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은 시찰로 족하다

 

1988. 10. 20. 새벽 (목)

 

본문:누가복음 15장 1절∼10절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원망하여 가로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 비유로 이르시되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도록 찾아 다니지 아니하느냐 또 찾은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았노라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어느 여자가 열 드라크마가 있는데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도록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겠느냐 또 찾은즉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잃은 드라크마를 찾았노라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

 

이와 같은 이 역사적 사실이 이렇게 있었고 또 이것을 우리에게 기록해 주신 것은 그저 일시 임시 이런 일이 돌발된 것으로 그렇게 우리가 생각하면 그러한 그 형편과 사건이 있을 때에는 이렇게 하라고 하나님이 가르치셨다 이렇게 생각하게 되고, 그런 것이 아니고 이것이 벌써 영원 전 하나님이 계획하실 때에, 예정이라 말은 하나님이 설계하신 것, 계획하신 것을 가리켜 말씀하시는데 영원 전 예정하시고 그 예정대로 모든 것을 창조하셔서 여게 관련된 존재들이 사람도 존재했고 거게 또 모든 운동들도 있었는데 이런 모든 존재도 계획없이 그것이 사람들이나 뭐이나 그 구비한 모든 조건들이 우연히 그렇게 존재한 것 아니고 존재하게 된 것도 하나님이 이 구원을 위해서 계획적으로 계획하신 계획한 대로 그대로 모든 것이 존재하게 됐고 또 그런 운동들이 일어나는 것도 다 하나님이 이 구원을 위해서 영원 전 예정해 놓으신 그 예정 그대로 모든 순서들이 이루어진 것이다 하는 것을 우리들이 믿는 것이 그것이 성경대로 믿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런 일을 그저 그런 사건만 생각하고 그런 형편만 생각해서 그럴 때는 우리가 그렇게 해야 된다 그렇게만 생각할 것이 아니고 이것은 우리 구원을 위해서 벌써 영원 전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모든 일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예정하신, 설계하신, 계획하신 그 계획 속에 다 들어서 계획대로 된 것이고 또 하나님이 계획대로 창조하셔서 이 모든 존재들이 있어졌고 또 하나님이 예정하신 대로 창조하신 것을 하나님이 또 섭리하실 때 그 모든 것을 다 활용해 가지고서 이와같이 되어진 이것을 우리가 믿는 믿음이 중요합니다.

잘못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계시해 주시는 것은 처음에 주신 것은 일반 계시라 자연 계시라 하는데 계시라 말은 하나님이 그 안에 당신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열어 보여 주신 것을, 열어 보여 주신 것을 가리켜서 계시라 그랍니다. 계시라 말은 한문 글자로 우리 나라에서는 썼는데 열 계자 보일 시자, 열어 보이신다.

그러면 열어 보이신다는 것은 그것을 없는 가운데서 하나씩 둘씩 조성해 가지고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이 아니고 다 모든 것이 온전히 되어 있는 그것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시는 것이 순서대로 차차 차차 보여 줘 그렇지 보여 주실 때 그때에 생겨지고 있어진 것은 아니다 하는 그런 뜻에서 계시한 것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며칠 전에 내가 팜프렛트를 누가 갖다 주는데 여기 ○○대학에서 지금 무슨, 무슨 회라더라? 누가 그거 봤어요? 누가 나를 줬어? 내게 팜프렛트를 누가 나를 줬지? 거게서 무슨 강의인지 뭐 집회인지 무슨 상담회인지 무슨 뭐 웅변회인지 뭐 내가 그거 그 이름은 내가 잊어버렸습니다. 이랬는데 거게 제목을 보니까 이 기독교는 창조냐 진화냐 하는 그런 것을 말을 해 놨읍디다. 거게 대해서 지금 기독교도 진화의 종교라, 또 창조의 종교라 이래 둘에 대해서 어느 것이 맞는가 하는 그런 논단하는 거게 대해서 아마 강의가 있는 것 같습디다. 그래서 기독교는 이 진화인지그거 누가 나를 갖다 줬지요, 그 팜프렛트를?모든 종교는 다 그것은 진화입니다.

진화라 말은 다 그것이 한목 있었던 것이 아니고 하나에서 또 연구하니까 또 하나가 생겨서 또 둘이 되고 둘에서 또 하나 연구하니까 셋이 됐고 이렇게 자꾸 앞으로 나아갈 진자 변화할 화자, 화할 화자, 앞으로 점점 자꾸 나아가면서 생겨지는 그것을 가리켜서 진화라 그렇게 말을 하고그 진화와 창조라 해서는 말이 안 될 것 같은데, 진화냐 계시냐 그렇게 말이 됐어야 될 건데. 그거 내가 퍼뜩 내가 좀 한번 보기는 봤는데, 퍼뜩 이래 보면서 내용은 읽어보지는 안하고 그랬었습니다.

이랬는데, 그래 그 모든 이종교들은 전부 다 진화입니다. 또 이 모든 과학도 진화입니다. 또 모든 역사들도 다 진화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진화가 아니고 기독교는 계시 종교입니다. 안에 다 되어 있는 것을 하나씩 둘씩 내 보이기를 순서적으로 내 보이는 것이지 그때 내 보일 때 그때 생겨지는 것이 아니고 이미 영원 전 예정된 것을 하나님이 또 예정대로 창조하시고 예정대로 창조하신 것을 당신이 예정대로 또 섭리를 하셔 가지고서 그런 것이 하나씩 전개돼서 우리 구원을 이루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 기독교는 모두가 다 계시의 도요, 또 그 계시하기 전에 영원 전 단번에 예정하신 것이라, 하나님이 계획하신 그 예정하신 것도 여러 차례로 한 것이 아니고 단번에 영원을 예정하셨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영원한 시간이 있고 모든 역사들이 전개되지마는서도 그것이 단번 예정이요 또 창조는 일차 창조는 단번 창조인데 단번 창조한 그것을 한꺼번에 다 창조하셨는데 창조한 그것을 다시 재창조하시는 일은 자꾸 이렇게 하십니다. 이걸 만들어 가지고 또 이 형을 사람을 만들었다가 또 사람 만들어진 그 재료와 요소가 또 짐승이 됐다가 자꾸 이렇게 그것은 다시 그 재창조 이래 하는 그런 것도, 그러면 그런 것은 하나님이 재창조할 때는 그것은 어떤가? 그것도 하나님이 영원 전 단번 예정대로 그대로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정은 단번 예정이라, 또 창조도 단번 창조라, 또 창조한 그것을 다시 그것을 파괴시켜 가지고서 또 이걸 저걸로 만들고 저걸 이걸로 만들고 그렇게 재창조하시는 일은 그것은 순서를 따라서 그렇게 하나님이 창조해 나가신다. 그러면 창조해 나가시면 그거는 뭣 때문에? 그것도 단번 예정하신 그대로 해 나가신다.

그러기에 우리들이 살아나갈 때에 모든 일들이 순서적으로 하나 둘 이렇게 전개해 나갑니다. 하나 둘 이렇게 순서적으로 전개해 나갈 때에 그 전개해 나가는 것이 혹 생각하기를 가다가 형편에 따라서 이런 형편이면 이렇게 하고 저런 형편이면 저렇게 하고 그 모든 일들이 다 진행돼 나감에 따라서 거게서 모든 그 존재하는 것도, 진행돼 나감에 따라서 존재하는 것도 그렇게 새로 다, 창조라 말은 없는 가운데서 생겨진 것을 가리켜 창조라 말합니다. 창조라는 것은 없는 가운데서 있게 된 것을 가리켜서 창조라 말하는데 없는 가운데 있게 된 그것이 안 믿는 모든 사람들이 말하는 것은 진화를 말합니다. 없는 가운데 있게 된 것이 이것이 있고 보니까 그 다음에 또 필연적으로 그것이 있게 됐고 그 둘이 있고 보니까 그 다음이 또 됐고 이러니까 남녀가 있고 보니까 그다음에 또 자녀가 하나 생겨지고 자꾸 이런 것 모양으로 이렇게 하나가 있고 보니 거게서 또 부득이 둘이 있어야 되겠고 둘이 있고 보니까 또 셋이 있게 되고 자꾸 이렇게 된 것을 진화론이라 이렇게 말해.

진화론에 들어가면 뭐 별별 게 많이 있지마는서도 그런 것을 다 알 필요가 없습니다. 알 필요가 없고 그거 자꾸 그래 가지고 사람들의 머리를 어지럽게 해 가지고서 복잡하게 해서 구원을 바로 이루지 못하도록 그렇게 만드는데 그런 것을 성경에 말하기를 ‘사탄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들에게 다른 짐을 지울 것이 없노라’ 그 사탄의 깊은 것이 뭐인가? 사탄의 깊은 것은 사탄의 것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그 지식들, 세상에 있는 모든 지식들 그것들이 세상 지식이 사탄의 것들인데, 세상 지식이 사탄의 것들이요 또 그걸 가지고서 이렇게 사람들에게 나타내서 알려 주는 그것이 다 사탄의 것들인데 그것 중에 깊은 것은 어떤 것이 깊은 것인가? 깊은 것은 요새 말로 말하면은 전문 지식, 거게만 대해서만 지식해 주는 것은 그것은 아주 깊이가 깊고 길고 그렇게 그 많다 말이오. 그러면 그거는 뭐인고 하니 자꾸 진화가 많이 된 거라 말이오.

진화가 처음에 첫날 진화된 거는 그만침 됐고 세월이 열흘 지나가니까 그만치 진화가 됐고 또 한 달 지나니까 그만치 진화가 됐고 자꾸 이렇게 진화가 되니까 하나가 둘 되고 둘이 너이 되고 자꾸 그것이 화해지고 화해져 자꾸 많아지는 것을 가리켜서 진화라 그랍니다.

그래서, 기독교도 진화의 종교다 해 가지고 봐라 기독교도 제일 처음에는 마가복음이 제일 먼저 기록됐다, 마가복음이 기록되고 난 다음에는 마가복음보다도 큰 거 그다음에 마태복음 또 기록되고 그다음에 더 세밀하게 누가복음이 기록되고 그다음에는 이제 또 요한복음이 기록됐고 이래 가지고 자꾸 기록하고 보니까 또 미진해 또 기록하고 기록해서 자꾸 이래 가지고서 연구해서 연구해서 이래 했다 하는 그렇게 진화론자들이 기독교를 고등비평가들이 논평을 합니다. 고등비평가라 하면은 지식을 가지고서 기독교를 비판하는 그런 아주 높은 그 반대자들을 말해서 고등비평가들이라 이렇게 말을 하는데 그러나 기독교는 계시의 도입니다.

하나님께서, 계시의 도는 우리에게 보여 준 것이 그 순서적으로 그렇게 보여 주셨지 그 존재한 것이 그렇게 순서적으로 된 것이 아니다. 그거는 하나님께서 예정도 영원 전 당신 혼자만 계셔 가지고서 당신이 하신 일이 뭐이냐? 당신 혼자 계셔 가지고서 첫째 하신 일이 뭐인가? 첫째 하신 일이 뭐입니까? 첫째 하신 일이 뭐이요? 첫째로 하신 일이 뭐이지요? 그 순서가? 하나님 혼자 스스로 계셨다 말은 혼자만 계신다는 것인데 혼자 계시고 그다음에 하신 일이 뭐입니까? 하나님이 제일 첫째로 하신 일이 뭐입니까? 녜, 하나님이 목적을 정하신 것이 첫째로 하신 일입니다. 그 목적 그게 뭐인가? 목적 그게 곧 우리를 택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신 선택입니다.

그것이 이제 목적이 첫째 하신 일이고 그 목적도 하나님이 목적을 단번에 가지신 그 목적이 다시 둘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하나뿐이오. 목적 하나만 가지시고 이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둘째로 하신 일이 뭐이냐? 둘째로 하신 일이 뭐이냐? 둘째로 하신 일은 그 목적을 위해서 예정하신 것이 그것이 둘째로 하신 일입니다. 그 셋째로 하신 일이 뭐인가? 창조입니다. 그 넷째로 하신 일이 뭐인가? 그 모든 것을 보존하시고 섭리하십니다.

이렇게 그 순서로 나가는데 이 순서도 그 순서가 아주 뭐 각각 다르고 이 사람은 이렇게 말하고 저 사람은 저렇게 말해서 백 명이면 백 명이 말한 그것이 아무것이는 이렇게 말했다 저렇게 말했다 하는 그것이 백 명이 말한 것을 가리켜서 백 명의 신학이라, 백 명의 신학이라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신학은, 신학이라 하는 거 그 창조에 대해서도 이렇게 말하고 또 인간에 대해서도 이렇게 말하고 또 성경에 대해서도 이렇게 말하고 이래 보고 저래 보고 하는 것이 모든 사람들이 아무것이는 어떻게 봤느냐? 아무것이는 이렇게 봤고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증거를 했다. 또 아무것이는 어떻게 했느냐? 그것을 가리켜서 요새 신학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과 성경에 대해서 이리저리 봤다 하는 그런 것을 가리켜서 신학이라 이렇게 말하는데 신학은 숫자가 많습니다. 많은데 신학 그것도 하나님이 하신 일도 있지마는서도 또 마귀가 한 일도 많습니다. 하나님이 하는 일만 있다고, 어떤 사람들은 보면은 예수를 잘 믿을라면 성경학교를 가야 된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그보다도 더 잘 믿을라면 신학을 가야 된다 이래서 구원 얻기 위해서 성경학교 가고 또 신학교 가고 이래서 그래 모두 생각하기를 보통 예사로 보통 일반으로 믿는 사람보다 성경학교를 나와 가지고 믿는 사람은 그보다 훨씬 모든 질적이나 또 실력적으로 위에 있다, 또 성경학교 나온 사람보다는 또 신학 나온 사람이 또 위에 있다, 또 신학을 나온 데에도 그 사람이 몇 사람의 신학을 아느냐? 한 사람의 신학을 아는 것보다도 열 사람의 신학을 아는 사람은 십 배나 크고 또 백 사람의 신학을 아는 사람은 백 배나 크다 이렇게 관념을 가지고서 이렇게 지식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구원을 잘 이루고 제일 잘 이룬 최고의 사람이라고 하면은 신학을 많이 한 사람이라, 신학을 많이 한 사람이라 그말은 많은 사람의 신학을 읽고 배우고 연구한 그 사람이라.

이래서, 목회는, 목회하는 것은 신학을 많이 한 사람들이라야 고급 목회를 할 수가 있고 아주 좋은 목회를 할 수가 있고 정확한 목회를 할 수가 있다 그렇게들 관념을 가지고 것이 오늘 한국 교회와 세계 교회 전체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것의 정반대입니다.

이러니까 제가 말하는 것은 정반대요. 사람이 예수를 잘 믿을라고 신학 그 성경학교 가는 그 성경학교 가는 사람이 제일 잘 믿는 게 아니라 제일 잘 믿는 사람은 구원을 잘 이루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고 하니 성경 말씀을 자기가 깨달은 대로 실행하는 사람이 예수를 잘 믿는 사람이라 저는 또 그렇게 생각을 가지고, 또 성경은 어데 가야 제일 잘 배우느냐? 성경을 잘 배우는데 성경학교 들어가고 물론 신학교 들어가고 이와같이 가지마는서도 성경을 배우는 데에 제일 틀림없이 잘 배우는 그런 정확하게 배우는 그 길은 어떤 길이 성경을 정확하게 배우는 길이냐? 정확하게 배우는 길을 여러분들은 어떤 길이라고 생각합니까? 성경학교 가는 것이요 그보다 높은 신학교를 가는 것이요? 뭐이지? 학습문답 했어? 뭐라고 했어, 학습문답의 답에? 성경을 제일 바로 알고 연구하는 데는 어떠한 방법이 제일 좋다고 했어요? 아는 대로 실행하는 그 방법이 제일 좋은 방법이라. 그거 여기 이제 학습 문답할 때 그런 것 말하니까 그거는 작은 줄 알아도 그 신학의 최고의 대가리 전부 똘똘 다 갖다 뭉쳐도 그 말씀 안에 다 발에 밟히고 그 말씀 밑에 들어갔지 그 이기지 못합니다.

이걸 다 도를 모르기 때문에 성경학교만 가면 제일인 줄 알고 성경학교 간 사람은 제가 우쭐해 가지고 내가 성경학교 가니까 성경학교 안 다닌 이까짓 것들이야 다 내가 거석하지 이렇게 생각하고 또 신학교 간 사람은, 신학 간 사람은 또 더 그렇게 생각을 하고, 또 신학을 한 사람 신학 아는 것보다도 한 사람 신학은 뭐 그거는 한국 말 아는 사람은 한국 말로 다 기록돼 있는 신학 서적만 볼 수가 있지 그거 뭐 암만 해 봤자 영어로 한 신학 서적은 못 본다. 또 영어 아는 사람은 영어로 한 신학 서적만 보지마는서도 그 사람은 독일어나 그런 거로 말하는 거는 또 못 본다. 이러니까 어학을 많이 공부해 가지고서 여러 나라의 그 어학을 공부한 그 사람이라야 여러 나라의 사람의 그 신학자들의 신학을 알게 되기 때문에 어학 제일 많이 한 사람이 그 사람이 예수를 제일 잘 믿는 사람이고 또 신학을 많이 열람한 사람이 예수를 다 잘 믿는 사람이라 이래 가지고 그것을 자랑하고, 어떤 사람이 전화하기를 그렇게 전화하더래요. 떡 전화하기를, 지금 그러기 때문에 양성원의 질이 낮다. 그 양성원에 지금 거게는 신학을 정규적으로 연구한 사람들은 별로이 없고 이러니까 그거 다 질이 낮고 그렇다고서. 질이 낮으면 성경 배우고 성경 가르치고 이라면 예수 믿는 것 잘 가르치면 되는 것이지 뭐 신학을 한다고 그래 되겠느냐? 신학 가지고 뭐이 되느냐? 신학만 가지고 되느냐 이라니까 신학 모르고 목회를 하기 때문에 양성원 졸업을 시켜 가지고 내 보내 봤자 질이 약하고 실력이 약하다 하는 그런 것으로 말을 하더래요.

이러니까, 그 관념 그거 잘못된 것 그것이 완전 멸망입니다. 그걸 꼭 회개하고 해야 됩니다. 회개하고. 그러니까 그래서 내가 그 말을 듣고 내게 또 하나님께서 뭣 주시는 것을 뭘 주느냐 하면 내가 어제 아침인가 엊저녁인가 말을 했지. 신학은 어떤 것이라고? 시찰만으로 족한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시찰.

시찰이라 말은 관찰이라 할까 열람이라 할까 내가 그래서 그 말 가운데서 시찰이라는 말을 써야 되겠다 해서 시찰이라 이랬어요. 시찰이라 말은 보고 살피는 것, 그 보고 살피는 것 그거 뭐 다른 것 아니라. ‘이 사람이 지금’ 그러면 신학을 말하는 것은 뭐이냐 하면은 신학을 자기가 배워 가지고서 그대로 지금 할라고 하는 것이 아니고 그거는, 그걸 똑똑히 알아야 돼요. 그 신학에 대해서는.

이 신학에 이 사람이 말한 대로 그대로 내가 배워 가지고 그대로와 같은 사람이 될라고 하는 것 아니오. 그거는 신학을 자기가 가지기 위해서 배우면 헛일입니다. 또 신학을 살펴 볼 때에 ‘이 사람은 성경에 대해서 이렇게 잘못 깨달았다. 이렇게 또 이 사람은 바로 깨달았다.’ 잘못 깨달았다 바로 깨달았다 이거는 삐뚤어지게 깨달았다 그것을 보면은 그것을 하나 열람만 해 보고 참고로 하고, 그래서 신학이라 하는 것은 그저 한번 살펴 보는데 한번 쭉, 구경하는 게 아니고.

구경하면서 뭐할라고 구경합니까? 신학을 그래 보는 것은 뭣 때문에 신학 하지요? 배워서 가질라고 신학합니까 그것 보고서 이 사람은 성경에 대해서 이래 봤다 저래 봤다 이러니까 그사람이 잘 보고 잘못 본 것, 바로 봤나 못 봤나 이 사람이 이 성경을 삐뚤어지게, 성경에 대해서 삐뚤어지게, 하나님께 대해서 삐둘어지게, 구원에 대해서 삐뚤어지게, 사죄에 대해서 삐뚤어지게, 이 모두 다 삐뚤어지게 말했나 바로 말했나 하는 그런 걸 한번 구경해 보는 것이오.

그러니까, 그것은 참고 이상은 요긴하게 쓰면 안 됩니다. 그거는, 혹 그런 걸 내가 뭐할라고 참고합니까? 그것을 뭐하기 위해서 신학을 하는 것이요? 신학을 하는 그 목적이 어데 있습니까? 그것 가지고서 사람 기르기 위해서 신학을 하는 거, 신학 목적이 그것 가지고서 목회하기 위해서 신학을 합니까 또 그대로 자기의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신학을 합니까 그 신학이라 하는 건 뭐하기 위해서 합니까? 하는 목적이 뭐이요? 오늘까지의 전 신학자들은 이 신학을 바로 해야 구원이 잘 되고 이걸 해야 목회를 잘 하고 이것을 그걸 가지고서 목회하고 그걸 가지고서 구원 이룰라고 말합니다.

틀렸어. 그거는 그거 아니오.

내가 구원을 이루는 데에는신구약 성경 말씀을 보고 성경 말씀대로 구원을 이루어야 되겠는데, 이루어야 되겠는데 ‘보자’ 이 성경 말씀에 대해서 세상에서 많은 사람이 막 이렇다 저렇다 떠들어 쌓으니까 그걸 내가 따라갈라고 그런 게 아니라 그게 잘못된 것은 그걸 보고서 나도 이와같이 성경에 대해서 잘못 깨달음이 있지 안하도록 하기 위해서 잘못을 방어하기 위해서 그와같이 하는 것이고 또 옳은 깨달음이 있는 그런 거는 나도 그거 보고 이렇게, 그거 따라 가는 게 아니라. 그러면 옳은 깨달음이 있으면 옳은 깨달음 그것 보고 그거 따라갑니까 자기도 성경 보고 옳은 것을 깨닫고 옳게 할라고 하는 것입니까? 그거 따라가는 것이요 그것을 참고로 삼는 것이요? 참고로 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걸 아니고 모든 사람들은 이제 마귀란 놈이 착각을 시켜서 이 신학이 이렇게 많이 되고 복잡해졌습니다. 된 것은 성신이 한 게 아니고 마귀가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복잡한 하나님이 아니라 했어. 모든 것을 바로 알고 정확하게 그렇게 솔직하게 이래 놨지 이렇게 저렇게 자꾸 복잡한 말을 하지 안했는데 이 신학이라는 것이 얼마나 복잡해졌든지 이제는 모두 다 학자들도 그래요. 신학이라 하면은 이것이 하나님의 사람들을 바로 만드는 이것이 신학이요 목회를 바로 하는 것이 신학이요 사람들이 배울 것은 신학을 배울 것이라.

이래 놓으니까 성경 배우는 것은 십분지 일을 기울인다면은 십분지 구는 신학 배우는 데다 막 기울입니다. 그거 참고만 하면 돼요. 신학 보고 이 사람은 틀리게 했다, 이 사람은 틀리게 했다. 그 틀린 걸 봐서 내 속에 틀리게 하는 그런 요소를 지금 뽑아내서 그런 탈선되지 않기 위해서 하는 것이오. 바르면 이런 사람들은 바로 깨달았는데, 바로 깨달았으니까 이 사람 바로 깨달은 것 이거 지금 내가 보고서 이 사람 따라 갈라 하는 게 아니라. 성경 봐 바로 깨달을라고. 나도 바로 성경 깨닫는 것, 그러면 바로 깨달은 그 사람은 보고서 나도 그걸 참고로 삼아 가지고서 마지막에 깨닫기는 그 사람 깨달은 것, 백 목사 깨달은 거 여러분들이 배우면은 백 목사 깨달은 것 그거 지금 여러분들이 가질라고 하는 것입니까 백 목사 깨달은 그걸 참고로 삼아 가지고서 성경을 바로 깨달을라고 하는 것입니까? 성경을 바로 깨달을라고 하는 것이오.

그러기 때문에, 노트 필기를 해 가지고 가 가지고서 성경에 그러냐 안 그러냐 성경 보고 대조해 가지고 성경 연구하는 데 참고로 삼아 가지고 연구해 가지고 요거는 성경 대로다, 요라면은 요게 과연 성경에 요게 있구나. 이래서 성경에 있는 것을 발견해서 깨닫고 난 다음에, 잡고 난 다음에는 노트는 가지고 있으라 했소 내가 태우라 했소? 내가 가지고 있으라 했습니까 태우라 했습니까? 모두 못 들었는가배.

내가 태우라고 했어.

그것은 성경을 모르니까 성경에 이렇고 이렇고 성경에 이렇다 저렇다 성경 깨달음을 가르쳐서 말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걸 보고서 과연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느냐 없느냐? 이러니까 ‘이게 성경이로구나. 백 목사가 말하지마는서도 성경 속에 이게 들었구나.’ 성경 속에 들었구나 하는 것을 발견하고 난 다음에는 이제 백 목사 설교는 그것으로 할 일 끝났소 또 남아 있소? 끝났어, 끝났어. 끝난 줄 알아야 돼요.

이래서 여러분들이 설교하는 것은 잡되 이 설교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기에, 모르니까 하나님 말씀에게로 안내하는 안내자요 중매쟁이입니다. 능한 설교라도 정확한 설교라도 그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에 중매쟁이라, 중매쟁이.

중매쟁이라면은 그러면 남편은 뭐이야? 남편은 뭐이라? 저 ○선생. 남편은 성경이라.

남편은 성경이고 중매쟁이는 이제 사람들이 이렇게 저렇게 말하는 설교라. 이러니까 그 사람이 항상 설교 그만 그것만 거머쥐고 있고 성경은 모릅니다. 그러면 그것만 가지고 있고 성경은 몰라. 그리 되면은 그 사람이 중매쟁이하고 사는 사람이요 남편하고 사는 사람이요? 중매쟁이하고 사는 사람이라. 요렇게 똑똑히 알도록 말해 줘.

그러니까 우리가 이 설교할 때 그렇게 이 설교는 성경을 해석하는 것 아니요? 성경에, 성경은 이런 뜻을 가지고 있다 이런 뜻을 가지고 있다 해석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해석이, 해석을 가지고 뭘 해야 돼? 해석을 가지고 자기가 평생 그것을 가지고 살고 그걸 가지고서 이제 자기 복음으로 삼아야 돼요 해석 그것은 이제 성경을 자기가 바로 깨닫는 대로 중매쟁이로 삼아 가지고서 그걸 가지고 성경을 연구해서 성경에 과연 있다. 그러면 그 설교 듣고 난 다음에 성경을 보고서 성경에 이렇다 저렇다 하는 걸 확실히 깨닫고 난 다음에는 설교한 그것은 가지고 있어야 돼요 그 성경을 붙들고 그거는 버려야 돼요? 버려야 돼요, 버려야.

그러니까, 그러면 그 사람이 자, 설교 말씀을 듣고 아, 백 목사님이 설교를 이래 했다. 그걸 뽈끈 거머쥐고 예수를 믿습니다. 또 그 사람이 백 목사 설교가 이 성경대로냐 성경대로 아니냐? 자기가 자꾸 보니까 나중에 내나 성경에 이 말씀 있구나, 이 성경대로구나, 성경의 내용이 이것이로구나. 성경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 성경을 잡고 예수 믿는 사람, 백 목사님이 말한 설교를 잡고 예수 믿는 사람, 그 두 사람이 같지 안해요. 달라요. 만일 생명을 내놔야 될 환난이 있을 때에, 생명을 내놔야, 그 계명을 지켜, 그 말씀대로 살라고 하면은 생명을 내놔야 되는 그런 어려움을 당할 때에 그때에 생명 내놔야 될 때에 어찌 되느냐? 하나는 ‘백 목사님이 설교를 이래해 주시던데’ 그거 붙든 거와 또 ‘이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이 붙든 것과 둘이 차이가 같아요 달라요? 달라요, 달라.

차이가 굉장히 달라. 차이가 굉장히 있어. 이러니까 하나는 뭣 믿는 사람이요? 마지막에 뭣 믿는 사람이 되겠소? 하나는 뭣 믿는 사람이요? 하나님 믿는 사람이오.

하나는? 하나는 백 목사 믿는 사람이라. 사람 믿는 사람이라. 백 목사 믿는 사람이라. 신학 믿는 사람들이라.

이러기 때문에, 신학은 시찰, 거게서 이거는 틀렸다 옳았다 틀렸다 하면 시찰하면 족해. 시찰하는 것으로 족해. 그러면 시찰은 그것 가지고서 뭘 지금 어데 쓸라고 시찰해요? 어데 쓸라고 시찰해요? 성경을 바로 알기위해서, 성경 연구하기 위해서 그거 한번 참고로 보는 거라.

보고 난 다음에, 그러면 그 사람이 끝까지 신학을 가지고서 ‘신학이라야 목회한다, 신학이라야 구원 이룬다, 신학이라야 환난을 이긴다.’ 신학자 쳐 놓고 환난 이긴 사람은 내가 보기에는 못 봤어. ○○○, 우리 나라 신학자, 다른 데 신학자는 몰라도 우리 나라에 신학자로는 제일 큰 신학자가 ○○○박사가 제일 큰 신학자요 그다음에 또 다음으로 난 ○○○목사가 또 둘째로 위대한, 이름으로는. 실력은 어떤지 내가 모르지마는서도 신학자들인데 제일 큰 ○○○박사도 그 신사참배 있을 때에 거게서 저리 피난가 가지고서 망명을 해서 신사참배 하지는 안했어. 그러나 망명해서 신사참배하고 싸우지는 안해. 신사참배 안 한 사람은 아니라, 피한 사람이지.

신사참배를 피한 사람이고 신사참배를 이겨서 안 한 사람은 아니야.

○○○목사님도 신사참배 나중에 들으니까 절은 안 하셨는데 그분이 항상 그 어른이 나는 신사참배 한 사람이라 말한 것은 뭘 가지고 신사참배 한 사람이라 말했느냐 하면은 자기는 그 신사참배를 싸우지 못하고 ‘나는 신사참배 안 하겠다’ 하라 할 때 `안 하겠다' 안 하겠다 소리를 하지 안하고 그만 저리 딴 데로 피해서 딴 데로 가 버려서, ‘내가 여기 있어 가지고는 신사참배 안 할 수 없기 때문에 내가 어데로 피해 도망을 가야 되겠다’ 피해서 도망가 가지고서 그래 신사참배를 안 했으니까 나는 신사참배 하라는데 나는 승리하지 못하고 내가 신사참배를 그들에게 패전한 사람이라, 패전한 사람과 같은 사람이라고 그렇게 말하는데 나는 그걸 처음에 들을 때에는 그분이 자꾸 그래 말하기 때문에 신사참배 했는가 이랬더니만 나중에 알고 보니까 신사참배는 안 했는데 그때 신사참배 하라 할 때 그만 저리 딴 데로 피해서 도망을, 숨어서 도망가 버렸어. 그 숨어 도망가는 거라, 그거. ○○○박사도 말이지.

하라 하니까 아, 여게 있어서는 안 되겠다. 저리 피해서 도망을 가 버렸으니까 그게 내나 말하자면 그게 패전이라 그말이오.

또 신학한 가운데에서도 제가 이래 아는 대로는 본과를 졸업한 사람들은, 어학을 졸업하고 다 학적으로 공부한 사람들이 다 본과생이라 이랬고 별과생이라 하는 이거는 그저 별도로 이거 있어 가지고 이거 찌끄러기 이거 그저 성경이나 공부하는 그런 별과생, 별과생 가운데에도 왜정 말년에 신사참배 이긴 사람이 있었지 본과생 가운데 이긴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알겠습니까? 또 목회도 위대한 목회하는 사람들은 대개는 다 별과생들이지 본과생들이 아니오.

그러면, 별과생이나 본과생이나 그거는 본과생도 잘한 사람 있겠고 별과생도 잘한 사람이 있는데 뭐이냐 하면 신학을 가지고 목회할라 하는 사람은 다 실패라 그거요.

알겠습니까? 이 말이 얼마나 큰 말인지 몰라. 그거 예사로 듣는데 신학을 가지고서 목회할라 하는 사람은 실패, 신학을 가지고 자기 구원 이룰라 하는 사람은 실패. 신학은 시찰하는 것으로만 족하다. 신학은 네가 하나님 말씀을 연구해 나가는데 참고를 삼는 것으로만 족해야지 거게 따라갈 거나, 옳다 할지라도 따라갈 거는 없고 옳으면은 이 사람도 옳게 깨달았으니까 성경 따라가야, 옳은 것을 알면 그거는 중매쟁이로 삼고, 옳게 소개했으니까 중매쟁이로 삼고 외나 내가 거머쥐고 들어붙어 가지고서 하나돼 가지고 이렇게 갈 것은 성경이라.

이러니까, 자, 신학은 뭐이, 신학은 남편이요 중매쟁이요? 중매쟁이라. 그러면 신학 공부하는 사람이 나중에 성경은, 성경은 뭐 성경 그거 가지고 되나? 지금 신학이라야 가르칠 수가 있고 신학이라야 가르치는 권위가 있고 신학이라야 유력한 목회자를 만들어 낼 수가 있다. 신학 가지고 목회한다고 이렇게 관념을 가지고서 하는 사람들은 그 사람들은 중매쟁이가 본남편에게 중매하는데 나중에 그라다 보니까 그만 뒤에 가서 중매쟁이하고 정이 붙어서 중매쟁이하고 살고 본남편 외나 신랑은 저 다른 걸로 돼 가지고 있고 외나 들어붙기는 중매쟁이하고 들어붙었어.

그라면 그거 바로 됐어요 잘못 됐어요? 신학으로 가지고서 구원 이루고 신학으로 가지고 목회할라 하는 사람은 지금 중매쟁이 하고 들어붙은 사람이요 본남편하고 지금 사는 사람이요? 중매쟁이하고 사는 사람이라.

이렇게 말한 게 저거 속에 들어가 놓으면 막 죽일라 할 거라. ‘그놈의 새끼 죽여 버려라. 세상에 신학 가지고 목회하지, 신학 가지고 구원 이루지.’ 신학은 구원 이루는 것도 아니고 목회하는 것도 아니고 그것은 아니라. 그것은 그저 목회하고 하는데 참고로 삼아 가지고서 ‘이 사람은 이렇게 삐뚤어져 나가니까 나도 이렇게 삐뚤어져 나가기 쉽겠다’ 바로 나간 사람은 ‘이 사람은 바로 이래 깨달았으니까 나도 이와같이 성경을 바로 깨달아야 되겠다’ 참고 삼는 그 이상은 더 사용하면 안 됩니다. 이 말 맞아요 안 맞아요, 양성원 학생들 다? 한번 대답해 봐. 이거 그래도 확신이 없지? 그 말이 생명의 말씀이라.

목회는 그러면 뭘로 해? 구원은 뭘로 이뤄? 쉬워. 만날 그러니까 저거는 장 같은 말, 무식해 놓으니까 장 그말만 한다 이라는데 무식한 게 아니라, 그게. 얼마나 자, 유식해서 하나님이 그렇게 말해 놨어. 목회는 뭘로 가지고 해요? 피와 성령과 진리의 권능으로 해야 됩니다.

이래서, 바울이 말하기를 우리의 하늘나라는 말에 있지 안하고 권능에 있다 말은 말에 있다 말은 그거 무슨 말 말이요? 하나님의 말씀 말하요 인간들이 말해 놓은 모두 성경 해석을 말하요? 다시 말하면 하늘나라는 신학에 있는 게 아니고 권능에 있는 거라 그말이오. 구원은 권능에 있지 인간의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거요.

이러니까, 자기가 구원 이루는 것도 어짜든지 진리로 자기 구원 이루고 진리의 힘으로 구원 이루고, 우리 구원을 크게 키우는 것은 뭘 키우는 것이요? 진리의 힘을 키우는 것이라. 영감의 힘을 키우는 것이라. 예수님의 사죄, 칭의, 화친의 그 대속의 공로를 자기가 입고 있는, 대속의 공로를 입고 있는 것을 키우는 것이라.

이러니까, 양성원 학생들 찍해야 석 달 삼 주간 만에 한 번씩 오는데, 여기 한 달씩 와 있는데, 한 달 와 있는데 한 달 있으면 처음에 조그매 있다가 마지막에 이걸 병을 고쳐서 겨우 어째, 죽을 병이 들었는데 이래 어째 해 가지고서 그 병이 그 사람보다 조금 힘이 약하고 그 사람의 원력이 병보다 조금 강하니까 거게서 애를 쓰면 차차 차차 해 가지고서 이래 이제 병은 죽어져 버리고 사람은 건강해지고 이랄 터인데 요 둘이, 병을 건드리니까 병이 조금 약해지기는 약해지지마는서도 원력보다는 강하고 요래 가지고 있는데 이라다가서 그만 가 돌아가 버리니까 이 말씀을 내버리고 가 가지고서 그 쓸데없는 소리 듣고 자꾸 쓸데없는 생각을 가지고 하니까 나중에 가서 병이 도리어 이 좀 눌려 가지고 있다가 왈칵 서둘러 놓으니까 나중에 이 개학할 때 오면은 양성원 학생들이 완전히 변질이 돼 가지고서 아무짝도 못 쓰게 돼 와. 그러니까 만날 그짓 하다가 그만 가니, 이래 놓으니까 여게서 말한 것을 이건 참 성경 다음으로는 가치 있게, 중량 있게, 권위 있게 이래 들으면 될 터인데 그래 안 듣기 때문에 내가 보기에 참 절망이 돼요, 낙망이 돼요. 가면 막 전체가 그런데, 가면 전부 어데 가 있어요? 가면 신학으로 구원 이루고 성경학교 간 사람이 그만치 구원을 많이 이루고 또 신학 한 사람이 그 사람이 구원을 많이 이룬다 이래 가지고서 성경학교 가면 되는 줄 알고 여자들도 성경학교 가면 구원 많이 이루는 줄 알고 성경학교 갈라 해.

처음에 깨달을 때는 다 그래요. 나도 그래서 우리 큰딸을 중학교 졸업맡은 것 데리고 고려신학교 가서 사정을 해서 신학교에 넣을라고서 그렇게 사정을 하니까 아무래도 아직까지 나이가 어려서 이래 가지고는 안 되니까 그거 좀 그래도 고등학교라도 졸업맡고 나거든 그래 하십시오 이래. 가서 이래 차차 깨달아 보니까 그게 아니라. 그거 전부 진짜가 아니라. 진짜는 성경에 있는 것이지 거기 가 보니까 막 가짜가 뭐 많이 나오는데 이거는 가짜다 가짜다 자꾸 이렇게, 가짜 뭐 진짜 그거 자꾸 가리다 보면은 천하에 있는 가짜 진짜를 가릴라 하면은 그거 가리는 것만 해도 시간 다 보낼 건데 암만 가려 봤자 소용없어. 그 가짜만 알고 진짜만 알고, 진짜는 성경뿐이라 하는 것 성경으로 그만 돌아가면 되는 것이지 그거 자꾸 열람할 여가 없어요, 그거.

비수검은 잘 드는 칼이 비수검인데, 비수검이라 말 알아요? 비수검이라 하는 건 아주 제일 잘 드는 칼이 비수검입니다. 그 비수검인데 비수검도 호박을, 호박을 많은 호박을 깍으면 비수검이 닳아서 나중에 없어져요 그대로 남아 있어요? 논리적으로 말하면 비수검을 가지고 호박도 많이 깍으면 그만 닳아 버려요, 그만. 비수검이라 해도. 그거 이해가 돼요? 호박이야 물렁물렁하지 안해요? 그것도 무한으로 자꾸 이래 깍으면 나중에 그 호박은 무한이기 때문에 비수검이 닳아버려서 조그만하게 없어져 버려요. 논리적으로 말하면 말이오.

이 모양으로 자기가 아무리 명철하다 할지라도 소용없는 것 그거 자꾸 열람하고 이라다 보면 나중에 가서 그만 쭉정이되고 일생 동안 거게다 바쳐서, 일생 동안 바쳐 전공을 했기 때문에 그게 가치 있는 줄 알고 전공했기 때문에 그 사람이 와서 강단에 와서 팔면 뭐 팔아요? 강단에 와 팔면 뭣 팔아? 저 안경쟁이 한번 대답해 봐. 뭣 팔겠지? 신학 팔아, 신학. 양성원에 와서 팔면 뭣 팔아요? 신학, 언제든지 신학이라, 신학, 신학.

신학이 우리 구원을 이루어요? 이것은 신학은 신학이 성경으로 인도하는 중매쟁이라 소개붙이는 것이라. 이래 소개 붙이는데 그놈이 잘못 붙이기도 하고 성경에 잘못 깨달아 잘못 붙이기도 하고 바로 붙이는 것도 있으니까 바로 붙이면, 바로 옳게 그 신학이 성경에 바로 중매를 바로 연결을 시켜 준다면은 연결시켜 주면은 어째야 돼요? 연결시켜 주면 어째야 돼요? 자, 누구에게 물어볼꼬? ○○○집사님 한번 말해 봐. 신학이 성경에 중매를, 성경에 연결을 잘 시켜 줬으면은 그라고 난다음에 이제 신학 가지고 살아야 돼요 성경 가지고 살아야 돼요? 성경 가지고 살아야 돼! 이걸 깨닫지 못해! 이 쉬운 말인 줄 알아? 모든 사람들이 다 이러면 신학에 다 뚝뚝 떨어지는데 ‘이 신학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다’ 이렇게 아니까 신학이 자기는 신학이 제일인 줄 알기 때문에 신학 자랑하고 항상 신학 말하고 이라는데 그러니까 신학이 ‘이 사람은 이렇게 말해 이거 틀렸고 이거 틀렸고 이러면 이거는’ 성경을 가지고 이 사람 신학은 이렇게 말하는데 이거는 성경을 잘못 깨달았고 이 사람 신학은 이런 건 성경을 요 바로 깨달았고 이러니까 바로 깨달았으면 바로 깨달았으면 그 사람 따라가요 내가 그걸 참고로 삼고 내가 성경을 내가 바로 깨달아야 돼요? 내가 바로 깨달아야 돼. 정확하게, 조그매라도 틀리면 안 돼요.

여러분들이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는 그것을 여게서 이 학기에서 뽈끈 잡고 가지고 있어야 될 건데 뭐 없는데 지금 한 주간 있으면 돌아가야 되는데, 내가 보니까 속에 녹이 벗겨지지 안하고 변해지지 안했어. 변해지지 안하고 지금 여게서 말하니까 이놈 병을 갑자기 약을 들이 쓰니까 이 병이 지금 눌려 가지고 있어도 뿌리가 안 뽑히고 이래 가지고 눌려 가지고 있으니까 막 올라갈라 해도 못 올라가고 이래 돼 가지고 있다가서 인제 여게서 양성원 딱 마치고 그 본교회 돌아가면은 그런 것 하나도 없지 그거 기르는 것만 이래 나오지 이래 놓으니까 더 튀어 나와요 그놈이 덜 튀어 나와요? 마구 튀어나와요.

이래 놓으니까 그만 점점 그래 놓으니까 여게 와서 하는 것은 효력이 없고 저거 이거 삐뚤어진 건 자꾸 효력이 자꾸 있어서 점점 삐뚤어진 사람 못된 사람 그런 사람만 되고 말아.

여러분들, 신학자 쳐 놓고서 ‘성경이라야 된다, 성경으로라야 구원얻고 성경이라야 되지 성경 아니면 안 된다.’ 이걸 성경을 자랑해요 신학을 자랑해요? 그 사람이 써먹기는 뭐 써먹어요? 말은 뭣 말해요? 증거는 뭣 증거해요? 가르치기는 뭐해요? 그것이 성경을 증거하고 성경을 소개하는 중매쟁이라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되지 그 이상으로 가치를 두면은 그 사람은 망합니다.

그래 자기 구원은 뭘로 이루는데? 자기 구원은 뭘로 이루요? 손가락으로 가르쳐 봐.

몇 가지로 이루어요? 몇 가지로 이루어요? 이래도 들고 이래도 드는데 어느 게 맞은고? ○○○선생 한번, 몇 가지로 이루어요? 그래 인제 요래 요래 똑똑히 알겠다.

그게 이래 어째 뻘룸하게 이래 드는데, 이래 맞아 이래 들었으면 이제 맞았어, 이제 옳게 들었어. 이거야.

뭐? 진리는 뭐이요? 신구약 성경 말씀이 진리야, 진리. 신구약 성경 말씀 가지고 구원 이루어요. 또 하나는, 영감은 뭐인데? 성경 말씀 속에 들어 계시는 내재적 영감이요 나를 살려서 중생시킨 성신의 은혜라. 성령님이라. 또 하나는 뭐이요? 피.

피는 뭐인데? 피는 몇 가지가 피요? 세 가지가 피라. 피. 사죄, 칭의, 화친. 이러니까 죄를 없이 해 주셨으니까 평생 죄 없는 자로, 죄 없는 자로 살라고 하는 그것 애쓰는 것이 구원돼. 또 죽기까지 하셔 가지고 의를 줬기 때문에 의롭게 살라고 애쓰는 그게 구원 돼. 또 하나는 뭐이야? 하나님하고 자기하고 한덩어리 될라고 애쓰는 그게 구원돼. 이것만 하면 구원돼.

이게 구원되지 뭐 딴것 신학이 뭐 빨트 신학이 우리 구원될 것인가? 이러니까 신학 삼 년에 은혜 다 뺏기지 안하면 그 사람 희망이 있지마는서도 그 신학하고 모두 은혜 내놓고 바꿔 버리면 헛일이라, 멸망이라 그렇게 말해. 이거 알고 있어야 돼, 알고.

어떤 사람이 전화를 그래 했더래요. 그러기 때문에 그 신학을 뭐 정규적인, 정규적이란 말은 안 하지마는서도 그 정규적인 신학을 한 사람이 누가 있느냐고서.

이러기 때문에 신학이 다 무식, 신학이 권위자가 없기 때문에 거게서 양육해 봤자 목회자가 권위 있는 목회자가 되지 안한다고서 이렇게 말한다 하는데, 그게 관념입니다. 그 사람 큰 위험 속에 빠져 있어.

성경을 바로 모르면 되느냐? 거게서는 성경을 바로 알아서 성경하고 동행하지 못하기 때문에, 진리하고 동행하지 못하기 때문에 구원이 헛일이라하면 그말 맞지.

또 성령하고 동행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구원이 헛일이라하면 맞지. 예수님의 사죄, 칭의, 화친의 대속을 입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구원이 헛일이라 하면은 맞지.

그 말은 맞아요 안 맞아요? 그 말은 맞아요 안 맞아요? 안 맞는 사람 손 들어 봐.

틀린 사람 손 들어 봐. 딱 들어맞은 사람 손 들어 봐. 딱 들어맞아. 딱 들어맞아.

이렇게 모든 잡탱이를 다 제해 버리고 다 버럭을, 이 태산 같은 그 버럭을 다 제해 버리고 속에 알맹이 정금 금덩이만 딱딱 내 주니까 이게 자꾸 그말은 자꾸 그거만 해야 되니까 이거 말하니까 ‘저 할 말이 없으니까 장 저것만 말한다’ 그 쓸 데 없는 말 내놓을라 하면 얼마든지, 여러분들이 만날 평생 들어도 그 뭣을 모를 말 자꾸 얼마든지 말할 수 있어. 그거 다 소용없어. 소용없어.

천하에 서적이 다 모였지마는 신구약 성경 외에는 아무 서적이 필요가 없어. 그런 것은 다 뭘로? 참고로 삼는 것이지. 참고로 삼지 그거 따라가는 것 아니라. 성경은 또 뭐라 했어, 내가 어제? 성경은 배우고, 또? 복종하고, 신학은 시찰하는 것으로만 족하고, 성경은, 또? 배우고, 복종하고, 그러면 신학에 복종해야 돼요? 안 돼요.

신학에 복종하면 멸망이오. 알겠어요? 이걸 모르고 귀가 모두 안 뚫혔기 때문에 몰라. 또 목회는 신학 가지고 하면 안 돼요. 목회는? 진리와, 영감과, 피의, 뭘로? 능력으로, 권능으로. 피의 권능으로 해야 돼요.

여러분들이 여게서 배우는 요것만 가지면 세계를 짓밟을 수가 있는데 이 복음을 믿는 사람이 없어. 여기 총공회 산하에 있는 목사 쳐 놓고 제가 볼 때에는 이 복음을 조금 믿을라 하다가, 조금 믿을라 하면 대가리 올라갑니다. 조금 믿을라 하면 권위가 올라갑니다. 교회서도 환영하지 올라가니 올라가면 그만 왕되고 싶어 하기 때문에 헛일이라. 이 복음을 믿는 사람이 내 밑에 지금 요 복음을 확실히 믿는 사람이 아직까지 내가 보기에는 한 사람도 없어. 한 사람도 없어. 한 사람 있던 것 죽었어. ○○○목사 있다가 죽어 버렸어. 또 ○○○목사 있었는데 죽어 버렸어.

○○○목사는 확실히 믿는 그것이 빈약했었어. 그 지금 남아 있는 사람들 가운데에 믿는 사람을 내가 못 보겠어.

그래서, 나는 지금 소망이 이거 혹 미국 갔다 온 것 이런 것들이나 지금 앞으로 이거 하는 것 이런 게 뭐이 좀 될란가 이렇게 지금 기대하고 있지 요거는 참 이 복음을 참말로 이걸 요것만이 생명이다 진리다 길이다 하는 것을 요렇게 확고히 잡은 사람은 내가 뭐 목사들 가운데서도, 전도사들 가운데서도, 알송알송하기는 여기 좀 오히려 여기 중간반 반사들 가운데도 알송한 것 있지마는 그것들도 잡는 힘이 빈약해. 아주 빈약해. 이것만 꼭 잡으면 세상을 이겨. 왜 못 이겨, 못 이기기를?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잡탱이를 뽑아야 됩니다.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도 잔병이지마는서도 자잔한 병이지마는 그 병이 많이 있으면은 그 건강 절단나고 맙니다. 건강을 절단내는 거는 병이 들어 절단내. 병을 뽑아 버리고 병이 없으면 건강해져요. 건강하다 말이오. 병이 있으면 안 돼요.

그 잘못된 생각. 자, 예수를 믿어도 자꾸 행함을 자꾸 강조하다 보면 율법주의된다.

또 누구는 말하기를 그말 했다고, 행함을 강조하다 보면 믿음이 없어진다. 믿음이 없어져, 행함이 뭐인데? 믿음의 행위인데. 믿음이라 하는 것은 바로 알고 인정하고 행하는 그 서이를 똘똘 뭉쳐서 믿음이라 하는 것이다. 행함이 뭐인데? 믿음이 뭐인데? 이놈을 떡 갈라 놓고서 이 말하기를 그 행함을 말하면 또 이쪽면을 틀렸다.

이쪽면을 틀렸다. 이래 가지고 자꾸 이거를 반박해서 어쨌든지 틀렸다고 하는 건 반박만 할라 하는 것이지, 이거 쌀가마니라 하니 ‘쌀가마니라? 보자, 여게도 돌이 있네?’ 그 쌀가마니 가운데 돌 한 개 있어도 그거 쌀가마니지 돌 나왔다고 돌가마니라 할 건가? 쌀가마니라 하면 그 돌 찾고, 또 이거는 쌀가마니라 하면 여기 씨라기 여게 그거 찾고 그런 자는, 그렇게 반발하고 나가는 자는 그걸 회개해야 되지 회개하기 전에는 안 됩니다.

여게서 여러분들이 한 달 동안 여기서 새벽 때 배운 이것만 해도 뭐 평생 돌아다니며 신학에 다니는 그런 거 천 배도 만 배도 가치가 더 됩니다. 이런데 이걸 가면 그런 것만 있거든. ‘세월을 아끼라’ 뭐라 했어요? `때가 악하니라’ 악하다 말이 무슨 말이라? 다 불량한 사람들만 있다 말이요? 뭐이라? ‘때가 악하니라’ 뭐이라? ○○○조사. 자기 중심 자기 위주가 가득 찼다 그말이라. 자기 중심이 가득 차 여게 가도 목사도 자기 중심 모두 다 자기 중심이니까 자기도 자기 중심이지 이런 가운데 자기만 특이하게 하는 것이 헛일이다 싶으니까 안 된다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잘못하면 네가 그 시간마다 네 중심 네 악으로 살기 쉽지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인하여서 사는 일이 되기 어렵다 그말이오.

요게 꼭 양성원 학생 때문에 그래, 지금. 양성원 학생이 지금 뭐 꼭 잡고 요걸 놓지 안해야 되겠는데 이거 겨우 변화시켜 놓으면 조그매만, 확 돌아서면 안 그렇지만 돌아서지 안해. 여러분들은 신학을 따라가. 나는 하나님 말씀 따라갈 거야. 나는 진리와 영감 예수님의 피 따라가. 여러분들은 신학자가 돼 가지고 신학을 따라가.

신학 가지고 강단에 신학을, 강단에 누구의 신학은 이렇게 말하고 누구의 신학은 이렇게 말했고 이거 이렇게 해서 신학 따라가고 신학 가지고 목회 하십시오.

멸망이야. 진리와 영감과 예수님의 피 가지고 목회를 해야 되지.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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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80 실행해야 산다/ 요한계시록 3장 1 절-6절/ 850112토새 선지자 2015.11.28
2679 심는대로 거둔다/ 갈라디아서 6장 7절-8절/ 890621수야 선지자 2015.11.28
2678 심는대로 거둔다/ 갈라디아서 6장 7절-8절/ 1989. 6. 21. 주일학교 공과 선지자 2015.11.28
2677 심는대로 거둔다/ 갈라디아서 6장 7절-8절/ 890625주새 선지자 2015.1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