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07 14:32
연보제도
1982. 5. 28. 금새
본문:에베소서 1장 19절~23절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우리는 지금 어떤 일을 하는 때인고 하니 죽는 일과 살아나는 일과 지위를, 지위를 마련하는 일과 정사, 이런 정권을 잡는 일과 능력과 주관하는 이런 실력을 우리가 마련하는 것이 지금입니다. 또 모든 피조물을 우리를 기뻐 즐거워하면서 환영하고 우리에게 잘 순복하도록 하는 이런 관계를 지금 마련하고 있는 때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죽는 성공을 해야 되고, 죽는 것은 이것은 세상 말로 한 말입니다. 하나님과 떨어지는 것이 실상은 죽는 것인데 세상 말로는 없어지는 것을 죽는다, 적어지는 것을 죽는다, 망하는 것을 죽는다, 지는 것을 죽는다 그렇게 말합니다. 그 사업이 지금 죽어가더라, 그 명예가 죽어가더라, 그의 권위가 죽어가더라. 우리가 영면으로 죽어서는 안됩니다.
실은 하나님과 떨어지는 것이 죽음인데 이 죽음 말고 세상의 자기 형편이 지금보다 좀 점점 못해져가면 그것은 죽어져가는 것이요, 또 많던 것이 적어가면, 있던 것이 없어져가면 죽어져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죽는 성공을 지금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없어질 때는 잘 없어져야 되겠고, 낮아져야 될 때는 잘 낮아져야 되겠고, 또 져야 할 때는 잘 져야 하겠고, 손해를 봐야 할 때는 손해를 잘 봐야 하겠고, 또 맞아야 될 때는 잘 맞아야 되겠고, 옥에 갇혀야 될 때는 또 잘 갇혀야 되겠고, 사형을 받아야 될 때는 사형을 잘 받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죽는 성공을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죽는 성공을 잘 해야 됩니다. 이것도 지극히 큰 능력이 아니면 죽음의 성공을 못 합니다. 예수님도-20절에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러면 죽으신 일을,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셔 가지고 죽으신 일을 먼저 성공했습니다. 십자가에 못박혀 죽는 일을 잘해서 참 완전한 가치있는 이런 승리의 죽음을 하셨기 때문에 그다음에 부활이 필요있지 죽으셔야 할 그런 기회에 한 번만 안 죽었어도 큰일났습니다. 다 헛일입니다.
우리가 죽는 일 이 일을 잘해서 성공해야 되겠고, 또 사는 일 이 일을 우리가 하고 있습니다. 사는 일은 하나님과 연결되어서 새생명으로 사는 것, 의로 사는 것, 거룩으로 사는 것, 성결로 사는 것, 사랑으로 사는 것.
어떤 사람은 껍데기는 죽으면서 속으로는 삽니다. 토마스 목사가 우리나라에 처음 선교사로 파송돼 가지고 왔을 때에 상륙을 해 가지고 복음을 전하려 하니까 모조리 다 죽여 버리고, 성경책도 가져온 것을 다 물에 침몰시켜 버렸고 이랬는데, 그 토마스 목사를 마지막에 죽일려고 하니까 성경 한 권을 가지고 무릎을 꿇고 기쁨과 반가운 사랑의 웃음을 가지고 말하기를 ‘이거 한 권만 받아서 전하고 나를 죽여달라’ 하는 거기에 감동을 받아서 그 사람이 그 책을 받고 도끼로 쪼아 죽였는데, 겉은 죽는 일을 잘 했습니다. 죽는 일을 성공했습니다. 속에 알맹이는 사랑의 성공을 했습니다. 그는 죽었으나 순전히 사랑으로 죽었습니다.
우리나라에 사람을 구원하고자 하는 사랑에서 죽었습니다. 겉은 죽었고, 그는 참으로 그의 인격이나 심신의 기능이나 모든 것은 영생으로 완전히 단번에 살아났습니다. 완전히 단번에 살아났고, 죽는 성공도 했고, 살아나는 성공도 했고, 영생으로 이루는 사는 성공도 했고, 또 그는 지위를 마련했습니다. 주님을 따라서 복음을 위해서 이런 행사로 하늘나라에 영원한 지위도 마련했고 또 우리 이 민족은 그가 다스리게 됩니다. 하늘나라 가면 그를 제일 조상으로 모시고 그에게 다스림을 받아야 할 것이고 그에게 소속할 것입니다.
이러니까 반사 노릇을 하는 사람들은 자기로 통하여 그가 구원얻은 사람은 그의 믿음의 조상입니다. 그는 그이의 줄기에 붙었습니다. 계통에 붙었습니다. 그를 통하여서, 호박 줄기를 통해서 큰 호박도 열고 작은 호박도 여는 것처럼 그 계통이 있는데 우리나라에 제일 먼저 선교한 토마스 목사의 그 계통에 속해 가지고 우리가 영원히 하나님을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지금 무궁세계의 정사를 우리가 점령하고 있습니다. 하늘나라에 가서 어느 정도, 어느 범위의 정사를 할 건가? 다스릴 건가? 어느 범위로 다스릴 건가? 또 몇 종류로 다스릴 건가? 그것이 지금 결정됩니다. 정사, 권세, 능력도, 주관하는 것도 지금 마련돼야 됩니다.
이것은 예수님도 그 능력, 하나님의 능력 가지고 이 일이 성공됐습니다. 그러면 우리도 이 능력이 아니면 안됩니다. 이 능력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와 있는데, 이 능력이 우리에게 와 있는데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하심을 입었다’ 했습니다. 이 능력이 우리에게 와 있습니다.
있는데 이 능력이 역사는 어떻게 하면 역사하느냐? 우리가 믿을 때에 이 능력이 역사합니다. 믿을 때에 역사합니다. 믿을 때에 역사한다 말은 인정하고 실행할 때에, 인정하기가 힘듭니다. 인정하는 것이 내 주관과 인간 법칙과 하나님의 인도가 다르기 때문에 참 하나님의 인도를 부인하기가 쉽지 인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인정할려고 하면 자기와 세상을 부인해야 인정하게 됩니다. 인정할 때에 그 능력이 역사할 수가 있고, 또 인정하고 그대로 실행하려 하면 이건 십자가 길입니다. 그대로 실행하려 하면 죽는 길이라, 망하는 길이라, 절단나는 길이라.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실행하는 사람은 그 능력이 역사할 수가 있습니다. 인정하고 실행할 때에 그 능력이 역사할 수가 있지 인정하지 않고 실행을 안 하면 지극히 큰 능력이 우리 속에 와 있지마는 역사하지를 못합니다. 법이 우리가 인정하고 인도대로 실행을 할 때에 그 능력이 역사합니다.
우리 믿는 사람이 왜 힘을 못 얻느냐? 인정과 실행이 없는 연고입니다. 왜 기쁨이 없느냐? 인정과 실행이 없는 연고입니다. 왜 그 사람에게 평안이 없느냐? 인정과 실행이 없는 연고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행복은 세상을 다 이기고 남을 수 있는 이런 참 생명과 평강과 기쁨이 넘치는 것인데 이것이 우리 속에 점점 말라지고 쇠해지고 낡아지고 이것이 없어지는 것은 뭐이냐? 인정과 실행이 없는 연고입니다.
그러기에 주님 안에 있는 온갖 건설구원을 이루는 이 행복을 갖추는 데에는 인정과 실행 외에는 딴 것이 없습니다. 믿는 사람은, 자기가 돈 없는 사람은 돈 가지면 기쁠 줄 알지만, 편안할 줄 알지만 아닙니다. 또 공산주의가 올 터인데 피해 가면 평안할까? 아니 평안 없습니다.
그저 어디서든지 기독자는 천인 만인이 내 곁에서 엎드러지는 그 자리라도 인정과 실행있는 그 구멍에서 평강과 기쁨과 담력과 성공이 나오는 것입니다.
점점 죄악이 관영하고 주님의 재림도 가까왔고 환란도 가까왔고 가까올수록 우리는 주의 일을 열심히 하다 가야 됩니다.
예를 들어서, 만일 주님의 재림이 보이면, 징조가 아주 급하게 공중에 이상함이 보이면 ‘아, 이제 주님의 재림이니까 손 놓고 맞이하자.’ 아닙니다. 일을 하다 맞이합니다. 재림이 오면, 재림 되면 주를 위한 일 못할 터이니까 재림이 오는 그 천사의 나팔 소리를 들을수록 내가 주님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있으면 날 놓지 아니하고, 빠치지 않고 나를 데리고 가실 터이니까, 가면 세상에서 주를 위한 일은 다시 못합니다. 주를 위하는 일은 종자적으로 마련은 세상에서밖에 못합니다. 이러니까 오라 할수록 빨리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자기가 그날 일과를 맡았습니다. ‘너는 오늘 이거 뭣뭣을 해라’ 했는데, 다 되어가는데 조금 남았습니다. 조금 남았으면, 이제 퇴근할 시간 됐다 퇴근 종이 치면 ‘아, 퇴근 종 친다.’ 손 놓겠습니까? 퇴근 종이 나니 조금 남은 것을, 시간 되면 다른 사람 들어오기 때문에 나가야 되니까 들어오기 전에 할려고 남은 것을 부지런히 할려고 바쁘게 날뛰겠습니까 손을 놓겠습니까? ○○○씨, 바쁘게 날뛰지? 이와 마찬가지로 그만 주님 오시면 우리는 주를 위한 이 수고의 일도 다시는 영원히 못한다 말이오. 이러니까 주님의 재림의 징조가 보일수록, 또 무슨 전쟁이나, 이전에 6·25 같은 그런 전쟁이나 이런 그런 일이 생겨지면 어찌 됩니까? 그 일 생겨지면 그때 내가 죽을런지 살런지 모르기 때문에 빨리 빨리 할일 하다가, 예배당 짓는 일을 하면, 이런 일일수록, 만일 6·25때와 같이 지금 남침한다 하면 ‘아이구, 뭐 지금 예배당 지어 봤자 거석할 것 뭐 있느냐? 예배당 놔 두고 가자.’ 나는 그런 주의 아닙니다. 성경이 그런 주의 아닙니다.
‘이러니까 다문 기초 하나라도 더 해 놓고 가자. 철근 하나라도 더 묶고 가자.’ 하다가, 주를 위하는 일인 걸 이걸 분명히 아니까, 하다가 인민군 오면 우리는 성전 짓다가 만날 것이고 또 하나님께서 못 오게 하시면 오거나 말거나 성전 짓다가 피난하고 그것 때문에 피동되는 일을 하지 아니하고 우리에게 맡겨 주신 그 일을 충성하는 이것이 우리의 지혜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아주 영원 무궁세계에서 살 죽는 성공, 사는 성공, 또 아버지 우편에 위치를 마련하는 것, 정사와 권세와 모든 주관하는 이 세력을 지금 마련해야 됩니다. 이거는 주님의 능력이 아니면 안됩니다. 주님의 능력만 가지고 됩니다.
사람이 하는 것같이 보이지마는 그거는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짓는 일이요 모래 위에 지은 집이요, 사람이 하는 것 같은 집, 보이는 그 속에 뭐이 들었느냐? 지극히 큰 능력의 역사로 만들어진 이것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 능력이 역사하는 데에는 그분을 인정하고, 그분의 인도를 인정하고 그대로 내가 실행할려고 나만 다 바치면 지극히 큰 능력이 그 속에 와 가지고 역사해서 이루어집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마지막이 됐기 때문에 그 능력을 인정하고 실행하는 것이 아주 급급하고 아주 수입이 몽탕몽탕 되는 시기입니다. 언제나 믿음이 필요하지마는, 믿음은 인정과 실행인데 지금 가장 필요한 때입니다.
탑을 쌓으면 탑 밑에 있는 공사와 탑 꼭대기 한 그 꼭대기 하나와 값은 같습니다. 꼭대기는 제일 보배로운 것 가지고 하기 때문에 그 가치가 전 탑의 몸둥이 가치만하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이제까지 6천년동안 나온 그 가치나 말세지말에 하나님 앞에서 영광을 돌리는 이 가치가 거의 중량이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