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생


선지자선교회 1985년 8월 31일 토새 

 

본문 : 누가복음 10장 25절∼28절 어떤 율법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가로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대답하여 가로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영생은 생명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생명은 영생을 낳는 것이 생명인데  영생은 우리에게 현실 현실에서 하나씩 만들어져 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전  시간에 영생을 만든 사람도 또 이 시간에는 영원한 사망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영생은 그 자체는 한 번 단번에 영생이 돼 버리기 때문에 두 번 끌지  않습니다. 그 현실에서 영생된 것은 다시 시험이 없고 영원합니다. 그것은 벌써  하나님께로부터 났고 하나님께 속했기 때문에 그는 아무것도 해하지를 못합니다.

그러나 또 영생을 이 시간에 얻은 사람도 요다음 시간에는 영원한 사망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또 일 년이고 이태고 몇 해고 영원한 사망만 이루다가 그 사람이  또 이 시간에는 영생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생이라 하는 것은 이루어지는 것은 현실에서 이루어지는데 단번에  이루어지고 또 이것은 중복적으로 이루고 또 이루고 또 이루고 그런 것입니다.

그것은 왜 그런고 하니 마음과 몸의 이 기능구원인데 마음과 몸의 기능이라 하는  것은 그것이 수많은 기능 세포가 모여 가지고 된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도 그  세포가 수많은 숫자가 있고 또 이 고기덩어리의 세포도 수많은 세포가 있는  것처럼 그 모든 수많은 양이 다 이렇게 종합해 가지고 되어진 것이 그것이  마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마음은 단일성의 마음 이 아니고 몸의 힘도 단일성이  아닌 것입니다. 사람들이 이 체육을 하는 것은 그 힘올 몸의 힘을 단일화할라고  집중을 하는 연습을 하는 것인데 그 단일화 되면 대단히 효력을 나타내고  강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든지 분산할 수가 있습니다. 마음도 하나가 아니고  마음이 열 군데고 스물 군데고 그 마음이 나누어 갈 수 있습니다. 마음이 여게도  있고 저게도 있고 이렇게 분산돼서 나누어 갈 수도 있고 그 마음이 한 군데로  집합할 수 도 있지만 그 마음의 집합이라 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고 훈련을  받아서 연습하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최면술이라든지 그런 것은 다 마음의  훈련으로서 마음이 집합되는 그 집합성의 한 연습을 가리켜서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은 이것은 단일성의 것입니다. 영은 단일성으로 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영은 죽어도 한목 죽고 하나 죽으면 영은 다 죽습니다. 영은 죽어도 또  부분적으로 죽는 게 아니고 영은 죽으면 딴번에 다 죽고 살면 단번에 다 삽니다.

이래서 우리의 영이 살아난 것을 가리켜 중생이라 이라는데 중생은 그 영이  단번에 살아났습니다. 그러면 살아나고 난 다음에 그다음에 아직까지 살아나지  못한 그런 찌끄러기가 있느냐 하면 그렇지 않고 살아날 때 다 살아났습니다.

그러나, 마음과 몸의 기능은 살아났지만 아직까지 죽은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또  그 사람에게 모든 부분이 죽었으나 또 성화돼서 살아난 부분도 있습니다.

 이래서 영생은, 그렇게 부분적으로 살아나는 그 마음과 몸의 기능에 대해서  가리킨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영은 영생할 수 있는 생명으로 살아난 것이고 그  생명의 힘으로 인해서 이 심신의 기능이 그때 그때 영생할 것으로써 살아나고 또  둘째 사망. 영원한 멸망으로 멸망하게도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영생은  생명에서 맺어진 것입니다. 그러면, 생명은 어디서 맺어졌는가? 생명은 의에서  열매가 맺어진 겁니다. 의에서 생명이 맺어 졌습니다. 그러면 의는 어디서  나왔는가? 의는 믿음에서 나왔습니다. 예수님께서,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  이신 예수를 바라보자' 믿음의 주라 그말은 예수님도 이 의를 이룬 것이 믿음으로  의를 이루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의를 이룬 것도  믿음으로 이루었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그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어떤 게 믿음인가?  하나님의 나타나신 셋 셋으로 나타났는데 그 셋은 하나입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본체시요, 하나는 본 체가 역사하는 것을 가리켜서 영감이라 이렇게 말했고,  영감이 나타난 그것을 문서화시킬 때에 그것을 가리켜서 진리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본체, 영감, 진리 이 셋은 하나인데. 하나님의  본체에서 다 나온 건데 나와 가지고 활동하는 그 위치가 각각 달라서 영감이라,  진리라 하나님 본체라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이랬는데 믿음으로 의가 되다는  믿음은 이 셋의 지극히 큰 능력과 지극히 큰 사랑과 완전 그러면 이 셋은 어떤  것으로 말미암아 생겨진 것이 아니고 영원 자존한 완전자시며 영원 불변자시며  전지 전능자시며 이 셋은 단일성을 가진 것입니다. 이 셋이나 하나입니다. 이  셋을 알고, 이 셋을 알고 먼저 알고 이셋은 어떠한 존재라 하는 것을 그의  자체라든지 그의 모든 지능이라든지 도덕성이라든지 또 활동성이라든지 그런  것을 알고, 그 다음에는 인정하고, 그 다음에는 바라보고. 그 다음에는 그분을  알고 인정하고 바라보기 때문에 안심하고 자기를 다 맡겨 놓습니다. 또 자기가 안  맡겨 봤자 털끝만치도 제 맘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맡겨 놓고 그저 그분에게 복종하는 것으로써 영원한 생애와 자기의 전생명인  것으로 이래 여기고 복종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이래서, 이 셋 큰 세력과 이 결합된 것이 그것이 의인데 의는 이 셋과 완전히  결합이 돼서 나눌 수 없이 딱 들어붙어서 하나가 된 이 결합 이 의인데 이  결합을 뭘로 만들었느냐 하면 빌립보 2장 5절 이하에 보면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이랬습니다.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동등될 것으로 여기지 아니 하시고 자기를 비어 곧 종의, 형상을  가지시고 사람같이 되어서 죽기까지 복종하였으니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셨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하나님께 완전히 복종하는 이 복종으로 이 결합을  이루었습니다. 이 복종함으로 결합을 이루어서 그분과 결합이 되고 보니까 천상  천하의 모든 거 위에 뛰어나게 되었고 모든 것이 다.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이  무릎을 끓고, 무릎을 끓었다 그게까지만 말하면 강제같이 되는데 마지막에 보면  모든 것이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강제가  아니고 평가적으로, 감화적으로 다 모든 것에게 시인을 받도록 그렇게  역사하셨습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믿고 또 하나님을 바라보고. 또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겨 놓고  또 하나님을 완전히 의지해서 그분에게 따라서 피동되는, 순종하는 그거 가지고  완전 결합을 했습니다. 이 완전자, 완전, 셋이 합해 하나인데 이 영원 자존하신 이  완전과 결합이 되는 데는 이 믿음 방편 외에는 다른 것은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분을 알아야 되고. 그분을 인정해야 되고 그분을 바라봐야 되고, 또  그분에게 자기의 전부를 맡겨야 되고 그분을 의지해야 되고 그분을 암만 이같이  다 했다 할지라도 그분을 따라서 또 움직이지 안하면 안 됩니다. 그분을 따라서  움직여야 되고, 능동은 하나도 없고 이렇게 돼지면 지극히 크신 그분과 결합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결합을 인간으로서는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지극히 크신 분과 어떻게 결합할 아무런 인간에게는 그런 요소도 없고 또 벌써  타락되어서 결합할 수 있는 자격도 없고 이래 됐는데, 하나님의 사랑이 이 결합을  시키기 위해서 부득이 하나님이 이 결합을 시킬라고 착수하셨습니다. 착수했지만  하나님이 결합을 하면 독단이고 이것이 강제지 하나님의 지공이라는 공의에 맞지  않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이 자존하신 분이요 당신이 모든 것을 만드셨지만 당신이  피조물들에게 대해서도 공의가 있어야 되고 정의가 있어야 되고 있어야 되지  그게 없으면 안 되기 때문에 어떻게 사람이 잘못한 그것을 하나님이 그것을  대신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공의를 지키기 위해서,  공의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 하나님이 친히 사람이 되셔 가지고 또 죄의 값을 다  받았고 또 순종의 완전 순종을 이루었고 또 하나님께 완전히 속해서, 결합된 것은  이제는 하나님이 원동이요 그 사람은 전적 그에게 피동뿐이지 단독 행위가 없는  그것을 가리켜서 이제 결합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래서 이 어려운 일을 인성이  아니면 인간을 대신 할 수 없기 때문에 인성을 입었고, 또 인성만으로는 아무리  죄없는. 예수님의 인성은 타락이 없었기 때문에 원죄와 본죄가 없는, 피조물로서는  완전한 것으로 되어 있는 것이지만 자체는 완전이지만 이 크나큰 이 결합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이룰 수가 없는데 그 결합을 이룬 것은 그 속에 신성이 인성을  전적 도와서 인성을 통해서 하기는 하나마 신성이 이 인성에게 능력을 줘 가지고  그렇게 이 결합이 될 수 있는 결합 행위라는 이 믿음을 온전히 지켜서 그 일을  이루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에베소 1장에 보면 지 극히 큰 능력이 예수님의 인성을  붙들고 간단하게 기록했는데 죽는 일과 사는 일 그것을 다 완성을 했습니다.

죽음으로 이 결합되는 일 있고 삶으로 결합되는 일 있는데 그것을 다 이루어서  하늘의 것과 땅의 것과 모든 정사와 권세와 모든 것의 다 머리가 되고, 이래서  모든 피조물은 발등상을 만들었고 자존하신 하나님의 몸과 같이 지체와 같이  그렇게 만드셔서 하나님은 머리가 되고 예수님은 인성인데 그 몸이 되었다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래서 예수님이 아버지 우편에 앉아 계셨다 그말은 예수님의 신성을 말함이  아니고 신성은 아예 하나님의 본체시기 때문에 뭐 언제 타락이나 뭐 그래 변해질  수 없는, 변할 수 없는 완전자기 때문에 신성이 아버지 우편에 앉아 계신 것을  가리켜 말하지 안하고 신성이 역사하시는 그 은혜의 역사로 인해서 인성이  아버지 우편에 앉게 된 것을 말한 것입니다. 아버지 우편에 앉았다 그말은  하나님의 지성과 지공이 만족할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도덕과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지혜로 그것을 힘입어서 지성과 지공법을 완수한 완전  승리를 가리켜서 아버지 우편에 앉아 계셨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우편이라 하는 것은 승리한 그것을 표시하고, 그 우편이라 하는 것은 지존자 한  분 다음의 위치를 가리켜서 우편이라 그렇게 표시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하나님이 계시한 것이나 인간의 방언을 이용한 것입니다. 인간의  방언에 주님 그 당시에 마리아가 자기 아들 야고보와 요한을 주님 의 나라로  임하실 때에 오른편과 왼편에 좌의정과 우의정. 우의정 좌의정 그걸 만들어  주옵소서 이랄 때에 그때 서로 시기가 나고 뭐 그때 분요함이 한번 나 가지고  하나님 앞에 한번 책망을 받은 일이 있습니다.

이래서, 아버지 우편에 앉아 계신다는 것은 흠 없는 완전 승리를 한 것을  가리켜서 아버지 우편에 앉아 계신다 코리 말했고, 그러면 아버지 우편에 앉아  계신다 했는데 왜 그러면 완전 승리했다 이럴 건데 왜 아버지를 붙여 놓고  아버지 우편에 앉아 계셨다 했느냐 하면 그를, 이 승리가 그에게서 나왔나  말입니다. 이 승리가 거기서 나오고, 그로 인하여서 이 완전 승리를 했고 또 그를  힘입어서 영원히 알파와 오메가가 되는 이런 통치성을 가진 그 통치권, 이 통치권  가진 것을 가리켜서 아버지의 우편에 앉아 계신다 그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지난  번 목회자 양성원 강의 때에 아버지 우편이라는 것을 조직 신학에 나와서  가르치는데 그래서 그것이 틀려서 내가 오층에서 듣고 있다가 그래 그것을 다시,  우편이라는 건 그게 아니다 하는 것을 밝혀서 그때에 수정해 줬습니다. 그러면  그런 것은 다 지금까지의 교리들에 말하지만 정확한 정의를 바로 잡지 못해서  그때 그것을 말해서 다 모두 학생들이 노트에 기록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우편에 앉아 계신다 하는 것은 그분을 힘입어서 완전 승리를  했고 또 앞으로도 그분으로 인하여서 그분을 힘입어서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을 다 통치하고 모든 것에게 다 은혜를 베풀고 모든 것을 영원히 하나님의  것으로 충만시켜 영존 영생하게 할 수 있는 그 역사 있는 것을 가리켜서  아버지의 우편에 계신다 그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이래서 이 의는. 의는 뭣을 가리켜서 의라고 말하느냐 하면 지극히 크신 이 셋  능력과 완전 결합되는 것을 가리켜서 의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영생은  심신의 기능이 부분적으로, 세포적으로, 분자적으로 이 지극 히 큰 이 셋 능력과  결합된 그것을 가리켜서 영생이라고 말하고.

또 둘째 사망이라고 말하는 것은 신인양성일위이신 예수님이 이 셋 능력과 완전  결합을 했는데 결합한 그것을 우리를 대신해서 결합했기 때문에 우리는 한 것이  없지만 우리가 결합한 그런, 하나님의 심판에 계산이 됐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지공 지성의 공심판 대심판 공심판에서 우리는 다 통과해 가지고  나와서 중생하게 된 것입니다. 중생은 벌써 사죄와 칭의와 화친의 이 공로를  입었기 때문에. 죄가 없기 때문에 중생은 생명을 가지는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생명을 가지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그 현실에서 이 완전 결합을 가진 심신의 기능의 분자는 그것은  부분적으로 영생이 됐고, 또 과거에 지내가 산 것은. 산 것도 영원한 멸망된 것도  있고 뭐 사람들 일생 생애에 오늘까지 산 생활을 과거를 하나님의 심판에서  계산을 대 보면 과거는 쏵 다 죽은 사람 많습니다. 쏵 다 죽고 어짜다가 그래  하나만 한 분자만 살아 가지고 있고 나머지기는 쏵 다 죽은 사람 있고, 앞으로  지금 남아 있는 것은 다, 우리에게 남아 있는 심신의 기능 이것은 순서를 세 가지  순서를 밟아 가지고 온 것이 우리의 심신의 기능입니다.

 첫째는 죄도 의도 없는 그런 아무런 기능이 없는 기능 없는 존재로 있은 것이,  그것이 처음에 창조함을 받아 가지고 있을 때의 존재입니다. 그러면 그때에  하나님께서 생기를 불어넣어서 때에 하는 것은 그때에 외래적인 영감을 받았다  그말입니다. 생기를 불어넣었다 하는 것은, 코에다 생기 불어넣었다는 것은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그렇게 말한 것이지 영감과 연결이 됐다 말입니다.

그러니까 산영이 됐다 이렇게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무 생명도 없고 죽음도  없고 아무런 기능적으로는 아무것도 없던 존재가 아무것도 없던 존재가 이제는  생기를 불어넣어서 다시 그 기능적으로 산 존재가 됐습니다. 산 존재가 돼서, 산  존재가 됐을 때에 그 때 무슨 일 했는고 하니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만물을 그  앞에 갖다 놓으면서 이 영원한 미래를 결정해라. 그게 이름을 지어라 말입니다.

이름을 지어서 호랑이는 영원히 호랑이 노릇하고 사자는 영원히 사자 노릇하고.

뱀은 영원히 뱀 노릇하고 이렇게 이름을 지으라 할 때에 아담이 그 이름을 지은  것이 하나님이 짓는 거와 꼭 같이 맞아 떨어졌습니다. 그거는 왜 그러냐? 그때는  아담이 독단 단독 행위 능동적인 행위는 없고 순전히 하나님께 피동으로  행동하는 그게 됐기 때문에 그때는 산영이 됐었습니다. 산영이 돼 가지고 그대로  있었으면 영생합니다. 이랬는데 그 후에 하나님께서 자기 중심으로 날뛰다가  쫓겨난 천사를 보냈습니다. 그것이 악령입니다. 악령을 보냄으로 말미암아 악령의  미혹으로써 이렇게 이 셋 지극히 큰 능력에게 속해서 그로만 따라 움직이고 그만  바라보고 그에게 맡겨 놓고 이라면 이것이 영원히 살 수 있는 것인데 이것이  사탄으로 인해 가지고 유혹을 받아서 하나님께 복종하지 안 하고 자기 단독  행위를 했습니다. 자기 혼자 하나님된다고 마귀가 꼬우니까 거기서 제 마음대로  제가 능동적으로 행동한 그 행동이 생겨졌으니 그것이 뭐인가? 그것이 이제  선악과 먹은 행동입니다. 이래서 처음에는 기능적으로는 아무것도 없는 존재가,  그다음에는 하나님께 연결된 기능을 가졌다가,  또 그다음에 뱀의 유혹을 받아서 타락을 했습니다. 그러면 몇 가지 순서를  밟았습니까 세 가지 순서를 밟았습니다. 이래 가지고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해서  대속했기 때문에 대속으로 말미암아 이 셋 지극히 큰 능력과 재연결되는 연결이  됐습니다. 그러면 네 가지 순서를 밟았습니다. 우리는 다 재연결을 밟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건 여러분들이 얼마나 이거 어려운 건지 모릅니다. 쉬운 것  같아도 아주 어렵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아직까지 세계에 있는 수천 년 내려온 기독교가 이 조직 신학에서  아직까지 이런 것은 정의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들이  나가서 벌로 덤비면 그들에게 도리어 반박을 당하기 쉽습니다. 이러니까 이런  거는 서서히 내 놔야 되지.

 이것이 뭐이냐? 다시 결합해서 살았다 말입니다. 이 셋 지극히 큰 능력과 결합돼  가지고 산 것이 택한 자들입니다. 택한 자들은 세상에 나오기 전에 벌써 이거  결합이 돼 가지고 있습니다. 결합이 돼 가지고 있는 것은 제 행동으로 결합된  것이 아니고 이분으로 말미암아 결합이 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로마서 8장 1절에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정죄함이 없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니라.' 이래서 우리가 벌써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것은 우리가  믿을 때만 있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 안에 있기는 영원 전 하나님이 예택을 할  때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했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런 거는 그 성경을 모르고  벌로 해석을 하면 큰일 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택함이 언제 택함  받았습니까? 창세 전이라 했습니까 창세 후라 했습니까? 창세 전에 택함을  받았는데 무엇 안에서 택함을 받았다 했습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을 받았다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영원 전 구원받기로 이렇게 돼 가지고 있는데, 예수님의  대속으로 인해서 완성이 됐고, 대속이 있기 전에는 예수님의 대속을 모형하는  짐승을 가지고 예수님의 대속을 해서 그 일을 완성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이 셋 능력과 완전 결합이 돼 가지고 산 자가  되어져 가고 있는 것입니다. 산 자가. 그러면, 몇째 순서로 산 자가 돼 가지고  있습니까? 몇째 순서로? 네 가지 순서로 산 자가 되어 있습니다. 산 자가 되어  있는 데 그러면 이 산 것은 몇 가지로 살아 가지고 있습니까? 세 가지로  살았습니다. 세 가지로 살았는데. 하나는 하나님과의 이 계약적으로 살았습니다.

계약적으로 살아 있고. 또 하나는 법적으로 살아 있고 하나는 뭐입니까? 하나님의  공심판적으로 살았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공심판을 벗어났습니다.

면했습니다. 또 법적으로, 하나님의 지성 지공법적으로 살아난 거는 예수님이  대속했기 때문에 법적으로 살아 난 것입니다. 또 하나님이, 계약이라 하는 것은  계약이, 구약에 계약이 나타났고 신약에 계약이 나타났는데 이 계약이 나타나기  전 하나님이 예정이라는 그 예정이 하나님의 계약입니다. 예정이 이제 나타나서  문서로 나타났을 때에 그것이 구약 성경이고. 구약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예정까지 다 그 안에 다 들어서 포함돼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이 네째 순서로서 살아난 것이 이제 다섯째 순서에서 완전한 영생이냐  영원한 멸망이냐 하는 것이 여기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다섯째 순서만 통과하면  다시는 변동이 없습니다. 다섯째 순서에서 영원한 사망하는 것을 가리켜서 둘째  사망의 해라고 그렇게 말씀을 했고, 왜? 네째 순서에서 살아났기 때문에 살아난  것이 다시 예수님이 대속하신 이 대속을 자기가 배반하지 안하고 이 대속을  인정하고 대속을 믿고 바라보고 있으면 이제는 영생이 되는 것인데, 이 현실에  모든 이 세상의 기합과 압력과 유혹을 이것이 이기지 못해서 예수님의 이 대속의  셋 결합을 버렸다 그말이오. 버렸으면 그 현실에서는 버리든지 그렇지 않으면  자기가 이 세상을 버리고, 세상을 버리고 이 셋 결합을 취할 수 있고. 또 이 셋  결합을 버리고 세상을 취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세상을 취한다는 것은 자기가  평안한 안일을 취하든지 자기의 취미를 취하든지 자기 욕심을 취하든 지 또  물질을 취하든지 권세를 취하든지 자기가 좋아하는 거 어떤 걸 취하든지 자기가  목숨을, 자기 생명을 취하든지 뭣이든지 첫째 아담에 속한 거 이것을 내어  놓으라고, 안 내어 놓으면, 이 셋 결합을 안 내어 놓으면 이 첫째 아담에 속한  것을 뺏들겠다 이랍니다. 뺏들겠다 이랄 때에 뺏겨도 이 셋 결합을 뺏기지 안하는  사람 있고 첫째 아담에게 속한 것을 뺏기지 않기 위해서 셋 결합을 내 놓는 사람  있고 이 두 가지로 현실에서 판정이 나 버리고 맙니다.

 그러면 그 현실에 판정나는데, 현실에서 이 첫째 아담에게 속한 거 몸이 나  소유나 생명이나 뭐 이 모든 세상 행복이나 취미나 영광이나 그런 거 첫째  아담에게 속한 안 믿는 사람들은 전부 첫째 아담에게 속한 것만 가지고 있는데  안 믿는 사람들이 다 가지고 있는 그 전부를 다 말해서 이제 세상이라 말하고  첫째 아담에게 속한 것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이것을 사탄이 제것으로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셋 결합을 네가 안 내어 놓으면 이것을 뺏든다 위협할 때도 있고.

꼬울 때도 있는데 첫째 아담에게 속한 것을 돌아보지 안하고 첫째 아담에게 속한  것이 어떻게 된다 할지라도. 사탄 제가 어떻게 된다 할지라도 나는 이 셋과 셋  지극히 큰 능력과 결합한 이 결합을 이제는, 이제는 내가 다시는 내주지 않겠다.

내어 주저 안하면 이것들이 내놓으라고 자꾸 오만 시련을 다합니다. 시련을 해서  소유도 내놓을 수도 있고, 매장도 당할 수도 있고, 감옥에 갇힐 수도 있고  마지막에는 내놓으라 내놓으라 해 가지고 죽이는 그런 일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죽이는 일 할 때에 그때에 죽을 줄 알면 그놈이 그 어리석게 안 하지만  죽을 줄 알면 또 살려 가지고 또 이렇게 괴롭게 하지만서도 그라다가 탁 죽어  버리면 그만 그만입니다. 그놈도 인간의 죽음이라 하는 시간은 모릅니다.

죽음이라는 시간은 모르기 때문에 이렇게 한번 협박을 하고 이 셋을 내놓으라고  자꾸만 이렇게 해도 살아 있지 싶어서 자꾸 이래 다짐을 받아 가지고 항복  받을라고 애를 쓰는 이것이, 항복 받을라고 애를 쓰는데 애쓰다가서 그래도  `항복해라 항복해라' 이라는데, 아, 그만 인간의 죽음의 마지막 종말 시간을  마귀가 모릅니다. 모르기 때문에 항복 받을라고 이래 하다가 그만 숨이 딸칵  끊어져 버렸습니다. 이제는 마귀가 더 항복 받을 것이 없습니다. 항복 받을 것이  없어졌기 때문에 이 셋 결합은 영원 완전 결합이 돼 버렸고, 그때에 죽었으면  자기에게 심신의 기능은 완전히 이 진리에게 속함으로써, 아담에게 속한 이것이  해를 받아도 껍데기는 해를 받지만 속은 이 셋 능력과 결합이 된 것입니다. 겉은  이 해를 받고 속은 영원히 결합이 된 것입니다. 그러면 저희들에게 속한 그것을  해했지 이 셋과 결합한 것은 해하지를 못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것이 마귀에게 속해 있었고 첫째 아담에게 속해 있는 것이  이것이 지극히 큰 이 셋 능력과 결합이 완전히 돼 버렸기 때문에 첫째 아담에게  속한 이것이. 세상에 속한 이것이, 그것이 이 셋 때문에 없어짐으로 이 셋의 것이  되는 것으로 이같이 판정했고. 또 없어져도 이 셋을 버리지 안함으로써 이 셋에게  속한 것이 판정이 났고, 셋의 것인 것이 판정났고 셋만을 바라보는 것이 판정  났고, 셋에게 어떻게 판정났습니까? 또 하나는? 셋에게, 뭐 하나 남았어요?  셋에게 어떻게 되는 것이 판정났습니까? 셋에게만 피동되는 것이, 이것이  판정났습니다. 결정났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사람 보기에는 죽는 것 같지만 실은 죽는 것이 아니고, 사람  보기에는 그러하지만 실은 이 셋 능력에 결합됐기 때문에 다시는 세상이 해할 수  없는 것으로서 홀연히 변화돼 버린 것입니다. 변화가 됐습니다. 우리가 이다음에  전체가 변화될 때에 홀연히 다 변화되는 이거,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할 것으로  완전히 변화됐습니다. 죽을 것이 죽지 안할 것으로 성화되고, 또 약한 것이 강한  것으로 성화되고, 혈육의 것이 신령한 것으로 성화되고 더러운 것이 거룩한  것으로 성화가 돼 버렸습니다. 이거 유한한 것이 무한한 것으로 성화돼  버렸습니다. 지극히 큰 셋 능력과 결합이 돼 버렸습니다. 예수님이 이 결합이  됐기 때문에, 그들은 다시 더 가해할 수 없는 것으로 끝이 나 버렸기 때문에  저희들은 할 수가 없고, 끝이 나도 이 셋 능력과 예수님은 완전 결합이 돼서  다시는 뒤에 변동 없는 완전 결합을 가졌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때 `내가 세상을  이겼다'말씀하셨고 `다 이루었다' 말씀하셨고 운명하실 때에 다 이루었다 하시고  운명하시고 그다음에 다시 부활하셔서 내가 세상을 이겼다' 말씀을 하셨고. 3일  만에 부활하셔 가지고 이제 사망과 생명과 사탄과 하늘의 것과 땅의 것 모든  것을 다 점령을 했다는 것을 마태복음 28장 17절 이하에 기록돼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단독 결합은 안 되는데 예수님이 대신해서 결합한 이 결합을  우리가 이 현실에서 우리의 영은 이 셋과 결합된 것을 단번에 예수님의 공로로  받았습니다. 왜 영이 죽어 있기 때문에 아무 산 자체가 없으니까 그의 행동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죽은 자를 살려 놓고 난 다음에, 살아 있는  자라야 그 행동 여하가 있을 수 있지 살지 못한 자에게는 행동 여하가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영은 주격이 영인데 영이 죽었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산 생명에 속한 게 하나도 없기 때문에 살려놔야 되겠다 말이오.

주격은 하나님의 은혜로써 살리고 난 다음에 이 주격의 소유가 되어 있는 이  심신은 영이살또록 해 가지고 영이 이 심신의 기능을 살리는데, 우리 영 말이요.

영이 살리는 데 영 속에 이 셋 능력이 영과 연결됐기 때문에 우리 중생된 영을  통해서 이 셋 능력이 지금 우리의 심신의 기능을 살릴라고 역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현실에서, 그 현실에 해당된 심신의 기능이 이제는 예수님의 대속으로  살아난 것이 영원히 사느냐 대속으로 살아났던 것이 제가 배반하므로써 둘째  사망으로써 영원히 죽느냐 하는 것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때에 안 벗은  거는. 현실 전투에 가담해 가지고 승리한 것은 영원히 살았고 패전한 것은 둘째  사망으로써 영원한 사망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생은 우리가 한 시간 한 시간 살면서 이루는 그것이 영생인데, 영생은  무엇으로 말미암아 되느냐 하면 영생은 생명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영생은 생명에게 맺은 열매입니다. 그러면 생명은 어디서 맺어 졌습니까? 생명은  의에서 맺어졌습니다. 의는 하나님과 결합된 걸 말합니다. 이 셋 능력과 결합된  걸 말합니다. 그러기에 생명은 이 셋 능력과 결합된 것이 생명이라 하는 것은,  생명이라 하는 것은 끝만 따서 말 해 놓은 것이지, 그러면 이 셋과 결합된 게  생명이라 말은. 결합된 것이 생명이라는 것은, 결합이 어떻게 됐느냐 하는 걸  물으면 결합은 의로 결합이 됐습니다. 결합된 것을 의라 하는 것인데. 그러면 그  결합이라는 이 의는 뭘로 만드느냐? 의는 믿음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면,  믿음으로 예수님은 만들었고, 만든 그 믿음을 우리에게도 차원은 다르지만  예수님이 만들어 놓은 이것을 우리가 선물로 은혜로 주신 것을 뺏기지 안하는  그것도 믿음으로 뺏기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믿음으로 만들었고, 우리는 믿음으로  뺏기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믿음으로 만든 것도 지극히 큰 능력을  힘입어서 만들었고 우리가 예수님이 만들어 주신 은혜 의 이 셋 결합을 뺏기지  않는 것도 우리가 믿음으로 뺏기지 않습니다. 우리 믿음도 지극히 큰 능력이  우리에게 와 가지고 역사하기 때문에 그 능력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이제 받게 된  것입니다. 이거 성경을 여러분들이 좀 알아야 자꾸, 믿어야 될 터인데 믿지 않기  때문에 이 가르치기가 힘들고 다 거짓부리, 그래 인제 지금이라도 오면 뭐. 이거  뭐 서부 교회 백 목사 목회는 다 헛일이 아니냐 보입니다. 다 모두 믿음이 없어.

여게 에베소 1장 19절 보면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그 능력이 들어서  이렇게 승리하게 했는데, 일차적으로 예수님 안에서 역사해서 승리케한 그 능력이,  그 능력이 이제 믿는 사람 우리들이 믿을 때에 우리에게 와 가지고 그 능력이  우리로 하여금 이 결합을 시험하는 이 시험에 승리하도록, 그러면 예수님은 이 셋  능력과 결합하는 이 결합을 창조하신 것이 예수님이시고, 또 우리는 주님 이 대신  창조하셔 가지고 은혜로 주시는, 은혜로 주신 이 결합을 우리가 믿음으로 뺏기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의 의는 창조의 의요 우리는 이 의를 뺏기지  안하고 잘 보존하는, 보수하는 의입니다. 보수 보호하고 지키는, 보수하는 의가  우리의 의입니다.

 이래서 여러분들이 이걸 단단히 배우고 이런 재독은 여러 수천 번 여러분들이  들어야 됩니다. 뭐 이런 것을 다 깨달아 가진 사람은 수십 번 아니라 수천 번도  더, 눈감고 묵상 가운데 수천 번도 더 생각합니다. 수천 번도 더 생각하고 또  깨닫고 깨닫고 또 깨닫고 또 이리 깨닫고 저리 깨닫고 또 이렇게 또 깨달아  가지고 이렇게 비판하고 저렇게 비판하고 모든 이 세상에서, 예수님의 재림이 몇  백 년이 있을란지 몇십 년이 있을란지 몇 해가 있을란지 모르지만 재림이 몇 십  년이 있으면 몇십 년이 있은 데는 별별 사람들이 오마는 것이 다 와도. 그런 것이  다 나와도 정죄할 수 없는 그런 것으로 되어 있는 것을 사람들에게 발표를  할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런 것을 제 경험으로써는 제가 연구해  가지고 안 것 아니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가르쳐 줘서 문득 말하고 나서 그 뒤에  말을 하고 난 다음에 그다음에 성경으로 연구해 가지고 이게 참되다 그렇게  깨달은 것입니다. 그것은 내가 위대해 그런 게 아니신 하나님께서 선지자로  세우셨기 때문에, 세우셨기 때문에 당신이 알려 가지고 많은 사람에게 알리기  위해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믿음을 지키는 것은 뭐 할라고 믿음을 지키느냐 하면 예수님께서  이 셋과 결합해 놓은 이 결합을 뺏기지 안할라고 우리가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믿음을 지켜서 믿음을 지키는 것은 우리가 지극히 큰 셋 능력과  우리가 결합을 만드는 것입니까, 결합을 만드는 것입니까 예수님이 만들어 주신  이 결합을 우리가 보수하는 것입니까? 우리가 죽도록 중성해서 믿음을 생명까지  다 바쳐서 충성한다 할지라도 우리가 이 믿음을 지키는 이 믿음은, 믿음은 생명의  근본이 되는, 생명의 나무가 되는 이 의를 창조하는 것입니까, 예수님께서  창조해서 은혜로 주신 것을 공짜배기로 받아 가지고 이것을 지금 뺏기지 안하고  보수하고 가지고 있는 보수하는 것입니까 우리 믿음은 뭐입니까? 보수의  믿음입니까 창조의 믿음입니까? 창조의 믿음이라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보수의 믿음이라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봅시다 네, 보수의  믿음입니다.

그러면 이 보수를 할라고 하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보수를 할라고 하면 어떻게  보수를 해야 된다고 했습니까? 누가복음 14장 33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이와같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했습니다. 소유라면 우리의 몸도 우리의 소유요. 생명도  소유요, 물질도 소유요, 지위와 권세도 소유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제자된다  말은 예수님과 결합된다 말 아닙니까? 예수님의 제자된다 말은 예수님과 하나된  예수님에게 속한다 말 아닙니까? 이랬는데. 이걸 할라 하면. 다시 말하면 이 셋과  결합한 이 결합을 내어 주지 안하고 예수님이 주시는 이 결합에 내가 결합이  될라고 하면, 예수님 이 만들은 이 결합에 내가 결합이 될라고 하면, 그게  예수님의 제자 되는 건데 결합이 될라고 하면 얼마나 힘을 써야 된다고 했습니까  얼마나 힘을 써야 된다 했습니까? 힘을 써야 된다는 그 힘쓰는 것을 몇 가지  면으로 가르쳤습니까?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이소. 네, 네 가지 면으로  가르쳤습니다.

그러면 또 힘을 쓸라고 하면 어떠한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습니까? 어떤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습니까? 자기에게 있는 소유를 열 가지까지는 가지고 이 일을 이룰  수가 있다 했습니까, 혹은 열 가지는 가지고 이 일을 못 이룬다. 그저 최소한 한,  둘까지는 가지고 이룰 수가 있다. 자기 제일 귀한 것 생명이라든지 뭐이든지 가질  수 있다 그렇게 말했습니까, 자기의 가진 것을 하나도 생각지 안하고 이 셋  결합만 생각하고 이 셋 결합을 위해서 자기에게 있는 모든 것이 다 절단나도  하나도 이 셋 결합보다 그것이 못한 거 셋 결합은 그것보다 나은 것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 뺏겨도 이 결합을 뺏기지 안할라고 하는 자라야 뺏기지 안하지  그렇지 않으면 다 뺏길 수 있다 그래 그렇게 말했습니까, 가지고 갈 수 있다  했습니까 가지고 못 간다 했습니까? 말에 대답해요. 자기의 것을. 이 셋 결합을  가질라고 안 뺏길라고 하면, 최후까지 안 뺏길라고 하면, 이 셋 결합을 안  뺏길라고 하면 자기에게 있는 소유를 몇 가지나 가지고 안 뺏길 수 있다고  했습니까? 자,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이소. 몇 가지나 가지고? 그러면 어떻게 자기  소유를 어떻게 해야 이 결합을 안 뺏길수가 있다고 말했습니까? 한번 손으로  한번 가리켜 보이소. 이거 뭐 진공이지, 이래 한번 가리켜 보지요. 한번 이래 봐요.

자 이래 한번 봐요. 다 이래 봐요. 이거 영, 공 아니요. 이거 빈 거 말이지. 하나도  없이 딱 비어야 돼, 이거. 쏵 비어 한번 이래 들어박요, 이래 이래 가리켜 봐,  둥그러이. 손가락으로 이래 둥그러이, 둥그런 돌뱅이를 이래 한번 만들어 봐.

돌뱅이 이 돌뱅이, 이래. 이 공 아니요? 공. 자기 소유는 하나도 없이 공이 돼도  이 셋은 뺏기지 않겠다 이래야 돼지지 뭣이든지 한 가지라도 가지면 이거 셋을  안 뺏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래서 "사로잡는 자는 사로잡힐 것이요" 계시록에 그래 놨어. 뭐이든지 잡은  사람은 잡힌다. 하나라도 가지고 갈라 하면 마귀에게 잡히게 된다 그말입니다.

하나도 안 가져야만 안 붙들리지요. 이러니까 이 세상에서 이 셋과 결합을 뺏기지  안할라 하면 이렇게 어려운 일인데 어려운 일인데 어떤 사람은 뭐 조그만한 돈  문제만 있어도 그만 이 씻 내 놓고 감정 문제만 있어도 이 셋 그만 내 놓고, 이래  가지고 서 다 이래 내 놓는데. 이제 여기 반사 하나 어제 내가 봤는데 그 반사가  어북 예수 잘 믿는 줄 알고 그 뭐 괜찮은 줄 알았더만 가짜라. 여기 와 앉았을  거라. ○○○남편 손 한번 들어 봐. 안 나왔는가배. 새벽에도 안 나왔네. 가짜가 돼  버렸어 가짜가 됐어. 인제 그 속에 생명은 들어갔기 때문에 죽을라면 죽고  마음대로 해. 그까짓 거는 달랠 필요가 없어. 매로 때려 가지고 안 되면 쫓아  보내 버리든지 이래 버리지 필요가 없어. 이제 어릴 때에 그렇지 예수 믿는  구원의 도리를 안 자에게는 그와 같이 하지 안 해요. 어린 자에게는 막 그 앞에  가서 상전같이 이래 가지고 죽는 듯이 절절매지만 이 도리를 안 자에게는  정승이라도 대통령이라도 때려댑니다. 뭐, 구원 도리를 몰라서 그렇지 알고 난  다음에는. 그까짓 그런 게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아 이랬는데 중간반 반사하고  결혼할 때에 반사 노릇하기로 하고 약속을 하고 해 놓고 이제 뭣 때문엔지 반사  노릇을 안 하고 제 사업을, 무슨 사업을 크게 하는지 그 사업하는데 아마도  그것을 도와서 일을 봐야 되겠다 이렇게 해 가지고 그렇게 하는데 `그래 사업을  무슨 사업하노?' 하니까 휴지 장사한대요. 휴지. 휴지 장사 큰 아주 대대 사업에  휴지 장사하는데 그래 가지고 처음에 약속도 그래 놓고. 이제 자동적으로 그렇게  하 면 나중에 새끼가 하나 낳고 둘 낳고 자꾸 되면 나중에 하나님이 이거는  가정에서 네가 이 일만 하면, 네가 가정 교회 이 일만 하면 한 짐되기 때문에 이  일이나 하지 이거는 네가 돌아다니지 못하니까 할 수가 없다 그말이오. 요새  ○○○선생은 중간반 반사 노릇하고 있는데 ○○○선생이 하고 있는 거 아니요.

그거는 자기 어머니 ○○○씨 어머니가 지금 하고 있고 ○○○씨가 하고  있습니다. 그래 가지고 거기서 아이 다 봐 주고 이러니까 하는 것이지 아이 안 봐  주면 못한다 그말이오. 그럴 때가 되면 하나님이 이거는 네가 이 일을 해야 되지  이 일은 할 수 없다 이렇게 교체 해 줄 것인데 교체해 줄 것인데 제가 들어서  사업 때문에 그래 하니 그게 벌써 귀신이 들려 가지고 꺼꾸로라 말이오. ○○○씨  구역이지요? ○○○씨 손들어 봐요 ○○○씨 구역 아닙니까? 그거 나는 신앙보고  아름답다 했는데. 어제 보니까 그래 내가 `내가 이래라 저래라 말 못 한다. 내가  무슨 판정을 하겠노. 너거 마음대로 복 받을 길만 해라.' 내가 그렇게 해 버리고  내가 말하지 안했어. 안 했는데, 그렇게 자기가 벌써 그거 그리 되는 것은  하나님과 결합이 끊어지는 것이지 하나님이 기뻐하고 즐거워하지 안할 터인데.

하너님이 자꾸 제가 충성을 할라 해도 `그거는 네 일이 가정에 지금 자녀가  많으니까 이걸 네가 기르고 이렇게 해야 돼지지 네가 이 일은 감당 못 하고 이  일로 네 직장이 교체 됐으니까 이래 해라' 하나님이 할 수 있을 그때 돼야 되는  것인데, 이놈의 돈 욕심이 들어 가지고 지금 그랬으니까 아, 휴지 장사하면서 돈  욕심 들어 가지고 하나님께 헌신해서, 결혼할 때 약속도 그래한 걸 배반하고  이렇게 할라 하는 그 인간이 만일 큰 회사나 해 놨으면 옆에 사람 다 죽일 거라.

그러니까 그 자는 하나님이 망쳐야 되겠소 부자 되게 해야 되겠소? 부자 되는가  봐. 하나님이 계시면 그래 안 해. 만일 부자 되면 큰 화덩어리로 됐기 때문에  크게 망치기 위해서 하는 것이지.

이래서 있는 것을 다 버리지 안하면 내 제자가 되지 못한다 그말은 내 결합에  연결 못 된다 그말입니다. 주님이 결합시킨 그 결합에 연결 못 한다 그말입니다.

여러분들이 이 셋 결합을 우리가, 인간이 피조물이 할 수 없는 것인데  신인양성일위가 하셔 가지고 이렇게 이 셋 지극히 큰 능력과 결합이 돼서 이 셋  지극히 큰 능력과 결합이 됐으니까 이 셋 지극히 큰 능력이 동하면 동하고  정하면 정하고 또, 말하면 말하고 서면 서고 비판하면 비판하고, 자, 그분에게  피동돼 그분과 꼭 같이 되니까 피조물이 전지 전능자 됐소 안 됐소? 안 됐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어 봐요 됐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봐. 됐어!  됐어! 이거라.

이런데 이 결합이 그렇게 쉽게 되는 게 아니라 그말이오. 이 결합을 할라고 하면  이 세상이 결합을 빼앗을라고 할 때에 처음에는 뭐 옆에 사람을 통해 가지고  이렇게 말하고, 나중에는 그가 안 뺏길라고 하면 그라면 주먹으로 쥐박고  쥐박아도 안 뺏길라고 하면 감옥에 갖다 가두고, 가둬도 안 뺏길라고 하면 생명을  이래 끊으면서, 끊으면서 죽을 지경이라 말이오. 죽일라고 이와같이 지금 뭐 별  고문과 고행이 있어. 이거 내놓으라고 이 결합 내놓으라고. 이래도 마귀가 사람의  마지막 죽는 그것을 알면 그래 안 합니다. 안 하고. 행여나 항복할까 항복할까  해서 이 고문을 가지고 자꾸 항복하라고 이놈이 미련한 놈이 자꾸 이라다가,  항복하라고 이라다가 그만 항복하지 안하고. 제가 시험할 수 있는 그 끝장나  버렸다 말이오. 생명이 딱 끝나 버렸으니까 다시는 제가 시험하지 못하게 돼  버려. 예수님도 십자가에 못 박고 이라다가서 그렇게, 죽기 전에 항복 받을라고  이라다가 그만 항복은 못 받고 예수님이 딱 운명해 버리니까 그만 완전 승리요  저는 다시 더 할 수가 없어.

그러니까 소유와 몸과 생명은 전부이 완전히 진리 때문에 희생됐기 때문에  진리의 것이 돼 버리고 말았다 말이오. 셋 능력의 것이 돼 버리고 말았어. 셋  능력에게 속하고 말았고 셋 능력의 것이 됐고, 셋 능력으로 말미암아 움직인 것이  돼졌기 때문에 이제 사망도 생명도 이제 것도 장래 것도 하늘의 것도 전부 다  승리한 것입니다.

 여러분들, 이 도리를 굳게 잡아야 됩니다. 이것은 단번에 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수백 번 수천 번 자꾸 익히십시오. 자꾸 명상하고 기도할 때에 익히고 익히고  익히고 이래 가지고 많이 익혀서 이것이 자기 몸에 배고 자기 몸에 배고 신경에  배고 지식에 배고 감정에 배고 추억력에 기억력에 박히고 또 비판에 배고 평가에  배고 모든 욕망에 배고 쏵 다 배서, 다 배서 횐 베쪼가리에다 푸른 물을 들였는데  얼마나 쏵 들였든지 이거는 다 새파란 것이 되고 말았지 새파랗지 않는 건  하나도 없는 것만치 이렇게 아주 물 드는 것처럼 이 결합의 도리로 완전히  자기가 완전히 염색돼서, 완전히 성화돼 버려야 됩니다. 이래야 되는 것이지  이렇지 안하고 뭐 건설 구원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하고 예수 믿으면서 저 볼일 다  보고 제 할일다 하고 제 취미 다 누리고 이러면서 구원 이룰라고 하는 그런 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하나만 그거 있어도 안 됩니다.

 이렇게 사람들은 이 건설구원이 힘든다는 이것을 생각지를 안하고 제 볼일 다  보고 예수 믿는 것도 지금 뭐 요새 선교, 무슨 선교 협회, 선교 협회 돈 보내 달라  하는데 한 푼도 우리 안 보내 줍니다. ○○뭐 선교 협회라고 저게 지금 공산  치하에 방송 보내는 거게는 좀 보내 줍니다. 그거는 가능하기 때문에 보내 주고  딴 데는 안 보내 줍니다. 그런데 그게 뭐이냐 하면 거기서 회장, 서이 앉아 가지고  나는 회장하고 너는 부회장하고 너는 서기하고 그래 가지고 전화도 없는 것들이  남의 집에 전화 가지고 이래 가지고 무슨 무슨 무슨 선교 협회라, 무슨 선교회라,  무슨 선교회라. 백 주년 선교 협회라, 뭐 백만 교회 선교 협회라 뭐 이래 가지고  돈 보내달라고 그래 사기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돈 보내 주지 말아요. 돈  보내 주면 안 돼요. 그전에 여기 ○○○이라고 하는 그분이 저 ○○○씨 집회에  가니까 `세계 선교하는데 이 선교에 가 가지고 모두 뭐 이런 사람들이 이래 죽고  뭐 이런데 거게 선교 보낼 터이니까 선교비 낼 사람 다 손 드십시요' 내가지고  결정했다 말이오. 식모 살이 해 가지고 전부 고리 쏵 다 보냈어. 그거 전부  도적에게 다 먹혀지고 말았다 말이오. 그것을 나중에 알고 야단을 치고 이랬는데  내가 그 뒤에, 이래 앉아 가지고 반신 불수로 있을 때 내가 가서 말했어 `네가 이  병이 어디서 난 줄 아느냐? 네가 다리가 성해 가지고 있으면 돌아다니면서 너  망치고 가정 망치고 다 망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랬기 때문에 그걸 회개  안 하면 이 병 안 낫는다.' 이랬어 안 낫는다 이랬는데 아 나는 요번에 그 병  낫기 위해서 기도도 하고 이랬는데 그 병 안 낫는다 하는 걸 내가 알았어. 왜 안  낫느냐 하면 자기가 속해 가지고 지금 믿음을 가지고 지금 딴거 생각할 여가가  없는 데 그래만 속해 가지고 지금 믿음 준비나 자꾸 열심히 해야 될 터인데, 이래  가지고 뭐 이 구역을 이리 가볼까 저리가 볼까, 여기 가 볼까 저기 가 볼까 이래  가지고 그 사람은 구원이 될 줄 알고 찾아갔지만 마귀가 심부름시켜서 다 갔더라  그말이오. 이래 가지고 그 신앙이 변동돼 버렸어. 신앙이 변동돼 가지고 자기  구역하고 지금 사이가 벌어지고 구역 배반하고 갈 만치 이렇게 이질적인 것이  됐어. 그래서 그것을 말하니까 회개는 했지만 내가 그걸 보고 아직까지도 네가  분수를 떠나서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안하고 월권하는 행동이 남아 있는 그런  행동을 지금 요소가 있으니까 그 요소가 다 빠지기 전에는 낫아 주지 않는다.

그거 빠지기 전에 낫우면 그거 네가 낫아 가지고 난 다음엔 어디 돌아다닐지  모르니 까 돌아다니는 날이면 더 큰 증세가 나오면 그때는 누운뱅이가 돼야 될  모양이니까 하나님이 그렇게 하실 수가 없다 그말이오. 하나님은 여러분들,  세밀합니다 하나님의 사람들도 다 세밀해서 인간에게 말하지 안해도 그 비밀을  다 알고 있는데, 모르고 있는 줄 압니까? 다 알고, 알아도 모르는 척 하고 이래  있지. 그 사람을 부득이 그 사람을 붙들어야 될 것이 기 때문에 허허 이래 하지만  속은 다 알고 있는데, 하나님이 모든 걸 알고 계십니다.

 이러기 때문에 오늘 아침에 여러분들이 이 셋 지극히 큰 능력과 결합 이것이  의인데, 이라면 죽지 않습니다. 이 셋 지극히 큰 능력과 결합이 단독은 안 되는데  예수님이 대속해 이 결합을 시켜 준 것인데 시켜 준 이 결합을 우리가 뺏기지  안하고 보수할라고 하면 있는 것을 다 희생해도 뺏기지 안 할 각오를 가져야  되지, 이제 뭣이라도 이 생명만큼은 못 내어 놓겠다. 어떤 사람은 진리 진리하는데  저거 사위가 이 진리를 반대하는 사람이라. 반대하는 사람이니까 저거 사위가  반대해서 그 사위하고 나하고 이래 진리 때문에 벌어지니까 사위 편이 돼 가지고  그만 따라가. 네까짓 게 무슨 진리를 가졌노? 뭐 진리 네 까짓 게 가져?  사위만치도 중하게 여기지 안하는 그까짓 진리가 무슨 그게 진리야? 진리 아니야.

이러니까, 어떤 사람은 돈만 보면 돈만치 안 여기는 이 결합 돈만치도 안 여기는  결합. 인정만치도 안 여기는 결합, 명예만치도 안 여기는 결합 직장만치도 안  여기는 결합. `나는 아주 사장직이기 때문에.' 너 사장직이 나 똥 푸는 사람의  직이나 다 거게 목숨 달아 놓고 생명 달아 놓고 양식받아 가지고 먹고 살기  때문에 그 직이나 그 직이나 같지 그 사람이 그 직에 대해서 자유하지 못하는  거나 네가 이 직에 대해서 자유하지 못하는 거나 자. 여러분들 우상이 보석으로  만든 우상과 흙덩어리로 만든 우상과 그 우상에게 절하면 그 절하는 죄가  같습니까 다릅니까? `그러면 보석으로 만든 그 우상에게는 가치가 있으니까, 그  우상은 이렇게 보석으로 만들었으니까 나는 절 할만 하지. 흙덩으로 만늘어 놓은  데 절을 한다.' 그 사람 말이 미친 소리요 바른 소리요 왜 또 대답 안 해? 자,  미친 소리로 아는 사람 손 들어 봐요. `나는 대통령이기 때문에 그렇지' 너는  보석으로 마든 우상을 섬기고 있구나. `대통령이니까 대통령직 때문에 나는  주일도 범하고 이렇게 하지. 아. 그렇지만 네 하루 찍해야 벌어 봐야 돈 천  원밖에 못 버는데 천 원만 희생하면 주일 지킬 터인데 천 원 희생하지 않기  위해서 주일 범하느냐?' 천원 손해 안보기 위해서 주일 지키지 못하는 것이그  자기가 왕의 지위를 뺏기지 않기 위해서 주일을 지키지 못하는 거나 꼭 우상은  같은 우상 섬기는 자입니까 다릅니까?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 한번 들어 봐요.

같아. 같아. 평가를 똑똑히 하라 그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믿음을 버리지 안하는 것은 우리 믿음은, 우리의 믿음은 이  의를 창조하는 믿음입니까 보수하는 믿음입니까? 보수하는 믿음. 보수하는  믿음인데, 이 셋 능력과 결합하는 이 결합을 보수할라면 우리는 믿음을 지켜야  되는데 믿음을 지킬라고 하면, 믿음이란 말은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하는 거,  이를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고 맡기고 순종하는 것이 믿음 아닙니까? 할라 하면  우리의 있는 것을 다 아예 희생할 각오를 해야 됩니다. 다 뺏길 각오를 해야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셋의 가치를 아는 사람은 당장에 턱턱 다, 있어도 다  버려 놓고 삽니다. 다 버려 놓고 살아. 있어도 있는 그것을 이 셋을 위해서 있지  이 셋에게 반역된 것은 가지고 있는 게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이 셋에  반역된 거, 이 셋에 반대되어 있는 것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부들 손들어  봐요. 하나도 없네. 그래 없어. 여러분들 지금 이 시간에는 이 셋을 내 주고 가질  것이 여러분들에게 여러분들 지금 주관 해석으로 있습니까 없습니까? 다 없을  것입니다. 또 있는 사람도 있어. 없다고 다 뭐 이 셋 위해서는 생명도 내 놓고 이  셋은 뺏기지 않겠다, 이래도 하나님 보실 때는 실상 그렇지 안하니까 하나님이  시험해 보시는 그것이 뭐이냐 하면 현실입니다. 현실에 시험해 보면 뚝뚝  떨어진다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여러분들 시험은 닥쳐야 좋아요 안 닥쳐야 좋아요? 시험이 안  닥쳐야 좋다 하는 사람 손 들어 봐요. 시험이 닥쳐야 좋다는 사람 손 들어 봐요.

네, 시험을 닥치는데 이길 수 있는 시험 닥치는 걸 좋아해요 자기가 이기지  못하고 패전하는 시험을 닥치는 것을 좋아해요? 패전하는 시험 닥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 손들어 봐요. 이걸 들어야 돼 패전해야 내가 패전하는 줄을 알지  알아야 새로 각오를 가지지, 만날 승리만 하면 자기는 승리한 줄만 알지. 그러니까  천하에, 동남풍아 불어라, 서북풍아 불어라 뭐, 가시밭에 백합화는 예수 향만  피운다고 어떤 시험이라도 천하에 제일 어려운 시험을 주시옵소서. 내가 지면  졌다는 걸 내가 알고 다시 또 일어서고 일어서서 어짜든지 천하에 제일 어려운  시험을 내가, 백번 져도 백 번에 다시 일어나 가지고 이겼으면 모든 시험 다  이겼기 때문에 승리지. 예수 믿는 게 이게 예수 믿는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우리가 이 셋 지극히 큰 능력과 결합했기 때문에 이 결합된 자는 불에 타지  안하고 죽지 않는 것입니다. 이 도리를 안 듣고 아는 줄로 아는 사람들이 참  곤란합니다. 노아 홍수 때 나는 돈이 많은데 홍수가 와도 천하 사람 다 죽어도  나는 안 죽는다. 돈이 많기 때문에. 또 뭐, 권세가 많기 때문에, 내가 네피림인데,  내가 영웅이기 때문에 다 소용없어. 아, 지금은 불타면 비행기 타고 가지. 아,  공중에 바람만 세게 불어도 못 나는 그까짓 놈의 비행기 가지고 공중에 전부  불덩어리가 되면 구원할 수 있어요 없어요? 소용없어. 어리석지 말아요. 어찌  됐든간에 이 지극히 큰 세 능력과, 세 능력과 결합하는 그 외에는 사는 길이  없습니다. 요걸 믿습니까? 왜 저 뒤에는 대답 안 해? 한번 더 연습해 봅시다.

믿습니까? 저 뒤에는 말 안 하네. 믿습니까? 저 뒤에는 내가 입을 보니까 대답 안  하는 것 같은데 점잖은 사람 대답 안 하기 시작하면. 대답 안하면, 믿습니까? '예'  하면 믿는 사람이 될 것이고. `아, 내가 하면' 교만이 들어서 대답할 줄 모르는 그  사람은 믿음이 속에 안 들어가면 문제 아니요? 다 모두 겸손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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