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보

 

1984. 11. 4. 주일오후

 

본문 : 마태복음 5장 13절∼16절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우리 기독자들은 불택자와 사람이 다릅니다. 근본 하나님의 예정에서 다르고  창조에서 다르나 세상에서 출생해 가지고 살 때에 중생되기 전까지는 하나님의  간섭은 다르지마는 외모로 볼 때는 별 차이가 없는 거같이 그렇게 보여집니다.

불택자의 생활과 같은 생활로서 형통할 수도 있고 또 그 생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단 중생되고 난 다음부터는 다릅니다.

 사람들이 좀 심령이 어두워서 그것을 잘 분해하지 못하면서 불택자나 택자가  중생되기 전에는 생활이 거의 같다 이렇게 말하지마는 실은 판이합니다.

택자들이 중생되기 이전 세상에서 산 생활도 자기가 중생된 이후에 과거 믿기 전  모든 생애를 세밀히 추억해 가지고 생각해 보면 그 생활이 믿은 후의 생활을  위해서 준비적인 모든 구비 행위가 아닌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그 심령이 밝아지고 난 다음에는 자기가 믿기 전 오고 가고  이것 저것 모두 듣고 보고 접한 그 모든 것이 신앙생활을 시작하고 보니까  신앙생활을 위해서 하나님이 그렇게 세밀히 간섭하신 그 간섭 아래에 살았다  하는 것을 사람들이 다 간증을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믿는 사람 가운네도 마귀가 보내 가지고 불택자가 믿는 사람을  유혹시키기 위해서 '봐라, 마구잽이로 이래 살아도 잘 된다' 이래 가지고 믿는  사람들이 그거 보고 '아무 것이는 교회 다니도 그래 살아도 잘되는데' 그거 믿는  사람들을 넘어뜨리게 하기 위해서 마귀의 일군으로 보내 가지고 온 사람들도  있지마는 그것은 다 보면 압니다.

 알고,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는 누구든지 불택자와의 생활은 아주 다릅니다.

마치 물에 있는 물벌레들이 물에서 살아서 자라 가지고 부활을 하는 것이 많은데  그 일단 부화되고 난 다음에는 옛날 물에서 자랐던 그 자리에 들어 가면  죽습니다. 부화하고 난 다음에는 부화한 그 곤충이 사는 그 위치에서 그  방편으로 살아야 되지 옛날 물벌레로 살던 그 방편을 가지고는 못 사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다 일반 계시로 우리에게 구원을 알려 주기 위해서 그런 것이 다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이 가르쳐 주는 것을 특별히 가르쳐 준다고 특별  계시라. 모든 하나님의 창조와 만물과 하나님의 섭러와 인간들의 마음이 천태  만상으로 변동되고 다 되어 있는 그 구조들 이런 것이 기독자의 구원을 가르치고  있다. 거기에서 그걸 보고 참고로서 삼으면은 구원 도리를 잘 알 수 있다 그런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아예 믿는 사람의 생활과 믿지 않는 사람의 생활은 전혀  다르다 하는 요것을 언제든지 명심하지 안하면 우리는 실패하기 쉽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래 쌓으니 나도 네가 믿는 사람이냐 안 믿는 사람이냐? 안 믿는  사람은 그래 살아도 믿는 사람 너는 그래 못 산다 하는 그것입니다.

 여기에 소금 비유에 대해서는 소금 비유에 대해서는 그 뒤에 끝에 그래 말해  놨습니다. '소금이 맛을 잃으면 쓸데없어' 첫째 쓸 데가 없고 '밝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힌다' 그 세 가지 말했습니다.

 소금이 맛을 잃으면 이 세 가지로 멸망을 받고 소금이 맛을 잃지 아니하고  소금의 제 본질과 본성의 가치를 행하게 되면 이 세 가지로 멸망하는 반대로 이  세 가지로 존귀해진다. 그러면, 쓸데없는 것의 반대인 쓸모 있는 자가 된다.

어데든지 하나님에게도 쓸모 있고 인간에게도 쓸모 있고 모든 피조물들에게도  쓸모 있고 어데든지 심지어는 짐승에게도 쓸모 있고 이런 뭐 초목에게도 쓸모  있고 어데든지 쓸모 있습니다. 우리는 이 초목 한 포기에게도 영원히 우리는  쓸모 있는 자가 되어서 그들이 우리 아니면 유지도 못 하고 새로운 은혜도 받지  못하는 복의 기관이 되어 있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와의 중보자요 교회의 중보자요 교회는 예수님과 모든 피조물과의  그 중보로 되어 있는 것이 교회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맛을 지닌 참 좋은  소금이 되면 가장 쓸모 있는 존재로 점점 승격화 된다. 가장 쓸모 있는게  되어진다. 그러면 쓸모는 죄악에는 쓸모가 없지요. 죄악에는 쓸모가 없지마는 죄  아닌데는 전부 쓸모가 있습니다. 죄 아닌 데에는 안 믿는 사람들도 죄에 대한  것도 있고 의에 대한 것도 있는데 어데든지 쓸모 있는 것이 된다. 쓸데없는 것  반대 쓸데 있는 거 된다. 밖에 버리는 것 반대로 안으로 영접함을 받게 된다,  안이라면 모든 성도 안에, 교회 안에. 그 다음에는 하나님 안에 모든 만물들의  그 중앙 안에 영접함을 받아 밟히는 것 반대로 존대함을 받는다.

 요 말씀이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안하는 말씀이지마는 우리 믿는 사람들이 요  말씀을 믿지 못하는 데서 낱낱이 천해졌습니다. 낱낱이 다 쓸모 없는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면, 소금은 그 간을-비유입니다. 간으로 말했는데 이것은 무엇을 간을  가르친 것이냐?  기독자는 세 가지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의 것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의 대속의 것이 됐습니다. 대속의 것입니다. 안에도  대속으로 가득, 밖에도 대속으로 가득 완전히 대속화 됐습니다. 죄 없는  뭉텅이가 우리요, 죄를 지을 수 없는 뭉텅이가 우리요, 하나님에게만 순종하고  복종해서 그분에게 피동되는 피동으로만 사는 그 뭉치가 우리입니다. 또  하나님과 대립되지 안하고 하나님과 함께 연결돼서 하나님과 연결되어서 사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이 셋으로 연결을 되기 위해서 성령이 이것 때문에 왔습니다. 성령이 우리를  사죄의 것이 되도록 역사하기 위해서 칭의의 것 되도록 역사하기 위해서.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친의 것이 되도록 역사하시기 위해서 성령이 오셨고, 또  진리도 이것 때문에 보냈습니다. 진리와 성령은 예수님의 대속을 우리에게  연결시켜서 예수님의 대속을 우리가 입어 차차 입어서 예수님의 대속의 것이  완전히 되도록 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소금의 간으로  비유했습니다.

 그러면, 아무리 소금이라 할지라도 소금 뭉텅이가 크든지 작든지 이 소금  뭉텅이와 이 소금 뭉텅이가 혀를 대어서 짜와집니다. 혀를 대어서 짜와지면  짜와지는 것만침은 이 뭉텅이가 녹았습니다. 녹지 안하고는 그 간이 나오지  안합니다. 녹지 안하고는 간이 안 나옵니다. 녹아야만 간이 나옵니다.

 그와 같이 우리들이 이 세 가지로서 녹아지면 이 세 가지로 없어지면 그  희생이란 말을 그것을 쓰는 건 세상의 소금이기 때문에 세상을 위해서 우리가  있다 하는 이것을 알리기 위해서 희생이란 말을 거기에다가서 이번 공과에  말했는데, 그걸 그렇게만 알고 보면. 그 희생이란 말을 고쳐야 됩니다. 희생이라  하는 것은 남을 위해서 희생하는게 희생하는 건데 이것은 자기 구원을 이루는  것이요 남의 구원을 이루는 것이요 그러기 때문에 이 것은 다시 말하면 자기  생활입니다. 자기 생활.

 그러기에, 우리는 누구든지, 요새는 뭐 모두 장수법이 많이 나와 가지고  사람들이 좀 수명이 좀 길어지는 것같이 그렇게 보여집니다. 길어도 길다 해도  이백 년 안쪽에는 다 없어집니다. 뭐 그거 없어지는 데는 병들어 없어지는 거.

늙어 없어지는 거, 맞아서 없어지는 거, 차에 치어서 없어지는 거, 또 뭐 독약  먹고 상해서 없어지는 거 어쨌든지 없어지기는 없어집니다. 없어지는데 이래도  저래도 인생이라 하는 것은 나면은 죽는 것은 필연한 것입니다. 없어지는 건  필연합니다.

 이런데,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 그 말은 우리가 세상에서 없어지되 만일 그  사람이 십 년을 살 사람이라고 하면은 십 년을 사는데 돈 때문에 없어지는  돈으로 없어지는 거, 권세로 없어지는 거 행락으로 없어지는 거 뭐 이것 저것  여러 가지로 없어지는 것이 질이 달라서 세상에는 뭐 천가지 만 가지 질도 더  됩니다. 이런 것 저런 것으로서 자기는 한 시간 정력이 없어졌고 하루의 수명이  이제 지나가고 이렇게 어떻게 하든지 정한 시간이 있기 때문에 정한 시간까지는  없어지기는 없어집니다. 없어지는데, 네가 만일 맛 잃지 안하고 진리로  없어지면, 네가 진리로 살므로 진리 때문에 맞아 죽어서 없어지는 것만 아니라  진리로 오늘 종일 진리로 살아서 하루 진리 생활로 하루를 지내갔으면 네 수명이  그만침 단축해졌으면 진리 생활로, 또 영감 생활로 영감의 네 마음, 영감의 네  정신, 진리의 네 정신 이래서 네가 진리가 돼 가지고 너는 진리가 아니지마는  진리로 감동되어서 진리의 것이 돼 가지고서 진리 생활로 진리로 말하고, 진리로  듣고, 진리로 웃고. 진리로 성내고, 진리로 일하고 네가 진리로 영감으로  예수님의 세 가지 대속을 받은 이 대속으로 네가 하루가 없어졌으면 그것은  하나님과 모든 피조물들에게 아주 중요하게 요긴하게 영원히 쓰일 수 있는 아주  중요한 그런 참 필요의 것이 네가 됐다 또 너는 껍데기 아니고 알맹이, 알맹이,  제일 알맹이, 제일 알맹이 거기에서 너를 영접할 수 있는 그런 존귀한 자가  되어졌다. 또 너거 밖에 있는 모든 존재들이 다 밖에 있는 자들이 발로 질근질근  밟는데 밖에 있는 네 밖에 있는 이방인. 모든 피조물. 모든 만물이 다 너를  존귀히 여긴다, 대우한다 하는 그것입니다.

 이게 하나님의 계약인데, 우리 믿는 사람들이 왜 천해지느냐? 이 소금 생활할라  하니까 여기 인제 희생이라는 말 빼 버립시다. 희생이라 하니까 꼭 남을 위하는  것같이 돼서 오해를 가지고 있다 말이오. 그게 제 생활이요, 희생은 무슨 희생,  그게 제 생활인데.

 사람들이 '이 진리로 살면 내가 버림당하겠다. 그까짓 거 인간에게 버림당하면  하나님께 쓰임 당하지. 내가 진리로 살다가는 이 세상에서 버림 당하겠다 진리로  살다가는 남편에게 버림당하겠다, 이 진리로 살다가는 이 아내에게  버림당하겠다. 이 진리로 살다가는 이 직장에서 버림 당하겠다 진리로 살다가는  이 정권에게 버림당하겠다, 진리로 살아가는 이 사회에 버림당하겠다.'  버림당하면, 하나님 말씀은 네가 진리로 살면 하나님과 피조물들에게 가장 쓸모  있는 존재가 된다고 이렇게 됐는데 하나님 말씀은 그랬는데, 네가 이렇게  진리대로 살고 영감대로 살고 주님의 대속에 죄짓지 안하고 무죄자로 칭의로  의롭게 하나님으로 더불어 연결 돼서 살라고 하면은 버림당한다고 하는 그거  누가 그라노? 누가 버린다고 말하노? 누가 그렇게 말하노? 만물보다 거짓될 뿐만  아니라 너를 죽인 너 아닌 원수 옛사람 네 주관이 말하고 있는 거 아니냐? 이거  너를 죽일라 하는 옛사람 너 원수인 줄 모르느냐? 그 놈이 하지.

 널 위해서 십자가에 대속의 공로를 베푸신 하나님은 이라면 쓸모 있는 자 된다  점점 중앙으로 기어 들어간다, 점점 존귀한 자리로 점점 중심으로 기어 들어가게  된다, 모든데 밟히는 거 반대데 어깨에 메고 돌아 다닌다 머리에 이고 돌아다닐  것이다. 이게 하나님 말씀이오. 그러면, 하나님 말씀을 들어야 되겠습니까  누구의 말을 들어야 되겠습니까?  우리가 현실에서 버림당할까 쓸데없는 인간될까, 천대받을까 이래 가지고 이 세  가지 우리의 본질과 본성 우리의 속성이요 우리의 인격성이요 우리의 생명이요  우리의 교리와 신조인데 이것을 현실에 만나 가지고 이 세 가지가 겁이 나서  맛을 변해야 쓸데없고 버림당하고 사람에게 밟힌다고 이렇게 말했지 이 맛이  변해야 그렇게 된다고 했지,  진리를 버리고 네가 무엇을 지위나 권세나 상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진리를  버리고 네 양심 속에서 성신의 감화라는 그 감화를 버리고, 우리가 둔해서 우리  이성 비판이라면 그 이성은 대단히 똑똑한 줄 알지마는 이성 그것도 바보요  양심은 그렇게 똑똑한 줄 압니까? 양심 그것도 바보 노릇할 때 많습니다.

양심보다 이성보다 우리 신경이 이게 더 잘할 때 있어 신경 이거는 아무것도  모르는 겁니다. 모르지마는 이성으로 비판해도 이게 그르다 옳다 판정을  못하겠고 양심으로 비판해도 판정을 못 하겠는데 우리에게 있는 신경이 어쩐지  께꾸름하이 무엇인지 모르게 불쾌해집니다. 그라다가 고것을 딱 고쳐 버리면  우리 신경이 깨운해집니다. 어떨 때는 피부가 이성보다 양심보다 더 명철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 기독자들이 쓸모 없는 쓸모 없는 자가 되는 것은 하나님은 이 세  가지를 버리면 쓸모 없는 자 된다 했는데 세상이 있다가서 '네가 세 가지 그거  가지다가는 네가 쓸모 없는 인간 된다' 이러니까 하나님 말씀보다도 이 세상  말을 더 많이 듣고 '세상에 쓸모 있는 자 된다' 하는 그 말 따라서 그대로 가고.

하나님이 세 가지 버리면 쓸모 없는 자 된다는 그 거는 듣지 안하고 세 가지  버리면 쓸모 있을 줄 알고 세 가지 버린 자가 회사에서도 점점 기어 내려갔고  정계에서도 점점 더 내려갔고,  내가 어떤 사람 하나 있는데 그 사람 나는 크게 소망을 가졌습니다. 소망을  가져서 '저게 뭐 어리지마는 저걸 키워 가지고 뭘 좀 희망을 볼까?' 이랬는데  안일성 그만 소금 버려 버리고 이 인간들 사회 좋은 사회 좋은 여론 그런데  따라서 움직이기 때문에 그래 내가 그 밑에 일하던 사람 직접 고 밑에 바로고  밑에 수족으로 일하는 사람이 언제 와서 나한테 왔기 때문에 '틀렸다.' 나한테  오면 뭐 옹호 받고 뭐 찬동 받을까 싶어 왔는데 틀렸다. 소금이 맛을 잃었으니  틀렸다. 안 된다. 절대 안 된다. 회개하면 오고 회개하기 전에는 절대 안 된다.

단언을 하니까 그 사람이 와 가지고서 거기 그때는 한창 전성기입니다.

전성기인데 그랬더니마는 그 사람이 내나 우리 교회 교인인데 우리 교회 있던  교인이 그 사람이 나한테 왔어요. 그라니까 비쭉 비쭉 거리면서 날 뭐라 하는게  아니라 '아, 저 목사님 그 안질을 보니까 그 눈에 안력이 흐렸습니다. 흐려서 곧  죽겠다 그 말이오 흐렸습니다.' '내야 죽어도 괜찮은데 너도 좀 바로 속해  가지고 바로 살아라. 헛일이다. 소금이 맛을 변했는데 그게 되나? 하나님의  계약에 위반됐는데 됐나?' 이랬더니마는 비쭉거리고 무엇이라도 지금 자랑할라고  왔습니다. 이렇고 이렇고 이런데 자랑하러 왔는데 안일성 그라고 난 다음에 그저  몇 달 안 가서 폭 내려가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변치 않습니다. 자기가 세상에서 어데 좀 유력하게 등용되기  위해서 자기가 점점 존귀한 자리로 점점 중앙으로 보다 나은 자리로 이렇게  영접함을 받기 위해서 또 사람들에게 존대함을 받고 천대받지 않기 위해서  소금의 맛을 잃은 자, 진리를 버리고 양보한 자. 영감을 양보 한 자. 예수님의  세 가지 대속의 공로를 양보한 자 다 천해졌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나라는 너무 소국이라 이렇게 변동이 많은나라인데 변동 많은데 구경할 거  좋다 말이오. 구경할 거 많애. 예수 믿기는 한국 같이 좋은 나라가 없습니다.

이렇게 조석으로 변해지기 때문에. 커다란 대국 미국 나라 같은 나라야 뭐 삼백  년이나 지나가도 변동 없이 그대로 쭉 가니까 거기에서는 구경 못 할 거 삼백 년  가도 구경 못 할 거 우리는 일 년 만이면 구경 다 합니다.

 소금이 맛 잃으면 쓸데없어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힌다. 소금이 맛을 가지면  쓸모 있어 점점 '야 안으로 들어 오너라, 들어오너라. 데리고 오너라.' 자꾸  중앙으로 끌어 들입니다. 이래 가지고 높이 올린다. 간이 뭐인데? 소금이 뭐인데  진리, 영감, 주님의 세 가지 대속, '저 미련하게 아 여기에서야 어데라고 지금  여기에서 어데라고 어데라고 이 자리에서 지리니 영감이니 예수님의 대속의  사죄니 칭의니 그런 것 갖다 퀘퀘 묵은 소리를 하고 있나? 여기에 어디라고 지금  여기 세계가 지금 얼른 얼른 하는 이 큰 높은 자리인데' 그렇게 보이지만 그  사람이 소경이요, 그래서 땅에 있는 인간입니다. 인간입니다. 한말로 말할 때에  '너도 우리 주님의 것이다. 이거 다 주님의 것이다. 너의 모든게 주께 매였다.

너는 내 것이야.' '내가 네 것이라?' '다, 너는 내가 내 것이라 한다고 네가  분개하지마는 분개해서 총으로 죽여도 주님이 허락 안 하면 못 죽일 거.

조만간에 내것 된 것을 영원히 볼 것이라.' 왜? 하나님 말씀을 의지해서 그  말씀을 옳다 참되다 인정하기 때문에 그대로 주장하고 그대로 알고 그대로 믿고  그대로 바라고 그대로 행하기 때문에.

 어리석지 맙시다. 우리 교회에 사업가들, 모두 이런 모든 기사들. 모든 관리들  모든 상업가들 전부 다 누구든지 요걸 명심하십시오. 점점 하나님과 피조물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 될랍니까? 소금의 맛을 잃지 마십시오 점점 존귀한 자로  환영을 받고 싶습니까? 소금의 맛을 잃지 마십시오 점점 모든 것에게 우러러  존대함을 받고 싶습니까? 맛을 잃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변치 않습니다. 그분은 그대로 실행하고 딱 딱 틀림 없이 하지마는  우리 눈이 어두워서 혼돈돼고 마귀 이 놈이 반 거짓말로 막 내어 돌리니까 배암  꼬리가 다다다다닥 하는 거 모양으로 이랬다가 저랬다가 이랬다가 해 쌓으니까  뭐 정신 없어 가지고서 그렇지마는 하나님의 말씀 복 잡도 안 해.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벌써 그 사람이 현실에서 이 소금 맛. 성도의 이 본질 이 세 가지를  이것을 버려라, 버리라. 버리지 안하면 큰일 난다, 버리지 안하면 큰일 난다  할고 때가 좋은 때입니다. 아는 사람은 성경을 아는 사람은 '아 이때가 온 것  보니까 너 그것 버리지 안하면 버림당해. 쓸모 없는 인간 돼.' 고럴 때에 성경  아는 사람은 '야, 됐다. 주여 됐습니다. 좋은 기회 주시니 감사합니다.' 세  가지를 다른 때보담 똑똑히 딱 이 세 가지를 그대로 세 가지로 살아 말도 요 세  가지에 맞은 말. 행동도, 마음도 생각도 요 세 가지대로고 시간도 지내고 하루도  지내고 계속합니다. 어느 것이 이기겠습니까? 하나님이 집니까? 다 거기에서  자율로 망했고 주관으로 망했고 배암의 지식으로 망했고 세상이 말하는 고대로  망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회개하고 이제 다시 그런 멸망을 되풀이 안 해야 될 거  아닙니까? 무엇이 큰 것이 있습니까? 주님 보다 더 큰 것이 무엇입니까? 주님이  천지를 창조했고 영원 자존자고 모든 것의 원인이 근원이 되시고 이런데 내가 뭐  어떻게 해 가지고서 인간 피조물 인간 그것이 날 높이는 걸 바래는 거 아니요.

그게 나 인정하는 거 바래는 거 아니라. 또 그것들이 떨어트리라는 거 그것도  나는 자극 안 받아. 떨어트리기나 한다 해도 그거 상대할 것 없고 높이 든다  해도 상대할 거 없고 나를 꺾는다 해도 상대할 거 없고, 그 모두 미치광이  말이요. 모두, 마귀 말이요 풋장 달이는 거짓말이요, 이게 하나도 말로 들을 거  없소. 주님이 말해야 그대로 되지 세상이 말한 그대로 됩니까? 주권은 주님에게  있는데. 우리가 존귀해지는 거. 참 쓸모 있는 유력한 것이 되는 거, 점점점점  높은 데서 자꾸 초청을 하고 점점 중앙에서 자꾸 불러 들이는 마지막에는 하나님  안에서 일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그러기에,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천해집니다.

우리는 이 세 가지로 되어 있는 자이니 세 가지로 녹아지라 그 말이오. 남  위해서 희생할 거 아니라 세 가지로 하루 생활하라 그 말이오 세 가지로. 네가  늙어도 이 세 가지로 늙고 죽어도 이 세 가지로 죽고 정력을 빼도 이 세 가지로  빼고 땀을 빼도 이 세가지로 빼고 이 세 가지로 녹아져라. 이 세 가지로  없어져라. 이 세 가지로 없어져라. 이 세 가지로 늙었으면 그는 어떤 젊은  사람하고도 안 바꿉니다. 그까짓 거 바꿔요? 썩은 거하고 바꿔요?  그런고로, 이 진리를 우리가 굳게 잡고 하나라도 요 사실로 인정하고 요대로  살아 보면 알 것이오. 저 금요일 날 밤에 금요일 밤에 OOO목사님 설교를  시켰는데 거기에서 그 말 한마디가 유력했어. '해봐라. 순종해 보면 안다.

순종해 보면 안다. 순종해 보면 안다.' 해 봐야 알지요? 하나님의 말씀은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를 소금으로 비유했으니까 맛이 변해도 안 되는  거, 맛이 안 변해도 녹아지지 안 하면 안 되는거, 녹아지지 안하면 안 된다 그  말은 그대로 살지 안하면 안 돼.

 돈으로 녹아졌는데 돈으로 녹아졌는데 뭐 소금으로 녹아져야 돼지 돈으로  녹아지면 어짭니까? 어떤 사람은 일생 동안 일생 동안 배암의 지식으로  녹아졌습니다. 배암의 지식 그놈 준비하느라고 녹아졌고 그놈 팔아 먹느니라고  녹아졌고 그놈 팔 때 돌아다니면서 구하느니라고 녹아졌고 그놈 팔다가  녹아졌고, 이러니까 그것은 녹아지기는 녹아졌지마는 육십 년이나 칠십 년이나  살기는 살았지마는 이 세 가지로 녹아지지 안 했기 때문에 쓸모 있는 거는 한  내끼도 없어. 눈꼽재기 만한 것도 없어 터럭기 만한 것도 없어. 머리털만한 것도  없어. 요걸 우리가 꼭 잡고 놓지 말아야 됩니다. 천지는 변해도 이거 변하지  않습니다. 가감이 없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세상의 빛이라. 세상의 빛이라 말은 세상이 깜깜  어두운데 세상을 환하게 하는 빛이라 그 말입니다. 그런데, 산 위에 있는 동리가  숨기지 못한다. 산 위에 있는 동리는 모든 사람에게 환하게 보여진다. 아,  동리를 주인이 산 위에다가 세워 놨으니까 환하게 보일거 아닙니까? 또, 하나  비유하기를 등경불을, 주인이 등불을 구해 가지고서 말 아래 놓지 안하고 말  아래 두고서 탁 덮어 놓으면 보입니까? 거기 안 둔다 등잔 위에 둔다, 하나님이  우리를 모든 사람이 다 주목해 볼 수 있도록 둔다 그걸 말한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주목하고 있기 때문에 '아, 저래 믿으니까 망했구나. 저래  믿으니까 존영하게 성공을 했구나.' 아무리 믿는 사람은 숨어 살라 해도 숨어  살지 못합니다. 두 가지로 증거합니다. 하나님은 믿는 자의 복을 베푸시는  하나님이라 믿음을 지키는 자의 하나님이라, 하나님은 믿음을 배반하는 거짓부리  신자들을 절단내는 하나님이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하나님을 증거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들이 패역 하니까  하, 이스라엘 백성들이 민족 중에 제일 비참한 민족이 된 것은 하나님이 성경에  말씀한 대로 하나님을 배반하니까 하나님을 배반해 그와 같이 비참하게 됐다. 또  하나님을 존귀히 여기고 그분의 계약대로 하니까 존귀해겼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이 모든 사람들이 주목하도록 주목의 대상이 되어  있다. 제가 산골짝에 살아도 그러하고 굴 안에 살아도 그러하고 시골에 살아도  그렇고 어쨌든지 택자는 벌써 하나님께서 제가 그렇게 하는 거 아니라 하나님이  자꾸 이래 드러 내서 보이도록 이렇게 하나님이 하셨기 때문에 제가 숨을래야  숨을 수가 없어요. 숨을래야 숨을 수가 없어, 아, 등경이 주인이 등경 위에,  등불이 등경 위에 주인이 놓는데 그 등불이 숨을 수 있습니까? 주인이 거기 갖다  놓으면 거기 있지.

 그러기 때문에, 믿는 신자에게는 은밀이 없다 비밀이 없다 속이는 일이 없다,  다 본다, 다 안다, 다 안다, 그러기에 너는 하나님을 증거하는 증인이다. 네가  다른 사람이 보고서 '아 저 사람은 저래 믿으니까 저래 믿으니까 저래 망하고  저래 믿으니까 저래 흥하고 이렇게 해서 세상에 환하게 드러나 볼 수 있도록 산  위에 세운 동리요 등경 위에 있는 등불과 같다  그러면, 빛이라 말은 무슨 말인가? 빛은 세상이 어둡기 때문에 정 어두운  세상의 반대라 그 말입니다. 세상을 어두운 세상이라 했습니다. 그 빛이라 말은  세상의 반대라 그 말이오. 세상의 반대라. 우리는 세상 사람의 사상과 반대요,  정신과 반대요. 소망의 반대요, 목적의 반대요. 평가의 반대요, 모두  반대입니다. 세상 사람이 귀하다 하는 거 우리가 귀하게 보지 많고 천하게 보고,  세상 사람이 천하다 하는 그거는 귀하게 보고, 십자가의 걸음을 모든 사람이 다  미련타 어리석다 하지마는 십자가의 걸음을 우리는 지혜로운 권능의 걸음이라고  그렇게 인정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세상이 어두우니 지척을 분별 못 한다. 세상이 어둡기 때문에.

불을 커 놓으니까 이거 김 가인지 이 가인지 박 가인지 아이인지 어른인지  남자인지 여자인지 불 꺼 놓으면 압니까? 의자인지 뭐 받혀 죽을 칼날인지 뭘  몰라. 이제 빛이 환하게 오면 모든 것을 다 압니다. 아 요거는 칼이다, 요거는  나무다. 뭐다 압니다.

 '너희들은 세상의 빛이라' 말은 세상과 반대라 그 말인 것을 첫째 기억 해야  됩니다.

 둘째로는, 세상은 깜깜 어두워서 사람들이 어째 살지 모른다. 부부간에도 어찌  할지 모르고 부자간에도 어찌 할지 모르고 국민 노릇도 어찌 할지 모르고 선생  노릇도 어찌 할지 모르고 남편은 어찌 할지 모르고 아내는 어찌 할지 모르고  상관 노릇도 어찌 할지 모르고 왜? 전부 마귀가 혼합을 시켜서 다 비뚤어시  꺼꾸로 되어 가지고 있고 정상이 하나도 없다. 전부 비뚤러져 전부 모조리  도매금으로 모조리 지옥갈 거 불탈 거 뿐이지 하나도 옳은 것이 없다.

 그런데, 너는 세상의 빛이라 세상에 옳은 것을 보여야 된다. 사람은 천 인  만인의 여론을 따라 살 거 아니고 하나님의 성경 말씀을 따라서 사는 것이 이게  바로 사는 것이다. 영감 따라 살아야 된다. 사람은 그 죄없이 사죄에 연결되어서  살아야 된다. 칭의에 연결돼 살아야 된다. 하나님과 연결돼 살아야 그게 살지  하나님 배반하고는 못 산다.

 이것을 보아서 '아, 이 일을 어떻게 하는고 보자. 저 사람 보자. 아 그 사람이  그래 하는구나. 아, 그게 옳은갑다 나도 그래 하자.' 이렇게해서 깜깜 어두워서  아무 것도 모르는데고 바로 정명을, 옳은 정(正). 이름 명(名)자 정명을.

정색을, 정종을 종자를, 종행을 바른 행위를, 정평을 정가를 다 그대로 예수  믿는 사람이 나타내서 어두운 사람이야 '저래야 되는구나' 하는 것으로서 볼 수  있도록 하나님을 배반하고 순전히 마귀화된 이 세상에게 하나님화, 하나님이  하시는 하나님의 뜻, 하나님이 인생을 내셨는데 내신 주인인 하나님이 살라 하는  그 법칙을 세상에게 보여 주는 것이 그 생애를 보여 주는 것이 그 사람을 보여  주는 것이 기독자라 그 말입니다.

 이래서, 빛을 비추게 되면 모든 사람들이 너희 착한 챙실을 보고 착한 행실이라  하니까 세상 사람들이 뭐 선이라고 짜다라 말해 쌓는고 선은 다 성경에 말하는  선 아닙니다. 여기에 선은 하나님 중심이라 그 말이오. 저 사람이 말도 하나님  중심. 장가 가는 것도 하나님 중심, 자녀 낳는 것도 하나님 중심, 밥 먹는 것도  하나님 중심. 일하는 것도 하나님 중심 사업도 하나님 중심, 경영도 하나님  중심, 뉘하고 말 대화하는 것도 하나님 중심 '저 사람은 하나님 중심이기 때문에  아무 것도 없네.' 전체가 하나님 중심으로 하는 그것을 그가 볼 때에 하나님이  그 사람을 권고 하시면 '아 저기 인생이 가는 바른 길이구나.'해서 너로 인해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게 영광을 돌린다. '참 하나님의 도가 이런 사람을  만들었고 이것이 인생의 참 길이로구나' 그래서 그로 인해서 하나님에게  감사함이 된다 그 말입니다.

 우리 살 길이 빤해요, 뭐, 존귀해질 길도 빤하고 천해질 길도 빤하고 이렇다고  해서 우리가 어데 정작에 다 그런 사람이 있다 그 말 아닙니다.

 백 목사도 남한테 천대받은 것은 열 가지고 백 가지고 있으면 천대받은 것은  전부 맛 잃은 소금된 그 조건으로 천대받았고, 빛을 잃고 어둡게 살았기 때문에  천대받았고, 또 존귀하게 받은 것은 전부 그대로 성경 말씀대로 고렇게해서  존귀함 받았고 뭐 딴거 하나도 없어요.

 여러분들이나 내나 꼭 같습니다. 천해진 것은 성경 말씀대로 천해졌고, 천해질  원인이 있어 천해졌고, 존귀해지는 거는 성경 말씀대로 존귀해 질 수 있는  원인이 있어 존귀해졌고, 또 하나님께 영광 돌리면 제가 영광스러워지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아, 다니엘이 하나님에게 영광 돌리니까 다니엘 영광스럽게  되지 안했소? 인간은 하나님께 영광 돌림으로서 하나님에게 영광 돌림으로  하나님의 영광으로 인해서 인간이 영광스러워지는 것입니다. 영광된 것도 다  이것으로 됐소. 뭐.

 말씀대로 고대로 오다 가다 어떻게 하나 맞았으면 하나 되고 둘 맞았으면  둘되고 열 맞았으면 열되고 백 맞았으면 백됐고 전체가 맞았으면 전체가 다 되고  말씀은 털끝만치도 어기지 안하고 고대로 이루어지는데. 인간 만이 거짓되어서  자꾸 마귀란 놈이 요래 꾀우고 조래 꾀우고 인제 '그렇지 마는 그렇지마는  그렇지마는' 이 놈이 들어서 죽입니다.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않습니다. 어리석지 맙시다. 우리는 세상의 소금이요  세상의 빛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점점 피조물과 창조주에게 빛을 보이는 사람. 이  세상에서도 그렇습니다. 그 사람이 참 소금으로서 이 세 가지로 살면 세 가지로  살면 실력 있는 사람은 그런 사람을 구하고 있습니다. 구하고 있어. 그 사람 그  사람에게 제일 요긴한 자리에 앉힐 것이요 중한 자리에 앉힐 것이요.

 제가 군에 갔다 온 사람 물어 보니까 '뭐하다 왔노?' '창고지기 하다가  왔습니다.' '창고지기? 왜 하필 다른 거 안하고 그걸 했노?' '거기에 가면 성경  제일 많이 볼 수 있고 일이 제일 수월합니다.' '그러면 놀다 왔구먼' 그런데  거기에는, '와 널 보내더노?' 거기에는 가만이 있다가 다른 사람이 가져 갈라면  '못 가져 간다.' 또 다른 사람이 '요리 바꿔라' '그거 안 된다' '거기에는 진실  하나 가지고서 생명입니다. 진실 하나만 가지만 거기에서 뭐 성경 얼마든지 볼  수 있고 기도 얼마든지 할 수 있고 제일 평안 합니다.' 진실고 하나만 있으면.

 이러니까 모두 보니까 소금의 맛을 좀 잃지 안하고 조그매 소금 기운이라도  있는 것은 전부 진실한 자리에 다 차지했어. 진실한 자리 다 차지하고 군목과 다  차지했고, 또 조금이라도 진실한 그거는 가 가지고 제일 거기에서 대대장 제일  대장 대장 밑에 비서 노릇 다했고, 대장 밑에 제일 제일 유용한 자로 씌여졌어.

 OOO목사 여기 있는데 그 뭐 누구한테 쐬여졌다 했노? 어? OOO목사 군에 있을 때  뭐했어? 와 대답 안 해? 어? OOO목사 뭐했어 뭐? 산따 노릇했나? 그라면 잘 못  믿었구만, 예수 믿는 사람 소금 맛 안 잃으면 요긴한 데, 중요한데 요긴한데  씌여집니다. 요긴한 거.

 왜 천해집니까? 세상 불탈 재물이지마는 재물 없는 사람 보담은 있는 사람이  훨씬 옳고 바르고 지혜가 있습니다. 권세도 밑에 보담 높은 데가 제일 지혜 있고  바릅니다. 김 일성이가 저래 쌓아도 김 일성이 마음에는 제일 진실한 사람을  찾을 것이요, 정직한 사람을 찾을 것이요, 죽어도 약속을 어기지 안하고  죽었으면 죽었지 진실하게 충성한 사람을 찾을 것이요.

 왜 이렇게 세상이 더 이걸 찾고 있는데 예수 믿는 사람이 이 세 가지 진리  영감. 주님의 세 가지 대속을 버리지 안한다고 천함 받아요? 월급이 내려와요?  자리가 떨어져 내려와요? 어림도 없어 그 인간이 그러할라 해도 하나님이 높이  들어.

 우리는 이것을 믿습시다. 조그마한 데서도 그렇습니다. 조그마한 데서도  가정에서도 자기 어머니라도 어머니가 이 세 가지를 놓지 안하고 이 세 가지로  매일 매일 살면 자녀에게 이렇게 존대함을 받을 것이요, 이 세 가지로 살면  남편에게 존대함을 받을 것이요 이 세 가지로 살면 이웃에게도 이렇게 존대함을  받을 것이요 이 세 가지를 버렸기 때문에 천대를 받습니다. 이거는 계산을  잘못해 그렇지 하나님 말씀이 틀린 거 아니요 정확합니다. 세상에 하나님  말씀대로 이루어 가고 있는게 이 세상이요.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우리는 이 세 가지 이 뭉텅이가 돼야 됩니다. 밤이나 낮이나 어데 가든지 이 세  가지 내어 놓으면 저는 죽습니다. 천해지요. 아, 저거 예수 믿는 다 하는 것이  지금 예수 믿는 뭐 저 장관이라 하는게 저 보자 그렇지마는 오늘은 천상 안 돼.

주일이라도 안 돼 오늘은 뭐해야 돼. 오늘은 신사 참배 와야 돼. 할 때 '아이구  안 됩니다. 그거는 내가 계명 어겨서 못 합니다.' '못 해?' 군에는 그렇게 해.

'죽어도 못 해?' '아, 죽어도 못 합니다.' 하나님이 아멘!! 할렐루야!! '내 할  일은 할 일이거다' 어떤 자가 그를 꺾습니까? 높이 들어. 하나님을 내 편 삼아서  하나님이 내 편 되고 내것되는데 어떤 피조물이 해할 자가 있어? 피조물은  존대합니다. 마지막에는  어리석지 맙시다. 믿음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공포와 비겁에 싸였습니다.

어리석어집니다. 믿음으로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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