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 목자

 

1984. 6. 2. 토새

 

본문 : 시편 23편 1절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선지자선교회  다음 공과가 이 말씀인데 반사 선생님들은 이 진리를 굳게 잡고 믿음으로 이  진리를 전해서 모든 학생들이 이 진리로 굳게 서도록 그렇게 해야 할 것입니다.

지난밤에도 ○목사님이 이 말씀을 가지고 우리에게 밝히 증거해 주었습니다. 또  이 말씀이 우리에게 어떻게 해 주실 것도 말씀했습니다. 여호와 목자만 우리가  떠나지 아니하고 이 목자만 모시고 있으면 이 목자가 우리에게 모든 면에  부족함이 없이 다 충족히 해 주실 것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여호와란 말은 계약의 하나님이란 뜻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라. 계약의  하나님은 내 목자라. 그러기 때문에, 이 하나님이 계약으로 나한테 나타나시고  또 나도 계약으로 이 하나님을 모시기도 하고 이 계약으로 하나님을 배반하기도  하고 또 이 계약으로 하나님 목자의 인도를 받을 수도 있고 또 목자를 배반할  수도 있는 것을 말씀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말은 계약의 하나님이라,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목자가 된다고 그렇게 말씀하지 안했고 여호와는  나의 목자라, 이 계약을 선포해 놓으신 하나님이 나의 목자라.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곧 내 목자요 계약이 곧 내목자라 그런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이 목자이신 하나님을 어떻게 우리가 영접하며 또 이  목자 하나님을 어떻게 모시며 또 이 목자 하나님을 어떻게 배반할 수가 있으며  이 목자 하나님과 동거 동행할 수가 있겠는가? 그러면, 이 목자를 자기가 그냥  동거 동행하겠다 모시겠다, 또 안 버리겠다 이리 되면 우리는 미혹에 들기  쉽습니다. 마귀는 그걸 틈을 타 가지고서 우리를 다른 탈선의 길로 인도하기  쉽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호와는 나의 목자라, 하나님의 이름이 여럿이 있지마는서도  특별히 여호와라는 이름을 들어 가지고 여호와는 나의 목자라 그렇게 우리에게  발표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이 목자는 우리가 목자를 삼을라고 애를 쓰는 것이 아니고 이미 우리의  목자가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피공로로 목자가 되어 있고, 예수님의 피공로  보다도 하나님의 창조로 우리의 목자가 되어 가지고 있고, 또 창조보다도  하나님이 예정하실 때 벌써 우리의 목자가 되어 가지고 있습니다. 예정보다도  하나님이 목적을 정하신 그 목적 안에서 다 우리의 목자가 되어 있습니다.

있는데, 요는 우리가 이 목자를 배반하느냐 이 목자를 모시고 있느냐 하는  그것이 문제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목자를 우리가 모시지 안할 까닭이 있는가? 이 목자를 배반 할  까닭이 있는가? 이 목자는 우리에게 모든 좋은 것을 다 해 주는데 육체나 영이나  금생이나 내세나 또 내나 내게 속한 모든 것이나 전부를 다 전지한 지혜로 볼  때에 부족함이 없이 전능한 능력을 가지고서 다 잘해 주시는데 이 분을 우리가  배반할 리가 있는가? 네, 배반할리가 없는데 배반을 하게 됩니다. 배반하게 되는  것은 그것은 무엇으로 인해서 배반하게 되는고 하니 이 악령으로 인해서  배반하게 됩니다. 악령이 이분을 배반하도록 그렇게 우리 마음을 만듭니다. 우리  마음을 악령이 사로잡으면 우리 마음이 악령화되고 성령이 사로잡으면  성령화됩니다. 성령으로 변화된다 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마음에 악령이  들어와서 악령이 우리 마음을 주관하지 못하도록 그것을 단속을 해야, 악령의  미혹이 내 마음을 미혹시키지 안해야 내 마음이 여호와 하나님을 내 목자로  모시게 되지 악령이 내 마음을 주관해 가지고 벌써 내 마음을 미혹을 시켜  놓으면 내 마음은 여호와 목자를 내가 목자로 모시지 못하도록 그것이 만들게  됩니다.

 그러면 악령이 우리에게 와 가지고서 유혹을 주면은 얼마나 유혹을 주느냐?  유혹을 주면은, 에덴동산에 해와와 아담에게 악령이 와서 미혹을 줬는데 그  미혹을 받고 나니까 아담 해와에게 제일, 천상천하에 제일 해독이요 참 독하고  악하고 그 해가 굉장히 큰, 제일 해독이 많은 것이 선악과였는데 제일 해독 많은  것이 선악과였는데 악령이 그 마음을 미혹시키고 보니까 천상천하에 제일  보배롭고 좋은 것이 선악과로 보여졌습니다. 그렇게 꺼꾸로 보였습니다. 이래서,  하나님이 그렇게 아담 해와에게 좋은 하나님이지마는서도 하나님보다 더 좋은 게  있으니까 하나님을 버리고 선악과를 먹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선악과가 참으로  더 좋으냐? 더 좋지 안 하고 그 보다 더 해로운 것은 없습니다. 이런데도 그렇게  해로운 것이 그렇게 좋게 보였다 그거요.

 이러니까, 악령의 감화를 받으면 여호와는 나의 목자라는 이 말씀이 아주  거짓말로 들려지고 아주 그 말이 멸시가 되어지고 조롱이 되고 뭐 별별 작용을  해서 이 여호와를 자기 목자로 인정한다는 것이 자기에게 털끝만치도 섞여 있지  않도록 완전히 변질을 시켜 버립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 마음에 악령을  용납지 안해야 여호와가 내 목자인 줄 알고 목자를 내가 배척하지 안하려고 애를  쓰게 되고.

 또 내 안에서는 내 마음을 이게 주관해 가지고서 여호와를 목자를 삼지  못하도록 날 자꾸 오해를 시킵니다. 오해를 시키고 곡해를 시키고 모두 다  꺼꾸로 해석을 하도록 그렇게 만듭니다.

 그러기에. 사람도 취급을 해 보면 그 사람이 나빠도, 성질이 나빠도 좋고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고 그거는 될 수 있는데 제일 어려운 게 뭐냐 하면은  악령이 꺼꾸로 해석을 시켜서 오해케 하는 것이 그 속에 있으면 그 사람은 참  취급을 못 합니다. 그만 그 사람은 손을 떼서 그대로 둬 두고 하나님께 기도나  하고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착수해 가지고서 어떻게 하도록 해야 되지 그 사람을  자기가 말을 해 가지고 설득을 시키고 이해를 시키고 무엇을 어떻게 하고 또 그  사람에게 오해를 풀기 위해 뭘 잘해 주고 어쩌고 하면 될 줄 아는 사람은 그거는  하면 할수록이 감깁니다. 감겨 가지고 결국은 그 사람을 멸망에 빠트리기  쉽습니다. 그때는 손을 떼서, 오해하는 사람에게는 가까이 안 하는 게 좋습니다.

오해하는 사람은 그대로 둬 두고 뒤에서 기도해야 되지 오해하는 사람은 벌써  마귀가 그 사람을 사로잡고 있기 때문에 말을 하면, 이 말을 하면은 정 꺼꾸로  자꾸 이렇게 작용하게 되기 때문에 내가 말을 한 마디 하면 마귀란 놈이 그  사람을 한 가지 오해 하게 되고 두 마디하면 두 마디 오해하게 되고 간절히  말하면 그 간절까지 간절한 오해를 하도록 만들고 또 광범위로 그 사람에게  말하면은 광범위로 오해케 하기 때문에 오해하는 사람이 제일 무섭습니다, 그  사람은 악령에게 붙들렸기 때문에 그것은 우리의 말로 가지고는 안 됩니다.

아무리 진리의 말씀으로 해도 그 사람은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기도 외에는 이런  악령을 쫓아낼 수가 없다' 이랬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속에 이 오해케 하는 악령의 미혹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좋은  여호와를 목자로 모시지 못하게 되는 그것이 자기 안에서 나는 고장 때문에  안되는 것이니까 이 고장을 알고 내 마음을 악령이 주관하지 못하도록 하고  성령이 주관하도록 그렇게 해야 되지, 악령이 주관하는 그것은 힘을 써서 막지  안하고, 내 마음을 지금 악령이 주관하고 있나 성령이 주관하고 있나? 그러면  성령이 주관하고 있는 것은, 성령은 눈에 보이지 안 합니다. 보이지 안하지만  성령이 주관하는 것은 성경 말씀에 맞고 악령이 주관하는 것은 성경 말씀에 맞지  않기 때문에 악령이 주관하면 성경 말씀이 인정이 안 돼지고, 성령이 주관하면  성경 말씀이 인정이 돼지고 세상 말은 인정이 안 돼지고 정반대로 이렇게  나타납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 마음을 단속해서 자기 마음에 악령의 유혹이  들어오지 안하도록 이것을 단속해야 되지 이걸 단속하지 안해 놓으면 다  헛일입니다.

 또 자기 밖에는 뭐이냐? 자기 밖에는 악령의 유혹을 받은 군대들이 많습니다.

악령의 군대들이 많은 것은 나보다 신앙 어린 사람은 내게 대해서는 전부 악령의  군대입니다. 아무리 목사라도 그 목사보다 신앙 위에 있는 사람에게는 신앙 아래  있는 목사는 언제든지 악령 운동밖에 안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 이하에  있는 사람은 자기에게 악령 운동밖에 안하기 때문에 이거 뭐 안 믿는 사람은  말할 거 없이 악령들의 정병입니다. 악령들의 정병이요 충병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들이 다 합작해 가지고서 여호와를 자기 목자로 삼지 못하게 하도록  하기 위해 가지고서 교묘하게 악령은 꾸밉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보면, 기도하다 보면 자기는 기도해 나가는데 나중에 보면  기도하다 보면 기도는 안 되고 딴것, 어만 것을 일 분이고 이 분이고  생각했습니다. 일 분이고 이 분이고 생각한 그것은, 주님에게 기도 만 하고 이래  나갈라 했는데 엉뚱한 것이 뭐 이게 이 일을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는데에서  기도할라 하는 것이 그만 그 자체를 생각하는 대로 삐뚤어져 나가 버렸어. 이래  가지고 그리 틈타고 들어옵니다. 틈을 타고 들어옵니다. 이러니까, 악령이 우리  마음에 틈을 타서 들어오는 것은 어떻게 그게 민첩하고 날래고 간교한지 참 그거  방어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그러기에. 자기 마음을 단속할 뿐 아니라 자기 마음 밖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여호와를 자기 목자로 삼지 못하게 하려는 총력입니다. 그 전체의 힘은 여호와를  자기 목자 삼지 못하게 하는 총력이기 때문에. 자기는 아예 내가 여호와를  목자로 삼는 데에는 내 마음 안에서도 원수가 삼지 못하게 하고 내 몸 밖에서도  삼지 못하게 한다.

 이래 가지고서, 어떤 사람에게는 아주 요긴하고 분주한 일, 기도하면은  기도하는 가운데서도 아주 요긴한 일, 요긴한 일인데 그 요긴한 일을 이제 까지  내가 생각해도 거기에 대해서 바로 해야 될 그런 안이 나지 안했습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아주 요긴한 일을 어떻게 할까 몰랐는데 요긴한 일 그걸 아주  요긴한 일을 고를 착 꺼내 줍니다. 고를 착 꺼내 주면서 '아, 요렇게 하면  되겠다.' 아주 좋은 것을 새로 발견했습니다. 아주 좋은 것을 발견했습니다.

발견하니까, 좋은 것을 발견하니 잘못하면 하나님이 그것을 자기에게 주신  지혜라고 이렇게 생각하는데 실은 기도하는 자에게 하나의 미혹이 들어왔습니다.

이러니까 그것을 물리쳐야 됩니다. 물리쳐야 되지, 물리치고, 물리치면 위험성  둘 있는 것은 물리치고 나면은 그 다음에 마귀란 놈이 옳은 일이니까 그대로  하기는 해야 되는 일인데 그때 고걸 착 보여 주면, 그리만 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 주실 것인데 착 보여 주면서 요렇게 해라 하는 고 생각이 나니까  착각해서 '하나님이 기도하는 가운데 나에게, 이거 알려 주는 가 보다' 요렇게  오해를 해 가지고서 고만 그것을 하나님이 자기에게 알려 준 줄 알고 그것을  생각하다가 탈선돼 나가는 길이 있고, 이러니까 그때 물리쳐야 됩니다. 내가  기도할 때는 기도하는 시간이고 지금 기도할 거 많으니까 그 기도하는 순서대로  자기가 날마다 43w숴은 기도가 있지 않겠습니까? 기도의 순서대로 기도할 일이지  그 한 사건을 가지고 거머 쥐여서 일할 것이 아니라 그말이오. '사탄아  물러가라. 사탄이 나에게 사탄아 물러가라.' 그라고 난 다음에 사탄아, 임마  네가 지금 나 한터 하는 것은 미혹이다. 지금은 그게 필요가 없다. 이다음에  내가 할 때에 주님의 성령이 나에게 가르쳐 주신다. 물리치고, 물리쳐.

 이렇게 물리치면 되는데, 물리쳐 놓고 그냥 말없이 이렇게, 사탄의 역사 라  물리치라고서 물리쳐 버리면 고다음에 무엇이 오느냐? 실지로 고 일을 바땡 될  때에 그 방편밖에는 없는 것이고 그 방편이 오는 것이니까 그 방편을 취해야 될  것 아닙니까? 그 방편을 또 취할 때는 뭐라고 요놈이 미혹 주는 게 아니라 네가  기도 가운데에 그때 미혹을 줘 가지고서, 악령이 미혹을 줘 가지고서 이렇게  이런 방편을 너에게 알려 줬는데 이 방편을 쓰는 것은 악령이 너에게 유혹 주는  그 방편을 쓰는 것이 아니냐?' 또 그놈이 고렇게 말합니다. 그럴 때는 또 옳고  바른 것은, '진리는 주께 속한 것이니까 너는 기도할 때 들어오는 그게 사탄  역사라서 임마 너를 물리쳤지 네가 지금 그 방편 쓰지 못하게 유혹하는 것도  마귀다.' 마귀 이놈은 이래 들어 왔다 저래 들어왔다 그거는 뭐 인격도 없고  주격도 없고 그거는 정조도 없고 예의도 없고 체면도 없고 낯빤대기도 없습니다.

그거는 뭐 하루 백 번 천 번이라도 변동할 수 있다 그말이오, 그 악령이라는  것은.

 그러기 때문에, 내 마음 안에서 그걸 물리쳐야 되고, 내 몸 밖에 있는 모든  것들이 다 여호와를 나의 목자로 삼지 '못하게 하도록 이렇게 역사하는 줄 알고  언제든지, 여호와를 나의 목자로 삼는 것은 내가 모든 면에 성 공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 세상은 악령의 세상이니까 이 세장이 다 달려들어서 여호와를  나의 목자로 삼지 못하게 한다 하는 것을 우리가 알고 언제든지 그 투쟁심을  가지고 방어를 해야 되지 그렇지 않으면 안 되고 또 내 몸 밖에뿐 아니라 내 몸  안에도 여호와를 목자로 삼지 못하게 하는 악령이 내 속에 적이 있습니다.

안팎에 적이 있으니까 이 여호와를 목자로 삼는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라 어려운 줄 알고 우리가 여호와를 뺐기지 안하려고 애를 써야 되지 그렇게  쉽게 생각하면 헛일입니다.

 여호와를 그러면 목자로 삼는 것은 하나님의 계약의 말씀을, 내가 이 현실에서  하나님의 계약의 말씀을 내가 지키면 이 여호와 목자에게 복종하는 인도를 받는  일이 되고, 인도를 받는 일이 되고, 현실에서 하나님의 계약을 내가 배반하면  여호와 목자를 내가 배반하는 일이 되어지고, 또 내가현실에서 하나님의 계약의  말씀과 이 세상 인간의 말과 이 둘이 반드시 견제 되는데 그럴 때에 인간의 말은  물리치고 하나님의 계약의 말씀을 이것을 내가 지키면 여호와 목자를 내가  영접하는 것이 되고 존대하는 것이 되고, 그럴 때에 사람들이 이 모든 의사와  주장을 따라서 하나님의 계약의 말씀을 내가 무시해 버릴 수도 있고, 무시할  수도 있고, 계약의 말씀을 무시하지는 안하지마는서도 내가 부득이 해서 버릴  수도 있고, 또 이 계약의 말씀을 내가 지키되 그저 우리가 지식으로 알고  있으니까 안 지키면 내게 화가 을 터이니까 억지로 지키는 것도 있고 단  마음으로 지키는 것도 있고 여호와 목자를 자기 목자로 삼는 일에 있어서도  층어리가 뭐 몇 층어리가 되는지 모릅니다. 이러니까, 여호와 목자라 하는 것은  우리에게 계약의 하나님이 우리의 목자된 것이기 때문에 이 계약은 신구약  성경에 이 계약이 나타나 있으니까 우리가 미혹 받기가, 미혹 안 받을 수  있습니다. 요 계약대로만 하면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이, 계약의 하나님이 내 목자라. 나는 그의  양이라. 그 다음에 목자가 오면 우리가 어떻게 해 줄 것을 지난밤에도  ○○○목사님이 해석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고 목자가 오면 나에게 그렇게 해  주시니까 목자만 내가 모시고 있으면 모든 것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모든 것은  다 충족하게 됩니다.

 그런데,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여기에 우리의 목자라고 하지 안하고 나의  목자라고 하는 여기에 대해서 우리가 또 주의를 해야 됩니다. 뭐 단체적인,  전체가 목자가 아니라 개인 목자입니다. 이러니까, 여호와께서 나에게 목자로  역사하시는 데는 내 개인 문제지 다른 사람이, 단체가 어떻게 된다고 해  가지고서 내가 단체의 그 혜택을 입어서 되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백  사람 가운데 아흔 아홉 사람이 여호와를 목자로 삼았다 할지라도 나 하나가  틀렸으면 나 하나에게는 상관이 없습니다, 또 아혼 아홉 사람이 다 여호와를  배반하고 여호와 목자를 배반했다 할지라도 나 한 사람이 여호와를 내 목자로  모시면 그 목자는 나에게는 목자로 역사하십니다.

 이러기 때문에, 여기에는 목자 관계에는 전체성을 가지지 안하고 개인성을  가졌다 하는 요것을 여기에서 나타냅니다. 개인성을 가겼다. 여호와는 나의,  나의 목자라. 우리 목자가 아니고 나의 목자라. 이러기 때문에 개인 문제라 하는  고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이 위하니 자기는 목자로  모시지 안하고 남의 목자만 모시고 있다가서 앞으로 환난이 오면 고만 자기는  목자 없는 사람이 돼 가지고서 어떻게 할까 방황해서 실패하게 됩니다. 꼭  개인적으로 자기 목자를 모셔야 됩니다. 계약의 하나님이라. 계약의 하나님인데,  내 개인성을 가지고 있다. 다른 사람이 어쩌든지 나 하나 내가 바로 해야 되지  내가 여호와를 모시지 안하면 아무 소용없다.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가 되어 있는데,  여호와는, 계약의 하나님이, 계약의 하나님이 나의 목자가 되어 있는데,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요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하는 '내가 라는 요  '가' 자를 붙인 것과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하는 것과 아주 다릅니다. 요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하는 것은 요 주관이 됩니다. 내가 하는 것은  주관이 되는데 여호와 하나님이, 하나님이 내가 되어야 됩니다. 요것을 단단히  기억해서, 여호와 하나님이 이 객관에서, 객관에서 나를 도와주시는 그  하나님으로 '여호와 하나님은 나의 목자시니' 이래 하는 것은 계약의 하나님이  내 목자가 되셨다 그랬는데. 고다음에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하는  여기에는 객관으로 객관성을 가지고 오신 그 주님이 이제는 내 안에 내 주관적  하나님이 돼 버려야 됩니다. 주관적 하나님이 되어서 여호와 하나님이 내가  되어야 된다 말이오. 여호와 하나님이 내가 되어서, 이제는 그분이 내가 됐소.

그러면, 전지가 내가 됐고 전능이 내가 됐고 완전이 내가 됐고 여호와 하나님이  내가 돼 버렸소.

 그러면, 내가 됐으니까 그분이 나에게 합류해 가지고서 그분이 변해서 내것이  됐느냐 내가 변해서 그의 것이 되어짐으로써 그분이 내것이 됐느냐? 내가  변함으로써, 변해 가지고 그의 것이 되니까 그분이 나를 주관하게 돼서 이제는  내가 나를 주관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나를 주관하는 이 주관이 됐기 때문에  이제는 '내가 부족함이 없다.' 내가 하지, 내가 알지, 내가 다 알고 있지, 내가,  내가. 내가 인데. 여기 내가는. 나는 이것은 타락한 옛사람 나로서 되어 있는  내가 아니고. 내 개체로 있는 내가 아니고 벌써 여호와 목자가 나를 삼켜서 나는  그에게 삼켜지고 그에게 완전히 정복을 당하고 그의 것이 되어졌음으로써 이제  그분이 내 안의 내가 돼 가지고서 그분이 나를 주관하는 이제 이것이 되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위험성이 있는 것은 우리가 우리 마음에, 이 여호와 하나님은  여러 시간 많이 말했는데 여호와 하나님은 어데 별명의 하나님으로 이렇게 알면  안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곧 성령님이시오. 여호와 하나님이 성령님이시요,  여호와 하나님이 곧 주님이시오. 여호와 하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서 대속하신  공로를 베푸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신 예수님의 신성이십니다. 그것을 우리가  잡아야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없는 가운데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물 위에 하나님이  운행하셨다 하는 그 하나님이 여호와 하나님이신데, 그 뒤에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아담 해와를 에덴동산으로 인도하신 그 하나님이 여호와 하나님이  시요, 또 '선악과 먹지 말아라 계약을 세우신 그 하나님이 여호와 하나님이시요,  또 타락하고 나니까 그 다음에 숲속에 숨어 있는 것을 찾아오신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시요, 또 가죽을, 짐승의 가죽을 가지고서 옷을 해 입힌 이가 여호와  하나님이시오, 또 여인의 후손이 배암의 후손을 멸해서 너희들을 배암에게서  구출하리라 하는 그 약속을 선포하신 그 하나님이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때는 여호와 하나님으로 이렇게 나타나다가 그 뒤에는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말을 쓰지 안하고 그 다음에는 그저 하나님으로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이러다가  신약 교회에 들어와 가지고 주님으로 성령으로 나타났습니다. 내나 그 하나님이  그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주님을 사모하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을 사모하는  것이요. 주님을 모시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을 모시는 것이오.

 그러기에, 여호와란 말은. 주님도. 십자가에 못 박히신 주님은 어떤 주님이냐?  믿음의 주라 했소. 믿음의 주라. 믿음의 주라 말은 하나님의 계약을 전제로 하고  계약 복종의 주님이라. 계약 복종을 할 때 주님이 내 주님으로 역사할 수가 있지  계약을 내가 어길 때에는 주님이 나에게는 주님으로 역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주라. 이제는 구약의 하나님이 여러 번  나타났었지마는서도 그 하나님보다도 마지막으로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를  베푸시고 세상 끝날까지 나는 너희와 같이 하겠다고 말씀하신 이 하나님은  이제는 우리에게 베푸신 구원을 완성하러 오셨습니다. 온전케 하러 오셨다'  이랬습니다.

 이런데, 믿음의 주라, 믿음의 주라 말은 복종의 주라 말인데, 복종의 주라 말은  하나님에게 복종인데, 보이지 안하는 하나님에게 어떻게 복종 합니까? 그저  하나님에게 복종한다고 우리가 '하나님에게 복종해야 되겠다,' 이렇게  생각하는데,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에게 복종하는 것인지 이걸 우리가 알 수  없다 말이오. 이래 가지고 모르니까 그저 '나는 하나님에게 복종해야 되겠다.'  눈을 감고 어떤 사람은 이래 가지고 '아 요렇게 마음에 생각이 날 때에 요  생각에 따르면 하나님에게 복종이겠다.' 또 '아, 요거는 내게,' 어떤 분은 자꾸,  하나님께 복종한다 하니까. '하나님께 복종하는데 하나님이 보여야지? 어떻게  하는 게 복종인가?' 이래 가지고서,  어떤 분은 한 분. 그분이 가정에다 호통을 치고 뭐 가정을, 그 자녀를 꼼짝하지  못하게 하고 자기가 선지자같이 내가 말하면 이리 된다 저리 된다 하도 이  저주를 하고 엄격하게 그래 쌓으니까 그 자녀들이 꼼짝을 못 한다 그말이오,  신인 줄 알고. 이랬는데, 그분이 나한테 한번 왔습니다. 아주 자녀들도 뭐 다  모두 집사들이고 다 독실한 신앙가들이고 이랬습니다. 한번은 자기 손자를  앞두고 이 손자가 지금 아홉 살 먹었을 때부터 선지자라 해 가지고서.

선지자라고 해 가지고, 아홉 살 먹을 때부터 선지자 노릇 한다, 이 아이가 모든  걸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아서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그러면, 떡 무슨 일이  있으면 그 아이에게 와 가지고서 '야, 일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물어  가지고서 그 아이가 말하면 이거 선지자이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이기 때문에  그대로 해야 된다고 가족을 그대로 복종을 시킨다 말이오, 그러면 아홉 살 먹은  그까짓 게 뭐 압니까? 이런데 이래 가지고 지금 가정에서 왕 노릇 하고 있다  그말이오. 한번 나한테 왔어, 내가 차차 차차 물어 들어가니까 그 사람이 그때는  어데로 가는 게 아니라 ○○○이한테, ○○○이한테 가 가지고 미혹을 받아  가지고 지금 거기다가 하나 더 첩부해 가지고 날뛰는 때입니다. 완전히, 순전히  마귀라 내가 보니까. 내가 묻기를 '그러면, 하나님을 어떻게 아십니까? 하나님이  어떻게 인도를 하십니까?' 내가 처음에는 그의 말을 찬성하는 것같이 이래,  찬성하는 거는 하지 안하지마는 인정하는 것같이 그저 반대를 안 하고 이라면서  어떻게 인도 하십니까?' 이래 물어 들어갔다 말이오. 물어 들어갔는데 마지막에  인제 결론의 종결은 그렇소. '그러면, 자 이 일은 어떻게 하나님이 허락 하시는  일인지 거부하시는 일인지 그건 진가를 어떻게 압니까? 네, 나는 이것으로  압니다?' '어떻게 압니까?' '어디든지 내가 가 가지고 그곳에 가서 오줌이  싸이면 아이구 하나님이 나 여기 보낸 게 아니로구나. 내 오줌 싸는 건 보고서  이걸 하나님이 보낸 게 아니다 해서 그 길을 돌이킵니다.' '아, 예. 오줌 싸는  건 보고서 돌이킵니까?' '그러면 거기 가 가지고서 오줌이 안 싸이고 그라면,  아, 이거는 하나님이 보내셨다. 그렇게 인정합니다.' '그것뿐입니까?' '아주 또  심할 때에는, 하나님이 그리 가면. 안 된다고 책망하시는 그런 일일 때에는 내가  거기 가면은 갑자기 설사를 해서 똥을 싸게 됩니다. 설사를 하게 됩니다. 설사가  되면 아이구 하나님은 내가 여기 오는 것을 크게 대노 하시니까 여기에 있으면  내가 당장 망하겠다 빨리 내가 밤중이라도 그러면 그만 그 자리를 떠나서 그만  집으로 옵니다.' 그렇게 말을 합디다. 그래서 내가 다 알 걸 알고 난 다음에는  말했소. '사탄아, 네가 회개해라. 네가 들어서 가정을 망치고 그 행세를  했으니까 회개를 해라. 네가 ○○○이 따라가는데 지금 ○○○이가 뭐이며 그  교리와 신조를 아느냐? ' 이래 가지고서 말을 해서 그분이 그때 내 앞에서는  복종을 하고 자복을 했습니다. 자복을 하고, 아주 노인인데 얼금얼금하이 아주  억세게 생겼소. 뉘든지 달라 들지를 못해. 어떻게 억센지. 이랬는데, 인제  회개를 하고 그래 놓고 그 소식을 자녀들이 듣고는 좋아해서 좋아해서  이랬는데도 나중에 결국은 그 늙은이에게 끌려서 다른 데로 갔습니다. 그 딸은  저기에 ○○○교회로 갔고 또 그 자녀들은 지금 서울 어디로 갔는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에게 따라야 될 줄 알고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야  될 줄 알고 하나님을 모셔야 될 줄 알고 이렇지마는서도 하나님이 무형의 존재라  보이지 안하기 때문에 어떻게 하는 것이 그를 모시는 것인지 이러니까, 별별  자기 주관대로 '아, 하나님이 어디 계시는가? 아, 이게 하나님인가 보다.' 이래  가지고서 금송아지를 만들기 쉽다 이거요. 이스라엘이 그래 만들어 가지고  절단난 것 모양으로.

 어떤 집사님인데 정미소 하면서 거창서는 부자입니다. 거창서는 부자 고  뚱뚱하이 참 잘 생겼습니다. 이랬는데 그 장로님이, 그때는 집사님인데, 그저 제  뒤에 따라다니기를 뭐 모든 것 내비두고 밤이고 낮이고. 노인이지 마는 건강하고  어떻게 열심인지 밤에는 밤새도록 땀을 졸졸 흘리며 기도하고 그렇게 하는  어른이라 말이오. 이랬는데, 내가 좀 의심스러워서 물었소. '주님은 어떻게  자기에게 나타나셔 가지고서 역사하십니까?' '예, 그리 안해도 내가 한번 물어  볼라 했는데. 제가 주님의 십자가를 자꾸 이렇게 생각 하니까 자꾸 이래  십자가를 생각하니 처음에 안 그렇디마는 하도 이래 생각하고 이라니까 주님이  십자가에 떡 못을 박혀 가지고서 이래 가지고서 피를 흘리고 계시는 것을 내가  나타나서 봤습니다. 지금은 기도하다가 주님이 십자가에 나 위해서 못박히신  형체가 나타나야 내가 이제 마음에 안심을 하고 기도를 하고 십자가 앞에 기도를  하고 이제는 영교가 됐다 하나님과 밀접한 교제가 됐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요? 그 십자가에 못 박혀서 피를 흘리시면 그래 가지고 어떻게 했습니까?'  '그래 내가 이래 가지고서, 피 흘리시면 내가 이래 가 가지고 옆에서 입을  벌리고 이래 피를 흐르는 걸 내가 피를 받아먹어서 그 피를 먹었습니다.' '내  피와 살을 먹지 안하는 자는 나와 상관이 없고 하는 그 말씀에 미혹을 받았다  그말이오. 그래서  주님의 피와 살을 먹으면 시원하고 마음에 개운하고, 그게 다  사람의 주관으로써 얼마든지 그런 주관을 가질 수가 있고 또 약간의 병도 나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특별히 목자를 여호와는 나의 목자라 하는 여호와 이름을 붙인  것은 뭐이냐 하면은 목자가 나타날때 여호와 목자라, 계약의 하나님이 목자라.

계약을 전제로 하고서 말을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모실  때에 우리에게 하나님의 신구약 성경 말씀이 있으니까 반드시 주님을 사모하되,  주님을 사모하되 주님을 사모하는 것이 성경대로 의 주님을 찾아야 됩니다.

그러면. 주님을 사모하는데 주님이 어떤 주님인고 하는 것을 살필 때에는  성경대로 해서, 성경대로의 주님이오. 이래 가지고서 나에게 성경과 위반된  생각이나 주장이나 감동이 오면 이거는 성령의 반대인 악령인 것을 알고  물리쳐야 돼고, 나에게 성경 말씀대로, 성경의 계약대로, 이 계약을 보니까 더  깨닫게 하고 밝히 깨닫게 하고, 밝히 깨닫는 것은 뭐 하나 깨닫고, 둘 서이 이래  깨닫는 그것보다도 성경을 깨달아지는 것이 '아, 이 성경이 정확하다, 과연 이거  진리다.' 또 자기에게 고 말씀에 대해서 고대로 소원하는 마음과 행할 마음이  간절해지고 이래서, 성경 말씀을 깨닫게 하고 확실히 확고히 믿게 하고 그대로  하기를 원하는 마음이 생겨지고 고대로 실행할 능력이 오게 되고 그대로 실행을  할 때에 어떠한 애로 있어도 그것은 상관하지 안하고 참고 견뎌서 실행할 수  있는 요 힘을 강하게 해 주는, 고 강하게 해 주는 그 감동이 성신의 감동이요  그것이 성령의 역사인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주님이 이 목자로 계시는 것은 내 마음 안에 계시는  것인데, 내 마음에 오셔 가지고서 내가 주님을 사모함으로, 주님을 사모함으로  주님이 내 안에 계셔 가지고서 그 다음에는,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내가  부족함이 없는 것은 그분이 내 안에 차서 계셔서 나를 주관하기 때문에 이제는  그분이 나 됐다 그말이오. 그분이 나 됐고 내 중의 내가 됐소. 이랬는데 요것을  잘못하면 나중에 불건전한 신비주의가 됩니다. 신비주의가 되어서 자기가 자기  생각에. 자기 생각을 그만 주님으로 안다 말이오.

 그러기에, 주님이 내 안의 내가 되면 계약의 하나님이 내 안의 내가 됐기  때문에 계약이 내가 됐습니다. 계약이 내가 되고서 이 계약이. 이제는 다 타율이  돼서. 계약의 하나님의 말씀이 남의 법이 돼 가지고서 내가 건너다보면서  하나님의 법도를 지켰지마는 이제는 그 법이 내 자율이 됐고 내 주관이  됐습니다. 이래 거석하면 성경 말씀에 '아, 성경 말씀이 이러니까 이래 지켜야  되겠다. 이러다가 나중에는 자꾸 자기가 새로워지고 깨달아지면 이 성경 말씀이  남의 의견이 아니라, 남의 의견이 아니라. 남의 의견이 아니라 그 다음에는 요  진리대로 안 하면 안 돼요. 요 진리가 옳다, 바르다. 요대로 안 하면 될 리가  없고 요대로 해야 된다는 그것이 자기에게 강하게 느껴져서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성경 말씀이 자기 의자와 동일이 돼서 자기 의사와 동일이 되고 그 다음에는  자기 의사가 되고 자기주장이 되고 그래서  그리 되면 자기주장이 되고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 의사가 되고 자기주장이 되고 그러니까 자기가 이런 뭐 말하면,  생각하면 그 생각 하는 그것이 성경에 딱 들어맞고 할 때에는 그것이 뭐이냐?  중생된 영이 지금 자기에게 활동하는 것이고 중생된 영이 성령으로 더불어함께  와서 역사하는 것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렇게 여호와가 나의 목자 되시는 이 일을 할려고  하면은 우리 마음을 첫째는, 마음이 처음에는 하나님을 사모합니다. 주님을  사모하되 성경대로의 하나님으로 사모한다 말이오. 사모하되, 불교대로의,  불교와 같은 그런 하나님으로 사모하지도 안하고 사람들이 미신을 섬기는  거와같은 그런 하나님으로도 사모하지 안하고 신구약 성경 말씀과 꼭 같은  하나님인 것이기 때문에, 성경 말씀과 꼭 같은 하나님이기 때문에 성경 말씀과  같이 사모를 합니다. 그러기에, 성경. 말을 하려면 '이 성경말씀이 하나님이다.'  이렇게 말해 주면 여러분들이 듣기 좋지마는 또 그라면은 들렸다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성경 말씀은 무인격 존재인 이치뿐입니다. 진리 권위 있는 절대  능력을 가진 이치요. 생존하신 분은 아닙니다.

 그러기에 이 성경 말씀은 하나님은 아니지마는서도 성경 말씀대로의 하나님이라  그말이오. 그러면, 하나님이 성경 말씀과 꼭 같이 우리에게 나타나서  역사하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찾아 들어갈 때에 성경 말씀을 가지고 찾아  들어가서 내가 주님을 사모할 때에 성경대로의 하나님을 사모해야 참 하나님을  사모하는 것이 되지 그리 안하고 내 생각대로, 마귀란 놈이 자꾸 넣어 주니까 내  생각대로 그저 '하나님이 이런 하나님인가 저런 하나님인가?' 제 주관대로  생각하다 보면 마지막에, 사람이 이 외부로 행동하는 것보다도 속에 들어가야  일은 되기는 되는데 속에 들어가면 호호망망해서 속에 들어가 가지고는 성경  말씀을 기준해서 하지 안하고 성경 말씀은 버리고 그만 자기 생각대로. 어떤  사람은, 불교에 대한 사람은 불교 생각, 유교에 대한 사람은 유교 생각, 또 이런  풍속에 속한 사람은 풍속, 뭐 별별 그런 것이 와 가지고서 하나님으로 나타나기  쉽다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든지 계약의 하나님이라, 신구약 성경 말씀대로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내가 이 하나님을 사모하는 것은 자존하신 하나님을 사모하되  성경 말씀대로 사모하고, 이래 사모해서 내가 자꾸 사모하니까 내가 거기에  대해서 생각이 나고, 그러면 또 이제는 말씀과 나와의 둘이 합작이 되는  가운데서 성령님과 합작이 되고, 하나님과 합작이 돼서 그 다음에는 내가 뭐  생각하는 것이 내 생각이 아니라 영의 생각, 영의 생각. 영의 생각과 육체의  생각, 육체의 생각은. 육체의 생각은 자기 생각이요, 영의 생각은 성령의  생각인데, 이와 같이 말씀을 타서 들어가면 영의 생각이 내 생각이 된다 말이오.

영의 생각이 내 생각이 되니까 내 생각이 하나님의 생각이라. 그러면, 내 생각이  하나님의. 내 생각이 하나님의 생각이 되는 게 아니고 하나님의 생각이 내  생각이 되기 때문에 이제는 하나님이 내 안에 내가 된다 이거요. 이래 가지고  바울이 말하기를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내가 사는 게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그리스도가 사시는 것이 내가 사는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주님이 내가 말하는 것은 내 말이 아니라 내 안에 아버지께서  역사하시니까 그 역사가 내 입으로 통해서 나왔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와같이 되는 그 형상을 모형을 가지는 것이 우리들이라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요는 지금은 뭐이냐? 우리 마음을 말씀이 다 차지해야  됩니다. 우리 마음을 말씀이 다 차지하고, 말씀이 차지하면은, 우리 마음을  말씀이 차지하면은 그것으로서 다 최고 절정으로 다 됐다고 생각하면 미혹이  됩니다. 우리 마음을 말씀이 다 차지하도록 하는 것은 말씀을 내가 차지하려고,  말씀과 나와 하나 되려고 하는 게 아니라 말씀 안의 성령과 나와 하나 되고  하나님과 나와 하나 되기 위해서 말씀이 나를 다 차지하도록 이렇게.

 '밤낮 너희들이 이 계시의 말씀을, 이 계시의 말씀을 너희들이 밤낮 사모해  가지고서 샛별이, 너희 안에 샛별이 떠오르기까지 사모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랬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을 내가 자꾸 생각하고 생각하니까 내 속에,  샛별이라 말은 새벽별이라 말이오. 새벽별이 떠오르는 것은 뭐이냐 하면 날이  샌다 그말이오. 날이 새면은 햇빛이 들어온다 말이요. 거기에 샛별이  떠오르기까지라 하는 그 말은 하나의 비유의 말씀인데, 우리가 말씀을 자꾸  사모하면서 그 말씀대로 하려고, '영을 좇는 사간 육신을 좇는 자람' 로마서에  그렇게 말했습니다. 영을 좇는 사람은 영의 생각을 육신을 좇는 사람은 육신의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자꾸 내가 하나님의 성경 말씀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을  따라서 살겠다. 하나님을 목자로 삼겠다. 하나님을 자꾸 사모하면서. 하나님을  사모하면서 성경을 사모합니다. 하나님을 사모하되 성경대로 사모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사모해서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성경 말씀을 자꾸  사모하니까 성경 말씀과 나와 하나 되니 하나 되는 가운데에서 '새벽별이  떠오른다.' 하나 되는 가운데서 영감이 우리에게 와 가지고서 영감이 나를  주관하게 된다. 영감이 나를 주관하게 되고 보니까 그 다음에는 '해가  돋아온다.' 그 다음에는 주님이 나를 주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신앙생활은 자기 마음을 성경 말씀이 다 차지하지 못하게 되면 헛일입니다.

다 차지하면 다 됐느냐? 다 차지하게 되면 새벽별이 떠오릅니다. 영감이  우리에게 올라서 영감이 날 주관하게 됩니다. 영감이 나를 주권하게 되면 그  다음에 고대로 차차 들어가게 되면 이제 골방에 들어가서 하나님께서 나를  주관하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래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다.' 내가 부족함이 없다는  이것은 벌써 하나님이 작기가 돼 가지고서 자기 안에 목자가 주장 됐기 때문에  이제는 내라는 것이 뭐이냐 하면은, 하나님이 자기화 되어서 자기가 됐느냐?  자기가 하나님의 것이 다 돼 버렸기 때문에 지금 하나님이 자기 안에서  역사하니까, 자기 안에서 역사하니까 전지가 자기 안에서 역사하고 전능이 자기  안에서 역사하고 하니까 하나님은 자기 안에 무형의 존재가 돼 가지고서  전지전능의 역사만 해서 발휘만 이렇게, 발표만 되고 발휘만 되어지니까 자기가  발휘하는 것 같고 이렇지마는서도 자기가 볼 때에는 다른 사람의, 모든 다른  것에 대해서는 내가 말한다 이랬지마는서도, 이러나, 실은 하나님이 말씀하는  것이라 그말이오. 여러분들이 고린도후서 7장을 가서 살펴보면 이것은 내 명령이  아니라 주의 명령이다. 내 생각은 이렇다. 내 생각은 이런데 이거는, 내 생각은  이러나 나도 성령의 감화를 받은 줄 알고 있다. 내 생각이나 이 생각이 주의  생각이다.' 이래 가지고,  첫째는 여러분들, 내 마음과 진리와 합해야 됩니다. 내 마음과 진리가 합해  가지고서 내 마음이 진리화 되고, 진리가 내 마음을 사로잡아서 내 마음이  진리화돼서 내 마음과 진리가 합해지고, 하나가 되어지고, 하나가 되어지면 그  안에 무슨 작용이 오느냐? 성신의 감화가 와 가지고서 성령과 내 마음과 갇이  됩니다. 이래 가지고 영의 생각이라 하는, 영의 생각이라는 것은 생각은 우리  생각이오. 생각은 우리 생각인데 성령이 와서 내 생각이 성령 생각이 됐다  그말이오.

 이런고로, 이제 우리 입문이 이 진리와. 계약의 말씀과 내 마음이 일치가  되어져서 계약의 말씀이 내 마음을 다 먹게 되면 그 다음에는 성령이 내 마음을  다 먹게 됩니다. 그러면, 내 영과 성령과 진리와 내 마음과 몸이 하나가 돼  가지고 했을 때 그것이 온전한 새사람이라.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입문이,  입문이 이 성경 말씀을 내 마음에 내가 사모하고, 이대로 하고저 하고 사모하고  하고저 하고, 성경의 말씀대로 하고저 하고 성경 말씀을 사모함으로써 내 마음이  이 성경 말씀화돼서 내 마음이 변해져서 내 마음을 성경 말씀이 완전히 독차지를  해야 됩니다. 내 마음을 성경 말씀이 독차지를 해야 되지 독차지 안 하면 안 돼.

독차지를 하게 되면 독차지 하게 되면 그때는 말씀과 내 마음이 일치돼 가지고,  일치돼 가지고 있으니까 내 마음이 성경 말씀이지. 내 마음은 다 죽어 버리고 다  점령을 당하고 박탈을 당하기 때문에 내 속에 생각나는 그 생각은 진리의  생각이요 진리 위 생각이 마지막에는 영의 생각, 영의 생각이라는 것은 성령을  말합니다. 영의 생각이라, 성령이라. 성령의 생각이 돼 버린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이 신앙생활이라 하는 것은 마음을 들이지 않고는 안 됩니다. 마음  들이는 것보다 더 쉬운 것은 성경 말씀대로 몸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몸으로  행하는 것이 쉽고, 몸으로 행해서 자기의 이 몸, 고깃덩어리와 성경 말씀과  일치되도록 하려고 우리가 애를 쓰고, 그라고 나면은 그 다음에는 성경 말씀과  내 마음이 일치 되도록 하는 이 일을 그 다음에는 이제 애를 쓰면 그거는  이학년쯤 되고 좀 상급반이 되겠습니다.

그 다음에는 이제 내 마음과 이 성경 말씀이 일치가 되게 되면 그 다음에 어찌  되느냐? 중생 된 영과 성령이 내 마음과 일치됩니다. 중생된 영과 성령과 일치가  되고 그러면. 일치되는 것은 전부 다 일치되는데 그 방편은 뭐이냐? 그러면, 내  몸과, 내 몸과 이제 진리가 일치가 되고 내 마음과 진리가 일치가 되고 그  라면은 내 마음과 성령과 중생된 영과 일치가 되는데 그것도 진리가 일치가 됐기  때문에 진리 일치 속에, 진리 일치 속에, 진리 이거 범위 속에 진리 안에서  일치가 됩니다. 그래 가지고서 하나님은 나하고 하나 되는 것이기 때문에, 제일  우리가 쉬운 것이 뭐이냐 하면은 내 몸을 진리가 다 차지해야 되겠고, 그게  일학년이고. 그 다음에는 마음을 다 차지해야 되겠고 그 다음에는 이제는 영을  만나게 되고 성령을 만나게 됩니다. 이래서. 우리 신앙생활이 되기 때문에  이거는 뭐 진실이 아니고 거짓부리로 외식으로 하는 거는 저만 제가 속아 버리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오늘 아침에 중거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고 이제 하나님으로  더불어 내가 하나가 돼야, 여호와 하나님이 내 목자시니까 하나가 돼야 되는데  하나가 되는 그 방편이 겉에서부터 돼 들어가는 길을 말했습니다. 안에서도 또  돼 나올라고 지금 애를 쓰고 있습니다. 안에서 돼 나오게 하려고 애를 쓰고  겉에서 돼 들어갈라고, 안에서 돼 나오고 겉에서 들어가 고 이래 둘이 마주치면  쉽다 그말이오. 하나님께서 안에서 우리에게 하시는 것은 쉬지 않고 하시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는 내가 상관할 필요가 없습니다. 나는 이 껍데기, 겉에서  해 들어가는 이것을 할 라고 애를 쓰면은, 애를 써서 제일 껍데기 생활이 뭐이냐  하면은 이 진리와 몸이 하나 되는 것이 일 학년이고 마음과 진리가 하나 되는  것이 이 학년입니다. 그 다음에는, 하나가 되면 그 다음에는 자기, 참 사람, 새  사람, 참 자기를 발견하게 됩니다. 참 자기를 발견하게 돼요. '자기를 잃든지'  자기를 잊어 버립니다. 중생된 영은 잊어버리고 자꾸 옛사람으로 산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일치가 일 학년 이 학년, 일 학년은 이 계약의 말씀과 내 몸이  하나되고 이 학년은 이 계약의 말씀과 내 마음이 하나가 되면 고다음에 삼  학년에서 자기를 찾아서 중생된 영과 성령이 자기와 일치가 돼집니다. 일치가  되어지고 그러면 그 다음에는 하나님이신 주님과 우리와 하나가 돼 가지고서  이제는 내가 사는 게 아니라 주님이 날 주관하기 때문에 내가 행동 하는 게  아니라 내 안에 주님이 계셔서 행동하신다 하는 것이 되어지는 이것이 우리의  목표인데,  그러면 그럴 때에 그 방편은, 이 일치되는 그 방편은 무엇인가? 그 방편은  뭐이지요? 요 방편을 알아야 됩니다. 방편은 뭐입니까? 자, 이제 내 몸이 하나  되는 것. 내 몸이 하나 되는 것 마음이 하나 되는 것. 또 영과 몸과 마음이 하나  되는 것. 또 영감과 하나 되는 것. 하나님과 하나 되는데, 하나 되는 데에 이  하나 되는 법칙은 여럿입니까 하나입니까? 에? 하나입니다. 법칙은 하나입니다.

요것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법칙은 하나입니다. 법칙은 하나인데 그 법칙이 뭐  입니까? 예? 신구약 이 계약 말씀, 이 계약 말씀이 계약 말씀은. 이 법칙은  하나뿐이오. 계약 말씀은 내 몸이, 내 몸이 이제 하나님과 하나 될라는 그  공작을 하는데, 내 몸이 하나님과 하나 되는 공작도 이 계약 말씀, 또 내 마음이  하나님과 하나 되는 그것도 계약 말씀, 내 영이 또 하나님과 하나 되는 것도  계약 말씀, 그러기 때문에,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됐다.' 이랬습니다. 하나 되는  것은 계약 말씀, 이래서. 이래 되면 내가 사는 게 아니라, 내가 사는 게 아니라  주님이 살기 때문에 내가 경영하는 게 내가 경영하는 게 아니라 주님의  경영이요, 내가 일하는 게 내가 일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일하기 때문에.

당신이 일하는데 뭐이 못 되겠습니까? 이러니까, '네가 내 안에 있고 내 말이 네  안에 있으면 원하는 대로 다 구하라 다 이루리라' 하는 것은 내가 뭐 죄를  소원해도 이루어진다 말입니까? 내 소원이 하나님과 일치되기 때문에 내 뜻이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뜻 이 이루어지는 것이오. 하나님과 나와  하나니까. 하나니까. 외부에는 내지만 속에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신인일체가  되어지는 이것이 이제 목자의 효력이라. 모든 것을 승리하는 완성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녜,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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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35 엘리사의 신앙걸음/ 열왕기하 2장 5절-11절/ 820302화새 선지자 2015.12.07
2434 엘리사의 신앙걸음/ 열왕기하 2장 5절-11절/ 820301총공회 선지자 2015.12.07
2433 엘리사의 영감과 아버지의 뜻/ 마태복음 7장 15절-27절/ 821004월새 선지자 2015.12.07
2432 엘리야의 기도/ 야고보서 5장16절-18절/ 840219주새 선지자 2015.12.07
2431 엘리야의 신앙/ 열왕기상 19장 1절-18절/ 810531주전 선지자 2015.12.07
2430 엘리야의 신앙/ 열왕기상 19장 11절-18절 / 1981년 23 공과 선지자 2015.12.07
2429 엘리야의 심정-기도/ 야고보서 5장 17절-18절/ 840209목새 선지자 2015.12.07
2428 엘리야의 영감/ 열왕기하 2장 9절-10절/ 801007화새 선지자 2015.12.07
2427 여덟 가지 힘쓰면 세 가지 된다/ 베드로후서 1장 5절-9절/ 840907금새 선지자 2015.12.07
2426 여섯 가지 강령/ 베드로전서 5장 5절-9절/ 840903월새 선지자 2015.12.07
2425 여섯 가지 기초위에 세 가지 순종/ 요한복음 5장 5절-10절/ 820624목새 선지자 2015.12.07
2424 여섯 가지 복/ 에베소서 1장 3절-6절/ 890430주새 선지자 2015.12.07
2423 여수거래를 조심하라/ 누가복음 16장 11절/ 880205 지권찰회 선지자 2015.12.07
2422 여호와-감사-인자/ 시편 136장 1절/ 850210주후 선지자 2015.12.07
2421 여호와의 구원/ 이사야 26장 1절-7절 / 800113주전 선지자 2015.12.07
2420 여호와 목자/ 시편 23장 1절-6절/ 840527주후 선지자 2015.12.07
2419 여호와 목자/ 시편 23장 1절-6절/ 1984년 제 11공과 선지자 2015.12.07
2418 여호와 목자/ 시편 23장 1절-6절/ 840530수야 선지자 2015.12.07
» 여호와 목자/ 시편 23장 1절/ 840602토새 선지자 2015.1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