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은 독립적이다


선지자선교회 1985년 8월 20일 화새 

 

본문 : 누가복음 21장 34절∼36절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주님이 친히 말씀하신 말씀입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여기 스스로라는 말은 자기가 어떤 사람에 게  피동되지 말고 자기가 능동적으로 조심을 하라 그말입니다. 신앙생활은 자기  독립성을 가져야 되지 신앙이 무엇에게 이렇게 피동되는 그런 피동성을 가지면  못 씁니다. 신앙은 개인적입니다.

 이렇게 내가 개인적인 이 신앙생활을 해 가지고 하나가 되는 그것이 신앙인데.

갑이라는 사람도 을이라는 사람도 신앙생활할 때에 다 한 분이신 주님에게  피동으로 신앙생활을 하면 그것이 아무리 숫자가 많아도 그것은 한 행동이  됩니다. 이래서 하늘나라는 하나입니다. 그러기에 교회는 역사 적으로 약 육천  년 내려 왔으니까 교회가 수가 많고 또 온 세계에 퍼져 있으니까 수가 심히  많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하나뿐입니다. 왜 그런고 하니 하나님도 한 분뿐이시요  또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역사하시는 역사도 성령 혼자 역사하십니다. 또 진리는  하나님에게서 나온 하나님의 뜻이 진리요 하나님의 뜻이 영감으로 나왔고 영감이  진리로 나왔고 진리가 이렇게 성경으로 나왔는데, 성경은 차차차차 성경보다는  진리가 더 세밀하고 또 진리보다는 영감이 더 세밀하고 영감보다는 하나님  안에는 무한함이 들어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다 한 분 하나님에게 피동으로 이렇게 신앙생활을 한 그것이 다  결과적으로 합하여 하나가 되는 것, 합하여 하나가 되는데 합하여 하나가 되는  것이 잡것이 모아 가지고 합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나온  그것이 다 하나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이 신앙생활이지 하나님 외에 딴것에게  피동되면 그거는 전부이 마귀 역사입니다.

 사람이 신앙생활하는 것도 보면, 그 사람 신앙생활이 독립성을 가지지 못하고  언제든지 하나님 외에 그 어떤 인간에게 피동하는 그런 피동을 가졌으면  피동성을 가졌으면 그 신앙은 다 당이요, '당을 짓지 말라' 하는 그거는  잡당입니다. 보면. 교인들도 구역장에게 속해 가지고 구역장에게 피동되는 그런  신앙도 그것은 좀 생각할 여지 있습니다. 만일 그것이 하나님에게 피동되는 그  피동이 구역장에게 피동되는 것이라면 좋습니다. 왜? 구역장이 하나님에게  피동하는, 하나님과 함께 움직이니까 그 모든 식구들이 다 함께 움직이는 그런  일이라면 그건 참 이상적인 좋은 교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 피동이 아닌,  하나님에게 피동을 거슬리는 그런 것으로서 구역장에게 피동이 되면 그것은  잡탱이입니다. 구역장뿐 아니라 목사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에게 피동되다 보니까  목사에게 피동되고 목사에게 피동된 것이 하나님에게 피동 된 것이어야 되지  목사에게 피동된 것이 하나님의 뜻과 영감에 거슬리는 게 된다면 그건 다  잡탱이입니다.

 그러기에, 스스로 조심하라 그말은 다른 사람을 의뢰하지 말고 꼭 제 일을 제가  하라 말입니다. 제 구원을 제가 이루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제 구원을 제가  이루면 천 명이면 천 명이 제 각각 다 구원을 이루니까 천 개가 되지  않겠습니까? 제 일을 제가 하고 제 구원을 제가 이루라 그말은 우리가 악령과  악성과 악습으로 더불어 죽었던 우리들이 이제 살아나기를 뭘로 살아났느냐 하면  예수님의 피와 성령과 진리로 살아났습니다. 그러면 피도 하나요 성령도 하나요  진리도 하나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살아나기를 하나로 살아났으니까  우리의 지혜도 하나요 힘도 하나요 성질도 하나요 소원도 하나요 희로애락도  하나요 목적도 하나요 하나인데. 한 분이신 그분으로 말미암아 된 우리이기  때문에 우리는 몇천 몇만 명이 있다 할지라도 전부 하나가 되어지는 그것이  신앙이 바로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은 지금 큰 모순된 거 있는 것은 교파마다 각각 다릅니다. 다른  데 교파마다 다 우리 교파가 제일 잘 믿는다 정통이다 하고, 자기네 교파가  아니면 다른 교파는 그만 아닌 것도 옳은 줄 알면서도 정죄를 합니다. 왜?  그것은 뭐이 들어 그렇게 하는고 하니 만일 그게 옳고 내가 틀렸다 하면 내  교인이 그리 끌려 갈 터이니까 이거는 할 수 없어서 옳지만 틀렸다고 이거는  정죄를 해 가지고 가지 못하게 하는 방편으로 써야 되겠다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  사람이 대단히 착각을 해서 큰 손해를 보는 것입니다. 옳은 것은. 그게 뭐이냐?  옳은 그것이 하나님이오. 옳은 것은 하나님께 속했고 그것이 진리와 영감에게  속했고 천국의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가 사람 하나 뺏기지 안할라고  하다가 옳은 것을 틀렸다고 하는 날이면 그 사람을 하나님보다 진리보다 크게  여겼기 때문에 그 사람은 결국은 그런 데 속해 가지고 구원을 이루지 못하고,  건설 구원은 하나도 이루지 못하고 그저 기본 구원이나 가지고 가지 딴거 가지고  가지 못할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마귀란 놈은 지금 역사를 해 가지고 이거는 네 교파다 내  교파다, 이거는 내 교파다 이거는 남의 교파다 그런 미혹을는데 그게 내 교파라  하는 내가 그거 옛사람입니까 새사람입니까? 그거 내 교파라 내 교회 교인이라,  또 내 구역 사람이라. 이렇게 하나님과 배치가 되는 데까지 하나님과 배치되는  데까지 내라는 것이 나아간다고 하면 그 내라는 것은 그것은 옛사람에게 속한  것이지 새사람 아닙니다. 그거는 자기 아닌 자기요. 원수인 자기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아. 나와 저와 다르다. 왜 내 구역에는, 내 교회는, 내 교파는  이렇게 사랑하고 돕고 하는데, 이것이 이단이냐,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된  참 교회냐 하는 것을 구별할 때는 어떻게 구별하느냐? 아, 내것과 남의 것,  그러면 내것은 내 것이라는 이것이 주님과 하나되어 있느냐, 영감과 하나되어  있느냐, 우선 제일 일차적으로 성경에 기록된 성경 도리와 하나되어 있느냐?  성경 도리와 하나되어 있으면 다 완전이 아니요 성경 도리와 먼저 하나 되어  있는가 그렇게 해 놓고, 우리가 무엇을, 나물을 다듬는 것도 안 그래요? 부인들  나물을 다듬는 것도. 그 채소 말이요 채소 다듬는 것도 대충 흙이나 툴툴 털어  놓고, 또 그 다음에는 뿌리 있는 거는 뿌리는 짤라 던지고, 또 그라고 난  다음에는 이제 거게서 누른 잎이나 그런 거 다 떼고, 또 그라고 난 다음에는  거게 무슨 티가 있으면 그런 거 또 티 떼고 또 그라고 난 다음에는 물로 또  깨끗하게 씻어서 자꾸 이래 나가는 거 아닙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신앙생활도  그런 것입니다. 먼저 성경 말씀 가지고 모든 것을 구별해서 다듬고, 그 다음에는  자기가 양심을 써서 신앙 양심으로 다듬을라고 애를 쓸 때에 양심은 어두운  것이지만 신앙 양심으로 다듬을라고 애를 쓰면 영감이 옵니다. 양심 안 쓰는  사람은 영감은 못 만납니다. 평생, 양심을 쓰지 않는 사람은 영감을 만나지  못합니다. 영감으로 또 다듬습니다.

 영감으로 다듬으면 이제 그 다음에 다듬을 거는 뭐입니까? 그 다음에 다듬을  거는 하나님으로 다듬습니다. 하나님으로 다듬는 거는 뭘 하나님으로 다듬는  것이라 하는고 하니 내가 처음에는 내가 하나님을 따라서 이렇게 자꾸 뭘 바로  음게 할라고 했지만 그걸 오래 동안 하게 되면 이제는 내가 내 마음대로 하지  못하고 하나님이 나를 거머쥐고 당신의 뜻대로 움직이게 됩니다. 그러면 내가  처음에는 하나님을 따라가지만 이제는 하나님에 게 끌려가는 사람이 되어져야  됩니다. 그러면 그것이 마지막에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내 것, 내 것이면 성경 말씀에 위반이 돼도 동정을 해서 내  것이라면 후하게 하고. 내 것이라면 후하게 하고, 내 것이라면 좀 각 박하게  하지 안하고 후하게 하고, 다른 사람의 것이라면 각박하게 합니다. 그러면  후하고 박한 것이 내게는 후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박하고 그 후박이 후하고 박한  것이 차이가 있거든 우리는 거게서 조사를 해야 됩니다. 아 차이 있는 거 보니까  내게는 후하고 다른 사람에게 박한 거보니까 내라는 것이 이거 옛사람이로구나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또 우리가 그렇게 하다 보면 무조건 자기에게 대해서는 박하게 합니다.

자기에게 대해서는 박하게 하고 남에게 대해서는 후하게 하는 그런 방편을 쓰기  쉽습니다. 그런 방편을 쓰다가 그리 치우쳐 가지고 손해 보는 일이 않습니다.

주님의 뜻대로 참 살려고 하는 사람들은 대개 보 면 자기에게 대해서는 박하게  합니다. 자기 자녀에 대해서는 박하게. 또 자기 권속에 대해서는 박하게, 자기와  가까운 사람에게는 박하게 합니다. 자식하고 아내하고 둘이 싸우면 그것은  아내를 나무래는 사람이 있고 자식을 나무래는 사람이 있는데 자식을 나무래는  사람은 그 사람은 먼 것을 그렇게 먼 것을 미워하는 그거고. 아내를 나무래는  사람은 가까운 것을 나무래는 것입니다. 이웃 아이하고 또 자기 아이하고 둘이  싸우면 자기 아이에게 대해서 좀 박하게 하고 이웃 아이에게 대해서 후하게  합니다. 그것은 어디로 치우쳤느냐 하면 아무래도 나는 내게로 치우치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로 이렇게 좀 치우치는 이 일을 해야 되겠다 해 가지고 바로 잡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이 그것이 얼마 동안 지나가면 손해를 봅니다.

 그래 가지고 아내에게. 이해 못 하는 아내는 '아, 이거 내가 가까우니까 이런가  보다.' 이것을 깨닫는 아내이면 서로 동반할 수 있는 아내인데, 그렇지 못한  사람은 '아, 이거 자식만 귀중히 여기고 나는 천하게 여긴다.' 이러니까 그만 그  가정이 안 됩니다. 가족이 암만 많아도 자기와 가깝기는 부부가 가깝고. 또 그  다음에는 자녀들이 가깝습니다. 자녀는 가깝고 부부는 가깝지 않는 그거는  고장입니다. 그게 잘못된 것입니다. 정상으로 말하면 내가 남편을 사랑함으로 그  남편과 낳은 자녀를 사랑해야 되고, 또 아내를 사랑함으로 아내와 같이 동반해서  낳은 자녀를 사랑해야 그게 정상으로 바로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무슨 사건에서 자타를 구별해 가지고 옛사람인지 새사람인지 그것을  그때에 비로소 발견을 해야 되고. 무슨 일이나 물건에 대해서 자타가 다른 것을  봐서 그걸 알아야 됩니다. 어떤 사람은 참 여게 대해서 연구를 안 하니까  자기에게 치우쳐서 자기라는 것은 그거는 뭐 자기에게 속 한 것은 무조건  좋아하는 그 사람은 좀 조심을 해야 돼. 왜 그 사람은 조심해야 되느냐? 그  사람은 완전히 어두워져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개와 같이 어두워져 있기 때문에  좋은 것을 주면 그걸 모르기 때문에 그 사람 이 물고 찢습니다. 그저 뭐 옛사람  그 사람이라도 자꾸 슬슬 추켜서 이래 나가면 일 없이 잘 돼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람 쳐 놓고 제일 취급하기가 어려운 사람은 저밖에 모르는 사람이  제일 무섭습니다. 아마 ○대통령이 '무서운 거 중에는 제일 무식이 제일 무섭다'  하는 그 말을 아마 그런 데에서 발견 해 가지고 말한 말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이  됩니다. 그렇기에 남을 이해할 줄 모르고 자기만 아는 그 사람은 암만 말해야  그게 통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자기 죽는 말, 자기 망하는 말 그저 옛사람  그거나 슬슬 추켜 주면 뭐 사지를 쓰지 못하고 좋아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럴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독립 신앙생활을 해야 된다. 신앙은 독립이어야 된다. 신앙은  독립이어야 된다. 그러면, 독립이어야 되는데 어떤 사람들은 내가 가만히 그걸  살펴봅니다. 새벽 기도도 꼭 둘이 같이 다닙니다. 이사람 안 나오면 저 사람 안  나옵니다. 이 사람 나왔으면 저 사람 나옵니다. 그게 같이 하는 게 좋은 것  같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적이기 때문에 그걸 미워하는 것입니다. 아, 이 사람이  나왔다. 이 사람 나온 거 보니까 이 사람도 나왔지? 살펴 보면 나왔습니다. 그  두 사람이 꼭 행동을 같이하면 좋은 줄 알아도 두 사람이 행동 같이하니까  그것은 이 사람이 우상이 됐든지 저 사람이 우상이 됐든지 그 사람은 하나님이  끄는 것보다도, 그게 끄는 것이 더 크다 그말이오.

 예를 들면, 새벽 기도를 나오는데 이 사람 나오면 저 사람 나오고, 이 사람 안  나오면 저 사람 안 나오고 그렇다면 새벽 기도 나온 게 하나님의 뜻일 터인데  어찌 두 사람이 꼭 같이 다닐 리가 없는 것인데 그거는 사람 끄는 것이 하나님이  끄는 것보다도 더 강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최종적은 사람이 끌지 안할 것인가?  그렇기 때문에 그거는 우상이라 그렇게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걱정을 합니다. 사람들이 서로 화합하는 게 좋기는 좋지만  화합하는 것을 걱정하는 것은 무엇 때문에 걱정하느냐? 화합하는 것이 좋기는  좋습니다. 서로 분쟁하는 것보다 좋기는 좋지만 그 화합이 진리로 화합이 되고  하나님과 화합이 된다면 그 좋지만, 화합이 하나님과 진리를 내놓고 딴걸로  화합이 되는 날이면 그것은 깨야 되지 그 거는 클수록 그게 뭉텅이가 되어서  하나님의 적의 단체가, 하나님의 적의 단체가 커지는 것이기 때문에 그거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역장들도 식구를 그렇게 살펴 봐야 되고, 또 구역장, 장이  권찰 회장, 권찰 회장도 그런 걸 살펴야 됩니다. 그러면 저 도 그걸 안 살피는  게 아니라 살핍니다. 이 구역장은 하나님을 중심하는 것보다도 제가 중심 하는  것. 하나님이 그 모든 식구들을 주권하는 것보다도 제 기질이 주권하는 거, 제  주장이 주권하는 거, 제 욕심이 주권하는 거 제 성질이 주권하는 거, 제 무슨  권세가 주권 하는 거 제 강력이 주권 하는 거, 건강이 주권 하는 거, 건강이.

육체의 건강이 주권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좀 있으면 병들게 만듭니다. 병들게  만드는 거는 그거 그라면 하나님이 피흘려 구속하신 것을 다 뺏기지 않습니까?  뺏기기 때문에 이거는 암만 해도 몸이 병이 들어야 되지 몸이 병들지 안하면  이거 꼭 육체가 건강하니까 이게 주권하니 몸을 병들게 해야겠다. 몸을 병들게  한다 말이오. 몸을 병들게 하는 거, 또 그 사람이 무슨 세상일이 잘 돼서 또  그런 거 가지고 자꾸 사람을 주권하게 되면 그 사람의 그 일을 깨트려 버립니다.

 나 그런 사람 많이 봤습니다. 요새도 어떤 사람 하나는 자기 형제가 돈을 잘  벌고 이라니까 부자라. 이러니까 돈을 내가 널 대 주겠다 이라니까 돈 대 준다  소리 하고 난 다음에 어떻게 그 사람이 교만한지 도무지 상대 할 수가 없어.

이래서 내가 그 말을 했어. '네가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이 그거 돈 얼마 대 준다  하니까. 그거 가지고 네가 말을 하는데 그런 거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 의지해라.

그거는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고 그렇게 정함이 없는 것들이니라.' 다른  소리는 내가 심하게 하지 못하고 그렇게 밖에 말 못 하겠다 말이오. 못 했는데  그 돈이 바싹 깨져 버렸어. 아주 깨져 버려서 전화가 직접은 안 왔는데 오기를  내가 이래서 그만 우리 형제까지 망쳤습니다. 이랬더니만 하나님께서 이외에도  그걸 망쳐서 완전히 거지가 됐기 때문에 지금, 큰 부자가, 큰 부자는 아니지만  부자가 이제 빚 투성이가 크게 돼 가지고 있으니 뭐 하나도 도움 받을 수  없다고. 그러니까 그만 납작 눌려졌어.

 아, 형제간이 좀 돈 좀 대 줄라 한다고 우쭐해지고, 돈 없으면 납작해지는  그까짓 게 무슨 사람입니까? '그거 사람이 아니야, 그거는. 못난 사람 이라  말이오. 그럴 때에, 아, 이거 의지한다. 이거 무슨 담력을 가지고 의지한다. 뭘  의지하노? 하나님을 의지하고 진리를 의지하고 진리기 때문에 이거는 담대하다.

진리를 의지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면 그거 참말로 잘난 사람이요 가치가 있는  사람이지만 하나님과 진리 외에 어떤 인간을 의지한다. 어떤 권세를 의지한다.

제가 좀 직장을 좋은 거 가지니까 직장을 의지한다. 그까짓 거는 사람 아닙니다.

그거는 짐승 한가지야. 사람의 가치로 보지를 말라 그말이오. 내가 직접 대해서  말하면 그 사람이 노할 것이고 이제 이런 말 하는 거 이런 때 고쳐라 그말이오.

그건 사람이 아니라 짐승입니다 짐승.

 그러기에, 그거는 창세기 6장에 보면 '사람이 육체가 되었으니 하나님이 그와  같이 하지 않는다 이랬어. 육체가 되었다 말은 고기덩어리 사람이라 말이오. 저  사람이 푹 내려가는 거는. 푹 죽어져 어깨가 축 쳐진 거는 뭣 때문에 쳐지는가?  세상 일이 뭐 절단 난다고 쳐지는 그것도 그것도 참 인격의 사람은 아닙니다. 또  세상 일이 뭐이 올라갔다고 또 우쭐해 진 것도 그것도 인격은 아닙니다. 그저  우리의 힘은 진리가 우리 힘이요 영감이 우리 힘이요. 예수님의 대속이 우리  힘이요, 하나님이 우리 힘이요. 그거 외에는 우리 힘 될 것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내가 뭐 벌써 수십 년 전부터 힘에 대해서 말했는데, 많이  말했는데, 이것도 힘이 아니다. 이것도 힘이 아니다. 이것도 힘이 아니다. 이거  이런 것은 힘이 나타나는 한 도구요 기관이지 힘은 아니다. 힘으로 말하면  우리에게는 진리와 영감과 예수님의 대속과 하나님 외에는 우리 힘은 없다  그렇게 많이 말했는데, 그런 말을 해도 보면 너무 어디서 다른고 하니 행동하는  데서는 잘 몰라요. 행동은 모두 사람들이 보고 있기 때문에 행동은 될 수 있는  대로 조심해서 맞춰 가지고 할라고 이렇게 하고 있지만 무슨 사건이 있어서  비판하는 걸 보면 영 틀렸다 말이오. 비판하는 거 보면 영 틀렸어. 비판하는 거  보면 순전히 그거는 자기가 왕이 돼 가지고 주장하고 있어 그런 사람이 그대로  나간다면 참 불쌍한 사람이오. 하나님이 그걸 깨뜨려 주면 좋지만.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 "스스로 조심하라" 하는 이런 것도 가지고 자꾸  자기가 깨워야 됩니다. 신앙은 독립적이라 독립적이라. 그래서 독립이라면 뭐  여기 독립적이라 하는 그 말은 자기가 왕이 돼 가지고 자주 적이라 그말이  아닙니다. 독립이라 하는 것은 인간이 피조물에게 피동되지 말고 하나님 한  분에게만 피동되라 하는 그말입니다.

 이래서, "스스로" 하는 것은 자기가 자기 일을 독립적으로 자기가 스스로  자기를 건설하라, 스스로 건설하라. 스스로 회개하라. 이 말은 전부 인간에게  피동되지 말고 모든 피조물에게 피동되지 말고 하나님 한 분에게는 영원히  피동돼야 되지만 딴 데는 피동되지 말고 모두 다 이렇게 독립적으로 자립적으로  하라는 그런 말입니다. "스스로 조심하라" 조심이라면. 잡을 조(操)자. 마음  심(心)자인데. 붙들어 매는 걸 말합니다. 붙들어 매는 것, 마음을 꼭 붙들어  매는 것,  아, 요게는 보면 어디다가 붙들어 매야 되느냐? '그날이' 하는 것은 하나님의  날이 하는 거 한 가지인데 '그날이 뜻밖에 덫과같이 이르리라' 어디다 붙들어  매느냐 하면 하나님의 날에다 붙들어 매라. 예수님의 재림 이 언제인지 모르니까  항상 예수님의 재림에다가 네 마음을 뽈끈 붙들어 매놔라. 항상 재림에 붙들어  매니까 재림만 보고 재림만 생각한다 그말이라. 재림만 생각하고, 재림을  생각하기 때문에 아. 예수님의 재림이 오늘인지 내일인지 모르니까 내가 이 말을  회개해야 되겠다. 오늘인지 내일인지 모르기 때문에 내가 이 말을 해야 되겠다.

오늘인지 내일인지 모르기 때문에 이 사람하고 잘못된 것을 해결해야 되겠다.

오늘이 마지막 날인지 모르기 때문에 이 사람에게 조심을 해야 되겠다. 오늘이  마지막 날인지 모르기 때문에 내가 맡은 의무와 책임과 본분에 대해서 내가  후회할 것이 없이 해야 되겠다. 이렇게 그날에 마음이 매여 있으면 돈에  매였으면 돈을 벌지만 그날에 매여 있으면 돈 못 벌고 다 그 사람은 아주  육신적으로는 거게다가 마음을 매어 놓으면 손해가 아닙니다.

 그러기에 베드로후서 3장에도 '주의 날이 나타나기를 바라보고' 소망은 전부  그날에다 둬라 '바라보고 간절히' 네 간절도 그날에다 붙여 놔라. '사모하라'  네, 사모하는 것도 그날에 갖다 붙여 놔라. 이러면 마음의 움직임은 전부  하나님이 재림하는. 주님이 재림하시는 거게다가 전부 붙여 가지고 마음을  거게다 붙여 가지고 거게 붙은 마음이 이런 거 저런 거 생각해야 바로 생각하지,  거게 붙지 안하고 거게 안 붙으면 돈에 붙든지 직장에 붙든지 과학에 붙든지  기술에 붙든지 다 그래 붙습니다. 그래 항상 그 마음을 돈에다가 갖다 붙인  사람이나 돈에 갖다 붙인 사람이나 노름꾼 이 노름에 만날 거게다 마음을 붙여  놓은 사람이나 춤추는 데 갖다 붙여 놓은 그 사람이나,

 어제도 보니까 그런 게 있었는데, 계집아 머슴아, 남자 여자들이 뭐 참 소동  고모라 성 이상입니다. 이상이요. 이러니까 어제도 그런 거 하나 쫓아냈다  하는데 오니까 저 어디 뭐 계집아 머슴아 저 뒤에 있기 때문에 가만히 들어  보니까 저거끼리 교회서 하지 못할 말하면서 소근거리고 있어서 수위가 가  가지고 '어디서 왔느냐?' 이래 물으니까 뭐 하나는 ○○교회서 오고 어디서 오고  이 교회는 돌아다니며 장 교회 가 가지고 그 짓 하는 거라. 교회 가 가지고 연애  다 하고, 교회 가 가지고 뭐 사람 뭐 교회 아무도 없으면 죄 짓는 일도 다 하고  그래 해요.

 이런데 내가 어제 말 들었는데 우리 교회에 똥을 세 무더기를 놔 놨다 하는데  똥 세 무더기 놓으면 교회가 더럽다 그말입니다. 우연히 똥이 오는 게 아니라 그  좀 더러우니까 좀 깨끗이 하라 그말이오. 아 똥을 어디 눠 놨다 했소? 누가 아는  사람 손 들어봐. 아무도 안 드네. 어디다 눠 놨어요? 이 층에 일 층에? 일 층에?  이 층? 이층 저 뒤에다가, 이 층 저 뒤에다 눠 놨으니까 이거 이 층을 지금 뭐  수위들이 둘이 있지만 조사 안 하니까 뭐 막 더럽게 사용해 기도하러 온다 해  가지고 보면 다 가 그 나니까 이 좀 너른 판에 가서 무슨 일을 할지 그런 걸  한다는 걸 우리에게 알려 주는 거야. 우리는 눈이 없어 모르니까. 여기 와  가지고 교회 와 가지고 연애하고 교회와 가지고 동침하고 오만 짓 다 할  터이니까 그라면 우리 예배드리는 곳이 그래 더러워지니까 우리가 복을 받지  못할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 걸 살펴야 되겠다 그말이오.

 나는 그래서 지하실 저기 장 그래서 저 비상구 저걸 다 못을 쳐서 다 막아  버려라 했어. 여기 밑에 그리 들어가 놓으면 뭐 아무도 들어가지도 못하지  안에서 잠가 놨으니까. 그래 가지고 또 지하실 저것도 저기 아주 잠궈 버려라  지하실 저거 딱 잠궈 놓고. 이 수위들이 그래서 도무지 경 비들을 내가 믿을 수  없어. 이 수위가 둘이나 두고 말이지 이십 이 만원 씩이나 주고 그거 맡긴 건데  둘이 와 잠자고 있다 그거야. 잠을 자고. 낮으로는 무슨 일 하고 똑 잠을 자고  있는지 그 수위하는 시간에는 와 보면 다 잔데요. 이러니까 아, 혼자해도 그걸  이래 거석하면 딱 잡으면 무엇 이 그런 잡것이 범하겠습니까, 정신을 깨 가지고  있으면 둘이 하면 더욱 더 그럴 건데. 하도 거석해서 순찰해라. 그러면 이  사람이 외순하고 바깥에 수르르 돌고 들어오거들랑은 또 그 다음 사람이 또 안에  또 돌고, 또고 다음 사람이 또 밖에 돌고, 안에 돌고, 그래 계속해서 돌고  들어오면 또 여기 돌고 이라라 하니까 이제 뭐 하는게 아니라 돌라 하면 저 나가  가지고, 돈다 하고 여기 가 가지고 인제 거기 가서 자는 거라. 실컷 자고 깨면  이제 오면 또 인제 뭐 외순했다, 외순 나갔다 이라고.

 이 똥을 눈 거는 똥같이 더러워졌다 그말이오. 어떤 남여 거게 와 가지 그  동침이나 했으면 더럽지 많습니까? 그보다 더러운 게 어디 있어? 그 거는 물론  벌 받아서 뭐 어떻게 망하든지 그까짓 거야 뭐 그거는 불택자 야 그까짓 거  하나님이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건 우리가 지켜야 되지. 똥이 몇 무더기 있어?  두 무더기? 두 무더기가 저 있대요. 두 무더기 가. 그거 왜 누가 치웠어? 네가  치웠나? 뭐할라고 치워, 치우기를 내비두지. 그럴 때는 치우지 말아요. 치우지  말고 똥을 가지고 이래 뭉케 가지고 막 온 의자고 뭐고 쏵 문대 놔. 그래야 좀  알지 아이구 꾸렁내 난다. 이거 어짠 일이고 그래야 뭐 알지. 뭐 살짝 치워,  치우기를. 그 선이 아니야. 나쁜 거라. 주일날 알면 더 좋지, 광고도 되고. 이  다음에는 치우지 말아요. 모두 다 알구로.

 이래서 우리가 무엇이든지 이래 가지고 깨어 있어 가지고 이래 해야 되는데  그저 저만 하면 된다 이거 아닙니다. 사람이 소경이 있고 눈뜬 사람이 있고  심령의 눈이 어두운 사람있고 밝은 사람이 있고, 이라기 때문에 밝은 사람일수록  좋은 사람 아닙니까? 그러니까 믿는 사람은 안팎으로 눈이 있다 이랬어. 안에도  눈이 있고, 안에 눈이 있다 말은 자기에게 대해도 현철하게 정확하게 감찰하고,  또 자기 밖에 자기 아닌 것에 대해서도 감찰을 확실히 한다 하는 그걸 가리켜서  안팎에 눈이 있다 그랬어.

 자기에게 대해 감찰 못하고 남에게 대해서만 감찰하는 그것도 그거 병신, 눈  병신, 마음의 눈의 병신이라 그말이오. 또 자기만 감찰해서 자기 일만  꼬박꼬박하지 다른 거는 보지 안하고 가는 사람 그 사람은 가다가 전봇대에  다쳐서 그 이마를 깨든지 뭐 할 것 아니겠습니까? 자기 앞만 보고 가면 됩니까?  자기 일만, 자기 일이 뭐이 자기 일인데? 자기 일이 뭐이 자기 일인데?  따라합시다. 소아! 작은 자기라 말이오. 소아! 대아? 우리 서부 교회 전체가  대아입니다. 전부가 합해 가지고 자기입니다. 서부 교회가 더러워지면 자기도  더러운 거 아닙니까? 이러니까 자기만 아는 게 아니라 소아도 알고 대아도 알고,  소아도 잘 보호하고 대아도 잘 보호하고, 소아의 의무도 하고 대아의 의무도  하고 이렇게 해야 그 게 바로 되는 것이라.

 오늘 아침에는 '스스로 조심하라' 조심은 요거 주님의 재림의 날에다 가 자기  마음을 붙들어 매라 그말입니다. 이러니까, 돈에 붙들려 매인 사람은 마음을  돈에 붙들어 맨 사람은 항상 돈에 대해서 연구할 것이고, 돈에 대해서만 돈을  기준으로 돈을 중심으로 해 가지고 비판하고 평가할 것이고, 또 자기 마음을  주님의 재림의 날에다가 붙들어 놓은 사람은 모든 비판이나 평가가 전부 이  주님의 재림의 날에 어찌되느냐? 재림의 날에 이라면 유익이 되나 손해가 되나?  재림의 날에 후회가 되겠느냐 칭찬을 받겠느냐? 이 재림의 날에 멸해지겠느냐  재림의 날에 그때 아주 영존할 수 있는 것이냐? 이렇게 재림의 날에다가 우리  마음을 붙들어 매면 그 사람의 모든 생활이 다 돼요.

 재림의 날에다가 붙들어 매 가지고 고게만 붙들어 매 가지고 있으면 회사의  말단 직원으로 들어갔으면 나중에는 중간 직원 될 것이고 얼마 안 가서 회사에서  그 사람 실력 있는 대로 자꾸 높이고, 실력이 없으면 또 실력이 높아져. 이래  가지고 나중에 가서는 아마. 보디발 같은 그런 사람 이 요셉이에게 온 가정을 다  맡겼어. 거게 보니까 보디발 아내가 와서 범죄케 할라 할 때에 말하기를 '우리  주인이 당신 외에는 내게 다 맡겼고 당신만은 맡기지 안했는데 당신에 대해서  내가 그렇게 범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말했다 말이오. 그러면 다른 거 다  맡겼어 이렇게 그 중심이 하나님에게 가 있으면 그 사람이 잘 돼 가지고 잘  되지, 그 뭐 예수만 믿고 그라면 네가 밥을 어찌 먹을 거고? 예수의 재림만  생각하면 어쩔 거고? 재림만 생각하면 복은 저절로 받습니다.

 그와 같은 뜻으로 내가 반사들에게 말하기를 '너거는 아직 어리니까 네가 맡은  그 학생들 명단 수첩을 있는 것을 가지고 다녀라. 가져 다니면서 하루 네가 맡은  학생들 명단 수첩을 매일 한 번 이상을 봐라. 그걸 자꾸 읽으면 돈이 나온다.'  그걸 자꾸 읽으면 돈이 나온다 그건 인제 다 알고 있어. 그걸 읽으면 돈벌이  된다. 그말은 그러면 무슨 말이냐 하면 그렇게 이 학생들을 구원할라고 이  학생들을 구원할라고 할 때는 이 학생들이 틀리나 옳으나 이 학생들에게 옳게  되기를 원하고, 바르게 되기를 원하고, 학생들이 좋은 사람되기를 원하고,  학생들이 진실한 사람 되기를 원하고. 학생들이 다른 사람에게 욕 얻어먹지  안하고 칭찬받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고, 그거 원하니까 그 학생이 그런 학생이  되기를 원하다 보니까 자연히 자기도 따라서 그런 사람이 되지니까 돈벌이가  된다 그말이야.

 자기 맡은 학생들의 명단을 자꾸 이렇게 열람하고 생각하면 돈벌이 된다 하는  그 말을 할 때에 만일 다른 사람이 듣고 '야. 그거는 굉장한 참 신앙 철학이다.'  그렇게 모르고, '이래 놓으니까 사람을 요래 꼬우는구만' 주일 학생들 명단  이렇게 자꾸 살피고 조사하면 부자된다 하니까 '이것들이 그래 가지고 서부  교회는 주일 학교가 부흥이 되는 구먼. 자꾸 그라는구먼.' 만일 그렇게 말했다면  '너는 목사 냄새도 안 나고 너는 순전히 목사 근방에도 안 오는 사람이다.

심령이 완전히 어두워져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렇게 볼 수 있다 이거야.

그래서,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요것만 오 늘 아침에 기억합시다.

 "스스로 조심하라" 우리 마음을 어디다가 붙들어 매라 말입니까? 돈에 도  붙들어 매였고 어떤 사람은, 학생들은 공부에 붙들어 매여 있습니다. 공부에  붙들려 매여 있는 그것도 비참한 사람이오. 공부 그것도, 공부면 공부가  살립니까? 공부가 우리를 구원합니까? 안 됩니다. 돈에 붙들려 매인 자나 공부에  붙들려 매인 자나 노름에 붙들려 매인 자나 남자 여자 이성 그 연애에 붙들려  있는 자이나 밤낮 저 집에 돈 있는데 저 돈을 언제 털어 갈까, 그 돈 털 거게  붙들려 있는 그자나 꼭 같은 자입니다. 공부에 붙 들려 있는 자는 좀 좋은  사람이고 거게 붙들려 있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냐? 아니, 꼭같이 악인이오. 꼭  같은 악인입니다. 돈에 붙들려 있는 자이나 그 어떤 남녀에게 붙들려 있는  자이나 또 어떤 그 남의 것을 도적질하는 거게 붙들린 자이나 저놈은 나하고 안  됐으니까 저 복수를 언제 해야 되겠다. 복수에 붙들려 있는 그 자이나 또 시기에  붙들려 있는 자이 나 꼭 같은 자라. 명예에 붙들려 있는 자이나. 그러면 도덕에  붙들려 있는 자는 좋으냐? 그거나 꼭 같습니다. 꼭 같은 놈이오. 알겠습니까 그  아무리 껍데기라도 성경 말씀에 붙들려야 되고, 그 안에는 진리에 붙들려야  되고, 영감에 붙들려야 되고, 하나님에게 붙들려야만 되는 것이지 그 외에는 다  꼭 같은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날을' 예수님의 재림하는 그 재림의 날에다가 붙들어 매라.

예수님의 재림에 붙들어 매 놓으니까 예수님의 재림에 붙들어 매 놨는데 재림  누구 때문에 그날에 붙들어 놔? 아. 주님이 오시거든. 주님이 오니 주님의  심판이 오거든 주님의 보응이 온다 말이오. 그러니까 그 날에 붙들려 매면  자연히 진리에 붙들려 매여지게 되고, 주님에게 붙들려 매여지게 되고,  하늘나라에 붙들려 매여지기 때문에 거기만 붙들려 매 놓으면 다른 게 다 잘  되요. 그래 가지고 그걸 자꾸 연습합시다.

 이거 거룩이나 경건은 무엇으로 된다 했습니까? 거룩과 경건이 뭣으로 된다  했소? 주의로 된다고 했소. 그것은 꾀로 된다고 했소, 수단으로 된다고 했소,  뭘로 된다고 했습니까? 거룩과 경건은 뭘로 된다고 했지요? 다 모른다 말이오.

자, 한번 대답해 봐. 뭘로? 현실로, 또 너는? 또 그 뒤에는? 구별로, 구별이  내나 거룩인데 뭐 구별이 거룩이라. 또 저 ○집사님 내가 소리만 들어도 안 된  것 같다. 틀린 것 같해. 또 저 뒤에는? 또 저쪽에는? 저 ○집사님, ○○○집사님  구역에 ○집사님. 묵묵 잘하는 양반 ○○○집사 뭐입니까? 거룩과 경건은 뭘로  해야 되요? 이봐 이래 놨으니 이거 뭐 귀넘어 듣는 거라. 자, ○○○씨. 지식.

그거 오늘 틀렸다. ○○○집사님. 위하는 것으로, 또 ○○○아, 다 틀려 다  틀렸어. 연습으로 돼. 연습으로. 연습으로.

 연습으로 된다고 얼마나 많이 했소? 경건을 연습하라.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금생과 내세에 하나님의 약속이 있느니라" 금생과 내세에  영과 육에 다 유익해. 경건도 연습으로 해야 되지 대번에 안 되요. 거룩도  연습해야 또 하고 또 하고 자꾸 이래 하는 가운데서 그게 이루어지는 것이지  자기 의지토나 뭐 지혜로나 이런 거 가지고 안 됩니다. 연습이 제일입니다.

경건도 연습, 거룩도 연습, 또 여기 거룩을 하고 또 거룩을 하고, 그러니까 이  조심 이런 것도 자꾸 연습이라. 내나 한가지라. 연습.

 이러니까, 예수님의 재림의 날에다가 내 마음을 붙들어 매고 이 시간도 아,  주님이 재림하신다. 또 저 시간도 주님이, 자꾸 주님의 재림을 자꾸 내가  생각하고 생각함으로 그게 이루어지는 것이지 주님의 재림은 해야 된다. 어떤  의지가 딱 결정했다고 돼 가지고 되는 거는 아닙니다. 어림도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신앙생활은 다 연습으로 됩니다. 자꾸 하고 하고 이래야 돼. 그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른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연습 안 하고 되는 거 아니라.

연습은 내비두고 제가 의지가 있으니까 '고때 할 때 딱 해 버리지' 안 됩니다.

자꾸 연습해야 되요.

 자 따라합시다. 신앙은! 연습이라! 모든 신앙은! 연습이라? 모든 신앙은?  실습이라! 이제 이 다음에는 묻거든 다 알고, 그 알아야 우리가 구원을  이루지요. 거룩과 경건은 연습으로 이루어. 제가 아무리 학자라도 '이거는 해야  된다' 의지를 단단히 가졌다 할지라도 그 현실이 올 때에는 이 시간에 또  연습하고, 또 다음 시간에 연습하고, 현실 현실마다 거룩을 연습할 현실이고, 또  경건을 연습할 현실입니다. 그러면 현실이라 하는 거는 전부 다 거룩과 경건을  연습할 현실입니다.

 또 믿음을 연습하라더니? 믿음 연습한다 말이나 꼭같은 말이오. 믿음을  연습한다 말은 하나님에게 피동되는 일을 자꾸 해 보고 해 보고 자꾸 연습한다는  그 말이오. 거룩을 연습한다 말은 자기가 주관적으로 이렇게 구별하고 저렇게  구별해 가지고 하나님 말씀에 맞추고 진리에 맞추고 영감에 맞추고 하나님의  대속의 공로에 맞춰서 이렇게 연습을 한다는 말이오. 경건 연습한다 말은 이것도  하나님 위함이 되느냐, 이거 하나님 위함이 아니냐, 나 위함이냐 하나님  위함이냐, 돈 위함이냐, 누구 이웃 위함이냐 명예 위함이냐? 자꾸 뭘 자꾸 이걸  또 살피고 살피고 이래서 연습으로 된다는 것입니다. 신앙은 연습이라.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그래서 이것이 자꾸 되면 권태가 안 나요. 권태가 안 나고 자꾸 갈수록 마음이  눌리고, 이상합니다. 우리 마음이 하나님에게 눌릴수록 힘이 나고 좋습니다.

깨운하고 좋습니다. 하나님에게 눌릴수록, 하나님에게 붙들릴수록 하늘에 속한  근심은 할수록 기쁘고 평안합니다. 땅에 속한 근심은 하면 할수록 그만 죽어져  버려요. 이러니까 예수 믿는 사람이 열심이 나다가 열심이 식어지는 것은 제가  외식자기 때문에 실행을 하지 않기 때문에 그 사람의 신앙이 자꾸 식어지는  것이지 실행하면 갈수록 뜨거워지지 식어질 리가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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