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07 15:56
열처녀비유-환난 준비-기름 준비
1986. 3. 30. 주일오전
본문:마태복음 25장 1절∼13절 그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그 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지라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새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와 너희의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저희가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오므로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대답하여 가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이 비유를 여러 시간 거듭 증거를 했습니다. 이 각도로 증거하고 저 각도로 증거하고 그렇게 증거를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이 증거를 들을 때에 우리 밖에서는 이 증거를 부인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생각하고 들을 때에 과연 그 증거가 성경대로인지 성경대로가 아닌지 하는 것을 잘 구별해서 듣고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또 확신을 가져도 우리 밖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떻게? 다 제 동무 삼을라고 저와 같은 자 되게 할려고 온갖 유혹의 방편들을 다 구비해 가지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여러분들이 이 진리를 이 자리에서 듣고 인정하는 것으로서 다가 아닙니다. 앞으로 어떤 미혹에서라도 미혹받지 안하고 굳게 선 지 후에 우리의 성공과 승리는 있는 것입니다.
이 열 처녀 비유는 이제까지 세계에 공통적으로 일반적으로 해석되기는 다섯 처녀는 구원을 얻어 천국 가는 사람이고 다섯 처녀는 멸망받는 처녀들이라 그렇게 해석된 것이 오늘까지의 교리요 신조요 세계에 신학자들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중에는 달리, 우리와 같이 열 처녀가 다 하늘나라 가기는 가는데 다섯 처녀는 영광의 시민권을 가지고 하늘나라에서 살게 되고 다섯 처녀는 하늘의 시민권은 시민권이지마는 영광 없는 그 수치스러운 구원을 얻어 가지고 살게 된다 하는 것으로 깨달은 우리와 같은 깨달음을 가진 사람들도 많이 있으리라 생각이 됩니다.
그러나, 대개는 역사에 보면 세상 지식을 고상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고 또 하나님의 지식을 고상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고 세상 모든 사람들과 피조물인 이 모든 피조물과 관계를 중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고 그것보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에게 인정받을라고 주력하는 사람도 있고 보다 하나님에게 인정 받을라고 주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세상에 많은 저서는 대개 땅에 속한 외식자들이 많이 했고 또 선전도 많이 했고 모든 인인 관계의 이 모든 교제성도 많이 했기 때문에 대개는 신앙의 위인들이 그 시대에는 나타나지를 못하고 후 세대에는 나타나는 것이 이것이 필연성의 것입니다. 노아가 노아 시대에 아무런 인정을 받지 못한 조롱의 대상들이었고 또 아브라함이 그 시대에는 하나의 서민으로서 유명치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교회에 종교 개혁이 될 때마다 교회가 부패해졌을 때에 개혁이 생겨지는 것인데 부패해지면 이 세상주의 땅에 속한 자들이 세력을 잡아서 그들이 머리가 되고 하나님의 도를 가진 사람들은 다 짓밟히는 꼬리가 되고 이렇게 될 때에 하나님께서 그것을 바로 시정하기 위해서 환난을 일으킬 때에 그 환난에서 하늘에 속한 자들은 세상을 이겨 세상을 밟고 승리하고 땅에 속한 자들은 땅에 속했기 때문에 땅에게 종이 되어 가지고 그들에게 굴복되어 그 시대의 죄악을 이기지 못하고 시대의 죄악에게 종이 되는 그것으로서 그 환난이 지나가고 나면은 모든 사람들이 다 정평 정가할 수 있는 억압 없는 자유 시기가 오게 될 때에 과거에 환난 때에 세상에게 억압당해서 범죄했다 하는 것을 알게 되고 또 세상에 그렇게 강한 세력이 압도하고 유혹했지마는서도 거기에 종되지 안하고 그 모든 것들을 다 승리하고 난 그런 것이 구별되기 때문에 이제 짓밟혀 있던, 밑에 꼬리같이 되어 있던 참된 성도들이 머리가 되고 이제 세상 것으로써 나타났던 자들은 다 도리어 꼬리가 되고 그래 됩니다.
그러나, 그것이 일년 이태 지나감에 따라서 빨리빨리 그것이 또 외식으로서 또 등장합니다. 사람들은 자꾸 말하면 꼬임받는 것이 사람들이기 때문에 선전하는 데에 따라가지 그 실상을 관찰하여 보려는 그런 진실한 사람들은 적기 때문에 다 다수 가결로 점점 타락해서 내려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마태복음 25장 열 처녀 비유에 대해서도 이 교계에서, 세계는 내가 모르지마는서도 우리 그전에 조선으로 있을 때에 조선 나라의 교회들이나 지금 해방 후 한국이 되어 있는 한국 교회들이나 이 교회들 가운데는 이 성구 때문에 핍박이 많이 일어나고 조롱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것이 벌써 오래 됐습니다. 한 삼십 년 넘어 됐습니다. 그랬는데 제가 이것을 증거한 것은 벌써 삼십 년이 아니라 한 사십 년 넘어 됐습니다. 그때는 퍼지지 안했으니까 다른 사람들이 이단이라고 말하지 안했지마는서도 차차차차 퍼져가는데 따라 퍼져가는 것만치 이단이라고 정죄하는 숫자는 많이 늘어나고 또 거게서 깨닫는 사람은 다시 긍정하는 사람도 늘어가고 부인하는 사람도 늘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얼마 전에도 어제 소식을 들으니까 어떤 노회가 백 사십 노회원들이 모인, 목사 장로들이 모인 노회인데 그 노회에서 어떤 사람이 이 설교록을 사서 보고서 그 설교록에 마태복음 25장에 열 처녀에 대해서 그 열 처녀가 다 하늘나라 갔다고 하는 그런 그 설교를 해 놨더라 이라니까 거게서 말하기를 그런 자는 그만 당장 죽여 버려야 되지 그것을 냅둬 가지고는 안 된다고 그렇게 다 모두 말을 하고 그것이 옳다고 그렇게 말하더라고.
그랬는데, 거게 있는 사람이 말하기를 다른 사람이, ‘뭐 때문에 그러면 죽여야 되느냐?’ 이래 물으니까 오늘까지 그저 근 이천 년 모두 다 전통이 열 처녀 중에 다섯 처녀는 천국 가고 다섯 처녀는 다 지옥 간다고 이렇게 말을 했는 게 전통인데 전통을 자꾸 깨고 있으니까 어지러워지지 않느냐, 전통을 깨서 어지럽게 하기 때문에 그런 자는 죽여야 된다 한다는 그런 말을 제가 들었습니다. 앞으로는 그리 됩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이유가 어데 있는가?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해를 받아서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바리새 교인들에게 그렇다고는 표시하지 안했고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해를 받아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다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또 그대로 그렇게 됐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는가? 못 박은 이유가 저들이 구약 성경을 보고 깨달아 가지고 증거한 것과 예수님이 오셔서 구약 성경을 보고 증거한 것이 아주 판이하게 다른 점이 많기 때문에 예수님의 그 깨달음의 교리와 신조를 긍정하면 저들의 주장하는 교리와 신조가 깨어지기 때문에 그것이 큰 문제가 되어지는 것이고, 또 하나는 예수님의 교훈을 긍정하면 저들을 긍정하고 따르는 모든 양무리들이 다 예수님에게로 다 이속하여 가기 때문에 그것이 중대한 문제고, 또 셋째 문제는 그렇게 된다고 하면 자기네들의 지위와 권세와 영광이 깨어지게 되고 또 그렇게 된다면 자기네들을 대우하는 그 대우가 절단나게 되기 때문에 그때에 그들이 예수님의 교훈이 옳은 줄 알았지마는 이제 말한 이런 것들 때문에 예수님을 대적했던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그러하고 과거에도 천주교로, 참된 기독교 사도 교회가, 사도적인 교회 정통 교회가 천주 교회로 이렇게 타락할 때에 그 타락을 반대하고 진리를 고수하는 그런 종들은 많이 죽었습니다. 저는 모르나 어떤 그 역사가가 말하기를 한 달 동안에 교리와 신조를 양보하지 아니하고 고수할라고 함으로 말미암아 죽은 숫자가 한 달에 죽은 숫자만 해도 십만 명이 죽었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거의 참 죽다시피 이렇게 했습니다.
그러니까, 진리 때문에 다 죽은 사람들이니 그것이 곧 순교자들인 것입니다.
계시록에 보면은 순교자들이 ‘우리의 피를 신원해 주시지 아니하시기를 언제까지 피를 신원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이라니까 ‘너희 동무들도 너희들과 같이 다 죽임을 받아서 수가 차기까지를 기다리라’ 그것이 순교의 수가 차기까지를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무궁세계에서 당신이 하늘과 땅의 것이 통일되고 알파와 오메가가 되는 이 나라의 모든 당신의 지체로 당신의 수족으로 같이 일할 수 있는 인물들을 지금 선정하고 선택하는 것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들이 이 진리를 바로 배웠다 할지라도 바로 배우고 난 다음에는 반드시 앞으로 큰 시험이 있어 그게 틀렸다 아니다 하는 그런 유혹도 있을 것이고 또 유혹만 있을 것이 아니라 마지막에는 큰 박해까지 있게 될 터이니까 이것을 생명을 내대도 이 진리는 양보할 수가 없다고 생명보다 귀중한 가치로 여러분들이 여기지 아니하고는 마귀는 조롱하고 ‘저까짓 거야 가졌다 해 봤자 옳은 진리와 신조를 가졌다 해도 그까짓 거야 뭐 당장 뺏들 거, 죽인다고 위협만 하면 내놓을 것’ 이렇게 하고 여러분들을 조롱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시간 들어 깨달을 때에 이렇게 심각하게, 내가 생명을 줄지라도 내가 이 교리와 신조는 주지 않겠다고 이렇게 깨달을 수가 있어야 되지 그렇지 안하면 다 헛일이 되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것은 서로 대립이 되는 것은 다섯은 천국을 갔고 다섯은 지옥을 갔다 하는 그것이 서로 대립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깨달은 것은 열 사람이 다 기본구원은 얻어서 기본구원적인 천국은 다 가서 있지마는서도 건설구원인 영광은 없다 그렇게 깨달은 것이 우리의 깨달은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들을 때에 어느 것이 바른가 어느 것이 옳은가 들으면 성령이 여러분들을 감동시켜서 꼭 올바로 깨달을 수 있는 은혜를 주시옵소서 하는 그런 것을 기도를 하면서 들으면 잘 깨닫게 될 것입니다.
첫째로 여게, 이 진리를 왜 믿음 없는 사람들이 다 저버리고 이 진리를 바로 가지지 못하게 되느냐 하면 여게 말하기를 신랑과 처녀, 결혼하지 아니한 미혼 신랑과 미혼 처녀라는 것이 기록돼 가지고 있고 또 이제 혼인 잔치를 열고 결혼식이라 하는 것이 기록돼 있습니다. 요것을 사람들이 잘못 깨닫고 고만 거게 대해서 말하는 사람도 그저, 남녀 결혼이라 이라니까 그것을 참 오히려 추접하게 보고 그저 남녀 부부 뭐 결혼이라 부부 관계라 이라면 모두 다 그 추접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아이를 여남은 낳은 그 부부들도 그저 아이 낳은 부부 생활이라 하면은 다 마음은 기울이고 있으면서도 추접하게 생각하고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게 기록한 이 진리가 신랑과 신부, 미혼 신랑과 미혼 신부의 혼인 잔치 이 결혼식이라고 하니까 이것을 깨닫지 못하니 이것도 부끄러운 일로 수치스러운 일로 사람들이 여겨서 여게 대해서 파고 들어가지를 아니하고 그렇게 등한히 하고 그저, 하기 때문에 여게 대한 진리를 바로 깨닫지 못한 그런 이유도 있지 않는가 그렇게도 생각이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여게서 결혼이라 하는 요것을 잘 이제 들어서 깨달아야만 할 것입니다.
호세아서 2장에는 우리 하나님의 성도들을 가리켜서 아내라 그렇게 말을 했고, 이 세상을 가리켜서 간부라 이렇게 했고, 또 하나님을 가리켜서 본남편이라 이렇게 거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이는 하나님과 성도가 결혼하는 그것이 근본 결혼이요 성도가 이 세상이라는 세상하고 결혼하는 것은 간부 곧 연애하는 연애의 결혼이라 간부 결혼이라 하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이만해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여인이 온 세상하고 결혼하는 여인이 있습니까? 온 세상이라면 이 모든 온 세계에 인류 역사에 모든 문화 이런 것이 다 세상인데 그 세상하고 결혼한 여인이 어데 있습니까? 이만하면 알 것인데, 그러면 그 결혼이라 하는 것은 어떤 결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건데 요 타락해서 좁작하게 일남 일녀의 결혼이라는 부부 생활 이성 성생활 하는 고런 데만 생각하기 때문에 이 진리를 받아들이기를 그거와 같은 것인 줄 알고 추접하게 생각하고 부끄럽게 생각해서 여게 대한 진리를 알지 못하게 되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자는 믿지 안하고 거게 속한 자들은 그렇게 됩니다.
처음에 이 남녀의 부부라는 것 이 결혼이라 하는 것은 이것이 하나의 형식 계시로 나타나서 하나님과 성도와의 그 관계를 바로 알리기 위해서 알리는 하나의 형식 계시로 이 제도를 하나님이 내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의 남녀의 부부라는 이것은 모형이고 하나님과 성도와의 관계는 원형이 되는 것입니다.
그 모형으로 하나님이 처음에 나타냈을 때에는 타락하기 전에 그 부부는 아담 해와가 부부입니다. 그러면 아담 해와가 부부인데 아담 해와는 어떤 자이냐? 아담은 하나님이 남자를 지으셨고 여자는 없었습니다. 여자는 없었는데 그 남자를 돕는 배필을 하나 하나님이 창조하시기 위해서 남자의 갈빗대를 빼 가지고서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그러면, 만드시니까 그 남자가 여자를 보고 내 뼈 중의 뼈요 내 살 중의 살이기 때문에 이는 남자에게서 나왔기 때문에 이름을 여자라 그렇게 지었습니다.
그러면, 그때는, 그때는 모든 의무적인 부부요 책임적인 부부요 동거 동행적인 부부요 동일의 희로 애락을 누리는 부부였지 타락 전에는 부부 동침이라 하는 것은 없었습니다. 그건 범죄한 후에 하나님께서 일종의 축복이나 범죄 후의 축복인 것입니다. 범죄 후의 축복입니다.
사람들이 지금 일하고 있는 그 일이 보배입니다. 노력하는 노동하는 것이 보배고 부지런히 일하는 것이 잘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일하는 그것은 타락 후에 잘하는 것이고 보배지 타락 전에는 그따위 일 하지를 안했습니다. 타락 전에는 밭 갈고 논 갈고 뭐 이런 하는 일 하지 안했습니다.
뭐 했던가? 하나님 한 분만을 중심 삼아서 그분에 따라 움직이는 것으로 모든 피조물들을 다 통치해서 하나님의 충만을 피조물들에게 주고 피조물들에게 존대와 감사를 이렇게 받고 있는 그런 고상한 위치에서 살고 있는 것이 타락전 그 부부였습니다.
이랬는데, 타락 후에 비로소 모든 것이 다, 제일 좋은 거, 남편의 갈빗대에서 아내가 나온 그 제도는 끝나 버렸습니다. 그전 부부의 제도가 곧 성경에 말씀하는 신랑과 신부의 제도인 것입니다. 그때는 분식입니다. 그때는 한 사람으로 자고 나니까 한 사람이 생겨졌습니다. 깊이 잠들어 자고 나니까, 아담은 누워 자고 보니까 생겨졌어. 생겼는데 보니까 자기 길빗대가 와 가지고 사람이 하나 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여인이라 아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말했는데, 그러면 그 갈빗대 뺀 데는 살로 채워 버리고 이것이 번식 방편이었습니다.
타락 전에는 이것이 번식 방편이지 꼭 부정 모혈의 동침을 해야 사람이 나는 그런 더러운 그런 아주 타락한 방편을 주지 안했는데 그것은 범죄한 까닭에 형벌로 줬다고 했습니다. 여인은 해산하는 수고 준 것은 먼저 범죄했기 때문에 해산하는 수고를 했고 남자는 다음에 따라서 범죄했기 때문에 해산하는 수고의 그 뒷바라지를 남자가 해 가지고서 등골에 땀이 차도록 일을 하게 됐고 하나님으로 만족하고 사는 것들이 이제는 인간의 하나의 성욕으로 만족하고 살도록 그렇게 천해서 완전히 짐승화됐고 하나님의 형상대로의 고상한 인격의 취미나 낙이나 그런 것들은 없게 됐던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이제 원상 복구된 것이 무엇으로 원상 복구가 됐느냐 하면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원상 복구가 되어서 원상 복구가 될려고 하는 데에 장애가 되는 죄 문제를 해결해서 사죄가 이루어졌고 또 대행해서 의의 문제가 이루어졌고 대화친의 화목의 제물이 되심으로써 하나님과 화친의 이 결합의 새생명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이제 그 모든 생산력도 다릅니다. 마치 남편에게서 갈빗대 빼 가지고서 아내된 거와 마찬가지로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은혜로 이제 한 사람이 납니다. 예를 들면은 백 목사라는 주님의 신부가 하나 있다고 하면 하나님에게서 난, 하나님의 은혜로 생겨진 것을 내가 받아 가지고 기릅니다. 내가 받아 가지고 기릅니다. 순전히 하나님에게서 난 피와 성령과 진리로 되는 그 생명이 그것이 사람들에게 났을 때에 그 사람이 산 사람이 되어서 새사람이 되어집니다. 그러면 그래 가지고 자라는 것입니다. 자라면 그것이 다 하나님의 신부가 됩니다. 알겠습니까? 갈빗대 빼 가지고서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담의 신부된 것처럼 주님의 피와 성령과 진리로 된 그것이 자라 가지고서 예수님의 신부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도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서 나타났으나 성령으로 잉태해 가지고서 나타나셨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것을 기억해야 되고, 또 성경에 요한계시 14장에 3절에 보면은 시온 산에 있는 사람들이 십 사만 사천 인이 있는데 그 십 사만 사천 인은 다 여인으로 더불어 더럽히지 안한 자들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여인으로 더불어 더럽히지 안한 자들이라.
또 거게서는 뭐를 여인으로 더불어 더럽히지 안한 자들이라고 한 것인가? 그러면 하늘나라에 가서 영광스러운 구원 얻을 자는 결혼하지 안하고 전부 독신으로 사는 사람들인가? 이것도 성경을 잘못 깨닫고 그렇게 해 가지고서 처녀 늙음이 많고 또 결혼하지 안한 총각으로서 결혼하지 않고 일생을 사는 그런 사람들이 많은데 하나님께서 그렇게 은혜 주셔 가지고 되는 사람들도 있지마는서도 이 성구를 잘못 깨달아 가지고 여인으로 더불어 더럽히지 안해야 된다 해서 결혼 안 하고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천주교의 신부라든지 그렇게 잘못 성경을 깨닫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여게 여인으로 더불어 더럽히지 안한 자라 그 말은 이 성도는 남편이요 남자요 그러면 여인은 무엇을 가리켜서 말한 것인가? 여인은, 남자 그 성도의 세상을 가리켜서 여인이라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알겠습니까? 이러기 때문에 성경은 제가 조부라운 생각 가지고는 깨닫지 못하고 무한이기 때문에 무한을 알게 하는 성령의 감동을 받지 안하면은 깨닫지를 바로 못 하게 되는 것이 우리 사람들인 것입니다.
여인이라 말은 이 성도들의, 여게 결혼이라 하는 것은 배우자라 말입니다. 배우자.
배우자, 짝이라는 말입니다, 짝. 짝이라는 것은, 감을 한 개를 딱 쪼개면은 두 쪼가리가 됐다가 그 두 쪼가리가 합하면은 감 한 개가 되지 않습니까? 이와같이 짝이라는 말이요 짝이 결합된다는 말이요 짝이 짝을 찾아서 바로 된다는 그것을 가리켜 말한 것인데 여게는 여인을 무엇을 가리켰느냐 하면은 성도들의 짝, 성도들이 상대하고 산다 말입니다.
성도들이 세상을 상대하기 때문에 세상은 성도에 대해서 여인 위치에 있는데 세상을 상대해 살지마는서도 세상으로 인해서 성도들이 조금도 더러워지지 안하는 그 사람들이 시온 산 십 사만 사천 인 속에 들어간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거게는 세상을 여인으로 말을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게 이 신랑은 예수님을 가리켰고 신부는 구속받은 성도들을 가리켰습니다. 이 결혼이 되면은, 결혼이 되면은 어찌되느냐? 결혼이 되면은 이 둘이, 두 개가 합해서 하나가 된다 말입니다. 짝이 둘이 합해서 하나가 되는, 짝이 결합된 거, 이 짝은 뭐이냐 하면은 하나님은 그 사람만 보고 그 사람은 하나님만 보고 둘이 단짝으로 이래 돼 가지고, 짝이 돼 가지고서 그 성도가 하나님 외에는 아무것도 상대하지 안하고 하나님도 그 사람 외에는 상대하지 안하고 고런 사람들만 상대하는 고 밀접한, 둘이 하나되는 고것을 나타내서 여게 결혼이라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이래서, 둘이 하나가 된다, 또 이제는 아내의 모든 것을 남편이 책임지게 된다 고럴 때에 고것이, 결혼이라 하는 것은 아내의 모든 것을 남편이 다 책임지게 된다 아내의 잘못도, 잘한 것도, 모자란 것도, 가난한 것도, 아내에게 모든 부족한 것을 남편이 다 책임지게 된다 하는 책임지는 그 결합을 가리켜서 결혼이라 그렇게 말하고 또 남편의 모든 것이 이 결혼됨으로 말미암아 전부 아내의 것이 된다 하는 그것을 가리켜서 요 결혼이라고 말을 하고 이제는 아내와 남편이 항상 같이 있게 된다, 동거하게 된다, 이제 주님과 우리 성도들이 같이 동거하게 된다, 동행하게 된다, 기쁨도 하나다, 영광도 하나다.
결혼한 후로는 그 남편의 기쁨이 아내의 기쁨이요 아내의 기쁨이 남편의 기쁨이니 한 기쁨을 가지고서 아내와 남편이 둘이 기뻐하고 한 근심을 둘이 하고 한 기쁨을 같이 하고 한 역사를 같이 하고 다 희로 애락이 하나요 소유가 하나요 영광도 하나요 근심도 하나요 수치도 하나요 다 이렇게, 하나님과 이 피조물인 그 사람과 딱 들어붙어서 짝이 돼 가지고 하나 되어지는 요것을 가리켜서 결혼이라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아무 능력 없으나 남편의 그 전능이 아내의 전능이 되고 남편의 전지가 아내의 전지가 되고 남편의 만왕의 왕권이 아내의 왕권이 되고 남편의 만주의 주의 권이 아내의 만주의 주의 권이 되고 남편의 모든 대주재권이 아내의 대주재권이 되는 이런 결합이 되어지는 것을 가리켜서 이렇게 말씀을 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사실을 알려 주기 위해서 사람들에게 이 계시의 한 형식 계시로서 남녀 부부의 이 약혼이라는 것과 결혼이라 하는 그런 것을 가지고서 이모 저모로 우리들에게 깨닫게 하기 위해서 이 모든 것을 역사한 것입니다.
그러면, 참 아주 어떤 사람은 이 사실을 깨닫고 오랫 동안 참 울고 자기를 근신하고 조심하고 이래 가지고서 그렇게 오랫 동안 눈물로 느낀 그런 사람들 많습니다.
이렇게, 이 결혼되는 것은, 이 육체로서 그것도 참 좋은 것입니다. 아무리, 아무리 부자간도 좋고 모자간도 좋고, 위로는 제가 자녀됐고 밑으로는 제가 부모됐지마는서도 정상적으로 바른 부부라면은 그 나머지기는 그 다음 것이고 언제든지 부부가 제일 밀접하고 제일 정이 통하고 제일 의사가 통하고 희로 애락이 하나 되어지는 그것이 뭐이냐 하면은 ‘부부 유별이라’ 안 믿는 사람들도 부부는 다른 사람의 교제와 다른 그런 별스러운 것이 있다, 별스러운 게 있다 하는 그것을 요새는 또 뭐라고 하는 게 아니라 ‘남녀 이성의 성교라’ 그거 순전히 짐승으로 완전히 타락해서, 완전히 타락해서 더러워져 가지고서 그렇게 그만, 관념이 그러니까 그 사람들은 그렇게 해석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우리에 여러 가지 하나님이 됩니다. 우리에 주님이 되는 것이, 주님이 되는 것이 창조적인 주님이 됩니다. 창조적인 주님이 되고 또 주재적인 주님이 되고 주권적인 주님이 되고 심판적인 주님이 되고 우리를 영원 통치적인 주님이 되고 또 우리의 주인이 되고 또 우리의 이제 목자가 되고 우리의 왕이 되고 우리의 선생님이 되고 우리의 친구가 되고 여러 면으로 말했습니다.
여러 면으로 말했지마는서도 그 모든 것보다 더 우리와의 관계가 어떤 관계가 더 중요하냐? 그 관계가 모든 관계보다 부부 관계가 중요하니 이거는 역사적인 관계입니다. 두 존재이면서 두 존재가 합해 가지고서, 두 존재가 합해 가지고 하나로서 이 부부적인 결합이라는 것은 두 인격 존재가 합해 가지고서 가장 긴밀하게 밀접하게 관계를 가지고 있는 그 관계가 부부 관계요, 그보다도 더 중요한 관계는 거게서 한층 들어가면 주는 머리시요 나는 그의 지체가 되고, 주는 머리고 나는 그의 지체가 되고 그는 머리가 되고 나는 그의 몸이 되어지고 그는 나의 생명이 되고 나는 그이의 모든 움직이는 몸이 되어지는 이것으로서 점점 관계가 밀접하게 들어져 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완전히 육체의 더러운 것을 떠나서 듣지 안하면은 못 듣습니다.
이렇게, 부부의 밀접한 의논적 관계나 희로 애락이 하나되는 관계나 협동하는 관계나 그런 것이 있는 것이 일반인들 사이와 다르다는 거 그것을 또 우리에게서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과 관계 있지마는서도 결혼식이 된 것과 결혼식이 안 된 것이 다릅니다. 이제는 부부가 된 거와 부부가 안 된 것이 다릅니다.
또, 낳는 것도, 복음을 전해 가지고서 한 교인을 얻은 것도, 얻은 것도 그것이 주님으로 인해서 둘이 하나돼 가지고서 교인을 얻는 거, 마치 말하자면 주님에게서 나온 거, 주님에게서 나온 그것을 내가 받아 가지고 기를 때에 그것을, 교인된 것은 온전한 것이고 바로되는 것이고 참된 것이지마는서도 그 나머지기 이런 운동 저런 운동을 해 가지고서 인간적으로 모아 놓은 그런 것은 다 잡탱이요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복음 전할 때에, 사람들은 복음 전해서 전도하기 위해서 오만 방법을 쓰지마는서도 성경에 기록한 그 방법 외에 쓰는 것은 다 자기 속이는 것이요 암만 수천만 명이 모여 들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제가 서울에서 모이는, 그때는 오십만 명이 모였다 ‘아이구’ 이 한국 생긴 이후로서 오십만 명 모인 것이 처음입니다. 그 뒤에는 또 말을 들으니까 오백만 명 모였다 합디다. 그뒤에는 내가 가지 안했습니다. 오십만 명 모인 데에 그 회집에 가서 보니까 하나님 말씀은 한 마디도 없습니다. 성령의 역사는 하나도 없습니다. 전부 세상 운동 세상 역사뿐입니다. 그래서 내가 말하기를 ‘거게서 강사로, 그 강사가 유명하다고 해 가지고서 그렇게 모였는데 그 강사가 설교하는 그 설교를 볼 때에 우리 서부교회 주일학교 학생은 아무리 인제 나온 학생이라도 말하라 하면 그보다는 생명 있고 뼈대 있고 소망이 있는 말을 할 것입니다’ 이렇게 허무합디다. 그런 것으로 모은 거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얼마나 우리가 바로 깨달아야 될란지.
지난 시간에도 여게 그 말 했지마는서도, 또 그런 것도 우리에게 하나의 역사 계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특별 계시는 신구약 성경의 영감 도리가 특별 계시이고 자연 계시라 하는 것은, 계시라 말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이 피조물들에게 나타내 보여서 알게 하는 것이, 그 알게 한다 말을 가리켜서 계시라 그렇게 말합니다. 계시라 말은 열어 줄 계(啓)자 보일 시(示)자, 열어서 보여 준다는 것을 말해서 계시라고, 한문 글자로 음을 따서 계시라 그렇게 한 것인데, 이 자연 계시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모든 창조하신 만물과 또 하나님이 이 섭리하시는 모든 섭리와, 또 인간들의 형형 색색의 천태만상의 인간들의 마음의 구조로 되어 있는 이것과 이런 것들이 다 이제,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은 어떻게 역사 하시며 하나님의 보응은 어떠하며 하나님의 심판은 어떠하시며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것은 무엇이며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은 뭐인가 하는 것을 이런 것을 보아서 알도록 그렇게 해 놓은 것입니다.
그런 것이 다 자연 계시인데 우리나라는 지금은 없어. 지금은 타락 전 부부의 그 정상이 있고 타락 후에는 범죄적인 이 부부 결혼입니다. 또 지금 죄악이 관영해지니까 점점 더러워져서 타락해서 이제는 완전히 짐승화됐습니다. 과거에는 그래도 사람의 무슨 도의 예의 윤리 그런 것이 있어서 결혼한 것은 자손을 전하기 위해서 그렇다. 만일 아이를 못 낳으면 평생 죄인인 줄 알고 대를 끊었다는 그거는 그게 문제지만 그런 거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지금은 아이를 안 낳을라고 합니다. 지금은 완전히 남녀 이성이라 하는 것은 개 돼지, 개 돼지 토끼, 개 돼지 토끼, 달구 새끼, 요 완전히 짐승의 결혼입니다.
알겠습니까? 이것 외에는 없습니다. 이것뿐이오. 혹 그 가운데서 그래도 사람에 가까운 그런 결혼이 있지 지금은 완전히 수성화됐습니다. 짐승 수자, 수성화됐다 그거요.
이러니까, 수성화된 이 시대이기 때문에 이 설교를 하면 이해가 안 대이고 전부 있다가 그라니까 속으로 삐쭉삐쭉 웃고 속으로 또 그것 생각하니까 귀신 들어와서 ‘저것 봐라, 저거. 저 음란한 소리하고 있네. 추접한 자꾸 결혼하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그것만 자꾸 말한다.’ 이래 가지고 하는데 이것이 중요한 교훈입니다. 알겠습니까? 아까 내가 말할라고 모든 것이 자연 계시라 하는 그 말을 무엇 때문에 했느냐 하면은 과거에는 군왕 시대, 임금으로 군왕 시대, 제국 시대 그 시대는 임금이라면은 만승 천자라 이랬어. ‘만승 천자라’ 이제 어데까지 올라가느냐? 하나님 한 분 밑에 모든 인류 위에 올라가는 것이 그것이 천자라. 그것이 왕입니다.
이래서, 그 왕은 아내를 얼마나 데리고 있느냐 하면은 약혼한 아내는 삼천 명이요 결혼한 아내는 하나뿐입니다. 왕이 만일 황후를 둘을 데리고 있으면은 당장 등장놔 가지고서 죽여 버립니다. 어데 뭐이 죽였는지도 모릅니다. 약혼한 처녀는 삼천 명이요 결혼한 처녀는 한 사람뿐입니다.
결혼한 것을 가리켜서 황후라고 말하고 추전을 받아 가지고서, 추천을, 이는 어느 문중에, 양반 문중에, 문중이 좋은 문중이요 피가 깨끗하고 또 도덕이 깨끗하고 다 이렇게 좋은 문중인데 이렇게 처녀가 용모도 아름답고 도덕도 아름답고 모든 것이 지능도 명철하고 이러니까 왕의 아내가 될 만 합니다. 할 때에 그것을 이리저리 모든 구비한 그것을 보고서 왕이 보고서 이제 ‘됐다 그러면 그를 내게 보내 가지고서, 이제 보내 가지고서 한번 면접을 하자’ 이래 됩니다. 그러면 그게 약혼입니다.
그라고 난 다음에 왕에게 퇴짜받은 것이 이천 구백 구십 구 명이요 결혼한 자가 한 자뿐이라 말입니다. 그래서 삼천 궁녀인데 삼천 궁녀는, 그라고 난 다음에 제 마음대로 시집 가느냐? 못 갑니다. 왕에게 한번 이렇게 익혀 놔서 약혼한 자가 딴데 결혼하면 왕에서 범성죄를 범하고 모욕을 주는 것이라고 해 가지고서 달리는 딴데 못 갑니다.
그러기 때문에, 벌써 그래 되면은 그 궁성으로 모시게 됩니다. 그 처녀를 궁성으로 모셔 가지고서 궁성 밖에 평생 나가지를 못합니다. 왕궁 안에 살기는 삽니다.
그래 가지고서 수많은 사람들을 방위해 가지고서 나가면 사형입니다. 만일 어떻게, 친척들이 면접도 하는데 어떻게 해 나가 가지고서 만일 나가 버려서 나가 버렸으면은 외가집과 친척 두 이족을 멸합니다. 두 가문을 멸족을 해 버립니다.
어떤 사람에게 가 가지고 결혼을 했으면은 결혼한 그 족속도 멸해서 삼족을 멸해 버립니다.
이라니까, 그 정권 아래서는 한번 궁녀로 정해 버렸으면은 출입 못 합니다.
이러니까 평생 남편 한번 뭐, 그때 그만 퇴짜를 보고 맞았든지 어쨌든지 퇴짜 맞았으면 다시 보지도 못하고 한번 손도 못 잡아보고, 어림도 없습니다. 손 못 잡아 봅니다. 어데 손을 잡아 보겠습니까? 또 어떻게 동침을 하겠습니까? 동침 못 합니다. 동침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래 했기 때문에 꼼짝도 못 하고 그래 있으면서 그 가운데는 이제 다른 사람들은 출입을 못 하고 이제 병신 고자가, 고자되어 있는, 날 때부터 고자 그리 안 하면 사람이 만든 고자, 고자들이 다니면서 이래 설설 속에 순회나 하지 아무 자도 출입 못 하는 것이 그래 가지고 만일 넘어가면 죽여 버립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서 꼭 같은 사람이었지마는서도 이제 황후로 결정이 딱 돼 가지고 임금하고 결혼이 딱 되고 난 다음에는 그 황후는 그만 왕과 같은 그런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왕의 모든 권리는 제가 다 가지고서 이행할 수가 있고 또 그 배후를 얼마든지 이래 가지고도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떤 족속이든지 그 족속에서 만일 황후가 하나 났다고 하면은 그 족속에서 왕이 난 거와 꼭 같은 그런 동등 권리의 그 권위를 쓰고 시위를 하고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우리 천국은 그렇다고는 내가 말하지는 안합니다.
안하지마는서도 꼭 내가 볼 때는 그럴 것 같다 하는 것은 확신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말은 안 하지마는서도 나는 그렇다고 나는 믿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힘 입은 자들은 벌써 약혼이 된 처녀들입니다.
주님하고 결혼할 수 있는 이 자격을 가졌고 권위를 가졌고 위치를 가졌고 소속을 가졌고 이런 모든 배경들을 다 구비해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 이 신랑과 결혼만 되면, 주님과 결혼만 되면 됩니다.
결혼만 되면 되는데 이 결혼은 뭐 결혼이냐? 우리 영은 벌써 결혼이 됐습니다.
우리 영으로 말하면 벌써 주님하고 결혼이 됐습니다. 이거는 단번에 결혼이 됐습니다. 이 된 것은 우리의 자격을 보고 함이 아니고 하나님의 대속의 공로로서 우리의 영은 완전히 전적 객관의 은혜로서 이렇게 영의 구원은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영의 구원이 됐으니까 우리의 주격이 구원을 얻었습니다.
주격이 구원을 얻은 그 소유격인 우리의 심신은 어떻게 되느냐? 이 심신이 지금 결혼하는 데에 있는 것인데 이 심신이 말하자면 하나님과 결합하는 데에 있는데, 아까 결혼에 대해서도 말했습니다. 말했는데 타락 후에 이제, 부부 동침이라는 그런 거는 없습니다. 없기 때문에 이제, 주님 말씀하시기를 천사들과 같이 그때는 남자 여자가 구별이 없습니다. 남자 여자가 전부 남자입니다. 전부 하나님의 아들이요. 여게 있는 여반들도 다, 이리 여반들도 전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하나님의 다 장자요. 여자 없소. 전부 남자들이요. 다 장자요. 그러기에 천사와같이 된다고서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이랬는데 이 부부 결혼이 되기 전과 된 후가 이렇게 크게 차이가 있다는 요것을 여러분들이 명심해서 알아야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님으로 더불어 결혼하는 이 결혼은 영은 단번 결혼이지마는서도 우리의 심신은 결혼이 수백 번 수천 번 결혼식을 합니다. 알겠습니까? 수천 번 수백 번 결혼식을 합니다.
왜? 우리의 마음의 요소도 한 개 두 개가 아니고 우리 마음의 요소는 뭐 수천 수만 수억입니다, 마음의 요소가. 그러나 마음의 요소는 그것이 하나입니다.
또, 우리의 몸의 요소도 요새 과학적으로 말하기를 뭐 크게 말하면 모든 기관이라 이목구비 수족이나 그라고 안에 있는 내장이라 이라지마는서도 또 그것을 더 세부로 말하면은 고 세포라 해 가지고서 다 지금 표시해서 세포는 한 사람의 육체의 세포는 뭐 수십억이 아니라 수백억이오. 수백억도 넘지 않느냐 그래 나는 생각이 됩니다. 나는 똑똑히 숫자는 모릅니다. 그렇게 많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수많은 세포가 각각 다, 각각 전부가 다 독립성 가지고 있습니다.
그 세포가 다 독립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 자주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각각 생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 개체입니다. 다 개체입니다. 개체나 이것이 그 몸에 있는 그 전체인 그 전체와 그 개체가 꼭 동질 동성입니다. 또 꼭 같이 본질과 본성이 같아 가지고서 그 생명도 한 생명으로 한 능력으로 살고 있습니다.
이래서, 세포는 얼마 살고 나면은 그것은 도태돼서 없어지고 또 거기서 세포에서 세포가 또 생기고 자꾸 이렇게 지금 가는 것인데 그것이 그렇게 많지마는서도 그 세포가 한 생명, 한 질, 한 성, 본질 본성, 한 생명으로 되어 있는 것이 그 세포들인데 만일 여게서 한 세포가 거기에 이탈돼 가지고서 동질이 안 된 이질이 하나 있으면은 이질돼 있는 그것은 병입니다. 이질돼 있는 그게 병입니다.
이질된 그것이 그만 없어져 버리면 그만인데 이질된 그것이 하나가 둘로 번식되고 둘이 셋으로 번식되고 셋이 백으로 천으로 만으로 번식되면은 그것이 뭐이냐 하면은 내나 암병이나 뭐이나 하는 그런 것이 다, 세포가 들어 가지고서 그거 변질된 이질적인 세포가 있을 때에 그것을 병이라고 이래 가지고서 사람들은 말하기를 뭐 바이러스 균이니, 바이러스 균이 왜 그러냐? 바이러스 균이 거기 와 가지고서, 이질적인 것이 와 가지고서 자리를 잡아 가지고서 세포를 먹고 그것이 세포와 같이 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 다 병균이라 그 말이오.
모든 것을 우리가, 이 과학자들이 하나님 알면 그 과학자가 참말로 과학자가 되고 굉장한 구원도 이루고 알 것인데 이 과학자들이 눈에 보이는 고것만 알고 하나님 말씀은 알기를 싫어하기 때문에 네가 저주를 받았다 그거요.
하나님 말씀은 무시하고 이 썩어진 배암의 지식은 알라고 하면은 백 시간 들이면은 하나님의 지식은 십 분도 들이기를 싫어합니다. 여기 와 가지고 실컷 있다가서 오전에 한 한 시간 예배 보는데 그것도 듣기를 주리를 틀고 ‘에이고,’ 네가 썩은 지식은 그거 하나를 알라고서 네가 며칠 밤을 자지 못하고 이라면서 이 지식은 무시하기 때문에 너는 저주를 받아야 되고 정죄를 받아야 되고 망해야 된다 하는 것이 하나님의 진노입니다.
이렇게 이 모든 것이 이렇게 돼 가지고서 있는 것처럼 많은 육체는 여러 숫자로 다 종합해 가지고 있습니다. 종합해 가지고 있으나 이질은 없습니다. 종합해 가지고 단합해 가지고 이 집합체로 되어 있지마는서도 하나도 이질적인 것이 없습니다. 그 세포가 억만 세포를 내놓아도 그 세포가 그 사람의 단일성이요 단일질이요 단일 생명이요 함께 움직이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기독교 신자들도 다 이런 것입니다.
이런데, 그렇게 많은 약혼자들이 있었으나 많은 약혼자들 가운데에 하나만 왕으로 더불어 결혼식은 하고 결혼이 됐지 그 다음에는 결혼이 안 됐습니다. 그러면 결혼이 되고 난 다음에는 왕권을 황후가 즉시 동등권을 가집니다. 자연히 동등으로 가지는 것은 사랑으로서 있는 것을 다 주고 이라고 때문에 외부에 나타나 가지고 정치에 행정하기는 왕이 하지마는서도 뒤에서 외나 조절하기는 황후가 조절합니다. 황후의 뜻대로 왕이 통치했지 왕의 뜻대로 황후가 하지를 않습니다. 이래 하는 같으나 기묘합니다. 요새도 보면 ‘아내 말 안 듣는 사람이 있느냐?’ 그러면 대개 아내는 뒤에서 예예 순종하는 것 같지마는서도 실상 보면은 아내의 소원대로 그 남편은 움직여 가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 것이라. 요것 변질됐지마는 약간 좀 남아 있다 그거요.
이러니까, 내가 이 말하는 거는 뭐 때문에 하느냐 하면은 우리는 다 약혼하기는 다 약혼했는데 약혼을 했지마는서도 결혼이 문제라. 약혼한 자는 하늘나라 가기는 가지마는서도 결혼 못 하면 하늘나라에 가 가지고 있어도 아무 무능한 자라.
이러기 때문에 벌거벗은 자가 있어. 하늘나라에 벌거벗은 자가 있어. 벌거벗은 자라 말은 뭐 옷을 벗었다는 말이 아니고 벌거벗었다는 말은 영광을 벗었지 권위를 벗었지 지위를 벗었지 존귀를 벗었지 역사를 벗었지 모든 걸 다 벗었기 때문에 그런 게 없어, 있기는 있지마는서도. 아무 세상에서 주님과 결합된 면이 없기 때문에 결합이 된 면이 없어. 하나된 면이 없다 말이오. 주님하고 나하고 짝이 딱 된 면이 없어.
이래 가지고 어떤 사람은 주님의 그 신부 된다는 이걸 깨닫고 주님과 나와의 둘이 단 둘이 짝이 맞아진다. 주님만을 상대하고 주님은 나만을 상대한다. 주님과 나와 짝이 된다는 이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지. ‘내가 그러면 얼마나 조심해서 당신만 상대해야 당신이 나만을 상대해 가지고 일할 수가 있을 건가?’ 이러니까 옆눈을 돌아볼 여가가 없고 다른 걸 생각할 여가가 없고, 잠시 말을 하면서도 주님을 잊어 버리고 설교하면서도 주님 잊어 버리고 들으면서도 주님 잊어 버리고 접촉해서도 주님 잊어 버리고, 주님 잊어 버리고 그보다 더 큰 죄가 없어, 주님을 잊어 버렸으면 잊어 버렸으니까 이거는 배신한 것이기 때문에 나는 창기와 같은 사람입니다. 창기와 같은 자입니다. 말이 들리니까 주님 얼른 배반하고 거기 가 버렸고 눈에 접촉 하니까, 보이니까 이제 주님 배반하고 그리 갔고 뭐이 접촉하니까 고만 주님 배반하고 그거하고 한덩어리가 돼서, 그래 뭐 창기성과 같은 이런 노릇한 것이 하루도 몇 번이나 있는 그것을 탄식을 하면서 어쨌든지 나는 주님만 바라보고 주님은 나만 바라보고 주님으로 동하고 정하고 이런 밀접한 결합이 있기를 원하여서 자기 소유와 몸과 생명을 다 벌써 포기하고 전심 전력을 기울이는 사람들이 다 성도들입니다.
그러기에, 이 결합이 있은 지 후에 거게서, 주님하고 나와 연결이 되고 난 다음에야 거게서 영광이 되는 것이고 존귀가 되기 때문에 고린도전서 15장 40절 이하에 말씀하시기를 부활한 자의 영광도 이와 같다 부활은 다 같이 하지마는서도 부활한 자의 영광이 이와 같다. 뭐와 같으냐? 육체와 같고 형체와 같다 고렇게 간단하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하나 육체로 말하면 이거 뭐 구더기 육체도 있고 또 새의 육체도 있고 버러지 육체도 있고 물고기 육체도 있고 사람의 육체가 있지 않습니까? 그 육체라는 말은 같지마는서도 그 가치가 얼마나 틀립니까? 그와 마찬가지로 형체라는 것은 다 가졌지마는서도 형체의 가치와 권위가 얼마나 틀립니까? 그 형체도 예를 들면은 저 모래, 우리가 여름으로 해수욕 가는데 해수욕 가면은 모래 한 주먹 뜨면은 그 형체 모래 하나도 보면 전부 형체입니다. 그거 다 형체 다 가지고 있어.뭐 우리 눈으로 보면 그래 형체 다 안 보이지마는 현미경으로 본다면 그 형체가 뭐 아마, 현미경으로 보면 모래알 그것도 아마 주먹덩이 만할 것이야. 이만한 거 다 형체를 뭐, 길고 짜르고 동글고 다 이거, 모래알 그것도 형체가 돼 가지고 있다 말이오.
이런데, 그것도 형체는 형체지마는 그 형체와 하늘에 있는 태양 저것도 형체인데 태양 한 개의 형체와 이 모래알 한 개의 형체와 대소가 얼마나 크냐? 크고 작은 거는? 크고 작은 것도 굉장히 차이가 있지요. 그러면 그 권위는 얼마나 다르냐? 권위도 굉장히 다르지요. 영광은 얼마나? 영광도 굉장히 다르지요. 모든 존재에게 필요있게, 유효하게 봉사하는 것이 어떠냐? 봉사하는 것도 무한히 다르지요.
이와같이 부활한 자의 영광이 이렇게 차이 있다 말했습니다. 이렇게 차이가 있다.
부활한 자의 영광도 이와 같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고 별의 영광도 다르고 땅의 있는 모든 형체들의 영광이 다른데 이와같이 부활한 자의 영광도 다르다 이렇게 말씀했다 말이오.
이걸 믿기 때문에 지금 사람이 고민이고 이걸 믿기 때문에 바울은 무거운 짐진 거와 같이 항상 마음이 눌리는 것은 어떻게 하면 내가 벗은 자로 나타나지 안할까, 어떻게 하면 내가 그분을 배반하는 자로 나타나지 안할까, 이러니까 어떻게 그 형체로 말했을까? 예를 들면은 이 사람은 주님과의, 주님과의 결합이 어떤 면만 결합이 됐느냐 하면은 말만 결합됐다 합시다, 말만. 말만 주님과 결합이 됐다 합시다. 말만 주님과 결합이 됐으면 이제 말만 결합이 됐으니까 말만 결합이 됐으니까 그 말만 주님과 같이 동거 동행하고 같이 가치 있는 역사도 하고 영광이 있지 그 말 외에 딴거는 주님과 결합이 안 됐다 말이오.
나는 생각할 때에, 내가 자꾸 이 진리의 말씀을 하니까 말의 결합이 제일 낫게 됐겠다. 그런데 말의 결합도 돼야 되겠고 생각의 결합도 돼야 되겠고 뜻의 결합도 돼야 되겠고 욕심의 결합도 돼야 되겠고 정신의 결합도 돼야 되겠고 성질의 결합도 돼야 되겠고 이 손으로 하는 손의 결합도 돼야 되겠으니까, 이 손으로 뭐 여러 가지 하니까 요 일 할 때에 요 면으로는 결합이 됐지마는 고다음에 딴 일 하니까 또 그게 안 되고 이러니까, 요 손의 수천 행위하는 그 수천 행위가 현실 현실에서 다 지나가 버리는 건데 현실에서 주님과 함께 움직여진 손이라면 고때 움직여진 고것은 결합이 돼 버렸고 이제 안 움직였으면 그거는 영원한 유황불 구렁텅이로 타 버리게 됐고 이러니까 이 손 하나도 억만분의 일이 주님과 결합된 사람도 있고 백분의 일이 결합된 사람이 있고 십분의 일이 결합된 사람도 있고 십의 십이 결합된 사람도 있을 수 있으리라 하기 때문에 이것이 우리에게 노력이라 그 말이오.
이러니까, 우리의 지금 결혼이라 하는 것은 심신의 육으로 되어 있는 육의 결합이요 육의 결혼인데, 이 결혼이요 결합인데 참 결혼이라 말이 좋습니다. 그 말이 결합보다도 어떻게 좋은지. 그 속에 인격과 인격의 교제의, 교제의 아주 재미 있고 밀접한 그 친교.
이 결합이 있는데, 영의 결합, 영의 결혼은 이 결혼식이 몇 번 있었습니까?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십시오. 영의 결혼은 한 번입니다. 한 번입니다. 그러면, 육체의 결혼은 몇 번이나 있는지? 이제 열 번 있다 하는 사람은 요라면 열 번 아닙니까? 요라면 열 번 되겠지요? 열 번이라는 사람. 육체의 결혼이 한 여남은 번 있다 하는 사람 손들어 봅시다. 그러면 육체의 결혼은 그 결혼식이 수천 번 수만 번 있습니다. 수천 번 수만 번 있습니다. 요걸 여러분들 깨달으십시오. 수천 번 수만 번 있습니다 요걸 믿으십시오. 수천 번 수만 번 있습니다.
있는데 요 결혼식은 언제 됩니까? 이 결혼식이 언제 됐습니까, 고거 아는 사람? 결혼식이 언제 됐소? 손 드십시오. 낮에 됐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낮에? 결혼식이 언제 됐는고 내가 물을 때에. 낮에 됐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손들어 보십시다.
초저녁에 됐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들어 봅시다. 새벽에 됐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들어 봅시다. 한밤중에 됐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들어 봅시다. 할렐루야! 따라 해.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밤중에 됐습니다. 요거 기억하십시오 밤중에 됐습니다.
밤중에, 자기가 말이든지 행동이든지 그 모든 행동에서 주님과 영원한 결합이 되어지는 데는 고 행동이 하고 하고 가는 데서 차차차차 어려움이 오고 어려움이 오고 어려움이 와 가지고 최고의 어려움, 최고의 어려움, 절정인 어려움, 상봉의 어려움, 최고의 어려움의 이 고비 이 고개 최고의 절정인 고게서, 고게서 비로소 주님과 결혼이 됩니다. 결합이 됩니다.
그때 결혼이 어떻게 됩니까? 등불 든 것만이 결혼됐지 등불 안 든 것은 결혼이 못 됩니다. 고때에 깜깜한, 세상은 깜깜한데 빤짝빤짝하게 세상의 어두움을 삼키고 절단내고 있는 빛, 영감의 진리의 빛대로 나타내는, 다니엘이 파사 나라에서, 그 나라에서 다 모두 사자 구덩이에 들어가지 싫어서 다, 하나님의 사람들도 그렇게 굴복했지마는서도 다니엘은 그때에 ‘나는 사자 구덩이에 들어가도 기도 안 하고는 못 견디겠습니다’하니까 그게 다른 사람들에게 ‘이상하다. 저놈 미련한 놈이다.’ 묶어 가지고 넣으면서 `지금이라도 네가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겠다. 한 달 동안 않겠다 하면은 끌러놓을 터이니까 기도 안 하겠다 해라.’ ‘내가 사자 구덩이에 들어가도 나는 하나님에게 기도하는 거는 중단하지 못합니다’ 하니까 저놈 미련한 놈이다 하는 십자가를 졌습니다. 미련한 놈이다.
십자가의 도는 미련한 도다 이랬는데 그 이튿날 새벽에 다리오 왕이 가서 ‘다니엘아’ 이래 부르니까 ‘예, 왕이여 만세수나 하옵소서' 할 때에 그때 빛이 나타났습니다. 빛이 나타났습니다. 그 이튿날 아침에 다니엘을 끌어내 가지고서 다니엘을 몰살할라 하는 모략한 자들을 다 사자 구덩이에 집어 주 넣어 버렸고 다니엘은 총총리로 세우고 온 시민들은 이 다니엘의 하나님을 다 섬겨라, 다니엘을 높여라, 다니엘의 하나님을 거역하는 자는 다 사형을 주고 멸망을 하겠다 이렇게 한 그때가 빛이 나타난 때입니다. 빛은 나타난 때요.
‘나는 기도 하겠습니다’ 하는 고것이 빛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때인데 마지막에 그와 같이, 다니엘의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라고 이렇게 드러낸 고것으로써 다니엘이 하나님에게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안 하겠습니다’ 하는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기도한다는 고 각도로서는 주님하고 결혼이 돼 버렸습니다.
알겠습니까? 그 결혼이 언제 됐느냐? 이제 사자 구덩이에 죽인다는 그런 어려움의 그것이 뭐이냐 하면은 절정이라 밤중이라 그 말이오. 요것이 아니고 결혼은 못 하는 것입니다.
요걸 얼마나 깨달아야 되겠습니까? 이렇게 우리의 구원의 흥망 성쇠가 열 처녀 비유에 있는데 이 열 처녀 비유를 막 도매금으로 ‘다섯 처녀는 구원 얻고 다섯 처녀는 다 멸망 받았다’ 이렇게 말하고 요 내용 사실을 말하는 것은 다 이단이니까 죽여야 된다 하는 이렇게 어두움이 빛을 가루고 있는 이 세대에 여러분들이 빛을 비추어 보고서 이 진리를 굳게 잡지 안하면 다 허사라 그 말이오.
시간이 많이 가서 오후에 증거하겠는데 여러분들, 이 약혼도 좋지마는서도 결혼이라야 참으로 영광이 있고 결혼은 밤중에 됐다. 밤중에 됐는데 밤중에 결혼하는 것은 뭐 여인이 얼굴이 아름답나 키가 적나 화장을 잘 했나 못 했나 그거는 아무 소용없고 등불 들었으면 이제 결혼식에 들어올 수 있고 등불 안 들었으면 쫓겨나갔었기 때문에 그때 밤중에 결혼식 할 때는 등불만이 필요했다 등불만이 필요했는데 등불을 든 것은 등이 등불을, 빛을 나타내지도 못했고 그 등불 가진 그 사람도 소용없고 다만 그때에 등불은 이 기름에게만 모두 주권되어 있다는 요것을 여러분들이 또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등은 기름이 아닙니다. 등은 기름이 아니요 그 등불을 가진 그 사람도, 주인도 기름이 아니요 기름은 따로 있었습니다. 기름은 그릇에 담아 가지고 따로 있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기름만이 빛을 나타내는 원력이 되었고 기름은 등도 아니요 그 등의 주인 사람인 처녀도 아니요, 기름은 처녀도 아니요 기름은 등도 아니요 이 기름만이 빛을 나타냈는데 기름은 딴 것이라 했으니 이 기름이 뭐인가? 성령의 은혜입니다.
이걸 얼마나 깨달아서 지금 우리가 이거 하나만 해도 앞으로, 뭐 이북에서 밀고 내려온다고 쌓고 이 야단을 지기는 이때에 이 말씀을 주님이 원하시고 모든 성도들이여 깨어서 이 결혼식에 지금 참여하고 버림당해서 삼천 궁녀와같이 그 천하고 부끄러운 구원, 불 가운데 구원 얻은 거와같은 이런 구원 얻지 안할라고 이래야 될 건데 이걸 뚱딴지같이 이렇게 다 해석을 꺼꾸로 저버려 가지고 했으니까 얼마나 기가 찰 일인 것입니까? 듣는 자는 복이 있을 거요 또 깨닫는 자는 복이 있을 거요 이걸 무시하는 자는 그는 참 불쌍하고 가련한 자인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기도> 주님, 오늘도 한없는 소망을 우리에게 주신 주님 앞에 감사를 드립니다. 모든 존재와 모든 순서는 이 피조물이 창조주로 더불어 결합이 되어 하나되어 창조주의 모든 것이 피조물의 것이 되고 창조주의 온갖 사랑을 피조물이 다 받고 피조물의 모든 것을 창조주가 다 책임지시는 말할 수 없는 지극히 큰 영광스러운 이 결합, 영광스럽고 존귀한 이 결혼, 측량 못 할 이 영광의 결합 이 사실을 성취하시기 위해서 영원 전 예정하셨고 창조하셨고 보존하셨고 오늘까지 섭리하시고 관리하시고 이렇게 피흘려 구속하신 역사를 이루시는 주님 앞에 감사를 드립니다.
이 사실은 다 무한에 속했고 영원에 속했고 완전에 속했고 영생에 속했사오니 저희들에게 이를 감당할 만한 요소가 하나도 없습니다. 순전히 주님의 대속하신 피의 능력과 피로 말미암은 성령의 능력과 피로 말미암은 진리의 능력이, 없는 가운데서 지으신 능력이 우리를 다시 확장시키고 온전케 하사 이 은혜를 감당할 수 있어 주님의 상대자로서 영원히 주님 모시고 주님의 수족되고 주님이 몸이 되고 주님의 과연 심정이 되어져서 주로 인하여 피조물들에게 영원히 봉사하고 영원히 시은으로 충만케 할 수 있는 저희들의 이 영광스러운 위치를 이루기 위해서 온전히 자기를 부인하고 모든 것을 다 버려 두고 이를 위해서 전심 전력을 기울여 소유도 몸도 생명도 모든 전 생애와 시간을 여기만 투자하는 슬기로운 저희들이 되도록 주여 축복해 주시옵소서. 이를 위해서만 하게 해 주시옵소서. 이는 주님의 사랑으로만 되고 은혜로만 되는 것을 압니다. 피조물이 어떻게 하나님으로 더불어 동거 동행하겠습니까? 이 일을 주님의 열심이 이루시고 변치 않는 주님의 계약이 이를 이루어 주시고 이를 믿는 믿음으로 이룸을 받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많은 형제를 어두움에서 불러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이들은 다 일찍부터 주님의 것으로 지음받은 자들입니다. 주님이 받으시고 주님의 품 안에 나래 안에, 암탉이 병아리를 품듯이 저희들을 품어 주시고 주님의 장중에 잡아 주셔서 이제는 세상이 엿보지도 노리지도 해하지 못하게 하시고 주님이 간섭 아래에서 주님의 은혜 아래에서 주님의 돕는 모든 보호 아래에서 염려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날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성화돼 나가는 이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시고 온 가정에 주님을 호주로 모시고 주님의 은혜 아래에서 사는 저희들이 되고 복종 복종으로만 이 일을 성공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들을 인도하기에 많은 기도와 수고와 눈물을 흘린 사랑하는 종들에게 주님의 그 사랑의 형상을 저희 속에 강하게 굳게 세워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