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받는 연습


선지자선교회 1985년 6월 2일 주일새벽 

 

본문 : 고린도전서 1장 18절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이것이 요번 공과지요?  공과에는 십자가 대속에 대해서 좀 많이 말했습니다. 서론은 십자가 대속에  대해서 말씀했는데, 오늘 공과에서는 학생들에게 십자가의 대속을 더 또 한 번  밝혀서 알려 주고, 그러면, 십자가의 대속을 받은 사람은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야  된다 하는 것을 가르치고.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는 그것이 사람 보기에는  고난스러운 것 같지만 그것이 무한한 능력의 걸음이 되는 것을 알려 줘야 할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의 대속을 세 가지 대속을 하셨는데 이 세 가지는 전부입니다.

하나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잘못된 죄를 다 대형해서 없앴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범죄한 것은 분류하면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배반하고 하나님을 배반한 그 죄값입니다. 하나님을 배반하면 하나님  아버지를 배반했는데 하나님 아버지를 배반함으로 우리에게 온 형벌이 어떤  형벌이 있느냐?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는 완전히 끊어진 자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끊어졌다 말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다 구비해  주셨는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구비해 주신 그것이 하나도 없게 됐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잠깐동안 사는 동안에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지어  주신 이 우주가 있어야 되겠고 또 이 지구가 있어야 되고 또 이 모든 공간이  있어야 되고 또 공기도 있어야 되고 햇빛도 있어야 되고 거기에 뭐 식물도  있어야 되고 우리의 영육에 대해서 있어야 될 것이 얼마나 그 숫자가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배반함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우리에게  계속 은혜로 주시는데 그 주시는 그 숫자와 종류를 우리가 다 알고 있느냐 하면  다 알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보다 모르는 숫자가 무한히 많습니다.

그런 것이 하나도 없게 됐습니다.

 그러면 없게 된 것은 그것은 지금은 하나님 앞에서 없게 됐지만 차차차차  없어져서 세상을 끝마칠 때에는 무궁세계는 그런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것을  누가복음 16장에 홍포 입은 부자의 사실에서 우리에게 알려 주신 것이 하나  있었는데, 그 부자가. 지금은 우리가 물 그런 것이 뭐 그렇게 중요찮게 보이지만  물 한방울을 요구해도 물 한 방울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하나님을  배반한 자들에게 하나님이 인생을 위해서 필요한 것으로 지어 주신 하나님의  것은 하나도 없는 것이 지옥입니다. 하나님의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이 지옥입니다.

 그러면 세상에서도 차차차차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 인생이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고 또 인생이 알아도 필요하다고 가치를 여기는 것보다  '그것이야 뭐 필요가 뭐 있겠느냐'하는 그런 것이 오히려 가치가 더 큽니다. 만일  이 세상에서 공기를 없앤다고 하면 어찌 되겠습니까? 공기 없는 그런 곳에 가면.

산소나 그런 것이 없는 곳에 가면 어찌 되겠습니까? 대단히 어려울 것입니다.

 산다씽이 그가 세상에서 온갖 주를 위한 고난을 당할 때에 단 마음으로  당했습니다. 예를 들면, 열대 지방의 거머리, 거머리라고 여기 미나리 깡에도 있고  하는 거, 꾸물꾸물 거리면서, 거머리. 한국 거머리는 요만합니다. 길이가 요만하고  가늘고 젓가락 짝 같고, 거기에 거머리는 크기가 이만큼 한 삼 배나 크고 또  그거는 독이 있어서 그만 거머리 물리면 사람 이 독이 있어서 죽습니다. 물면  사람의 피를 쪽 빨아 댕깁니다. 빨아 댕기면 조그마한 젓가락짝 같은 것이 한국  거머리도 한 이 만치는 굵어집니다. 사람 피를 당장에 쪽 빨아 당겨서 먹으면  이만치 됩니다.

 그래서 그 거머리를 잡아다가 산다씽을 붙들어 매 놓고 옷을 벗겨 놓고 온  전신에다가 거머리를 들이부었습니다. 그러면 거머리가 피를 빠니까 뭐 아프고  따갑고 좀 이상합니다. 그 아픈 것이 안 물려 본 사람은 모르지만 저도 물려  봤는데, 그래 가지고 그라면 사람이 거머리 먹으면 죽는데, 그 많은 거머리를  들이부어서 이와 같이 했으니까, '제까짓 놈이 암만 그래도 이라면 못 견뎌서  나중에 가서는 제가 제 도를 내 놓을 것이다'하고 항복을 받을라고 그랬는데,  그래도 산다씽은 거기서 '주님이 나에게 성신의 인을 쳐주시고 계신다. 내가  주님에게 속했다는 것, 내가 주님의 것이라는 것을 당신이 인정하는 지금  인정하는 인친 표를, 지금 내가 성신의 인을 받고 있다' 그렇게 말을 하면서  기쁨으로 지냈고 고통을 느끼지 안했습니다.

 그러나, 해골 구덩이라는 그 구덩이에 집어넣었을 때는 그때는 견디지를  못했습니다. 그 나라에서는 사형을 시킬 때에 그저 목을 베어 사형을 시키거나  그렇게 하지' 안하고 그 구덩이를 아주 나라에서 수십 길 깊이 넓게 파 가지고  구덩이를 만들어 놓고 그 위에 뚜껑을 해 놓고 사형수가 있으면 그만 그  구덩이에다가 집어넣어 버립니다. 이러니까, 그 구덩이는 벌써 뭐 수만 명인지  수천 명인지 들어가 가지고 거기서 다 썩어서 악취가 있고 거기는 산소라는 것은  하나도 없고 전부 그 악취만 있고 공기는 하나도 안 들어가는 곳이니까, 이래  놓으니까. 거기다가 산다씽을 집어넣었습니다. 집어넣을 때에 자기 일생 동안에  여러 가지 어려움을 당했는데 그보다도 제일 어려운 거는 그것이 제일  어려웠다고 그분이 말했어. 그러니까, 목을 잘라 가지고 숨을 못 쉬게 한다면  그것은 목을 자르니까 그 목 자르는 그 자극이 산소 없는 곳이 조금 면제되지만  그냥 산 채로 거기다 집어넣어 놓으니까 견디지 못해서 산다씽이 거기서 '주여.

내가 이 일을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나를 구출하소서' 하는 그런 기도를 했습니다.

다른 데서는 평생 자기에게 어떤 고문과 고형이 와도 그가 '이 고난은 내가  견디기 어렵사오니 나를 구출해 주옵소서' 하는 그런 주님 앞에 미안스러운 그런  기도는 한 번도 한 일이 없습니다. 언제든지 감사히 받고 달게 받았지만 그때는  그런 고통을 느껴서 주님 앞에 내가 견디지 못하겠으니 날 구출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 가지고 거기에서 달아 올려서 그래  구출해 주셨습니다.

 그런 것도 우리가 연상해 보면, 지옥은, 거기에는 다만 하나님이 주신 공기가  없는 것뿐입니다. 그 시체 굴, 시체 구덩이에는 고저 하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주시는 공기가 하나 없는 것뿐입니다. 공기가 하나 없는 것뿐인데 공기  하나 없는 데에서 고통이 심했다는 거. 그러면, 우리가 지옥은 어떤 것이  지옥이냐? 구더기도 죽지는 얻습니다. 거기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필요해서  베풀어주시는 모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왜 그러냐? 하나님을 배반하고 저희들  힘으로 살고 하나님을 배반했기 때문에 전부 제것 가지고 살았고 제 힘 가지고  살았고 하나님은 필요 없어 배반 한 것이기 때문에. 그러면, 하나님께서 나 없이  네 것만 가지고 네 것 가지고 살아라 하는 것이 그것이 유황불 구렁텅이의  지옥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을 배반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은혜를 베푸신 것이 뭐 천도 만도 넘는데 그 은혜가 하나도 없게 된 것이 그것이  하나님 배반한 죄값입니다. 그 값을 예수님이 내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가 하나도 없는 그런 고난의 고통을 우리 대신에 당해서 우리에게는 그  고통이 없어지게 된 것입니다.

 또, 성령의 감화를 배반해서 소멸했기 때문에 소멸한 그 성령을 거역한 그  죄값은, 성령은, 하나님이 인생을 구원하기 위해서 역사하시는 그 역사가 그것이  영감입니다.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주실 때에 주시는 그 모든 필요한 것을 주실  때에 주시는 그 방편이 영감입니다. 영감을 받아서 하면 그 영감대로 할 때에  하나님의 것이 내게 와지게 됩니다. 이랬는데, 고 영감을 다 거절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 사람들을 구원하는 그 구원의 역사가 하나도 없게 됐습니다. 구원  역사가 전부, 깨달음이라든지, 느낌이라든지. 원함이라든지, 또 비판이라든지.

평가라든지, 계획이라든지, 계산이라든지. 또 옳고 그른 것 이런 모든 것이 하나도  없게 된 그 죄값입니다. 그것을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 형을 받으셨기 때문에  '구원의 역사 영감 역사가 없는 그런 고통을 대신 당함으로 우리에게, 그 영감  역사가 영원히 없어질 그 형을 대신 당했는고로 우리에게는 영감 역사가  없어지게 되는 그것을 다 대속해서 우리에게는 영감이 없어지는 그 무서운 형을  우리가 벗게 된 것입니다.

 또, 우리가 하나님께서 계약해 놓으신, 선포해 놓으신 계약을 어겼기 때문에  계약을 어긴 데 대해서는 벌이 있는 것입니다. 계약을 어겼으면 그 위약의 벌이  있는 것인데 우리에게 당한 온갖 그 하나님의 지성과 지공의 그 전지 전능의  입법한 그 입법대로의 그 형이 우리에게 오는 그 형을 예수님이 대신  받으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서 형벌을 대신한, 대형한 그 공로는 어떤  형을 우리에게서 다 제거시켰는가? 율법을 범함의 형을 제거 시켰고, 또 영감을  범함의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우리에게 끊어진 그것을 다 삭제해서 끊어진  그것을 없애 버렸고, 또 하나님의 모든 것이 은혜가, 모든 은혜 필요한 은혜가  우리에게 오는데 오는 것이 다 끊어지게 됐는데 끊어지게 된 그것을 없이  했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대형의, 대신 형벌 받으신 그 대형의 죽으심입니다.

 죽으시고, 그라고 난 다음에 대신 행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영감을 행하지  못한, 그 모든 것을. 율법을 행하지 못한 것을 다 대신 행하심으로서 우리에게  의를 입혀 줬읍니다. 이는 하나님의 율법과 하나님의 영감에 대해서 완전  순종자로 인정받도록 하신 것이 그것이 대행입니다. 그라고 난 다음에는 대신  화친해 가지고 대화목으로서 대신 화목의 제물이 돼 가지고 화친케 하신 것은  하나님의 모든 은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은혜가 우리에게 끊어진 것을 다  이었습니다. 다 다시 재연결을 시킨 것이 그것이 예수님의 대화친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대형 대행 대화친으로 우리에게 완전히 형이 없어졌고, 우리에게  구원 역사가 끊어진 그 끊어짐의 절단이 없어졌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모든 것을  하나도 줄 수 없는 그와 같이 되어진 그것이 없어졌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대속입니다. 예수님이 대속하시고, 이거 죽으심으로 대속하시고 그와 같이 대속을  하셨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율법을 어긴 형을 다 없앴으니까 형은 없는 자이지만,  그의 형이 없는 자이지만 자유하지를 못합니다. 형은 없지만 형만 없어졌지  우리에게 자유할 수가 없는 건데 자유를 하도록 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삼 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신 것은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기 위해서 다시 부활을  하셨고, 또 우리에게 성신의 감화가 우리에게 연결돼 가지고 계속 감동하시는  구원 역사가 우리에게 역사하시도록 하기 위해서 부활하셨습니다. 또 하나님과  연결 이 돼 가지고 영생하는 생명으로. 영생하는 생명으로, 우리로 하여금 영원히  영생하는 생명을 가지고 영생하도록 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우리에게 모든 절단 나 가지고 있는  것을 (말씀을 들어야 속에 마귀가 나가지. 말씀을 듣고 속에 마귀가 나가 가지고  간절한 마음으로, 요게 얼마나, 여러분들, 우리가 오늘 아침에 말하는 것도  아버지의 은혜가 없으면, 아버지의 것이 없으면 어찌 될 것인가, 또 영감이  우리를 구원하는 역사가 없으면 어찌될 것인가. 하나님의 율법의 하나만 범해도,  선악과 하나 먹은 것으로도 대대 손손 인간이 다 사망의 해를 받는 것인데  수많은 율법을 어긴 그 값이 얼마나 어떠하겠습니까? 그것을 다 사실대로 느끼는  그것이 영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영감으로서 하나를 느끼는 사람, 천을 느끼는  사람, 만을 느끼는 사람, 억만을 느끼는 사람 종류의, 느끼는 그 종류의 수가  다르고, 또 같은 종류라도 그 종류라도 강도가, 그 도수가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아, 하나님께서 나에게, 영감이 없으면 어찌 되겠느냐?' 영감이 없는 그 불행에  대해서. 고통에 대해서 느끼는 것이 천천 만층이라 말이오, 느끼는 도수가 천천만  배라. 그것을 자꾸 우리가 그 면으로 힘써 가지고 더 영감이 강해지기를. 또  자기가 하나님과 화친이 더 강해지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죽으심은 하나님의 모든 선물과. 하나님의 모든 선물과  하나님의 은혜 역사와 하나님의 그 율법의 정죄 역사가 다 이것이 해결이 되어서  이제는 우리를 해하고 죽일라는 그런 것이 다 없어지게 됐습니다. 이것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서 우리를 대속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이 없어졌지만, 좋은 것이 있지는 안합니다. 없어지기만 없어졌지  좋은 것이 있지는 안했는데 좋은 것이 우리에게 생겨지도록 하신 그것은 뭐이냐  하면 다시 삼일 만에 부활하심으로서 우리에게 새 생명이 있고. 살수는 있고,  예를 들어서 죄 형이 있으니까 감옥에 갇혔던 것이 감옥에서 이제 내 놨습니다.

감옥에서 내놨지만 내놨지만 아무 살 박력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감옥에서  나왔지만, 감옥 생활은 없지만 자기가 사는 데 대해서는 하나도 자유 있는 것이  없고 하나도 자기에게 유리할 것이 하나도 없다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구세군에서는, 구세군 도에서는 그 면을 힘씁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우리를 모든 이 세 가지 형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셨다.

해방시켜 주셨지만 아무런 나와 보니까, 감옥에서 나와 보니 아무것도 할 일도  없고 할 기능도 없고 아무 것도 없으니까 아무. '너는 형은 없다' 내 보냈지만  나와 가지고 소용없는 자라 그 말이오. 이래서, 예수님이 삼일만에 부활하신  부활하심으로서 우리를 구출한 그 구원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해 가지고 감옥  앞에다가 그 기업체를 만들었어. 조그마한 감옥소 이런 데는 그렇지만 큰 많은  죄수들이 있는 감옥 앞에는 큰 기업체를 만들어 놓고 거기에서 죄수가 나오면  바로 거기에 취직을 해 가지고 거기에서 일을 해 가지고 자기 생계를 유지하고  가장을 이루어 나가도록 그렇게 해서 그런 죄수들이 감옥에서 나와 가지고 살 수  없는 그 형편을 길을 열어서 직업을 알선해 주고 또 기숙을 가르쳐서 기술을  배워 가지고 일할 수 있고 자기네들이 그 사람을 채용하고 등용해 가지고 생계가  유지되도록 그렇게 하는 그런 업체를, 기독교 가운데 구세군이 제일 많이  했습니다. 구세군이 그 일을 제일 많이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구세군 교파는 어느 교파서라도 구세군 교파는 대적하지를  않습니다. 다른 교파는 서로 밀고 당기고 이래 가지고 모두 다 좋다 나쁘다  이렇게 뭐 시기 질투도 있고 이렇게 속으로 암투가 있지만 구세군에 대해서는  아무도 대적하지 않습니다. 구세군은 모든 교파에 대해서 하는 일이 그들은 고  면만 이래 하고 있기 때문에 어느 교파 사람이든지 나오면 다 직업 알선해  줍니다. 또 믿는 사람 아니라 어떤 불교인이라도 감옥소에서 거기서 이제는 힘이  다 없어져 가지고 출감하게 되면, 감옥에서 나오게 되면 그 사람을 직업을 알선해  가지고 예수를 믿도록 그렇게 전도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서의 우리에게 어떤 모든 사망에서  우리를 면제해 주셨느냐. 해방해 주셨느냐 하는 것을 그것을, 그것이 십자가의  대속이기 때문에 그것을 알려줘야 필요하고, 또 거기에서 대속하시고 대속하신 그  구원을 자기가 실제로 누리도록, 대속해서 주신 그 구원을 실제로 자기가  누리도록 하시기 위해서 삼일 만에 부활하셔 가지고 창조주가 피조물을 입은, 그  창조주가 피조물 입는다는 것은 우리가 똥 구더기에 들어가는 거와 비교가 안  됩니다. 이렇게 천대를 받은 이 천대를 영원히 입으심으로써 우리가 다시 산  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오. 중생도 부활을 말미암아 중생이 됐고 우리가 다시  성신의 감화를 받아 가지고 이렇게 하나님의 형상대로 성화되는 것도 예수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죽으심으로는 우리에게 형에 속한 나쁜 것을 다 제거했고 또  이제 하나님의 구원이 우리에게 오도록 돼 가지고 있고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친이 됐고, 됐지만 실상으로 이루어지지 안한 것을 실상을 우리에게 줘 가지고  실상으로 누리도록 하기 위해서 삼일 만에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이라 하면 죽으신 것으로만 말하지  안하고 죽었다가 삼일 만에 부활하신 그것까지를 다 합해서 예수님의 대속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예수님의 대속이라 하면, 십자가의 대속이라 하면. 십자가의  대속이라 하면 예수님의 죽으심만을 중점으로 다루는 말이고 또 예수님의 부활의  대속이라 하면 부활함을 사루는 것이고 그저 그냥 그것을 구별하지 안하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이라 이라면 죽으시고 부활하신 걸 다 총합 해 가지고  우리의 대속이라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십자가의 도는 어떤 것이 십자가의 도냐? 예수님의 죽으심의 그  대속을 받은 우리. 예수님의 다시 인성으로 부활하신 그 대속. 예수님이 십자가의  죽으신 것은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그 대속은 끝났고 그 고난은 끝났고 또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서 우리의 대속 한 것은 영원히 계속하는 것입니다. 영원히  계속하기 때문에 십자가에서 나를 대신해서 죽으신 그 대속의 고난이나 또  부활하신 대속의 고난이나 그 고난이나 중량이 같습니다. 이래서, 예수님의 이  사활의 대속을 받은 우리들이 살아가는 길이 그것이 뭐이냐 하면 십자가의 도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주일인데 주일 지키는 것은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주시고 부활하심으로 주셔서, 죽고 부활하신 이 사활로 말미암아 그 사활의  혜택을 우리에게 주시는 날이 이 주일날입니다. 사활의 공로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시는 그 은혜의 날이 주일날이기 때문에 주일날 날 중에 제일 귀한 날이요 또  주일 중에서도 예배드리는 시간이 제일 귀한 시간인 것입니다. 그러면, 주일날은  예수님의 죽으시고 살아나신 이 사활로 인한 이 모든 구원의 은혜가 우리에게  중점적으로 오는 날이 뭐이냐 하면 주일날입니다. 주일날 중에도 예배드리는 그  시간에 우리에게 옵니다. 그러면, 그 시간에 우리가 받은 이 은혜를 가지고 엿새  동안에는 뭐 하느냐? 주일날 받은 이 은혜 가지고 은혜 생활을 엿새 동안에  우리가 연습만 합니다. 연습하고 연성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십자가의 보는 예수님의 이 대속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길인데 그 길은 어떻게 걷는 길이냐? 그 길은 하나님만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안한 그 모든 걸다 복구시키느라고 예수님께서 큰 고통을 해서 이렇게  복구시켰기 때문에 하나님만 믿고, 하나님만 믿고 하나님만 위하고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에, 믿지 않고 딴 것을, 하나님 외에 우리는 인정할 이도 없고 하나님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인데 딴걸 생각해 죽었기 때문에. 하나님만 믿고.

하나님만 위하고 하나님의 법도에만 우리가 땋고 하는 그것이 십자가의 도인의  걸어가는 걸음입니다. 생활하는 생활입니다.

 이러니까, 거기에서 여러 가지 어려움이 옵니다. 왜? 저들을 일지 않는다고  저들을 위하지 않는다고 저들을 딿지 않는다고 이래 가지고 어려움이 오는데,  어려움이 와도 그 어려움이 오는 것은 우리를 해하는 것 같이 보여지지만 그  어려움 오는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더 십자가의 도의 길을 걸어가는 것을 강하게  하고 굳세게 하고 연단시켜서 우리를 더 온전케 하고 이렇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우리를 해하지 못 합니다. 내가 다만 거기에서 내가 변해질 때 변해지지  나만 변해지지 안하면 그 모든 것은 나에게 유익을 주는 그 결과를 만들지  해하는 결과는 추호도 만들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십자가의 길을 걸어갈 때에 참 배고파도 걸어가고 또  아파도 걸어가고 병들어도 걸어가고. 또 감옥에 갇혀도 걸어가고 외로워도  걸어가고 뭐 가정에서 사회에서 국가에서 배척을 당해도 걸어가고 감옥에 갇혀도  걸어가고 죽어도 걸어가야만 되는 것이 이게 십자가 도인인 것입니다.

 그러면, 가다가 어려움이 있다고 해서 이 세 가지 생활, 하나님만 믿고 하나님만  위하고 하나님만 딿은 이 생활을, 왜 딿느냐? 나는 십자가의 대속을 받았기  때문에, 내가 이 세 가지를 버렸음으로서 내가 멸망받은 그것을 예수님이 대신  형벌받아 가지고 이것을 다시 복구해 주셨기 때문에 나는 십자가의 걸음을 걷지  안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이 걸음을 걸으면서 우리는 끝을 마쳐야 됩니다. 십자가의 도인은 이  도를 가다가 뒤로 돌아서면 안 됩니다. 뒤로 돌아서면 안 되고 뒤로 물러가는  자는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물러가면 안 되고 앞으로 이 길을  가다가서 엎어져야 됩니다. 그러면, 참 일등 국민 충성된 국민들은 전쟁을 해도  앞으로 엎어져 죽었지 뒤로 자빠져 죽지는 안한다고 하는 말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십자가 군병으로 이렇게 이 세 가지를 지키는 것으로 끝을 마쳐야 됩니다.

세 가지 지키는 것으로 끝을 마치면 자기의 모든 것은 십자가의 대속을 완전히  입은 것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래서, 어려워도 견딜 것.

 또, 그러면, 멸망할 자들에게는 미련하다, 불택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 됩니다.

미련한 것이 됩니다. 불택자들은 중생하지 안했기 때문에 성시의 지혜와 총명이  없기 때문에 이 도를 이해 못 한다는 것입니다. 불택자들은 이 도를 이해 못하기  때문에 어리석게 봅니다. 또 불택자들은 유익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암만  십자가의 도, 걸어 봤자 그들에게는 손해만 가지 유익이 하나도 없습니다. 유익이  하나도 없습니다. 또 십자가의 도를 걷는 것은, 십자가의 도는 뭐이냐 하면 악령  악성 악습을 멸하는 것이 십자가의 도입니다. 그러면 십자가의 도는 안 믿는  사람의 생활을. 안 믿는 사람의 사상을 안 믿는 사람의 힘을, 안 믿는 사람의  운동을, 안 믿는 사람, 말하자면 옛사람, 악령 악성 악습으로 사는 이것을 멸하는  것이기 때문에 십자가의 도는 자멸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에게는. 그들에게,  불택자들에게는 유익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믿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 것은 십자가의 도를 걸으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 피조물을 믿던  것을 다 끊어 버리기 때문에 이것이 유익이 되는 것입니다. 모든 피조물 위하던  것을 다 끊어 버리고 하나님을 위하기 때문에 좋은 것입니다. 피조물을 따라서  움직이다가 멸망을 받는데 피조물을 따라 움직이는 걸 다 멸하고 하나님을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다 유익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나님하고 나하고 하나가 되는 것, 내가  하나님에게 속해서 합해지는 것, 내가 하나님에게 속합되는 것. 그래 가지고  합해지는 것 이게 되기 때문에 유익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것을 내가  은혜로 받을 수 있는 은혜의 줄이 다시 복구돼 가지고 은혜의 줄이 완전히 지금  완비가 되어지지 때문에 복이 되는 것입니다.

 세째로는 하나님은. 하나님과 나와, 나는 하나님의 것이고 하나님은 내 하나님이  됩니다. 이러니까, 내게 좋은 것 뭐 있습니까? 내게 모든 나쁜 것은 다, 내게 나쁜  것은 다 주님이 책임진다, 주님의 것이 되고, 내게 사망도 주님의 것이 되고 내게  죄 지은 것도 주님의 것이 되고 전부 더러운 거는 주님이 다 맡으시고 주님의  좋은 것은 다 내것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십자가가 영광이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권능으로 걷는 걸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이것을, 여러분들은 지금 알아야 되지. 여러분들이 다 알지 안하면.

예를 들면 안과 의사가 눈을 치료할 때에 눈을 보고, 이것은 저 발꿈치에 상처가  있어 가지고 그 신경이 와 가지고 여기 자극을 시킨다. 아. 이 눈은 아픈데 손 끝  어디 다쳐 가지고 그것이 와 가지고 여게 자극을 시킨다. 온 전신을 모르면 그  눈을 치료할 때에 그 사람이 치료를 못 한다 말이오. 못 하고, 고 눈에 있는 요  핏발. 핏발 삭는 것만 자꾸 주고 이게 어디서 온 건지 원인을 짚지 않고 그라면  그 사람 눈 버린다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안과 의사도 전체의. 그 전 체에  대한 모든 것을 연구하고 난 다음에 특별히 이제 눈에 대해서 전공을 하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여러분들에게 지금 오늘 아침에 이와 같이 가르치는 것은 반사  선생님들이 이 모든 것을 전부 다 알아야 자기가 학생들에게 다 이거 가르치라  말 아니오. 알아야 학생들에게, 안과 의사가 눈을 치료하는 것처럼 이제 이  전부를 알아야 학생들에게 가르칠 때에, 어느 하나를 가르쳐도 그 모든 것을 다  바로 알고 가르치겠다해서 이라는 것이기 때문에, 이거 다 가르치지 말고  학생들에게 봐서 자기가 고 하나나 둘 문답을 말해 놨기 때문에 고 문답 그것을  알리도록, 문답을 표준 해 가지고 그들에게 알려서 그 속에 딱 박히게 하라 그  말이오.

 박히게 해서, 그 학생들은 제일 좋은 것이 뭐이냐 하면, 학생들 시기는 주입  시기입니다. 주입시켜라 말은, 자루 압니까? 자루 아는 사람 손들어 봐. 옳지.

자루는 지금 다 알아. 쌀자루 뭐 또 밀가루 자루 그렇지 안해요?  학생 때는 자루와 같애요. 모든 심령이 자루와 같기 때문에 안에다가 뭐이든지  접어 넣으면 돼요. 집어넣으면 되기 때문에, 그러기 때문에 이 테레비의 잡것을  집어넣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거 보지 말라해. 이거 집어넣어 놓으면 그놈이  꿈에도 꾸이고 이것이 나중에 장성해 가지고 살 때 그것이 장성하고 난 다음에는  모든 것을 듣고 보고 한 것을 연구하는 것인데. 그것을 종합해서 연구해 가지고  자기의 가는 길을 바로 선정해 가지고 갈수 있는 것인데, 잡탱이 그게  들어왔으니까 잡탱이 그것이 한 가지 계산해 들어가 보니까 계산이 착오돼  가지고 정확한 진실을 찾아가지 못 한다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자꾸 이 세상에서 배우는 그것은, 이것은 영원한  지식이 아니고 우리가 복종할 지식은 아니다. 산지식이 아니고 죽은 지식이라  하는 그것을 자꾸 인식을 시켜 가지고 그들이 세상에 대한 그 지식은 멸시를 해  딱 압도해서 자기의 발아래 밟아 놓고 하나님의 지식은 자기가 복종해야 될 이  지식으로 높이 모시고 자꾸 이것을 구별해 가지고 한 학생들이라도 만들어야  된다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내가 학생들 더러 접촉해 봤는데, 어떤 학생은  학교 공부가 제일인줄 알지만 아예 어떤 학생들은 보니까 학교 공부 그거는 암만  해 봤자 '그까짓거야' 하고 발 아래 밟고 있는 그게 이래 일등 한다 말이오.

일등하고, 하나님의 말씀은 뭐 한 말씀이라도 너는 이 말씀 어겼다 하면 그만  새파라이 질려 가지고 그만 울고 야단이라. 너는 이거 어긴 게 아니고 이거  괜찮다 하면 또 위로를 받고,  이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의 이 지식으로만 채워야 되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그  학생들이 이해를 하든지 말든지 기억만 하게 하면 됩니다. 자꾸 주입을 시켜요.

자꾸 옳은 것을 말해 주면 그 속에 담겨져. 그 속에 저는 이해를 못 해도 자꾸  담겨져. 담겨지니까 그 지식이 속에 있다가 이 생각이라는 상상 부대, 심리학자  말하는 상상 부대속에 들어가 있기 때문에 이것이 자꾸 나와서 꿈에 이런 것,  생전 나는 생각도 안 했는데 꿈 꾸인다 말이오. 꿈꾸이는 그게 뭐이냐 하면  자기가 귀로 들었든지 눈으로 봤든지 하나 그 상상 부대에 들어왔던 것이 그것이  나오는 것입니다. 깨어 있을 때는 이것 저것 모든 게 다 회의를 해 가지고 엉뚱한  짓을 못하게 하지만 꿈 꿀 때는 다른 신경은 다 자고 있기 때문에 어떠한 신경이  그걸 거머쥐고 나오면 이상스러운 꿈을 꾸는 거라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영몽도  있고 악몽도 있고 주사 야몽들이 낮에 생각한 것이 밤에 나오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고로, 여러 반사들이 자기가 기도해 가지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요걸  가르치라 하는 것이 나온다 말이오. 요걸 가르치라 하는 것이 그것이 뭐이냐?  영감 받는 일을 연습하는 것이라. 영감 받는 연습이라. 요걸 가르치라 하는 고게  있기 때문에 고걸 가르치라고 하면 거기 대해서 하나님이 가르쳐 줘 가지고  깨닫게 되니까 그것을 학생들에게 강하게 넣어 주라 말이오. 넣어 줘 가지고  그것이 어떤 사경에 갈지라도 그 말씀이 그들을 지도할 수 있고 지배할 수  있도록 그렇게 자꾸 이 사람을 만드는 그게 아니면 참 이거 생명 없는 탄환 없는  총과 같은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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