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순종은 실상이다

 

1981. 1. 3. 새벽 (토)

 

본문:히브리서 11장 1절∼2절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우리 사람은 하나님 앞에 지음을 받을 때에 모든 피조물 중에 특수한 지음을  받은 것이 사람들입니다. 천군 천사보다도 뛰어난 것으로 창조 받은 사람입니다.

그중에도 택함을 입은 자들은 하나님의 하나만 되는 그 목적대로 지음을 받은  특수인들입니다.

그러기에 자체도 하나님 다음으로 모든 면이 고상하게 되어가야 할 자요, 또  하나님 다음으로 높은 위치를 가진 자요, 하나님 다음으로 어렵고 존귀한 일을  영원히 맡아서 하여야 할 자입니다. 이것을 표시해서 하나님이신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 한다, 또 하나님이신 그리스도의 몸이라, “그리스도의 지체라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망에 대한 지식도 생명에 대한 지식도 다 구비해야 할 자이기 때문에  타락이 있었고 또 예수님의 구속이 있었습니다.

이 위치를 하나님의 율법적으로 감당을 하는 데는 유한한 사람으로 할 수 없기  때문에 신인양성일위이신 예수님께서 대속의 공로를 베푸셔서 죄에 대한 문제,  의에 대한 문제, 하나님과 화친에 대한 문제를 대속하셨습니다. 이렇게 대속해  놓으신 이대로의 구원을 이루어 가도록 하시기 위해서 여기에 대한 책임자  보증자는 곧 하나님이신 성령님과 진리가 보증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이루어 가는 것은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나 종류적으로나  영원한 것이어야 하고, 또 온전한 것이어야 하고, 또 변치 않는 것이어야  합니다. 모든 이런 면 저런 면 무엇이든지 다 그러합니다.

그러기에 이대로의 본질과 본성으로 된 것이 아닌 것은 완전한 하늘나라에 갈  수가 없고, 영생하는 세계에 갈 수가 없고, 또 하나님과 모든 피조물 사이의  중보되는 이 중보의 위치에 설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일을 건설하는 데에는 법적으로도 신인양성일위가 건설하신  것처럼 우리가 실질적으로 이루는 것도 신인양성일행이 될 때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람이 결합하여 한 움직임을 가질 때에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은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그 일이 사람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뿐이지  일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잘 나타내도록 되 어 있는 것이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역사하시고 사람은 거기에 피동돼서  나타내도록 돼 있는 것입니다.

비유컨대 전구는 전기가 올 때에 불이 켜질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는 것이나  전력과 끊어지면 그 전구는 빛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전구의 빛은 순전히  전기의 힘이지마는 전기가 그 전구가 없으면 또 빛을 나타내지 못합니다. 또  전구는 전력이 아니면 빛을 나타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완전을 비유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비유가 완전히 맞는 것은 아니지마는 이와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통하지 않고는 사람에게 관한 것을 나타낼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도성인신하셔 가지고 양성일위로 역사하신 것입니다.

그런고로 사람이 하는 것같이 보이나 실은 완전자가 하신 그 완전한 것만이  심판을 이기고 의에 나라에 존재할 수 있고 역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기에  순전히 하나님이 와서 하셔야 합니다.

“금을 불로 연단하는 것같이 믿음을 연단한다”(벧전1장7절) 그말은 방편이  잘못된 것도 다 제거되지마는 또 이 종류가 있어야 될 때에 저 종류가 있는  종류가 잘못된 것도 다 제거됩니다. 방편과 종류만 잘못된 것이 제거될 것이  아니라 능력도 다 제거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능력이 와서 하나님의 방편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이  하고자 하시는 그 종류가 되어졌을 때에 그것은 영생이요 영원입니다. 그것은  남아 있습니다. 그 외에 것은 다 제거됩니다.

이것을 비유해서 금과 은과 보석으로 지은 집 불타지 아니할 요소로 된 것과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지은 이 심판받을 요소로 된 것을 구별했으니 이것은  완전자의 완전으로 된 완전의 것만 하늘나라 들어가고 완전한 것이 하지 안한  완전치 못한 것은 하나님의 심판에 다 정죄받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하늘나라는 하나님의 소원하는 그 소원, 또 하나님이 하신 그 하나님의  방편, 또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이 하신 것 그것만 하늘나라에 가서 있는  것입니다. 그 외에 딴것은 다 제거되어집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인적 요소로 그것을 이루는 것이 아니고 순전히  하나님의 그 신적 요소 그것이 인적 요소를 통하여서 나타났을 때에 그것이  우리의 구원입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라고 말했고, 또  영생하는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순전히 하나님의 요소로만 우리의 구원이 된다는 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요소로만 되는데 그 요소가 나타나는 것은 인적 요소를 통해서  나타납니다. 그러면 우리의 구원은 신적 요소가 인적 요소를 통해서 나타난  요것이 하늘나라에 가서 영원히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신적 요소가, 신적 요소라면 하나님의 것입니다. 인적 요소라면 사람의  것입니다. 신적 요소가 인적 요소로 나타난 그것은 그 작용이나 그 자체나  그것으로 인해서 비추어지는 그 광채나 이런 것이 다 영원하기 때문에 영생이라  그렇게 말씀한 것입니다. 그는 없어지지 않고 영원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그 요소, 능력도 하나님의 능력, 지혜도 하나님의  지혜, 속성도 하나님의 속성, 또 그 종류도 하나님이 택하신 하나님의 그 뜻의  종류, 순전히 위로부터 받아 가지고 우리가 가진 것이 이것이 생명이요 지혜요  능력이요 이것이 작용해서 세상에 나타났을 때에 이것을 가리켜서 빛이라 세상  빛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장 4절에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말씀하신 것은 그 사람의 움직임이 세상 빛이 된다는 것이요 모든  피조물을 통치하고 피조물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영원한 봉사의 것이라 하는  말입니다.

그런고로 전적 하나님의 것을 받아야만 하는 우리들인데 하나님의 것이 예수님의  공로로 인해서 다 우리의 것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것이 되어 있는 것은  법적으로 되어 있고, 계약적으로 되어 있고, 실존적으로 되어 있지마는 내가  이것을 받아 누릴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문제입니다. 지금은 받는 시기요 또  받은 것을 내가 누리는, 내가 사용하는 누리는 시기인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하나님이 주셨는데 그것은 어디 있는가? 곧  그것은 두 곳간에 재였으니 한 곳간은 문서계시인 이 하나님의 뜻이요 하나는  은밀계시인 하나님의 감동으로 우리에게 알려 주는 영감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서기관은 마치 곳간에 있는 옛것과 새것을 내어 쓰는 것이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이 두 곳간 안에 신구약 성경이라는 이 문서로 되어 있는 이 곳간, 또  우리에게 허락된 영감으로 되어 있어 있는 이 곳간, 이 곳간 안에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실 것이 가득 담겨 있고 또 우리가 받을 것들이 가득 담겨 있습니다.

그러면 이 담겨 있는 이것을 다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예비해 놓은 것이요 또  우리는 이것을 받아 내어서 우리가 우리 것을 삼아야 할 우리들이요 권세를  가졌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언제든지 내 맘대로 이 곳간에 있는 것을 내어 쓸 수는 없고  하나님이 내어 쓰게 하시는 그 기회가 와야 이것을 곳간에 있는 헌 것 새 것,  깊이 들어 있는 것 얕이 있는 것 이것을 내 쓸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려고 만들어 놓은 이 곳간 안에 가득히 재여 있는  것이지마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것을 내어 가지라 저것을 내어 네것을  만들어라’ 하나님이 하시는 그 기회가 와야 이것을 가지지 내 맘대로 얼마든지  자유로 취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마치 어떤 계약이 되어 있을지라도 그것이 기간이 있어서 그 기간 그 시기가  돼야 그것을 내가 받을 수 있는 것처럼 다 때가 정하여 있는 하나님의  경륜이라는 이 경륜, 때를 따른 경륜, 에베소 1장에. 예정돼 있다고 말씀하신  대로 그 시기를 우리가 만나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게 필요한 모든 보배로운 것이 가득 찬 이 곳간 안에 가득 찼는데,  신구약 성경 말씀과 영감 안에 가득 찼는데, 이 성경에 기록된 말씀과 영감은  하나님이 내게 필요한 내게 주실 모든 것들입니다.

이것을 내가 내어서 내것을 삼는, 삼게 하시는 하나님의 그 허락이 있어야  이것을 끌어내서 내것을 할 수 있는데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그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만나지 못합니다. 또 그 기회는 한 번밖에는, 한 가지에 한 번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요것을 내 써라 저것을 내 써라.’ 그러면 그 시기는 언제인가? 하나님께서 이 뜻을, 이 뜻을 행하게 하는 그  기회가 있고 저 뜻을 행하게 하는 그런 기회가 있어 하나님의 뜻을 행하게 하는  그 기회가 그것을 내가 내어서 내것 삼을 기회입니다.

그러면 그 기회를 하나님이 만들어 준다는 말은 요 뜻을, 하나님의 이 뜻을 저  뜻을 수많은 뜻이 있는데 그 뜻을 내가 행할 수 있는 그런 분위기 그런 현실을  만들어 주시는 그것이 기회입니다.

이 뜻을 행하게 하는 기회는 이것을 내가 내어와야 되지 이것을 내오지 안하고  다른 것을 내오려고 하면 내오지지 못합니다. 내어 주지를 않습니다.

그 기회 기회마다 하나님께서 그 기회는 요것을 하나님이 네게 주실 이 선물 이  보배로움을, 신적 요소를, 신적 요소라 말은 신의 본체의 요소를 말함이 아니고  하나님의 역사의 요소를 말하는 것이니 그것을 하나님이 주실 때에 내가 받아야  되지 내 마음대로 다 취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주실 때가 어느 때인가? 수많은  말씀이 있지마는 그 말씀을 행할 수 있는 그 시기는 각각 있습니다.

행할 수 있는 시기는 어떻게 그건 다른가? 행할 수 있는 시기는 그 계명을 그  뜻을 그때는 행해야 된다는 그 분위기로 구별을 지웁니다. 하나님이 그런 분위기  그런 현실을 만드셔 가지고 요 현실에는 요 계명이 필요하고 요 현실에는 조  필요하고, 그 현실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 할 그것은 그 현실이, 현실을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그 현실에 따라서 그것이 판정된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모든 바꾸어 가는 현실이 하나님의 요 선물을, 하나님의 요  은혜를, 저 은혜를 각각 필요 있는 대로 순위대로 받게 하시는 그 현실인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신구약 성경에 나타난 모든 계명을 우리가 아는 것은 이 계명은  다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능력이요, 지혜요, 선물이요, 은혜요, 사랑이요,  승리요, 영광이요, 피난처요, 은신처요, 지혜와 능력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성경 말씀과 우리가 평소에 성신의 감동을 받아 이런 감동도  받아보고 저런 감동도 받아보고 받아봅니다. 그러나 그 감동은 하나의 곳간이요  하나님이 내게 주실 모든 것을 쌓아 놓은 곳간이요 또 신구약 성경 이 말씀은  하나님이 내게 주실 모든 내게 필요한 것이 재여 있는 곳간에 지내지 못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곳간에, 곳간을 이것을 잘 관찰해서 ‘이 곳간에는 무엇  무엇이 재여 있다 저 곳간에는 무슨 무엇이 재여 있다’ 하는 것을 이것을  보고서 이것이 내게 주는 것이요 내것을 만들 수 있는 보배이기 때문에 이  보배를 보고 우리는 소망해야 되겠고 여기에 대한 욕심을 품어야 합니다. 이것이  성령의 욕심입니다.

이것을 내것을 지금 이 곳간에서 끌어내서 곳간 문을 열고 옛것과 새것을  끌어내는 것이 그것이 서기관이요 선지자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을 끌어내서 내것을 삼아야 되겠는데 언제 하나님이 그 낼 수 있는 그  시기를 주실런가 하는 그것이 문제입니다. 많은 내게 계약은 돼 있지마는  ‘아직까지 요것은 때가 안 됐다.’ 때가 안 된 것은 때가 돼야 그것을 내가  끌어내서 내것을 만들 수가 있고 때가 지나간 것은 다시는 헛일입니다. 그러면  기회를 기다리는 것이 삭개오를 통해서 앞질러 뽕나무에 올라간 곧 이  형식계시입니다.

그러면 이것은 하나님이 나를 보호하시는 보호인데 이 보호는 언제 입을까?  이것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사랑인데 이 사랑은 내가 언제 받을까? 이것은  요 능력, 이 능력, 능력도 한없는데  요 능력은 내게 하나님이 주시기로 돼 있는데 요 능력은 언제 받을까? 그 기회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성도들이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받으려고 때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기다리고 있다가 하나님이 요런 분위기 요런 현실을 만들어서 그 현실이  왔을 때에 기다리고 있던 자는 기다리고 있던 그 곳간 안에 있는 그것을 내가 내  쓸 수 있는 그런 기회를 기다리다가 그 기회가 오니까 기뻐 시기를 놓치지  안하고 그 기회에 그것을 곳간에서 끌어내서 제것을 삼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 기회가 올 때에 이 사실을 기다리고 믿는 자는 그것을 끌어내서 자기  것을 삼을 수 있는,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이제는 받아서 영원히 자기 것을 삼을  수 있는 그런 기회가 왔을 때에, 내게 곤란한데 이 곤란한 여기에 필요한 것을  이걸 예금해 놓은 은행에 예금해 놓은 것이 기한이 있는데, 요것 찾는 기한이  있는데 나는 졸려 못 견디겠는데 요 기한이 오면 얼른 요것 찾으면 모든 게 다  해결이 되겠는데 요 기한이 안 와서 기다리고 있다가 그 기한이 오면은 그  기간이 됐으니까 얼른 가서 찾아 가지고 모든 어려움을 다 면하고 기뻐, 그  시기가 왔을 때 ‘이제 오늘은 그날이다. 이제는 기다리던 요것을 찾을 수 있는  날이 됐으니 오늘은 도장 가지고 가서 찾자.’ 하는 그 종류와 같은 기쁨을  다니엘은 기도하는 자는 다 사자구덩이에 넣기로 그렇게 작정하고 전국에 왕의  어인(御印)의 조서를 내린 그 소식을 들을 때에 다니엘은 요 기다리던 그 시기가  온 요 기쁨과 같은 그런 기쁨을 다니엘은 가졌던 것입니다.

다니엘은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하나님 앞에 기도한 것은 그분이 하나님의,  인간이 할 수 없는 하나님의 능력의 그 보호를, 하나님이 내 원수를 갚아 주시는  그 복수를, 내가 원하고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이렇게 가져올 수 있는 그 시기가  된 그 기쁨을 다니엘은 가졌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현실에 문서의지든지 성경에 기록한 이 하나님의 뜻이든지  은밀한 영감의 뜻이든지 우리의 현실에 대한 하나님의 뜻 요 하나님의 뜻은  그것은 그것은 하나님의 모든 것을 내것을 만들 수 있는 그런 기회입니다.

그것이 때가 됐으니 내가 그 뜻을 행하면 그것이 내것이 되어집니다. 내것이  되어서 실상 내것이 되어집니다.

그러기에 그 행하는 것은 그것이 이제까지 계약으로 되어 있는 그것이 실지로  내것이 되는 것이요 이 곳간 안에 들어 있는 것을 끌어내서 내것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라” 믿음은 하나님의 뜻, 자기 현실에서,  자기 현실에 대한 하나님의 뜻 그것 순종하는 것이 믿음이지 신구약 성경에 다  있다고 제가 때가 아닌데 행하면 미치괭이입니다.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계약해 놓은 요것을 인정하는 그것은 언제든지 다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한목도 인정을 하지마는 그것이 인정만 하고 행하지 못하면 그것을  가리켜서 죽은 믿음이라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요 인정한 것을 실상으로 행할  때에 그것이 이제 산 믿음 실상을 만드는 믿음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를 보호하실 때에는 보호하시는 그 뜻은 인간  생각으로 볼 때에는 보호가 아니라 멸망시키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왜? 인간의  견해는 타락해서 정반대되어 있고 하나님의 견해와 반대돼 있기 때문에,  그러기에 성경에 “네 마음에 요렇게 하면 지혜다 싶으거든 정반대 미련하게  해라.” 하나님이 다니엘을 보호하시는 이 보호를 줬는데 그 보호는 인간들이 볼 때는  다니엘이 멸망받는 사자밥이 되는 그 뜻을 말합니다. 기도하는 건 사자밥이 되는  그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는 그것이 보호입니다.

만일 그때에 다니엘이 하나님이 ‘내가 이것을 너 보호한다.’ 하나님의 보호로  주시는, 하나님이  원수를 격멸시키는 것으로 주시는, 자신을 영광스럽게 하는 영광스러운, 자신이  영광된 영광을 주시는 영광을,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할 수 있는 그 영광을, 모든  면에 구비하고 그렇게 보배로운 이것을 다니엘에게 주실 때에는 ‘기도한다  하라’ 하는 그것이오. 기도하라는 것, 기도한다는 그것입니다.

그것을 다니엘에게 주신 그것이 ‘너는 다리오 왕이 이렇게 말할지라도 너는  기도한다고 주장하라’ 하는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면 그 뜻은 막바로 인간 생각으로는 전멸을 당하는 그것이오. 그러나  다니엘은 그것이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뜻인데 그 뜻은 하나님의 모든 것을  자기가 선물로 받는 바로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시는 은혜, 선물, 권능, 보호,  영광, 존귀, 승리, 원수를 격멸하는 그것이 그 뜻 안에 다 들어 있는 그것인 줄  알았기 때문에 그 기도를 하라고 하시는 그대로 ‘기도하겠다. 기도 나는  한다.’ 하는 그 기도 문제 그 계명이 그것이 막바로 하나님의 보호의 뭉텅이요,  하나님의 능력의 뭉텅이요, 하나님이 원수를 격멸하시는 그 격멸의 뭉텅이요,  하나님이 다니엘을 존영하게 하는 그 존영이요, 또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랑  뭉텅이요, 그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덩어리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덩어리요, 하나님의 이 사랑으로 인간을 구원하는 구원의 요 보배로운 뭉텅이인  줄 알았기 때문에 다니엘이 그때에 ‘나는 그래도 기도를 합니다.’ 하는 그것은  그에게 말할 수 없는 기쁨이 되었고 이제까지 기다리고 있던 것이 되어졌기  때문에 다니엘은 사람들이 측량 못할 기쁨이 그에게 충만했고, 감사가 충만했고,  사람이 생각하는 대로의 것이 다니엘에게는 다니엘에게는 보이지 아니했던  것입니다.

우리도 요것을 굳게 잡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나와 내 도를 위해서 모든 것을  버린 자는 여러 배 혹은 백 배를 얻는데 핍박을 겸하여 얻으리라”(막10장30절)  그말은 핍박은 악의 세력의 인간들이 핍박합니다.

 그러면 자기에게도 믿음이 아닌, 믿음이 아닌 부패성은 대립이 됩니다. 그것은  언제나 인간에게 대립으로 온다 그말입니다. 대립으로 오는 것은 부러 대립되게  오려고 해 그런 것이 아니라 인간이 썩었기 때문에 대립이 됩니다. 인간이 바로  되면 대립이 안 됩니다.

요렇게 대립으로 온다, 핍박을 겸하여 온다, 이제 다니엘 죽는다 하는 죽는다는,  죽는다는 그 껍데기를 쓰고 사는 것이 옵니다. 원수에게 이제는 완전히 절단이  난다는 그 껍데기를 쓰고 원수를 전멸시키려는 것이 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껍데기가 왜 그렇게 돼? 그것은 인간들의 주관이 틀렸기 때문에 인간 보기에  그러합니다.

그러기에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이 왜 험하고 좁으냐? 인간의 그 자율과 주관으로  견해할 때에 좁고 험한 것이지 하나님이 보실 때에는 그 길이 넓고 평탄한  길입니다. 인간은 생명 길은 험하고 좁고 멸망의 길은 넓고 평탄하다는 것은  인간의 견해를 말하는 것이라. 하나님의 견해는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은 넓고  평탄하고 사망으로 인도하는 길은 좁고 아주 험악하지마는 인간의 견해가  그렇다는 인간 견해를, 너거 볼 때는 그렇다는 것을 나타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고로 자기의 현실에 대한 하나님의 뜻 이것은 하나님의 모든 것, 거기에는  하나님의 사랑도, 지혜도, 능력도, 영광도, 승리도, 피난도, 은신도, 안정도,  쾌락도, 원수를 멸하는 것도 다 그 안에 가득 차 있는 것이기 때문에 요것은  소유보다도 귀하고, 우리의 몸보다도 귀하고, 우리의 생명보다 귀합니다.

왜? 요것이 얻어져야 우리의 생명도 가치 있고, 우리의 몸도 가치 있고, 우리의  소유도 가치 있지  요것을 받아 가지지 못한 소유도 몸도 생명도 다 그것은 벌써 사망한 것입니다.

기회를 놓쳤으면  거기에 관련된 것은 사망했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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