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04 19:52
애굽을 벗어나는데 필요한 3가지 힘
1987. 11. 19. 새벽 (목)
본문:출애굽기 12장 6절∼11절 이달 십사일까지 간직하였다가 해질 때에 이스라엘 회중이 그 양을 잡고 그 피로 양을 먹을 집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그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나물과 아울러 먹되 날로나 물에 삶아서나 먹지 말고 그 머리와 정강이와 내장을 다 불에 구워 먹고 아침까지 남겨두지 말며 아침까지 남은 것은 곧 소화하라 너희는 그것을 이렇게 먹을지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원 도리를 가르치실 때에 우리의 신령한 면이 자라가는 그 정도를 따라서 가르치십니다. 그러기에 가르치시는 방편이 처음에는 외부적이요 그 다음에는 차차 차차 내부적으로 신령적으로 온전한 면으로 찾아 들어가게 됩니다.
여게 애굽을 이렇게 가지고 이스라엘을 사백삼십 년 동안 그 박해와 모든 속박으로 잡아놓고 멸망시키는 일을 했습니다. 사람의 나는 것은 그 남자에게서 나 가지고 여자는 다만 거게서 자라는 밭과 같습니다. 이래서 남자는 다 죽이기기로 한 것은 완전히 이스라엘 종자를 없앨려고 하는 그것이었습니다.
이와같이 애굽은 이스라엘을 이렇게 전멸시키려고 목적을 두고서 노력하는 이것은 무엇을 우리에게 상징해서 그 예표를 해 가지고 가르치신 것인가? 그러면 우리는 애굽을 무엇으로 깨달아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애굽은 죄와 사망과 마귀의 권세를 가지고 지금 우리를 삼키려고 하고 있는 세상을 모형한 것입니다. 모형이라 하면 그런 것을 모양으로 해 가지고 알려 준 것을 가리켜서 모형이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세상은 죄 사망 마귀로 되어 있는 이 세상을 모형한 것입니다.
그러면 세상은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어떤 목적을 가지고 어떤 일을 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우리가 연구할 때에 신약 성경에서 그 사실을 깨닫는 깨달음을 말씀했는데 그는 더 신령한 면이기 때문에 믿음이 어릴 때는 알기가 좀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 신약 성경에 계시해 주신 그 계시의 내용은 구약 계시를 가지고 해석을 해서 잘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또 구약에 되어 있는 그 계시의 내용은 구약 가지고 모를 때에는 그와 같이 신약에서 그와 같은 것을 말씀해 놨기 때문에 신약으로 깨달으면 잘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구약 해석은 신약 가지고서 해석을 하면 잘 깨달을 수가 있고 또 신약에 있는 뜻을 깨닫는 데에는 구약을 가지고서 깨달아 해석을 하면 잘 알게 됩니다.
또 우리에게 계시 주신 것은 자연계시가 처음 줬고 그 다음에는 이 특별계시를 줬는데, 계시라 말은 열어 보인다는 말입니다. 이 자연 만물과 하나님의 창조 모든 자연 만물, 인간들의 마음의 별별 변해가는 인간의 마음의 구조, 하나님의 섭리 이런 것을 가리켜서 자연계시라 이러는데 자연계시를 가지고 특별계시인 신구약 성경 도리를 깨달을 수가 있고, 그러면 바로 깨달아집니다.
또 자연 만물은 저거 뭐하려고 놨으며 저게 어떤 것인가 이렇게, 과학자들이 물질 가지고 평생 연구하는 사람들이지마는 그 사람들은 모릅니다. 모든 자연계시인 하나님의 창조나 섭리나 만물이나 인간의 천태만상의 변해 나가는 마음의 구조들이나 그런 것은 성경을 가지고 그것을 알아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자연계시는 특별계시로 알 수 있고 특별계시는 자연계시로 알 수 있어서 이 서로 증거하는 이것을 보고 깨닫는 사람들은 잘 깨닫지마는 이것을 응용한다는 이것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 사람들은 성경 암만 봐도 깨닫지 못하고 자연 만물 봐도 깨닫지 못합니다.
우리 교회는 자기에게 하나님이 섭리하시는 무슨 사소한 일이라도 그 일을 사소한 일로 벌로 볼 것이 아니고 이것이 곧 성경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니까 내게 이렇게 닥쳐진 이 일은 무엇을 가르친 것인가 하는 것을 성경 가지고 깨달아야 그것을 바로 깨닫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특별계시가 자연계시를 돕고 있고 자연계시가 특별계시를 도와서 우리들의 구원 도리를 자연계시로 가르치시고 특별계시로 가르쳐 가지고서 잘 알도록 그렇게 합니다.
그러면 애굽은 오늘에는 무엇으로 모형한 것인가? 뭐 어떤 것을 모양해 가지고서 우리에게 보여 주신 것인가? 애굽은 곧 세상입니다. 애굽은 세상인데 세상은 죄 사망 마귀의 뭉텅이가 세상입니다. 그러면 세상은 우리에게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그것을 다른 데서는 잘 알기가 어렵습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필요하고 요긴하고 중요한 세상이다 이래서 예수 믿는 사람들이 무슨 구원을 목표로 하느냐 하면 세상 구원을 목표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래서 기독교 세상주의, 기독교 유물주의, 기독고 사회주의, 기독교 정치주의, 기독교 그 민족주의, 기독고 도덕주의, 이것이 좋은 것 같은데 그것은 기독교 세상주의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세상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아주 박해해 가지고 완전히 종자를 끊어 없애버리려고 하는 것이 그것이 애굽이 이스라엘에게 대한 중심이요 행동인 것입니다.
그러면 여게서 이 애굽에서 이렇게 이스라엘에 대해서 이렇게 하기로 했으니까 오늘 세상은 우리 기독자에게 대해서 어떤 일을 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이것 가지고서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은 다른 성구 가지고는 좀 깨닫기 어려워서 항상 머뭇거리는 그런 생활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세상은 죄 사망 마귀로 뭉텅이 돼 가지고 있는 것이 이 세상인데 이 세상은 기독자들을 완전히 멸망을 시키려고 그들이 목적하고 소망하고 노력하고 있는 것이 세상인 것입니다. 요것을 여게서 굳게 잡아야 됩니다.
그런데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좋은 때가 어떤 때냐 하면 그 유월절 환난 때입니다. 유월절 환난을 닥치기 전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거게서 구출될 길이 없었습니다.
그러면 유월절 환난이니까 애굽 땅에는 아주 장자 재앙 전멸 재앙이 나타났습니다. 그러면 전멸 재앙 그 재앙은 애굽 사람에게만 온 것도 아니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만 온 것도 아니고 전인류에게 다 왔습니다. 그때 만일 이스라엘 백성들이라고 해서 양의 피 안에 있지 안해도 그 재앙에서 멸망받지 안할 것이냐? 다 멸망받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애굽 천지를 전멸하는 그 재앙이 왔는데 이 전멸하는 이 재앙 이것이 재앙 곧 환난 이 환난이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잘 하면 구출받을 수 있는 그 길이 있는 길입니다. 다를 때는 저희들이 구출받을 길이 없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을 구출하려고 달라들었다가서 애굽 사람 하나 죽이고 난 다음에는 자기 생명이 위험해서 도망쳐서 미디안 광야에 가 가지고 사십 년 동안을 공을 들이고 있다가 준비해 가지고서 이스라엘 해방 운동을 사십 년 만에 하나님이 불러 가지고서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애굽에 큰 재앙이 내렸는데 이 재앙은 선민 불선민, 그러면 택자 불택자, 신자 불신자에게 오늘에 내리는 재앙입니다. 오늘에 내리는 환난입니다.
신불신자에게 오늘에 내리는 환난입니다.
이스라엘과 애굽에게 유월절 대환난이 임한 것은 오늘 세상에 머물고 있는 이 하나님의 교회에게 닥친 환난입니다. 그러면 이 유월절 환난은 하나님의 백성들과 애굽 사람들에게 꼭 공통적으로 닥친 환난인데 이 환난은 잘 하면 이 환난을 통해서 큰 것 세 가지를 성공하게 되고 잘못 하면 세 가지 멸망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독자들이 환난을 만나는 것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그런 좋은 기회를 만난 것인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지 그저 세상 사람들이 환난을 그걸 싫어하는 것처럼 기독자들도 환난을 싫어하기만 싫어하는 사람들은 실패합니다.
이래서 “여러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것으로써 너희들의 믿음의 시련이 인내의 온전함을 만들어 내서 온전하고 구비하여 너희들이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 되게 하려고 하나님이 역사하신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애굽은 세상을 모형한 것이라. 그러면 유월절은 이 세상에서 신불신자들이 다 만나는 환난이라. 그러면 이 환난은 종류도 여러가지 종류가 있고 도 그 양도 많이 다르다. 큰 환난도 있고 작은 환난도 있고, 세계적인 환난도 있고, 또 지방적인 환난도 있고, 국가적인 사회적인 그런 환난도 있습니다.
지금 이북이니 중공이니 소련이니 하는 데에는 기독교가 대박해를 당해서 전멸당하디시피 그런 환난을 닥쳤고, 우리 남한으로 말하면 지금 이 환난이 우리를 자꾸 위협하고 있는 이런 중에 있고, 또 미국이나 저런 나라들은 기독교에 대해서 환난이 지금 없습니다. 평안하게 있습니다.
이 일본 같은 나라도 교회는 환난이 많습니다. 일본에 있는 교회는 남한에 있는 교회보다 환난이 조금 더 심합니다. 왜? 거게는 조총련이라고 하는 공산주의의 지하 운동 세력이 강하기 때문에 먼저 사람을 자꾸 북한을 그 유혹 줘 가지고서 소원하도록 만들고 또 둘째로는 교회를 멸하려고 하는 그런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환난은 여러 종류로 그저 조끄만한 지역의 환난, 또 온 동리는 다 평안한데 어떤 가정 하나만 환난, 또 가족 가운데도 다 평안한데 한 사람에게만 어떤 질병의 환난, 이렇게 환난의 범위도 여러가지 있고, 또 종류도 여러가지 있고 그 양도, 강도 그 도수도 여러가지로 있습니다.
어쨌든지 이 세상에서 환난이 오거든, 무슨 환난이나, 뭐 정신 환난이나, 신체 환난이나, 경제 환난이나, 활동 환난이나, 사업 환난이나 어떤 환난이 있든지 오거든 이 환난은 유월절 환난이라 요것을 꽉 잡는 사람이 지혜 있는 사람입니다.
유월절 환난이면 이 환난은 잘못하면 멸망이지마는 이 환난을 잘 치르기만 치르면 크게 성공을 하는 환난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독자들은 이 환난을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랬습니다. 그냥 환난을 기쁘게만 여기면 멸망받고 맙니다. 왜 기쁘게 여기는고 하니 환난에서, 이스라엘이 유월절 환난에서 그들이 한 일이 무슨 일인가? 그들이 어떤 일을 해 가지고서 유월절 환난에서 큰 성공을 세 가지를 했는가 하는 그것을 우리에게 가르치니까 우리도 세상에서 환난당하면 벌써 요것은 유월절 환난이기 때문에 ‘내가 뭣뭣을 해야 여게서 이 멸망하지 안하고 성공을 하겠다’ 하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면 이 환난에서, 유월절 환난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얻은 것이 좋은 것, 성공을 한 것이 몇 가지입니까, 손가락으로? 몇 가지 성공했습니까? 저 뒤에도 손가락 들어 봐요, 다 알고 있는가? 어떤 사람은 이 다섯도 들고 넷도 드는데, 넷 든 사람도 틀려요. 다섯 드는 사람도 틀렸어요. 이 세 가지 드는 사람이 옳습니다, 이 세 가지. 세 가지 성공을 했습니다. 세 가지 성공. 지낸 밤에 증거했어. 세 가지 성공을 했습니다.
세 가지 성공을 했는데 이 세 가지 성공하는 데에는 그들이 몇 가지를 해 가지고 세 가지 성공을 했습니까, 손가락으로? 잘 들어 봐요, 몇을 드는고? 네 가지 가지고서 성공을 했습니다. 네 가지 가지고 성공한 것은 한 가지는 뭣이냐? 양의 피입니다. 양의 피. 또 하나는 뭣이냐? 양고기입니다. 또 하나는 뭣이냐? 무교병입니다. 또 하나는 뭣이냐? 쓴나물입니다.
요거 네 가지 먹은 힘 가지고서 애굽에서 나왔습니다. 네 가지를 먹지 않은 사람들은 애굽에서 나오지를 못했습니다. 이 네 가지는 애굽에서 구원돼 나오는 양식입니다. 요 네 가지로 애굽에서 구원돼 나왔습니다. 유월절 이 환난은 꼭 같이 만났는데 애굽 사람들은, 네 가지를 하지 안한 사람들은 다 거게서 이 장자 재앙에 다 그 재앙에 멸망을 받았고 또 이스라엘 백성들로서도 듣지 안한 사람들은 거게서 같은 멸망을 받습니다.
어젠가 언젠가 어떤 집사 한 분이 나한테 묻기를 ‘거게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왔는데 거게 모든 잡종들 모두 다 그런 사람들은 무엇을 말한 것입니까?’ 이랬는데 그것은 애굽 사람으로서도 나는 이스라엘 따라가겠다고 한 사람들, 또 다른 이방 족속으로서도 나는 이스라엘 따라가겠다고 하는 사람들, 꼭 같은 이 네 가지 가진 사람들은 꼭 같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또 다른 데도 보면 다른 데서 종으로 돈 주고 산 사람이나 또 자기네들이 그리 종업으로 따라온 사람들이나 그런 사람들이 다 할례를 행하고 하나님을 믿었을 때는 이스라엘 본족속과 꼭 같은 그 구원을 얻게 됐습니다.
요러니까 요 네 가지를 함으로써 환난에서는 큰 성공 세 가지를 했다. 오늘도 꼭 그와 같다. 그것을 우리에게 지금 모형으로 그런 걸 모형해 가지고 우리에게 구원의 실상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유월절 재앙, 유월절 재앙은 이것은 하나님이 내리는 재앙인데 이것은 신불신자에게 오는 환난입니다. 신불신자에게 오는 세상 환난, 이 세상 환난이 오는데 그 환난은 다 유월절 환난이라.
세상 환난이 올 때에 이 환난을 네 가지를 자기가 갖추면 환난이 변하여서 큰 성공 세 가지가 되고 이 네 가지를 갖추지 못하면 이 환난에서 유월절 환난에서 재앙을 받아서 멸하게 된다 하는 요것을 우리가 단단히 기억해야 됩니다.
그런데 양의 피는 무엇을 했는고 하니 그 사망에서 벗어나서 사망에서 이 구원 얻게 한 것이 양의 피입니다. 사망에서 구원 얻게 한 것. 그러면 우리는 이 환난 올 때에 우리의 이 육이, 영은 죽지 안하지만 이 육이, 죽는 것만 죽는 걸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이 육이 한꺼번에 죽는 것도 있고 조끄매씩 분자로 죽는 것도 있습니다. 그러면 요 시간에 이 시간에 죽기도 하고 영생으로 구원 얻기도 합니다. 그러면 이 시간에 우리의 마음의 기능과 몸의 기능이 죽기도 하고 영생으로 살아나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대속으로 우리가 법적으로는 살아났지마는 현실에서 이 네 가지가 없으면 죽고 네 가지가 있으면 살아납니다.
그러면 현실에 예수님의, 양의 피는 예수님의 피공로를 말하는 것인데 예수님의 피공로는 간단하게 말하면 대형으로 사죄됐고, 또 대행으로 하나님의 심판 통과한 의가 됐고, 대화친으로 하나님으로 더불어 부자간에 이 생명을 가지게 된 것이 이것이 세 가지 대속입니다.
예수님의 대형으로 사죄됐고 대행으로 칭의됐고 대화친으로써 부자의 생명을 얻게 된 이것이 예수님의 피공로로 말미암아 된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믿어야 합니다.
자기가 죄에서 예수님의 대속으로 해방된 것을 믿고 다시는 죄에 종이 되지 말고, 또 대행으로써 하나님 앞에 칭의받은 것을 깨닫고 어떤 일이 있어도 의로 사는 그 생활이 요동치 안해야 되고, 이제는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친된 것을 자기가 깨닫고 하나님을 배반치 안하고 꼭 하나님과 하나돼 사는 요 세 가지를 꼭 계속을 하는 그것이, 믿고 계속하는 것이 오늘에 양의 피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의 이 혜택을 입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것은 생명에 관한 문제입니다. 믿고 배반치 안하면 됩니다.믿을 때에 죄에서 자유, 또 의에 자유, 하나님과 화친의 생명 자유 이것을 믿고 다시 그런 그 어두움으로 들어가지 안하면 우리는 됩니다.
사람이 오늘부터 빚지지 않는다고 해 가지고서 빚 없는 건 아닙니다. 그전에 진 빚을 갚아야 됩니다. 이런데 우리들은 예수님이 대속했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의 사죄를 믿고 죄짓지 안하면 됩니다. 예수님의 칭의를 믿고 의롭게 살면 됩니다.
하나님과 화친된 이 화친을 믿고 하나님을 배반치만 안하면 됩니다. 그러면 이것이 다 피에 대한 효력입니다.
그 다음에 셋은 뭣인고 하니 이 셋은 애굽에서 해방돼 나오는 것입니다. 자유의 해방돼 나오는 것인데 세상이 무엇이 합해서 세상이 됐다 했습니까? 몇 가지가 합해서 세상이라고, 손가락으로? 녜, 세 가지가 합해서 세상됐습니다. 죄 사망 마귀 이 세 가지가 뭉친 것이 세상입니다.
그러면 이 세상에 만물이 그 죄라는 것이 아니고 죄 사망 마귀 이놈의 세력이 와 가지고 세상을 잡았기 때문에 세상을 완전히 감염시켰기 때문에 세상은 죄악덩어리 됐고 사망덩어리가 됐고 마귀덩어리가 돼 가지고 있었는데 이것을 우리가 탈색을 해 버립니다. 탈색하는 것 모양으로 탈색해 버리면 이제 영원히 멸망치 않는 새 하늘 새 땅이 됩니다.
이래서, 애굽에서 나오는 데에는 다른 힘 가지고는 나오지 못합니다. 애굽에서 나오는 데는 꼭 세 가지 양식을 먹은 그 힘 가지고서 나오게 됩니다. 우리가 사망 죄 마귀로 되어 있는 이 세상에서 예수님의 십자가 보배피 공로로 생명을 얻어서 생명은 구원 받았습니다. 사망은 면했습니다. 사망을 면해서 생명은 얻었지만 아직 애굽에 있습니다. 피 속에 있으니까 장자 재앙은 받지를 안하고 피 속에서 있었지만 애굽에 나오지 못하면 언제 또 장자 재앙을 받으련지 모르겠습니다.
이러니까 그 양의 피로써 이 생명의 구원은 얻었지마는 생명 구원 얻은 데서 애굽을 완전히 버리고 애굽에서 떠나와서 애굽과 거리 먼 자리로 구출돼 나온 것은 무슨 힘으로 나왔느냐 하면 세 가지 먹은 양식으로 나왔습니다.
오늘 우리가 예수님의 피와 성령과 진리로 영이 중생돼서 구원은 받았지만 우리가 이 죄 사망 마귀에게서 완전히 떠나서 해방을 당해 가지고서 떠나는 것, 죄와 나와 멀어지는 것, 또 사망과 나와 멀어지는 것, 마귀와 나와 멀어지는 것 이 멀어지는 그것은 뭣이냐? 오늘 우리로 말하면 성화구원입니다. 멀어지는 것은 성화구원입니다.
이 죄 사망 마귀로 더불어 멀어지는 것, 다시 말하면 세상과 나와 멀어지는 것, 세상 속에 있지만 나는 세상에 삼켜 있지 안하고 세상을 발 아래 밟고 세상에서 구출돼 가지고서 죄에서 완전히 떠나고, 마귀에게서 떠나고, 사망에서 떠나서 사망과 죄와 마귀와 상관 없이, 완전히 거기서 사로잡혀 종되어 있는 데서 거기서 떠나서 구출된 이 성화, 구출된 이 성화는 무슨 힘 가지고서 이 구출이 됩니까? 무슨 힘 가지고 됩니까? 몇 가지 먹은 양식의 힘 가지고 됩니까? 세 가지 먹은 양식의 힘 가지고 됩니다.
그러면 그것은 “예수님의 피와 살을 먹는 자는 영생이 있고 다시 마지막 날에 산다. 예수님의 피와 살을 먹는 자는 주로 인하여 산다.”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자기가 생각하고 깨닫고 믿고 자꾸 사모하고 깊이 깊이 느껴 깨닫게 되면 그 사람은 어떤 생활 하느냐, 하게 되느냐 하면 예수님으로 인해, 주님의 것 됐기 때문에 주님으로 인하여 동하고 정하고 그 생활 하려고 매일 기도하는 것이 다 그런 기도들입니다, 그런 사람들.
주님으로 내 언행심사가 동하고 정하게 하시고, 또 모든 만물들을 상대할 때에 주님과 나와 함께 상대하고 주님 없이 그거와 나와 둘이 단둘이 만나지 안하고, 또 주님으로 인해서 동하지 안하고 이 뭐 인간으로 인해서, 가족으로 인해서, 사업으로 인해서, 세상으로 인해서, 물질로 인해서, 내 욕심으로 인해서, 내 주장으로 인해서 내 말이나 행동이나 생각이 동하지 아니하고 순전히 나를 대속하신 주님으로 인하여 동하고 정하게 해 달라고서 기도하는 것이 그게 매일 성도들이 계속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래서 이 양고기, 양고기 먹은 힘 가지고서 이 세상에서 나는 구출돼서 세상과 나와 떨어져서, 세상에 종이 되지 안하고 완전히 세상을 점령하고 세상에서 이렇게 구출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뭐인고 하니, 예수님의 대속을 제일 중요하고 대속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씨? 대속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뭐이지요? ○○○이가? 양고기가 제일 중요하고, 양고기는 내나 예수님의 피와 살, 자기가 사죄 칭의 화친받은 대속을 말하는 것이고, 그런데 양고기 다음에는 둘째로는 뭣이 중요합니까? 누룩 없는 떡, 무교병. 무교병이 중요합니다.
이것 예수님의 대속이 제일 중요하고 그리고 난 다음에는 무교병을 먹어야 되지 만일 유교병 먹으면, 누룩 있는 유교병을 먹으면, 교 자는 누룩 교자입니다.
유교병을 먹으면 그때 다 죽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예수님의 대속으로써 세상에서 죄에서 사망에서 마귀에게서 내가 탈출돼 가지고서 자유하는 사람이 되어지는 데는 제일 중요한 것이 예수님의 피, 곧 사죄 칭의 화친의 대속을, 나 위해서 주님이 대신 죽으시고 부활하신 요 사실을 자꾸 생각하고 생각하니까 이제는 자기는 죽어도 죄를 지을 마음이 없고, 또 마귀에게 종될 마음이 없고, 사망에 종될 것이 아니고, 종 안 되고 완전히 거기서 구출됐다는 것을 믿어지고 또 거게 다시, 구출됐기 때문에 다시는 종되지 안하려고 각오하는 이것이 자꾸 속에 힘이 생겨진다 말이오.
생겨지기 때문에 예수님으로 인하여 사는 생활은 전부 죄에서 해방된 생활이요, 마귀에게서 해방된 생활이요, 사망에서 해방된 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데, 이렇게 세상에서 이 환난에서 환난으로 말미암아 애굽에서 나오는 것 세상에서 나오는 데는 제일 중요한 것이 예수님의 피고 둘째로 중요한 것은 화목입니다. 누룩 없는 떡, 화목. 불목을 가지면 구출은 안 됩니다.
이래서 요한일서에 말씀하시기를 “미워하는 자는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에게는 그 속에” 뭣이 없다고 했습니까? 영생이 없다고 말씀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렇게 이 화친이라 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이렇게 “화목함과 거룩함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한다” 그렇게 히브리서 12장에 말씀해 놨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둘째로는 누룩 없는 떡이 제일 중요하다, 누룩 없는 떡이라 말은 뭣이라 말입니까? 누룩이 없는 뭉텅이라 말이오. 누룩이 없는 떡뭉텅이. 누룩이 없는 떡뭉텅이인데 그 떡은 뭘로 만든 것입니까? 잡곡을 갈아 가지고서 가루를 만들어 가지고 한 덩어리로 쪄 놓은 것이 그것이 떡입니다.
그러면 이 교회를 가리켜서 떡으로 말한 것인데 교회는 이것은 누룩 없는 교회라야 되지 누룩 있는 교회는 안 된다. 서로 하나가 되지 안하고 그 사이에 이간을 붙여 가지고서 사이가 벌어진 그런 게 있으면 안 된다.
그러면 만일 그 교회에 백 명 모이는 교회가 구십구 명은 다 이렇게 불목을 가지고 있어도 자기 혼자 화목을 가지고 있고 자기로서는 백 명에게 다 화목을 하는데 상대방 구십구 명이 자기와 화목을 안 해 준다 할지라도 자기는 화목을 했고 화목을 하도록 노력을 하고 화목을 원하고 화목의 사람이 됐으면 구십구 명이 불목이 됐다 할지라도 자기 구원에는 상관이 없고 백 명이 모인 백 명 뭉텅이 구원은 안 됩니다. 백 명 뭉텅이 구원은 안 되고 자기 개인 구원은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의 구원이 제일 시발은 자기 개인 구원이고, 개인 구원 이 위에 보다 더 큰 구원은 가정 구원이고, 가정 구원보다 더 큰 것은 사회 구원이고, 사회 구원보다 더 큰 것은 온 세계에 단일 교회인 이 구원을 얻어야 자기가 온전한 구원에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둘째로 중요한 것은 이것 무교병 먹는 것입니다. 이 무교병은 누룩 없는 떡은 화목을 가리켜 말하는 것이고 누룩을 버리라 그말은 불목을 버리라. 그러기 때문에 교회에 제일 적이 뭣이냐 하면 이간 붙여 가지고서 불목을 일으키는 그것이 제일 적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제일 적입니다.
우리 서부교회서도 그런 것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그때 아파서 팔십이년도 드러누웠었을 때에 이 교회를 불목을 일으켜 가지고서 똘뚤 불목을 일으켜서 그 불목이 뭉쳐 가지고서 그 불목의 뭉텅이는 우리 집에 떨어졌습니다.
그 불목의 뭉텅이는, 뭉텅이가 뚤뚤 뭉쳐 가지고 우리 집에 떨어졌기 때문에 우리 집에 지금 그 재앙을 받고 있고 그 재앙을 일으킨 사람들이 다 회개를 해야 될 것입니다.
그때 뭣이냐 하면 그 이간을 붙여 가지고서 모두 다 그렇게 했는데 이간 붙이는 그것이 누룩입니다. 이간은 누룩입니다.
오늘도 지금 교인끼리 이간을 붙이고, 구역 식구끼리 이간을 붙이고, 또 이 모든 권찰끼리 이간을 붙이고, 반사끼리 이간을 붙여서 이간 붙이는 그자가 있으니 그자는 곧 누룩덩이입니다. 이간 붙이는 건 누룩덩이기 때문에 그것이 예수님의 피에 씻으면 누룩덩어리가 뭣이냐 하면 누룩 없는 떡덩어리가 되고 맙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이 구원 도리를 알고는 자기가 불목을 가지고 있을 수가 없습니다. 불목을 가지고는 예수님을 보지 못합니다.
“화평함과” 화목이라, “화목과 거룩을 가지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님을 보지 못합니다. 만나지 못해. 저 혼자 예수 믿는다고 이래 하고 있지 만나지는 못합니다.
그러고 셋째로는 무엇이 중요하냐 하면 쓴나물이 중요합니다. 쓴나물은 고난을 말하는 것인데 이제 이렇게 화목을 가지고 예수님의 대속의 피공로의 이 효력을 믿고, 다시 말하면 그 믿는 것은 “내 피와 살을 먹는다” 이랬습니다. 주님의 피와 살을 먹고, 또 무교병을 먹고, 그 다음에는 쓴나물 먹는 것, 이러면서도 안일주의를 가지면 안 됩니다. 쓴나물은 고난주의입니다. 나는 주를 위해서 고난받겠다 하는 이것이라야 되지 나는 어떻게 하든지 평안하겠다 하면 안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고난을 받는 데는 자기가 감당할 수 있는 고난을 차차 차차 고난을 받아 가는데 기독자들은 벌써 자기 소유와 몸과 생명이 주를 위해서 다 바쳐서 다 위해서 쓰여지고 가려고 하는 그것이 기독자들입니다.
그런다고 해서, 나는 소유와 몸과 생명을 주님에게 다 바치기로 작정하고 날마다 바치기를 원하는데 조절은 누가 하느냐 하면 주님이 조절하십니다.
나는 다 바칠라 하는데 ‘너는 오늘은 쌀내끼만치만 바치라’ 또 자기는 다 바치고 있는데 ‘오늘은 너는 주먹만치만 바치라’ 또 다 바치고 있는데 `오늘은 너는 이제 네 소유만 다 바치라’ ‘오늘은 또 몸뚱이만 바치라' 자유의 몸을 바치라. 감옥에 들어가면 몸을 바친 것입니다. ‘오늘은 생명까지 바치라’ 요것은 나는 다 바치기로 다 바쳐놨는데 요것을 가리켜서 로마인서 12장 1절에 “너의 몸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실 산 제사를 드리라” 그말은 살아 있으나 완전히 하나님 앞에 완전히, 제물은 잡아서 드려 놓은 겁니다. 살아 있으나 자기는 완전히 부인하고 살든지 죽든지 이 시간이든지 뭣이든지 주님 요구대로 나는 다 바쳐 놓고 단번에 다 받으시든지 헐어 나눠 쓰시든지 당신의 뜻대로고 자기의 이 심신은 완전히 주님에게 다 바쳐 놓은 것을 가리켜서 산 제사를 드렸다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런고로 요것을 기억해서, 오늘 아침에 중요한 거는 뭐이냐 하면은 애굽에서 벗어나는 데에는, 우리가 성화되는. 애굽에서 벗어나오는 것은, 애굽에서 피난돼 나오는 것 애굽에서 벗어나오는 것은 오늘 우리로 말하면 무엇입니까? 우리로 말하면 무엇입니까? 저 뒤에도, 우리로 말하면 무엇입니까? 성화.
따라합시다.성화!성화!건설구원!행위구원! 이 행위구원을 이루는 데에, 건설구원을 이루는 데에, 성화구원 이루는 것은 다 세상에서 벗어나와서 자유하는 자들이 되는 것인데 이 벗어나는 데에, 성화되는 데에, 또 이 행위구원을 이루는 데에, 건설구원을 이루는 데에는 몇 가지 힘 가지고 합니까, 손가락으로? 녜, 세 가지 힘 가지고 합니다. 세 가지. 세 가지 힘.
예수님의 대속하신 피와 살 요 양식삼는 것, 또 그 다음에는 무교병, 이 무교병을 할라 하면 이것이 얼마나 힘이 듭니까? 화목할라 하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드는지 모릅니다.
힘드는 것을 이것을, 우리가 화목을 자꾸 뭐 이렇게 힘든다 하지만 인인 관계에 불목이라 하는 것도 아무리 한쪽머리서 화목하려고서 있는 힘을 다 기울여도 그게 안 됩니다. 그게 어렵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우리와의 불목된 이 불목을 주님이 화목시킬라 했으니까 당신이 안 죽고는 안 됩니다. 화목시키기 위해서 당신이 죽으심으로, 죽으시기까지 노력해 가지고서 당신은 죽고 화목은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누룩 없는 떡, 그 다음에는 쓴나물. 어찌 됐든간에 주를, 고난의 주님을 고난으로 섬기려고 하는 것, 요것 우리가 꼭 가져야 됩니다. 기독교는 안일주의만 가지면 마귀되고 맙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반사 선생님들은 공과를 다 외우도록, 지하철을 위해서 기도하고, 하루 삼십 분 기도 놓지 말고 꼭 계속해야 됩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도 차차차 주는구만.
오늘 아침에 저도 또 시계를 잘 못 봤어. 일어나기는 세시 반에 일어났는데 인타폰 해 보니까 벌써 시간이 됐어. 그래서 오늘 아침에 그만 지각을 했습니다.
미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