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된 사람

 

1984. 6. 13. 수야

 

본문 : 마태복음 16장 13절∼26절 예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가라사대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가로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가라사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이에 제자들을 경계하사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라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 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여 가로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이 본문은 다음 주일 유치반과 중간반 학생들의 공과가 되겠습니다. 공과를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제목은 영감된 사람.

 요절은.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마태복음 16장  17절입니다.

 서론에, 본문에는 예수님을 믿는 세 종류의 신앙이 기록되어 있다. 하나는  이사람 저사람 여러 사람이 말하는 대로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있었으니 이는  여론을 따르는 신앙이요. 또 하나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가르치시는 대로  예수님을 믿었으니 영감 신앙이요 사도 신앙이다. (사도 신앙이라 말은 사도들,  사도들 신앙이라 말입니다. 우리는 사도들 신앙을 따라 가는데 이게 사도들  신앙이라 말입니다.) 하나는 사람 일만 생각하고 고난을 피하는 신앙이니 이는  주관 신앙이다. 여론 신앙의 사람들은 주후 칠십 년에 완전히 멸망을 받았고,  주관 신앙은 당장에 사단이라고 쫓겨남을 받았다 (주님이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하시면서 '사단아 물러가라'고  말씀했습니다.) 그 중에 영감 신앙 하나 만 칭찬 받고 구원 받았다. 노아 때나  이스라엘 말년이나 주님 재림 때나 꼭 같은 줄을 알고, 우리는 아무나따나  믿으면 된다고 하는 생각을 버리고 멸망하는 여론 신앙과 주관 신앙을  결사적으로 버리고 영감 신앙으로 굳게 서야 한다.

본론. 여론 신앙은 성경 말씀을 아는 것으로만, 또 말씀대로 행하는 것으로만 다  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다 여론 신앙이 되고 만다. (그 과정은 말하지  안했습니다. 여론 신앙이 결국은 되고 맙니다. 왜 그러냐? 그들은 사람을  상대해서 하기 때문에 외식 신앙이니까 결국은 여론 신앙으로 돌아가고야  맙니다.) 아는 것은 (성경을 아는 것은) 행하기 위함이요 (성경을 아는 것은  행하기 위함이요. ) 행하는 것은 자기가 변화 되어서 영감 받기 위함이요  (우리가 성경 말씀을 행할 때에 행하기를 위주해 가지고 하면은 헛일입니다.

행한다고 무슨 소용 있습니까? 행하는 그것은 행하는 가운데서 자기가 변화 받기  위해서 행하는 것입니다. 변화 받기 위해서 행하는 사람은 진실되이 행할 수  있고, 자기 변화나 영감 받는 것이나 그런 걸 생각지도 안하고 행하는 것은  외식적으로, 속에 마음은 딴 데 두고서 껍데기로 얼마든지 행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은 점점 외식자와 교만한 자가 되기 때문에 나중에는 여론 신앙이 되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 과정은 여러분들이 좀 깊이 생각하면 알게 될 것입니다.)  여론 신앙이 되고 만다. 아는 것은 행하기 위함이요, (성경 말씀 아는 거는 뭣  때문인가? 그대로 행하기 위함이요.) 행하는 것은 자기가 변화되어, (성경  말씀대로 행하는 것은, 행하면 다 되는 게 아니라 행함으로, 자기 자신이  변화되기 위해서 행합니다.) 행함으로 변화되어 영감 받기 위함이요, 영감 받는  것은 하나님이신 주님 모시고 살기 위함이어야 한다.(네, 고거 잘 생각해야 될  겁니다.)

둘째 대지. 주관 신앙은 행위에 있어서 주님보다 자기를 더 생각하고, 주님의  일보다 자기 일을 더 중하게 여기고, 주님의 소원과 기쁨보다 자기의 소원과  기쁨을 먼저 생각하고 중하게 여기는 사람은 주관 신앙이 된다. 즉시로 마귀의  사람이 되고 주께 쫓겨나 영육이 멸망하게 된다. (주관 신앙으로 돌아가니까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그렇게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어디서나,  (어디. 장소를 말합니다.) 우리는 어디서나 어떤 장소에서나 언제나 (시간을  말합니다.) 어느 시간이나 언제나 무엇을 대하나 (어떤 종류를 대하나) 먼저  주님 생각하고 주님 좋아하시는 것을 택하여야 한다. (요래야 주관 신앙으로  삐끌어져 들어가지 안합니다.)  셋째. 영감 신앙은 하나님이 선물로 주셔야 된다. (영감 신앙은 인간에게 있는  게 아니고 하나님이 선물로 영감 신앙을 주셔야 영감 신앙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영감 신앙을 선물로 받은 사람들은) 사람 중에는 영감 신앙을 가진  사람이 제일 복 있고 또 고귀한 사람이다. 영감의 사람 이 되는 데는 주님  모시고 살기를 원하여, 성경 말씀대로 행하여 내몸과 말씀이 하나되고, 또  말씀과 내 마음이 하나되고, 말씀과 내 양심이 하나 되면 영의 사람, 그라면  영의 사람 곧 참사람. 참자기를 만나게 된다. 그 때의 자기가 참자기요 영감된  자기이다. 영감의 사람이 되면 일곱 가지 지극히 큰 축복을 받게 된다. 첫째는  주님이 축복하시는 주님의 축복을 받고. 둘째로는 새 이름을(시몬에게  베드로라는 새이름) 받고. 또 셋째로는 반석, (아주 반석 같은 요동치 않는  반석의 은혜를 받고) 또 넷째로는 교회의 기초가 되고, (교회의 기초, 선지 사도  터가 되고 선지 사도들은 터가 됐습니다.) 교회의 기초가 되고, 다섯째로는  음부의 권세를 이기고, 여섯 째로는 천국 열쇠를 받고, 일곱째로는 천상천하의  결정 심판권을 받게 됩니다.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 풀려진다.' 이러니까, 땅과 하늘의 맺고 푸는, 맺고 푸는, 이렇게  정죄하고 사죄하는 이 모든 심판권을 다 받게 되는 것입니다.)

 문답에, 신앙의 종류는 몇 가지뇨? 여론 신앙, 주관 신앙, 영감 신앙 이 세  가지이다.

 멸망하는 신앙과 구원 받는 신앙을 다 말하라 여론 신앙, 주관 신앙은 멸망  받고. 영감 신앙만 지극히 큰 구원을 받는다.

 셋째. 멸망하는 여론 신앙과 주관 신앙에 어떻게 하면 빠지느뇨? 성경 말씀을  버리고 사람 생각대로 하면 여론 신앙, 주관 신앙에 빠지게 된다.

 넷째. 영감 신앙을 가지는 방법은 무엇이뇨? 답에, 말씀과 같은 행위와 사람이  될려고 힘쓰면 영감 신앙의 사람이 된다,  네, 요것이 요번에 성경 보고서 공과한 것입니다.

 반사 선생님들은 이 공과를 많이 읽어야 할 것입니다. 공과의 그 세밀한 해석을  하지를 못하고 그저 줄기 만들어서 말했기 때문에 여러 번 읽어야 거기에 대한  뜻을 깨닫게 됩니다. 그 공과를 깨달아서 확실히 그 속의 뜻을 자기가 알고  학생들에게 가르치면 그 앎이 전해집니다. 자기가 이 공과를 보고 확실히 알고  가르치면 앎이 전달됩니다. 또 자기가 이 공과를 보고 그대로 실행을 하고,  실행을 하고 고대로 실행하는, 실행을 하면서 가르치면 아는 것과 실행이 그  학생들에게 전해집니다. 또 자기가 알고 실행하고 자기라는 사람이 이 말씀과  같이 변화가 돼서, 말씀과 같이 돼 가지고 전하게 되면 내가 전하는데에 말씀을  아는 것과 또 실행하는 것과 그 사람이 되어지는 이것이 한꺼번에 전해지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입으로 말을 전하나 지식만 전하는 사람 있고, 지식만  전하면서 자기 마음은 따로 두고 말만 전하는 그 사람은 받는 사람도 받을 때에  지식은 받고 마음은 따로 두는 것이 되고 맙니다.

 그러기에, 일곱 별과 일곱 금 촛대의 비밀이 요한계시록에 기록한 전부입니다.

그러면, 일곱 별은 거기에 해석하기를 일곱 교회의 사자들이요, 하나님의 교회의  사자들이요, 일곱 별은 교회들이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교역자와 교인들은,  그거는 하나입니다. 교역자가 된 대로 교인들은 됩니다. 교역자가 세모잡이면  교인들도 제가 별 수 없이 세모잡이 되고, 또 교역자가 둥글 둥글 하면은 그  교인들도 둥글 둥글하고. 또 교역자가 치우친 기형이 되면. 기형이 되면 그  교인들도 기형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학생들에게 전할 때에 제일 외부는 그  지식을 전해 줘야 되겠습니다. 지식만 전하면 그것도 외식이라 헛일입니다.

지식을 전하는 그 동시에 자기가 그대로 실행하려고 애를 쓰고 또 실행을 하고  하면 지식과 실행이 한꺼번에 전해집니다. 그러면, 그 말씀대로 행하는 사람은  지식과 행함이 같이 전해지고 행함은 하지 아니하고 지식만 전하는 사람은  지식만 전해지고. 또 지식을 전할 때에 마음과 같이 해서 마음에서 진정  소원해서 전하면 그 지식과 마음이 같이 전해지고, 지식은 가르치면서 제 마음은  따로 있으면 전해질 때에 고 지식만 전해지고 마음은 따로 있는 것으로 받게  됩니다. 꼭 전하는 사람대로 되는 것이 고것이 비밀입니다. 또 자기가 고  지식대로 행하고 행하는 가운데서 자신이 고 지식대로 변화가 될라고 애를 쓰고  변화가 다소라도 된 사람은 변화 된 것 만침 그 지식을 전할 때에 지식과 행함과  변화가 같이 전해집니다.

 그런고로, 반사 선생님들이, 오늘 밤에는 지금 공과 공부 택인데 반사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가르칠 때에 먼저 이 공과를 지식으로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 공과를 지식으로 알아서 외워야 합니다. 그 아주 외우기 쉽고  간단명료하도록 고렇게 짠다고 짜는 대로는 짰습니다. 그러니까. 요 공과를  외워야 됩니다. 공과를 외우나 고 공과대로 자기가 해 볼라고 애를 써야 합니다.

 이 공과는 간단하지마는 간단한 공과 속에는 많은 것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얼마든지, 어떤 학자라도 이 공과를 생각하면 연구한 것이 그 속에 많은 것이  나오고 자기 지식대로 더 넓게 나오고 깊이 나올 것입니다. 또 이 말씀을  행하고, 자기가 행하고, 자기가 행하고 노력하는 가운데서 이 말씀대로의 사람이  다소라도 됐으면 이 말씀을 전할 때에 그 사람이 변화되는 것도 전해집니다.

그러면 그것이 뭐이냐? 말씀과 성령이 전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말씀을  들을 때에 행하게 되는 것이 능력이요, 또 이 말씀과, 말씀대로 행해서 이  말씀과 같은 사람이 되는 것은 더 큰 능력입니다. 이 말씀을 지식으로 아는 것이  능력이요, 또 이 말씀대로 행하는 것은 더 큰 능력이요, 또 이 말씀과 같은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은 더 큰 능력입니다.

 그러기에. 바울이 전할 때에 '내가 전하는 것이 말에 있지 안하고 권능에  있기를 힘쓴다' 그 말은. 바울은 자기가 말씀을 전하는 동시에 그 말씀과 성신의  권능이 같이 와서 말씀과 권능을 자기가 받아 가지고서 성신의 권능으로 자기가  이 말씀과 같은 사람이 되어져 가지고 전하려고 애를 쓰는 그것이, '내가 전하는  것이 말에만 있지 안하고 권능에 있기를 원한다' 하는 그말은, 행할 수 있는  권능, 변화될 수 있는. 변화시킬 수 있는 그 권능이 같이 하기를 원한다 그 말은  우리가 전할 때에 '내가 전하는 이 말씀에 행할 수 있는 권능이 같이  해주옵소서. 또 이 말씀대로 변화되는 권능이 같이 해주옵소서.' 그 사람이  마음으로 진정 원하면 원함이 또 전해집니다. 자기가 원함도 없고 행하지도  안하면서 그런 입술을 벌리는 것은 하나님을 꼬우고 속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환하게 보고 있는데 자기도 싫어하고 거부하면서 '이 말씀을 전할 때에 행할 수  있는 능력이 같이 해 주옵소서. 변화될 수 있는 능력이 같이 해 주옵소서.'  자기가 원하고 힘을 쓰고 애를 쓰고 그렇게 해 나가면서 할 때에 성령이 그를  버리시지 안하시고 같이 하시지마는서도 자기는 그와 같이 하지 안하면서 그렇게  하는 것은 성령을 아주 모욕시키는 것이오. 성령을 꼬우는 것이요, 아주  등신같이 놀려 먹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는 떠나야 됩니다. 왜?  같이 있으면 당장 벼락을 때려서 그 사람이 그만 절단나 버린다 그말이오.

하나님 떠나 버립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서 급하게 빨리 떠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계시기를 원하지마는 하나님이 당신이 보시기에 멸할 수  있는 그 사람이 되어 있으면 하나님이 빨리 피합니다. 피하지 않으면 멸해야  되니까.

 이러니까, 자기는 전해도 말만 전하니까 그 말은 결국은 율법이 되어질 것이고  그라면 그 지식이 그 사람에게 돼 가지고 있다가 어떤 때에 가면은 그 능력을  받아서, 행한 사람을 통하여서, 그 사람이 행하는 걸 보고 감동 받아서 능력  받고. 또 그 사람 변화된 사람을 보고 또 능력받아 자기가 변화되고, 그러니까,  받는 사람은 기회가 있지마는 전하는 사람은 그것은 자기에게는 구원이 되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다음 주일에는 우리가 요 간단하게 해서, 그저 성경 해석을 어떻게  해서 그 본문에서 여론 신앙이라는 신앙을 캐냈으며. 그 본문에서 어떻게 주관  신앙이라는 그 신앙을 캐냈으며, 또 어떻게 영감 신앙이라는 신앙을 캐냈느냐?  어떻게 신앙이 세 종류로 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거기에서 발견해 냈느냐?  그것은 가르치기 위해서 여러 번 말했습니다. 성경이 요렇기 때문에, 본문이  요렇기 때문에 본문 어느 본문을 근거해 가지고서 여론 신앙, 어느 본문을  근거해 가지고서 주관 신앙. 어느 본문을 근거해 가지고서 영감 신앙, 고 본문에  다 있습니다. 공연히 끌어다가 맞춘 게 아니고.

 이러니까 학생들에게 여론 신앙. 또 주관 신앙, 영감 신앙 이 세 가지 신앙을  다음 주일에는 가르치면서,  여론 신앙은, 주후 칠십 년이니까 이 설교한 지 한 삼십 한 칠 팔년 후에  예루살렘은 돌 위에 돌 하나도 첩놓이지 아니하고 완전히 멸했습니다. 그때  이스라엘, 이렇게 여론 신앙 가졌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기 자녀의 고기를  먹었고, 또 자기 아내 고기를 먹었고, 강자가 약자의 고기를 먹었고 이래도,  나중에 그러다가서 마지막에는 잡혀 가지고서 전멸을 당하고, 하나님을  거기에서도 경외한 사람 명만 남겨 가지고서 그렇게 했는데. 여론 신앙 따르던  사람들은 다 멸망 받았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오늘도 여론 신앙을 따르는  사람은 물론 건설구원은 없고. 건설구원은 하나도 이루어지지를 안하고 자기는  앞으로 하나님이 이 신앙대로 보응시키는 보응할 때에는 그 사람은 멸망을 받을  것입니다.

 여론 신앙은 어떤 신앙이냐? 이 사람들은 이래 말하고 저 사람들은 저래 말하고  저 사람들은 저래 말하고 예수님을 어떻게 저들이 저렇게 보고 있느냐? 이  사람들은 이렇게 보고 있고 저 사람들은 저렇게 보고 있고, 이 사람들은 이렇게  믿고 저 사람들은 저렇게 믿고 하는 그게 여론 신앙인데. 오늘 다른 사람들의  입에다가 귀를 대고, 입에다가 귀를 대서, 입에다가 귀를 대고 귀에 들어오는  대로 행동하는 그거는 여론 신앙이기 때문에 자 멸하는 어리석은 자입니다. 또  어데든지 눈으로 보고 눈으로 들어오는 대로 그대로 따라서 행하는 그것도 여론  신앙입니다. 또 무슨 일을 할 때에 '아, 이러면 다른 사람이 욕할라.' 그것도  좋지마는 남의 입을 상대해서, 입을 상대해서 사는 사람도 여론 신앙이요, 남의  눈이 무섭다, 남의 눈을 상대해서 하는 사람도 여론 신앙이요, 그렇게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거, 보는 거, 또 자기 듣는 거 이런 것을 따라서 사는  신앙생활은 다 그게 여론 신앙생활인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것이 뭐 어떻게  많은지 모릅니다.

 이 세상에는 '설마 거짓말해도 그렇츰 그런 거짓말이 있을까?' 아니오. 요새는  거짓말이 말이요, 설마를 열 두 번도 더 뛰어 넘습니다. '설마 그렇츰이야  거짓말일까?' 아니야. 그 설마도 또 뛰어넘었어. 또 그라면 '아, 그거야,  그렇츰이야, 그렇츰이야 그럴까?' 아니오. 사람들이 설마에 속는다고 '설마  그렇게야 그럴까?' 했지마는서도 요새는 뭐 설마를 뛰어넘는 그것이 한  장기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세상은 굉장한 세상이오.

 이러니까 사람의 입에다가 귀를 대고, 사람의 행동에 눈을 대고 이렇게 사는  사람은 참 불쌍한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왜 - 기독자의 구원 중에  제일 말세 구원이 제일 위대합니다. 말하자면 탑을 쌓을 때에, 탑을 쌓을 때에  저 탑 꼭대기에 -요새는 팁을 어째 쌓는지 모르지만 -탑 꼭대기에, 그 꼭대기라  하는데 꼭대기에 하는 것은 대개 옛날 금이 없을 때도 금으로 했는데, 탑  꼭대기에 한 그 가치나 팁 전부 쌓는 가치나 가격 이 거의 같이 붙는다  이랍니다. 제가 일본 있을 때에 탑들이 있는데, 그탑 위에는 색이 변하지 안하고  색이 변하지 안하고 반짝 반짝 하고 있는데 올라가지도 못하고 그런 데인데,  모두,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저놈 하나만 맸으면 팔자를 고칠 건데' 그래요,  같이 가는 사람이. '그게 뭐인데?' '저기에 금이라도 아주, 밑에는 금으로 하고  위에는 보석으로 해 놓은 건데 저기에 이 탑 이거 전부 쌓는 것 만침이나 가격이  되니까 저기에 뭐 요새 돈으로 말하면 몇십억이 되는지 모른다' 그말이오.

마지막에 탑 꼭대기, 꼭대기에 제일 값비싼 걸 하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이 기독교 육천 년인데 육천 년에 신약 교회가 제일 가치  있고, 신약 교회 증에도 제일 마지막 예수님 재림 때의 그때 교회가 제일 가치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런 것 만치 그런 것 만치 죄악도 제일 관영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마귀가 저의 때가 얼마 남지 아니한 것을 아는 고로 있는 힘을  다해서 택한 자라도 미혹할 수만 있으면 미혹한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이 무슨 상을 줄라고 이렇게 거짓말쟁이를 이렇게 딴 이  만들어 놨는가? 그래서  요한계시 9장에 보면 배암의 그 힘은 어데 있는고 하니  꼬리에 있다 했소. '배암의 힘은 꼬리에 있다' 이랬어요. 요한계시록 9장에.

'배암의 힘은 꼬리에 있다.' 꼬리에 있다는 그것이 무슨 뜻인가? 나는 배암의  힘이 꼬리에 있다 할 때에 내가 뭐 서슴지도 안하고 - 그걸 어릴 때 봤어요.

배암을 보니까, 어릴 때 보니까, 이 배암이 구멍에 들어갔다 말이오. 구멍에  들어갔는데, 이놈은 잡을라고 이래 가만히 보면, 그때 저는 배암을 무서워하지  안하고 그걸 잘 잡아 죽여 버렸어요, 이랬는데. 들어가고 나면 뭐이  다르르르르록거려. 다르르르록거려서 '이게 무슨 소리인고? 이상하다.'  다르르록거리는 거 자세히 자세히 뒤에 심사해 보니까 배암의 꼬리가 다다다닥  이래 떨며 다라라락거려요. 어떻게 거석한지. 그걸 봤기 때문에, 그래 이 모든  악의 세력의, 악의 세력, 미혹의 세력을 가리켜 배암으로 가리켰는데, 배암의 그  힘은 꼬리에 있다 이 꼬리로 모든 사람을 상운다 하는 그 요한계시 9장을 척  보고 대번에 딱 떠오르기를 '아하. 이거는 이 배암이 사람을 이랬다 저랬다 자꾸  변동시켜 가지고서, 사람을 어지럽게 말해 가지고서 사람을 미혹시켜서 그래  절단내는구나.' 그걸 보고 나서 그만 보니까 딱 들어맞다 그거요.

 그래서  말세가 되어갈수록 거짓말이 굉장합니다. 거짓말, 그저 뭐 이랬다  저랬다 변동해 가지고서 이라기 때문에, 왜 하나님께서 이렇게 거짓말 가득찬  세상을 만드는가? 변동된 세상을 만드는가? 이랬다가 이렇다 하면 또 이라고  저라면 저라고 뭐 사람이 따라갈 수가 없소. 요새 테레비전에 나는 그것도,  텔레비전을 알고 볼라면 보십시오. 테레비전 그것이 뭐이냐 하면은 이 마귀가  어떻다, 세상이 어떻다 하는 것을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거기에 미혹만 안 받으면 돼요. 그러나 그것 보고 나면 그민 정신이 그만 그리  끌려 가지고서 주님도 잊어버리고 성경도 잊어버리고 정신이 혼미하게 무슨  마취제 주사 맞은 거같이 그만 그래 돼 버리고 말아요.

 이렇게. 모든 인간의 별별 여론이 최고로 발달하도록 하는 것은 뭐이냐? 영감  신앙을 대우하고 영감 신앙을 가치 있게 만들기 위해서 인간의 이목구비 모든  세계가 뭐라 하노? 인간이 뭐라 하노? 이 학자가 뭐라 했노 저 학자가 뭐라  했노, 뭐이 뭐라 했노? 그게 아니라. 이런 걸 막 이래 놔 놓고 그것보다도  은밀한 가운데 계시는 주재자이신. 창조주이신, 주권자이신 우리 구속자이신  주님이 가르쳐 주시는 영감대로 하는 고 사람을 높이 들고 가치 있게 하기  위해서 이 모든 거짓부리들을 많이 만들어 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세상을 척 보고 '아. 저거는 저기가 틀렸다, 여기가 틀렸다  그렇게 비판성 있는 그 지각을 여러분들에게 주셨으면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천 명 만 명이 봐도 그게 뭐인지 모르는데 딱 보고 '아, 저기에 저거다 틀렸다,  옳다, 저거는 미혹이다' 하는 그것을 알아낸다는 그것은 하나님의 큰  은혜입니다. 이래 그걸 가치 있게 여겨야 하나님이 그 은혜를 주시고 또 은혜  주실 때에 잘 보존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어떤 사람은 뮈 소유와 몸과 생명  그런 거보다도 어찌 됐던간에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게 해 주옵소서.' 그걸  평생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게 해 주옵소서. 또 모든 것을 바로  알게 해 주옵소서. 육십 육권 도리를 바로 알게 해 주옵소서.' 그것을 평생 제일  기도의 제목으로 두고서 기도합니다.

 이러니까 여러분들이 자기 맡은 학생들에게 여론 신앙이라 하는 것을 강하게  가르치십시오. 여론 신앙, 사람들의 입을 따라가고, 사람들의 눈을 따라가고,  사람들의 움직임을 따라가고, 모든 인간을 따라서 움직이는 그것이 다 여론  신앙인데 그 신앙은 멸망입니다. 또 여론 신앙은 모든 남 따라 움직이는 것이  여론 신앙이오. 남을 따라서 움직이는 게 여론 신앙이라. 고만 저까짓 거야 암만  저래도 거짓말 한 마디만 딱 전해 주면 고만 고것 때문에 평생 멸망 받습니다.

그까짓 거 거짓말을 억만 마디를 전해 줘도 그 사람은 변하지 안해. 뭐  거짓말이나 참말이나, 참말이 와도 내게 소용없고 거짓말이 와도 내게 소용없고  인간의 말 들을 것 없이 주님의 말도 다 듣지 못하는데 인간의 말 들을 여가가  있느냐? 그저 영감만 나는 들어서 하겠다 하는 사람에게는 그런게 와야 소용이  없어. 이러니까. 여론 신앙을 어릴 때부터 배격하는 그런 사람이 되도록  가르쳐야 됩니다. 어릴 때 가르치면 효력이 큽니다.

 우리 교회서 남녀끼리 구별을 해서 '남학생들과 여학생들 같이 다니지 말아라.

남학생과 여학생들이 손을 잡고 다니는 것은 바로 그것이 칠계범을 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걸 삼가라' 이래 가르쳤다 말이오. 가르쳤는데, 내 어떤  사람 말 들으니까, 내나 저거 형제간이라. 저거 형제간인데, 작은 것은 네 살  먹고 큰 것은 뭐 다섯 살인가 먹는데, 그 할머니가 말하기를 '야야, 너 오빠  네가 너거 동생 손을 잡고 가거라.' 이라니까 깜짝 놀라면서 '아, 여자  아이인데, 여자 손을 잡아? 교회서 그래 못 하게 하던데.' 할머니도 참 별거 다  시킨다고서. 그래 그 뭐 평상 손 안 잡고 다닌대요. 교회서 그렇게 가르친다고.

얼마나 깨끗합니까? 이렇습니다. 모두가 다 그래요. 말 들어 보면 참 깜짝 깜짝  놀랠 일이 많아요. 아이들은 들으면 고대로 변동 없이 고대로 실행해요. 이  어른들이 부패하고 썩어서 더러워서 백 번 들어도 열 번 들어도 뭐 아무 효력이  없지.

 이 참, 과거에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온 어른들은 다 광야에서 멸망  받았고 거기에서 난 새움이 다 가나안에 들어간 거와 마찬가지로 이것도 보면,  요새는 어른들 신앙 보고는 '이 신앙을 보십시오. 이 남침 못 하도록 공산  주의를 막아주십시오.' 그 기도를 암만 할라 해야 내 낯짜구 가지고는 기도 못  합니다. 내 낯짜구 가지고 기도 못 해요. 그 말이 안 나와요. 그러나 이  주일학교 학생들을 들고는 '보십시오. 이 학생들이 지금 이라지 않습니까?.'  '남녀 구별하라' 이 말 듣고서는 저거 형제간에도, 저거 집에서 '야, 너거 동생  손 잡고 가거라.' '아, 할머니 참 어떻게 저 머슴아 가 처녀의 손을 잡고가?  교회서 못 하게 하던데. 그거 죄라 하던데.' 이라며 저거 할머니한테  공격하더라고. 그래 가지고 암만 부탁해도 안 잡고 간대요. 꼭 그냥 가지.

'이렇게 말씀을 들으면 고대로 살라고 애를 쓰는 것들이 무럭무럭 자라는데  여기에 공산화시켜 되겠습니까? 주님이여, 생각해보십시오. 이게 옳습니까?' 막  따져 들어갑니다. 기도를 따져 들어가. '옳습니까? 그래야 되겠습니까? 그라면,  공산화 되면 그들이 기독교를 용납하겠습니까? 이거 다 강제로 하나님 없다고  무신론을 가르치고 이랄 터이니까 이거 어찌 됩니까? 당신이 막아야 되지  유엔군이 막을 수 있소 미군이 막을 수 있소? 막을 수 없습니다. 당신이 막을  책임이 있지 않습니까?' 담대히 기도한다 말이요, 담대히 기도해. 그러면 힘이  나와요. '주여! 이거 막아야 되지 않습니까?' 담대히 시비를 걸어요. 시비를  걸면 하나님께서 좋아하실 거다. '그래. 그런 깨끗한 내 성도들이 자라니까 내가  멈춰 주지. 저거 암만 떠들어 봐야, 뭐 땅굴 스물 아니라 백을 파도 소용이  없다. 내가 딱 중단하고 있을 터이니까 부지런히 구원이나 해라' 이럴 것이라  말이오. 아직까지는 그 승락 받았어요. 받았기 때문에 그것들 이 남침 못  합니다. 우리가 변해져야 남침하지, 그전에는 남침은 못 해요.

 이러니까, 여론 신앙을 이걸 똑똑히 가르칩시다. 여론 신앙. 이러니까, 자기  속에 영감 신앙 아니고 여론 신앙은 다 멸망 받는다. 요걸 가르치고. 고  다음에는, 고 주관 신앙, 주관 신앙은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네가 하나님의 일은  생각지 않고 사람 일만 생각한다.' 십자가 못박혀 죽는다 하니까, 죽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면 죽어야 되지 꼭 안 죽고 살기만 하고 무안하기만 하고 이래  하다가서 그만 사단 됐다 그말이오.

 주관 신앙은 어떤 게 주관 신앙이냐? 자기 욕심대로. 자기 좋아하는 대로 자기  소원대로, 자기 좋고 자기 편할 도리를 행하는 사람은 그만 주관 신앙 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사람이 늙어갈수록 여론 신앙 따라가는 사람은 자꾸. 다른  사람들의 여론 보고, 성경은 안 보고 이 학자가 뭐라 하나 저 학자가 뭐라 하나  그것만 봅니다. 또 여기에서 저기에만, 거기만 돌아다닙니다. 또 주관 신앙은  나이가 많아 놓으면 그래요. 여기 앉아서, 여기 떡 자기 자리에 앉았습니다.

자기 자리가 있어. 다른 사람이 와 앉았으면 딴데로 자리 비키라고. 여기 내  자리라고서, 아무리 기도해도 뚜드리며 비키라고 합니다. 또 자기 자리에 앉아  있을 때 '좀 들어앉으십시오.' 암만들어 앉아라 해도 들어 안 앉습니다. 나이가  많을 수록이 이거 아주, 주관 신앙이 자라 놓으면 고집쟁이가 돼 가지고 이거는  뭐, 이거는 아무리 꺾을래도 꺾을 수 없어.

 신앙이라 하는 것은, 영감 신앙은 하나님의 감동의 신앙인데, 자다가도, 자기가  아무리 이걸 주장했다가도 아 그것보다 이게 옳으면은 퍼뜩 '아이구. 이게  틀렸으니 얼른 옳은 데로' 옳은 것만 알면 옳은 데로 빨리 빨리 따라 가는 그  사람이 영감 신앙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관 신앙 이것도 망한다, 여론 신앙도 망한다. 이래 가지고서 영감  신앙을 가진 그 사람만이 구원을 얻는데, 영감 신앙은 어찌 하면 영감 신앙을  가질 수 있느냐? 영감 신앙은 '내가 성신의 감동 받는 사람 이 돼 가지고  주님하고 동거 동행할란다. 주님하고 동거 동행할란다.'  여러분들. 주님이 어떤 분인 줄 모르는 사람들은 혹 자기가 아주 참 좋아하는  그런 결혼 첫사랑의 그 남편, 남편이 모든 일이 구비하고 원만하고 참  인격적이고, 그런 결혼 해 놓으면은 그 부인이 남편에 대해서 얼마나 사모가  되겠습니까? 그래 가지고 결혼의 첫사랑에서 남편하고 같이 있으면 뭐 더운 것도  모르고, 추운 것도 모르고, 어떤 사람을 보니까, 내가 봤다. '아, 저 사람들은  오뉴월에' 칠팔월이라 말이오. 양력으로는 칠팔월. 양력 칠팔월에, 칠팔월에,  '아, 저래 문을 뽈끈 닫고 저래 앉았으니 어찌 견디노?' 더운 줄을 몰라.

칠팔월에 그렇츰 더운 때라도 서로 사랑하는 자 둘이 딱 문을 닫고 애기하면, 문  열면 다른 사람 볼 것이니 문 닫고 얘기해도 더운 것이 하나도 없고 기쁘고  즐겁고 평안하다 그말이오. 이런데,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 것을 성경을 보고서  깨달아 가지고 '주님 모시고 살면 좋겠다.'  그래요. 주님과 같이 하는 사람들도 그렇습니다. 이러니까, 성자들 있는 곳에는  성자들 있는 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아듭니다. 만일 우리 한국에 사도 요한  같은, 바울 같은 그런 성자가 지금 저기에 만일 있다 하면, 확실히 있는 줄  알면은 찾아갈 사람 많이 있습니다. 뭐 죽는 거 아끼지 안하고 찾아갈 것이오.

만일 지리산 꼭대기에 그렇게 사도 바울 같은 그런 성자가 와 있다 하면 나도  가겠소. 나도 여기 목회 어찌 되든지. 내비 두고 고만 보따리 싸고 가 가지고서  거기 가서 좀 만나 가지고서 실컷 좀 같이 있다가 거기에서 하나님이 '서부 교회  가거라' 하면 갈지라도 그리 안하면 고만 거기 있겠어.

 이러니까. 영감 받은 사람도 좋은데, 영감 받은 사람도 좋은데, 영감 받은  사람, 나는 영감 안 받았지마는, 영감을 받지 안했지마는서도, 내가 금년에 칠십  다섯 이라. 병신이라. 반송장이라. 철봉에 내가, 자꾸 이래서 이 걸 인제 만들어  놨어요. 달아매일라고. 그전에는 뭐 철봉 거머쥐고, 이래 거머쥐고 이라면 쑥  올라가고 휭횡휭 이래 쌓았는데 인제 송장이라. 당글어 매여 가지고 발을 못  떼요, 팔이 아파서. 좀 뗄라 하니까 팔이 떨어지는 것같이 못 뗐고 이래서 조금  이랬다 또 놨다가 했는데 인제 오늘은 당글어 매였어. 오늘은, 당글어 매이기는  매여요. 송장이라 말이오. 송장이라도, 만일 같이 좀 놀자 하고 좀 같이 얘기를  하고 같이 좀 접촉해서 시간 있는 대로 하면은 아마 내 옆에는 사람이 내  마음에는 안 떠날 것 같아요, 아마. 참 만나 가지고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좀  얘기를 하고 싶어도 내가 그런 시간이 없으니까 자꾸 그렇지, 만일 같이 얘기를  하고 좀 이래 놀자 하면 놀 친구들이 많이 모일 거라 그말이오. 영감의, 나는  영감에 빈약한 사람이라도 그런데 주님하고 만나서 있는 게 얼마나 좋습니까?  어떤 아이가 그라더래요. 새벽기도 갔다오더니마는, 쬐그만한 게, 국민  학생인데. 오더니마는. 아주 기뻐서 뛰 들어오면서 '엄마 엄마, 나는 참 기쁜  일을 봤어. 기쁜 일을 봤어.' 이라더래요. '뭐꼬?' 하니까 말을 안 하더래요. 안  하는데 나중에 얼마 있더니마는서도 '엄마 너 그런 거 봤나?' '뭐?' '아  기도하니까 눈물이 나오고 어쩔 줄 모르게 기쁘고 즐겁고 기쁨을 봤는데 엄마  그런 거 봤나?' 그러더래요. 눈물이 나고 기쁘더라고. 고거 주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얼마 전에 말했지요. 주님이 주시는 기쁨은 평가적 기쁨 아니오. 평가적  기쁨 아니오. 평가는 이성적 비판이라. 이성이 비판해 가지고 '아무래도  이러니까 이거 참 좋다. 이게 옳다.' 이성적 비판을 가지고서 기쁨이 생겨지고,  또 황경에 피동돼 가지고 기쁨이 생겨지고, 모든 세상에 있는 음식 그런 거로  인해서 기쁨이 생겨지지마는서도 주님이 주신 기쁨은 이성 비판이 맞지 않아요.

어쩐지 죽음에서도 기쁘고, 망하면서도 기쁘고, 욕 얻어먹는데도 기쁘고, 천해도  기쁘고, 병들어도 기쁘고 어쩐지, 어째 기쁜지 모르는 기쁨이 주님이 주시는  기쁨이오. 이러니까. 그 기쁨을 가진 사람들은 제삼자가 볼 때에는 아마 저 입장  만난 사람은 기가 찰 거다 이랬지마는서도 본인은 기뻐 못 견딘다 그말이오.

 저도 그런 걸 좀 봤어요. 과거에 제가 ○○교파에 있을 때에 다른 사람들이  '아이구! 저렇게 손 골에 돼지 몰듯이 저래 주 몰리니까 아마 저 백영희 조사가  지금 아마 울고 있든지 그리 안 하면 밥맛이 없어 바짝 말라 병이 들었든지 했을  터이니까 어라. 가서 좀 위로를 해야 되겠다.' 그래 가지고 온 사람들이  많았어요. 위로하러 와서 보니까 살도 찌고 기쁨은 충만하고 오니까 그 사람들  왔던 대로는 정반대로, 와 가지고 그 사람들이 위로 받고 오히려 그 사람들이 큰  기쁨을 얻어 가지고 가니까 '그거 기이하네.' 그때에 내가 기쁨을 봤어요.

그렇게 외로운데도 어찌 그리 기쁜지. 그 기쁨을 봤어. 주님이 주시는 기쁨은  세상이 주는 기쁨과 다릅니다.

 이러니까. 이 주님 만나 가지고서 주님에게 인정받을라고. 주님에게 옳다 인정  받을라고, 주님이 나를 '아노라' 하는 그런 환영을 받을라고, 주님 만날라고,  주님 앞에서 주님 모시고 영생토록 평안하게 살라고, 주님은 완전히 옳아요,  참은 것이요. 사랑이요. 평강이요, 불변이요. 영원이요, 참 깨끗하고, 깨끗하기  때문에 그분 만남을 인해서 나도 모든 면이 좋아지고, 깨끗해지고, 발라지고,  옳아지고 이렇게 그분 만나 가지고 그분 가지고 살기 위해서.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든지 배우든지 해 가지고 이 말씀대로 자기가 지켜 행하고,  뭐하려고? 지켜 행하면 상급 받을라고? 그 사람들은 전진을 잘 못 합니다. '내가  이 말씀대로 지켜 행해야 상급을 받지.' 상급도 좋지마는 지켜 행함으로 자신이  변화돼서, 자신이 변화돼서 주님 만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지켜  행함으로 자신이 변화되는, 그 변화되는 거기에 재미를 붙이고, 변화되니까  진리가 다 알아지고 변화되니까 주님이 더 가까와집니다. 변화됨으로 진리와 더  가까와지고, 변화됨으로 주님이 더 깨달아지고, 알아지고. 주님 만나지고  이라니까, 주님과 같이 만나서 주님 모시고 살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지켜 행하고, 그래서 행하기 위해서 행하는 사람은 참 원통합니다.

 행하는 것이 뭣 때문에. 행하는 것은, 행하는 것은 내 행위가 변화되고.

거기에서 내 자신이 변화되고, 그래 변화되면, 내 마음 속에는 오만 마음이 다  있고. 오만 마음이 다 있고 양심이라는 거 하나 있고 이래 있는데, 나중에는  그만 양심화돼 버려요. 따 양심화돼요. 모두가 전부 양심화돼. 욕심이 고만 전부  다 양심화됐어. 욕심도 양심, 욕심도 양심화. 양심에 거리끼는 욕심이 하나도  없다 그말이오. 양심화되고. 말씀과, 말씀과 내 행위 와 하나가 되고, 또 말씀과  내 육체가 하나가 되고, 말씀과 내 마음이 하나가 되고, 말씀과 내 양심이  하나가 되고, 그러면 그때의 그 사람이 누구 인가? 그 사람이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된 참자기요. 새사람의 참자기입니다. 이러면. 그 사람은 영감된  사람입니다. 이 영감된 사람, 영감된 사람이 되면 그때에 '내가 사는 게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주님은 자기 안에 있고. 그러니까, 그리  되면 말에 대해서 주님이 내 안에서 하지 안하는 말은 하고 나면 께끄름해서  견디지 못할 거고, 토해 내트려야 되고. 회개를 해야 되겠고, 주님이 내 안에서  말씀하심으로써 내가 그로 인해서 말하고. 주님이 내 안에서 움직이시므로 그로  인해서 내가 움직여지고. 이래 가지고서 이제 주님은 내 안에 내요. 참 내  생명이시요 평강이라. 이렇게 되기를 원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알라 하고. 뭐  하라고? 알아서 행하려고. 행해 뭐 하려고? 자기 행위가 변화될라고. 변화돼 뭐  하려고? 자신이 변화될라고. 변화돼 뭐 하려고? 자꾸 자기, 차차차 자신이  변화돼서 양심과 변화되면 자기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참사람이 되기를  위해서 요렇게 소망을 하고 하면 빨리 됩니다. 속히 돼요.

 그래서. 다음 주일에는 여론 신앙을 여러분들이 가르쳐서 학생들이 언제든지  기억해 가지고 '아, 여론 신앙이라. 여론 신앙. 이거는 주후 칠십 년에, 이  설교하고 난 다음에 사십 년 미만돼서 멸망을 받았다. 돌 하나도 돌 위에  첩놓이지 안하고 전부 전멸을 당했다.' 그때 참 멸한 거는 역 사에 없는 멸망을  받았습니다. 얼마나 포위를 해 가지고 물도 안 보내고. 물도 안 보내고 양식도  안 보내고 따 가에서 이래 가지고 못 들어오구로, 요래 나오지 못하구로 해  놓으니까 나올라 하니 나오구로 합니까? 나오지 못하구로 이래 하니까 그 안에  들어서 물이 없으니까 짐승 잡아서 피 마시다가 나중에 안 돼서 자기 자녀를  잡아서 피를 마시고, 고기를 먹고 그래 살았습니다. 그래 가지고 석 달 동안을  살도록 그래 둬 버렸어요. 뭐 그런 멸망은 역사에 없습니다. 여론 신앙이 이렇게  멸망 받았다는 것.

 노아 때도 여론 신앙이 멸망 받았고, 또 에덴동산에서 아담 해와도 여론  신앙으로 멸망 받았고, 또 소돔 고모라성도 여론으로 멸망 받았어요. 옆에  사람들 그거 따라가다가 멸망 받았어요, 다. 그러니까, 여론 신앙이 멸망  받는다는 것을 단단히 가르치고. 또 주관 신앙이 멸망 받는다는 것을 단단히  가르치고, 영감 신앙, 영감된 사람이 제일 가치가 있습니다. 영감 된 사람이  제일 권위 있소. 영감된 사람이 복이 일곱 가지. 첫째는 뭐이냐? 뭐랬습니까?  주님이 축복해서,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주님이 축복했소.

축복했고, 둘째로는 '이제는 너는 시몬이라 하지 말고 베드로라.' 새 이름을  줬어. 새 이름. 새 이름. 새 이름 말이오. 빌라델비아 교회에 보면 새 이름을  준다 이랬습니다. 새 이름. 새 이름. 주님의 새 이름. 아버지의 새 이름. 새  이름. 자기의 새 이름. 새 이름. 그 다음에는 '너는 반석이라.' 반석의 축복.

요동치 않는 반석의 축복. 그 다음에는 교회의 기초. 네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는  교회의 기초. 그 다음에는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한다.' 음부의 권세를 이겨.

이 모든 악령의 세력을 다 이깁니다. 그 다음에는 '천국 열쇠를 받아라.'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땅에 풀면 하늘에도 풀린다.' 이러니까. 이  천상천하의 최종 결정권, 멸망과 구원의 이 모든 심판권을 영감의 사람이  받습니다. 영감, 영감이면 하나님인데, 영감대로의. 영감대로의 사람 고 사람의  행동이 하나님의 행동이기 때문에 고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져. 그런고로, 영감의  사람이 우리가 되도록 노력해야 됩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우리는 자기 지식이 변화되면 행위가 변화돼야 되고, 행위 변화되면 자체가  변화되고, 변화되면 주님 만납니다. 반사 선생님들은 공과를 단단히 익혀  가지고서 '이제는 내가 이제까지는 학생들을 잘못 가르쳤는데 다음 주일에는 이  공과를 가지고서 완전히 변화를 시키겠다.' 하는 기도를 많이 하고, 그런 욕망을  가지고서 심방하면 학생들이 다 듣습니다. 그럴 때에 여러분들은 영감의 사람이  되니까 하나님의 권능의 사람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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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33 영감과 진리의 능력/ 요한복음 15장 1절-14절/ 830703주전 선지자 2015.12.09
2332 영감도리 순종생활/ 마태복음 16장 15절-17절/ 791208토새 선지자 2015.12.09
2331 영감된 사람/ 마태복음 16장 13절-28절/ 840610주전 선지자 2015.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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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감된 사람/ 마태복음 16장 13절-26절/ 840613수야 선지자 2015.12.09
2328 영감된 사람/ 마태복음 16장 13절-20절/ 1984년 12 공과 선지자 2015.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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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9 영감신앙-여론/ 마태복음 16장 13절-28절/ 840611월새 선지자 2015.12.09
2318 영감으로 인정하는 실존/ 요한복음 14장 11절-24절/ 871220주후 선지자 2015.12.09
2317 영감의 권위성/ 마태복음 16장 13절-20절/ 840616토새 선지자 2015.1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