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인정 소망 행함

 

1984. 3. 28. 수새

 

본문: 요한복음 11장 40절∼44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신대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저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마르다와 마리아와 나사로는 한 형제, 삼 남매입니다. 삼 남매인데 나사로가  병들어 죽은 지가 나흘이 된 때인데 그때에 예수님은 다른 곳에 계시다가 오셔  가지고 '나사로가 어디 있느냐? 죽어서 어떻게 했느냐?' '저 무덤 갖다  장례했습니다.' '그러면 가자.' '주님이 계셨으면 죽지 안했을 터인데 지금은  무덤에 장례가 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가자' 하시니까 그들이 같이  갔습니다. 주님이 돌을 다 옮겨서 나사로를 무덤에서 그 나라의 무덤은 이렇게  굴같이 해 놓고 문을 닫아서 이래 하는 무덤이기 때문에, 문 대신 돌로 막고  이렇게 모두 흙으로 막은 그것을 '옮겨서 파 내라' 이라니까 마르다가 있다가서  '지금 벌써 나흘이 돼서 벌써 썩어서 냄새가 나고 그런데 뭐하려고 그렇게 파  내겠습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네가, 내가 늘 교훈하기를 내가 하는 말은 무엇이든지  네가 믿기만 하면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말을 늘 교훈하고 있었는데 그 교훈을  네가 기억지 않느냐?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은 무슨 말이든지 믿기만 하면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게 할 수 있도록 모든 한 말이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내가 말하지 안했느냐 하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어떤  말이든지, 너거 의견에 맞든지 안 맞든지 또 너거 판단에 아, 이 말씀은 되겠다  안 되겠다 그렇게 판단하는 너거 판단에 맞지 아니하든지 맞든지 그런 것은 다  상관없고 다만 내가 너희들에게 하는 말은 무슨 말이든지 너희들이 아, 이  말씀은 우리가 이대로 순종만 하면 이루어진다 하는 그것만 너거에게 필요하다.

필요해서, 내가 하는 말은 무슨 말이든지 너희가 어렵든지 쉽든지 뭐 역사에  없는 일이든지 어떤 일이든지 어렵고 쉽고 크고 작은 것이 상관이 없다. 나는  하나님이시요 모든 것을 없는 가운데서 창조한 전지전능의 삼위일체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너희들이 삼위일체의 하나님의 그 신실하심도 믿어야 되고.

능력도 믿어야 되고 지혜도 믿어야 되고. 사랑도 믿을 때에 역사하신다 그런  말씀을 그때는 당시에는 많이 했었는지 안 했었는지 그것은 우리가 모릅니다.

왜? 요 성경에 기록한 대로 고대로만 말했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나 하신 일을 다 기록할라면 온 세상에도 둘 곳이 없는 그 수다한  말씀을 축소해서 신약 요 성경에 말씀했고 또 구약 성경에 말씀했고, 요 간단한  그저 신구약 성경에 말씀해 놓은 그 말씀이지마는 그 내용인즉 온 세상에 둬도  둘 곳이 없을 만침 많다는 말씀을 했기 때문에 이때도 그들에게 늘 따라다닐  때에 어떻게 무슨 말씀을 하셨든지 지금 내가 여기에 성경에 기록되져 있지  않는, 네가 무엇이든지 어렵고 쉽고 크고 작은 것은 상관없고 다만 내가  너희들에게 말한 것은 어떤 말이든지 너희들이 '아 이 말씀은 참되다.' 인정하고  고대로 소망하면서 순종만 하면 다 된다 그것을 늘 말씀하지 아니하였느냐?  무엇이든지 너희들이 내가 한 말은 어떤 말이든지 내가 한 말을 너희들이 그저  알고, 내가 한 말을 너희들이 알고, 말씀한 대로 고대로 될 것을 인정하고  소망하고 고대로 행하면 다 된다. 말하지 안했느냐? 이 말씀을 하시니까  마르다가 그때사 깨닫고 빨리 돌을 옮겨 놨습니다. 돌을 옮겨 놓으니까,  나사로는 베로 동여서 그 무덤 안에 장례 돼 가지고 참 썩은 냄새가 콱콱 날  만치 그렇게 벌써 썩기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나사로야' 이렇게 부르시니까 나사로가 대답하면서  살아났습니다. 그때에 그렇게 무덤을 헐어 놓고 아버지에게 기도를 했습니다.

무슨 기도 했는고 하니, '늘 아버지는 내 말을 들으시고, 아버지의 뜻이 내  뜻이요 내 뜻이 아버지 뜻이요, 이러기 때문에 아버지의 말씀은 곧 내가 한  말씀이요 내 말은 내 말이 아니라 아버지의 말씀이요' 이렇게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같이 말하시는 이것을 말하면서 '내가 이 말을 하는 것은 이 둘러선  무리들로 하여금 저희들이 내가 아버지에게 이렇게 얘기하는 것과 또 내가 나  혼자 독단으로 하는게 아니라 삼위일체의 그 하나님이 함께 말씀하신다는 그  사실을 저희들이 믿어서 내 말이 아버지의 말이 요 아버지 말이 내 말이요 하는  이것을 저희들로 하여금 알고 믿도록 그렇게 하기 위해서 내가 이렇게  말합니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 말은 아버지에게 한 말씀이나 곧 거기에 둘러  있는 자들에게 알도록 믿도록 하기 위해서 그런 말을 합니다. 그런 말을 옆에  사람이 없으면 아버지에게는 말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 소리를 할 때에 나사로가 죽은 가운데에서 살아 나왔습니다.

살았는데, 베로 동인채로 그냥 그대로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풀어 줘라.

풀어줘서 걸어다니도록 풀어 줘라.' 풀어 주니까 나와서 걸어 다니고 그들이 참  심히 기뻐했습니다. 기뻐서 큰 잔치까지 하고 그렇게 했습니다.

 이것이 하나의 표적인데, 표적, 표적 중의 하나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에 표적을 행하신 중에 하나로 들어 있는 표적입니다. 그러면, 이 표적은  우리가 말씀만 듣고는 잘 인정되지 안하고 알지 못하는 것을 알도록 하시기  위해서 이렇케 이 표적을 행하신 것인데, 썩은 나사로가 이렇게 살아나는 거와  마찬가지로 주님의 말씀하신 그 말씀을 우리가 첫째는 알고 무슨 말씀인지 주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신구약 성경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은 전부 우리에게 개별적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신구약 성경은 택한 자들에게 다 개별 개별로 말씀하신 말씀이요 또  며칠 전에도 말씀하신 것과 같이 주님이시요 성부시요 성자시요 성령이신,  성부시요 성자시요 성령으로 이렇게 위는 삼 위로 나눠 말하지마는서도 내나  성부요 성자요 성령이신 성령님이 이 성경 안에 내재하셔 가지고 늘 같이  역사하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 말씀을 내가 듣든지 읽든지 할 때에는 주님이  직접 내게 말씀하신다는 이 사실을 우리가 인정해야 합니다.

 옛날 근 이천 년 전에 기록한 문서를 우리가 읽는게 아니고, 사람이 기록한  그런 문서는 기록한 그것을 그때에 기록한 그 말을 사람들이 지금도 읽을 수  있고 또 강론도 할 수 있지마는 이 성경 말씀은 언제든지, 그때 기록해서 주신  말씀이지마는서도 이 말씀을 택자들이 읽을 때에는 같은 성구를 열 번 읽으면 열  번. 백 번 읽었으면 백번, 천 번 읽었으면 천 번, 읽을 때마다, 읽을 때마다  보이지 않는 주님이 직접 사람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지나가는 행인을 대접했더니마는서도 나중에는 보니까 천사요 또 나중에는  보니까 '나는, 내 이름은 여호와로라' 그렇게 주님이 말씀을 했습니다.

 이러니까, 이렇게 우리가 문서요, 문서로 기록한 성경이요. 이 성경 인데,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요. 이 말씀은, 직접 내가 읽을 때에는 주님이 나에게  직접 나타나셔 가지고서 내게 대화해서 말씀하시는 말씀입니다. 내가 같은 한  성구를 천 번 읽어도 천 번 읽을 때마다 주님이 직접 나에게 말씀해 주시는  말씀입니다. 요것을 여러분들이 믿어야 합니다. 또 설교를 들을 때도, 마귀가  하는 설교도 있지마는서도 하나님의 이 성경말씀을 바로 증거할 때에는 사람이  증거하지마는서도 실은 그 속에는 하나님이 친히 직접 말씀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읽든지 듣든지 또 하나님의 말씀을 길을 가다가서 이렇게  생각합니다. 생각하는 그것이 또 하나님이 나에게 직접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신 성령님이 중생된 자의 영을 통해서 자기의 심신에게 직접  말해 주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직접 이 시간에 직접 지금 말씀하고 계시는 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이것을 모두 믿지 않는 데에서 능력이 나오지 안하고  믿지 않는 데에서 말뿐이고 그 사람이나 그 행위가 변화되지 안하고 능력이 와서  역사하지를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며칠 전에도 말했지마는 제가 여기 부산 와 가지고서 한 십 년  될 때까지, 제가 한 삼십 몇 년 됐는데 십 년 될 때까지는 늘 말했습니다.

새벽에나 오전에나 설교할 때에 사람들이 그걸 인식하지 안하고 있기 때문에.

'오늘 이 시간에 찾아오신 주님은 요한 복음 11장 40절 이하에 있는 말씀을  가지고 오셔서 말씀해 주시겠습니다.' 내가 이렇게 꼭 말을 하고서 그저  사석에서든지 공석에서든지 그렇게 하나님 말씀을 증거했습니다. 왜? 그  증거하는 것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치 않고 또 옛날 기록한 그  문서를 지금 재독하고 있는 걸로 그렇게 생각하고 하나님이신 주님이 작접 이  시간에 말씀하시는 이 주님과 직접 대화하고 있고, 주님 말씀을 직접 듣고 있는,  직접 말씀하시고 그때에 나는 그 말씀을 듣고 주님께 지금 또 기도하는 것은  직접 주님에게 지금 말하고, 주님으로 더불어 직접 주고 받는 이 사실을  사람들이 자기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인정하지 않는고로 그런 말을 늘  했습니다. 그걸 증거를 했습니다. 증거를 해서 저를 아는 사람들은 욕하는  사람들이든지 저를 알고서 또 인정하는 사람들이든지 누구든지 저를 아는  사람들은 그것을 다 알게 됐습니다. 조롱하는 사람은 아, 그 사람은 설교할 때에  꼭 '주님이 이 시간 무슨 말씀을 가지고 찾아오셔서 지금 말씀하십니다.' 그런  말 한다고서. 조롱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고, 또 그 말 듣고 과연 주님이 직접  이 시간에 이 말씀을 가지고 사람을 통해서 말씀하시니 그 사람은 주님이  사용하는 마이크가 됐든지 스피커가 됐든지 그리 안하면 주님의 지체가 됐든지  돼서 지금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라 그런 것을 사실을 증거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지마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 할 때에 어떤  사람이 기도하기를 '주여, 주님의 종을 통하여 말씀하실 때에 주님이 그 종은  기계로 쓰시고 주님이 직접 말씀해 주시옵소서' 이런 기도를 대표 기도를 시킬  때에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표 기도를 시킬 때에 이런 기도를 하는 사람이  있을 때에는 나는 내 속으로 반드시 재벌 기도를 합니다. 안 하지 않습니다.

'주님이여, 나는 참 죄인이지마는서도 주님의 대속의 공로로 인해서 주님의  지체가 됐습니다. 흠과 점과 티와 주름 잡힘이 없는 지체가 됐습니다. 깨끗하고  온전한 자가 됐습니다. 주님의 피공로로 지체가 됐고 주님의 몸이 됐습니다.

주님의 지체를 삼으시고 주님의 피로 값주고 산 주님의 지체인 저를 통해서  주님이 말씀해 주시옵소서' 그렇게 고쳐 놓고 아멘 하지 그 기도에 내가 아멘을,  하지 않습니다. 아멘 해 본 일이 이제껏 한 번도 없습니다. 아멘 하지 않습니다.

속으로 그래 기도하고 그랍니다.

 그러기 때문에 고게 사실입니다. 고게 억지로 그라는 것이 아니라 사실이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하는 것도 눈으로 볼 수 있게  함께 있는 다는 것이 아니고 내나 그리스도의 영, 그리스도의 영 예수님의  신성의 영이, 신성이 영으로 우리에게 역사하신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내가 몇 번 보든지 듣든지 어짜든지 할 때에 주님의 말씀을  내가 들을 때는 주님과 직접 대화라는 것을 우리가 믿어야 하고 대화하고 있는  것을 믿어야 하고. 믿을 때에 요 말씀을 참되다 인정하고 그러면, 주의 말씀을  들어서 알고, 아는 대로 인정하고, 인정하고 난 다음에는 요대로 되리라 하는  것을 소망하고. 소망 안 하면서 하면 소용없지마는 소망하고 행하면 돼  버립니다. 고대로 됩니다. 시간이 좀 지루하고 혹은 빨리 되는 것 늦게 되는  것만 있지 틀림없이 고대로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첫째  아는 것이 첫째 순서요 고라고 난 다음에는 둘째는 인정하는 것이 둘째 순서요.

셋째로는 고대로 될 것을 소망하는 것이 셋째 순서요, 넷째에 고대로 행하면  됩니다. 요라면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내가 하지 안했느냐?' 하나님의  영광을 본다 그 말은 믿으면 모든 사람들이 '아. 그런 일이 어디 있겠느냐?'  이루어지니까 모든 사람이 놀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데서 그치고, 고장이 어디 났는고 하니 인정하지  않는 요것이 고장이고. 소망하지 않는 요것이 고장하고 행하지 않는 것이  고장인데 제일 고장은 어데서 고장이 나는고 하니 인정하지 않는 요것이 제일 큰  고장입니다. 고 다음에 어려운 고장은 소망하지 않는 요것이 둘째 고장이요.

셋째 고장은 행하지 않는 것이 요게 셋째 고장입니다. 그런데, 요 인정,  인정하고 소망하면 행함이라 하는 것은. 저절로 됩니다. 인정하고 소망하면  행함이라는 것은 저절로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신구약 성경에 기록한 말씀은 이게 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직접  우리에게 말씀해 주셨는데 그때 그때 그 현실에서 요 말씀을 생각 하면 주님이  직접 나에게 말씀합니다. 전능자가 나에게 말씀하고. 사랑하는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말씀하는 말씀이기 때문에 주님이 내가 말씀을 생각할 때에는  '아, 이 말씀을 내가 생각하게 된 것은 마귀는 생각 못 하게 하는데 주님이  나에게 직접 나에게 말씀해서 나로 하여금 깨닫고 이 말씀을 알게 하는  것이로구나. 주님이 직접 나에게 지금 말씀하고 계시는구나.' 고라고 난 다음에  인정하고. 소망하고, 행하면 다 됩니다. 이 계약 말씀대로 다 됩니다. 되면 될  때마다 그렇지 안했습니까? 사람들이, 보고서 기이히 여기고 다 놀래면서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이라. 참으로 하나님은 살아 계신다' 다니엘도 그가  하나님 말씀을 알았고 인정했고 소망하고 행하니까 그만 하나님의 능력이  나오니까 '야, 다니엘의 하나님이 참 제일 위대한 신이다. 그 신을 바라보는  자는 결단코 후회될 일이 없고 부끄럼을 당하지 않는구나' 이래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돌렸습니다.

 알고, 인정하고, 소망하고, 행할 때에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났고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났고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났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니까,  그렇게 알고 인정하고 소망하고 행한 고 사람도 영광스럽습니다. 우리가 우리  영광을 취할라 하는 것은 바보요 어리석은 일이오. 하나님 말씀을 알고 인정하고  소망하고 그대로 행할 때에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니까 자연히 영광이  드러납니다. 영광이 드러나요.

 이러니까, 나면서 앉은뱅이 된 그 사람을 베드로와 요한이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라.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어라.' 이것이 뭐냐 베드로가 알았고, '이렇고 이럴 때에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씀하셨기 때문에 내가 인정하고 소망하고 이제 명한다.' 그러니까, 베드로가  할 일 다 했다 말이오. 베드로는 이 네 가지 다 했소. 이라니까 당장 병이  나아서 성한 사람 되지 안했습니까? 이라니까, 모든 사람들이 우우 막 몰려  오면서 '아, 저거 어떤 사람이기에 저러냐? 이래 가지고서 베드로와 요한이를  이렇게 신처럼 이렇게 높이 이라니까, 너무 영광스럽게 자꾸 이렇게 높이니까  베드로가 있다가 말하기를 '우리 개인의 경건을 가지고서 이렇게 병을 낫게 한  것처럼 너희들이 말하느냐? 하나님의 종, 하나님의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 이렇게 되었다. 그런고로 너희들이 이런 것을 보아서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으시니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고대로 인정하고 고대로 소망하고  고대로 행하면 된다.' 영광을 보리라 하는 것은 그 영광을 말하는 것이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요 네 가지 하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고, 하나님의  권능이 드러나고, 하나님의 두려움이 드러나고, 하나님의 주권이 드러나고  하나님이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심이 드러나고, 대주재이심이 드러나고,  하나님이 제일 크신 자존자이심이 드러나고 그렇게 드러날 때에 '아, 하나님은  이런 하나님이라.' 모든 사람은 놀래고 영광을 돌리고, 그라고 난 다음에 그로  인해서 우리는 영광스러워진다. 그러니까 그로 인해서 우리를 또 영광스럽게  모든 사람이 영광스럽게 합니다. 그럴 때에 영광을 받지 않기 위해서, 예수님은  아버지로 인해서 영광이 될 때에 영광을 안 받을라고, 억지로 왕을 삼을라고  이라니까 산으로 피했어.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뜻을 인정하고 소망하고 순종할 때에는 뭐  당장 영광스러워집니다. 자꾸 영광스러워져. 영광스러워 질 때에 그 영광을 안  받을라고 자꾸 피합니다. 껍데기를, 죄 짓는 일은 못하지마는서도 껍데기를  얄궂게 이래 가지고서 영광을 돌리지 못하도록. 그러니까 설교하고 난 다음에  영광스러워질까봐 얄궂게 모든 태도나 뭐 이렇게 하는 것이, 이렇게 훌륭하지를  안하니까, '아, 설교할 때. 그 사람 설교할 때는 은혜를 받았는데 나중에 보니까  시시 하이 아무 것도 아니로구나.' 옷도, 그렇고 뭐 사람 뭐 말하는 것도  그렇고, '말하는 것 보니까 아주 무식하게 더듬더듬거리며 말 한마디도 못 하고'  이래 가지고, 자기에게 무슨 풍채가 있어 가지고서 오히려 영광을 하나님에게  돌리지 안하고 그 영광을 자기에게 돌릴까 싶어서 이거 영광을 돌리지 못하도록  이렇게 껍데기를 허무하게 하려고 하는데, 어떤 사람들은 한 가지 해 놓고 난  다음에 영광스럽게 하려고 막 자기를 떠들면서 '날 이렇게 알아주십시오' 이래  가지고 자꾸 이래 떠드는 사람은 그만 탁 깨져 버리고 맙니다. 그래, 알고  인정하고 소망 하고 순종하면 당장에 영광스러워지는데 영광스러워질 때에 그  영광을 자기가 영광스러워, 다 안 받을라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라.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

 그래서 그때에 ○○ 교파에 제가 있을 때에 전국 학생 신앙 운동에 표어를  쓰기를 '영광은 하나님에게' 하는 표어를 그때 붙이라 해 가지고서 그때 붙였던  것입니다. '영광을 하나님에게' 자꾸 가르쳐 쌓으니까 그때 그랬는데 지금은  ○○ 교파에서 '영광은 하나님에게' 그때 표어 든 것을 아마 기억하고 있기는  있을 건데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에게 돌리고 '아 나는 당치 앉습니다.' 하나님께  돌릴 때 자꾸 자기는 영광스러워지는데 그만 영광을 자기가 따 안으면 그때부터  그만 천해진다 이거요. 알겠소? 요거 똑똑히 알아야 돼요. 천해져 버려요. (○○  조사님, 속잠 자고 있네. 못 써 그라면. 능력이 와야 돼.) '영광은 하나님에게  돌리라.'  그러니까, 자, 오늘 아침에 배웠는데 요거 언제든지 어데 가든지 요거 제일  요긴한 것이요.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 이신' 예수를 바라보자.' 주님은  믿음의 주님이십니다. 믿음이라 하는 것은 요 네 가지가 합해서 믿음입니다.

첫째 뭐이요? 아는 것, 둘째? 인정하는 것, 셋째? 소망하는 것, 넷째? 행하는  것. 요 네 가지를 합해서 한 말로 믿음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믿음.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나도 보고 다른 사람에게도 보여 주기도 하고, 나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 주니까 다른 사람이 나도 영광스럽다  합니다. 나를 영광스럽게 존대합니다. 천사같이, 눈이라도 빼 돌라면 빼 줄 만치  천사같이 영광스럽게 여깁니다. 그럴 때에 그 영광을 피해서 안 받을라 하면  자꾸 영광스러워지고. 권위가 가치있고, 그 영광을 제가 받고 '에헴' 하면서  아주 우쭐해져 버리면 그걸로 끝나 버리고 만다 그거요.

 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이제는 줄어서 장로님들은 기도하러 오신 분이 세 분인데 다른 사람들은 아마  딴 데서 하고 지금 되게 바쁜 모양이라. 되게 바빠도, 바빠도 자기 처소에서  하는 것보다도 그래도 아침에 새벽에 한번, 뭐 여기, 여기 무슨 신이 있는 것은  아니지마는서도 그래도 하나님이 정해 준 장소이기 때문에 새벽에 예배당에 와  가지고서 하나님 만나서 그날 첫 시간을 하나님 만내 가지고 '주여, 내가 이날,  내가 처음으로 만난 이날 주님 앞에 지금 엎드렸습니다. 오늘 어떻게 할까요?'  이렇게 바쁠수록, 바쁠수록 주님 앞에 이런 것 저런 것 다 의논을 해 가지고  주님 앞에 확실한 증거를 받고 확실히 약속을 받고, 계약을 받고. 하나님의  도와주실 계약을 딱 받고 그라고 난 다음에 나서서 일하고, 또 바쁠 때 일하고  난 다음에 저녁에 한번 와 가지고 하나님 앞에 하루 종일 한 일을 계산을 한번  대 가지고 하는 것이, 그러기에, 날 시작을. 그 날의 시작을 예배당에 와  가지고서 주님하고 한번 의논하고, 또 그날 마친 것을 또 예배당 와 가지고 한번  또 의논해서 결산 지우고 요렇게 하면 그 신앙이 자꾸 새로워지고 늙어지지  않습니다. 쇠해지지 않습니다. 이러니까, 기도회에 등록하고 기도하는 사람도  예배당 여기 와서 하는 것이 좋을 겁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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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4 안팎에 눈/ 사도행전 8장 6절-8절/ 860319수새 선지자 2015.12.04
2503 앉은뱅이 병고침의 표적/ 사도행전 3:11절-16절/ 790814화후집회 선지자 2015.12.04
2502 앉은뱅이의 표적/ 사도행전 3장 1절-10절/ 820825수야 선지자 2015.12.04
2501 앉은뱅이의 표적/ 사도행전 3장 1절-13절/ 1982년 35 공과 선지자 2015.12.04
2500 새알고 실행한 만치 변화/ 요한복음 6장 41절-58절/ 19861119수새 선지자 2015.12.04
» 알고 인정 소망 행함/ 요한복음 11장 40절-44절/ 840328수새 선지자 2015.12.04
2498 알려 주신 것을 부인하는 것이 망함/ 마가복음 10장 46절-52절/ 870301주새 선지자 2015.12.04
2497 알맹이 사랑과 껍데기 사랑/ 누가복음 10장 25절-28절/ 880722금야 선지자 2015.1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