생활해야 되겠고 세상을 이겨서 자꾸  점령을 해야 되지 그것에게 종이 돼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러면, 세상을 이기는 이 능력, 마귀를 이기는 능력, 죄를 이기는 능력.

사망을 이기는 능력. 고문과 고형을 이기는 능력, 온갖 미혹을 이기는 능력,  모든 지루하고 피곤을 이기는 능력이 능력을 우리가 받아 가져야 되겠는데 이  능력은 어디서 받느냐 하면 이 능력은 예배 때에 받는다는 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됩니다. 예배 때에, 사람들이 사십일 금식 기도 하는데서 능력 받았다 어떻게  했다 하는 사람들은 사십일 금식기도 하는 데서 능력 받은 사람들은 가만히 그  사람의 뒤를 조사해 보면 나중에 끝이 없습니다. 다 끝은 실패입니다. 사십일  금식에서 능력 받았다 하고 돌아다니는 사람은 마지막에는 패전입니다. 어떤  사람이 제일 든든한가? 그저 개인이 예배드릴 때에, 단체가 예배드릴 때에. 또  대예배 드릴 때에, 주일 예배 드릴 때에 이렇게 많은 예배를 드리는 가운데서  은혜를 받고 받아 가지고 자라간 그 사람들이 다 세상을 이겼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렇게 능력있는. 세상을 이기는 이 능력은 예배드릴 때에  받는다 하는 이것을 우리가 확고히 잡고 이 지식을 변동하지 안하고. 예배드릴  때 은혜 받는다 능력 받는다 이걸 가져야 되지 이것을 똑똑히 확정시되지 안하면  그 사람은 그저 예배 시간을 예사로이 지낼 것이기 때문에 거기서 능력 받지  안하면 다른 데서도 받을 수 있지만 받는 그 능력은 대개 보면 다 치우쳤고  원만치를 못합니다.

 그러면, 예배 시간에 우리가 능력 받는데, 예배 시간에 능력 받는 그 능력 받는  것은, 예배 시간에 뭣 하는가? 예배 시간에 찬송하고 기도하고 성경 보고 성경  해석하기 자기 혼자라도 말이오. 해석하고 기도하고 이 두 가지가 예배를 드리는  것인데, 예배드리는 것인데, 예배드릴 때에,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려고 자기  혼자 기도할 때와 예배드릴 때 기도할 때와 또 다릅니다.

그러기 때문에, 혼자 기도할 때도 은혜 받지만 예배드릴 때에 은혜 받는 이것을  우리가 꼭 길을 들여야 되겠습니다. 예배드릴 때에 은혜 받는 거. 예배드릴 때에  은혜 받는 거. 또 기도할 때에 은혜 받는 거, 기도할 때 자기가 은혜 받는 거,  기도할 때에 은혜 받는 거. 또 성경을 읽고 설교를 하든지 저 혼자 해석을  하든지 예배드릴 때에 성경보고 성경 깨달음을, 다른 사람을 통해서 깨달아  가지고 나에게 주시는 것도 있고 나에게 깨닫게 하시는 것도 있으니까, 예배드릴  때에 성경 읽고 깨닫는 거, 그 깨닫는 거. 깨닫고 난 다음에는 그대로 살라고 그  다음에 마지막으로 기도하는 거, 찬송하고 기도하고 성경보고 마지막에 기도하는  거.

 찬송에서는 우리 마음을 집합시키고. 우리 마음을 집합시켜서 우리 마음이  하나로 뭉쳐지도록 하기 위해서 찬송을 하는 것이고. 찬송하고 난 다음에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이제 은혜를 받기 위해서. 당신에게 이제 새로운  은혜로써, 이제까지에 있는 그 은혜 말고 새로운 은혜 이 은혜, 이 시간에 주실  그 은혜를 받기 위해서 기도하는 거, 그라고 나면 성경 읽고 해석하는 것은  하나님에게 은혜받기 위해서 간구했는데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는 것이 뭘로  주시느냐 하면 말씀을 주시고 말씀 깨달음을 주십니다. 말씀을 주시고 말씀  깨달음을 주셨을 때에 요대로 내가 믿고 요대로 살기를 원해서 요대로 살기 위한  기도입니다. 살기 위한 기도. 거기서 우리는 변화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경건하게 자라가는 그 신앙은, 국척스럽게 뭐 금식 기도에서  무슨 은혜, 또 무슨 산기도에서 은혜, 골방에서 은혜, 자기 혼자 무슨 은혜, 또  어떤 무슨 환난 중에서 은혜 그거 다 은혜는 은혜이지만 서도 그런 은혜로써는  원만치를 못합니다. 하나님 앞에 예배드릴 때에 받는 그 은혜가 원만한  은혜입니다. 제가 경험하고 체험한 대로는 그렇습니다. 물론 다른 데도 다 은혜  받지만 그거는 원만치 못합니다. 또 저 모든 사람을 봐도 그 사람이 예배드릴  때에 그 사람은 은혜를 받는다, 예배드릴 때에 은혜 받는 그 사람이. 은혜  받는다 말은 예배드릴 때에 찬송을 하면서 자기 마음을 그 예배드리는 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인데, 예배라 말은 하나님과  접선한다 말이오. 예배는 하나님과 접선하는 것이오.

 하나님과 접선하는 것인데, 하나님과 접선하는 이 접선할 때에, 찬송을 부를  때에 자기 마음을 하나님을 맞이하려고 있는 마음을 자기가 다 한 테 똘똘 뭉쳐  가지고 하나님에게로 이 마음이 기울어지도록, 이 찬송에서 기울어지도록, 그래  찬송 한 번 해서 안 되면, 두 번 하고 또 두 번 하다가 보니까 중간에  삐끄러지면 또 하고 이래서, 자꾸 이래 찬송을 해 가지고 찬송할 때 잡심이 없이  일 절로부터 끝 절까지 찬송할 때 하나가 됐으면 되는데 고게 안 되니까 또  보딴, 안 되면 안다 말이오. 자기도 그렇고 다른 사람도 알아.

그러면 또 두 번째 찬송해. 어쩌든지 찬송할 때에 자기 마음이 똘똘 뭉쳐 가지고  하나님을 다 이렇게 향한, 하나님을 이렇게 주시하는, 하나님을 이렇게  주시하는, 마치 포수가 짐승을 잡을라고 총으로 겨눠 가지고 총으로 짐승을  겨누는 거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이렇게 아주 주시하는, 하나님을 주시하는 이  주시가 되어지도록 찬송하고,  그라고 난 다음에는 하나님에게, 그라고 난 다음에 그 맘 가지고 하나님에게  이제 당신에게 은혜 달라고 기도합니다. 은혜 달라고 기도를 하면, 은혜 달라고  기도하면 그때에 잘못 있으니까 '아, 주여 이거 잘못했습니다. 이거 용서해  주옵소서' 자꾸 은혜 달라고 기도하다 보니까 하나님 앞에 잘못한 거 자꾸, 이거  자꾸 생각이 나니까, '이것도 잘못했습니다. 저 것도 잘못했습니다.' 잘못한 절  다 정리하고 보니까 완전히 깨끗하게 기쁨을 가지고 하나님에게 간구합니다.

 하나님에게 간구하고 나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 주시는 것은 뭐냐?  하나님의 말씀을 주시고 깨달음을 주십니다. 그러면. 자기에게 깨달음을 주시는  것도 있고 하나님의 종 강단에 있는 목사님에게 깨닫는 은혜를 주셔서 그 깨닫게  하는 그 은혜도 오고 이래서, 어쨌든지 말씀 주시는 그 말씀이 뭐이냐 하면  말씀이 바로 세상을 이기는 능력 그것입니다. 그 말씀이 세상을 이기는 능력  바로 그것입니다. 말씀 따로 있고 세상이기는 능력 따로 있고 있는 거 아니오.

영감 있고 따로 있는 거 아닙니다. 그 말씀이 영감이요 능력이요 지혜요 세상을  이기는 권능이라.

 이러기에, 그 말씀을, 자기가 간구했으니까 그 말씀을 하나님이 주실 때에 그  말씀을 자기는 믿을라고 애를 씁니다. 믿을라고 애쓰기 위해서 마지막  기도합니다. 이제 마지막 기도에서 안 믿어지는 것을 믿도록 하고 자기가 지금  각오하지 못한 것을 각오하고 자기가 이제 말씀과 자기, 앉아 있는 자기와  하나를 만들고 말씀과 자기의 이제 이 세상 생활과 하나 되려고, 그러면, 자기  옆에 접하는 현실에서 접하는 모든 현실의 만물, 세상 그거와 내가 이 받은  말씀과 하나가 되려고 내가 이 말씀대로 그에게 대해서 하니까 저거들이 욕을  하거나 말거나 거기 대해서 나는 하나님 말씀대로 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거기 대해서 내가 했습니다. 어쨌든지 거기 대해서 선포하고 그대로  하나님 말씀대로 행해 버렸습니다. 행해 버렸으니까, 나는 그 세상에 대해서  하나님 말씀대로 했기 때문에 그 세상과 나와는 하나 돼 버렸습니다. 아무리  욕을 해서 나를 죽인다 해도 그 세상은 내 것 되고 말았습니다.

 이래서, 우리가 능력 받는 것을 어디서 능력 받는가? 능력 받는 것은 하나님  앞에 예배드릴 때 능력을 받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영인고로 이렇게  예배하는 자를 찾느니라'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느니라,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들을 찾느니라' 신령으로 예배한다 그 말은 인간은 안 되기 때문에,  이미 주의 십자가의 보배피 공로로 말미암아 우리에게는 영감이 허락돼 있기  때문에. 영감이 허락돼 있기 때문에. 신령이라 말은 성신의 감화를 받은 마음을  말합니다. 성신의 감화를 받은 마음을 가리켜서 신령이라 말하고, 네가 네  마음이 아니라 성신의 감동 받은 마음 가지고서 예배하라 그말이오. 성신의 감동  받은 마음 가지고 예배하라. 진정은 뭐이냐? 진정은 네 인격 요소, 마음 다하고  목숨 다하고 힘 다하고 뜻 다하고 네 다하는 거, 진정이라 말은 자기의 인적  요소를 다하는 걸 말합니다. 성신의 감동을 받아 가지고 예배하고 네게 있는  요소를 다 기울이라. 요래야 이게 예배가 되지 고게 아니면 예배가 안 됩니다.

 '예배드리는 자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이런 예배가 아니면 하나님은 상대하지를 못합니다. 이렇게  예배드릴 때에 그때에 하나님은 내게 당신의 소원을 이루시고 우리는 우리  소원이 당신으로 인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우리는 세상을 이기는  능력도 받고 우리가 모르던 세계도 발견도 하고 우리가 공연히 소용없이 가졌던  것도 툴툴 털어서 다 버려 버리고 우리가 이제까지 몰랐던 것도 다시 새로  붙들어서 잡고. 이래서 예배 시간에 성화가 제일 많이 되고 예배시간에 제일  깨달음이 많이 되고 예배 시간에 제일 능력을 많이 받고 예배 시간에 회개가  가장 많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데, 우리는 그만 예배의 이 관념이 아주 썩어 버렸습니다. 아주 더러워  있습니다. 예배는 그저 뭐 어쨌든지 그 자리 가서 앉았고 속으로 앉아서 다른  무슨 계획을 하고 앉아 가지고 여기도 갔다가 저게도 갔다가 뉘 돈도, 돈 받을  것도 생각하고 이것도 생각하고 뭐 어떤 자는 오만 거 다 더러운 거 추접한 거  오만 거 다 생각하면서 몸뚱이만 앉아 가지고 찬송할 때 입만 따라 부르고  기도할 때 눈만 감고 설교 시간 뭐 어째 듣든지, 듣고 나중에 예배 마치고  패회하면 예배 본 줄로 아는 이런 썩은 예배는 완전히 우리가 버려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배부터 우리가 산 예배를 드리는 이것을 드려야 우리가 산  사람이 되지 예배 산 예배드리지 못하면 헛일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신고로  예배는 그분을 섬기고 그분은 우리에게 섬김을 받고, 예배는 그 분과 나와  교제하는 것입니다. 예배는 내가 그분에게 대해서 할 일 하고 그분이 내게  대해서 할 일 하고 나는 그분에게 대해서 할 일 하고 그분은 내게 대해서 할 일  하고 이렇게, 당신은 나위하고 나는 당신 위하고 이렇게 교제하는 이것이  예배인데, 이 예배는,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예배하는 자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 그러면,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예배가 아니면 예배가  아닙니다. 아무리 우리가 수천 명이 모여 가지고 예배하지만 헛일입니다. 오늘  저녁에도 뭐 이천여 명이 이래 모였지만 이거 이천 명 이래 모여 봤자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지 안하는 사람은 예배가 아니라 그거요.

 '하나님은 영이신고로' 하나님은 영이시라 그 말은 하나님은 무형의 존재이요  그는 완전자라, 영이라 말은 완전자라는 걸 가리켜 말합니다. 완전자. 영체 있는  이 영물 같은 그런 영을 말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하는 그 말은  자존자요 완전자요 불변자요 영원자요 전지 전능자요, 하나님의 인간과 같지  않는 비공통성 그 두 가지 속성을 가리켜서 하나님은 영이라 그렇게 가리킨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영이신고로 내 신령이라야,  영이시기 때문에. 내 신령이라니? 내가 성신의 감동을 받아야 그분을 접할 수가  있지 성신의 감동 받지 안하면 접할 수가 없다 그말이오. 성신의 감동을 받아서  접한다 할지라도 내게 있는 거, 진정이라 말은 내게 있는 걸 다 기울이지 안하면  그분을 접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럴 때에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 말씀이 어디 있습니까? 23절입니다.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아버지께 참으로' 23절. 요한복음 4장 23절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연애할지니라' 이거 보십시오. 예배는 이렇게 예배를 드려야 되는데  우리 예배가 이거 예배입니까? 사람 무더기만 모운 것이지.

 이러니까, 오늘 밤에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바로 예배하지 못한 이 죄를 우리가  회개를 합시다. 예배할 때에 거기서 능력을 받습니다. 암만 뭐 설교를 자꾸 해도  그저 귀넘어듣고 지내 보내 버리고, '아, 이러니 이렇다 믿고, 이러니 내가 믿나  안 믿나, 내게 믿는 요소가 얼마며 안 믿는 요소가 얼마나 되노? 나는 믿었다가  또 버렸다. 믿었다가 또 던졌다. 내가 지금 믿음을 계속 하고 있다' 이렇게,  도무지, 하나님이 우리에게 좋은 것을 선포해 주셨으나 이것을 다 귀넘어듣고  이렇게 보배로 받아서 가지지 안하기 때문에 예배하는 것이 다 헛되이 예배하는  것이요 다 하나님을 노엽게 하는 것이 되고 말고 있다 말이오.

 너무 오늘 20세기의 예배는 너무 거짓부리입니다. 한국 교회의 예배는 참으로  거짓부리입니다. 영 아주 외식이요 거짓부리입니다. 너무 거짓부리입니다.

우리가 이 죄를 회개합시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전지 전능자요  완전자이시기 때문에 그분에게 예배할 때에는, 그분은 완전자이기 때문에  그분에게 예배드릴 때에는 찌끄러기 똑 이런 잡귀 물리치듯이 귀신 섬기듯이  꺼끄러기 물밥이나 해 가지고 물리치는 거 모양으로 그런 거 가지고, 하나님은  진노하십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그 말은 하나님은 영원 자존자시요 전지 전능자시요  완전자시요 불변자시라. 이렇게 지극히 크신 분이시라, 그분이 없는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드신 분이시라, 이런 분이니, 이렇게 지극히 크신 분이니 이분을 섬기는  데에는 신령으로 섬겨야 된다. 영감으로 예배드려야 된다. 영감은 예수님의  피공로가 아니면 우리에게 영감 못옵니다. 영감이라는 거는 예수님의 피공로를  받은 자들이 예수님의 피공로를 입고 예수님의 것인 것을 알고. 주의 종인 것을  알고 이는 주의 성전인 것을 알고. 주님의 피로 값주고 산 주의 지체인 것을  알고, 주의 몸인 것을 알고 주의 것인 것을 알고, 주의 종인 것을 알고, 살아도  죽어도 주의 것인 것을 알고? 이렇게 알고 주의 대속의 공로를 믿을 때에 그  사람에게는 성령이 같이 하십니다. 성령이 함께 하십니다. 공로가 아니면 성령이  우리에게 못 옵니다. 제가 공로를 믿지 않는데 성령이 어찌 오십니까? 공로를  믿고 그 공로를 내가 입고 있어야 성령이 오십니다.

 성령이 와서, '신령으로' 네가 영감받은 네가 돼 가지고, 그러면, 영감 받은  나면 돼느냐? 영감받은 네가 돼 가지고, '진정으로 네게 있는 인적 요소를 다  기울이라.' 다 기울이라, 그래야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것이요, 이렇게  예배하는 자를 주님은 찾으시느니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여기서 모든 능력은  받습니다. 여기서 세상을 이기는 능력도 받고, 여기서 죄를 이기는 능력도 받고,  여기서 마귀를 이기는 능력도 받고, 여기서 사망을 이기는 능력도 받고. 여기서  옛사람 자기를 이기는 능력도 받고, 여기서 모든 불의를 이기는 능력도 받고,  여기서 부자되는 능력도 받고 병 낫는 능력도 받고 건강도 받고 다 받습니다.

 이번에 거창 집회에 갈 때에는 어떤 병자든지 어떤 영병, 마음병, 고기덩이리병  어떤 병자든지 그 병자로서 '이번에 주님은 나에게 이 병을 고쳐 주 실 수가  있다. 또 고쳐 주시기를 원한다. 고쳐 주시면 나는 그 고쳐 주심 받은 거 가지고  나는 주님에게 다 바쳐서 주를 섬기겠다. 고쳐 주실 줄 알고 고쳐 주시기를  원하고 고쳐 주실 줄로 바라고 믿고 고쳐 주시면 어떻게 살겠다 하는 그  자에게는 한 사람도 남김없이 완전히 다 고쳐서, 장생골 들어갈 때는 인간의, 뭐  형언할 수 없는 그런 아주 병신 별별 병신들이 다 들어가 가지고 나올 때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완전히 새사람 되 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의 찬미.

영광의 찬미로, 예수 그리스도와 꼭 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완전히 고침  받아 가지고 나오게 될 것이 것입니다.

 그것도 누가 '아, 그거는 뭐 백 목사 기도로 아니오. 백 목사 기도가 그 사람  병 낫우지 않습니다. 백 목사 기도보다 더 좋은 거 있습니다. 뭐이냐? 또 다른  사람 기도 보다 더 좋온 거 있습니다. 좋은 거 뭐이냐?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거. 이 예배드릴 때,  이번에도 보니까 나온 사람은 전부 숫자가 예배드릴 때에 다 제일 많이 나았어.

예배드릴 때에 제일 많이 나았어. 이러니까. 그때는 찬송할 때에 마음을 다  집중시키고 기도할 때에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의 주시는 그 은혜를 기다리면서  소원하고, 그 은혜가 내게 오는, 마음에 거리끼는 게 있는가 회개해서 옥토와  같은 그 심령, 간절하고 가난하고 갈급하고 옥토와 같은 그 심령을 가지고  기다릴 거. 그럴 때에 하나님이 말씀 주시면 그 말씀이 바로 능력이라. 그  말씀이 돈을 구하는 자에게는 돈이 되고, 그 말씀이 병든 것을. 병 고침을  구하는 자에게는 병 고침이 되고, 그 말씀이 세상을 이기기를 원하는 자에게는  세상 이기는 능력이 되고, 그 말씀이 자기에게 있는 모든 더러운 죄를 완전히  회개하기를 원하는 자에게는 회개하는 능력이 되고 이렇게 주님이 그 시간에  능력을 주십니다. 그럴 때에 능력 받고 난 다음에 다시 통성으로 기도할 때에  간추려서 이제 거기서 간추려 정리할 거 정리하고 다시 조정할 거 조정하고 이래  가지고 딱 거머쥐고 이제 '주님이여, 나는 이래 거머 잡았습니다', 하고 이것을  놓기 전에는 물러간 병이 다시 오지 못하는 것입니다. 놓기 전에는 자기에게  모든 약한 것이 물러가 버리고 물러간 약한 것이 다시 오지 못합니다. 받아 가질  때에 담대한 그 담대함과 능력은 그대로 항상 자기와 동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배드릴 때 이렇게 예배드립시다. 이러면 여기서 다 되는데.

뭐 무엇 때문에 딴 데서, 어만 데서 딴것을 찾고 있습니까? 다른 것을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 한 분이면 됩니다.

 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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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45 예비의 도/ 마태복음 24장 43절-44절/ 860404 지권찰회 선지자 2015.12.10
3344 예비 심판/ 요한복음 9장 39절-41절/ 800201금새 선지자 2015.12.10
3343 예배관/ 창세기 5장 21절-24절/ 850803토새 선지자 2015.12.10
» 예배관/ 창세기 5장 21절-24절/ 850802금야 선지자 2015.12.10
3341 영적싸움/ 마태복음 10장 34절-38절/ 890310 지권찰회 선지자 2015.12.10
3340 영이 무엇인가/ 베드로전서 2장 1절-2절/ 860215토새 선지자 2015.12.09
3339 영육이 축복받는 길/ 디모데전서 6장 17절-19절/ 1983년 48공과 선지자 2015.12.09
3338 영육이 축복받는 길/ 디모데전서 6장 17절-18절/ 1983. 11. 27. 주일학교 공과 선지자 2015.12.09
3337 영육이 축복 받는 길/ 창세기 13장 1절-18절/ 840523수야 선지자 2015.1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