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04 19:48
알맹이와 배설물
1986. 4. 2. 새벽
본문:마태복음 14장 22절∼33절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다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슬리므로 물결을 인하여 고난을 당하더라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제자들이 그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지르거늘 예수께서 즉시 일러 가라사대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한대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가는지라 소리 질러 가로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저를 붙잡으시며 가라사대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가로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이 구원에 방편을 주시고 그 방편대로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그런고로 시대마다 그 방편이 조금씩 다르고 또 개인마다 그 방편이 조금씩 다릅니다. 다르나 그것이 상관없는 것은 하나님이 구원하시는 그 방편을 믿고 그대로 하면 다 구원이 되어지기 때문에 이런 방편을 주시든지 저런 방편을 주시든지 그 방편은 주시는 것이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 예를 들면은 어떤 사람에게는 비유에, 금 닷 냥중을 줬고 어떤 사람에게는 두 냥중을 줬고 또 한 냥중을 줬다 이렇게 비유했습니다. 그러면 그렇게 배나 차이가 있지마는서도 그 받은 거 가지고 다 활용을 할 때에 꼭 같은 칭찬과 대우와 상을 받았습니다.
이러기에, 우리를 구원하는 방편이 꼭 같지 안하고 천태 만상으로 다릅니다.
다르다 말은 우리 현실이 각각 다르다 말입니다. 이런 현실도 있고 저런 현실도 있으나 어쨌건 모든 우리에게 닥쳐오는 그 현실은 하나님이 예정하신 대로 그 예정 순서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또, 현실이 이루어질 때에 뭐 한 가지로 이루어지는 사람 열 가지로 이루어지는 사람 스무 가지로 이루어지는 사람 현실이 이루어지는 그 현실이 여러 가지 종류들이 모아 가지고 되는 사람도 있고 또 몇 가지 종류로 모아 가지고 되는 사람도 있고 그러기 때문에 현실이 다릅니다.
또, 현실이 아주 평안하고 즐거운 사람도 있고 고통스러운 사람도 있고 참 여러 모양으로 다르나 그것이 상관없는 것은 어쨌든지 그 주시는 현실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역사 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현실이든지 우리가 그 현실에서 믿음만 지키면 꼭 같은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어떤 억울한 매장 속에 빠져도 상관없고 또 어떻게 높은 자리 있어도 상관 없고 어떻게 어려움을 당해도 상관없고 어떻게 평탄함을 당해도 상관이 없습니다. 다만 그것이 우리에게 이런 모양 저런 모양으로 바꾸어 오는 것은 이 형편에서 이 면을 고쳐서 구원하시고 또 저 형편에서 저 면을 고쳐서 구원하시는 그 골고루 우리를 구원하실려는 것뿐인 것이지 그것이 하나도 뭐, 가치로서 더 있고 덜 있고 하거나 또 유익이 더 있고 덜 있거나 하는 그런 것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믿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합동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그 말은 하나님 뜻을 이룬다 말은 구원을 이루어간다 그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족한 걸 내가 배웠다. 내가 궁한 일도 알고 또 능한 일도 알고 여러 가지 이런 저런 모든 형편 천태 만상으로 닥치는 그 모든 일에 대해서 내가 비결을 알았다. 일체의 비결을 알았다.’ 비결 안 게 뭐인가? 비결 안 것은 이런 것이나 저런 것이나 모든 형편이 꼭 같은 비결을 알았다. 또 여러 가지 형편을 만났을 때에 내가 믿기만 하면, 고 형편에 해당되는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아 가지고 그대로 행하기만 하면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능치 못함이 없는 것을 내가 알았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의 그 능력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는 것, 모든 구원 성공이 다 될 수 있다는 것, 어떤 것이 어떤 현실이라도 그것이 내 구원에 없어서는 안 될 것이라는 그 사실을 내가 알게 됐다 그 말입니다. 모든 것에 자족함을 알게 됐다.
이제 모든 것을 형편을 당할 때에 이것이 내게는 가장 좋다, 이게 내게 유익되다 하는 것을 내가 알았기 때문에 이런 형편이나 저런 형편이나 어떤 형편을 닥친다 할지라도 거게 대해서 조금도 동요되지 않는다, 요동되지 안한다, 이것도 와도 꼭 같이 내 구원에 유익할 형편 저것이 와도 꼭 같이 내게 유익될 형편 요렇게만 내가 이제 깨닫고 믿는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또, 그러고 말하기를 모든 것은 내가 과거에 가치 있게 귀하게 여겼던 그런 것을 이제는 배설물인 것을 깨달았다. 뭐 로마의 시민권을 가진 것이라든지 또 자기가 모든 학문을 가진 것이라든지 자기가 모든 능한 일을 가진 것이라든지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머리를 가진 것이라든지 그 모든 것 가진 거, 또 다른 사람이 당하지 못한 참 비참하고 가련하고 그 어려움을 당한 그런 것을 당한 일이든지 모든 일 당한 거 그것이 바로 내것이 아니라, 그것이 바로 내것이 아니라, 좋은 일 닥쳤다고 그것이 내것 아니라 내가 가질 것 아니라, 내가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학문을 가진, 지식을 가진 그것이 바로 내것이 아니라.
또 다른 사람이 가진, 그때에 로마의 시민권이라면은 굉장한 권세인데 그 시민권 가진 그런 것도 막바로 그것이 내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뭐이든지 자기가 이 세상에서 좋은 거나 나쁜 거나 닥친 그 모든 것은 바로 그것이 직접 내가 가질 것이 아니고 고 속에 가질 것 든 것을 내가 알았다. 사람들이 보기에 좋다는 그것도 그대로 내가 가질 것 아니고 나쁘다 하는 그것도 내가 그대로 가질 것 아니고 그것이 배설물인 것을 알았다. 그것이 속에 보배를 감추고 있는 찌끼라는 것을 알았다. 찌꺼기, 찌꺼기라는 것을 내가 알았다 그 말이오. 배설물인 것을 알았다. 찌꺼기라는 것을 내가 알았다.
왜? 찌꺼기면 그 속에 알맹이는 뭐인가? 알맹이는 그 찌꺼기, 겉어머리 뭐 좋다 나쁘다 슬프다 어렵다 두렵다 또 평안하다 하는 그 모든 거 껍데기 거게 따라서 사람들은 놀래고 이리저리 자꾸 움직여지지마는 그것은 찌꺼기요 그 속에 알맹이가 있는 것을 알았다.
그 알맹이는 뭐인데? 알맹이는 거게서 내가, 내 지체가 하나님과 같이 되는 그 알맹이가 있고, 또 거게서 내가 하나님과의 계약 맺은 그 계약의 실상으로 달성되는 그 알맹이가 있고, 또 그 알맹이는 뭐인가? 거게서 내가 한없는 여러 가지 경험 체험에서 아주 경험적 지식 체험적 지식 이렇게 지식을 얻게 된다.
그러면 거게서, 알맹이 있는 거게서 인간이 모르는 참 지식을 얻게 되고 또 인간이 모르는 하나님과 연결돼 가지고서 하나님하고 나하고 둘이 동행하는, 연결되는 동행하는 동행이 이루어지고, 또 하나는 뭐이라 했지요? 또 하나는 뭐이라 했어? 자체가 하나님과 같이 된다 그 말이오. 거게서 그 현실에서 나는 과거에 무슨 좋은 일이 있으면은 좋다고 우쭐거리고 슬픈 일이 있으면은 슬프다고 또 울고 또 두려운 일 있으면은 두렵다고 또 두려워하고 여러 가지 근심되는 난제가 오면은 근심 걱정하고 이렇게 했는데 이제는 다르다. 왜? 그것은 다 찌꺼기요, 그 속에 알맹이가 들어 있다. 그 속에 알맹이가 들어 있다. 그래 그게 찌꺼기, 배설물인 줄을 알았다.
그거 배설물이라면 그러면 너는 알맹이는 뭐이냐? 그리스도 안에서 얻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는 것이다. 그러면 알맹이를, 많지마는, 알맹이를 세 가지만 말했는데 그라면 다 들어갈 것인데, 다 그 안에 내포돼 있습니다.
알맹이 세 가지인데, 그러면 거게서, 그것은 껍데기, 희로 애락의 그 모든 것은 껍데기이고 고 알맹이는 고라면 뭐인가? 알맹이가 뭐이라 했소? 제일 처음에 뭐입니까? 자체가 하나님과 같이 되는 거. 물론 양적은 다르지마는서도 차차 된다 말이오. 그러면 같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볼 수 없는 하나님과 꼭 같다 했습니다. 그러면 볼 수 없는 하나님과 꼭 같은데 우리는 또 예수님과 꼭 같이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같이 된다 말은 내 모든 속성이나, 하나님의 십 이 속성, 우리와 하나님과의 같은 속성은 여덟 가지 공통성 속성이 있고 또 아주 공통성 없는 그런 속성 그런 속성 네 가지를 성경에 나타냈는데 그것도 된다 그거요. 하나님과 같이 된다. 하나님의 속성과 내 속성과 같이 된다. 하나님의 신격성과 내 인격성이 같이 된다. 또 하나님의 지능과 내 지능이 같이 된다. 하나님의 그 사랑과 내 사랑이 같이 된다. 하나님의 광대하심과 내 광대함이 같이 된다. 자꾸 하나님과 같이 되는 거. 내 자체가 하나님과 같이 되는 거, 그게 제일 중요하고 또, 그 다음에는 하나님과 나와의 동행한다. 연결이 된다. 하나님과 나와의 연결이 된다. 그 현실로서 하나님과 나와 연결된다. 이런 현실에서는 이런 현실에서 연결할 연결이 있고 저런 현실에서는 저런 현실에서 연결할 연결이 있는데 그 연결은 그 현실을 만나지 못하면 연결 못 된다. 그러기 때문에 현실마다 내가 연결해야 될 부분의 연결이 되는 그 현실이기 때문에 고게 알맹이다.
또, 알맹이 하나는 뭐이냐? 그럼으로써 나와 하나님과 동행해서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모든 소망이 그것이 실상으로 이루어진다. 실상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니까 요런 현실, 우리는 울면서 이거 참 불행스럽다 나는 저주받았다 이라지마는서도 고 현실에서 이루어질 소망 실상은 고 현실을 만나야 그 소망한 것이 이루어지지, 소망이라 하는 것은 미래에 있는 것을 바라보고, 내가 바라보는 거 아닙니까? 그리 되기를 원하는 바라보는 거 아닙니까? 실상이라 하는 거 그거 바라보는 것이 실상이 이루어지는 거 아닙니까? 모든 소망이 실상으로 이루어진다 그 말이오. 모든 소망이 실상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면, 모든 소망이 실상으로 이루어지는 거 그 소망은 어떤 소망인데? 성경에 기록된 소망이니 그 소망은 두 가지가 있는데, 땅 위에서 이루어지는 그 소망이 두 가지 종류 있는데 한 가지 종류는 뭐이냐? 영원 불변의 완전한 거 영원한 거 영생의 거 이 완전한 것이 이루어지는 거 하나 있고 또 이 완전한 것을 이루기 위한 원료로 재료로 비용으로 이루어지는 거 하나 있고 이 두 가지 있다 그거요.
이 두 가지가 이루어져.
그러니까, 비용이 이루어지는 것도 그 현실 만나 가지고 그 비용 내가 마련하지 못했다면은 그 비용 가지고 이룰 구원은 못 이룰 것이라 그 말이오. 또 내가 그 현실에서 하나님은 나하고 연결되는 그 연결을 그 현실 만나지 못했으면 연결을 못 가질 거라 그거요. 또 그 현실에서 하나님과 나와 꼭 같이 되는 거. 하나님을 닮는 거. 하나님을, 완전히 하나님의 형상을 입는 것. 그리스도는 볼 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말씀하시고 너희들을 부르신 것은 그리스도의 형상을 입도록 하기 위해서 불렀다 요렇게 말씀해 놨다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알맹이는 이 세 가지가 알맹이라. 나머지기는 배설물이다.
그런데, 그러면 이와같이 이루어지는 것. 현실에서 이 세 가지가 이루이지는 것.
현실에서 이 세 가지가 이루어지는 것. 현실에서 세 가지 이루어지는데 첫째 것은 주님같이 되어지는 고것이 주님의 형상을 입는 것 주님같이 되어지는 것이 첫째로 이루어지는 것이고, 둘째로 하나님과 나와 결합이 돼 가지고서 동거 동행하는 거. 하나님하고 나하고 동행한다 말은 하나님과 나와 동역한다 말입니다. 같이 동행을 해. 이스라엘이 홍해 바다를 건너갈 때 바다가 갈라지도록 한 그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동행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동행하는 거.
동행하는 것은 일하는 것이오. 동역하는 것이지요. 그라면 또 하나는 뭐인가? 또 하나는 성경에 약속해 놓은 모든 소망하는 것이 실상으로 이루어지는 것.
실상으로 이루어지는 것. 이 세 가지가 된다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이 세 가지는 진짜요 알맹이요 그 모든 이런 저런 모든 형태 그것은, 그것은 찌끼라 배설물이라, 껍데기라 요걸 깨달았습니다. 과거에는 구약 성경을 다 통달했지마는서도 그걸 몰랐는데 예수님 만나고 난 다음부터 사도 바울이 깨달았습니다. 이러니까 알맹이 세 가지가 이루어지는 그 알맹이 보고 살지 껍데기 보고 살지 않는다.
그 껍데기를 ‘이 껍데기인데’ ‘그 껍데기 속에 그게 들었어' 이 껍데기 속에 이런 거 들었고 저 껍데기 속에 저런 거 들었기 때문에 이 껍데기가 열 가지 껍데기밖에 못 만났으면은 그 사람은 열 가지 알맹이밖에는 못 만든다 그 말이오.
백 가지 껍데기를 만났으면 백 가지 알맹이를 만들 수가 있다 그 말이오. 천 가지 껍데기를 만났으면 천 가지를 만들 수 있는데 한 가지 껍데기밖에는 못 만났으면 한 가지 알맹이밖에는 못 만든다 그 말이오.
그러면 여러분들, 껍데기, 항상 등 따시고 배 부르고 항상 고 자리에서 변동 없는 고런, 꼭 같은 고렇게 일관되는 고런 변동 없는 형편을 좋아하십니까, 여러 가지 천태 만상으로 모든 굴곡과 애로가 많은 그런 껍데기를 좋아합니까 어떤 껍데기를 좋아합니까? 하나만 좋아하는 사람 한번 손들어 보십시오. 그러면 이런 거 저런 거 여러 가지 껍데기를 좋아하는 사람 손들어 봅시다. 녜. 여반에 여기 안 드는 사람 더러 있네. 네. 그겁니다. 여러 가지 껍데기를 좋아하지요.
좋아하는데 그 껍데기에서, 이상합니다. 나쁜 껍데기에서 더 좋은 게 생겨지고 좋은 껍데기에서는 그렇게 많이 좋은 것이 생겨지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껍데기, 사람들이 볼 때는 껍데기는 영 나쁜데 알맹이를 보니까 굉장히 좋아. 또 껍데기는 좋으니까 모든 욕심쟁이는 껍데기 좋으니까 이게 좋다고 달라들었는데 속에 알맹이는 보면은 그거 또 별 게 없다 그 말이오. 허무하다 그거요.
이러니까, 이제는 내가 자족함을 배웠다. 내가 모든 것이 족하다. 모든 것이 가치가 같다. 모든 것이 중요하고 요긴한 필요성이 같다. 모든 것이 그 결과에 효력이 같다. 유익이 같다. 그걸 알았다 그 말이오. ‘자족함을 알았다’ 모든 것이 족하다. 이것도 좋다. 저것도 좋다. 모든 게 다 좋다. 안 좋은 게 하나도 없다. 모든 것이 다 좋은 이 비결을 내가 알았다. 자족을 내가 알았다. 모든 것이 족하다는 거 모든 것이 내게는 가치 있고 모든 것이 꼭 동등 가치가 있다는 것을 내가 알았다. 그걸 자족함을 알았다 요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거 저런 거 닥치는 그 모든 것을 껍데기, 그거는 배설물, 찌끼.
배설물이라 말은 거기서 알맹이 취하고 껍데기 남은 걸 배설물이라 합니다.
예를 들어서 참깨를 가지고 가 가지고서 기름을 짰으면 기름은 알맹이요 그거 그만 그 집에 주고 내 버리고 오는 그거 깻묵은 찌꺼기요. 찌끼요. 또 사람이 이런 거 저런 거 음식을 배가 불룩하게 먹었는데 먹고 난 다음에 거게, 먹은 게 만일 한 근이라면, 먹은 게 한 근이라면은 그 한 근을 먹고 났는데 그 뒤에 배설물을 다 내놓으면 그것이 한 근에 조금 모자랍니다. 한 근에 조금 모자라요.
그러면 나머지 지금 모자란 그거는 어데 갔을까? 그거는 몸에 영양이 돼 가지고서 다 영양이 돼 가지고 갔다 그 말이오. 그러면 영양 그거 쪽 뽑고 나머지기 똥 오줌 나오는 걸 가리켜서 배설물이라 그랍니다. 배설물.
모든 세상에 있는 것이 배설물인 것을 내가 알았다 그 말은 그게 똥 오줌인 것을 알았다. 그 속에 알맹이는 나는, 그러기 때문에 그거 보고 살지 안하고 알맹이 보고 산다.
이러기 때문에, 이 껍데기는 이런 형 껍데기 저런 껍데기 여러 가지 천태 만상의 껍데기를 닥치지마는서도 그 껍데기마다 속에 알맹이가 있으니 그 알맹이는 다 보배로운 알맹이인데 그 알맹이는 이 세 가지가 이루어지는 게 그게 알맹이인데 이 세 가지가 이루어지는 이 알맹이 이것을 내가 거기 취할라고, 그래 껍데기 취하는 게 아니고 알맹이, 그 속에 알맹이 그거 취할라 하기 때문에 하나도 버릴 껍데기가 없고 하나도 나쁘고 좋은 껍데기가 없다. 전부 가치가 꼭 같다. 효력도 같다. 내게 구원 이루어지는 그 결과도 같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지족함을 알았다. 이것은 껍데기인 것을, 배설물인 것을, 껍데기인 것을 알았다.
그러면, 껍데기인 줄 알았으면 너는 뭐이냐?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는 그걸 내가 지금 가질라고 그래 한다. 그러니까 가치가 같다 말이오. 그러면 우리가 그 껍데기 속에서 받을 알맹이는 몇 가지인가? 받을 알맹이는 몇 가지입니까? 세 가지. 녜. 이 세 가지입니다.
세 가지인데, 고 하나는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이신 주님의 형상 닮는 거 뭐 형상이라면은 주님과 꼭 같이 주님 닮는 것이라 말이오. 사상도 같고 정신도 같고 담력도 같고 용기도 같고소망도 같고 비판도 같고 비교도 같고 평가도 같고 지식도 같고 권능도 같고 영광도 같고 존귀도 같고 만물의 환영도 같고, 이라면 주님같이 되면 좋게 될 거 아니오? 그 이상 원할 게 없다 말이오.
그러면 주님같이 되면 누구와 같이 된다 말이요 주님같이 되면 누구와 같이 되는 것이요? 양성원 학생들, 하나님같이 되는 거라. 주님은 볼 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이거든. 그와 꼭 같애.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떻게 아버지를 보여 달라 하느냐’ 아버지와 꼭 같다 그 말이오. 그런데 우리를 부르신 것은 누구와 같게 할라고 우리를 불렀습니까? 주님과 꼭 같게 할라고. 주님은 볼 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우리를 부르신 것은 그리스도의 형상을 가지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를 불렀다 이랬다 말이오.
이러니까, 이 소망이 알맹이가 세 가지인데 하나는 주님과 나와 꼭 같이 되는 거 고것이 양적으로 다 되는 게 아니라 요 현실에서 조금 되고 조 현실에서 조금 되고 자꾸 이래 가지고 주 모으면 된다 말이오. 진합 태산이라. 티끌 모아 태산 된다고서 그렇게 요 시간에 얻을 거 또 얻고 조 시간에 얻을 거 또 얻고 자꾸 얻어서 이래 모아 놓으면 나중에 가서 그리스도와 꼭 같은 형상을 가지게 된다 그거야. 주님과 같이 되고.
고다음에는 주님과 나와의 결합이 돼 가지고 동행해. 하나는 동행.
동행해.동행한다 말은 같이 역사한다 말이오. 동행. 동역. 같이 역사한다 그 말이오. 동행 동역하는 것. 동역을 하고 같이 일하고. 같이 일하니까 내야 모자라지마는서도 이거 장사하고 내 힘 없는 사람하고 뭘 둘이 들면 이거 뭐이든지 들립니다.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쌀가마니를 드니까 나는 쌀 한 말도 못 들어 비척거리는데 장사하고 둘이 쌀가마니를 둘이 듭니다. 드니까, 드니까 버 뜩 들립니다. 내가 드는 줄 알아도 주님이 같이 드니까 들린다 말이오.
그러면 이제, 어떤 사람은 만일 예를 들면은, 보자 이 쌀가마니를 내가 드는가 같이 드는 주님이 들어 줘서 들리는가 시험해 보자, 시험을 해 보자 하고서 힘을 쓰다가 들지 안하고 가만히, 거머쥐기만 쥐고 가만히 놔도 쌀가마니 덜렁덜렁 들고 갑니다. 또 ‘야, 이런 게 아니라 보자, 얼마나 힘이 센고 보자.’ 내가 쌀가마니에 달립니다. 쌀가마니에 매어달려도 뭐 달렸는가 말았는가 들고 갑니다.
인제 깨닫고 난 다음에는 이제 나와 같이 든 이 상대방, 같이 드는 동역, 같이 드는 이분이 힘이 세어 가지고서 이분의 힘으로 드는구나 하는 거 그걸 인제 깨닫는다 말이오. 깨닫고 난 다음에는 그 다음에는 뭐 큰 일이고 작은 일이고 ‘내가 하는 게 아니다.’ 아무것도 힘은 한 닢 푼치밖에 없는 게 큰 아주 천하의 힘이 다 달라들어도 하지 못할 그런 일을 척 달라듭니다. ‘네까짓 게 무슨 힘 있다고 일 할라 해?’ ‘하, 비결이 있다 뭐이냐 하면은 나하고 동행하는 게 있다. 동행하는 그분의 힘이면, 내 힘으로는 안 되지만 그분의 힘으로는 뭐이든지 다 될 수 있다’ 이걸 믿게 되더라 그 말이오. 이게 주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동역하는 거. 동역하는 거.
또 이제 하나 남았지요? 세 가지에서 하나 남았지? 주님과 같이 되는 거, 주님의 형상을 내가 입어 가는 거. 그 다음에는 주님과 동행 동역하는 거. 셋째는 뭐이냐? 모든 성경에 기록된, 뭐? 소망이, 성경에 기록된 모든 소망이 실상으로 이루어져. 성경에 이런 축복 저런 축복한 모든 축복이 실상으로 이루어진다 말이오.
실상으로 이루어지면 실상으로 이루어지는 데는 몇 가지 실상이 이루어집니까?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요. 몇 가지 실상이 이루어져요? 몇 가지 이루어져? 똑똑히 손가락 뻐뜩 들어 봐. 이제까지 배웠는데 몰라요. 예, 두 가지 실상이 이루어집니다. 두 가지 실상이 이루어지는데 하나는 영원무궁한 세계에서 가지고 살 영원무궁한 완전한 것이 이루어지고 하나는 이 완전한 것을 만드는 데에 비용이 이루어진다 말이오. 비용이 있어야 되지요, 그렇지 안해요? 이 비용이 이루어진다 말이오.
그러면, 비용은 세상 떠날 때에 가지고 갑니까 두고 갑니까? 두고 갑니다. 두고 가는데 그 비용은 그거는 그것을 비용을 그걸 쓰지 안하고 어떤 사람은 비용을 가지는데 그 비용을 받아 가지고서 악용하는 사람도 있고 벌로 남용하는 사람도 있고 또 그걸 애껴서 똘똘 뭉쳐서 단단히 궤짝에, 궤 속에 파묻어 놓는 사람도 있고 고것을 그때 그 시기를 놓치지 안하고 그때 그때 고것을 잘 활용하는 사람도 있다 그거요.
이러니까, 그러면 잘 활용해야 되지 시기 놓쳐 버리면 못 씁니다. 시기 놓치면 그만 못 써요. 시기 시기를 지내 놔 둬도 못 쓰지 또 그것을 달리 써도 완전한 것을 만드는 비용으로 쓰지 안하면 소용이 없지 그걸 애껴서 똘똘 뭉쳐서 단단히 강직해 놔도 소용 없다 말이오.
그러니까, 강직해 놔도 소용 없다. 또 벌로 써도 소용 없다. 잘못 써도 소용 없다.
꼭 적절한 고 시기에 옳게 쓰면은 썩을 것이 썩지 안할 것이 되고, 약한 것이 강한 것이 되고, 욕된 것이 영광스러운 것이 되고, 이 모든 혈육의 것이라 하는 이 물질계의 것이, 혈육의 것이라 말은 물질계의 것이, 뭐 됩니까? 신령한 것이 돼.
신령이라는 고 말은, 신령이라는 말 고걸 뜻을 알기가 어려운데 신령이라는 그 뜻은 무슨 뜻이냐 하면은 이 모든 시공에 제한, 이 모든 범죄에 제한, 범죄로 말미암아 제한된 거 또 의가 없어서, 의가 모자라서 제한된 거 이 모든 시간과 공간에 제재를 받는 그런 거 모든 거 그런 것이, 그런 것을 다 초월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령한 것입니다. 유한한 것이 무한한 것 되는 것이 신령한 것이요, 또 불완전한 것이 완전한 것 되는 것이 신령한 것이요 죽음에 속한 것이 영생에 속한 것으로서 되어지는 것이 신령한 것이라. 그거 신령에, 그러기에 성경에 말하기를 ‘모든 생명과 신령에 속한 모든 것으로 우리에게 복 주신다’ 베드로후서에 말씀하시기를.
그것이, 생명에 속한 것이라 말은 하나님과 나와 연결됨으로 되는 복. 또 그거 신령하다 말은 이 모든 이런 저런 제한을 초월한, 그 제한을 초월한 완전한 거 영원한 거 불변한 거 영생한 거 이런 것으로 이와같이 성화되는 그것을 가리켜서 신령한 것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런데, 배설물 속에 알맹이를 내가 뽑는 거 배설물 속에 알맹이만 내가 잡아 뽑는 거는 그거는 내가 수입을 보는 것은 다른 거 가지고는 안 되고 믿음 하나 가지고만 됩니다. 믿음 하나 가지고.
그러기 때문에 여러분들, 이 세상에 뭐이든지, 참 주제넘지. 주제넘은 게 아니라 그게 사실입니다. 뭐이든지 보면 ‘저것도 내것 저거 나 위해 있는 것’ 지금 지하철 만드는 거 꿍꿍하는 ‘저것도 나 위해 있는 것' 또 어떤 사람이 막 잘나도, 지금 잘난 그 사람 온다고 막 야단이고 이거 떠들고 막 이래 준비를 하고 굉장합니다. 떡 있다가 떡 조그만 게 못난 게 때도 끼이고 영 뭐 못 나고 끼지리한 그런 게 ‘나 위하는 것이 또 뭐 하나 오는구먼’ 지금 왕이 온단다 하고 야단인데 뒤에 앉았다가 ‘나 위하는 것이 하나 오는구먼’ 또 오니까 ‘저것도 나 위해서 있지. 저 지금 걸음 걸음 걷는 것도 저 오는 것도 나 위해서 오고 있지’ 이거는 뭐, 뭐이든지 보이는 대로 모든 존재는 ‘저거 나 위하는 것이다. 나를 위해서 있다. 내 구원을 위해서 있다. 나는 주인이요 저거는 내 소유다’ 모든 순서도 보면 ‘저거는 나 위하는 순서다' 이게 미친 사람이요 정상의 사람이요? 정상의 사람입니다. 그게 믿은 사람이오. 믿는 사람.
그런데, 이 배설물 찌기 속에 알맹이 있는 것을 취하는 것은 그것은 믿음이라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히브리서 11장에 말하기를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 믿음은 모든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 되어지게 하는 것이 그것이 믿음이다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 할 일은 뭐입니까? 우리 할 일은 믿는 것입니다. 그러면 믿음이 몇 가지가 모여서 믿음이 됩니까? 또 가리켜 보이소. 이 세 가지. 잘 못 들어. 자꾸 이렇게 하고 있네. 또 이래 세 가지. 이 세 가지.
하나는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듣든지 읽든지, 듣든지 읽든지 어쨌든지, 듣든지 읽든지, 어째 들어서 알든지 읽어서 알든지 뭐, 듣는 것은 설교 듣는 것이고 읽는 것은 자기가 읽는 것이고, 듣든지 읽든지 어째 듣든지 읽든지 알았으면 됐다 그 말이오. 들어서 알았으나 배워서 알았으나 읽어서 알았으나 제가 혼자 스스로 깨달아 알았으나 알면 됐다 그 말이오. 알면 꼭 같애. 알면 꼭 같애. ‘너 뭐 그 소리? 너는 배워 알았지?’ 배워 알았거나 말았거나 알면 됐다 그 말이오.
또, 성경을 읽어서 알았든지 아는 게 제일이라. 아는 거 첫째, 알고. 고다음에는 뭐입니까? 믿고 인정하고. 고다음에는 지켜 행하면 돼. 이 예언의 말씀을 듣든지 읽든지 하는 자가 복이 있고, 듣든지 읽든지 하는 자가 복이 있고 지켜 행하는 자가 복이 있다 이랬어. 믿어야 행하지요.
이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성경 말씀을 읽든지 듣든지 해서 알고, 그게 제일 중요하고, 알고, 그 다음에는 뭐이라 했습니까? 기도하고, 기도는 뭐이냐 하면은 기도라 하는 것은 자꾸 달라 하면 기도하는 게 아니고 기도의ㅡ이번에 지난밤에 양성원 학생들이 저 김해 우리 묘지 있는 데 거기 가 가지고서 모두 철야하고 새벽에 내려왔습니다. 내려왔는데 거기 가서 추운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고통스러운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기쁜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피곤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거기서 그만 꾸벅꾸벅 자다가서 오는 사람도 있었을 거고 천태 만상이라. 그게 뭐이냐? 그게 믿음의 실력이라 그 말이오. 믿음의 실력.
어떤 사람은 가 가지고서 추운 줄도 몰랐고 졸음 오는 것도 몰랐고 시간 가는 것도 몰랐고 이렇게 뭘로 호각을 불었는지, 호각을 불어서 가자 하는데 ‘아이고, 이거 내가 기도도 얼마 하지도 못했는데 벌써 가자 하는가 벌써 시간이 됐는가배’ 이래 가지고서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이래 오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아이고, 나는 내가 추워서 못 견디겠네 지금 하마 갈 시간이 안 되었나!’ 이래 가지고서 또 뭐 시계를 보니까 아직 멀었고 멀었고 그런 불쌍한 사람도 있을 것이라. 그래도 지금은 뻔뻔하지마는서도 거기 가 보니까 좀 다르다 그거요.
그럴 때에 달리 가면 안 됩니다. 그게 내나 한가지라. 믿음 가져야. 믿음 가져야.
믿음이 뭐이냐? 세 가지. 하나님 말씀을 자기가, 어데 밤이니까 뭐 읽을 수도 없고 이라니까 아는 대로 자꾸 이제 그거 다 외웁니다. 이 말씀을, 고 꼭 성경 본문대로 안 돼도 돼요. 안 돼도 돼도 뜻으로 외어도 돼. 뜻으로. 이것도 외우고 저것도 외우고 자꾸 외우면서 이제 그 말씀을 또 생각합니다. 그 말씀과 나와 대조를 합니다. 그 말씀과 내 생활을 대조해, 그 말씀과 내 자체와 대조를 해, 이 대조를 해, 또 대조를 하니까 자꾸 거기서 이런 거 저런 거 나옵니다. 그래 가지고 자꾸 이렇게 생각하고.
그러면, 그 말씀과 내가 실상을 이룰라고 할 때에 어떻게 되느냐? 실상과 이와같이 대조를 자꾸 하니까 그것을 가리켜서 명상이라 그래. 눈 감고 생각하니 명상이라, 눈 감을 명자 생각할 상자거든. 눈을 감고 생각하는 것이라 말이오.
이래 생각하니까, 생각하니까 요 이치가 깨달아지고 조 이치가 깨달아지고 깨달아지는데 나중에 그라다 보면은 그만 뭐 하루밤 깨달아지다 보면은 ‘아이구, 또 이 시간 다 됐데’ 그 보니까 벌써 하루가 지내갔지 또 뭐, 그러면 그러니까 아무 그런 일 없는 때는 저 혼자 갈 때에는 그만 좋아 그런 일 없으니까 가 가지고서 생각하고 생각하고 일어서 보니까, 고만 그라다가 시간을 모르고 지나갔는데 어떤 사람은 그라다가 보니까 날자도 모르고 했는데, 벌써 일어나 보니까 벌써 열흘이 됐고 보름이 됐고 뭐 돼 버렸다 그 말이오. 뭐이 된지 모르고. 이래 자꾸 그거 생각하다 보니까. 그러면 그동안에는 하나님이 동행해서 추운 것도 모르고.
아주 겨울에 눈이 와 가지고서 눈이 이렇게 쌓였는데도 눈을 거석 안 하고, 지금 뭐 비니루가 있지만 그때는 비니루 없어요. 비니루 없는데, 지금은 또 뜨신 옷이 있지만 그때는 뜨신 옷이 없어요. 그때, 그럴 때는 뭘 가루는 게 있소? 옷이 없어, 뜨신 옷이 없어. 그대로 뭐, 두루막 입는다 해도 찍해야, 경제가 어려우니까 명베나, 명베 두루막이나 당목 이런 두루막이나 하나 이거 물 들여 입고 나면 그까짓 거 뭐 뻐들뻐들 하이 뜨시기는 뭐 뜨십니까? 이래도 가 가지고서 기도하다 보면은 고만 얼마 하니까 그 부근에는 눈이 어북 이만치 녹아 버렸다 말이오. 패이고 눈이 녹아 버렸어. 왜? 자꾸 열이 나니까, 열이 나니까 눈이 녹을 밖에는. 막 뜨거우니까. 그 뜨거우니까 뜨거운 바람에 눈이 녹았다 말이오. 그 눈이 녹고 그래 가지고 그래 또 인제 아무 배 고픈 줄도 모르고 이래 있다가서 이래 오는데 그런 것은 명상으로서 그런 시간이 많이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일 명상이 많아야 됩니다.
명상이 많아야 되는데 명상은 뭐인가? 주님의 말씀과 듣든지 읽든지 했는, 안 주님의 말씀과 자기 과거와 대조해 보고 또 자기 현재와 대조하고 자기 생활과 그 말씀과 대조하고 그 말씀과 자기 자체와 대조를 해 봅니다. 대조를 해 보고.
그러면 자기가 미래에 이런 계획을 가지고 있는 저런 계획 가지고 있는가 계획 가지고 있는 계획과 그 말씀과 또 대조해 봅니다.
그러면, 과거 대조, 현재 대조, 미래 대조, 자기 행위 대조, 자기 자체 대조 이라다 보니까 그만 시간 간 줄도 모르고 그라다 보니까 거게서 사과할 것도 있고 거기서 감사할 것도 있고 후회할 것도 있고 거게서 어리석은 거 다, ‘요라면 되는 건데 그거 어리석게 고랬다.’ 그래 가지고 ‘요라면 되는 건데.' 그런 게 막 거기 나와. 이러니까 거게서 명상 끝에는 뭐이 나오느냐 하면은 얼른 내가 현실에 나가 가지고서 한번 해 보자 하는, 그러니까, 사람들이 기도하러 갔다가는 고만 그 과정을 지내고 나면은 ‘여기 자꾸 있을 게 아니다. 얼른 내려가야 되겠다. 내려가 가지고 요라면 요라면 되고 요라면 되고 요라면 되고 요라면 되는데 그럴 게 뭐 있느냐?’ 그래 가지고 기도하러 가 가지고 고만 주님 만나고 진리 만나고 소망 만나고 난 다음에는 그만 거게, 내가 가서 요번에는 어짜든지 뭐 단식 기도를 며칠 한다. 그리 안 하면 거게서 이제 가루를 싸 가지고 가서, 손 양원 목사님을 쌀을 잘 싸 갔대요. 생쌀을 잘 싸 가지고 갔어. 아마 생쌀 싸 가지고 갈 때도 뭐 그 사모님이 일어 주지도 안했을 거라. 일어 주지도 안하고, 밉상이니까. 왜? 거떡하면 산으로 달아나 버리고 생전 만나지도 못하지 이러니까 이제, 일어 주지도 안했을 거라. 안했으니까 생쌀을 가지고 이래 큰 돌이나 이래 뭐 가렸던지, 이래 가지고 그저 수건에 싼대요.
수건에 한 주먹 싸 가지고서 그놈만 들고 그만 가 버려. 가 가지고서 그놈 먹으면서 며칠이 되든지 이래 있는데 갈 때, ‘내가 요번에는 한 내가 이십 일 동안 좀 있어야 되겠다. 십 일 있어야 되겠다.’ 그래 생각을 하고 갑니다, 대략 말이지요.
생각하고 가는 사람도 있고, 또 생각 안 하고 가는 사람도 있는데, 생각해 가지고 열흘 생각해 가지고 갔는데 그만 주님 만나니까 한 이틀 지냈는데 ‘아이구, 내려가야 되겠다. 이거 뭐 여기 있을 게 아니라 얼른 가서 행해야지.’ 그렇게 독촉이 됩니다. ‘얼른 가 행해야 되지' 그래도 고때 속으면 안 돼요. ‘얼른 가 행해야지’ 그때 가서 `뭐 이거 여기 있을 거 뭐 있는가? 요라고 요라면 되는데.
하면 되는데 여기 뭐 기도할 게 뭐 있나? 요라고 요라면 되는데’ 환하기 때문에 어서 내려가고 싶다 말이오. 고럴 때 속기 쉬워요.
그거 어서 내려와 보면 그거 안 간 거보다는 낫지마는서도 내려와 보면 휙 바꿔진다 말이오. 달라져 버려. 그러나 거게서 ‘아니다. 내가 그래도 얼마 동안을 작정했으니까 그 작정은 지내고 가야 되겠다’ 있어 보면 또 다르고 또 다르고 자꾸 다릅니다. 내가 가서 행하면 된다 하는데 행하면 된다는 그게 있어 보면은 먼저 행하면 된다 하는 그거는 벌판이고 천지도 모르고 이거는 철없는 말이고 며칠 더 지내고 나니까 행해야 된다는 것이 또 다른 게 오더라 말이오. 차차차차 온전하고 구비하고 실상에 가까운 그런 깨달음과 행함이 자꾸 나오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도하러 가 가지고는 자기가 갈 때에 작정한 대개 그 기간을 작정을 하고 가는 것이 좋고 또 나중에 이게 좀 능숙해지면은 작정하고 가지 않습니다. 작정하고 가면은 혹 작정하고 그라면은 내가 작정했기 때문에 그 작정이 틀렸는지 모른다 그 말이오. 작정이 틀렸는지 모르기 때문에, 작정은 예를 들어서 한 열흘 해 놓고 고만 아흐레 만에 오면은 작정한 거 틀리지 안했소? 그러면 틀린 작정을 제가 했더라 그 말이오. 이러니까 작정을 안 하고 그저 자기 경험으로써 ‘요번에는 내가 뭐 때문에 좀 기도해야 되겠는데’ 그러면 ‘됐다' `됐다' 그거 됐다 하는 것이 그거 느껴질 때에는 내려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인제 장성한 사람들은 작정하지 않고 갑니다. 작정 하지 않고 기도하러 가고, 어릴 때는 작정을 하고 가는 게 좋고. 작정을 하고 간 사람은 작정이 다 이르기, 작정이 다 차기 전에 자꾸, 내려와도 된다 하는 그게 있으니까 속지 말고 작정한 대로 시일을 채우고 내려오라 그걸 말하는 것이고.
또, 기도하러 갔는데, 기도하러 갔는데 추운 것이 물러가야 되고 또 거게서피곤한 것이 물러가야 되고 또 여러 가지 나를 끄는 근심 걱정이 물러가야 됩니다. 제일 처음에 물러가는 게 뭐이냐 하면은 내 복잡 다다한 그 모든 사건들이 물러가야 됩니다. 그게 물러가야 돼요. 그거 물러가기 전에는, 물러가기 전에는 새사람이 기도하러 간 게 아니라 옛사람 그게 지금 끌려왔기 때문에 그놈이 자꾸 가자고 지금 그렇게 재촉합니다. 이러니까 그런 모든 문제가 떠나가고 이제 주님 만나게 되면은 시일을 상관없이 이렇게 할 수 있다 말이오.
그러면, 고렇게 하는, 고렇게 기도에 들어가는 방편은 그 실상으로 말하면 뭐이냐? 고렇게 들어가는 방편은 어떤 방편이냐? 고거 여러분들이 잘 알아야 됩니다. 고 방편은 내나 또 그겁니다. 내나 또 뭐? 그거 그렇게 시일도 상관없이 피곤도 않고 춥지도 안하고 고단하지도 않고 이렇게 기도로 이렇게 시일 가는 줄도 모르고 하고 있는 고 기도에 들어가는 고 방편이 뭐입니까? 내나 그거라. 기도해 봤으면 여러분들이 겪을 거 아니라. 뭐이 그거 뭐? 내나 그거라. 뭐? 중간반 반사들 다 잊어 버렸는가배. 뭐이요? 내나 믿음이라. 이래도 믿음 저래도 믿음 장 믿음이라.
내나 믿음.
믿음이 뭐인데? 가 가지고서 성경 말씀 생각합니다. 성경 말씀을 읽든지 듣든지, 그냥 이래 하는 게 아니고 자기가 깨달을라고 알라고 믿을라고 기도하고서 자꾸 이래 생각합니다. 이 성경 말씀 생각하고 또 성경 말씀을 생각하고 난 다음에는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그 사실을 믿고 그라고 나니까 뭐이냐 하면은 나와 대조가 된다 말이오. 그라고 나니까 내 과거가 조사가 되고 현재가 조사가 되고 또 미래가 조사가 되고 자꾸 성경 말씀하고 나하고 자꾸 이렇게 대조해서 자꾸 이렇게 생각하다 보니까 고만 거게서 할 일도 생겼고 거게서 울 일도 생겼고 거게서 고만 두려운 일도 생겼고 후회 되는 일도 생겼고 조급한 일도 생겼고 막 거게 다 일어납니다.
이라니까, 일어난 그게 내게 감동되는 게 좋든지 근심이든지 두렵든지 뭐이든지 그 성경 말씀을 생각함으로 내게 자극되는 그 자극이 추위의 자극보다 강해야 이 추위 자극 이놈이 도망을 가 버립니다. 그 자극이 두려운 자극보다 이것이 강해야 그만 두려움이 물러가 버립니다. 알겠습니까? 그게 뭐이냐 하면 진리와 나와 영감과 나와 하나님과 나와 이제 주님의 공로와 나와 이렇게 뭉쳐지니까 이 뭉쳐진 거게서 뭉친 데에서 거게서 오는 그 자극이 이 세상 모든 내 우수살이 근심 걱정의 모든 사건들 복잡한 사건들 자극보다 강할 때에 그 자극이 사라지고 추위보다도 강할 때에 추위가 없어지고 또 이 모든 배고픈 거보다 강할 때에 배 고픈 게 없어져 버리고 자꾸 이래 된다 말이오. 이러니까 그렇게 하면 시일이 암만 가도 괜찮습니다. 그래 되면은 나중에 가서 인제 그만 피곤한 것도 모르고 아픈 것도 몰라.
이번에 내가 말 들으니까 이 양산동에 가 가지고서 기도하는 사람들 가운데에 ‘그전에는 참 자꾸 잠이 오고 이랬는데 이상하게도 이제는 밤새도록 해도 잠이 오지 안하더라. 밤새도록 다리도 아프지도 안하고 허리도 아프지 안하더라. 또 뭐 시간 가는 줄을 모르겠더라.’ 그렇지 안한 사람들은 곤함을 당합니다. 그러니까 고게 믿음으로서 다 고 방편이 다 이루지는 것이기 때문에 믿음만 가지면 돼요.
‘밤새도록 졸지 안하고 기도한다 그 말이 거짓말인 줄 알았는데 그 이상하게도 까랑까랑하게 하나도 졸지 안하고 밤새껏 기도하게 되고 피곤치 안하고 까랑까랑 하게 그렇게 기도가 되더라. 그거 참 이상하더라. 안 되는 줄 알았는데 나도 해 보니까 되더라.’ 그랬는데, 밤새껏 사람이 하나도 졸지 안하고 기도할 수 있고, 하루고 이틀이고 하나도 졸지 안하고 계속 기도할 수 있고 그거는, 물론 자지만 그 졸지 안하고 말이지요. 자지 안하고 피곤치 안하고 이렇게 기도하는 거.
하루밤 피곤치 안하고 계속 기도가 되는 그런 경험해 본 사람 손들어 봐요. 뻐뜩 들어 봐요. 아마 양산동에 다니는 사람은 다 그런 경험이 다 있을 것이라 말이오.
없는 사람 하나도 없을 거라. 다 있을 거라.
오늘 또 이 설교하다가 또 지금, 목적은 도달 못 하고 지금 이 모든 서론만 했습니다. 서론만 했는데. 여러분들이 기도하러 가지마는서도 그 기도하러 가는 거, 억지로, 어떤 사람은 기도하러 가 가지고서 이걸 ‘좀 사십 일을 채워야 될 터인데 내가 사십 일 기도해야 되는데’ 이래 가지고서 거기다가 보따리는 조그만한 걸 쌌지마는서도 고거 비타민을 요거 조거 비타민을 제가 거석해 가지고 사십 일 동안 고만 하면 유지할 수 있는 비타민을 딱 가지고 가서 물만 먹으면 된다고서 인제 그만 물 먹고 그래 가지고 그래, 그래 쌓으면 애 터집니다.
날짜가 안 가요. 죽을 지경일 거요. 죽을 지경.
그게, 물론 그것도 좋기는 좋습니다마는 그저 수월한 것은 이 말씀하고 나하고 또, 영감은 딴데 있지 안하고 말씀 안에 있어. 말씀하고 나하고 거석한데 그 말씀이 더 깨달아지고 더 믿어지고 더 간절해지는 그게 영감이오. 딴게 영감이 아니오.
그게 영감입니다. 말씀하고 나하고, 인제 진리하고, 말씀을 이래 듣는데 진리와 또 달라. 그 말씀이 내나 진리지마는서도 이게 ‘하, 이건 참된 이치다’ 말씀 만나고 나니까 진리 만나겠고 진리 만나고 나니까 영감 만납니다. 알겠습니까? 그라고 나서 하나님 만나. 자꾸 이래 만나 가지고서 이래 가지고 기도하다 보니까 시일 가는 줄 모르게 그래 하는 것이 그것이 그만 참 올바른 단식이요 금식입니다.
그러니까, 이제 금식도 여러 가지 목적이 있어요. 자기 이 심신에 이 심신 이놈이 자꾸 악령 악성 악습에게 자꾸 미혹을 받기 때문에 그놈에게 미혹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이 심신을 길을 들이기 위해서 단식하는 거 있습니다. 심신을 길을 들이기 위해서 단식하는 게 있고, 또 그 다음에는 그 악령 악성 악습 그놈을 쫓아내기 위해서 이제 금식 기도하는 것이 있고, 그 다음에는 주님과 결합이 되기 위해서 금식 기도하는 거 있고 각각 달라요.
그래 어제도 내가 어떤 사람하고 말했지마는서도 금식 기도 산기도 많이 한 사람은 그만 사치스러운 것이 없어져 버립니다. 사치스러운 게 없어져 버려. 또 그라고 비단요나 가마떼기나 그거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래 인제 장 하도 재미 있는 꼴 봤으니까. 이라니까 비단요 펴놓은 데는 저기 좀 누워 잤으면 좋겠다 욕심이 안 나는데 이래 떡 가서 이래 보면 햇빛이 돋으면 저 먼산에 큰 산에 이렇게 산이 비추워지면 아따 야 고게 구석에 고 풀 속에 그 새파란 풀 우거진 풀 속에 아 거기 지금, 새때기, 새때기 그놈이 막 우거졌는데 새때기 요래 조래 밀고 폭 파고 앉았으면 고거 따시게 참 기도하기 좋겠다. 인제 그 자리 생각하면 그게 비단요보다 그게 더 좋고 좋다 그 말이오.
그래 놓으니까 이거 뭐 다른 사람들은 이거 뭐 이거 뭐 지저분하다 하지만 도무지 그런 게 없습니다. 사람이, 단식을 자꾸 하는 사람들은 이 음식에 대해서 가려지는 게 없어. 뭐이든지 자기가 참 이 몸을 위해서 이래 먹지 뭐 이거다 저거다 음식에 가려지는 게 없고 또 자리에 대해서 이거는 좋다 나쁘다 그거 가려지지를 안해. 영 이상한 사람이 돼 버린다 말이오. 그만 짐승같이 돼 버려 그만. 짐승같이. 그래서 이 세상에게 구애를 받지 안하고 제재를 받지 안하고 그까짓 그런 것들을 다 발 아래 밟고 초월하는 사람이 돼진다 그거요.
또, 내일 아침에 계속합시다. 어짜든지 새벽으로 나와요. 자꾸 나오면은 배워야 되는데 오늘 아침에 그래도 지금 다, 외나 알맹이는 말하지 못했소. 자꾸, 와요.
새벽 기도 나올라 하다가, 처음에는 그래요 새벽 기도 나올라고, 처음에 아무라도 길들일 때는 다 그래요. 길들일 때 밤새도록 잠 못 자요. 갈 시간 됐는가 보니까 한 서너 시간 남았습니다. 또 누웠다가 또 갔는가 싶어 보니까 또 십 분밖에 안 갔습니다. 또 누워서 어북 이제 하마 시간 됐지 보니까 또 반 시간밖에 안 지나갔습니다. 자꾸 이래 가지고서 몇십 번 깨요 몇십 번. 그래 해 가지고 공을 들여 가지고 다 되는 것이지. ‘다른 사람은 새벽 기도 나올라 하면 술술 되는데 나만 새벽 기도 나갈라 하니까 힘이 들고 애가 드네.’ 그게 교만한 거라. 너는 별 사람이가? 저는 회개할라 하니까 힘이 들고 다른 사람은 그저 놀면서도 회개가 되는 줄 알아. 다 회개해 믿음 가지는 게 그만침 힘이 듭니다, 안 드는 게 아니고.
녜,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사업가들도 자꾸 기도하고 회개하면 사업은 자꾸 잘되고 해치는 자는 물러가고 자꾸 유익이 돼진다 그 말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