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목표(신약교회의 완성)

 

1983. 10. 28. 금새.

 

본문 : 벧전 1:3-7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불로 연단 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귀하다, 그 말은 가치성을 두고서 말하는 것이  아니고. 가치가 금보다 더 가치 있다 하는 그 가치성을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니고  연단성을 두고 말합니다.

 금을 불로 연단 하면 잡것은 다 제해지고 순금만 남는 그것 보다고 영원히  불타지 아니할, 썩지 안할 것. 쇠하지 아니할 것, 더러워지지 아니할 것. 참  하나님 앞에 나타날 때에 칭찬되고 영광되고 존귀히 될 것들, 그런 것들만 남고  그것이 되지못한 것들은 다 제해 버려져서  썩지 안할 것. 쇠하지 안할 것, 더러워지지 아니할 것 하나님 앞에 심판대에  나타날 때에 칭찬될 것, 영광될 것, 존귀될 것, 곧 이렇게 이런 것들만 남고  이것이 못되는 것들은 다 없애 버리는,   말하자면 정선이, 정선되게 아주 정결하게 선별한 것이 금을 불로 연단해서  잡것은 다 타지고 순금만 남는 그것도 순금 외에 모든 것은 다 태워 없애버리고  순전히 순금만 남아 있도록 하는 그것보다도 더 선별해서 칭찬되지 안할 것,  영광되지 아니할 것 존귀되지 아니할 것, 곧 썩지 안할 것. 쇠하지 안할 것  더럽지 아니할 것 순전히 그것만 남기를 금을 연단해서 잡것은 다 타고 순금만  남는 그것보다도 더 세밀히 더 깨끗이 선별되는 그 선별성이 그것보다 더 세밀히  깨끗이 그렇게 선별되도록 그렇게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을 가리켜서 금보다  귀하다 그말입니다.

 이러니까 그 선별성, 선별되는 것, 잡것을 제하고 참 순진한 것 거룩하고  깨끗해저 하나님의 심판 앞에 가도 칭찬될 것, 영광될 것, 존귀될 것, 하나도  '이것은 영광이 되겠나 안 되겠나 존귀가 되겠나 안 되겠나. 이거는 칭찬을 받을  만하나 안하나?' 그런 것이 아니고 완전히 칭찬되고 영광되고 존귀되고 곧 썩지  안할 것 더럽지 안할 것, 쇠하지 안할 것 그것만 남고 그 나머지기 불완전한  것은 완전히 다 제거되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의 신앙 걸음에 여러가지 시련하는  일들을 닥치게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신앙 생활에는 하나님께서 무슨 목적으로 우리에게 이런  현실 저런 현실을 주어서 어떨 때에는 어렵기도 하고. 어떨 때에는 답답하기도  하고, 또 어떨 때에는 우리가 우쭐해지기도 하고 그렇게 우리가 거기 따라서  별별 생각과 마음과 정신과 태도와 행동의 사람으로 이렇게 요동될 수 있는 그런  온갖 그 현실을 뭐 때문에 주시는가?   주시는 것은 우리에게 잘한다고 이렇게 해도 혹 썩을 것이 조그매 섞여 있고,  더러워질 것이 조금 섞여 있고 쇠해질 것들이 조금 섞여 있고. 그때 하나님의  심판 앞에 나타날 때에 칭찬되지 못할 것이. 존귀되지 못할 것이. 영광되지 못할  것이 조그만 치라도 섞여 있으면 그 섞여 있는 그것을 하나도 섞여 있지 않도록  남아 있지 않도록 그것을 완전히 제거해 버리고 참 순금 연단해서 불로 연단해서  순금 만든 순금보다도 더 온전하고 깨끗해서 잡것이 하나도 없도록 그렇게  하시기 위해 가지고 우리에게 여러 가지 현실을 주신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현실을 만날 때마다 이 현실에서는 어떤 그 인본주의가 제거되며, 어떤  세상주의가 제거되며, 어떤 온전치 못할 것이 제거되고 온전치 못할 생각이나,  온전치 못할 뜻이나, 온전치 못할 동기나 목적이나, 방편이나, 온전치 못할  결과나 그런 것들을 제거하기 위해서 주시는 현실인가 하는 것을 우리는 알고  살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현실을 만날 때에 그 현실이 그저 살기에 쉬우냐 어려우냐? 또 내게  무슨 이런면 물질면이나 지위면 이나 무슨 평강면 이나 이면이 좋으냐 하찮으냐?  유익 되냐 또 손해될 것이냐? 이런 것을 표준 해 가지고 현실을 우리는  좋아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여기는 이 세상과 나의 좋고 나쁜 그것을 표준 하는 것이 아니고 좋든지  나쁘든지 그것은 상관없이 다만 '하나님께서 썩지 안할 것, 쇠하지 안할 것.

더러워지지 안할 것. 참 하나님의 심판 앞에 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가 될  것 그런 것들을 선별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현실이요 그런 것들이  되지못한 것들은 다 제거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현실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여기에서는 무슨 내 주관을 태워버리려고 하나님께서 이 현실을 주셨는가?  여기에서는 어떤 면으로 나를 부인케 하려고 현실을 주셨는가? 어떤 면으로 나를  부인하고 하나님을 믿도록 하기 위해서 현실을 주셨는가? 또 여기에는 어떤  면으로 내 힘으로 하는 그런 것을 제해버려 버리고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서  하도록 그렇게 주셨는가?'  그것을 우리가 바로 아는 것이 내 현실을 만들어 주신 주님과 그 현실을 당한  나와의 목적이 같고 의견이 같고 소망이 같으면 이제 방편도 같이해 가지고 같은  좋은 연단을 받아서 그 현실에서 제거할 것을 다 제거해 버리고, 그 현실에서  태울 것을 다 태워서 그 현실에서 나를 부인할 걸 부인하고 그 현실에서  하나님의 의사를 따르는 것을 결정하고 그 현실에서 내 능력을 내 힘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능력이 와서 일하는 그 능력으로 바꾸어지도록 이렇게 되는 그것을  우리가 소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과거에 육체의 이스라엘도 애굽에서 인도하셔 가지고  가나안으로 인도하실 때에 그 중간에 그런 일들이 있는 걸 우리가 잘 압니다. 그  중간에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통과할 수 없는 그런 어려움을 겪게 했고, 또  인간의 힘이나 뭐 그런 걸 가지고 먹을 수 없는, 인간의 힘으로서는 도무지 먹고  살 수 없는 그런 형편을 통과하게 됐고, 또 인간으로서는 먹을 수 없는 인간의  힘으로나 인간의 지혜로나 인간의 방편으로는 먹을 수 없는 그런 형편을  통과하게도 했고, 또 인간의 그 자기네들 힘으로서는 도무지 옷을 만들어 입고  살 수 없는 그런 형편도 통과하게 했고, 또 자기네들 힘으로서는 대적에게  전쟁해서 그 대적의 손에서 벗어나거나 살아나거나 거기서 죽음을 면할 수 없는  그런 형편도 통과했습니다.

 참 생사에 대해서도 도무지 인간 힘으로는 안 죽을 수 없고 살아 날 수 없고  인간 힘으로는 먹을 수 없고 마실 수 없고 입을 수 없고 하는 그런 형편을  통과시켰습니다. 통과할 때에 그 형편은 순전히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된 것을  우리에게 잘 보여줍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거울로 주신 일입니다.

 생사에 홍해바다 그런 것도 어떻게 그 인간의 힘으로는 도무지 거기 산다는  것은 천부당 만부당한 일입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절대 살 수 없는 그런  형편입니다. 또 먹을 수 없고 마실 수도 없고 사십 년 동안이나 길쌈을 할 수  없는 그런 때니까 입을 수 없는 그런 곳이요 또 그 모든 한서차도 많고 아주  바람들도 폭풍들도 많고 있는 그런 아주 험악한 그런 빈 들판인데 거기에서  도무지 유지될 수 없는 그런 형편으로 하나님이 인도하시고 그 형편에서 하나님  한 분이 모든 것을 담당해 가지고 결과적으로는 아무 낭패될 일이 없고 안 될  일이 없이 그렇게 통과해서 구원받은 것을 우리들이 봅니다.

 그러면 육체의 이스라엘은 아직까지 교회로 말하면 어린 때입니다. 육체의  이스라엘은 신령한 이스라엘에 비해서 어린 때요, 또 미개한 때요 또 모든 것이  다 지식적으로도 천박한 때입니다. 왜? 많은 보이는 그 간증이 적었고 경험이  적었고 체험이 적었고, 또 그런 일들을 누구에게 무슨 증거 받은 일이 없다  그거요.

 그러나 우리는 구약 시대에 있는 모든 것을 다 증거 받아서 "이런 일에는  이렇게 신기한 일이 나타났다, 이런 일에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됐다 이런 것  저런 것 모든 것 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해결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써 해결  못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하는 것을 우리들은 다 듣고 보고했습니다.

 그러기에 구약 육체의 이스라엘에 비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는 더 많은 교훈을  주셨고, 많은 모든 증거를 주셨고, 많고 광대한 그런 지식을 우리에게 주셨고,  또 우리에게 허락하신 구원도 그들에게 비해서 비교 못할 만치 큰 구원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러니까 그분이 우리를 인도하시는 그 인도에 어떻게 유치한 어린아이를  인도하실 때와 같은 그만한 어려움도 우리에게 없겠는가? 어린아이를 인도하는  그때보다 우리는 장성한 자이니까 우리를 인도하는 데에는 더 장성한 것만치 더  구원이 그때보다 더 영광스러운 구원인 것만치 그 구원을 이루고 또 그 교훈을  따라서 순종하려 하면은 더 어려운 그런 순서를 주시지 아니할 것인가 하는 것을  우리 는 짐작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준비는 그 결과가 클수록 준비는 힘든다는 것을 우리가 다 필연성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 더 높고 귀한 그 존귀한 책임을 가지려고 하면 그만치 그  이하에 있는 모든 사람들보다 탁월한 그런 지능을 가지지 아니하면 안된다는  것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주신 소망이 구약 때보다 더 큽니다. 또 우리가 모든 과거에  이어서 내려온 그 모든 유래한 그 순서가 우리는 많은 유래를 받아서 통과해서  장성한 위치에 놓여 있는 우리들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소망 면으로 보든지, 또 우리의 성장 면으로 보든지 우리가  내려온 그런 순서를 보든지 모든 것을 봐도 육체의 이스라엘에게 당한 것보다도  더 어려운 일이 당한다는 그것이 필연한 일로 또 더 어려운 그 순서를 겪어야  된다는 것이, 더 어려운 시험이 있어야 될 것이라는 것이 또 그들보다도 더 정밀  되어서 더 깨끗해지고 더 온전해져야 될 것인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너희들의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낫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오지 못한다" 이랬습니다. 그들은 들어온 그런 것이라도 너희들은 안된다.

너희들은 그 정도 가지고는 안된다. "천국에서는 어린 아이라도 세례 요한보다  더 크다" 그 말은 구약의 끝을 맺은 사람이 세례 요한인데 구약의 끝을 맺은  구약으로서는 제일 최종 최고 최대의 최완전이라고 하는 세례 요한보다 더 신약  시대는 온전해져야 된다 하는 그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천국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다음에 심판 너머 있는 그 천국을 가리켜  말함이 아니고 구약 때는 주님을 바라보는 시대이기 때문에 천국을 바라보는 그  시대요 신약은 주님이 오셔 가지고 우리 개인 안에도 내주 하시고 교회 안에도  내주 하시고. 구약 때는 밖에서 역사 하시고 신약 때는 안에 와서 역사 하시기  때문에 신약 때를 가리켜서 천국이라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신약 때에 속한 자는 구약 때에 속한 자의 최대 최종의 자보다  더 낫지 아니하면' 더 크다, '낫지 아니하면' 더 크다, 서기관과 바리새인은  구약에 속한 사람들인데 그들보다 더 온전해야 되고 더 커야 된다.

 그러니까 그들보다도 하나님의 은혜인 성신의 역사도, 말세는 신약 시대를,  가르쳐서 말합니다. 처음에 노아 시대가 있었고 육체의 이스라엘 시대가 있었고  신약 시대가 있는데 신약 시대는 세 동가리로 말하면 마지막 토막입니다. 그런데  이 말세는 그런 때보다도 더 영광된 때요 더 어려운 때요 더 장성한 때기 때문에  하나님의 요구도 더 큽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역사 하시는 성령도 "말세에 남종과  여종들에게 성령을 물 붓듯 부어 준다" 그렇게 말씀을 했고 또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 안에 가득 찼다" 또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이러니까 이런 모로 보든지 저런 모로 보든지 어떤 모로 보든지 신약 시대에  신앙 생활하는 것은 구약 시대의 신앙보다도 더 탁월한 신앙이어야 된다. 또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도 더 장성한 자에게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요구도  크다 당신이 베푸신 것이 크다 또 우리가 얻어 가질 것이 크다.

 그러기 때문에 모든 것은 크고 모든 것은 다 보다 위에 있는데 우리가 신앙  생활하는 데에는, 신앙 생활하는 데에 그 연단 받는 것은. 우리가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을 따라서 걸어가는 그 면에 있어서는 희미해질 것인가? 구약  때보다 희미할 것인가? 구약 때보다 쉬울 것인가? 수월할 것인가? 그렇게 생각할  수 없습니다.

 구약 때에 하나를 하나님이 요구했으면 신약 때는 둘을 요구하실 것이고 구약  때에는 그저 조금 자기를 부인하면 신약 때에는 완전히 부인하기를 원할 것이요,  구약 때보다 신약 때는 더 깨끗하기를. 완전히 자기를 더 부인하기를, 하나님을  더 믿고 의지하고 바라기를 이것을 하나님이 더 원하시는 그것이 필연한 일이  아닌가 그것을 우리는 생각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구약 시대의 율법 시대와 신약 시대를 비교를 한 일이 많습니다.

"그 때에도 그러하거든 하물며 너희들이겠느냐? 그 때도 몇 증인이 있으면 아무  문제없이 다 그것을 정죄했거든 하물며 너희들이겠느냐?" 이렇게 비교를 해서  말세에 처해 있는 신약 교회는 하나님이 은혜 베푸심도 탁월했고, 또 간섭하심도  탁월했고, 또 와서 역사 하심도 내주해 가지고 우리 안에 들어와 가지고 직접  역사를 하시고 성령도 충만히 부어 주시고 이랬으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신  일이 보다 큽니다. 구약 시대보다 더 큽니다. 또 우리는 더 크고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또 우리는 믿는 도리에 대해서도 아주 정확한 도를 더 확실히  우리는 받고 배웠습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이 도를 받아 가지고 걸어가는 우리의 길이 구약 성도 만치 그  믿는 것 가지고 되겠는가? 또 구약 성도 만치 그런 일만 당하리라고 생각하는가?  그보다 더 큰 일, 어려운 일, 더 구약 때보다 더 믿어야 될 일, 더 바라봐야 될  일, 더 자기를 부인해야 될 일 그런 일이 우리 앞에 닥쳐질 연단들이 아닌가  그렇게 우리가 생각을 가지고 단속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구약 때 그 사람들도 그저 다른 내적인 신령한 면은 그들에게  유치했지마는 그저 외부적이라도 먹는 것, 입는 것, 마시는 것 모든 원수들로  더불어 대항해서 싸우는 것, 또 자기의 앞길이 캄캄한 것 그 홍해 바다가  가로막는, 앞길이 가로막는 일. 또 앞길은 가로막고 있는데 자기들에게 큰  강하고 무서운 세력으로서 압력을 하고 있는 것 말할 수 없는 그 압력, 또  앞으로는 자기로서는 도무지 어떻게 피신할 길이 없는 그런 앞길. 이런 것을  그들이 닥쳤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보다 더 강하고 어려움이 닥칠 것이라는 것은 필연한 일이기  때문에 이 일이 그 신약 교회에 종종 닥쳤지마는 사람들은 그만 그것을 무심히  여겨서 다 패전해도 별 표가 안 나니까, 옛날은 애굽에서 삼켜지면은 죽었지만  지금은 세상에게 삼켜져봐도 죽지 않습니다. 세상에 삼켜져봐도, 신령한 눈으로  보면 그 신앙 인격이나 믿음이나 자기의 양심이나 하나님 바라보는 소망이나  그런 건 다 죽었습니다.

 죽고 순전히 바꾸어서 세상을 바라보고, 세상을 의지하고, 세상 주장대로  세상을 따라서 움직이는 이 완전히 송장으로, 말하자면 신앙으로 말하자면  송장으로 살지마는 그것을 죽었다는 인식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에 별 표를 안  난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것을 연습해야 되겠습니다. 내 앞에 나로서는 해결할 수  없는 참 층암 절벽 홍해 바다와 같은 그런 앞 길에 내가 뚫고 나갈 수 없는 그런  어려움이 우리에게 있을 것을 각오하고, 또 그 앞길은 어려운데 나를 강한  세력으로 들이 눌러서, 구약 성도들도 다 그랬습니다. 이긴 사람들은  다니엘에게 그 왕이 사자구덩이 넣는다는 그것도 어렵지마는 모두 다 다니엘을  다 죽이려고 모해했는데 제일 권세 있는 다리오 왕만큼은 다니엘을 아까워서  살리려고 동정하는 그 동정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루 종일 사정을 했으니까,  사정하는 그 사정의 딱한 일은 그 뭐 죽는 것보다 횔씬 그 어려운 것입니다.

우리도 겪어 보면 참 사정에 걸려지는 그것은 목숨을 내놓는 그거는 쉽지마는 그  사정을 그것을 뗀다는 그것은 어떻게 어려운지 모릅니다.

 그런 일이 닥쳤습니다. 그럴 때에 다니엘은 조금도 주저하지 안하고 그때에  믿음으로 하나님의 인도 따라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 것을 그들은 믿었습니다.

 '뭐 내 힘으로 안 되지만, 언제는 내 힘으로 살았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았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면 끝나면 끝나는 것이 더 좋고 또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서 변동시키면 변동시키는 게 좋다.' 이렇게 생각하고 능력으로  살았고 하나님의 지혜로 살았지, 그럴 때에 자기 지혜를 아예. 일찍부터 자기  의사를 쓰지 안하기를 일찍부터 연습했습니다.

 다니엘 같은 사람은 일찍부터 자기 의사를 쓰지 않기를 연습했고 또 자기  힘으로 뭐 하려 하는 것 아니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기를 연습했기 때문에  이제까지 경험이나 체험한 것이 그저 이런 것이나 저런 것이나 무조건 하나님의  의사로 살았고, 또 하나님의 능력으로 와서 일해 줄 것을 바라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았고,   하나님의 의사와 하나님의 능력으로 산 일을 늘 평소에 연습해서 그만 그것이  숙달돼 가지고 그것이 자기 생활이 됐기 때문에 뭐 사자구덩이 들어간다  기도하지 말아라, 무슨 일이 온다 해도 주저하지도 않고 별것도 아니고 그저  그것도 하나님의 의사 따라서, 내 의사대로 할 게 아니라 하나님의 의사 따라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또 거기에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는 그것을 자기가  완전히 달성해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능력 앞에는, 사람이 보기에는 크고  작고 쉽고 어려운 것이 있지 하나님에게는 크고 작고 쉽고 어려울 것이 아무것도  없다 말이오. 똑 같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아무런 그에게 충격이나 자극이나 없이 그저 큰 것 닥치면  하나님의 큰 역사를 받겠고 입겠고, 어려운 일 닥치면 하나님의 더 큰 능력이  와서 자기를 도와서 역사할 것이고 또 인간의 의사에 도무지 인정 못 할 일이  있으면 거기에는 인간의 의사를 다 부정하시는 하나님의 의사가 나타나서 역사할  것을 자기가 바라기 때문에 더 기쁘고 즐겁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고로 오늘 우리가과연 의식주라든지 또 자기에게 당한 깜깜 한 미래,  깜깜한 그 현실, 자기에게 참 자기가 해결할 수 없는 그 어려운 현실, 그 현실  해결을 또 하나님에게 맡겨놓고 현실 해결에 어떤 어려움이라도 그 현실을 내가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나갈 때에는 그때는 그 현실에서 자기가 바싹 부숴질 만한  그런 어떠한 인간 의사로서는 사망 외에는 없는 그런 현실이라도 자기 현실을  하나님 인도를 의심 없이 주저없이 뿍뿍 따라서 나갈 수 있는 그런 신앙이  됐는지?   자기 앞에 애굽같은 그런 어떤 그 세력의 탄압, 상관의 탄압, 수상의 탄압,  자기의 모든 주인의 탄압, 자기에게 관련되어 있는 자기를 주장하는 그 사람의  탄압, 어떤 탄압이 올지라도 그런 탄압에 대해서 아무런 억압되지 안하고, 아무  염려되지 아니하고, 그 탄압에도 오건 말건 그 탄압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다 그  모든 것을 하나님 이 해결해 줄 것을 인정하고 그저 거기에 대해서도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그 뜻만 찾아 가지고 그대로만 나갈 수 있는 이런 사람이 되어  있는지?   최종은 이것입니다. 최종은 이렇게 모든 것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의사를 따르고  모든 능력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는 사람 하나님의 의사로만 살고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사는 이 사람이 되어 지는 이것이 우리의 최종의 결론이요  결정입니다. 종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 평소에 우리 생활에서 이런 일을 하나님은 연단시켜서  사소한 것으로 자꾸 연단을 시키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쉬운 것부터, 쉬운 것부터 내 힘으로 내 의사로 사는  그런 것을 버리고, 아주 사소한, 그거는 뭐 사소한 그것은 잘못 돼 봤자 큰 손해  아니고 큰 낭패될 것 아니니까 그 문제가 아니니까, 거기에서부터 연습을 해서  사소한 것부터 내 의사로 하지 아니하고 주님의 의사로, 사소한 것부터 내  힘으로 하지 아니하고 주님의 힘으로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그것도 할 수 있는  그것도 하나님의 능력이 와서 하도록 또 내 의사나 하나님 의사나 비슷한 그런  것도 하나님의 의사로,   그러면 하나님의 의사만 따르고 우리가 이 세상 일 모양으로 하 기는 내가  하지마는 여기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될런지 그거는 모르기 때문에 그것은  선생님이 와서 지도해 주는 대로 내가 그대로 하겠다 하는 그와 같은 방편이  있겠습니다.

 지도는 하나님이 하시는 지도를 따르고 하기는 내가 하겠다 의사는 하나님의  의사를 자기가 써서 하나님의 의사를 힘입어서 하나님의 의사로 하는 의사만  자기가 쓰는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고, 의사 뿐 아니라 작은 것 부터 하나님의  능력이 와서 하도록, 하나님의 능력이 와서 하도록 자기는 그저 거기에 대해서  이 일을 하겠다 하는 그런 욕망이나 그런 문제나 '이것은 사소한 일이니까 네가  해도 되지 않느냐? 이것은 사소한 일이니까 네가 해도 되지 않느냐?'  예를 들면 하나님하고 둘이 상대했을 때에 '이거는 쉬운 일이니까 네가 해도  되지 않느냐?' 이렇게 할 때에 '이것은 쉬운 일이니까-하나님이-네가 해도 되지  않느냐?' '주님, 나는 쉽고 어렵고 내 일에 대해서는 나는 내가 안 하기로  하나님하고 약속하지 안했습니까? 암만 쉬운 일이라도 나는 그것 내가 안  합니다. 어려운 일이라도 내 가 안 합니다. 나는 안 합니다.'  '그러면 너 뭐할래?' '나는 주님이 시키시는 그 일만 하지 내 일 내가 안  합니다. 내 일은 당신에게 다 맡기지 안했습니까? 다만 나는 당신이 시키시는  대로 하는 것뿐입니다. 요렇게 구별해서. 지극 히 작은 것도 '요거는 요거는  내가 해도 되겠으니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내가 성취시키자. 하는 그런 일을  우리가 시험에 들지마 그런 일 하지 말고 작은 것이나 큰 것이나,  예를 들어 하나님하고 문답한다면 하나님이'어려운 일은 내가 해 주지만 쉬운  일 요런 것은 네가 할 수가 있지 않느냐? 내가 할 수 있으니 요 일은 네가 해라  그렇게 말할 것이라 말이오. 그렇게 말 해도  그 작은 일이라도 '요것은 네가 할 만한 일이기 때문에 이걸 해라' '그러면  하나님 어떻게 해야 될까요?' '요렇게 요렇게 하면 된다' 시키는 하나님의  지도만 받으려고 하지 말고 그것 아예,  '녜, 지도도 당신 시키는 대로 하지마는 나는 이거 하기 위해서 당신 시키는  대로 하지 않습니다. 이거 하기 위해서 당신 이 일을 내가 하기 위해서 당신  지도받는 것 아닙니다. 나는 당신이 나 시키시는 대로 나 하는 것 그거뿐이지 이  일을 하기 위해서 내가 당신 시키는 대로 하는 것 아닙니다. 이 일을 성공하는  데에 당신의 의사를 채용하는 것 아닙니다. 또 당신 의사만 채용하고 일을  성공하는 그 실력은 내 힘으로 하는 것 아닙니다. 나는 내 힘으로서는 하지  안하기로 단정을 지워서 주님하고 약속을 해서 나는 내 의사도 내 힘도 이거는  안 하기로 했고 단지 나 하는 것은 내게 어려운 일이 닥치든지 쉬운 일이  닥치든지 뭐 복잡한 일 닥치든지 그거는 나는 모릅니다. 주님이 다 맡기라 했기  때문에 주님에게 다 맡겼습니다.

 다만 나는 주님이 시키시는 이 일이 뭐이 될런지도 모릅니다. 주님 이 시키시는  것 가라면 가고 오라 하면 오고 앉으라 하면 앉고 일어서라 하면 일어서고,  말하라 하면 말하고 말하지 말라면 말 안 하고 이렇게 당신 시키시는 대로 하는  이것이 무엇을 하려고 시키시는지 그것도 모릅니다. 그저 시키시는 대로만 내가  현실에서 하는 것 뿐입니다. 이 일을 맡아서 하실 이는 이는 당신만이 이 일을  하십니다.

 그런고로 내 일은 전부 당신이 하십니다. 여기에 대해서 뭐 능력이나 의사나  내가 하는 것은 하나도 가담하지 안하고 순전히 당신 혼자의 의자로 당신 혼자의  능력으로 이 일을 이루어 주시고 나는 당신 시키시는 대로 하는 것뿐입니다.

 요렇게 딱 구별을 해 가지고 해서 하나도 당신의 의사가 아닌 내 의사가 거기에  조금도 섞이지 안하도록 당신의 능력이 아닌 내 능력이 하나도 섞이지 안하도록.

왜? 하나님이 심판할 때에 당신의 능력이 아닌 건 다 불타 버립니다. 당신의  능력이 아닌 것은 불타기 때문에 당신의 능력만으로 되는 것 그것만이 되기  때문에 그것을 하나님이 하시기 위해서 현실에서 이런 연단 저런 연단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평소에 중대한 것은 먹고 마시고 입는 이것이  중대합니다. 의식주라는 이것이 뭐 사소한 문제가 아니고 중대한 문제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의식주부터 평소부터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가 먹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안 먹이면 죽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먹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입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마시고. 하나님의 인도로 먹고 마시고 살고 그저 내 먹고  마시고 사는 전부는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능력 그 영감과 진리 이것으로만 내  의식주는 되고,  내 의식주를 내 힘으로나 내 의사로나 무엇으로써 하지 안하고 순전히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큰 것이나 작은 것이나 움직일 것과 또 하나님이 의사를 따라서만  모든 것을 다 계획하고 방편을 삼을 것 요것을 우리가 쉬운 것부터 자꾸 이렇게  해서.

 참 그 내가 그 장로님 말 자꾸 하는데 계시 13장에. 앞으로는 그 시험이 옛날  시험과 달라서 이제까지 오는 시험은 예수를 못 믿도록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도록 하는 그런 시험이다.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도록,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수 없고 주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도록 이렇게 하는 이 시힘이었지마는  앞으로는 그런 시험이 아니고 '어짜든지 예수 하나님을 잘 믿어라. 하나님을 잘  믿어라. 하나님의 능력이면 살 것이고. 하나님의 능력 전지 전능으로만 살 수  있고 전지 전능 이 아니면 다 가다가 말라 죽을 수 있는, 전지 전능으로만 살 수  있는 그 시험이 올 것이다.'  전지 전능으로만 사는 사람은 그뭐 문제가 없이 전지 전능으로 사니까 전지  전능은 막을 자가 없기 때문에. 전지 전능을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고 전지  전능으로만 사는 사람은 아무 어려움 없이 살 것이고 전지 전능에 자기 것이  조금이라도 섞여 있으면 그것이 암병과 같이 되어져 가지고 마지막에는 그것  때문에 이제 살 수 없도록 그렇게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용해 가지고 우리에게  그런 시련이 오는 것이 이것이 말세의 시련이다.

 그러니까 말세는 예수 못 믿구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잘 믿어라 예수 잘  믿어라. 네가 정말로 예수를 잘 맏으면 하나님의 능력이면 능치 못할 것이 없기  때문에 너거가 뭐 의식주니 그런 거 뭐 이런 지저분한 이거 형이하학적인 이런  그 수평선 이하에 있는 이 세상 사람들이 먹고 사는 지저분한 것 이런 것으로  너회들이 없다고 살지 못하겠고 이런 것들로 살려고 하지 마라. 이런 세상을  초월한 하나님 능력으로 살고 하나님의 지혜로 살 수 있다고 성경에 하지 안  했느냐? 그러니까 너거가 잘 믿으면 공연히 뭐 우리와 같이 농사 짓거나 또  이렇게 밥을 먹어야 산다, 직접 이런 무슨 과학을 이용 해야 된다 그렇게 할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능력이면 능치 못할 것이 없으니까 초자연의 능력으로  모든 자원 공급도 네가 사는 데에 그 모든 생활에 자원 그것도 하나님이 직접  너희들에게 자원을 줄 수 있는 그런 신앙으로 살아라.' 어짜든지 잘 믿는 사람  믿는 사람을 잘 믿도록 이렇게 하라는 이런 시험이 올 것이다.

 이러기 때문에 세상이 기독자를 박해하는 것이 지금과 같이 많다 이다음에  박해는 의식주 그런 걸 다 없애버린다 의식주 그런 절 저거 힘대로는 다 굶어서  못 먹고, 굶어 죽고, 벗어 죽도록 그렇게 만들 것이다 그것이 그들이 교회에  박해다.

 그래 만들 때에 그때에 하나님만을 평소에 연습한 사람은' 너거 힘으로 내가  먹었나? 뭐 내 힘으로 먹었나? 과학으로 먹었나? 하나님이 먹여 주시니 먹었고  하나님이 입히니 입었으니까 너거가 아무리 그래도 구약의 이스라엘 때에도  만나로 사십 년 동안이나 먹였고 반석을 쳐서 마시기도 했고, 사십 년 동안  길쌈하지 안해도 입고 살았고 뭐 앞에 어떤 장벽이 있어도 홍해가 있는 것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육지 되어서 건넜고 이러니까 이 하나님 한 분이 계시니 문제  없다.' 이 하나님 한 분으로 전부를 삼을 수 있는 이 사람이면 통과되고 이  사람이 아니면 그때 다 박해에 다 머리를 숙일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손에나 이마에 표받지 안한 자 또 우상에게 경배하지 안한 자 그런 자들은 다  매매를 못 하게 한다" 매매 못 하게 한다는 그 매매 못 하면 못 삽니다. 도시  사람이 매매 없으면 다 굶어 죽지 않습니까? 쌀을 팔지 못하고 사지 못하는데.

굶어 죽을 것 아니겠소? 또 모든 시골 사람도 그렇고 다 그렇습니다.

 이러니까 매매들을 못 해, 사업을 못 해, 생활을 못하게 합니다. 이 모든  인간적인 이 불택자와 같은 세속적인 세상적인 이 생활을 하지 못하고 초자연의  능력이 와 가지고만, 이래 먹든지 저래 먹든지 초자연의 능력으로만 살 수 있는  이것이 되도록 하나님께서 마지막에는 연단하신다  이것이 크고 영화로운 날이요 하나님이 참으로 보실 때에 보배로운 탑을 쌓고서  탑 꼭대기는 제일 보배로운 금이나 무엇이나 그런 걸 가지고 그 탑 꼭대기를  하는 것처럼 "우리가 아니면 저로 하여금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했다" 이는  하나님이 요구하는 것이 신약 시대의 교회는 이것이 당신이 요구하시는 신약  교회의 완성이라.

 이랬는데 신약 시대에 이 의인들이 구약 시대 의인들보다 이 모든 교회사를  보면 더 뛰어났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일을 지금 닥치지 못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도 그만 지금부터 연습해 가지고 아예 우리 인식이 작은 것도  자기가 알 것이라 말이오. 이거 사람으로서는 안 되겠는데 하나님의 뜻대로 한번  해 보자 하나님의 뜻대로 이래 했는데 안 죽고 사니 하나님의 뜻대로 해도 안  죽고 살아. '하나님의 뜻대로 해도 안 죽고 산다. 죄 짓지 안해도 안 죽고  살았다. 또 의롭게 살 아도 안 죽고 살았다. 하나님과 동행해도 안 죽고  살았다.' 이것이 자꾸 여러번 여러번 경험하고 실험하고 체험이 되어져서 앞으로  뭐 그런 것이 있다 해도 그런 것을 우리가 조금도 상관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라야 살 수 있는 순전히 하나님의 당신의 의사 당신의 능력으로만 나는 살지  땅 위에 있는 것으로 살지 않는다는 것을 땅의 것으로 살면서 겉은 땅위의  것으로 살지만 속에는 자기 주관대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사는 그 사람이  점점 되어져서 나중에 껍데기까지도 사람 볼 때에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사는  이런 사람이 되는 데까지 나아갈 이런 연단을 가지고 우리는 신앙을 목표 해야  되겠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지금까지 등록된 사람은 이천칠백이십일 명이 등록을 하고 이 기도를 합니다.

그래서 여기 와서 기도하는 사람은 저녁으로 와서 기도하는 사람이 육백사십구  명이 와서 기도하고. 등록한 사람은 이천 칠백이십일 명이 등록을 하고 자기  곳에서 기도합니다. 자기 곳에서 산에서도 기도하고, 공장에서도 기도하고. 자기  집에서도 기도하고, 복잡한 일을 하면서 기도의 일곱 제목을 생각하면서 키도를  하고 여기 와서 등록을 하는데, 여기 와서 한다고 등록한 사람이 이천칠백  이십일 명입니다.

 그런고로 어쩌든지 우리가 이 기도만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살 길을 열어  주시고 우리가 하나님 한 분으로 하나님이 없는 가운 데에서 모든 것을 지으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지으신 것 그것이 필요 할 때는 필요하지마는 하나님이 없는  가운데 그걸 지으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지어 놓으신 그것이 우리에게 필요하면  그것, 또 그것이 필요 없을 때는 당신이 직접,  어쨌든지 우리는 하나님 한 분으로서 모든 것을 다 삼고 하나님 한 분으로서  우리에게는 모든 면에 족족한 그분 한 분이면 모든 것이 우리의 전부의 전부가  될 수 있는 요것을 당신이 원하시고 요 신앙이 참으로 주님이 요구하시는  신앙이요 이것이 칭찬과 영광과 존귀될 것뿐이지 아무도 무엇이 와 가지고  훼방하고 '너는 이것도 들어 있지 않느냐?' 그런 것에 훼방받을 것 하나도 없고  모두 다 칭찬하고 존귀히 여기고 '아! 아!' 입을 벌릴 수 있는 이런 깨끗한 참  초자연의 이런 능력의 신앙으로 당신이 인도하시고 은혜를 베푸시고 그런 은혜를  받는 자 되도록 하시기 위해서 이번에 이런 기도회를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어쩌든지 이 기도회에서 남은 것 없이 회개하고, 이 기도로써  능치 못할 것 없습니다. 소망을 가지고 나갑시다

 어쩌든지 자기 구역 식구에서 이 기도회에 등록 안 한 사람 등록을 하고 또  가서 권찰님들이 물어 가지고 기도 한 날은 했다고 그 카드에다 도장을 받아  가지고 오고, 카드를 두꺼운 종이로 했다 이러는데 부러 두꺼운 종이로  했습니다. 두꺼운 종이로 했는데 이 처음에 것은 가지고 이래 가지도록 하는  사람 위해서 가지기 위해서, 등록은 여기 와 하는데 가지는 사람 위해서 두껍게  했고 이다음에는 차차 차차 얇게 할 것입니다. 해서 그걸 가 가지고 기도했나 안  했나 이걸 물어 가지고 딱딱 인을 쳐서 그래 하도록 합시다. 그래서 우리  전교인이 다 기도해야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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