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계명-일계명

 

1987. 3. 28. 새벽 <토>

 

본문:출애굽기 20장 1절∼3절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일러 가라사대 나는 너를 애굽 땅, 종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여호와라는 이름은 하나님의 이름인데 이 성호를 구약에는 많이 말씀하셔서 나는 여호와라 이렇게 했지마는 신약에는 그렇게 말하지를 안했습니다. 이라니까 여호와라는 이름은 구약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이름이라 이렇게 생각을 하고 신약 교회에 속한 우리들은 이 여호와 하나님은 옛날 하나님 무슨 구약에 관련된 하나님을 말하는 것처럼 이렇게 생각하는 그런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들에게 이 계시하신 것을 보면 사람들의 그 자라가는 정도에 따라서 하나님이 계시해 주셨습니다. 땅에 있는 모든 이종교들은 사람들이 그 도를 작성했기 때문에 모든 것을 보면은 다 진화적입니다. 이렇게 차차 차차 이렇게 또 생각해 보고 말하고, 생각해 보고, 말하고, 연구해 보고 말하고 이렇게 하지마는 하나님의 도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래서 고등비평가들은, 모두 다 유식한 학자들은 기독교를 말하기를 ‘기독교도 다 진화의 종교다’ 그렇게 말을 해서 ‘사복음도 제일 처음 기록한 복음이 마가복음이고 제일 짧다. 그렇고 차차 차차 이제 복음이 그 넓어지고 깊어지고 길어졌다’ 이렇게 생각들을 하는 거와 같이, 구약에는 여호와라는 말씀을 많이 이름을 이 성호를 나타냈지마는 신약에는 안 했기 때문에 이는 구약 그때에 나타난 하나님을 여호와라 한다. 우리와는 거리 멀리 생각하고 또 하나의 옛날의 하나님같이 이렇게 생각을 해서 구약에 나타난 이 모든 교훈들을 이 신약에 나타난 교훈보다 우리 신약 교회와는 관련성이 좀 적은 것으로서 그렇게 생각들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잘못입니다.

창세기 1장 25절까지에는 보면은 “하나님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다” 이렇게 말씀을 하시고 마지막으로 사람을 지으실 때에는 26절에 비로소 “우리가 이 사람을 우리 형상대로 짓자” 거게서부터 하나님이 복수의 하나님으로 나타나셔서 본체는 하나이나 그 직위, 그 격위 곧 직위는 셋인 것을 나타내서 “우리가 어떻게 하자” 하는 그런 말씀을 비로소 발표를 했습니다.

또 그라고 난 다음에, 거게도 1장에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아무런 여호와라는 말이 없습니다. 여호와라는 말이 없고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우리가 또 사람을 어떻게 지을까 우리 형상대로 짓자” 이래도 늘 하나님으로 나타났지 여호와라는 말이없습니다.

없다가 창세기 2장 4절에 비로소 “여호와 하나님이라” 이렇게 나타나셨는데 그때에 무엇을 하실 때에 여호와 하나님이 나타나셨는가? 사람을 지으시고 사람을 위해서 에덴동산을 만드시고 에덴동산에 사람을 거처하게 하고 사람들에게 “동산을 다스리며 지키고 또 일반 과실은 먹고 선악과는 먹지 말아라” 이렇게 하나님과 사람과의 직접 관계, 하나님이 사람을 관리하시고 또 구원되는 그 길을 여시고 하는 그 신인 관계를 가질 그때에 비로소 여호와라는 이름이 나타났습니다.

이래서, 그러면 거게 여호와는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가리켜서 여호와라고 하는지, 또 성부를 가리켜서 여호와라고 하는지, 성자를 가리켜 여호와라고 하는지, 성령을 가리켜 여호와라고 하는지 하는 거게 대해서 ‘거게 여호와는 성부를 가리켜서 여호와라 한다’ 다 사람들이 모두 이렇게 생각하는데, 여호와는 신인 계약을 선포하고 신인 관계를 가지는 그때부터 여호와라고 나타났습니다.

그러면 여게 있는 여호와 하나님은 삼위 중에 어떤 위를 주체로 삼아서 이렇게 나타났는가? 곧 삼위일체의 하나님 중에 제이위인 그리스도 성자를 말해서 나타났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는 우리와의 관계는 창세 전부터 우리와의 관계를 가졌습니다.

“창세 전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했다” 그러면 우리 구원의 시작이 택한 그것이 제일 시발이요 그 택함이 곧 하나님의 목적이신데 그 목적을 나타낼 때에 그때에 벌써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했다” 이렇게 말씀을 하시고, 그러면 또 그 가운데에는 여호와로 나타났다가 또 신약에 와 가지고는 하나님의 독생자로 이렇게 요한복음 1장에 나타났고 그랬는데 그 1장에 말씀하시기를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은 곧 하나님과 함께 계셔서 하나님이시니라.

모든 것은 이 말씀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지음을 받았다. 지음받은 것이 하나도 그가 짓지 안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또 세상을 창조했다.” 이렇게 해서, 거게 여호와라고 나타난 하나님은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이신데 삼위일체의 하나님으로 거게 나타난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여호와라 이렇게 하는 것보다도 그리스도 곧 성자 하나님, 인인 관계에 되는 그 성자 하나님을 주로 여호와라고 했다 하는 그것을 우리는 성경에 찾아보고 깨달아야 합니다.

이래서 지금 제가 늘 말하는 것은 구약적 하나님과 신약적 하나님을 사람들이 차이 있게 생각하고 또 이 여호와라든지 또 창세기에 그때에 창조하시고 인간들에게 관계를 선포해서 사람을 에덴동산으로 인도하고 또 거게 이런 관계의 계약을 말씀하시고 또 거게 대해서 처리를 하시고 또 타락하고 나니까 가죽옷을 지어서 입히고 또 여인의 후손과 배암의 후손이 서로 시비가 있어서 결국은 여인의 후손이 배암의 후손을 다 정복하고 구원할 것이라 이렇게 말씀을 하신 그때에 역사하신 하나님, 에덴동산 숲속에 숨은 것을 찾아가 가지고, 찾아 가지고 또 그에게 구원의 대속의 길을 여시고 창세기 3장 15절에 계약을 선포해 놓은 그 하나님이 성부 하나님인가 성자 하나님인가 성령 하나님인가 삼위일체 하나님인가? 그 중에 성자 하나님인가 하는 여게 대해서 일반들이 생각하기를 다 그는 성부 하나님이라 이렇게 생각하는 이것이, 물론 성부도 다 삼위일체기 때문에 성부가 계시는 데에 성자가 계시고 성령이 계시고 같이 계십니다.

이래서 요한복음 1장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하나님이시라. 그가 모든 것을 창조하셨다. 창조된 것이 그가 없이는 창조된 것이 하나도 없다.” 그렇게 그 함께 계셨다 하는 것은 삼위일체를 가리켜서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나 인인 관계에는, 삼위가 다 같이 계셨지만 인인 관계에는 특별히 성자 예수님 곧 그리스도와의 우리와의 관계가 제일 가깝고 또 우리의 중보자요 우리의 책임자로 이렇게 되어 있고, 이래서 요한복음 15장에는 말씀하시기를 “아버지는 농부요” 주님은 우리와의 어떤 관계를 가졌는가? “포도나무요 우리는 포도나무 가지라” 이렇게 했습니다.

이래서 창세기에 그때에 만물을 모두 다 천지를 창조하시고 하나님께서 물 위에 운행하시고 또 그 다음에 인간 만들 것을 의논하시고 그럴 때까지는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이렇게 한 것으로서 이랬지마는 그 다음에 26절에 “우리가 어떻게 사람을 지을꼬?” 할 때 그때에 그때부터 삼위일체 하나님이 사람 지을 것을 의논할 때에는 삼위가 다시 의논해 가지고 사람을 지으셨고, 사람 짓고 난 다음에 사람에게 대해서 특별히 책임을 가지시고 이렇게 역사하신 분은 곧 여호와신데 곧 그리스도시라.

이래서, 여호와를 구약 하나님으로 이렇게 자꾸 이래 몰아붙여 가지고 이라는데 저는 지금 여호와 하나님은 곧 신약에 우리의 중보자인 그리스도, 삼위일체 하나님 중에서도 그리스도를 나타내서 말씀한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여호와라 말은 계약을 선포하시고 계약대로 이행하는 하나님이라는 그런 뜻이다 하는 그런 것을 말합니다.

왜 그것을 자꾸 말하는고 하니 ‘십계명은 구약적 계명이요 신약에는 물론 해당이 되지마는 좀 거리가 먼 그런 묵은 계명이다’ 이렇게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런 잘못된 관념이 있어서 그것을 지금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래서 이 십계명은 곧 신구약 육십육 권의 도리를 간추려 놓은 벼릿줄이 십계명입니다. ‘그러면은 신구약 성경이 나오기 전에 십계명이 있었는데 십계명에 신구약 육십육 권 도리의 간추려 놓은 강령이라 그래 말하는 것은 좀 자연스럽지 안하고 좀 무리가 가는 그런 해석이 아닌가?’ 그렇게 사람들이 생각을 하기 쉽습니다.

하나님께서 출애굽 시키기 전 에덴동산에부터 하나님이 계약했는데 그 신인 계약에서 위약을 했기 때문에 그 아담을 자기의 대표자로 세워 가지고 하나님과 계약한 그 아담이 대표된 그 대표 범위 내에 든 사람들은 아담의 정죄에서 다 같이 정죄받았습니다. 그래서 아담의 자손, 아담으로 더불어 난 그 부정모혈로 난 사람은 원죄에 다 동참했습니다.

이래서 로마서에 “범죄한 것은 모든 사람이 다 범죄했기 때문에 다 죄 정함을 받았다” 하는 거, ‘우리가 나기도 전에 어떻게 그 죄를, 나기도 전에 수천 년 전에 범한 죄를 우리에게 부담시키는 것은 무리가 아닌가?’ 그렇게 사람들이 생각을 가지는 그 잘못된 교리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담이 하나님으로 더불어 계약한 것은 인류 대표자인 아담이 계약해 가지고 위약을 했기 때문에 일반 부정모혈의 생육법으로 나는 모든 사람은 다 아담 하와의 범죄에 같이 동참했고 또 그 계약에 같이 어겼고 같이 정죄를 받았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계약은 애굽에서 나온 지 후 시내산에서 이 십계명을 받았고 그 후에 모든 구약 성경이 기록됐고 신약 성경이 기록됐다 이래도, 그러면 그거는 처음에 상고 시대에 시발을 그저 십계명으로 짐작해서 이렇게 해 놨고 그후 차차 차차 기독교도 점점 진화가 돼 가지고 이렇게 구약 성경이 더 구비하게 기록이 됐고 또 그후에 신약 성경이 구비하게 기록이 돼 가지고 이렇게 되어 나온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십계명으로 말하면 아주 최초 그는 상고 계명이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관계가 아주 우리가 옛날 얘기 하듯이 그렇게 상고기 때문에 우리 그 현대와는 거리가 먼 그런 관계다 이렇게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것을 제가 자꾸 지금 변론을 해서 역설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지금 하는 것이.

그것은 하나님은 당신이 무슨 진화나 변화가 있는 게 아니고 당신은 완전자기 때문에 완전자는 변함이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는 영원히 불변자이십니다.

이런데 만일 당신이 당신에게 진화가 있다, 차차 뭘 생각해 보고 또 이렇다 이렇다 생각해 봐서 이렇게 한다 하면은 당신에게도 진화가 있기 때문에 그분도 변하는 하나님이지 불변의 완전의 하나님으로 그렇게 당신의 속성을 믿는 것이 틀렸기 때문에 하나님의 속성이 위반이 됩니다.

이래서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완전을 가지시고 이렇게 다 하고 계시나 인간에게 발표할 때는 이 피조물에게 피조물의 정도를 맞춰서 당신이 발표한 것이지 차차 차차 당신이 새로 연구해 가지고 발표한 것이 아니고 피조물의 정도를 따라서 발표를 했기 때문에 먼저 간단명료하게 십계명을 우리에게 둘째로 주셨고, 제일 처음에는 에덴동산에서 그 계약을 주셨고 그후에 이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고 난 다음에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줬다.

그러면 십계명 준 것은 이것은 십계명을 주시고, 에덴동산에서 그렇게 계약하시고 그 다음에 십계명 주시고, 또 십계명 주시고 난 다음에 차차 차차 구약 성경을 주셨고, 구약 성경 주시고 난 다음에 신약 성경을 주셨고 이렇게 성경을 주셔서 당신이 우리의 정도에 따라서 계시해 주신 것이지 당신에게 뭣이 새로 되는 무슨 새로 지식했다든지 새로 창작했다 그런 것은 아니라.

그러기 때문에 계명이 먼저 나오고 구약이 그 다음 신약이 맨뒤에 나왔다고 해 가지고 계명은 미개한 것이요 그 다음에 성경은 더 발달되고 구별된 것이라 그렇게 봐서는 안 됩니다. 우리에게 우리의 정도에 따라서 십계명으로 먼저 알려 주시고 그 다음에 이제 십계명을 차차 더 세밀하게 구비하게 우리에게 알려 주신 것이 이 신구약 성경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신구약 성경을 다 똘똘 뭉쳐 가지고 들어가면은 십계명 속으로 다 들어가 버립니다. 십계명 속으로 다 들어가고 또 십계명을 이렇게 퍼쳐 놓으면은 곧 신구약 성경이 다 됩니다. 이래서 곧 신구약 성경은 십계명이요 십계명은 신구약 성경이라 요렇게 아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그래서 타락되기 전에 다 예정하신 데에서 예정에서 타락도 예정됐고 대속도 예정됐고 이렇게 된 것이 하나님은 그 진화가 없고 하나님은 완전자시기 때문에 완전한 거게서 완전이 자꾸 이렇게 선포돼 가지고 우리에게 온 것입니다.

이래서 곧 신구약 성경이 십계명이요 신구약 성경의 강령이 십계명이라. 십계명을 이렇게 다 해석해서 이래 분산해서 모두 우리에게 가르친 것이 신구약 성경이라 그렇게 알면 좋습니다.

그걸 강조하기 위해서, 그러면 에덴동산에서 역사하던 그 하나님은 어느 하나님인가? 성부 하나님인가 성자 하나님인가 성령 하나님인가? 그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인가? 인류 시조 때부터 제일 적극성 있게 제일 가깝게 책임을 지고 관리하신 그 하나님은 성부인가 성자인가 성령인가? 성자입니다. 그 성자는 그라면 언제부터인가? 그리스도 안에서 창조했다 하는 그리스도가 곧 성자입니다.

이래서 그 신약 성경에는 예수님이라는 말씀이 사복음에서부터 자꾸 이래 나오고 그 다음에 자꾸 이래 예수님이라는 말씀이 많이 나왔는데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난 다음에, 예수님이 탄생하기 전 예언에도 예수님이라고 했고 그 다음에 예수님이 부활하신 도를 말할 때도 예수님이라고 많이 말했습니다.

사도행전에서는 예수님을 많이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후에 기록된 성경에는 예수님이라 말이 별로 없고 다 그리스도라고 말했습니다.

갈라디아서에, 내가 누고 보고 ‘갈라디아서에 예수님이란 이름이 몇 번이나 있는고 봐라’ 이라니까 예수님이라는 이름은 꼭 갈라디아서에 한 번밖에 없습니다. 한 번밖에 없고 다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가 다시 부활하셨다” 이렇게 자꾸 말씀했다 말이오.

이러니까 태초에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셨다가 이제 영원히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세운 이가 그리스도시라 하는 이 그리스도라는 것이 무슨 딴게 아니고 성자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신인 관계의 중보자는 곧 예수님이시라. 그러기 때문에 여게 여호와라고 말한 것도 성부를 가리켜 말함이 아니고 우리의 중보자인 성자를 가리켜서 곧 그리스도를 가리켜 말한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그리스도와 우리와의 관계를 가져 가지고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부도 만날 수 있고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령을 만날 수가 있다.

그래서 예수님이 대속하신 이 공로를 설정하고 난 다음에 대속한 공로를 설정했지만 ‘하나님의 공법에서 완전 해결이 됐다.’ 완전 해결이 됐지마는 그 대속의 공로를 자기가 입으면 자기 공로가 되는 것이니까 구원에 완성이지마는 그 대속을 누가 할 자가 있느냐? 없는 것을 성령이 오셔 가지고 책임지고 그 예수님의 대속을 우리에게 알려 주십니다.

그러면 우리를 하나님과 원수된 것을 화합해서 대형으로서 하나님과 원수된 죄, 사망, 마귀, 범죄하니까 사망하게 됐고 사망하게 되니까 마귀의 것이 됐고 이랬는데 거게서 해방시켜 자유 준 것이 예수님의 대형으로서 되어진 것입니다.

또 예수님이 우리 대신 행하심으로 비로소 하나님의 공법인 공심판을 통과한, 전지자의 입법을 그 입법을 완전 예수님이 대신 행해 가지고 하나님의 의를 우리에게 입혔습니다. 이래서 로마인서 1장에는 “하나님의 의가 복음에 나타났다” 하는 것은 공심판을 우리 대신 행해 가지고 통과해서 우리로 하여금 공심판 통과자를 만든 그것이 이제 이 복음에 나타났다. 그게 우리 복음이다.

이래서 예수님께서 우리의 중보자가 되시고 중보자 된 것을 소개하는 이가 성령님이시고 또 중보자 된 그 세부한 세밀한 것을 가르쳐 주는 이치가 진리고, 이래서 우리는 중생을 뭘로 중생됐느냐? 첫째 예수님의 피가 아니면 중생 못 됩니다. 예수님의 피, 또 성령, 진리로 중생됐는데 이 중생된 것은 예수님이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중생이 있지 그리 아니면 중생이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이 우리의 중보자시요 중보자를 소개해서 우리에게 예수님의 대속을 효력 있게 우리에게 적용시키는 이는 성령님이시요 이 모든 것을 경영하시고 다 역사하시는 다 이는 성부시요, 이래서 우리와 직접 관계 있는 것은 성자를 통해 가지고 이렇게 관계 있었는데 성자를 통해서 관계 있는 그것이 성부가 성자를 통해서 관계 있도록 이렇게 만들어 가지고 됐기 때문에 삼위일체 하나님의 그 의는 다 하나지마는 우리는 중보자 그리스도를 통해 가지고 이렇게 모든 일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3절에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너는” 하는 요거 단수입니다. 이 “너는” 하는 거,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상대하지마는 어떨 때는 단체를 상대해서 너희들이라고 이렇게 단체를 말했지마는 하나님의 그 심판에는 개인입니다. 개별입니다.

그래서 암만 부모가 범죄해도 부모 범죄를 자녀에게 전가시키는 그런 일을 하지 않겠다고 성경에 말했습니다. 또 자녀의 죄가 암만 많아도 부모에게 전가시키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냉정스럽게 말하면 하나님 한 분 “너” “너는 나 외에” 또 당신도 말할 때에는 단수로 말씀했어. 단수로 말했는데 이 단수로 말한 이는 누군가? 곧 우리를 구원하시는 성자를 가리켜서 말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그 중보자도 성자요 우리를 심판하실 이도 성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심판은 공심판이 있고 사심판이 있는데 공심판은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해 가지고 다 공심판을 대형해 가지고 면제하게 됐고 대행해 가지고 면제하게 됐고 이제 그리스도의 심판이라는 것은 사심판, 우리를 대속하신 분이 우리를 심판하시는데 대속하신 분이 우리를 다 담당해 줬기 때문에 담당해 주신 그분이 인정해 주나 안 해 주나? 그러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심판은 다릅니다. 그리스도의 심판은, 공심판은 그뭐 아무 사정 없이 그 사실대로만 심판하지마는 이 사심판 그리스도의 심판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가 인정해줄라면 인정해 주고 인정 안 해 줄라면 인정 안 해 줍니다.

왜? 여게는, 그러기 때문에 꼭 같은 사람이 같은 죄를 지었는데, 같은 죄를 지었는데 한 사람에게는 그걸 묵인해 버리고, 묵인하고 인정치 안하고 그만 상관 없이 해 버리고 한 사람에게는 그 죄를 밝힙니다. 그거는 뭐이냐? 당신이 우리에게 은혜 주신 그 은혜가 다르기 때문에 은혜를 따라서 은혜 많이 준 자에게는 많이 받고 적게 준 자에게는 적게 받습니다.

이래서 우리가 하나님에게 대해서 의무와 책임은 언제든지 개별적으로 생각해야 됩니다. 자기가 하나님 앞에 은혜받을 은혜를 구할 때에는 전체로 구해 가지고 나만 받을 게 아니라 전체가 우리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에 전부가 다 은혜받기를 원하는 그 가지고 해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시고” “우리를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전부 이거 복수입니다. 단체요.

대아의 대아로 되어 있는 자기 하나가 하나로 돼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지금 상대하고 모두 다 은혜를 구하지마는 의무와 책임은 전가시키지 말라 했어.

왜? 의무와 책임, 이거는 십계명은 의무와 책임인데, 우리가 지킬 계명인데 의무와 책임에 대해서는 자기가 짊어져야 되지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시키지 말라는 그런 뜻에서 일대 일입니다. 그래서 “너는 나 외에 다른 신을 네게 두지 말라” 이렇게 ‘너 나’로 말했기 때문에 요것을 단단히 우리가 기억해야 됩니다.

“나 외에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다른 신들이라 말은 여게 ‘다른 영들이라’ 말인데 다른 영들이라 말은 다른 하나님이라 말이오. ‘다른 하나님을 네게 두지 말라’ 그래. “다른 신들을 네게 하지 말지니라” ‘다른 영들을 네게 있게 하지 말지니라’ 이랬는데 하나님이라는 데 대해서 빌립보 3장에 보면은 “저희 배는 하나님이요” 저희 배는 하나님이라, ‘배로 하나님 삼는다’ 이랬습니다. 이런데 그러기에 여게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그 모든 신성을 들어서 말씀하는 동시에 영을 두고서 말합니다, 영.

그러기에 우리 사람이라는 것은 영육으로 만들어진 게 사람인데 영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이 속성대로 만들어진 것이 사람의 영이기 때문에 사람의 영이라는 것은 이것은 사람의 영은, 사람의 영은 하나님만이 주인이 되지 다른 건 주인이 되지 못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사람의 영이 타락하고 난 다음에 범죄한 영이라 하니까 영이 범죄한 줄 알아도 영이 범죄 안했어. 영은 이거 소유가 되어 있는 심신, 영의 소유가 돼 있는 심신이 범죄한 그 범죄를 주격 책임에서 정죄받아 가지고 하나님과 끊겨진 것입니다.

그러면 끊겨지고 난 다음에 타락한 후에 그라면 그 사람의 영을 마귀가 제 도구로 삼아 가지고 이용했느냐? 못 했습니다. 그거는 다시 하나님만이 쓸 수 있는 것이고 하나님만이 쓸 수 있고 하나님만 주관할 수 있고 또 하나님으로 인해서만 움직일 수 있지 영이라는 거는 독립할 수도 없고 그렇게 움직일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그 영의 소유인 심신이라 하는 것은 독립하지 못합니다. 심신이라 하는 것은 그 영이 죽는 동시에 이것은 오만 악령들도 주인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너는 나 외에 다른 신들을” “다른 하나님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그러면 ‘두지 말라’ ‘내 앞에 다른 신을 네게 두지 말라' 하는 말과 “있게 하지 말지니라” “네게 있게 말지니라” ‘있게 말지니라’ 하는 요게서 그 큰 뜻이 있습니다.

뭐이냐? 그러면 우리가 다른 무엇을, 다른 신 말이요, 다른 신을 우리가 영접해 들여야 오고 영접해 안 들이면 못 오는 그게 아니고 여게는 “있게 말라” 그 말은 다른 신이 우리에게 막 밀고 들어옵니다. 밀고 들어오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신이 들어오는 것을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야 되지, 막아야 되는 것이지 막지 안하면 안 됩니다.

우리의 이 모든 이 신구약 성경은 율법이요 곧 정죄의 율법이요 자유의 율법이요 또 영생법입니다. 그러면 어떤 자에게는 신구약 성경 말씀이 영생법이 되고 어떤 자에게는 이 신구약 성경 말씀이 정죄법이 되고 어떤 이에게는 신구약 성경 말씀이 자유법이 됩니다.

구속을 받은 자에게는 이 말씀이 자유법이 되고 또, 자유법이 되고 살아 가지고 있는 자에게는 이것이 영생법이 됩니다. 우리가 영생하는 것은 꼭 신구약 성경 말씀의 이 이치 하나님의 뜻으로 영생하지 그 현실에 구속을 받았다 할지라도 그 현실에 하나님의 뜻대로 그 현실에 움직였으면 그건 영생이 돼 버렸고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이지 안했으면 영생이 안 돼, 멸망입니다. 그거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는 것입니다.

이래서 “다른 하나님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다른 하나님이 네게 밀고 들어올지라도 용납하지 말아라 그 말이오. 용납하지 말아라. 그러면 다른 하나님은 무엇을 가리켜 말하는가? 이것은 뭐 물질이, 배로 하나님을 삼으니까 물질도 하나님, 또 뭐 사람도 하나님, 또 이 과학도 하나님, 또 이 모든 짐승 그런 것도 하나님, 이 하나님이라는 종자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종류가 얼마나 많은지 모르는데 그 속에는 “저희 하나님은 배요” 그러면 배로 하나님을 삼았으니까 그 무슨 식물로 하나님 삼는다 말인데, 식물로 하나님 삼는다 말인데 그 식물로 하나님 삼는다 말은 그 식물만이 아니고, 식물 만이 아니고 그 식물 속에는 영이 들어 있다. 식물 속에는 영이 들어 있다.

또 요한일서 5장 끝절에는 보면은 “스스로 지켜 우상을 멀리 하라” 그 우상은 또 자기를 우상이라 해. 자기를 우상이라 하는 건 또 하나님을 가리켜 말한 것이라. 자기를 하나님 삼지 마라, 우상 삼지 말아라, 또 이런 무슨 사람을 우상 삼지 말아라, 직장이나 돈이나 사업이나 그런 걸 우상 삼지 말아라 하는 그런 게 다 신을 삼지 말라는 그 말입니다.

“다른 신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그러면 다른 신이라 말은 어떤 것을 무엇이든지 말이요, 뭐 피조물 가운데 피조물의 종류가 뭐 백도 천도 만도 넘지 않습니까? 얼마나 많은데. 그 모든 것을 다 신으로 네가 용납지 말아라. 그런 것을 하나님으로 용납하지 말아라. 하나님으로 용납하지 말아라.

네가 자꾸 그것이 하나님으로, 네게 와 가지고 하나님 노릇 할라고 자꾸 들어온다.

하나님 노릇 할라고 자꾸 들어오는데 하나님 노릇을 하지 못하도록 하나님으로 용납하지 말아라. 그러면 그건 네가 영접하는 게 아니라 밀고 들어온다. 그러기에 “네게 있게 하지 말지니라” 있게 하지 마라. 밀고 들어온다. 밀고 들어오는데 네가 밀고 들어와도 네가 용납지를 말아라. 밀고 들어와도 용납지를 말아라.

그러면 하나님이라 말은 무슨 말인가? 네가 네 직장이라도 그 직장을 네 생사화복의 주권으로 네가 삼으면 그게 바로 하나님이 된다. ‘내가 행복되게 사는 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이 과학 지식 내 이 지식이 나를 행복되게 한다’ 하면은 과학이라는 그 지식을 네게 대해서 행복의 주권자로 삼기 때문에 그것이 곧 하나님으로 삼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속성에 어떤 것이든지, ‘내 죽고 사는 것을 이게 주장한다.’ 그러면 네가 공산주의가 와 가지고 독침을 가지고 너를 죽일라고 할 때에 그때 네가 독침을 네 하나님으로 삼느냐? 독침을 네가 하나님으로 용납하느냐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섬기느냐? 그러면 독침이 암만 와도 다니엘 같은 사람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같은 그런 사람들은 ‘아무리 불미 거석해도 너를 구원할 수 있겠느냐?’ ‘녜, 구원할 수도 있고 또 당신의 뜻이면 불에 태워서 죽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죽고 사는 것은 불이 나를 죽이는 것이 아니고 이제 주권자이신 우리 하나님이, 주권자 하나님이 주권하고 계시지 불이 주권하지 못합니다.’ 그것이 밀렸다 말이오.

그러니까 암만 일본 정부가 ‘신사참배 안 하면 죽인다. 가두고 전멸한다.’ 이럴 때에 그러면 네 모든 생사화복을 일본 정권에게다 맡기느냐, 정권을 주권자로 네 생사화복의 주권자로 용납을 하느냐 거부하느냐? 거부하는 것은 ‘하나님만이 내게 생사화복을 주권하고 있지 일본 정부는 주권하지 못한다. 일본 정부가 다 달라들어 나를 죽일라 할지라도 우리 하나님이 허락지 않으면 절대 죽이지 못한다.’ 너희들이 다, 온 세계가 다 달라들어 나를 살릴라고 할지라도 내 생명의 주권은 주님이신 걸 내가 믿기에, 이 하나님인 걸 믿기 때문에 주권의 하나님 주권 개별 섭리, 개별개별 섭리를 다 하나님이 하시기 때문에 개별 섭리의 주권자가 주님이신 이 하나님을 내가 믿기 때문에 이 하나님 외에는 없다. 이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없기 때문에 무슨 말을 한다 할지라도 ‘너는 나를 죽일 수도 없고 살릴 수도 없고, 너는 나를 복되게 할 수도 없고 화되게 할 수도 없고, 너는 병들게 할 수도 나를 치료할 수도 없다. 내게 대해서는 주권자는 하나님뿐인 걸 내가 믿고 있다.’ 네가 주권자를 여럿을 두지 말아라 그 말이요, 주권자를 두지 마라. 전능자를 여럿을 두지 말아라, 전지자를 여럿 두지 말아라. 자존자를 네가 여럿을 두지 말아라.

이 세상에서는 모든 종교 이런 것 저런 것 다 모든 단체들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지 안한 것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지 안한 것이 있다는 그것은 다 자존자 원인자를 여럿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기독교들이, 하나님의 뭐, 하나님의 속성이 많이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속성들이 많이 있는데 그 하나님의 이 속성 가지신 이는 한 분뿐이신데 한 분뿐이신 하나님이 가지신 지혜와 능력과 또 권세 또 그 주권 이런 것을 다른 것들에게 돌리고 다른 것들이 그렇게 있는 줄로 아는 거게서 네가 놀라고 네가 두려워하고 네가 떨고 그 종이 된다.

네가 “다른 하나님을 네게 용납지 말아라” 이라는데 네가 생사의 주권자 하나님 한 분뿐이신 것을 네가 믿지 안하고 ‘이 형편에서는 내 생사는 이것에게 있다. 이 독침에 있다. 어떤 데에 있다.’ 이렇게 네가 주권자를 변동시켜서 주권자를 만들어 놓지 말아라. 그러면 그게 뭐이냐? 그게 삼사 대까지 망하는 것이다.

네가 주권자를 하나님을 하나님 한 분뿐이신 것으로 이와같이 네가 믿고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다른 것을 용납지 안하면 그게 천 대까지 네가 복을 받을, 영원히 복을 받을 수 있다. 천 대라 말은 영원히 복받는다 그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이 나타나신 것은 처음에 하나님과 사람과의 이 밀접한 관계에 있어 가지고 하나님 한 분만을 믿고 바라보고 맡겨 놓고 의지하고 순종하고 참고 기다리고 그분의 그 크심을 내가 믿고 그분의 사랑의 완전하심을 믿고 그분이 나와의 관계는 독생자 보낸 것으로서 그 관계가 맺어졌기 때문에 이렇게 그분 한 분을 이와 같이 믿고 살아야 될 터인데 이게 깨져버렸습니다.

이게 깨져서 이 깨진 것을 다시 재결합을 시키기 위해 가지고 오신 이분이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오신 것은 우리가 깨지고 난 다음에 오셨는가? 깨지기 전에 창조주와 피조물이 이렇게 영원히 완전 결합이 되어지는 데에는 도무지 결합될 수 없기 때문에 타락을 예정하시고 타락을 통해 가지고 이제 예수님이 대속하신 것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완전 결합, 완전 관계를 맺기 위해서 하나님이 타락을 예정하시고 또 대속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게 기독교는 다시 말하면 하나님 한 분에게로 돌아가는 것이오.

그러기 때문에 로마인서 11장 끝절에 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나왔고 하나님으로 말미암고 하나님께로 돌아간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이것이 예수님이 오신 것도 하나님의 역사인데 다 이거 내나 그 일을 하기 위하는 것이라.

이러기 때문에 이 구약에 있는 십계명이 우리와 먼 게 아니라 이 십계명은 전 성경의 전부요 성경의 강령이요 신구약 성경을 다 자꾸 연구해 들어가면은 십계명으로 들어가고 십계명이 모두 다 퍼져 가지고 신구약 성경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그것을 생각해서, 내가 여기 무슨 일을 하면은 ‘이것은 내가 이것을 하나님 삼지 않는가? 이거 하나님 삼지 안하는가?’ 그거 무엇이든지 하나님의 속성을, 하나님의 속성을 거게 두고, 거게 두고 그렇게, 하나님의 속성을 거게 두고 상대하면 곧 다른 신을 용납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계속해서 이 십계명을 증거해 갈 것입니다.

엊저녁에 ○목사님이 증거를 했는데 많이 좀 설교를 듣고 연구를 해서 공부를 해 가지고 그렇게 잘 증거했습니다. 그라면 뭐 대전 ○○교회 가 가지고 그래만 힘을 쓰면 배척당하지 안하고 그 교회가 부흥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만 애쓰면, 그래 애를 안 써. 그만 애 좀 쓰다가는 그만 말아요. 자꾸 이거 좀 우리가 도를 넓혀야 됩니다. 자꾸 넓혀서 범위 넓게 생각해야 되지 자꾸 조부랍게만 이래 생각하면 안 돼요.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새벽기도 나오라 했는데 이 새벽기도 뭐 안 나와. 이래 가지고는, 손만 들면 몇천 명 삼사천 명이 다 나오겠다고 이렇게 떡 손은 들어 놓고 안 나오면 밥도 굶으라 해도 다 손 들어 놓고 못 나오는 것은 그렇게 약해, 여러분들이. 하기 싫어 그런 게 아니라 능력이 없고 힘이 없어 그래요. 그러니까 자꾸, 병이 들어 그런 거라.

병은 뭐이냐 하면 죄병이라. 죄 그놈이 우리를 무능하게 만들어요. 명철도 무능하게 만들어. 그놈만 자꾸 뽑아버리면 우리는 점점 치료가 됩니다.

기도록에 등록된 수는 팔천육백오십사 명이 등록되고 지금 지난주는 한 주에 나와서 기도한 사람 사백육십칠 명, 이거 이러니까 기도 안 해요. 집에서 물론 하기는 하겠지마는 이라면 안 됩니다. 하루 삼십 분 기도 이거 안 하다가는 뒤에 큰일 납니다. 이걸 기도해야 앞으로 큰 환난을 다 이기고 그 환난 때 기쁘고 즐거움으로 이기는 것은 미리부터 이 기도하는 사람,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도 앞에서는 담대한 사람이 간 큰 사람이 승리하는 줄 압니까? 아니오. 제가 경험한 대로는 가장 간 작을 때에 승리합니다. 이거 지금 뭐 약하기 때문에 바들바들 떨며 죽을 지경이라. 떨어서 겁이 나 죽을 지경일 때에 죽을 지경이니까 막 죽자 살자 하고 하나님께 믿고 의지하게 될 때 그때 하나님의 능력이 나옵니다. “약한 자에게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다” 말한 것이 그래. 그러기 때문에 지금 간이 커서 ‘그때 담대하면 되지’ 하는 그자는 다 패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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