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생얻는 방편

 

1988. 1. 21. 목새벽

 

본문:누가복음 10장 25절∼28절 어떤 율법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가로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대답하여 가로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이 율법사를 통해서 이런 문답이 이루어진 것이 일시 그 환경과 모든 사정을  인해서 시발된 것으로 그렇게 생각을 하는 것이 인본주의요 그것이 인간들의  자율주의입니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꼭 그런 것으로 보여지지마는 그런 것들을 초월하여 이는  영원 자존하신 완전하시며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주권 의지로 예정하신 그  예정 그것을 하나님의 주권 능력으로 성취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예정하고 또 예정한 대로 성취하시는 것은 당신의 뜻을 이루시는  것인데 이 성경에 기록해서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성경에 기록한 것은 천지는  없어져도 획 하나도 없어지지 않는다 하는 이 말씀으로 보증하신 것은 이 것은  그 역사적인 이 사실이 무슨 변동되지 않는 그 유지성을 말함이 아니고 곧  이것이 우리에게 생사를 결정하고 생사가 이루어지는 이 도리인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와같이 된 이것이 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이런 역사를 만드셨고 또 이루셨고 문서로 기록해 가지고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율법사가 제 마음으로 제 생각으로 형편 따라서 말한 것 아니고 영원 전  하나님이 절대적인 계획적으로 예정하신 것을 이대로 이루어서 우리에게 구원  도리로 주신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신구약 성경에 기록된 것은 모든 것이 우리에게 생명이냐  사망이냐 하는 영원을 좌우하고 결정지우는 이 절대적인 이 가감할 수 없는  불변의 도리인 것을 이것을 믿고 모든 성경을 봐야 하고 또 연구해야 되고 또  증거해야 됩니다.

그저 이 역사적인 환경에서 이런 형편 저런 형편도 있을 수가 있고 이런 인간의  그 모든 행동 저런 행동도 있을 수가 있다고 그렇게 생각하는 거와같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이것은 우리에게 생명의 도요 구원을 주는 구원 도리인데 이  도리인 것을 깨닫고 제가 성경을 읽고 연구하면 바른 길을 알게 될 것이고  이것을 그저 자기네들이 생각하는 거와같이 일반적으로 이렇게 현실의 모든  존재들의 작용으로 이렇게 이루어진 것이라 생각하면 참된 도리를 모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도리는 하나님께서 영원 전 우리에게 구원의 이치를 가르쳐  주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 의지의 예정, 주권 능력의 성취라는 이 사실 이것이  곧 우리에게 획 하나도 가감할 수 없는 절대성 있는 이 구원의 도리로 우리에게  주셨다는 이 사실을 믿는 데에서부터 하나님의 도는 자기가 바로 평가할 수 있고  이 가치를, 이 중대성 가치를 아는 데에서 자기는 이 도를 상대할 그 상대가  차차차차 진실된 상대로 나아가게 되고 상대할 만한 정상적인 상대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율법사가 자기가 깨닫고 있는 이 율법에서 연구해 가지고 자기가 깨달아진  그것을 예수님도 옳게 대답을 하나 안 하나, 옳게 깨닫나 안 깨닫나 하는 고것을  지금 한번 시험해 볼라고 이렇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이랄 때에 예수님께서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대답하여 가로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그러면, 이 영생 얻는 방편이 이렇게 저렇게 해도 되는 그런 것이 아니고 그  율법사가 성경에 기록한 것을 보고 깨달은 그것이나 또 주님이 그 율법사의  대답에 대해서 네가 이게 옳다 바로 깨달았다 이를 행하면 살리라 그렇게 말씀을  하신 것은 이 영생 이루는 데에는 이 길 외에 다른 길이 없는 것을 여게서  확정지워 놨습니다.

이 방편 외에는 다른 길이 없는 것을 확정지워 놨고 또 다음으로 주님이  덧붙여서 확정시켜 놓은 것은 ‘네가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네가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그러면, 이 영생을 얻는 방편도 이 방편 외에 다른 방편이 없고 또 이 방편을  아무리 안다 할지라도 자기가 행해야 되지 행하지 안하면은 영생 없다 하는  이것을 단정지워 놨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단정지우는 이 방편에서 우리는 다른  길이 있다고 생각하는 그것이 다 마귀가 주는 생각입니다.

또, 이 길은 율법사가 말한 것은 그 방편을 말했고 도리를 말했고 예수님이 하나  덧붙힌 것은 ‘네가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그러면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해야 영생이 이루어지는 이 사실의 법칙을 자기가  요대로 알고, 요대로 아는 것만으로는 되는 게 아니고 예수님이 덧붙여  말씀하시기를 ‘네가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영생은 생명과 다릅니다. 우리가 새생명을 가진 것은첫째 아담에게 속한 영, 혼,  몸으로 되어진 우리들입니다. 이것을 삼분으로 나눠서 삼분으로 나눴다고 해  가지고서 삼분설, 말씀 설자. 삼분설도 있고 이분설도 있으니 삼분설도 정통으로  인정하고 이분설도 정통으로 인정하는데 삼분설의 장단점과 이분설의 장단점을  그전에 많이 말을 했습니다.

영육이 된 것은 첫째 아담으로 말미암아 영육이 됐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천국가서 영생할 때에는 다른 무슨 영육이 있느냐? 다른 영육이 없습니다. 이  영육입니다. 영육은 언제든지 이 영육입니다.

영은 영물로 되어 있는 것이니 물질계 안에 있는 것이 아니고 영계에 속한  것이고, 또 이 육이라는 것은 곧 마음과 몸 이 둘을 가리켜서 육이라고 한 것인데  이것은 이 물질계에 속한 것입니다.

이래서, 이분설은 어떤 장점이 있느냐 하면은 이분설을 바로 깨달았으면 마음과  몸은 이 물질에 속한 것이고 영은 영물에 속한 것이라 이렇게 그것이 영과 이  육이 구별되는 이 점이 장점이 있고, 또, 단점은 무슨 단점이 있느냐 하면는 영 육 둘인데 영육을 다 땅에 속한 것으로  이렇게 알아서 영은 마음이 영이요 곧 이성 정신 하는 이것이 영이라, 그러기  때문에 영계에 속한 그 영물인 영은 발견하지 못하고 이 심신의 육만을 가지고서  영육으로 말한 것으로 그렇게 깨닫기 때문에 영을 발견하지 못하는 그 점이  단점입니다.

성경에는 영이 있다고 했지마는서도 영이 마음 아닌 영이 있다, 우리의 마음 아닌  영이 있다 하는 그 영 깨달음은 이것은 과거에 없었습니다. 그저 마음 이콜 영,  영 이콜 마음. 마음이 영이요 영이 마음이라 이렇게 생각했지 마음과 몸은  물질계에 속해서 있는 것이요 영은 영계에 속한 것으로서 이렇게 깨달아서  발표한 것은, 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많이 날뛰고 하는 그런 사람들은 깊은 깨달음이 없고 또  깊은 깨달음이 있는 사람들은 날뛰지를 안하고 이러니까 옛날도 그 영을 바로  깨달은 사람들이 많이 있었지마는서도 그 사람들의 깨달은 것은 파묻혀 버리고  그저 말 잘하는, 글 잘하는 그런 사람들, 나타내기를 원하고 또 자기를 들레기를  원하는 이런 사람들이 대개 이 심신을 영육으로 이렇게 깨달았기 때문에 그런  발표만 되고 문서적으로 유명하게 누구든지 볼 수 있도록 발표돼 가지고  우리들이 볼 수 있는 그런 발표는 없었습니다.

삼분설은 무슨 장점이 있느냐 하면 영계에 속한 영이고 둘은, 이 혼과 몸은  물질계에 속한 것이라. 성경에 짐승도 혼이 있다고 했고 사람도 혼이 있다고  했으니 혼은 짐승도 있고 사람도 있기 때문에 이 혼이라는 것은 영이 아니다.

영은 짐승에게는 영이 없다. 이래서 이 점을 밝히 드러내서 장점이 된 것입니다.

성경에 짐승도 혼이 있다 했는데, 그러면 짐승이 몸 외에 딴게 뭐 있느냐? 이런  식물 같은 것은 이것은 그 몸뚱이 외에 딴것이 없지마는서도 이 짐승은 사람의  마음과 같은 그런 것이 다만 그것의 조직이나 또 그 실력의 차이는 있지마는서도  사람의 마음과 같은 마음이 있고, 마치 사람의 마음도 다 사람의  마음이지마는서도 그 실력 차이나 또 그 모든 주밀한 그 차이는 많이 있는  것처럼 짐승과 사람의 마음이 차이는 있지마는 다 있다 이래서 혼은 곧 그것은  물질계에 속한 것이라 해 가지고서 한 그 삼분설 말한 것이 그것이 장점이  있습니다.

이래서, 단점이라고 하면은 그 혼을, 혼과 그 영이 다 하늘에 속한 것이라 이렇게  미혹되는 그것이 단점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영생하는 데에는 첫째 아담으로 말미암아 지음받은 영, 혼, 또  몸 이렇게 이 세 가지는 첫째 아담의 것입니다. 다시 둘째 아담으로 말미암아  이것이 생겨지는 것이 아니고 첫째 아담에게 받은 이것이 영생합니다. 안 믿을  때의 우리의 영, 또 안 믿을 때의 우리의 이 심신, 혼 몸. 이것이 영생을 합니다.

이게 하늘나라 가서 영생합니다.

영생하는데, 그러면 영생하는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인 이것은 뭐인가? 이것은 곧  우리에게 있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신적 요소인데 이것은 뭐인가 피와 성령과  진리입니다.

피는 예수님의 공로를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대형, 대행, 대화친으로써 사망을  이겨 해방을 시켜 줬고 죄를 이겨 이 해방을 시켜 줬고 또 악령을 이겨  악령에게서 해방을 시켰고 하나님의 공심판을 통과했고 자존자 하나님으로  더불어 완전한 화친을 이루었고 또 하나님을 이제는 피조물을 향하던 것을  하나님을 향하는 완전 생명을 가지게 됐고요게 중생입니다이제는 진리와  영감에 피동되어서 영생을 이루는 이것을 예수님의 공로가 설정을 했고 예수님의  공로가 이것을 만들었습니다. 예수님의 공로가 만들었어.

이렇게 영육은 첫째 아담에게 속한 것인데 둘째 아담인 예수님께서 이 모든 면을  이 공로로, 이 공로로 말미암아 모든 것을 이루었어. 예수님이 우리에게 이  해방과 자유와 화친과 영생 이것을 우리에게 실상으로 만들어 가지고 우리에게  준 것이 그것이, 어떻게 만들었느냐? 만든 것은 예수님의 이 전지 전능의 능력으로만 만든 게  아니고 전지 전능의 이 능력자가 벌받을 때는 벌받고 또 자기가 대신 행할 때는  행하고 이래 가지고서 역사의 이 공로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 대속의 공로를  입혀 주신, 이 공로를 설정해 가지고서 이것을 우리에게 주신 것이 예수님의 대속  공로인데 이것을 한 말로 말해서 피라 그렇게 말합니다.

예수님의 피공로로, 예수님이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셨기 때문에 이것을 가리켜서  피라 이렇게 간단하게 발표를 하고 또 이 피를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만들어 가지고 주신 이 대속을 이것을 우리에게 완전히 주입시키고  우리에게 완전히 이식시켜서나무를 옮기듯이이거 발표하기를 하기 때문에 이런  말 합니다.

이식시켜서, 완전히 우리에게 전가시켜서, 이래 가지고 우리에게 이루어지도록  하는 그 작용을 누가 하느냐? 곧 성령이 이 작용을 하시고 진리가 이 작용을 해  가지고 차차차차, 예수님의 이 대속하신 대속을 우리에게 처음에는 소개를 해서  우리가 그저 인정으로 이렇게 받는데 차차차차 나중에 가서는 이 대속하신  주님의 이 본질과 본성과 또 영감의 본질 본성, 진리의 본질 본성과 우리가  이렇게 화합이 돼서, 그러면, 화합이 됐으면 우리와 그와 둘이 합해 그러냐 하면은 그런 게 아니고  그는 능동이고 우리가 거게 동화됐고, 거게 동화가 됐고 거게 화합이 됐고 거기에  감염된 것처럼 이리 돼 가지고서 우리가 둘째 아담으로 말미암아 난 우리가  있습니다.

그러면, 첫째 아담과 둘째 아담의 자손, 첫째 아담의 자손과 둘째 아담의 자손의  관계는 어찌 되느냐? 둘째 아담의 자손은 뚜렷히 따로 있는 것입니다. 따로인데  그거 뭐이냐? 피와 성령과 진리 이로써 이루어진 이 순전히 객관 역사요  우리와는 상관이 없는데 첫째 아담에게 속한 영육으로 되어 있는 나와는 상관이  하나도 없는데 하나님의 신적 요소로 이루어진, 피 豹w 이루어진 그것은 주님의  것인데 이것이 우리와 접할 때에 어떤 그 역사가 있었느냐 하면은 우리의 죽은  영육을 이것을 여기에 연결시켜 가지고서 이것을 살게 했습니다.

그러면, 중생이라 하는 것은 연결시킨 것도 말하고, 연결시킨 것은 이 중생의  역사로, 마치 차가 지나가면 먼지가 나는 것처럼, 바람이 나는 것처럼, 이렇게 이  역사로 이루어져서 영육이 살아나는 것이고, 영은 단번에 살아났고 지금 육이라는  심신은 둘째 아담으로 말미암아 난 우리의 작용으로써 이 심신이 살아납니다.

그러면, 영은 살아난 게 꼭 일반이고 이 육이 살아나는, 심신의 육이 이 둘째  아담의 자손으로 인하여 성화된 것, 성화돼서 동화의 행동을 하고 감염과 같이  그렇게 빛깔을 나타내고 그 덕을 나타내고 영광을 나타내는 이런 것으로써  되어지는 것이 영은 단번이나 이 심신 이것은 일생 동안 점차적으로 중복적으로  되어지는 것인데 하늘나라의 구원의 차이는 무슨 차이인가? 영이 이렇게 살아난  차이는 다른 면으로 있지마는 많은 차이가 없으나 이 심신이 둘째 아담의  자손으로 인하여 살아난 것의 그 양이 차이가 있습니다. 살아난 것의 양의 차이  그것이 하늘나라의 영광의 차이인 것입니다.

전번 주에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로 난 것을 우리가 공부를 했는데, 이래서 그러면  둘째 아담으로 말미암아 난 나는, 그러면 우리의 첫째 아담으로 말미암아 난 이  영, 혼, 몸 이것이 살아난 이것이 둘째 아담으로 말미암아 난 우리인가? 그러면  이거 감염되고 동화되고 성화된 이것이 우리인가? 그것이 아니고 이는 하늘에 속한 자는 하늘의 형상을 가졌다고 말한 거와같이  우리들이 예수님의 피공로와 성령과 진리의 그 형상을, 그 자체, 본체. 이것을  가지고 되어진 것이 둘째 아담으로 말미암아 난 것인데, 그러면, 나 가지고, 둘째 아담으로 말미암아 난 이 둘째 아담의 자손 하나님의  아들이 된 이것이 어떤 존재인가? 피조물 요소가 여게 피동돼서 살아난, 또 피동돼서 움직이는, 감염되어서 그렇게  색깔이 변해지는색깔이 변해진다 그말은 모든 외형이 변해진다는 것을 표시해서  말하는 것입니다그 실력이 변해진, 그러면, 첫째 아담에게 속한 그것이 이 변화된 그것이 우리인가? 변화된 그것은  첫째 아담에게 속한 것이 변질되어서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할 걸로 다시 산다는  변질된 것이고 이 변질시킨 그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된 우리들입니다.

변질시킨 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된 우리들입니다.

그러면, 변질시켰으면 첫째 아담에게 속한 자손된 우리들은 아담의 형상을 우리가  가졌는데, 땅에 속한 자의 형상을 가졌는데 아담의 그 영육이 따로 있고 우리의  영육이 따로 있어서 첫째 아담의 자손된 우리는 첫째 아담의 것이 분산된 것과  또 하나님이 다시 창조한 것과 창조와 분산으로써 되어진 것이 첫째 아담에게  속한 우리들입니다.

영육은 내나 부모의 영육이, 내것이 아니고. 부모의 영육이 그것이 따로 떨어져  나와 가지고서, 세포가 아주 따로 떨어져 나와 가지고서 생겨진 것이 우리의  심신이요, 또, 우리 영은 부모의 영이 분산되어서 세포와같이 그렇게 분리돼 나온 그것이  우리의 영이 아니고 우리의 영은 우리가 날 때 그때에 우리가 존재케 될 때  그때에 하나님께서 직접 창조하셔 가지고 된 것이니 그것은 물질계에 속한  우리의 영육의 요소가 아니고 내나 영계의 것으로써 하나님이 그때 창조해  가지고서 우리가 되어진 영은 내나 하늘에 속한 영물이요 심신은 물질계에 속한  물질이라.

이런데, 여게 대해서 많은 학자들이 영도 내나 심신이 부모에게서 분산된 거와  마찬가지로거게서 세포가 나눠져 가지고서 이렇게 나눠지고 생겨졌다  그말이오분산된 거와같이 영도 부모의 영에서 분산됐다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래서 그것을 가리켜서 유전설이라 이랍니다, 유전설. 영도 부모의 것이 유전돼  가지고 나온 유전설이라 그래 말하고, 또, 전재설이라 하는 말은 사람의 영은 하나님께서 한목 사람을 만드실 때에 그때  영은 다 천 명을 만들라면 천 영을 만들었고 만 명을 만들라면 만 영을 만들어서  영을 한목 만들어서 하나님의 곳간에 다 재어놓고 하나하나 나올 때 그때에 이제  그 심신 분산 거게다가 한 분산에 한 영씩을 끼워 줘서 그렇게 사람의 영육이 된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을 이것을 선재설이라 이렇게 말을 하고, 전재설이라고도  말하고. 그거는 말 표현이기 때문에 그러고, 또, 창조설이라 하는 것은 그때그때 하나님께서 하나 날 때에 곧 심신은 부모를  통해서 부모의 그 심신을 분산시키는 방법을 가지고서 이렇게 출생하도록  만들었고출생이라 말은 어머니 뱃속에 있는 것도 출생이라 말이요, 어머니 배  밖에 나온 게 아니고그렇게 창조하셨고 부모의 요소를 분산시키는 그 방편으로  창조하셨고 영은 하나님께서 그때그때 창조하셔 가지고서 그렇게 일개 일개인의  영이 이루어지도록 그렇게 하셨다 하는 요것은 벌써 세계 조직신학자들의 학설에  다 있습니다. 그 영을 그렇게 세 가지 삼론설 있는 것, 있는데, 하나님 아버지 아들이라 하는 것은 이 살아난 영육이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 아니고, 그것만이가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 아니고,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로 인해서 이 영육이 살아났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아들로 말미암아 영육이 살아났고 영육을 살린 그 존재가 있으니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하는 이 존재는 이것은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가진 곧 신적 요소인 진리, 성령,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 이것으로 인해서  되어졌는데 그러면 첫째 아담의 자손이 첫째 아담의 요소가 분리돼 가지고서  생겨진 것 같은 분산 방법으로 된 것이냐? 그러면 나도 진리로 된 내가 있고  성령으로 된 내가 있고 하니까 성령과 진리도 열 명이면 열, 백 명이면 백으로  이렇게 분리 분산돼서 이와같이 됐느냐? 고것만 틀립니다.

이거는 분리 분산으로 된 것이 아니고 이는 분리될 수도 없고 분산될 수도 없는  언제든지 단일성의 것이요 단일체의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이 공로의 설정도  하나요 성령도 하나요 진리도 하나요 이거는 둘이 아니고 하나인데 하나이면 그  하나가 어떻게 우리 수많은 사람에 내가 되었으며 우리가 되었느냐 하는 그 점이  이제 첫째 아담과 다릅니다.

그것은 분리 분산할 수 없는 완전한 존재인데 그 단일체요 단일성의 것인데 그의  그 모든 단일성의 것이 수만에게 분산 역사를 할 수 있고 분산 작용을 할 수가  있는 것으로서 이는 곧 우리에게 와 있으나 하나님의 본체의 그 역사, 본체의 그  역사도 단일성의 그 단일인데 단일인 그것이 우리에게 와 가지고 수많는  사람에게 와 가지고서 비추어서 이와같이 되어진 존재니 어떻게 그러면 그게  나눠지지 안하고 그렇게 우리에게 와 있을 수가 있느냐? 와 있을 수 있는 것은, 하나 비유를 말한다고 하면은 하나님의 속성인 그 사랑 그  사랑은 여러 개가 아니고 사랑은 하나인데 하나인 그 속성이 수억억만 명에게  이와같이 사랑으로 가 가지고서 역사해서 억억만 명이 사랑을 가지고 역사하는,  자기가 이 사랑을 가지고서 자기가 사랑 가지고 역사하는데 그 사랑은 곧  하나님의 한 사랑이, 사랑은 하나인데. 한 사랑이 거게서 그 모든 분산 작용, 분산  작용으로서 작용하는 것이지 그 본체가 분리된 것은 아니라 그 작용으로 된  것이라 이래 가지고서 우리에게 되어진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점을 잘 생각해서 이렇게 깨달으면 우리 구원이라 하는 것이  어떻게 되는 것이라고 하는 것을 좀 깨달을 것이고 그러기에 이 구원 이루는  영생 이루는 것이 이 세상에서 학위로 최고의 학위를 얻기 위해서 머리 싸매고  하는 그 정도의 힘이 아닌 그런 정도의 그거 가지고서 되는 것이 아니라.

이래서, 마치 애굽에서 그렇게 술객들과 하나님의 능력이 표적을 이룬 것이 첫째  둘째 세째까지는 공통이 돼서 그나 이나 했지마는서도 그다음에 네째번부터는  따라오지 못하는 거와 마찬가지로 이렇게 사람이 자기의 전심 전력을 기울여서  인적 요소의 힘만 가지고도 되어지는 것이 있다. 사람의 정신으로 되는 것,  마음으로 되는 것, 연습으로 되는 것, 연성으로 되는 것, 연단으로 되는 것 된다.

되는 것이 있지마는서도 그것은 곧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되어지는 거와 다르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되어지는 거와 다르다.

그러기 때문에, 애굽에서는 일, 이, 삼까지는 같았고 고다음부터는 달라졌는데  우리는 그것이 어떨 때는 일, 이까지는 같이 되고 그다음에는 안 되고 삼까지는  같이 되고 또 사까지는 같이 되고 이렇게 달라진다. 그러기 때문에 그들도 시작은  같고 그다음은 다르다.

시작은 같고 그다음은 다르다는 그것만 우리에게 알려 주기 위해서 육체의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출한 것은 오늘 우리로 말하면 이 세상에서 우리를  구출해 내는 것인데 낼 때에 그런 방편을 계시로 우리에게 알려 줬기 때문에 그  한 가지로 수많은 그것을 그와 같은 이치로 깨달아서 작용하는 것을 작용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와 마찬가지로 자기 힘으로 되어지는 거와같이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수많은 사람들이 펠라기우스주의로써 나온 펠라기우스주의가 있고,  펠라기우스주의 다음에는 이제 요한 웨슬레의 합동주의가 있고, 그다음에는  거부하지 않으면 된다는 루터주의가 있고, 그 위에 이제 밟고 올라서 가지고서  전적 궁극적 구원이라는 이 칼빈주의가 그 위에 일어서서 됐는데, 이 칼빈주의도 그 시대는 감당했지마는서도 오늘 벌써 이십 세기에 이와같이 뭐  십 팔 세기와 오늘 이십 세기와는 상상도 못 할 만치 모든 것이 이렇게 마귀의  도가 높아지고 이렇게 발달이 됐는데 그때에 그 하나님의 도 가지고는 현대를  감당하지 못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둥치 속에 이 세대를 감당할 수 있는 이 깨달음이 있어야 하니  이 이길 수 있는 이런 깨달음이 있을 때에 하나님이 그 깨달음과 동행해 주기  때문에 있어야 되기 때문에 이것이 우리에게 메워 준 사명이라 이라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러분이 이거 자꾸 생각해, 제가 연구할라 해야 되지 안 돼. 이  세상, 그러기 때문에 세상 것도 마음 다합니다. 세상 것도 마음 다하고 목숨  다하고 힘 다하고 뜻 다해서 합니다. 세상 모든 땅에 속한 것들도 다하는 것이  차이가 있어. 그것을 다한 사람들이 땅의 것도 깃발을 잡았어. 최고의 그 깃발을  잡았어.

요번에 무슨 산에 올라갔더라? 무슨 산이라 하더노? 에베레스트? 그 산이 어데  있는고? 그 산이 어데 있어? 그 산에다가 기를 꼽은 그 사람도 아마 뭐 힘  다하고 마음 다하고 목숨 다하고 힘 다하고 뜻을 다해서 이거 하나 자기는  세상에 났다가 한번 달성해 보려는 그만한 힘을 써 가지고 갔지 그리 아니면 안  돼.

그래 써도, 그러기에 우리가 영생 얻는 것도 고와같이 힘써서 그것도 그 사람  그래 가다가 어떤 사람은 중간에 천 미터 올라가다가 말고 이천 미터 올라가다  말고 그거 중간 가다 마는 것처럼 우리도 하늘나라 구원을 얻되 영광의 차이가  그렇게 있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렇게 다해서 해도 인간선 이상, 인간선 이상의 그 차원에는  올라가지 못하는데 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된 것은 거게서 제재받지 안하고  얼마든지 올라간다 하는 그것이 다른 것인데, 그러기에, 우리가 이 영생을 이루는 데에는 이렇게 힘을 써야 되지 힘쓰지 않으면  안 된다는 요걸 꼭 인식을 해야 되는데, 힘을 써야 된다는 요것을 무슨 지금  유혹을 받고 있느냐 하면은 ‘믿음으로 된다’ 이렇게 하니까 믿음으로 되니까 그  공짜배기로 은혜로 된다. 공짜배기로 은혜로 받는다, 믿음으로 받는다 이러니까  고게서 미혹을 받아 가지고 힘쓰지 않습니다.

이 모든 것을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해서 이와같이  해서 펠라기우스는 ‘우리의 인간의 힘으로 이거는 했다’ 인간의 힘으로 했다 할  수 있기까지 그렇게 해도 그것이 다만 하나님이 공짜배기로 주시는 것을 자기가  받는 방편이지, 찍해야 공으로 주시는 데 받는 방편이지 그 자기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깨달은 것이 칼빈주의이기 때문에 칼빈주의가 온전하고 그  밑에 것은 그것은 다 수정당해야 될 것들입니다.

이러기에, 우리가 영생을 이루는 데에는 이렇게 자기가 한 것같이 여겨지는 이런  노력이 없으면 안 되고 세상 것을 취하는 뭐, 세상에 과학 노벨상을 받기  위해서든지 또 무슨무슨 예술에 대해서 노벨상을 받기 위한 것이라든지 봉사에  대한 노벨상을 받기 위한 것이라든지 이런 것을 힘쓰는 거와 같은 그런 성질의  것을 우리가 투자해야 그래야 하나님의 주시는 이 영생을 받는 정상적인 방편이  되는 것이지, 이거 ‘공짜배기로 받는다’ 공짜배기라는 것은 우리가 소유가 몸과 생명을 다  들여서 해도 그것은 공짜배기로 찍해야 받는 그 방편이지 그것을 우리가 만드는  거 아니기 때문에 은혜로 받는 것이라.

이거 믿음으로 받는 것은 이거 믿음이라는 것은 고 사실을 인정하고 자기의  영육을 다 바쳐서 고대로 실천을 하는 고것이 믿음이기 때문에 고래야 구원이  된다 이걸 알아야 될 터인데 그저 쉽게만 자꾸 말하면, 쉽게 말하면 듣기도 좋고  또 듣기도 쉽고 예수 믿기도 쉽고 이러니까 뭐 믿는 행위를 할 필요가 뭐 있느냐  그저 하나님 은혜로 된다 하니까 천주교로 자꾸 모아들어요. 암만 모아들어 봤자  그것이 택한 자면은 하늘나라 가기는 가지마는서도 영생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영생이라 하는 것은 생명이 아니오. 영생이라 하는 것은 뭐이 영생이냐? 생명을  가진 자가 생명이 자기도 이기고 세상도 이기고 이 생명이 모든 것을 이겨서  자기의 이 영, 마음, 몸 이것을 이 생명이 잡아서 지배하고 주장하고 이 주관하고  여기에 피동된 것이라야 영생이 되는 것입니다.

생명이 어떤 게 생명이냐 하면은 하나님과 자기와의 연결된 것이 생명이오.

연결된 것이 생명인데 연결된 이 연결이 자기의 영을 지배하고 자기의 마음을  지배하고 자기 몸을 지배하고 자기의 이 세상을, 자기 세상이라 말은 자기 몸  밖에 있는 책도, 몸 밖에 있는 사람도, 몸 밖에 있는 모든 세상에 이런 작용들도  그것들도 다 이 하나님과 연결이 지배를 해야 되는 것이지 지배하지 안하고  이와같이 하는 데에는 영생은 안 됩니다.

이렇게 자기가 영생을 이룰라고 하는 자는 어려운 것도 알게 되고 이루어 본  자는 땅의 것을 다 티끌같이 다 분토와같이 버립니다. 이것을 이루어 보고  이루어서 다문 얼마라도 조끄매 이루어 본 사람은 그거 경험하고 체험해서  가치를 알게 되고 이 가치를 아는 사람은 땅의 것을 가치로 삼아서 소욕을  가지고 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 가치를 아는 사람은 땅의 것을 준비하는 것도 이것도 이 하나님이 주시는 이  영생을 이루는 데에, 마치 우리가 영생을 이루는 데는 돈도 필요하고 밥도  필요하고 옷도 필요하고 물질도 필요한 거와 마찬가지로 땅에 있는 이 마귀의  지식도 필요하다 해 가지고서 그것은 이용하고 나면 집어던질라고 필요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지 거게다가 소망을 두고서 이 구원 이루는 이 도에 대해서  뒤로 두고서 그거 앞세운 그자들은 예수를 암만 믿어도 다 헛일입니다. 여게  학생들도 다 그것을 판결하지 못하면 헛일이야.

자기가 실지로 실행을 해서 세상에 어떤 일을 하는 것보다도 이 일에다가 더  힘을 기울이는 이 가운데서 겨우 경험하고 체험하는 맛을 쪼끄매 볼 수 있어 이  맛을 본 자로서는 땅의 것을 탐할 자가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이러기에 좀  이거는 아무래도 실행을 해 봐야 되지.

이러니까, 생명은 뭐이 생명입니까? 생명은 뭐이 생명이요? 연결. 영생은 뭐이  영생입니까? 영생은 뭐이 영생이요? 생명의 면류관입니다. ‘죽도록 충성하라  생명의 면류관을 너에게 주리라’ 면류관이라 말은 무슨 말입니까? 승리. 생명이  승리하는 승리 준다 그말은 하나님과 연결이 승리하는 승리 준다.

하나님의 연결이 네 마음도 지배하고 네 몸도 지배하고 네 영도 지배하고 네  모든 네것은, 네 몸 밖에 있는 거면 몸 밖에 있는 사람도 있는 그것도 지배하고  몸 밖에 있는 모든 죽이려는 권세도 모든 것 다 지배한다. 그 지배한다 말은 거게  내가 죽든지 말든지 그걸 내대로 이렇게 지배하고, 지배해서 그게 내 지배를 당하느냐 안 당하느냐 그거는 둘째 문제이고 나는  지배하고, 나는 지배하고 죽는 수도 있고, 지배하고 죽음을 당하는 수도 많이  있고, 어쨌든지 지배한다.

지배하는데, 오늘 기독 신자들은 온 세상에게 다 지배당하고 저거에게 지배를  당하니까 하나님이 저거에게 지배당할 줄 알았지만 ‘스스로 속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느니라 사람의 심은 것은 그대로 거둔다’  이랬습니다. 영생이란 이 도리를 깨달아야 될 터인데 이 깨닫지 안하고 얼토당토  안 한 소리를 해.

이것이 곧 뭐이냐 하면 우리 앞에는 현재에 두 길이 있다. 두 영이 있다. 하나의  인도는 생명이고 하나의 인도는 사망이다. 사망으로 가는 인도는 찾는 사람 많고  그 길 가는 사람 많고 생명의 인도는 가는 사람이 적다. 길이 험하다. 좁아서  찾는 사람이 적다. 이런데, 그러니까 처음에 좋은 것은 넓은 길이고 뒤에 좋은  거는 좁은 길이다.

여게서 오만 것을 다 깨달아 뭐이든지 자기가 마음을 쓰고 깨달아야 되는데 이  구원 도리가 모든 걸 능가한 이 우주와 영계의 모든 것을 유업으로 상속받을 수  있는 이 가치 있는 것이니까, 한국 요 조그만한, 우주로 말하면 이 손톱만도 못하고 말하자면 싸라기 눈만 할  수 있는 요 한국에 고 속에서도 뭐이 될라고 하면은 되어지는데 우주와 영계를  자기 것으로 상속받아서 누릴 수 있는 이 일이 쉽습니까? 쉽지 안해. 그런데 이  하나님 말씀을 전부 거짓말로 알아.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지금 무슨 일 하고 있느냐? 모두 다 하나님이  말씀했지만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않는다 이렇게 말씀하지마는서도 이 말씀하신  것을 다 아이들 말로 풋개 방귀같이 여기고 헌신짝같이 버리고 이거는 하나의  무슨 정신이상자가 이거 뭐 궤휼을 말하고 어떤 신화를 말하는 것처럼 이렇게  여기고 있는데 거기에 이 사실을 믿고 자기 힘 있는 대로 이 사실을, 힘 있는  데까지는 이 사실을 믿고 행할라고 하는 그자를 높이 듭니다.

하나님께는 필요가 없어. 하나님은 당신에게 피동되는 그 지혜, 피동되는 힘,  피동되는 움직임 그거면 다 돼. 딴게 필요 없어. 이러니까 당신이 완전이기  때문에 고 연결 고것만 작용되면 되는 거라. 우리는 땅 위에서 이거 연습을 지금  하고 있는 거야. 이거 연습을 하고 있는 거라.

어떤 자는 새벽기도 나오고 열심히 하고 있는데 ‘헤, 저거는 시험 공부도 하지도  안하고’ 이라지마는서도, 못 해도 이게 크기 때문에 하고, 또 해서 하나님 이  전지자와 연결된 자 쳐놓고는 일등 못하는 자가 없어. 아마 우리 교회도 믿음  있는 자는 이 세상에서도 일등이라.

다니엘은 그 모두 같이 공부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대가리 싸매고 열심히  했지마는서도 다니엘은 하나님과 연결된 그거 연습을 했어. 이라니까 그거는 끝이  없어, 연결된 거 연습은. 끝이 없어. 이러니까 오늘도 우리 교회도 보면은 이렇게  믿음 있는 학생은 전부 일등이야. 못 따라가요. 어떻게 따라가겠소? 저도 학교에서 공부할 때에 오학년까지 했는데, 사학년까지는 제가 전부 다  일등을 다 했어요, 뭐이든지. 그러니까 학교 가면 선생들이 수학 같은 거는  가르치라 하면 나와서 그 시간 제가 가르쳤어요.

이랬는데, 오학년 딱 들어서니까 고게 예수 믿는 아이 하나 있었는데 그 아이가  그때는 한 삼등 사등 했는데 오학년 되니까 공부하는 것을 내가 따라가지를  못하겠어.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배운 학과야 그거야 백점을 맞지마는서도 학과  이외에 그뭐 이렇게 혹, 말하자면 뭐 잠언이나 사람의 무슨 이렇게 뭣을 하나  이래 발견하고 연구해서 하는 그런 발표를 내가 따라가지를 못하겠어. 못 하고  ‘그거 참 이상하다’ 그거 내가 깔보고 업수히 봤는데, 내가 그때 그걸 몰라도 저거  암만 해도지금 말로 하면 객관 역사라 하지마는서도저 아이 아닌 다른 무엇이  있다 하는 그것을 느꼈어요.

느끼고 그래 가지고 내가, 오학년까지는 뭐 쭉 급장이라. 이러니까 지금 급장  같은 이런 급장이 아니고 세도 있는 급장이요, 그때는. 왜정 때인데. 급장이 그  학생들에게 말하면 쭉쭉 따라. 학교 공부하고 떡 나오면 ‘나란히’ 이라면 전부 쭉  늘어서 가지고서 딱 ‘오른쪽으로 돌아서’ 이라면 딱 돌아서 가지고서 `절' 이라면  그 학생들이 전부 내 앞에 절 다 해. 다 하면 내가 이래 답례하고 그래 폐회를  하고 했다 말이오.

이랬는데, 그 아이 하나 있는 그것이라 이래 해서 그좀 마음에 부럽고 마음에 좀  내 소망이 거게 있었어. 자꾸, 그래 놓으니까 그 아이를 못 견디게 내가  시달리게도 하고 이래 하고 이래 했는데, 뭐이 속에 들었다 했었는데 그게 지금  오늘 누구냐 하면은 ○○○라고 여기 지금 ○○ 교파에 나하고 신학을 같이 했고  거게서 ○○ 교파하고 ○○교파하고 합동될 때에 그때에 거게서 가 가지고 고만  ○○ 총회에 총무로 그 사람이 들어서 가지고서 내치 오늘까지 했는데 요새는  지금 뭐이 됐는지 몰라요. 그 사람은 하나님이 같이 했기 때문에 거게서  떨어졌어.

이 하나님이 같이 하는 사람은, 이렇기 때문에 세계의 발명가를 숫자를 세어  보면, 내가 한 삼십 년 전에 그때 발표 봤는데 발명가 중에 백의 칠십프로가 다  기독 신자고 삼십프로가 이방 사람이었었습니다, 그때 수에. 지금 내가 숫자가  어찌 됐는지 모르지만. 지금도 예수 믿는 사람이 진실하면은 사람들이 따라가지  못해요.

이러니까, 하나님하고 나하고 합하면은 공부 세상 못 하겠다, 출세 못 하겠다, 이  하나님과 합했을 때에 출세 안 되는 출세는 되는 것보다 안 되는 게 좋기 때문에  안 되게 하시고 되어서 필요한 것은 되게 하고 이겨 필요한 거는 이기게 하고  져서 필요한 거는 지게 하고 이렇게 하시는 이분을 든든히 믿고 나아가는 그를  당신이, 이렇게 당신을 믿는 그자를 취해.

당신을, 이 세상 것이 그것보다 좋다 해서 무시하고 하는 고런 자는 하나님이  복수해요. 이래서 ‘하나님은 업수이 여김을 받지 않는다’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않는다 말은 업수이 여김을 받지 않는다. ‘무엇이든지 심은 대로 그대로 거둔다’  네 행동한 대로 그대로 내가 갚아 준다 하는 이 무서운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러기에, 하나님만으로 전부 삼지 안하고 땅에 있는 선내끼 조끄만한 그까짓 거  뭐, 무슨 지식으로 가지고서 박사니 또 세상에서 무슨 일류대학이니 졸업했으면  그까짓 게 뭐인 줄 알고 하는 거 참 비리다 말이오. 참 어리석어. 그 심령이  어떻게 둔하든지 땅에서 위를 보지 못해. 항상 땅만 보고 있지.

자꾸 가서 새겨 가지고서, 또 내일 아침에 좁은 길에 대해서, 좁은 문 넓은 문  거게 대해서 말을 하겠습니다. 그 하나라도 좀 달통을 해요.

우리 현실에 나는 끌고 있는 세력이 둘이 있다 하는 것을 그것을 생각지 안하고  있는 것은 뭐 어떤 거라 했습니까? 그건 전부 멸망이야! 천명이고 만명이고  억만명이고 전부 멸망이라! 고 시간에 고 행동은 멸망이기 때문에 멸망의 행동  외에는 딴거 못 해요.

비로소, 거게서 둘이 있으니 어짜나 할 때에 그때에 멸망인지 생명인 이 좀  소망은 있지마는서도 아직까지 없어.

그래 가지고서 이제 두 영을 알고 깨닫고, 두 영의 인도를 깨닫고 이제 이  생명으로 인도하는 이 하나님의 영의 인도를 받을라고 애를 쓰면 다 받을 수  있어. 다 깨달을 수 있어.

처음에 일호가 양심만 쓰면은 다 깨달을 수 있고 양심 쓰고 난 다음에  재수정하는 것은 성경 말씀을 비추어서 깨달으면 깨달을 수 있고 그라고 나면  성령이 정확 무오하게 깨닫게 해 주시요.

녜,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예수 믿는 것을 그저 놀기 삼아 장난으로 믿어서 구원 얻는다는 그자는 미친  자입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힘을 다하고 세상 어떤 일보다도 더 주력해서  세상 것도 있는 걸 다 기울이는 거와 마찬가지로, 제가 해서 된다고 하는 거와  마찬가지로 그런 방편의 순서를 밟지 안하면 안 됩니다. 예수 믿는 것을 설설  예사로 믿어도 된다는 그자는 영생은 자기가 맛보지 못하요. 천국에야 가지. 택한  자면 가지. 천국가는 건 택함으로 말미암아 가는 것이지 행함으로 가는 게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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