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생활에 세 가지-기도 성경 실행


선지자선교회 1983년 11월 24일 목새

 

본문 : 시 1:1-6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우리는 요사이 기도회를 특별히 시작하고 다 기도회에 등록도 하고 또 스스로  자기를 단속하기 위해서 기도하고 안하는 그것을 기도록에 표시를 하도록 그렇게  하고 지금 우리가 기도에 힘쓰고 있습니다.

 혹 생각하기를 그 기도하는 건 하나님께 대해서 기도하는 것인데 기도록을  작성을 해 놓고 기도하고 안 하는 것을 사람들 앞에 표시하는 것이 그것이 좀  외식이 안 되겠느냐 그렇게 하는 분들이 혹 있을런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이기 때문에 원만하지도 못하고 또 완전하지도 못합니다. (저 뒤에  들립니까? 안 들리면 손을 들어 주십시요) 완전하지도 못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 혼자 있을 때보다 다른 사람의 이목이 옆에 있으면 또 조심을 더 하게 되는  것이 인간입니다. 뭐 있으나 없으나 상관없이 하나님만 보고해야 되는데 옆에  그래도 사람이 있으면 주의할 것도 사람이 없으면 주의 아니 할 수도 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자기가 이렇게 기도록에 이름을 얹어 놓고 한번씩 기도록을  찾아 가지고 도장을 찍고 가는 거와 또 자기 집에서 하는 거와 다릅니다.

여기까지 와서 하는 거와 또 자기 혼자 하는 거와 다르고 또 자기 혼자 한다해도  기도하는 그 표지를 가지고 가 가지고 혼자 기도하고 난 다음에 자기 혼자  도장을 찍어서 표시하고, 또 붓으로 표시하는 것보다 도장으로 표시하는 것이 또  더 낫습니다. 그거나 그거나 마찬가지지, 아니요. 그 사람은 인생을 모르는  사람이요. 인간이 연약하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또 기도하러 왔다가 아무도 안  보고 간 것보다 다른 사람이 이렇게 보는데 기도하고 간 것이 또 좀 낫습니다.

인간은 그렇게 연약한 것이요. 남이야 보든지 안 보든지 하나님 만 바라보고  모든 것 할 것이지마는 인간은 사람을 보므로 주의를 더할 수 있고, 또 자기가  그렇게 표시를 해서 했나 안 했나 스스로 표시를 할 때에 또 자기가 거기에  매이고 끌려서 좀 실행력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런 것에 대해서 잘못 해석을 하면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이  보면 아주 하나님만 바라보고 사는 것같이 그런 것도 그 외식 아닌가 하는 그  사람은 아주 잘 믿는 것 같은데 실은 그 사람의 속을 들여다 보면은 그사람이  아주 허무한 외식자가 그와같이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도록에 기록을 하도록 하고, 또 할 수 있는 대로는 이  예배당에 와 가지고 하도록 그렇게 하고 예배당에 못 오는 사람은 할 수만 있는  대로는 자기 장소라도 좀 한적한 곳 조용한 곳을 택해서, 기도 장소를 택할  때부터, 기도 장소를 갈 때부터 그것이 다 기도가 됩니다. 기도하러 가니까.

사람이, 그런 모든 의식이라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의식을 갖추므로 사람  마음이 달라지고 이런 것 저런 것도 요 식을 그걸 갖추므로서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도할 때에도 처음에는 뭐 앉아서 기도하나 누워서  기도하나 하나님은 그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상관없다 이렇지마는 그래도 누워서  기도하는 것보다 앉아서 기도하는 것이 낫고, 앉아 기도하는 것보다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이 낫고, 그저 무릎을 꿇고만 기도하는 것보다도 조금 더 장소에  나서서 문 밖에든지, 자기 집에 딴 장소가 없으면 부엌에라든지, 다른사람-나는  방 한칸 뿐이라면은 다른 사람은 자는데 자기는 일어나서 웃목에 앉아 가지고  기도한다든지 뭐인가 그렇게 좀 움직여 준비를 하는 것이 기도에 힘의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렇게 저렇게 치우치기가 쉽습니다. 그러면, 기도를 하다가  기도의 힘이 떨어지는 수가 있습니다. 기도의 힘이 떨어지는 수 있고, 또 실행을  하다가 실행하는 힘이 떨어지는 수 있고, 반사 노릇하다가도 반사 노릇의 힘이  떨어지는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마다 안 그런 사람이 없습니다. 다 사람은  다 그러합니다. 왜? 우리에게 부패성이 안에 들어 있지, 또 악령의 유혹이 들어  있지, 악령의 일꾼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있지 이러기 때문에 아무리  할라고 해도 그런 제재와 그런 그 영향을 우리가 발는 것이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이 환경을 초월할라고 애를 쓰지마는 환경의 침노를 받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것을 안 받을라고 애를 써야 되지 그  저절로 안 받아지는 것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기도하다가 힘이 떨어지는 것, 반사 노릇하다가 힘이  떨어지는 것, 또 우리가 신앙생활 하다가 힘이 떨어지는 것 그런 것은 무엇인가  그거 잘못된 이유가 있어 가지고 그런 것이니까 그것을 찾아 가지고 힘을 새롭게  해 가지고 해야 되지 그것을 하지 안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이 시편에는 세 가지를 말을 해 놨습니다.

 처음에 악인의 꾀를 좇지 안하며, 죄의 길에 서지 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다 하는 이것은 무엇을 가리키는고 하니 실행을 가리킨 것입니다.

실행. 기독자의 실행. 우리가 실행이 있어야 된다.

 그러면, 실행을 하면은 무엇을 하라고 이렇게 말하지 어떻게 뭐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꼭 그 시비적입니다. 시비. 그 실행은, 기독자의 실행은  시비적이요. 나는, 나는 할라 하고 또 내 옆에는 또 안 할라 하고 또 나는, 내  속에서 새사람은 할라 하고 옛사람은 또 못하게 하고, 그러면, 내 안에 그것이  대내전입니다. 내 안에서 나는 하나님 말씀대로 그대로 실행을 한라 하고 또  그라면 안 된다고 또 반대하는 사람이 내 속에 있습니다. 자기안에 사람이 둘이  있습니다. 둘이 있으니까 둘이 있는 거기에서 싸워서, 자기와 자기를 싸웁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대내전이라 합니다. 대내전. 자기 안에서 싸우는 싸움이라 해서  대내전이라, 자기 안의 대적과 싸운다 이래서 대내전이라. 이 대내전. 그 싸워  가지고서 자기 전체가 다 그렇게 할 마음이 있으면 자기 환경이 또 하지 못하게  방해를 합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대내전이라 합니다.

 기독자의 실행은 그저 실행이라 하지 아니하고 싸움이라 이렇게 해 놨습니다.

싸움, 그러기에, 세상에 있는 교회는 전투 교회라 싸움 싸우는 교회라 그렇게  말합니다. 왜? 기독자의 신앙 행위는 언제든지 전투가 없이는 행위가 안  생깁니다. 전투가 없는 행위는 없습니다. 꼭 싸우는 행위지 싸움이 없는 행위는  없다 그거요. 싸움이 없는 행위는 실은 그 행위가 바로 되지 못하고 그것은 다  잘못된 것입니다. 꼭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라고 하면 자기 속에 반대하는 옛사람  자기 그놈이 대적을 하든지, 그게 대적할 때에 그걸 이겨야 그때 우리가 행함이  되고, 또 자기 속에 옛사람 그거는 정복해서 자기 속에도 이대로 해야 된다는  그것만 하나가 돼 가지고 단일이 되면 그 다음에는 자기 밖에서 말씀대로 살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이 있다 이거요.

 그러면, 방해하는 것을 셋을 말했는데 거기에-이 강령적으로 줄기로 말하면  셋입니다.-악인의 꾀라는 것은 이제 하나님 중심이 아니면, 무슨 일을 할 때에  이것이 하나님 중심이 되나 안 되나, 그 일 단체의 주체는 하나님 중심으로 하지  안한다 할지라도 거기에 참가한 자기 개별적으로 하나님 중심으로 그 일을 할 수  있으면 하고 하나님 중심으로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라 하면은 안해야 됩니다.

그러면, 그때에 안 해야 되는 일을 하면 그만 힘 떨어집니다.

 왜? 안 해야 될 일을 하면은 벌써 하나님을 배반하고 마귀를 영접한 것이기  때문에 그만 힘이 떨어진다 그거요. 그런고로, 자기가 실행할라 할 때에 하나님  중심을 가지고서 첫째는 시비를 해라, 하나님 중심이 되느냐 안 되느냐, 그  단체가 하나님 중심이 아닌 그런 일이라도 자기가 거기에서 자기 개인으로서는  하나님 중심으로 그 일을 가담 해 가지고 할 수 있다고 하면 하지마는 자기  개인으로서도 하나님 중심 할 수 없는 일이라면 할 수가 없는 일이라 말이요.

 그러기 때문에, 성경에 말하기를 세상에서 세워 놓은 모든 제도를 모든 법칙을,  세상 사람들이 세워 놓은 모든 제도와 법칙을 그것을 실행하되 주를 위해서  실행하라, 세상에 세워 놓은 제도를 주를 위해서 순종하라 그렇게 말했소.

그거는 뭐이냐 하면, 세상 사람들이야 하나님 중심으로 그 법칙을 만들어  놨습니까? 첫째는 인간 중심으로 법칙 만든 것, 이북으로 말하면 자기네들의  정권 중심으로 만들어 놓은 것. 뭐 대개는 정권자들은 다 자기 정권  중심으로모든 제도와 입법을 해 놓은 것이지마는 그래도 그것을 내가 그  국민으로 있으면서 실행을 안 하면 이색이 져서 예수믿는 사람들은 저렇다 해  가지고 복음이 가리워질 수 있다 그 말이요.

 그러면, 그 실행하는 데에는-그 하나님 중심이 아닌 것으로 됐지요. 됐지마는  자기로서는 내가 이 일을 하는데, 공무원 같으면 내가 이 지금 공무원 노릇을  하는데 하나님 중심으로 이 일은 못한다 이러면 할 수 없는 일은 못하지요.

그러나 그 일을, 아, 내가 여기에서 하나님이 내게 이 직장 주셨기 때문에 내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법칙을 어기지 안하고도 이 일을 감당할 수가 있다 하면  자기는 그 일을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또, 자기가 그 일을 할 때에, 이 일은,  나를 예수믿는 사람으로 알기 때문에 내가, 예수 믿는 사람이 하나님 법칙에  위반되지 안한 일은 충성되게 알뜰히 해서 참 예수 믿는 사람들은 참 사람이  됐다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이 믿는 도는 참 그 바른 도다 이렇게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고, 복음의 영광을 돌리고, 또 자기가 다른. 사람들에게  덕을 끼치고 이렇게 하기 위해서, 세상 중심으로 만들어 놓은 제도의 그 법칙을  자기가 행할 때에도 그런 중심으로 할 수 있다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어짜든지, 첫째는 자기 개인이 하나님 중심으로 움직이도록  노력을 하고, 그러면, 나만 됐으면 됐다 할 것이 아니라 지난 밤에 말씀하시  대로 '나눠 주기를 좋아하며' 하는 그 성구의 뜻과같이 하나님 중심으로 나만 할  것이 아니라 서서히 내가 해 가지고서, 그 사람들이 내가 하나님 중심으로 하는  것을 옳다 인정을 하고 감동을 받았을 때에는 그 사람들까지도 차차차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사람이 되어지도록 슬슬 이렇게 감염해서 감화돼 나가서 차차 그  사람들이 옳은 것에 물들어 나가고 내 옳은 사상이 그 사람 속에 배어서,  소금같이 배 가지고서 그 사람들이 진리의 사람이 되어지도록 이렇게 하는  노력을 해야 됩니다.

 이러니까, 우리는 신앙생활하다가 신앙의 힘을 잃는 것은 전투가 없어서 힘을  잃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전투가 없어서. 하나만 전투 안 하고 빠자 버리면  그만, 비유컨댄 폭탄에, 아무리 큰 폭탄이라도 그 폭탄에 구멍만 하나 뚫렸으면  헛일입니다. 그 구멍이 하나 뚫렸으면 그만 터지는 것이 힘이 없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전투 생활 하나만 안 해도 폭탄에 구멍 빠진 거와 같기  때문에 벌써 그만 그 하나 행하지 안한 것을 통해서 악령이 들어왔지 죄악이  들어왔지 자기양심도 그만 자꾸 자기를 눌러서 가책이…, 네가 이거 잘못하지  안했느냐 이렇게 해 주지 이러니까 그만 힘이 떨어집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신앙생활에는 꼭 전투가 있어야 됩니다. 언제든지 이  싸우는 것. 자기하고 싸우는 것, '아 할라 해야 될 일인데…,' 게을하고도  싸우는 수도 있고, 게을하고도 싸우는 수도 있고, 자기 속에 게을, 또 자기 속에  교만하고 싸우는 수도 있고, 자기 속에 감정하고 싸우는 수도 있고, 악독하고  싸우는 수도 있고, 자기 속에 분한 일 있다 말이요. 누구에게 분해진 것, 분  그놈이 들어서 자꾸 일을 못 하게 해. 분함과 싸울 수도 있고, 또 자기가 과거에  잘못한 것, 원통하다 말이요. 원통 그놈하고 싸우는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원통 그것도 소망없는 원통 그거 다 사망이요. 악령의 역사들입니다. 그러기에,  자기 속에 악령의 그 시키는 일, 악령이 자기 속에 와 가지고서 자기 아닌  옛사람 자기를 붙들고 역사하는 그걸 알아서 그 싸움을 싸워야 됩니다. 그  싸움을 싸우면 힘이 납니다.

 그런고로, 우리 믿는 사람들이 신앙의 힘을 잃는, 신앙의 힘을 잃는 것은  첫째가 자기가 전투의 실행이 없다, 싸우는 실행이 없어 그렇다, 전투성 가진 그  실행을 하지 않는 데에서 힘을 잃는다 요것을 단단히 기억하고 자기는 조그만한  것이라도 양보하지 않고 꼭 그것을, 양보 안 하고 말씀대로 살 수가 어디  있겠느냐, 말씀대로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자기가 작은 것이나 큰 것이나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 혹 어떤  사람은 이 일을 안 해야 되지 않습니까 하는 그런 것은, 그것은 자기가 성경을  인용해 가지고서 해 보면 대개는 사람의 하는 생활에 그 일은 해서는 안 된다  하는 그런, 성경이 금지하는 그 생활은 많지를 못합니다. 그렇게 많지를 못하요,  하루 종일 생활하는 가운데에 성경이 하지 말라는 일을 안 해가지고서 그 낭파될  일이 혹 하나 있거나 그리 안 하면 하나도 없거나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꼭 전투 생활을 할 것 전투 행위입니다. 전투 행위를 할 것.

 그 다음에 둘째로는 전투행위를 해서 자기는 무엇이라도, 조그만한 것이라도  잘못된 것은 용납지 안하고 그것을 성경을 해석해 가지고, 요래 하면 안되지마는  내가 중심을 요렇게 바꿔 가지고 하면 요거는 할 수가 있다 또 내가 요렇게 해  가지고 요걸 위해서 해서는 안 되지마는 요 하는 것을 내가 깨달아서 요 참 주를  위해서, 복음을 위해서, 형제를 위해서 할 수가 있다 요렇게 성경을 붙이면 될  수 있다 말이요.

 그러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그 법인들이 해 나갈 때에 무엇이든지, 이일은 할  수 없다 이래 보일 때에 그러면 이거는 할 수가 없느냐, 육법 전서를 찾습니다.

육법전서를 찾고 또 임시 행정법을 찾고, 행정법 육법전서를 찾아가지고 아  요기에 요런 조문이 있으니까 요런 조문을 가지고서 요 일 하면 되겠구나 요  허락해 주는 것도 요 조문을 가지고 하면 되겠다 요 조문을 지금, 요것을 해서  금지 시키겠는데 어째 금지시키겠느냐 요 법 조문이 있으니 법조 가지고  금지시키면 되겠구나 그렇게 그 사람들은 이 세상에 그 전체적으로 일반적으로  가진 그 헌법이 있고 또 그 다음에 그 행정법이 있으니까 그런 법을 이용해  가지고서, 법 조문을 맞춰 가지고 그 일을 한다 말이요. 그러니까, 법을 모르는  사람은 그 일을 할 때에 법에 턱 걸리 가지고서. 그만 정죄를 받지 마는 법을  아는 사람은 그 법을 요렇게 조렇게 이용을 하면은 그것이 법 조문에 안 걸릴 수  있다 그 말이요.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성경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이 있는데 성경  모르느 사람은 그 일은 그만 위반되어 할 수 없다 이래도 성경 아는 사람은 보며  성경에 요런 조문이 있으니까 요런 조문을 통해서 하되 요렇게 하면 되겠다, 내  마음을 요래 가지고 하면 되겠다, 내 정신을 요래 가지고 하면 되겠다, 내  목적을 요래 가지고 하면 되겠다, 목적과 동기와 그 방편을 조금만 요렇게  그쳐서 틀면 그 일이 될 수가 있어. 그렇기 때문에 성경이 필요합니다.

 성경 어기지 않고 성경대로 다 살 수가 있습니다. 살 수가 있고, 성경을 어겨야  하는 그런 일은, 미련해서 모르기 때문에 그 백지 하나님의 중심으로, 하나님  중심으로 해도 할 일을 하나님 중심으로 하지 아니하고 자기 인간 중심으로  한다든지 무슨 뭐 물질 중심으로 한다든지 그렇게 해서 미련케 해 가지고서 떡  하나님 법에 떡 걸리고, 걸리니까 마귀가 와 가지고서 네가 이것은 봐라 네 물질  중심으로 하지 안 했느냐 인간 중심으로 하지 안했느냐 이건 네 중심으로 하지  안했느냐, 하나님 중심으로 해도 할 수 있는 일인데 깨닫지 못 해 가지고 자기가  인간 중심의 마음을 가지고 해 버렸기 때문에 정죄를 받는다 그 말이요.

이러니까, 우리가 성경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둘째로는 성경을 읽어야 됩니다. 암만 자기는 실행에만 힘을  써서 뭐 실행하는 데에 전심 전력을 기울여 가지고 이렇게 하는 사람이 힘이  떨어지는 그 이유는 성경을 읽지 않기 때문에 그런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성경 읽는 일을 잊어 버리지 말고 성경을 내가, 성경책을 보고 읽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성경책을 보고 읽는 것이 제일 좋고, 그 다음에는 성경을 내가  외우는 것, 요절, 이런 요절-일하면서도 외울 수 있습니다. 일하면서도 이런  요절을 외우고 저런 요절을 외우고 이래서, 모든 독서 중에 성경 독서가 제일  양이 많아야 된다 하는 그거 불가능한 것 같지마는 그럴 수 있다 말이요. 그  사람은 자기가 공부를 하면서도 성경에 자기에게 공부에 대한 요절을 외웁니다.

요절을 생각하면서 공부를 하니까 공부는 껍데기로 하고 속에 외나 알맹이는  지금 성경 거기에 대한 요절을 자기가 외우고 기억하고 생각 하면서 이렇게 한다  이거요. 그러니까, 하나님하고는 뒤에 딱 둘이 붙어 가지고 하나님하고는 이렇게  밀접한, 밀접한 교제를 딱 가지고 이제 하나님하고 둘이 합해 가지고 진리하고  합해 가지고서 그 공부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공부는 종이 되어지는  것이고 이용물이 되어지는 것이고 자기는 우상 섬기는 우상을 만드는 사람이 안  된다 그 말이요. 그러니까 성경 읽는 것.

 또 한가지는 성경을 읽고는 생각해야 됩니다. 이 성경의 뜻이 무슨 뜻인가  이렇게 생각을 하면서, 그러면, 내가 이 성경에 대해서는 과거 생활이 어찌 됐나  이 성경을 보니까 과거 생활이 이 성경에는 위반된 것이 있다, 위반된 것이  있으면 즉시 그칠 수 있습니다. 위반된 것이 있으면 아 주님의 피에 고해서,  주님이 그 때문에 피흘렸으니까. 아, 주여 내가 요 성경을 위반한 일이  있습니다. 요것을 용서해 주옵소서 그렇게 기도하면 사해 주십니다. 사함을  받고, 또 내가 지금 어떤 경영을 미래적으로 할 일 있는데 요거는 이 성경에  비춰 보니까 이게 뭐이냐, 자기 과거 현재 미래 생활과 자기의 사람됨을 그 성경  말씀과 이렇게 대조를 이렇게 해 보는 그것이 뭐이냐 그것이 '주야로 묵상 한다'  이랬습니다. '주야로 묵상한다'. 여호와 율법을 즐거워하는 것은 성경 읽는 것을  가리켜 말하는 것이고, 성경을 자기가 암송하거나 성경 말씀을 자기가 명상하라  하는 것을 가리켜 말하는 것이고,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하는  자라, 묵상한다 그 말은 성경 말씀과 자기의 과거 현재 미래의 행동과 대조를 해  보고 또 자기와 성경 말씀과 대조를 해 보고 이라는 것이 이것이 눈 감고 고요히  생각하는 것입니다. 묵상입니다. 이렇게 자기가 하다가 보니까 성경에 대한  해석이 나오고 깨달음이 나옵니다. 깨달음이 나오고 그러니까 거기에서 기도가  나오게 됩니다. 아, 성경 말씀 생각하다 보니까 아이구 주님이여 이거  잘못됐습니다. 용서를 구하는, 사죄를 구하는 기도도 나오게 되고, 또 성경  말씀을 생각해 보니까 내가 이 성경 말씀에 맞도록 할 수 없는데 그 일은 성경  말씀에 딱 들어 맞는 행동을 했다 생각하니까 또 기쁨이 나온다 그말이요.

감사가 나옵니다. 감사가 나오고, 또 사해 달라는 용서를 구하는 일이 나오고,  또 그라면 이런 일은 보자 성경에 맞나 안 맞나 그 일을 생각하면서 퍼뜩 그게  판정이 안 납니다. 안 나면, 주여 이 일은 성경에 위반이 됩니까 성경에 위  반되지 않습니까, 이것이 주님하고 의논하는 것입니다. 모든 일을 의논합니다.

모든 전부를 다 들여 가지고서, 이 일은 성경 말씀에 위반입니까 합치된  것입니까 내가 깨닫지 못하겠으니까 이걸 알려 주옵소서, 그것이 하나님에게  그해 가지고서 의논하는 것입니다, 의논하는 것, 또, 그라다 보니까 하나님 앞에  아, 이거는 해야 되는데 내가 지혜가 모자라고 의지가, 의지가 약하고 내가 또  신조가 약하고 나는 환경과 주위에 물이 잘 들고 다른 사람의 침노를 잘 받고  친구들의 그 모든 우정을 내가 딱딱 끊지를 못해, 나는 끊는 힘이 약하다, 나는  꼭 매달리는 그 힘이 약하다, 나는 참는 힘이 약하다 뭐 약한 점이 모두 우리  사람에게 많이 있으니까 그런 점 때문에 주님에게 간구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것은 통의 기도를 말하는 것인데. 그러기 때문에, 전투의 행함이 있어야 되고,  또 성경을 읽는 일을 우리가 그치지 안해야 되겠고, 또 기도하는 일을 그치지  안해야 되고 요 셋이 합해 가지고서 나갈 때에 우리는 힘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반드시 힘이 떨어질 때에는 자기가 무슨 행함을 싸워야 될 일을  싸우지 안해서 그렇다 말이요. 요 일은 내가 안 해야 되는데, 내가 항상 동무가  와 가지고서 '놀러 가자.'-학생들 같으면-놀러 가자 할 때에 놀러 갔다 오니까  후회가 된다 말이요. 이러니까, 그 동무 따라서 놀러 안가야 되겠는데 요것을  자기가 딱 미리 기도하고 아 요 시간 되면은 우리 동무가 놀러 올 터인데 가자  할 것이다 이러면 내가 어떻게 하노, 기도를 하면서 '어라 내가 이때는 살짝  피해야 되겠다.' 처음에 약하니까 피해 가지고, 나 묻거든 없다 하이소 이래  하다가 나중에 가서는 오늘은 내가 한 번 거절해 보자. 오는 것을 '내가 지금  천상 할 일이 있어서 이 시간에는 못 가겠습니다.' 이라든지, 또 그리 안 하면  미리 전화해 가지고 오늘은 내가 같이 놀러갈 시간이 없으니까 그 오지 마십시요  이라든지, 이래 가지고 방비할 힘이 있다 말이요. 그래 가지고 방비를 해서 올라  하는 사람 미리 전화를 해 가지고서 못 오게 딱 하고 나서 보면 자기속에 힘이  나옵니다. 그것이 전투의 힘이라 말이요. 힘이 나옵니다.

 모든 일에라도 또 요 일은, 꼭 요거는 죄이기 때문에 요거는 안 해야되는데,  요말은 거짓말이기 때문에 요거는 안 해야 되는데, 요 일은, 요 재물은 불의하게  재물을 취하는 것이기 때문에, 불의의 재물이기 때문에 안 취해야 하는 데 그걸  자기가 알고 그만 '안 해야 되는 데' 하고 해 버리면 그만 힘쭉 빠져 버립니다.

그만 그 폭탄에 구멍이 뚝 뚫어졌소. 그럴 때에 그 싸워 가지고서 그것을 안  하고 실행을 하게 되면은 힘이 난다 그 말이요. 그러기 때문에, 오늘 아침에는  삼각적인 이 신앙생활이라야 여전히 점점 자라가지 삼각적인 신앙이 아니면 안  됩니다.

 요새 우리는 뭘로 치우치기 쉽지요? 고만 기도로 치우치기 쉽습니다. 아,  오늘은 기도회에 예배당에 가 가지고 삼십분 기도했으니까 됐다 그만 그것으로서  만족하기 쉽습니다. 이제 기도하는 사람들은 성경읽는 일을 그만 등한히 여기기  쉽습니다. 기도하는 사람들이 실행하는 일은 거의 그대로 합니다. 기도하는  사람들이, 기도와 실행은 거의 가깝기 때문에 기도하다 보면은 실행도 되어지고  이렇지마는 성경 읽는 것을 등한이 하게 된다 그 말이요. 그러니까 기도하는  사람이 실행하는 힘이 있다 할지라도 그 힘이 얼마 못 갑니다. 이러니까, 성경  읽는 것, 기도하는 것, 실행하는 것 이 셋이 꼭 길이가 같아야 됩니다. 길이가  절음발이가 되지 말고 길이가 꼭 같아야 되지 그 같지안 하면 안 됩니다.

 이러니까, 성경 보는 것, 기도하는 것, 자기가 실행 하는 것 그 힘쓰는 것이  말이지, 자기가 힘쓰는 것이 셋이 꼭 같아야 신앙생활이 참 온전하게  자라갑니다. 어느 것이든지 힘쓰는 면이 어느 것을 중하게 천하게 하면 안  됩니다. 세가지가 꼭 같이 중해지기 때문에 세 가지를 꼭 같이 힘을 쓰면  자기신앙은 자라 나가서 하나님이, 성신이 오시니까 내 속에도 모든 일이 된다  하는 이 확신이 생깁니다. 성령이 오시고 진리가 오니까 그 능력을 주시니까 내  마음에도 아 이거는 문제없이 할 수 있다 나만 그럴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또 그  관계되는 모든 다른 것들을 움직여 가지고 되도록 협조를 하도록 합니다.

이러니까, 믿는 사람의 하는 일이 다른 사람이 모를 만침 그렇게 수수하게 형통  하게 나간다 그거요.

 그런고로, 요 세가지 기억합시다. 우리가 기도하는 사람은 실행하는 일은 그  일이 다소 돼 나갑니다. 그러나 그러다 보면 성경 읽는 일 아주 등한히 하기  쉽습니다. 이러니까, 성경 읽는 데 힘쓰는 것, 기도하는 데 힘쓰는 것, 실행하는  데 힘 쓰는 것 요 세 가지에 힘쓰기를 꼭 같이, 꼭 같이 힘을 쓰도록 우리가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녜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어제는 기도록에 등록된 사람이 삼천 구백 십 삼 명. 이제 사천 명이곧 다 돼  갑니다. 이제 점점 이리 되어서 우리 전체 기도하는 것, 여러분들 이거  보십시요. 우리 기도가 뭐이 지구 땅 덩어리 가운데 조그만한 한국, 한국 중에도  남단 조그만한 데, 교회 중에 수많은 교회 가운데 한 교회 우리가 기도하는 것이  무엇이 그럴까 여러분들 그렇게 생각지 마십시요. 우리의 기도에 세계가  움직입니다. 우리의 기도에 세계가 움직이요. 우리의 기도에 세계가 움직입니다.

이 요새되는 일을 공연히 우연이라고 생각지 마십시요. 우리가 기도를 계속 더  힘써 보십시요. 더올라.

 그러기 때문에, 그 민족이, 국가가 망하고 흥하는 것이 그 나라에 있는  기독자에 따라서 움직입니다. 다시스로 가는 그 배가 요나 한 사람을 인해서 그  배에 불안이 생겼고 그 배가 평안해졌습니다. '뭐 그리 될 때야 되지'  이렇지마는 그렇지 않소. 우리가 기도할 때에 벌써 우리에게 영감을 주십니다.

다. 기도할 때에 '아 문제 없다.' 이 시국도 말이요, 이 시국도 지금 큰 문제라.

이 안하면 안 되겠다 큰 문제라, 이리 되는데 기도하는, 참 기도를 하면은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알려 주십니다. 이제 문제가 있지마는, 문제가  있지마는 네게는 없다, 또 문제가 더 심각해진다 그러면 기도가 심각하게 나온다  말이요. 또 기도할 때에 아 이제 문제는 해결이 됐는데 네게만 해결됐지 전체는  해결이 안 됐다 또 이리 된다 말이요. 그렇게 해서 우리가 기도하면 우리나라가  평안하고 세계가 평안 해집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에 말하기를 너거의 기도에, 그 향로의 향불을 금단 위에  부으니까, 거기에 있는 불을 담아다가서 땅에 불을 쏟아 버리니까 그것이 뇌성과  지진과 번개로서 이렇게 나타난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의 성도의  기도대로 그 모든 움직임이 나타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 기도회에서 자기가 하나님이 들어 주시는 이 사실을  또 믿어야 되지 안 믿으면 안 됩니다. 어제 아침인가 기도에 대해서 18장을  봤는데. 18장에 기도에 대해서 한 말씀을 단단히 기억해야 됩니다. 성도의  기도가 하나님의 보좌에 올라가 가지고서, 보좌에 올라가서 그 성도의 기도대로  이제 하나님이 내려 주십니다. 성도의 기도대로 하나님이 내려 주셔. 모든  지진도 모든 그 뭐 복음 운동도 모든 환난도 전쟁도 평강도 이런 것 다 성도의  기도대로 고대로 내려 주십니다.

 그러니까 이 참 기도회를 시작한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는 특별히 사랑하신 그  증거요 영감으로 된 것입니다. 이 운동도 이것이 우러만 놓지 안하고, 우리만  놓지 안하고 계속하면 이 운동이 세계에 번져 나갑니다. 이 운동에 세계에 버저  나갈 것입니다. 이 기도 운동이 뭐 그냥 나갈 것이 아니라 벌써 우리가 기도한지  한 이십 일 지나고 나니까, 언제 신문에 한번 났읍디다. 그 시작한 거 아니요.

아무래도 우리가 이 나라를 위해서 기도, 기도단을 모아야 되겠다, 구국 기도단.

구국 기도단, 기도단을 만들어 가지고 기도를 해야 되겠다, 우리 기도 한 이십일  하고 난 다음에 벌써 그런 신문이 두 번 났읍니다. 이라고 나면 자꾸, 이것이  운동이라 말이요. 이렇지, 우리가 계속 기도하면, 원근원인 여기서만 기도를  계속하면은 모든 따라서 움직이게 되고, 또 따라서 움직이면, 우리나라가  움직이고 난 다음에 외국이 움직이고 전 세계가 움직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일파동 만파동이라, 한 불결이 일어나면은 일만 물결이 따라  일어난다. 돌을 떡 던져 보면은 한 돌을 못에다 던지면은 그 물결이 둥 떠지면  그 동그란 원이 돼 가지고서 쭉 퍼져 나가지 않습니까? 퍼져 나가 가지고서, 저  작은 못에는 저 가에까지 대인다 그 말이요. 어쨌든지 이 물결나가는 대로  나간다 그 말이요.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이 기도회가 하나님이 기뻐하셔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이 민족과 국가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시작하신 것인 줄 우리가 알고,  그려면, 이 국가만 구원하는 우리 뭐 국가 주제가 아니요. 국가만 구원 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가운데에서 우리는, 엘리야가 참 이스라엘의 마병이요  불벙서라고,엘리야 한 사람이 이스라엘의 모든 국방을 그 사람이 담당했다 하는  것처럼 이렇게 적은 숫자를 가지고서 하나님이 모든 일을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제가 그전에도 말하기를 아무리 공산주의들이 많아도 우리들이  신앙 생할을 그대로 하고 있는 한 그들은 남침하지 못한다, 우리 신앙  까라앉으면 그들이 일어나고 우리 신앙 일어나면 그들이 세력이 잦아지고 하는  하는 그거 눈으로 보라 말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신앙생활 하는 사람이 이남에 얼마라도 있다고 하면은 그  사람을 인해서 그 남침 안합니다. 남침을 한다고 하면 이 가짜들을 다 소탕  시킬라고서 하는 그거는 있어야 될 것도 샅아요. 그러니까 그걸, 원한다면  이거는 그 다른 사람들 오해하기 때문에 원하지는 안하지마는 하나님께서 남한의  이 거짓부리, 신앙도 없는 사람들이 신앙 있다고, 제일이 아니며 정통이 아닌  것이 정통이라고 이렇게 하는 이런 모든 가짜들이 많으니까 이 가짜들을  하나님께서 불로 사룰 이런 한번 연단이 있지 않겠느냐 한번 시험이 있지  않겠느냐 그 생각은 있습니다. 그 시험은 올런지 모릅니다.

 그 시험은 또 공산주의로 안 해도 그 시험은 있는 것이 좋겠어요. 있어야 되지  없으면 이 가짜를 알아 내지를 못한다 그 말이요. 공산주의 안 와도, 이  국가에서도 하나님이 하실라 하면 우연히 모든 사람이 있다가 우리나라도 이 거  딴랍이 되어야지, 정신 단합이 되고 정신 통일이 되어야 되니까 우리나라는 우리  그 국신을 모시자 이 단군, 단군이 우리나라의 제일 조상이니까 그 단군을  모시자 이래 가지고 단군 신사를 만들어 놓고 단군 신사에 절을 다패야 된다 해  가지고 이래 할런지도 모른다 말이요. 국기로 가지고 그렇게 하지 안했읍니까!  국기로 그래 하다가 국기 지금 거석은 벌써 언간히 떨어져 버렸읍니다. 국기는  말한다 해도 이제는 국기에 대해서 주목하는 사람은 주목하고 또 이렇게 그저  묵념하는 사람, 묵념하고 그때 기도하면 기도해도 그 관계없지마는 어떨 때에는  국기를 딱 국기 배례를 강조해 가지고서 국기 배례 안 하면 안 되도록 그렇게도  될 수 있다 그 말이요. 그러면 그것은 개인적 시험이라 그말이요. 공산주의 안  와도 시험이 옵니다.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그런 것이 오지 안해요. 와도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여러분들이 그것을 딴단히 기억하고 이때에 기도를 힘써야 됩니다.

뭐 왜정 말년에도 참으로 기도하는 교회들은 그런 시험이 없었읍니다. 그, 신사  참배 때 문제가 있으면 기도하는 사람들은 그런 일 당하지 안해. 그런 교회들은  다 보면 뭐 했느냐? 그때 산기도가 없었지마는 금식 기도 산기도, 산에 가서  철야 기도, 모두 산에 새벽에 한 두시쯤 되면 산에 올라가 가지고서 기도하고 또  내려와서 새벽 기도 보고서, 산기도 하는 사람들이 많이 났고 금식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이 났고 하는 그런, 기도에 불이 붙어 있는 그런 교회는 신사  참배와서 하라고 하지도 안했고 안 한다고 반대를 해도, 반대를 해도 그 사람을  잡아 가지도 못하고 교인들에게는 상관이 없었어.

 그 6.25 지나고 난 다음에 토벌대가 와 가지고 불을 지르는테 저는 그때 이제  다른 데 돌아다니고, 나를 잡아 죽일라고 지금 그들이 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  다른 데 돌아다녀. 다른 데 돌아다니면서 자꾸 이 교회에 가서 부흥회하고 또  저교회 가서 부흥회하고 자꾸 부흥회하고 돌아다닙니다. 돌아가는 데, 그때  여기, 여기 있는 사람, ○○○ 그때 사람 하나 있네요. 그때 참석한, ○○○씨  그때 집사입니다. 있었는데, 그때 그만 그 토벌대들이 와 가지고서 마당에다가  덕석을 쫙 펴 놓고 믿는 사람들 다 주 모았더랍니다. 믿는 사람들 전부 뚝 다  둘러 앉혀 놓고서 이놈들 너거 예수 믿는 데 대해서, 이거 지금 예수 믿는걸  부인하라고 그렇게 뭐 때리고 항복을 하는데 - 그 사람들이 뺑 둘러 앉았는데 그  사람들이 알겠소? - 때리는 것은 어떤 사람을 때리느냐, 꼭 예수를 믿되  안일주의로 믿고, 주님을 위해서 그 고생적인, 희생적인, 십자가를 지지 안하고  예수 믿는 그런 사람들만 두드려대요. 그 돌아가면 두드리는데 하필 꼭 고  사람만 빠자 놓고 자꾸 두드리더래요. 나는 그때 참석 안 했어. 그 이상  하다고서.

 그래 가지고 평소에 자기의 가정에서 믿음 때문에 참 박해를 당하는 사람, 또  그 기도에 대해서 아주 힘을 써서 거석한 사람, 예수 믿기에 고난을 많이 당하며  예수 믿은 사람들은 하나도 손 안 대고 그 어찌 아는지고 똑 넘어 가더래요,  넘어 가서 고 사람은 때리고 때리고 해 많이 맞았대요 그랬댔지? ○○○ 씨.

그래서, 내가 오니까 '참 이상합니다.' 그래 뭐 와서 그랬다 하기 때문에  '그러먼 누구 누구 맞았어?' 하니까, 맞을 사람만 맞았소. 맞을 사람만 맞고 안  맞을 사람은 하나도 안 맞았어. 그 사람들이 어찌 알까, 그것이 하나님이요.

그것이, 내가, 그게 유월절이라, 그게 유월절이라.

 그와 마찬가지로 모두가 다 그렇다, 보라, 신사참배도 옆에 있는, 그 면에  교회가, 그러니까 하나 둘 서이 너이 있었읍니다. 교회가 너이 있었는데 셋  교회는 하나 하나 잡아다가 전부 그 갖다놓고, 주재소 갖다 놓고 항복을 시키고  다 각서를 쓰라 하고 도장을 다, 모두 도장찍었소. 그때 전부 도장을 다 찍고  지장을 다 쩍었소. 한 사람도, 교인 교적부를 갖다 놓고 다 불러서 다 찍었소.

그런데 한 교회는 한 사람도 안 불렀읍니다. 그 교회는 또 제일좀 말씀대로  산다고 모든 사람들이 다 신 불신자가 자인하는, 그 사람들은 예수 지나치게  믿는다 하는 사람들로 시인하는 사람들인데 그 교회 사람은 한 사람도 안 했댔어  신사 참배 안 했어. 그때 그 책임자하고만 늘 시비를 했지. 하라 하연 못 한다  못 한다 자꾸 이래 시비를 했다 말이요.

 이러니까, 여러분들, 하나님이 노아 시대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타락했는데  그 많은 인류 가운데에 여덟 사람 그까짓 거야 뭐, 여덟 사람, 여덟 사람이  뭐이냐 쌀 한 가마니에 미 한 개보다도 여덟 사람이적은 숫자요 많은 숫자요?  적은 숫자지요. 이런데 그 여덟 명을 딱 가려서 하나님이 구원하십니다. 우리가  암만 그 쌀이 좋지마는 모래 한 가마니 가운데에 쌀 한 내끼 들었으면 한 내끼  주울라고 모래 한 가마니를 다 이래 치고 나비고 하겠읍니까? 아쌀이 좋기는  좋지마는 이 그 쌀 한 내끼 가릴라고 이 한 가마니 이걸 다 이걸 나빌 수가 있나  내버려 버리라, 이렇지마는 하나님은 그 의인 여덟 사람을 내버리지 안했읍니다.

이런 하나님이시오.

 그렇기 때문에 어짜든지 우리가 이 기도회에서 기도합시다. 기도하는데 하나  부탁탑니다. 여기 공사들도 빨리 그 사람들에게 감동 주고 힘을 줘 가지고서  열심히 해서 충성되게 해서 잘 하도록 하고 의자도 그 사람들에게 감동줘서 잘  되도록 하고, 또 지금은 저 굴뚝을 쌓고 있는데 그 굴뚝은 위험한 것입니다.

위험 한 것인데, 다른 사람에게 줄라 하니까 그 삼백만 원 내라 합니다. 이래서  지금 우리 교인들이 그걸 쌓을라 하고 있읍니다. 이러니까 지혜와 총명을 줘서  잘 쌓도록 하고 또 건강도 주고 또 거기에는 아무 사고가 나지 안 하도록 그렇게  해 달라고서 우리가 기도를 하고, 그 기도로 우리가 다 해. 먼저 기도해 놓은것  있지마는 또 기도 잊어 버리면 하나님께서 다 듣기야 듣고 있지마는 기도 안  하면 또 하나님이 섭섭해 한다 말이요. 계속 기도를 하고 그래 합시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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