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은 전진이다

 

1980. 9. 28. 주일 오전

 

본문 : 히브리서 10장 26절 - 39절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를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 세 증인을 인하여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하물며 하나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원수 갚은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또 다시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아노니 살아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에 참은 것을 생각하라 혹 비방과 환난으로써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혹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로 사귀는 자 되었으니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산업을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산업이 있는 줄 앎이라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를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38절에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자니라." 네, 여기에  26절로 31절 까지에는 믿는 사람이 하나님의 도를 받은 후에 제가 짐짓 죄를  범하면 다시는 속량하는 도리가 없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의 도를 받은  후에 제가 짐짓 죄를 범하면 다시는 속량함을 받지 못하고 하나님의 소멸하시는  그 하나님의 소멸에 소멸될 것 뿐이라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받은 도는 간단하게 말하면 한 서너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의 원죄와 본죄로 영원한 멸망 속에서 주님이 대형하심으로 사죄를  입혀주셨습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예수님께서 대신 형벌받아 담당하시고  예수님이 공로를 믿는 사람은 자기가 지은 죄 사유함을 받는 이 길을 우리에게  열어주신 것을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배워서 알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실 때에는 당신의 명령과 요구에 만족케 하는  자가 되게 하기 위해서 지으셨는데 우리는 자기 만족만 채웠지 하나님의  만족이나 자기 자율 자기 생각대로만 했지 하나님의 명령은 생각지 아니하고  살았으므로 이것을 인해서 영원한 또 멸망을 받은 것입니다. 없는 가운데에서  하나님이 지으셨고, 또 하나님의 은혜로 보존이 되고, 또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우리가 사용해서 유지를 받은 자 들이니 우리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요.

또 우리가 생존하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로 이 된것은 하나님 위주로 하나님을  중심해서 그분에게 속해서 살게하려 하는 이것인데 인간이 스스로 있는 자처럼  홀로 제것 가지고 살 수 있는 자처럼 망령되이 하나님을 모두 다 배반하고 자기  중심으로 사는 자들이 되어 이 값으로 영원한 멸망에 빠진 것입니다.

여게서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하나님 중심 자기 중심이니까 중심이 들이니  왕이 둘입니다. 이 두 세력은 영영히 원수되어 하나님이 무한하심에 따라 그  원수의 복수는 무한함인데 이 원수의 복수를 예수님이 대신 다 받으셨고 이래도  예수님은 하나님을 배반치 아니함으로 이 복수를 다 담당하고 능가한 하나님의  화평으로 우리에게 하나님과 화친된 하나님 중심 위주의 이 궤도에 다시  복구했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새생명 주신 것입니다.

이 세 가지 진리 지식을 우리가 배워서 세 가지 예수님의 큰 사랑과 큰 어려움과  큰 힘을 드려 대속하신 것을 우리가 알았습니다. 우리가 대속하신 이 은혜를  알았기 때문에 성경에 말하기를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것을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자기를 위해서 살지 않고 대신  죽었다고 살아나신 자를 위해서 살게 하려함이라고 말씀했습니다.

또 말씀하시기를 이제 너희는 너희것이 아니라 피로 값주고 산 자이니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로다. 살아도 주를 위해서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서 죽는 자가  된 것을 진리인 하나님의 지식인 신구약 성경 말씀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고 또  이것을 근거해서 구체적인 은밀한 것은 성령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셔서 중생된  자라면 그 양은 다르지만 누구든지 자기가 이 그리스도의 구속에 대해서 알아야  할 이 정도로서는 순위 순위대로 알게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에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이 진리를 아는 지식이라" 그말은 진리 아는 지식이라. 진리는 무엇을  가르쳐 말한 것인고 하니, 진리는 하나님의 지식이 진리인데 하나님의 지식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이 진리를 뭐인가? 우리는 전적 부패한 죄인이요 영멸  받았던 자라는 것입니다.

여게서 의가 없던자요 하나님과 원수된 자인데, 예수님의 대속으로 사죄를  받았고 칭의를 받았고 하님과 화평의 결합을 가진 이 사실을 가르쳐 주는 이것이  참된 이치인 것입니다. 이게 진리입니다. 이 진리 지식을 우리가 받고 난 뒤에  짐짓 죄를 범한다. 이 자는 속죄함을 받지 못하고 다시는 무서운 심판을 받아  영원히 멸망할 거 외에 딴것이 없다.

그래 놓고 "한 사람 모세로 하나님이 입법해 놓으신 것도 범한 자를 용서없이  죽었거든 하물며 참 하나님 참사람 신인양성일위로 십자가의 무한한 대속으로  베풀어 놓으신 이 구속의 도리를 알고 배반한 자의 그 받을 형벌이 얼마나 클  것인 것을 너희들이 생각하라" 말씀했습니다.

그러기에 "짐짓 죄를 범한다" 하는 무슨 죄를 범하는 것을 말하는 것인가?  여게서는 세 가지 죄를 범하는 걸 말합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소유가 근본  부요하신 자더니 우리 위해서 가난해졌다 했습니다. 소유와 몸과 생명 지위 영광  권세 모든것 다해서 우리에게 사죄를 주셨는데 우리는 먹고 쓰고 욕심대로 다  살고 나머지기 그것 가지고서 이 사죄를 기념하겠다고 사죄를 제가 받겠다고  사죄 받은 자로 살겠다고 하는 이 가증스러운 것입니다.

우리는 소유와 몸과 생명을 다해서 이 받은 사죄를 이제는 다시 내어주지 않하고  빼앗기지 않아야 됩니다. 모든 것을 다 우리가 빼앗길지라도 사죄받은 이 사죄를  다시 빼앗겨서 죄 있는 자가 되지 않아야 되겠고, 주신 이 의를 우리가 보수해서  다시는 불의한 자로 돌아가지 않아야 되겠고, 하나님 중심이 없어 자기 중심으로  하나님의 일대 원수가 되었던 우리들을 예수님의 대속으로 죄 사하시고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이 새생명을 우리게 주었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것을 다  빼앗길지라도 하나님 중심 위주 이 본질과 본성 이 사상 이 지식 이 인격을  우리가 팔지 않아야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언약해서 원하는 이 구속 받은 자로서의 합당한 생애는 이루지  못하고 연약함으로 원치 아니하는 마귀와 죄가 원하는 이대로의 생애가  이루어지는 이것이 우리에게 날마다 탄식이요. 머리를 들지 못하는 것이요 주님  앞에 눈물을 흘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고범죄가 아니요. 껍데기로 원치 안하면 그러는 그런 이렇게 원하는 듯이  하고 이래야 사함받는다 하는 그것은 이중 삼중의 고등범죄요. 하나님의  유혹하려고 가증스러운 죄입니다. 솔직하게 진실되이 이제는 세 가지 큰 힘들인  구속을 받았으니 구속받은 자로서의 내가 살아야 될터인데 막상 형실을 당할  때에는 우리에게 온갖 죄악의 요소가 강하고 미혹이 강해서 그래봤자 더 사는  것도 아니고 일찍 죽는 것도 아닌데 그래 봤자 하나님 정한 대로 빈부 귀천이 다  그대로지 인간이 가감을 못 하는데 공연히 미혹의 욕심에 끌려 가지고 이대로  살지 못한 것을 지내가 보고 나면 원통해서 하나님 앞에 머리를 들지 못하겠고  눈물 흘려서 또 사유함을 구하고 이것은 연약함으로 그 세력에게 강제 당해서  꺼꾸러지는 것입니다. 이거는 고범죄가 아닙니다.

또 가다가는 보면 자기는 이것은 괜찮으리라고 했는데 그 현실이 지나간 후에  뒤를 돌아보고 모든 사람이 신앙 생활 한 것을 이렇게 간증자들을 보니까 자기  생애는 완전히 자기 모르게 미혹 받아서 무지로서 범죄한 죄를 범했다 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무제로 실수하고 무능으로 실수하고 무지 무능으로 범죄하는  이것이 우리에게 가슴 아픈 것이요. 이것이 기도의 제목이라.

이러기 때문에 그시 그시 모든 것을 미리 바로 알고, 또 미리 바로 알아  준비하고 그때에 당할 때 참 주님의 이 세 가지 구속을 인하여 범죄하지 않기  위해서 없어진 소유나, 몸이나, 생명이나, 의롭게 살기 위해서 없어진 것이나,  하나님 중심으로 살기 위해서 쓰여 없어졌든지, 원수에게 빼앗겨서 박살이나  없어졌든지 이것은 없어진 것이 아니라 사죄 밖에 있는 것이 사죄 안으로 들어온  것이니까 홍수 밖 홍수에 있던 것이 방주 노아 방주 안으로 들어오는 거와 같은  것입니다.

이것이 주안으로 들어온 것이니까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할 것이 된 것이고, 욕된  것이 영광스러운 것이 된 것이고, 약한 것이 강한 것이 된 것이고, 혈육의 것이  신령한 것이 된 것이고, 유한한 것이 무한한 것으로 되어 불완전 한것이  완전하고 영원 불변의 것으로 완전히 성화되어 이 승격되고 완전히 옮겨진  것이기 때문에 이것이 승리인데, 무지해서 유혹의 세력에 끌려서 무지 무능으로  범죄한 것을 우리가 다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래서 고민이 이게 고민이고 이것 때문에 날마다 하나님 앞에서 간구하고  세상으로 더불어 대적하고 정비하고 정돈해서 하루 이틀 믿어가는 가운데에서  과거와 같은 그런 어려움을 극복하게 되고 또 새로 닥치는 어려움에는 또  패전하고 또 다시 일어나서 과거에 패전했던 것을 또 한 번 닥쳐 또 두 번 닥쳐  또 세 번 닥치면 이것을 극복하고 이렇게 나가는 것이 우리들이 자라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고범죄가 아닙니다. 고범죄는 예수님의 대속에 이 큰 사실을 자기가  알고도 속에 이대로에 살고 싶은 마음이 없는 그자가 고범죄요 이대로 살고 싶은  마음이 없기 때문에 이대로 살지 못하고도 마음에 자책을 받지 안하고 회개할  마음이 없는 그자가 고범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예수님의 세 가지 대속을 저는 다른 사람에 말해 가지고 잘 팔아먹고  교역자가 되면 또 은사 위치에 있으면 그걸 가지고 대우도 받고 팔아서 다른  사람은 기압주고 다른 사람은 이것을 제재하고 말굴레 씌우듯이 굴레 씌우는  일을 하지만 저는 속으로 그게 대해서 아무런 붙들리지 안하고 자극이나  충격이나 눌림이 없이 예수님의 구속을 하나의 이용처럼 이렇게 해 가지고 사는  이런 자들의 그 마지막의 멸망은 무서운 것입니다.

이런 죄를 범하는 자들이 회개해야 됩니다. 여게도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소멸하시는 불이십니다. 우리는 천추 만 년이나 여 살것이  아닙니다. 여기는 우리 영주처가 아닙니다.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우리의  종말 시간은 모릅니다. 젊다고 많이 남은 것도 아닙니다. 강건하다고 많이 남은  것도 아닙니다. 완전한 이 국가 안에 있다고 국경 안에 있다고 많이 사는 것도  아닙니다.

이러기 때문에 오늘이라도 주님이 부르면 세상살이를 떠나고 우리가 세상에서  그분에게 대해서 어떻게 했든지 한 고것만 가지고 하나님 심판 앞에 서야할  것입니다. 이것을 모르는 자는 소경입니다. 온 천하를 다 얻어서 정리해도  소경입니다. 이는 원시치 못하는 소경입니다. 그자는 죽는 걸 모르는 자요. 죽은  뒤에 부활을 모르는 자요 부활 후에 하나님의 심판을 모르는 자요. 무궁 세계  하나님의 보응을 모르는 자입니다. 이런 고범죄를 범하는 자들을 오늘 이 시간에  회개를 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되어 하나님이 피조물 되어 오셔 가지고 우리가 범한 죄값을 다  받았고 우리가 순종치 못한 것을 값을 받았고 대신 다 순종하셨고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된 그것을 당신이 대신 화평을 이루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혀  저주의 사망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저주하셨습니다. 그래도 당신은 하나님을  배반치 않하고 하나님에게 간구하는 것을 계속했습니다.

이사야 53장에 보면 "그의 심신을 우리의 속건 제물로 드려 십자가에 목박혀  죽었으나 그 속으로는 하나님 앞에 책임맡은 백성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자라"  이랬습니다. 겉은 죽고 속은 기도했습니다. 이렇게 큰 구속을 받은 우리들이 이  큰 구속을 예사롭게 여기고 이 구속에 억매이지를 안하고, 이 구속에게  붙들리지를 아니하고, 이 구속의 큰 빚에 책임을 지지 아니하고, 여전히  예사롭게 여겨 교회 안에서 죄 안질려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나님  중심으로 살라고 하는 자이니까 이 속에 들어와 가지고 말은 그렇게 하고 하면서  속으로는 이 구속을 아주 업신여겨 여 구속에게 조금이라도 붙들리지 안하고  자유하는 자로 사니까 교회 안에는 거침이 없는 아주 공백이 되어 있는 제  마음대로 돌아다니는 제 자유세계인 줄 알고 교회에 뛰어드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범죄하지 안하고 벌벌 떨지 안하지, 벌벌 떨고 있으니 조걸 이용해 가지고  의롭게 살라 하니 의롭게 산 조걸 이용해 가지고 하나님 중심으로 살라고 하니  조게 매인자들이기 때문에 조게 매여 있는 자들 속에 가서 나는 매이지 않한  자로 살라면 살면 매인 그들의 하지 못하는 것을 다 자행할 수 있기 때문에  '이것이 내 자유 세계였어' 해 가지고 교회 안에 뛰어드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선을 악용할라 하는 것이 예수님의 구속에 이 신앙을 지킬라 하는 것을 저는  세상과 자기를 위해서 악용하려고 하는 이런 자들이 다 고범죄를 범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속에 이 세 가지 구속으로 살고 살아야 한다는 이 책임을 느끼지 않는  자, 세 가지 구속으로 살기를 원하고 노력하는 마음이 없는 자, 이 세 가지  구속에 합당치 못한 생애를 하고 전정 마음에 원통하고 부끄러워서 사유함을  받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이 사유함을 하나님 앞에 구함이 없는 자, 이런  자들은 다 짐짓 범하는 자이니까 예수 믿으면 제가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도 그는  하나님의 소멸하시는 불의 복수를 받습니다. 택한 자니까 하늘나라 가기는  갑니다. 가지마는 그의 생애는 전체가 주님에게 원수된 생애였기 때문에 그의  생애에서 무궁세계 가서 생애할 수 있는 그 기능을 여기서 육성하고 마련하고  구속 입혀 가지고 사는 것인데 구속 입은 그 모든 기능을 다시 주의 구속을  배반하는 범죄해서 다 죽였기 때문에 이것이 둘째 사망의 해를 받은 것입니다.

이러니까 이런 사람은 지옥을 자기가 하늘나라 가는 것이 부끄러우니까 지옥은  가고 싶지만 지옥 가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택함을 입은 자가 지옥가지 못하는  것도 절대성이요. 택함을 입지 않한 어떤 인간이 존대하는 자라 할지라도  하늘나라 못가는 것이 또 절대성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이 세 가지 구속을 등한히 하고 업신여기고  자기의 처세의 하나의 이용물로 그렇게 삼고 짐짓 죄를 범하는 자 이자는  "구원을 얻었으나 불가운데서 구원을 얻은 거와 같다" 고린도전서 3장 13절에  보면 터 위에 세우는 데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지은 자들이 있고 금과 은과  보석으로 지은 자들이 있으니 자기 기능건설, 자기 생애건설, 자기 인격건설,  자기 행위건설 이런 것을 비유로 해서 여기 건설이라 집짓는 걸로 말했습니다.

말했는데 저희 건설이 다 불타 버리면 모래 위에 지은 집이면 저는 구원을  얻으나 불가운데 구원을 얻은 자와 같다 했습니다. 부활해서 하늘나라 갔지만  하늘나라가 있는 것이 그때는 언어가 없지만 다 압니다. 일생 동안 주님이  구속을 팔고 배반하고 제 욕심대로만 살았던 그자가 하늘나라 왔으니까 주님도  보시고 다 보고 서로 다 아는데 세상에서 영감 진리의 주님의 순종 생활  세상에서 않하고 저버린 자가 그 나라에 가서 어찌 살 수가 있습니까? 못합니다.

그 나라의 생애는 하나도 못합니다. 이러니까 구속을 받았지만 불가운데 구원  얻은 거와 같이 있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이것을 여기 하나 말하고 또 하나 뒤로 물러가면 하나님이 저를  기뻐하지 않는다 말씀했습니다. 뒤로 물러 가는 자는 어떤 것이 뒤로 물러 가는  자인가? 우리는 사죄를 받았기 때문에 죄짓지 안하고 살기를 우리가 원합니다.

칭의를 받았기 때문에 의로운 자로 살기를 우리가 원합니다. 하나님 중심 위주로  살게 된자들이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 중심으로 살기를 우리가 원합니다.

이러기에 우리가 고통되는 것은 범죄하기 싫은데 범죄해야 되는 일이 올 때에는  우리에게 고민이 옵니다. 의롭게 살아야 되겠는데 의롭게 사는 이 일을 하지  못하게 이렇게 살라고 하면 어려움에 봉착될 이런것 때문에 우리가 고민을  하는것입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살지 못하게 하는 것이 온세상입니다. 의롭게  살지 못하는 것이 온세상입니다. 죄없는 살라는 것을 살지 못하게 하는 것이  온세상입니다.

이런데 현재 우리가 닥치는 것은 약간 약간에 애로가 있고 마찰이 있고 조금  어려움이 있어도 그래도 우리가 주님이 이렇게 큰 힘 드려서 구속해 주셨고  인생은 금생으로다가 아니라 영원한 불명의 존재인데 우리의 영주처는  무궁세계인데 또 주님이 이렇게 하셔서 우리의 죄를 대속했는데 또 어떻게 내가  죄를 지을 수 있느냐 해서 이 사소한 우리가 어려움을 당해도 우리 욕심대로  못해도 우리가 또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광채를 내지 못하고 좀 그들에게 훼방을  받아도 손해를 봐도 하고 싶은 일이 절제가 되어져도 우리가 그 일을 하나 둘 참  손해를 당해 가면서 어려움을 당해가면서 사죄와 칭의와 새생명 입은 이 생애를  하고 나면 기분이 좋고 주님 앞에 머리를 숙일 때에 떳떳해지고 이것이 없어지면  막 후회가 되어지고 이 생활을 우리가 합니다.

하는데, 가다가는 요것을 준비한 기간이요 계시록에 보면 반시 동안 고요한 때를  준다하는 반시 동안 고요한 때를 준다. 요거는 준비하는 기간이기 때문에 기름  준비할 수 있는 평소와 같은 것입니다. 요게서 하나씩 둘씩 작은 작은 의를  양보치 아니하고 작은 충성을 양보치 아니하고 요렇게 해 나가면 고게서 경험  체험에서 참 처음에 할 때에는 눈물로 씨를 뿌렸지만 뿌린다는 것은 전도만이  아니요. 뿌리는 것은 썩을 것을 심고, 약한 것을 심고, 욕된 것을 심고, 혈육의  것을 심고 하는 그 심은 것은 말합니다.

심는다고 할 때에 비가 오는 것과 바람부는 것과 나지 않할까 여러가지 애타고  근심 있어도 하고 나면 기쁘다고 한 찬송처럼 요렇게 내가 사죄와 칭의와 새생명  때문에 손해를 보고 살았을 때에는 그 시간이 지나가면 우리가 기뻐지고 또 얼마  지나고 보니까 손해가 안가고 도리어 이 구속을 버리고 산자보다 내가 유익이  됐고 구속을 버리고 산자들이 그때는 유익된 것 같았지만 뒤에 보니까 마지막  결말을 계산되 보니까 그자가 실패더라 그말이오. 이러니까 이제 십자가 십자가  질 때는 고난을 당해서 이 세 가지 예수님도 이 세 가지 구속 때문에 어려움  당한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 가지 구속을 보수하려고 하니 어려움이 오니 요기 십자가요  어려움이 와도 어려움을 내가 당하면서 세 가지 구속을 그대로 내가 보수하고  지나가고 난 다음에 우리에게 기쁨이 오는 것이 뭐냐? 삼일 만에 부활의 기쁨이  오는 거와 같은 것입니다.

이렇게 살아 나가는 이것은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구속을 받은 후에  고난에 큰 싸움에 참은 것을 생각하라." 처음 받을 때에 예수님 믿는 것 때문에  여러가지 애로가 있어도 우리가 참았더라 그말이오. 혹시 비방과 환란으로서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혹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로 사귀가 되었으니, 사귀가  되었으니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산업을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산업이 있는 줄을 앎이니라.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 "너희가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이것이 우리 생애인데 앞에 어려움이 있어도 이제 주님이 그 하늘에  부요를 소유를 다 내놓으시고 몸과 생명을 다 드려서 나에게 구속을 주셨으니  나도 내 소유와 몸과 생명을 다 드려 주의 구속을 보존해야 되겠고 구속을  나타내야 되겠지, 내가 무슨 손해 보기 위해서 이 구속을 버리야 되겠느냐?  이렇게 생각을 하고 자기 앞에 당한 이 세 가지 구속 때문에 어려움, 소유가  손해가 몸이 손해 가고 생명이 손해가는 이 어려움을 무릎쓰고 이 구속을  보수하기 위해서 이것을 손해보고 나가는 그것이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사람이요.

뒤로 물러가는 자는 이 구속을 이것을 입고 갈라 하면 손해를 보겠으니까 이때는  '구속을 벗어 놓자.' '사죄를 벗어놓고 죄를 지음으로 손해를 막고, 의를  양보하여 불의를 용납함으로 손해를 막고, 하나님 중심을 버리고 인간 중심,  가족 중심, 어떤 인물 중심, 사회 중심, 사상 중심, 공산주의 중심, 무슨 중심,  무슨 국가 중심으로 내 중심을 바꾸면 그때 오는 어려움이 없다 그말이오.

이걸 받지 않기 위해서 주의 구속을 내놓고 뒤로 돌아가는 자는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자입니다. 않는 자, 이것이 짐진 죄를 범하는 자요, 짐진 죄를  범하는 자요 뒤로 물러가는 그 행위를 경영하는 자요.

뒤로 물러가는 자는 어떤 자냐? 안됐다. 여기서 내가 세 가지 구속을 내가  보수로 구속을 받은 자로, 사죄 받은 자로, 칭의를 받은 나로, 하나님 중심을  받은 나로, 하나님 중심의 나, 의의 나, 무죄의 나, 이것이 내라. 이것의 것이  내가 됐고 이것으로 살아야 되고 이것으로 인하여 없어져야 될 자기인 줄 알면서  이렇게 주의 구속을 벗으려고 하니까 안됐고 어라 후퇴작전을 하자 이러니까 이  자리에서 이 세 가지 구속으로 살라고 하니까 이 자리에서 세 가지 구속 입은  자로 살려고 하면 내가 소유도 손해가 가겠고, 몸도 손해가 가겠고, 지위 권세  명예도 손해가 가겠고, 목숨도 손해가 가겠으니까 작전상 후퇴작전을 하자 해  가지고 기피하는 것입니다.

인제 그 자기의 위치를 기피하요, 하나님이 피하라고 하는 거는 피하지만  피하라고 하지 않는데 자기가 그 자리를 피해서 딴데로 도피를 합니다. 그  형편을 면하려고 입장을 바꾸고 그 시민권을 바꾸고 자기의 모든 업체를 바꾸고  이래 가지고 피해서 가는 자입니다. 이것이 뒤로 물러가는 자입니다.

뒤로 물러가는 자를 하나님께서 정죄하지는 안했지만 기쁨은 안 됩니다. 승리도  안 됩니다. 뒤로 물러가서 피하고 피하고 물러가서 앞에 사죄와 칭의와 새생명  때문에 내가 당하는 어려움 손해보는 것, 이것을 피해서 이리 저리 피해서 뒤로  물러갑니다. 후퇴합니다. 후퇴를 이렇게 하는 것을 고범죄도 아니요. 이것은  죄라고 정죄는 안했지만 하나님에게 기쁨은 되지 않습니다.

이러다가 피해서 돌아다니다가 피해서 돌아다니는 것은 내가 이러니까 정심 좀  차려 가지고 앞으로 주의해 가지고 소유와 몸과 생명을 이 사죄와 칭의 새생명  이것에게 다 바쳐서 내가 사죄와 칭의와 새생명을 찬양하고 높히고 사죄와  칭의와 새생명의 것으로 내 모든 것이 다 여게 투자되고 이것을 인하여서  쓰여지고 이것으로 인하여서 다 박살이 되고 피해를 당해 가지고 온전히 이것의  것으로서 이 세상살이를 끝마치겠다.

이것을 해 가지고 자기가 다시 징계하면 다행이지만 이렇게 슬슬 피하다 보면  한살 두살 더 먹어지고 이러니까 한해 이태 지나가고 보니까 마지막에 하나님이  불러서 탈깍 생명이 끊어져 버렸습니다. 저는 헛일이요. 뒤로 물러가면  마지막에는 침륜에 빠져서 멸망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시간 세계를 공간 세계를 인간의 심리 세계를 활동 세계를  주님이 홀로 주관하고 계시는 이 우리 주님이신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또  우리가 사죄받은 이 사죄와 칭의 받은 칭의와 하나님 중심인 이 새생명 받은 이  생명 이 세 가지는 만사 형통입니다. 어데든지 통과입니다. 막을 자가 없습니다.

막을 자가 없는 것이요. 어디든지 통과입니다.

통과인데 우리가 앞으로 주님을 향하여서 하늘나라 가는 데에는 아주 가늘게  얽어 놓은 이 철망이 있습니다. 철망같은 철망이 있습니다. 가늘게 얽어놓은  철망이 있소. 이 철망은 사죄 칭의 무죄의 하나님 중심 이것은 그 철망이 있거나  없거나 상관이 없소. 거게는 아무 거침없이 통과입니다.

이러나 여기는 어떤 사람이라도 이 저주와 사망 아래에 있는 소유 저주와 사망  아래에 있는 소유, 저주와 사망 아래에 있는 몸, 저주와 사망 아래에 있는 생명,  우리 생명은 저주와 사망 아래에 있는 생명입니다. 이거는 완전 생명 아닙니다.

영원한 생명 아니요. 이 생명 어느 것이든지 하나라도 가지고 이 철망을  통과할라 하면 철망에 걸립니다. 걸리니까 저는 그것에게 걸리 가지고 사죄와  칭의와 새생명이 통과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걸려서 이것 때문에 여 통과를  못합니다.

이러기에 예수님이 말씀하시를 누가복음 14장에 "누구든지 저희 있는 것을 다  버리지 아니하면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말씀했습니다. 또 계속해  말씀하시기를 "사로잡는 자는 사로 잡힐것이요." "칼을 쓰는 자는 칼에  망하리라." "믿는 자의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 이것으로 판정된다고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는 앞에 어떠한 망이 있어도 공산주의의 망이 있든지 민주주의의  망이 있든지, 어떤 이종교의 망이 있든지 어떤 박해의 망이 있든지 우리의  사죄와 칭의와 새생명을 뺏들라 하는 원수들이 앞에 가득히 있습니다. 이 망을  통과하면 그 다음에 또 망이 있습니다. 또 망이 있습니다. 층층 망이 있습니다.

이 망이 있는, 이 망을 보고 두려워서 후퇴할 것이 아니고 또 이 망을 보고  자기가 이 망의 평안히 통과를 해서 사죄 칭의 새생명 버리 버리면 자기는  그것이 유지되리라 생각하고 버립니다. 그것은 유지됐지만 전진은 못합니다.

하나라도 가까이 나가지는 못했소. 암만 그거는 가져봐도 저주 아래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다 썩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것을 내놓기 싫어서 이 망을 잘 망을 통과해서 되겠는데 통과할려고  하니까 이것이 거리끼니 이걸 내놓으면 사죄 칭의 새생명 자로 그 통과해야겠고  이 사죄와 칭의와 새생명을 내놓으면 자기가진 이것은 아무도 빼앗으려 하는  자가 없고 이러니까 이거냐 저기냐 싱강하다가 예수님의 구속을 내놓고 이것을  가지고 구속을 받는 그때는 구원을 받은 것 같지만 고 다음이 멸망입니다. 고  다음이 멸망입니다. 그마침은 멸망이라고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후퇴해도 안되겠고 이것을 파는 짐짓 범죄하는 이 고범죄를  범해도 안되겠고 고범죄를 범하면 사함 못받습니다. 그거는 사함을 받는 죄가  아니요. 짐짓 죄를 범한 그 죄는 사함 받는 죄가 아닙니다. 그 죄는 사함을 안  받으면 이 문제는 해결이 안 되느냐? 해결되는 길이 있습니다. 짐짓 범하는 죄는  고쳐야 됩니다. 돌아서서 고쳐야 되요. 고치고 나면 사죄가 됩니다. 고치고 나면  사죄가 되지만 고치고 나면 이미 범죄한 거는 사죄가 되지마는 고치지 안하고 그  죄를 범하고 있으면 사함받는 그거는 사죄하는 길이 없습니다. 사죄함 못  받습니다.

그러기에 고범죄는 사죄를 받지 못합니다. 고범죄는 고것을 고쳐야 되요. 고치고  나면 그 다음에 과거에 고범죄 지은 죄는 사유함을 받을 수 있는 죄로  바꾸어집니다. 이러니까 고범죄로 멸망을 가도 안될 것 뒤로 후퇴작전하고  돌아다니면 처음에 후퇴하면 그 다음에 두번째는 후퇴시킨 그 사욕 육체의 욕심,  후퇴시킨 육체의 욕심, 그놈은 한번 승리했기 때문에 더 장성해졌고 성령의  소욕은 더 빈약해졌고, 이러니까 한번 후퇴하면 두 번 후퇴하게 되고 두 번  후퇴하면 세 번 후퇴하게 되고 점점 후퇴의 힘은 강하지만 전진의 힘은 약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고범죄도 안되겠고 후퇴도 안되겠고 전진을 해야 되는데,  전진을 할려면 이렇게 원수의 철망이 가득이 지금 소물게 치여있으니 이 철망을  어떻게 통과할 수 있느냐? 네, 통과하는 아주 비결이 있습니다. 그 통과하는  비결이 있습니다. 통과하면 맛이 있고 재미가 있고 그 통과 하는 거기 통과할  때에는 자빠질 염려도 없고 어떻게 그 철망이 보호하는지 그 철망은 그 지저분한  금하고 잡철하고 섞여 있는 것 있으면 잡철도 금 대우 받고 금도 잡철 대우 받고  이제 그 가치가 적은데 이 불로 연단을 척 받고 나면 금은 금 대우를 받고  잡철은 잡철로써 잡철 대우를 받아서 천해져 버리고 금은 금대로 나오는  것입니다.

이 모양으로 이 우리 앞에 있는 환란 기근 이런 그 칼날이 모든 원수의 이 철망  우리 앞에 있는 이 걸음에 모든 어려움, 우리를 우리의 사죄를 뺏으려고 칭의를  뺏으려고 새생명을 뺏으려고 하는 이 모든 원수의 이 철망, 이 철망은 승리한  자에게는 그 잡철같은 것이 다 제해 버리고 정금만 남아 있기 때문에 정금  가치가 올라갑니다. 이 철망을 인해서 너도 나도 신자와 네 교파, 내 교파, 네  신앙, 내 신앙, 네가 하던 이 모든 서로 잘났다고 하는 모든 잡된 잡철들이 다  이 철망에 걸립니다. 이 철망에 걸려서 다 떨어지고 이제 순전한 사죄 칭의  새생명만 쑥쑥 앞서 통과해서 갑니다.

이 사죄와 칭의와 새생명을 받은 자들 가운데에 소유도 가지고 갈려고, 자기  몸도 가지고 갈려고, 생명도 가져 가려고, 저주와 사망 아래에 있는 이것을 다  가지고 갈려고 하니까 이것 때문에 걸려서 사죄와 칭의와 새생명을 통과를  하지만 이것 때문에 걸러서 그 철망을 통과하지 못하고 고통을 당합니다. 누가  고통을 당하느냐? 그리스도인들이 앞에 불시험을 만날 때에 고통 당하는 자가  누구냐? 저주 아래에 있는 이 세 가지를 손해보지 않하려고 하는 이 저주 아래에  있는 이 세 가지를 가진 소유권 자, 그자가 고통을 당하는 것이지.

그자가 누구냐? 자기 아닌 자기, 자기를 죽인 원수 자기, 옛사람 악령과 악성과  악습으로 된 참 영을 죽이고 죽인 그 악령과 자기 중심이 악성인데 악서과  악습은 자기 중심으로 자기 위주로 생활한 그 연습된 그것이 악습인데 이것이  뭉쳐져 된것이니 이것은 우리에게 우리를 믿는생활하지 못하고 땅의 것만 보고  살아 믿음을 배반하고 구속을 배반하고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을 위해서 살게  하여 일생을 완전히 도취해서 빼앗아서 도적하려 하는 이 원수 이것은 십자가  못박혀 죽이야 되는 자라 그말이오.

이러기에 바울은 내가 싸우는 것이 허공을 치는 거와 같지 아니하고 원수를  똑똑히 보고 싸우니 곧 그게 뭐이냐? "내가 나를 쳐서 복종케 하는 것이니라."  자기하고 싸우는 것이었습니다. 이러니까 이 자가 두려워하는 자요. 중생하는  자는 두려워 중생한 자가 두려워 하는 아니고 고놈이 두려워하고, 그놈이 손해  안 갈라고 날뛰기 때문에 이 자기를 바꿔서 그놈이 자기 아닌 것을 알아 그놈을  원수로 삼고, 진리와 생명으로 중생된 자기는 사죄로만 살았고, 칭의로만 살고  새생명으로만 사는데, 이 사람은 자기의 소유가 되어 있는 이 심신의 기능이 다  저주 아래에 있는 것이요, 사망 아래에 있는 것이요, 하나님의 원수가 되어 있는  이것을 중생된 영이 사죄로 구출해야 되고, 칭의로 구출해야 되고, 새생명으로  구출해야 되는데, 이 구출은 어떻게 하면 되느냐? 주님이 이미 이 세 가지 공로를 입었기 때문에  법적으로는 입고 있는데 이것이 다시 벗지 않으면 됩니다. 사죄를 벗지 않으면  되요. 칭의를 벗지 않으면 되요. 새생명을 벗지 않으면 되요. 우리의 심신에  기능이, 심신의 기능이 이것이 세 가지 구속을 벗지만 아니하고 이 세상살이를  지나가면 우리의 기능은 완전히 구속을 입은 것입니다.

이 현실에서 이 현실에 해당된 기능이 사죄와 칭의와 새생명을 벗지 아니하고  이를 보존함으로 말미암아 이제 이 심신의 기능이 이 세 가지 구속대로 활동을  했든지 이 세 가지 구속 때문에 박살을 당했든지 어쨋든지 그것은 세 가지  구속의 것이, 세 가지 구속의 것 된것이 이 주격을 버리지 않하고 구속의 것  된것이 구속의 된것으로써 끝을 마쳤기 때문에 아무도 해할 자가 없는 것입니다.

이러기에 이것이 현실 현실에서 우리의 이 건설구원 성화구원은 단번에 되는  것이 아니고 영은 단일체지만 이 심신은 여러 수천 수만의 세포로 분자로 종합해  가지고 도어진 것이기 때문에 요 현실에서 구속받을 있기 고 다음 현실에서 구속  받을 있어. 이 구속을 받아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가진 이것이 이 사죄와 칭의와 새생명 다시 말하면 영감과 진리  이 주님의 구속 이 구속에게 쓰여지면 그것이 구속받은 것을 버리지 않했고  구속의 것으로 끝난 것이고 이 세 가지 구속 때문에 구속을 주지 않기 위해서  원수에게 박살을 피해를 당해서 박살을 당했으면 박살당한 그것은 박살을  당했으나 구속의 것을 떠나지 안했고 구속의 것으로 구속의 소속으로 끝을  마쳤기 때문에 둘째 사망의 해가 다시는 죽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 죽으나 다시 살아나지 부활이 새로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진리를  깨닫고 그러면 이 철망에 걸리지 않하는 법이 뭐이냐? 모든 것을 다 내놓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져갈라 하면 철망 통과 못하요. 내놓소. 내놓으면 어데다  내놓습니까? 이것은 주님에게 맡기십시오. '네, 주여 내 소유를 당신에게  맡깁니다.' '당신이 당장 이렇게 하시든지 저렇게 하시든지 당신에게 맡깁니다.'  '내 몸도 당신에게 맡깁니다.' '내 이 저주받은 생명도 당신에게 맡깁니다.'  '당신이 구속한 것만 내것이고 이것은 당신에게 맡깁니다.' '맡기니까 당신이  마음대로 하십시오.' 이것이 "모든 염려를 주께 맡겨버리라."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맡겼습니다. 맡기고 맡겨놓고 '나는 사죄 칭의 새생명 이 세 가지만 가집니다.'  맡겼는데 현실을 만날 때에 사죄와 칭의와 새생명 이것만 나는 가지고 통과하고  나는 그거는 가지지 않했습니다. 가지지 않했는데 주님이 나에게 그것을 주면  주되 나는 그거 가지지 않했습니다. 당신이 당신의 능력으로 내 소유를 당신의  능력으로 내 몸을 네게 가지고 있게 하면 있는 것이고, 당신이 그 생명을 내게  가지고 있게 하면 가지고 있지 요게 중요합니다. 요거 모르면 않되요.

요게 이러니까 나는 그것을 하나도 가질 마음이나 가지지 않습니다. 가지지 않고  이것은 주께 다 맡겨놓고 사죄와 칭의와 새생명 이 세 가지만 내것이기 때문에  이것만 가지고 이 철망을 통과합니다. 이것만 가지고 그 환란을 당합니다.

이것만 내주지 않기 위해서 '이놈아 너 그러면 소유를 지금 갔다가 내가 다  절단낸다.' '아 나는 소유 그거는 주께 맡겨 놨다.' '주께 맡겼기 때문에 네가  절단 내든지 말든지 나는 상관없다.' '주님에게 맡겨서 나는 그 가지지 안했다.'  '네 몸둥이를 장기간의 고문과 고행으로 절단낸다.' '아 그거는 주께 맡겨  놨다.' '그 주께 맡겼으니까 그 나는 가지지 않해.' '그 나 상관하지 않는다.'  '네 생명을 그 생명도 저들의 생명도 나는 상관이 없다.' '주님에게 맡겨놨다.'  '이러니까 그거야 네가 끊든지 말든지, 없애든지 말든지 나는 사죄와 칭의  새생명 요 세 가지만 내것이기 때문에 이 세 가지만 나는 가지고 통과한다.' '이  세 가지만 내것이다.' '네가 이 세 가지 뺏을 수 있거든 뺏들어라.' '나는 이 세  가지만 놓지 않는다.' 이 세 가지만 놓지 아니하고 소유 몸 생명을 돌아보지 않는 자는 금지할 법이  없습니다. 이걸 막을 자가 없습니다. 이 세 가지만 '아 너 죽인다.' '그거는  나는 상관이 없어.' 주님에게 맡겼어. 내야 죽이든지 말리든지 그거는 주께  맡겼기 때문에 주님하고 의논해, 몸도 주님하고 의논해, 소유도 주님하고  의논해, 나는 그분에게 맡겼어. 나는 그분은 가져갈 수 이것을 가져갈 수 없다는  것을 내가 알았어.

이러기 때문에 당신에게 맡겼어. 당신에게 맡겼기 때문에 이 시간 당신이 내가  맡겨 놓은 것, 그것 당신이 가지시고 나에게 안주면 나는 갔다가 그거 없이  끝마쳤고 또 암만 너희들이 뺐으려고 하지만 그분이 나에게 주면 너희들이 뺏들  권리가 없어. 또 너희들이 나에게 주겠다고 갔다가 이 세 가지 내 놓으면  주겠다고 떠들어 살지만 너희들이 암만 줄라해도 그분이 또 나에게 안주면  그만이야 이제 내게 있는 이 세 가지만 내가 내것이요. 내게 있는 저주 아래  있는 소유, 몸 생명 이것은 내것이 아니요. 주님의 것으로 주님에게 맡겨놓고  주의 것으로 당신이 내게 있게 하시면 있고 없게 하시면 없고 있든지 없든지  그게 대해서 나는 책임없어 당신의 주권에게 뜻에 맡겨놨어.

없어지는 것도 당신의 뜻, 있는 것도 당신의 뜻, 너거가 공산주의와 다 두루  뭉치는 다 두루 뭉쳐도 그분이 없게 하지 안하면 너거가 없게 할 권리가 없어.

너희들이 있게 보존을 암만 해도 그분이 없게하면 또 소용 없어.

이러기 때문에 그분에게 맡기면 그건 내 상곤이 없어. 주님이 나에게 이 세 가지  주셨고 값은 내놨기 때문에 이제 이것은 당신에게 맡겨서 이건 당신의 것으로  맡겨버렸고 나는 당신에게 맡겼고 이 구속 이 세 가지만 내것이라 하여 있는  것을 다 주께 맡겨버렸고 이 세 가지만 가지고 통과하는 사람, 이 사람은 이  철조망이 시온에 열린 대로가 되는 것입니다. 대로 같이 통과하는 것입니다.

통과할 때에 그때에 시험에 들면 안돼. '너 소유, 이것 너 그러면 그거 안  내놓으면 이것 뺏든다.' '예, 야 이놈아 네가 뺏들기 전에 주께 맡겨놨어.' '나  내거는 없어.' '그게 내건 줄 아느냐? 주의 것이라.' '주께 맡겨놨어.'  '주님하고 의논 해.' '생명은?' '아 그것도 주님하고 의논 해.' '그거는 나  간섭할 바가 아니라.' '내가 할 바가 아니라.' '주께 맡겨놨어.' '주님의 뜻대로  하셔.' 이런데 나는 이 세 가지만 가지고 이 철조망을 통과할 거라.' '이 세  가지만 양보하지 안하고 나는 현실 생활을 또박 또박 나가는 사람이라.' 그러면 네 소유, 네 몸, 생명은? 그것은 주의 피로 값주고 산 주의 것이기  때문에 주인이 따로 있어. 주께 맡겨놨어. 주인이 그거는 주님이 책임져, 주의  것이라. 이러니까 네가 그거야 없애든지 말든지 그너는 네 마음대로 하고  주님하고 의논해서 해. 내가 분명히 아는 것은 내가 이 세 가지를 가지고 갈  때에 당신이 내가 맡겨 놓은 것 그것을 가지고 통과해라 하면 나는 가지고  통과해야 되고, 가지지 말고 통과하라 하면 가지지 말고 통과해야 되고 이러니까  그것은 당신이 나에게 주권대로 처분할 일이지, 나는 그거 가질 바가 아니기  때문에 가지지 말고 통과하라 하면 가지지 말고 통과하는 길로 끝나버리요.

가지고 통과하라 하면 내가 가지고 통과하라 하면 이것은 맡겼기 때문에 당신이  가지게 하는 것도 당신이 가지게 하시고 없게 하는 것, 당신이 없게 하시지  이거는 내 권세가 아니라. 그건 내가 보수할 아니라. 요 세 가지 보수지 내가 이  세 가지를 다 나한테 뺏든다고 뺏겠다고서 위협을 주지마라. 그건 주님에게 맡겨  주님이 주권하시고 주의 것이다.

이러니까 그것 뺏들어 그게 내 상관 없어. 우리의 육체의 소욕에서 이 세 가지를  주께 완전히 맡겨 버리고 요 세 가지 요 미혹의 욕심에 끌리지 않하고 요것을  주님에게 맡겨놓고, 요 세 가지 당신의 소욕 사죄 칭의 새생명 요 성신의 소욕,  요 세 가지만 내 욕심으로 가지고 육체의 소욕 이것은 온전히 주님에게 다  맡겨놓고 그 미혹의 욕심이 없이 요 성령의 소욕으로 요 세 가지만 가지고 우리  앞에 있는 남은 남은 미래의 이 철조망 어떤 철망이 쳐 있을지라도 요 세 가지만  가지고 통과하고 다른 것을 내가 가질라고 하지 않할 때에 우리는 거게는 평안한  길이요, 시온의 대로요, 기쁨의 길이요, 사망을 호령치고, 공산주의를 호령치고,  세상 국가들을 호령치고, 모든 권세를 호령치고, 고문과 고행도 기근 적신도  호령치고, 우리는 자유롭게 거침없이 살 수 있는 것이 이것이 기독자의 걸음인  것입니다. 그럴 때에 그럴 때에 내 생명이 남아 있으면 그거는 내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있게 하신 것이요.

다니엘은 사자구덩이 들어갈 때에 자기의 생명이나 몸이나 그것을 자기 것으로  보존하려는 그런 어리석음을 가지지 않했습니다. 주께 맡겼기 때문에 다만 이 세  가지 구속, 주와 주의 요구와 명령 이것만 져버리지 않하고 요대로 사는 것,  이것만 자기 것으로 가졌을 때에, '그러면 네 몸 절단난다.' 나거나 말거나  그거는 주남에게 맡겼기 때문에 주님 처분이지 나는 상관없어. 내 몸과 생명  나는 상관없어. 내 소유도 상관없어. 당신이 많이 있게 하면 또 많이 있는  것으로 당신 것으로 내게 많이 있는 것이고, 내가 있게 하는 아니라 있게 하려고  없게 하려고 그 관심이 없어. 있든지 없든지 부하든지 가난하든지 나는 족함의  이 비결을 알았다.

'이러기 때문에 그것은 당신이 있게 하든지 없게 하든지 당신의 처분이라.'  '나는 주를 사랑하고 주를 섬기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것, 주를 사랑하고 주를  섬기는 그 계명을 지키는 것, 이것만 나 할 일이니까 이것만 나 할 일이니까  아무리 다리오 왕이 말하고 온 동료들이 말하지만 하나님 섬기는 일 중에 하나가  되는 기도하는 것, 이게 나 할 일이지. 몸이 죽느냐 사느냐, 사자가 뜯어 먹느냐  안 먹느냐, 이제 이 지위와 권세가 소유가 절단나느냐 안 나느냐? 그거는 나  알바 아니라.' '그거는 주께 맡겨서 주님께서 하실 일이라.' '나 할 일은 이것  뿐이라.' 그러면 '사자구덩이에 던져도 던지든지 말든지 그거는 나한테 묻지마라.' '너거  마음대로 해.' '그래 내가 분명히 아는 것은 너희들이 없앨려고 한다고 당신이  허락지 안하면 없어지지 안하고, 너희들이 있게 한다고 당신이 있게 하시면  안되는 그분이 주권되어 있는 그거는 안다.' '응 그래 나는 관계할 바 아니라.'  '너거 마음대로 해라.' '나 할 일은 이것 뿐이라.' 이랬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것을 다시 다니엘에게 주지 아니하고 소유도 몸도 생명도 지위도 다니엘에게  이것을 끝을 마쳤어.

없게 했으면 없어졌을 터인데, 하나도 그거는 생각지 안해도 있게 하시니까 또  있어졌습니다. 있게 하면 있고, 없게 하면 없고, 많게 하면 많고, 적게 하면  적고, 그게 대해서는 우리는 관심을 가지지 말아야 합니다. 요 세 가지만 우리  할 일로 당신이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런고로 이것을 구별했을 때에 우리 앞에  있는 모든 철조망은 시온의 대로가 됩니다.

이런고로 주께서 이 모든 섭리를 당신이 주권으로 하십니다. 마귀도 당신이  부리는 종이요 이렇게 하신 것은 뭐이냐? 사죄와 칭의와 새생명만이 너의  것이요. 저주 아래 있는 것은 다 주께 맡겨서 사죄와 칭의와 새생명 요것만  위주해서 요것만 가지고 네가 살면 하나님이 그때 그때에 구속한 심신의 기능을  구속시켜 주시는 것이니까 이것은 네가 염려해 봐야 안 돼. 몸도 네가 보수할  그런 힘이 없어. 네 소유도 보수할 힘이 없어. 네 생명도 보수할 힘이 없어.

힘도 없으면서 보수 하려고 하면 너만 공연히 모든 염려에 눌리고 마는 것이지  네가 공연한 육체의 소욕에 미혹을 받을 것 뿐이지 없는 것이니까 이것은 다  주께 맡겨놓고 이 세 가지만 가지고 시온의 대로를 걸어라 하는 것이 우리에게  명령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범죄로 안 됩니다. 후퇴해도 안 됩니다. 이 세 가지를 자기가 가지고  갈라 해도 안 됩니다. 이 세 가지는 값으로 산 주의 것이 됐습니다. 왜? 주님이  그것 다해서 나에게 구속줬기 때문에 다해서 구속해주신 이 구속이 내것  됐으니까 내것 됐으니까 이제 구속 밖에 있던 이것은 당신의 것이 됐습니다.

피도 당신의 피요, 생명도 당신의 생명이요, 몸도 당신의 것이요, 소유도 당신의  것이라.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라.

그러기 때문에 이것은 전능자에게 맡겨 놓으면 이 예수님의 십자가에 못박히실  때에 소유 몸 생명 이 세 가지를 가지고서 마귀가 위협을 하고서 뺏든다. 오만  위협하고 오만 수단 다 썼지만 주님은 그것은 아버지에게 맡겨놓고 당신이  대속하시는 이 일만이 전부를 해 가지고 했습니다. 이러니까 그들이 이것 가지고  위협하고 꼬을라고 이래 쌌다가 그걸 주님에게 다 제물로 맡겨놓고서, 이러니까 마지막 하나가 숨이 딸깍 끊어지고 보니까 더 위협 할래야 위협할 것도  없고 침노 할래야 침노할 것도 없고 신강 할래야 신강할 것도엇고 뭐 아무것도  할래야 할 수 없으니까 마귀가 손을 들었습니다. 마귀가 손을 들었소. 이것이  주님의 십자가 승리입니다. 우리의 승리도, 십자가의 승리가 이것입니다.

이러니까 그것은 맡겨놔라. 아예 그게 대한 소유의 욕심을 몸의 욕심을 생명의  욕심을 이거는 육체의 소유기 때문에 이런 것을 다 우리는 완전히 주님에게  맡겨버려야 합니다. 그것은 '내 주여 뜻대로 하시옵소서.' '살든지 죽든지  뜻대로 하시옵소서.' '가난해도 부요해도 내게 주시는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능치 못할 것이 없느니라.' 주님이 내게 능력 주시는 이 능력 가지고 이  세 가지만 우리는 보수할 이것이 우리의 생애요, 이것이 우리 것이요, 이것이  자기입니다.

그런고로 '요렇게 구별해서 있는 것을 다 버리지 아니하면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니라.' '네가 망대를 세울 때 앉아서 예산을 해라.' 네 앞에 있는 원수가  가득히 사죄와 칭의와 새생명 이것 뺏들라고 애를 쓰는데 거기에는 비용이  얼마나 되느냐? 있는 소유를 다해 놓으면 주님에게 맡겨 놓으면 사는 것, 죽는  것, 가난해지는 것, 부요해지는 것, 몸이 건강해 지는 것, 약해지는 것, 그 또  고문과 고행 당하는 것, 이것는 내 몸과 모든 것은 당신의 영광되도록 당신이  기쁨이 되도록 당신 좋은 대로 써. 당신의 모든 것은 나의 소원대로 나를 위해서  써. 쓰니까 내 모든 것을 당신 위해서 써야 될 것 아닙니까? 이렇게 딱 구별해서  당신에게 맡겨놓고 사죄와 칭의 새생명 요 세 가지만 우리의 것으로 보수하고  보존하며 할 때에 마귀는 이것을 포기한 자에게는 위협 줄 없어.

바울은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기를 주님의 기쁨에  이용이 되기를 원하니까 마귀라는 놈이 바울의 소유를 가지고 협박을 놓으려  해도 아예 그게 협박을 하나도 당히지 않하지 그거는 전능자에게 맡겨 버렸기  때문에 바울의 몸을 가지고 협박을 해도 협박을 안 당해.

그거는 전능자에게 맡겼기 때문에 생명을 가지고 협박을 해도 전능자에게 맡겼기  때문에 그는 전능자에게 맡긴 것을 당신에게 자기에게 줄 때에 이것은 주님의  기뻐하시는 뜻대로 사죄와 칭의와 새생명을 기념하고 나타내고 증거하고  이것에게 쓰여지기를 이것 때문에 없어지는 것이 최고의 목표요 최종의 그의  소망이 되기 때문에 그는 아무도 시험할 자가 없습니다. 이것이 주 안에서 걷는  평강의 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오전에 고범죄는 소멸하는 멸망 뿐입니다. 후퇴하면 침륜에  빠집니다. 앞으로 무서운 철망이 있지만 이 철망은 모든 것을 다 버리고 구속 세  가지만 가지고 가는 자에게는 영광스러워지는 영광스럽게 하는 철망입니다.

용광로 불은 정금을 해하는 것 아니요. 정금을 존귀하고 가치있게 만드는  것이요. 이 순금같은 순금같은 진실한 신자를 영광스럽게 하는 것이요. 모든  잡된 것을 다 제하는 것이요.

그런고로 우리는 두 가지 길은 버리야 하고 한 가지 십자가를 지고가야 되는데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은 자기의 소유, 몸, 생명, 이것은 주께 맡겨서 이것은  사죄와 칭의와 새생명 이것을 보존하기 위해서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 요것을  바로 잡아야 됩니다. 요것이 십자가의 군병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염려없는 생활을 취합시다. 안정된 생활을 취합시다. 공연히 홍해바다 가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막 놀라서 무릎이 다 똑딱 거렸오. 모세와 여호수아 갈렙은  기뻐하고 즐거워했습니다. 녹은 놈만 헛녹았소. 기뻐하고 즐거워한 사람들은  행복을 누렸소. 그렇다고 녹아졌습니까? 안 녹아지는데 공연히 염려함으로  생명의 일각도 더한 자가 없습니다. 공연한 염려에서 지옥의 고통을 당하는 것은  옛사람 그놈이 내 심신을 사로잡았을 때에 그런 것입니다.

 


선지자선교회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공지 2022.07.04-5596 김반석 2022.07.04
공지 백영희와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2.07.04
공지 순생 순교의 종 백영희 목사님 [1] 선지자 2021.02.22
공지 법전과 주해서 · 성경과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0.05.30
공지 백영희목사님의 ‘목회설교록’에 관한 교훈 모음집 선지자 2019.12.18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자료 1,2,3차 통계표 [3] 김반석 2015.12.20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1] 선지자 2015.10.19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2736 신앙영감생활/ 베드로전서 3장 21절-22절/ 850614금야 선지자 2015.11.27
2735 신앙은 독립적이다/ 누가복음 21장 34절-36절/ 850820화새 선지자 2015.11.27
» 신앙은 전진이다/ 히브리서 10장 26절-39절/ 800928주전 선지자 2015.11.27
2733 신앙은 전진이다/ 히브리서 10장 32절-39절/ 1980년 40 공과 선지자 2015.11.27
2732 신앙은 전진이다-겸손/ 베드로전서 5장 5절-11절/ 800928주후 선지자 2015.11.27
2731 신앙은 힘써야/ 베드로후서 1장 1절-9절/ 871120 지권찰회 선지자 2015.11.27
2730 신앙의 3계단/ 창시기 3장 6절/ 880828주후 선지자 2015.11.27
2729 신앙의 걸음/ 히브리서10장 32절-39절/ 1974. 7. 28. 제30공과 선지자 2015.11.27
2728 신앙의 기초작업/ 누가복음 21장 33절-36절/ 881203토새 선지자 2015.11.27
2727 신앙의 두 길/ 창세기 13장 5절-15절/ 840805주후 선지자 2015.11.27
2726 신앙의 두길/ 창세기 13장 1절-16절/ 890210목새 선지자 2015.11.27
2725 신앙의 목표/ 베드로전서 1장 3절-7절/ 831028금새 선지자 2015.11.27
2724 신앙의 보배로운 요소 다섯가지/ 누가복음 5장 8절-11절/ 860630월새 선지자 2015.11.27
2723 신앙의 뿌리, 둥치, 열매/ 시편 1장 1절-6절/ 840204토새 선지자 2015.11.27
2722 신앙의 선후배/ 마 23장 1절-14절/ 1977년 42공과 선지자 2015.11.27
2721 신앙의 성질/ 누가복음 5장 1절-6절/ 1977년 44공과 선지자 2015.11.27
2720 신앙의 순서,구비요소/ 시편 1장 1절-3절/ 830426화새 선지자 2015.11.27
2719 신앙의 어려움을 피하지 마라/ 사도행전 1장 4절-5절/ 860613금새 선지자 2015.11.27
2718 신앙의 잠을 깨라/ 마태복음 24장 42절-51절/ 840623토새 선지자 2015.11.27
2717 신앙의 표시/ 요한복음 8장 31절-34절/ 880903토새 선지자 2015.1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