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론


선지자선교회 1986년 8월 5일 화 오전집회

 

본문 : 로마서 8장 3절∼23절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피조물의 고대 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마태복음 4장에 있는 말씀을 계속한 건데 오늘 아침에 영에 대한 말씀이 나왔기 때문에 그 말씀을 간단하게나마 종결을 지우고 다시 그리 돌아가는 것이 좋겠다 해서 지금 로마서 8장을 읽었습니다.

8장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의 육신이 약해서 하나님의 율법을 이루지 못했다 그랬습니다. 첫째 아담의 영이 범죄한 것이 아니고 심신이 어리석고 약해 가지고 뱀에게 꾀임 받아서 범죄했습니다. 육신이 약함으로 하나님의 율법을 이루지 못하고 범죄한 그것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셔 가지고 우리 죄를 대신 책임지시고 사죄도 이루시고 또 율법에 대해서 칭의도 이루시고 또 하나님과 화평도 이루셨습니다.

3절에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체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그러면 우리가 육신을 좇지 않고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하는 이 영은 사람의 영을 말한 거 아니고 하나님의 성령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육신을 좇는 건 어떤 게 육신을 좇는 것인고 하니 우리 마음 하고 싶은 대로 또 우리 몸이 하고 싶은 대로 몸의 본능이 하고 싶은 것이 있고 또 우리 타락한 그 자기 중심 자기 위주의 이 마음이 하고 싶은 거 있습니다. 그러면 '육신을 좇지 않고' 하는 그말은 제맘대로 하지 안하고 제 하고 싶은 대로 하지 아니하고 또제 고기덩어리 하자 하는 대로 하지 안하고.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그 영이라는 것은 여게서 사람의 영도 영이라 또 하나님의 영도 영이라, 이 영이라는 말이 우리 한국말로는 꼭 같은 글자로 기록해 있기 때문에 이거 구별하기가 좀 힘듭니다. 그러나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하는 그 영은 하나님의 성령을 가리켜서 말씀했습니다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우리가 영감대로 살려고 애를 쓰면 우리가 영감대로 살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이 신구약 성경 말씀을 우리가 읽고 또 듣고 이 말씀을 그래서 알고 그라고 난 다음에 인정을 하는 그 믿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성령이 그 안에 계십니다 이래서, 우리가 읽었든지 들었든지 해서 아는 이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가 가지고 이 말씀대로 행할라고 이 말씀에 준해서 할라고 애를 쓰는 그 마음이 있으니 그 마음을 가리켜서 신앙 양심이라 그렇게 말을 합니다. 또 불교의 불경을 보고 이 불경에 맞춰서 불경대로 자기가 행동하겠다고 그렇게 애를 쓰는 것을 가리켜서 불교적인 양심이라 이렇게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심은 이 세상에 수없는 종류가 있습니다. 사람의 양심이 수없는 종류가 있습니다. 그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이 세상에는 수없는 종류의 지식이 있다 하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왜? 양심은 지식에 지배를 받습니다. 양심은 지식을 따라서 움직이는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가 성경 말씀을 보고, 이 말씀은 하나님의 지식인데 이 말씀대로 자기가 행할라고 애를 쓰는 그 마음을 가리켜서 양심이라 신앙 양심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착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간다 하는 그 착한 양심이라 말은 세상에 도덕가들과 모든 이종교가들과 모든 철학가들 그 사람들이 선이라고 하는 그런 선이 있습니다. 그 선을 말한 것 아닙니다. 그들은 선을 말하는 것은 자기들 지식으로 해석해서 좋다고 하는 것을 가리켜서 선이라고 말했는데 성경이 선이라고 하는 것은 성경이 좋다고 하는 말인데 성경이 좋다 하는 것은 뭐이냐 하면 곧 하나님 중심 위주를 좋아하고 하나님 중심 위주라야 선이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착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간다 말은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간다 말인데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간다 말은 하나님 중심 하나님 위주의 마음이 하나님을 찾아간다 하는 그말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착한 양심을 쓰면, 그말은 '우리가 하나님의 이 말씀대로 행할라고 살려고 하면' 합니다.

그러면 세례는 물로 씻어 더러운 거 없애는 것이 아니고 착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 세례라고 그렇게 베드로전서에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말은 착한 양심이라야 하나님을 찾아가서 만나지. 착한 양심을 앞잡이를 세워 가지고 찾아가야 하나님 만나지 착한 양심이 아니고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 하는 그런 말인데 마음이 정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이요 하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착한 양심이 하나님을 찾아가서 만날 수 있다 하는 그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할라고 하는 고 마음을 가지면 하나님 찾아갈 수 있고 하나님 만날 수 있다 그말입니다. 요런 걸 똑똑히 가져요 사람이 하나님을 어떻게 만날 수 있느냐? 만나는 것은 하나님 만나는 것이 곧 성령 만나는 것이 성떵 만난 것이 하나님 만난 것이요 성령과 동행하는 것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대속을 완료시키기 위해서 나타난 그 하나님을 가리켜서 성령님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하나님 찾아가는 데에는 뭘로 찾아갈 수 있느냐? 인간의 지혜나 총명이나 명철이나 모두 많은 글을 읽고 많은 것을 들은 광문 다학이나 그런 박식을 가지고 하나님 찾아가는 것 아닙니다. 하나님 찾아가는 것은 착한 양심만이 하나님 찾아갑니다. 그러기에 착한 양심을 앞잡이로 세워 놓고 모든 마음들이 따라가면 그 모든 마음이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착한 양심이 하나님을 만나서 우리 마음의 모든 요소들에게 하나님을 소개해 주고 인사시키면 우리 마음의 각 요소가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 만나는 것은 착한 양심만이 하나님을 만나는 데에 길잡이가 될 수 있다 하는 그것을 단단히 기억합시다. 그게 뭐입니까 그러면? 착한 양심만이 우리 마음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해 가지고 하나님을 만나게 할 수 있다. 착한 양심 외에 우리의 명철이나 지혜나 총명이나 모든 기억성이나 뭐 이런 저런 모든 통달한 지식이나 그런 거 가지고는 하나님을 찾아 만나지 못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찾아 만나는 것은 다른 것 가지고 찾아 만나지 못하고 착한 양심을 써서 착한 양심의 인도자를 세워 가지고 양심의 그 안내자를 세워 가지고 양심의 안내를 따라서 가게 되면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외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

그러면, 착한 양심의 안내자를 세워서 따라가면 하나님 만나게 된다 말씀을 했는데 그러면 착한 양심이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는 인도자요 안내자가 됩니다. 그 안내자는 마음의 요소입니다.

이래서, 이 세계에 하자들 가운데에 이 양심이라 하는 데 대한 정의 뭐 구구하고 통일되어 있지를 아니합니다. 제가 미국에서 선교 나온 그 선교사 가운데에 신앙의 교리와 신조가 아주 똑똑하고 좀 깊은 사람을 하나 만났는데 그 사람이 그때에 칼빈 신학의 뭐 윤리학 교수라든가 그라는 그런 스톡 박사라 하는 사람이 그때 와서 강의할 때에 그 양심을 대해서 말을 합디다. 그런데 그이는 양심에 대해서 말할 때에 양심을, 내가 고 몇 마디 듣고는 똑똑히 모르지만 그때 그 시간에 강의하는 대로서는 그분이 양심을 인적 요소로 보지 안하고 신적 요소로도 보지 안하고 신적 요소와 인적 요소 그 사이에 중매쟁이로 역할하고 있는 그런 존재라 그렇게 양심을 봅디다. 다른 면이 아주 진리 깨달은 면이 아주 독특하고 그렇게 유력했었습니다. 잠깐 한번만 지나가고 말았었는데.

그만큼 양심이라 하는 것은 인적 요소이면서도 이상하게도 인적 요소라고 할 수 없을 만치 그 인적에서 탁월한 그런 지능을 가진 요소라 그렇게 사람들이 보기 때문에 그 양심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심부름하고 있는 천사다 그렇게 하나님의 심부름꾼이라 하는 그런 것으로서 스톡 박사는 양심의 정의를 내리는 것을 봤습니다. 그러면 이 양심이라 하는 그런 것은 아주 양심이라 하는 건 독특한 지능을 가진 깨끗한 존재라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하나님을 찾아서 만나야 일이 되지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면 아무 일도 안 됩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데에는 다른 지식 가지고 만날라 하는 사람은 낱낱이 다 헛일하고 맙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서 능한 사람 가운데는 학벌 좋은 사람이 많지 안하다 그랬습니다. 학벌 좋은 사람이 많지 못하다. 그러니까 지식 가지고 하나님 만날라 하는 사람 중에는 하나님 만난 사람들이 많지를 못하고 드물다 그말입니다.

또 문벌 좋은 사람이 딴지 않다 그말은 뭐이냐 하면 선천 종자 좋은 사람이 많지 않다 그말입니다. 종자가 좋아서 아버지 종자가 좋으니까 아들이, 짐승은 다 종자가 좋으면 그 종자 따라서 다 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요새도 어떤 사람은 시집을 가 가지고 이거 아무래도 이거 시가의 인종이 나쁘니까 이 인종을 개종해야 되겠다 하는 사람은 남편 모르게 저 다른 데에 외도를 해 가지고 인종을 바꾸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말이오. 그런 사람이 많이 있어요. 그런 것을 해 봐도 찍해야 혈형 가지고 조사해 보는데 혈형은 몇 가지밖에 안되기 때문에 지금 나타난 그 혈형으로서는 잘 모릅니다 그저 몇 가지 에이비형하고 무슨 형하고 무슨 형하고 결혼하면 그 다음에 뭐이 난다 그 간단하지 그 깊은 것은 알지를 못한다 그말이오 그러나 그 깊은 것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그것이 그들이 알고 발표를 안 하는지 오히려 발표해 놓으면 후유증이 많이 있을 거기 때문에 발표를 안 하는지 그거는 의학자들의 책임인데 우리 여게도 의학 박사가 몇 분이나 와 있는지 모르겠는데 그렇습니다.

그런 거 가지고 되는 게 아니오. 하나님 만나는 거 그거 가지고 되는 거 아니고 꼭 착한 양심으로만 하나님 만날 수 있습니다. 이것도 하나 배우면 이것만 해도 큰 중한 문제요.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야 되지 않습니까? 하나님 만나야 일이 되지 하나님 못 만나면 아무 소용 없습니다. 하나님을 만나서 그분 속에 피난을 해야 됩니다. 그런데, 그분 속에 그만 그분 품 안에 들어가 버리면 고만 그만이오.

그분 품 안에 들어가면 이 마귀가 아무리 우는 사자와 같이 우글우글해도 그분 품 안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을 마귀가 지금 침노할라고 애를 쓰지 그분 벌써 품 속에 들어갔으면 아예 그 근방에 가지도 못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로 난 자는 악한 자들이' 뭐라 했습니까? 만지지도 못한다 했어, 만지지도. 만지지도 못해. 근방에 오지도 못해요.

그러면 하나님 안으로 기어들어가는 그 방법이 뭐이요? 하나님 안으로 기어들어갈라 하면 어떻게 하면 하나님 안으로 기어들어갈 수 있습니까? 어제 잠깐 말했는데, 어떻게 하면? 요한일서 2장. 네. '처음부터 들은 말씀을 너희 안에 거하게 해라' 그라고 또 그 다음에 '처음부터 들은 말씀이 너희 안에 거하면 아들 안과 아버지 안에 거하리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하나님 안에 피난하는 것도 하나님의 말씀을 내 속에 강직해 모시면, 하나님 말씀을 내 속에다 기억합니까 모셔야 됩니까? 기억해야 됩니까 모셔야 됩니까? 내가 가져야 됩니까 모셔 받들어 섬겨야 됩니까? 받들어 섬겨야 돼요.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속에다가 기억해서 항상 그 말씀이 자기 속에 있도록 하는 데에는 어떻게 해야 된다했습니까?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 보고 있는 자는 어떻게 하는 자라고요? 듣고 버리는 자가 아니고 행하는 자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 말씀을 대우를 해야 말씀이 삐꾸지 안하고 달아나지 안하지 이 말씀을 제가 무슨 세상 지식 모양으로 단단히 명철하고 기억력이 좋다고 기억을 하고 이래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 말씀이 떠나 버립니다. 떠나 버려서 꼭 자기를 구원하는 말씀으로 자기에게 생각나지 않게 하고 현실을 당했을 때에 필요 있는 말씀은 생각 안 나고 필요 없는 말씀이 생각나서 자기를 망치게 됩니다. 그 이상합니다.

그분이 뭐 죽일라 하면 피할 길이 없어 그런데, 하나님 앞에 내가 피란 하나님 앞으로 쏙 들어가 버리면 그만이라 하나님 앞으로 푹 들어가면 마귀란 놈이 따라오거들랑 그만 하나님 앞으로 들어가 버려요.

그것을 가리켜서 제단에 뿔을 잡으면 다른 사람이 원수가 왔다가도 죽이지를 못하고 그거는 법에 다시 법에다가 호소를 해야 되지 직접 손을 대면 벌받아 죽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속으로 피난만 하면 그런 것들이 침노하지 못합니다 하나님 속으로 피난 하는 방법이 뭐이지요? 하나님 속으로 피난하는 방법이 뭐이라요? 이 하나씩 들어서 단단히 기억을 해요. 예? 들은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하도록 우리 안에 모시고 있으면 들은 말씀을 우리가 우리 마음 속에 모시고 있으면 하나님이 그만, 들은 말씀을 우리가 모시고 있으면 내가 하나님 속으로 기어들어가는 것입니까.

들은 말씀을 내가 내 속에 모시고 있으면 하나님이 와 가지고 우리를 푹 거머안으면서 보듬아서 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 속으로 들어갑니까 한번 말해 봐 그래. 들은 말씀을 우리 속에 거하게 하면 하나님이 와 가지고 우리를 탁 품어 버리요, 그만. 암탉이 병아리 품듯이 딱 품어 버리니까 다시는 이 마귀 사탄이 그런 것들이 침노하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이 나를 잡아죽이는 이 죄를 범하는 것은, 나를 잡아 죽일라고 하는 것은 너희 안에 내 말이 거할 곳이 없기 때문에 너희들이 나를 잡아죽일라 한다. 주님 말씀이 거하면 일 다 돼요.

주님의 말씀이 우리 속에 지식으로 가지는 사람, 신구약 성경 말씀을 제 지혜와 총명 가지고 지식으로 가지는 자는 그거는 벌을 받을 자고 이 말씀을 지식으로 가지는 게 아니라 이 말씀은 제가 모셔서 이 말씀은 나를 창조하신 말씀이요 전지 전능의 말씀이기 때문에 이 말씀만 모시고 이 말씀 슬하에 이 말씀 나래 밑에 이 말씀 슬하에 떡 들어가면 그만 피난처입니다.

그러기에 '여호와로 피난처를 삼는 자' '지존자를 거처로 삼는 자' 그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하나님의 계약을 피난처로 그 계약을 자기의 처소로 삼는 자라 그말입니다. 이 계약의 말씀이 우리 안에 와서 계시면 하나님이 우리 처소라 우리는 하나님 안에 피난하게 돼요 그거 또 하나님을 찾는 방법은 뭐입니까? 착한 양심이라 이랬는데 착한 양심은 어느 게 착한 양심인고 하니 하나님의 이 말씀대로 행 할라고 애를 쓰는 그 마음이 이 말씀에 어긋나지 안할라고 말씀대로 할라고 애를 쓰는 그게 착한 양심이라.

이러니까, 우리의 구원은 전부 이 말씀과의 직접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과 관련 있어. 우리의 구원은 피와 성령과 진리가 우리를 구원했는데 우리에게 제일 가까운 것은 뭐입니까? 우리에게 제일 가까운 것은 OOO조사님 뭐이요? 우리와 제일 가까운 것은 말씀이라.

말씀이 우리와 제일 가깝고. 말씀보다 더 가까운 거는 없습니까? 말씀보다 더 가까운 거? 성경이야, 성경. 성경 이 성경 가까이 하면 나중에 말씀과 가까워져요.

어떤 사람은 처음 믿을 때에 귀신이 와서 애를 먹여 쌓아니까 이거 그래 가르치기를 '네가 귀신이 오거들랑은 성경을 머리맡에 놓고 자거라' 그래서 성경을 머리 맡에 놓고 자라 이라다가 또 '성경을 네가 베고 자거라' 또 이라다가 또 그라니까 거석하거든. 그라니 괜찮더니만 또 이래 달라들어. '그러면 네가 성경을 아듬고 자거라' 성경을 딱 이래 품고 잔다 말이지. 그래 인제 차차차 그래 가지고 '네가 이제는 장성했으니까 성경 말씀을 네 마음에 기억해 가지고 자꾸 말씀을 자꾸 생각하면서 성경 말씀을 생각하면서 해라.' 성경 말씀 생각하니까 귀신이 근방에 오지도 못하지요.

이러니까 우리 구원은 성경이 제일 가깝고 그 다음에 들어가서 한번 더 들어가서 깊이 하나님을 가까이 하니까 이제 성경 말씀이 우리와 가깝고 말씀의 또 소개를 받으니까 그 말씀이 그 안에 있는 영감을 소개해 주고 또 영감이 소개하는 데에 영원 자존하신 하나님이 우리 대속하신 삼대 대속을 또 소개해 주고 삼대 대속과 또 연결되니까 그만 하나님은 내 안에 나는 하나님 안에 하나님하고 나하고 그만 한덩어리가 돼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에게 지금 이 시간까지 하는 말이 무슨 말인고 하니 착한 양심의 인도를 받아야 하나님 만나게 되는 이것을 말했는데 착한 양심을 자기가 잘 안내자를 모셔야 돼요.

요번에 우리가 차타고 올 때도 버스 타고 올 때에 말을 그래 했어. 차장들이 어찌 놨든지 가서, 차장은 남반도 차장 내고 여반도 차장 내고 모두 차장을 내는데 어짜든지 그 버스 기사를, 기사를 녹히라 했어 버스 기사를 녹혀서 잠이 올 수 없도록 버스 기사를 녹혀라. 녹히는 데는 어떻게 녹히느냐 하면 뭐 남반들도 이거 뭘 뭐 음식을 주는 그것도 녹히는 것이지만 온 버스에 탄 사람들이 마구 긴장해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를 하고 긴장하면 그만 그 사람이 거기 들어오면 그만 그 분위기 속에서 그만 긴장한 사람이 되고 경건한 사람이 되고 진실한 사람이 되고 정신이 까랑까랑한 사람이 되니까 잠도 안 오고 아마 그 기사가 바로만 운전했으면 자기가 일 년 후에도 뭐 '하이구 내가 돈 안 벌어도 그 거창 집회 언제 있노? 거기 갈 때 그때에 그 운전할 때보다 마음이 상쾌하고 마음이 정결하고 의롭고 깨끗하고 기분 좋고 상쾌하고 그렇츰 좋은 꼴은 못 봤다.' 아마 그렇게 말할 것이오. 그래 그러고 아주 잘 모시라 이랬습니다. 그 사람 잘못 하면 우리는 그만 몰사해 버리요. 그렇지 않소? 그러니까 아주 중요하게 모셔야 돼요.

이거 모양으로 그러면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는 데는 그 하나 죽으면 다 죽어 버려.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는 그 기사가 누구입니까? 예?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는 기사가? 신앙 양심이라는 그 기사라. 그러니까 신앙 양심을 대우를 잘 해서 잘 가꿔서 신앙 양심의 권위를 세워 줘야 됩니다.

그러면, 신앙 양심의 권위를 세워 주는 것을 어떻게 하는 것이 신앙 양심 권위를 세워 주는 것이지요? 신앙 양심의 권위를 세워 주는 것은 돈에 욕심이 있다가서, 욕심이 있다가 돈 욕심이 있다 말하기를 '이래 하자' 그라면 온 전체가 나서 가지고 '안 된다. 이 돈 욕심 네가 뭐라고 네가 건방지게 지금 선봉장이 될라 하노? 안 돼.' 또 있다가서 지위나 권세나 명예 욕심이 또 나와 가지고 이라면 그것도 쥐박아 버려. 쥐박고, 어찌 됐든지 하나님의 성경 말씀대로 할라 하는 그 마음을 대우를 해 주면.

하나님 말씀대로 하는 그 양심에게 대우해 주는 거는 대우가 뭐이냐 하면 '하나님 말씀대로 할라면 어째야 됩니까? 이래야 됩니까?' 자꾸 물어. 하나님 말씀대로 할라면 이래야 됩니까 저래야 됩니까 자꾸 이래 자기 속에 물어요. 양심이 눈에 보이지 안해요. 보이지 안해도 있어요, 똑똑히 이러니까 양심에게' 말씀대로 할라 하면 어떻게 해야 되지요?' 이래 자꾸 하면 이 양심 제가 세월이 났다 말이오.

그라면 삐죽이 있다가서 떡 일어나면서 '그래? 그라면 나한테 물으면 내 지도를 잘 받을 거라?' '잘 받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말씀대로 합니까?' 이라면 양심이 있다가서 '말씀대로 이렇게 해야 된다' 이렇게 해서 가르쳐 준다 말이오.

가르쳐 주면 그 뒤에 그 말씀대로 양심이 지도하는 대로 고대로 순종하면 그것은 양심의 뭣을 올려 주는 것입니까? 권위를 올려 주는 거라 권위를. 양심 권위를 올려 줘요. 권위를 올려 주고 또 양심의 그 권위를 올려 주는데 양심의 아주 주도권 말이지요. 아주 주도권을 점점 숭상해 줬어요.

양심이 자기 속에 있는 모든 전부를 주도하는 그 주도권을 숭상해 주는 데는 뭐이냐 하면 양심대로 할라 하면 이놈이 와 가지고 안 할라 해. 돈 욕심내는 이놈이 와 가지고 안 할라 하고 뭐 이런 욕심 저런 욕심 이런 마음 저런 마음 이런 것들이 나서 가지고 양심대로 할라 하니까 못 하구로 한다 말이오.

못 하구로 할 때 그때 이게 말하고 저게 말하고 전부 다, 우리 마음이라 하는 것은 회의입니다. 회의소요. 이 마음이라는 거는 굉장한 요소가 많습니다 육체도 요새는 세포가 있다 해 가지고 많은 걸 말하지만 우리 마음의 세포는 더 많습니다.

굉장합니다. 언제든지 회의 결정이라요. 그러기에 왜? 이 마음과 몸이라 하는 것은 종합체요. 종합체요 집합체이기 때문에 거기는 회의가 있어요. 우리 영은 단일성이요 단일 존재입니다.

그런데 그 양심으로 뭐 이렇게 하자 하면 이 마음이 와 가지고 또 반대하고 저 마음이 와 가지고 반대하면 막 쥐박아야 돼. 그만 영광이니 뭐이니, 딱 욕심 이, 명예 욕심이, 지식 욕심이 '공부를 해야 어떻게 해야 될 텐데' '입 닥쳐' 그만 무조건하고 '닥쳐' '오늘 지금 시험 공부하자면 시험에 공부해야 되는데 주일에 공부해야 되는데' '입 닥쳐' 그만 온전신이 막 데모를 해요, 전체가. '입 닥쳐' 이라면서 양심을 대우해서 양심이 말씀하는 대로 우리가 할 터이니까 '그리 하시이소' 이래서, 양심을 자꾸 대우를 해서 양심의 권위를 올려 주고 양심의 그 실력을 높여 주고 양심에게 용기를 내도록 하고 그렇기에 양심 가꾸는 것이 그것이 하나님 외에는 아주 제일 중요한 유리케 하는 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바울은 양심을 얼마나 가꿨느냐 하면 사도행전 20장에 보면 그 양심이 가자 하면 죽는 곳이라도 갔어. 양심이 한번 떡 명령해서 이래라 하면 예 하고 죽는 곳이라도 순종하면 양심의 권위가 올라갑니다. 그러기 때문에 양심의 인도를 따라서 사경을 몇 번 지내 본 사람은 그 사람의 양심은 강합니다.

그 사람의 양심도 뭐 혹 누워자다 보면 그만 양심이, 자다 보면 엉뚱한 짓 해 가지고 사람이 실수가 있지만 벌써 죽음을 통과한 그 양심을 길러 놓은 사람은 어떤 일이 사건이 났다 하면 그 양심은 권위를 써 가지고 그 사람을 뭐 가지고 생지고 할 것 없이 바로 인도해 가지고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는 것이 자기 속에 마음 가운데 거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할라고 하는 그 마음이 중요하다 말이오. 그 마음이 뭐입니까? 하나님 말씀대로 할라 하는 그 마음이 무슨 마음이요? (신앙 양심) 그게 중요해.

내가 하나님 말씀대로 할라고 하나님 말씀이 요러나 조러나? 무슨 사건 닥치면 사건을 닥치면 어떤 사람은 이 사건을 닥쳤는데 '요래야 돈이 유익하나 조래야 돈이 유익하나, 요래야 내 체면이 서나 조래야 내 체면이 서나?' 뭐이 체면 이놈은 또 이놈대로 하자 하지 돈 욕심은 돈 욕심대로 할라 하지 지위나 권세나 명예는 이런 거 대로 할라 하지 제 또 안일주의는 또 고대로 할라 하지 이 여러 놈들이 있는데 그놈들에게 말 들으면 안돼요.

듣지 말고 그저 양심을 대우해서, 말씀대로 할라고 애를 쓰는 그 마음을 가지면 그게 양심을 대우하는 것이요 양심을 가꾸는 것이요 양심을 기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양심만 길러 놓으면 돼요. 양심만 길러 놓으면, 양심 기르는 게 뭐이냐 하면 하나님 말씀대로 할라 하는 것인데 하나님 말씀대로 할라 하는 거 그거 뭣이 귀해? 하나님 말씀대로 할라 하는 그것이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 만나는 거, 하나님을 만나야 하나님이 이래라 저래라. 말하지. 기름 부음이 가르쳐 준다는 그 기름 부음이 가르쳐 주는 것은 누가 가르쳐 주는 것입니까? 누가 가르쳐 줘요? 기름 부음이 가르쳐 주는 것은 누가 가르쳐 주는 거요? 하나님이 가르쳐 줘. 하나님이 가르쳐 주시요. 그 요한일서 2장 거게 읽어 보면 고게 있어요 그라면, 이런 다 물러가 버리고 나면 이제 속에 기름 부음이 우리에게 자유로 가르쳐 주고 가르쳐 줄 때 우리가 바로 들을 수 있어. 가르쳐 주는 걸 바로 듣지 못하는 것은 미혹이 와 가지고 자꾸 꾀우기 때문에 바로 듣지 못해요.

이러니까, 이 시간에 생각한 것은 뭐이냐 하면 '들은 말씀' '처음부터 들은 말씀' 여게 처음부터 들은 말씀이 뭐인가? 이 처음부터 들은 말씀이라 사람들이 자꾸 이거 걱정하는데 처음부터 들은 말씀이 뭐입니까? 체일 처음에 들은 말씀이 무슨 말이지? 여러분들은 무슨 말이 제일 처음 들은 말입니까? 예? 나도 그거요, 나도 그거. 열두 살 먹어서 학교 가니까 그 고운서 목사님이 뻑뻑 얽은 전도사인데 안경 커다란 거 쓰고 이래 가지고 이래 가면서 '예수님 믿고 하나님 공경합시다' 그래요, 그는 그는 '예수 믿고 하나님 공경합시다' 이래요. 그때 그말에 나는 중생됐어, 가만히 지금 생각하면.

그말을 들을 때에 내게 깜짝 놀래지는 게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을 공경할 수가 있느냐? 이 지극히 큰,' 그때 하나님을 동양적 하나님이니까 바른 하나님은 아니지만 이 하나님을 어찌 사람이 공경하고 섬기고 뭐 접촉할 수가 있느냐 이 말에 열두 살 먹고 그말 들으며 깜짝 놀랬어. 그날 아침에 학교를 한 이십 리 걸어서 학교 가는데 가면서 그 말씀이 자꾸 새김질이 돼서 '하나님을 공경하다니 이런 길이 있나?' 이래서 그래 가지고 믿기는 스물다섯 살 먹어서 예수 믿었어요.

그래 내가 그때부터 이제 그 예수 믿는 사람 핍박하기를 시작해요 제가 그때 학교 다닐 때에, 지금은 뭐 뭐인고 몰라도 그때는 급장이라 하면 아주 이것입니다.

이건데 떡 시간 되면 상학 종이 치면 '앞으로 나란히' 일본말로 '앞으로 나란히' 이라면 앞에 와 떡 서서 줄지어 가지고 그라고 난 다음에 앞에 가면 가고 또 시간 마치고 난 다음에 하학 종이 나오면 나와 가지고 또 모아다가 '앞으로 나란히' 그라면 또 앞으로 전부이 다 섭니다 쭉 서 가지고는 그래 급장이 저 옆에 가서 한 군데 가 서면 인제 오른쪽으로 돌아. 왼쪽으로 돌아 서. 이래 서 가지고 그래 '절' 하면 다 절하고 그래 가지고 또 헤어집니다. 아주 그때 좀 급장이 인기요.

이랬는데 그때부터, 예수 믿는 아이가 둘이 거게 있었어. 둘이 있었는데 그 둘 있는 예수 믿는 아일 내가 못 살게 굴었어. 이놈을 거머쥐고 이래도 훑어보고 저래도 쓸어보고 그래 애를 먹였는데 애를 먹인 중에 하나는 누구냐 하면 OOO목사라, OOO목사라. 지금 총회 내나 총무로 일 보고 있는 OOO목사.

나하고 한 동창생인데 그때 나보다 조금 키가 작았어요. 나이가 한 살인가 아마 작을 거라.

이래 놓으니까 내가 급장이지 그래 놓으니까 그거 뭐 흔들고 이래 쌓고 이 좀 놀려 먹는데 예수 믿는 걸 자꾸 그라면서 예수 믿는 걸 탐지를 했어 그래 가지고 저녁으로 그거 내가 하숙 있을 때 오라 해 가지고 이래 데리고 밥도 해 먹고 이라며 자꾸 이 뭘 탐지를 해. 그때부터 예수 믿는 사람을 핍박하면서도 이제 반대로 핍박하는 게 아니라 거게 매력이 있어서 예수 믿는 데 거기 지금 내가 반했기 때문에 그 속에 뭐이 있는고 싶어서 찾기 위해서 자꾸 그렇게 했어.

나보다 여동생이 예수를 먼저 믿었습니다. 예수님을 먼저 믿었는데 여동생이 나를 만나 가지고 울기를 몇 번 울었는지 몰라요. 만나면 울리요. 만나면 핍박을 해 가지고 자꾸 이래 저래 시달려 가지고 울리고 이라는데 그래도 실은 반대를 하고 막 이래 이렇게 하면서도 실은 예수가 믿고 싶어서 그랬다 그말이오.

그래 가지고 마음에 어떻게 그 사람들 하는 거 어떻게 뭐 거석하게 보이는지 어데 가면 나는 질질 따라가요. 내가 언제 상점에 가니까 고운서 목사님 그 아들이 물건 사러 왔어. 물건 사러 왔는데 떡 말하기를 '저 조사 아들이 왔다' 이래. 조사 아들이 왔다 이래서 그래 내가 눈을 바짝 떠 가지고 뒤에 살며시 숨어서 조사 아들이 어짜는고 보자 이라니까 물건 뭐 사러 왔는데 이거 뭐 얼마입니까 이라니까 얼마라 하니까 아, 두말도 안 하고 그만 떡 주고 간다 말이오. 그것도 또 깜짝 놀랬어.

세상에 오면 막 깍쟁이들이 깎고 이라는데 그래 하나도 깎지 않고 떡 가. 그걸 보고 '야, 이거 저 사람들은 참 이상한 사람들이다' 이래서.

그래 그만 내가 그 걸음에 나서 가지고 그 집에 가서 뭐, 가지는 못하고, 내가 자존심이 있어 가지는 못하고 딴 사람에게 통해 가지고 이래 들으면서 인제 내 여동생한테 물으니까 그 집에 뭐 양을 먹인다 그런 말 있어. '야, 양 그거 안 팔라 하더나? 그거 팔라 해라.' 이라니까 '그 사람들 젖 짜먹는데 팝니까?' 이래서 '그거 내가 돈을 많이 주니까 팔라 해라.' 그래 그 양을 기어코 사왔어요.

기어코 사다가서 그래 사 가지고 그러니까 그거 또 그분들은, 그때 마침 갈려서 황보 기 조사님인데 그분은 또 점잖해서, 나는 그때 술도가 할 때인데. 양을 살라 한다 하니까 또 자기는 어째 이걸로 가지고 전도나 될까 해서 젖짜는 거나 가르쳐 주고 전도나 될까 싶어서 또 판다 말이오. 파니까 얼마냐 하니까 또 말 안 하고 뭐 주는 대로 달라고 이란다 말이오. 또 거기 또 감동을 받앗어. 그래 자꾸 나는 돈을 많이 주고 또 거기는 또 돈을 보내고 또, 보내고 어짜고 자꾸 인제, 돈을 더 줄라고 보내고 또 거기는 또 덜 받을라고 보내고 자꾸 이라는 가운데에 그 자꾸 별스럽다 이래 돼져 버렸어. 그때까지도 예수 안 믿었어.

이래 놓으니까 얼마나 핍박을 많이 하고 그라니까 핍박쟁이로 소문이 나니까 윤봉기 목사, 윤봉기 목사가 떡 전도하러 올라오면서 우리집을 썩 지나가요.

암말도 안하고. 지나가, 보니까. 이 술도가를 지나가. 그래 지나가서 내가 불렀어요.

여보시오 여보시오 하며 부르니 '왜 그라십니까?' '뭐하러 다니십니까?' '나 전도하러 다닙니다.' '왜 전도하러 다니면 그래 나한테 나한테는 전도 안하고 그냥 갑니까?' 이래 놨다 말이오. 이라니까 그분이 있다가서 '예. 선생님도 예수 믿고 구원 얻으십시오.' 이래. '오늘 저녁에 뭐 합니까? 오늘 저녁에 전도 강연합니까?' 강연한다 해. '그러면 우리 술도가에서 전도 강연하십시오.' 그거 그라니까 좋아해요. 그날 밤에 그 동리 사람 다 모였어요. 내가 오라. 하면 동네 사람 다 모이니까.

그래 가지고 거게서 전도 강연을 하는데 그분이 그때 전도 강연하는 거는 별로 시시했소. 전도 강연 그렇게 귀가 안 돋쳐져요 내가 첫시간에는 황보 기 장로님은 하나님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다 하는 그만 그 말씀하는데 그만 거게서 그 녹아 떨어져 버렸어. '창조주가 있지. 창조주가 있지 뭐 우연히 생길 턱이 있느냐?' 이래 됐는데, 참 예수 믿는 사람이 이 빛을 보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몰라. 이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도를 얼마나 가리운지 몰라요.

그래 가지고 염소를 사다가서 이래 가지고 아주 우상같이 섬겨서 이렇게 잘 길렀는데 또 그거 가지고 또 회개를 많이 했어요. 길렀는데 이게 하도 부애를 지르고 남의 곡식 밭에 가 가지고 부애를 많이 질러서 그래 그만 내가 발로 이래 슬쩍 건드렸다 말이오. 발로 슬쩍 건드렸더만 그만 죽어 버리요, 그만. 아, 그래서 그 어떻게 후회가 되는지 거기서 내가 그분을 뭐라고 대하며 이래서 그래 그 묘를 내가 집앞에다 딱 써 놓고 항상 그거 쳐다봅니다. 써 놓고 또 눈물 흘리며 회개하고 또 무덤 보고 회개하고. 하나님이 우리 만드는 건 그래 그래 만들어요.

참.

여게 요런 말씀이 있어요.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성령으로, 성령을 따라 살라고 하는 성령을 따라 살라고 하는 것이 뭐이냐 하면 말씀대로 살라고 하는 사람이라. 말씀대로 살라고 하는 사람.

여게는 보면 사람이 능동이요 하나님이 피동입니다. 사람이 말씀대로 살라고 애를 쓰는 자에게는 이래 놨어.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말씀대로 살라고 행하는 우리에게. 우리가 말씀대로 살라고 행하는 것은 우리가 능동으로 이 힘을 힘을 써야 됩니다.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우리가 영을 좇아 산다 말은 성경 말씀대로 살라 한다 하는 말인데 성경 말씀대로 살라고 애를 쓰는 자에게는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율법은 무슨 율법입니까? 대한 국민의 율법 헌법입니까 무슨 율법이요, 이 율법은? 하나님의 율법인데 이 율법은 무슨 율법입니까? 전지자의 입법이기 때문에 이거는 완전한 율법이요 자유의 율법이요 생명의 율법이요 이 무한한 율법입니다. 무한한 율법.

무한한 율법인데 무한한 율법이 그 율법이 뭐 하나 둘이 천도 만도 아니고 굉장한 율법인데 그 율법은 하나님의 지혜로 법해 놨기 때문에 그 율법을 다 통달하면 하나님 돼요. 그 율법을 다 이행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율법 이행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같은 사람이라. 하나님이 이라면 좋겠다 저라면 좋겠다 하는 당신의 생각대로 다 실행하는 사람이니까 하나님 같습니까 하나님만 못합니까? 어때요? 피조물이니까 하나님만 못하지만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꼭 같이 된다 그말이오.

이 말씀보고 우리가 기뻐 뛰어야 돼요.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의 율법이라는 것은 신구약 성경 이 말씀이 율법인데 이 율법은 육십육 권밖에 안 되는데 이 육십육 권이 다입니까? 이 신구약 육십육 권의 문서 율법입니다. 문서 율법.

이 문서 율법 속에 알맹이는 없습니까? 예? 알맹이 없어? 예? 뭐이라? 어? 뭐라 하노, OOO목사? 영감 율법. 영감 율법. 이것을 가리켜서 영감 의지라 은밀 의지라 그랍니다. 영감 의지 은밀 의지는 이는 하나님이 아시는 거 다 알아, 그만.

이 문서 계시 속에는 영감 계시가 있는데 이 영감 계시는 하나님의 아는 게 거기 다 들어 버렸어 하나님의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합이라. 그러면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니까 이 전지 전능자가 되게 하려 하는 거라 그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그 말씀으로 해석하면 틀려요 맞아요? 틀려요 맞아요? 여러분들 이 교리라 말은 깨달음이라 말인데 깨달음이라는 것은 이제 일반적으로 이렇게 깨닫는 것을 그걸 가리켜서 깨달음이라 말하는 사람 있는데 그게 아니요. 그 깨달음이라는 이 교리는 뭣이 교리냐 하면 제가 어떻게 행할 것을 거게 보고 깨달은 것이 그것이 교리입니다.

요새는 저는 행하지 안하고 다른 사람 이래 깨닫는다 저래 깨닫는다 저 행할 것을 깨닫지는 안하고 백지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그런 것을 교리라 하는 그거는 다 가짜 교리 다 외식 교리요 생명 없는 교리입니다 교리 진짜 교리는 뭐이 교리냐 하면 자기가 어떻게 행할 것을 깨달은 것이, 자기가 행할 것을, 그 성구 보고 자기가 이 성구 보고 나는 이렇게 행하겠다 하는 자기가 행한 것을 깨달은 그것이 교리인데 이 교리라 깨달음이라 하는 것은, 자, 깨달음이 큽니까 우리 생명이 큽니까? 깨달음 깨달음이 내 생명을 좌우합니까 생명이 깨달음을 좌우합니까? 깨달음 이 생명을 좌우해. 그러니까 내 생명을 바칠 곳이 어데냐 하면 깨달음이라 그말이오. 내 생명을 바칠 곳이 깨달음이라 그러니까 잘못 깨달으면 내 생명을 잘못 바치게 될 것이고 바로 깨달으면 바로 바치게 되니까 이 깨달음은 내 생명이 귀합니까 깨달음이 귀합니까? 깨달음이 귀하다 말이오.

이렇게 깨달음을 귀중히 여기고 신중히 취급하는 사람들이 없어요. 그 깨달음을 자기 생명 같이 귀중히 여기면 다 알 수 있어요. 다 알 수 있는데 사람들이 깨달음 그것을 뭐 거짓말같이 아무 가치 없는 그런 말로 여기기 때문에 업수이 여기니까 이 참된 깨달음이 그에게 알려 주러 오지를 안해요. 참된 깨달음은 누구하고 같이 있어요? 하나님하고 같이 있어요. 참된 깨달음은 곧 하나님이오.

그 속에 하나님이 계신다 그거요.

이러니까, 이렇게,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말은 하나님의 전지가 법을 세웠기 때문에 전지를 다 이루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은 전지한데 전지를 실행은 내가 한다 그말이오. 하나님의 전지를 내가 그대로 다 실행한다 그거요. 하나님의 전지의 실행을 다 내가 해요.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함은 전지의 지혜가 요랬으면 좋겠다 조랬으면 좋겠다 전지의 요구를 다 이루니까 전지 전능자 되는 것입니다.

요것이 요 성구의, 요 성구를 단단히 써요. 요 성구를 강하게 써요. 우리가 예수 믿으면 전지 전능자 된다는 그것이 뭐이냐 하면 요 성구를 쓰면 변동이 없어요, 딱 그러면, 그런 자가 되는 것은 뭐 달리 되는 게 아니라 자기가 영을 좇아 살라고, 육신을 쫓아 사는 것과 영을 좇아 사는 거와 두 가지 있어요. 육신을 좇아 사는 것은 뭐인고 하니 자기 마음 좋아 사는 것이요 자기 몸 좋아 사는 것이요 자기 마음과 몸의 기능이 원하는 대로 사는 사람이 육신을 좇아 사는 사람이고 영을 좇아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영이 인도하시는 걸 따라서 사는 사람이니까, 영의 인도가 뭐이냐 하면 신구약 성경의 문서 계시요 하나님의 약속인데 문서 계시를 따라서 사는 사람인데 문서 계시를 따라 사는 사람은 고게 문서 계시를 따라 살면 고 속에 뭐이 있느냐 하면 영감 계시가 들어 있어요. 영감 계시를 따라서 살아요. 영감 계시 따라 살면 성령하고 동행해요. 그라면 하나님과 동행함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내 속에 떠나지 않도록 내 안에 거하시게 하는 것이 이것이 이렇게 중요하고 하나님 말씀을 내 안에 거하게 하는 것이 이렇게 중요하고 또 내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할라고 애를 쓰고 말씀대로 행할라고 애를 쓰는 것이 이렇게 중요한데 그러면 하나님 말씀이 내 안에 거하도록 하는 것은 이 말씀을 내가 잊어버리지 안하고 이 말씀을 내 안에 모시고 늘 생각해요.

그러니까. 우리가 생각하는데 주님 생각하는 거 있고 말씀 생각하는 거 있습니다.

주님 생각하다 잘못하면, 주님 생각하면 주님 생각하는, 주님이 너무 범위 넓고 둥글둥글하기 때문에 주님 생각하다 보면 엉뚱한 거 생각하기 쉬워요. 엉뚱한 거.

그러나 이 말씀을 생각하는 것은 말씀이 벌써 말씀이 문서적으로 딱 나타나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말씀은 생각하면 '옥토에 뿌린 씨가 된다' 또 '알곡이 된다' 또 '씻었다가 도야지가 구렁텅이에 들어간다' 또 '개가 토했던 걸 먹는 거와 같이 먹어서는 안 된다' '주의 온전하심과 같이 자기도 온전하게 돼야 된다'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케 한다' 자꾸 이런 말씀 말이지요 또 '원수를 사랑하라' 하는 이런 말씀도 말씀인데, 무슨 말씀이든지 말씀을 자꾸 내가 생각할 때에 그냥 마음을 두고 딴데 두고 생각하는 게 아니고, 입에만 생각할 수 있어요. 그 말씀을 생각할 때 입에서만 생각하는 거 있고 마음으로 이 말씀을 모시면서 생각하고 이 말씀의 슬하에 이 말씀의 권능의 혜택 아래서 내가 이 말씀의 혜택을 입고 있다. 이 말씀 슬하에 내가 있겠다, 이 말씀의 보호를 입겠나 이 말씀을 자기보다 무한히 큰 존재인 줄 알고 그에게 소망을 두고 그의 혜택을 입을라고 하는 그 마음을 가지고 이 말씀을 생각하는 것이 말씀을 생각하는 것이지 이것을 무슨 공산주의 말이나 이런 철학자의 말이나 그런 거 모양으로 기억한 거는 아무 소용없습니다.

이래서, '처음부터 들은 말씀이 너희 안에 거하게' '거하게' 하는 그 말은 벌써 인격 존재를 가리켜서 말합니다. '네 안에 있게 하라' 그말이 아니고 '네 안에 거하게' 하는 것은 인격 존재를 들어서 말씀한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이렇게 이 말씀을 자기 속에다 생각하면 그만 예수님 안에 있고 아버지 안에 있게 되고 사탄이 오지를 못해요. 이거 뭐 알라면 얼마나, 여러분들이 알라고 하면 좀 알 건데.

거게도 보면 '아버지와 아들 안에 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미혹이 많이 들어왔기 때문에 내가 이 글을 써서 너희들에게 보낸다.' 이랬어. 미혹이 많기 때문에 이 글을 써서 너희에게 보낸다. 너희는 사람이 아무도 너거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너희가 기름 부음을 받았으니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있어서 너를 옳고 바르고 참되게 너를 가르쳐 줄 터이니까 그대로만 하면 된다 그렇게 말했어.

이라니까 미혹 많은 세상이라 그 말은 이 미혹이 뭐 마귀가 꽉 찼는데 우는 사자와 같이 꽉 차서 미혹이 있는데 그러면 그 우는 사자와 같은 그 마귀가 가득 찼는데 그 마귀가 우리에게 와 가지고 뭣을 방해해요? 기름 부음이 가르치는 것을 배우지 못하도록 방해해요 하나님의 인도를 못 받게 해요.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도록 해요.

하나님을 찾아가지 못하도록 해요 그놈이 방어선, 방어선이라 하는 것은 전쟁할 때에 자기에게 침노하지 못하도록 하나 막고 둘 막고 하면 그거 방어선이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방어선 방어선인데 마귀란 놈이 우리를 실패하도록 하기 위해서 방어선을 수십 방어선을 꾸며 놓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우리가 말씀을 생각하게 되면 마귀란 놈이 우리 근방에 오지를 못해. 우리를 미혹하지 못합니다.

미혹하지 못하니까 기름 부음에 네가 배울 수 있다 그말이오.

그러면 우리가 속에 기름 부음이라는 것은 중생시킨 성령의 인함을 받는 것이 기름 부음을 받는 것인데 그 기름 부음을 받는 성령의 인도를 받는 그 인도를 받는 순서가 어찌 됩니까? 그 인도를 받을라면 어떻게 순서를 하면 그 인도를 받을 수가 있습니까? 이게 중요하지 안해요? 자 이 기름 부음은 성신의 영감 인도인데 영감 인도를 받을라고 하면 어떻게 하면 영감 인도 받을 수 있어요? 한번 말해 봐, 여게 말씀을 자꾸 내 속에 모시고 있어요 말씀만 모시면 마귀가 침노 못해 말씀 모시고 있으면 마귀가 침노를 못 해요. 어데 있는데 마귀가 침노해? 마귀가 근방에 오지도 못해요. 말씀만 모시고 있으면 마귀가 근방에 오지를 못해요 말씀만 모시고 있으면 어짜는데 마귀가 근방에 오지도 못해요? 아들 안과 아버지 안에 있기 때문에 마귀 그놈이 오지를 못한나 말이오. 오지 못하면 마귀란 놈이 우리를 유혹할 수가 있어요 없어요? 유혹만 안 하면 영감 다 받을 수 있어.

영감 다 받을 수 있는데 영감을 못 받는 이유는 성령이 이렇다 하면 마귀란 놈이 와 가지고 요래 말하면 또 헛일이고 이러니까 말씀이 그 속에 거하지 안하는 사람은 영감은 그거 받는 거는 천부당 만부당이오 요거 얼마나 중요한 일인데 이거 그렇게 느끼지 안해 자 그러면 말씀을 자기 안에 오시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고, 또 하나님 만나는 것은? 하나님 말씀과 어떻게 하면 하나님 만나요? 우리 O장로님. 아현교회 다녀서 착한 양심을 많이 들었는데 그래 착한 양심 쓰는 게 어떤 게 착한 양심이지? (하나님 말씀대로 살라고 애를 쓰는 거) 그게 착한 양심이라. 졸며 들어도 들려? 졸면 안 돼 장로들 졸면 마귀 놀음 해. 장로들 졸거든 마귀 놀음하니까 단단히 거석해야 되지 장로들 졸면 마귀 놀음해요 우리가 순서가 있기 때문에 집은 짓는 데도 터를 닦고 정지해 놓고 기초를 놓고 그 위에다 기둥을 세우고 그래야 집이 지어지는 것이지 그냥 자꾸 이거 저 위에 것만 자꾸 한다고 됩니까 이거 기둥 없으면 기둥 없으면 이거 안 돼요. 신앙이라 하는 건 꼭 순서적입니다. 신앙은 꼭 순서적이요, 또 신앙은 꼭 하나님이 유일한 법칙을 줬기 때문에 법적이요, 또 신앙은 논리적이요 신앙은 평가적입니다.

그래서,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영의 일을 생각한다, 영의 일을 생각한다는 이 영은 무슨 영입니까? 이게 하나님의 영입니까 사랑의 영입니까? 이것도 하나님의 영이라 어떨게 하면 하나님의 뜻대로 할까 하는 그걸 생각하는 것이 내나 영을 생각하는 것이라.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런데 내가 지금 이 말 할라 하는 건 뭐이냐 하면 7절에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의 원수 되나니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 섬기지도 못하고 굴복하지도 못하고 하나님하고 친근할 수도 없어.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라 정 원수라 말이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된다는 요것도 하나 기억을 단단히 해 놓으십시오. 육신의 생각이 뭐인데 하나님과 원수 됩니까 육신의 생각이? 죄? 육신의 생각은 뭐이 육신의 생각이지? 자기 생각대로 한다 그것도 지금 애매한데.

네, 육신의 생각은 어떤 게 육신의 생각이냐 하면 영감을 배반하고 육신이 주권해 가지고 생각하는 것이 그것이, 육신이 주권해 가지고 육신 중심 육신 위주 이 그것이 육신의 생각입니다. 육신의 생각.

그러면, 우리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사람들이 예수 믿는 사람들이 살면서 자기중심 자기위주로 뭘 생각해요? 자, 이거 무슨 사건이 날 때에 여게 대해서 먼저 이해가 어찌 되노, 물질이 어찌 되노 이라면 내가 지금 당면한 이 사건이 어찌 되노? 이라면 우리 가족들 비위는 어찌 되노? 이거 이것을 다 앞두는 그것은 무슨 생각입니까? 그게 육신의 생각이라 그말이오. 여게서 다 심판 받아야 돼요, 뭐 전부.

자기가 먼저 '하나님이 어찌 되노?' 하나님을 생각지 안하고 사람들이 제게 어찌 되는 거, 하나님 외에 하나님 외에 뭐 사건이든지 장관이든지 나라든지 민족이든지 백성이든지 경제든지 영광이든지 명예든지 무엇이든지 부모든지 자식이든지 뭐이든지 하나님 생각 안 하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생각하지 안하고 하나님 떼내 버리고 생각하는 그 생각은 전부 육신의 생각입니다. 그 생각은 전부 육신의 생각이라.

창세기 6장에 보면 그때 그 사람들이 왜 홍수에서 멸망을 받았습니까? 내나 꼭 같은 거라. 멸망받은 것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하나님 비위 찾지 안하고 하나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제 욕심대로 택해 가지고 자기 좋아하는 대로 택해서 아내를 삼았기 때문에 그거 때문에 멸망했어요.

이러니까 오늘 오전에 이거 큰 거 배우는데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의 생각은 예수 믿을래야 믿을 수 없어요.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정반대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정반대요. 이거 알고 살아요.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정반대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정반대.

육신의 생각이 뭐이 육신의 생각인데? 육신이 주권을 잡고 육신이 주장해 가지고 하는 생각이 전부 육신의 생각이지.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 마음의 생각이라는 것이 제가 능동자로 이 우리 마음에서 무엇이든지 자기가 능동자가 돼 가지고 자기로 인해서 시발되는 것은 그거 뭐입니까? 자기로 인해서. 자기로 인해서 시발돼 가지고 기도도 하고, 자기로 인해서 시발돼 가지고 전도도 하고, 자기로 인해서 시발돼 가지고 교역자노릇 하고 전부 자기로 인해서 자기가 제일 움직이는 근본이 돼 가지고 자기로 말미암아 움직이는 그 모든 언행심사, 자기로 말미암아 움직이는 모든 언행 심사, 자기로 말미암아 움직여 가지고 전도도 하고 연보도 하고. 교회도 세우고, 목회도 하고, 전도도 하고 이렇게 합니다.

자기로 인해서 움직이는 움직임, 자기로 시발해서 움직이는 시발, 자기로 인해서 움직인 시발하는 모든 시발 언행심사의 그 모든 것은 그게 뭐입니까? 그게 뭐입니까? 자, 따라합시다.

자기로 인하여! 움직이는! 언행심사는! 다 육신의 생각이다! 저 뒤에도, 육신의 생각이다! 자기 중심 자기 위주 자기 근원으로! 언행심사에 발족한 것은! 전부 육신의 생각이다! 전부 하나님과 원수다!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하고! 할 수도 없다!

이제 요것만 여게서 다 알아도 요 마귀란 놈들이 지금 야단인데, 우리 하나님은 말이요. 그 요번에 신문에 나기를 모두 다 요번 주간이 제일 더울 주간이라고 모두 신문에 났어. 신문 그것도 우리 위해서 해. 그라니까 모두 말하기를 '요번 주간이 요렇게 더울 터이니까 이거 큰일났네. 이라니까 기도 좀 해야 될세.' 이래 모두 기도를 해야 된다고 이라는데 아 어떻게 서늘한지. 오는 날부터.

그래 여기 온 날 말이요. 내가 말 들으니까 여기 물어 봤어. OOO목사님한테 '여기 비가 얼마나 왔습니까?' '꼭 비가 한 시간 왔습니다.? 한 시간 많이 봤대요.

어떤 사람 와 가지고 '한 시간 비가 왔으니까 여기 모두 황토수가 나오고 모두 지금' 그게 아니라. 한 시간 비가 왔는데 여게 그렇게 많이 비 안 왔어요. 여게 한 시간 그저 먼지 잘 만치 한 시간 동안 비 왔어요. 비 왔는데 저게 지금 냇물이 많은 것이 여기 비 온 게 아니라고. 저 위에 말이오. 저 위에 비가 와 가지고 물만 이리 내려 보냈어. 알겠어? 여게 온 비가 아니라. 그 말을 웃비라 해 웃비.

웃비. 저 고제면에 비가 와 가지고 그 물이 이리 내려왔어요. 주상면의 비가 아니고.

그 작년에 그래 더운데 여기 와서 우리는 선선하게 지나갔거든 이러니까 부산 와서 '부산은 어쨌느냐?' '아이구 부산은 더워서 죽을 뻔 했습니다.' 그래 우리는 시원했거든. 그런데 올해도 '부산은 덥고 우리만 지금 서늘한가?' 이래서 아침에 내가 전화를 해 봤어요. 전화를 해 가지고 '거기는 날씨가 어떻습니까?' '여게도 뭐 서늘합니다.' 이래요. '얼마나 서늘하나? 이라니까 여게도 지금 뭐 저녁으로는 추울 정도로 서늘합니다.' 이래. 그러니까 거게나 여게나 한목 도매금으로 지금 서늘하게 해 줬어요.

그런데 비만 이렇게 해 줬어요, 비만. 그 물이 없어서 목욕도 못 하면 어찌 됩니까? 큰일일 것 아닙니까? 그래 놓았는데 인제, 이거 자, 비가 많이 오면 그 천막쳐 놓은 거 다 절단이 날 모양이지 또 비가 안 오면 물이 없을 모양이지 그거 또 더워도 안 될 모양이지 추워도 안 될 모양이지 이러니까 이게 문제라서 거게 대해서 뭐 꼭 우리 마음대로 하면 고게는 비가 조금만 와서 그 천막은 상하지 안하도록 오고 또 물이 벌컥 붇도록 또 비는 와야 되고 이라면 어째야 되겠느냐? 그거 나는 그걸 생각도 못 했어 '저 웃비 오면 되지' 그거는 생각지 못했어요.

그거는 생각지 못하고 기도만 '하나님께서 어짜든지 천막은 상하지 안하고 비는 와서 물이 불어야 우리가 목욕하겠으니까 그래만 해 주십시오.' 이랬는데 와 보니까 웃비를 떡 내려 보냈다 말이오. 웃비가 왔어 그래, 어제 인제 면장하고 군수하고 이래 참 여게 방문하러 왔기 때문에 그래 내가 물었어. 그 날씨가 이렇츰 서늘한데 이거 연사가 어찌 됩니까 하니까 모두 잘 됐대요. 그런데 우리 때문에 날이 서늘해 가지고 아 농사 안 되면 안될 터인데 이거 하나님께서 아마 잘 되도록 해 주실 것이오 작년에 기적을 봤습니다 이 하나님이 이렇게 하시는 것인데 이거 봐도 모르고 예사로 들어요. 작년에 우리가 더워서 못 견딜 만 하면 덥다 하면 뭐 왔지요? 또 가랑비가 스르르르 와 가지고 오면 아, 시원하다 이라고 또 더울상바르면 또 가랑비가 오고. 그 가랑비가 가랑비가 몇 번을 왔는지, 몇 번이나 서늘하게 해 줬는지? 이래 가지고 집회를 잘 마쳤습니다.

그랬는데, 작년에 대구 집회 때에 나타난 육신의 병 나은 사람이 육백 몇 명이고 또 그뒤에 작년 여름에 여게 장생골 집회 때에 병나은 사람, 그때는 다 수집을 못 했어요. 몇 명이라 하더라? 책이 나왔어요. 고거는 삼백 원 해요. 또 그 뒤에 올해 대구 집회 때 또 한 그거는 그 페이지 수가 많아서 육백 몇 페이지가 돼 가지고 오백 원이라. 천 원 삼백 원. 오백 원, 거게 다 기록한 것을 말하면 한 아마 천여 명 되지 않나? 그 천여 명 된 그거 모두 사서 봐요. 그 책이 없으면 지금 뭐 빌려도 봐요. 왜 그러냐 하면 이 암병 뭐 자궁암병도 낫지 유암병도 낫지 뭐 장암병도 낫지 뭐 코병도 낫지 뭐 미치괭이 병도 낫지 오만 거 다 낫고 이러니까 그게 뭐이냐 하면 보이는 병이 낫는 것은 보이지 않는 병이 낫는다는 증거라 그말이오.

그라면, 자꾸 그거 박아 가지고 이렇게 내서 팔고 모두 사라 하니까 아이구 이 백 목사 집회 때에 그라니까 백 목사 자기 명예 올릴라고 권위 올릴라고 자꾸 이라는갑다 그런 소리하지 말아요. 나는 말이오. 눈에 눈물나는 거 이거 암만 기도해야 안 나아요. 그것도 안 나아요. 다른 사람들 무좀 다 나았는데 나는 무좀이 안 나아요. 무좀이 안 나아. 무좀이 안 낫는데 OOO목사님 그 자부가 그 뭘 갖다 주면서 이거 발라 보라고. 그거 두 번 바르고 나니까 싹 나아 버렸어.

그래, 그 과학으로 치료할 건 과학으로 치료하고 회개해서 치료할 건 회개해서 치료하고 하나님에게 간구해 치료할 것은 간구해 치료해야지 되나 안 되나 모두 다 하나님께 간구해 할라 하면 하나님이 심부름꾼 돼요. 그렇게 안 돼요.

요번에 무단이 이 팔이 아파 가지고 이거 이러니까 체육 선생 O장로한테, O장로가 아이 금방 팔 빠지면 그만 주 박으면 아무 일 없이 그만 낫고 이라는데 그거 내가 가니 괜찮습니다 해. 괜찮다 하는데 자꾸 더 해 그래 내가 이거 인제 말하기를 그래 말했어. 우리 교인들 다 알아요. 이 팔이 아픈 이거는 그만 거기서 내가 치료를 할라 해도 목사가 이거 병들어 가지고 장 치료하러 다니기가 이거 참 그 부끄러운 일이라 말이지. 이래서 이제 팔월 집회 가 가지고 주님이 낫아 안 주시면 내가 이거는 침쟁이한테 가서 침을 맞든지 어짜든지 내가 하겠습니다 그래 약속을 해 놓고 있어요. 이런데 요번에 안 나으면 내가 침쟁이한테 갈 거라.

그거는 왜 그러냐? 이거는 하나님이 '너는 그거 나한테 기도해서 낫는 게 아니고 그거는 네가 배고플 때 밥 먹으면 되는데 그거는 의사에 가 가지고 치료만 잠깐 하면 될 텐데 꼭 그거 나한테 낫아 달라고 나를 심부름꾼 모양으로 그래 하고 있느냐?' 이래서 그걸 몰라서, 목사 위신에 자꾸 그라기가 이거 좀 영광스러운 일이 안 돼서 내가 팔월 집회 가서 낫아 주시면 되고 안 낫아 주시면 내가 침을 맞으러 가겠습니다 요렇게 약속을 해 놓고 왔어요. 그래 내가 먼저 그런 거 한번 봤거든. 이 왼눈에 눈물이 자꾸 나서 이거는 뭐 그 눈썹이 뭐인지 어째 그런지 뭐 좔좔좔 흘러요. 계속 흘러요. 이 흐르는데 우리 집사님네 집에 가 가지고, OOO교회 집사요. 그 집사님 집에 가니까 그래 뭘로 요래 가지고 뭘 넣는데 뭘 이래 어째 한참 하더니만 뭐, '약이 목에 넘어갑니까?' 이래. 무슨 소리인지 나는 몰라서 '뭐이 넘어옵니다' 이랬더니만, 그거 뚫고 나니까 고만 눈물 한 방울도 안 나와. 또 그래서 이거는 그래 그만 한번 가서 그만 치료했지.

또 그거는 눈물 안 나는데 또 여게 눈물이 나와요. 오른눈에 눈물 나. 오른눈에 눈물 나는 이거는 '그만 그 치료하면 되는 갑다' 치료를 했어요. 한 번 해도 안 되고 그래 두번째, '해도 안 됩니다 새로 뚫으러 왔습니다.' 또 뚫어도 안 되고, 또 뚫어도 안 되고 이거는 무슨 눈인지 또 이상해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는 거는 꼭 요구가 있어요.

그래 내가 하나 생각하는 건. 좀 기도를 좀 해서 주님과 밀접한 교제가 되게 되면 그만 눈물이 뜰끔 그쳐지고 고만 주님과 멀어지면 이거 또 눈물이 좔좔 흐르고 뭐 세상일이나 생각하면 그만 눈물이 뭐 여지없이 줄줄 흘러. 그래서 이 눈은 아마 내 믿음을 지금 나타내고 있는 믿음의 무슨 메타인가 뭐인가보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요번에 어짜든지 여게 와 가지고 뭐 앉은뱅이든지 누운뱅이든지 문둥병이든지 암병이든지 전부 다 치료를 받고 가요. 치료를 받고 가는데 그렇게 기도했어.

우리 영병은 뭣이 영병이냐? 영병은 그 영이 자기의 심신을 통치하는데 절대 통치를 가져야 돼요. 영이 자기의 심신을 통치해서 영이 하라 하는 대로 그 심신이 죽어도 살아도 복종을 해야 영이 권위 있는 것인데 영이 암만 하라 하지만 제 마음이 하기 싫으면 안 합니다. 몸이 하기 싫으면 안 해. 그거는 영의 권위가 없어. 영의 주격 권위를 상실하고 있는 이 주격 권위를 길러서 가는 것이 요번에 영병 고치는 것입니다.

이제 이 집회를 지내고 나거든 중생된 영이 이 마음과 몸에게 죽는 곳이라도 가라 하면 가고 아무리 감옥이라도 가라 하면 가고 영이 시키는 대로 이 마음을 복종시킬 수 있는 그런 권위 있는 그 영이 돼야 되겠습니다. 그게 영병 고치는 것어오.

영의 권위를 강하게 하는 것이 영병을 고치는 것이고, 마음병 고치는 것은 이 마음이 영에게 복종하는 것 곧 성령에게 복종하는 것 진리에게 복종하는 마음이 돼서 성경대로의 마음 진리대로의 마음 영감대로의 마음 예수님의 대속의 이 대속대로의 마음 요 마음이 되어지는 것이 마음병이 고쳐지는 것이오.

그러니까, 영병이 제일 고치기 힘들고 그 다음에는 마음병 고치기가 둘째로 힘들고 그 다음에 고기덩어리병 고치기는 쉬워요. 힘들지 안해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네 죄를 사했다' 이라니까 모두 삐쭉거리며 '죄를 사했다? 죄 사했다 그말이야 말로 하면 누가 말 못 해 말로 떡을 하면 하루아침에 천하 사람이 먹고도 남은 떡을 할 수가 있다고 하는 건데 말로 누가 그거 못 해?' 이라니까 하도 예수님이 그걸 보고 '너 그라면 네 죄를 사했다는 말과 반신불수가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는 말 중에 어느 게 어렵겠느냐?' '그 반신불수 자리 들고 걸어가라 하는 것은 환하게 되고 안 되는 게 나타나니까 그게 더 어렵지 뭐? 죄 사했다는 그말이야 쉽지.' 그래 생각하고 있으니까 예수님이 '너희들에 내가 이른 말이 헛된 말이 아니고 권리가 있는 것을 보여 주리라' 하면서 앉은뱅이에게 자리 들고 걸어가라 하니까 걸어갔습니다.

이거 모양으로 이제 우리 영병이 제일 고치기 힘들어요. 그 영병. 이래서 영도 권위를 올려 줘야지. 영의 권위를 올려 줘야 되지. 부모의 권위는 누가 올려요? 자식이 올리고, 대통령 권위는 누가 올리요? 대통령 권위는 누가 떨어뜨리요? 국민이 떨어뜨려. 그런데 영의 권위는 누가 올리요? 심신이 올려야 돼요.

이러니까 영의 권위를 올려야 이거 영이, 영이 하나님하고 붙었는데 하나님의 모든 것을 지금 영이 우리에게 주는데 영의 권위를 올려야 이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중보자가 돼 가지고 그 모든 것을 많이 갖다 주는데, 영의 권위를 올려야 돼요. 그래서 영의 권위를 올려서 영을, 그 사람의 중생된 영이 온 인류 중에 예수님 빼놓고, 전인류 중에 그 사람의 중생된 영이 제일 권위가 있다고 하면 그 사람이 예수님 빼놓고 제일 영광 있는 사람이요 권위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이 순서가 있어요. 순서가 있어야 돼요. 그러니까 자, 이 세상에 모든 마음의 기능, 마음의 기능 몸의 기능이 있는데 이 기능 중에는 크게 말하면 몇 가지가 있다고 생각합니까? 크게 말해 봐요 O조사님 한번 말해 봐요. 마음의 기능이라 말은 마음의 실력이라 말이오. 마음의 실력과 몸의 실력. 이거 묘기하면서 훌쩍 뛰어서 똑 새 모양으로 날아다니는 그것도 권위 있지 않소? 또 지금 뭐 이제 88 뭐라 하는데 그럴 때 일등하는 세계 톱 하는 그런 것도 다 심신의 실력입니다.

마음과 몸의 실력이오. 기능이라 말은 마음의 실력 몸의 실력이라 말입니다.

마음의 실력 몸의 실력.

마음의 실력과 몸의 실력을 우리가 지금 마련해야 되는데 마음의 실력과 몸의 실력을 크게 말하면 몇 가지입니까?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요 마음의 실력과 몸의 실력을 한번 크게 말해 봐요. 몇 가지나 있는가 한번 말해 봐요.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요.

가만 있거라 보자. 저 어데 교인이야? 어? OOO교회 잘 배웠네. 또 저게는? 어데? OOO교회? OOO교회? 저기 손든 사람. 이 두 가지로 손든 사람.

OOO교회. 그거 모두 다 가르치기는 다 모두 배운 사람 보니까 가르치기는 잘 가르쳤는데 한자리에서 못 듣고 뒤퉁스러운 대답한다 말이오. 그 둘이야. 마음과 몸과 실력이 둘이라고 알아요, 둘 뭐이냐? 실력 가운데에 멸망할 실력이 있고 영원한 실력이 있어요. 실력 가운데는 멸망할 실력이 있고 영원한 실력이 있어요.

마음의 실력 몸의 실력이 있는데 그 종류를 몇 가지로 나눌 수 있느냐 하면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어. 멸망할 실력 영원한 실력 그러면 세계에 제일 일등 과학자가 된 그 실력은 마음의 실력이요 몸의 실력입니다 마음의 실력이요 몸의 실력. 세계에 일등되는 일등 의사 제일 기능이 훌륭한 제일 일등이 될 수 있는 의사의 기능. 자, 그 기능은 멸망할 기능입니까 영생하는 기능입니까? 그래요? 세계에 제일되는 과학자의 그 기능이 멸망의 기능이요 영생하는 기능이요? 어? 멸망할 수도 있고 영생할 수도 있다? 그래, 그말이 더 좋은 말인데 인제 그거 한번 뭐 따져봅시다.

자, 그러면, 세계에 일등되는 그 과학이나 의학이나 모든 그뭐 온갖 각 분야에서 아주 기능이 훌륭한 기능이 있는데 그 기능이 그 기능이 그것이, 뭐라 할꼬? 그 기능이, 인제 내가 물어 봐야 되겠어 그 기능이 영생하는 기능도 될 수가 있고 멸망하는 기능도 될 수가 있다 하는데 그라면 어짜면 영생할 수 있는 기능이 되는고? 예? 하나님과 연결이 되면? 하나님을 위해서? 예수 믿는 사람의 가진 기능이라야 한다? 육신의 생각으로 된 게 아니고 영의 생각으로 된 거라야 된다 그말이지? 네 그 말이 좋아요.

우리가 그렇습니다. 멸망할 기능 있고 영생하는 기능이 있는데 그 심사는 어떻게 하느냐 하면 그 기능이 하나님에게 피동을 하느냐 하나님 외에 다른 어떤 피조물에게 피동하느냐, 고것이 어데 속했으며 어데 피동하는가 하는 고것으로써 심사하면 압니다.

고것이 세계에 제일인데 고것이 하나님에게 속하지 안하고, 하나님에게 속한 거 다 냅두고. 하나님께 피동되지 안하고 고것이 다른 것에게 피동되면 고것은 아무리 좋은 기능이라도 멸망할 기능입니다. 어떤 기능이라도 하나님에게 피동되는 기능이면 하나님께 피동되는 기능이면 그거는 다 영생하는 기능인데 하나님께 피동되지 안하고 다른 것에게, 하나님 외에 딴 피조물들에게 피동하는 기능이면.

그것은 다 멸망할 기능이 되는 것입니다. 그 아주 답을 정답을 잘했습니다. 저 선생님이 '멸망할 기능도 될 수도 있고 영생하는 기능도 될 수도 있다' 하는 그 말을 대답 안 했더라면 잘못하면 실수하기 쉬웠구만. 그 잘 알아냈어요.

자. 이제는, 따라합시다.

심신의 기능은! 영원한 기능과! 멸망할 기능의! 두 가지다! 하나님에게! 피동되는! 기능은! 영생하는 기능이요! 하나님 제외하고! 어떤 피조물에게 피동될지라도! 그런 기능은 다 멸망의 기능이다!

그라면, 이제 이것은 말이지요. 결과를 말했지요. 그 기능이 어데 이용이 되는가 그거 말했지? 그 기능이 어데 이용당하느냐? 이용이 되는데 그 기능을 만들 때는 어찌 됩니까? 그 기능을 만들 때는 어찌 돼요? 기능을 만들 때는. 기능을 만들 때에 하나님에게 피동으로 만든 기능이 있고 또 피조물들에게 피동으로 만든 기능이 있고 그 만들어질 때부터 달리 만들어져요.

그런데, 하나님에게 피동되어서 만들어진 그 기능은 아예 그게 영생이 됐는데 그게 또 어떨게 지금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만들어진 것이 지금 어떻게 그것이 쓰여지느냐 피동되느냐 그 양면을 가지고 있어요.

만들어지는 그면이 있고 또 쓰여지는 그면이 있고 양면이 있어요. 이런데,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만들어진 것이라도 그것이 쓰여지기를 피조물들에게 피동되고 하나님에게 피동되지 안하면 그것이 소용이 없습니다. 또 하나님에게 피동으로 만들어지지 안한 것일지라도 고것이 쓰여지기를 하나님에게 피동으로 쓰여지면 그것이 영생하는 것으로 화해지고야 마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썩어질 것으로 심고 썩지 안할 것으로,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또 혈육의 것으로 심고 신령한 것으로 다시 산다 하는 그것은 만들어지기는 잘못 만들어졌는데 이제 마지막에 그것이 쓰여지기를 하나님에게 쓰여짐으로 말미암아 그것이 바로 되는 것을 가리켜서 그렇게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양면으로 조심을 해서 그것을 만들도록 그렇게 노력을 해야 되겠습니다. 육신의 생각 우리가 이제 배웠습니다. 육신의 생각 영의 생각.

우리 생각이 중요해요.

그러면, 우리가 들은 말씀, 처음부터 들은 말씀을 너희 안에 거하게 하라. 거하게 하는 거는 거하게 하는데 뭣으로 거하게 해요? 뭣으로 거하게 해요? 생각으로 거하게 해요. 이 생각이 중요해요. 생각으로 거하게 해요. 또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영의 인도하심을 받는 영으로 사는 것은 또 뭣이 영으로 사는 데에 그 일을 해요? 이것도 생각이 해요.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생각은 이것은 중요한 역할하고 있는데 이제 말씀을 생각하는 그것이 또 행동하는 것이, 말씀을 생각해 가지고 거게서 나오는 행동대로 괴동되는 그것이 양심대로 사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 마음이 이렇츰 중요하고 우리 몸도 중요하고, 이러니까 이 신앙생활은, 신앙생활은 가끔 가다 일 년에 한 번씩이나 두 번씩이나 해야 돼요 날마다 해야 돼요? 하루 몇 번씩이나 해야 돼요? 몇 번씩요? 계속. 계속해야 돼요.  계속. 계속하지 않으면 안 돼요.

이래서 어떤 사람이 신앙생활 말하기를 자전차 걸음이라. 자전차는 두 발통으로 걸어가는 건데 이거는 세게만 달리면 힘이 있어요. 그러나 그것이 고만 중지만 하면 넘어가 버려요. 가만 있으면 안 밀어도 넘어가요. 세게 달릴 때에는 발길로 차도 안 넘어갑니다.

우리 그전에 클 때 그걸 참 위험한 일을 한 건데, 자전차 타고 저게 높은 데서 내리막을 세게 내려갈 때에 옆에서 한번 차 보기로 하고 한번 발길로 탁 차도 끄떡도 안해. 끄떡 그라고 그만 그대로 달아나 버립니다. 발길로 차도 안 넘어간다 말이오. 세게 달릴 때는. 그러나 그만 섰으면 그만 넘어가 버려. 이 모양으로 신앙 걸음이라는 건 자꾸 힘을 쓰면 자꾸 힘이 생겨지고 그만 안 쓰면 중단하면 그만 넘어가 버려 9절 한번 보십시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속에 하나님의 영이 안 계시는 사람 있습니까? 중생된 사람은 다 속에 계시지요.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이 그 속에 안 계시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이 아니오 중생되지 안한 사람은 예수 믿는 사람 아닙니다. 중생된 후로 예수 믿는 사람이지 중생되지 안한 사람은 예수 믿는 사람이 아니라 그말입니다.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계시면' 이 말은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시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시는 사람입니까? 이 사람은 중생된 사람을 가리켜 말합니다. 중생된 사람.

중생된 사람은 그리스도가 그 사람 안에 계십니다 그 사람 안에 제사장 선지자 왕의 이 사람으로 성화시키기 위해 가지고 중생시키고 성령이 그 안에 계십니다.

'너희 안에 거하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몸은' 이 육체, '육체는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그러면 중생된 사람의. 이 육을 말한 것은 심신을 말한 것인데 여게 몸이라고 말했으니까 요 몸이라고 말 했으니 마음은 들어가지 안하고 요거 고기덩어리뿐 아닌가 요렇게 생각하는데 심신을 합해서 하나로 육을 말한 것입니다. 몸을 말한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그리스도께서 안에 계셔 중생된 사람은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몸은 죄로 인해서 죽어 있습니다. 몸은 죄로 인해. 그러면 중생된 사람의 몸은 죽어 있습니까 살아 있습니까? 요것을 구별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게 OO 노회서 시비가 나고 그렇게 그런 잘못된 결의를 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너희 안에 계시면' 하는 것은 이거 뭘 말하는 겁니까? 요것도 똑똑히 확고하게 잡아요. '너희 안에 계시면' 하는 말은 뭐 어떤 사람을 말합니까? 중생된 사람이라 말이오. 중생된 사람. 그러면 중생된 사람인데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그러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니까 중생된 사람의 몸은 죽어 있습니까 살아 있습니까? 죽어 있다 말이오. 중생돼도 몸은 죽어 있다 하는 요걸 똑똑히 구별해요. 그러면 중생했으면 몸과 뭐 마음이 다 중생된 줄로 이래 아는데 그런 게 아니라 그말이오. 요걸 똑똑히 구별해요.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 그러면 영은 이 무슨 영입니까? 영은 성령이요 사람의 영이요? 사람의 영입니다.

사람의 영은 '의를 인해서 산 것이니라' 우리가 중생돼서 영생하는 생명으로 중생됐는데 영생하는 생명으로 중생된 것은 영의 중생입니까 심신의 중생입니까? 요걸 구별해야 됩니다. 요 구별이 아직까지 확고하게 나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중생된 것은 영만 중생했지 몸은 중생하지 안했다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영은 하나님의 대속의 의를 다 입어서 살았지만 우리의 몸은 죄를 그대로 가지고 죽어 있다 그말입니다. 중생된 사람의 그 심신도 죄로 인해서 죽어 있고 죄 아래 있고 영만 살아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거듭난 것은 영이라 이랬어.

영으로 난 것은 영이라 이랬어 그러기 때문에, 중생된 사람이 범죄하지 않는다 하면 그 말이 맞습니까 안 맞습니까? 자, 중생된 사람은 범죄하지 않는다 하는 그말이 맞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든 분들 수치를 당했구만.

다 안드는데 자 기네들만 드네.

중생된 사람도 죄를 짓습니다. 중생된 사람들도 죄를 짓습니다. 중생된 사람이 죄를 지으면 누가 짓습니까? 심신이 짓습니다. 심신이 짓습니다.

그라면, 안 믿는 사람들이 범죄하는 것은 영이 범죄합니다 심신이 범죄 합니까? 안 믿는 사람들 범죄는 심신이 범죄합니까 영이 범죄합니까? 심신이 범죄한다는 말이 맞습니다. 그러면 영은 어짜고? 영은 죽었기 때문에 기능적으로는 아무 작용을 못 합니다.

그러면, 영이 죽었으니까 기능적으로 작용 못 한다고 하는데 그러면 죽은 영은. 산 영은 하나님에게 피동되고 하나님만 나타내고 하나님의 그 모형으로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라는 것을 잘 나타내는 제일 능숙한 것이 그 영인데 산 영은 나타내지만 죽은 영은 하나님 나타내지 못하고 그라면 마귀 나타냅니까 뭘 나타냅니까? 저 OOO전 조사님 한번 말해봐. 죽은 사람의 영은 뭣하고 있는지? 죽은 사람의 영은 뭣하고 있어요? 안 믿는 사람들의 그 범죄는 영이 하는 게 아니고 심신의 몸이 범죄합니다. 영은 뭣하고? 영은 단번에 죽어 있기 때문에 기능적으로는 완전히 죽어서 기능의 작용은 전혀 없습니다. 에베소 2장에 죄와 허물로 죽었다 하는 그말은 영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영은 기능 작용이 전혀 없습니다.

영에 대해서 아직까지 너무 좀 어둡기 때문에, 안 믿는 사람들에게 도덕을 말하는 그 도덕은 그것이 뭐이냐? 하나님의 형상이 다 죽지 안하고 좀 남아 있기 때문에 안 믿는 사람들이 도덕을 말하는 그것은 하나님의 형상이 죽지 아니하고 남아 있는 그 부스러기가 지금 하는 행동이 그것이 안 믿는 사람들의 도덕이라 이라는 그런 신학설이 있습니다. 그거 다 거짓부리입니다.

안 믿는 사람들의 영은 죽어서 기능으로는 전혀 작용을 못하고 있습니다. 또 중생된 사람의 영은 그 영은 살았지만 육이 아직까지 죽어 있기 때문에 육이 중생된 영에게 순종을 해야 그것이 산 행위 하지 순종 안 하면 산 행위를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영의 중생에 대해서 간단하게 증거하고 지나가겠습니다. 영이 범죄해서 죽은 것은 이것은 여러분들이 가만히 듣고 가 가지고 생각하고 이래 기도로, 똑똑히 모르면 숙제를 삼아 놓고 하나님이 가르쳐 주시도록을 기다려서, 하나님이 가르쳐 주시는 시기는 언제인고 하니 자신이 성화가 되는 그 시기입니다. 성화가 되어서 그 영에 대한 지식을 가질 수 있도록 성화가 되면 돼지는데 성화가 안 되면 헛일인 것입니다.

영은, 아침에 내가 말했는데. 영은 하나님의 그 형상만 나타내는 모형 역사를 하는 것이 사람의 영입니다. 영인데 그 영은 자기의 심신에게만 그 권위를 가지고 역사할 수 있지 자기 심신 외에는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내지를 못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자기 심신에게 나타내면 그 심신은 어데다가 나타냅니까? 심신은 어데다가 나타내요? 심신은 모든 만사물에게 나타냅니다.

나타내는데, 이 영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그 영이 범죄함으로 죽었다 그말은 영이 범죄한 것이 아니고 영이 소유하고 있는 심신이 범죄했기 때문에 영이 번죄한 그 정죄를 받아 가지고 주격 책임에서 정죄받아 가지고 그 영이 죽은 것입니다.

영이라는 것은 악령이 쓰지를 못 합니다. 영은 악령이 쓰지를 못합니다. 이것을 지금 나오지 안한 말인데 영은 악령이 쓰지를 못합니다. 영은 불신자의 영도 죄를 지을 수 없는 존재입니다. 안 믿는 사람들의 영도 '죄로 죽었다' 하니까, 성경에 죄로 죽었다 하니 이거 죄 짓지 안하느냐? 그거 죄로 죽었다 하는 것이 영이 죄지은 게 아니고 영이 가진 심신이 선악과 따먹어서 죄를 지어서 그래 그 영이 주격 위치에서 정죄받아 가지고 죽은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영은 그것은 자기의 전무가 있으니 자기는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내는 그것만 하지 그 외에 것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것이 영이요. 다른 일은 하지 못해요, 그것만 하지. 또 그 영은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내는데 어데다 대고 나타내느냐? 자기 마음에다 대고 나타내고 자기 몸에 대고 나타내지 딴 데는 아무 데도 나타내는 걸 딴 데는 나타내지를 못해요.

또 하나님 형상대로 지은 영은 하나님만이 이용하시지 다른 것은 아무도 이용을 못 합니다. 마귀도 이용 못 하고 죄도 이용 못 하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영은 다른 것은 이용을 하지를 못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불택자의 영은 그것은 다시는 아무것에게도 이용을 당할 수 없는 존재로 기능으로서 완전히 죽어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안 믿는 사람은 죽은 영과 아직까지 정죄받은 사형을 받은 이 심신과 둘이 합해 가지고 영육의 사람이 되어졌고 또 꼭 같이 그런 사람인데 믿는 사람은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 이 영이 돼서 중생된 영하고 아직까지 죄에서 살아나지 못한 그 육하고 둘이 합해 가지고 사람이 된 것이 기독자들인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은 것이 사람의 영이라고 사람들이 해석해서 그 면 좀 잘 알았는데 이제 불신자들에게도 선량한 거 옳은 거 바른 거 그런 것이 불신자 속에도 있다, 불신자 속에도 있는데 그것은 영이 다 죽지 안하고 조그매 살아 남아 있어서 영에 죽지 안하고 남은 부분의 행동 그것이 불신자들의 모든 도덕이나 정의나 그런 것들이다 이렇게 말하는데 요것은 성경적이 아니고 요건 틀렸기 때문에 틀렸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고 요것은 정죄를 해야 됩니다.

틀렸습니다.

그러면 그 불신자에게 도덕이 있는 것은 그것을 뭘로 생각하느냐? 불신자들에게 도덕이 있어서 삼강오륜이 있고 또 인의예지신이 있고 또 이거 여러가지 모든 옳은 것들이 많이 있는데 그 옳은 것은 그라면 그것은 뭐이라고 생각합니까? 이제, 이원론을 말하는 사람이 하나님은 선의 원인이고 또 이 마귀는 악의 원인이라.

마귀는 악의 원인자요 하나님은 의의 원인자라 그렇게 해 가지고 이원론을 주장해 가지고 신학박사 학위를 딴 사람도 있습니다. 그거 다 모르기 때문에 다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런데 불신자들에게 있는 모든 도덕이니 하는 그런 것은 그 도덕이 하나님에게 속한 것입니까 세상에 속한 것입니까?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나온 것입니까 세상으로 말미암아 나온 것입니까? 그것의 주인공은 누구입니까? 그것의 주인공은 누구지요? 그것의 주인공은 공중의 권세 잡은 영이 사람들의 마음을 주관하고 있다고 하는 그 영의 모든 운동들입니다. 요것을 똑똑히 구별해요. 아주 깊은 걸 지금 모두 말하고 있는데 거게까지 우리가 구별을 해야 됩니다. 거게까지 구별을 해야 돼요.

이러니까, 그러면 오계명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라면 허락한 땅에서 오래 살리라 이렇게 말했는데 어떻습니까? 오계명 말한 것 말이오 오계명에 말한 것과 유교에서 삼강오륜에서 말하는 그 효와 그 효가 같은 것입니까 다른 것입니까? 전혀 다릅니다. 이것을 구별해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세상의 도덕은 공중의 권세 잡은 자의 그자에게서 나온 그자의 도덕이요 또 기독교에 나온 그 모든 도덕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나온 도덕입니다.

이래서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의 생각, 육신의 생각인데 삼강오륜은 육신의 생각입니까 이것이 영의 생각입니까? 삼강오륜이라는 이 모든 유교에나 모든 이종교에 이런 도덕을 많이 말했는데 이종교에 각 도덕을 말한 모든 도덕을 말하는 것은 이것은 육신의 생각입니까 영의 생각입니까? 지금은 이래 물으니까 여러분들이 육신의 생각이라고 말하지만 이것에 대해서 이거 논리를 말할 때에 이것이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라고 이렇게 정의를 내리는 그런 교파들이 심히 적고 그런 신학자들이 심히 적습니다. 이 세상 모든 도덕은 다 육신의 생각 속에 들어 있다는 것을 그것을 여러분들이 확정을 지워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이 말하는 윤리나 도덕과 세상이 말하는 윤리나 도덕이 이것이 전혀 근본부터 판이한 것을 우리는 확실히 알고 확정을 지워야 합니다.

이런데 그러면 영이 범죄한 것은 왜 범죄했느냐? 영 자체가 범죄한 것이 아니고,

자, 한번 부릅시다.

눈을 들어 산을 보니 도움 어디서 오나 천지 지은 주 여호와 나를 도와 주시네 너의 발이 떨리잖고 주가 깨어 지키네 이스라엘 지키신 이 졸며 쉬지 않도다

육신이 선악과 먹어 범죄한 것을 영이 주격 책임에서, 동회 서기가 범죄했는데 그 서기가 범죄 했지만 사기는 서기가 해 먹고 책임은 동장에게 다 갑니다.

동장이 그걸 배상을 해야 돼요. 꼭 이와 마찬가지라. 영이 주인이기 때문에 그 심신이 선악과 따먹은 그 범죄를 영이 책임져야 되기 때문에 범죄에서 다 사람이 죽었던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영이 중생할 때에는 어떻게 중생했는고 하니 영이 중생할 때에는 중생은 생명입니다. 영생하는 생명입니다. 생명만 못한 그것이 있으니 생명만치 못 깨끗한 거 있으니까 이것이 뭐이냐 하면 의입니다 의 하나님의 율법을 완수한 의.

그것보다는 이제 또 무죄, 무죄보다는 유죄, 유죄보다는 다죄, 죄가 많은 것보다 죄 적은 것이 깨끗합니다. 죄 적은 것보다 죄 없는 것이 깨끗합니다 죄 없는 것보다 의로운 것이 깨끗합니다. 의로운 것보다 더 깨끗한 게 뭐입니까? 생명입니다. 의로운 것보다 더 깨끗한 것이 생명입니다. 생명은 뭐이 생명이냐? 하나님과 자체가 완전 결합된 것이 그것이 생명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의보다 깨끗한 것이 생명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중생한 것은 생명을 우리가 얻어 가지고 생명을 가진 것이 중생이기 때문에 우리는 생명을 가지기 전에 뭣을 가져야 됩니까? 생명을 가지기 전에 뭘 가져야 됩니까? 의를 가져야 됩니다. 의를 가지기 전에는 뭘 가져야 됩니까? 무죄를 가져야 됩니다. 이러니까 무죄의 순서가 돼야 되고 그 다음에는 의로운 순서를 가지게 되고 그라고 난 다음에 이제 하나님과 화친된 연결의 생명을 가졌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영이 영원한 생명을 가질라고 하면 무슨 문제가 해결이 돼야 됩니까? 몇 가지 해결돼야 됩니까? 몇 가지? 네, 두 가지. 두 가지 문제 해결.

뭐이냐 하면 죄가 없어야 되겠고 의로워야 되겠고 요 두 가지가 돼야 이제 영생하는 새생명을 받아 가질 수가 있다 그말이오 그러면 우리 영은 주격인데 그 심신이 범죄하는 그 범죄, 그 심신이 중생될 때에 죽을 때에 중생되는 것이 아니고 살아 남아 있는 그 시간이 많이 있을 때에 중생되기 때문에 그 중생된 영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심신의 범죄를 다 없애야, 무죄를 만들어야 되고 의롭게 만들어야 되기 때문에 그 죄를 어떻게 하느냐? 그것은, 중생되기 전에 그 영의 소유하고 있는 심신이 범죄할 그 죄, 과거에 지은 모든 죄, 현재에 짓고 있는 죄, 미래에 죽을 때까지 지을 모든 죄 그 모든 죄를 다 그 영에게 다 부담을 시켜서 그 영이 정죄 받습니다. 영에게 정죄를 해서 그 영에게 다 죄를 부담을 시킵니다.

부담시키니까 영이 중생되기 전에 자기가 가진 심신이 범죄할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를 그 영이 똘똘 묶어서 다 짊어진 정죄를 받았습니다. 정죄를 받았는데, 정죄받은 그것이 짓기도 전에 어찌 그 죄를 받을 수 있느냐? '짓기도 전에 그 정죄를 어떻게 받을 수가 있느냐?' 그렇게 질문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짓기도 전에 정죄받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의 전지자이시기 때문에 그가 앞으로 죽는 날까지 어떤 죄 지을 것을 하나님은 다 아시기 때문에 그 죄를 끌어다가서 영을 중생시키기 전에 먼저 정죄부터, 죄를 끌어다가 '네가 네 가진 심신이 이런 죄를 지을 것이니' 하니까 그 죄를 끌어다가 그 죽은 영에게 정죄를 할 수 있습니다. 정죄를.

이것은 어떻게 나기도 전에 할 수 있느냐? 그것은 하나님이 전지자이시기 때문에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죄를 예수님이 대형 대행하셨는데 우리가 나기도 전에 벌써 예수님이 지금 근 이천 년 전에 예수님이 내 죄를 다 끌어다가 다 정죄받아 가지고 대형을 하신 것입니다. 그거는 전지자로서는 가능합니다 전지자로는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정죄받아 가지고, 정죄받은 이 정죄를 받아 가지고 그 다음에 예수님의 대형으로 사죄를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대형으로 사죄를 받았으니까 이제 예수님의 대형으로 사죄 받았으니까? 영이 자기가 가진 심신이 과거 현재 미래로 범죄할 그 모든 죄를 단번에 다 걸머지고 예수님의 대형의 공로를 입어서 사죄를 받았습니다.

사죄를 받고 또 그 심신이 앞으로 하나님의 계약의 말씀을 이행해야 되고 과거도 이행해야 되고 미래도 이행해야 되는 그 이행 못한 걸 과거 현재 미래 그 모든 영원에 이 행 할 그 이행을 예수님이 대신해서 이행하신 그 이행을 이 영에게 단번에, 이행한 이 대행의 의를 중생되지 않은 죽어 있는 영에게 거기다가 입혀 가지고, 그러면, 중생된 영은 중생되기 전에 자체의 심신이 범죄하는 그 죄를 다 끌어다가 정죄받고, 정죄받아 가지고 예수님의 대속으로 사죄를 입었고 사죄 입고 난 다음에 자기는 앞으로 행하지 안했지만 예수님이 대신 행하심 대행의 이 의를 입어서 칭의를 입었고, 이러니까 중생된 영이 중생되기 전에 정죄받았고 그 다음에 사죄받았고 그 다음에 칭의받았고, 이러니까 이 서이 받았으니까, 받고, 그 다음에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대화친의 이 화친을 받아 가지고 그래 가지고 우리의 영이 중생을 한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영이 중생될 때에는 무슨 순서가 일호 순서입니까? 중생될 때에는 일호 순서가 뭐이지요? 정죄. 이호 순서가? 사죄. 삼호 순서가? 칭의. 또 사호 순서가? 화친. 이래 가지고 우리에게 이제 예수님이 대속의 공로와 영감과 진리 이 세 가지로 우리가 영생하는 생명으로 살아났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러면 중생하고 난 다음에 그 사람이 범죄하는 그 죄는, 그 사람이 중생되고 난 다음에 죄를 범했으니까 그 죄는 어떻게 되느냐? '번연히 네가 중생하고 난 다음에 죄를 범하지 안했느냐?' 중생한 사람이 죄를 범합니다.

중생한 사람이 죄를 범하는데 죄를 범한 이 죄는 그 죄는 영이 책임져야 됩니까 안 져야 됩니까? 주격으로 책임져야 되지요. 책임지면 그 중생된 영이 죽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죽어야 되지요. 어떻습니까? 중생되기 전에 그 영이 다 정죄받아서 책임지고 정죄받았고, 정죄 받아서 예수님의 공로로 사죄받았고, 또 예수님의 공로로 칭의를 받았고, 예수님의 공로로 화친의 이 생명을 받았기 때문에 그라고 나서 이제 중생된 것입니다.

중생을, 하나님이 중생이라 하는 이 중생의 생명이라는 것을 무슨 물건 갖다 주듯이 이래 딱 갖다 주는 게 아니고 이 중생한 생명이라 하는 이 생명은 완전자와 결합되는 것이라 말이오. 완전자와 결합이기 때문에 이게 안 되면 완전자와 결합이 안 돼요. 조작배기로 결합할라 해도 결합이 안 돼요. 이 결합이 됐기 때문에, 그러면 '중생한 네가 죄를 짓는데 그 죄는 어떻게 할 거냐?' 그 죄는 다 예수님이 대속으로 담당했는데 '그라면 그 죄를 영이 지금 담당해야 될 것 아니가?' '영이 담당했다.' 그러면 중생된 사람이 범죄하는 것은 그 범죄하는 그 죄는 중생된 영이 담당하는데 언제 담당했어요? 저 안경쟁이. 자기 대답해 봐요. 졸았지? 뭐 집사님이요 목사님이요? 집사? 잘 들어야 돼. 잘 들어야 좋은 집사 되지 이렇게 지침 모두 중생된 영이 범죄 안 한다 한다고 시비가 나서, 중생된 영이 주격 책임이라 하니까 제가 중생됐지만 중생되고 난 다음에 그 자기 심신이 범죄하는 그 죄는 영이 주격이니까 영이 책임져야 될 것 아니가?' 이렇게 말하는데 책임져야 되는데 책임을 져야 돼요 안 져야 돼요? 저 안경 쓴 저 집사님 안 져야 돼. 져야 돼. '안 져야 돼?' 하니까 '져야 됩니다' 그래 져야 돼, 져야 되는데 중생한 후에  책임을 져야 되는가 안 져야 되는가? 중생한 후에 책임을 져야 되는가 안 져야 되는가? 어? 모르면 모른다 해 모릅니다 이래야지.

그래 솔직하고 마귀가 나가지. 모르는 게 아는 척 해 가지고 버무리면 안 돼.

몰라. 몰라 산 새가 죽은 사자보다 더 나아. 잠 자면 죽은 거라 못 들었으면 못 들었습니다 이떻게 뭐, 잠 달아났어, 인제? 잠이 달아났어? 그래, 중생된 후에 그 심신이 범죄하는 것은 그것은 중생된 영에게 상관이 없어요.

왜 상관이 없습니까? 책임을 안 져서 상관이 없습니까 중생되기 전에 벌써 책임지고 정죄받아 가지고 그래 예수님의 대형을 받아서 지내오고 난 다음에 중생됐기 때문에 이미 한번 지면 되지 두 번 지는 게 없어.

자기의 심신이 범죄한 것을 한 번 지면 되는데 그 한 번 지는 것은 중생 후에 져야 돼요 중생되기 전에 졌어요? 되기 전에 이것을 자기가 책임져 가지고 정죄받아 가지고 사죄받지 안하면 중생을 못 해요.

이러니까 자, 중생된 명이 중생한 후에 범죄하는 그 죄는 언제 책임졌습니까? 중생되기 전에 책임졌어요. 그러기 때문에 중생된 후에 범죄하는 것은 전에 한번 져 가지고 사죄받고 벌써 다 해결했기 때문에 중생된 영에게는 상관이 없다 그말이오.

그런 다시 정죄할 그런 법이 없어. 요걸 여러분들이 요 순서를 똑똑히 알고 나가서 증거를 하라 그말이오. 그라면 거게 대해서 미혹들이 다 끝나질 것입니다 그런데 요 12절에, 한번 찾아 보십시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육신의 문제가 많이 있지만 지금 우리가 그거 육신의 문제 그런 거 다 지내왔다 그말이오. 그래 거게 매여 살아서는 안 돼요.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 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음으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요걸 똑똑히, 요걸. 성령이 우리 영으로 더불어 역사하지 성령이 우리에게 직접 역사하지 않습니다. 또 우리 중생된 영의 역사는, 중생된 영의 역사가 곧 무슨 역사냐? 영의 역사가 곧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우리 마음에 신앙 양심을 써서 하나님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그 마음이 신앙 양심인데 그 마음을 가지면 즉시 중생된 영과 결합이 됩니다.

중생된 영과 결합이 되면 즉시 성령과 결합이 됩니다 성령과 결합이 되면 생명과 결합이 됩니다 생명과 결합이 된다 말이 무슨 말이오? 하나님과 완전 결합이 된다 그거요.

요거 지금 내가. 조금만 있어요. 다 순서로 말하지는 못하겠고. 그러면 18절을 보십시오. 18절에 18절 로마인서 8장 18절.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그 현재 고난, 현재 이 고난당하는 것이 예수님 때문에 고난당해요. 예수님 때문에 고난당해요.

예수님 때문에 고난당하다니? 세상하고 한덩어리면 세상화 우리와 마찰이 돼요 안 돼요? 세. 상하고 한덩어리되면 마찰이 안 돼요. 세상하고 나하고 한덩어리면 마찰이 안 돼요. 세상하고 마찰되는 것은 세상과 이질적이기 때문에 마찰이 됩니다.

세상이 나를 미워하고 해하는 것은 저거하고 동질이 아니기 때문에 마찰이 돼요.

동질이 아니기 때문에 마찰이 됩니다. 지금 세상하고 동질이 아니고, 질이 같다 그말이오. 동질은 저거인데. 세상하고 이질적이요 세상하고 질이 다르기 때문에 마찰이 돼.

세상과 질이 다르기 때문에 마찰이 되는데, 그러면 세상과 질이 다르니까 마찰되는데 세상과 질이 다르니까 세상에서 핍박당하지. 세상과 질이 다르니까 핍박당하는 그 질이 다른 것은 누구하고 질이 하나가 돼 가지고 있습니까? 하나님과 동질이 돼 가지고 있어요.

지금 세상에서 핍박당하는 것은 세상과 이질이기 때문에 핍박을 당하는 것이요 하나님과 동질이기 때문에 핍박을 당합니다. 세상에서 우리가 핍박당하는 것은 무엇 때문에 핍박당합니까? 세상이 왜 싫어합니까? 저거와 이질이기 때문에 핍박합니다.

다를 이(異)자. 저거와 다르기 때문에 핍박합니다. 저거와 다르기 때문에 핍박하는 것은 하나님과 같기 때문에 그들이 핍박한다 말이오 하나님과 동질이기 때문에 핍박해요.

하나님과 동질이기 때문에 핍박하니까 지금 하나님과 동질이기 때문에 세상에서 핍박당하는 그것과 하나님의 동질이기 때문에 하늘나라에 가 가지고 영광과 그 칭찬과 존귀받는 것은 비교할 수가 없다 그말이오.

그러면 자, 우리가 세상에서 핍박당하면, 핍박당하면 그거 좋은 일입니까 나쁜 일입니까? 뭐 좋은 일이라, 세상에서 핍박당하는데? 뭐이 좋은 일? 하나님과 동질이기 때문에 그들이 핍박하니까 하나님과 동질이니까 좋지요.

그러면 세상에서 핍박당하는 것은 하나님과 동질이라고 그들이 핍박하는 것이니까 지금은 하나님과 동질이고 저거와 동질이 아니라고 핍박을 당하지만 이다음에 가면 하나님과 동질된 것이 얼마나 영광이 되겠습니까? 그러면 세상에서 이 핍박을 당할 때에, 핍박을 당할 때 당장에 핍박 안 당한 수 있는 길이 있어요 없어요? 예? 세상에서 핍박을 당할 때에 그 핍박을 당장에 면할 수 있는 길이 있어요 없어요? 어떻게 하면 돼요? 어떻게 하면 돼도? 세상하고 동질되면 그만 핍박 안 해요. 요한복음 15장에 똑똑히 말씀해 놨습니다.

그러니까 자, 세상이 우리, 세상 저거와 다르다고 욕하고 핍박하면 그게 참 기쁜 소리요 섭섭한 소리요? 그게 섭섭한 소리가 아니고 기쁜 소리라 기쁜 소리. 그걸 여게 말해요.

그러면 세상에서 핍박이 오는데 핍박 오는 데에 핍박받지 안할라 해 가지고 그 세상하고 그만 하나가 돼서 동질이 돼 버리고 세상하고 타협해서 동질이 되면 핍박은 없습니다 핍박은 없어졌지만 하늘나라 가면 뭐이 없어졌어요? 하늘나라 가서 동질이 없어졌지. 그러니까 우리가 요런 걸 똑똑히 알고 살아야 됩니다.

그런데 여게 하나 또 들을 말 있어요. 19절에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이 피조물이라 하면, 피조물이라 하면 김일성이도 들어갔소 안 들어갔어요? 바다도 산도 물도 다 들어갔어요. 나 들어가는데 이 피조물이 고대하는 것은 피조물이 뭘 고대하느냐?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그러면 이 피조물이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이 허무한 것은 뭣을 가리켜서 허무하다고 말합니까? 이 허무한 것은 뭣을? 허무하다 말은 비었다 말이오.

거짓부리라 말이오. 안 그렇습니까? 이러니까 허무한 것은 뭐이 허무한 것이지요? 허무한 건 뭐이 허무한 것인고? 허무한 것은 악령 악성 악습 그게 아주 거짓말쟁이요 아무것도 아닌 거짓부리라. 허무한 것입니다.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이 피조물들이, 피조물들이 마귀가 사용해도 마귀에게 사용당하고 마귀의 사람들이 사용해도 사용을 당하고 이 악령 악성 악습에게 피동되는 그것은 이 피조물들이 자기의 본의가 아니고 거게 굴복하라고 하기 때문에 굴복을 하는 것입니다.

악령은 뭐입니까? 악령은 뭐이 악령입니까? 악령은 타락한 천사, 또 악성은 뭐입니까? 타락한 인간, 그런데 악성을 가리켜서 다른 말로 말하면 신학적 말로 말하면 악성을 뭐라고 말합니까? 원죄, 악성은 원죄입니다. 또 악성이 들어서 자꾸 이래 하나님을 어겨서 한 행동 두 행동해서 주 모아 놓은 그것이 습성인데 그게 악습인데 악습을 다른 말로 말하면 무슨 말입니까? 본죄라 이랍니다. 본죄.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한 데서' 썩어짐의 종노릇하는 것은 어떤 자에게 종노릇하는 것을 썩은 자에게 종노릇한다 합니까? 악령 악성 악습대로 사는 그 인간들에게 복종하는 것은 다 썩어진 데 종노릇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만물이 탄식해요. 만물이 탄식해.

김일성이 그 몸뚱이와 김일성이 그 마음이 김일성 지금 무신론 주장하는 데에서 자기에게 복종하는 것은 그 김일성이의 심신이 그걸 원하고 있어요 원치 안하고 있어요? 원치 안하고 있어요. 원치 안하고 있어. 그런데 하나님이 거기 복종하라 하니까 꼼짝 못하고 복종하고 있는 것이지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라, 그러면 하나님의 아들의 자유가 뭐입니까? 하나님의 아들의 자유가 어떻게 하는 게 하나님의 아들의 자유입니까? 하나님의 아들이 뭘로 살아났지요? 하나님의 아들이 뭘로 살아났어요? 피와 성령과 진리로 살아났어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아들의 이 자유하는 소원은 뭐이 소원이야? 하나님의 아들들의 자유는 소원 성취하는 것이 자유지. 하나님의 아들들이 소원하는 것은 뭘 소원해요? 피로 살고 성령으로 살고 진리로 사는 것을 소원합니다. '자유함에 이르는 것이라' 그러니까 모든 만물들이 소원하기를 뭣을 소원했어요? 자 이제, 이거 참 좋은 말인데, 길어도 한번 따라해 봅시다.

자 따라합시다.

피조물도!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한 데서! (썩어짐의 종노릇한데서) 해방되어!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그러면 피조물의 소원이 뭐입니까? 피조물의 소원이 뭐이요? 피조물의 소원은 하나님의 아들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을 소원하고 있습니다. 이 피조물들이 소원하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의 자유 생활하는 데에 거기에 지금 소속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요것을 똑똑히 여게서 익혀요. 좀 말은 몇 마디 길지만 똑똑히 알면 알 수 있어요.

천상천하의 모든 피조물, 하늘에 있는 천군 천사는 타락하지 안했어요? 하늘에 있는 천군 천사나 영물들이나 이 우주 안에 있는 것이나 모든 피조물들이 소원하는 그 소원은 무엇이 소원이냐? 소원하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들 영광스럽고 자유하는, 영광의 자유라 그말은 하나님의 아들들의 자유는 영광의 자유라. 하나님의 아들들의 자유는 영광스러운 자유라.

하나님의 아들들의 자유는 영광스러운 자유인데 하나님의 아들들의 자유는 무슨 자유이기 때문에 그 자유가 그렇게 제맘대로 하는 자유가 영광스러운 자유일까? 하나님의 아들들의 자유는 무슨 자유요? 무슨 자유? 자유는 소원대로 하는 거, 하나님의 아들들의 소원 성취하는 자유는 무슨 자유입니까? 하나님의 아들들의 자유는 무슨 자유인데 그 자유가 영광 있는 자유인지? 하나님의 아들들이 자유는 무슨 자유인데 영광 있는 자유인지? 한번 말해 봐요 하나님의 아들들의 자유 행동은 영광스러운 자유 행동인데 하나님의 아들들의 자유는 무슨 자유기 때문에 그 엉광 있을까? 세상 사람들이 자유하는 건 다 욕 얻어먹는 건데. 사람들이 다 자유하는 건 다 욕하지 안해요? '제 맘대로 하는 놈' 제맘대로 하는 놈보다 너 밉상스러운 놈은 없어. 제맘대로 하는 것을 다 욕을 하는데 하나님의 아들들이 제맘대로 하는 자유하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들의 자유하는 것은 모든 만물이 다 영광이라고 찬성을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자유하는 행동은 무슨 행동입니까? 손가락으로 가리켜. 무슨 행동이요? 하나님의 아들들의 자유 행동은 무슨 행동이요? 몇 가지?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요. 몇 가지? 저 뒤에도 가리켜 봐 하나도 모르네. 이 환난이 오면 다 패전할세. 세 가지 가리켜요 이 세 가지.

하나님의 아들들이 살아나기는 무슨 생명으로 살아났습니까? 몇 가지 생명으로 살아났습니까? 세 가지 생명으로 살아났습니다. 세 가지 생명으로 살아났으니까 하나님의 아들들의 소원은 뭣이겠습니까? 세 가지가 소원이지. 그렇지 않소, 세 가지 소원? 그러면 이 세 가지 소원이라니? 피로 살기를 원하고 영감으로 살기를 원하고 진리로 살기를 원하는데 이 세 가지로 사는 것이 하나님의 아들들의 자유입니다. 자유 생활입니다. 자유 생활인데 이 세 가지로 사는 것은 만물들이 좋아해요 안 좋아해요? 좋아해요.

좋아하고 하니까 그 자유를 가리켜서 무슨 자유라고 말했어요? 영광의 자유라고 말했어요 영광의 모든 피조물들이 좋아서 막 좋아하고 이라니까 그 자유 생활을 만물들이 다 영광을 돌리고 이렇게 좋아하는 영광의 자유라 그말이요, 영광의 자유.

자, 그러면 김일성이가 지금 예수 믿는 사람들을 욕을 하고 이와 같이 반대하고 있는 것은 그 김일성이 심신이 원하는 것이요 원치 않는 것이요? 원치 않는 것인데 하나님께서 복종하도록 했기 때문에 하고 있어. 그러니까 그 심신이, 하나님이 마귀에게 붙여 놓으니까 마귀 시키는 대로 지금 김일성이 이 심신이 그라는데 김일성이 심신도 세상을 딱 떠나가는, 숨이 깔딱깔딱거리고 깔딱깔딱 그럴 때 그때는 지금 후회가 된다 말이오. 후회가 돼.

후회가 나고, 그분이 예수 믿는 뭐 집사인가 집사 아들인가 그렇다 하는데? 김일성이 뭐 집사라 했소 뭐이라 했소? 삼촌이 목사인데 거기 사람들 다 믿어요.

믿기 때문에 마지막에 죽을 때 회개할란지 몰라 그러니까 그 사람 지금 마귀에게 이용당해 가지고 지금 우리 연단시킬라고 수고 많이 해요. 우리 신앙 살릴라고 그 사람 수고 많이 하고 있어요 그 적대시하지 말아요. 우리 구원을 이룰라고 지금 저도 원치 안하는 것의 원치 안하는 것의 종노릇하고 있어요. 생명 떠날 때 그때 회개할란지 모릅니다 자, 그러면 오늘 이 시간 마지막에 결론으로서, 자, 우리 모든 주변에 있는 하늘의 것과 땅에 있는 모든 피조물들이 우리에게 대해서 뭣을 지금 소원하고 있어요? 모든 피조물들이 우리가 어떻게 하기를 소원하고 있어요? 저 뒤에, 모든 피조물들이 우리 믿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는 것을 고대하고 탄식하면서 소원하고 있어요? 이제 이 앞에 좀 말해 봐요. 그러면 모든 피조물들이 우리에게 대해서 뭣을 소원하고 있어요?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을 고대하면서 탄식하면서 소원하고 있습니다.

바다 물도 산도 공기도 들도 별도 뭐 모든 만물들이 다 그렇게 소원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을 소원하고 있습니다. 영광의 자유에 이르다니? 영광스러운 자유라 말이오 자유라 말은 자유인데 그 자유는 영광스러운 자유라 해서 영광의 자유라 그 말이오. 영광스러운 자유라 말은 만물들이 다 찬성하고 좋아하고 이렇게 막 높이 드는 그 자유라 그말이오. 만물이 다 좋아하는 자유야. 세상에는 다 사람들이 자유를 원하지만 자유하면 다른 사람들이 다 싫어해서 자유를 못하고 있지 안해요? 만물이 원하는 것은 우티의 자유를 원합니다. 만물이 원하는 거는 우리의 자유 원해요.

자, 따라합시다.

만물이 원하는 것은! (만물이 원하는 것은) 성도의 자유를 원한다! (성도의 자유를 원한다) 만물이 원하는 것은! 성도의 자유를 원한다! 만물이 원하기를! 수없는 탄식과 한숨으로! 성도의 자유를 고대하고 있다! 성도가 자유가 무엇이기에! 영광스러운 자유이기 때문에! 성도들이 자유하면! 만물들은! 영원한 생명으로! 만물을 새롭게 할 때에! 그들은! 영생으로 새롭게 된다!

만물이 이렇기 때문에 우리 자유하는 것을 고대합니다. 우리가 자유하는 것을 이떻게 만물이 고대해. 여러분들이 요걸 믿어야 돼요.

바다물에 들어가도 이 만물이 우리 자유하는 것을, 우리가 자유하는 것을 원하고 있습니다. 원하고 있는데 그것이 원치 안하면서도 이 하나님이 거기 복종하라 하기 때문에 마귀 그놈들이 쓰는 대로 이용을 당하기는 당하지만 실상은 우리의 자유를 원하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여러분들이 저 산에 높은 데 가든지 바다에 가든지 이 만물. 만물들이 다 우리 자유를 고대하고 환영하고 있는 줄 알아야 돼요. 만물들이 우리를 환영하고 있는 것을 알아야 돼요. 만물을 적대시하지 말아요. 만물들은 우리를 고대하고 있어요. 뭐 어짜라고? 우리가 자유하는 것을 고대하고 있어요.

자유하는 걸 고대하고 있다니? 우리가 자유하면 뭐이 좋은데? 우리가 자유하면 우리가 자유할 때에 관련된 것은 다 영생을 얻습니다. 성도들이 자유 생활할 때에 관련된 돈도 물건도 산도 들도 바다도 공기도 전부 다 영생합니다 이러기에 우리 여기 집회할 때에 지금 이 공기나 모든 바람 부는 거든지 좋아서 지금 굉장히 좋아합니다. 굉장히 좋아하요.

우리가 자유하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이 자유하는 것입니까? 우리가 세 가지로 살아났기 때문에 세 가지로 사는 것이 우리의 진짜의 소원이요, 악령 악성 악습으로 더불어 하는 것은 소원이 아닌데 그놈이 우리를 꾀웠을 때에, 우리 마음과 몸뚱이 이게 어리여게 등신같이 속을 때에는 꾀여 가지고 악령 악성 악습대로 살기를 원하고 있지 이 정신을 차리면 피와 성령과 진리로 살기를 원하는 우리의 심신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자유는 피와 성령과 진리로 사는 것이 우리 소원 성취되는 것이고 자유하는 것인데 이것은 영광스러운 자유요 모든 만물들이 고대하고 탄식하면서 기다리고 있는 모든 자유 생활들이라 하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하겠습니다. 네. 오늘 이제 영에 대해서 좀 말씀을 했는데 이걸 단단히 기억하십시오.

시간 많이 갔으니까 기도합시다.

주님 아직까지 근 이천 년이 됐지만 성경에 밝히 말씀해 놓은 사람의 주격인 영에 대해서 너무 미개해 있고, 너무 유치해 있고, 너무 허무해 가지고 있고, 너무 사이비하여 아직도 유혹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는 이 때에 주님께서 영에 대한 완전한 탈피를 가질 수 있는 영의 존재를 확실히 알게 하시고 영으로 살게 하시는 이 은혜 역사를 베푸시는 주님 앞에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 영에 대한 지식을 확고히 사져 날마다 성경에서 영을 먹이고 길러 장성한 영이 되어 심신을 가장 올바르게 성령의 인도를 따라서 통치할 수 있는 장성한 영들이 되도록 은총을 주시옵소서.

영에 대한 확고한 지식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영을 기르지도 못하고 영을 대우하지도 못하고, 영의 보배성도 알지 못하고, 영의 무한한 이 소망성도 몰라서 마귀 이놈에게 마구잡이로 유린을 당하고 유혹을 딩하고 있사오니 이 시간에 배운 영에 대한 이 지식을 확고히 가지고 놓지 안하고 굳게 서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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