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령의 양식-우리의 소원

 

1987. 12. 2. 새벽(수)

 

본문:요한계시록 3장 19절∼22절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여게 “이기는 그에게는 주님의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겠다” 하는 이 말씀은  주님이 이기시고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다 아버지에게 상속받아서 아버지가  하시는 그 위치에서 아버지의 하시는 직책을 다 가졌습니다. 마태복음 28장 17절  이하에 보면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다 내게 주셨으니”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보좌라는 것은 주권자의 위치인데 세상 말로 말하면 왕이 앉는 왕석인데, 왕이  앉는 그 왕의 직위 그것을 가리켜서 우리 나라 말로는 과거에 용상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임금이 앉는 자리를 용상이라 그렇게 말했는데 여게 말하는 보좌라  말은 보배 보자 자리 좌자, 보좌라 하는 것은 주권자가 앉는 자리가 보좌입니다.

주권자.

주권자는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다 주님이 다 주관하시도록 상속받았습니다.

죽었다가 살아나신 그후에는 주권자가 되셨지마는 그 전에는 아버지에게  복종자가 됐습니다. 아버지에게 복종을 완전히 하셨음으로 주권의 상속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이기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자유와 주권을 주실 것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하는 것은 이는  택함을 입은 중생된 성도라면 누구든지 다 이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그런 권세가  다 있습니다. 이기기만 하면 다 이 축복을 줍니다. 또 우리는 있는 힘만 다 쓰면  이길 수 있는 건데 우리가 항상 게을하고 마음이 한갖되지를 못해 가지고서 이  승리를 못합니다.

이기는 자는 어떤 자가 이기는 자인가?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이 말은 어떤  자에게로 들어가? 문을 여는 자에게 들어가. 문만 열면 주님이 들어오십니다.

들어오셔 가지고서 무슨 일 하는고 하니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주님은 내게 들어오시면 나로 더불어 주님은 잡수시고 또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문을 연 그 사람은 주님으로  더불어 먹는다 이랬습니다. 주님은 나로 인해서 먹으시고 나는 주님으로 인해서  먹는다 이랬습니다.

그러면 여기 먹는다는 말을 무슨 말을 한 것인고 하니 먹는다는 말은, 주님이  나로 더불어 먹는다 그말은 주님이 나를 통해서 당신이 땅위에 오신 목적을 다  완성한다 그말입니다. 먹는다 말은 완성한다 말입니다. 또 “그는 나로 더불어  먹는다” 나는 주님으로 말미암아 내게 대한 하나님의 뜻을 다 완성한다  그말입니다.

요 먹는 것은 육체가 먹는 것이 아니고 인격이 먹는 것입니다. 새사람 참사람이  먹는 것입니다. 인격이 먹는 것인데 곧 중생된 새사람이 먹는 것입니다. 그러면  새사람은 이런 물질을 먹지 안하고 새사람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와 영감과  진리를 먹고 삽니다.

그러면 그 먹는 것은 어떻게 먹는가? 그 뜻을 이루는 것이 먹는 것이기 때문에  그 뜻을 행하는 것이 먹는 것입니다. 그 뜻을 사람들이 행할래도 행할 수가  없는데 자기에게 대한 하나님의 뜻을 다 행한다 하는 말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명령하시는 것 다 행하고 요구하시는 것 다 행하고 교훈하신 것 교훈대로 다  행하는 그것을 가리켜서 여게 먹는다 그랬습니다.

인격이라는 것은 입으로 먹는 게 아니고 인격은 올바른 교훈이나 지도나 지혜를  자기가 들어서 깨닫고 믿을 때에 인격이 자라게 되고 또 그대로 실행을 할 때에  인격이 자라게 됩니다.

그러기에 요한복음 4장에 제자들이 예수님이 물을 달라 하시니까 시장하신갑다  해서 마을에 뭘 식사를 사러 가 가지고서 식사를 사 가지고 왔습니다. 오니까  사마리아 한 여인하고 얘기를 주고 받고 있었습니다. 그때에 제자들이 ‘여게  떡을 사 가지고 왔으니까 떡을 잡수십시오’ 이렇게 주님에게 말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게는 너희들이 알지 못하는 떡이 있다. 너희들이 알지 못하는  내가 먹을 내 떡이 있다.’ 이러니까 제자들이 생각하기를 ‘아마 사마리아  여인하고 둘이 얘기하고 있는 것 보니까 그 여인이 뭘 잡수실 것을 드려서  잡수셨는가보다’ 이렇게 제자들이 생각을 했습니다.

주님이 제자들의 그 생각을 보시고 다시 설명을 했습니다. ‘너희들이 알지  못하는 내가 먹을 양식은, 떡은, 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받아서 먹을 수 있는 그런  떡이 아니고 너희들이 알지 못하는 떡은 곧 이것이니, 내 떡은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이 떡이요 또 아버지의 보내신 이의 뜻을 완전히  이루어서 완성하는 것이 내 떡이요 양식이다.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는 것이  양식을 먹는 것이요 완전히 행하는 것이 그것이 양식을 먹을 대로 다 먹은  것이다.’ 인격의 양식은 듣고 깨달음으로 양식이 되고 또 행동하는 데에서  완전히 양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것을 가리켜서 심령의 양식이라, 안 믿는 사람들도 이걸 여기 따  가지고서 마음의 양식이라 그렇게들 더러 말을 합니다. 심령의 양식이요 새사람의  인격의 양식이라.

그러면 아버지의 뜻을 주님이 다 이루신 것과 같이 우리가 주님의 뜻을 다  이루면 주님이 승리하신 승리 우리도 승리하기 때문에 승리의 대우를 주님이  받은 것과 같이 우리들도 승리의 대우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성공이 무엇인가? 주님의 보좌에 앉는 이것이 우리의 성공이요,  그러면 성공하는 실력은 무엇인가? 실력은 주님으로 더불어 먹는 것이  실력입니다. 주님도 나 아니면 내게 대한 뜻은 이루지 못합니다. 나도 주님이  아니면 내게 대한 주님의 뜻을 이루지 못합니다. 승리는 뭣이 승리인가? 내게  대한 주님의 뜻을 다 이루는 것이 승리입니다. 다 이루는 것을 가리켜서 먹는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다 이루는 것이 뭣인가? 주님이 나에게 교훈하신 대로 다 행해서 교훈하신  그대로의 사람, 성경대로의 사람이 되는 것이요, 또 교훈하시고 명령하시고  요구하신 대로 다 행하는 그것이 승리요.

주님의 뜻대로 다 행하고 또 주님의 뜻대로 다 된 사람이 되고,  또 주님의  교훈대로 다 하고 이러면 온전한 사람입니다. 온전한 사람에게 하나님이 영계와  물질계의 모든 것에 대한 주권을 주십니다. 주권 주시는 것은 가리켜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한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주권받는 것이 왕노릇하는 것이오. 그러면 하나님과 우리와의 뜻이  하나되어서 하나님이 주권하시는 그 주권 우리도 주권합니다. 그것은 사상이 같기  때문에 소원이 같기 때문에 주님의 소원과 우리 소원과 같아서 주님의 소원이  이룰 때 우리도 우리 소원도 이루어집니다. 그것이 주님과 자기와의 같은 사람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네가 내 안에 있고 내 말이 네 안에 있으면 원하는 대로 구하라 다  이루리라” 소원한 대로 어떻게 되겠습니까? 소원하는 대로 다 되는 것은 주님의  소원과 내 소원이 일치가 돼야 다 되지 주님의 소원은 동으로 가자 하는데  우리가 서로 가자 해 되는 게 아니야. 원하는 대로 구하라 다 이룬다 말은 내  잘못된 소원대로 다 내 사욕대로 다 된다 말이 아니고 주님의 뜻 이루어진 게 내  뜻 이루어진 것이요, 주님의 소원 이루어지는 게 내 소원 이루어지는 것이라.

주님과 나와의 사람이 본질과 본성으로 하나되는 것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그러면 이렇게, 먹는 것이 성공이 되는 것인데 이기는 사람은 주님의 보좌에 같이  앉게 되고, 이기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 이기는 사람인가? 이기는 사람은 주님으로  더불어 먹는 사람, 주님은 나로 더불어 먹은 사람, 주님은 나를 통해서 주님의  뜻을 다 이루시는 그것이 당신의 소원을 다 이루시고 또 나는 주님으로 말미암아  내게 대한 주님의 뜻이 다 이루어져.

그러면 그 뜻이 주님이 당신이 먹는 것 내가 먹는 것, 주님이  아버지가 보내신  주님의 뜻 다 이루어지고 나는 주님이 내게 대하신 모든 내게 대한 뜻을 내가 다  이루고, 그러면 그 뜻이 주님도 이루시고 나도 이루는데 그 뜻이 둘입니까  하나입니까? 둘입니까 하나입니까? 하나입니다. 주님은 내게 대해서 다 이루셨고  나는 주님의 명한 대로 다 이루었는데 그게 하나라 그말이오. 그게 뭣이냐?  진리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나로 더불어 먹는, 아버지의 보내신 뜻을 다 이루시는 것과 또  내가 주님이 내게 명하신 모든 것을 다 이루는, 이루는 것이 먹는 것인데. 이 먹는  것은 어떻게 하면 먹는다 했습니까? 어떻게 하면 먹습니까? 어떻게 하면  먹습니까? 문 열면 주님이 들어오셔 가지고서 같이 먹는다 말씀했습니다.

문 여는 것이 어떤 것이 문 여는 것입니까?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그 위에  말했습니다.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사랑하는 자는 자꾸 회개 안 하면 채찍을  깔려서 징계를 해서 회개 안 하면 못 견디구로 그래 하고 벌써 탈선돼 놓으면  하나님이 자꾸 이래 권고하시다 안 들으면 그만 그대로 둘 수밖에 없어. 안 듣는  걸 자꾸 징계를 하고 이래도 안 들으면 그 징계하다 보면 죽으면 절단나 버릴  터이니까 할 수 없이 참아 기다릴 수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문을 여는 게 뭣인가 하면 주님과 나 사이에 가로막혀 있는 것을  틔우는 것이 문을 여는 것이요, 가로막힌 것을 틔우는 것이 문을 여는 것이오.

가로막힌 게 뭐인데? 죄를 회개하는 것이 문을 여는 것이요, 죄를 회개하는 것이.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는 휘장이 가리워져 있는데 그 휘장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실 때에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졌습니다. 그러면 그 휘장은 뭣인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가리워져 있는 죄인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실  때에 그 휘장이 갈라진 것은 “예수님의 육체는 휘장이라” 했습니다.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예수님의 육체는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진,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진 죄뭉텅이라. 예수님은 죄가 없지마는 우리 죄를 대신 짊어져서  죄뭉텅이인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것은 우리의 죄값을 대신해서  형을 받으셔 버리니까 죄가 절단났다 말이오.

죄는 어떤 죄라도 형 받으면 그 죄는 없어지는 것이오. 죄는 달리는 없앨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대신 죄의 형을 받으시니까 죄가 없어져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을 때에 휘장이 위로부터 손 대지 안하고  찢어져 버렸어. 가운데 갈라져 버렸어.

문을 여는 것은 주님과 나 사이에 거리끼는 모든 죄를 다 회개하는 것이 그것이  문을 여는 것이요 문을 열면 주님이 내 안에 들어오십니다. 내 안에  들어오십니다. 문을 안 열고 암만 들어오라고 해도 들어오실 수가 없습니다. 문을  열고 영접하면 들어오십니다.

문을 여는 것은 죄를 회개하는 것이요 영접하는 것은 내가 마음으로 주님을 믿는  것, 마음으로 주님을 내 마음에 영접하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주님을 들어오도록  영접하는 것은 내 마음으로 주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내 마음으로 주님을  생각하고 사모하고 자기 안에 주님으로 모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음으로 모시는  것이오. 이것을 가리켜서 믿는다 이렇게 말합니다.

아무 형체 없는 영으로 오시는 주님을 영접하는 것은 육안으로 볼 수 없게  마음으로 영접합니다. 마음으로 영접하면 그 주님이 오셔 가지고서 전지 전능의  그 지극한 능력이 형체 없이 내 속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형체 없이 내 속에  들어와 가지고서 보이는 형체 아무것도 없으나 그 능력은 들어오셔 가지고서  역사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능력이 들어와서 역사할 때에 아무 형체도 보이지 않고 역사만  하니까 사람들이 나중에 잘못 생각하면 교만해져 가지고서 제가 한 줄로 이렇게  오해를 하게 됩니다.

이 주님이 제자들을 앞서 보낼 때에 눈으로 보기에는 제자들은 저거만 갔고  주님은 따로 산으로 가셨지만 볼 수 없는 영이신 주님은, 하나님이 영입니까  육입니까? 영이십니다. 영이신 주님은 그들과 같이 갔습니다.

같이 갔는데 어떻게 같이 갔는가? 그들이 주님을 생각하고 사모하고 ‘주님이  우리를 가게 하셨다. 또 목적지까지 가라 하셨으니 이대로 이루어진다.’ 하는  것을 마음으로 그들이 주님을 믿고 마음 가운데 생각했을 때 그 주님은 오셔  가지고서 배를 잘 가게 했는데 그들이 풍랑이 인 것은 주님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그 마음 가운데 주님을 잊어버리니까 주님은 쫓겨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을 우리 마음 가운데 모시는 것은 우리가 주님을 생각하는 것이요 내 안에  계시는 주님은 전지 전능자인 것을 믿는 것이요, 그러면 보이지 않는 형체 없는  그 주님이 자기들 안에 와 가지고서 역사할 때에 배는 잘 갔고 주님 잊어버렸을  때에 주님이 가라는 그 걸음은 걷지 못했습니다. 그 전진을 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주님이 걸어가게 한 신앙 걸음, 영생하는 걸음, 주님 앞으로 가까이 가는  걸음 이 걸음은 주님이 걷게 하셔야 되지 걷게 하시지 안하면 인간의 힘으로는  가지 못합니다. 인간의 힘으로 갈 수 없는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갈 수 있는 이  걸음은 주님이 가게 하셔야 되는데 가게 하신 주님은 유형의 주님인가? 형체가  있는 주님인가? 무형의 주님이십니다.

무형의 주님이 내 안에서 나를 붙들고 가도록 하시는 그 능력의 주님은 보이지  않는 주님인데 내가 생각하고 사모하고 믿는 주님입니다. ‘주님은 내 안에  계신다’ 믿을 때에 주님은 내 안에 계십니다. 이 주님이 전능자이기 때문에  전능자는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을 때에 전능자가 함께 하십니다. 함께  하시는 주님, ‘나를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할 때에 `오라' 하시니까 베드로가 물 위로 걸어간  것은 자기가 주님을 생각하고 믿고 주님을, 자기를 물 위로 걸어가도록 해 주실  것을 믿을 때에 주님이 걸어가게 했습니다.

그러면 물 위로 걸어가게 한 것이 제힘으로 갔던가? 아닙니다. 믿음으로  갔습니다. 믿음으로 갔다 말이 무슨 말인가? 주님을 믿으니 주님이 가게 해  주셨다 그말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된다 말은 내가 믿는 대로 주님이 해 주신다  그말이오.

주님이 해 주셔서 물 위로 가다가 빠져들어갈 때는, 뭐 빠져들어갈 때는 주님이  그를 버려 그렇습니까? 저희 마음 속에 주님이 계시지 아니한 것과 주님이 물  위로 걸어가게 해 주실 것을 믿지 아니하는 그것 때문에 그는 가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주님을 믿는 것은 주님을, 무형의 영이신 주님을 내 속에 모시는  것이요 믿는 것은 그분이 내 속에 오셔 가지고서 나를 붙들고 해 주실 것을 내가  믿는 것입니다. 믿을 때에 주님은 내게 와 일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일을 어떻게 우리가 하오리이까?”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믿으면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믿으면 주님이 와서  해 주십니다.

우리가 믿는 대로 되는 것은, 믿는 대로 된다는 그말은 주님을 내 안에 모셔서 내  안에 계시는 주님이 해 주실 것을 자기가 인정할 때에 주님이 친히 해 주시는  것입니다.

믿을 때에 믿는 대로 되는 것은 주님이 해 주시는 것이지 내가 믿는 대로 된다는  뭐, 믿는 대로 된다는 딴 뭣이 아닙니다. 믿는 대로 되는 것은 내나 주님이 친히  와서 하시는 일입니다.

“믿음은 능치 못할 것이 없다” 그말은 주님이 내 안에 오셔서 해 주실 것을  믿을 때에 주님이 자기에게 못 해 줄 것이 없다, 안 믿을 때에 해 줄 수 없다  그말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반사 선생님은 언제든지 그 공과를 외워서 공과 가지고서 새김질 하는 일을  연습을 해서 아주 습관을 딱 들이십시오. 버릇을 딱 들여서 공과는 딱 외우고  공과 가지고 새김질 하면 다른 것 안 해도 다 그 안에 들었습니다. 지하철  위해서도 기도하고 하루 삼십 분 기도 잊지 맙시다.

오늘은 공과를 만들어 볼까 하는데 만들 수가 있으련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들이  공과를 만들도록 기도를 많이 해 주십시오. 그러면 할 수 있고 그리 안 하면 못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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