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보배로운 요소 다섯가지

 

1986. 6. 30. 새벽

 

본문:누가복음 5장 8절∼11절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가로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이는 자기와 및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이 고기 잡힌 것을 인하여 놀라고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예수께서 시몬에게 일러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저희가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8절에 시몬이가 ‘이를 보고’ 했습니다. 시몬이가 이를 보고 예수님의 무릎 아래 엎드렸다. ‘이를 보고’ 뭘 보고? 밤새껏 고기 하나도 잡지 못했는데 주님이 ‘저 바다 깊은 데다가 그물을 던져 잡으라’ 이렇게 주님이 말씀을 하실 때에, 고기라는 것은 잡힐 때가 있고 안 잡힐 때가 있습니다. 고기가 아무 때나 늘 잡히는 것이 아니고 그것이 이 모든 기후와 또 이 공기와 이 모든 풍조 이런 걸 따라서, 그게 생물이기 때문에 이리저리 몰려다닙니다.

이라기에, 고기 잡는 무슨 고기는 아무 시기에 잡으면 된다. 또 무슨 고기는 어느 시기에 잡아야 된다. 그런 다 고기 잡는 때가 정해져 가지고 있고 또 장소가 정해져 가지고 있는 그것은 전부 그 본능적으로 그렇게 움직여지는 그런 통계를 보고 요럴 때는 요래 움직여지고 요게 온다 해 가지고 거게다 그물을 쳐 가지고 잡고 이러기 때문에 뭐 청어가 잡힐 시기도 있고 조기가 잡힐 시기도 있고 대구 잡힐 시기도 있고 그 시기가 따로 있습니다.

이런데, 그날 밤에는 저희들이 하나도 잡지 못한 것은 벌써 고기 잡을 그런 조건이 안 돼 가지고 고기가 안 잡히는 때라 그말이오. 저희들이 밤새껏 해도 못 잡은 것을 봐서 안 잡히는 때인데 또 하물며 낮인데, 하물며 바다 깊은 데에, 이거는 도무지 뭐 자기네들이 경험한 대로 벌써 그날, 그때는 고기가 잘 안 잡히는 때니까 때도 틀렸지 또 시기도 낮이니까 또 틀렸지 또 바다 깊은 데서는 더군다나 더 이치에 맞지도 안하지 이렇게 자기 주관으로서는 도무지 인정되지 않는 이 순종을 했는데, 순종할 때에 자기는 인정되지 않는 것을 예수님에게 무슨 책임 전가나 또는 하도 예수님은 늘 ‘이래라 이래라’ 말씀하는데 저희들이 이해 못 할 말씀만 자꾸하고 또 불가능한 것, 이치에 맞지 않는 불가능한 걸 이래 하지마는서도 고걸 꼭 집어 가지고서 요렇다고 한번, 아이들 말로 코빵을 줄 수가 없는데 마침 됐다 그말이오.

이 고기 잡는 데 아주 무식한 말 이치에 해당치 않는 그런 말씀을 하시니까 이제는 아주 자신이 있습니다.

이러니까, ‘예, 우리는 밤새껏 수고 해도 한 마리도 얻은 게 없지마는 선생이 말하니까’ 선생이 말하니까 ‘선생님'도 붙이지 않고 ‘선생이 말하니까 한번 던지지요’ 턱 던져 가지고서 쭉 당겨 올려서 이거 고기는 틀림없이 안 잡히고 빈 그물만 올라올 거다 하는 그걸, 한번 그래 가지고, 말은 표시는 없어도 그 심리 모든 걸 보면은 예수님을 약꼬 죽일라고 지금 한번 지금 그렇게 한 게 분명하다 말이오.

이랬는데, 던지고 난 다음에 끌어 올릴라고 보니까 생각에 정반대로 의외에 고기가 에워진 것이 그물이 찢어질 만침 에워진 것을 보고 이렇게 고기가 많이 잡힌 거 보고 그때 그만 시몬의 마음이 거게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시몬의 마음이 큰 충격을 받아서 「이를 보고」 「이를 보고」 보고 예수님의 무릎 앞에 엎드려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나를 떠나시옵소서’ 하는 이 고백이 자연적으로 자기 입에서 튀어 나오게 되었으니 고기 잡힌 걸 보고 왜 그럴까? 거기에서 그물 던지기 전에 자기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주님에게 대해서 어떻게 한 그것이 자기가 빤히 안다 그거야.

자기는 오랫 동안 고기 잡는 그런 경험과 체험이 있으니까 거게 맞춰 하는데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은 도무지 이거는 무식한 말이기 때문에 제 말을 인정하니 제 지능을 경험을 인정하고 보니까 예수님의 하시는 말씀은 전적 이거는 믿을 수 없는 참 아주 엉터리 통통 이거 빈 엉터리의 말씀을 한다 이래 생각하니까 예수님은 아주 자기 보기에 멸시가 되어지고 아주 허무한 분이 되고 자기는 지금 참 이거는 뭐 확고한 올바른 지식을 가진 자기가 됐었는 데 턱 그물을 던질 때까지는 그랬는데 그물을 던져 가지고 척 당겨 올려 보니까 고만 정 꺼꾸로 반대로 그만 뒤집어져 버렸습니다. 이라고 보니까 자기에게는 큰 원통과 참 분함이 생겨졌습니다.

자기에게는 큰 원통이 생겨진 것은 주님이 그동안 그렇게 늘 가르치신 말씀이 그 말씀대로 했다고 하면은 이거, 그물 던져 보니까 그저 고기가 잡혀도 몇 마리 잡힐까 했는데, 자기가 처음에는 하나도 안 잡히고 헛일한다 하고서 주님을 멸시하고 그 방편이나 지도를 무시했었고 그저 몇 마리만 잡혀도 ‘잡혔구나’ 이럴 건데 이거 그렇게 아주 불가능한 일이라고 부인된 그 예수님의 명령이 그렇게 뭐 몇십 배가 아니라 몇백 배로 그렇게 이루어진 그것을 보고 주님이 하시는 말씀은 다 이렇게 신실히 이루어지는데 과거에 주님이 말씀하신 그 모든 데에서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이것 보니까 이루어질 그 큰 일, 이루어질 큰 일 그 일이 뭐 고기 이까짓 거는 두고 이 억억만 배도 더 되는 큰 일들이 이루어지는, 성경에 다 그렇지 않습니까? 성경에 약속되는, 생명으로 말하면 영생이요 소유로 말하면 뭐 하늘과 땅의 것이 다 자기 것이 되어지는 이거 뭐 말할 수 없는 큰 것을 ‘이라면 된다’ 하는 말씀들을 많이 했는데 그걸 하나도 안 한 것을 생각하니 큰 승리와 보화를, 큰 축복을 이제 다 취할 수 있었는데 취하지 못한, 큰 축복을 취할 수 있었는데 취하지 못한 걸 생각하니까 원통하기가 짝이 없고 또, 주님이 말씀하신 이 말씀대로 ‘네가 이렇게 하면은 이런 자는 이렇게 망하고 이런 자는 이렇게 벌받고 이런 자는 이렇게 망하고 한다는, 말씀을 어김으로써의 멸망한, 멸망에 대해서 자기가 말씀을 무시했기 때문에 이제까지 뭐, 성공된다는 것도 무시해 버려 버렸고 또 이 말씀을 어기면 큰 네가 낭파와 멸망을 받는다는 그런 것도 다 무시해 버리고 이라니까, 성공된다는 것을 못 한 걸 생각하니까 참 원통하고 또 이 멸망받을 이런 것을 무시해서 척 척 담대히 그렇게 무시하고 척척 해 놨으니 해 놓은 이 일에 지금 보응의 심판이 올 걸 생각하니 기가 차고, 이러니까, 원통과 기막히는 일이 그 베드로에게 생겨졌습니다. 이거 보고, 이걸 보고 고만 그게 생겨졌습니다. 이걸 보고 생겨졌어.

이러니까 베드로에게는 어떻게 됐겠습니까? 자기에게 대해서는 어떻게 됐겠습니까? 자기에게 대해서는 참 말할 수 없이 ‘네가 자살 행위를 해도 분수가 있지’ 이 강퍅하고 미련하고 참, 내가 거짓되니까 주님도 거짓된 줄 알고 이렇게 진실이라는 이것을 부인하고 어리석고 미련하고 강퍅하고 교만하고 이래서 주님을 무시하고 주님의 교훈을 무시한 그것이 전부 자기 큰 성공을 실패한 것이고 자기의 큰 절단과 낭패를 만든 것뿐이라 그말이오.

이러니까, 자신에 대해서 아주 멸시되는 거, 자신에 대해서 멸시되고 자신에 대해서 증오심이 생겨지고 미움이 생겨지고, 이거 뭐 자기에게 대해서 밉기가 짝이 없고 멸시가 짝이 없고 이런 놈은 이거는 도무지 주님을 근방에 상종 못 할 놈이라 하는 것을 자기가 느낀 것이라. ‘나를 떠나시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나는 이렇게 삐뚤어진 인간입니다.’ 이 보는 데에서, 던지기 전에는 자기는 대가락같이 이렇게 높았고 예수님은 참 어리석은 그 주님으로 무시했던 것이 던져서 순종해서 던져 가지고 그물을 당겨 올려 보니까 이걸 보고 난 다음에는 자기는 말할 수 없는 참 멸시와 천대와 무시와 이거는 뭐 당장 이거는 멸망시켜야 될 이거 뭐 천할 수 없는 이런 천물이고 주님은 보니까 점점 진실해지고 두려워지고 높아지고 커지고, 이래서 주님은 커지고 자기는 작아졌다 그말입니다.

이러니까, 주님은 커지고 자기는 작아지고 과거에 대해서는 원통과 두려움만 가득 찬 그것이 베드로의 현실이었습니다. 과거에 주님의 말씀대로 하지 못해서 좋은 것을, 행복을 마련하지 못한 데 대해서 원통함이 가득 찼고 또 주님의 말씀을 어겨서 큰 화를 장만해 놨으니 기막히는 지금, 기가 막히는 두려움이 가득 찼고 요것이 베드로의 현실에 가득 찼습니다.

그러면, 베드로는 그때에 예수님의 발 앞에 꺼꾸러졌을 때에 베드로의 심정은 어떤 심정이었던가? 주의 말씀대로 순종하지 못하여서 지극히 큰 약속의 구원을 이루지 못한 데 대한 그 원통한 요 마음과 주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이렇게 재를 저질러서 잘못을 저질러 놨으니 이거 낭패와 모든 이거 큰 멸망을 마련 했으니까 이 두려움, 원통과 잘못해서 잘못 저질러 놓은 데 대해서 이 기막히는 일, 원통과 기막히는 거 이 둘이 그 베드로의 그때 심정이었었고, 또 하나는 주님은 보니까 그렇게 무시했는 데, 던지기 전에는 주님을 무시해 ‘에이구 무식꾼, 자꾸 뭐 무슨 말만 자꾸 주 대 가지고서 이래라 저래라 이래라 저래라 해도 하나도 맞지도 안한 말’ 인제, 보니까 뭐 ‘대낮에 고기 잡으라고 또 깊은 데 던지라 하고 또 지금은, 밤새도록 하나도 못 잡았는데 뭐 아무데고 그만 던지면 되는 줄 알고’ 납짝 주님은 무시했고 자기는 이렇게 높았었는데 그 던져서 한번 순종하고 난 다음에 주님은 이렇게 점점, 생각할수록 점점 높아지고 진실해지고 거룩하고 참 전능하신 분이고 그분은 크신 분이고 저는 아무것도 아닌 이 거짓부리라는 이 자기로서 자기는 점점 생각할수록 작아지고 주님은 커지고, 주님 말씀을 순종해서 이루지 못한 모든 구원에 대해서는 원통하고 잘못 저질러서 큰 화를 마련해 놓은 데는 기가 막히고 요것이 베드로의 심정이었습니다. 고때 베드로의 심정이 요 심정이 베드로의 심정으로 되어 있을 때에 그때에 주님이 그에게 대해서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베드로는 거게 대해서 소망이 없고 절망이었습니다.

이제 그러니까 다시 이러니, 이렇게 했으니까, 이렇게 제가 주님을 멸시한 거, 주님 말씀을 어겨서 재를 저질러서 큰 낭패를 만들어 놓은 거, 주님이 이렇게 권고하는 말씀을 듣지 안해 가지고서 큰 성공과 승리 얻을 것을 다 얻지 못하고 실패한 거 이런 것을 생각하니까 자기에 대해서는 점점 작아지고 주님은 커지고 자기에 대해서는 절망이 돼지고 미움이 생겨지고 이러니까, 그만 그때에 베드로는 자기에게 대해서 절망이 생겨졌습니다. 미움과 절망이 생겨졌습니다.

그러면, 베드로의 그때의 마음은 뭐이 생겨졌는가? 원통한 마음, 원통한 마음, 분하고 원통한 마음 ‘했으면 될 건데!’ 분하고 원통한 마음, 또 이렇게 이 미련하게 이런 재를 저질러서, 뭐 말씀한 대로 하나도 틀림없이 고대로 딱딱 보응이 되니까 내가 한 그것이 보응이 되면 내가 녹아지고 망해지고 영원히 멸해지고도 남을 만한 큰 잘못을 저질러 놨으니까 기막힌 거, 그 기막히고 두려운, 기막히고 두려운 마음과 또 원통하고 후회되고 분한 마음과 이 두 마음이 베드로의 마음으로서 바꿔졌습니다.

그때는 말씀할 때에 무시하고 ‘뭐 쓸데 없는 소리 자꾸 하고 있어?’ 이렇게 무시해서 예수님의 말씀을 무시했어, 또, 하나 범할 게 아니라 자꾸 얼마든지 그뭐 말하는 대로 짓밟아서, 해 놔도 까짓 무슨 소용있노? 백지 쓸데 없는 말 한다고서. 말씀에 대해서 하지 말라는 것도 무시가 됐고 하라는 데 대해서도 무시가 됐고 그 말하는 예수님 자체에게 대해서도 아주 무시가 됐어. 예수님 자체도 무시가 됐고 자기는 높아졌고, 또, 이러니까, 과거를 다 이래 생각해 보니까 자기는 낮아졌고 미워졌고 주님은 자꾸 높아지고 이렇게 존대해졌고 귀중히 보여지고 주님은 자꾸 귀하게 보여지고 높아지고 이렇게 참 보배롭게 보여졌고 자기는 자꾸 천하게 보여졌고, 자기의 모든 이제까지 온 과거를 생각하고 보니까 자기에게 대해서는 절망이 생겨졌습니다. 미움과 절망.

이러니까, 뭐 이런 것이 무슨 희망이 있겠느냐 이거 무슨 소용이 있느냐, ‘나를 떠나시옵소서’ 하는 것은 자기는 아예 이렇게 못쓸 더러운 자이니, 요렇게 뭐 쓰지 못할 요 희망없는 자이니까 이것이 뭐하겠습니까 하는 자기에게는 완전히 부인돼서 아주 증오심과 아주 자기에게 대해서는 아무 희망없는 전혀 완전 절망이 돼져 버렸던 것입니다. 요 절망한 마음이 그 쌓여졌습니다.

고럴 때에 고 마음이 된 고게다가 주님이 소망을 줬습니다. 주님이 ‘네가 지금 가진’ 몇 가지 마음입니까? 이루지 못한 데 대해서는 원통한 마음, 과거에 말씀대로 지켜서 복을 만들지 못한 데 대해서는 원통한 마음 또 하지 말라는 거 해 가지고 재를 저지른 데 대해서는 두려움과 기막히는 마음, 또, 자기는 보니까 참 말할 수 없는 밉상이요 참 못되고 뭐 만에 하나도 쓸모가 없는 아주 못되고 강퍅하고 아주 못된 절망이요 아주 미운, 미운 자기 절망의 자기요 예수님은 이렇게 참 크시고 위대하시고 높으시고 진실해서 털끝만치도 그에게는 거짓이 없는데 이분을 멸시한, 그분은 점점 커지고 이러니까 자기에게 몇 가지 있습니까? 주님은 커지고 자기는 작아지고, 이거 뭐 여러분들이 기억하기 쉽게 말하는 거라.

주님은 커지고 자기는 작아지고, 또? 주님은 커지고 자기는 작아지고, 주님은 존대히 보여지고 자기는 밉상스레 희망 없게 증오심으로 아주 밉게 보여지고, 그러면 주님과 자기는 정반대입니다.

던지기 전에는 주님은 멸시당했고 자기는 큰데, 자기는 컸는데, 자기는 인정이 돼지고 자기는 높아졌는데 던져서 끌어 올려 보니까 자기는 말할 수 없는 이거는 완전히 쓰지 못할, 아무짝에도 쓰지 못할 인간이 돼져 버렸고 주님은 이렇게 정확 무오의 지극히 존귀하고 참 전능의 분이 점점 돼졌습니다. 그렇츰 얼토당토 않지마는 그라니까 그만 고기가 막 모여들어 이렇게 됐으니까 그분의 곧 전능자라 말이오.

자기는 작아지고 주님은 커지고. 또 과거에 그 하라는 것을 하지 안한 데 대해서, 하라는 것을 하지 아니하고 멸시하고, 주를 멸시하고 말씀을 멸시했기 때문에 하라는 걸 하지 안했다 말이오. 하지 안한 데 대해서는 뭐이 생겨졌습니까? 뭐이 생겨졌습니까? 원통이 생겨졌지요. 그렇지 안해요? ‘했더라면’ 사람들도 요 사소한 것도, 그때 ‘그것을 신청하라 할 때에 그때 신청한 사람들은 그것이 수십 년 애를 써도 안 된, 하나 예를 들면 부동산 이전 같은 것도 그때 이거는 지금 특별 기간이기 때문에 어떤 것이라도 그만 신청만 하라 그라면 대서료도 없이 그만 이전이 막 넘어간다. 그거 뭐 이름이 뭐이지요? ○○○ 집사님, 이름이 뭐입니까, 그거 무슨 조처요, 그게? 특별 조처입니까? 부동산 이동하는 거 말이요? 그때 아무 수속에 의한 순서가 없어도 그만 이동되는 거 그거 특별 조처요. ‘특별 조처법이니까 이 기간 내에는 수속만 하면 된다.’ 이렇는데 자기가 그거 할라고 해도 소유권자가 죽어 버렸지 뭐 대대로 이래 놓으니까 도무지, 온 동네 사람들이 자기 것인 줄 알기는 알지마는서도 명의 이전을 못 하니까 이게 언제 될지 모르지 이거 돈을 암만 들여도 안 되고 이랬는데 특별 조처법에서 ‘지금 요 기간에는 하면 된다’ 이러니까 `뭐 그렇게 다 순서를 밟아 가지고 해야 되는 것인데 그냥 아무나따나 그만 신청만 하면 그게 이전이 넘어올 턱이 있나? 말도 아닌 소리.’ 무시했다 말이오.

무시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한 사람들은 다 돼 버렸어. 이전이 다 돼 버리고 돈도 얼마 들이지도 안하고 그때 그만 무료로 전부 다 이전이 특별 조처법에 다 됐는데 자기는 무시해 가지고 안 됐다 말이오.

그러면, 그 사람이 그 지나고 난 다음에는 이제는 다시 할 도리가 없으니 원통하겠소 안 하겠어? 예? 원통할 거라 말이오. 자꾸 그런 걸 우리가 자꾸 만들어 자꾸 여기다 붙여 봐야 된다 말이오.

이러니까, 이것도 그런데, 다 주님 말씀하신 것은 하늘에서 해와같이 빛나는 것이지 영원히 영광스러운 것이지 뭐, 이 천사만침 되는 게 아니라, 대통령만침 되는 게 아니라 이 모든 피조물 위에 올라가는 이 말할 수 없는 큰 영광된 이런 것을 주님이 하라 했는데 이것 보니까, 이것 보니 했으면 다 되는 건데 안 했으니까 기막히게 원통하다 그말이오. 원통한 마음.

또, 이 말씀 무시하기 때문에 지금 이거 뭐 해결할래야 해결 할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으니까 이거 심판해 가 가지고 심판 앞에서 행한 대로 보응한다고 하면은, 이거 다 무시해서 그렇지, 선악과 하나 먹고 이렇게 다 멸망받았는데 주님 앞에 하지 말라 하는 이런 것을 다 ‘그까짓 거’ 무시해 버려 그렇지 이대로 총총 될 터이니까, 하지 말라는 것을 해 놓은 이 재를 저지른 여게 대해서 화가, 형벌이, 이 보응의 형벌이 총총 올 터이니까 이걸 생각하니 이제 마음에 기막히고 두렵다 말이오. 기막히고 두려운 마음, 원통하고 분한 마음, 이러니까, 원통하고 분한 마음, 또 두렵고 기막히는 마음, 또 자기는 아주 천해지고, 밉상이라 말이오. 그러니까 자기를 그만, 자기를 이거는 불에 사뤄서 죽여야 되고 이거는 뭐, 어떻게 형벌해야 되겠느냐? 이거는 만 가지에 쓸모 없는 이거, 만 가지에 하나도 쓸모 없고 요보다 더 못된 건 없고 요보다 더 이거 못쓸 건 없고, 아주 못쓰고 미워서 자기가 어떻게 밉고 천해 보이고 그만, 그물 던지기 전에는 자기는 높고 주님은 천해졌는데, 자기는 미워 천해서 비교할 수 없이 자기가 천해지고 무시가 돼져 버렸고 주님은 점점 커지고 높아지고 진실하고 위대해지고 존귀해지고 커졌습니다. 커지고, 이라니까, 그에게 몇 가지가 생겨졌습니까. 그 베드로 마음 속에 몇 가지가 생겨졌습니까?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이소. 몇 가지 생겨졌어요? ○○씨 몇 가지 생겨졌지? 뭣뭐? 예배 보면서 딴거 생각했어. 뭐 생각해, 뭐? 예배 볼 때 들어오는 거는 마귀라. 물려쳐야 돼. 무슨 생각을 가져, 가지기를? 더러운 생각 가지지 마.

넷, 넷 아닙니까? 자기에게 대한 것, 주님에게 대한 것, 주님이 하라는 거 하지 못한 거게 대해서 원통과 분함, 하지 말라는 것을 해서 재를 저질러 놓은 거게 대해서 두려움과 기막힘, 네 가지 아닙니까? 네 가지 아닙니까? 이 네 가지에, 그러니까 자기에게 대해서 소망이 있겠습니까 절망이 있겠습니까? 소망이 있겠습니까 절망이 있겠습니까? 소망이 있겠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봅시다. 자기에게 대해서는 아무 희망 없는 절망이 됐겠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봅시다. 절망이 됐습니다.

그라면, 몇 가지 있습니까, 몇 가지 있습니까? 손가락으로 한번 가리켜 보이소.

이제 몇 가지입니까, 몇 가지 있습니까? 뻐뜩 한번 들어 가리켜 봐요. 저 다른 사람 보구로. 녜, 이 다섯 가지입니다. 다섯 가지. 요 다섯 가지는 참 보배라. 예수 믿는 데 요 다섯 가지가 참 보배입니다. 예수님 믿는 데는 요 다섯 가지가 보배입니다. 이거는 정금덩이로 말할 게 아니라 우주보다 보배입니다, 요 다섯 가지는.

요 다섯 가지 보배가 어데가 생겨졌는가? 주님의 말씀을 자기가 이해되지 안하고 인정되지 안하고 무시한, 비합리적이요 비통계적이요 비과학적이라는, 이거는 얼토당토 안 한 말이라고서 도무지 자기로서 이해 안 되는 자기와 거리 먼, 안 되겠다고 만에 하나도 희망 없는 안 되겠다는 요 말씀을 순종해 볼 때에 뭐이 몇 가지 생겼습니까? 손가락으로. 이거 뭐 안 느껴지는 거라.

자기와 동감이 안 되고 자기와 정반대로 거리 먼 그 주의 명령에 순종했을 때에 몇 가지가 생겨졌다고요, 손가락으로? 이래 좀 높이 들어. 희망이 없어. 자기가 깨달아 이러면 ‘몇 가지?’ 막 이래 가지고 하늘로 뛰올라가는 막, ‘이 다섯 가지, 다섯 가지 생겨졌다.’ 자기가 신앙 생활 할 때에 주님의 말씀과 자기 현실과 자기 주관과 맞춰 볼 때에 ‘이 현실에서 요게서는 주님의 말씀대로 하는 날이면 낭패된다. 다를 때는 순종해도 요게서는 주님 말씀대로 순종하면 안 된다.’ 자기 현실에서 자기 마음으로 순종하면 안 된다는 그 양이 들어서 몇 가지를 만들어 냈습니까, 손가락으로? 다섯 가지.

그러면 안 된다는, 요게는 주의 말씀대로 순종하면 안 된다 하는 안 된다는 양이 작으면 고 다섯 가지가 크게 만들어지겠습니까, 안 된다는 부인되는 양이 많아지면 요 다섯 가지가 크게 이루어지겠습니까, 이 다섯 가지가? 주님의 말씀이 내 현실에서 이거는 안 된다, 안 될 거 같다, 안 되겠다, 절대 안 된다! 절대 이거는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면 안 된다!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면 요거는 지금 절단난다! 절단난다고 안 된다는 부인되는 일이 강하면 순종하고 나면은 뭣이 강해집니까? 다섯 가지가 강해집니다. 요거 이해가 됩니까? 다섯 가지가 강해집니다. 쪼끄매 부인되는 거 순종하고 나면 요 다섯 가지가 생길둥 말둥 쪼끄매 생겨집니다.

요렇게, 고 부인된 고 양에 따라서 베드로에게 변화된 요 다섯 가지가 생겨졌습니다. 변화된 다섯 가지가 생겨졌습니다. 요거는 뭐입니까? 자기는 부인하고, 주님은 믿고, 주님의 말씀대로 하라는 걸 하지 못한 데 대해서는 원통함이 생겨졌고, 하지 말라는 걸 한 데 대해서는 기막히는 참 두려움과 후회가 생겨졌고, 이러니까 자기에게 대해서 희망이 없어. 인제 아무 소용 없는 쓸 데 없는 인종지 말자는 자기요 아무데도 쓸 수 없어. 이거는 멸망밖에는 못 할 아주 자기에게 대해서 절망이 생겨졌습니다.

이 다섯 가지가 생겨진 이것이 기독교에서는 제일 보배입니다. 기독자들이 멸망받는 거는 이 다섯 가지가 없는 데서 멸망을 받고 기독자의 다 성공은 이 다섯 가지에서 다 성공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이, 그 심정으로 되어있는 거기에는 과연 최고의 복을 안겨 줄 수가 있고 최고의 복을 안겨 줄 때에 그것을 감당해서 잘 성공시킬 수 있기 때문에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두려워 말아라’ `두려워 말아라' 그러면, 그때 그뭐 베드로가 자기에게 대해 절망이 됐다, 자기는 미워하게 됐다, 또 자기는 원통이 됐다 두려워 후회가 됐다, 기막히게 됐다 하는 그 말을 자꾸 조작배기로 주 모아서 자꾸 그렇게 놔 꾸며대는 게 아니고 주님이 ‘두려워 말아라’ 엎드려졌을 때에 ‘두려워 말아라' 하는 그 말에서 다 그게 다 포함돼 있다 말이오. 그렇지 않습니까? ‘두려워 말아라’ 하는 데에서 그 확실히 포함돼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네가 이제 후로는 사람을 취하리라’ `사람을 취하리라' 요 취하리라 하는 요 말은 사람을 네가 점령하리라, 사람을 수입하리라, 사람을 뺏들리라 그런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원어에는 사람을 네가 뺏들리라 하는 그 뜻이 제일 강하게 돼 가지고 있어요. 사람을 뺏들리라. 사람을 뺏들리라. 네가 원수에게서 사람을 빼앗으리라. 사람을 취하리라. 사람 수입을 네가 가지리라.

이래서, 그러면 그것이, 사람을 취하리라는 그 말씀이 자기를 악령 악성 악습이 다 삼키고 있는데 악령 악성 악습이 삼키고 있는 그 삼킴에서 자기를 빼앗아 구출하리라. 모든, 사망과 죄와 마귀에게 뺏겨 있는 모든 인류를 다 거게서 예수님이 구출함과 같이 구출하리라. 이래서 네가 이제는 사람 부자가 되리라.

사람 부자. 네가 하늘나라에 가면은 지극히 높은, 예수님 다음에 높은 사람으로서 네가 사람으로 제일 부자 되리라. 사람의 인격으로 예수님 다음으로 제일 높은 자, 지혜로 높은 자, 능력으로 높은 자, 권위로 높은 자, 다른 사람들에게 영광으로 높은 자, 지위로 높은 자, 명예로 높은 자, 환영으로 높은 자, 쓸모로 제일 높은 자, 이제 하나님 다음에 신인 양성 일위이신 예수님, 일위이신 예수님 다음에 이렇게 높아지는 이보다도 더 큰 수입이 없다 말이오. 이 사람이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다 차지하고 가질 것이고 하나님의 모든 건 다 그에게 맡길 것이라 그말이오.

이러니까 이 큰 수입인 ‘사람을 취하리라’ 할 때에 요 다섯 가지 심정으로 되어 있는, 요 신앙 경험에서, 순종해 보니까, 겪어 보니까, 실행해 보니까, 신앙 경험에서, 신앙 체험에서 생겨진 이 다섯 가지 심정을 가진 요 다섯 가지로 성화된 요 베드로의 성화 그 성화가, 다섯 가지 성화된 것이 다 망하는 거 아니요? 원통뿐이 아니라 원통 절망 절망 절망 이 다섯 가지가 다 절망 아니요?다섯 가지가 다 이거 다 망한 것 아니요? 다섯 가지 이 절망 절망, 이 화, 이 화 다섯 가지 여기에 예수님께서 지극히 큰 이 소망인 사람을 취하는 이 희망을 줄 때에 이 베드로는 이 다섯 가지를 가졌기 때문에, ‘사람을 취하리라’ 하는 지극히 큰 소망을 능히 달성할 수 있는 자격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원통하니까 이제는 원통한 걸 하지 안하지, 후회되고 두려우니까 이제는 그짓 하지 안하지, 이제는 자기가 멸시되니 자기는 또 교만해서 자기 인정하고 주님 부인하지 안하지, 주님 인정하고 자기는 부인하게 되지, 이렇게 절망된 자에게 주님께서 소망을 주니까 막 기쁘고 즐거워서 달라들지, 이것이 있어야 됩니다.

이것이 예수 믿는 사람에게 제일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것은 어데서 생겨지느냐?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이 순종에서 이것이 나왔지 순종하지 안하면 나오지 안합니다.

그 순종해도 되겠다 싶어서 순종하는 데서 나오는 것은 자기 부인이나 주님 인정은 안 나옵니다. 주님과 나와 동감이 돼서 나도 생각해 보니까 그거 되겠다.

그거 몰랐는데 주님이 가르쳐 주니까 주님이 나보다 지혜가 낫다 싶으지 자기를 그렇게, 자기를 부인하게 되는 그런 것이 나오지 않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주님이 인도하시는 인도를 우리가 순종할 때에는, 자기와 거리가, 자기와 다른 점이 거리가 먼 것이 순종하기가 쉽습니까 거리 가까운 것이 순종하기가 쉽습니까? 어떤 게 순종하기 쉽습니까? 거리 먼 게 순종하기 쉽습니까? 그런 사람 손 들어 보십시오. 아니지요. 거리가 가까운 것, 자기와 비슷비슷한 데 순종하기가 쉽지요.

그러면, 순종하는 데는 자기와 거리가, 자기와 정반대되는 면이 조끄매 있는 데 순종에 수입이 많습니까 자기와에 정반대인 거리가 멀수록 수입이 큽니까? 멀수록 수입이 큽니다.

멀수록 수입이 큰 것은 먼 것을 순종하고 보면은 순종하고 난 다음에는 자기에게 뭣이 큰 것이 생겨집니까? 뭣이 큰 것이 생겨지요? 뭣이 큰 게 생겨져? 저 ○ 집사, 뭐이 큰 게 생겨지지? ‘실행’ 아니라 더 표시하기 쉬운 거 있지 않아? ‘다섯 가지가 큰 게 생겨집니다!’ 이래, 이라면 막 ‘다섯 가지가 큰 게 생겨집니다!’ 자기가 믿었으면 콱 `다섯 가지가 큰 게 생겨집니다!’ 막 자랑하고 싶고 막 떠들고 싶어서 ‘다섯 가지가 큰 게 생겨집니다’ 이렇게 확신이 있어져야 일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그 사람은 절망된 자에게 주님이 희망 주니까 어찌 됩니까? 희망있는 자에게 희망을 줄 때에 놀래서 용기가 강하게 나옵니까 절망됐던 자에게 희망을 줄 때에 용기가 강하게 나옵니까 어데서 강하게 나옵니까? 절망될 때에 강하게 나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러니까, 절망된 자에 소망이 있다하니까 ‘참으로 해 보자’ 이제 과거에 원통이 있으니까 `이제는 하자' 과거에 잘못 저지른 거 두렵고 떨리고 후회되는 거 있으니까 ‘이제는 다시는 하지 않겠다’ 이것이 점점 생겨지지 주님은 점점 믿어지지 자기는 자꾸 부인이 돼지지 이래 가지고서 이 신앙이 이루어지고 자라가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이렇게 이 신앙의 제일 보배로운 요소가 뭐이냐 하면은 이 다섯 가지가 신앙의 보배로운 요소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우리가 요 다섯 가지가 제일 보배로운 요소입니다. 이 다섯 가지가 하나님의 모든 것을 끌어옵니다. 이것을 알아 들어야 돼요. 못 알아 들으면 헛일이야. 끌어오는 거라. 이 다섯 가지가 보배야.

이 다섯 가지가 보배 요걸 여러분들이 기억만 하고 다섯 가지가 왜 보배인가? 자꾸 가 느껴서 과연 다섯 가지는 금보다 은보다 세계보다 우주보다 이 다섯 가지는 전능하시고 계약하신 이 주님 앞에서는 이 다섯 가지가 제일 보배고 이보다 더 큰 보배는 없다 하는 것을 자기가 깨달아질 것이라 그말이오.

이 보배는 하나님께서 자기 현실 현실에서 주시는 것을 딸칵딸칵 다 이루어 가질 수 있는 이 만능의 이 보배이기 때문에 이 보배가 제일 보배인데 이 보배는 어데서만 생겨지는가? 딴 데서 생기지 않습니다. 이 보배는 딴 데서는 생겨지지 않습니다. 이 보배는 주님에게 순종하는 데에서만 생겨집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음이라는 것은 주님이 주시는 선물인데 믿음을 주실 때에는 어떻게 주시는가? 나에게 현실에서 주님의 명령을 인정할 수 없는, 현실에 주의 말씀대로 할라고 하면은 이 현실에서는 주의 말씀대로 하면은 안 되는, 실패되는, 주님과 나와의 거리 먼 현실을 만들어 주는 것이 주님이 믿음의 선물을 줄라고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의사와 내 의사와 거리가 먼 고런 현실을 만들어 줄 때에 고때에 우리는 깨닫기를, 요때에 내가 주님에게 순종만 하면은 요 보배로운 다섯 가지가 나에게 더 확신이 더 돼, 경험해 보니까 ‘됐다. 됐다.’ 이렇게 경험해 보니까 됐다는 이 경험의 신앙과 체험의 신앙에서 확고한 신앙이 생겨진다는 요것을 깨닫고 고런 현실을 기뻐하고 즐거워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요 예수 믿는 거, 요 이치를 따져 가지고서, 이 도리를 깨달아서 도리를 깨달을 때에 ‘아멘!’ 하고서 속에서 불이 나온 그게 성신의 능력이요 전능의 능력입니다. 그거라야 되지 그거 아니고는 딴거는 가지고 아무것도 안 됩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나는 오늘 회개하러 합니다. 회개하러 하는 것은, 저 아래 김해 공항에 ○○○ 목사님이 온다 해서 마중을 나가 가지고 앉았는데 거게서 전도할 마음이 생겨졌어요. ‘전도를 해야 되겠다’ 이랬는데 그때, 전도를 할 마음이 생겨졌는데 ‘자, 내가 여게서 전도를’ 그전에는 뭐 내가 찻간마다 내가 전도를 하고, 전도 강연을 하고서 이 뭐 시장에서 전도 강연 했는데 고만 그거 안 해 버릇하니까 그만 영 그만 약해졌다, 약화가 돼 버렸어.

전도를 할라 하니까 이래서 전도지를 가져 왔으면은 이 전도지 주면서 ‘예수 믿고 구원 얻읍시다’ 이거 전도지를 내놓고 이래 했을 텐데 전도지를 안 가져와 놓으니까 이거 그라면 뭐라고 하면서 예수 믿어 구원 얻으라 할까? 안 해 버릇 하니까 이렇게 그만 못나져 버렸다 말이오. 약해져 버렸어.

약해져서 ‘하자’ ‘하자' 하다 그만 전도를 못 하고 와 버렸다 말이오. 전도를 못 하고 와 버렸어.

왔는데, 집에 와서 생각하니까 “네가 이놈아, 거게서 예수를 전하면은 너를 천하게 볼 것이고, ‘저거 예수 믿는 것 저게 목사로구나’ 너는 수치 당할까 싶어, 다른 사람이 너 욕할까 싶어서, 너를 천하게 볼까 싶어서 네가 못 했지? 전도하는 것도 네가 천해지고 네게 수치될까 싶어 못 한 놈이 네가 뭐 나 위해서 묵숨을 바쳐?” 이런 독촉이 와서 내가 회개를 했습니다.

‘주여 내가 잘못 했습니다. 이제는 내가 전도지 가지지 안하고 오늘 내가 그 시간에 갑니다.

오늘 김해 공항에 열 한시 반에 가 가지고서 그때 있는 사람들에게 내가 전도를 다 하겠습니다, 인제. 회개하고 전도지도 안 가지고 가서 전도하겠습니다.’ 이래 가지고 회개하러 갑니다, 인제.

오늘은 가 가지고서, 그 전도하러 가는데 뉘가 거게서 그저, 욕을 하든지 침을 뱉든지 좀 그런 일이 있으면 참 그게 좋겠다. 내가 너무 나는 높아지고 주님은 이거 부끄러워, 주를 부끄러워 했다, ‘나를 부끄러워 하지 안한 자는, 나를 부끄러워하는 자는’ 바울은 복음을 부끄러워 안 했는데 ‘부끄러워하는 자는 나도 아버지 앞과 천사들 앞에서 부끄러워 하리라’ 이래서, 그것도 안 해 보니까 못 해요. 그전에는 뭐, 저 열차 가면은, 열차에 오르면 그만 거게서 전도 강연을 하고 또 돌아다니며 주욱 전도하고 그 어데든지 대합실에 가면은 거게서 막 전도하고 전도 강연하고 이랬는데, 이거 안 해 버릇 하니까 그만 딱 오그라졌다 말이오. 이래 가지고 팔도 병신되는 거 모양으로 돼 버렸어.

이래서, 이제 오늘 거기 가 가지고서 개봉을 할라 합니다. 개봉을 하고 인제, 거게 가서 개봉을 하고 또 저 양산동도 내가 회개를 했어요 그뭐 차타고 주르르 오고 차타고 가니까 안 됐어서 ‘이제는 고 내 기도실에서 나설 때에는 차를 타지 안하고 걸어 나오면서 만나는 사람마다 전도하고 또 다리 딱 건너 가지고는 고게서 내려 가지고서 내 기도실 갈 때까지 계속 만나는 사람마다 전도하면서 이제 앞으로 가겠습니다.’ 주님 앞에 회개를 하고 자복을 했습니다.

자복을 했는데, 뭐이든지 안 해 보면 그리 돼요. 우리가 주일학교는 자꾸 부흥이 되는데 왜 장년반은 부흥이 안 되는가? 이게 다른 것이 아니고 주일학교는 가면은, 다른 교인은 그걸 못 해요. 어린 아이들 보고 ‘야, 교회 가자, 교회 가자.’ 이 소리를 못 한다 말이오. 고게서 고게인데 못 해요. 이거 참 이거 하나님의 권능입니다. 못 해요.

못 하는데, 우리는 아이를 보고 ‘가자 가자’ 이렇게 할 수 있는 그게 우리 권능이라 말이오. 그들은 장년반에게는 말해요. 장년반에게는 ‘예수 믿읍시다’ 이래도 아이에게는 그거 못 해. 그러니까 그게 개통이 안 돼 그래. 개통이 안 돼서.

이랬는데, 우리도 이제, 아이들에게는 개통이 됐는데 어른들에게 대해서 개통을 해야 되겠어. 아이와같이 어른들도 누구든지 보면 ‘예수 믿읍시다’ 그저, 그저 누구든지 보면 문 밖에 나서서 만나는 사람마다 누구든지 ‘예수 믿고 구원 얻읍시다’ 하는 전도하는 입이 벌어져야 되겠고 이 전도가 개통이 돼야 되겠어요. 전도가 지금 그만 인봉이 딱 돼 개통이 안 돼 버렸어. 이러니까 , 물론 개통된 사람도 있지마는서도 개통 안 된 사람이 많은 통에 안 된다 그말이오.

오늘은 다, 이제부터 다 개통해요. 이제는 보는 사람마다 다 전도하기로 우리가, 전도 개통 오늘부터 할 사람 손 한번 들어 봐요. 오늘부터 개통할 사람. 오늘부터 개통합시다.

녜, 그라면 주님이 기뻐하실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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