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25 16:48
신앙생활은 전투준비
본문 : 계 3:7-13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가라사대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보라 사단의 회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않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저희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12절에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 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여기 이기는 자라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계시록 2장으로부터 3장까지에 기록되어 있는 일곱 교회마다 다 이기는 자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고 또, 모든 구비한 권세가 있었고 영광이 있었습니다. 그 밑에 여러 가지로 서론적으로 말씀한 일도 있고 또, 거기에 필요한 요소들로 말씀하신 일이 다 있으나 그 모든 총 결말은 이기는 것입니다. 이기는 일을 위해서 이런 저런 준비를 일으키시고 또, 예비 상식을 주시고 하신 것이요, 그 전부는 다 이기는 이 일을 위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신앙생활은 이기지 못하면 헛일이요. 이기는 데서 모든 구원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긴다는 것은 전투가 없으면 이길 수가 없습니다. 싸움이 있어야 이깁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에 제일 추수의 결과가 되는 것이 이기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싸움을 싸우는 전사라, 전투하는 군병이라 하는 이것을 언제든지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우리가 싸운다는, 싸우는 싸움에는 반드시 이기고 지는 그런 결과를 내고야 마는 것이 전투입니다.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되는 것이고. 진 자는 이긴 자를 위해서 있어야 하는 것이고, 또, 진 자는 이긴 자에게, 이용물이 되어지는 것이 필연한 일인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싸우고 있는 전사라는 것을 기억하는 동시에 우리는 지든지 이기든지 둘 중에 하나로 결정됩니다. 또, 우리는 종이 되든지 상전이 되든지, 종이 되든지 왕이 되든지 둘 중에 하나가 결정됩니다. 내가 상대방을 이용을 하든지 내가 상대방에게 이용을 당하든지 하는 이것이 결정됩니다. 그러기에, 나는 곧 죽는 일이든지 사는 일이든지 영원한 죽음이 되든지 영원한 삶이 되든지 이 둘 중에 하나로 결정되는 우리들입니다.
아무리 신앙에 대한 구비한 상식을 가지고 또, 구비한 방편을 가지고 또, 계속 열심있게 충성한다 할지라도 이 싸움이라는 것을 잊어버리면 그 사람은 다 허사가 되고 맙니다. 싸운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있으면 내가 준비해 놓은 모든 준비는 원수의 이용물이 되고야 마는 것입니다. 국가 간에 전투를 하든지 사회에서 어떤 생존 경쟁을 하든지 사업 경쟁을 하든지 무엇을 하든지 할 때에 쌍방이 다 자기 힘대로는 모든 것을 갖추어 가지고서로 전투하고 경쟁하는 것이지마는 만일 싸움에 진다면 자기의 준비해 놓은 모든 것은 상대방의 다 것이 되고 맙니다. 내가 이긴다면 상대방의 준비해놓은 모든 것은 결과적으로 다 내것이 되고야 맙니다. 그러기에, 이북에서는 이남과 생각이 다른 것은 이남은 경제 성장을 주력을 하지마는서도 이북에서는 경제 성장을, 무슨 과학 발달을 그렇게 힘쓰지 아니했습니다. 그 이유는 전투에다가 전력을 기울여서 전쟁해서 이기기만 하면 그 모든 것은 다 자기네 것이 되어진다고 하기 때문에 남한에 모든 것이 풍부해지는 것을 그것은 다 자기의 것과 같이 여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전투해서 남북전에서 이북이 승리했다면 그들이 생각하는 대로 이남에 있는 모든 문화나 경제나 과학이나 뭐 어떤 것이든지 다 솔빡 그들의 것이 되어지는 것은 필연한 일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계획한 대로 전쟁을 이기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의 계획이 다 그저 실패로 돌아간 거와 같이 그렇게 되어져 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세상 모든 전투에서 지면 진 자의 것은 다 이긴자의 것이 되는 것인 것을 우리는 많이 봅니다. 어떤 사업이라도 그 사업가가 서로 동질의 사업가끼리 서로 경쟁이 붙었으면. 경쟁이 붙으면 반드시 하나 가지고 하나가 이기는데. 진 자는 이긴 자의 것이 완전히 되어지고야 마는 것이 그것이 진 자의 형편입니다.
이런고로, 우리가 신앙생활을 한다고 여러 모로 힘도 쓰고 또, 견디기도 하고 모두 다 다각도로 준비를 하고 이렇게 하지마는 제일 중요한 것은 전투입니다.
이 전투에 그만 패전하면 많이 준비했든지 적게 준비했든지 준비한 것과 가진 것은 전부 다 이긴자의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일곱 교회마다 마지막에 결론짓는 그 결론은 다 '이기는 자는' 이 말씀을 했습니다. 이기는 자라, 이기는 자라는 말씀을 일곱 교회마다 다 결론으로 말씀하지 안한 교회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 모든 준비가 다 이 전투의 승패에 매여 있다, 모든 준비는 전투의 승패를 위해서 준비하는 것이어야 되고, 또, 모든 준비는 전투에서 승리를 해야 되는 것이지 승리 안하면 다 아무 소용없다 하는 것을 여게서 찾아 볼 수가 있습니다. 뭐 에베소 교회나 서머나 교회나 버가모 교회나 두아디라 교회나 이 사데 교회나 빌라델비아 교회나 라오디게아 교회나 이 모든 교회에 대해서 여러 가지 방편도 말씀했고 구비 전법도 말했고 또, 갖추어 준비해야 될 것도 말씀을 많이들 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다 전투를 준비하는 것이어야 하고 또, 그 모든 것은 전투에서 승리를 해야 되는 것이지, 아무리 준비해도 '뭐 할라고 준비하는지 모른다.' 그저 그런 현실 만나니까 준비를 하기는 뭘 구비하게 준비했다 할지라도 전투하기 위해서 준비한 것이 아니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또, 준비한 그 준비가 전투에 승리하지 못했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모든 신앙 준비는 전투의 그 승리를 위해서 준비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준비에는 언제든지 객관성 있는 그런 준비를 해야 되지 주관성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객관성 있는 준비를 해야 된다 말은 상대방이 어느 정도의 그 실력을 가졌는지 그 실력을 자기가 계산해서 그 상대방의 그 실력을 능히 이길 수 있는 그런 준비를 해야 되지 상대방의 실력을 계산하지 안하고 그저 저는 제대로 제 주관대로만 준비 한다고 하는 것은 그런 것은 뭐해 봤자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누가복음 14장에는 말씀하시기를 망대를 세우는 자가 앉아서 그 망대를 준공하기에 비용이 얼마 들며 그 준공하기에 자기가 넉넉한 공사비를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을 계산해 보고 만일 안 되면 시작하지 말고 다시 공사비를 마련해 가지고 충분한 공사비가 됐을 때에 그 공사를 시작해야 준공을 하지 그렇지 안하면, 명예를 위해서 세우는 것이 탑인데 명예 정반대의 모든 수치를 당 하게 된다 그렇게 성경에 말씀을 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의 최종 결론은 승리입니다. 우리의 모든 준비는 승리를 위한 준비입니다. 그러기에, 준비할 때는 전투의 준비라는 것을 기억하고, 상대방의 그 실력을 생각해서 객관성이 있게 그걸 잘 준비해 가지고 상대방을 능히 이길 수 있는 그 준비여야 되지 이길 수 없는 준비는 암만 해 봤자 상대방의 것이 되고 마는 것이지 소용없습니다. 우리는 전투의 준비인데 전투의 준비는 아예 이기지 못하는 것은 그 준비 하는 것이 전부 상대방의 유익만, 상대방의 소유만 만들어주는 것이지 자기는 종 되는 것을 예비해서 상전을 마련하니까 자기 준비해 놓은 거는 다 비참이, 비참의 결과가 되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신앙생활에 있어서 나는 전투의 준비이니 이 준비 하는 것이 상대방으로 더불어 전투할 때에 이길 수 있도록, 이길 수 있도록 준비해야 되지 이기지 못할 준비는 안 하는 게 낫습니다. 이기지 못 할 준비는 해 봐야 다소간 했다 하는 것은 전부 상대방의 다 소유가 되고 말기 때문에 그것은 자기에게는 유익은 하나도 없고 자기가 종노릇 할 상전을 마련하는 것이기 때문에 도로 그 전투하지 안하는 것보다 더 불행스러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그만 잊어버리고 예사롭게 그렇게 살기 쉽습니다. 나는 지금 신앙 준비 하고 있는데 그저 신앙 준비 하는 것은 이래도 저래도 세월만 가면 내 구원은 된다 이렇게, 하루 이틀 신앙생활의 그 세월이 지나가는 것으로 구원이 된다는 그런 생각은 아주 그것은 안 된 생각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신앙생활이 이 싸움의 준비다, 이래서 싸움이라는 것을, '나는 전투를 준비하고 있다. 나는 지금 싸움을 준비하고 있다.' 싸움을 준비하고 있으니 이 준비는 상대방을 이길 수 있는 준비라야 필요가 있지 이길 수 없는 준비는 상대방의 참 호주머니만 채워 주지, 상대방에게 부요케만 해 주는 것뿐이지 자기에게는 아무 소용없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첫째 중요한 것이 우리의 신앙생활은 다 전투의 준비다.
싸우는 준비다 요것 제일 중요하고, 그 다음에 둘째로는 상대방을 이길 수 있는 준비를 해야 된다, 이길 수 있는 준비가 아니면 아무 소용이 없다, 이길 수 있는 준비를 해야 된다 요거 둘째로 중요하고, 셋째로는 만일 이기지 못한다면 내 모든 것은 다 상대방 원수의 것이 된다 하는 것을 이것을 기억하고 신앙 준비를 해야 되지, 이것 생각지 안하고 그저 하루 지나가니까 아침에 일어나서 또, 먹고 일하고 또, 자고 또, 한 날 지나고 또, 한 날 먹고 일하고 자고 또, 한 날 지나고 이렇게 그저 세월이나 보내는 이런 것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마가복음 10장에도 먼저 된 자 나중 되고 나중 된 자 먼저 될 자 많다 그랬습니다. 세월이나 지나가는 것으로 구원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나중 된 자 먼저 된다고 말하는 것은 그것은 아무리 신앙 연령이 많아져도 그거는 소용없고 실행에서만 구원이 이루어진다 하는 것을 말씀하신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 빌라델비아 교회에 대해서, 우리가 전투를 해야 되는데 전투하는데 있어서 여러 가지로 전법과 또, 전투의 실력을 갖추는 그 방편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첫째로 가르쳐 주는 것은 뭐인고 하니, '거룩하고 진실하사' 하는 말씀을 했는데 이것은, 우리는 이 신앙 전투에는 첫째가 구별하는 것을 해야 된다, 거룩이라는 것은 구별해서 따져서, 구별하고 구별해 가지고 요게 옳으냐 조게 옳으냐 그렇게 구별해서 옳은 것을 잡는 요 방편을 우리가 언제든지 가져야 됩니다. 신앙생활 하는 사람이 그저 자기 좋게 사람 좋게 뭐 또, 물질 좋게 또, 하나님에게 대해서도 뭐 좋게 이렇게 한다고 생각을 하고 구별 없이 이렇게 신앙생활 하는 사람은 아예 신앙 승리를 생각지 말아야 됩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모든 면을 구별해야 됩니다. 따져야 됩니다. 이러냐 저러냐 세밀히 자기의 지식을 가진 대로 옳고 그르고 삐뚤어지고 틀린 거 또, 실패 성공하는 거 이런 것을 구별해야 된다, 많이 구별해서 모든 것을 구별해야 되지 구별하지 안하면 안 된다. '진실하사' 하는 거는 구별해 가지고, 구별해 가지고서 요게 옳다, 요게 참되다 하는, 구별해 가지고 반드시 옳고 참된 그것을 잡기까지 구별해 가지고, 구별해서 옳고 참된 그것을 잡아야 된다 이랬습니다. '아, 요 것이 요 것이다. 요게 옳다' 요렇게 구별해 가지고, 참된 것을 잡는 일을 우리가 하는 요 일을 해야 되는 것을 여게 말씀하시고,
또, 하나 우리가 위로받는 것은, 열린 문을 두는데 주님이 누구에게든지 열리 문을 주시면 아무도 그걸 닫을 자가 없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것은 주님이 우리의 신앙생활을 형통하게 해 주시면 아무도 방해할 자 없다 하는 말입니다.
주님이 우리의 신앙생활을 형통하게 해 주면 아무도 방해 하지 못하고, 또, 주님이 우리의 신앙생활을 형통치 못하게 할 때에는 아무도 그 신앙생활을 바로 해 나갈 자가 없다 하는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신앙 걸음은 주님이 형통하게 해 주시느냐 불통하도록 하시느냐 여기에 달렸습니다. 주님이 형통하게 해 주시면 아무도 방해하지 못하고 형통하고, 주님이 형통하지 못하도록 해 버리면 아무도 그 신앙 걸음 걸어갈 자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면 주님이 어떤 사람에게 그 신앙의 길이 형통하도록 해 주시는가 하는 고것을 거게 말해 놨습니다. 뭐라고 말했는고 하니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힘을 가지고.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이름을 배반치 안하고 내 말을 지켰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네가 아주 보잘 것 없는 적은 힘을 가지고 내 이름을 배반치 안하고 내 말을 지켰기 때문에 내가 너에게 열린 문을 준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주님이 우리 앞에 우리 신앙 길이 형통하도록, 우리의 신앙 길이 형통하도록 하시면 아무도 방해할 자 없고, 주님이 우리의 신앙 길을 형통 하게 하지 안해 주시면, 해 주지 안하시면 아무도 신앙 걸음을 걸어갈자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주님이 우리의 신앙 걸음을 형통하게 해 주시는 이것이 중요한데 어떤 자에게 형통하게 해 주시느냐? 형통하게 해 주시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네가 아무리 무지해도 자꾸 따져라. 옳고 그런 것을 따져라. 이라면 되느냐 안 되느냐, 이라면, 내가 이렇게 하면 마귀에게 속하는 것이냐 하나님에게 속하는 것이냐, 이라면 성경 말씀을 어기는 것이냐 성경 말씀을 어기는 것이냐, 이라면 내 주장대로 내 욕심대로 내 소원대로 하는 것이냐 주님이 소원하는 소원대로 하는 것이냐 이렇게 두 가지로만 따져 봐라. 이라면 주를 위함이냐 나를 위함이냐 이라면 성경 말씀 대로냐 인간의 지식대로냐, 이러면 승리가 되겠느냐 패전이 되겠느냐, 뭣이든지 자꾸 네 지식을 가진 그 지식 범위 내에서, 모르는 건 네가 못 따지니까. 네가 가진 지식 그 범위 내에서 자꾸 요것을 구별 해 가지고, 구별하는 거, 그러기에, 깨어서, 깨어서, 이라면 바로 됐느냐 이라면 틀렸느냐, 이라면 옳으냐 틀렸느냐, 이라면 지는 것이냐 이기는 것이냐 이렇게, 두 가지로만 자꾸 네가 따지는 이 일을 네가 게을리 하지 말아라, 따지는 일.
그러면, 따지면 그거야 유식한 사람은 구별하면 잘 알 것이고 무식한 사람은 잘 모를 것이지마는서도 유식하고 무식한 것이 상관이 없습니다. 그 다음에 말하기를 '아주 연약한 힘 가지고 네가 지켜 이겼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선천적으로나 후천적으로나 하나님 앞에 받은 은혜는 각각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지식으로 말해도 대학자가 돼 가지고 있고 어떤 사람은 일자 무식군이 돼 가지고 있고, 어떤 사람은 경제적으로 아주 재벌가가 돼 가지고 있고 어떤 사람은 참 아주 한푼도 없는 거지가 돼 가지고 있고, 어떤 사람은 지혜와 총명이 뛰어난 사람 있고 어떤 사람은 들어도 모르는 바보 같은 사람 있고. 어떤 사람은 몸이 아주 건강한 사람 있고 재빠른 사람 있고 어떤 사람은 누운뱅이 앉은뱅이 그런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데, 여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적은 힘 가지고 지켰다' 적은 힘 가지고 하나님의 이름도 배반하지 안하고 말씀도 지켰다 적은 힘 가지고 지켰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기독교는 하나님께서. 선천적이라 말은 나기 전에 하나님께서 잘 타고 나도록 한 것을 가리켜서 선천이라고 말 하고, 후천이라고 말하는 것은. 안 믿는 사람들이 쓰는 말인데. 후천이라고 말하는 것은 나 가지고 그 사람이 모든 것을 잘 구비하게 복을 받았다 그렇게 말하는 걸 가리켜서 후천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그것을 다 주님이 주십니다. 나기 전에 그 사람이 어떻게 좋은 위치 잘 타고 난 사람도 그것도 하나님이 잘 타고 나게 해 주셨고, 못 타고 나게 하는 것도 하나님이 그렇게 해 주셨고, 또, 나고 난 다음에도 그 사람 형편이 아주 모든 것이 형통하게 좋은 그런 형편을 가진 사람도 있고. 아주 참 인간 중에 제일 불행스러운, 형편을 가진 사람도 있으니 그 선천후천의 그 모든 좋고 나쁜 그것을 전부 주님 혼자 다 주셨습니다. 누가 준게 아니라 주님 혼자 주권적으로 주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누운뱅이라도 구원 이루는데에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누운뱅이고 아주 벙어리고 귀머거리고 아주 등신이라도 구원 이루는데 에는 아주 뛰어나게 잘난 사람이나 조금도 상관이 없습니다. 왜? 그것은 너희들이 감당치 못할 시험을 당치 않게 하신다고 하신 말씀은 그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그 모든 재간의 실력을 많이 준 자 적게 준 자 있는데 많이 준 자는 많이 준 그것을 다 가져야 주의 이름을 지키고 주님의 말씀을 지킬 수 있도록 요렇게. 고 현실을 그렇게 만들어 주십니다. 많이 준 자에게는 어려운 현실을 만들어 주시고 적게 준 자에게는 아주 쉬운 그런 현실을 만들어 주기 때문에 자본이 많고 적은 것이 상관없습니다. 적게 받은 자에게는 적은 거 가지고 다만 하면 승리할 수 있고.
많이 가진 자는 그 많이 가 진 것을 다 하여야 승리하도록 그렇게, 그 현실을 그렇게 하나님이 조절해서 만들어 주시기 때문에 그 사람의 재간에 대해서는 많고 적은 것이 상관이 없는 것을 말합니다. 적은 힘 가지고 이긴다는 거 요 말씀이 그 말씀입니다.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하는 이 적은 능력이라는 말은, 능력이라 하니까 무슨 큰 것같이 생각하는데, 적은 힘이라 말이오. 적은 힘 가지고, 지켰다, 그것은. 여게 하는 말 속 뜻이 그겁니다. 어떻게 살을 한 되밖에 못 지고 갈 사람이 쌀을 한 가마니를 어떻게 지고 갈 수 있습니까? 못 지고 가는 것입니다. 요 말을 요것을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고 내 이름을 배반치 안했다 하는 요 말씀의 깊은 뜻을 우리가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그저 '아, 연약해도 자기의 힘을 다해서 이겼다' 이렇게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아주 보잘 것 없는 적은 힘 가지고 합격됐다 이 말씀은, 어떻게 적은 힘 가지고서, 큰 힘이라야 합격할 수 있는 일을 어떻게 적은 힘 가지고 합격할 수 있습니까? 안 됩니다. 이제 적은 힘 가지고 합격됐다 그 말은 적은 힘도 네가 다하니까 합격됐다 하는 요 말이오. 그러면. 많은 힘도 많은 힘 다해야 합격된다 하는 그것을 여게 표현한 말씀입니다. 어떤 사람은 많은 힘을 가지고 있는데 꼭 같은 현실의 어려움이라고 하면은 많은 힘 가진 사람이야 놀면서 자면서 해도 될 것이고 적은 힘 가진 사람은 죽자껏 해도 안 될 것 아닙니까? 그러면 하나님의 공의가 아니라 그 말이오. 알겠습니까? 하나님이 공의가 아니라.
그러기 때문에, 우리에게 힘을 주신 이가 하나님이시요, 또, 나에게 현실을 만들어 주신 이가 하나님이시니 적은 힘 준 자는 적은 힘도 다만 하면 하나님의 이 말씀과 이름을 배반치 않는 신앙생활을 해 나갈 수가 있고, 신앙생활 해 나갈 수 있도록 고런 현실 만들어 주시고, 많은 힘을 준 사람은 많은 힘 다해야 그 신앙을 유지할 수 있도록 그렇게 하나님이 현실을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요 말씀도 얼마나 우리가 단단히 가져야 할란지 모릅니다. 대개 세상에서 많은 것을 가진 사람들은 적은 것을 가진 사람과 비교해 가지고 '적은 것을 가지고 신앙생활 하는 저까짓 거야 암만, 뭐 일 년 내내 힘 써 봤자 내가 하루 힘쓰는 것도 안 된다' 그렇게 계산을 대기 때문에 틀렸습니다.
자기에게 많고 적은 힘을 주신 이가 주님이시요, 주신 거게 대해서 자기에게 시험을 하시는 현실을 만들어 주시는 이가 주님이시요, 그러기 때문에, 많이 받은 자도 많이 받은 거 다해야 되고, 적게 받은 자도 적게 받은 거 다하면 된다. 기독교는 다해야 되지 다하지 안하면 안 된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다른 데 보면 성품을 다하고 하는 말씀도 있는데, 어쨌든지 자기가 많이 가졌든지 적게 가졌든지 가진 것 다해야 통과된다 하는 것을 요것을 말씀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다하지 않는 자는 아예 그것은 패전자인 줄을 알아야 됩니다.
패전하고 승리 못 합니다. 그러기에. 어떤 사람이 '아, 그 사람은 목회에 성공이다. 저 사람은 신앙생활에 성공이다.' 목회에 성공은 목회자 본인이 알지 다른 사람은 모릅니다. 왜? 네가 목회할 때에 다 했느냐? 다 했으면 교인이 없어도 너는 목회 성공이다. 아무리 수천 명 수만 명 수십 만 명이 모여도 네가 다하지 안했으면 너는 목회 실패자다 요것이 하나님의 심판에서 우리가 받을 심판의 정의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요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될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그 신앙의 앞길을 형통케 해 주시면 아무도 방해 하지 못하고 형통하고, 하나님께서 불통하게 해 주시면 불통 된다. 그러면, 어떤 자에게 형통을 주시고 어떤 자에게 불통을 주느냐? 강한 자에게 형통 주느냐 약한 자에게 형통 주느냐? 아, 강한 자나 약한 자나 다한 자에게 형통 주시고 다하지 안한 자에게 불통 준다 그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해방 직후에 대구에서 전국 총회가 모였는데, 보니까 아주 부자들, 지식도 언변도 의지도 배짱도 담력도 있는 아주 부한 사람들은 전부 신사 참배 다 해 버렸어요. 다 패전자라. 뭐 모가지는 새 모가지처럼 기단하고 이리 삐뚤어지고 저리 삐뚤어지고 그거야 참 나물 놓고 뭐 두 닢 푼치도 안 되는 못난 사람들만 승리자라고 앉았는데 아주 못난 사람들이라. 말도 잘 못 하지, 목사라고는, 그래 놓으니까 해방 직전까지는, 신사 참배 나기 전까지는 저 밀려서 시골의 조그만한 교회에서 밥도 못 얻어먹고 근근하던 그 사람들이 전부 신사 참배 승리를 다 했습니다. 그저 죽자껏 목회하면서도, 죽자껏 하면서도 교인은 안 붓고 이러니까 '아이구. 나 같은 거는 이거 뭐' 이래 가지고 하나님 앞에 항상 죄송하다고 장 죄인인 줄 알고 하는 그 사람들이 이겼어.
이러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열린 문을 주시면, 신앙을 형통케 하시면 형통하고 불통하게 하면 불통 된다. 그러면, 어떤 자에게 형통을 주고 어떤 자에게 불통을 주느냐? 있는 걸, 많든지 적든지 있는 것을 다한 자에게는 형통 주시고 있는 것을 남기고 한 자에게는 다 불통이다, 그러니까 실패라 요것을 여게서 우리가 참고로 삼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우리 신앙 전투에는 다하는 것이 이것이 문제라, 준비, 자기가 자기에게 많이 있든지 적게 있든지 다하는 것이 이것이 승리하는 비결이라.
그러기에, 두 냥중 가지고 넉 냥중 만든 사람이나 닷 냥중 가지고 열 냥 중 만든 사람이나 대우가 꼭 같애. 칭찬도 꼭 같고 환영도 꼭 같고 주인의 즐거움에 와서 참예하라고 영접도 꼭 같고 꼭 같습니다.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재간을 주신 그대로 그 재간을 다하면 하나님이 형통케 해 주시고 다하지 안하면 형통케 해 주시지를 아니합니다.
그라고 난 다음에 한 가지 또, 말씀하신 것은 '네가 내 인내의 말을 지켰 은즉 내가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케 하리니 이는 온 천하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시험할 때 라' 그러면, 믿는 사람이나 안 믿는 사람이나 택자나 불택자나 자기의 일생 생애가 마지막에 결정되는 날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 앞에 가기 전에 결정이 됩니다. 결정이 되는데, 시험의 때를 면케 한다 그 말은 결정이 되는데 이 결정에 좋은 결정으로 잘 통과케 해 주겠다 하는 그 말입니다. 마지막 일생 신앙생활의 이제 결정을 지우는데 그 결정 지울 때에, 결정 지울 때에 그 결정에 낙제되지 안하고 그 결정에 성공이 되도록 해 주겠다 하는 그 말입니다. 시험의 때를 면케 한다 그 말은 그 시험에 떨어지지 않도록, 시험에. 너는 그 시험에 떨어지지 않도록 그렇게 하겠다, 시험에 떨어 지지 않도록 해 주겠다. 시험의 때를 면케 하겠다 시험에 떨어지지 않도록 해 주겠다 하는 그 말씀입니다.
그러면, 시험에 떨어지지 않게 해 주는 그거는 어떻게 어떤 자에게 해 준 다고 했습니까? 네가 내 인내의 말을 지켰은즉 내가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케 해 주겠다' '인내의 말을 지켰은즉' 그러면, 지키는 것은 어찌 됩니까? 지키는 것은 과거라는 세월에 과거에다가, 과거에 지킬 수 있습니까 미래에 지킬 수 있습니까 현재에 지킬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은 언제 지킬 수가 있습니까? 과거에 지킬 수가 있습니까? 현재에 지킬 수가 있습니까? 앞으로 장래에 지킬 수가 있습니까? 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은 과거에 지킵니까? 현재에 지킵니까? 미래에 지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은 언제만이 지킬 수 있습니까? 자 과거에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분 손들어 보십시오. 못 지킵니다. 미래에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분 손들어 보십시오. 못 지킵니다. 현재에서만 지킬 수 있습니다. 현재에서만.
요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네가 현재에, 현재에 내 말을 지키면, 현재에 내 말을 지키면 내가 모든 승리를 이루어서 네가 승리자로, 승리자로 되도록, 승리자로 합격되도록 그렇게 해 주겠다. 현실에, 현실에 내 말을 지키면 마지막 결말 지울 때에 네가 합격자 되도록 내가 해 주겠다 하는 그 말입니다. 현실에 내 말을 지키면.
그러면, 위에는 아주 연약한 힘이라도 다하면 지킬 수 있다 하는 그런 것을 서론으로 말했습니다. 네가 또, 세밀히 구별하면, 네가 세밀히 구별만 하면 다 승리할 수가 있다 하는 그런 것은 다 거게서 참고로 삼아가지고 예비하게 하는 말씀이오.
이러니까 전투에 있어서는, 우리는 전투가 제일 중요한 것인데 전투에 있어서는 뭐이 제일 중요하냐? 전투에 있어서는 요 현재라는 현재에, 현재에 네가 말씀을 어기지 안하고 현재에 말씀 지키면 된다. 네가 뭐 '내일 어떻게 하나' 내일도 상관하지 말아라, 또, 과거에 내가 어떻게 했나' 과거 그것도 내버려 두고, 너는 총력을, 네 힘을 다, 네 총력을 어데다가 기울여야 되느냐? 네 총력은 '내가 앞으로 이렇게 하면 어찌 되겠느냐, 내가 과거에 내가 지금 어떻게 했느냐?' 과거에 네가 잘했든지 잘못했든지 하는 그것은 네가 하나 그저 추억해 가지고 네 상식으로 가지고 있으면 되고, 미래에 대해서, 미래에 대한 것도 그것도 네가 상식으로 가지고 있으면 되고, 네가 전심전력을 기울일 것은, 전심전력을 기울일 것은 요 현재에 하나님 말씀을 어기지 안하고 요 현재에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여게다가 전력을 기울여라, 여게다가 전력을 기울여라.
우리가 힘쓸 것은, 우리가 시간이라 하는 것은. 우리 일생을 살라 하면은 뭐 오십 년을 살든지 칠십 년을 살든지 팔십 년을 살든지 백 년을 살든지 긴 세월이 있는데, 내가 힘쓸 시간은 무슨 시간인가? 요 현재라는 요 시간에만 전력을 기울이라. 다른 거 아무 것도 생각지 말고 요 현재라는 요 현재에만 너는 전력을 기울여라. 현재에다가 뭐라고 기울일까? '내 말을 지켰은즉' '내 말을 지켰은즉' 했습니다. 요 현재에 주님의 말씀 지키는데 여게다가 너는 전력을 기울이라.
그러면. 기울이면 얼마나 기울이느냐? 네가 많다고 네가 안심하고 남기고 기울이지 말고 적다고 모자란다고 탄식하지 말고 너는 많든지 적든지 상관없다.
네게 있는 것만 다 기울이면 된다. 그러면, 내게 있는 것을 다 기울여서 주의 말씀을 지켜야 되겠는데, 내게 있는 것을 많든지 적든지 박사도 있는 힘 다 기울여야 되고, 대통령도 있는 힘 다 기울여야 되고 사장도 있는 힘 다 기울여야 되고, 거지도 있는 힘 다 기울여야 되고 어떤 건강한 명철한 사람도 다 기울여야 되고, 어떻게 설교를 잘하는 대부흥사 라도 다 기울여야 되고. 어떤 교역자라도 다 기울여야 되고, 장로나 집사도 다 기울여야 되고, 병신도 다만 기울이면 되고. 벙어리도 다만 기울이면 되고. 일자무식도 다만 기울이면 되고, 거지도 다만 기울이면 되고 아주 아이들 말로 천치 바보, 천치 바보라도 있는 것만 다 기울이면 된다.
다 기울이면 되는데 어데다가 기울여야 되느냐? 요 시간 요 현재. 현재 요 시간에 다 기울여라. 요 시간에 다 기울여라. 요 시간에 다 기울여서 요 시간에 내가 주의 말씀을 요것을 어기느냐 지키느냐 환하게 알 수 있으니까, '아, 요렇게 하면 말씀 어기는 것이고 요렇게 하면 말씀 지키는 것이다 그것은 환하게 다 아는데 지식이 같지 않기 때문에 지식이 많은 사람은 많은 면을 알고 적은 사람은 적은 면만 압니다. 적은 사람은 적은 면만 알아서 지켜도 합격이오. 많은 사람은 아는 대로의 많은 대로의 다 지켜야 됩니다. 이러니까, 실력이 많을수록 지키기가 힘이 듭니다.
이러니까, 네게 있는 힘을 요 현실에 다 기울여라. 그 다음 시간에 네가 죽든지 말든지 요 시간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라고. 요 시간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지 안할라고, 요 시간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라 할 때에 마귀가 달라들고. 친구가 달라들고, 부모가 달라들고. 처자가 달라들고, 남편이 달라 들고, 상관이 달라들고, 부하가 달라들고, 강도가 달라들고, 공산주의가 달라들고 뭐이 달라들고 뭐 별별 어려운 난제가 있고, 요 시간 어떤 아픈 심히 고통스러운 질고가 달라들고 또, 어떤 고문과 고형이 달라들고 뭐이 왔든지 너는 요 현실에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여게다가 전력을 기울여라. 기울여서, 요 시간 너는 전력 기울여서 요 시간 말씀 지켰으면 이것으로서 다라.
이러면 하나님이 책임지고 그에게 모든 걸 책임져 준다 했습니다. 지키면 내가 너를 지킨다 챘습니다. 우리는 요거 현실에, 현실에. 어떤 현실이 든지 고 현실에서 내 전력을 기울여서 하나님 말씀 지키면 하나님이 날 지킵니다.
전능자가 날 지키니까 누가 날 어떻게 하겠습니까? 전지가가 날 지키는데.
만왕의 왕이 날 지키는데 만주의 주가 나를 지키는데 누가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러니까, 요 현실에 내가 말씀 지키는 요것은 전능자가 나를 지켜 주는 것이니까.
네가 말씀을 지키되 내게 있는 것만 다하면 돼. 없는 것 지키는 거 아니라.
연약한 힘도 다할 수 있어. 자기에게 있는 힘만 다해서 요 현실에 말씀을 지킬라고 하면, 다해서 지키는데 어떤 사람은 다해서 지켜도 말씀은요 만한 범위밖에 못 지키는 사람도 있겠고, 어떤 사람은 다해서 지켜도요 하나 밖에 못 지키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다하면 이만침 지키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다하면 이렇게 광범위하게 지키는 사람도 있고, 그러니까, 그 사람은 자기의 자본의 많고 적은 데 따라서 자꾸 많이 지켜야 되고 적게 지켜야 되지마는서도 자기 있는 대로만 다하면 돼.
너는 전투하는 투사요, 다 싸우는 군병이니까. 네 싸움은 어데 있느냐? 현실에 있다. 현실에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여게다가 네 전심전력을 다 기울여라. 다 기울여서, 뭐 이것 저것 넓은 생활 하지 말고, 너, 너는 이것 저것 수많은 일이 많지마는서도 네 현실에서 하나님 말씀 어기지 안하고 말씀 지킬라는 여게다가 전력을 다 기울여라. 전펴을 기울여서. 네 전부를 다 기울여서. 현실에서 하나님 말씀 지킬라고 전력 다 기울이면 하나님은 전력 다 기울여서 널 지켜 준다. 요 것입니다. 내가 현실에서 말씀 지키면 하나님은 나를 지킵니다. 내가 하나님 말씀 지킬 때 하나님은 나 지키고, 나는 말씀 지키고 하나님은 날 지키시고 이러니까 네가 하나님 말씀 지키는 것은 전지전능의 하나님의 전체의 애호를, 사랑과 보호를 받는 요것이 요 현실에 하나님 말씀 지키는 것이다. 요 현실에 하나님 말씀 지키고, 하나님 말씀을 어떤 것 때문에 하나님 말씀을 지키지 못하고 뺏겼든지 뺏 긴것은 이 하나님의 지극히 크신 하나님의 이 애호. 사랑도 다 뺏겼고 보호도 다 뺏겼고 모든 축복도 다 뺏긴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간단한 신앙생활입니다. 이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11절에 '내가 속히 임하리니'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t앗지 못하게 하라'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뭘 굳게 잡아? 뭘 굳게 잡아? 현실에, 내 현실에 주의 말씀 지키는 거, 내 현실에 주의 말씀 지키는데 있는 걸 다해서, 내게 많든지 적든지 그거는 상관없어. 내가 있는 것만 다해서 요 현실에서 말씀 지키는 요 일을 현실에서 내 힘을 다해서 말씀 지키는 요것을 네가 굳게 잡고 놓지 말아라. 이것이 모든 것을 승리하는 유일한 비결이다. 이것이모든 것을 승리하는 비결이다.
이러기 때문에, 네 면류관을 아무도 빼앗지 못하게 네가 굳게 잡고 놓지 말아라. 굳게 잡고 놓지 말아라. 굳게 잡고 놓지 말아라. 뭘 놓지 말아라? 현실에서, 내 현실에서는 죽든지 살든지 어찌 되든지 내 현실에 하나님 말씀 지키는 요 것만을 나는 내 전력 기울여서 할 일이다 하는 요것을 네가 굳게 잡고, 요 마음, 요 생활, 요 행동 요것을 놓지 말아라, 안 놓으면 네면 류관을 아무도 빼앗지 못하는 것이고 놓으면 면류관 다 빼앗긴다 요것을 가리켜서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이기는 자에게는 하나님도 예루살렘도, 하나님의, 새것이라 말은 무궁세계의 것입니다. 무궁세계의 것은 다 그 사람의 것이오, 무궁세계의 것은 다 그 사람의 것입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요것을 내 현실에, 내 현실에 주의 말씀 지키는 거 요것만이 나 할 일이다. 여게 전력 기울여서 해야 된다. 여게 전력 기울여서 지키면 하나님이 나 지켜 준다. 네가 내 말 지켰으니까 내가 너 지켜 준다. 이거, 고거 지키는 것이 연약한 힘이, 연약한 내가 말씀 지켰지마는 나는 무한하시고 전능하신 분이 나를 책임지고 지킨신다 요게 계약입니다. 요렇게 아주 작은 거하고 지극히 큰 저하고 요렇게 상관돼 가지고서 이렇게 교환되어지는 이것이니까 우리가 요것을 기억합시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다 요렇게, 우리는 전투라. 지면 비참하고 이기면 영광스럽다. 우리의 암만 준비를, 뭐 제가 신학을 하고, 양성원을 하고, 뭐 새벽 기도를 하고, 열심히 연보를 하고, 또, 제가 공부를 하고, 뭣을 장로를 하고, 부흥사를 하고 뭘 한다 할지라도 현실에 말씀 지키지 못했으면 그 사람은 헛일입니다. 다 허공을 쳤소. 그 사람은 아무리 준비해도 다 마귀의 것입니다.
다 소용없어. 다 원수의 것이 되고 말아요.
이러니까, 모든 전 생활,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전 생활, 내 몸의 모든 실력, 경제 실력 모든 거 전부는 다 합해서 전쟁하기 위해시,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준비한 것인데, 이 전쟁은 어데 있느냐? 현실에서 하나님 말씀 지키는 요 전쟁이라. 다른 일. 현실에서 하나님 말씀 지키는 요 전쟁이니까 요 전쟁 지면 모든 것 다 헛일입니다. 요 전쟁만 이겼으면 모든 거 다 뺏겨도 다 거게 있어, 그런고로. 우리는 총력을 요 현실에 기울여야 된다는 요것을 굳게 잡고 놓지 말아야 됩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