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을 뽑아야 믿어

 

1986. 9. 29. 새벽(월)

 

본문:고린도전서 10장 1절∼6절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다 같은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그러나 저희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신고로 저희가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그런 일은 우리의 거울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저희가 악을 즐겨한 것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기도합시다.

타락 후 사람은 하나님과 완전히 등져 반대되었고 유혹으로 인생을 승리하여 점령한 악령이 세상을 주관하고 악령의 이 삐뚤어지고 속이고 꾀우는 멸망케 하는 이 지식으로 세상에 가뜩 채워 죄와 사망과 저주만 가득 차 있는 이 세상에 하나님께서 멸망 가운데에 둘 수 없어 친히 사람되어 오사 대형으로 모든 죄를 다 도말하시고 대신 행하시사 의를 우리에게 입혀 주시고 하나님과 원수된 것을 화목 제물이 되사 하나님의 친자녀가 되게 하시고 이렇게 영영하고 완전한 대속의 공로를 설정하신 이 공로와 이 공로로 인한 성령의 감동과 진리로 우리의 죽은 영을 살려서 영생하는 생명으로 우리를 살리셨고, 이제 심신을 다시 성화시켜 우리들이 무한하신 주의 말씀과 주의 뜻과 보이는 거 외에 영영하고 완전하고 무한한 이 피조물 전체를 보는 이 심령을 주시고 자존하신 주님을 알아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이런 영광스러운 영생의 지혜를 주셔서 오늘 주님을 바라보고 의지하며 세상이 나그네 세상인 것을 알았고, 한 시간 한 시간 살아가는 것이 영원한 멸망을 향하는 걸음도 되고 하나님을 향하는 영생이 되는 것도 우리에게 알게 하사 날마다 부족하지마는 주님에게 간구하고 힘입어서 영생의 걸음을 걸어갈라고 힘쓰고 소원할 수 있게 하신 주님, 이것은 순전히 주님에게서 일으켜 주신 것이지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닌 것을 저들이 확실이 압니다.

오늘까지 일으켜 주신 주께서 남은 때도 주님이 우리를 살려 일으켜 주셔야 되지 우리에게는 이런 힘이 추호도 없습니다. 유한한 저희들에게 어떻게 무한한 것이 있으며, 죽은 저들에게 어떻게 생명의 것이 있겠습니까? 지금 있는 거 온전한 것과 영원한 것과 불변의 영원의 것은 다 주님의 피공로로 말미암아 우리가 얻어 가진 하늘에서 온 것인 것을 확실히 압니다.

주님, 저희들이 오늘 아침에도 평생 처음 만나는 이 날인 것을 알게 하셨고 처음 만나는 이 첫시간 우리의 전부가 되시는 주님을 만나 은혜를 감사하며, 모든 우리의 사정을 고하며, 우리가 모르는 모든 것을 주님에게 물어 알며, 우리에게 모든 부족하고 모든 약한 것을 주님에게 구하여 얻으려 주님 앞에 나올 수 있는 은총 주심을 감사합니다. 이는 순전히 주님의 능력으로 말미암고 세상에서 썩어져 없어지는 이런 힘이 아닌 줄 압니다.

이 힘으로 더불어 싸웠습니다. 이 힘이 많이 방해했습니다. 이 모든 썩어질 세상에 있는 힘을 이기고 나온 이 걸음이 아닙니까? 주님 저희들이 이 시간까지 이겨서 이 자리에 나왔다 할지라도 다시금 또 주님의 성령으로 충만치 아니하면 우리는 자율로 돌아갑니다. 주관으로 돌아갑니다. 세상으로 돌아갑니다.

어두움으로 돌아갑니다.

주님이여! 성령의 충만함으로라야 우리는 믿음이 있을 수 있고 주를 바라볼 수 있고, 주님으로 보이는 모든 모든 것보다 뛰어나고 주로 말미암아 생겨진 것을 알아 주님 한 분에게만 소망을 두고, 이스라엘이 죽는 거 사는 거 생각지 아니하고 다만 따라만 가려 하던 그들의 걸음을 걸을 수가 있는 줄 압니다.

그러나 그들은 뒤에서 어려움이 있는 그 독촉으로 말미암아 걸어갔기 때문에 그 걸음이 성공되지 못하고 실패됐습니다. 오늘 저희들에게는 아무 그런 것 없는, 이 세상에서 주의 인도받아서 따라가게 되오니 다행인 것을 아옵고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 이 시간에 저희들에게 믿음을 주셔서, 이스라엘이 그 속에 악이 있으므로 결국은 실패하고 말아서 광야에서 다 죽고 말았습니다. 이 악을 완전히 근절하여 하나님 중심으로, 주님이 주시는 이 가나안 소망 중심으로 사는 자들만 가나안에 간 것을 저들에게 주셔서 거울로 삼으라고 하신 것을 기억합니다.

주님 이 시간에도 힘으로도 능으로도 할 수 없는 이 원죄와 본죄를 완전히 뽑아 버려서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된 옛사람을 완전히 죽여 주시고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된 새사람으로 강건케 하사 세상을 이기고 모든 세상을 하늘나라를 위하여 투자하는 슬기로운 저희들이 되게 하사 땅위에서부터 성화되어서 주님에게 기쁨이 되고 모든 피조물들에게는 봉사자가 되어서 모든 피조물들이 없어서는 안 된다고 아우성 칠 수 있는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하나님께서 이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모든 것을 주시기 위해서 온갖 훈련을 시켰습니다. 그때에 그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도 하나님이 열 가지 재앙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보였고 또 나와 가지고 걷는 모든 걸음이 다 하나님의 기적의 걸음이었습니다.

낮에는 구름이 인도하고 밤에는 불기둥이 인도하는 그 인도의 걸음이 뭐 이리 저리 높고 낮은 그런 것을 살펴서 그래 인도하지 안하고 바로 인도했습니다, 바로.

구름이 가는 데 따라서 갔고 공중에서 불기둥이 가는 데 따라서 이래 가니까 한 자욱도 인간 힘으로 걸어간 걸음이 아니었습니다. 전부 하나님의 초자연의 능력으로 걸어갔습니다. 그러니까 골짝도 언덕도 강도 뭐 들강도 그 모든 것이 다 시온의 대로가 되어서 하나도 그런 것에 제재받지 안하고 그대로 걸어갔습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었다” 하는 그말은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그 인도를 바로 갈라고 하니까 그것은 새 모양으로 날아야 될 때도 있고 또 물고기 모양으로 그렇게 헤엄을 쳐야 될 일도 있는데 이스라엘은 그거 모릅니다. 그저 인도만 따라서 갈라고 하니까 가진 것입니다. 그 가는 걸음이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서만 갈 때에 그 걸음을 걸었습니다.

그들이 왜 그때 그런 걸음을 걷게 됐느냐? 애굽에서 남자는 낳으면 다 산파들에게 주물라서 죽이도록 그렇게 명령을 왕이 내렸고, 그래도 나타나게는 살리는 일 하면은 산파들이 다 사형을 받기 때문에 속여서 ‘가니까 벌써 우리가 가기 전에, 산파가 가기 전에 벌써 이스라엘 여인들은 강건해서 다 순산을 해 가지고 있으니 순산해 가지고 있는 그 아이를 어떻게 죽일 수 없고 날 때 그만 이거 병신이로구나 하면서 그때 죽여야 되는 건데 그래 못 죽였다’고서 이리 하니까, 나중에는, ‘이제 너희들이 속이는 일 있으니 남아이는 낳으면 그 낳은 것을 이웃에서 알게 되고 이러니까 남아이 낳은 것을 나일강에다가 던져서 죽이지 아니하면 산파들을 다 죽이고 또 그 부모네들을 다 죽여 버립니다. 이라니까 뭐 그때는 속일래야 속일 수가 없어서, 모세 한 사람은 그때에 숨겨서 석 달 동안을 기르다가 나중에는 기를래야 기를 수가 없어서 할 수 없어서 모세도 나일강에다 던져야 되는데 그 상자에다가 석청 칠을 해 가지고 상자 속에다 넣어서 나일강에 던졌다고 그렇게 역사에 기록돼 있습니다.

이러니까 저들이 전멸을 당하는 그런 뜨거움이 저거들에게 부딪혀 가지고 있지, 또 고역을 시켜 가지고 죽일라고 말할 수 없는 어려운 고역을 시켜서 또 그들이 죽을 지경이지, 어쨌든지 그저 그냥 죽이지 안하고 이용을 해 먹고 죽일라 하는 그것이 그들의 목적인 것을 이스라엘이 알았기 때문에 그때는 원청 다급해 놓으니까 하나님에게 부르짖었지 또 하나님이 열 가지 재앙을 가지고 과연 하나님이 계시는 것과 하나님이 능치 못하심이 없으신 것과 모든 피조물이 다 하나님에게 소속해서 그분의 주권대로 하고 있다는 것을 그들이 알았습니다.

이러니까 그 유월절에 ‘너희들이 이제는 장자 재앙에서 그들이 다 너희들을 해방해 줄 터이니까 놓여서 해방되거들랑은 빨리 가나안을 향해 가라’ 이라니까 그 이스라엘이 그것을 기다리는 중에 모든 애굽 사람들은 다 짐승이고 사람이고 위에 맏새끼로부터 막 내리 죽습니다. 뭐 왕궁에도 장자는 죽고 장자가 죽으면 차자가 죽고 자꾸 들이 몰사가 돼지니까 그들이 원청 다급해서 ‘어서 나가거라’ 이렇게 나가라 할 때에 하나님이 ‘그저 가지 말고 너희들이 사백 년 동안이나, 사백삼십 년 동안을 여게서 종질 했었으니까 사백삼십 년 동안 너희들이 수고해 준 그 모든 품삯을 받아 가지고 나오너라. 품삯을 받는 데는 너희들이 아는 대로 가볍고 가치 있는 그런 것만 다 요청을 해라.’ 그때 애굽에 있는 보물은 이스라엘이 다 가져 나왔습니다. ‘뭘 안 주면 우리는 안 나겠다’ 그만 뭐이든지 달라 하는 대로 다 줘서 그걸 다 가지고 이래 나오니까, 하도 하나님이 그들 눈에 역력하게 역사하시는 것이 뚜렷하니까 그들이 하나님을 믿고 따라나섭니다.

따라나서는데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블레셋으로 저리 가면, 질러가면 사 일 동안이면 가나안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리 인도하지 안하시고 광야와 사막으로 인도하셔 가지고 그 여러가지 어려움을 끼쳤습니다. 거게는 뭐 아주 사람 다니는 길도 아니고 숲이 꽉 들어찼고 또 숲 없는 데는 아주 사막으로서 아무 생물들은 살 수 없는 그런 아주 악조건인 그런 곳으로 인도했습니다.

또 인도하면서 이리 저리 둘러서 질러서 그리 인도하지 안하고 바로 인도하니까 거게는 새나 가고 고기나 가고, 뭐 새도 가지 못하고, 새만 돼도 안 되고, 물고기만 돼도 안 되고, 또 맹수만 돼도 안 되고 그런 길을 대로와 같이 꿰뚫어서 그렇게 하나님이 인도했습니다.

인도하지마는 그들은 믿음 가지고서 인도를 따른 게 아니고, 믿음 가지고 따른 게 아니고 원청 뒤에 다급한 일들이 있었고 또 하나님의 그 능력과 역사를 봤고, 신기한 일을 많이 봤기 때문에 그들은 죽느냐 사느냐 하는 그런 생각은 없고 어쨌든지 지금 ‘하나님을 따라야 되지 하나님을 따라가지 않으면 우리는 멸망받는다.’ 뒤에는 애굽 사람들이 놓아 주고 난 다음에는 그를 추격하는 것을 그들이 알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구름 아래에 있고” 구름이 인도하는 인도를 받았고, 또 “홍해 가운데로 지났으며” 그말은 뭐이냐?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데는 산이고 들이고 암석이고 뭐 층암 절벽의 낭떠러지고 또 바다고 할 것 없이 하나님의 인도대로 따라갔다. 인도대로 따라가니까 가졌고 또 그들은 인도대로 따라가는 데에 물론 홍해를 건너가는 그럴 때는 ‘홍해에 빠져 죽겠다’ 했지마는 어쨌든지 안 가면 안 되는 줄 알고 그저 생명 내놓고 따라갔던 것입니다. 따라가니까 다 따라가졌습니다.

따라가서 홍해 바다를 건넜는데 그 밑에는 또 무슨 말씀이 있느냐 하면은, 2절에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모세에게 속하여” 하나님께서 모세를 인도자로 세우셔 가지고 모세를 통해서, 열 가지 재앙을 내릴 때에도 모세를 통해서 열 가지 재앙으로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것을 그들이 경험하고 봤고 또 장자 재앙에서도 그런 것을 봤기 때문에 그들은 자기들과 같은 사람이지마는 모세와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거를 알고 ‘모세 떨어지면 우리는 죽는다’ 모세 떨어지면 우리는 죽는다 그걸 생각하고 모세의 인도를 따라서 구름 아래에서 세례를 받고 바다 가운데서 세례받았다.

세례받았다 말은 죽고 사는 것이 세례입니다. 죽고 사는 것이 세례인데 그들이 구름의 인도를 따를 때에 다 죽을 수밖에 없는 그 걸음인데, 다 죽을 수밖에 없는 걸음인데 다 죽음을 통과해서 살았다, 그들은 다 죽을 수밖에 없는 그런 걸음을 걸었으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다 거게서 살려 주심을 받았다, 그것을 가리켜서 바다 가운데서 세례받았고 구름 아래에서 세례를 다 받았다.

그러면 이거는 과거에 이스라엘이 이렇게 하나님의 인도를 따를 때에 그 모든 땅에 있는 높고 낮은 모든 굴곡 또 육지 물 또 뭐 그 절벽 그런 것이 다 아무, 평지와 같이 돼 가지고 그와같이 지냈다. 또 그들이 구름 아래에서 구름의 인도를 받을 때에는 아무가 봐도 그거는 살 수 없고 죽을 수밖에 없는 그런 고비에도 지내놓고 보니까 다 죽음에서 살았다. 또 홍해 바다를 건넌 것도 그 홍해 바다 건넌 것이 다 그렇게, 바다에 물결이 세지 한 그 바다에 건넜는데 어떻게 그 살겠느냐? 그러나 그들이 다 그때는 생명을 생각지 아니하고 인도자 모세만 따랐기 때문에 그 모든 죽음에서 다 살아나왔다. 죽음에서 살아난, 죽음의 걸음에서 살아나온 홍해를 다 건넜다.

이렇게 그들이 일편단심 딴거는 생각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야 우리가 산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야 산다. 하나님을 따라가야 산다.’ 요거 하나 생각했고 또 하나 생각한 것은 따라가는 데에 그 형편이 어려운 그런 모든 것이 있지마는 그 어려운 것을 생각지 안했습니다. ‘이렇게 어려운 거?’ 타산을 하지 안했습니다. 저거들의 이해를 계산하지 안했습니다. 자기 주관으로서 ‘이라면 이럴 때는 안 되겠는데’ 어떻게 바다에 들어가면 죽지 뭐 별수가 뭐 있습니까? 그때 삼백만 인구라 하지마는 홍해 바다는 삼백만도 좋고 삼천만이 들어가도 뭐 아무 표도 없이 다 빠져 죽을 수 있는 그런 큰 바다입니다.

이랬는데, 그들이 ‘하나님 인도를 따르지 안하면 멸망한다. 여게는 하나님의 인도를 따르는 한 길밖에는 사는 길이 없다.’ 이거 그들이 생각했고, 또 인도를 따르는 데에는 안 따라도 죽을 거, 이러니까 따를 때에 죽을 만한 그런 어려움이 있었지마는 그 죽는다는 그것도 문제하지 안하고, 그것도 생각지 안하고 하나님의 인도 따르는 그 일에만 전심 전력을 기울여서 따랐다. 이러니까, 그 걸음이 다 세례받은 걸음이다. 그 걸음이 전부 다 죽고 사는 걸음이었다.

또 그뿐만 아니라 그들이 삼백만이나 되는 그 많은 무리들이 그 광야에 가 가지고, 벌써 거게서 가 가지고 수십 일 지내니까 아무먹을 것도 없는 것인데 뭐 거게서 어떻게 그걸 먹고 지내겠느냐? 어떻게 살 수 있겠느냐? 그랬는데 하나도 굶어 죽지 아니하고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만나 가루를 내려 가지고 다 거게서 다 배불리 먹고 지냈다.

또 그들이 물이 하나도 없는 그런 사막인데, 사막에는 물이 안 나는 곳인데, 그 사막에서 하나님께서 바위를 쳐서 물을 내 가지고 물을 마시게 됐다.

또 그 사막에는 생물이 살지 못하는 것인데 하나님께서 밤으로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시고 낮으로는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셔서 그 사막에 삼백만이나 되는 많은 무리가 통과했지마는 하나도 상해지지 안하고 그 광야를 다, 사막을 다 무사히 통과하게 됐다.

이러니까 이만하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또 그분만 믿고 의지하면 부족할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이며, 또 그분의 인도함을 받는 그 걸음에는 물이고 바다고 육지고 산이고 들이고 뭐 층암 절벽이고 그게 상관이 없다. 그분 인도함을 받는 그 걸음에는 그런 것이 상관이 없는 것을 경험했다. 늘 인도해 받는 그 걸음이 다 그 걸음이니까.

전부 이적의 걸음이요, 기적의 걸음이요, 하나님의 권능의 걸음이요, 하나님의 인도는 아무 데로 인도해도 가는데는 상관 없다, 인도만 따라가면 다 대로요 평로다 하는 것을 얼마든지 경험했고, 또 그들이 농사짓지 안해도 그 대중들이 얼마든지 배불리 먹고 지냈고, 또 길쌈하지 안해도 입은 한 옷이 사십 년이나 지내도 낡아지지 안하고 그대로 생생하게 색깔도 변하지 안하고 그대로 지냈고, 또 그들이 물 없는 곳에서도 하나님께서 바위에서 물을 내 가지고 먹였고 이만하면 하나님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을 경험하고 체험하고 알 수 있을 만한 그런 노정을 하나님이 많이 보였습니다. 많이 보여서 그들이 다 경험하고 체험해서 하나님을 믿을 만한 그런 증거가 충분했고, 또 안심하고 하나님을 따를 만한 그런 증거가 너무도 충분했고, 또 의식주에 대해서도 문제 없는 그 모든 증거가 충분했지마는, 이렇게 하나님이 이렇게 해 주셨지마는, 이렇게 공을 들였지마는, 공을 들였지마는 그들이 이 강퍅한 것을 이렇게 알 수 있도록 이렇게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그 미련하고 둔한 아무리 짐승이라도 알 만치 그만치 하나님이 이렇게 해 주셨지마는 그들을 하나님께서 다대수를 다 기뻐하지 안하고 하나님이 분노하셔서 광야에서 다 멸망받고 말았다.

다만 애굽에서 나온 사람 중에는 여호수아 갈렙 두 사람만 가나안을 들어갔지 나머지기는 전부 가나안에서 다 죽었고 광야에 나와 가지고 난 그 후손, 애굽에서 난 자손이 아니고 광야에 나와 가지고서 아이 낳은 그 자손들 그것들만 가나안에 다 가고 그 사람들은 다 광야에서 죽었다.

왜 죽었느냐? 하나님이 왜 기뻐하지 안했으며 왜 그들이 광야에서 죽었느냐? 광야에서 사십 년 지내니까 그때는 좀 아마 많이 살지는 못한 모양입니다.

애굽에서 나온 사람이 그때 애굽에서 나올 때에 어린 아이들 같으면 사십 살밖에는 안 될 건데, 마흔세 살밖에는 안 됐는데 애굽에서 나온 사람들은 다 죽었습니다. 다 죽고 이제 광야에서 나온 자손들만 가나안을 갔습니다. 갔는데, 왜 그들을 하나님이 기뻐하지 안해서 다 광야에서 멸망을 시켰는가? 멸망을 시킨 그 이유는 고게 똑똑히 말했습니다.

5절에, “그러나 저희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신고로 저희가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왜 멸망을 받아? “멸망을 받았느니라” 6절에, “그런 일은 우리의 거울이 되어” “우리의 거울이” 그들을 보고서 우리가 깨달아라 그말이요, 거울이 된다 말은. 거울로 자기를 볼 수 있지 않습니까? 그들을 보아서 우리 자신들을 알 수 있다 그말입니다. 그래서 “거울이 되어” 그들을 봄으로 우리 자신들을 알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이 우리 자신을 볼 수 있는 거울이 됐다 말이오.

“그런 일이 우리의 거울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저희가 악을 즐겨한 것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그들이 왜 멸망을 받았느냐? 악을 즐겨하는 그거 때문에 멸망을 받았습니다. 악을 즐겨하다니 그 무슨 소리인가? 이 세상에 뭐 악한 거 좋아한다는 그런 말이 아니오. 성경에 악이라고 말하는 것은 자기 중심, 자기 위주, 자율, 자기 생각. 자기 생각, 자기 비판, 자기 꾀, 자기 욕심, 자기 취미, 자기 주관 그것을 가리켜서 악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인도하신 것은 그 인도의 한 걸음 한 걸음은 전부 인간이 생각한 거와 정반대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높은 데 떨어지면 죽는 건데, 높은 데서 떨어지면 죽는 건데 안 죽었다 그 말이오. 또 강물을 대하면 다 물에 빠져 죽는 건데 또 안 죽었다 그 말이오. 높은 데는 새나 올라가고 그리 안 하면 저리 둘러가든지 해야 되지 높은 데를 사람이 어떻게 날개 없는데 올라갈 수 없지마는 또 다 올라갔다 그 말이오. 바다에 들어가면 다 죽지마는 또 안 죽었다 그거요.

그러면, 그렇게 인도하시는 그 인도는 인간들의 알고 있는 그 지식과 주관과 그것을 초월하신 하나님의 능치 못하심이 없으신 하나님의 인도가 있는 것을 그들에게 보여 줘서 ‘우리 생각이면 다라!’ 할 게 아니라 `우리 생각 외에 우리 생각을 초월한 하나님의 지혜와 뜻이 있구나’ 구름과 불기둥이 인도하고 바다 가운데로 인도하고 인도해 온 그 모든 걸음은 다 자기 주관을 부인케 할라고, 자기 주관을 부인케 하고, 이거 ‘전부 우리 생각대로가 아니고 우리 생각의 정반대다’ 우리 생각대로 된 게 아니고 전부 우리 생각의 반대로 ‘높은 데서 떨어지면 죽을 건데 우리 생각은 죽는데 안 죽었으니까 우리 생각은 다 거짓부리로구나’ 또 ‘낮은 데서 높은 데는 새나 올라갈까 우리는 올라갈 수 없는데 어째 올라가는지 그거 뭐 수없이 높은 데도 어째 올라왔는지도 모르게, 어떻게 내려왔는지, 또 바다를 어떻게 건너왔는지?’ 이렇게 한 것은 전부 ‘우리 생각대로는 다 되는 게 아니다. 우리 생각 외에 하나님의 생각에 높은 생각이 있어서, 우리 생각을 밟고 우리 생각을 초월한 하나님의 뜻이요 생각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데에는 우리 생각이나, 우리 뜻이나, 우리 주장이나, 우리 지식이나, 우리 경험이나 체험이나 그런 것은 다 거게서 내놓을 것이 못 된다. 하나님의 인도는 다 이런 것을 다 초월하고 있다. 그런 것이 다 무시되고 있고 다 멸시되고 있다.’ 이만치 알 만한 그런 경험을 오랫 동안 인도했습니다.

인도해 가지고 또 이제 됐는가 싶어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이렇게 해라’ 하면은 또 이스라엘이 안 믿습니다. 안 하고 주저합니다. 주저하면 ‘왜 그렇게 하지 않느냐?’ ‘이제까지는 하나님이 그렇게 했지마는 이것이 되겠습니까?’ 하나님은 믿지 안하고, 그렇게 하나님이 자기 주관과 자기 자율과 자기의 위주와 중심, 항상 자기 위주라 말하는 거는 위하는 것만 아니고 판단도 자기 위주고, 자기 판단을 위주로 하고 또 모든 계획도 자기 중심, 자기가 제일이지 자기를 부인하지 않는다 말이오. 자기를 부인하지 안하고 전부, 하나님은 자기 부인하고 하나님 믿으라고 하는데 이 하나님을 부인하고 자꾸 자기만 믿는다 그 말이오.

그걸 가리켜서 악이라 한 것입니다.

이라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또 훈련 좀 시켜 가지고 또 믿는가 보면은 안 믿고 그러구로 세월이 가 가지고 사십 년을 지냈습니다. 사십 년을 지내도 꼭 자기 중심 자기 위주, 뭐 하나님이 ‘이렇다’ 하면은 `생각해 보고요.' 예를 들면 ‘생각해 보고요?’ 암만 하나님이 `이렇다' 해도 `아, 생각해 보고.' 자기 생각에 아니면 부인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악을 즐겨하고, 자기 중심, 자기 위주, 자기 본위, 자기 사욕, 자기 주장, 자기 주장 말이요, 자기 주관. 이것을 좋아하고 이것만 믿고 인정하지 하나님은 믿지 안하기 때문에, 사십 년 동안이나 공을 들이고 들여도 그들이 기어코라도 자기 중심을 회개하지 안하고 하나님을 믿지 안하고 자기를 믿기 때문에 요것으로써 광야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요게 우리에게 거울입니다.

이 세상에서 수십 년 동안 예수님을 믿어도 하나님을 믿지 안하고 저를 믿는 자, 자신을 믿는 자, 하나님을 믿느냐 자신을 믿느냐? 하나님 믿느냐 인간을 믿느냐 그겁니다. 하나님을 믿느냐 자신을 믿느냐? 하나님을 믿느냐 피조물 믿느냐? 다시 말하면 자신 믿는 것이오.

‘나는 내 자신을 믿는 게 아니라 국가를 믿는데?’ 하나님을 믿느냐? 국가 믿는 것도 그것이 자기 자신 믿는 것입니다. 왜 자신 믿는 것이냐? 자기 마음에 ‘하나님보다 국가가 더 믿을 수 있다.’ 이러니까 자기 마음에 국가를 더 믿을 수 있고, 남편을 더 믿을 수 있고, 인간을 더 믿을 수 있고, ‘돈이 있어야 살지’ 돈을 더 믿을 수 있다는, 더 믿을 수 있다는 그 판단은 누가 낸 겁니까? 그 판단은 남이 낸 겁니까 자기 주관이 낸 것입니까? 이러니까 똘똘 뭉쳐 자세히 말하면 하나님을 믿느냐 자신을 믿느냐 그겁니다. 자기를 믿느냐 그것입니다.

자기가 ‘이것을 취하고 돈이 있어야 된다, 과학이 있어야 된다, 뭐이 있어야 된다.’ 하는 그것은 누가 그렇게 판단해 줍니까? 자기가 판단한 것입니다. 자기 주관이오. 이러니까 하나님을 믿느냐 자기를 믿느냐? 자기를 믿을라면 하나님을 부인해야 되고 하나님 믿을라면 자기를 부인하고 요 둘이 언제든지 요것입니다.

이러니까, 그들이 많은 거리를 걸어와서 뭐 수백 가지를 경험을 했고 또 애굽에서도 많은 경험을 해서 하나님은 능치 못하심이 없고 하나님 말씀을 절대라, 말한 그대로 다 됐소.

열 가지 재앙 내린다 한 그대로 다 내리지 안했습니까? 또 오는 거리에서도 하나님 인도에 무슨 어려움이 있었습니까? 홍해도 하나님이 가라 했는데 오니까 물이 못 견뎌서 양쪽으로 벽같이 물리쳐 버렸지 거게는 아주 대로와 같이 육로가 되어 있지 안했습니까? 또 그들이 요단강을 건너갈 때도 다 보니까 이제 요단강은 살센 물이지만 다 벽과 같이 양쪽으로 차여 버리고 그 가운데는 평평한 육지의 대로가 되어 있었다 말이오.

그래 오니까 하나님께서 이것들 또 이래도 또 잊어버릴 거라. 또 잊어버릴 것이기 때문에 ‘너거들이 각 지파마다 장정이 짊어질 수 있는 대짐돌을 요단강 한 가운데서 다 짊어져라.’ 한 개씩 짊어졌다 말이오. 짊어지고 가 가지고 요단강을 건너가 가지고 ‘한테 포개라’ 다 포개 놨어. 포개 놓고서, 왜 포개라 했느냐? 이래 갔다 오면 ‘하나님이 요단강을 건너올 때에 요단강을 물을 마르게 해서 그 가운데 있는 돌을 우리가 짊어지고 왔다.’ 이거 가지고 깨달아서 하나님의 인도는 참되며 인간의 생각은 다 거짓부리라고 인간을 부인하고 하나님을 믿도록 하기 위해서 이렇게 했지마는, 그들이 사십 년 동안이나 경험하고 경험해도 꼭 자기 믿는 것을 즐겨하고 자기 주관을 믿었지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어야 이 가나안에 가 가지고 살 수 있지 하나님 믿지 안하면 가나안에 이 모든 악을 다 이길 수가 없고 그 강군들을 이길 수가 없는 것인데 하나님 믿지 않으니 그들은 다 거기 죽어야 되지 어짤 수 없어. 하나마 회개할까 하다가 사십 년이나 거게서 있었지마는 그들이 그만 광야에서 다 죽고 믿지 안해.

그거 다 데리고 갈라고 하나님은 자꾸 하는데 사십 년이나 있어도 믿지 안해서 다 멸망받았고 거게서 난 자녀들만은 이제 믿으니까, 믿는 사람만 됐을 때 그것만 거느리고 다 건너갔습니다.

건너갔지마는 요단강을 건너갈 때도 그들이 또 가다가는 하나님 잊어버리고 또 자기 주관으로 돌아갈 것이기 때문에 주관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열두 돌을 쌓아 놓고서, 여리고를 함락시킬 때에 한 번 돌고 난 다음에는 또 ‘이 돌지마는서도 이 강한 여리고 성이 함락이 되겠나?’ 그러면 그게 뭘로 돌아가는 것입니까? 하나님은 이제 ‘돌면 함락된다’ 했는데, `함락이 되겠나? 이 강한 성이 막 뭐 치고 뭣을 칼로 치고 어짜고 해야 되지 삥삥 돈다고 이거 여리고 성이 함락이 되겠느냐?’ 그건 누구 생각입니까? 자기 주관이라 말이오.

자기 주관이라, 주관으로 인간이 망하기 때문에 이걸 거석하기 위해서 한 바퀴 돌고 난 다음에는 또 열두 돌을 봅니다. ‘아, 하나님께서, 우리가 요단강으로 건너 왔지. 하나님께서 요단강으로 건너가라 하는데 거게 들어가면 다 빠져 죽을 건데 건너올라 하니까 물이 마르고 대로가 돼서 우리가 그 돌을 짊어지고 오지 안했느냐?’ 요렇게 증거를 보여도 또 자기로 돌아가고 하나님을 믿지 안하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가 가지고서 멸망을 받은 거는 그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오늘 우리도 하나님께서 자기가 눈이 어두워서 보지 안해 그렇지 가만히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은 전부 이 기적으로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기적으로 살고 있어. 기적으로 살고 있는 것이 우리가 이거 지금 예배를 드리는 것도 이 기적입니다. 왜? 이 마귀, 세상을 주관하고 있는 마귀, 안 믿는 사람들은 이북 사람이나 이남 사람이나 안 믿는 사람은 누가 주관하고 있어요? 마귀가 주관하고 있어요. 마귀가 주관하고 있는데, 마귀가 그라면 우리 하나님을 섬겨서 자유로 예배 보도록 냅둡니까? 안 냅둡니다. 우리 눈이 어두워 몰라 그렇지 우리 예배 보는 걸 방해하는 것이 천천 만만이오.

이런데 하나님이 그걸 막아서, 안 믿는 이 사회에 예수 믿는 걸 인정할 수 있는 이 사회를 만든 것을 그 사람들이 선해 그렇습니까? 마귀는 지금 당장에 우리를 삼키고 싶지마는 하나님께서 막아서 방해하지 못하도록 그걸 다, 우리 자유롭게 예수 믿을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그게 있어야 우리 밥도 주고 떡도 주고 뭐 모든 거 과학도 주고 해 줄 것 아닙니까? 이렇게 해 가지고 이거 눈을 뜨고 보면 전부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해 가지고 우리를 이렇게 기적으로 보호해 가지고 살게 하지마는 이 기도를 하고 또 자기 생활을 똑똑히 ‘너 이렇지? 한 번 경험해 봐라.’ 경험해 보면 그거 전체가 하나님의 권능이요 기적인데 이거는 생각지 안하고 항상 실컷 말해 놓으면 금방 자기로 빽 돌아가 버리고, 금방 세상으로 돌아가 버리고, 자꾸 세상으로 돌아가고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안하고 이라기 때문에, 자기 중심이냐 하나님 중심이냐? 하나님을 믿느냐 피조물을 믿느냐? 요게서 멸망과 구원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제가 며칠 전에 그 말 했소. 양산동 산에 가 가지고 뭐 내가 주욱 한번 올라가 봤어. 올라가 보니까, 나는 저아레 한번 들어누웠어. 저아레 천막에서 한번 드러눕고 그전에는 드러누운 일이 없었었어. 없는데 저아레 갈 때 그때 처음으로 그날 되게 거석해서 이거 좀 ‘야, 이거 드러누워서 좀 피곤도 좀 풀고 이래 가지고 하는 게 좋겠다.’ 이런 생각이 나 한번 드러누워 봤어. 드러누워 봤는데, 그때 내가 저 위로 한번 올라가 봤어. 올라가 보니까 전부 다 누워자요. 그 참 좋겠어. 그거 비니루 이래 놓고 떡 그래 놓고 선선한데 얼마나 좋겠어? 한숨 자고 또 그거 인제 또 기도하고 이래 하고 이라는데, 그게 보니까 몇은 안 자, 보니까.

안 자고 보니까 뭐 기도하고 있고 엎드려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고 이랬는데, 그래 내가 계산을 했어. ‘자, 어쨌든지 여게 와서 일주일 동안 있으면 결론적으로는 그들이 세상 일이 멀어졌다. 세상이 멀어졌다. 세상이 잊어버려지고 세상이 멀어졌다. 세상이 멀어지고 그래도 주님을 좀 생각 하는 게 좀 많아졌을 것이다.’ 이 계산을 댔어.

어쨌든지 와서 그래도, 일 안하고 그래 있으면 또 낭파돼요. 열심히 부지런히 자기 할 일 부지런히 다 해 놓고, 할 일 다 해 놓고 또 시간 내 가지고 그와같이 거기서 그래라도 하고 이라면은 자기 주관인 악이 차차 차차 죽어지고 녹아지겠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생겨지니, 악이 녹아져야 믿음이 생겨집니다.

자기를 믿는 것이 없어져야 하나님 믿는 믿음이 생겨진다 말이오. 자기 믿는 것이 뭐입니까? 자기 믿는 것이 이름이 뭐이요? 자기 믿는 것이 악입니다. 알겠습니까? 자기 중심 위주라 말이오. 악이 녹아져야 믿음이 생겨집니다. 이러니까 ‘아무래도 와 있으면 믿음이 생겨지겠다.’ 또 아레 내가 여기서 올라가니까 여기 수위하는 ○집사님이 쫓아 올라와 가지고 ‘목사님 이 삼층에 보면 이거 전부 와서 기도도 안 하고 와서 드러누워 자고 그만 그라고 또 오줌도 누고 뭐 이런데, 오줌 누고 이라는데 어떤 사람은 똥도 누니까, 어른이 누었는지 그거는 모르지마는 이라고 이러니까 이런 사람들은 그만 다 가라 하면 좋겠습니다. 가라 하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말합디다.

그래 말해서 그거 내가 그런 말 했어. ‘그래도 저거 집에 가서 자면 좀 새벽기도 나올 수 없을 만치 그만 잠이 깊이 들 것이고, 여기 자면 그래도 자다가 몇 번 좀 더 깰 것이고 새벽기도 참석할 것이고,’ 여기 와 예배당에 누워자면, 누워자면 그래도 저거 집에 누워 자면 그만 누우면 당장 이튿날 아침까지 폭 자 버리지마는 여기 누워 자면 그래도 마음에 걱정이 돼 가지고 자다가 한 번 일어나고 두 번 일어나고 혹 어떤 사람은 세 번도 일어나고 자꾸 그라는 가운데에 그래도 그 악이 녹아지겠고 믿음이 생겨지겠다 해서 ‘그래도 그게 낫다. 그만 냅둬라. 똥을 싸든지 뭐 어짜든지 그래도 거기 와 있는 게 낫다.

냅둬라.’ 이랬어. ‘냅둬라’ 이랬어. 어쨌든지 여러분들 우리가 악을 죽여야 됩니다. 악을 죽여야 믿음이 생겨지지 악을 죽이지 안하면 믿음이 안 생겨집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이렇게까지 인도해도 그들이 악을 죽이지 안하고 결국 광야에서 멸망한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이 악을 죽이지 못하면 이 광야, 우리의 광야는 어뎁니까? 우리의 광야는 뭐이 광야입니까? 세상이 우리 광야입니다. 우리 심신의 기능이 광야에서 다 멸망받고 맙니다. 이 심신의 기능이 부활할 때에 영생하는 기능으로 다 변화되지 못하고 광야에서 멸망받고 만다 말이오.

그러면 우리 원수가 뭐입니까? (악) 우리 원수가 뭐이요? (악) 우리 원수가 뭐입니까? (악) 큰 소리로, 우리 원수가 뭐입니까? (악!) 우리 원수가 뭐입니까? (악!) 악입니다! 자기 중심, 자기 위주, 자기 본위, 자기 사욕, 자기 주관, 어쨌든지 우리 생각은 우리 자신을 망치는 것인 줄 아십시오. 하나님의 생각과 우리 생각은 정반대입니다.

이러기에, 우리 생각 가운데는 성화된 것도 있고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생각과 우리 생각과 생각이 같은 생각은 그 생각이 죽은 생각입니까 산 생각입니까? 산 생각이오. 하나님의 뜻과 우리 뜻이 같으면 산 뜻이오. 하나님의 소원과 우리 소원이 정반대될 때에는 우리 소원은 그거는 산 소원입니까 죽은 소원입니까, 죽이는 소원입니까 살리는 소원입니까? 우리 소원은 뭐이요? 우리 소원은 죽은 소원이요 죽이는 소원입니다. 하나님의 소원은 산 소원이요 살리는 소원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당신을 이 신구약 성경에 기록해 나타내 줬기 때문에 당신이 눈에 보이지 안하지만 당신의 그 뜻을 세밀히 신구약 성경에 기록해 줬기 때문에 성경과 반대되는 것은, 성경과 반대되는 것은 그거 누구의 것입니까? 성경과 반대되는 것은 누구의 것입니까? 자기 것이라. 알겠소? 자기 것인데 마귀에게 지배받은 마귀 것이라. 성경과 반대되는 거는 마귀의 것이요 곧 자기 것입니다. 그게 뭐입니까? 악입니다.

그것으로 우리가 자신도 망하고, 영도 망하고, 육도 망하고, 사업도 망하고, 가정도 망하고, 망하니까 어짜든지 하나님 믿어 달라 그 말이오.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을 믿어서, 하나님 믿는 거는 인정하고 따라가는 거 그게 믿는 것입니다.

인정하고 따라가 보라 그 말이오.

우리 조상들이 구름이 인도하고 불기둥이 인도할 때에 바다가 무슨 상관이 있었으며, 산이 무슨 상관이 있었으며, 층암 절벽이 무슨 상관이 있었으며, 높은 데가 무슨 상관이 있었습니까? 날개 없어도 다 날아올라갔고 다 날개 없어도 다 날아서 내려왔고 배가 없어도 물위로 다 고기가 아니라도 다 통과됐고 이래 했다 말이오.

이러니까, 그것이 우리에게 거울이라 그 말이오. 거울이기 때문에 우리가 그걸 봐서 악을 버리고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서 믿음 걸음 걷는 데에는, 우리 믿음 걸음 걷는 것은 십자가의 걸음인데 십자가의 걸음은 멸망할 사람이 볼 때는 어떻게 보인다 했습니까? 미련하게 보이고, 구원 얻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권능이라.

이러기 때문에, 기독교가 살고 죽는 것이 기독교입니까 죽고 사는 것이 기독교입니까? 기독교가 망하고 흥하는 게 기독교입니까 흥하고 망하는 것이 기독교입니까? 망하고 흥하는 게 기독교라.

왜? 우리 생각으로 망한다 그 말이오. 하나님의 인도는 우리 생각으로 망하는데 인도를 받고 보니까 흥했거든, 성공했거든. 하나님의 인도는 우리 생각으로 우리 비판으로 꼭 죽는데 죽지마는 나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인도를 따르고 보니까 꼭 죽는 걸음을 걸었는데 나중에 보니까 살았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자기를 부인하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에게 상관이 없습니다.

이러니까 날마다, 바울이 말하기를 “나는 싸울 때에 허공하고 싸우는 거와 같이 하지 안한다” “허공을 치는 거와 같이 하지 안한다. 내 싸움에 싸움의 대적을 똑똑히 발견하고 싸운다.” 그 대적이 누구라 했소? 뭐라 했어요, 그 다음에? “자기가 자기를 쳐서 복종시킨다” 그랬습니다. 그런고로 우리의 적이 자기인 줄 알아야 됩니다.

따라합시다.

우리의 적은! 악이다! 우리의 원수는! 악이다! 우리의 원수는! 마귀다! 마귀는! 자기 중심을 이용해서 우리는 삼키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요게 적인 줄 알아야 돼요. 제일 되는 원수가 누굽니까? 자기입니다.

따라합시다.

우리의 제일 되는 원수는! 자기다! 자기 아닌 자기다! 자기를 죽인 자기다!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된! 옛사람 자기다! 자기 아닌 것이! 자기인 것처럼! 가장하고! 나서는! 자기 아닌 자기다! 자기 아닌 원수인 자기에게! 속으면 안 된다! 우리의 원수는 자기 아닌 자기다! 우리를 망치는 자는 옛사람 자기다! 이것을 적으로 삼지 못하면 헛일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종전과 같이 교회 주변에 청소할 때에 부디 덕이 있게, 다른 사람들에게 덕이 있게 감동받아서 하고 억지로 불평해서 할라면 하지 마십시오. 불만해서 불평해서 하는 사람은 하지 말고 ‘요게서라도 내가 다른 사람에게 감동을 주고 다른 사람에게 양식을 주고 요게서라도 복음 운동을 하는 것이 되어지도록 하겠다, 요것이라도 남을 위해서 봉사하는 이 봉사성을 내가 길러야 되겠다.’ 요렇게 요것을 믿음으로 하는 사람 하지 불평으로 하는 사람은 하지 마십시오.

오늘 아침에는 많이 나왔어. 오늘 아침에는 천 명은 조금 못 될까 그러나 약 천 명 되겠습니다. 녜, 감사합니다. 자, 우리 감사하다고 서로 하나님 앞에 영광 돌려 손들어 영광 돌립시다. 녜, 감사합니다. 오늘 수고했습니다. 밤에 아마 나오고 싶은 사람은 잠 여러 번 깼을 것이오. 여러 번 잠 못 자고 깨고 이렇고 이렇고 이래 가지고 했을 겁니다. 못 나온 가족들에게는 밥을 굶도록 권면하십시오. 그래라도 지켜야 됩니다.

저는 오늘 두시 반에 일어났었습니다. 두시 반에 일어나 가지고 여러분들 새벽기도 나오도록 하기 위해서 기도했고 또 다른 일 경영했고 그라고 난 다음에 나왔습니다. 그라다 보니 그만 시간이 너무 지나가 버렸어. 조금 늦었는지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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