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을 준비하는 마음가짐


선지자선교회 1983년 6월 15일 수야

 

본문 : 고전4:3-5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치 아니하노니 내가 자책할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나 그러나 이를 인하여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라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것도 판단치 말라 그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여게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말씀을 했습니다. 너희라고 말하는 것은 신앙으로 동지되어 있는 사람들을  말하고 다른 이들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상관이 별로 없는 먼 상관 없는 그런  삼자들을 가리켜서 말씀을 한 것입니다.

 친근한 사람의 판단이나 또 서로 사이가 좋지 못하고 서로 먼 사람 심지어  불목된 사람들과 또 아주 친근한 사람들, 친근한 사람이나 먼 그 불목된  사람들이나 그런 사람들의 판단을 매우 작은 것으로 여긴다 그말은 입으로  판단도 하고, 또 마음으로 판단도 하고, 또 행동으로 판단도 하는 것입니다.

 가깝고 먼 그 모든 사람들이 마음으로 아주 참 귀하게 볼 만해서, 덕이 있어  귀하게 볼 만해서 모든 사람들이 마음으로 진정 존경하는 그런 존경이나 또 말로  존경하는 존경이나, 또 행동으로 이렇게 존경하는 그런 행동의 대우를 하는  것이나, 또 마음으로 아주 잘못됐다고 해서 욕을 하고 욕을 하고 아주 그 악평을  하고, 말로 악평하고, 마음으로 악꾕하고 욕하고, 또 행동으로 악하다 이렇게  거슬리는 그런 것 그게 다 판단하는 것입니다.

 멀고 가까운 사람들이 마음으로 이렇다 저렇다 판단하는 것, 또 말로 이렇게  저렇게 판단하는 것, 또 행동으로 이렇게 저렇게 대우하고 멸시하고 하는 것,  그런 것을 무시해 그런 게 아니라 그런 것을 매우 작은 것으로 여긴다. 그런  것은 아주 사소한 것으로 그렇게 여긴다.

 멀고 가까운 사람들이 마음으로 나에게 어떻게 감화를 받아서 참 감탄하는 그런  마음을 가지는 것이나 또 내게 대해서 아주 나쁘게 그렇게 생각을 가지는  것이나, 말로 그렇게 하는 것이나, 행동으로 좋다 나쁘다 그렇게 하는 그것을  내가 매우 작은 걸로 여긴다.

 거게 따라서, 사람들이 나를 나쁘다 이렇게 한다고 해서 내가 거게 충격받아  가지고 이리저리 하지를 안하고 그것은 매우 사소한 일로 안다. 또 사람들이  나를 아주 이렇게 뭐 존대하고 참 감화받아서 어떻게 존대를 한다 할지라도  그것도 내가 매우 작은 것으로 여긴다 그렇게 여게 말했습니다.

 또 "나도 나를 판단치 아니한다" 나도 나를 판단치 아니한다. 내가 어떤 행사를  해 놓고도 '이야말로 성경대로 됐기 때문에 이는, 참 칭찬받고 영광받고 상 받을  일이라' 그런 것도 내가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

 왜? 내가 알기에는 흠이 없는 옳은 행위라 할지라도 그것이 내가 아는 지식의  범위라 하는 것은 너무 좁기 때문에, 내 보기에는 이만하면 정금 같은 이거  온전한 일이지마는 나보다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면으로 범위 넓게 그 전체의  면을 가지고 따지시는 그분이 계시니 '그분 앞에 설 때에 과연 이것이 의가  되나, 이게 참 칭찬받을 일이 되나, 이것이 혹은 내 보기에는 이렇지만 어떤  책망 받을 일이 있나?' 해서,  나도 그거 '이거는 의다. 이거는 죄다.' 그렇게 내가, 행하기는 내 양심껏 옳은  대로, 바른 대로, 깨끗한 대로 하기는 하지마는 이렇게, "내가 자책할 아무것도  깨닫지 못한다.

 그러나 이를 인하여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내 마음에는 가책될 것이  하나도 없이 요거야 옳다 요거는 바로 됐다 이래 싶어서 마음껏 바로 한다고  하고, 옳게 한다고 하고, 곧게 한다고 이렇게 하기는 하지마는 그래 했다고 해서  그것이 '이야말로 됐다' 해서 내가 안심하지를 못한다.

 왜? 내가 아는 범위가 좁고 또 내가 살피는 범위가 좁기 때문에 예를 들면은  거게 대해서 백 조건이 있는데 내가 아는 것은 블과 두서너 조건밖에 모르니까  내가 아는 두서너 조건을 맞추면 여세 딱 들어맞지마는 내가 모르는 면이 많으니  그런 면에는 이게 맞았는지 안 맞는지 내가 모르기 때문에 항상 행한 것은 주님  앞에 가면 어찌 될까 해서 내가 떨면서 있다.

 그러기에 사람들이 모든 사람이 옳다 다 이래 한다 해도 내가 그것 가지고  안심이 안 된다. 또 모든 사람이 이거는 다 틀렸다 한다고 해서 거기 대해서  이거는 과연 다 틀렸다 이렇게도 생각지 않는다. 나도 내대로는 내가 옳다고  바르다고 하는 것을 양심에 가책 둬 것 없이 바로 한다고 이래 하지마는 아무 내  마음에 잘못됐다고 그렇게 여겨질 것이 없도록 됐지마는 내가 아는 범위는 좁고  주님이 아시는 것은 전체를 알고 계시기 때문에 그분 앞세 설 때에 어찌 되나  해서 내가 의로운 행위 한 것도 그것도 항상 미결 속에 있기 때문에 두려워  떨려서 주님 앞에 서기 전에 여세 대해서 잘못뒨 그런 점이 있으면 알려  주셨으면 좋겠다 해서,  내 마음에 옳다 다른 사람이 옳다 하는 그점에 대째서도 안심이 안 되고 주님  앞에 서기 전에 혹 흠점이 있으면 그것을 알려 주시면 좋겠다. 나도 안심하고  이야말로 참 튼튼하다 모든 사람이 이야말로 참 완전 하다 온전하다 할지라도  내가 그것 가지고 안심이 안 된다.

 왜? 나나 다른 사람이나 알고 있는 지식의 범위가 심히 좁고 성글어 있기  때문에 그 전체가 아니기 때문에 전체면에 다 흠이 없이 바로 돼야 되는 것이지  아는 것이 백분의 일을 알고 있는지 천분의 일을 알고 있는지 모르니 이제  맞는다고 하는 그것도 백분의 일이 맞은 것인지 천분의 일이 맞은 것인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그분 앞에 설 때 어찌 되나 해서 마음에 안심이 안 되고 그분이  바로 알려 주시기를 기다리면서 있다.

 "다만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라 그러므로" 5절에 "때가 이르기 전" 주님 앞에 서기 전, 주님 앞에 서는  그때가 오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내가 주님 앞에 설 때까지 "아무것도  관단치 말라" 아무것도 '이만하면 됐다' 하고서 한 가지라도 안심하지 말아라.

 안심하지 말고 주님 앞에 설 때까지 '주여, 내게 무엇이 바로 되지 못한 것  있는가 알려 주옵소서.' 항상 미결에 있고, 항상 미완성에 있고, 모든 게 미달에  있고 또 무지에 있기 때문에 주님 앞에 겸손히, 그때가 오기 전에라도 당신이  알려 주시면 그저 고칠 생각을 가지고 떨면서 당신의 판단을 기다린다.

 "판단치 말라" 그렇기 때문에 이 판단치 말라 말은 완전 판단을 가리켜 말한  것입니다 '이거는 됐다. 이거는 안 됐다.' 그렇게, 성경을 보고 자기가 안 된건  안 됐다 된 것은 됐다 요것이 자기 마음이 자기를 책망할 게 없기까지는 이렇게  갖추어서 자기가 자기 마음이 자기를 책망할 게 없도록까지 이렇게 노력을 하는  이 노력은 하지마는 그렇게 노력을 해서 양심에 가책할 것이 없다고 해서  '이만하면 됐다' 안심하는 그런 마음을 가지지 말라.

 그래 가지고 있다가 주님 앞에 설 때에 만일 그것이 허무하면은 '주님 앞에  노여움을 끼치는 게 되고 물리침을 당할 수 있는 교만이 되어지니 항상 마음에  자책할 게 없기까지 힘써 하기는 하지마는 자책할 게 없기까지 해 놓은 그것도  주님 앞에 서면 어떨지 모르기 때문에 두렵고 떨리는 마음을 가지고 주님의  심판을 떨면서 기다리고 있으라. 이것이 주님 앞에 긍휼을 입을 마음이요  물리침을 당하지 안할 수 있는 마음이기 때문에 이 마음을 가지라.

 "그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그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어두움에 감추인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모르게 감추어져 있는 것,  다른 사람들이 모르게 다른 사람들에게 감추어져 있는 것, O씨! 다른 사람에게  감추어져 있는 것, 자기네들은 알지마는 다른 사람은 모르는, 다른 사람들에게  감추어져 있는 것, 다른 사람들에게는 거게 대해서 모르니까 어둡겠고, 또  자기에게 감추어져 있는 것, 자기가 모르는 것, 다른 사람이 모르는 것, 자기도  모르는 것, 자기만 알고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것, 자기도 모르는 것,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그것을 이다음에 주님을 만날 때에 다  주님이 그것을 낱낱이 다 드러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대속을 받았지마는, 하나님의 공심판은 벗어났지 마는  그리스도 심판대 앞에서 우리가 구속함을 입고 난 다음, 또 구속함을 입기 전,  세상에서 그것을 아는 대로 알아서 참 깨닫고 회개를 하고 주의 공로를 입었으면  다행이지마는 그것을 믿기 전에 것도 모르는 것, 믿고 난 다음에도 모르는 것,  내가 알아서 그것을 처리한 것은 그때에 말할 것 없어. 드러나지 않습니다.

 과거 것이나 현재 것이나 아는 것은 주님의 피공로로 다 속량함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처리한 것은 그것은, 내가 이 세상에서 드러낸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이렇게 다 반포를 해서 모든 사람들이 다 알도록 드러내지 안해도 주님 앞에  '나는 이 잘못이 있습니다. 이런 게 있습니다.' 그것을 주님 앞에 드러내서 다  사유함을 받은 것은 그것은 다 속량을 받았기 때문에 그때에 드러나지  안하지마는 그렇지 안한 컷은 그것이 아무리 깊이 감추어서 아무도 몰라도,  아무도 몰라도 주님은 그것을 다 드러냅니다. 또 그것을 모르고 있는 자기도  그게 잘못인지 뭐인지 그런 걸 모르고 있는 그것도 다 드러납니다.

 다만 세상에서 자기가 알고 사람에게 드러냄으로 그게 그때에 드러나지 안할  것도 있고, 사람에게 드러냄으로 덕이 되지 안해서 드러 내지 못해도 주님 앞에  그것을 드러내서 사유합을 받은 것도 다 드러났기 때문에, 주님 앞에 드러났기  때문에 그때 드러날 아무 필요가 없습니다. 다 벌써 속량함을 받았기 때문에  필요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안한 것은 다 드러날 것이니 바울이 걱정하는 것은 자기 마음에  가책이 되는 것은 낱낱이 다 주님에게 말해 가지고 해결을 지웠지마는 자기가  모르는 어떤 게 지금 드러날지 모르기 때문에 떨면서 지금 기다리고 있습니다.

 자기가 모르는 것이 어떤게 그때에 드러날지 모르기 때문에 그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이러기 때문에 항상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고 안심을  하지 못하고 양심에 가책될 것은 하나도 없지마는 안심을 못하고 있다.

 왜? 이는, 나는 부분적으로 알지마는 그는 전면적으로 알기 때문에 나는  부분적으로 아는 지식 가지고 부분적으로는 가책될 것이 없지마는 전면적으로는  무엇이 어떻게 돼 있는지 그게 지금 미결되어 있는 그 문제 때문에 항상 무거운  짐진 것과 같이 마음에 불안해 있다.

 다른 사람에게 감추어져 있는 것이나 다른 사람이 모르고 있는 것이나 자기가  알고만 있으면 그거는 다 회개를 해서 그것을 고쳐서 주님의 노를 풀고 잘못된  것을 회개해서 주님의 노를 풀고 다시는 그런 것을 하지 안함으로써 주님을 다시  기쁘시게 하고 긍흘을 입을 수 있도록 이렇게 하지마는 내가 모르는 그게 많이  있기 때문에 뭐이 드러날지 몰라서 항상 의롭다 하는 그런 안심을 하지 못하고  있다.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사람들은 행동이  이루어져야 그것을 이 세상에서는 인정을 합니다. 아무리 마음으로 의로운 것도  마음의 의가 있어도 세상에는 그걸 인정을 안 해 주고 또 아무리 마음에 죄를  어떻게 범한다 할지라도 그거는 세상이 죄로 정하지를 않습니다.

 왜? 사람은 그 속에 거는 모르기 때문에 나타나는 이 환하게 뜨러난 그 결과를  보고 판단하지 감추어 있는 그 마음이 어떻다는 그런 것은 그것을 판단할 자격이  없기 때문에 판단을 못 합니다.

 세상이 다 이러니까 우리가 주님 앞에 가서 설 우리들도, 뭐 남의 눈으로 봐야  되고 남의 귀로 들어야 되고 남에게 접촉이 됐어야 그게 성립이 되지 남의 눈에  뜨이지 안하고 남의 귀에 들리지 안하고 아무도 모르는 것, 또 나 혼자라도  행동은 되지 안한 것, 행동이 되기까지는 그게 성숙하지 안하고 행동은 되지  안한 것 이런 것은 다 무시하지마는,  주님 앞에 심판받을 때에는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라" 그 마음에 이런 마음을  잠깐 품은 것, 저런 마음을 잠깐 품은 것, 그것이 마음에 있는 대로 다  드러내시는 것이고, 뜻을 드러낸다 그말은 마음에 그것을 가지고 자기가 행동은  안 했어도 그렇게 할 그런 소원을 가졌으면 벌써 그것은 뜻이 됐습니다. 마음이  또 일단 더 성숙해 가지고 벌써 의지에까지 성숙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다  나타내시리니" 이걸 다 나타내신다.

 "나타내시리니 그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로부터" "그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이 말씀은 그때에 각 사람에게, 대심판에서는  각 사람에게 형벌이 있으리라 이랬는데 우리 구속받은 사람들에게는 형벌은  예수님이 다 받으셨기 때문에 형벌은 없지마는 옳은 일에 대해서는 상급이 있고  옳지 안한 그것으로서는 상급될 것이 다 제거돼서 상이 다 없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는 그 모든 것이 드러남으로 상급과 또 그  영광, 영광과 상급이 그에게 주어지고 또 그에게 주어질 영광과 상급이 그  행위로 말미암아 이런 것이 다 삭감되어지는 그것이 그리 스도의 심판대입니다.

그래서 일생 동안 사람 산 것이 다 그것 삭감해 버리고 나니까 아무것도 없어서  벌거벗은 자로 드러났다. '네가 눈 멀고 가난하고 가련하고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자기는 잘 믿는 줄 알았는데 실은 벌거벗고 있다  말이오. 하늘나라 가 보니까 그 행위는 하나도 입을 행위가 하나도 없습니다. 다  전부 정죄해서 다, 사죄는 받기는 받았지마는 상급될 것이 전부 다 삭감돼  버렸기 때문에 하나도 그가 걸칠 것이 없어.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나가면서 다른 사람이 알아 주나 안  알아 주나 하는 그것을 상대해서 살지 맙시다. 다른 사람이 내게 옳은 것 있는데  다른 사람이 안 알아 준다고 거게 대해서 조금도 그뭐 섭섭하거나 불평이나 가질  것 없습니다. 또 내게 잘못됨이 없는데 다른 사람들이 억울하게 애매하게 이와  같이 말하고 여기고 떠들고 한다고 해서 그것으로써 우리가, 그 사람을 위해서는  말해 줄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을 위해서는 '그렇지 않다. 그게 그렇지 않다.

그렇지 안하니까 네가 그떻게 생각지 말아라.' 그 사람을 위해서는 말해  주지마는 자기를 위해서는 말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횐데, 횐데 검다고 모든  사람이 다 할지라도 희고 검은 것을 주님이 다 바로 아시고 회고 검은 데에  대해서 공평된 그 보상을 복수를 이와같이 다 하시는 주님의 그 알기 못하심이  없으신 그 심판이 있으니까 다른 사람이 이렇게 나를 판단한다고 저렇게  판단한다고, 좋은 판단 이라고 기뻐하고 좋아하지도 말자 또 나쁜 판단이라고  우리가 섭섭 해서 감정이나 그런 것도 품지 말자. 만일 나쁜 판단이라 하면  그것을 자기가 되한번 생각해 가지고 자기 아는 지식대로 판단해서 양심에  자책될 것이 있으면 그 사람으로 말미암아 내가 그것을 알게 됐으니까 감사하고  선생으로 모시고 그것을 빨리 고칠 것이고. 또 자기 양심에 가책될 것이 없는데  그 사람이 나쁘다고 하면 나는 무엇이 나쁜지 그걸 모르면 그에게 물을 수도  있고, 안 가르쳐 주면은 뭐이 잘못됐는가 해서 그거는 숙제 가운데 있으면  마음이 근심됨으로써 속사람이 좋아지는 것이니까 그저 그래 가지고 있지  사람들이 이렇게 저렇게 판단하는 그게 전부가 아니니까, 그게 전부가 아니니까  그것만 상대해서 불만이나 안심이나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그 신앙 양심이, 양심이 지적하고 판단하는 대로는 양심에  가책될 것이 없도록 우리는 그저, 다른 사람이야 알든지 모르든지, 자기가  모르는 것은 할 수 없지마는 자기가 아는 것은 양심에 가책될 것이 없도록  그것을 하는 데까지 주님의 피공로를 힘인어서 깨끗하게 다 정리하고 해결을  짓고, 또 자기 양심껏 옳게 바르게 하도록 노력을 해서 바르게 하고 또 가책될  것이 없이 하고 그렇다 할지라도 그것 가지고 '이만하면 다 됐다' 안심하지  말아라. 왜 우리 지식은 부분적 지식이요 전면적인 지식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이  뒤에 무슨 모퉁이가 잘못돼 가지고 큰 정죄로 드러날런지 그것 모른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의 긍휼을 입도록 하기 위해서 항상 미결 가운데 있으니  그저 조심하고 떨면서 오늘이라도 또 잘못된 것 있으면 빨리 고치고 또  오늘이라도 그것을 옳게 바르게 흠없이 할라고 노력하고, 바로 할라고 노력하고  또 잘못된 것이 발견되면 어서 고치도록 노력하고, 이러면서도 우리는 지식이  온전치 못하기 때문에 부분적으로 아는고로 부분적 처리밖에는 안 돼 가지고  있으니 항상 '주님 앞에 서면은 어떤 잘못이 있을까?' 하는 그런, 마음에 눌리는  그런 근심되는 그런 마음, 네가 항상 근심되는 그 상한 마음 그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주님 앞에 네가 부분적으로 알아서, 다 몰라서 네가 완전 해결을 회개를  하지 못했지마는 네가 부분적으로 한 그것 가지고 안심을 하지 안하고 항상  근심하고 있었기 때문에 네 상한 마음을 주님이 멸시하지를 안하고 너에게  긍휼이 올 것이다.

 그러나 네가 양심에 자책할 것이 없이 깨끗하게 됐다 할지라도 그걸 가지고  '이만하면 이는 하나님의 심판대 앞이나 아무데 가도 이거는 조금도 흠과 티와  주름잡힐 게 없다' 그렇게 네가 당당하게 안심하고 그래 있으면 그 너 그래 된  것이 옳게 됐다 할지라도 네가 아직까지 미결 중에 있는데 그런 마음을 가지는  것이 그것이 교만한 마음이요 또 그러다가 만일 틀린 것이 있으면 네가 어떻게  할 것이냐? 그러기 때문에 항상 상한 마음으로 있고 '마음에 자책할 것이 없으나  이로 인해서 안심도 안 되고 의롭다 함을 내가 느끼지를 못하고 안 심하지  못하고 있다 하는 이 마음으로 가지라. 왜? 우리의 지식은 좁지마는 모든 면을  알지 못하심이 없는 전면 적인 지식을 가지고 나는 나를 알되 내가 나를  부분적으로 알고 내가 하나님을 알되 부분적으로 알고 모든 이웃을 알되  부분적으로 알지마는 주님은 전부를 다 아시는 주님 앞에 나타날 때에 주님이  모든 어두움에 감추어 있는 것을 다 드러내고 마음의 뜻 그 모든 그것까지 전부  다 하나님께서 드러내서 판단하실 그분 앞에 설 것이기 때문에 교만한 마음을  품지 말고 항상 떨면서 겸손히, 두 가지. 겸손히 양심에 자책될 것이 없도록은  하고, 양심에 가책될 것이 없도록은 우리가 할 수 있기 때문에 양심에 가책될  것은 없도록 하고. 또 양심에 해야 된다고 생각되는 것은 다 하고.

 이렇게 하되 주님 앞에 설 때는 그분은 알지 못하심이 없는 분이기 때문에 그분  앞에 가서 검사를 맞을 때에 내가 어찌 되나? 그 떨리는 마음을 가지고 가면  그분의 긍휼을 입을 것이요 만일 네가 옳다 할지라도 '이만하면 됐다' 자고하는  마음을 가지면 그분 앞에 합당치 아니한 교만한 마음이요 거게다가 잘못됨이  있으면 네가 어찌되겠느냐?  그러기 때문에 주님 앞에 설 그때까지는 아무것도 네가 안심하지 말고 항상  미결 중에 있으라 그렇게 여게 교훈을 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우리가 한다고  해 봤자, 한다고 해 봤자 참 성근 그저 흉내나 내는 것이지 그렇게 철투철미한  것이 못 됩니다. 양심의 인도대로 양심이 가르치는 대로 그대로 다 하고 또  양심에 가색될 것이 하나도 없이 이렇게 했다 할지라도 우리의 행동한 것은  그분의 심판 앞에 설 우리들이기 때문에 우리 한 것은 이것이 참 예를 들어서  백분지 일이 맞았는지, 백분지 구십구가 틀렸는지, 백의 팔십이 틀렸는지  아직까지 우리는 모르는 가운데 있기 때문에 항상 두려워 떨면서 그 날이 이르기  전에 당신이 그것 잘못된 그런 것을 가르쳐 주시기를 구하고 기다리면서 있는  사람이 돼라.

 그날에는 어두움에 감추어 있는 모든 것을 당신이 다 드러내고, 제가 모르는  것도 본인이 모르는 것도 다 드러내고, 다른 사람이 모르고 자기만 알아서  감추어 놓은 것도 다 드러내고, 어두움에 감춘 것을 다 드러내고, 사람들은  수족으로 행동한 것만 그것을 있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음에 생각한 것 이거  뜻으로 생각한 그런 것은 그거야 뭐 없는 것같이 생각하지마는 그게 아니다.

마음의 움직인 것 또 마음의 움직임이 자기 의지에 이제 작정이 된 것 그런 것,  행동까지 나오지 안했어도 다 그것이 주님의 심판대 앞에서는 다 드러난다.

심판을 받는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두 가지를 하면서 항상 겸손히 살아야  된다. 양심의 인도라는 것은 하나도 빠짐없이 다 해라. 또 자기의 과거 현재사에  있어서 양심에 가책되는 것은 하나도 남겨 두지 안하고 다 이것은 정리를 해라.

 그러고 주님 앞에 심판 앞에 설 때 이게 어찌 되나 하는 그것을 주님이 네 떠는  것을 보아서 불쌍히 여길 수 있도록 주님 앞에 상한 마음을 가지고 겸손히 주님  앞에 기다리고 섰거라 하는 그것을 여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아합왕이 범죄했을  때에 하나님께서 아합왕을 멸하실라고 그렇게 작정을 하시고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다 선포도 했습니다. '아합왕 저 놈이 저러니까 저놈을 내가  어찌됐던간에 어떻게 형벌을 줘서 멸하겠다' 이렇게 작정을 하고 선포도 했는데  그 아합왕이 하나님이 자기를 진노하셔서 어떻게 하실란가 하는 그걸 생각하면서  마음에 떨려져서, 마음에 겁이 나고 떨려져서 걸음을 옳게 못 걷는 그것을  하나님께서 보시고 긍휼히 여기셔서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말을 했습니다. "내가  아합을 몇할라고 하다가 아합을 멸하지 아니하는 그 이유를 너희들이 알아라.

아합이 그 걸음을 옳게 걷지 못하고 뻘뻘 떨고 있는 것을 너희들이 보느냐?"  그것으로써 주님의 노가 다 풀어졌습니다.

 이러니까 우리는 곧 주님 앞에 설 사람들이기 때문에, 설 사람들이기 때문에  아무리 우리는 참 성근 신앙 생활을 한다 할지라도 우리 양심에 이거는 해야  되겠다 하는 것은 어떻게 그 힘드는 일이라도, 우리 힘으로 해서 안 되는 건 할  수 없지마는 우리 힘대로는 해 가지고서 우리 양심에 해야 된다는 그 일은  우리는 주님이 부르시는 그 시간까지는 우리는 그것을 하다가 가도, 마음에  이거는 해야 된다는 자기가 깨달아지는 그것은 하나도 빠짐 없이 그 일을 다 해  놓고 기다리고, 또 자기가 이미 해 놓은 것 가운데에 어제까지는 이거는 참  튼튼한데 오늘 생각하니까 또 잘못됐습니다. 이것, 우리가 아마 다 동감일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이 말은 잘했다' 싶었는데 하루밤 자고 나 생각하니까  '아이쿠, 그 말을' 잘못했다. 요 한 마디를 빠졌다. 요 한 마디를 너무 지나치게  했다. 너무 과격한 말을 했다. 또 그 한 마디 한 것은 그거 내가 알지도 못하고  심판자 모양으로 심판적으로 정죄적으로 했다.' 이게 뭐 하고 나면 또 생각하면  또 잘못됐고, 잘못됐으면 또 잘못된 걸 또 고치고 이래서 그저 주님 앞에 설  때까지는 양심에 가책될 것이 없도록 양심에 자책할 것이 없도록은 마련해라  자기 마음이 자기를 책망할 것이 없도록은 네가 모든 것을 다 단속해서  정비해라. 또 네 양심에 해야 되겠 다고 이거 인정되고 깨달아진 것은 네가 죽는  그 시간까지 네게 있는 힘을 다해서, 하다가 못 해도 하도록 노력을 해라.

 그러면서 알지 못하심이 없으신 주님 앞에 서니 내가 그 앞에 설 때에 내 모든  다른 사람한테 속여서 보이지 안한 것, 다른 사람은 모르지만 나만 알고 있는  것, 또 나도 모르고 있는 것 이런 것 이것을, 알고 있는 것은 빨리 정리하고  모르고 있는 그런 것은 모르는 게 얼마가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주님의 긍휼을  입도록 교만하지 말고 떨면서 주님의 심판을 기다리고 심판 앞에 서기까지, 그  안이라도 주님이 뭐 틀린 것 있으면 가르쳐 주시기를 기다리는 그 마음으로  두려워 떨리는 마음을 가지고 주를 기다려라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두움에 감추인 것을 다 드러내시고 마음의 뜻까지 다  드러내신다고 하신 이 말씀을 생각하면서 우리가 오늘에 준비를 합시다.

 그리고 우리가 주님 앞에 설 때는 딴것 없습니다. 시편 9l편 l4절에 말씀하신  대로 '저가 나를 안즉 내가 높이리라' 하는 그 말씀대로 우리를 이 세상에서  살면서 우리 환경을 말이요, 우리 환경이 참 불만 불평을 품을 만한 그런 환경도  오고, 또 모든 사람이 부러워하는 그런 환경도 오고 자꾸 환경이 바꿔 옵니다.

바꿔오는 그것은 전부 주님이 만듭니다. 우리 환경을 제가, 저를 통해서 만든  것도 있고, 제가 통해 만든 것도 제가 만든 줄 알아도 제가 안 할라 해도 안  됩니다. 저를 통해서 만들었습니다. 또 다른 사람을 통해서 만듭니다. 이래  만들어서 일별 환경이 날마다 시간마다 바꾸어지고, 참 좋은 환경 나쁜 환경 뭐  별별 환경을 만나는데 우리는 잘못하면 '이 환경은 뭣 때문에 닥쳤는고?'  불만이나 불평이나 품고 지내보내기 쉽습니다. 그 환경을 만드신 분은  주님이신데 주님이 뭐할라고 만드셨느냐? 그것이 시험입니다. 시험할라고 그것이  시험의 재료로 만든 것이오. 전부는 시험의 재료로 만들었습니다. 우리 환경은  시험의 재료로 만드신 것, 또 우리 환경은 주님이 우리에게 이 인본으로, 이  잡탱이로 되어 있는 신앙,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되지 안한 인간으로된 이  잡탱이, 잡탱이로 말미암아 잡탱이로 된 기쁨, 잡탱이로 된 담력, 잡탱이로 된  뭐 감사, 잡탱이로 된 배경, 잡탱이로 된 안심 이것 잡탱이 이것을 다  제거할라고, 연단해서 정금만 남기는 것처럼 잡탱이 제하기 위해서 환경을  만들어 주셨고, 또 우리를 시험 하기 위해서 환경을 만들어 주셨는데 시험은  무슨 시험이냐? 그게 제일 중요합니다. '보자, 네가 나를 전지자로 네가 말을 해  주는 전지하신 주님이십니다 아버지는 전지주입니다. 우리 아버지는 전지의  하나님이십니다.' 이렇게 네가 하지마는 나를 참으로 내가 눈을 뜨고, 내가 눈을  뜨고 보고 있는 것을 네가 인정하는지? 당신이 보시는 것을, 당신이 보시는,  나와 같이 계셔서 내 형펀 모든 사정, 저 사람하고 나하고 둘이 대화를 할 때에,  그 사람과 나와의 여수 거래를 할 때에, 그 사람과 나와의 시비를 할 때에, 내가  그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 때에, 억울함을 당할 때에, 착취를 당할 때, 별별 인간  관계, 사물 관계, 나 혼자 이래 있을 때에 주님이 이런 현실 저런 현실을 좋서  당신을 참으로 보시는 분으로 인정을 하는지, 그분을 보시는 분으로 인정하지  안하고 본다고 말은 하지마는 당달봉사 모양으로 그분은 볼 수 없는 소경으로  그렇게 멸시를 했는지? 우리가 소경으로 멸시를 해도, 그분이 본다 해도 보거나  말거나 그분 뭐 '그분에게 보는 게 있을까보냐?' 하고서 그분이 보는 줄 알면은  그분 앞에서 할 수 없는 그 일을 하는 것이 그것이 그분이 보시는 주님이심을  자기가 인정치 아니하는 것이든지, 그러면 보시는 줄 알 면은 그분을 멸시하는  것이 되어지든지, 이렇게 해서 당신을 어떻게 참 나와 모든 이 모든 것을 보고  계시는, 보고 계시는 주님의 보시는 것을 인정을 하는지? 주님이 들으시는 것을  인정을 하는지? 내 모든 것에 당신의 감정이 거게 대해서 거게 감정이 역사하고  계시는 것을 인정을 하는지? 이것을 다 시험하는 것입니다.

 전시험이 하나님을 신구약 성경에 다 이렇게 가르쳐 우리 현실에서 참으로  하나님을 어떤 하나님으로 네가 인정하고 대우하느냐 하는 그것을 시험합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당신을 당신으로 대접하는, 대접하는 그것이 당신이 보는  것을 알고, 당신이 들으시는 것을 알고, 당신이 거기 참관하고 계시는 것을  알고, 당신이 거게 대해서 희로애락의 그 감정이 거게 같이 감정이 동참하고  있는 이것을 알아 그분을 봄으로, 그분을 봄으로 그분을 생각하고, 그분을  봄으로 손해보는 것 그것이 대우하는 것이요, 그분을 봄으로 참고 그분을  봄으로써 자기가 하기 싫은 것도 하고, 그분 때문에 하고 싶은 것도 못하고,  그분으로 인해서 자기가 모든 억울함도 참고 그분을 인해 세상이 몰라 주는 선도  낙심하지 안하고, 이것이 다 당신을 우리 현실에서 어떻게 대우했느냐? 나타내  놓고 어떻게 대우했느냐? 요 대우한 그대로 주님이 무궁세계서 갚으십니다.

 이래서 내 이름으로 냉수 한 그릇을 떠준 그 수고도 결단코 그 상을 잃지  않겠다 고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참 우리가 억울한 것을  억울하다고 이렇게 변명을 하고 복수를 하고 시비를 할라 하는 것도 우리가 참  철이 없는 그분을 모르는 까닭입니다. 우리가 억울한지 안 억울한지 우리는 좁은  면적에서 좁은 범위에서 보면은 내가 억울하지마는 넓은 범위에서 보면은 억울한  게 아니라 지당할 수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좁은 범위에서 억울하다 하는 것은  조금 폭넓게 생각하면 그게 지당하다, 지당하다, 너에게 오는 것이 지당하다,  이럴 수 있으니까 우리가 인간 대 인간으로서 사물을 대하는 것이나 거게 대해서  우리는 조부랍게 생각해서 내게 해가 된다고 또 그게 해라, 또 좀 유익이 된다고  유익이라 그 폭좁게 그렇게 생각지 말고, 또 사람들이 내게 대해서 뭐 억울한  것이나 손해가는 것이나 뭐 그런 것도 그 단편적으로 그렇게만 생각지 말고 내가  폭넓게 생각하면은 다 또 이해도 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사람이 천층 만층은 하나, 이해도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해 못  하는 것을, 이해 못 하는 것을 이 사람은 이해를 합니다. 천인 만인이 다 이해  못 하는 것도 어떤 사람은 이해를 합니다. 그것은 그의 비교하고 그 심사하고  평가하는 범위가 넓을수록 그게 정확하고 넓을수록 그게 정확하기 때문에 다  좁으면 어쩌든지 치우치고 넓으면 그렇기 때문에,  그러니까 우리는 세상에서 그저 원망하면 심판받으니까 원망하지 말고 그분을  보면서 그분의 뜬 눈을 대접하고 그분이 눈을 뜨고 보고 있는 그 눈을 대접해서  그분의 눈 때문에 하고 싶은 걸 내가 못하게 되는 그게 당신을 대접하는 것이요,  그분의 눈 때문에 내가 하기 싫은 것도 하게 되는 것이 그분을 대접하는 것이요,  그분의 눈 때문에 억울한 걸 당하고도 그분의 눈을 보면서 그분이 보고 계시기  때문에 참는 것도, 이제 참는 것이나 행하는 것이나 다 하지 안하고 금지하는  것이나 그 모든 것이 당신의 나와 같이 계시면서 그분이 하나님이시며 모든 것을  다 판단하시고 모든 것이 그분에게 매였는데 그분을 봄으로 인해서 내 마음과  뜻이, 그 봄을 인해서 마음의 뜻이 세제를 받고, 그분을 봄으로 인해서 내  마음위 뜻이 발동을 하고, 그분을 봄으로 인해서 내 행동이 제재를 받고, 그분을  봄으로 말미암아 내 행동이 없는 행동이 시발도 되어지고,  이래서 그분을 마음으로 인정하고 행동으로 인정하기까지 그분을 앎으로  인하여서 그분 때문에, 그분 때문에 우리의 마음이나 우리 행동 이것이 앎으로  인해서 아는 그 영향이 앎으로 인한 그것이 우리의 행동에 이루어지는 이것이  주님을 대접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그분의 눈 앞에서 그분을 속이는 그런 일을 하지 말고 그분을  보면서, 내가 과거에 어찌 됐든지 '이는 참 주님이 보시니 이거는 할 수 없다.

주님이 보시니, 이제 사람이 봐도 할 수 없는 일을, 법관이 봐도 할 수 없는  일을, 법관이 봐도 이 멸시하고 천대하고 사람을 바로 짓밟는 이런 것을 할 수  없는 것을 그분 앞에 할 수 있느냐?' 이래서 그분 때문에 할 일을 못 하고 그분  때문에, 안 할 것을 하고, 그분 때문에 참지 못할 걸 참고, 그분 때문에 할 말  못 하고 안 할 말 하고, 이래서 이것이 그분을 대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까지 주님을 보지 못하는 소경으로 이렇게 소경같이,  우리가 그렇게 말이야 안 했고 해석이야 안 했지마는 소경 취급한 그 죄를  우리가 회개하고, 그분이 듣지 못하시는 감정이 없으신 것으로 이렇게 한 것을,  그분이 모든 걸 알고 너무 정확하게 갚으시는데, 너무 정확하게 갚아서 선악과  한 개 먹은 죄 값을 갚되 인간들이 육천 년 동안 그 죄 값으로 대대손손이 다  죽는 그렇게 죄값도 크게 갚으시고, 또 그분이 의를 갚는 것은 천 대까지, 삼사  대 내려가고 천대 내려간다 했으니까 의를 갚은 것은 더 큽니다. 이분이  계시니까 이분 앞에 곧 설 터인데 우리가 억울하면 얼마나 억울하며, 참으면  얼마나 참으며, 손해보면 얼마나 손해보겠습니까?  그분이 계시니까 우리에게 대해서 모든 것을 너무 공평되게 공평되게 너무  세밀하게 세밀하게 철저하게 이렇게 판단해 주시기 때문에 그분 앞에 우리가  떨릴 것뿐이지 그분이 계시는데 우리가 뭐 인간끼리 어떻다고 해 가지고 이러니  저러니 하는 것은 우리 생각이 너무 좁고 거게 미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언제 우리가 젊어도 모릅니다. 젊어도 모르요. 건강해도  모릅니다. 모르니까 언제 설지 모르니까 어쩌든지 우리 양심에 해야 되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저 하다가 못 하고 주님 앞에 죽을 지라도 죽는 것이라도  양심에 이거는 해야 되겠다 하는 것은 떨구지 말고 즉시부터 해서 착수해 가지고  즉시부터 이런 것을 다 하도록 하고, 또 자기 마음에 가책되는 것은 즉시  해결해서 다 정리를 하고 양심에 자책할 것이 없도록 그래 합시다.

 그렇게 했다고 해서 자기가 마음에 '이제는 안심이다' 할 것이 아니라 그러고도  내 지식은 부분적이고 그분의 지식은 전면적이기 때문에 이 부분 지식으로는  맞지마는 내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많으니 모르는 그 면을 맞춰보면 이게  뭐이 될지 모르기 때문에 떨면서 그분의 심판을 바라보면서 나아가면 그분의  긍휼이 우리를 심판을 이기게 할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우리는 그분의 눈 앞에서, 그분의 눈 앞에서 그분이 보고 계시는데 우리가  세상에 무엇 때문에 그분을 거슬리는 그런 일을 우리가 하지 맙시다. 뭐  물질이나 무엇이나 어떤 인인관계나 어떤 것이라도 오늘 부터라도 이제는 그분  눈 앞에 거리끼는 것을 하지 안할 요것을 하면 요것이 우리에게는 참 지혜가  되고 우리에게는 생명이 되는 것입니다.

 삼십 분 기도 후 남반은 일층 신관, 여반은 일층 구관에서 지난 주일 목사님  설교 재독과 철야기도회가 있사오니 많이 참석하셔서 기도에 힘쓰기 바랍니다.

다음 주일 공과는-중간반 주일학교 말입니다.-다음 주일 공과는 지난 주  24공과인 '세상은 어떻게 살고 갈까?' 를 한번 더 공부하게 됩니다.

 오늘은 우리 양심애 가책되는 것 하나도 남구지 말고 싹 정리합시다. 또 우리  마음에 '요거는 주님이 하라고 한 것이니까 요거는 해야 되겠다' 하는 것은  가다가 엎어져도 하기로 작정하고 힘껏 합시다. 그러면 주님이 도우셔서 다 하게  하십니다. 그러고 이제는 주님의 눈과 귀와 입을 우리가 참 몰라서 무시했던  그런 것을 이제는 돌이켜서 그분을 살아계신, 듣고 보고 우리와 동참 하는  감정이 여게 참관하고 계시는 살아계시는 주님을 주님으로 대 우하는 남은 때의  생활을 하도록 어쩌든지 우리가 오늘밤에 작정하고 돌이킵시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공지 2022.07.04-5596 김반석 2022.07.04
공지 백영희와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2.07.04
공지 순생 순교의 종 백영희 목사님 [1] 선지자 2021.02.22
공지 법전과 주해서 · 성경과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0.05.30
공지 백영희목사님의 ‘목회설교록’에 관한 교훈 모음집 선지자 2019.12.18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자료 1,2,3차 통계표 [3] 김반석 2015.12.20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1] 선지자 2015.10.19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2656 심신이 살아나는 법/ 요한복음 14장 21절/ 871224목새 선지자 2015.11.28
2655 심으는 도/ 고린도전서 15장 42절-44절/1976년 39공과 선지자 2015.11.28
2654 심으면 의의 열매가 맺어짐/ 고린도후서 9장 9절-10절/ 831227화새 선지자 2015.11.28
2653 심의기관-노소원/ 야고보서 3장 1절-12절/ 890207화새 선지자 2015.11.28
2652 심지가 견고한 자/ 이사야서 26장 1절-7절/ 840117화새 선지자 2015.11.28
2651 심지가 견고한 자/ 이사야 26장 2절-7절/ 810925금새 선지자 2015.11.28
2650 심지를 기르자/ 이사야 26장 3절/ 820128목새 선지자 2015.11.28
2649 심판/ 요한계시록 2장 11절-15절/ 880626주새 선지자 2015.11.28
2648 심판/ 창세기 6장 11절-12절/ 880619주전 선지자 2015.11.28
2647 심판/ 마태복음 25장 31절-34절/ 880612주새 선지자 2015.11.28
2646 심판/ 마태복음 25장 31절-34절/ 1988. 6. 6. 주일학교 공과 선지자 2015.11.28
2645 심판/ 마태복음 25장 31절-34절/ 1988년 9 공과 선지자 2015.11.28
2644 심판/ 출애굽기 32장 9절-14절/ 880515주후 선지자 2015.11.28
2643 심판과 구원/ 히브리서 11장 5절-6절/ 791106화새 선지자 2015.11.28
2642 심판앞에 걸리지 안하도록/ 로마서 11장 36절/ 880219금새 선지자 2015.11.28
2641 심판없는 말 없다-집회 천막터/ 유다서 1장 11절-16절/ 870422수새 선지자 2015.11.28
2640 심판을 면하는 유일한 길/ 야고보서 2장 8절-13절/ 820312금새 선지자 2015.11.28
2639 심판을 생각하고 소망을 굳게 잡자/ 고린도전서 2장 1절-5절/ 861121금야 선지자 2015.11.28
» 심판을 준비하는 마음가짐/ 고린도전서 4장 3절-5절/ 830615수야 선지자 2015.11.28
2637 십계명/ 출애굽기 20장 13절/ 790909주전 선지자 2015.1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