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론

 

1989. 5. 13. 토새

 

본문 : 사 2:12-4:1

 

 확정을 지우십시오. 작정을 하십시오. 우리의 모든 행복은, 영육의 행복은  하나님이 선포해 놓은 이 계약 이행에서 다 나옵니다. 딴데서 나오지 않습니다.

딴데서 오는 거는 좋은 것 같아도 그것이 다 멸망할 것이요, 이 속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이 속에서 나오니 우리 생각 속에서 나옵니다. 생각 속에서  나오는 것이 더 안에서, 생각 속에서만 나오고 그 안에 양심 속에서 안 나오면  저는 속습니다. 생각 속에서 나오는 그 속에 생각을 자꾸 이래 해서 둔하고  강퍅하고 더러운 우리들이 양심을 찾아가서 양심으로 이제 자꾸 생각합니다.

양심으로 생각하면 그 다음에는 영감이 오고 실상이 우리에게 옵니다.

 2장 l9절에 '사람들이 암혈과 토굴로 들어가서 여호와께서 일어나사 땅을  진동시키시는 그의 위엄과 그 광대하심의 영광을 피할 것이라' 여기 광대함이라는  이 단어에 대해서 잠깐 증거하겠습니다. 광대함. 광대함이라는 그 단어의 글자는,  한문 글자로는 넓을 광(廣)자 큰 대(大)자 그렇게 기록이 돼 있습니다. 이  광대라는 이 단어를 여러분들이 잘 알아야 하겠습니다. 제가 증거하는 데는 이  광대라는 이 단어를 많이 씁니다. 광대라는 이 단어를 쓸 때에는 어떤 뜻을  가졌는고 하니, 마치 태양은 하나입니다. 태양은 하나인데 그 태양 빛이 광대하게  비친다 그렇게 할 수 있겠습니다. 태양이 광대하게 비친다. 그것은 태양은 한  개인데 한 개 거게서 빛이 나와 가지고 아주 넓게 비취니까 우리가 말하기를  해가 돋았다 안 돋았다, 여게는 햇빛이 들어온다 여게는 햇빛이 안 들어온다,  방안에도 여게는 햇빛이 들어온다 여게는 햇빛 하나 안 들어온다. 이러니까  여게도 햇빚 저게도 햇빛, 또 하늘에도 햇빛, 태양에도 햇빛, 이런데 해는  하나이면서 그의 이래 퍼져 나오는 그의 힘, 그의 빛이 퍼져서 넓게 비추어 이  사람에게도 햇빛이 비취고 저 사람에게도 햇빛이 비취나 실은 해는 한 개인데 한  개의 햇빛이 넓고 많은 것에게 이렇게 비추어 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저 먼 데,  이 나라에 햇빛이 비친 것도 내나 태양의 햇빛이 비친 것이고 동시에 저 나라에  햇빛이 비친 것도 그 한 태양의 햇빛이 비추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여게 햇빛이 있고 저게 햇빛이 있다고 해 가지고 이 햇빛과 저 햇빛이 딴것이  아니고 한 해의 빛이 그렇게 퍼져 나가는 그것을 광대라 이렇게 쓰는데,  하나님에게 대해서 무소부재라 하는 그런 말을 쓰는 일 있습니다. 무소부재라  하나님은 계시지 안한 곳이 없다. 어디든지 계신다. 이래서 무소부재라는 그런,  계시지 안한 곳이 없다 하는 그런 말인데 이 말은 하나님이 이렇게 여게 저게서  역사하시는 그 역사의 묘사를 무소부재라 그렇게 말을 했는데 그것은 올바른  표현이 못 된 것입니다. 그래 그럴 때에 무소부재라는 그 말을 버리고  광대하심이라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광대하심이라는 것은 하나인데, 본체는  하나인데 그 하나인 본체가 그 쭉 비추어서 뭐 이 동양에는 전부 한 햇빛이 다  비추고 있고 서양에는 안 비취고, 서양에 비출 때는 동양에 안 비취고 이렇게 한  해의 빛이 넓게 이렇게 비추어 나가는 그런 것을 묘사해서 발표할 때에 광대하다,  하나님의 광대하심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이래서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인데 육체의 첫째 아담의 자손은 부모의 그  요소가 우리에게 와 가지고 실질적으로 우리가 돼 가지고 자라갔습니다. 부모의  요소가 왔기 때문에 아버지와 어머니의 그 요소가 와 가지고 됐는고로  우리들에게 유전성이 있습니다. 유전성이라는 것은 모든 뭐 속성이나, 성질이나,  또 마음이나, 몸이나 그런 데 대해서 유전성이 있습니다. 혹 유전성이 그게 없는  것도 있지마는 아버지 어머니는 그런데 아주 판이한 자녀가 나는 일도 있지마는  자세히 살펴보면 부모의 그 요소가 자녀에게 유전되지 않은 것이 했습니다.

유전이 되는 데는 꼭 유전성을 믿느냐 안 믿느냐 그라면 부모가 잘났으면 자녀가  잘나고 부모가 못났으면 자녀가 못난다는 그대로 이제 유전되는 그 일이 좀  흐미하고 다를 때가 있기 때문에 유전성을 이것을 인정하나 안 하나 하는 거게  대해서 많은 논설이 있습니다.

 그래서, 유전성을 부인하는 신학 사상도 있고 유전성을 인정하는 그런 신학  사상도 있는데 유전성을 인정하는 것이 그것이 올바른 그 신학 사상입니다. 우리  영은 유전이 없습니다. 우리 영은 어떻기 때문에 유전이 없는고 하니 사람이 날  때에 부모의 영이 그것이 떨어져 나와 가지고 우리의 영이 된 것 아닙니다. 영은  물질계의 것이 아니고 영계에 속한 것인데 이 영은 이래서 영에 대해서 몇 가지  논설이 있습니다. 영은 하나님이 한목 다 만들어 놓고 한 사람, 한 사람 육이 나올  때 그때에 육에게 그 영을 넣어 주어 가지고 그리 된다 이래서 이것을 영의  전재설이라, 그전부터 있는 설이라. 그렇게 하는 전재설이 있고 또 한 설은  창초설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출생될 때 그때 하나님이 그 영을 만드셔 가지고,  영은 만드시고 그 육은 유전돼 가지고 하고, 육은 유전으로 영은 창조로 이렇게  한다 하는 그런, 전재설이라 말은 영도 유전된다는 말이요, 창조설이라 말하는  것은 그때 그때 사람의 영은 창조하시는 것이지 그것이 유전되는 것 아니다.

성경에서 이제 이러나 저러나 서로 자꾸 상고해 가지고 생각하는 것인데 우리는  어떤 설을 믿느냐 하면은 창조설을 믿습니다.

 사람을 지으실 때 육으로 말하면 그것이 유전돼서 나오는 것이고 영으로 말하면  그때 그때 하나님이 창조하셔 가지고 났다. '그러면 하나님이 창조하셨으면 창조는  깨끗한 것인데 어떻게 그 창조된 그것이 벌써 죄 아래 있을 수 있느냐? 그러면  죄 아래 있는 걸 하나님이 창조하지 안했느냐? 하나님이 죄를 창조하시지  안했느냐?' 이런 논리에서 많은 신학자들의 신강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창조는 다 선하시다 했기 때문에 죄가 없는 깨끗한 것을 창조하는데 창조가 되면  존재하는 동시에 부정모혈의 첫째 아담의 육을 받아 가지고 입게 되기 때문에  육을 입는 동시에 그 영이 정죄를 받습니다. 처음부터 에덴동산에서부터 그 영이  범죄한 것은 아니고 육이 범죄함을 인해서 영은 주격 책임에서 정죄를 받은  것입니다.

 사람이 날 때에 영은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육은 유전되는 것인데 유전되는 그  육이, 하나님의 창조하신 그 영이 육을 입어서 영육이 합해질 때에 그때에 벌써  육 때문에 그 영도 정죄 아래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영은  그때 그때 개인 영을 창조하셔 가지고 우리가 출생하게 되는데 창조하신 영은  깨끗하나 그 영이 육을 입어서 영육이 하나가 되는 사람이 될 때 그때에  정죄받아 가지고 영육이 다 정죄받는 그런 사람이 됩니다. 이렇게 그 영은  창조지마는 이 심신이 라는 육은 부모의 것을 유전받아 가지고 그렇게 그 요소가  와 가지고 우리가 와서 됐습니다.

 그런데 유전이 될 때에 하나님께서 그 부모의 요소는 많은 요소가 있기 때문에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습니다. 이래서 장점의 요소만 하나님이 인용해 가지고  출생된 사람도 있고 단점의 요소만 유전시켜 가지고 출생된 점이 있기 때문에  거게서 아무리 못난 부모의 자손이라도. 잘난 심신의 육이 될 수가 있고 아무리  잘난 부모의 요소라도 그것이 그대로 유전되지 안해서 자녀는 아주 못된 그러한  아주 못난 그런 유전이 돼 가지고 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래서, 그 유전은 유전인데 유전을 하나님께서, 그 요소가 나와 가지고 커서  되는 것인데 하나님이 그 요소 선택할 때에 어떤 사람에게는 좋은 요소만  활용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나쁜 요소만 활용했기 때문에 아주 부모와 판이한  것도 거게 부모의 나쁜 요소만 타고 나온 거 있고 좋은 요소만 타고 나온 데에서  그러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첫째 아담의 자손된 것은 첫째 아담의 그 요소가 우리에게  떨어져 나와 가지고 우리가 됐습니다. 그 요소가 와 가지고 내가 됐으나 그 적은  요소, 말하자면 부정모혈이라는 작은 요소가 와 가지고 우리에게 와서 그것이  자랐습니다. 자라 가지고 그렇게 우리가 첫째 아담의 자손이 됐습니다.

 그런데 둘째 아담의 자손도 하나님의 요소가 우리에게 실지로 그 실지의 실상  요소가 와 가지고 우리가 됐습니다. 요소가 됐는데 그러면, 첫째 아담의 자손은  그것을 분식이라고 우리가 발표를 했습니다. 나 눠서, 쪼갱이가 분자가 와 가지고  그것이 자라서 우리의 육이 됐습니다. 그러나, 둘째 아담의 요소도 요소의 살상이  와 가지고 우리에게 와서 둘째 아담의 자손이 했는데, 첫째 아담의 자손과 둘째  아담의 자손의 다른 것은, 요소가 실상의, 그 실상의 요소가 와 가지고 우리가 된  것은 틀림없이 꼭 같은데, 다른 것이 있는 것은 첫째 아담의 요소는 그것이  분자가 멀어져 나와 가지고 와서 그것이 자라 가지고 됐고, 둘째 아담의 요소는  그 요소가 실제로 우리에게 와 가지고 되기는 됐는데 이것은 떨어져 나온 것이  아니고, 내나, 하나님의 요소는 완전이기 때문에 나눌 수도 변할 수도 가감도  안되는 완전성을 가진 요소인데 완전성 하나가 이렇게 왔으니까 우리에게 왔으니  이게 떨어져 왔느냐 하면은 떨어져 오지 안하고 완전한 그 요소가 우리에게 와서  우리 각자들에게, 중생된 사람이라면 삼위 일체의 하나님과 예수님의 대속과  진리가 다 따로 있습니다. 다 따로 있습니다. 이 사람에게도 삼위일체의 하나님과  진리가 내주해 계시고 중생된 사람에게는 저 사람에게도 내주해 계시니까 이러면  열 사람에게면 열 하나님이 와서 계시는 게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는데 나뉠 수  없는 이거는 분식이 아니고 이렇게 와 가지고 계시는데 요 계시는 그것을 표시할  때 뭐라고 표시하느냐? 광대하심이라 이렇게 광대라는 단어를 써 가지고  표시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래서, 요 광대하심이라 말을 자꾸 제가 많이 썼는데 요것을 혹 이 단어를  여러분들이 잘못 알면 안 될 것이기 때문에 광대라 하는 이 말을 여게 나왔기  때문에 해석을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억만 명이 중생됐으니까 억만 명 속에 하나님이 다, 그 실상이  와서 계시는데, 그러면 첫째 아담도 그 실상이 와 가지고 있는데 떨어져 나와  가지고 그 분자가 자라서 됐고, 우리는 실상이 와서 있는데 떨어져 나오지 안하고  한 그 하나님이, 그 내나 한 하나님이 여러 수만 명, 수억만 명 가운데 이와 같이  다 안에 내주해 가지고 역사하십니다.

 그러면 우리 속에 삼위일체 하나님이, 내 속에도 삼위일체 하나님이 계시고 또  다른 사람 그 중생된 사람 속에도 삼위일체 하나님이 계시니까 삼위일체  하나님이 그러면 열 명 속에 계시면 열 하나님이 되지 않는가? 이렇게 생각하게  되는데 그게 떨어져 나와서 하나님의 분자가 와 가지고 내가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완전하심이 내게 와 가지고 됐기 때문에 그 모든 사람 속에 계시는  하나님이 한 하나님이십니다. 한 하나님이시요, 한 성자요, 성부요, 성령이십니다.

 그러면 어떻게 그럴 수가 있겠느냐? 그 완전자이시기 때문에 광대하심으로  우리에게 와서 계십니다. 이해가 됩니까? 광대하심으로 계신다. 그래서 이  광대라는 이 단어를 제가 많이 썼습니다.

 이래서 이 광대라는 단어를 이것을 여러분들이 잘못 알면 안 되고 이  광대함이라는 이것을 쓸 때에는 하나가, 하나가 여럿처럼, 하나가 들어서 그  하나의 그 모든 요소에 조금도 다름이 없는 하나의 요소가 많은 데에게 퍼져  가지고 널리 이래 가지고 있을 때에도 내나 하나의, 원인은 그 하나인데, 하나의  요소가 그렇게 이 햇빛과 같이 비추어져서 널리 역사해 가지고 많은 속에, 많은  사람 속에 삼위일체 하나님이 계시지마는 내나 한 하나님이 완전하시기 때문에  그 완전하심의 이 능력으로써 이렇게 광대해 가지고 계신다고 하는 그런 말을,  단어를 했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우리 속에 친히 계셔서 이렇게 역사하신다는 이 말을  사람들이 성경을 별로이 전체적으로 많이 공부하지 안하고 읽지 안했기 때문에  이 하나님이 계신다고 해도 어떻게 계시나 하는 데 대해서 말을 할라 하니까  너무 어마어마한 그런 큰 일이기 때문에 그 교리가 숨기워져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래서 지금까지 하나님이 뭐 우리 안에 계신다는 성구를 많이 했지마는  삼위일체 하나님이 직접 우리에게 와서 계신다고 이렇게는 생각지를 안하고  그분의 능력이 와서 계신다, 그분의 능력의, 지혜의 능력과 또 역사의 능력, 이  능력이 와 가지고 이래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 속에 능력적으로만 와서  계신다, 또 그분의 거룩으로만 와서 계신다, 그분의 역사로만 와서 계신다.

하나님의 본체가 우리 속에 와서 내주해 계신다는 것을 이제까지 다 부인하고  발표하지 안해 나왔습니다. 안해 나왔는데, 이것을 늘 제 속에 '성경은 이런데'  해서, 그래도 그 말을 벌로 못합니다. 말하면 그만 정죄를 받아 가지고 그  정죄받는 것이 혜고 나갈 수 있는 길이 있으면 하지마는 너무 많은 사람에게 다  정죄받아 버리면 이 도가 퍼져 나가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늘 그것을, 제가 고신에  있을 때는 말 못한 게 많았습니다.

 이라다가 나오니까 자유가 있어서 자꾸 이렇게 해서 이단이라는 정죄도 받고  차차 차차 그것이 하나씩 해결돼 나오니까 이제는 거의 보편화되다시피 이렇게  됐지마는 지금도 그 영에 대해서 모든 신자들이 영을 마음을 영이라고 이래 하고  있습니다. '마음이 영이요, 영이 마음이라' 거기서 조금 더 거석한 사람들은  '마음이 영이 아니라 마음중에 양심이 영이다' 이래 가지고 '양심이 영이라' 이렇게  생각을 하고 이런 교리와 신조를 가지고 믿습니다. 정통에서도 그러합니다.

 저 OO에서, 거기는 OO이라 하는 그 곳이 아주 어두운 곳인 모양입니다. 그  먼저도 또 OO에서 그런 문제가 하나 나 가지고 자기네들이 잘못했다고 그렇게  우리 교리 신조를 정죄한 것을 자기네들이 잘못됐다고 발표를 해서 그때  자기네들 모이는 회에 촬요에다가 그걸 적어서 그렇게 냈었습니다. 촬요지,  OOO목사? 그 촬요에다가, 그들이 모인 회의 그 순서지에 말입니다. 순서지에  '이거는 우리가 잘 못됐다' 하는 것을 적어내 가지고 우리가 사과를 받았습니다.

받았는데 또 거게 OO교파의 어떤 사람이 부목사로 왔는데 그 사람이 오고 난  다음에 또 무슨 운동이 일어났는지 일어나서 'OO에 와 보니까' 이 교계라 하먼은  예수교 종류는 다 전부 한테 합한 것을 가리켜서 교계라 이라는데 전 예수교의  전부의, 그거는 총회도 아니고 예수교라는 종류는 전부 다 모아서 연합회라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건데, 그 연합회에 가 보니까 아주 이미지가 나쁜데 그 지금  한번 와서 그것을 설명해 달라' 이래서 '그라면 그런 장소를 시기를 마련해라.

그라면 말하면 내가 가서 한번 내가 증거를 하겠다.' 이랬는데 '가야 좋습니까, 안  가야 좋습니까?' 요번 집회 때 묻습디다. '그 문제가 무슨 문제인데?' 이라니까 '그  중생된 영이 범죄한다 안 한다 대해서 범죄를 안 한다 하기 때문에 그게 우리가  믿는 것과 다르니까 모두 이상시 해서 말은 그렇게 이단이 아니라고 말해도 속은  모두 다 마음이 따로 있더라. 이러니까 그걸 한번 밝혀달라.' 그렇게 말을 한다고  해서 제가 그걸 '뭐 갈 필요가 없다. 저거가 와서, 알고 싶으면 집회할 때 와서  들어보든지, 알고 싶거든 예배 때 와 가지고 들어보고 알든지 할 일이지 그거  지금 그래 말한다고 우리가 거기 가 가지고 할 것이 아니라, 저희들이 이미  발표한 것을 벌써 여러번 발표를 했으니까 회개하고 믿을 것이지 지금 뭐 또  그러니 안 그러니 그런 소리 한다고 우리가 거기 피동되는 그런 일은 할 필요가  없다.' 그래 내가 가지 말라 했습니다. 그래 지금 모두 이렇습니다.

 그래서 묻기를 '너거는 그라면 사람의 영을 어찌 보느냐? 영과 마음을 어찌  보느냐?' '마음이 영이요 엉이 마음이 아니냐?' 마음과 영을 하나로 이렇게  보더랍니다. 이러니까 중생되고 난 다음에도 마음으로야 죄짓는 것을 얼마든지  저희들이 실지로 체험하고 있으니까 중생된 영이 죄짓는다고 그렇게 할 수밖에  더 있겠느냐? 이러니까 마음과 영은 아주 이거는 딴거로서 영은 영물이요 마음은  이 물질인데 이것을 구별하지 못하고 마음이 영이요 영이 마음이요 이렇다고  이렇게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 전세계의 교회였습니다.

 이래서 알만 알만 해 가지고 이라다가, 박윤선 목사님은 발표하기를 '중생된 영은  사람의 마음이 이 책상만한 마음이라고 비유하면은 여게 중생된 영이라 하는  것은 마음의 한쪽 귀때기 요게 살아났다. 한쪽 귀때기 요게 살아났는데 내나  마음이 살아났다.' 그러니까 영을 별개로 보지를 않습니다. '살아났기 때문에  요것은 범죄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요라다가 요 확고하지 않으니까 나중에는 옆에  사람들이 '그것 틀렸습니다. 이게 옳습니다.' 하니까 그만 그분도 OO노회의  중생된 영이 범죄하지 않는다는 걸 이단이라 하는 그 정죄할 때에 거게 같이  들어 가지고 그것 때문에 OOO교회에 가 가지고 이인재 목사님이 쫓겨나을  때에 중생된 영도 범죄한다는 그 주장을 거게서 석 달 동안 가 가지고 증거를  했지마는 OOO교인들이, 잡았기 때문에 미혹을 받지 안하고 다 거부해서 나중에  할 수 없어 박윤선 목사님도 거기서 그만 패전하고 돌아갔습니다.

 그랬는데, 지금은 그분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니 이렇게 우리 말하는 것이  이 세계에 다르기 때문에 이번에는 내가 할 수 없이 그걸 공포해서 우리 총공회  교리, 총공회가 생긴 것은 교리와 신조와 행정이 다르기 때문에 이거는 부득이  총공회라는 것이 생겨졌고 총공회 교리와 신조와 행정을 다르다 하는 것을 알고  예수 믿어서 '다른 요게 맞다 요게 옳다.' 한 사람은 요동하지 않습니다. 요 사람은  요 총공회 교리와 신조대로 살기 때문에 하나님의 역사를 자기가 체험하고 큰  승리를 할 것이고, 요것을 확정하지 못하고 총공회에 있는 사람들은 흔들려  가지고 항상 붙기는 여기 붙어 있기 나기는 여기서 났기 때문에 붙기는 여게  붙어 있지마는 소원은 항상 딴데 가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간판 붙이는 것도  부끄러워하고 항상 그를 부러워합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과 우리와의, 이 도덕면은  같고 사회면 윤리면은 같은데 신앙면이 다릅니다. 신앙면이라 하는 것은 하나님과  인생과의 접선돼 가지고 접선되는 그 면이 다르다 그 말이오. 그 면은 그들에게는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 둘째 아담의 자손 된 데에는 실제로  삼위일체의 하나님과 진리가 우리 안에 내주해 계셔 가지고 우리의 생명이  되셔서, 마치 생명이 심신을 다 움직이서 역사하나 심신이 하는 것이 아니고 그  속에 생명이 심신을 붙들고 역사하는 것처럼 우리의 첫째 아담의 자손인 영육이  움직이는 것은 영육의 움직임이 아니고, 영육 속에 계사는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가 역사해 가지고 움직이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신적 요소다. 이러니까  신적 요소가 우리가 그 요소의 아들이 됐다고 해 가지고 우리가 신적 요소의  창조주가 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우리에 생명으로 와 가지고 역사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계시는데 생명으로,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의 대속과  성령과 진리와 하늘의 소망이 우리의 생명이 되어서 이로써 우리가 살아난 게  아니고 우리가 다시 '새 창조물이라' 이래 '새 창조물이라' 이렇게 했는데 진리의  말씀으로 낳았다 '너희들 안에 계신다 이렇게 말하는 건 너희가 말하는 게 아니고  너희 안에 계시는 하나님 아버지가 들어서 말을 한다' 이렇게 성경에 많이 구분돼  있습니다.

 이래서,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실 수가 어찌 있겠느냐? 한 분인데 그러면 우리  안에 계시면 하나님이 싶 분이든지 숫자가 많지 않느냐?' 하는 거게다, 숫자가  많지 않고 한 하나님이 우리 각 중생시킬 때에 와서 계셔 가지고 하는데 그  중생시킨 것은 우리는 죽은 그 영육을 살리는 것도 했지만 살리는 것 했는데 그  살리움을 받은 그것만이 아니고 살린 그 자체, 살린 그 자체가 곧 우리 안에  우리다. 우리 안에 우리요 그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다.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은 신적 요소로 된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다. 그러기 때문에 이거는 나눌 수  없는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 몇이나 되는고 해서 이것을 가리켜서 하나라. 이래서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은 교회가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인바, 이래서 교회가, 그라면  세계 교회가 몇이나 됩니까? 세계 교회가 몇이나 됩니까? 저 OO선생. 뭐라고  어떻게 배웠어? 하나, 교회는 하나입니다. 많은 교회가 있지마는 교회는  하나입니다. 하나인 그것이 뭐이냐?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요 신적 요소로 된  것을 가리켜서 말한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이것을 배워 가지고 요대로 해서, 내 안에 하나님이  계시는 요것을 믿어서, 하나님이 내 안에 계셔 가지고 그분으로 말미암아 역사한  것이 아니면 다 사망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내 피와 살을  먹는 자는 내 안에 있고 그 안에 영생이 있다. 나로 인하여 산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중생된 것은, 나로 인하여 산다 말은 하나님이 능동이요 우리  속에 았는 능동이요 우리의 영육은 피동입니다. 능동이요 피동이고. 그러면  능동자이시면 열 명 속에 능동하면은 열 하나님 아니겠느냐 그러는데 한  하나님이면서 열, 억만의 그 속에서 역사하는 것이 그것이 하나님의 완전성이요  하나님의 광대성이라. 그것이 하나님의 광대성으로 되는 것이라 하는 그것을  발표를 했습니다.

 그래서, 이걸 믿는 사랑은 내 안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계시오. 계시는데 그분이 계셔서 역사하는 것이 무슨 역사냐? 이제 믿음의 역사를  합니다. 그분이 와 가지고 그분으로 인해서 동하고 정하는 그게 믿음입니다.

그분으로 인하여 동하고 정할 때에는 그분의, 멀리 계시면서 그분의 능력의  작용이 우리에 와 가지고 운동하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 안에 친히 하나님이 와서  내주해 계시면서 그분이 지금 역사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내 안에 계셔서  지금 역사하는 것이요 그분의 능력이나 그분의 뭐 혜택이 와 가지고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니고 직접적으로 그분이 내 안에 내주하셔 가지고 우리 안에서  역사하십니다. 요래 믿는 것이 우려 총공회 신앙입니다. 교리 신조요. 이러니까 그  분들과 맞을 리가 없습니다. 맞을 리가 없으나 요렇게 믿기 때문에 요래 믿어서  자꾸 믿으니까, 믿으니까 그분이 와 가지고 역사합니다. 믿지 안하면은 역사할 수  없어. 안 믿는 데는 당신이 역사할 수가 없는 것이 하나님의 계약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미국에 있는 모든 교회들이나 세계 교회가 자꾸 이렇게 타락해  나가고 속화돼 나가고 이 세상과 아무 구별된 것이 없어서 오히려 세상의 이  과학의 오묘와 그 위력이 '이것이 기독자 속에 역사하는 위력보다 더 크고  위대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 거게 머리 숙였습니다.' 다 머리 숙여서 전부  과학적인 기독교입니다. 과학적인 기독교라는 그것이 곧 유물 교회인데, 고신에서  개혁할 때 그때는 박윤선 목사님을 붙들고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그때 초기에는  인본주의니 뭐 혈육주의니 세상주의니 도덕주의니 윤리주의니 하는 이런 것이  약간 좀 말이 있었었는데 지금 다 까뭉케져 버리고 강단에서 그런 말을 전혀 못  듣습니다. 기독교 인본주의라 하는 그런 말은 전혀 아마 일년 내 평생 예수님  믿어도 강단에서 그런 소리를 못 듣는 그런 교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세상이 크기 때문에 거게 새끼가 될 수밖에 없고 거게 종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가 온 우주와 세계보다도 크다는 이 사실을  자기가 믿는 사람은 거게 종이 되지 않습니다. 이 사람이 하늘의 것과 땅의 것과  이제 것과 장래 것 모든 것을 다 상속받을 수 있는 것이지 그게 아니면  상속받아서 그걸 어떻게 하겠습니까? 우리의 영육이 영육뿐이라면 우리 영육이  그런 것을 어떻게 통치하겠습니까?  아, 조끄만한 이 대통령 만나면 하나 맡아도, 똑 온 지구 땅덩어리의 손톱만한  요런 지형만 하나 맡아도 요걸 감당을 못해 가지고 야단을 지기는데 하늘의 것과  땅의 것과, 이제 것과 장래 것, 사망 생명 전부를 그것이 우리 것이라, 우리가 다  이것을 통치하는 것인데 그것 통치하는 그런 것을 거짓말로 둘 수밖에 없지  어떻게 그게 믿어지겠습니까? 또 어찌 그걸 통치를 하겠습니까? 이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믿음으로 행한,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해 가지고 순는 그  뜻은 그것은 전능이요, 전지요. 완전이요 곧 하나님이 그 안에서 내주해 가지고  역사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내주해서 하나님이 친히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친  역사다 하는 요것을 요렇게 믿는 것이 총공회 교리요, 신조기 때문에 요것이 일반  교회와 맞지 않습니다. 맞지 안하는 요게 맞습니다. 성경에 다 요렇게 말해 놨기  때문에. 이러니까 서서히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우리 총공회 산하에 있는 교회들이 모인 것보다도 다른  교계에서 온 그런 사람들이 많이 모였습니다. 대구집회가 생긴 이후로서는 이번이  최고로 많이 모였습니다. 많이 모였는데 그런 사람들이 많이 모였었습니다.

모여서 이번에도 그 교역자들이 저한테 사적으로 와 가지고 묻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 교리도 그러하고, 신조도 그러하고, 행정도 그러하고 이게 꼭  옳다는 것을 이제 알았습니다. 아는데 이거 옳은 것을 가지려면 어떻게 가져야  됩니까?' 이래서 '그것은 집회 때 오든지 그렇지 않으면 일주간에 금요일날 오는  사람들은 전국에서 모이니까 그때 오면은 두 시간 배울 수 있다. 두 시간 배우기  위해서 서울에서 와야 된다. 와서 밥 사먹고 자고 그래 가야 된다.' 그래서  '알겠습니다' 이라고 갔습니다.

 그때 제가 대구, 지금으로부터 한 오래 전에 집회할 때 그때는 대구에 있는  교역자들이 많이 왔었습니다. 많이 와 가지고 '우리가 예수를 새로 믿어야 되겠다.

우리가 예수 믿은 것은 이거 잘못 믿었다.' 다 이렇게 하고 어짤 수 없어서  따라오면서 마음에 참 원통하고 이제까지 믿은 걸 원통함을 가지고 이랬었는데  그 뒤에 중생된 영 문제가 나서 틀렸다 해 가지고 정죄를 하니까 그러면 그렇지  저거 것이 좋다고 돌아가버렸습니다. 돌아간 교회마다 전부 그것이, 우리 진영  교회와 다른 진영 교회의 분쟁이 다릅니다. 모든 통치도 다 다르고, 교훈도  다르고, 사람도 알지 못하는 가운데서 많이 자꾸 달라져 갑니다.

 이래서, 이 광대하심이라는 이 단어의 뜻을 여러분들이 잘 알고, 태양은 하나인데  그게 이렇게 널리 퍼져서 여게도 해 저게도 해 위에도 해, 그런데 이렇게 퍼져  나가는 것을 표현하는 데에 인간 말로는 다른 말 쓰지 못하기 때문에 광대하다는  그런 말을 썼습니다. 이래서 우리가 중생된 것은 죽은 영을 살릴 뿐 아니라 죽은  영을 살린 그것이 곧 우리 중에 우리입니다. 그것이 중생된 새로 난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영을 살린 것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것이 바로 진리입니다. 이래서  진리로 너희들을 낳았다 이래. 진리 출생이라. 진리 출생이라. 진리 출생에, 성부,  성자, 성령 출생인데 우리에게 와 새로 역사하는 것은 우리 말로 알아듣기 쉽게  하다 보니까 이제 진리로 출생했다 했어 성령으로 출생했다 거듭났다는 것을  새로운 창조라는 이것을 이제까지 그거는 너무 어마어마하고 그럴 수 없기  때문에, 중생이라 하는 것을 거듭났다고 자꾸 성경에 이렇게 말해 놨지마는  중생이라 하는 것을 우리가 아는 범위가 그렇기 때문에 다시 살렸다, 중생된 걸  '살렸다' 요렇게만 봤지 '새로 이제 났다' 또 성경에 말하기를 '새로운 피조물이라'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렇게까지 말해도 이 말이 겁이 나 가지고 거기에 우리의  믿음을 붙이지를 못했던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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