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09 01:07
영감된 사람
1984. 6. 10. 주일오전
본문 : 마태복음 16장 13절∼28절 예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가라사대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가로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가라사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이에 제자들을 경계하사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라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 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여 가로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신구약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말씀은 이 역사 가운데에 있는 것을 들어서 말씀한 것으로 그렇게만 생각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보내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신 지극히 큰 이 목적인 구원을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에게 이루게 하시려고 하나님이 신구약 성경 말씀을 주셨고, 또 신구약 성경 말씀에 기록하는 이 모든 일들을 역사로 일으켜서 한 사건 한 사건이 지나간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한 사건 한 사건의 이 사건 자체를 역사에 지나간 한 가지 사건이라 이렇게 보면 안 됩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모든 사건들은 우리의 구원을 이루도록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구원 도리를 가르치는 계시로 그렇게 역사들이 이루어졌고, 또 그런 형식으로 이루어진 그 형식을 문서에 써 가지고 우리에게 전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문서에는 논리가 있고, 말이 있고 또 그 형식을 우리에게 기록해서 전해 주신 사실이 있습니다. 그 형식도 다 우리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이 영원 전 작정하시고 고 때를 따라서 이렇게 일으키셔 가지고 우리들에게 보여서 그로 인해서 우리 구원 도리를 깨닫고 구원을 이루어 가도록 하게 하려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요 뜻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성경에 기록한 사건도 이 세상에 지저분하게 날마다 수억만도 넘은 이 사건들이 지나가는 거와 같은 그런 사건과 같은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되면 못 씁니다. 안 됩니다. 이 성경에 기록된 모든 사건들은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믿는 도리라. 믿는 이치라, 우리 구원을 이루는 그 이치를, 그 방편을 우리에게 가르치는 모든 구원 도리인데, 그 구원 도리를 형식으로 우리에게 가르치시고 또 형식으로 가르친 것을 그 후시대 사람들에게 문서로 가르쳐서 전달하고 그렇게 한 것입니다.
이 말씀도 많이 들었습니다. 많이 들었으나 들었다고 해서 이 말씀이 그 사람에게 복음이 되느냐? 구원이 되느냐? 그렇게 되면 좋지마는서도 못 된 사람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이 사실을 우리가 기억하는 것이 좋고 또 외우는 것이 좋고 또 생각하는 것도 좋고 다 좋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은, 듣고 알고 기억하고 생각하고 하는 것은 뭣 때문에 좋다 하느냐? 그것을 지식으로 가졌기 때문에 좋다 말 아니오. 지식으로 가지면 그 사람 망합니다. 다만 이 사실을 자기가 깨닫고 그대로 믿고 실행하는데에서 유익이 오는 것이지. 인정치 안하면 그 사람은 도리어 거짓말로 알기 때문에 범성죄가 되겠고, 또 인정만 하고 실행을 안 하면 그 사람은 인정한 이 법칙으로 인해서 영원한 정죄를 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세 가지를 특별히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사람이 어떻게 해서 망했느냐?' 하는 것을 여기에 말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어떻게 하면 구원을 얻느냐?' 하는 것을 또 말하고 있습니다. 또 '이렇게 멸망을 피하고 구원을 이룰려고 하면 어떤 애로의 과정이 있느냐?' 그 애로의 과정을 잘 받아서 감당치 안하면 안 됩니다. 그러기에. 여기에 있는 것을 그 속에 우리에게 구원 도리를 가르치는 것을 우리가 깨달을라고 애를 쓰고 깨달아 간직해야 되지 거기에 있는 것을 뭘 문자로만 그렇게 아는 것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저 지난번에 시편 23편에 대해서, 거기에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셨다' 하는 그것을, 저는 한문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간이 한문 성경을 보고 있기 때문에, 거기에 밥상이란 상(床)자로 그렇게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혹 다른 사람들이 그걸 내가 상이라고 말하니까 상급 상(償) 자로 알고 저라는가 그래 오해를 할까 싶어서 내가 그것을 '여기에 한문 글자는 상급 상(償)자가 아니고 밥상 상(床)자라' 그래 내가 해석을 붙였습니다.
여호와께서 목자로. 여호와를 자기 목자를 삼으면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푼다 그 말은. 원수는 자기로 더불어 대적하는 것이 원수입니다. 대적을 이겨서, 대적을 승리케 해서, 대적을 승리하는, 하나님이 그를 승리케 해 주는, 이 대우해 주시는 것을 원수 눈으로 똑 보게 될 것이다. 다니엘을 하나님께서 살아 나오게 하셔 가지고 온 전국에 그와 같이 다 하나님의 복음화되도록 한 것은 원수들 앞에 다니엘에게 상을 베풀어 준 것입니다. 대우해 준 것입니다. 산을 베풀어 줬고, 상만 베풀어 준 게 아니라 원수에 대해서 복수해서 다 원수를 전멸하기도 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이 도리를 듣든지 읽든지 할 때에 여기에서 우리의 구원 이치를 뭘 가르치는가 고것을 깨닫고 붙들고 고대로 자기가 실행하면 구원이 됩니다, 고대로 실행하면 멸망이 피해집니다.
첫째 멸망은 무슨 멸망인고 하니, 여기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시기를 모든 여론들이 어떻더냐? 모든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더냐? 모든 사람들이 메시야관을 어떻게 보더냐? 주님은 메시야로 오셨는데, 주님은 메시야로 오셨는데, 주님은 구주로 오셨는데, 구세주로 오셨는데 구세주로 오신 주님을 모든 사람들이 어떻게 보더냐 이렇게 물었습니다. 예수님이 몰라 물은 것이 아니라 여기에 이렇게 이런 형식이 이루어진 것은 신약 교회에도 예수관이 잘못돼 가지고, 예수관, 예수님을 어떻게 보느냐? 그리스도관, 예수관. 구주관이 잘못돼 가지고서 멸망하는 일이 되지 안하도록 하시기 위해서 이런 형식으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그때 그 사람들은 대대로 메시야를 고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밤낮 메시야를 고대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재림의 주님 고대하는 것보다도 훨씬 뛰어나게 고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고대하고 있던 메시야가 정작 오니까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다.
왜 그들이 메시야를 몰랐는가? 메시야를 모른 그 원인은 그들이 메시야관에 대해서, 모든 사람이 어떠냐? 더러는 세례 요한이라, 더러는 또 엘리야라, 또 어떤 이들은 예레미야라, 어떤 이들은 선지자 중의 하나라. 이렇게 모두 다 저거 생각대로. 이 학자가 생각하는 생각대로, 저 선생님이 생각하는 생각대로. 저 열변가가 생각하는 생각대로. 또 저 권위 있는 사람이 생각하는 생각대로, 저렇게 똑똑하고 세상 권세와 모든 사람들을 다 주름 잡아 가지고서 점령해 가지고 있는 그런, 많은 사람들이 따르고 존대하는 그런 사람들의 생각대로 메시야를 보다가 죽었습니다. 망했습니다. 이들은 완전히 망했습니다.
이스라엘은 돌위에 돌 하나도 첩 놓이지 않게 다 전멸을 당했습니다. 육체의 이스라엘은 거기에서 약간의 사람들이 메시야를 바로 봐 가지고 구원을 얻었지, 모든 사람들은 메시야를 잘못 보고서 다 멸망 받은 것을 여기에 우리에게 기록해 줍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벌써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척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주님이시지마는서도. 예수님이 도성인신하셔 가지고 신인 양성 일위로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를 베푸시고 죽으셨다가 삼일 만에 부활하셔 가지고 아버지 우편에 계신다 하는 이것은 모든 사람이 다 압니다. 안 믿는 사람들도 다 압니다 무신론주의자도 다 압니다. '저 예수 믿는 것들은 저렇게 저런 교리와 신조로 믿고 있다' 하는 것은 다 압니다. 그러나 오늘 신약 교회가 멸망할 그 원인이 어디 있느냐? 인간들이 말하는 인간의 여론대로의 메시야관, 인간의 여론대로의 구주관을 가진 사람은 다 만합니다. 누구나 없이 다 망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은 가르치지마는서도 그에게 참으로 구원이 되고 안 되고, 믿음이 되고 안 되는 것은 사람들에게 배우지 말라 했습니다. '사람들은 가르칠 수가 없고 네 안에 기름 부음이 너를 가르친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그때 이스라엘에 있는 모든 열심가들이나 모든 선생님들은 인간의 여론대로 메시야관을 가지고 모든 여론 따라서, 여론 따라서 예수 믿다가 망했습니다. '남의 입이 뭐라 하는고 보자.' 그 입을 맞추어서, 그 입이 좋은 말 하도록, 그 귀를 즐겁게 해서 그들이 좋아하도록, 그들의 눈을 맞춰서. 인간들의 눈, 인간들의 귀, 인간들의 입을 맞춰서 이렇게, 모든 사람들의 쑥덕공론, 이런 여론 이런 데 따라서 가다가 그들은 메시야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고 저들의 대대로 고대하던 메시야를 구주로 영접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래서. 인간의 여론 따라서 예수님을 믿다가 망한다 하는 것을 여기에 첫째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둘째로는 어떻게 해서 망했느냐? 이 베드로가 좀 전에는 하나님 앞에 아주 대단히 칭찬을 받고 참 그는 굉장히 유력하고 참 위대한 사람이었는데 그만 좀 후에 주님이 그를 대해서 말하기를 사탄이라 이랬습니다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이렇게 사탄으로 정죄 받고 주님에게 쫓겨 났습니다. 그거는 왜 그러냐? 자기 주관대로 예수 믿다가 망했습니다. 자기 주관대로. 자기 생각대로 예수님을 믿다가 망했습니다.
그러기에, 신약 교회도 사람들의 여론 따라서 믿는 사람은 구원은 절대 못 이룹니다. 이룰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성자의 여론 따라 믿는다 할지라도 그 성자는 성령이 아니십니다. 그 성자는 자기 일만 했지 다른 사람에게 대해서 그 사람이 어떻게 해야 될 그 사람에게 대한 하나님의 인도의 뜻은 모르는 것입니다. 모르는 것이 성경이 말했기 때문에 모릅니다.
그런고로, 여론 따라서 믿다가 망하니 다른 사람이 어떻게 하느냐, 모든 사람의 여론이 중요하지마는 여론과 성신의 감동과 비교가 안 됩니다. 우리는 영감 도리, 그러면, 영감 도리는 신구약 성경 말씀이 껍데기 영감 도리요 그 안에는 영감의 역사가 있습니다. 그러면, 성경 말씀대로 신앙을 가지고 또 성경 말씀대로 하므로 그 속에 영감이 가르치는 그걸 기다려야 될 터인데 그것을 기다리지 아니하고 자기 주관대로 하다가 망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인간 여론대로 예수 믿는 사람은 절대 구원 못 얻는다, 인간이 자기 주관, 자기 생각, 자기 의사, 자기 욕심, 자기 뜻, 자기 좋아하는 자기 주관대로 예수 믿어서 구원 얻지는 절대 못한다.
그러면 어떻게 믿으면 얻을 수 있느냐?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주님은 그리스도시요.' 그 베드로가 이렇게 말했지만 제가 말한 거 아닙니다. 그는 똑똑히 모릅니다.
그리스도를 베드로는 잘 모릅니다. 지금 우리가 그리스도에 대해서 해석한 것처럼 그렇게 구비한 지식을 사도들이 가졌느냐? 사도들이 못 가졌습니다.
속사도도 그랬습니다. 다만 영감이 왔을 때에 위대했지 그 전에는 안 됐습니다.
그때에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첫째 하는 말이 '네가 복이 있다' 했습니다.
'네가 복이 있다.' 또 두 번째 하는 말이 '너는 반석이다, 너는 반석이다.' 또 세 번째 하신 말씀이 '네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 천주교는 이 성구를 가지고 베드로 동상을 해 놓고 베드로 동상을 차지하고 있는 천주교에만 구원이 있지 딴데 가면 구원이 없다고 그렇게 하여 동상에 절하는 제 이 계명을 범하고 있습니다. 천주교의 바오로 2세 교황이 우리 한국에 왔지마는서도 그는 하나님의 교리와 신조에 대해서는 그가 언급한 일이 없습니다. 언제든지 대자대비의 불교와 비슷한 그 사랑과 희생과 봉사만을 해서 기독교 도덕주의만을 강하게 말했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다 좋아했지 기독교 신앙주의라는, 요게 신앙이라 하는 신앙을 밝혀서 구별해서 말한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안하고 갔습니다.
세번째는 '네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 네번째는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한다.' 음부의 권세는 악령의 권세, 사망의 권세인데 사망의 권세들이 해 하지 못한다 말했습니다. 고다음에 말씀하시기를 '천국 열쇠를 네게 준다.' 이러기 때문에 '내가 땅에서와 하늘에서 맺고 끊는 모든 권세를 너에게 준다 네가 가졌다' 말씀했습니다. 이렇게 베드로가 복된 사람 되었습니다. 이러니까 자기도 구원 얻을 뿐만 아니라 구원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구원의 기둥이 되었습니다.
구원의 열쇠가 되었습니다. 모든 음부와 사망의 권세를. 마귀의 세력을 완전히 부서뜨리는 그런 권세를 얻었습니다. 하나님의 온갖 축복을 다 받았습니다.
이게 뭐이냐? 고 한 마디 때문에. '이는 혈육이 너에게 가르친 것 아니다.
혈육에게 배울라고 너는 늘 하지마는 혈육이 가르친 게 아니고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너에게 알게 하셨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이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시기 전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아버지는 됐지마는 서도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 되지 안했습니다. 죄가 그대로 가로막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셨다가 삼일 만에 부활하시고 난 다음에 비로소 인계가 됐습니다. '내 하나님 너의 하나님, 내 아버지 너의 아버지, 이제 내가 아직까지 여기에 올라가지 못했기 때문에 잠깐 머물라' 하고서 잠깐 입신 가운데에 계셔 가지고서 오셔 가지고는 '이제는 나를 만져라, 내 아버지가 너의 아버지 됐고, 내 하나님이 너의 하나님 됐다. 이제는 성령이 너희 밖에서 역사할 게 아니라 너희 안에서 역사하게 됐다.' 숨을 내쉬면서 '성령을 받으라.' 요한복음 20장에 숨을 내 쉬면서 '성령을 받으라.' 숨을 내쉬면, 숨 분다고 성령 들어갑니까? 이것도 하나 계시의 창세기에 사람을 만드시고 코에다 생기를 불어 넣으니까 생령이 됐다는 그거 성령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령 감화라는 것을 여기에서 예수님이 발표를 했습니다. 어짜든지 육덩이는 육덩이로만 해석해 가지고 망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여론 따라 예수님을 믿는 것도 멸망이요. 아무리 명철 하고 현철하고 절제가라 할지라도 자기 따라 예수 믿는 것도 멸망이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이 윤곽을 타고 들어가면, 이 말씀 안에 자기. 윤곽을 타고 들어가면 자기 양심이 깨끗해질 것이요, 깨끗한 양심은 성신의 감화를 영접할 수 있는 우리 자연의 빛이기 때문에 말씀을 타고 들어가면 양심이 거기에서 눈을 뜰 것이요, 양심이 힘을 얻을 것이요, 양심이 장성해질 때 그 양심에게 성신의 감화가 와서 감동시켜서 알려 주시는 고대로, 고대로 해야 구원이 됩니다. 그 외에는 구원이 안 됩니다. 오늘 모든 신학자나 모든 사람이 말하는 것도 인간들이 말해 놓은 그 모든 인간들의 말만 전하고 있지, 하나님의 성경 말씀이면 다 됐소.
제가 신고함을 여는데 거기에 기쁜 소식이 하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 기록해 놨는데 '우리 주일학교가 이거 자꾸 쇠퇴해 가는데. 부흥이 돼야 될 터인데' 그 사람 말이 나는 맞든지 안 맞든지 나는 참고로 삼습니다. '우리가 주일학교 부홍될 때에는, 성경 읽기를 시작할 그때부터 부흥이 됐습니다. 이 설교 재독하는 이 재독이 시작되고 난 다음에 주일학교가 내려갑니다.' 그 말을 나는 무심히 듣지 안하고 아주 힘있게 나는 듣고 있습니다. 왜?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개인이 다 깨달을 수 없기 때문에 그 말씀을 깨닫게 하는 소개하는 것이지. 성경 말씀이 아니라면 청산유수의 설교를 한다 해도 그거는 전부 사람 죽이는 소리지 아닙니다.
그러기에, 신구약 성경 말씀을 아무리 말한다 할지라도 성경은 가르치지마는, 성경을 가르치지마는서도 설교는 양식을 주는 것인데, 신구약 성경 말씀을 성경 공부를 가르치는 것과 설교와 다릅니다. 설교는 하나님이 그 시간에 하고자 하는 그 말씀을 해야 됩니다. 보기는 사람이 말하지마는 서도 속에 말씀하신 이는 주님이 말씀을 사람을 기계로 쓰시든지, 무슨 당신의 지체로 쓰시든지, 입술로 쓰시든지 말씀하시는 이는 주님이 말씀해야 거기에 생명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인간의 여론 그것 만들어 가지고서 열 사람 여론을 알면 그 사람은 대학자라, 백 신학자의 여론을 알면 그거는 참 대대신학자라. 전부 인간의 말 아는 그것으로서 경쟁을 하고 거기에 구원이 좌우되는 걸로 이렇게 생각하고, 신구약 성경 말씀은 정학 무오한 말씀이니 이 말씀이 삐뚤어지면 안 되니까 이 말씀은 지금 개혁교에서 번역하는 대로, 돈이 없어도 개혁교에서 번역해 가지고서, 돈 벌라고 말고 개혁교에서 번역을 해 가지고서 어짜든지 이 성경을 이대로 출판하도록 하자 이랬는데, 돈 이 더 많아야 빌딩도 짓고 뭐 어짜고, 우리 한국의 성서 공회는 큰 부자가 됐습니다. 큰 부자요. 그 부자가 필요가 없습니다. 성경 박아 가지고서 그 대로 성경 박을 돈 있으면 돼요. 또 성경 박아 가지고서 이렇게 다른 데로 보내는 것은 그거는 뭐 특지가들이 전도로서 이와 같이 하고 있지 않습니까? 제일 성경 말씀이 우리의 구원의 척도요 달음줄인데, 움일한 법칙인데 이 말씀을 이렇게 저렇게 변동해서 미혹의 번역을 하면 큰일이니 이 성경 말씀은 원본대로 어짜든지 그대로 번역하기를 힘쓰는 이것을 첫째로 힘을 써야 되겠고 그라고 난 다음에는 이 성경 말씀대로 지켜 행하라, 네가 모르는 걸 알라고 애를 쓰지 말고 아는 대로 행하면 행함을 통하여서 또 모르던 것을 또 알게 되고, 알고 난 다음에 고대로 지켜 행하면 또 모르는 것을 또 알게 되고 그렇게 행해 나가면은 그 성경 말씀 안에는 내재적 영감 그 안에 계시는 영감, 내재 영감이 우리에게 옳고 바른 것을 가르쳐 주나니 고대로 하면 고 가르쳐 주심은 첫째 복 받을 지혜요, 복 받을 지혜요. 또 반석같이 튼튼할 지혜요, 하나님의 교회가 설 수 있는 지혜요, 음부를 승리 하는 지혜요. 천국 열쇠를 받는 지혜요, 천국과 세상에서 모든 것을 결정 지우는 규정 지우는 이 판결의 권세라. 이런데, 이거 외에 딴걸로 해서는 다 망하고 말았다 요것을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그러면, 우리가 이제 인간 여론이나 자기주장이나 이런 것을 다 버리고 성령의 감화 감동에 따라서 한 번만 준 구원, 뭐 지금 징얼거리면서 인간을. 인간을 택하면 뭐할 것입니까? 인간이 제편 되면 뭐할 것이요? 서부 교회 교인 불과 재적수 다 말해도, 아이들 다 말해도 한 삼만오 천, 삼만 오천, 삼십 오만이, 삼천 오백만이, 삼억 오천만이 다 자기를 지지하면 뭐할 것이소? 하나님 이 지지해야 되지 하나님이 지지 안 하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인간 얻을라 하다가 하나님하고 원수되기 쉽습니다. 그런 어리석은 짓을 하지 말고.
여론대로 믿다가 멸망당했다, 주관대로 믿다가 멸망당했다, 영감대로 믿는 그것으로만 이렇게 존영해졌다.
이러니까, 영감대로 믿는 이 구원 이루는 일을 하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되나? 네가 두 가지 애로가 있다. 무슨 애로입니까? 첫째는 자기 부인하는 애로이다.
자기 부인하는 애로. 중생된 영이 자기인데 시기의 마귀가 들어와 가지고서 시기심이 제가 됐으니 시기의 제가 되고, 시기도 저 아니오. 시기도 자기 아니오. 물욕도 자기 아니오. 명예욕이나 권세욕도 자기 아니오. 모든 행락욕도 자기 아니오. 명예욕도 자기 아니오. 정욕도 자기 아니오. 식욕도 자기 아니오.
음욕도 자기 아니오. 예술욕도 자기 아니오. 문화욕도 자기 아니오! 하나님과, 하나님과 진리와 그 나라만을 욕심내는 그것이 참된 자기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자기를 부인하는 것. 하나님 말씀에 거슬리는 욕심 이놈 욕심내는 욕심의 자기를 부인하려 하는, 성질의 자기를 부인하려 하는, 요 간교한 자기를 부인할라 하는, 사람들 뜻으로 당파를 만드는 고 고놈을 부인할라 하는 것이런 것을 부인하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드는지, 이 부인하는 것의 힘 드는 이걸 하나 해야 되고, 그 다음에는 네가 옳고 바르게 깨달은 고대로 행하는 것은 뭐이냐? 자기 십자가다. 자기 십자가가 뭐인데? 주님 십자가가 있고 자기 십자가가 있으니 네 십자가는 네가 깨트려야 될 마귀의 모든 일을 네가 깨트리고, 네가 깨트려야 될 그 죄악을 네가 깨트리고, 네가 깨트릴 사망을 네가 깨트리고, 네가 세울 영감과 진리와 구원을 네가 세우는 것이 그것이, 이 일을 위해서 어려움 당하는 것이 네 십자가다. 자기 부인, 자기 십자가 지는 이것을 네가 해야 된다.
자기 보기에 이거는 틀렸다 하는 습관, 틀렸다 하는 버릇, 틀렸다 하는 감정, 틀렸다 하는 욕심, 그것을 번연히 알고도 부인하지 못하는 자는 아예 천국에 갈 생각을 말아야 됩니다! 건설구원은 못 이룹니다! 기본 구원으로 천국 가기만 갔지 건설 구원은 안 됩니다. 자기 보기에 이거는 아니다, 이 욕심은 아니다, 이 감정은 아니다, 이 성질은 아니다, 내 지금 이 습성은 이거는 아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거는 아니다. 아닌 줄 알고도 그것을 부인하지 못하는 자는, 그것을 부인하고 나면 수없는 것이 뒤에 꼬리를 물고 나오는 것인데, 부인할 것이 꼬리를 물고 나오는 것인데 알고 그것을 부인하지 못하는 자에게는 그것으로서 그만 끝을 맺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인간 여론대로 믿는 것도 멸망한다, 자기 주관대로 믿는 것도 멸망한다, 영감대로 믿는 것만이 구원이 되어진다. 이 구원을 이루는 데는 두 가지 애로가 있다. 이 자기 주관이라는 이놈을 대적해야 되고. 이 인간 여론 이놈을 대적해야 되고, 이러니까, 이것이 마귀의 일이요 이것이 죄의 일이요, 이것이 사망의 일이기 때문에 이것이 세상이요 이것을 멸해야 되니까 거기에는 네가 희생 될 수밖에 없다. 네가 마지막으로는 죽을 수밖에 없다. 죽는 거로 이제 마지막 끝을 마칠 요랑 해야 되지 네가 뭐 살고 이것 저것 하고서 그래서는 안 된다. 아예 십자가를 지고 자기 부인하고 나를 따르면 내가 간 길을 너도 걸어갈 수 있으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오늘 이 시간에 우리는 영감을 찾아 받지 아니하고 인간 여론에 따라서 춤추고 있는 어리석음을 완전히 벗어납시다! 왜 인간의 말에 와 타고 납니까? 왜 인간들의 주장에 타고 납니까? 인간들의 그 모든 권세나 모든 주장에게 여론에게 왜 거기 피동이 됩니까? 만물보다 거짓된 자기에게 피동이 됩니까? 말씀대로 지켜 행하면 그 속에 영감 만납니다. 영감 인도대로 갈 때에 비로소 참 복된 사람 되고, 반석 같은 사람 되고, 교회는 그 사람 위에 설 수 있고, 음부의 권세를 다 이길 수 있고, 천국 열쇠를 받을 수 있고,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을 결정 지울 수 있는 이런 심판권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