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


선지자선교회 1982년 2월 9일 화새

 

본문 : 벧후 3:14-18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우리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저에게 있을지어다

 

 마지막에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저에게 있을지어다" 하는 이 말씀을  잘못 깨달으면 우리가 영광이 주님에게 있도록 이렇게 송축하는 것같이 그렇게  여겨지기 쉽습니다. 이 말씀은 영원무궁토록 모든 피조물이 주님에게만  영광돌리는 일이 이루어집니다.

 이것은 지금은 사람들이 모두 현실이라는 미혹에 가리워져서 모든 것을  모르지마는 이 다음에는 예수님을 잘못 믿는 사람 잘 믿는 사람 모든 사람들이  다 지혜와 지식의 눈이 열려서 환하게 보게 됩니다. 그때는 모든 것이 다 얼굴과  얼굴을 대하는 것같이 숨은 것이 다 드러나고 모든 것이 나타나게 됩니다.

 이러니까 사람들도 피차에 알게 되고, 사물들도 알게 되고, 크고 작은 것도  알게 되고, 무엇이 원인이 돼서 그렇게 된 것도 다 알게 됩니다. 지옥에 가서  있는 그 모든 영들도 알게 됩니다.

 그럴 때에 모든 것은 다 거짓되고 온전치 못하고 껍데기로 이렇게 가루어서  있었기 때둔에 그때는 지금보다 가치가 더 낫게 드러나는 그런 일들이 없고 모두  속이고 속은 것뿐이게 됩니다. 이러니까 지옥에서는 영원한 그 시비와 분노와 또  원통한 그것이 불붙습니다.

 왜? 모두 이 세상에 가리워져서 그 진상을 몰랐고 또 이 가죽 껍데기 속에 싸여  있어서 몰랐는데 그때 알고 보니까 너무 분하다 그말이오. 가장 사랑한다고 하는  가정 싸움이 제일 많이 날 것이요 또 친구 싸움이 많이 날 것입니다. 왜? 그것은  모두 껍데기로 발라서 속이고 속고 이래 한 것이기 때문에 그때 가면 다 놀라게  됩니다.

 이러니까 지옥에서도 주님이 하신 교훈이나 예언이나 모두 하신 것이 제일  저희들에게 숭배가 되어지고 또 후회가 되어지고 마음에 갈급이 되어지기 때문에  지옥에서도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고 그 앞에 무릎을 끓고 경배를 하게 됩니다.

더우기 하늘나라에서는 더욱 그러 합니다.

 우리가 지금이라는 이때에 모든 것이 확정되기 전에 이렇게든지 저렇게든지  변동시킬 수가 있는 시기입니다. 자기가 누구에게 잘못된 그것도 지금 고칠 수  있는 시기입니다. 또 자기가 인정하지 못하고 반대했던 그 모든 옳은 것에 대한  것도 지금은 고칠 수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그것을 다 나타내서 피차에 인인 관계에 해결을 지을 수도  있고 지우지 못하면 예수님의 피에 고해서라도 해결을 지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늘나라 가면 자기가 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 잘못이라는 것을 느끼고 주님의  피공로에 고해서 사함을 발은 것은 그때에 나타나나 마치 상한 그 상처가  나았으니까 흉터는 있지마는 깨끗이 나아서 흉한 것은 없는 것과 같이, 예를  들면 그와 같이 깨끗하게 되어져서 세상에서 주를 인정함으로 자기의 모든  잘못을 깨끗이 회개하고 하지 못한 그 모든 미진한 것을 자기가 다 잘못된 줄  알아 겸손해지고 이랬기 때문에 세상에 있는 동안에 치료받지 아니하고 간 일이  하나도 없는 그런 사람도 있고,  세상에서 그것을 용서를 구하면 용서받을 수 있고 잘못을 뉘우치면 고침을 받을  수 있고 다 사유함을 받을 수 있는데 그것을 그대로 가지고 나타난 그 사람은,  죄가 하늘나라에 가는 것은 아니지마는 그만치 세상에 있는 동안에 주를 믿지  아니했고 자기 주장대로 살다가 간 그 사람은 죄가 따라가는 거는 아니지만 그  수치스러운 것, 부끄러운 것,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계속 가하다가, 부끄러움을  계속 속여 나오다가 이렇게 나타난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것이 하늘 나라에 가서  수치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의 대속하신 것은 우리가 모르는 우리에게 있는 모든 죄를 다  담당해서 형벌을 받으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에게 모르던 그 죄가 하나  범하게 돼서 나타났으면 그 죄가 이제까지 몰랐었는데 그 죄가 예수님을  정죄해서 예수님이 그 죄의 댓가를 형으로 받은 그 죄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하나님의 영원 전 예정된 죄요 또 그 죄가 주님에게 정죄를 시켜서 주님이  형벌을 받아서 대속한 죄요, 법적으로 대속했습니다.

 대속한 죄이니까 자기는 그만치 주님에게 형을 부담시켰고 주님은 부담을  하셨고 했기 때문에 그 죄를 가지고 자기가 마음에 원통히 앓고 하는 그것은 다  외부적입니다. '내가 이런 죄를 지었다' 가슴을 치면서 원통히 여기고 분히  여기고 후회를 하고 하는 그것도 자기가 성화되는 데에 좋기는 좋지마는 그것은  외부적이요 외식적입니다.

 그럴 때에 주님이 자기에게 영원 전 그것을 예정하신 죄요 그 죄를 자기가  범하기 전에 하나님의 전지로써 미당겨서 내 죄를 예수님에게 정죄해서 부담을  시켰고 예수님은 그 죄의 형벌을 받아서 나를 사죄를 주셨고, 이러기 때문에 그  죄는 내가 몰랐지 하나님 앞에서는 영원 전에 예정되어 있었던 것, 또 주님에게  정죄가 되었던 것, 주님께서 그 죄에 대한 공평된 그 형벌을 받으신 것.

 그러면 우리가 선악과 하나 먹은 그 죄의 값이 그게 나타났고 다른 죄값은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그 한 죄로 인해서 거기에 속한 인류가 영원한 사망을  당했습니다. 이것으로써 죄의 값이 어데까지 가며 얼마나 크고 무섭다는 것을  우리가 여기에서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이런 죄의 형을 예수님이 담당을 했으니 내가 범죄한 것을 예수님이  대한 형벌받으셨기 때문에 내가 형벌받아 죽은 것이요, 예수님이 나를 대신  형벌받았기 때문에 내가 살아 있는 것은 예수님의 것입니다. 왜? 예수님이 나 할  일을 해 줬으니까 내가 남은 것은 예수님의 할 일을 해 줘야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죄가 하나 발견됩을 인해서 자기가 예수님에게 더 형을 부담을  시켰고 부담을 해 줬고, 자기는 주의 것이 더 됐고, 또 주를 위해서 더 살아야  될 자가 됐고 하는 요것을 깨달아서 요것을 잡을 때에 그것이 알맹이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기가 새로운 죄가 발견이 되면 그로써 예수님에게 부담된 것을  새로운 부분을 자기가 깨닫는 그 시간이 돼야 되겠고, 또 주님이 형을 받으신  것을 더 깨닫는 또 그 시간이 돼야 되겠고, 그러니까 자기는 더 주님의 것이  되어진 것, 더 주님의 것이 되어진 것을 깨닫는 시간이 돼야 되겠고, 이러니까  남은 때는 자기를 위해 살 것이 아니라 자기를 대신하여 형벌받아 죽으신 그분을  위해서 남은 때는 살아야 되는 이것이 더 작정되고 더 실행이 되어지는 이것이  범죄했을 때에 자기의 행동하는 외식이 아니고 속에 진실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렸을 때에는 이것을 이해하기도 어렵고 범위가 넓어서 잘 모르지마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예정 없는 일이 되는 것이 없고 또 예정한 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루어지면 예정한 대로 되어 가지고 그와 같이 됐는데  우리에게 책임이 무엇이 있겠는가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무슨 책임이 있겠는가  하는 그 생각 그것도 하나님의 예정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이렇게 예정을 하셔서 범죄케 했고, 범죄를 주님에게  부담을 시켰고, 주님이 나를 대신해서 부담했으니 나는 주의 것이 되었고, 내가  내대로 살 것이 주를 위해서 주로 인해서 살아야 되겠다' 하는 이것이 자기에게  깨달아져서 한 범죄가 나타남으로 주님에게 대한 감사가 더 커지고, 주의 것이  더 돼지고, 주를 위해서 더 살아지고, 이렇게 하나님이 예정하신 것이 나로  하여금 영원히 주의 것이 되어져서 주로 인하셔 살게 한, 살게 하려는 이 예정인  것을 자기가 깨달아 주님이, 이제는 자기에게 대해서 자기가 자기로 살지 않고  주로 인하여 살고, 자기 것이 안되고 주의 것으로 살도록 이렇게 한 이것이  피조물로서는 제일 완전한 위치요 완전한 생애요 하나님께서 제일 귀중히  취급하시고 이렇게 하나님과 영원 완전한 관계를 맺고 또 실족함이 없게 하려는  하나님의 지극한 전지의 전능의 사랑인 것을 자기가 깨달아 더욱이 감사 하는 자  있고, 요것도 예정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한 진리를 들을 때에 그가 깨달아지는 층어리가 높고 낮은 것  있고 또 한 진리가 나타날 때에 반박되는 것 있고, 그것이 전부 하나님의 한  분의 예정입니다. 한 분의 예정대로 그와 같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설교 듣고 어떤 사람은 반발하고, 어떤 사람은 '그럴듯 하다.' 어떤  사람은 '과연 그러하다.' 어떤 사람은 간절하다, 어떤 사람은 '요대로 살아야  되겠다.' 어떤 사람은 요대로 살아야 되겠다고만 하고 못 사는 사람, 또 살게  되는 사람, 천층만층이라는 말 같이 그렇게 많은 층어리가 있습니다. 그게  뭐이냐? 그것이 하나님이 영원 전 예정하신 그대로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에게 능동적으로, 자기 단독의 능동적으로 되어지는 것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실은 하나님 한 분으로 인하여서, 없는 가운데 지음받은 것이,  이 지음받은 것이 그것이 아무것도 움직일 수 없는 것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움직일 수 있고,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자기에게는 권리 없는 것이 그분으로  인해서 이렇게 움직이고 저렇게 움직여서 마지막에 결론으로 말하면 지극히  영광스러운 자도 있고 지극히 천한 자도 있습니다.

 지극히 영광스러운 자도 그분이 그렇게 예정하고 조성해서 지극히 영광스러운  자가 돼졌고 또 지극히 천한 것도 그분이 예정하셔서 그분의 능력으로 지극히  천한 자가 되어진 것입니다.

 그러기에 없는 가운데서 존재한 그것도 그분이 만들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고,  또 피조물의 움직인 그 움직임도 그분 한 분으로 인하여 움직이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분이 혼자 창조했고, 혼자 여기에 대해서 모든  순서를 작정했고, 모든 것이 움직이고, 모든 결과가 맺어졌습니다.

 그러기에 이루어진 것은 작은 것이나 큰 것이나, 좋은 것이나 나쁜 것이나  그것이 피조물 그것으로 말미암아 되어진 것 같으면 그것의 그 권위성이, 나쁜  것이 나쁜 권위성 좋은 것은 좋은 그대로의 그 권위성, 그 권위성이 피조물  그것만치 권위가 있겠습니다. 그것만치 권위가 있겠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절대자, 조물주 창조주 절대자 완전자 이분이 해서 그와 같이  되어진 것이기 때문에 나쁜 것도 그것의 절대성이 하나님의 절대성적으로  됐습니다. 또 완전한 것도 하나님의 절대성적인 완전으로 되어진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좋은 것도 크고 나쁜 것도 큽니다. 그것을 변동하지 못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하신 이유가 뭐인가? 이와 같이 하신 이유는,  보라 저 지옥에 밑층 가는 것도 하나님의 예정이요 하나님이 그와 같이  했습니다. 인간 타락 인간 단독 아니오. 하나님이 영원 전 예정하신 그대로  타락의 순서를 밟게 했습니다. 된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목적이 무엇이냐? 하나님이 목적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모든  피조물들에게 충만케 하고, 또 하나님의 섭리와 역사의 권위성을 모든  피조물들에게 충만케 하고, 또 하나님에게 가까이 하는 것이 얼마나 생명과  평강이 되고 하나님을 멀리 하는 것이 얼마나 고통의 지옥이 되어지고 하는,  하나님을 피조물들에게 알게 해서 멸망도 멸망으로 하나님을 알게 했고 구원도  구원으로 하나님을 알게 해서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에게 대한 지식이 바다에  물이 넘침같이 충만케 해 가지고 하나님과 피조물의 이 관계를 영원히 바로  맺어서 당신이 목적하신 목적은 당신같이 온전하고, 온전하되 그것이 개별적으로  온전이 아니고 당신으로 인해서 당신같이 온전하고 당신같이 완전한, 당신같이  거룩한 이것이 되게 하려는 이 목적 달성을 위해서 이런 일을 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알기가 어렵고 또 믿음이 약한 어린 사람들은 이해하기가 어려워서  억지로 풀다가 멸망을 받는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이것 처음 들으면 좀 이해가 안 될지라도 그걸  기억하십시오. 영원 전 하나님 홀로 계셨습니다. 그러기에 홀로 계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이 한 분으로 말미암아 모든 존재가 존재케 됐고, 이 한 분으로  말미암아 모든 움직이는 움직임이 웠고, 이 한 분으로 말미암아 모든 정함이  정해져 가지고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모든 순서가, 모든 이런 저런 모양이, 그 모든 움직임의 종류,  움직임의 종류도 그분 한 분으로 말미암았고, 조성된 것도 그분 한 분으로  말미암았고, 없는 가운데서 존재케 된 것도 그분 한 분으로 말미암았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독교는 일원론이라, 일원론. 영원 전 근원이 하나라. 일원론.

그러기에 기독교는 일원론입니다. 그분 한 분으로 말미암아 모든 이런 것 저런  것이 다 그분으로 말미암아 생겼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주권 의지로 모든 것이 예정된 것입니다. 주권 의지라 말은  어떤 것에게 추호도 피동되지 않고 상관없이 당신 혼자의 주장, 혼자의 권리  가지고, 지식의 권위. 혼자의 권위를 가지고 모든 것을 예정했습니다. 예정은  창조보다 먼저 됐습니다. 예정한 그대로 하나님이 창조하셨습니다.

 또 예정한 그대로 지옥이 이제는 이루어집니다. 지옥이 이루어지는 것 지옥이  차지는 것이 하나님의 예정이 이루어져 가서 그대로 차진 것입니다. 천국이  이렇게 충만해지는 것도 예정한 그대로 천국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영훤 전 예정, 예정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어. 개별 예정.

개미 한 마리가 나고 죽고 요게서 요만치 돌아다니다가 끝을 마친 그것이 전부  다 예정이라. 예정 아닌 게 하나도 없어.

 그러면 예정할 때에 요 물건을 통해서 요것이 요리 요리 행하고 요 물건을  통해서 요 물건이 움직이고 조리 움직이고 해 가지고 이루어진 전체가  예정입니다.

 마치 여기 당구장에 가 가지고, 나는 거기 한번도 가 보지는 않았는데 아마  비슷하게 그런 것같이 생각이 돼지는데, 제가 그때 해운대 가 가지고 여름에  가서 여관에 뜰에 뜰에 나가 가지고 이래 들으니 밑에 뭐이 딱 딱 거리는데  보이지는 않아도 위에서 가만히 들으니까 한번 딱 치니까 요것이 또르르 가  가지고 또 저게 가서 뭘 하나 탁 때리니까 또 때려 가지고 그게 뭐 때리고  때리고 요래 가지고 아마 그게, 대번에 되는 게 아니고 요게 가 가지고 잘하는  사람은 요놈만 가서 목적을 달성이 아니라 요놈이 요놈을 때려 가지고 또 요놈이  요놈을 때려 가지고 요래 가지고 저 목적에 달성해지는 그것인 모양이라. 그게  아마 잘하는 사람인 모양인데.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요것을 통해서 그다음 것을 요렇게 조성하고 조렇게  조성했으나 근본 힘은 다 그것입니다.

 마치 큰 공장에 가니까 기계가 '요놈은, 요 기계 요것은 요게 돌리는구나, 또  요 기계는 조것이 돌리는구나. 요것이 그것만 아니라 조게 돌리는구나.' 그래  가지고, 요것을 돌리고 돌리고 돌리는 걸 찾아 들어가니까 제일 근원은 그  모타가 하나 있는데 모타 그것이 지금 돌리고 있습니다.

 또 모타 그것이 돌리고 있는데 그 모타가 있는데 뭘 뚝 떼니까 안 됩니다. 그것  보니까 결국은 발전소에서 그 전력이 돌립니다.

 전력이 돌리는데 그것을 또 발견하니까 모든 물질 속에 있는 전력을 주 모아  가지고 이제 무슨 물건을 이래 가지고 그 전력을 모으는 방편을 해 가지고 이래  이래 비비니까 전기가 나오든지 뭐 어쩌든지 해 가지고 전기가 나와 가지고  되어지는 것처럼 자꾸 그래 들어가면 근본은 이제 조물주 한 분의 움직임에서  움직이고 있구나 하는 것이 자기에게 발견이 될 것입니다.

 그러기에 과학자가, 과학자가 제가 어떤 유력한 과학자가 됐다 할지라도 그  과학의 원인의 유일하신 자존하신 하나님에게 뿌리를 박았으면 그 과학은 살았고  거기에 뿌리박지 못하고 과학으로만 하려는 뿌리 없는 과학은 그들은 사망을  이루고 마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영원 전 주권 의지로 하나님이 예정하신 이 예정대로 영원히,  억만 년 아니라 영원히 움직여질 그 움직여짐을 단번에 예정하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영원을 예정하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면 영계나 이 우주에, 우주에도 인류 만물 종류가 많고 그 종류마다 수많은  걸 가졌고 그 모든 것을 다 예정하신 분, 이래서 "머리털 하나도 희고 검게 하지  못한다. 머리털 하나도 다 세신다.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지마는 그것 하나의 땅에 떨어지는 것도 하나님의 뜻대로 되어지는 것이지  하나님이 허락지 아니한 것이 떨어지지 않는다" 하는 것은 그것이, 그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됐다고 하면 그다음에도 그로 인해서 시발된 것이기 때문에  그분으로 말미암아 되어진 것이 충분히 이해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정을 믿지 않는 그 신앙은 뿌리없는 신앙입니다.

 그러기에 주권 의지로 모든 걸 예정했고 주권의 능력을 가지고서 그 예정한  대로 하나 둘 순서대로 성취돼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나쁜 것도 하나님의 절대적인 예정으로 인해서 나빠졌기 때문에  그 변동을 못 해. 피조물이 다 달려들어도 나쁜 그걸 고치지 못해. 좋은 것도  절대자가 그와 같이 했기 때문에 그것도 절대성을 가졌기 때문에 좋은 것을  아무도 나쁘게 할 수가 없어.

 그것은 뭐이냐? 간단하게 말하면 하나님을, 하나님에게서 떨어진 것은 이렇게  비참하다 하는 것을 지옥에서 보이는 그 계시물이오. 또 무궁한 세계에  영광스러운 것은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그로 인해서 이런 영광과 생명이  이루어진다 하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먼저 사망을 먼저 보여  줬소. 그다음에 생명을 보여 됐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어떤 분이신 것과 그의 역사가 어떤 것인 것을 피조물로 알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하나님을 나타내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기의 현실에  당면된 어떤 현실에서든지 거기에서 이제까지 몰랐던 하나님을 새로 발견하고,  이제까지 몰랐던 하나님과 더 가까워 지고,  자기가 떨어졌을 때에는 이제까지 자기가 하나님이 자기를 버려 놓으면 자기가  비참해진다는 것을 몰랐던 것, 하나님과 떨어짐이 얼마나 무섭다는 것을 자기가  발견하는 것이 범죄에서 깨닫는 것이오. 범죄에서 그것 깨닫지 못하면 유익 못  봤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버려두면 내가 이렇게 된다.' 또 자기가 의로워졌을  때에 자기 힘으로 된 게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붙드시니까 이와 같이 된다.'  하여서,  하나님이 놓으면 자기는 비참하게 되고 하나님이 붙들면 존영해지는 이것으로써  망하고 흥하는 것이 당신에게 있으니, 당신에게 있으니 당신이 당신 자기에게는  가장 보배요 당신이 제일 두렵고 제일 보배라 이러니까 하나님을 거슬리는 것이  제일 무섭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 그것이 제일 행복이니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이라.

 이래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분에게 순종하려는 이것이 점점 성장돼 나가는 이것이 자기의 모든  선악의 현실을 통해서 자라가는 이것이 바로 진실한 신앙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아는 것은 힘이 되는 것입니다. 제가 모르면 모르는 자기에게 모르는  무엇이 하나 나타나면 그는 자연히 흔들리게 됩니다. 모르는 것이 나타나면  흔들립니다.

 모르는 것이 나타났는데 저 사람에게 가지고 있는 지식이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과 비판하고 평가해서 그 지식이 내 지식보다 위에 있으면 나는 그 지식에게  굴복을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자기가 지식과 지식이 서로 평가되어질 때에  그 지식이 논리상으로 또 평가상으로 '과연 그것이 옳다 바르다 참되다 위에  있다.' 이렇게 인정이 되고 자기의 가진 지식은 '나는 이 면을 몰랐다. 어리다.

좁다. 못하다.' 이렇게 돼도 '그래도 나는 내것 가지고 있다' 하는 그것은  고집이지 절대로 자기가 그것 가지고 있는 것 아닙니다.

 반대로 '그래도 내가 믿는 도가 옳다.' 이렇게 고집을 부리고 세워대지마는  세워댈수록 자기 속에는 '그래도 그게 옳기는 옳은데.' 겉은 세우고 속에는  굴복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모든 피조물에 최고의 지식을 가지지 않으면 그들을  종으로 잡아 부릴 수 없고 복종을 시킬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최고의  지식이 어데서 나오는가? 최고의 지식은 땅 위에 인간들이 지식하는 아무리  말해도 생전 구경 안 해도 그 지식을 받아 가지고 '야!' 깜짝 놀라 '아이쿠,  아름답다. 찬란하다. 굉장하다.' 해도 잠깐 눈 감고 생각하면 사망인 것을  발견하게 되게 됩니다.

 그러기에 땅에는 성경을 능가하는 그런 지식이 없어. 성경에서 이 지식을 얻어  가지고, 왜 성경은 인간이 머물고 있는 이 범위, 이 범위를 어떤 범위든지 그  범위를 무한이 넘었어. 무한히 넓고 무한히 깊고 무한이 높고 그 범위를 다  초월해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범위를 아는 사람은 세상에 있는 지식이,  그들은 아무리 떠들어 쌓아도 '네가 조물주를 모르니 네 지식은 다 뿌리 없는  죽은 것이다. 원인이 없지 않느냐?' 철학자들이 뭐 이데아 주장을 많이 하지마는  그래도 암만 그래 봐도 마지막에 '그 위에 뭐이 있을 것이다 있을 것이다' 하는  것뿐이지 자존하신 하나님이 모든 걸 지었다 하는, 창조주가 있고 피조물은  지음을 받은 피조물이라 하는 요것을 아는 것이 지식의 근본입니다. 인간이 가진  지식의 근본이오.

 그러기 때문에 성경에서 자기의 지식을 키우고 넓히고 또 연마해서 정확무오의  지식을 점점 가지도록 해야 되고 이 성경 지식에서 이제 영감 지식으로 점점  연결이 되어지면 그게 하나님의 전지라, 전능이라.

 그러기에 오늘 아침에 봉독한 가운데서 "아는 가운데서 자라가라" 지성적으로  자라가라. "아는 가운데서 자라가라" 모르는 데에서 자라가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어쩌든지 성경을 많이 읽어야 되고, 성경 읽는 것 가지고 되는 게  아니라. 성경을 많이 읽으면 성경은 외부에 윤팍적으로 울타리입니다. 마치 집을  만들면 이 담장 하는 것처럼 성경은 울타리요. 거기에 넘어가지 못하도록  탈선하지 못하도록 울타리요. 그 안에 중앙에 자라는 그 지식은 영감의  도리입니다.

 그러기에 성경 안에는, 내재적 영감이라고 표현을 할 수 있는데 이것은 성경  안에 있는 영감이오. 이 영감이 곧 하나님이 우리와 연결시켜 주는 이 영감이기  때문에 이 영감과 연결되면 그면은 전지전능입니다.

 그러기에 성경에 말씀하시기를 그리스도 안에는 뭐 문벌 좋은 사람이 없다  그말은 종자 좋다고 좋아지는 것 아니라 그말이오. 유전성이 있지마는 유전성이  그렇게 대단한 것이 아니라 그말이오. 또 학벌 좋은 사람이 없다 그말은 인간의  두뇌에서 나온 그 지식이, 왜 그것 많다고 인간이 지혜로워지는 게 아니라  그말이오.

 '하나님께서 무식한 자를 택하여 유식한 자를 부끄럽게 했고 약한 자를 택해서  강한 자를 다 누르고 꺾게 했다" 했습니다. 그러면 연결되는 여기에서 인간은  완성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먼저 성경 읽고 또 성경 말씀을 가르칠 때에 배우고 자기가 그대로 실행을 하면  귀로 듣고 두뇌로 이렇게 상상해 가지고 아는 그 앎은 중신애비, 중매쟁이  앎이오, 중매쟁이. 그것은 초등학문입니다. 중매쟁이요, 거기에서 자기가 실행을  하면 새로 알아집니다. 실행을 하면 새로 알아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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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1] 선지자 2015.10.19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2316 영감인 진리를 구할 것/ 야고보서 1장 5절-8절/ 830705화새 선지자 2015.12.09
2315 영계와 우주의 큰 변동/ 누가복음 2장 14절/ 1975. 1. 5. 제 1 공과 선지자 2015.12.09
2314 영과 육-인간 병/ 요한복음 5장 6절-9절/ 1987. 8. 6. 목후집회 선지자 2015.12.09
» 영광/ 베드로후서 3장 14절-18절/ 820209화새 선지자 2015.12.09
2312 영광/ 베드로후서 3장 14절-18절/ 820211목새 선지자 2015.12.09
2311 영광/ 베드로후서 3장 14절-18절/ 820210수새 선지자 2015.12.09
2310 영광/ 고린도전서 15장 39절-44절/ 1975. 11. 16. 제 46 공과 선지자 2015.12.09
2309 영광,기쁨,평화, 3가지는 내 할 일/ 누가복음 2장 14절/ 871227주후 선지자 2015.12.09
2308 영광은 하나님께/ 사무엘상 15장 1절-3절/ 890319주후 선지자 2015.12.09
2307 영광은 하나님께/ 사무엘상 15장 1절-3절/ 890319주전 선지자 2015.12.09
2306 영광은 하나님께/ 창세기 13장 6절∼15절/ 890226주새 선지자 2015.12.09
2305 영광의 아버지/ 에베소서 1장 17절-19절/ 830603금새 선지자 2015.12.09
2304 영광의 아버지/ 에베소서 1장 17절-23절/ 1987. 8. 5. 오전집회 선지자 2015.12.09
2303 영광의 자유/ 로마서 8장 18절-23절/ 870117토새 선지자 2015.12.09
2302 영론/ 마태복음 10장 28절/ 871010토새 선지자 2015.12.09
2301 영론/ 로마서 8장 3절-23절/ 860805화전집회 선지자 2015.12.09
2300 영론/ 이사야 2장 12절-4장 1절/ 890513토새 선지자 2015.12.09
2299 영론/ 요한복음 14장 18절-20절/ 890430주후 선지자 2015.12.09
2298 영론-인론/ 갈라디아서 5장 2절-26절/ 861205금야 선지자 2015.12.09
2297 영론-중생된 영/ 요한계시록 3장 1절-3절/ 860507수전집회 선지자 2015.1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