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신기능과 만물의 생사기로


선지자선교회 1981년 12월 2일 수새

 

본문:로마서 3장 9절~10절  그러면 어떠하뇨 우리는 나으뇨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요사이 새벽마다 우리의 현실에 대해서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면 이 현실은  로마서 3장 9절로부터 그 이하를 읽고 현실을 말하니까 ‘이 본문에 그런 것이  없는데 어찌 이 본문에서 그런 해석이 나올꼬?’ 그렇게 해서 오해를 하고  ‘그만 아무나따나 끌어다 붙여서 그렇게 하는가보다?’ 그렇게 생각하기 쉬울  것입니다. 그러기에 설교록이 나갈 때에 그 계속하는 데서 그 계속이 빠지면  무슨 말인지 모릅니다.

본문 어데를 근거해 가지고 말하는고 하니 “우리는 다 죄 아래 있다” 그것이  9절에 있습니다. ‘우리는 다 죄 아래 있다’ 죄 아래 있다고 했는데, 그저 무슨  죄 무슨 죄 또 그다음에 있습니다.

죄는 하나님의 이 말씀을 준해서 이 말씀에 삐뚤어진 것이 그것이 다 죄입니다.

‘그러면 죄에 대한 해석이 다 되는데 뭐 현실을 들고 말하는가?’ 그렇게  생각할 것인데, 죄는 하나님 말씀에 어긋난 것이 죄이지만 죄와 우리와의 무슨  관계가 있고 무슨 효력이 있기 때문에 죄를 말했는가 그것이 문제입니다.

그러기에 이 죄라는 그 자체를 우리와 관련된 그 범위를 넓게 말을 하면 이제  현실이라 하는 것이 들려 나오게 됩니다. 그것까지를 말하지 않으면 이 죄에  대해서 우리가 실제로 신앙생활 하려고 할 때에는 아무 효력이 없습니다. 다  마귀에게 지고 난 다음에 죄를 알면 뭣 합니까? 그러기에 죄로 더불어 싸워서  이기려고 하면 이 순서를 알아야 됩니다.

우리의 현실관, 현실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똑똑히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현실을 우리가 지식적으로 아는 것 같지만 현실을 만나 놓으면 그만 마귀가 주는  그 미혹의 지식이 들어와서 현실관이 삐뚤어져 버립니다.

현실을 바로 알면 현실은 어떤 현실이든지 우리가 원망할 현실은 아니고 참  감사할 현실이고, 우리에게 해가 되는 현실은 아니고 유익이 되는 현실이고,  화가 아니고 극히 복이 되는 현실인데, 이 현실을 잘못 사용하면 큰 화가 되고  현실을 바로 사용하면 지극히 큰 구원이 되어지는 것인데, 그러기에 이 현실은  누가 만들었는가 그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겠고, 어떤 현실이든지 이것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이 만드신 현실이며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일시 만든 것이  아니고 영원 전 하나님께서 그대로 예정해서 계획을 딱 세워 놓고 세워 놓은  계획 그대로 하나님이 내 현실을 순서대로 닥치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현실은 시간으로 말하면 바로 이 시간이 현실의 시간이오. 또 장소로  말하면 내가 현재 머물고 있는 그 장소가 현실의 장소요. 또 이 현실에 참가하고  있는 종류는 사람도 있고, 영도 있고, 악령도 있고, 사건들도 있고, 모든  만물들도 있고, 이런 것들이 다 이 현실에 참가해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합해서 내 현실입니다.

그런데 이 현실 안에는 몇 가지가 있다고 했습니까? 예. 일곱 가지가 있다고  했습니다. 악령, 죄, 또 사망, 또 심판법, 또 구속, 생명의 법, 영생하는 생명의  법, 또 그 위에는 성령 하나님 있는데,

-그 학생들 둘 안 보인다. 안경 쓴 학생들. 어제 나한테 왔던 그 학생들  왔어요? 손 들어봐. 안 보여. 어제 아침부터 안 보여. 또 어디로 갔는고? 별별  일이 있어. 예수님에게도 와서 예수님 탈 잡을려고 왔던 자들도 있고,  시험하려고 왔던 자들도 있고, 또 그런 것이 취미가 있어서 오는 사람 있는데,  바로 가르쳐도 바로 가르치면 그만 재미가 없습니다. 삐뚤어져야 재미가 있다 그  말이오.

그러면 여기에서 또 인제 바로 배웠으면 다른 데 삐뚤어진 것, 그것 지금  공격하러 가서 가고 또 이래하고 그거 재미로 다니는 그거 큰 시험입니다. 제가  며칠 전에 만나서 옳은 것을 가르쳐 줬는데, 그걸 다른 데, (아! 저 인제 오네.

그 빠지면 안돼.) 어쨌든지 하나님 앞에서, 사람이 이렇게 저렇게 하는 그것보다도 배후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옳고 바른 것을 자기가 깨달아 가려고  얼마나 힘씁니까? 생명 내놔야 된다 그 말이오.

몸으로 산제사를 드려야 하나님이 옳고 바른 것을 가르쳐 주시지, 그저 예사로  하나님 말씀을 시험하려고, 하나님 말씀을 자기가 요거 알아 가지고 다른 사람  정죄나 하고, 다른 사람 비판이나 하고, 그러면 제가 심판자 된다 그 말이오.

성경에 그렇게 하면 심판자 되기 때문에, ‘네가 무엇인데, 심판자는  하나님이신데 네가 그러느냐고. 그것이 너를 심판하는 멸망이라’ 하는 것을  야고보서에 말씀했다 그거요.

그러기에 우리는 그 삐뚤어진 것은 실은 그것을 알 여가가 없습니다. 삐뚤어진  것은 알 여가가 없어. 시간이 없어. 그런 여유가 없어. 옳고 바른 것만 알고  그것만 알아 나가도 다 못 알아 나갈 터인데, 삐뚤어진 것은 언제 그것을 다 알  수가 있겠소? 삐뚤어진 것은 그것은 억만명의 대가리라도 그걸 다 알 수 없는,  그만치 복잡하고 많은 것인데, 옳은 것만 알면 삐뚤어진 그까짓 거야  ‘억억만이라도 옳은 것 아니면 다 삐뚤어졌다.’ 도매금으로 넘겨버리면 그만  돼 버렸습니다. 그렇지 않소? 그러기에 아는 법은 ‘자기가 산 제물로 드린다’ 말은 ‘그저 바로 알아도,  바로 알아도 잘 조절을 해 가면서 타산을 해 가면서, 바로 알아도 타산을 해  가면서 별 지장 없으면 바로 아는 그대로 하겠습니다.’ 하는 그자에게 하나님이  바로 가르쳐 줍니까? 안 가르쳐 줍니다. 바로 아는 데는 ‘주여! 바로 알려  주옵소서. 내가 모가지가 끊어지든지 살림살이가 달아나든지 내가 어떻게 매장이  되든지 바로만 가르쳐 주시면 제가 그대로 하겠습니다.’ 요 마음이 있는 자에게  바로 가르쳐 줍니다. 바로 가르쳐 준다고 알맹이까지 주는 줄 압니까? 아니오.

껍데기 바로 가르쳐 줘요. 껍데기를 바로 가르쳐 줘요.

껍데기를 바로 가르쳐 주는데, 껍데기 바로 가르쳐 주는 그걸 받아 가지고 참  자기가 어떤 해가 있어도 그대로 달려들어 실행을 합니다. 실행을 함으로 인하여  비로소 알게 됩니다. 자기가 바로 알고 그대로 행하려고 하면 그 사람이 변화가  되는 것입니다. 변화가 되고 나면 변화된 것만치 이제는 또 새로 알아집니다.

그러기 때문에 교만한 자는, 주님 앞에는 참 이것은 제일 불행스럽소. 진실이  없는 자는 참 불행스럽습니다. 참이 없는 자, 꾀로 가지고 예수믿는 사람,  지혜로 가지고 예수믿는 사람, 수단 가지고 예수믿는 사람 참 불쌍합니다. 안돼.

그러면 우리 현실 안에는 몇 가지가 있어요? 일곱 가지. 이제 다 말했지. 일곱  가지. 일곱 가지가 있는데, 거기에 현실 속에서 죽고 살 것은 어떤 것들입니까?  어떤 것이 죽고 삽니까? 이 일곱 가지 현실 속에 죽는 것들이 거기에 들어  있는데, 어떤 것들이 그 현실에서 죽고 사는지? 죽을 것은 어떤 것들이며, 살  것은 어떤 것들입니까? 자, 죽을 것은 여반에서 한번 말해 보고 살 것들은  남반에서 한번 말해 보지요. 죽을 것들은 어떤 것들이지요? 남반에서 먼저 말해  볼까? 남반에서 한번 말해 보이소? 죽을 것들은 어떤 것들입니까? 여기 양성원  학생들이 좀 대답 좀 해 보지요?  죽을 것들은 어떤 것들인지? 몰라요? 몰라? ㅇㅇ? 악령, 죄, 사망 그것이 죽을  것들이라? 그것은 죽어 있는 것들인데? 그거 하나님하고 원수가 돼 가지고 죽음  뭉텅이인데? 죽음의 원동력인데 뭘? 어떤 것들이 죽을 것들입니까? 그것을  알아야 우리가 죽을 것들을 못 죽도록 하지. 살릴 것들이 어떤 것들인지 그것도  알아야지. 둘이 있습니다.

죽을 것들 살아날 것들, 둘이 있는데 안 죽으면 살고 죽으면 못삽니다. 이 둘이  사나 죽나, 사나 죽나 하는 이 문제가 현실에 매여 가지고 있는 것이 두 가지  있는데, 그만하면 알 수 있어. 두 가지 있는데 하나는 뭐입니까? 뭐?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야 죽을 것이면 죽고 살면 사는가? 그 공로는 뭐 아주 생명의 근원이  돼 가지고 있는데? 네. 마음과 몸의 기능, 육의 기능들, 육의 기능들 이것이  영원히 사느냐 영원히 죽느냐 하는 것이 현실에서 결정납니다. 몸의 기능, 육의  기능 말이오.

육의 기능, 육체라면 심신을 합해서 육체라. 일반 교회들은 육체라 하면  몸이라고 생각하고 마음은 영이라 생각합니다. 마음을 영이라 생각하요. 마음을  영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중생되고 난 다음에도 제 마음이 하루  몇번이라도,-아레 온 청년들이 말하기를 이 마음을 영으로 보고 나니,  중생됐지만 마음으로 하루 열 번도 뭐 더 죄를 짓는데 중생된 영은 죄를 안  짓는다고 하니 내 영은 중생이 됐나? 중생이 됐다면 죄를 안 지을 건데 죄는  짓고 이러니까 중생된 영도 죄를 짓는다고 해야 되나? 도무지 확정이 안된다고.

그는 마음을 영으로 보면 다 그렇게 해석할 수밖에 없어. 마음은 영이 아니오.

마음은 혼이오.

짐승에게도 마음이 있습니다. 사람하고 조금 차이가 있는 것뿐이지 그놈도 슬픈  마음도 있고, 기쁜 마음도 있고, 또 감사한 마음도 있고, 두려운 마음도 있고 다  있어. 그걸 마음을 영이라고 하니 얼마나 어두워졌는지 모릅니다. 얼마나  어두워졌는지. 마음을 영이라고 하니 그 가르침이나 또 그 신앙생활 하는 것이  어찌 됩니까?  마음을 영이라고 해 놓으니 전부가 삐뚤어질 것 아닙니까? 인생에 제일 중요한  요소가 주격이 뭐이냐 하면 영이 주격체인데, 영이 주격체인데 이 주격체를 없애  버렸으니까 구원에 대해서 뭐이 됩니까?  영은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되어서 완전한 구원을 얻었는데 영이 하는 일은 지금  무슨 일 하는고 하니, 자기의 소유 중에 제일 중요한 것은 우주보다도 자기의  육의 기능이 제일 중요한데, 육의 기능 이것을 가지고 있어야 되겠는데 육의  기능 이것을 지금 빼앗기느냐, 영원한 사망에 빼앗기느냐, 육의 기능 이것을  영원한 자기 것을 만드느냐 하는 이 문제가 현실에 있기 때문에 이 일을  책임맡은 성령도 탄식을 하고,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가 된 우리라는 중생된  영들도 탄식을 합니다.

왜? 이 육의 기능을 이 현실에서 빼앗기면 다시 못 찾습니다. 육의 기능을 자기  것을 삼아 놓으면 영원히, 무궁세계에서 영원히 자기가 자기 기능으로 쓸 수  있습니다. 자기 도구로 쓸 수 있다 말이오. 이래서 하나님께 드리면 의의 병기  의의 도구가 되고, 우리의 몸이 의의 도구가 되고, 죄에 드리면 죄에게 바쳐서  죄의 하는 대로 이렇게 하면 죄의 병기 죄의 도구가 된다 이랬습니다.

우리 현실에서 죽느냐 사느냐 하는 이것은 우리의 육의 기능이 죽고 사는 것이  현실에서 결정됩니다. 육의 기능 전부가 아니고, 고 현실에 해당된 육의 기능,  육의 기능 이것은 죽든지 살든지 하는 그 기회가 현실이라는 그 기회 한 번밖에  없습니다. 다른 심신의 기능 요소가 있다 할지라도 이 현실에 해당되지 아니한  것은 상관이 없어요. 이 현실에 해당된 그것은 그 현실에서 죽고 사는 것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중생된 영으로 말하면 자기의 영원한 필요있는 도구, 제일 중요한  도구를 이 현실에서 빼앗기지 아니하고 자기 것을 삼느냐, 이 악령 죄에게  빼앗겨 버리느냐 이것이 지금 문제라. 그러니까 탄식하고 성령도 지금 이를  위해서 하고, 이러니까 성령하고 중생된 영하고는 한덩어리가 돼 가지고 이  현실에서 성령이 쓸 영이, 성령이 쓸 것이 우리의 영이요, 영이 쓸 것이 이 육의  기능인데, 이것을 구원하려고 둘이 합해 가지고 애를 씁니다. 애를 써도  빼앗기는 일 많고, 또 차지하는 일 많습니다.

빼앗기다니? 그러면 전능하신 분이 무엇 때문에 빼앗겨요? 성령은 전능하신  하나님인데, 왜 전능하신 하나님이 안 빼앗길려고 애를 쓰는데 빼앗겨? ‘전능이  아닌가보구먼.’ 그렇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전능자이신데 왜 빼앗깁니까? 왜  빼앗기지요? 능력이 없어 빼앗깁니까? 왜 빼앗깁니까? 그 심신에게도 유한된  자유이지만 자유를 줬기 때문에, 자유를 줬기 때문에 유기적으로, 자기의  능동적으로 성령과 진리와 주님의 공로를 영접하고 그리 속해야 되는 것이지,  강제로 그래 할진대야 뭐 이렇게 교회 세울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엿새동안에 만든 것 강제로 만들어 버리면 그것이야 대번 되지만,  그러면 도구나 짐승 같지 그것이 하나님의 형상이 안되고 만다 그 말이오.

하나님은 자유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에는 만물이 가지지 못한  그 자유성이 제일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고로 중생된 영은 자기 영원한 도구를, 자기 병기를, 자기 기구를 안  빼앗길려고 애를 쓰고, 마귀란 놈은 뺏을려고 애를 쓰고 성령님도 안 뺏기려고  애를 쓰고 둘이 합해서 안 빼앗길려고 애를 쓰는데, 이것은 그 심신의 기능에게  자유가 있기 때문에, 이것이 자유가 있으니 안 한다고 배척하면 하나님이  쫓겨나가야 된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이걸 구원하기 위해서 타이르기도 하고, 달래기도 하고, 사람을 통해  권면하기도 하고, 만물을 통해서 알리기도 하고, 온갖 방편의 역사를 해 가지고  비로소 그 본인의 육이 ‘나는 이래 하겠다’ 하고 그 사망에 속한 것을  배척하고 하나님께로 이렇게 척 돌아서면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는지? 하나님  사귀는 법이, 하나님을 사귀는 법이 제일 요긴하고 가깝고 중요한 그런 시기가  뭐이냐 하면 현실에 이 세상과 세상에 속한 악령의 모든 것을 싹 배척하고  하나님께로 척 돌아서는 요것이 하나님에게 제일 기쁨이요 만족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 두 사이에 있으면서 지금 이 악령과 악성과 악습과 세상도 지금 제것  만들려고 애를 쓰고, 하나님과 진리와 주님의 공로도 자기 것을 만들려고 이래  하고 있는데, 그 사이에 이리 갈까 저리 갈까 할 때에 양쪽에 지금 참 탄식을  하면서 지금 조마조마 고대하고 있는데, 그럴 때에 하나님 척 버리고 요리 싹  돌아선 그것이 그다음에 ‘주여! 주여!’ 암만 해 봤자 분개하다 그 말이오.

그럴 것 아니겠습니까?  뭐 돈이나 무슨 봉사나 희생이나 뭐이나 그런 것 하면 그것 가지고 하나님의  마음이 풀릴 줄 아요? 아닙니다. 그것도 좋지만 그까짓 거는 여기에 비할 때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요 현실에 딱 요래 있을 때에 그 평소에 하나님을 섬기는 무슨 봉사나 연보나  그런 것이, 전도나 그런 것이 없어도 요 현실에 둘이 요렇게 시비를 할 때에  ‘어디로 가는가 보자.’ 참 성령님도, 중생된 영도 가슴이 도곤도곤하고 있고,  이 악령들도 지금 가슴이 도곤도곤하고 있는데 그럴 때에 거기에서 머뭇머뭇  하다가 ‘하! 내가 너 따라갈 줄 아느냐?’ 마지막 척 돌아서서 주님 앞으로 딱  돌아서면 주님이 그만 그것이면 만족입니다. 그게 제일이오. 제일 주님을 사귀는  것이 그게 제일이오. 그게 제일입니다.

그리되면 성령님은 부자, 실력있는 영을, 실력있는 영을 이제 가지게 됐지, 또  중생된 영은 자기의 영원히 쓸 병기를 자기 것으로 만들었지 이러니까  기뻐합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한다’ 이랬습니다. 믿음 없이는 딴거 가지고는 기쁘시게 못해요. 그럴 것  아니겠습니까? 시비 왔는데 ‘이것이냐 저것이냐? 네가 어디로 붙을래?’ 할  때에 그때 척 배반하고 이리 딱 붙을 때야 하나님이 모든 것 아끼지 않습니다.

붙은 그에게 대해서는 아끼지 않고 모든 걸 다 주요. 만족하고 ‘네가 내것에  속했으니’ 뭐 그 이상 다른 거 원할 것이 하나도 없어.

우리의 육은 심신을 가리켜서 육이라 하는데 육의 기능 이것이 죽느냐 사느냐  하는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뭐입니까? 또 하나는 뭐이지요? 이거 깜깜하네. 그냥, 여러분들이  알려고 하지 않고 이러니까, 다른 사람들은 한 마디만 들으면 열 마디 스무  마디를 안다는데, 암만 여럿 배워도 몰라요?현실에서 또 하나 영원히 망하고  살고, 영원히 멸망을 하고 영원히 영원한 구원을 얻고 하는 것, 또 한 가지  있는데 그거는 뭐이지요? 뭐? 자기가 뭐?  예. 그 현실에, 자기와 관련된 만물이 아니고 그 현실에 관련된 모든  만물들입니다. 그 현실에. 그 현실에는 돈도 관련될 수 있고, 명예도 관련될 수  있고, 지위도 관련될 수 있고, 생명도 관련될 수 있고, 그 현실에 관련된 것.

자기에게 관련된 것이 아니고, 그 현실에 관련된 모든 것들입니다. 현실에, 자기  현실에는 사건도 있고 물건도 있고 모든 것 다 있지 않습니까?-요 일곱 가지  외에-있는데 내가 그 현실을 만났을 때에 그때에 이용되는, 이용되는 그 모든  만물 그것은, 그것이 나만 이렇게 하면 그것들도 다 생명에 소속해 가지고 살게  되고, 내가 넘어지면 그 모든 것들도 다 멸망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만물이 탄식한다’ 이랬습니다. 그 현실에 참가한 만물, 그 현실에  관련된 만물 그것이 영원한 멸망을 받느냐 사느냐 하는 것이 우리의 행동에  따라서 결정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만물이 원하기를, 탄식하면서 원하기를  뭘 원한다 했지요? 예, ‘하나님의 뭇 아들들의 자유’ 뭇 아들들이라 말은  남자만 말한 것 아니오.여자도 하나님의 아들이라 말이오. 여자들도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이러기에 ‘하나님의 뭇 아들의 자유함에 이르는 것이라.’ 중생된 하나님의  아들이 자유하면 하나님의 아들이 자유하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자유하는  것은 죄짓는 것이 자유하는 것입니까 영감대로 사는 것이 자유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아들은 새사람 아니오? 하나님의 아들은 새사람이니까 새사람은,  새사람이 소원한 대로 하는 것은, 새사람의 소원하는 대로 하는 것은, 새사람의  소원은, 새사람의 소원은 하나님의 소원이요, 진리의 소원이지요. 이러니까,  소원대로 하는 것이 자유이지.

이러니까 하나님의 뭇 아들들의 자유함에 이르는 것을 원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인 새사람이, 새사람이 소원하는 대로 살기를 고대한다 그 말이오. 새사람이  소원하는 대로 살기를 고대한다. 새사람이 자유하기를 고대한다.

그러면 그 현실에서, 그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하니까 죄, 마귀, 사망,  심판법을 이기고 예수님의 공로를 힘입어서 생명의 법에 안보받고 하나님에게  안보받는 이것이 의의 걸음이라 말이오, 의의 걸음. 의의 걸음 걷기를 탄식하며  고대합니다.

의의 걸음 걸으면 뭐하려고? 의의 걸음을 걸으면 거기에 관련된 그 모든 것은  영원히 만물을 새롭게 할 때에 살아나지만 이 주인공이 되는 그 인간이 그만  범죄해 버리면 만물은 다 절단나 버리고 맙니다.

이러니까 현실에서 죽고 사는 것이 결정지워질 두 종류가 있으니 하나는 우리의  심신의 기능이요, 그 현실에서 해당된 심신의 기능이요, 또 내 현실에 해당된  모든 만물들입니다. 그러니까 두 가지가 죽고 사는 것이 현실에 결정되는  것이오. 현실 속에 이 두 가지가 들어 있습니다.

그 현실에는 무엇 무엇이 있는가? 거기에 일곱 가지가 있다고 했습니다. 있는데,  그러면 우리가 이 현실 속에서 직접, 우리와 직접 관련될, 이 현실 속에서 직접  우리에게 관련된, 첫째로 우리가 이 현실에서 직접으로 관련된 이 원수가  뭐입니까? 예? 네. 죄입니다. 마귀도 있고, 사망도 있지만 그것은 우리에게 직접  관련된 제일 적이 아닙니다.

제일의 적은 죄입니다. 죄 그놈만 없애버리면 마귀도 그까짓 거 뻐드러져  버리고, 사망도 뻐드러져 버리고, 하나님의 심판법도 아무 할일 없습니다.

상관없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죄 그놈이 일차적으로 우리에게 접선되어 있는  이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현실에서 내가 싸워야 할 적을 찾아야 되니까, 마귀도 있고  모든 것도 있지만 첫째로 내가 내 적을 찾아서 싸울 제일 적이 뭐이냐?  죄입니다.

또 우리가 필요한 것, 나를 돕는 모든 은혜가 많고 돕는 것이 많지만 첫째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예.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는 것이 첫째  급합니다. 이 공로만 입으면, 입고 나면 그다음에 죽 따라서 그만 입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이 현실 속에서 내 심신의 기능이 이것이 죽느냐 사느냐  하는 것이고, 또 이 현실 속에 관련된 모든 만물 이것이 살아나면 영원히 나를  수종들고 그것 죽으면 나와는 영원히 상관이 없는 것이 되어지기 때문에 이  만물이 탄식하는 것, 만물들이 탄식하고 있는 이 현실에 관련된 만물 이 둘이  죽느냐 사느냐 하는 문제가 달려 있는데, 이 문제를 가지고 있는 이 두 가지  죽고 사는 것이 현실에 매여 있는데, 두 가지 죽고 사는 이것이 현실에게 매여  있는데 그 만물에게 자유가 있습니까? 만물의 죽고 살 수 있는 것이 만물에게  자유할 수 권리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습니다. 그러면 거기에 대해서, 이 두  가지가 죽고 사는 데 대해서 자유할 수 있는 것은 누구입니까? 우리입니다. 우리  심신의 기능 이것이오.

이러니까, 여기에서 우리는 죽고 사는 요 결정 속에서 있는데, 첫째로 우리가  찾아 가지고 대적해서 그것부터 정복해야, ‘네가 뉘 집에 들어가든지 들어가면  그 집에 제일 왕이 되는 그놈부터 정복을 해야 그 집에 있는 모든 것을 네가  빼앗을 수가 있지 그것 내비두면 빼앗지 못한다. 그것부터 먼저 처리해라.’  그것부터 먼저 처리해라 말씀했는데 그러면 우리가 제일 이 현실에서 먼저  처리해야 될 원수가 누구입니까? 죄입니다. 죄 이놈을 잡고 지금 처리를 해야  됩니다.

또 내가 이 현실에서 제일 힘입어야 될, 내가 힘입어야 될 내게 필요한 것이  많지만 제일 필요한 힘입어야 될 중요한, 힘입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주님의  공로. 이러니까, 원수는 죄인데 나를 일차적으로 도울 것은 주님의 공로이니까  이 공로와 죄를 한데 부딪히면 죄는 절단나 버리고 맙니다. 말씀을 어긴 죄나  자율로 하는 불의의 죄나 하나님과 원수된 죄나 언행심사의 어떤 죄든지  예수님의 공로와 연결되면 이것은 깨지고 맙니다.

예수님의 공로와 연결되고 난 다음에는 이제 예수님의 공로를 써먹고, 써먹고  나면 일차적으로 원수가 다 정복됐습니다. 예수님의 공로를 써 먹으면 죄도 저는  절단나 버렸고, 마귀도 볼일 다 봤고, 절단나 버렸고, 하나님의 심판법도 상관이  없어, 예수님의 공로를 내가 힘입을 때에는.

그러고 난 다음에 재빨리 우리가 힘입을 것이 무엇입니까, 힘입을 것이?  하나님의 안보. 하나님의 안보의 법 이 진리를, 안보의 법 이 진리를 빨리  힘입어. 이 진리를 힘입어서 빨리 이 진리와 자기가 일치돼야 돼. 그리고 난  다음에는 누구와 일치됩니까? 하나님과 일치됩니다.

우리의 구주이신 하나님, 주 하나님, 우리의 구주 하나님, 이 하나님, 구주  하나님이라니? 예수님의 영, 예수님의 영을 가리켜서 그리스도의 영이라  이럽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뭐인가? 성령이라고도 하고 그리스도의 영이라고도  하고, 예수님께서 ‘세상 끝날까지 내가 같이 있겠다.’ 하는 그 말씀은  신인양성일위로 같이 우리에게 나타나 보이심이 아니고 영으로, 그리스도의  영으로 우리와 같이 계십니다.

힘입으면 이제는 그 현실에서 영생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죄에  관련된, 죄에 관련된 이 현실에 모든 요소들이 있기 때문에 이 죄를 말할 때에  그것을 말하지 않으면 이 죄를 이겨나갈 수가 없고, 벗어날 수가 없고, 우리가  이 대적하는 데에 전법이 희미해서 패전하게 되기 때문에 요 죄를 말하면서 요  현실을 관련시켜서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제가 양심을 쓰지 않고 들으면 무슨 말인지를 모르요. 엉뚱한  소리 하는 것 같고, 그러니까 어떤 사람 말하기를 ‘늘 하는 말 하는 것이니까  뭐 새벽기도 갈 것도 없고, 하는 말, 장 하는 말 한다’ 고. 그 사람은 한마디도  못 알아 듣는 사람이라 그 말이오. 그러니까 그 신앙이 장 흐리멍텅하게 그리  됩니다.

‘자기가 자기에게 있는 것을 다 들이지 않으면 이 도에는 참여할 것도 없다’  그렇게 말했소. ‘시몬아! 네 속에 불의가 가득하다. 악이 가득하다. 이 도에는  참예할 것도 없고 얻을 것도 없다.’ 이랬습니다. 그렇츰 열심히 따라다니는데?  뭐이냐? 열심히 따라다녀도, 내가 열심히 따라다녀서 제가 남보다 우쭐해서  올라가려고, 제가 커질려고, 제가 인기 끌려고 그 욕심 가지고 따라다녔지,  구속하신 주님을 위해서 따라다니는 것이 아니고, 주님 위해서 자기 죽는 건데,  주님이 자기에게 해준 것 그것 받고 자기는 주를 위해서 모든 것 다 바쳐서 죽는  건데, 이것이 예수믿는 것인데 그것이 아니고 예수님의 공로를 힘입어 가지고  제가 유명해지고 제가 유력해지고 제가 존귀해지고 제가 인기 끌어지고 하려고  하니까, 예수까지 이용을 해먹고 예수님의 공로까지 이용해 먹을려 하기 때문에  상도둑놈이라 그 말이오. 알겠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시몬에게 대해서 ‘네 속에는 악이 가득하다. 불의가 가득찼다.

이 도에는 받을 것도 없고 참가도 못한다. 네가 은과 함께 망할 것이다. 그러나  네가 돌이켜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혹 용서하시리라.’ 똑똑히 모른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그만 거머쥐고 달려 들어서 회개를 했어. 그러니까 아나니아와  삽비라와 같이 즉사를 하지 않았지.

예수믿는 것이 뭐인지도 모르고 마음대로 지금 하기는 하지만, 구약에는  고기덩어리가 죽으니까 육안으로 보일 때 보이지만 고기덩어리보다도 그의  심신의 기능이 죽고, 영의 소유권이 죽고, 이렇게 중요한 것이 죽지만 이것이  눈에 보여야지? 안 보이니까, 구약시대는 대번에 그만 벌해서 죽지만 이  신약시대는 죽는다는 말이 안 맞는 걸로 알지만 죽는다는 것이 왜 안 맞아?  영원히 살 요소들이 죽습니다. 이 고기덩어리가 중하요 그 안에 기능이 더  중하요? 기능이 중하요 영이 중하요? 영이 중하지 않소? 그러기에 모르는 자는  항상 모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이 새벽기도에 참석해야 자기 심신이 변화가 되고, 구원얻을 자는 깨달아지고  이래 되는 건데 이 새벽기도 안 나오는 이것은 막 전생활 도둑 다 맞는  것입니다. 자기가 암만 한다 해도 자기 구원은 헛일입니다. 자기 구원은  헛일이오. 건설구원은 헛일입니다. 사람 보기에 미꿈한 생활이야 뭘 못하겠소?  뭘로 인간을 변화하요? 하나님 말씀 가지고 변화를 시키지.

이러니까 자 이 중간반 반사들도 심방하는 그것보다도 새벽기도 나오는 것이 더  중요하고, 주일학교 반사들도 자기 반사 노릇하는 것보다도 새벽기도 나오는  것이 더 중요하고, 그 반사들이 학교 다니며 공부하는 것보다도 새벽기도 나오는  것이 더 중요하고, 새벽기도 나오는 이것이 제일 중요한데, 이 중요, 제일  중요한 것을 다 빼앗겨 버리고 마니까 마지막은 껍데기 이것만 살아서 움직이고  있다 그거요. 이 주일학교 반사들이 새벽기도를 나오기 않기 때문에 힘이 속에서  능력이 없으니까, 억지로 하니까 됩니까? 제가 이제 그걸 파악을 똑똑히 했어. 왜 서부교회가 이렇게 내려 가느냐 하는 그  이유는, 참 진리로 사람을 고치려 하는 그게 있으면 안 내려가요. 그 반은 안  내려갑니다. 그 반은 안 내려가요. 그 반은 그 사람이 아플수록, 병들어  누웠을수록 더 올라갑니다. 안 내려가요.

첫째는 그 병인데 외부적으로 병은 뭐이냐 하면 심방을 안 했다 그거요. 어떤  사람은 반사가 두 달 심방 안 했어. 그 학생들에게는 ‘안 온지가 얼마나  됐노?’ ‘한 두 달 됐습니다.’ 안 오니까 가까운 데 가야 되지. 그 책임이  얼마나 무거운지? 제가 그 사람의 영혼을 맡아 놓고 가면 되는데 게을부리고  그래 가지고, 게을을 부리고 심방 안 해서 다른 교회로 가도 구원이 바로  이루어지면 다행이지만 잘못 이루어지면 제가 심판받아야지. 그 사람이 교회 안  나오고 멸망받으면 그것 제가 심판받아야지.

이 지금 큰 멸망은 모르고, 눈 앞에 있는 공부 그까짓 거 하면 얼마나 대단한데?  몰라도 좋아. 알아도 잘못 이용하면 큰 화가 돼. 몰라도 좋고. 몰라도 하나님의  지식만 가지면 다 돼 버려. 전지자가 돼 버려.

이런데 이 새벽기도 안 나오는 사람들은 자기 신앙 걸음을 걸을 수 없습니다.

일주일 중에 제일 중요한 날이 어느 날이지요? 주일날 중에 제일 중요한 시간이  어느 시간입니까? 하루 중에 제일 중요한 시간이 어느 시간입니까? 어느  시간입니까? 새벽시간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과 의논하고 여기에서 하나님이  그날에 대한 것을 주시고, 그날에 대한 것을 하나님이 주셔서 그거 받아 가지고  되는 거라 그 말이오. 참 불쌍하고 가련해요. 암만 해도 안 듣는 것은 할 수  없어. 없지만 참 불쌍하다 그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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