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07 15:52
열처녀 비유-기름준비
1980. 8. 26. 화새
본문: 마태복음 25:1 - 13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그 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지라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새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와 너희의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저희가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오므로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대답하여 가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이 비유에 기름준비한 처녀는 신랑을 맞이했고 기름준비 아니한 처녀는 신랑을 맞이하지 못했습니다. 이 기름은 하나님과 진리의 힘입니다. 등불에 빛은 하나님과 진리대로한 그것이 빛입니다. 하나님을 나타내는 하나님의 온갖 속성을 나타내는 그 생활에 빛이요, 진리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러면 진리대로 된 언행심사, 진리대로 된 사람, 하나님의 형상대로 된 사람, 진리대로 된 언행심사, 하나님의 언행심사를 그대로 나타내는 세상에 빛인데, 이것이 참 사람의 빛인데 평소에는 하기가 쉽지만 밤중에는 더하기가 어렵습니다.
밤중은 가야 세상이 어두워지는, 아주 세력이 강하게 날뛰는 죄악이 강하게 역사해서, 도무지 진리가 그대로 유지되지를 못하고 모든 사람들이 다 진리를 버리고 또 하나님을 배반하는 그 어려운 때 어려움을 고통스러운 것도 어려움이지만 좋아서 어려운 것도 어려움입니다.
나는 보지를 안했는데 그 주석에 박윤선목사님 주석에 고통스러워 어려운 것은 겨울 추울 때에 부패하는 것과 같다면 좋아서 어려워서 범죄하는 것은 오뉴월과 같다. 오뉴월에 뭣이 잘 썩지 않습니까 상하고 변질되기 쉽다 이것이요. 사람이 어려워서 기독자들의 신앙이 변질되는 것보다 너무 좋아서 신앙이 변질되는 것이 더 많다. 그렇게 비유했다는데 그 비유가 합당하게 비유됐습니다. 그 사람이 좀 어려울 때는 신앙을 그냥 유지해도 그만 너무 좋으면 신앙을 유지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밤중은 그런 것을 다 초월한 아주 극단의 어려움을 보면 조금 어려운 것은 사람이 어려운 것이 올 때에 욕망을 가지고 힘을 더 쓰는 수가 있지만 인간으로서 감당할 수 없는 그런 어려움이 올 때는 평소에 준비하지 안한 인간 유지로 가지고는 다 절단납니다.
그러기에 평소는 어려우면 인간은 다 역항성이 있기 때문에 어려울 때는 더 역항을 해가지고 신앙생활을 해 볼라고 달라드는 그것은 인간 힘이요.
또 좋으면 그만 사람이 낙관시 해가지고 신앙을 배반하기 쉬워. 그런 것도 다 인간의 ( ) 그렇지만 밤중을 말하는 것은 아주 어려워도 아주 어렵고 좋아도 아주 극단으로 좋아. 사람은 그렇게 존귀해지면 아무래도 자기가 하나님과 진리에 대해서 좀 성글어지고 멀어지기 쉽고 실수하기 쉬워 인간만으로서는 이렇게 실수하지 안 할 수 없고 하나님과 진리를 멀리하지 안 할 수 없는 그런 어려움을 가리켜서 밤중이라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여기에 밤중이라는 것은 사람의 힘으로, 사람의 결심으로, 사람의 작정으로, 사람의 그 인격으로, 사람의 힘으로서는 도무지 죄악세상에 하나님의 빛을 나타낼 수 없는 그런 절정시기를 가리켜서 밤중이라 비유했는데 다른 때는 다 신랑을 소망하고 있지만 신랑을 만나서 하나되지는 못했고 그 소망만 하고 있습니다.
그것 모양으로 우리가 평소에 주님을 바라보면서 이렇게 신앙생활하는 이것은 주님을 바라보는 것이요. 사모하는 것이요. 주와 하나되려는 것이요. 이러다가 그 절정시기, 그런 아주 밤중 그 때에 들어서 주님과 우리와 하나가 되느냐 안되느냐 그것이 비유에는 이렇게 되어 있지만 그 기름준비라는 것은 하나님과 진리에 그 도움에 은혜를 받아서 능력을 받아서 그 어려움 그것을 통해서 이 사람이 하나님과 진리와 어느 정도 결합이 되가지고 있느냐? 바라보기만 바라보고 하나님과 그 결합이 되어있지 않느냐. 되어 있느냐하는 그것을 이제 시험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기에는 보면은 그 때 신랑을 만났다 이렇게 되어 있지만, 다른 성경에서 믿음을 시련한다. 믿음을 시험한다. 금을 불에다 구우면 잡것은 다 타고 순금만 남아있고 금뭉치라고 해도 가짜 금은 다 타고 없는 것처럼 그 사람에게 이미있는 믿음을 말합니다. 이미 있는 믿음.
이미 하나님과 어느 정도 결합이 되어있느냐 하는 그것을 나타내는 것이 밤중으로 되어있는데 여기에는 또 신랑을 맞이하는 것이 밤중으로 되어있는 이 비유는 이래되 있지만 다 같은 말입니다.
이러기에 우리는 우리의 생활에 건설되는 것이 우리는 이 피조물로 건설되어, 온전히 피조물로만 되어있던 우리들인데 이것이 실패해서 타락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범죄하기전, 타락하기 전, 그 사람과 같은 사람으로 되어지는 것이 중생이냐? 그러면 그 사람과 다른 것이 중생이냐? 그 사람과 같이 되어지는 것이 중생 되는 것 아닙니다. 중생되는 것은 에덴동산 사람은 타락할 수 있고 범죄할 수가 있지만, 이 중생된 것 다시는 타락할 수가 없고 범죄할 수가 없는 자로 되어지는 것이 중생된자의 중생입니다.
중생과 에덴동산에 산 영이 된 것과는 아주 다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부터 살았고 이 중생된 것은 하나님이 맡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책임을 지시고 하나님이 맡은 이제는 하나님이 책임을 지시고 하나님과 결합이 되어서 다시는 떨어질 수 없는 하나님이 책임지시고 하나님이 맡은 하나님과 결합됐기 때문에, 이것은 피조물이 어떻게 할 수 없는 그런 결합으로, 절대성이 있는 다시는 끊쳐질 수 없는, 다시는 죄를 지을래야 지을 수 없는 그런 결합으로 결합된 그것이 중생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영의 중생도 그러하고 몸의 구속도 그러합니다. 몸의 한 세포 세포, 그 분자 분자, 기능의 고기 덩어리 이것은 다 부활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대속으로 부활하지만 속에 기능이, 그것이 부활하는 것은, 이것은 지금 자기의 현재 현재라는 현실을 통해서 기능이 부활합니다. 이 몸의 부활은 예수님의 재림때에 부활은 합니다.
그런고로 이 기능부활 그것이 곧 기름준비요. 이것이 기능부활이 이것이 곧 기름준비요. 이것이 기능부활이 자기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니라 순전히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 그러기에 우리가 예수님의 대속을 입은 자이니까 법적으로 다 구원을 받은 자이지만 현실을 통해서 자기의 그 심신의 기능이 하나님을 영접하느냐? 하나님을 배반하느냐? 그것입니다.
자기가 현실에서 하나님을 영접하면 곧 하나님과 진리를 자기가 영접하는 것이니까 하나님과 진리를 영접하는 것이니까 하나님과 진리를 영접하는 것은 자기의 심신이 하나님과 진리의 것이 되어지는ㄴ 것이요. 하나님과 진리에게 속하는 것이지. 영접하기는 제가 영접하지만 영접하고 난 다음에는 하나님과 진리의 것이 되니까 다시는 변동을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인간은 인간대로 이지만, 그 인간을 하나님과 진리가 주권하고 소유하고 주장을 해서 하나님에게 소속되어 있는, 하나님과 진리의 구속되. 그 하나님과 진리의 역사, 그 역사가 그것이, 이것이 기름입니다. 하나님과 진리의 능력. 이것이 기름입니다.
그러기에 이 밤중에 등불을 드는 이 빛은, 그것은 하나님과 진리의 능력의 역사가 이 세상에서 나타내는 것을 가르쳐서 빛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러니까 밤중에, 밤중은 인간의 각오로, 인간의 결심으로 인간의 요소로, 인적요소로서는, 인적요소로는 그 빛을 나타낼 수 없는 그런 초인간적인 어려움을 가리켜서 밤중이라 이렇게 여기에 비유한 것입니다.
이러니까 이 밤중에는 그 사람이 아무리 요소가 위대하고 우수하고 구비하고 굳세다해서 천하에 제일되는 사람의 요소를 갖춘 그런 제일 위대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의 힘 가지고는 그 때에 등불을 들지 못하고 빛을 나타내지 못하도록 천하인간의 제일 위대한 요소를 가진 사람이라도 그 사람 그 요소가지고 하나님과 진리대로 움직이는 그 움직임을 할 수 없는 밤중은 인간의 그 힘은 다 세상과 같이 어두워지는 깜깜해지는 그럴 수 있는 그런 인간의 힘을 다 정복하고 능가하는 인간의 힘을 다 제거할 수 있는 그런 시기를 가리켜서 밤중이라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이 밤중에는 빛을 나타내는 하나님의 뜻대로 의를 나타내는, 이 행동을 순전히 이것을 하나님과 진리의 힘으로만 할 수 있지, 인간을 통해서 나타난 것 뿐인지 인간의 힘으로는 안되고 하나님의 힘으로만 되는, 될 수 있는 이런 어려운 시기를 주는 것을 가리켜서 밤중이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또 그것을 인간의 힘으로 된 것은 이곳은 다 절단나고 하나님과 진리의 힘으로만 된 것만 그 때에 유지되도록 그렇게 하나님께서 시험하신다. 그것을 가리켜서 금을 불로 연단하는 것과 같다.
그러면 믿음을 연단하는 것이 이 사람이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순전히 하나님과 진리의 힘으로 살고 있느냐? 자기의 인간결심이나 각오나 그런 것으로서 하고 있느냐 그것을 시험해서 인간의 각오나 인간의 힘으로 된 것은 다 불타버리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마치 금을 불로 연단할 때에 은도 타고 구리쇠도 타고, 놋쇠도 타고, 쇠도 타고, 돌도 타고, 전부 다 타. 보석도 타고 뭐이든 다 타버리. 다만 금만 타지 않고 나머지는 다 타는 아주 그런 뜨거운 불을, 금 외에는 다 탁고 안 타고 견딜 수 없는 다 탈 수 있는 강한 열로, 강한 뜨거움을 가지고 이렇게 연단하면 다 타 버리고 금만 남는 것과 같이하나님과 진리는 완전자시고 영원자시기 때문에 이 분의 힘으로, 이 분의 능력으로, 된 것만 남아 있고 이 분의 능력이 아닌 인적요소로, 뭐 무슨 요소로 된 것 그런 것은 다 제거 되도록 그렇게 한다하는 그것을 가리켜서 금을 불로 연단하는 것과 같은 그 연단을,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을 겪지 않을 수 없고, 여러가지 어려움을 겪지 않을 수 없다 당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왜? 그렇게 안하면 잡 것이 많기 때문에 이것을 다 제거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니까 너희들이 이 시험을 참고 견디면 이것으로서 나중에 칭찬, 영광, 존귀와 관씌움을 받게 되고 잡것은 타게 된다.
여기에서 어려움을 차차 차차 조그마한 어려움에서 강해 이것은 조금씩 어두워지는 것.
해가 지고, 그림자가 오고 , 그림자가 오면 그 다음에 조금 어두워지고 어둡다가 마지막에는 최고 절정으로 어두워지는 밤중처럼, 처음에 조그마한 어려움에서 자기가 있는 줄 알았는데, 믿음이 하나도 없고 또 조금있으면 그 다음에는 그런 어려움을 줄 때 이기면 그 만큼 진리와 영감의 역사가 자기에게 있는 것입니다.
이래서 진리와 영감의 역사가 자기에게 점점 충만해져서 밤중은 온 세상이 다 달라들어서 진리와 영감의 행위를 제거하려고 하는 그런 어려움을 당해도 하나님과 진리로 된 것이기 때문에 그 때에 이런 것들이 해하지 못하고 하나님과 진리로 되지 안한 것은 다 절단난다 이 말이요.
그런고로 이것이 다 밤중시험이 있든지 없든지 상관이 없는데 이 밤중시험이 있는 것, 또 초저녁 시험이 있는 것 이런 것이 왜 이렇게 하나님이 하시는가 하면 우리 자신들이 모르고 있고 또 사람들이 모르고 있기 때문에, 이 사람은 하나님과 진리로 된 요소는 하나도 없고 순전히 인간으로 되어 있는 것인데 인간들이 그것을 모르고 그 사람을 인정을 해서 환영을 하고, 따르고, 하나님과 진리로 된 것은 오히려 인정을 안하고 배척을 하고 이러니까 그 한 사람으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죽는다 그것이요.
이러기에 부득이 어리석어서 옳은 것인지, 진리와 영감으로 된 것인지, 잡탱인지,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바로 식별,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바로 알도록, 보라 저 사람은 가짜다. 이 사람은 이만큼 진짜다. 이 밤중 같은, 모든 온 교회들이 다 넘어져도 이는 넘어지지 않는 참 하나님의 진리로 충만하다.
이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 실상을 알도록 하기 위해서 이렇게 시험하는 일을 아시고, 밤중을 주시고, 또 다른사람만 위할 것이 아니라 본인을 사랑해서 자기가 이렇게 가짜라는 것, 이것을 알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이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시험을 통해 가지고 하나 안하나, 진짜 가짜 그가 하나님을 얼마나 참 숭배하며, 의지하고 바라보는 것, 그것이야 하나님이야 정확하게 아시지만 이대로만 뒤에 무궁세계에 가서 심판합니다.
무궁세계는 그대로만 보존되고 그대로만 있습니다. 있지만 그것을 모르고 이 세상에서 되지 못한 사람이 된 줄 알고 믿음없는 사람이 믿음있는 줄 알고 , 하나님은 같이 안하는데 같이 하는 줄 알고, 저는 된 줄 알고 가는데 나중에 가 보니까 헛일이니까 그 낭파 안됩니까?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면 스스로 저는 부자라, 모든 것이 풍성해서 부족함이 없다. 이렇게 했는데 하나님께서는 너희 가난한 것과 눈 먼것과 가련한 것과 벌거벗은 것을 네가 알지 못한다.
그러기 때문에 현재에 네가 이것을 고쳐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네가 부요해지고,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해지라 말은 그 금은 무엇입니까? 불로 연단해도 없어지지 안 할 그 금으로 네가 부요해져라. 그 금은 여기에 무엇을 상징하는 것이지요. 기름? 그 기름하니까 맞기는 맞았어. 이 금이나 기름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맞기는 맞았는데 그 금은 또 딴 말로 하면 기름은 딴 말로 하면 기름이 뭐이지요.
하나님과 진리의 힘. 하나님과 진리의 능력, 이것이 기름이요 네가 그 것이 금이요.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그 말은 세상이 다 깨뜨려도 깨지지 안할 하나님과 진리의 능력으로 네가 부요해져라 그 말이요. 금을 사서 부요해지고, 흰 옷을 사서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하고 흰옷 사서, 예수님의 사죄, 칭의, 새생명, 네가 예수님의 이 입은 공로를 벗지 안해서, 사죄를 입어 죄없는 자가 되고, 칭의를 입어 의로운 자가 되어 그러면 네가 정말로 사죄, 칭의를 입느냐 이것을 평소에 입고 입고 함으로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제 사죄를 칭의를 입고 새생명 입는 것인데, 예수님의 대속을 전부다 기울여서 만련한 대속을 입는데도 다 기울여야 입어지지. 옷을 입을 수 있습니다.
사서 입는다.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해라. 살라면 무엇 주고 사야 됩니까? 무엇을 주고 사서 입어야 됩니까? 박영록씨 그래 자기주고 사야 다. 자기 좋은 것만 소유 뿐 아니라 지켜주고 사야 됩니다.
자기를 다 주께 기울여야 된다 이것이요. 자기 주고 사야 되.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그 안약은 영감도리인데 영감도리도 자기를 기울여야 그 영감도리가 그 자기를 주장하지. 자기를 다 기울이지 않으면 그것에는 자기만 있으니까 들어가면 싫소 영감도리가 들어가니까 싫소 나는 나대로 하려고 해요. 하는 이 말과 꼭 같은 말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밤 중이나 이 어두움의 시험이 오는 것이 다른 사람이 그 사람을 보고서 가짜 진짜를 구별하도록 해서 다른 사람을 속지 않도록. 왜? 모두다 제가 잘났답니다. 모두다 제가 위대하다요. 모든 세상은 제 자랑하는 자로 가득찼는데, 제 잘난 재미가 가득찼는데.
이러니까 (옳은 )것을 따라야 될 지 모르겠다 이것이요.
이러니까 제 삼자로 하여금 속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진가를 알도록 하기 위해서 그 시험이라는 것이 있는 것이고, 그 사람만 위할 것이 아니라 본인도 자신도 자신이 알도록 하기 위해서 그 시험을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시험을 줄 때에 자기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라고 하는 사람은 자기의 약한 것을 발견하게 되고, 뜻대로 살라고 하는 사람은 약한 것을 발견하게 되고, 이 면이 모자란다. 이 면 모자라는 것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아니하고 자기 욕심대로 사는 자는 시험도 소용없습니다.
자기 욕심대로 사는 자는 이 시험은 하나님의 뜻대로 사나 못 사나 하는 것을 시험하는 것이니까. 자기 욕심대로 사는 것이 자기 목적이요. 자기 욕심대로 사는 그 일 성공하는 것이 자기 성공이기 때문에 그 사람은 죄짓는 것이 자기 목적 달성이기 때문에 자기 욕심 자기 주장대로 하는 것이 성공이기 때문에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시험도 해당도 안 됩니다. 이러니까 그 사람은 그 보면 안다 이것이요. 저 사람은 순전히 사는 것이 하나님의 법도를 떠나서 산다. 환하게 알 수가 있어. 하나님의 법도를 하나님의 법도대로 살라고 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하나님의 법도를 떠나서 사는 것을 환하게 알 수 있지만 떠나가지고 사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그 법도대로 안사는 사람은 모르는 사람이라.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자라야 이 시험도 필요하지 그 외 사람은 시험이 필요가 없어. 공부를 하려고 하는 그런 사람이랴 자기가 그 지식을 배웠는지 안 배웠는지 알지 그 지식을 상관도 안하고, 근방에 가지고 안한 사람이야 그 지식을 배웠는지 안배웠는지 그 뭐 상관할게 있겠소. 이 말 좀 설명이 많아야 할 것인데 갑자기 하니까 모르는 모양이지.
그런고로 결론을 말하면 어떤 결론이냐. 우리가 죽지 않고 영생할 마음의 기능이나 몸의 기능이나 인격의 기능이나, 인격의 힘이나 속성이나 무엇이든지 전부 하나님의 것으로 된 것만 다 영생한다. 하나님의 것으로 된 것만 영생합니다. 지식도 하나님의 지식으로 자기 지식된 그 지식만 영생하지 다른 지식은 다 사망합니다.
그러면 하나님 그 은혜로 된 것만 영생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만 영생한다 그 말은 그 말입니다. 하나님의 공으로 준 것만 받아가지고 영생한다 그 말이요.
공으로 주신 것은 무엇입니까? 값을 낼래야 낼 수 없는 그것이기 때문에 공으로 왔다. 은혜라 그 말은 공으로 받았다 말이요. 공으로 받았다 말은 가치가 없다 말이 아니고, 인간에게는 그 값을 낼 수 있는 대가를 낼 수 없다는 말이요. 인간을 초월한 것을 가리켜서 가치있는 것을 가리켜서 그렇게 말합니다.
공으로 주신 것이니 그것 무엇인가? 하나님의 요소입니다. 신적요소. 하나님의 신적요소에 그 역사를 우리 인적요소속에 넣어서 하나님의 본체가 우리 이 인적요소와 하나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그는 완전자이시기 때문에.
그러나 하나님의 그 요소, 하나님의 각양요소에 그 역사, 하나님의 각양 요소에 역사, 역사가 우리 인적요소속에 들어 와 가지고 역사하는 그 역사가 우리의 생명이요 우리의 주입니다.
우리가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된 것은 하나님의 신적 그 본체, 신적본체가 우리 영하고 이렇게 하나가 되가지고 이렇게 결합된 것 아니고, 하나님의 본체에 역사하시는 그 능력, 그 능력이 우리 인적요소 속에 들어와서 인적요소를 움직이도록 하는 그곳이 우리의 생명이요. 능력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결론으로 말하면 하나님의 것으로만 구원이 이루워 지는 것이고 인간의 것 가지고 우리의 구원 이루어 지는 것 아닙니다.
우리가 구원하려는 것은 다 위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그 재료가 위로부터 온 것이지 땅의 것이 아닙니다. 전부가 하나님의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것으로 된 것만 우리의 구원입니다. 우리가 건설하는 것은 하나님의 것으로 만 건설하지 인간의 것으로 건설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이요.
하나님의 것으로 건설하는데 하나님의 것이 인간의 것 속에 와가지고 주장하고 역사하는 그것이 우리의 구원입니다. 건설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의 것 만을 받아 가지고 우리에게 하나씩 둘씩 건설하는 것이, 이것이 건설구원이기 때문에 이것을 하는 데에는 인적요소 그것이 하나님의 그 신적 그 능력의 요소, 그 요소를 인적요소가 영접해야 됩니다.
영접해야 되고 환영해야 되요. 그것 제가 문을 두드린다 문 열어 달라 그 말이요. 환영해야 된다 말이요. 그러면 환영하면 들어와서 한 번 나를 주장하면 그 부분은 다시 나가지 안합니다. 다시 나가지 안하고 주장하고 왕노릇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다시는 그 인적요소의 기능을 다시는 마귀가 점령을 못합니다.
다시 빼앗기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내주지 안해요. 놓지 안해요. 그것이 승화입니다. 그것이 중생인데 영은 죽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은 하나님이 단속 살렸지만 우리 자체에 있어서 주체는 살아났으니까 그 주체를 통해가지고 소유체인 이 심신과 둘이 합해 가지고 한 몫 공통으로 이제는 다 하나님께 바칩니다. 하나님의 것이 됐습니다. 하나님을 영접합니다. 하나님이 책임져 주십시오. 예수님이 대속하신 이 대속을 입겠습니다. 그렇게 확정을 딱딱 지워 버리면 지운 그 요소는 다시는 하나님이 놓지를 아니하시고 책임졌기 때문에 불변성으로 책임졌기 때문에 다시 놓지 않습니다. 완전성 진실성, 진실성으로 책임졌기 때문에 다시 놓지를 않습니다. 그러면 그 다음에는 악령과 죄악이 와서 그 요소는 침노를 못합니다. 그 검어쥐고 시들지를 못합니다. 그러면 그 부분은 완전 살아납니다. 그 부분은 영생을 가졌습니다.
그러기에 한 분 된 것은 변동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요소만 그렇지 다른 요소는 그런 것 아니라 그 말이요. 그러면 어떤 요소. 자기 현실에 살 때 그 때 동원된 요소. 그 현실에 살 때에 그 때에 동원된 요소, 현실에 살 때에 그 때의 마음의 부분, 마음에 세포, 마음에 분자, 마음에 그 때에 동원된 것이 이것도 자꾸 사람의 말로 말하는 것이니까 그 세포, 마음에 세포, 세포라 하면 잘 알기 때문에 마음의 세포, 마음의 분자, 그 때에 동원되서 이 때에 마귀냐, 악령이냐, 악성이냐. 악습이냐, 물질이냐 무엇이냐 네 요소사 무엇을 영접하려느냐 이 둘이 마구 씨름하다가 네냐 니냐 어디에 속하려냐 그곳이 우리 현실이라 말이요.
여기에 속해야 돼. 하나님에게 속해야 돼. 하나님과 진리에게 속할래 여기 속할래 어느 것이냐 어느 것이냐 마구 두 사이에 대고 지금 갖다가 두 마음이 들어서 어느 것을 취할 것이냐. 이 쪽에서도 지금 감당을 못하고 여기에서도 감당을 못하고 어느 것 취할 것이냐 이런데 강제는 못한다 이것이요. 옛날 마귀와 죄악이 강제했는데 예수님이 그것을 이겨서 점령해놨기 때문에 왕노릇은 못하고 강제만 자꾸하는 것이라. 죄악이 너희속에 왕노릇하지 못하느니라.
로마서 6장에 말씀한 그것이 왕노릇 배앗겼다 말이요. 이것도 강제라 말이요.
지금은 악령과 죄악도 강제하지 못하게 예수님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됐고, 또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의 자유권을 갖다 살리시기 위해서 강제 안하시고 이라니까 요 현실 요 들이 지금 어느것이냐? 이래도 있다 말이요.
그럴때에 평소에는 주여 주여 뭐라고 말해도 그럴 때 착 주님을 배반하고 세상과 자유로 팩 돌아갈 때는 그 때는 주님은 영영히 배척을 당합니다. 영원히, 그 면은 영원한 배척이요. 영원한 배척, 영원한 배척이라.
다시는 만날 기회가 없습니다. 그 요소. 그럴때에 평소에 그가 참 주님을 사랑치 못하고 주여 주여 하지 못했지만 그래된 그 때에 세상과 악령과 악성, 악습, 옛사람 그것이 이 두사람 사이에 있으면서 주여 나는 이런 짓을 부인합니다.
주님을 영접합니다. 척 돌아서, 이것이 영접하는 것이요. 그게서 영원한 결합이요. 그것이 주님을 대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은 자기 현실 그 행동계시가 되어지는 그 현실 주님을 영접하고 배척하는 것이 그것이에서 되어지는 것이지 그 자기가 실행될 순서를 당하지 않고 그 때에 주님을 영접하고 하는 그런 일은 상상적으로는 안됩니다.
이러니까 그 때에 영접했으면 영접한, 그 때에 등용된, 그 때에 참가한, 그 때에 관련된, 그 때에 역사한 자기 인적요소, 그곳은 하나님과 결합이 됐으니까 그것이 1/10000 이든지 1/10이든지,1/1000이든지 동원된 그곳은 하나님과 결합이 됐습니다. 그것은 영생을 얻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됐습니다. 그 요소는 구속이 됐습니다.
그러기에 우리 현실 현실은 주님을 영원한 배척, 주님을 영원한 환영, 주님을 영원한 내 주님, 주님과 나와는 상관이 없는 그 영생, 영원한 사망, 이 둘 중에 하나가 이루어지는 이렇게 중요한 현실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이 현실에 둘은 이렇게 평가하는 그 때 평가가 중요하다 그 말은 그 때 평가가 그것이 중요해. 송목사님이 평가하는데 대해서 많이 말했어. 그 때에 그것이 중요해. 그 자기가 깨달아 느낀 것이라. 깨달아 느끼고 그것이 말해. 그러니까 자기가 실감을 가지고 말하는 것이라. 자기가 생활해 서로 체험하고 말하는 것이 표가 나. 실행없는 말 소용없고. 실행없는 말이 소용없습니다.
그럴 때에 그 평가하는 것이 그것이 중요합니다. 그럴때에 이것이냐 저것이냐 생각하면 되는데 그만 생각을 안하니 미끄러져 버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언제든지 주님을 생각하는 자꾸 이것을 연습을 해서 그만 습관화된 것처럼 어디든지 주님만 생각하고 하는 것 없고 어디든지 주님 생각이 자기에게 꽉 와가지고 주님 생각하는 것이 그 현실을 억압할 만큼 주님 생각하는 것을 그 때 버릴래야 버릴 수 없는, 너무 똑똑하고 안면에 환해서 주님을 버릴래야 버릴 수 없고 안시를 안 당할 수 없을 만큼 자기에게 주님이 확실해진 그것이 자기가 주님과 가까워진 것이요. 그 빛이 자기를 비추고 있는 것이요. 그것이 막 바로 영감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 옛사람과 새사람 그것을 좀 증거하려고 했는데 거기까지 도달하지 못하고 서론하다가 말았습니다. 여러분들이 깍 기억하고 놓지 않고 있으면 그 서론을 말할 것이 없는데. 그것을 놓았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또 그것을 서론을 하려하니까 감당 못하지 못하지 그렇다 이것입니다.
그만 그 서론을 알고 있는지 모르고 있는지 그 어떻게 압니까? 나는 모르는데 주님은 알아. 모르고 있으니까 그 말하면.
그러니까 서론을 짜서 올라가니까 잊어버리면 안 돼.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그 생각하고 지켜 행하라 이랬습니다. 들은 것은 자꾸 생각해야 됩니다. 들은 것은 생각을 떠나지 안해야 되요. 그 받은 그것은, 권능을 받은 것을 말하는데 받은 것은 그 권능가지고 행해야되. 권능은 행해야 권능이 떠나지 않고 진리는 생각해야 떠나지 않아요. 배운 진리는 생각을 해야 떠나지 않고 권능은 써야 떠나지 않아요.
이러니까 권능을 안 쓰면 떠나고 진리는 안 생각하면 떠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초대교회 네가 살았다는 이름은 있으나 실상은 죽었다.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행하라 고 말했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예수믿는 사람은 마음을 주님과 주님의 도에 기울여야 옥토지. 마음을 다른데 기울이다가 일시 쓰일 때만 그 때만 기울려가지고 그런 고급사람은 하나님에게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 잘난 사람은 필요가 없습니다. 있는 것을 다 기울이는 사람이 필요있지. 그러기 때문에 예수믿는 것은 다 잘난 사람들이 다 못났어.
잘난 사람으로 예수안에 잘난 사람들은 참 숫자가 드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