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는대로 거둔다

 

1989. 6. 25. 주일오후

 

본문: 갈라디아서 6장 7절∼8절.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본문 해석을 하면, '스스로 속이지 말라' 네가 너를 속이지 마라. 자신이 자신을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하나님은 인간에게  멸시나 무시를 받으시는 하나님이 아니시라. 어떻게?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인생이 어떻게 살든지 행동한 그대로 정확히 갚아 주시는  하나님이라 속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라는  것은 이 심신을 가리켜서 육체라고 말하는데 심신이 주장하는 대로 사는 것을  육체를 위하여 심는다 했습니다. 심신이 주장하는 대로 사는 것을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라.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라 성령이 주장하는 대로 행하는 자를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라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면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자기 심신이  주장하는 대로 사는 자는 심신으로 말미암아 이미 저주받아 가지고 썩어진 것을  거두고 생명에 속한 것은 하나도 거두지 못합니다.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의 주장대로 인도를 따라서 사는 사람들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영생을  거두리라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오전에도 증거한 거와 같이 사람들에게 조심하는 것도 중요하고, 또 열심을 내는  것도 중요하고, 또 참고 견디는 것도 중요합니다. 무엇이든지 자세히 생각하고  연구해 가지고 그렇게 찬찬히 하는 것도 참 귀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우리가 망하고 흥하는 원인이 되지 못하고 죽고 사는 원인이 되지 못합니다.

 죽고 사는 원인은 뭐이며 망하고 흥하는 원인은 무엇인가? 성경이 말하기를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라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면 사람이 살고 평안하고 하는 그것이 열심있는 데에 되는 게 아니고, 또  조심하는 데 있는 것 아니고, 또 무엇을 깊이 연구하는 데 있는 것도 아니고,  계속성 있는 데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사람이 죽고 망하는 원인은 곧 악령에게  있습니다. 죽고 망하는 원인은 악령이요 또 살고 평강을 누리는 원인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생사화복의 원인이 있으니까 그 원인을 찾아 가지고 바로 정리해야  되지 원인은 찾지 안하고 원인 그 다음에 것을 아무리 주의해 봤자 소용없습니다.

아무리 조심해도 소용없고, 주의해도 소용없고. 열심을 내도 소용없고, 뭐 아주  계속 인내하는 계속성 있는 것도 소용없고 그 첫째 원인을 바로 잡아 놓고 그런  것이 있어야 되는 것이지 원인을 바로 잡지 못하고 수고하는 것은 다 그 수고가  전부 헛수고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사람들은 원인이 되는 그것부터 먼저 찾아서 원인을 바로 가져야  되겠습니다. 원인을 바로 가지고 난 다음에 그 다음에 조심도 필요하고 주의도  필요하고, 열심도 필요하고, 계속하는 것도 필요하고 뭐 절제도 필요하고 모든 것  필요하지 이 원인을 바로 찾지 않으면 헛일입니다.

 그러기에 모든 사람이 다 원치 안하는 망하는 것과 죽는 그것의 원인은 다른  데는 하나도 없습니다. 망하고 죽는 원인은 게을해서 방하고 죽는 것도 아니요, 또  지혜가 없어서 망하고 죽는 것도 아니요 또 뭘 조심 없이 벌로 한다고 해서  망하고 죽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원인이 하나님이 돼 가지고 있으면은 좀 빨리  가고 더디 가고 또 성공을 많이 하고 적게 하는 그 차이뿐이지 망하는 것  아닙니다. 그러나 원인을 잘못 잡아놓으면 아무리 인간이 열심히 심신을 기울여서  노력한다고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흥망성쇠, 생사화복 이것은 원인이 있다, 그 원인을 찾아야  되겠다 해서 원인을 찾아 가지고 바로 가지려고 하는 그 사람이 지혜 있는  사람이오. 원인은 찾지 안하고 그 원인 다음에 행동할 그런 것만 조심해 가지고  열심히 하는 것은 아무리 해야 그거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원인이 잘못되어  있으면 그 다음은 절로 잘못되기 마련인 것입니다.

 그래서 원인은 하나님과 마귀 두 가지뿐입니다. 원인을, 자기의 모든 생애 원인을  하나님으로 삼으면 모든 일이 다 평안하고, 또 성공하고, 생명적이고 또 자기가  모든 생활의 원인을 마귀 그놈을 잡아 놓으면 뭐 제가 어떻게 한다 할지라도  전체는 다 멸망뿐인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는 모든 생사화복의 원인이 악령과  성령에 있다 하는 요것을 언제든지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오전에도 말했거니와 사람은 독립자가 아닙니다. 꼭 의속해서 살도록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어 놨습니다. 하나님을 자기가 주인으로 보시면 하나님이 그를  주관하고 마귀를 주인으로 모셔 놓으면 마귀 고놈이 그 사람을 주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으로 자기 주관자를 만들든지 마귀로 자기  주관자를 만들든지 그것은 우리가 자유로 초청할 수 있습니다. 왜? 사람들에게는  유한한 자유를 줬기 때문에 사람이 하나님을 청하면 하나님이 와서 그를 주관해  주시고 마귀를 청하면 마귀가 그를 와서 주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사람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 생활에서는 제일 중요한 것이 마귀냐 하나님이냐 그 면을 찾는  것이 중요한데 오늘 말세가 돼 놓으니까 사람들이 이 말을 하기를 싫어합니다. 왜  싫어하느냐? 마귀가 싫어하고 마귀에게 속한 사람들이 다 싫어합니다. 마귀  그놈이 시켜서 다 싫어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아무리 유력한 그런 부흥사라도  '마귀' 말을 잘 안하고 또 '하나님 말씀'도 잘 하지 안하고 '하나님' 말을 잘 안  할라 합니다. '마귀' 말도 잘 안 하고.

 이래서, 강단에서 읽을 때도 이제 '하나님의 말씀' 하면 사람들이 듣기를  싫어하고 그것보다는 '성경 말씀' 하면은 조금 듣기를 좋아합니다. 그것보다도 또,  성경 말씀보다도 '성서 말씀' 하면은 더 듣기를 좋아합니다. 왜? 그게 더  더러워졌고 그게 마귀에게 가깝기 때문에 마귀 그놈들이 좋아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는 모든 생사화복 또 흥하고 망하고 쇠하고 하는 것 이것은 다  원인이 어디 있느냐? 원인이 둘뿐이다. 원인이 둘뿐인데 망하는 원인은 마귀요  흥하고 사는 원인은 하나님이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을 모시지 않고 제가  행복을 원한다는 그거는 천부당 만부당한 일이요 또 마귀를 자기가 모셔 가지고  있으면서 자기에게 행복이 오리라고 생각하는 것도 그것도 천부당 만부당한  일입니다. 또 하나님을 자기가 주로 모시면 거게는 사망이나 실패나 그런 것은  없습니다. 그런 것은 있을 수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제일 주력할 것이 뭐인고 하니 내가 뭐 조심도 '일을  어떻게 조심해서 해야 돼나?' 또 '사람을 어떻게 조심해 취급하나?' 그런 것보다도,  조심도 열심도 정성도 신경도 총명도 뭐 이걸 다 기울이려면 어디에 기울여야  되느냐? 원인에다가 기울여야 됩니다. 원인에다가. '내가 지금 마귀를 접해 가지고  있나, 하나님을 모시고 있나?' 그것을 살펴서 따지는 데에 전심 전력을 기울여  가지고 그 원인부터 바로 잡아 놔야 그 다음에 희망이 있는 것이지 원인을 잘못  잡아 놓으면 그 다음에는 잘해봐도 그만 못해봐도 그만 망하기는 한 가지입니다.

 이래서, 인간은 안 믿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이 마귀가 다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그는 뭐 천하가 부러워하는 성공을 했다 할지라도 그것은 멸망이오. 어떻게  무엇을 했다 할지라도 그거는 다 노아 홍수 속에 매장된 거와 같이 다 멸망속에  매장되는 것이지 거게는 생명과 평강이라는 구원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자기가 모시고 살면 거게는 멸망이라는 것이 부스러기 하나도 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전심 전력을 기울여서 우리는 자기에게 있는 마귀를  쫓아내고 하나님을 모시도록 그렇게 노력하는 것이 제일 중요한 일입니다.

 그 다음에 중요한 일은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 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무엇이든지 심는 대로 그 대로 거두리라.

이것은 사람 농사짓는 것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사람 농사. 우리는 사람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이 비유로 말한 것인데 사람 농사를 짓고 있는데 그 농사짓는  것은 두 가지 농사로 말했습니다. 하나는 육체로 농사짓는 것, 하나는 성령으로  농사짓는 것 두 가지 농사를 말을 했습니다. 그러면 육체로 농사짓는 것은 자기  생각대로, 자기 생각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는 것을 육체로 농사짓는다 했고 또  성령으로 농사짓는 것은 성령이 인도하는 대로 하는 생활을 가리켜서 성령으로  농사짓는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농사짓는 것은 오늘에 농사지으면 내일에 추수가 있는 것입니다. 세상일도  보면은 한 달만에 추수하는 것도 혹 있습니다. 시골 가면은 앉은뱅이 울콩이라  하는 그 울콩은 심은 지 한 달 만이면 추수를 합니다. 또 석 달 만에 추수하는 것,  넉 달만에 추수하는 것 대개는 다섯 달 안에 추수하고 또 포도나무 같은 그런  거는 심은 지 한 삼 년 되면은 조그만한 추수를 하기 시작합니다.

 심으면 반드시 추수가 있는 그런 것을 가리켜서 농사짓는 것이라 그렇게 했는데  현재에 우리의 행동은 앞으로 미래에 추수가 있다. 현재 행동한 그대로 미래에  추수가 있다. 현재 행동한 그대로 미래에 추수가 있는데 미래에 추수는 누가  하는고 하니 하나님이 갚아 주시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콩을 심었으면은 콩을  심었는데 콩 추수를 할 수 있도록 콩 한 낱을 심은 것이 콩이 혹 백 낱이나  이렇게 열매가 많이 불어서 나도록 하는 것은 하나님이십니다.

 이래서, 콩 심었는데 그 콩을 심었다고 콩이 되는 것 아닙니다. 하나님이 콩되게  해야 되지 콩이 안 되게 하면 안 돼요. 사람이 만일 그걸 바짝 마른 이불 속에다  콩을 심어 놔봤자 안 됩니다. 흙 속에 심어 놓으면 하나님이 그것을 길러 가지고  자라게 해서 열매가 맺게 하는 것처럼 인간들이 행동하면은 그 행동한 그 행동에  대해서 하나님이 정확하게 보응으로 갚아 주십니다. 이래서 사람들은 다 인간  농사를 짓고 있는 사람이라 그렇게 여게 말했습니다. 인간 농사를 짓고 있는  사람이라.

 그러면 농사를 짓는데 농사를 지어 가지고 그 추수를 이 세상에서 하는 것도  있고 또 영원 무궁한 세계에서 하는 것도 있습니다. 그러면 이거는 무슨 말인고  하니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오늘 행동하면 내일 추수가 있고. 금년에 행동하면  명년에 추수가 있고, 또 젊을 때 행동해 놓으면 늙을 때 추수가 있고, 이래서 자기  행동하는 것은 전부 농사짓는 거라. 또 행동한 대로 하나님이 보응으로 갚아  주시는 것은 그것은 다 추수하는 것이라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행동하는데 그 행동도 농사짓는 것도 두 가지 뿐이라. 인간이 뭐 천 가지  만 가지 생활을 한다 할지라도 그것을 통틀어서 갈라서 말하면 두 가지 생활  뿐이라, 두 가지 행동 뿐이라, 두 가지 농사 뿐이라. 두 가지 농사면 무슨 농사냐?  인간이 제 마음대로 행동하는 그 농사 있고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행동하는 그  농사 있고 농사는 두 가지 농사뿐이다.

 그러면 추수는 어떻게 되느냐? 추수는 인간이 자기 생각대로 농사지은 자기  생각대로 행동한 그 추수, 그 보응은 그거는 다 썩은 것, 영원히 멸망 받을 것.

예를 들면 멸망 받을 게 아니고 멸망 받은 것, 썩어 있는 것 눈에 보이지 안해서  그게 남아있지 실은 썩어 있는 것. 그 썩은 것 그것을 추수하고 또 성령으로 심은  자는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영원한 것을 추수한다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우리는 심으는 사람들이라. 현재에 심어 가지고 미래에 추수를 기다리는  우리들이라. 그 추수는 내 행동에 따라서 내가 벼를 심어 놓으면 그 벼를 자라게  해 가지고 열매가 맺게 해 가지고 가을에 한 되를 심은 것이 한 백 되나 이백  되나 추수가 되도록 그렇게 하나님이 기른 거와 마찬가지로 인간이 행동한 데  따라서 하나님이 그 행동에 대해서 정확하게 보응해 주신다, 정확하게 갚아  주신다 하는 그것을 가리켜서, 추수라 그렇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농사도 두 가지 농사, 추수도 두 가지 추수. 농사 두 가지 농사는 육체로 심으는  자, 성령으로 심으는 자 둘이 있으니 육체로 심으는 자는 제 마음대로, 제  생각대로, 제 주장대로, 제 뜻대로, 제 의견대로 행동하는 것이 육체로 농사짓는  사람이고 성령으로 심는 자 성령으로 농사짓는 자는 하나님이 자기에게  말씀하시는 그대로 순종하는 생활하는 것이라.

 그러면 농사도 두 가지입니다. 제 마음대로 농사짓는 것, 하나님 시키시는 대로  농사짓는 것 두 가지뿐입니다. 뭐 물론 천 가지 만 가지 일을 해도 그걸 딱  조사를 해서 분류하면은 재 마음대로 한 것, 하나님 시키신 대로 한 것 두  가지뿐입니다. 그러면 제 마음대로 한 것은 추수가 어떻게 되며 또 하나님  시키시는 대로 하는 것은 추수가 어떻게 되느냐? 제 마음대로 한 추수는 썩은 것  추수하고 또 하나님 시키시는 대로 한 것은 영생 추수한다. 그러면 추수도 두  가지입니다. 농사도 두 가지요, 추수도 두 가지입니다.

 그래서, 이 추수는. 지금 농사지어 가지고 지금부터 추수하기 시작해 가지고  영원히 추수합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은. 육체로 농사짓는 사람은 오늘 육체로  농사지은 것이 내일 썩어진 걸로 추수되고, 또 금년에 육체로 농사지은 것이  명년에 썩어진 것으로 추수되는 것도 있고, 농사지은 그것이 또 죽은 다음 영원  무궁에 추수가 되는 것도 있고, 그러면 추수도 지금 이 세상에서부터 시작해  가지고 영원 무궁토록 추수하는데 그 추수는 두 가지라.

 영원 무궁토록 추수하기는 하는데 육체로 농사짓는 것도 영원 무궁토록  추수하고 또 성령으로 농사짓는 것도 영원 무궁토록 추수하는데 그 추수는 언제  있는가? 그 추수는 현재로부터 영원까지 계속합니다. 계속하는데 그 추수는 몇  가지 추수가 있는가? 두 가지 추수라. 썩은 추수, 영생하는 추수. 그것은 그러면  영생하는 추수는 좋고 썩은 것 추수는 나쁜데 썩은. 것 추수할라면 육신으로  농사지은 사람은 썩은 것 추수하고 성령으로 농사지은 사람은 영생으로  추수합니다.

 그래 추수해서 육체로 심은 것을 썩은 것을 추수하는데 언제 금년만 추수하고  마는가? 죽을 때까지 추수하고 마는가? 아니요. 죽고 난 다음에 영원 무궁토록  썩은 것을 추수합니다. 영원 무궁토록 썩고 영원무궁토록 죽습니다. 영원  무궁토록 썩고 죽고 합니다. 사람이 뭐 죽으면 그만 다 되는 줄 알아도 아니오.

영원히 죽는다 했어, 영원히. 죽고 죽고 죽고 자꾸 영원히 죽고, 썩고 썩고 영원히  썩어. 영원 무궁토록 죽고 썩는 추수가 계속되고 또 성령으로 심으는 자는  금생에서부터 영생할 것을 추수합니다. 영생할 것을 지금도 영생을 만들고  늙어서도 영생 만들고 또 영원 무궁토록 영생을 받습니다. 이래서 우리는  농사짓는 사람들이라 하는 것을 그것을 우리가 언제든지 잊어버리지 않고 있어야  되겠습니다.

 아무래도 농사는 짓습니다. 자기가 자기 몸 농사가 있습니다. 자기 몸뚱이 농사.

자기 몸뚱이 농사가 있는데 자기 몸뚱이 농사도 두 가지입니다. 역연 자기 몸뚱이  농사도 썩는 농사 영생하는 농사 두 가지입니다. 그러면 자기 몸뚱이는 썩는  농사지은 사람은 썩은 몸뚱이를 자꾸 추수하게 됩니다. 썩은 몸뚱이를 받게  됩니다. 또 성령으로 농사지은 사람은 영생하는 몸을 받게 됩니다. 지금 한  자리에서 같이 예수를 믿고 살아도 한 집에서 같이 살아도 한 사람은 자꾸 썩는  몸뚱이만 추수합니다. 그러면 그 몸뚱이는 날마다 썩을 것만 자꾸 추수합니다.

썩을 것만 추수한다 말은 그 몸뚱이가 영생할 몸으로 이와 같이 신령할 몸으로  변화되는 그런 몸을 받지 못하고 자꾸 죽고 멸망받을 그런 몸뚱이만 자꾸  마련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어떤 사람은 영생하는 몸뚱이로 자꾸 이렇게,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안해 그렇지 자꾸 커가고 어떤 사람은 멸망 할 몸뚱이로 자꾸 이래  커나가게 됩니다.

 이래서 몸도 그러하고 또 무슨 명예 농사가 있습니다. 이름. 명예 농사를 짓는데  명예 농사도 썩는 농사 영생하는 농사가 있습니다. 썩는 추수를 받는 명예 농사도  있고 영원히 있는 영생하는 추수를 거둘 그건 농사짓는 것도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명예에 대해서도 명예 농사를 짓습니다. 명예에 대해서 자기가  행동합니다. 명예에 대해서 행동하는 그 행동의 추수가 두 가지 명예로 나옵니다.

두 가지 명예. 하나는 썩은 명예 하나는 영생하는 예 그 두 가지 명예로 나오는데  그러면 명예 농사짓는 것도 내나 그것입니다. 육체로 명예 농사를 지으면은  그거는 썩은 추수를 하고 성령으로 명예 농사를 지으면 영생하는 추수를 하게  됩니다.

 명예도 그렇게 권세도 그러합니다. 권세도 사람들이 저절로 되는 게 아니고 그  권세도 농사를 짓습니다. 권세 농사짓는데 이제 그 권세 농사를 지어 가지고  추수할 때에 썩은 추수도 하고 영생하는 추수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썩은 그  명예를, 명예를 자꾸 마련하기는 마련했는데 그 명예가 전부 썩은 명예입니다.

썩은 명예고 영원히 멸망하는 그 명예고 어떤 명예는 영생하는 명예, 영원토록  영광스럽고 존귀한 그런 명예를 자꾸 추수하게 됩니다.

 우리는 농사짓는 사람이라 하는 것 이것을 여게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명예  농사도 지어 가지고 그 명예가 수입이 많아서 명예가 커단해지지 명예 농사도  농사를 지어 가지고 그 농사지은 데 따라서 추수가 됩니다. 명예 농사도, 사람들이  명예 농사, 지위 농사, 또 권세 농사, 또 지식 농사, 물질 농사, 또 기술 농사, 뭐  온갖 인간의 생활은 다 농사짓는 것입니다. 농사짓는 것이 아닌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농사짓는 것이 아닌 것이 하나도 없다 그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인간의  생활은 보응 없는 생활이 하나도 없다 그말입니다. 보응 없는 생활이 하나도  없다. 하나님이 뒤에 갚아 주시는 갚음이 없는 행동은 하나도 없다 그말입니다.

우리는 농사짓는 사람이라 하는 것을 기억해야 되겠습니다.

 자기가 생각할 때에 '나는 내 농사짓는 것이 이것이 정말로 영원히 없어지지  아니할 영생 추수를 할 것이가? 이 영생 추수할 거는 하나도 없고 전부 썩은  추수뿐이가?' 이것을 자기가 판단해 가지고 농사를 바로 지어야 되지 뒤에 가서  암만 후회해야 소용 있습니까? 나중에 가서 뭐 후회해야, 노아 홍수 때에 홍수에  빠져 죽으니까 그 사람들이 후회야 얼마나 했고 회개야 얼마나 했겠습니까?  '하나님이여 살려 주옵소서. 어짜든지 요번에 살려 주면,' 그뭐 오만 소리 다 하고  했지마는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자기가 농사짓는 '나는 무슨 농사 짓노?' 요것을 살펴보는 사람이 지혜  있는 사람입니다. '내가 어떻게 해야 정권을 잡을까? 어떻게 해야 내가 패권을  잡을까? 어떻게 해야 내가 경제권을 잡을까? 어떻게 해야 내가 모든 이 과학에  대해서 권위를 잡을까? 이 세상의 문학에 대해서 권위를 잡을까?'  뭐 사람들은 모두 다 농사를 짓고 있는 사람입니다. 전부 오늘보다 내일  좋을라고 내일보다 모레 좋을라고 이제 모두 다 농사짓는 일을 다 하고 있다.

성경이 그것을 말합니다. 농사짓는 일을 다 하고 있기 때문에 자기가 농사지은  대로 반드시 추수가 있다. 추수는 하나님이 그렇게 추수가 되도록 해서 추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농사짓는 것도 수만은 사람이 수천만의 종류 농사를 짓지마는 그것을  크게 나누면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육체로 농사짓는 사람 있고 육체의  생각대로 농사짓는 사람이 있고 하나는 성령의 생각대로 농사짓는 사람이 있다.

인간 생활을 둘로 나눌 수 있나니 하나는 자기의 육체대로 사는 사람 있고  성령의 인도대로 사는 사람이 있고 두 가지뿐이다 육체의 생각으로 사는 사람은  다 썩어진 그 추수를 가지게 되고 또 성령으로 사는 사람은 영생하는 추수를  가지게 된다.

 그래서, 자기는 지금 무슨 농사를 짓고 있으며 이 농사에 추수가 있다. 그 추수는  자기가 뭘 해 가지고 이 자연법으로 보응 오는 그것도 추수고 또 그래 하는데  따라서 하나님이 정확히 보응시켜 주는 그것도 마지막 추수입니다. 그러면  자연으로 보응받는 것 있고 하나님이 보응시키는 것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을  가리켜서 추수라 말합니다.

 그래서 '나는 무슨 농사를 지으며 이 농사지은 이 농사의 추수는 무엇인가? 나는  이렇게 농사를 짓는데 이제 추수할 그때 영생할 추수는 얼마며 또 썩어진 것  추수는 얼마인가?' 이 추수를 계산 따지지 안하고 농사짓기만 날뛰는 그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농사짓는 것보다 '나는 무슨 농사짓느냐?' 그걸  따지는 것이 더 중요하고 자기가 무슨 농사를 짓느냐 하는 그것을 따지는 것도  좋지마는 '나는 이라면 추수가 내가 무슨 추수하겠느냐? 썩은 추수하겠느냐  영생하는 추수하겠느냐?' 그것을 따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왜 이렇게 영생하는 추수했으면 좋을 터인데 다  같이 밥먹고 세상에서 살면서 영생하는 추수를 할 수 있는 농사를 지었으면 좋을  터인데 왜 이렇게 썩은 추수를 하도록 이 썩은 농사를 짓게 됐는가?' 그 원인을  생각하는 사람이 더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 원인이 무엇입니까? 썩은 추수를  하도록 썩은 농사를 짓게 된 그 원인이 뭐입니까? 그 원인이 뭐이요? 자,  집사님들 한번 대답해 봐요. 그 원인이 뭐 입니까? 그 원인이 뭐이지요? 저 온 지  얼마 됐어? 여기 OO교회? 한번 대답해 봐요. 자기. 예. 그거는 인제 중간  원인인데 왜 하나님 생각대로 안 하고 자기 생각대로 했을까? 자기 생각대로 한  원인이 뭐인데? 마귀. 녜. 마귀와 하나님, 둘이 원인자라고 내치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왜 다 같이 밥먹고 사는데 자연 보응이나 하나님의 보응에서 영원히  썩은 것 그것을 추수하는 그런 농사를 할 이유가 뭐 있는가? 다 영생하는 추수를  할 수 있는 농사를 짓지. 그것이 썩을 추수를 하도록 그 농사를 제딴에는 짓는 게  좋다 싶어서 썩을 추수할 농사를 짓게 된 원인은 자기 속에 귀신이 들어와  가지고 주장을 해서 그렇습니다. 뭐 종교가나 도덕가나 목사나 할 것 없이 어떤  사람이라도 귀신이 그 속에 들어 있으면, 그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켜 가지고 어찌  됐든지 영생할 농사는 하기 얻고 썩은 농사짓는 그것이 훨씬 수입이 낫고 좋겠다  해 가지고 그 농사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영생하는 농사를 지으려고 하면, '영생하는 농사가 좋으니까 영생하는  농사를 지어야 되겠다. 영생 추수가 좋으니까 영생 추수를 하도록 영생하는  농사를 지어야 되겠다.' 거게다가 힘을 써야 됩니까? 거해서 막 조심하고  주의하고 힘만 쓰면 되겠습니까? 거기서 만 힘쓰면 되겠소? OOO조사님.

원인부터 따져야 돼? 원인이 뭐인데? (하나님과 마귀) 원인을 따져야 돼, 원인 안  따지면 소용이 없어.

 그러기에 우리가 제일 전심 전력 기울여 가지고 힘쓸 일이 뭐인가? 내 생사화복,  흥망성쇠는 하나님이 내 안에 계셔서 내 원인이 되느냐? 마귀가 내 안에 있어 내  원인이 되느냐? 이것이 제일 중요하기 때문에 이 원인을 찾는 데에 전력을  기울이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이것부터 해야 됩니다.

 우리는, 너는, '네가 그렇게 열심히 하고, 절제 있게 하고, 조심 있게 하고, 주의  있게 하고, 또 어떻게 그렇게 비가 오든지 눈이 오든지 춥든지 덥든지 변하지  안하고 그렇게 계속을 잘했느냐?' 계속도 잘했고, 열심도 아주 아름답고, 또  조심도 굉장히 하고, 주의도 하고, 연구도 하고, 또 간절도 하고, 뭐 아주 모든 거  다 잘했습니다. 모든 거 잘했으면 그런 거 잘하면 거기에 행복이 열립니까, 사망이  열립니까? 거게 행복이나 사망이나 열릴 수 있습니까? 그렇게 조심해서 잘 하면  그 행동에 행복이든지 사망이든지 거게 맺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습니다.

맺을 수 없어. 사망도 안 맺고 또 생명도 안 맺습니다. 원인이 마귀냐 하나님이냐  거게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이냐 마귀냐? 그거 없는 행동은 있을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그거는 아무 소용도 없는 것입니다.

 이래서, 자기가 생명과 평강과 성공과, 사망과 실패를 안 할라고 뽀득뽀득 애를  쓰고, 정신을 차리고, 주의를 하고, 연구를 하고, 힘을 쓰고, 계속 인내를 가지고  하는 그 모든 것보다 제일 먼저 우리가 힘쓸 것이 뭐입니까? 제일 먼저 우리가  힘써 할 일이 무엇입니까? 제일 먼저 힘써 할 일이 뭐이요? 제일 먼저 힘쓸 게  뭐입니까? OOO 목사님? 원인을 찾는데 힘을 써, 원인이 몇 가지나 되는데?  원인이 둘이라. 원인이 둘이면 무엇 무엇 둘인데? 하나님과 마귀, 원인이 둘이라  말이지.

 이러니까 우리가 첫째로 '내가 이 공부를 해야 되나, 무슨 과학을 해야 되나,  무슨 과에 가야 되나, 무슨 사업을 시작해야 되나?' 그것은 그 다음의 것입니다.

원인이 안 돼요, 그거는. 종자가 안 돼요. 멸망의 종자도 아니고 성공의 종자도  아닙니다. 종자부터 먼저 우리는 선별하는 데에 전력을 기울여야 됩니다. 이래서  모든 흥망성쇠, 생사화복의 원인은 하나님과 마귀 둘뿐입니다.

 이러니까 '나는 지금 내가 움직이고 있는 원인이 뭐이냐? 내가 지금 경영하고  있는 원인이 뭐이냐? 내가 생각하는 원인이 뭐이냐? 내가 비판하는 원인이  뭐이냐? 내가 원하는 원인이 뭐이냐? 욕심내는 원인이 뭐이냐? 내가 좋아하는  모든 희로애락의 원인이 뭐이냐?' 그 원인을 찾아야 됩니다. 원인을 찾아서  원인부터 바로 잡아 놓고 그 다음에 무엇을 해야 되어지지 원인을 망할 원인을  잡아 놓고서 열심히 하면은 그 열심은 전부 망하는 것을 열심히 하는 것이기  때문에 더 많이 망하고 급하게 망하고 맙니다. 이러기 때문에 오전에는 모든 것  보다 원인은 하나님과 마귀에게 매여 있으니까 그 원인을 찾는 데에 먼저 전력을  기울여서 원인을 먼저 바로 찾자 그것을 말씀했습니다.

 이래서 오전에는, 우리 속에 마귀를 빼버려 버리자. 자기 속에 마귀 그놈이  있으면, 마귀가 있으면은, 마귀가 있을 때에 제가 제일, '제일 이게 복되다.' 마귀가  속에 있을 때에 자기 생각으로서 제일 복되다고 택한 그것은 어떤 것입니까?  복되다고 택한 그거는 뭐입니까? 예? 한번 말해 봐요 크게. 마귀가 자기 속에  있을 때에 제일 복되다고 택한 그것은 제일 망할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또  마귀가 속에 들어 있을 때에 '이거는 하면 안된다. 이거는 하면 영 망한다. 이거  제일 하면 안 된다.' 제일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그것이 하면은 제일 행복된  것입니다. 이 마귀는 정꺼꾸로 해버렸다 말이오. 요걸 우리가 알아야 돼요.

이러니까 마귀가 자기 속에 들어 있으면은 이거는 뭐 생명과 평강을 마련할  도리가 없어, 이거는 정 꺼꾸로 하기 때문에.

 이러니까 지혜 있는 사람은 모든 행동보다 앞서서 '내 속에 마귀가 나를  주관하고 있느냐? 하나님이 나를 주관하고 있느냐' 이것을 찾아 가지고 마귀가  주관하고 있으면 어짜든지 마귀 이놈을 쫓아내야 됩니다. 하나님이 나를  주관하도록 하나님을 모시도록 해야 되지 마귀 그놈이 그만 주관하면 망합니다.

그러니까 마귀가 주관하는 마귀 주관자들은 마귀가 주관하는, 마귀 주관을 받는,  마귀를 그 속에 왕으로 모시고 있는 자들은 저거끼리 만나면 의논이 맞습니다.

의논이 맞아서 아주 재미가 있소. 아주 의논이 맞고 재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거게 하나님을 모신 사람이 하나 들어가 놓으면은 자, 뭐이 나옵니까? 하나님을  모신 사람이 하나 들어가 놓으면은 화평이 나옵니까 불화가 나옵니까? 불화가  나옵니다. 이래서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알지  말아라. 불화를 주러 왔다.' 말했어.

 마귀를 모셔 가지고 전부 멸망 속에 빠져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모신  사람이 오니까 마귀로써 한 덩어리가 똘똘 돼 가지고 마귀 뭉텅이로 마귀  가정으로 아주 밥맛도 있고, 죽맛도 있고, 돈맛도 있고, 노는 맛도 있고 재미가  졸졸 흐릅니다. '헤, 제까짓 것들은 밥도 못 먹는데 우리는 고량진미 먹는다.

저것들은 한 달에 수입이 얼마인데 우리는 수입이 얼마된다.' 영 재미있습니다.

 그런데 죽은 자 귀신이 들어가 있는 죽은 자가 거기 가면은 '아이구, 너거는 참  행복되다, 부럽다. 나도 그래 됐으면 좋겠다.' 이래 하는데 하나님이 속에 내주하는  분이 떡 들어가 놓으면 어찌됩니까? 거기 가면은 화평이 납니까? 분쟁이 납니까?  OOO권사님? 분쟁이 납니다. 그래서 '내가 세상에 온 것은 분쟁을 주러 왔다.

분쟁을 주러 왔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는 사람을 접할 때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접하면 첫째 뭘  살펴보느냐? '너거 속에는 귀신이 너거를 주관하고 있느냐, 하나님이 너거를  주관하고 있느냐?' 그것을 심사를 해 가지고 귀신이 주관해 가지고 있으면은  하나님의 좌우의 날선 검으로 가지고, 좌우에 날선 검은 날카롭습니다. 좌우에  날선 검이 뭐입니까? 좌우에 날선 검이 뭐이요? 금으로 만든 칼이요, 뭐 뭘로  만든 칼이요? 하나님의 말씀의 칼이라. 칼로 가지고 찔러대 버립니다, 그만.

 귀신을 왕으로 모셔 가지고 있으면은 그 속에 있는 귀신을 칼로 찌르는데 이  비수검으로 찔러 가지고는 그놈 꼼짝도 안 합니다. 하나님 의 말씀의 칼로 가지고  찔러 버리면 그 놈이 찍힙니다. 여러번 찔러대면 그놈이 막 난도질이 돼지면  그놈이 막 도망을 쳐 버립니다. 도망을 쳐. 도망을 치고 나면은 그 사람 속에  그놈이 역사를 못 합니다. 이라다가 또 그 사람이 딴데 저 피해서 가면은 또  그놈이 들어와 가지고 주장을 합니다.

 이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 사랑과 달라서 그 속에 마귀가 주관하느냐,  하나님이 주관하느냐? 그것을 살펴 가지고 하나님이 주관하도록 하고 마귀가  주관하지 못하도록 그렇게 만드는 것이 사랑이요.

 또 둘째로 살필 것은 뭐이냐? 내나 한가지인데 둘째로 살필 것은, '네가 보자.

썩는 추수를 위해서 농사를 짓고 있느냐 영생하는 추수를 위해서 농사를 짓고  있느냐? 무슨 농사짓고 있느냐?' 그것부터 찾아야 됩니다. 그것부터 살펴야 돼요.

'나는 지금 하바드 대학에,' 또 뭐 뭐라더라? '옥스포드 대학에 어짜고' 이래  쌓아도 이제 그걸 떡 보고 '너는 네가 무슨 농사짓고 있노? 썩는 농사짓고 있나  영생하는 농사짓고 있나?' 그것을 살펴봐서 만일 썩는 농사를 지으면 내가 그걸  좌우에 날선 검으로 막 쪼아서 막 찌릅니다.

 되게 찌르면 어찌됩니까? 예수님은 뭣 하다가 죽었습니까? 예수님은 뭣  하시다가 죽으셨지요? 예수님은 뭣 하다가 죽으셨는지, 누가 좀 대답해 볼까?  대답이 좀 뭐 어려운데? 뭣 하다가 죽었어? 한번 대답해 봐 누가? 이 중간반  반사들은 어디로 갔는지 하나도 안 보인다. 중간반 반사 손 한번 들어봐,  누구든지. 어데 가 있어? 아, 사층에 가있구나. 녜. 예수님은 썩는 농사짓는다고  주님이 성신의 검으로 찌르다가, 찌르다가 나중에 칼이 다 닳아서 그만, 칼이 다  닳아서 이제 마지막에 십자가에 못박히고 말았어. 그 밉다고 말이오. 그 찌른다고  밉다고 그들이 십자가에 못박았어.

 우리가 세상에서 미움을 뭣 하다가 당합니까? 뭐 불의한 재물을 취하다가, 남을  해치다가 미움 당하면 못씁니다. 이제 썩는 농사짓는다고, 영생하는 농사 지을라고  함으로써 미움당하고, 마귀를 왕으로 모시고 있는 그것을 성령을 모시라고 한다고  그래 미움당하고, 그래 가지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으니까 우리도  이런 것 하다가 미움 당하고 고통당하는 것이 그것이 주님의 십자가를 내가 지는  것이요 주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처음 만날 때에 '보자 이 속에 무슨 신이 주관해 있는가?' 그것  살펴보고, 둘째로는 '너거가 무슨 농사를 짓고 있노?' 하는 것 그것 살펴보고,  그래서 영생 추수하는 농사짓도록 하는 것과 하나님이 그 사람을 주관하도록  하는 것과 요 두 가지만 해 주면 이것이 사랑입니다. 알겠습니까? 이게 사랑이요,  이게 사랑 이게 사랑이라. '그들은 마음이 강팍해서 듣지 않는다. 듣든지 말든지  저희 가운데 선지자가 있는 것을 알려주어라. 듣든지 안듣든지 너는 증거해라,  듣든지 안듣든지.'  이래서, 우리는 요 진리를 배워 가지고 우리 자신도 항상 제일 살필 게  뭐입니까? 우리 자신을 제일 살필 것이 무엇이 제일 살필 것입니까? 살필 것  중에 제일 살필 것이 뭣이 제일 살펴야 할 것입니까? OOO조사? 원인이라 하면  좀 뭣을 알아야지, 알게 말해야지. 다른 사람 알게 말하는 게 웅변이라. 웅변은 막  대빌대빌 씨부리는 게 웅변이 아니고 남 알아들을 수 있게 말하는 게 웅변이라.

제일 힘쓸 게 뭐이요? 녜. 하나님이 주관하고 있는지 마귀가 주관하고 있는지  그것을 살펴야 됩니다.

 누구든지 그래요. 백 목사님이 여러분들 집에 떡 방문하러 가면은 백 목사는  살피지 안해도 됩니까? '백 목사님이 왔는데 마귀를 모시고 왔는가 성령을 모시고  왔는가 보자.' 이래 살펴봐야 돼. 만일 마귀를 모시고 왔으면은 요한이서에  말하기를 '인사도 말고 집에 영접해 들이지도 말라' 했어. 그것을 제일 우리가  첫째로 살피고,  둘째로 살필 것은 뭘 살필 것입니까? 둘째로 살필 것은 뭐입니까? 저 O조사님?  뭐이요? 둘째로 살필 것은 뭐입니까? 어? 둘째로 살필 것이 뭐이라? 처음에는  무슨 신이 주관하는가 그거 살펴야 되겠고 사람을 만나면. 둘째로는? O목사님?  예, 농사짓는 걸 살펴야 돼 농사짓는 것. '이거 무슨 농사짓고 있노?' 농사짓는 것.

농사짓는 것을 살펴서 '영생하는 농사를 짓나 썩는 추수할 농사를 짓나?' 그것을  살펴서 그것만 바로 잡아 주면 됩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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