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의 생활순서


선지자선교회 1984년 5월 23일 수새 

 

본문 : 시편 1장 1절∼6절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복 있는 사람은" 첫째, 둘째로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셋째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넷째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좋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다섯째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런고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여섯째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생명 있는 동물은, 생명 있는 움직이는 것 말입니다. 사람도 동물 중에 하나요.

사람도 움직이는 물건 중에 하나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고등동물이라 이렇게  말합니다. 고등동물이라. 풀이니 나무니 이런 거는 생명이 있지만 그런 거는  움직이지는 못합니다.

 (내가 처음에 무엇을 말하려고 하다가서 그 말씀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다가 그 말했는지 누가 생각나는 사람 있습니까? 한번  본문을 더 읽어볼까요?)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네,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 겨라 말은 곡식 껍데기를 가리켜서 겨라 이래 말합니다. 곡식 껍데기. 곡식  껍데기는 속에 알이 없으니까 무게가 없습니다. 그래서 바람이 불면 바람에  이렇게 바람 부는대로 날려갑니다. 동풍이 불면 서로 날아가겠고 서풍이 불면  동으로 날아갈 것입니다. 그러나 속에 알맹이가 있는 곡식은 그렇게 바람이  불어도 날아가지 안하니까 알곡으로 쳐져서 나중에 곡간으로 들어갑니다.

 생명 있는 동물은 그 몸에 아무 지장이 없을 때에는 그것이 유유해서 날아야 될  때는 날고 기어야 될 때는 기고 숨어야 될 때는 숨고 또 고함을 질러야 될  때에는 고함을 지르고 이렇게 그 몸에 아무 지장이 없을 때에는, 그것을  가리켜서 본능이라 이라지만 사람의 이성과 꼭 같은 그런 이성이 좀 고급 저급  이 차이만 있지 다 구비해 있습니다. 짐승도 추억성도 있고 감상도 있고 애정도  있고 비판도 있고 예산도 있고 계획도 있고 평가도 있고 다 있다 이거요.

사람보다 좀 차이가 있는 것뿐이지. 그런데, 그것이 몸이 튼튼할 때에는 다  정상적으로 움직입니다.

 그러나 다리 하나만 병신돼도 정상적으로 움직이지 못하고 절름발이가 돼  가지고 절둑꿍 절둑꿍 그랍니다. 그러면 모든 게 정상이 아닙니다. 그라다가  그걸 목을 끊어 버리면 그때는 뭐 목이 없으면 그 짐승은 아무것도 모릅니다.

뛰어야 될 것도 모르고 숨어야 될 것도 모르고 기어야 될 것도 모르고 날아야 될  것도 모르고 그저 아무런 이리 하면 뒤에 결과적으로 어찌 되느냐 또 자기에게  유익이 오느냐 해가 오느냐 자기가 망하느냐 흥하느냐 그런 것도 아무것도  모르고 뭐 모릅니다. 잡으러 와도 모르고 그 뭐 알게 있습니까? 무엇이, 반가운  제 동무가 와도 모르고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저 목을 끊어 놨으니까, 목을 끊어  놨으니 있는 대로 막 뛰고 굴립니다. 목을 끊어 놨으니까 있는 대로는 뛰고 굴러  있는 대로는 풀풀 뛰어서,  제가 몇 해 전에 닭을 한 마리 누가 잡는 것을 봤는데 믿는 사람들은 피를  먹으면 안 되니까 도마 위에다 놓고 목을 탁 끊어서 그래 닭을 잡습디다. 그래  딱 끊어 놓으니까 아 그만 이게 뛰는데 뭐 어떻게 그리 뛰는지 공중에 막 풀풀  마구 이래 뛰고 후닥거리는데, 뛰나, 날개는 치고 뛰지만 이리 올라가야 될는지  이리 올라가야 될는지 그걸 몰라. 그러니까 마구 후덕거리는데 어디든지  날뛰기만 날뛰지 위로 올라가야 될 라지 옆으로 올라가야 될는지 그거 아무  판단이나 그런 게 하나도 없어. 그때 제가 느낀 것이 뭘 느꼈느냐 하면 사람도  그 영이 죽어 놓으니까, 모가지가 끊겨서 영이 죽어 놓으니까 인간들이 그렇게,  어떤 자는 권세를 탐해 가지고 권세 그게 제게 해로울는지 이익이 될는지 그것도  모르고 그래 가지고. 어떤 자는 권세만 탐해 가지고 권세만 떡 올라갔으면  '됐다. 내가 권세가 이 만침 올라갔으니까 천하에 내가 제일이다.' 어떤 자는 또  돈만 탐해 가지고 돈만 좀 있으면 '돈이 이게 또 제일이다.' 어떤 자는 또  지식만 탐해 가지고 '이 지식이 제일이다.' 이래 가지고 모두 다 그걸 보고  내대로는 모든 사람의 움직임을 보니까 '모가지 끊긴 닭과 같다.' 하나도  정상이, 아니라. 뭐 정권 야욕에서, 물질 야욕에서, 명예 야욕에서. 지식  야욕에서, 모두 다 욕심 그 놈이 들어오면 그만 자기에게 유익할는지 어떤지  그것도 모르고 그거는 그대로 뛰고 저거는 저대로 뛰고 이라니까 '꼭 모가지  끊긴 닭과 같다.' 그거 봐야 산 자가 없어. 전부 다 죽은 행동이라.

 그런데 가만히 보면 아주 그렇게 멸시한, 세상이 멸시한 사람인데, 세상이  멸시하고 세상이 천대하고 세상이 알아주지 안하는 사람인데 그 사람을 가만히  보니까 머리가 달렸어. 머리가 달려서 그 사람이 말을 하고 싶어도 보니까 그  사람이 말을 못 하는 벙어리가 돼 가지고 있고, 또 그 사람이 아무 의욕이 없는  등신이 돼 가지고 있고, 그 사람이 아무런 감각이 없는 비관이 없는 사람이 돼  가지고 있는데 그게 아니 라. 그 사람이 머리가 달려 있기 때문에, 머리가 달려  있기 때문에 자기 현재만 보지 안 하고 아무것도 모르고 행동하지 안하고, 또  현재만 보고하지 안하고 과거를 생각하기 때문에 말을 못하고, 미래를 생각하기  때문에 행동을 못 하고. 또 자기만 아니라 모든 이웃의 사회라는 것, 자기는  혼자 살아 나갈 수 없기 때문에 사회를 생각하니까 또 그 사람이 등신이고, 또  그 사람이 하나님을 생각하니까 더군다나 더 꼼짝을 못 하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축복에 있다 하는 것을 생각하니까 그 사람이 또 애터지지 안하고 유유하게  어떻게 그 뭐 등신인지 담대한지 어떻게 유유한지, 그 사람을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아, 저 사람이 대주재이신, 모든 인간과 사물의 주인공 되신 주님이  계시는 것을 믿기 때문에 저 사람 행동은 저렇게 될 수밖에 없다 과연 하나님이  계시는 것을 그가 아는 사람이면 행동이 저럴 수밖에 없다.

 저 사람 행동은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모르고 하나님이 보고 계시는 것,  하나님이 모든 것을 판단하고 주인공 되어 계시는 것을 모르니까 저렇게 하겠다.

또 저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도 생각지 안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축복도 생각지  안하기 때문에, 인류도 생각지 안하고 사회도 생각지 안하고 모두가 생각지  안하기 때문에 저렇게 마구 날뛰니까 대단히 힘은 있지만, 힘은 있지만 조금  있다가 보니까, 펄펄 이래 뛰어 쌓디만 조금 있다 보니까 그만 날개하고 다리가  빨빨빨빨빨 떨디만 쪽 뻐드러져 버려. 나는 그때 그걸 보고 많이 깨달았어요.

 세상에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사람 많은데 부러워하는 사람 많고  무서워하는 사람 많은데 이 부러워하는 사람 그 사람을 분석을 해 보니까 꼭  모가지 끊긴 사람이요, 또 무서워하는 사람 많은데 그 사람 보니까 꼭 모가지  끊긴 사람이요, 또 모든 것을 다 정복하고 하는 나폴레옹을 보니까 그 사람도  모가지 끊긴 사람이라. 나폴레옹도. 또 김일성도 생각해 보니까 그것도 모가지  끊긴 사람이라 김정일이도 보니까 모가지 끊긴 사람이라. 뭐 그래서 '이 목이  끊긴 사람들이 참 많다. 머리를 가진 사람들이 심히 적다.' 보니까 그 사람은 좀  무엇이 그 사람은 모자란다, 등신이 다, 어리석다, 그 사람은 좀 모든 면이  비겁자다 이래 쌓는데 그 사람을 살펴보니까 그 사람에게 모가지가 달렸더라  그말이오.

 사람이 그와 마찬가지로 그 영이 죽으면 사람이 영이 죽고 나면 그 사람의 행동  전체가 자멸하는 것뿐입니다. 그러니까, 중생되지 안한 사람은 일생 동안 산  것이 자기 유익을 위해서 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또 자기 해를 자기가 해 본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전부 자기 유익만 위해서 했는데 그게 실은 다  결과적으로는 자기해만 되고 마는 것이라 말이오.

 그러나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이제 구속함을 받아서 중생 된 사람은 그 영과  육이 연결이 돼 가지고 있을 때에는 그 사람의 보는 세계가 다르고 탐하는  세계가 다르고 소원하는 세계가 다르다 그 말이오. 다른데. 아무리 택한 자라도  영과 육이 연결이 안돼 놓으면 그만 모가지 끊긴 사람이라. 벌로라. 지척을  분별하지 못해. 마구잡이라. 아무 비판 없이 살고, 평가 없이 살고, 결과 없이  살고, 그만 목적 없이 살고, 다만 주장은 뭐이냐 하면 제 욕심 제 주관  그것으로만 움직이기 쉽습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 아무래도 우리는 이 말씀을 기억해야 되겠다. 이래서  '악인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이 말씀을 내가 생각하고 동물을 말했다  이거요.

 악인은 자기중심의 사람인데, 자기중심의 사람인데 자기중심의 사람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다고 바람 불 때 여러분들이 겨를 봤는가 모르지만 저 정미소에 가  보면 나락 껍데기가 많이 있습니다. 막 바람이 불면 이게 어떻게 날아서 막  소동을 하는지 그만 단속 안 하면 공중이 다 새카매져 버립니다. 겨가 막 날아서  이래 이라는 것. 그것 모양으로 이제 이 세상에는 참, 이 시편을 기록한 성령의  감동 받은 사람이 '악인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이렇게 기록했는데, 가만히  눈을 감고 세상을 보면 모가지 끊긴 사람들뿐이니까 그걸 묘사하려고 하면  바람에 나는 겨와 같애. 겨가 바람에 나니까 막 공중에 날아서 이게 겨 그놈이  어떤 거는 날아서 굉장히 막 올라갑니다. 공중이 새카매져 버려요.

 이와 같이 세상은 과연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악인들 생활은 모가지가 끊겼기  때문에 그는 정신없이 날뛴다. 그러니까 그때 그거 당할 도리가 없어. 아무도  당하지를 못해. 나폴레옹이 그렇게 마구 날 뛸 때에 당하지 못해. 그러나 그  사람이 마지막 죽을 때에, 그 사람이 구원을 얻었는지 그거는 모르겠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렛 예수는 참 승리를 했는데 나는 인생 실패자다.' 마지막에  숨질 때에 그 말을 하고 갔다 하는데 그 사람이 구원을 얻었는지 모르지만 참 그  사람 불쌍한 사람입니다. 모두 다 정신을 차려서 성경 말씀의 지식 가지고 보면  세상에는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은 이런 불쌍하고 가련한 사람들이 어떻게 많은지.

'저거는 뭐한다고 지금 우쭐거리나?' 우쭐거려도 우쭐거릴 원인이 아무것도 없는  건데 제 정신이 착각돼 가지고 착란돼 가지고 그게 아주 가치 있는 줄 알고  우쭐거리고 있다 그거요.

 이러기 때문에 우리 구속받은 사람들도 잘못하면 우리가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치기 쉽습니다. 처음에 믿을 때 젊을 때는 '어짜든지 내가 복 있는  사람 돼 봐야 되겠다. 한번 잘 믿어 봐야 되겠다.' 삣고 깍고 씻고 자기를  얼마든지 이렇게 깨끗이 이래 하다가, 아! 그만 나이나 먹어서 그만 오십 육십  돼 버리면 그만 노망이라. 그만 신앙도 노망이라. 그래 가지고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치는, 젊을 때는 생명도 주를 위해서 바칠라 하는 사람이  마지막에는,  언제 보니까 내가 거창 있을 때 보니까 짚단 한 단 가지고 시비를 하다 말이오.

내나 한집에 사는데, 한집에 사는데 하나는 주인이요 하나는 셋방 든 사람인데  다 농사짓는 집이니까, 짚 한 단 가지고 이 짚단은 너거 짚이니 우리 짚이니  시비를 하는데, 우리 집은 조금 떠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그때 집사고 그  사람은 아마 하나는 아마 집사이든가 모르겠소. 이랬는데, 그 짚단 하나 가지고  시비가 나는데 그거 가지고 얼마나 시비가 컸든지 동네 사람이 구경하러 왔고 뭐  참 많이 떠들었소. 어떻게 창피스럽지만 내가 갈 수도 없지 참 마음에 딱한 꼴을  봤는데, 이와 마찬가지로 그 사람들이 모두 다 나이가 한 오십 육십 가량 돼  가는 사람이라 말이오. 이러니까, 젊을 때 예수 믿을 때는 뭐 양보성도 있고,  이해성도 있고, 타협성도 있고, 이 모든 노력도 있고, 이런 것 다 있지만 이제  그만 나이 좀 많아 놓으니까 마구잡이라. 그래서 격언은 그래 말합니다. '아이  낳은 나를 어쩔까이?' 결혼할 때, 결혼할 때 처음에는 조심하다가 아이 하나  낳아 놓으면 '아이 낳은 나를 우짤까이?' 그만 아이 하나 놓고 난 다음에 마음  턱 풀어놓고 긴장 풀어놓는 그런 인간은 나중에 가서 천대받습니다.

 얄궂은 얘기지만 어떤 여자가 이제는 회혼례 잔치를 했어. 결혼한 날이 벌써  육십 일 년이 돼 놓으니까, 회혼례 잔치는 결혼한 지가 육십 일 년이 되면  회혼례 잔치를 합니다. 잔치를 하는데, 회혼례 잔치하니까 '이제 뭐 아들이  이렇츰 커서 다 잘되고 이러니까, 이제는 이 만침 됐으니 문제없지' 하고 조심  안 해서 말 한 마디 안 할 말을 했는데 그만 그 영감이 그만 이혼이라. 아 내가  이거 안 되겠다고. 기어고 이혼할라 해서 아들네들이 암만 말해도 안 되고  이혼을 했답니다. 사람이라는 것은 나이가 많으면 노망되고 망령된 것 같애.

이러니까, 나이 많은 사람은 젊은 사람 요량하면 얼마나 주의 안 하면 안 되고,  또 젊을 때 나이 많은 사람보고 '아이구 나이 많은 사람 비하면 나는 신앙 좋다'  하지만 다 그래도 젊을 때는 풀풀 뛴 사람이라. 그러니까, 우리가 조심하지  않으면 모가지 끊긴 사람같이 돼져 버려요. 이래서, '아무래도 이 말씀을 또  해야 되겠다.'

 첫째가 뭐입니까? 복. 복은 뭘 복이라 하느냐? 하나님이 나의 일을 잘해 주시는  것을 가리켜서 복이라 말합니다. 잘해 주는 것. 그러면, 만일 악을 행할라 할  때에 내가 그 악을 행할 욕심이 나고 감정이 나고 이래 막 하고 싶을 때 그때에  하나님이 복 주시는 것은 뭐이냐 하면 나에게 그 마음을 없애 주는 게 복이라  말이오. 그 마음을 나에게 없애 주셔. 그렇게 내 중심으로 하고 싶은 욕심이  불같이 일어났었는데 하나님께서 마음을 스르르 깨닫게 해 주시니까 '아이구,  그만 내가 그거 안 가지겠다. 나는 그런 생각 안 하겠다. 나는 그 사업 안  하겠다. 그 주장 안 하겠다. 나는 그 계획 안 하겠다.' 우리 속에 안 가져야 될  마음을 안 가지도록 사뤄 주시는 것이 그게 복이오. 또 우리에게 가져야 될  마음을 자꾸 강하게 가지게 하는 것이 복이라 말이오. 복이라 말은 하나님께서  내 영, 내 마음. 내 몸, 내 행동, 내 모든 소유 여기에 대해서 하나님이 전지의  지혜를 가지고 비판을 하시고 전능의 능력을 가지고 그걸 잘 수정해서 바로 해  주시고 완전한 사랑으로 끝까지 책임을 지시고 이래 하는 그것이 복입니다.

이러니까, 우리는 복 없으면 죽소.

 그러기 때문에, 며칠 전에도 제가 말하기를 최 덕지 선생 말했지만 그 분은 복  말했는데 좋은 걸 말했는데 그만 지나쳐 가지고 다른 면으로 실패했소. 그러니까  다른 사람이 미쳤다 하든지 말든지 우리는 좀 복을 입으로 말해. 복. 그이는  그래요. '이러면 하나님 복이 어찌 되노? 이라면 복 못 받는다. 이러면 복이  어찌 되노? 아, 복 받는다.' 복 받는 일이면 죽자 살자 하고 합니다. 복을  생각해요. 이래 가지고 그 복 하나 가지고 그 사람의 생활에 조절을 합니다.

그래서 그만 너무 복으로 이라 다가서, 성경 말씀을 가지고 하지 안하고 복만  탐하다 보니까 그만 자기 주관이 돼 버려서 실패했다 그거요.

이래서, 십일조를 드리는 것도, 그거야 괜찮겠지요. 밥상 가져오면 딱 함부래  그릇을 옆에 갖다 놔요. 밥상을 차려 주면 그릇을 하나 옆에 갖다 놓는다  말이오. 갖다 놓으면 요것도 십 분지 일, 조것도 십 분지 일, 젖가락으로 다  찝어 놓습니다. 십 분지 일 다 찝어 놔. 다 찝어 놓고 그래 가지고 '요거  얼마치나 되겠노?' 그래 가격을 쳐 가지고 넣습니다. 그런 것이 가격을 쳐  가지고 넣으면 괜찮은데, 나중에 어떤 사람은, 자기는 그랬지만 그 제자들은  그만 십일조를 떼 가지고, 그러니까 언제든지 그릇에는 쉬고 썩은 음식이 장  채여 가지고 있어. 십일조 떼 놓은 게 말이지. 십일조 떼 가지고 이거는 어떻게  귀중히 써야 될 터인데, 돈으로 쳐서 넣는다는 그 소리는 내가 못 들었소. 내가  지어 낸 말인데. 그것 내가 취소합니다. 십일조를 떼는데 모두 음식이 그릇마다  썩어 가지고 있다 이랬소. 여기 보자. 가만있어. ○○○씨 여기 있어? 손들어  봐. ○○○씨, 그거 똑똑히 알지? 십일조 떼 가지고 어쨌지? 최덕지 선생,  먹었는가 뉘 줬는가 쉬었는가? 예? 다른 종들? 다른 종들 줘야 다른 종들이,  그거 택찌꺼리인데, 아마 수지를, 수지를 떼 놔도 택찌꺼리인데 그걸 먹을라  하는가? 그래 놓으니까 쉬었다 말이 결과라. 모두 다 쉬 가지고 있더래요. 그래  가지고 그렇지 복 말한 것은 참 특이한 생활이 그게 자아냈습니다. 복을  생각하는 그것이 그 생활을 변화시켰어요.

 이러니까, 우리 서부교회 교인들도 오늘 새벽에 나온 사람들은 좀 저 사람들은  복에 미쳤다 할 만침 자꾸 복을 연습해야 되겠소. 복, 복, 복. '야, 이 말 하면  복 받겠나?' 생각해 보고 '아, 이 말 하면 복 못 받겠다.' 이 일 하면 복  받겠나?' '아, 복 받겠다.' '아 이 사람을, 이 사람을 어떻게' '이 사람을 멀리  해라. 복 받을라면 멀리 해야 된다.' '이 사람은?' '이 사람은 가까이 해야 복  받는다.' '이 사람은 멸시해야 되나?' '아이?, 멸시하면 복 못 받는다.' '이  사람은 아무짝도 몹쓸 아주 악인이고 못 쓸 인간인데 이 사람이야 멸시해야  되겠지?' '아이구, 그래도 사랑해라 했는데 멸시하면 나도 교만해서 물리침  당한다.' 자꾸 복, 복 이거 하나 가지고 해석을 하자 그말이오. ○○○선생, 복  생각해? 예? 이 말 하면 복 받겠나, 이 일 하면 복 받겠나, 이 걸음 걸으면 복  받겠나? 자꾸 복을 자꾸 생각해. 복. (저거 남편을 말하니까 눈이 똑  떨어지는구만. 예배볼 때 졸면 복 받아? 예? 뭣 받아? 복 못 받아요.) 어쨌든지  복. 첫째가 복만 생각해 자꾸. '자. 내가 참아야 복을 주시겠나?' 복이라 말은  하나님이 그로 인해서 내게 잘해 주신다 그말이오. 복 받는 거는, '요 행동을  인해서 하나님이 내게 잘해 주시겠다.' 하나님이 내게 잘해 주시겠다, 잘해  주시는 게 복이라. 그러니까 하나님이 나에게 잘해 주시겠느냐, 이 일을 잘해  주시겠느냐 그걸 생각하자 그말이오. 자, 첫째 복.

 또 둘째로는 투쟁의 행위, 투쟁 행위. 싸움이 있어야 돼. 무슨 투쟁?  육박전으로 이래 싸워? 그게 아니고 악인의 꾀를 좋지 않는 싸움, 죄인의 길에  서지 않는 싸움, 자기가 교만해지지 않는 싸움. 교만해지지 않는 그거는, 이게  모두 다 마음 안의 싸움입니다. 악인의 꾀를 좋지 안하는 것, 죄인의 길에 서지  안하는 것도.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 것도 이게 다 전부 다 마음 안의  거라 말이오. 우리 마음에서 되는 거라. 마음에서 이 일이 되어져야 되지 마음은  없이 행동만 하는 그건 참 외식자요 불쌍합니다. 그거 내나 모가지 끊긴  짐승이라. 모가지 끊긴 짐승. 모가지가 뭐이요? 사람으로 말하면 하나님과  진리가 내 영에 왔고, 하나님과 진리와 연결이 된 영이거든. 이러니까, 하나님과  진리와 연결된 영과 내 마음이 연결이 돼야 모가지가 잇겼다 그거요. 그러니까,  그리스도는 머리요 우리는 몸이라고 하지 안했습니까? 그 연결이 없으면  헛일입니다. 그 연결 없으면 그만 모가지 끊겨 놓은 짐승이라.

 이러니까, 복을 생각하고, 둘째로는 우리 마음에서 싸움이 있어야 되겠소.

싸움. 이 세 가지 싸움인데, 이 세 가지 싸움은 그걸 가리켜서 행동입니다.

행동. 세 가지 싸움을 싸우는 행동이 있어야 돼요. 행동이. 그러면 마음에서  싸우다가 껍데기까지도 다. 사람이 자기중심으로 나가는 사람을 안 따라갈라  하면 얼마나 어려운 줄 압니까? 인간은 전부 자기중심으로 나가는데 전쟁에  달리는 말과 같다 했습니다.

요한계시록 9장에 보면 전쟁에 달리는 말과 같다 했소. 자기중심으로 나가는  그자의 고집이나 그자의 욕심으로 막 품어 가지고 나올 때는 그거 못 당해.

이러니까, "전쟁에 달리는 말과 같다." 어떻게 빨리 달리는지. 그런데 거기에 안  따라갈라 하면, 그 정신을, 그 사상을 안 따라갈라 하면 힘들어. 또 죄인의 길에  서지 않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어기는 것이 죄인입니다. 하나님 말씀 어기는  그런, 내가 그런 발자국을 떼놓지 안해야 돼. 하나님 말씀을 어기는 그 한  자욱도 떼놓지 않겠다 그말이오.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안 해. 오만은  교만이오. '이제 됐다.' 이제 됐다 하고 낙관하는 그게 오만이라. 앉지 안해.

 그라면, 셋째 뭐입니까? 그러면 무슨 맛이 뭐이 일하고 나면 뭐 먹고 싶습니까?  일하고 나면 밥 먹고 싶어. 일하고 나면 음식 먹고 싶어. 이제 이 두 가지 복을  위해서 이 투쟁 생활을 하고 나니까 그만 밥이 먹고 싶고 자꾸 물이 마시고  싶습니다. 밥이 먹고 싶고 물이 먹고 싶어. 하나님 말씀이 자꾸 갈급이 돼지고  하나님 말씀을 먹으니까 맛이 참 있습니다. 이 투쟁이 없이 성경 보는 사람은  성경의 맛이 없어. 투쟁을 하고 성경 보면 성경이 환하게 가르쳐 주기 때문에  어떻게 맛이 있는지. 일하면 밥맛 있는 것 한가지요. 이 두 가지 있으면  셋째로는 여호와의 율법이 즐거워. 또 그 율법을 읽으니까 자꾸 깨달아져.

'여호와 율법을 즐거워하며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자꾸 생각하니까 그 속에  진미가 자꾸 나온다 말이오.

 또 넷째는 뭐이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좋아 과실을 맺으며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다.' 이래 놓으니까, 그러니까 자기 심정부터 깨끗해지고  강해지고 튼튼해지고 천인 만인이 뭐라 한다 해도 꼼짝도 않는 이런 고 속에  굉장히 기쁨과 평강과 즐거움과 담대함과 안심이 옵니다. 든든한 안심이 와.

 그러니까, 다섯째 뭣 옵니까? 하나님이 그 모든 생활을 동행해 주시니까  형통합니다. 요셉이가 저거 형제가 그렇츰 그랬고 또 종으로 팔려가고 했지만  하나님이 같이 하니까 요셉의 일 참 형통했습니다. 보디발 집에 가서도 그렇츰  형통했소. 보디발 집에 총리로 들어설라면 아마 여기서 말하면 어북 시장하는  것만침이나 할 것입니다. 그만침 어려운 일이라. 아 종으로 팔려 갔는데 그런 일  했소. 또 모든 정치범, 정치범들만 가 있는 형무소 소장 대리를 했으니까 얼마나  형통입니까? 다른 사람 보기에는 고 통인데 그 사람 속으로는 착착 굉장한  형통이 돼 가지고 그 결과는 애굽 나라의 총리대신이 되지 안했습니까?  이러니까, '무릇 그 행사가 형통하리로다.' 첫째 둘째 셋째, 넷째가 되면 그만  그 사람은 모든 하는 행동이 다 형통해져. 행동이 형통해지는 것은 그 사람이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이 청청해 가지고 새로워져서 정신이 깔깔해, 양심이  있어, 사랑이 있어, 진실해. 거룩해, 모든 책임성이 있어. 이러니까 사람이  됐으니까 그 사람의 언행심사의 경영하는 것은 다 잘될 수밖에 더 있겠습니까?  그러나 안 믿는 사람들은 모가지 끊긴 짐승과 같다. 바람에 나는 겨와 같다.

 의인의 길은 여호와가 인정하신다 그 말은 의인은 이렇게 다섯 가지를 행한  사람의 길은 하나님과 동지자라 말이오. 인정한다 그 말은 하나님의 의사와  의사가 꼭 같기 때문에 하나님 동지자라. 의견이 하나님과 꼭 같애. 그게  복이야.

 녜,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믿는 사람이. 요 생활 순서인데, 생활 순서인데 요 순서를 잊어버리면  헛일입니다. 그래서 에베소 교회에 말하기를 '네가 처음 사랑을 어디서 잊어  버렸는지 찾아라' 이랬소. 처음 사랑은 주님의 구속을 말했는데 잊어버린 것은  어디 잊어 버렸는지 찾아라 이랬소. 찾기는 어디서 찾습니까? 어디서 찾아야  돼요? 말해 봐요? 저 아가씨, 너 말이야 너. 아 저거 저 눈만 깜짝거리고 있네.

너, 너 이름이 뭐야? 그래. 처음 사랑 잊어버린 것 어디서 찾아야 돼? 어디서  찾아야 되지? 아, 저거 참. 또 그 옆에. 어디서 찾아야 돼? 마음에서 찾는다?  남편이 어디 가고 없으니까 지금 만날 남편만 생각하는구만. 요쪽에 또 요게, 요  어머니, 요게. 가만있어. 처음 사랑 잊어버린 걸 어디 가서 찾아야 돼요? 하  이거, 참 멍퉁이네. ○○○, 예? 자기 속에서? 허, 그거 참. 이렇게 이제까지  가르쳐 놔도 모르네. 생활 순서가 뭐인데? 생활 순서가 뭐이지? 처음 순서가  뭐이라? 복에서 찾아, 복에서. 복에서. 복 받을라고만 하고 그만 복 표준만 하며  제대로 다 찾아져요. 다 그거 돼져 버려요.

 이 생활 순서가 복이라는 거 그걸 여러분들이 잡아야 돼요. 우리가 어디든지  시작하거든 복에서 시작해. 밤에 시작해도 복에서 시작하고 낮에 시작해도  복에서 시작하고 바쁠 때 시작해도 복에서 시작하고 공산주의 앞에서도 복에서  시작하고 또 독침 앞에서도 복에서 시작해. 딴 데서 하지말고 복에서 시작해요.

어디든지 생활 순서의 시작은 복에서 시작하라. 복은 뭐이 복이냐? 하나님이  나에게 잘해 주시는 그것이 복이오. 그러면 하나님이 잘해 주시는 거기서  무엇이든지 시작해라. 이렇츰 내치 가르쳐 놓고 물으니까, 하나, 둘. 서이.

너이, 다섯 물어도 하나도 대답 옳게 못 하네.

자,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모두 산으로 가요. 들로 가요. 하나님의 말씀은 털끝 만침도 변함이 없습니다.

가감이 없습니다. 밥을 하면서도 기도하면서 밥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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