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28 23:12
십자가의 도
본문 : 고린도전서 1장 18절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이런 성구는 늘 요절로서 외워 가지고 있는 것이 좋습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이렇게 늘 요절로 암송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서 생활 할 때도 시간마다 생각하는 게 좋고 기도할 때도 생각하는 게 좋고 무슨 사건을 만날 때도 생각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면 이 말씀의 능력이 우리를 도와 주십니다.
십자가의 도란 말은 십자가의 길이란 말인데 십자가의 길이란 말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를 입은 사람들이 살아갈 길이라는 말입니다. 이 길은 살아가는 데에 심히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 가운데에 십자가의 원수들이 많다 그렇게 빌립보 3장에 말씀을 했습니다. 예수 믿으러 다니는 사람들 가운데에 십자가의 원수가 많다. 저들은 배로 하나님을 삼는 자들이다. 뭘 먹고 살꼬 하는 그것만 위주로 하는 사람들이다. 저희의 영광은 부끄러움에 있다. 저들이 소망하는 것은 다 알고 보면 부끄러울 일, 다 풀의 꽃과 같고 풀과 같은 그런 일들이다.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땅에 있지 않고 하늘에 있다. 우리는 이 세상은 잠깐 동안 살면서 영원을 준비하는 기간이기 때문에 세상살이는 영원을 좌우하는 세상살이다. 그러기 때문에, 잠시 잠깐 후면 주님이 구름타고 오실 터인데 모든 만물을 복종시키는 주권하시고 전능하신 그 능력을 가지고 모든 만물들을 다 복종을 시켜서 당신의 영화로운 몸과 같이 우리의 이 천하고 죽고 약한 몸을 그렇게 변화시켜 주신다. 그러므로 이것을 바라면서 십자가의 길을 걸을 것을 말씀했습니다.
십자가의 길, 구속받은 자들이 살아가는 이 길은 어떻게 해서 그렇게 어려운가? 어려운 것은 세상하고 맞지 않기 때문에 어렵습니다. 이제까지 멸망할 세상, 악령과 악성과 악습으로 더불어 한 덩어리가 돼 가지고 그것 좋다 하도록만 했기 때문에 세상 지나가는 동안에는 그저 물에 물탄 듯. 술에 술탄 듯 모는 것을 타협해서 창가와 같이 그저 모든 사람의 비위 다 맞추고 모든 만물들의 비위도 다 맞춰서 그거 좋도록만 하다 보니까 아무런 마찰은 없지만 일생 산 것은 다 하나님 앞에 정죄가 되고 거짓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십자가의 도를 걸어가는 것은 그들을 과거라 같이 그렇게 상관하지 안하고 이제는 하나님의 법칙을 따라서 상관을 가질려고 하니까 저거 법칙대로 상관하지 않는다고 해서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는 성도들에게 많은 대적과 박해가 있습니다. 박해 있는 그것을 가리켜서 십자가의 도를 걷는 십자가의 길이라 그렇게 말하고, 그 길을 걷는 것을 가리켜 순생 길이라 그렇게 합니다. 순생 길이라 순생(殉生)이라 말은 죽음 순(殉)자 살 생(生)자 죽음으로 산다 날마다 걸으니까 세상에게는 참 죽임을 당하는 거와 같은 그런 어려움을 가지는 그런 생활한다. 마지막에는 순교한다. 자기가 이 십자가의 도 때문에 죽음 순(殉)자 이 기독교라는 교란 교(敎)자. 그러면 기독교 때문에 자기는 죽는 생활한다. 예수님 때문에 자기 는 죽는 그 길을 간다. 그것을 가리켜서 순교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 어떤 것인가? 구속받은 사람들이 십자가의 도로 구속을 받은 사람들이 세 가지 걸음으로 걸어가는 것이 십자가의 도를.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세 가지 걸음을 걷는 것.
한 가지는 주 하나님만 믿는 것, 주 하나님만 믿는 것. 주 하나님만 믿다니 그분이 제일 크심을 믿습니다. 그분이 지극히 크심을 믿습니다. 그분만이 영원히 나를 사랑하시는 것을 믿습니다. 그분만이 나를 모든 면에 다 책임을 져 주실 것을 믿습니다. 또 그분만이 나를 바로 인도하실 분이기 때문에 그분만을 믿습니다. 그러면 그분만을 믿으면 딴 모든 과거에 믿던 것들은 어찌하느냐? 믿던 것들은 과거에 믿던 방식을 다 버려 버립니다. 그러면 땅위에 모든 것은 하나도 안 믿을 것인가? 믿을 것이 많습니다. 많은데 그거는 다만 주님이 믿으라고 하는 그대로만 믿지 주님을 거슬려서는 믿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신구약 성경 말씀에 네 부모는 어떻게 믿고 네 형제는 어떻게 믿고 친구는 어떻게 믿고 모든 만물들은 어떻게 믿고 하는 것을 다 말씀해 놨기 때문에 주님의 법칙에 맞추어서 주님에게 순종함으로 주님을 믿는, 믿는 믿음이 되는 믿음만 그것들에게 대해서 믿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과거에 악령 악성의 법대로 믿지 않는다고 해 가지고 우리에게 박해를 줍니다. 그렇게 믿지 아니한다고 해서 박해를 주나 박해를 받지 않기 위해서 내가 주님이 주신 법칙대로 그것들을 믿지 안하고 과거대로 믿으면 나도 죽고 그도 죽고 다 죽습니다. 우선 어려움은 없지만 다 죽습니다. 그러나 내가 이제는 십자가의 대속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신 법칙대로 하나님을 믿기 위해서 하나님 믿는 일이 되는 고런 것만 믿고 딴 법칙으론 믿지 않습니다. 그러면 박해를 당하지만 나도 살고 그도 살고 핍박하는 그도 살고 모두가 다 구원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주님만 위합니다. 주님 외에 딴것을 위하는 것은 그것이 다 내가 위할 만한 그런 대상이 되지를 못하고 또 하나님을 떠나 그 위하는 것은 나도 손해를 보고 그것도 손해를 보기 때문에 하나님을 위하는 위함이 되는 것만 모든 피조물을 위합니다. 그러면 그들도 저거를 저거 법대로 과거에 마귀 법대로 위해 주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에게 박해를 주나 박해를 받을 때에 우리가 고생을 당해도 주님을 위하는 그 일과 주님을 위하는 위함이 될 때만 그들을 위하게 되면 내가 박해를 당하면서 그리 하는 그것은 나중에 가서 보면 박해를 당하기까지 그를 사랑한 것이 됩니다. 박해를 당하기까지 주님을 사랑한 것이 되고 또 그것을 사랑한 것이 됩니다. 만일. 그러다가 내가 그들에게 죽임을 당하면 죽임을 당해도 주님만 위하면서 주님 위함이 되는 그 범위 내에서만 그들을 위하고 주님이 위하라고 그 법칙대로만 위하게 되면 그러다가 그들에게 해를 당해 죽었다고 하면 그 사람은 주님을 죽기까지 위한 사람이요, 또 형제를 죽기까지 위한 사람입니다. 그렇게 위하는 데에서 많은 사람들이 다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우리가 위한다고 해도 뭐 껍데기로 자기에게 어려움 없을 때만 위하고 어려움 있으면 그만 위하지 않는 거기에서는 변화나 생명의 역사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주님의 법칙은 주님도 내 있는 것을 다 위해서 가지고 위하고 모든 원수까지도 내게 있는 것을 다 위해서 다 가지고 원수를 위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만 믿고 주님만 위하고 또 주님만 따르는 것, 주님만이 나를 바로 인도하실 수 있고 지도하실 수 있고 또 나를 책임지실 수 있고 전지전능자가 내가 그 지도를 받을 때에 나를 책임져 주시는 것. 그러면 주님의 뜻대로만 하면 주님이 모든 것을 다 주님의 인도대로 한 것은 당신이 책임을 져 주십니다. 내게 내 힘으로 모지라는 것은 다 책임을 져 주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만 믿고 주님만 위하고 주님의 뜻에만 따르면 저거 뜻을 따르지 않는다고 해서 대적을 합니다. 그래도 내가 주님의 뜻만 따르는 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위하는 것이요 믿는 것이 요 또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요 구원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만 믿고 위하고 따르는 이 일을 어려워도 해야 되고 고생스러워도 해야 되고 지루해도 해야 되고 피곤해도 해야 되고 손해가 가도 해야 되고 내가 무슨 고문과 고행을 당해도 해야 되고 마지막에는 죽어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기에 주님 믿는 것이 모든 피조물을 바로 믿는 것이고 주님 위하는 것이 모든 피조물을 바로 위하는 것이 되고 주님을 따르는 것이 모든 피조물과의 관계를 내가 바로 가져서 따르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 가지를 항상 기억하고 주님만 믿고 주님만 위하고 주님만 따라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이라면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첫 시간에는 주 하나님이라고 내가 말을 했습니다. 말하는 것은 주님이라 하면 별스러운 다른 것인 줄 알고 하나님과 하나인 것을 깨닫지 않기 때문에 주 하나님 이래 할라 하니까 대단히 복잡해집니다. 그러나 이제는 여러분들이 알았으면 주님 하면 곧 하나님이요 하나님 하면 주님이십니다. 그러기에 삼위일체의 하나님이지만 직책을 따라서 그렇게는 말하나 실은 성부가 성자요 성부가 성령이요. 성자가 성부요 성령이요.
성령이 성부요 성자요 성령이요 내나 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본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요 세 가지를 기억하고 아무리 어려워도 피곤해도 요 세 가지를 지키는 생활로 끝이 나야만 하는 것들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뒤로 돌아서면 안 됩니다. 또 뒤로 자빠지면 안 됩니다. 요 세 가지. 주님만 믿는 것 위하는 것 밟는 것 요 일을 하다가 끝이 마쳐져야 됩니다. 숨질 때도 요렇게 요 일하다가 그쳐야 됩니다. 독침 앞에서도 독약을 우리를 먹이고 고문과 고행을 가지고 감옥이고 뭐 가정이나 사회나 자기의 직장에서나 사업에서나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요 세 가지를 계속 지키는 것이 고것이 우리의 갈 길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 길은 멸망할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 됩니다 멸망할 자들에게는 어리석은 일이 되고 불리한 일이 된다 그말입니다. 멸망할 자라 말은 불택자라 말입니다. 불택자들은 그들이 성령의 감화를 받지 못했고 진리를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불택자들의 지식에는 이해가 안 됩니다 불택자들의 지식에는 어리석게 보입니다. 또 그뿐만 아니라 불택자들에게는 유익이 하나도 없습니다. 소용이 없습니다. 또 불택자들에게는 어찌되느냐? 불택자들은 멸망하는 길입니다.
주님이 오신 것은 하나님의 법칙을 따라서 악령의 일 악성의 일, 악습의 일 그것을 멸하러 오셨기 때문에 십자가의 길을 걷는 것은 악령과 악성과 악습을 멸하는 것이기 때문에 세상을 멸하는 것입니다. 세상을 죽여서 살리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십자가의 도는 세상에 속한 것을 죽이고 죽여 가지고 그것을 살리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독교는 살인의 도요 구인의 도입니다.
악령과 악성으로 되어 있는 사람을 죽이고 죽여 가지고 성령과 진리로 의로 이렇게 살리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멸망할 자 불택자들에게는 그들에게는 손해 가는 길입니다. 십자가의 도는 불택자의 그 모든 생활이나 사상이나 주장이나 쾌락이나 그런 것을 다 깨트리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아주 노름을 차는 그런 나쁜 일을 합니다. 그러면 십자가의 도는 노름하는 일을 돕는 것이 아니고 노름하는 일을 절단을 내서 박살을 시켜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십자가의 도를 걸으면 그 사람이 노름하던 일을 그만 노름을 안 하게 됩니다. 또 어떤 자가 이렇게 남녀 이성의 미혹에서 그 칠계를 범하고 있는 자가 십자가의 도를 걸으면 칠계 범하는 것이 그것이 자꾸 더 형통해지는 게 아니고 칠계 범하는 그 일을 절단내서 칠계를 범하지 못하도록 만들기 때문에 칠계 범하는 일이 깨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택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을 얻은 우리에게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 구원을 얻다니? 하나님 앞에 택함을 입은 자들에게는 능력에 연결이 된다.
십자가의 도가 택함을 입은 우리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걸어가는 그 능력의 길이 된다 뭣 때문에? 이 길을 걷는 것이 하나님과 나와의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에게 속해서 하나님과 나와 하나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내가 속함되는 것입니다 속해서 합해지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모든 것을 내가 은혜와 축복으로 받는 길입니다. 이 길 걸으면 하나님의 모든 은혜를 받고 모든 축복을 받게 됩니다. 결과적으로는 이 길 걷는 것이 마지막에 결말은 무엇을 이루는고 하니 나는 주님의 것이 완전히 되고 내 것은 주님의 것이 완전히 되고 주님과 주님의 것은 내 것이 완전히 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늘과 땅의 것이 당신의 것은 다 내 것입니다. 나는 당신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십자가의 길을 걷는 것은 택함을 입은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이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요것을 기억하고 자꾸 기도 해도 요 생각하면서 또 기도하고 새김질하면서 기도하고 요라면 점점 요 도에 대해서 자꾸 넓게 밝게 알게 됩니다. 알고 깨닫고 믿게 됩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