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을 죽이는 법

 

1986. 8. 20. 수밤

 

본문:디모데전서 6장 17절∼19절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오늘 디모데전서 6장 17절, 이제는 우리가 어린아이의 때를 버리고 다소 장성해졌으니까 꼭 성경 말씀을 근거해 가지고 그렇게 상고해서 성경대로 깨닫고, 성경대로 지식하고, 성경대로 비판하고 평가하고, 성경대로 소원하고 계획하고, 그래서 성경대로의 행위를 해야 되겠고 성경대로의 사람이 돼야 우리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참 지극히 큰 구원을 약속 받았습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실려고 사람되어 오셔 가지고 세 가지 면으로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이 구원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은 사람이 측량할 수 없는 참 지극히 큰 무한의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셨습니다. 엿새 동안에 이 우주를 만드시고 영계를 만드신 그 지극히 크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창조주가 피조물인 사람 되어 오셔 가지고 우리를 죄에서 건지시기 위해서 우리 대신 형벌 받아 죽으시고, 또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세우시기 위해서 우리 대신 하나님의 그 무한한 법을 다 대신 실행하여서 우리에게 칭의를 입혀 주시고, 또 하나님과 우리와 원수된 그 원수된 것을 화목하기 위해서 죽기까지 하셔 가지고 화목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지극히 큰 사랑과 사랑의 희생을 하셔 가지고 우리에게 큰 구원을 주셨는데 참 이 구원은 우리가 얼마나 뭐 감사해야 될란지 말로 다 할 수 없는 아무 부모 형제나 누구도 할 수 없는 큰 사랑의 희생을 하셔 가지고 우리에게 큰 구원을 주셨습니다.

우리 구원은 어떤 구원인고 하니 하늘의 영물들도 많고 이 우주에는 피조물들이 심히 많습니다. 영계나 이 우주에 모든 피조물 위에 가는 그 위치를 가진 존귀한 구원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이 제일 크시고 높으시고 그다음에는 예수님의 대속을 입은 이 구원 받은 우리들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대속으로 얻은 생명은 영원히 늙지 안하고 쇠하지 아니하고 죽지 않는 영생하는 생명을 우리가 받아서 이 생명은 우리 영은 벌써 이 생명 받아 가지고 영생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영은 영생하고 있고 우리 마음과 이 몸이라는 육은 아직까지 이 구원을 받기 시작을 하고 있고 다 받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면 이 구원을 받기 시작해서 어떤 사람들은 이 구원을 한 현실도 허비하지 안하고 이 구원의 가치를 깨달아서 자기의 소유나 몸이나 생명을 다 바쳐서, 이 구원을 있는 힘 다 들여 가지고 이 구원을 이루어 가고 있는 그런 성도들이 많고,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마귀에게 유혹 받아서 마귀가 없어질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 우리는 오늘 세상을 떠나고 하늘나라 갈란지 언제 이 세상에서 떠날란지 참 이사를 갈란지 모르는 이 세상을 떠날 세상과 떠날 세상에 두고 갈 것 이런 것들만 마귀란 놈이 자꾸 우리에게 귀하다고 유혹을 시켜서 여게 탐심을 가지고 지극히 큰 영원한 구원은 이루는 데에 등한히 하고 날마다 자기를 속여서 한 시간 속으면 한 시간 해당된 이 심신의 실력이라 하는 기능은 멸망받고 맙니다.

이러니까 우리는 한 시간이고 십 분이고 우리 현실이라는 시간은 자기의 마음이나 몸의 실력이라는 것을 영생하는 실력을 만드느냐 영원 멸망하는 실력을 만드느냐 하는 그것이 둘 중에 하나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는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온 천하를 얻는 것보다 네가 이 한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지켜서 구원 이루는 것이 그것이 복되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천하보다 가치가 큰 것이 우리의 심신의 실력이 영생하는 실력으로 이렇게 속량 받는 이것이 가치가 큰데 이것은 가치를 깨닫지 못하고 썩어질 이 세상과 두고 갈 세상의 것들 이것만 마귀의 유혹을 받아 가지고 탐을 내 가지고 거게서만 항상 머물고 세월을 보내고 마는 그런 것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안타까와서 성경 말씀과 하나님의 종들과 또 영감과 우리에게 어떨 때는 징계를 주시고 이래 가지고 자꾸만 구원을 이루도록 이렇게 할라고 애를 씁니다.

과거 에덴동산에 그 하와가 마귀란 놈에게 꼬임 받고 보니까 선악과가 그렇게 보배고 가치가 있어서 선악과 그거 안 취하면 못 견디겠다 싶었지만 취해 보고 나니까 그다음에 사망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이 미리 ‘사망되니까 그건 취하지 말아라’ 했는데 마귀에게 꼬임 받고 보니까 보기에 너무 좋아서 취하고 보니까 영원한 멸망받은 것이 선악과 먹은 것 아닙니까? 또 노아 홍수 때도 모든 사람들이 저 좋아하는 대로 제 욕심대로 하다가 영원한 멸망을 받았습니다. 영원한 멸망을 홍수 속에서 매장 당하지 안했습니까? 이래도 매장당하는 그 시간까지 마귀가 꼬우니까 매장당하고 말 그거 이 세상 것 그것만 보고서 탐을 내 가지고 제 욕심 제 생각대로 하다가 홍수 속에 매장당하지 안했습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님이 구름 타고 올 때에도 그와 같다고 말씀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이렇게 지극히 큰 구원이 있는데 이 구원은 등한히 여기고 마귀에게 꼬임 받아 가지고 이 세상 이런 것 저런 것이 필요하고 중요하다고 해 가지고 거게다가 막 심신을 기울여 가지고 이렇게 하기를 노아 때와 같이 예수님이 구름 타고 오셔서 지금 온 우주에 불이 붙은 때 그때사 후회를 하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때와 같다고 했습니다.

이랬는데, 오늘 밤에 구원 얻는 그 길을 간단하게 보조가 될 수 있는 것을 증거해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 세 가지 대속의 공로를 성경에 말하기를 피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피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실 때에 흘린 피이기 때문에 그 피는 사죄를 위하고 칭의를 위하고 화친을 위해서 흘리신 피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한 말로 예수님의 피라 이랬습니다.

피와 성령님과 진리로 우리 영은 중생했습니다. 중생이라 말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 그말입니다. 우리 영은 예수님의 피와 성령과 진리 이 세 가지 능력으로 살아났는데 이 살아난 이 생명은 다 영생하는 생명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영은 영생하는 생명으로 살아났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살 때에 죄와 의와 하나님과의 그 관계가 완전 해결이 됩니다.

예수님의 피로 산다 말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었으니 이 대속의 공로를 벗지 안하고 대속의 공로를 입고 대속 받은 자기인 것을 깨닫고 대속의 공로를 저버리지 안하고 사죄와 칭의와 화친의 예수님이 대속을 주셨으니 나는 죽어도, 어려워도, 괴로워도, 고문과 고형이 있어도, 어떤 일이 있어도 예수님의 이 세 가지 대속을 벗지 안하고 대속을 받은 이 지극히 큰 사랑의 구원을 받았으니 주님이, 하나님이 죽기까지 하셔 가지고 우리에게 이 구원 주셨는데 우리가 어렵다고 이 세 가지 대속을 벗을 수 없다 하는 요 결심을 가지고 대속을 벗지 않는 사람은 성신의 감동대로 살 수 있습니다.

벗지 않고 성령의 감동대로, 또 성경 이 진리대로 요렇게 살면, 우리 심신이 한 시간 요렇게 살면 한 시간 산 그 심신은 다 영생하는 기능이 됩니다. 또 십 분 살았으면 십 분 산 고거는, 십 분 산 그 기능은 영생하는 기능이 됩니다.

일 년을 이것을 잊어버리고 일 년 내내 땅의 것만 보고 살고 예수님의 피와 성령과 진리를 버리고 땅의 것만 생각하고 인간들의 생각, 인간들의 말, 제 욕심, 제 주장대로 일 년을 살았으면 일 년 산 마음과 몸의 기능은 완전히 영원한 멸망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일 년 산 거는 헛일입니다. 일 년 산 그 기능은 영원한 멸망을 받았습니다.

그러다가도 또 자기가 깨닫고 ‘이제는 피와 성령과 진리로 살겠다’ 하고서 피와 성령과 진리를 배반치 안하고 어떻게 어렵다 해도 진리대로 살고, 영감대로 살고, 예수님의 대속으로 사는 거 이 셋은 하나입니다. 진리대로 살면 영감대로 사는 거 되고 진리와 영감대로 살면 예수님의 피로 사는 거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의 피는 진리와 영감이요, 진리는 영감과 예수님의 피공로, 이 셋은 하나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피와 성령과 진리로 이 세 가지로 살면’ 하는 것은 세 가지 사니까 하나로 살고 또 하나로 살고 또 하나로 사는 게 아니라 하나로 살면 세 가지로 사는 게 됩니다. 이 셋은 합하여 하나라고 성경에 말했습니다.

이러니까, 이렇게 우리가 현실현실 생활을 하면 한 시간 살았으면 한 시간 산 것은 지나갔지마는 그 한 시간 살 때에 역사한 마음과 몸의 기능 그것은 그만 영생이 돼 버렸습니다.

그 한 시간 살면서 심신의 기능이 자기 욕심대로 인간의 욕심대로 땅의 것을 보고 하나님의 진리와 영감과 대속의 공로를 벗어버리고 한 시간 살았으면 한 시간 산 심신의 기능은 둘째 사망으로 영원한 사망을 받게 됐습니다.

이러니까, 사람들은 눈이 어두워서 자기 앞에 돈이나 집이나 이런 것들이 없어지면 없어지는 줄을 알고 직장 없어지면 없어지는 줄로 이렇게 알고 자기의 이 몸의 기능과 마음의 기능 이것은 영원히 가지고 있을 참 보배 중에 보배인데, 자기 몸 밖에 억만 금이 있어도 자기 몸만 합니까? 자기 몸의 기능이라 하는 이것은 참 영원히 보배인데 이 보배를 하루 살면 하루 산 것만치 하루 그 날 산 기능은 영원히 멸망받았고 십 년 살았으면 십 년 산 그 기능은 영원히 멸망받았고, 어떤 사람은 한 시간도 허비하지 안 하고 그 사는 생활에 심신의 기능이 세상대로 살지 안하고, 이 만물보다 거짓된 자기 마음대로 살지 안하고, 자기 중심인 원죄와 본죄대로 살지 안하고 진리대로, 영감대로, 예수님의 대속의 피공로대로 요렇게 심신의 기능이 살았으면 요 현실에서 이 세상과 자기 주장대로 살면 영멸이 되고 요 현실에서 진리와 영감과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대로 살면 그것이 영생이 됩니다.

영생이 되나 영생 얻는 것도 눈에 안 보이고 멸망하는 것도 눈에 보이지 안하고 다만 돈이나, 뭐 집이나, 직장이나, 공부나, 지식이나 이런 것들은 썩을 것들인데 이것만 보이니까 이거는 없어지고 있는 것을 알고, 많아지고 적어진 것을 알지마는 자기의 심신의 기능이 영생의 기능으로 많이 됐나 적게 됐느냐 하는 그것은 눈이 어두우면 모릅니다. 모르니까 이거는 예사로 여깁니다.

그러나, 눈이 밝은 사람들은 압니다. 눈이 밝은 사람들은 알기 때문에 자기의 심신의 기능도 죽는 데 이르지 않도록 영생하도록 할라고 뭐 돈이니 명예니 지위니 생명이니 돌보지 않습니다. 생명이 끊겨진다 할지라도 심신의 기능을 영생에서 뺏기지 안할라 합니다.

이렇게 하는 사람들은 한 자리 같이 있으나 하나는 데려감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 당한다고 말씀하신 대로 같이 있으나 사람이 외모는 같지마는 영원한 하늘나라의 가치는 억억억만 배 층도 더 됩니다.

이러니까, 그렇게 이 심신의 기능 구원을 알고 손해보지 안하고 이 구원을 이룬 사람들은 다른 사람 이룬 것도 압니다. 보면 압니다. ‘저 사람은 심신의 기능은 다 죽여버리고 돈만 가지고 있구나’ ‘심신의 기능은 다 죽여버리고 없어질 마귀 지식으로만 가득 차 가지고 있구나’ ‘저 사람은 영생하는 심신의 기능은 다 없애버리고 세상에 이런 권세나 지위나 썩어질 것만 잔뜩 탐하고 있구나.’ ‘저 사람은 사람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마는 그 사람은 영생하는 심신의 기능을 하나도 손해보지 안하고 착착 다 이루어서 그 심신의 기능이 다 영생의 기능이기 때문에 이다음에 부활하면 그 사람의 부활의 영광이라 하는 거는 측량할 수 없게 된다’ 하는 그런 사람을 압니다.

이러기 때문에,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 한 자리에서 같은 사람을 만나도 자기 구원이 된 것대로 어떤 사람은 영의 사람을 가치로 여겨서 존귀히 여기고 어떤 사람은 육의 죽은 자를 가치로 여기고 이래서 시편 15편에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구원을 잘 이루는 사람을 존귀히 여기고 이 구원을 이루지 안하고 땅의 것만 본 그런 사람은 멸시를 한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 구원을 이루는 데는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인고 하니 우리가 장생골 집회에서 잘 들었습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뭐이 제일 중요하냐? 피와 성령과 진리로 내 마음이 행동하고 내 몸이 행동하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것이 새사람으로 사는 것이요 이것이 영생하는 생명으로 사는 것입니다.

피도 전능의 능력을 가졌고, 영감도 전능의 능력을 가졌고, 진리도 전능의 능력을 가졌습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이 세 가지로 사는 생활은 전능의 능력으로 살았고 완전 능력으로 살았기 때문에 마귀나 죄나 사망이나 그런 것이 해하지를 못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중생된 영과 성령과 피와 진리 이 넷이, 피 성령 진리 중생된 영 이 넷이 우리 마음에게 이 넷과 합해서 이 넷의 능력으로 살자, 이 넷의 능력으로 살자, 넷의 능력으로 살자 이랄 때에 우리 이 심신의 그 실력이라 하는 기능이라 하는 것이 이 네 가지로 살면 산 것만치 다 영생돼 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그때에는 내 옆에 악령, 악성, 악습, 이 세상 이 넷이 들어서 또 오른편에 피, 성령, 진리, 중생된 영 이 넷으로 합작돼 살지 못하게 하고 살면 죽는다고 자꾸 꾀워댑니다. 꾀워대면서, 누가 꾀웁니까? 누가 꾀웁니까? 넷이 꾀웁니다. 넷 중에 하나는 뭐입니까? 악령은 마귀입니다. 악성은 우리 속에 원죄라는 자기 중심, 자기 위주의 원죄입니다. 또 악습은 자기 중심 자기 위주로 죄 지어 놓은 습성, 못된 습관, 악습, 습성, 옛날 버릇, 그 습성, 또 하나는 이 세 가지 합해 가지고 세상된 것 세상하고 이 넷이 우리로 하여금 오른편의 넷으로 살지 못하게 합니다.

오른편의 넷으로 살지 못하게 왼편 요것이 이랄 때에 나는 그 사이에 끼어 가지고 왼편에 넷, 세상, 악령, 악성, 악습 요 넷 요놈이 세상을 보여 주면서 거짓말 하고 자꾸 꼬와서 이게 ‘네가 이 피와 성령과 진리와 중생된 영대로 네가 신앙 생활 하면은 이거 다 절단난다, 네가 이거는 가정이 절단난다, 네 몸이 절단난다, 직장이 절단난다, 공부 못 한다, 오만 것 절단난다.’ 요렇게 이게 꼬우고 하니까, 그게 아무 권리가 없는 건데, 권리가 없는 건데.

이러니까 ‘그라면 그만 할 수 없다,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도 벗고, 영감도 벗고, 진리도 벗고, 중생된 영도 다 벗어버리고 그만 이대로 살아야 되겠다.’ 요래 가지고 사는 자는 고 현실에서 피, 성령, 진리 중생된 영 이 넷을 배반했기 때문에 배반한 그 심신의 기능은 예수님의 대속과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 시간에 죽는 걸 가리켜서 둘째 사망으로 영원한 멸망을 받는다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예수님이 대속했지마는 살려놨지마는 제가 현실에서 이 대속을 배반하고 진리도 배반하고 영감도 배반하고, 세상으로 살고 악령으로 살고 자기 중심으로 살고 또 자기 중심의 이 모든 본죄로 살고 이라니까 말망 안 할 수가 있습니까? 이러니까 우리가 장생골에서, 네 가지 네 가지 사이에 끼어 있는 우리 심신인데 오른편의 네 가지로 살면 그 현실에 해당된 심신의 기능이 다 영생이 되고, 왼편의 마귀, 세상, 원죄, 본죄 이놈이 들어 가지고 꼬우는 여게 꼬임 받아 가지고 그 현실을 이 왼쪽에 원수 네 놈 이놈이 옛사람인데 이놈으로 더불어 살면은 그 기능이 영원 멸망을 받습니다. 다음 남은 기능은 다시 죽든지 살든지 되지마는 그 시간에 해당된 기능은 영원히 멸망 받는 것입니다. 요것을 우리가 장생골에서 배웠습니다.

배웠는데, 이제 한 가지 필요한 것을 오늘 저녁에 간단하게 가르칠라고 제가 기도 가운데서 양산동 산에서 오늘 밤에는 요것을 가르쳐야 되겠다 하고서 제가 기억하고 온 것입니다.

우리 구원을 방해하는 것은 뭣이 방해합니까? 몇이 우리 구원을 방해하고 있습니까?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이소? 넷이 들어서 방해하고 있습니다. 그 넷의 이름을 말하면 그 넷의 이름이 뭐입니까? 그 이름이 뭐입니까? 넷의 이름이 뭐입니까? 저 뒤에도 큰 소리 해 봐요. 그 넷의 이름이 뭐입니까? 저 뒤에도 말해요. 고함을 질려요. 그 넷의 이름이 뭐입니까? 악입니다. 악이 뭐입니까? 악이 자기 중심 자기 위주, 피조물 중심 피조물 위주 그것이 악입니다.

악인데, 오늘 밤에는 악을 이것을 대번에 없앨라 해도 이놈이 힘이 세기 때문에 잘 없어지지 않습니다. 인제 악을 때려 잡는, 악을 때려 잡는 그 방편을 배워 가지고 악을 때려 잡아야 되겠다 하는 그 생각이 나서 오늘 밤에 증거합니다.

요 악을 때려 잡는 데에는 어떻게 해야 악을 잡을 수가 있느냐? 악은 악령도 하늘에서 자기 중심의 악령, 또 타락한 사람들도 악성, 자기 중심의 악성, 또 악습도 자기 중심의 피조물, 자기 중심의 모든 행동한 버릇, 또 이 세상은 조물주 버려 버리고 이 세상은 제 중심으로, 세상 제 중심으로, 세상 저 좋아하는 대로 산 것이 뭉쳐서 세상이라 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오른편에 네 가지로 살아서 구원을 이룰라고 하면 왼편 네 가지 이놈을 때려 잡아야 우리가 우리 구원을 이룰 수가 있습니다. 왼편 네 가지를 때려 잡다니? 네 가지를 때려 잡는다 말은 악을 때려 잡는다 말입니다.

알겠습니까? 네 가지를 때려 잡아야 오른편의 네 가지대로 살아서 영생하는 이 길을 우리가 갈 수 있지 왼편의 네 가지 이놈이 들어서 영생하는 피와 성령과 진리로 살지 못하게 이렇게 방해하고 있으니까 이놈을 잡아서 잡아야 되겠다 말이오.

잡아야 되겠는데, 이놈이 대번에 안 잡힙니다. 이놈이 굉장히 강한 것입니다. 천하 인간이 다 이놈한테 다 삼켜 가지고 다 영원히 멸망을 받고 있는데 이놈이 뭐 김일성이도 이놈한테 잡혀 가지고 있고, 뭐 공산주의들 다 이놈한테 잡혀 가지고 있고, 천하에 신앙 가지지 못한 사람들은 다 이놈한테 붙들려 가지고 있는데 이놈이 힘이 굉장히 셉니다. 이놈의 이름을 가리켜서 악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이제 잘 들어야 합니다. 이놈의 이름을 가리켜 악이라 그렇게 합니다. 악이라 말은 뭐인가? 자기 중심 자기 위주라는 말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악을 잡을려면, 악을 잡을려면, 악을 잡을려면, 악을 잡을려면 뭘 잡아야 합니까? 악을 잡을려면 자기 중심 자기 위주를 잡아야 합니다. 피조물 중심 피조물 위주를 잡아야 합니다. 자기 중심 자기 위주를 잡아야 되니까 자기 중심을 죽일라고 하면 자기 중심의 반대를 하면, 자기 중심의 반대를 하면, 자기 위주의 반대를 하면 자기 중심 자기 위주가 살이 찌겠습니까 마르겠습니까?악을 잡아야 되겠는데, 악을 잡아야 된다 말은 자기 중심 자기 위주 그것이 들어서 우리를 죽입니다. 자기 중심 자기 위주를 잡을라고 하면 자기 중심 반대가 뭐입니까? 자기 중심 반대가 뭐입니까? 자기 중심 반대는 남의 중심입니다.

알겠습니까? 자기 중심 반대는 남의 중심입니다, 남의 중심. 자기 중심 반대는 남의 중심입니다. 남의 중심 그것이 온전함을 이루어 나아가는 것은 하나님 중심이 됩니다. 알겠습니까? 이러니까, 악을 요놈을 죽여서 자기 속에 자기 중심 자기 위주 요 놈이 들어서 내 구원을 이루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자기 중심 자기 위주 요놈을 때려 잡아야 되겠는데 요놈을 때려 잡을려면 남의 중심 남의 위주로 내가 무슨 언행심사를 하게 되면은 차차 차차 자기 중심 자기 위주 그놈이 빈약해 갑니다. 이래서 성경에 말씀하시기를 “네가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라.

오늘도 여기 말씀하시기를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이거 다 악 아닙니까? 자기 높이고 자기 돈 많이 있으니까 자기 높이는 것 악 아닙니까?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한 일을 행하고” 여기 18절에, 선한 일을 행하는 것이, 선한 일을 행하는 것이 요것이 곧 깊이 파고 들면은 하나님 위하는 것이요 또 사람 위하는 것입니다. “선한 일을 행하고” 하는 말은 남을 위하고, 남 위하는 일을 하고, 그라다가 남 위하는 알맹이가 뭐인가? 하나님 위하는 것이라. 남 위하는 것 하나님 위하는 일을 하고, 또, “선한 사업에 부하고” 사업도, 사업도 남 위하고 하나님 위하는 것, 자기 아닌 것 자기 밖에는 뭐뭐 있습니까? 자기 외에는 뭐뭐 있지요? 자기 외에 뭐뭐, 자기 외에 있는 이것이 몇이나 됩니까? 손가락으로 한번 가리켜 보이소, 자기 외에 있는 것이 몇이나 있는지? 자기 외에 있는 게 몇이나 있는지 손가락으로 한번 가리켜 봐. 저 뭐고, ○○○선생, ○○○ 따님이가? 손가락으로 한번 가리켜 봐. 자기 외에 몇이나 있는지 한번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 또 다른 사람 한번 가리켜 봐. 자기 외에 있는 것이 몇이나 됩니까? 요 둘이라고 가리키네, 둘이라고.

요 둘이라고 가리키는 것 요 둘 맞습니까 안 맞습니까? 맞습니다. 자기 외에는 하나님과 모든 사람입니다. 알겠습니까? 자기 외에는 하나님과 모든 사람 그 두 가지가 자기 외에 있는 것들입니다. 물질이니 그런 것들은 다 생명하고 인격이 없기 때문에 그까짓 것 우리 소유물이지 그거는 딴게 아닙니다.

이러기에, “선한 사업에 부하고” 일도 선한 일 하고, 사업도 선한 사업 해라.

이것은 자기 위하는 일 하지 말고 남 위하는 일 해라. 남이 몇이나 되는데? 사람 남, 하나님 남, 하나님도 나 아니고 남이요 사람도 나 아니고 남이라.

네가 밤낮 나 나 생각하며 나 위하는 일 하지 말고 네가 네 구원을 이룰라거든 너 아닌 다른 이 위하는 것 해라. 다른 이 위하는 것 해라. 다른 이 위하는 것 하면은 몇을 위하는 것이 다른 이 위하는 것이 됩니까, 손가락으로? 녜, 둘을 위하는 것이,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을 위하고 나 아닌 하나님 위하는 것이 나 위하지 안하고 다른 이 위하는 것입니다.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나눠주니까, 나눠주니까 자기 위하는 것입니까 남 위하는 것입니까? 남 위하는 것입니다. 요 똑똑히 봐요. 남 위하는 것입니다.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동정하는 것은 자기 위하는 것입니까 남 위하는 것입니까? 남 위하는 것입니다.

자, 18절에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이라니까, 이 남 위하는 일, 남 위하는 사업, 또 남에게 나눠주는 일, 또 남을 위하는 동정하는 일 그러면 여게 남 위해서 하라 하는 것을 몇 가지 하라 했습니까, 손가락으로? 남 위해서 몇 가지 하라고 여기 가르쳤습니까? 남 위해 몇 가지? 남 위해서 몇 가지 하라 했습니까, 남 위해서? 손가락 너이 들어요, 네 가지. 선한 일, 선한 사업, 나눠주기, 동정 네 가지 아닙니까? 네 가지 요 일을 하라.

이 일을 하면, 이 일을 하면 이것은 하나님 중심 남 중심, 자기 중심입니까 자기 아닌 타의 중심입니까? 타의 중심입니까 자기 중심입니까? 타의 중심입니다. 타의 중심만 자꾸 하면 자기 중심 이놈이 살이 찝니까 곪니까? 타의 중심만 하면 자기 중심인 악이라는 악 이놈이 살이 쪄서 힘이 세집니까 이놈이 골케골케 곯곯아집니까? 곯아집니다. 곯아집니다. 곯아지요.

19절에, “이것이” “이것이” 이렇게 하는 것이 타의 중심 타의 위주로 하면 자기 중심 자기 위주인 악이 말라빠져 그놈이 골케골케 말라 가지고 아직까지 살아 있기는 있지마는 힘이 없어서 그까짓 놈이 힘 하나도 쓰지 못한다.

자, 그놈이 힘을 못 쓰면 우리에게 무엇이 좋습니까? 그놈이 힘을 못 쓰면, 악이 그놈이 세력이 말라서 골케골케 해 가지고 새들새들해 가지고 힘을 못 쓰니까 우리가 뭣 하기에 좋습니까? 뭣 하기에 좋습니까? 몇 가지로 살기에 좋습니까? 네 가지로 살기에 좋습니다. 뭐? 피, 성령, 진리, 중생된 영 넷으로 살기에 좋습니다. 넷으로 살기 좋습니다. 넷으로 살기에 방해한 놈 없으니까, 방해한 놈 그놈 곯아 죽였으니까. 넷으로 살기에 좋으니까 넷으로 살기만 하면 넷으로 사는 그자의 능력은 무슨 능력입니까? 전능입니다. 지혜는? 전지입니다. 그는 생명은 어떠합니까? 생명은 어떠합니까? 영생입니다, 영생.

이러기 때문에, 19절에 말해 놨습니다. ‘이렇게 타의 중심으로 네 가지 하라’ “이것이” 이렇게 하는 이것이 “장래에” 장래에, 현재에는 타를 위하니까 손해가는 것 같지마는 장래라 하면 미래 아닙니까? 장래라면 미래 아니요? “장래에” 미래에, “자기를 위하여” 미래에는 자기 위합니다. 현재에는 이렇게 하면 뉘 위합니까? 현재는 누구를 위하지요? 타를 위해, 다른 사람을 위했는데 미래에는 누구 위하는 게 됩니까? 자기 위한 것 됩니다. 요걸 알아야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자기만 위하는 사람은 자꾸 망합니다. 남 위하는 사람은 자꾸 존영해지고, 실력 있어지고, 부강해지고,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좋은 터라 말은 좋은 기초를 마련했다는 말입니다. 좋은 터전, 좋은 기초를 마련했다는 말이오. 자, 기초가 있으면 집이 됩니까 안 됩니까? 됩니다.

이러니까 자기 위해서 좋은 터를 마련했다. 자기에게 이 전지 전능의 실력 영생 이 모든 좋은 것의 터전을 뭘로 마련했느냐 하면 이 터전을 뭘로 마련했습니까? 이 터전을 몇 가지로 마련했습니까, 자, 손 들어 보십시오. 몇 가지로 마련했습니까? 네 가지로 마련했습니다. 이 네 가지는 현재는 자기 위함입니까 다른 사람 위함입니까? 자기에게는 현재는 손해입니까 유익입니까? 이제 미래로 장차는 누가 유익입니까? 자기 유익입니다. 요걸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좋은 터를 쌓아” 완전한 기초를 마련해 가지고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자, 생명은 뭐라고요? 생명의 이름이 딴 말로 말하면 뭐이지요? 생명의 이름이 뭐이지요? 힘. 생명의 이름은 딴 말로 말하면 힘입니다.

그러면 생명은 뭐 어떻게 된 것이 생명입니까? 하나님과 하나되는 것이 생명입니다. 하나님의 그 무한하신 분과 나와 하나됐으면 내가 유익이 됐소 하나님이 유익이 됐소? 내가 부자 됐소, 내가 이 세계에서 이 우주에서 하나님하고 나와 하나됐으면 몇등 되는 부자입니까? 몇등 되는 부자입니까, 손가락으로? 몇등 되는 부자입니까, 손가락으로? 몇등 되는 부자입니까, 손가락으로? 서이도 가리키고, 몇등 되는 부자입니까, 손가락으로? 서이 가리키는 이도 있고, 하나 가리키는 이도 있고, 둘 가리키는 이도 있는데 아마 다 모두 하나 가리키는 이는 잘 모르는 것 같고.

그러면 첫째 부자가 누구입니까? 둘째 부자는 누구입니까? 신인양성일위이신 예수님이 둘째 부자지요, 안 그렇습니까? 셋째 부자는 누구입니까? 셋째 부자는 누구입니까? 셋째 부자는 누구입니까! 셋째 부자는 누구입니까! 우리입니다.

이래서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요것이 주님하고 자기하고 참된 결합을 만드는 것이니라. 참된 결합을 만드는 것이니라.

여러분들, 이라기 때문에 이제 우리는 아무래도 예수님의 대속으로 말미암은 이 지극히 큰 구원을 이루어야 되겠는데 이 구원 이루는 데는 제일 중요한 것이 뭐이냐? 피와 성령과 진리와 중생된 영으로 사는 이것이 내적으로 할일이기 때문에 이 일이 제일 중요하고 크고, 크고, 그다음에 이제 부로는 이대로 살라고 하니까 살지 못하게 방해하는 이놈을 잡아야 되겠다 말이오. 방해하는 이놈을 잡아야 돼. 방해하는 이놈을 잡아야 되니 방해하는 놈이 뭐이냐? 방해하는 그놈이 자살인데 마귀 그놈이 방해하는 것을 가르쳤는데 마귀란 놈이 네 중심 네 중심, 너 너, 밤이나 낮이나 말하는 것도 일하는 것도 너만 좋게 너만 좋게, 너 위주 너 위주, 너 위주 너 중심 너 중심, 너 위주 너 중심 너 위주, 자기 중심 자기 위주는 누구하고 원수가 됩니까? 하나님하고 원수가 됩니다. 그러면 자기 중심 자기 위주의 그 이름이 뭐입니까? 악입니다. 그것은 뭣을 일으킵니다. 영원한 사망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이러기 때문에, 이거는 오늘 저녁에 요만만 하고 여러분들이 요것을 노력을 하십시오. 큰 거 하기는 어려워요. 하기는 어려워도 처음에 조그만한 물질로 다른 사람 위하는 일, 처음에 아까와 안 돼요. 쪼그매 물질로 다른 사람 위하는 일 하고, 그다음에는 시간으로 하고 힘으로 하고 요렇게 해서 차차 차차 자기 중심을 버리고 남 중심 남 위주의 사람으로서 요렇게 구제하는 일, 구제하는 일, 동정하는 일, 봉사하는 일, 양보하는 일, 정신도 남을 위한 일, 나는 요새 전화 받는데, 전화 받는데, 전화 가운데에 가치를 말이지요, 전화 받는 데에 일등 이등은 내가 일등은 우리 교회 있고 이등은 저 딴 교회 있습니다.

전화를 하면 말이지요, 그 사람은 일등은 뭐이냐 하면은 ‘여보시오’ 하면 그 누구인지도 모르고 ‘아, 예 예예예 예 예 예.’ 뭐 그만 반가워서 못 견딜 만치 누가 말해도 ‘예예, 무엇입니까? 예예,’ 남에게 부담 하나도 안 줄라고 벌써 예예 하는 바람에 내 마음 다 풀려버렸고, 좋고 기분 좋고 좋습니다.

전화 한 마디에서라도 다른 사람에게 부담을 주지 안하고 다른 사람의 마음이 가벼워지도록 다른 사람에게 기쁨을 줄라고 애를 쓰는 것, 말 한 마디라도 다른 사람을 위하는 말, 생각도 위하는 생각, 전화 한 마디만 받아도 다른 사람을 위하는 것, 이것은 어짜든지 내나 할 일도, 할 놈의 일도 다른 사람 애를 먹일라고 뛰 해 가지고, 나는 경상도라도 경상도쟁이는 싫어요, 경상도쟁이는. 경상도쟁이는 뭐이냐 하면 저 찻간에 가다 보면은 뛰 하게 문둥이같이 해 가지고 앉았으면 경상도쟁이라. 뛰 해 막 이래 음 응크려 가지고 이래 가지고 앉았으면 다른 사람이 그만 을 수가 없어서 말 안 해.

나는 말이요, 나는 제일 지방으로서 좋아하는 사람이 어데 사람을 제일 좋아하느냐 하면은 평가적으로는 강원도 사람을 제일 좋아해요. 그 사람들은 남에게 부담을 안 줄라 해요. 그러니까 아무리 양로원에 가서 찾을라 해도 양로원에 강원도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알겠습니까? 양로원에 강원도 사람은 없어요. 둘째로는 함경도 사람이 적어요. 제일 많기는, 양로원에 제일 많기는 경상도쟁이야, 경상도쟁이. 문둥이 경상도쟁이는 양로원에 제일 많아. 그거는 어짜든간에 남을 생각지 안하고 언제든지 남만 애먹이고 남에게 누 끼치고 남을 헤벼먹을라 하는 그거 그런 행세라 그말이오.

이러니까 우리가 어짜든지 죽기 전에 자기 중심 자기 위주 자기 본위 요놈을 완전히 죽여야 됩니다. 요거 죽이기를 어짜든지 요모로 저모로, 요모로 저모로 해 가지고 죽이기를 힘써 가지고 어짜든지 쉽게 가족에서, 가족에서라도, 가정에서, 가정에서 어머니라면 남편을 위해서 자녀를 위해서, 또 남편은 아내를 위해서 자녀를 위해서, 또 자녀는 아버지를 위해서 어머니를 위해서 형과 동생을 위해서, 그놈의 집구석이 남만 자꾸 위하니까 그놈의 집구석은 망해야 됩니까 안 망해야 됩니까? 자, 망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분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안 망합니까? 남만 위하는데 안 망 해? 또 그라면, 이거는 ‘내가 암만 시집은 왔지마는’ 앉아서 딱 주산을 놓습니다.

앉아서 딱 보단으로, ‘요 보단을 누르면 남편이 요리 빽 돌아가고 저 보단을 누르면 저리 빽 돌아가니까’ 앉아서 보단 조사를 딱 그래 가지고 하루 종일 남편은 지금 직장에 일하러 갔는데 앉아서 요래야 남편이 나를 위하게 할까 조래야 남편이 나를 위하게 할까? 요래야 아내가 날 위하게 할까 조래야 아내가 나를 위하게 할까? 요래야 자식이 나를 위할까 조래야 딸이 나를 위할까? 조래야 어머니가 나를 위할까 아버지가 나를 위할까? 자, 자기 위하는 요것만 연구해 가지고 전부 온 가족은 다 자기 위하기만 노력하고 자기 위하기만 연구하고 자기 위하는 사람들만 꼭 모여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러니까 자기 실속 있게 차려요. 그 가정 망합니까 흥합니까? 큰 소리로, 망합니까 흥합니까? 망합니다. 망해. 간단하게 말하면 이래. 사람이 좁게 말하면 알아도 크게 말하는 거는 몰라요.

이러니까, 어짜든지 죽기 전에 자기 중심 자기 위주 자기 위하는 거 이것을 죽여서 이게 원죄라 말이오. 자기 위하는 게 원죄입니다. 자기 위하는 게 원죄요.

자기 위하는 행동한 것을 가리켜서 본죄라 말합니다. 그게 악습입니다. 그게 악이오.

이러기 때문에 어짜든지 우리는 예수 믿기 전에는 자기 중심을 했지마는 이제는 이만치 알았으니까 자기 중심 자기 위주하는 것 자기 위주라 하는 그것을 버립시다. 그거 버려야 됩니다.

예수 믿고 난 다음에, 여게 우리 교회 반사들도 그 반사 하면서 지금 돈 벌어 가지고 토큰 사고 하니까 한 푼도 없습니다. 죽자껏 일해야 근근이 조반석죽하요.

또 권찰들도 보면 모두 장로님들도 자기 있는 대로 힘을 다 해 가지고 다른 사람 구원하기 위해서 전부 다 투자하니까 쫄쫄 곪니다.

이러니까 암만 돈이 수입이 많아도 저 먹을 것은 적어. 암만 많아도 제 쓸 것은 적어. 암만 수입이 많아도 항상 생활은 거지 생활해. 먹기는 장 돈에 쪼들려. 왜? 어짤라고? 적금 넣어서? 적금 넣어 그렇습니까? 녜, 적금 넣습니다. 땅의 적금입니까 하늘의 적금입니까? 하늘의 적금 넣소.

이래서, 어짜든지 자기를 비워, 예수님이 왜 존귀해졌습니까? 빌립보 2장 5절에,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그는 하나님의 본체시나 동등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지고 피조물인 사람 모양을 가졌으며 죽기까지 복종하였으니 예예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께서 지극히 높혀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고 모든 천상 천하의 만물로 그 앞에 무릎을 꿇게 하고 모든 것이 그를 주로 시인했습니다. 그것이 참 생명 생활이요 사는 생활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따라합시다.

우리의 원수는 악! 우리의 원수는 악! 우리의 원수는! 자기 중심 자기 위주! 원수를 죽여야! 참사람 생활 할 수 있다! 원수를 죽여야! 새사람 생활 할 수 있다! 원수를 죽이는 것은! 자기 중심 자기 위주를 죽이는 것이다!

요거 해야 됩니다. 자, 그러면 저 아름다운 꽃이 지금 한 포기 피어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꽃이 피어 가지고 있으니까 아따 곱다 하고서 딱 꺾어 가지고 저거 집에 화병에 넣는 그것이 꽃을 사랑하는 것입니까, 그 꽃을 꺾지 안하고 제가 안 되면 다문 흙 한 줌을 주든지 북을 돋아 주고, 뭐 물이 없으면 물이라도 한옴큼 주고 이래서 꽃을 잘되도록 꽃을 돋아 주는 게 꽃을 사랑하는 것입니까 딱 꺾어 가지고 저거 집에 저거 방 안에 딱 꼽아 놓는 것이 사랑, 뭐이 사랑입니까? 뭐요? 꽃 좋구로 하는 게 꽃 사랑하는 것입니까, 꽃을 꺾어 가지고 제 욕심을 채우는 것이 사랑하는 것입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세상 사랑들은 다 이런 사랑인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이거 다 악의 사랑들이오.

이러니까, 오늘 밤에 배운 데에서 내가 대번에 악을 죽이는 일하기 어려워. 선한 일 하기 어려워. 그러니까 차차 차차 선한 일 하기를 힘쓰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고, 또 하나는? 동정하는 사람이 되고, 네 가지.

이래서 어짜든지 우리는 기도합시다. 이제 우리가 이 네 가지로 살면 하나님의 축복이 올 것인데 네 가지로 사는데 방해물 이 네 가지를 죽어야 되겠어. 방해물 네 가지를 죽이는 데에는 요것은 악을 죽이면 요놈이 말라 죽어버려요.

이러니까, 이래서 자꾸 우리는 시간을 미루지 말고 빨리빨리 고쳐 봅시다.

빨리빨리 고쳐서 내가 뭐 주홍같고 진홍같이 붉은 죄가 있었고 오늘까지 어떤 일 했다 할지라도 요것을 빨리빨리 고쳐서 하나님 앞에 흠과 점이 없는 사람이 되면은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받아서 위에 있고 아래 있지 안하고, 머리되고 꼬리되지 안하고, 꾸어주고 꾸지 안하고, 모든 세계 민족 위에 뛰어나고 이라면 모든 게 부강해서 다른 사람에게 얼마든지 선한 사업을 얼마든지 할 수가 있지.

요라는 데에는 자기에게 조그만한 거 요것을 바로 해야 돼요.

그러면, 물질에 대해서, 물질에 대해서 도적질 몇 가지라요,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요? 물질에 대한 도적질 몇 가지입니까? 높이 들어서 표해 봐요. 이 일곱 가지, 이 도적질만 회개하면 어찌 돼요? 하나님께서 뭐라 했어요? 뭐라 했어요? “하늘 문을 열고 네 곳간에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 주나 안 부어 주나 시험하여 보라” 이렇게 하나님의 축복으로 되는 건데 깍쟁이같이 악만 하니까 하나님 앞에 저주만 받으니까 골만 빠졌지 아무 소용없어. 왜 예수님의 축북을, 예수님의 축복을 우리가 못 받습니까? 왜 믿는 사람으로 축복과 기적을 받지 못합니까? 빨리빨리 회개합시다. 빨리빨리 회개해야 돼요.

그러니까, 아침에는 죄를 말했는데 그만 부모고 형제고 자매고 처자고 부부고 뭐 친구간이고 상관이고 하관이고 뭐라도 돈이든지 뭐이든지 죄하고 한테 뭉쳐 오거들랑 그게 나를 망칠 자요 원수인 줄 아십시요. 죄하고 오면은 다 원수로 알아서 끊어버려야 됩니다.

죄 짓게 하는 거는 나를 망치는 자요 원수인 줄 알아서 끊어버려야 됩니다.

아무리 돈을 줘도 소용없고 아무리 부모라도 죄를 가지고 오면은 나는 끊어버려야 됩니다. 내가, 부모에게 그라면 불효하라 그게 아니고 내가 목숨이 죽음에서 살아 나올 길이 있어도 죄가 있으면 우리가 죽었으면 죽었지 목숨을 살리지 안합니다. 내 생명도 죄하고 같이 오면은 내가 생명을 버렸지 죄를 용납할 수가 없습니다. 죄와 우리와 원수돼야 됩니다.

따라합시다.

우리는! 악을 죽이자! 우리는! 죄와! 똑똑한! 원수가 되자! 죄를 용납지 말자! 죄는! 성신의 칼로! 치고 찔려서! 전멸시켜야 한다! 성신의 검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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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28 아브라함의 신앙/ 마태복음 10장 40절-42절/ 881213화새 선지자 2015.12.01
2527 아브라함의 신앙의 길/ 창세기 12장 1절-20절/ 871018주전 선지자 2015.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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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24 아브라함의 축복/ 창세기15장 1절-8절/ 810715수새 선지자 2015.12.01
2523 아브라함의 평안과 롯의 평안/ 창세기 13장 14절-15절/ 881222목새 선지자 2015.12.01
2522 아브라함-하나님의 영광만 생각/ 창세기 14장 21절-15장 1절/ 830629수야 선지자 2015.12.01
2521 아이와 같이 집회에서 말씀을 받자/ 마태복음 13장 53절-58절/ 870504월밤집회 선지자 2015.12.04
2520 악독을 회개하라/ 히브리서 12장 5절-9절/ 840504 지권찰회 선지자 2015.12.04
2519 악독을 회개하자/ 사도행전 8장 9절-24절/ 840424화새 선지자 2015.12.04
2518 악을 뽑아야 믿어/ 고린도전서 10장 1절-6절/ 860929월새 선지자 2015.12.04
» 악을 죽이는 법/ 디모데전서 6장 17절-19절/ 860820수야 선지자 2015.1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