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의 권위성

 

1984. 6. 16. 토새  

 

본문 : 마태복음 16장 13절∼20절  예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가라사대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가로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가라사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이에 제자들을 경계하사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라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고 하신 것은, 당신이 우리 위해서  재물이 되고자 하시는 유월절을 같이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하는 것은 우리  대속을 원하고 원하는 주님의 대속에 그 제자들이 들어서 이런 방해하는 일을  하지 못하도록 방해할 수 있는 그런 틈이나 그런 기회를 주시지 않기 위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말씀하시고 계속해서 십자가의 고난 받으실 것을  말하니까 이 베드로가 아무에게도 내가 그리스도인 것을 알리지 말아라 하는 이  말씀을 깊이 새겨서 들었으면 벌써 알았을 터인데 거기에 대해서 아무 그저  지나가는 말로 들었기 때문에 고 다음에 그런 실수를 범해서 사탄이라고  쫓겨남을 받았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이렇게  믿었습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믿었고 다른 사람들은 세례 요한이나 엘리야나  예레미야나 어떤 선지 중의 하나로 이렇게 믿었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믿은 것도  다 하나님의 말씀을 인해서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고 이 베드로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들은  문서에 나타나서 사람들이 보고 말하는 그 말씀을 믿어서 세례 요한이나  엘리야나 예헤미야나 어떤 선지자 중의 하나라는 그말이 무슨 불경에 있는 말도  아니고 다른 또 뭐 이런 무슨 어떤 이종교에게 있는 말이 아니라 이종교가  증거하는 말이 아니고 그 성경 말씀을, 구약 성경 말씀을 그들이 다 알아서 그  성경 말씀을 근거해 가지고 그렇게 말했던 것입니다. 또 이 베드로도 하나님의  뜻인 하나님의 내나 문서에 기록하는 말씀과 같은 문서에 기록하는 말씀을  그들이 들었습니다. 그러면 베드로가 들은 말씀도 이 문서에 우리에게 기록해  나왔습니다. 또 과거에도 하나님의 사람들이 문서에 기록한 것을 그 사람들이  듣고 모두 그렇게 예수관을 그렇게 가지고 예수를 믿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성경을 보고 우리가 알든지, 또 하나님 이  말씀하시는 그 말씀을 듣고 알든지 다 같습니다. 성경을 보고 아나 또 설교하는  소리를 듣고 아나 다 하나님의 뜻에 틀림이 없다면은 그는 진리요 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자기가 이 사람을 통한 말. 사람을 통한 말만 자꾸 들어서  성경 학자가 되고, 성경의 다 지식을 가지고 이렇게 있는 그거로만 위주를 하면  안 됩니다.

 아무리 성경에 칼빈이 위대하다 이렇게 해도 칼빈 자신이 이렇게 기록해 준  모든 교리와 신조를 아는 것 그 아는 거 그것만으로는 다 외식이요 다  헛일입니다. 칼빈도 자신이 사람들에게 모든 그 자기 선배들이 이 교리와 시조에  대해서 깨닫고 책을 만들지는 안했지마는서도 이런 종이 쪼가리 저 책 종이  쪼가리 조그만한, 뭐 요새 그라면 노트 이런 종이 저런 종이에 기록해 놓은 그  모든 선배들이 깨달은 그 깨달음을 자기가 받아 가지고서 종합을 해서 이렇게  편집을 해 가지고 그렇게 좀 조직적으로 그렇게 증거를 했습니다. 했으나 그분이  내나 다른 사람들이 깨닫고 그 모두 깨달음은 전부 다 영감인데 영감으로  깨달아졌는데. 영감으로 깨달아진 그 깨달음을 종이 쪼가리나 문서로 기록해  놓은 그것만 봤고 자신이 그 영감을 받지 못 했더라면 내나 여기에 여론 신앙에  그치고 맙니다. 그러나 그분도 자기가 직접 영감 받은. 모든 선배들의 그  깨달음을 자기가 읽고 듣고 이렇게 생각 할 때에 그때에 직접 영감 받은 그것이  없었으면 분명히 칼빈도 외식하다 가 다 망하고 말았지 아무런 유익을 보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기에 둘 다 예수를 믿는 그 믿음이 이런 예수냐 저런 예수냐  이렇게 믿는 그 예수관이 모든 사람들이 가진 그 예수관, 예수는 이런 예수를  믿고 저런 예수를 믿는 그 사람들이 믿는 것도 성경 말씀을 근거했고, 또 하나님  말씀을 근거했다 말이오. 하나님 말씀을 근거최고, 또 이 베드로가 이렇게 믿는  것도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해서 이런 답을 한 것입니다. 자기는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했는지는 모르지마는서도 이걸 네게 알게 한 이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가  네게 알게 했다 하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한 것을 예수님이 증거했다 말이오.

 이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그저 모든 성경 기자들이 이렇게  영감 받아 들었다, 성경 기자들이 영감 받아서 기록한 거 그것을 우리가 읽고,  또 기록한 성경 말씀을 영감 받은 사람들이 그 말씀을 증거 하고 이렇게 하는  것이 같으나 자기에게 다만 이 사람들이 먼저 영감 받아 가지고 문서로  기록했든지 말로 전하든지 전하는 그것만 전달 받고 그 전달을 통해서 자기가  영감 받지 안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영감을 받지 안하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니까 고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허락하심을  기다리라. 몇 날이 못 돼서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권능을 얻고' 그랬습니다.

성령을 인해서 권능을 얻는다고 했지, 물론 하나님의 성령은 하나님의 말씀인  하나님의 뜻인 그 진리를 떠나서는 못 나옵니다. 진리를 떠나서는 오시지 못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영감이라는 영감이 뭐이냐 하면은 하나님의 뜻이 나타 날 때에  영감으로 나타났고, 이 영감이 문서로 기록했을 때에 성경이고 진리고. 또 이  영감이 어떤 일을 하도록 피조물에게 턱 접했을 때에 그것을 가리켜서 영감이라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영감이요 진리를 이렇게 말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권능을 얻어야 된다, 또 바울도 말하기를 '내가 전하는 것이  말에 있지 않고 권능에 있기를 지금 원한다' 또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권능에 있다.' 이렇게 말씀을 하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권능이  나타나지 이 말씀을 떠나서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그렇게 믿는 게  좋습니다. 왜? 성경은 벌써 기록 성경, 하나님의 그 기록 영감, 기록 영감은  끝이 났다 이랬습니다. 그라면 이 성경 외에는 더 가감을 하지 못 한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령이 진리를 통해서 나타나는데. 성령이 나타날 수 있는 그  길잡이가 되고 소개가 되고 그 도화선이 되는 것은 이 진리인데, 진리는 새  진리가 없다 하는 그런 말이요, 또 영감이 나타날 때에는 다시 다른 무슨 진리를  통해서 영감이 나타나지 앓는다. 영감 나타나는 것은 벌써 영감 나타나는 그  진리는 제한이 딱 돼서 끝을 맺어 놨다. 그러기 때문에 이 외에 딴 걸 구하면  그사람은 그것으로 인해서 망하게 된다 그말입니다.

 이러니까, 우리는 신구약 성경 말씀을 통해서 영감이 나타나는데 이 영감을  신구약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이 문서 진리, 이 문서 진리 이 문서 진리인데 이  진리가 진리되기 전에는 영감입니다. 영감이 문서 진리 되었는데 이 영감이 문서  진리로 나타난 이 문서 진리를 이제 사도들이 썼고, 또 선지자들이 썼고, 또 그  위에 모든 우리 신앙의 선조들이 다 이 영감 도리를 써 가지고서 권능을  받았는데 이 권능을 받는 그 방편에 있어서는 이미 딱 제한되어 가지고 있고  끝을 맺어 있기 때문에 새로운 무슨 진리를 가지고서 자기가 영감 받을라는 그런  생각을 가지지 말아야 됩니다. 가지지 말고 이미 기록되어 있는 이 진리를  통해서 영감을 받지 이 진리 말고 또 새진리를 자기가 받아 가지고 영감  받는다는 그것을 생각지 말아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아무리 그 사람이 깨달아서 진리를 말한다 할지라도 사람들이  몰라서 이 육십 육권 안에 있는 것을 사람들이 몰라서, 그저 이 육 십 육권  도리는 하나인데, 말하자면 구원 도리를 가르치는 하나요, 하나님을 가르치고  하나님의 뜻을 가르치는 요 두 가지 뿐인데 이 가르치는 것을 단번에 한 마디에  다 가르칠 수 없었기 때문에 많은 성경에 여기에는 이렇게 가르치고 저기에는  저렇게 가르치고 여러면으로 가르쳐 놨습니다. 가르쳐 놓은 그것을 한 군데만  보고는 모르니까, 많이 깨닫는 사람이라는 것은 여기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저기에서는 저렇게 말한다 모두 성경에 말해 놓은 그것을 말해야 그것이 이단  설교가 아니지 성경에 나타나지 안한 말 하면 이단 설교가 되고 맙니다.

 그 성경 말씀이 요 범위내에서 딱 국한을 해서 요 말씀에 더하는 사람은 다 요  기록한 그 형벌 재앙을 더한다 이렇게 말씀했기 때문에 우리는 이 하나님께서  이미 딱 국한시켜 놓은 이 문서 계시를 통해서 영감을 받는 요 것이 딱 끝을  맺어놨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단순하게 됐습니다. 아주 수월하게 됐습니다.

우리가 무슨 사람 사람마다 하나님의 그 영감의 권능을 받는 것이 이 사람은 이  권능 받고, 저 사람은 저 말씀을 통해서 권능을 받고 이래서 사람마다 권능 받는  것이 새로 그 사람이 진리를 얻어 가지고 그래 가지고 권능을 받는 것 같으면 좀  힘이 들겠습니다. 그거 찾을려면 힘이 안 들겠습니까? 그러나 모두 이제까지  선배들이 선진들이 다 써 먹은 그 진리. 선지 사도들이 써 먹은 진리, 그 써  먹은 진리를 통해서 우리가 권능을 받기 때문에 그 진리는 이미 문서에 기록해  있으니까 쉽다 그말이오.

 이런데, 사람들이 자꾸 외식으로 흘러 내려가는 것은 무슨 외식으로  내려가느냐? 이제 문서만으로 다 생각하고, 이 문서가 무슨 필요 있습니까? 이  문서가 무슨 필요가 있어요? 이 문서는 다만 우리에게 영감을 소개하는 영감을  소개하는, 영감은 하나님의 직접 역사인데 하나님의 그 권능을 받기 위해서  우리가 이 문서가 필요하지 권능 없으면 이거 껍데기 아무 소용없습니다.

예수님이 처음에 오셨을 때에 그때 이스라엘 말년에 있는 모든 성경 학자들과  열심쟁이 그 바리새인들이 이 문서만 거머쥐고 야단을 지겼지, 문서를 통해서  나타나는 권능을 받을라고 그들이 생각지 안했기 때문에 다 망하고 말았다  그말이오. 그와 마찬가지로 오늘도 꼭 그때와 같습니다.

 그러기에, '너희들이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얻어서 증거할 수 있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권능을 내비두고서 말씀만 가지고 말씀을 너희들이 아니까 증거할  수 있다 그렇게 말하지 안했습니다. 전부 구약에 속한 모든 성도들이 뭣 때문에  범죄 했느냐? 그 범죄 한 거, 물론 말씀을 떠나서 범죄한 것도 있지마는서도  말씀을 잘못 깨달아 말씀으로 인해서 범죄했습니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것도 말씀을 인해서 십자가에 못 박았어. 삼 십 팔 년된 앉은뱅이가 살아날 때에  그들이 마구 달라들어 가지고서 이는 틀림없다 이단이다 하면서 그렇게 정죄한  것도 말씀을 인해서 증거했다 말이오. 또 나면서 눈먼 자가 말할 때에 그 모든  사람들이 '나면서 눈먼 자가 낫았는데 보자.' 살펴 볼 때에 이 성경에 보니까  이거 틀렸다, 성경을 전부 근거해 가지고 정죄해서 그랬던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이 영감 없는 문서만 가지고 날뛰다가는 다 정죄를 받았고 주님을 다  십자가에 못 박았고 다 대적했지 그 말씀만 가지고 되지를 안 했다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구별해서 '내가 전함이 말에만 있지 안하고 성신의 감동과  권능에 있기를 내가 원한다.' 또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말은 뭐 이  세상 말 말합니까? 성경 말씀 말이오. 하나님의 나라는 성경 말씀에만 있지  안하고 권능을 받아야지 권능 안 받으면 안 된다 그걸 말한 것입니다. 그  사람들도 다 성경 말씀을 근거했지마는서도 주님을 다 팔아 버렸고 자기  메시야를 팔고 그들이 다 멸망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데에. 다 이 아버지가 알게 하니까 이것이  말씀이요 이 성경에 기록되는 말씀들이라 말이오. 들었는데, 이 베드로는 그거  듣고 나니까 그 결과가 어찌 되었느냐? 그 들은 영감, 하나님의 그 말씀을  자기가 영감으로 들은 그 영감에게 하나님께서 이 큰 축복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든지 듣든지 요걸 지식으로만 알라고  하면은 그 사람은 율법주의적이기 때문에 반드시 그는 교만해지고 결국은 그  말씀이 자기를 정죄하게 됩니다. 왜? 그와 같이 알기는 알았는데 그 말씀을  알기는 알았는데 그대로 행할 수 있는 능력 없으니까 그 사람은 안 그것이 네가  왜 알고 행하지 안했는가 했으니까 정죄받을 수밖에 없다 그말이오.

 이 베드로는 하나님이 알게 하신 영감으로 이렇게 안 것 여기에 네가 복이  있다. 네가 이제 시몬이라 하지 말고 베드로라 해라. 이 새 이름 새 축복  일반적으로 다 사람들이 불신자들도 먹고 사는 거 이북에 무신론자들도 먹고  사는 게 하나님의 축복이요, 일반 축복인데 새 축복 받았습니다. 새 축복, 새  이름 과거 이름이 아니라 새 이름, 새 이름을 네 이마에 기록한다, 또. 너는  새벽 별이다, 횐 돌을 줄 터이다 이게 다 전부 새이름이라 그말이오. 듣는 자  밖에는 모른다. 새 이름.

 또 반석. 이 반석이라 하는 것이 새 이름 받는 것이 권능 얻어야 되는 것이지  뭐 이 문서만 가지고 되겠습니까? 또 반석이 요동치 않는 것을 말씀하신 것인데  어떤 환경이나 주위가 와도 요동치 않는 것. 모두 다 그 사람들은 그 여론  신앙이니까. 그게 뭐 여론 신앙이니까 말하자면 그 사회 신앙이요, 또 환경  신앙이요, 자기 주위 자기 주위에 있는 거기에 피동 된, 신앙이라 말은 그  좇는다 그말이오. 신앙은 믿으며 좇는다 말인데 그 환경 주위를 좇는 사람들,  그러니까 그것이 뭐이냐? 주위 환경 신앙인데, 그러면 이런 환경이 오면 이  환경에 피동되고 저런 현실에서도 그 현실이 피동되고 이렇지마는서도 베드로,  반석 같은 거는 뭐 독침이 와도 변동 없고 공산주의가 와 가지고 어떻게 한다  해도 변동 없고 변동이 없다 그말이오. 그게 변동 없는 것이 권능 아닙니까?  권능 아니고 어떻게 사람이 변동 될 수 없습니까? 변동 안 되겠습니까?  이러니까, 우리가 과연 붙들여서 가죽을 벗긴다, 또 눈을 뺀다 눈을 쑥 빼요  눈이 디리디리 디린다 그말이오. 가보니까 눈을 쑥 빼서 눈은 뻐꿈 하고 눈  하나는 빼서 디리디리하고 있더래요. 디리디리하고 디리디리 왔는데 '봐라,  이놈아 너도 지금 우리 말 안 들으면 저래 빼이진다.' 그럴 때에 '아이구 어짜면  여기에서 벗어날까' 하면은 벌써 졌다 그말이오. '주님 나 위해서 하나님으로서  모든 것 다해서 우주적인 고난을 나 위해서 받아서 날 사랑하셨으니까 나도 이미  죽기는 죽는 건데 주님을 사랑하므로 주를 위해서 진리를 위해서 눈을 빼이고  죽었으면 좋겠다.' 뒤로 돌아보지 안하고 자꾸 앞으로만 지금 나아가고 그 뒤를  돌아보지 안한 자, 자리를 들고 간 자. 자리를, 삼십 팔 년된 병자 자리를 들고  간 자. 다시 뒤에 앉았던 보금자리 쳤던 옛날 자리를 돌아보지 안하고 앞으로만  자꾸 갔다 말이오. 나도 눈을 빼이기로 그랬으면 좋겠다. 이걸 원하면서  거기에서 기도하고 이랬으면은 될 터인데, 그것이 다 베드로 반석 같은 믿음인데  그것이 권능 아니고 되겠습니까? 이거 전부 권능에 속한 거라 말이오.

 일반전인 축복이 아니고 특수 축복을 받은 거 그리스도 안에서 있는 특수  축복을 받는 것도 이 권능으로 된 것이고, 또 이렇게 새 이름 받은 것도 이것도  권능으로 된 것이고 또 요동치 않는 부동의 이 능력 받은 것도 이 권능으로 된  것이고 또 하나님의 교회를 세운다 이랬으니까 교회의 기초라 말이오. 교회의  기초 그것도 권능으로 되지 딴 걸로 되겠습니까? 우리가 그 교회의 목사가  기초가 되든지 장로가 기초가 되든지 어짜든지 기초 된 사람이 그 교회의 목자요  그 교회의 상은 그 사람이 받지. 기초라 말은 그 사람 토대 위에 세웠다  그말이오. 그 사람 토대 위에. 그러면 그것이 뭐 이냐? 그리스도의 형상이지. 네  위에 교회 세운다는 거는 교회의 터 된다 말이오. 교회 기초.

 또,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한다. 음부의 권세는 이 마귀의 권세 아닙니까?  마귀 권세요 세상 권세요 다 마귀 권세요 사망의 권씨요 죄의 권세요 이런  권세이니까 이 세상의 배암의 꼬리의 권세가 있는 배암의 꼬리가 다다다다 하는  그거라. 배암의 꼬리. 여러분들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도는 지금 근  육천 년이 다 돼 가지마는서도 그 때나 지금이나 발표하는 표시가 좀 달랐고  방편이 달랐지 일관입니다. 인생관에 대해서도 일관이요 행복관에 대해서도  일관이요 생사관에 대해서도 일관이요 꼭 일관, 하나입니다. 한쪽으로 쪽먹줄  모양으로 요래 나갔지마는 세상은 갈 지(之)자 걸음이라. 어느 시대 어떤 사람은  이렇게 인생은 이렇다 말하고, 또 인생은 이렇다 말하고 갈 지(之)자로 이렇게  이렇게 말하는데, 마귀란 놈은 이렇게 저렇게 말해. 그러니까 오늘은 또 이  세대가 무슨 세대라, 또 내 일은 무슨 세대라 정함이 없는 사람들 만물보다  거짓된 사람이 자기 생각대로 하다 보니까 세계에 모든 정권자들이나 모두  머리된 사람들이 다 영감된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에 그 사람들이 이리 저리  하니까 시대가 자꾸 이리 저리 변하고 그러나 시대가 이리 저리 한다고 해서  시대를 정복하지 시대에 따라서 되동되어 가는 사람들 없습니다. 요 시대이니까  요 시대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요렇게 대항해야 되겠고, 조 시대는 요렇게  대항해야 되겠고 그가 시대가 이렇게 변동된다고 해 가지고 시대적인 인생관이나  시대적인 행복관이나 시대적인 가치관을 가지지 않는다 말이오. 시대야 뭐라 고  말하든지 하나님이 정해 주신 고대로 가지고 있어. 자,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함도 이것도 권능 아닙니까? '음부가 널 이기지 못하리라.'  또. 뭐 받았습니까? 천국, 천국 열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거. 서기관들은  마치 그 곡간에서 새것과 옛 것을 내어 오는 자와 같다. 이러니까 그 하나님이  하나님이 이때에는 이렇게 영감하시면 그 영감 떡 받아 가지고서 증거하고 저  영감 받아 가지고 뭐 육십 육권이야 이미 다 이래 문서로 기록했으니까 누구든지  한글만 알면 줄줄 읽으면 될 것이라 그말이오. 그런데 새로이 계시 주는 그 계시  받아 가지고서 증거를 해야 된다 그거요. 그래 옛것과 새것 옛 것은 뭐이냐?  이미 문서로 기록되어 있는 거 가르치는 거. 새것은 뭐이냐? 거기에 대해서 또  새로 깨달음. 그러면 우리가 설교도 꼭 새 설교 해야 됩니다. 옛 설교하면 못  써. 새 설교해야 돼. 새 설교가 뭐이 새 설교이냐? 지금 신구약 성경 말씀은 딱  한정되어 있지마는서도 이 시간에 어느 말씀을 증거할는지 그 선택이 문제라  그말이오. 선택 잘 못하면. 마귀도 내나 성경 선택했고 주님도 성경 선택한 것은  생명에 속했고 마귀가 선택한 거는 그거는 마귀에게 속해서 사망을 일으키고  만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천국 열쇠는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있는 그런 진리를 증거하는  것이니까 그것을 해결은 하나님이 해 주지 뭐 인간이 해 줄 수가 있겠습니까?  이러니까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시는 말씀을 하고 하나님이 전하는 말을 전하고  이라면 그대로 순종하면 되지마는서도 마귀의 시키는 것도 성경 보고 빼내어  가지고 그렇게 했지마는서도 그대로 하면은 되겠습니까? 이러니까 열쇠가  그것만이면 다 권능인데 그것도 뭐이냐?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다 된다 그거요.

되나, 어떤 사람 보니까 천국 열쇠를 그날 교인들에게 설교해 주니까 모두  열쇠를 척척 차 가지고 열쇠로 척척 꺼내니까 다 돼 버립니다. 그러나 내나 성경  말씀을 가르치기는 가르치는데 사탄이 가르치는 그것을 가르쳐 가지고서  하나님의 도를 배반하는 그런 자들도 있다 그말이오. 또 가르치기는 바로  가르치는데 고 사람 개별적으로 마귀가 역사해 가지고 듣기는 천국 열쇠를  주는데 이 사람은 천국을 잠가 버리는 그것으로 정 반대의 멸하는 그것으로 또  깨닫는 사람이 있다 말이오. 한 자리 있으나.

 그○○○조사님은 이렇게 말했어. '해는 꼭 같이 깡깡 쬐우고 있는데 그 자체가  진흙이 되어 있는 것은 딴딴 굳어지고 그 자체가 초가 되어 있는 거는  물신물신해진다.' 그러면 같은 은혜가 오는 그 자리에서도 그 자체의 본질과  본성에 따라서 달라진다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그런 거 가리켜서 애연의  암초라. 사랑의 잔치는 뭐냐? 하나님의 진리 영감 잔치인데 진리 영감 잔치에  거기에 암초라. 가만히 숨어 가지고 껍데기 예수 믿는 척 하지만 그래 가지고서  다른 사람 넘어지게. 저 사람 보니까 저래 예수 믿어도 되네. 저 사람 보니까  저래 주일 지켜도 되네. 저 사람 보니까 저렇게 뭐 돈에 대해서는 저럴 때는 다  형편에 따라서 그렇게 해도 되네. 이러니까 그게 암초라 말이오. 다른 사람  넘어지게 하는 암초라.

 이러니까 천국 열쇠를 받게 된다. '네가 땅에서 매이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린다.' 이게 최종 심판권이라 말이오. 그러면 그  사람이 말한 대로 행동, 그 사람이 말과 행동하는 대로 그대로 이루어지니까  하나님이 그 사람 말하고 행동하는데 따라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따라하요. 이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은, 경영은 사람에게 있고 이루시는 이는 하나님이라  이랬다 말이오. 그 사람이 하는 대로 그대로 이루어지니까 누가 합니까?  하나님이 그와 같이 따라한다 말이오. 하나님이 그와 같이 따라하는 것은 그  사람 말에 하나님 따라합니까? 하나님 당신이 이거 원하신다 하니까 이거  원하시니까 '네가 이렇게 해라.' '예' 하고서 하나님에게 순종해서 했기 때문에  그 사람의 언행 심사에 하나님이 따라서 움직이신다 그거요. 그러니까 능동은  누구입니까? 사람 보기에는 그 사람이지마는서도 능동은 하나님이시라 그말이오.

이게 전부 권능에 속한 것입니다. 이 권능에 속한 것이니까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에 이 권능을 받을라고 애쓰는 이것을 사람들이 하지를 안해요.

 내 어떤 사람 말할 때에 '아, 그 설교를 좀 교인들이 은혜를 받도록 권능을  받도록 그렇게 설교를 해라.' 이라니까 떡 말하기를 '목사님 내 그말은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이해가 안 되는 거는 목사님이 설교하는 고 대로 한 자도 안  틀립니다. 한 자도 안 틀리고 내가 딱 대조해 가지고서 한 자도 틀리지 안해.

어. 아 하는 것도 하나도 안 틀립니다. 내 고대로 꼭 전합니다. 고대로 꼭  전했는데 어째 그래 설교를 잘하니 못하니 자꾸 그렇게 말씀합니까? 그게 내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그래 말해요. 그래 내가 있다가 '아. 그러나 네가  그렇기 때문에 그게 틀렸다. 바울이 말하기를 내가 전하는 것이 말에 있지 않고  권능에 있기를 원한다고, 이렇게 말했는데 네가 전하는 말은 꼭 같고 옳은 꼭  같아서 어. 아 하는 것도 음도 다 같이 하고 또 말도 다 같은 말하지마는서도  속에 권능이 역사하지 안 했다. 권능이 역사하지 안했기 때문에 거기에는 변화가  안 되고 교인들이 마다고 다 배척 운동을 하고 그런 것이다. 다 같은 곳을  위하는데 어떤 사람 설교하는 것은 그 교인들이 감화를 받아 가지고 다 변화가  되고 야단이 나노? 이러니까 네가 말만 전하는 그것은 녹음기지 앵무새와 같은  그런 것이지 권능을 네가 받지 안하고 권능을 전하지 않았기 때문에 헛일이다.'  그걸 내가 누누히 말했다 말이오. 그러나 그 사람이 지금도 깨닫지 못 하고,  하나님이 알게 해 주지 안하면 몰라요.

 '아, 내가 이 설교 들을 때에는 권능을 내가 받아야 되겠다. 권능을 받아야  되겠다.' 이렇게 깨달아서 권능 받을라고 애를 쓰는 사람, 그 권능이 뭐 병  낫우는 권능 그런 게 아니라 그 권능이 여기에 있는 대로 요 몇 가지  권능입니까? 자, 복 받았고. 또 둘째 새 이름 받았고, 또 반석, 또 교회 건축 또  음부의 권세 이김 받았고 또 천국 열쇠. 또 매면 하늘에서도 매 이는 거, 매이는  거, 마지막에 결정권 몇 가지입니까? 일곱 가지, 이게 전부 내나 하나님이  가르쳐 주시는 하나님의 뜻, 말하자면 진리 이 신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뜻  아닙니까? 뜻인데 이 진리를 통해서 이 일곱 가지 권능이 그에게 와 가지고  열매를 맺었다 그거요.

 또, 그 사람들이 세례 요한이라 하는 거 뭣 보고 아요? 또 엘리야라 하는 것은,  예레미야라 하는 것은? 다 성경에 기록한. 그들이 엘리야를 봤소? 세례 요한은  그때 봤는지는 몰라도 엘리야를 봤소? 예레미야를 봤소? 선지자들을 봤소? 다  문서에 기록한 구약 성경 보고 구약 다 그때 완성되어 가지고 있었습니다. 구약  성경보고 그 사람들이 그렇게 다 안 것이라 말이오. 다 하나님 말씀  알았지마는서도 영감 받지 안한 고것이 차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설교하는 사람도 이 말씀을 가르쳐서 알려야 되겠다 하는 그거, 이제  말씀을 알아야 말씀 안에 영감이 있기 때문에. 자. 따라합시다. 내재적 영감!  내재적 영감! 내재적 영감이라 말은 이 지금 세계에 신학자들이 공통되어 가지고  있는 건데, 내제적 영감이라 말은 성경 안에서 역 사하는 영감이라 말입니다.

성경 안에서 영감이 내재해 가지고서 증거하는 그 영감을 말합니다. 이러니까  신구약 성경을 껍데기 문서만 보는 사람도 있고, 또 지식으로만 보는 사람도  있고, 자기 상식으로 보는 사람도 있고 요래 가지고 다른 사람을 꼬집기 위해서  보는 사람도 있고, 다른 사람 정죄하기 위해서 보는 사람도 있고. 이 문서  보면서 권능 얻기 위해서 받으면 이 속에 권능이 있다 말이오. 이 속에,  그러기 때문에, 이 신구약 성경 말씀은 전부이 하나님의 영감이기 때문에  영감이기 때문에 이 영감 말씀을 자기가 자꾸 하면서 참 영감 받기를 원하고  권능 받기를 원해 가지고서 이 말씀을 읽으면 읽으면서 '요 말씀대로 내가  실행하게 해 주옵소서. 요 말씀대로 내가 세상을 이겨서 날 이겨서 마귀를 죄를  이기게 해 주옵소서.' 그걸 원해 가지고 보면 되고. 요 성경 말씀을 요래  가지고서 알아서 다른 사람보다 더 알아 가지고 내가 유식한 사람이 되겠다, 또  요래 알아 가지고 다른 사람 뭐 잘못하면 요걸 꼬집어 가지고,-지금은 잘  모르는데 과거 제가 시비할 때에는 그런 사람 모두 성경을 가지고서 요랬고.

요래 가지고 꼬집어 가지고 요 정죄할까? 조래 꼬집어 가지고 정죄할까? 뭐  정죄하려고 성경을 그 사람들이 많이 봤어. 그래도 정죄할 게 없으니까 정죄를  못 했다 그말이오. 그래 가지고 언제 시비가 났을 때에 제가 팜프렛 난 그걸  미리 듣고서 잠깐 그 정죄 받아 나는 정죄 받아서 죄인돼서 쫓겨나올 것이기  때문에 그때 그걸 보고서 기록을 했다 말이오. 기록을 해 가지고 팜프렛을 해  가지고서 가서 나눠 버렸더니 마는서도 뭐 나누니까 그거 말한 줄. 또 그 사람도  성경 가지고 날 정죄했는데 나도 또 성경 가지고 정죄했다 말이오. 정죄했는데  그 정죄는 거짓부리 정죄이고 내 정죄는 맞았다 그말이오. 그 정죄는 뭐이냐  하면은 이 믿는 형제가 시비하는 것이 틀렸다 하니까 자. ○○에 ○○에 속한  사람이 믿는 사람이냐? ○○의 사람은 믿는 사람이 아니지 않느냐? 그래  가지고서 안 믿는 사람을 믿는 사람으로 했다 해 가지고 정죄를 했는데 나는  ○○을,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의 구주로 믿는 사람이 믿는 사람이라 이렇게  말했으니까 나는 ○○이 마귀 자식이 아니고 ○○이, 내가. 하나님의 백성들이니  형제라고 말했고. 그들은 형제가 아니라고 말했고 이랬으니까 나중에 그게  나가니까 다 읽어보면 알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 놓으니까 다 박살이 돼 버려서  그만 그때 그거 가지고 다 계획이 다 깨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이 영감으로 된 말씀이기 때문에 영감의 반대는 마귀 감화요,  또 성령의 욕심 반대는 마귀 역사요, 이 신구약 성경 말씀은 전부 성령의  욕심이요 성령의 소욕이요 성령의 소욕을 이 소욕된 말씀을 자꾸 자기가 읽고  사모하고 묵상하고 이제 이 성령의 소욕의 사람이 될라고 하면은 소욕의 사람이  될라고 하는 그것이 뭐이냐 하면은 이 말씀 가지고만 됩니까? 이 말씀 속에 있는  능력이 와 가지고서 자기를 성령의 소욕의 사람을 만들어 주시기를 원하니까  자꾸 성령의 소욕의 말씀을 자꾸 이러니까 이 성령의 소욕이 강하요 이 육체의  소욕이 강하요? ○○○목사님 어느 게 강합니까? 성령의 소욕이 강하다  그말이오.

 강한데 여기에 모래를 한 말 담아 놓은 데다가 모래를 한 말 담아 둔 데다가  금을 가지고 금쪼가리를 자꾸 주워 넣어 놓으니까 금사래기를 자꾸 주워  넣으니까, 자, 그라면 금이 거기에. 모래가 담겨 있으니까 금이 거기에 담 길 수  있소? 못 담기요? 모래가 떠서 나가요? 예? 모래가 뿍실이 담아 놓고 물 부으면  모래가 뿍실이가 떠나가는 것처럼 거기다 모래보다 중량 무거운 금을 넣든지  수은을 넣든지 하면은 떠나간다 말이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요 그 안에는 영감이요 그 안에는 하나님이 계시는 이렇게 실력 있는  말씀이기 때문에 자꾸 그 말씀을 새김질하고, 또 묵상하고 뭐하려고? 그래  가지고 나도 그 권능 받을라고, 권능은 영감인데, 영감이 권능인데, 영감  받을라고 하나님이 내 안에 계서 하나님과 동행하려고 이걸 소원하고 이라니까  자꾸 육체의 소욕이 떠나가지. 성경 말씀을 읽으면서 지식적으로만 가지고서 그  지식을 가지고 교만하고 다른 정죄하고 다른 사람한테 유식한 사람이라 소리를  듣기를 원하고 이래 가지고 그걸 팔아 먹고 이 진리를 팔아먹고 이라기 위해서  '하, 요 진리 가지고 요만 하면 지금 내일 주일은 아주 좋은 상품이니까  팔았으면은 뭐 교인들이 좋아서 예물도 가져오고 좋은 무슨 반찬도 사 가지고  오고 아주 좋겠다.' 요라기 위해서, '아, 요 말만 했으면 고 모든 사람들이 다  감동 돼서 다 끌려오겠다.' 요걸 위해서 제가 성경 보는 것이 그 목적이요  증거하는 것이 그 목적이기 때문에 땅의 것을 구하니까 썩은 것을 얻지요. 심은  대로 거둔다고 하지 안했습니까?  그러나 그렇지 안하고 '이 말씀 안에 있는 권능 얻어서 나도 이 말씀대로  세상을 이기고 마귀를 이기고 죄를 이겨서 이 일곱 가지 축복, 이 일곱 가지  축복을 나도 받겠다. 요 소원을 가지고서 성경을 읽으면 자꾸 읽고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이라니까 묵상을 하니까 그 영감과 진리가 자꾸 자기 속에서 그  계심이 역사하니까 떠나가는 거는 떠나가는 것은 뭐이 떠나갑니까? ○○○목사님  뭐이 떠나가요? 예? 뭐이 떠나가지? 예? 육체의 소욕, 마귀의 것, 죄악의 것,  사망의 것 그게 두부렁 둥 자꾸 떠나가면 자꾸 떠나가니까 그 안에 뭣만 있어?  진리만 있어. 영감만 있어. 하나님 만 계시요. 그라니까 원하는 대로 구하라 다  이루리라. 그 소원이 전부 하나님의 소원이기 때문에 그건 이룰 수 없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 그 말이요.

 그러기 때문에, 증거하는 사람도 이 말씀을 증거하니까 이 말로도 못 듣고  있으니 이거 깨닫도록 해야 되겠다, 또 말로는 깨달았는데 도무지 이런 사람이  되기 위해서 능력을 받을라고 하지 않으니까 능력 받지 안하니 안 되겠다 이래  가지고서 그 증거하는 사람이 자기가 말로만 증거해서 말만 알도록 할라 하는  거니까 한번 세밀히 했으면 유식한 사람에게는 말할 게 없다 말이오. 그러나 그  사람이 목적이 능력 받기로 하기 위해서 목적이니까 그 박사가 여기 앉아  가지고서 박사들이 앉아 가지고 이래 자꾸 이래 다 그런 아주 유식한 지식층들이  꼭 앉아 가지고 이라니까 말로는 다 들었지만 그게 권능을 못해. 또 증거하라,  증거하는 이 증거하는 사람은 속에 권능이 들어가서 권능을 받아 가지고  변화하도록 하기 위해서 권능을 전할라 하니까 권능은 하나도 받지 못했으니까  자꾸 그 말씀을 또 전하고, 또 전하되 전하는 목적이 그러니까 힘 있게 강하게  전한다 말이오. 그런 가운데서 권능이 들어간다 그말이오. 그러니까 이 모두  말만 받을라고 애를 쓰지 능력을 받지 않으니까 전부 외식이요 껍데기입니다.

아무 소용이 없어.

 무슨 그 사람이 그런 어려움에 있어서 참 승리를 했다. 그런 깨달음을 얻었다.

어린 아이가 자기 할머니가 있다가서 애, 너. 그 큰 거는 다섯 살이고 조그만한  거는 네 살이라. 네 살이니까 다섯 살 먹는 아들한테 말하기를 '야 너거 동생  손잡고 가거라. 손잡고 가거라. 네가 손을 잡고 이래 딱 잡고 가거라.' 이라니까  '할머니' '그라면 쥐어 줄 때 요래 딱 쥐고 이래 잡고 가거라.' '안해요. 할머니  참. 선생님이 가르치시기를 남자하고 여자하고 가까이 하지 말라 했는데 손을  잡으라 하네' 이라면서 탁 털어 '아, 그런 게 아니라 괜찮다.' '안해요 선생님이  그래 하지 말라 했어요.' 고렇게 권능 있게 받았는데 권능 있게 받았는데, 왜  권능 있게 받지 못했느냐? 그걸 들을 때에 참 그들은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에  권능을 다같이 받았다. 그는 이성에 이성 범죄를 승리할 수 있는 그 권능을 받았  다 이랬는데 이성 범죄가 온 세계를 휩쓸어 가지고 막 삼키고 있는 이 판인데 그  권능을 받았다. 그러면 그런 학생들의 그 깨끗함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권능까지 받은 그것이 부럽다 그거요.

 또, 이래 가지고는 무슨 음식을 맛있는 것을 해 가지고 왔더래요 해 가지고  오니까 아이들이 안 먹는다고서 '와 안 먹노?' '선생님이 주일날 산 거 먹지  말라하던데요.' 뭐 어머니가 사정을 하고 부탁을 '요번만 먹어라. 요 다음에는  주일날 시장 안 보고 해다 줄거다.' 그렇게 사정해도 안 먹어요. '선생님이 먹지  말라 했어요.' 그 아무리 기어코라도 그 아이들이 안 먹은 거기에서 부모네들이  그 주일날 시장 보는 걸 거기에서 고쳤어. 그 권능 아닙니까? 이 권능을 말해도  이 권능을 안 본다 그거요.

 무소 가죽 무소 가죽 안에 싸여 가지고서 전도한다고 잡아 가지고 무소 가죽  안에 팅팅 불려 가지고 쭉 늘어트려 가지고 그 안에다 집어넣어 넣고 그 안에다  집어 딱딱 꾸어매 가지고서 공중에 달아놨으니까 햇빛이 오니 자꾸 지금 쪼이  들어간다 말이오. 쪼이 들어가면 나중에 무소 가죽이 이렇던 게 요렇게 요래  쪼가려 들어가니까 그게 그래 가지고 뭐이 그러니까 거기에서 자꾸 쪼여  들어가니까 피가 나올 거라 말이오. 기름 짠다 말이요. 피가 나오는데 그래 놓고  보자 어짜는고 보자, 하고서 밑에 가만히 가 서 들으니까 찬송하고 기뻐하면서  '주여, 감사합니다.' 기쁨과 찬송이 넘치거든. 그 사람은 죽었지만 그 사람이  예수를 증거했어. '예수교는 이런 예수교로구나. 그 안에는 생명이 있고 죽음을  그 초월한 생명이 있고 이 세상이 해할 수 없는 기쁨과 즐거움과 평강이  있구나.' 그래 가지고서 그 무소 가죽에 달아서 죽이고 난 다음에 그 지방의  사람들이 예수를 믿어서 교회가 비로소 섰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이런 말을 들으면 '아. 나도 그런 권능을 받아야 될 터인데' 여론  신앙. 주관 신앙. 영감 신앙. 이 세 가지뿐입니다. 세 가지. 여론 신앙은 환경  신앙이요 주위 신앙이요 그 사회 신앙이요 시대 신앙이요, 이제 또 주관 신앙은  자기주장 그게 모두 다 둘뿐이라. 이 세상에는 객관과 주관 그 둘뿐이라 말이오.

그러니까 자기 아닌 딴 것들을 따라서 움직이는 거, 자기로 움직이는 거  둘뿐입니다. 둘뿐인데 그게 멸망이오. 이제 하나님을 따라 움직이는 거. 이  새로운 하나님의 움직임이 하나 있으니까 그게 서이뿐이니까 세상에는 둘  뿐이라. 자기를 따라 움직이는 거, 또 자기 아닌 다른 모든 피조물 따라  움직이는 거 이거 다 사망이요, 사망의 신앙이 둘이요, 하나 신앙은 하나님을  따라서 움직이는 그것이 생명 신앙이라. 이러니 요 세 가지 간단해요.

 간단하니까, '아, 내가 독침에 따라서 피동이 되지 안해야 할 터인데. 그거  지금 좀 제일 염려가 돼요. 그 사람들이 요 달아서 말이죠. 요 엄지 손 가락을  야전줄로 요래 딱 둘을 달아 가지고 요게 말초 신경이니까 요거 당기면 요거  굉장한 건데 요래 가지고 그 무거운 중량을 딱 달아 놓으니까 이 사람이 얼마 안  가서 그만 죽어 버려요. 고럴 때에 그 되기 아픈 고걸 못 견뎌 가지고 아픔에  피동될까 그말이오. 아픔에 피동되는 거나 뭐 저 피동되는 거나 다 그 주님 아닌  다른 피조물에게 피동이지 딴게 뭣 되겠습니까? 이러니까 그것 때문에 그것도  거석하고, 불가운데서도 그런 것도 좀 뜨거운 그것도 그런데 참 해골 구덩이에  거기에 들어가 가지고는 아주 산다씽이 그렇게 고난을 당했어요. 이러니까  조그매만 아파도 이거 못 견디니 아픔 이것 때문에 문제라.

그래서 기도는 늘 저는 그래합니다. 이아픈 거 그럴 때에 불속에 들어가서  주님과 동행할 수 있는, 사자 구덩이에 들어가 가지고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는 이게 다 권능 신앙인데, 이것이야 초자연의 능력이 당신의 능력이 아니고  이거 됩니까? 당신의 능력이면 무소 가죽 아니라 온 전신에 피육을 떠서 가죽을  벗겨도 가죽을 벗겨도 그속에서 입에는 감사와 찬송이 나올 수 있는 이것이  당신의 권능입니다. 피조물에게 제재받도록 할 수 있는 초자연의 권능 아닙니까?  이 권능이 아니고 뭐이 됩니까? 이 권능 달라고 항상 기도한다 말이오. 이  기도해서 그런 때도 그래야 증거가 되지. 아야, 처음에는 그놈 독하다  이라지마는서도 나중에 어느 도수가 지나가고 나면 그 독함이 아니다. 독함이  아나고 이야 말로 하나님의 권능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데도 지식으로만 들을라고 말고  지식을 자꾸 말해 그 지식을 통해서 내가 권능을 받기 때문에, 재독을 하고 또  내가 자꾸 말씀을 묵상하면서, 묵상하는 것은 뭐이냐? 묵상하면서 그 권능  받올라고 하는 것이요, 권능 받을라고. 권능을 받아야 일이 되지 권능 안 받으면  다 아무 소용이 없어요. 전하는 사람도 말씀을 전하는 목적이 뭐이냐? 그  사람들이 권능의 사람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말씀 전하는 것이고. 듣는 사람도  그렇고. 말씀을 듣는 것은 이것은 온 세상을 다 반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세상과 반대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인데? 이 말씀은 전부이 세상과  대적이 되는데 어떻게 세상과 대적이 되는 세상을 이길 수가 있겠습니까?  이러니까 세상 이거는 하나님의 권능 외에는 이길 수가 없어.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된 것만 구원이 돼지지 능력으로 돼지지 않은 것은 구원의  부스러기가 하나도 없어요. 이러니까 그 권능을 전부 이 하나님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권능으로 딱 제한 해놨기 때문에 우리는 이 말씀을 들을 때 권능 받기  위해서 우리가 노력을 하자 그말이오.

 이번에 대구에서도, 백 팔십 몇 건이던가 이렇게 거석했는데 그것도 하나님의  권능이 여기에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난 그걸 사람들이 부인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난다는 것을 증거하는 말 아닙니까? 혹이 뚝 떨어진 것도  그것 아니냐 말이오. 그 사람이 옆에 옆구리에 고름이 찔찔 나 가지고 암만  교회서 돈을 대어 가지고 암만 치료할라 해도 안 되니 장 고름이 찔찔 나왔는데  그 집회딱 되고 나니 고름이 딱 중단돼도 그거 이 권능 아닙니까? 이래도 본인은  모르기는 모른다 말이오. 모르는 사람은 몰라.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성령의 권능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함이요,  또 이 말씀은 우리에게 이 탈선 길에서 우리를 바른 길로 이래 해서 우리를  하나님과 우리를 연결되도록 소개하는 중매장이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찾아가는 길을 가르쳐 주는 것이 안내자가 이 하나님 말씀인 것입니다.

그 하나님 만나지 못하고 이 말씀만 가지고 있으면 그 사람 책 보따리요 아무  소용없어.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권능은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을 내가 영접하는데는 나를 하나님께 바쳐야 돼요.

나를 바쳐야 하나님이 당신이 상대해 주시지. 찌꺼러기 가지고 내 총명만  바치는데 하나님이 같이 해 주십니까? 욕심만 바치는데 같이 해 주십니까? 내게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목숨을 다해서 내 전부를  다해야 또 당신이 만나준다 말이오.

 


선지자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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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81 영감인 진리를 구할 것/ 야고보서 1장 5절-8절/ 830705화새 선지자 2015.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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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79 영감으로 인정하는 실존/ 요한복음 14장 11절-24절/ 871220주후 선지자 2015.12.09
3278 영감신앙-여론/ 마태복음 16장 13절-28절/ 840611월새 선지자 2015.12.09
3277 영감신앙-여론/ 마태복음 16장 17절-20절/ 840612화새 선지자 2015.1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