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01 21:18
아브라함의 축복
본문 : 창15:4-6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그 사람은 너의 후사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하시고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 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방패와 지극히 큰 상급이 되시겠다고 이렇게 약속을 했습니다. 이 약속을 했을 때에 아브라함이 약속하신 이 축복을 어떻게 하면 잘 보존하고 또 상속을 시켜 줄까 하는 일에 염려를 했습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 네 몸에서 난 씨로 내가 방패와 상급의 하나님으로 되어 주기로 약속하는 이 약속을 네 몸에서 난 씨로 상속받도록 이렇게 하겠다 하실 그때에 아브라함에게는 자기 몸에서 난 소생은 하나도 없었던 때입니다. 아브라함이 그 일에 대해서 멈칫할 때에 밖으로 데리고 가서 별을 보이면서 이 별의 수를 사람이 셀 수 없는 것과 같이 네 자손의 수도 셀 수가 없으리라 그렇게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축복 둘을 상속받을 네 자손의 숫자가 그렇게 많다 하는 것을 하나님이 말씀했습니다.
첫째는 그 자손이 아브라함이 백세에 낳은 이삭, 곧 혈육의 자손을 가리킴이요, 혈육 자손만 가리켰다면 그 자손은 그렇게 많지를 못합니다. 셀 수 없을 만큼 그렇게 많지를 못하고 아주 소수의 민족입니다. 그 뒤에 아브라함의 자손에서 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라고 밝힌 예수님이 나셨을 때에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된 그 사람의 수는 하늘의 별의 수와 같이 그 수가 심히 많습니다. 이래서 성경에 아브라함을 우리의 조상이라 이렇게 말씀했고 또 우리를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이랬습니다. 이 자손이라고 하는 것은 아브라함이 가진 믿음으로 우리가 그 자손이 되는 신령한 자손을 말합니다. 육체의 자손은 유대인들이요, 신령한 자손은 택함을 입고 부르심을 입고 중생 된 자들은 다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방패와 상급이 되어 주시기로 약속하기까지 그의 공로는 컸습니다. 아브라함은 참으로 큰 공로를 가지고서 하나님 앞에 은총을 입었습니다.
그때는 아주 상고 시대이기 때문에 아무런 증거나 또 그렇게 본받을 만한 그런 일이 없을 때에 이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삼기 위해서, 또 하나님의 이 축복을 받는 데까지에는 참으로 굉장한 어려움에서 하나님을 놓지 아니하고 하나님만을 바라봤기 때문에 이 축복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이 이렇게 큰 힘을 들여서 하나님을 방패로 상급으로 삼아 놓은 이 축복이 육체의 이스라엘들에게도 상속됐고 신령한 이스라엘 된 우리에게도 상속이 됐습니다.
이러니까 오늘 우리는 아브라함의 믿음의 자손인데 믿음의 자손 된 우리들에게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방패와 상급이 되시는 이 큰 축복과 하나님을 우리가 상속받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상속받기 위해서 노력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노력할 것은 상속을 받기 위한 노력이 아니고 상속받은 하나님과 이 축복을 믿음으로 상속받았기 때문에 믿기만 하면 상속이 됩니다. 믿기만 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방패가 되고 또 지극히 큰 상급이 됩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된 자손들이기 때문에 믿어야 되지 믿지 않으면 이 효력이 우리에게는 없는 것입니다. 믿을 때에 효력이 있습니다. 믿는다는 것은 잘 아는 대로 순종인데 순종하면 효력이 있습니다.
방패라고 말함은 모든 해를 다 방어해서 해가 오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방패입니다. 또 지극히 큰 상급이 된다는 것은 우리의 소유, 곧 우리의 것이 되는 것 중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우리의 것 된 것을 크게 나누려고 하면 한두 가지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육적으로 우리의 것 되는 것이 있겠고, 또 영적으로 우리의 것 되는 그 영육의 우리의 것 되는 것이 있습니다. 또 해도 영적으로 해가 되는 것도 있고 또 육적으로 해가 되는 것도 있겠습니다. 그러므로 방패가 된다는 것은 영적으로 육적으로 온갖 해되는 것을 다 막아주시겠다 하는 약속입니다. 또 지극히 큰 상급이 되겠다.고 말씀하신 것은 영적으로도 우리에게 모든 것이 충만케 해 주시되 상급같이 그런 성질의 것으로 충만케 해 주시고 또 육적의 것도 그렇게 해 주신다 하는 말입니다. 우리가 믿을 때에 이 일이 되어지지 믿지 않을 때에는 이 일이 이루어지지를 아니합니다.
그러면 영적의 것은 어떤 것을 영적인 것이라고 하며, 육적의 것은 어떤 것을 육적의 것이라고 하는가? 영적의 것은 받은 것이 한 번 받았으면 세상과 영원무궁토록 변동 없이 그것을 자기가 가지고 누릴 수 있는 것을 영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고, 육적의 것이라 하는 것은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에 대해서는 필요가 있고 유익이 되지만 세상을 떠날 때는 없어지는 것은 육적의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육적의 것이 되어짐으로 영적의 것이 되어지고 또 영적의 것이 되어짐으로 육적의 것이 되어지기 때문에 두 종류로 나누기는 나눌 수 있지만 육적의 것이 영적의 것에게 유익이 되고 또 영적의 것이 육적의 것에게도 유익이 됩니다. 영적 해가 육적 해도 되고, 육적 해가 영적 해도 됩니다.
예를 들면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니까 그냥 두고 요셉은 사람 보기에는 온갖 해로운 일을 당했지만 요셉이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이 믿음을 지키니까 해된 그것이 사람 보기에 해가 됐고 일시는 다 해가 됐지만, 믿음을 지켜 나가고 보니까 결과적으로는 그것이 해가 되지 않고 큰 유익이 됐습니다. 그 사람이 마지막에는 애굽 나라의 총리가 됐으니까 그것이 유익이 됐습니다. 감옥에 간 것도 손해 같지만 그 감옥에 안 갔으면 떡 맡은 관원을 만날 수 없고 또 바로에게 소개해서 그런 능력이 나타나서 총리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감옥에 간 그것이 억울하게 감옥 가는 것이 해가 되는 일이지만 거기에서 요셉은 믿음 하나를 지키고 놓지 아니하니까 그 해가 해되지 못하고 도리어 큰 축복이 됐습니다.
그러면 요셉이 그렇게 총리 대신으로 된 그 축복은 영적 축복이겠습니까, 육적 축복이겠습니까? 영적 상급인지, 육적 상급인지, 또 감옥에 갇히고, 형제들에게 죽임을 받으려고 하는 그런 모든 일은 영적 해가 되는지 육적 해가 되는지 어떤 해가 되는지? 예, 그것은 해도 다 육적 해요, 또 유익도 육적 유익입니다.
요셉을 죽이려고 하는 그런 어려움을 당한 것이나 또 감옥에 억울하게 갇혀지는 것이나 그런 것은 다 요셉에게 육적으로 해가 온 것이지, 육적으로 해가 왔지만 요셉이 믿음을 지키니까 그것이 해가 되지 않고 결과적으로는 크게 다 유익이 되어졌습니다. 그러면 형제에게 미움받은 그것이 총리 대신이 되는 그런 결과를 맺는 것이고, 감옥에 간 그것이 또 총리 대신되는 그 결과를 맺는 것이고, 그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흉년들어서 기근에 기사될 그때에 다 구출이 된 것이니까 그것이 육적으로는 큰 유익이 됐습니다. 또 육적으로 오는 해를 방어했습니다. 해를 방어했고 또 큰 유익이 되어졌습니다.
그러나 그뿐만 아니고 요셉이 그렇게 했음으로 요셉의 그 신앙생활을 인해서 그 후에 있는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요셉의 이 사적을 보고 다 그런 신앙들을 가지고 구원을 이루게 됐습니다. 그러니까 요셉이 육적으로 유익을 본 것은 그 당시에만 봤지만 그가 하나님의 백성을 이 믿음으로 구출하는 성공을 한 그런 것은 영적으로 아주 큰 유익을 본 것이 됐습니다. 또 그뿐 아니라 요셉이 그런 역경을 당해도 믿음을 지킴으로 총리 대신이 된 그것도 육적 유익, 또 그 형제들에게 미움을 당하고 감옥에 가고 이와 같이 함으로 그 해가 해되지 않았고 도리어 유익이 됐으니까 그 해를 방지 받는 그것도 육적 해를 방어 받았고 또 육적 유익을 봤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렇게 하는 가운데서 요셉과 하나님은 점점 가까워졌고, 또 하나님의 사랑과 지혜와 능력을 요셉이 점점 더 많이 받게 됐습니다. 이래서 요셉이 애굽 나라에 가서 불학 무식한 사람이 총리 대신이 되어서 그 나라를 잘 다스리게 된 그 지혜나 지식이나 모든 능력은 다 이때에 하나님에게 받은 지능입니다. 그러면 그 지능은 요셉이 세상의 높은 지위와 권세를 감당하는 데에도 크게 유익이 됐지만 그 지능은 영원히 하늘 나라에서 가지고 쓰게 됩니다. 또 그뿐만 아니라 이로 인해서 요셉과 하나님은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가져서 이런 순서를 통과하기 전보다 요셉은 하나님을 많이 차지했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의 하나님이 많이 됐습니다. 충만케 됐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런 경과가 있기 전에 요셉의 하나님된 그 하나님과 이런 순서를 겪은 후에 하나님이 요셉의 하나님 되신 것은 아주 크게 차이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으로 아주 부요해졌습니다. 또 요셉이 하나님의 그 신성을 닮은 그 인격성,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그 형상으로도 아주 부요해졌습니다.
그러면 이런 것은 자기가 그때에 이런 어려움을 당했을 때에 만일 요셉이 아브라함의 자손의 그 위치를 지키지 않고 아브라함의 자손의 위치를 벗어났더라면 이런 일을 받지 못합니다. 그때 믿음을 지키지 안했으면 요셉이 육적으로 해하는 그 해를 요셉이 다 받게 됩니다. 믿음 떠났으면 형제들에게 미움 당한 그것이 참으로 미움을 당했고 종으로 팔려 가서도 믿음을 떠났으면 믿음을 버렸다면 일생 동안 그 집에서 꼼짝 못하고 종노릇했습니다. 또 감옥에 들어갈 때까지는 잘됐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인도를 받았다 할지라도 감옥 안에 들어가서 또 믿음을 지키지 안했으면 요셉의 이제까지 한 것이 그에게 해가 됐지 유익이 될 수가 벗는 것입니다. 요셉은 믿음을 가졌기 때문에 육적으로 오는 해도 방어됐고, 또 육적 해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서 요셉이 믿음을 지키지 못한 어려움을 인해서 하나님을 배반했더라면 그의 인격에 해도 자기는 받았습니다.
하나님도 잊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지능도 자기는 받지 못하고 손해를 봤습니다. 그러나 믿음을 지켰기 때문에 영적 해도 방어됐고, 육적 해도 방어됐고, 영적 유익도 다 얻었고, 육적 유익도 얻었습니다.
요셉만 이러한 것이 아니고 모든 사람들이 다 그러합니다. 예를 들어서 다니엘을 그들이 몰아세워서 사자 구덩이에 넣어 죽이려고 애를 썼었는데 그것이 육적 해입니다. 다니엘을 육적으로 해하려고 했는데 다니엘이 믿음을 떠나지 않고 지키니까 해할려는 그 해가 다니엘을 해하지 못했습니다. 다니엘을 죽이려고 한 그 모든 모략들이, 운동들이 다니엘이 믿음을 지켰기 때문에 믿음으로 인해서 다니엘을 죽이지 못했습니다. 다니엘이 육적으로 죽는 해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방어가 돼 버렸습니다. 또 다니엘을 그 벼슬에서 떨어뜨려 죽여 버리려고 했는데 다니엘은 사자 구덩이에 들어가서 죽지 않고 나오니까 그것이 상급에 속한 것입니다. 죽이려 했는데 죽지 않은 그것이 방패에 속했고 죽지 않고 나오니까 이전에 산 다니엘보다 그의 생명은 더 튼튼하게 됐습니다.
그것이 상급입니다.
또 다니엘의 총리 대신 자리를 빼앗으려고 그들이 모략했지만 그 총리 대신 자리를 빼앗기지 안했으니까 그 해를 받지 안했습니다. 또 그가 총리대신만 된 것이 아니라 이제는 셋 중에 제일 높은 총총대신이 되고 이전보다 더 높아진 그것이 또 상급을 받은 것입니다. 다니엘이 해를 방어했고 상급을 받은 것은 믿음 하나 가지고 됐습니다.
또 다니엘은 이뿐만 아니라 이렇게 함으로 어려움을 만났으니까 그때에 다니엘이 죽지 않기 위해서 믿음을 버렸다면 다니엘에게 영적 손해는 어떤 손해가 있었겠습니까? 네, 영적 손해는 그만 하나님과 다니엘은 아주 멀어지게 됩니다. 또 하나님의 권능이 다니엘에게 함께 해서 모든 사람에게 뛰어나게도 했는데 그러면 그 권능도 잊어버리게 됩니다. 하나님도 잊어버리고, 하나님의 권능도 잊어버리고 이러니까 이것이 다니엘에게 큰 해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영적 해입니다. 육적 해는 죽이려는 그것과 그 지위를 빼앗으려는 그것이고 영적해는 다니엘이 그 하나님을 모시지 못하도록, 다니엘이 하나님의 그 지능을 가지지 못하도록 하려고 한 것입니다. 자기네들이나 사람은 모르지만 악령은 이것을 노립니다. 사람들이 다니엘의 육의 생명을 끊으려고 저들이 애썼고 다니엘의 그 지위와 권세를 빼앗으려고 애를 쓴 그것은 사람들이 다니엘을 해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일을 통해서 다니엘의 하나님을 다니엘에게서 없이 하려고, 다니엘에게 하나님의 기능을 없이 하려고 하는, 하나님과 밀접한 관계를 없이 하려고 하는 그것은 다니엘에게 영적 해가 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적 해가 오는데, 바사나라에 있는 백성들이 다니엘에게 영적 해를 주겠다는 이것을 그 백성들이 했습니까? 누가 이렇게 했습니까? 백성들은 이것을 몰랐습니다. 백성들은 저희가 아는 다니엘의 지위를 빼앗으려고 하는 것과 다니엘을 죽여 버렸으면 저희들이 이 주권을 가질 터인데 다니엘 때문에 항상 밀리니까 다니엘을 죽여버리려고 했고 다니엘의 지위를 빼앗으려고만 했지 그보다 더 큰 손해를 다니엘에게 보일 그런 생각은 몰랐습니다.
그러나 악령은 그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켜서 이런 경영을 한 것이 다니엘의 껍데기 손해를 입히려는 것보다도 신령한 손해를 입히려 한 그것이 그의 목적이었습니다. 그러면 신령한 손해를 입히려고 한 것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하나님과 하나님의 모든 은총을 없애려고 한 그것이 영적 해를 주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육적 해만 될 때도 있고 영적 해만 될 때도 있지만 대개는 영적 해, 육적 해 이 두 가지 해가 겸해집니다. 또 우리에게는 영적 유익, 육적 유익 이 두 가지가 겸해질 때가 많습니다. 그랬는데 다니엘이 믿음을 지키니까 육적 해도 받지 많았습니다. 죽지도 않았습니다. 또 그 지위도 빼앗기지 않았습니다. 또 영적해도 받지 않았습니다. 그로 인해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모든 은총을 빼앗기지 않았습니다. 믿음 하나 꼭 지키는 요것 때문에 빼앗기지 안했습니다.
또 육적 유익과 영적 유익을 다니엘은 믿음 가지고 받았습니다. 육적 유익은 사자 구덩이에 들어가기 전의 그 생명보다 들어갔다 나온 다음에 다니엘의 생명은 다른 생명입니다. 더 권위있는 생명이요, 든든한 생명입니다. 이제는 원수가 없는 생명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또 들어가기 전의 총리보다 들어갔다 나온 다음에는 최고의 총총리를 얻었으니까 육적으로 손해를 다 방어했고, 또 육적으로도 더 좋아졌습니다.
그러면 영적으로는 어찌됐는가, 다니엘이 믿음만 버렸으면 다니엘과 하나님과 하나님의 은총과는 완전히 끝나 버리는 것인데 다니엘이 믿음을 지켰으니까 이 손해를 보지 않았습니다. 또 영적 유익은 그때에 믿음을 지킴으로 말미암아 그 순서를 통과하기 전의 다니엘과 하나님과의 관계와 그 후의 하나님과의 관계는 아주 다릅니다. 다니엘도 딴 사람됐고, 다니엘의 받은 바의 은총의 기능도 딴 것이 됐고, 또 하나님과의 관계도 딴 관계가 됐고, 하나님도 다니엘을 이전보다 참 실력 있는 사람으로 쓸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에 아브라함에게 '내가 네 방패와 상급이 되어 주겠다' 하신 이 약속은 참으로 큰 약속이요, 이는 어려운 약속이요, 이는 큰 축복인데, 우리는 아무 공로 없이 다 받게 됐습니다. 누구든지 택함을 입고 사죄와 칭의와 새생명 받아 중생 된 사람이라면 다 이것은 이미 받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상급과 우리의 방패가 되는 것은 이미 우리가 받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큰 소망이, 이 큰 축복이 우리에게 실제로 이루어지는 데에는, 실상으로 이루어지는 데에는 무엇을 가지고 이루어질 수 있습니까? 무엇을 가지고 아브라함이 받아서 우리에게 상속시켜 주신 큰 은혜가 자기 것으로 실상을 만들 수 있습니까? 네,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리 것은 다 되어 있지만 실상을 만드는 데에는 믿음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이러니까 육에 어떻게 해가 올지라도 믿음만 지키면 그 해가 변해서 큰 유익이 됩니다. 천하의 사람이 어떤 해로 해하려고 해도 믿음만 지키면 해하지 못합니다. 해하지 못할 뿐 아니라 그 해 그것이 큰 유익으로 바꾸어지고야 마는 것이 이것이 믿음의 비밀입니다. 또 우리가 믿음을 지키면 큰 상급과 방패가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만 지키면 영적 해나 육적 해나 어떤 해라도 믿음 지키면 이 해는 방지됩니다. 자기에게 해가 안됩니다. 천하 인간이 다 해하려고 할지라도 믿음만 지키면 해하지를 못합니다.
가인이 아벨을 빈 들판으로 데리고 가서 죽였는데 가인이 아벨을 해쳤습니까, 못 해쳤습니까? 해하지 못했습니다. 해하지 못한 것은 무슨 해를 입히지 못했습니까? 영의 해를 입히지 못했습니다. 영의 해를 못 입혔고 실은 육의 해도 입히지 못했는데 그것이 혼잡 되기 때문에 영의 해만 못 입혔다 그렇게 알면 되겠습니다. 육적 해도 못입혔습니다. 다니엘의 심신을 해하지 못했습니다.
또 아벨이 믿음을 지켰기 때문에 가인이 아벨의 영육을 다 유익 되게 했습니다.
이러니까 아벨의 부활한 영광스러운 심신은 인간으로서 예수님 다음으로 존영한 심신이 돼 버렸습니다. 그렇기에 하늘 나라에 가면 예수님의 심신이 제일 존영하고 그 다음에 이차적으로 존영한 심신은 아벨의 심신입니다. 아벨의 마음과 몸을 그렇게 영광스럽게 한 것이 가인이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오는 영육의 해도 믿음만 지키면 도리어 유익이 된다는 요 비밀을 굳게 잡아야 됩니다. 가인은 그를 해하려 했지만 육적 해는 입었으나 영적으로는 유익을 봤다. 그렇게 여러분들이 알면 되겠습니다. 그러나 육적 해를 본 것이 아니고 육도 굉장한, 그 이상의 없는 유익을 봤습니다. 예수님 다음 가는 그런 육적 유익을 본 것이 아벨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믿음만 가지면 모든 해가 변해서 유익이 된다 하는 요것을 굳게 잡아야 합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이 약속이 우리에게도 약속되어 있습니다. 약속되어 우리의 것이 돼있지만 우리가 믿음 지키면 우리 것이 되고 믿음 안지키면 안됩니다. 그렇기에 무엇이 어떻게 우리를 해하려고 우리를 궁지에 몰아 넣어도 거기서 믿음만 지키면,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의 뜻에 입각해서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순종하는 그것이 믿음이니까 그일만 하면 깊이 빠졌으면 빠진 것 만큼 높이 솟아오릅니다. 더 큰 유익이 되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것을 굳게
아야 합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이 약속이 우리에게도 다 약속돼 있습니다. 약속이 돼서 우리의 것이 돼 있지마는 우리가 믿음 지키면 우리 것이 되고 믿음 안 지키면 안됩니다.
그러기에 어떻게 무엇이 우리를 해하려고 우리가 궁지에 깊히 빠져도 고게서 믿음만 지키면 고게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의 뜻에 입각해 가지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순종하는 고것이 믿음이니까 고 일만 하면 깊히 빠졌으면 깊히 빠진 것만치 높히 솟아오릅니다. 더 큰 유익이 되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요것을 굳게 잡읍시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자기에게 오는 모든 인간이나 자연이나 어떤 해라도 오는 그 해를 믿음으로 방어하려고 하지 않고 자기 육적 힘으로 방어할려고 하는 사람 어리석습니다. 방어할려 하면은 결국은 실패합니다. 믿음으로 방어해야 됩니다. 믿음으로 방어하면 믿음으로 방어하면 그 방어를 누가 해줍니까? 하나님이 해주십니다. 또 내가 믿음을 믿음으로 건설하면 믿음으로 건설하면 누가 건설해줍니까? 내가 믿음으로 건설하면 하나님이 건설해줍니다.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