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28 13:06
심신의 움직임을 깨끗게
본문 : 요한일서 3장 3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하나님이신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에게 필요한 온갖 것을 은혜로 주시기를 얼마나 원하시는가? 사람되시기까지 원하셨고 또 생명을 바치기까지 원하셨고. 또 한 번만이 아니고 다시 영원히 창조주가 피조물 꺼풀을 입는 이런 대속을 베푸신 주님의 사랑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온갖 은혜를 주고저 하시고 또 원하시고 원하시고 그렇게 뭐 소원된 그 양은 우리가 측량 못합니다. 그렇게 주님은 우리에게 온갖 필요한 은혜. 우리가 아는 것 모르는 것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다 주셔서 아무것도 아닌 우리들이 당신과 같이 온전하고 구비한 이런 자가 되도록 우리를 보아서 모든 피조물이 '아, 하나님은 과연 저와 같이 우리 피조물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시로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도록 그렇게까지 하시려고 목표를 정하고 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에베소서에 보면은 '영광의 찬미가 되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뭐 찬송을 해서 찬송도 되지마는 찬송하는 것보다 우리를 보아 모든 사람들이 아, 저 성도들을 보니까 참 하나님은 그는 사랑이시오, 그는 신실이시요 진실이시오, 약속한 그것을 꼭 그대로 이행하시는데 열심도 계시고 능력도 계셔서 저 피조물을 하나님같이 저렇게 만드시기까지 그 열심으로 계속 역사하셨다 하는 것을 우리를 보아서 하나님에게 만물들이 찬송할 수 있도록 그렇게 만드시겠다고 선포를 하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나 안 사랑하시나, 또 하나님이 나에게 은혜를 주시나 안 주시나 하는 그런 염려는 우리가 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그런 염려스러운 때는 그 악령이 우리를 꾀우는 것이지 주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참 죄와 허물이 많은 사람들인데 네 죄가 주홍같고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우리가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고칠라 고만 하면 하나님은 눈과 같이 양털같이 그 결과적으로 완전케 해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셨고, 또 실수를 자주 하는 우리에게 대해서 하루 일흔 번씩 일곱 번 실수를 해도 일어서거든 다시 고쳐 줘라 다시 용납하고 소망을 가져 주고 희망 없는 자라 이렇게 부르지 말아라 그렇게 말씀을 하셨으니까 우리가 주님의 사랑에 대해서 염려나 의심이나 그런 것은 전혀 가져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악령은 우리에게 조금 잘못된 일이 있을 때는 그것을 가지고, 우리가 잘못된 것을 회개하도록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성령이 하시는 것인데 회개에서 '내가 잘못 됐으니 고쳐야 되겠다' 회개에서 넘어가서 '내가 이런 죄를 짓고 뭐 하나님 앞에 또 뻔뻔스럽게 양심도 없고 사람 같지 않게 그렇게 또 간구하고 달라 붙을 수가 있겠느냐?' 이렇게 생각하는 잘못된 것을 회개하는 그 회개에서 고치는 것으로 전부이 열중을 하지 안하고 거기에서 낙망으로 이렇게 그만 삐뚤어지도록 그렇게 하려고 악령은 그때에 노력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잘못이 깨달아지는 것은 이것은 성령님의 감화요, 이러니까 '내가 또 고쳐야 되겠다. 암만 이럴지마는 내가 고치면 주님은 나를 기뻐하시고 또 고치는 것을 주님은 원하고 계신다.' 이렇게 우리에게 깨달음을 주시는 것은 성령의 감화인데, 그러면 거기에서 잘못 되면 '내가 뭐 한 번 두 번이지 하루 일흔 번씩 일곱 번이나 이렇게 금방 또 잘못해 놓고 잘못됐습니다.
또 고친 대로 소망을 가지고 이렇게 한다는 것이 너무 하나님을 내가 도리어 만만스럽게 여기는 일이 되지 안할까? 내가 너무 주님 앞에 이 뻔뻔스러워서 화를 받을 일이 되지 않는가?' 요렇게 마귀란 놈이 꼬와 가지고 우리가 제법 거기에서 제가 체면 있는 사람이 되겠다 해 가지고 '내가 이런 일을 했으니 뭐 주님 앞에 무슨 소망을 가지겠습니까? 내가 무엇을 또 주님 앞에 간구하겠습니까?' 이렇게 해서 낙망적인 그런 태도를 하기 쉽습니다.
주님은 제일 듣기 싫은 것이 낙망하는 것을 듣기 싫어합니다. 왜? 당신은 우리를 구원할라고 참 뭐 낮아지기도 희생도 한없이 하시고 영원히 지금도 하고 계시는데 우리가 그저 천 번 넘어져도 일어 설라고 발버둥치면서 애쓰는 그것은 주님이 기뻐하시고 도와서 하시지마는 그만 제가 일 년 내내 죄 짓지 안하고 깨끗이 살았다 할지라도 한 번 잘못하고 낙망하는 것은 주님이 싫어하십니다.
주님이 듣기 싫어하시는 제일 낙망을 듣기 싫어하시고. 또 의심을 보기 싫어하십니다. 우리가 무슨 악을 행하고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그것보다 낙망.
의심 그것을 이 시간도 죄 지어 놓고 베드로와 같이 금방 죄 지어 놓고 금방 또 '내 발을 절대 씻기지 못하리이다' '내가 네 발을 씻지 안하면 너와 나와 상관이 없다' '주여 내 몸까지 씻어 주십시오' 요것이 요것이 동심이요, 어린 아이들의 마음, 동심 요것을 주님이 기뻐하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주님에 대해서 의심이나 낙망이나 내게 어떤 그 잘못된 점을 가지고서 그렇게 하는 것은 도리어 주님을 아프게 만드는 것이고 주님을 심히 괴롭히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언제나 백 번 넘어져도 믿고. 천 번 넘어져도 믿고, 또 잘못하고도 또 소망하고 소망하고 그저 소망에서 소망으로, 또 내가 금방 어리석어서 미혹 받아서 낙망했으면 다시 회개하고 또 소망하고, 소망하고 믿고 이렇게 나아가는 것을 주님이 원하시고 성령이 기뻐하셔서 뒤로 물러가면 후퇴하면 주님이 기뻐하지 않는다 이랬습니다. 후퇴라 하는 것은 낙망이 다 후퇴요. 의심이 후퇴요 또 그저 그만 모든 포기하는 그런 게 다 후퇴인 것입니다.
이러니까, 주님이 우리에게 주고저 하시는 것은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우리가 아는 것만 주실 것이 아니라 모르는 것까지도 다 주셔 가지고 우리를,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 되게 하시려고 애쓰는 것은 변치 앉습니다.
이러니까, 여기에 대해서는 의심을 하나도 가질 것이 알고, 다만 주님이 주시고저 하시는 것이 우리에게 오지 못하고 지체하는 그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깨끗지 못한 여기에 하나님이 주시고저 하시는 것을 하나님도 주시지 못하고, 또 우리도 받지 못하고 지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깨끗지 못할 때에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심으로 내 옆에 오면 어찌 되느냐? 오시면 우리가 깨끗지 못하고 더러울 때 오시면 우리는 그 빛에게 녹아 버리고 맙니다. 내가 빛이 되면 빛이 올 때에 나와 접선이 돼지지마는 내가 어두움으로 돼 가지고 있으면은 빛이 오면 그만 어두움은 저절로 녹아 버립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우리가 깨끗해졌을 때에 구원의 하나님이 되시고 우리가 더러워져 있을 때에 소멸하시는 불이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안타까워하시는 것은 우리가 깨끗해지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은 우리가 세상에서 뭐 많은 경험은 아니지마는 조그만한 걸 경험을 해 봐도 자기 실력 이상의 지위나 권세를 가지면 그것이 좋은 거 아니고 실력 이상 것을 가졌으면 지위나 권세는 자기에게 큰 해독이 되는 것을 우리가 잘 봅니다. 또 우리 실력 이상의 무슨 재물을 가져도 그 재물 때문에 우리는 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실력 없는 사람이 중대한 책임을 짊어졌으면 책임진 것은 다른 사람이 보면 '아, 그 사람이 이 중대한 책임을 졌느냐? 그이가 책임자로구나.' 영광이 있지마는 실력이 없으면 그 책임으로 인해서 전부 재만 저질고 나중에 가서 참 큰 수치만 마련하지 좋을 게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소한 일도 이런 데 영원무궁한 일에 있어서 우리가 깨끗지 못하는데 당신은 우리의 실력 이상의 것을 주시면 우리를 망치는 일이 되기 때문에 주시지 못하고 당신은 우리가 깨끗해지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은혜를 의심하지 말고 은혜는 우리에게 얼마든지 뭐 우리가 구하면 주시고, 또 안 구해도 주십니다. 구해도 주시고 안 구해도 주십니다. 우리가 받을 만한 고런 자격만 마련이 되면 우리가 구하지 안해도 벌써 주십니다. 또 구하지 안해도 주실 것이 우리에게 믿어집니다. 고게 대한 자격을 일으켜 보면 기도할 것 없이 뭐 기도 하나 안 하나 주님이 벌써 주셨는데 그렇게 믿어진다 말이오. 믿어지고 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 걸 우리가 신앙에서 많이 경험을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를 깨끗게 하는 일에 어짜든지 전력을 기울입시다.
그러면 우리가 깨끗하게 되는 데에는 어제 아침에 말한 거와 같이 성경 말씀을 표준으로 해 가지고서 말씀대로 된 것이면 다 깨끗한 것이고 말씀에 이탈된 것이면 그거는 다 더러워진 것입니다. 뭐 천하 사람들이 다 인정한다 해도 하나님의 말씀이 이탈됐으면 그만 그거는 심판받고 정죄받는 더러운 것이고 또 모든 사람들이 다 욕을 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된 것이면 앞으로 심판에 무난히 통과하고 또 칭찬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 말씀을 표준을 하고. 또 이 성경 말씀을 믿지 못하게 방해하는, 이 성경 말씀은 진리요 이치요 우리를 깨끗게 하는 깨끗의 표준의 이치는 신구약 성경 말씀이고, 또 우리를 깨끗게 더럽게 하는 데에 거기에 적극 방해하는 자는 어떤 자냐? 방해하는 자는 마귀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마귀에 접선이 되지 안하도록 그렇게 우리는 노력해야 되겠습니다. 마귀에 접선되지 안할라고 마귀를 대항한다고 하다가는 우리가 마귀의 올무에 끌려가기 쉽습니다.
사람이 전쟁할 때도 자꾸 자기의 후방은 생각지 안하고 대적을 따라서 쳐서 대적을 쳐서 쫓기만 하면은 승리한 줄 알지마는 쫓다 보면 나중에 대적에게 포위되기 쉬워요. 대적에게 둘러 쌓이기 쉽다 말이오. 나는 쫓아갔는데 가다 보니까 벌써 나는 그 원수 속에 푹 파묻히게 됐다 그 말이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마귀를 대적한다고만 하다 보면은 마귀 진 속에 파묻히기 쉽습니다.
이러니까, 마귀를 대적하는 것도 우리에게 주신 이 계시의 말씀입니다. 그저 말씀에 어긴 것을 하나씩 둘씩 찾으면 찾아서 청산하면 마귀는 거기에서 말씀에 어긴 것을 청산했는데 그 자리에 마귀는 못 배깁니다. 내가 청산했으면 마귀는 그 자리에 못 배기고 할 수 없어 쫓겨 나가고 나가야 됩니다. 그라다가 내가 말씀에 어기는 행동을 하나 하면 내가 입으로는 마귀를 물리쳐 달라고 아무리 기도를 한다 해도 하나님은 물리치지 못하고 말씀에 어긴 일을 하나 했으면 그 어긴 일 속에 마귀는 들어앉습니다. 들어앉을 때에 하나님은 못 쫓아냅니다. 하나님이 쫓아 낼 권리가 없습니다. 만일 예를 든다면 쫓아낼라고 하면 '왜 나를 쫓아낼라 하십니까? 내 집에 내가 있는데 뭣 때문에 날 쫓아낼라 합니까? 내 집에 내가 있는데.' 죄는 저거 집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죄를 없애면 마귀는 절로 먹을 것이 없으니까 먹을 거 없으면 쥐가 오지 않는 거와 마찬가지로 마귀가 먹을 것 없으니까 못 오게 되고 또 거처할 곳이 없으니까 쫓겨나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요 말씀을 준해서 말씀에 어겨지는 그것을 우리가 고칠라고 애를 쓰고 말씀대로 할라고 애를 쓰는 그것이 마귀를 물리치는 것도 되는 것이고, 또 더러운 것을 깨끗게 하는 것도 되는 것이고, 또 더러운 것을 정리하는 것도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깨끗게 할 때에, 뭐 우리 깨끗게 하눈 것은 우리 홈과 마음이겠습니다. 몸과 마음만 깨끗하게 되면 되는 것인데 우리 마음을 깨끗하게 할려면 어떻게 하면 우리 마음이 깨끗하게 되는가? 내 마음을 깨끗하게 할라고 아무리 내 마음을 깨끗하게 할라고 애를 쓰고 하나님께 기도해도 그래 가지고는 그 방식이 틀립니다. 내 마음을 깨끗하게 할라 하면 마음의 움직임을 이것을 깨끗이 하면은 마음이 깨끗해집니다. 또 자기 몸을 깨끗게 할라고 하면은 자기 몸의 움직임을 깨끗이 하다 보면은 고만 몸이 깨끗하게 되는 것입니다. 몸의 움직임이라는 것은 손을 놀리기를 이것을 깨끗하게 놀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위반된 그 일은 손으로 하지 안하고, 위반되는 그런 발걸음을 걷지 안하고 위반되는 그런 말을 하지 안하고 위반되는 그 눈을 사용하지 안하고, 보지 말라 하는데 봅니다.
그때 황 보기 장로님에게 제가 배웠는데, 그 분이 처음에는 제 교역자였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내가 다른 사람에게, 자기 사모님에게 내가 말을 들었는데 그분이 눈을 처음에 믿을 때에 눈이 퉁발같이 부은 일이 많이 있었다고서 그래 그 부인은 몰랐는데 나중에 보니까 그 안 볼 걸 봤다고. 길을 가면 길을 갈 일이지 가면서 '아, 그 남자는 잘 생겼다 그 여자는 잘 생겼다.' 이래 안 볼 것을 본 그것 때문에 그 눈을 안 볼 걸 보다보면 그만 봐 버려서. 봐도 뭐 그냥 아무 무심히 지나가면 보여지는 거는 상관이 없었을 것인데 거기에 대고서 유심히 봤다 말이오. 유심히 본 그것을 인해서 자기의 눈을 쳐서 눈이 이렇게 퉁발같이 부은 그런 일이 많이 있었고 또 자기 그 말을 고치기 위해서 어떨 때는 좀 벙어리도 됐다가 어떨 때는 뭐 혀를 깨물고 밥을 굶고 이래 가지고서 그때 그 참 말의 실수가 없도록 고 쳤다는 그런 말을 제가 들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뭐 방법을 연습하는데 어떤 사람은 그 말을 고치기 위해서 그저 실수 말 한 번 하면은 밥을 얼마 굶기로 작정해 놓고서 자꾸 밥을 굶겨서 고만 이 육체를 곯아트리는 걸 가지고서 고치는 그런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것도 좋습니다. 녜. 그것도 좋은데, 어짜든지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은 말에 실수했으면 즉시 '아, 내가 말에 실수했다. 나는 고치겠다.' 다시 고칠 마음을 새로 결심을 가지고 또 주님에게 가고. 자꾸 고칠라고 시작하는 그게 하루 일흔 번씩 일곱 번 아니라 뭐 칠백 번씩 칠백 번이라도 고칠라고 자꾸 애를 쓰고 달라 붙으면 마귀란 놈은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 몸을 깨끗하게 할라 하면은 이 몸으로 행동하는 것 몸이 움직이는 움직임을 이것을 바로 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몸이 움직이는 것은 눈이 움직이는 것도 몸이 움직이는 것이고. 혀가 움직이는 것도 몸이 움직이는 것이고.
수족이 움직이는 것도 몸이 움직이는 것이고, 귀가 듣고 안 듣고 하는 거 귀가 움직이는 것도 듣고 안 듣는 것도 그게 몸의 활동이 되겠습니다. 그뿐 아니라 뭐 우리 몸을 수족뿐 아니라 그 외에도 모든 지체들이 다 있으니까 깨끗하게, 예를 들면은 부인들도 물론 그 남편 있는 사람, 남편에게 잘 보이도록 하는 것은 좋지마는 지나치면 그것도 안 됩니다. 잘 보이도록 해 가지고서 남편이 그만 아내가 매력에 끌려 가지고서 일할 줄도 모르고 잘 줄도 모르고 쉴 줄도 모르고 나중에 그래 놓으면 그 남편 죽습니다. 이러니까 정도에 맞아서 남편이 다른 여자 탐하지 안할 마치 그 남편이 자기 마음에 자기에게 마음이 기울어지도록 고만한 정도만 되지 그 남편이 아내 아름답게 꾸미는데 대해서 못 견뎌서 나중에 병들어 죽도록 그래 하면 안 된다 그거요. 또 더군다나 그 여인들은 자기가 어데도 나가든지 하면은 물론 좋지마는 그 몸을 지나치게 사치스럽게 단장을 해 가지고서 다른 사람을 미혹하게 하면 그러면 다른 사람들이 죄를 범하니까 그런 게 다 죄라 그 말이오.
언제 미니 치마라고서 짧은 걸 입었는데 내 언제 신문에 보니까 그래 놨습디다.
어떤 그 처녀가 타고 있는데. 그만 어떤 청년이 그만 앞에 가서 그만 뿔근 가서 거머 안아 버리고 이라니까 그만 그게 고발이 돼 가지고서 잡혀 왔어. 잡혀 왔는데 그래 판사가 물으니까 '왜 이놈아 남의 여자에게 그와 같이 했느냐?' 이라니까 '아, 옷을 짤막하이 입고 이라니까 그만 보다가 못 견뎌서 나도 모르게 그만 퍽 거머 안았습니다.' 이라니까 그 판사가 있다가서 '그럴 수 있다' 이라면서 무죄로 석방을 시키더래요. 그 판사가 안주 명판사입니다. 그런 게 다 뭐이냐 하면 남을 미혹 주는 거라 말이오.
그러면, 내 몸에 그런 것도 내 육체에 그게 다 움직이니까, 또 추하게 하는 것도 안 됐고, 이러기 때문에 참 여기에 중간반 반사 선생님들이든지 우리 뭐 그런데는 별로이 없는데 나 보기에는 이거 반사 선생님들 모두 이래 교회 와서 활동할 때는 다 점잖한데 딴 데 갈 때는 무슨 지나치게 치우치지 않고 그렇게 잘 하느냐 그렇게 염려가 돼서 말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 점잖하게 분수에 맞게, '아, 아무것이 그 사람 보니까 그 참 나도 의복 단장을 그렇게 해야 되겠다' 그런 것도 다 몸의 움직임이라 그 말이오. 그 세상 그 유행을 내가 요새는 유행을 모르지마는 원리가 그렇습니다. 유행이라 하는 것은 그 사람들이 존경하는 제일 존경하는 그 사람들이 하는 것이 유행이 됩니다.
하도 옛날에 그 대궐에 있는 사람들이 와 가지고서 요래 가지고 오면 밑에 그 창기들이 본뜨고 그만 그래 버리고 또 옷을 저래 입고 나오면 얼른 창기들이 그 본 뜨고 또 그렇게 입고 이라니까 만날 해 봤자 창기 앞잡이 밖에는 안 돼.
그러니까 아. 이거 안 됐다 그래 가지고 나중에 예를 들면은 이마에다가 똥을 발라 가지고 돌아다니면은 아, 저거 저 정승 부인들 모두 다 대궐에 있는 사람들이 이마에 똥 발라 다닌다. 똥 바른 게 신사다. 창기가 제일 먼저 똥을 바르고 나올 것입니다.
이와같이 그 사실은 유행이라 하는 그것이 어떤 한 사람에게 따라서 가는 것이기 때문에 추잡한 일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잘난 사람들은 그 유행을 딿지 않습니다. 세상에 유행이야 저거 되든지 말든지, 그러기 때문에 너무 유행에 뒤떨어지면 사람들이 야만이라고 또 우습게 볼 것이고, 또 앞서면 앞서기 싫고, 이러니까 그때 한 상동 목사님이 말하기를 '유행은 딿지 말고 앞서 가지도 말고 뒤떨어지지도 말고 중간을 가거라' 이렇게 하는 말을 제가 기억했습니다.
그러기에 이 몸에 몸이 깨끗해지는 데는 몸의 행동으로 말미암아 몸이 깨끗해지는 것이고, 마음이 깨끗해지는 데는 마음의 행동으로 말미암아 마음이 깨끗해지는 것이니까 우리 마음에 깨끗게 할려면 우리 첫째는 뭐 생각을 '아, 이 생각은 하면 되겠나 안 되겠나?' 뭐 성경 말씀을 아는 게 좋고 또 성경 말씀 몰라도 대충 우리가 압니다. 내가 이 마음 먹는 것은 '이거 깨끗한 마음이냐 나쁜 마음이냐?' 그 마음에 깨끗한 것을 생각하고 나쁜 것은 생각지 말고, 또 '내가 이 소원하는 이 소원이 깨끗하냐, 소원은 추잡하고 더러우냐?' 그러면 추잡하냐 더러우냐 그걸 모르겠거든 아는 비결이 하나 있습니다. 그러면 이 소원은 나는 좋지마는 이 소원을 천 명 만 명 백 명에게 드러내면 다른 사람들에게 '아, 그 소원은 참 잘 가진다. 그 소원은 가질 만하다 이렇게 다른 사람들이 찬성할 수 있는 그 소원이냐? 나만 좋지 다른 사람들은 그 소원 가진 것 그거 못 쓰겠는데 그 소원 가지는 걸 미워하겠느냐?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여기겠느냐?' 그렇게 생각해 보면 또 성경을 몰라도 쉽게 간단하게 판단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남의 대접을 받고 저 하는 대로 먼저 남을 대접하라 그런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생각도, 또 욕심도. 또 소원도. 또 뜻도, 계획도 경영도. 기쁨도 내가 이 기쁨 가진 이 기쁨은 이거 누가 봐도 '아, 참 그 기쁨은 가질만 하다. 그 사람이 그 기쁨을 가진 것 보니 사람이네' 또 내가 기쁨 가진 것은 '야, 내가 그 사람 그 기쁨 가지는 것 보니까 그 사람 믿을 수 없는 사람이다. 그 기쁨은 사람이 가질 수 없는 기쁨이다.' 기쁨도 못 쓸 기쁨이 있다 말이오. 그러면 기쁨이나 또 슬픔이나 또 우리가 그 노하는 것이나, 노하는 것도 '아, 그 사람 그 노하는 것 보니까 인격자다 그 사람은 참 존경할 만한 사람이다. 그 사람 노하는 거 보니까 그런 노를 하는 거 보니까 그 아무짝도 못 쓸 사람이로구나.' 그러면 우리가 이 마음의 행동도 많습니다.
이러면, 하나 둘씩 자기가 시간이 있는 대로 움직임을 이거 깨끗이 함으로서 나중에 마음이 깨끗해지고, 몸의 움직임을 깨끗하게 함으로 내 몸이 깨끗해져서.
그러면 내 마음이 깨끗해지지. 몸이 깨끗해지지, 또 마음과 몸의 행동이 깨끗해지지, 그러면 우리가 이제 점해 가지고서 해 놓은 일도 다 깨끗한 일이 되겠습니다.
그래서,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같이 자기를 깨끗게 하느니라' 이 말씀을 기억하고 언제든지 깨끗게 하기를 우리는 힘 쓰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