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25 16:32
신앙노정에 인본은 멸망
1984. 2. 16. 새벽
본문: 창세기 12장10절∼16절 그 땅에 기근이 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우거하려 하여 그리로 내려 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그가 애굽에 가까이 이를 때에 그 아내 사래더러 말하되 나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고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원컨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대로 인하여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인하여 보존하겠노라 하니라 아브람이 애굽에 이르렀을 때에 애굽 사람들이 그 여인의 심히 아리따움을 보았고 바로의 대신들도 그를 보고 바로 앞에 칭찬하므로 그 여인을 바로의 궁으로 취하여 들인지라.
그러면, 그 가는 길이 복 준다고 하셨으니까 형통해야 될 터인데 형통치 아니하고 아주 흉년이 들어서 심히 어려운 형편을 만났습니다. 그러니까 아브람도 견디지 못해서. 하나님은 벧엘에 있으라고 했는데 자기는 그곳을 떠나서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어겨서 애굽으로 내려간 그 걸음이 어떤 그 결과를 맺을 수 있는 걸음이었느냐? 그 걸음은 아브람과 사래가 둘이 다 죽임을 받을 그런 결과적으로는 죽고 망하는 그런 걸음이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그렇게 해 석을 해서 그런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능력이 그를 특별 섭리로 보호하시지를 아니했으면 그들은 그 걸음에 두 사람이 다 죽었고. 일행 그 롯은 비참하게 되었든지 그렇지 않으면 같이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요것을 과연 그렇게 있겠느냐? 그때에 하나님이 가라고 하지 안하는 제 마음대로 제 생각바로 하나님은 잊어버리고 제 형편만 생각했고 또 제 생각대로 했고 제 욕심대로 했고 저 하고 싶은 대로 그렇게 해서 모든 면으로 하나님에게 대해서는 다 뒤로 두고 하나님을 아주 뭐 부인하지는 안하지마는 하나님을 뒤로 두고 자기네들을 앞세워서 모든 행사를 취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그렇게 갔던 걸음이 둘이 다 필연적으로 사망합니다. 죽고 망합니다. 필연적으로 사망을 합니다. 사망 할 수도 있다 하는 그 말이 아니고 필연적으로 사망합니다. 또 일행 그 롯도 같이 사망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아브람의 두 부부는 필연적으로 사망합니다. 그는 사망하지 안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섭리하지 아니하셨으면 사망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하는 이것을 여러분들이 깊이 깨닫고 '그는 틀림없다 확실하다 그는 필연적이다' 이것을 느끼야 되지 그저 억지로라도 끄다 붙여서 그런 것 아니라 그럴 수도 있다는게 아니라 안 그럴 수가 없습니다. 안 그럴 수 없는 그 이유는 사래가 아주 그만 얼굴에다가 이렇게 뭐 소산수 같은 걸 찍어 발라 가지고서 아주 험한 얼굴을 했으면 또 일은 없을 것이오. 또 그렇게 안하지. 그러니까 자, 사래의 그 얼굴이 아름답다는 것을 보는 사람마다 놀래면서 아름답다고 이렇게 해서 대신들도 다 또 그렇게 그 말을 듣고 보고 참 아주 아름다운 여인이라고 그렇게 조정에서 말을 했고 또 왕이 그 말을 듣고 데리고 오라고 했고, 또 데리고 와 보니 참 욕심이 나서 아내를 삼기로 작정을 했고, 그로 인해서 아브람에게 많은 뇌물도 주었고, 아브람은 그 부부간이 아니라 남매 간이라고 그렇게 말을 했으니까 하나님의 특별한 역사가 아니었으면 결혼을 했을 것이라 그말이오. 결혼을 했는데도 사라는 벌써 하나님을 아는 믿음의 사람이기 때문에 거기에서 결혼을 한다 할지라도 바로에게 만족하게 하지를 안할 것이고, 무엇인가 그 근심도 있을 것이고 또 하나도 그 기쁘지 안했을 터이고, 이럴터이니까 그에게 수심이 있고 무엇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것이고 그래도 아무 일 없었으면 그 사래와 바로는 결혼이 됐을 거라 말이오. 결혼이 됐으면 되고 난 다음에 무엇인가 좀 기쁘지 안하고 하니까 그 이상하다 해서 자꾸 이렇게 기쁘도록 할라고 애를 썼을 것이고, 그래도 사라는 날이 갈수록 자꾸 근심은 더 걱정은 됐을 것이고 이러면 의문이 필연적으로 생깁니다. 의문은 필연적으로 생겼고. 또 그러니까 안 갈 수 없고.
자기 오빠집이라고 이렇게 내왕을 할 것이고. 내왕을 하면 거기에 노비들이 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그 비밀이 폭로가 될 터이니까 바로가 이제는 그 여인을 바로도 취했지 아브람도 취하지 주인이 둘이니까 거기에 서는 바로가 하나님만 그렇게 역사하지 안했으면 그 바로가 그 여인을 욕심을 내어서만 그런게 아니고 자기에게 대해서 그 모든 걸 주지 안하고 그렇게 마음을 주지 안하고 정을 주지 안하고 이라면은 차차 차차 분개함이 생길 것 아닙니까? 이런 사람들도 보니까 뭐 결혼한 사람들이나 연애하는 사람이나 다 그렇습디다. 나중에 그래 가지고서 죽일 힘이 없고 죽일 힘이 없고 죽일 권세가 없어 그렇지 죽이고도 남을 만한 그런 과정에 이르는 거는 필연적이라. 다. 이러면 아무래도 이거 일차 순서는 저 아브람을 저걸 죽여 없애 버려야 이 제 그 마음이 내게로 다 기울어지겠다 해 가지고서 보게 죽일게 아니라 이상하게 꾸며 가지고서 아브람을 없애 버릴 거라 그말이오. 아브람 없애 버리면 그 사래는 거기에 서 자기가 살아 있을 수 없을 것이고 뭐 아무리 좋게 해 준다 해도 사래는 거기에 서 말라 죽지 그냥 그냥 견디지는 못했을 거라. 나중에 그러면 어떻게 하든지 또 왕이 자기만 보고 자기는 좋아하는데 자기는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 쪽 사랑을 그래 가지게 되면 분해서 처리했을 거라 그말이오. 이러니까 필연적으로 죽습니다.
그 필연적으로 죽는다는 그걸 우리가 꼭 깨달아야 됩니다. 그걸 깨닫지 안하면 이 복음을 자기가 읽어도 자기에게 복음되지를 못합니다. 그러니까, 속에 그 실상을 깨달아야, 우리에게 주신 길인데 이는 도인데 우리가 걸어 갈 길인데 이거 확실히 깨달아야 우리가 그런 형편을 당했을 때에 주저하지 아니하고 거기에 서 서슴치 안하고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서 가게 됩니다. 그렇지 안하면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서 갈 사람이 없습니다. 다 아브람 같이 이래 가지.
그랬는데 하나님께서 그를 살려 줘서 아브람이 살았습니다. 살았지마는 그곳에 안 내려가도 죽진 안하고 하나님이 보호하시니까 하실 터이니까 하나님의 기적을 봤을 터인데 엘리야도 삼 년 육 개월 동안 아무것도 없는 그 사렙 과부의 집에 가 가지고 머물 때에 마지막으로 털어서 떡을 구워서 먹고 죽자하고 마지막 털어서 굽는 그 집에 가 가지고 삼 년 육 개월 있었어도 먹을 것이 계속 있어서 먹게 되었습니다. 또 그가 시냇가에 있을 때에 (이렇게 안할라고 새벽에 나오면서 찬물을 또 이래 목을 씻고 찬물마시고 이래 나와도 또 그게 생겨져.
이거 아마 늙은 병인 모양이오.) 하나님이 특별한 그런 기적을 베풀지 안했으면 그들은 죽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 인도하신 인도를 따라서 가는 아브람이 벧엘에 가 가지고 어려움 있을 그 때에 어려움을 견디지 못해서 하나님의 인도를 받지 안하고 제 마음대로 간 그 걸음은 틀림없는. 그는 스스로 사망을 취한 걸음이라 하는 것을 우리가 확고히 잡아야 됩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주님의 인도를 따라서 믿음을 지켜 나가는 우리들이 믿음 지켜 나가는 이 걸음에 어려움을 우리들도 당합니다. 아브람이 당한 어려움을 우리도 필연적으로 당합니다. 당할 때에 아브람과 같이 하나님의 인도를 버려두고 급하니까 제 생각대로 제 마음대로 제 욕심대로 제 의견대로 제 지혜대로 제 지식대로 취해서 간 것이 그것이 스스로 자기를 자멸하는 그 걸음이 된 것처럼 우리도 그렇습니다. 우리도 그럴 때에, 그 어려움을 당할 때에 그때에 하나님의 인도를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기다려서 하나님의 인도를 찾을라고 애를 쓰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걸 얼마든지 구할 수 있습니다. 내가 이렇게 어려움이 있으니 이 어려움에 나를 구원해 달라고. 내가 이 어려움에서 견디지를 못하겠으니 구원해 달라고 그렇게 구하는 것은 죄가 되지 안하고 하나님을 더 바라보고 의지하는 일이 되어지고 또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기뻐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안하고 자기 마음대로 이렇게 해서 나아가는 것은 자멸하는 길입니다.
성경에 애굽을 하나님께서 이렇게 늘 사용을 하셨는데 일찍부터 애굽을 사용하셨는데 이 애굽은 우리로 말하면 세상입니다. 이 세상을 우리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이 사용하도록 주신 거와 같이 믿음의 사람들에게 이 애굽과 관련된 이것은 이방과 관련된 이것은 꼭 우리들이 안 믿는 이 세상과 관련된 거와 꼭 같은 그런 관련들입니다.
그런고로, 요게서 견고히 잡고 내가 신앙 인도를 따라갈 때에 반드시 어려움이 있다 하는 것을 이것을 꼭 잡고 어려움이 있다. 가다가 어려움이 있으면 '아 이 어려움이 아브람이 벧엘에서 당한 어려움, 같은 어려움이다' 요렇게 단정을 지어야 된다 말이오. 어려움이다. 그런데 이 어려움에서 아브람이 그렇게 견디기 어려우니까 그만 하나님 인도를 버려 두고 그 때는 자기 생각대로 자기 욕심대로 자기 주장대로 자기 지혜 지식대로 하나님을 위하지 안하고 어려우니까 자기를 위해서 걸은 걸음. 그러면 자기가 애굽으로 아브람이 애굽으로 내려갔을 때에 어떻게 내려갔나 하는 그 아브람의 그, 심리를 우리가 연구해서 아브람의 심리, 아브람의 행동 아브람이 그렇게 그 길을 그렇게 걷게 된 것 그와같은 우리 심리를 만날때 우리 심리가 그때에 그런 심리가 됩니다. 그런 생각이 나오고 그런 또 그 판단이 나오고, 그런 지혜 지식이 나오고. 그렇게 하나님도 생각할 여지 없이 자기만 생각해서 자기를 위해서 움직이는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반드시 있습니다. 있을 수 있는게 아니라 반드시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럴 때에 우리가 이것은 아브람이 취한 그 길이로구나. 그러나 그 결과가 어찌 됐느냐? 그러니까 나는 이 길을 취하지 안하겠다. 이러니 여기에 서 나는 성경을 보았고 또 배워서 아는데 여기에 서는 하나님에게 그저 죽는 그 시간까지 부르짖어서 하나님께 구해 달라고 하는 이것만이 살 길이지 다른 길은 없다 하는 것을 확정을 지우면 그때에 그런 사람으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또 다른 것도 다 그러합니다.
요셉의 일을 한 번 생각해 봐도 요셉이가 그 가는 길이 험해서 보디발 집에 가 가지고 험하기는 험한데 껍데기는 험하고 속으로는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나서 기이한 걸음을 걷게 됐습니다. 그 바로의 집에 갔을 때에도 형통했고 뭐 대우를 굉장히 참, 바로 이상의 그 집에서 대우를 받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다 바로와같이 그 요셉이를 대우해서 요셉이가 전부를 관할 하도록 주장을 하도록 이렇게 됐고, 그 보디발의 아내까지도 껍데기는 보디발에게 마음이 기울었지마는 이제 요셉이 오고 난 다음에는 일단 그 심신이 다 요셉에게 다 기울어졌기 때문에 그 뭐 요셉이는 그때에 그 집에서는 제일 존귀한 사람이요 존영한 사람이 되어졌습니다. 그렇게 됐을 때에 그 보디발의 아내로 더불어 그 어려운 역경을 당한 걸 여러분들이 들어서도 읽어서도 알 것입니다. 그런 어려움을 당했을 때에 그 때에 얼마나 그 달콤하게 요셉에게 친절히 했을 것이며-참 요셉을 알뜰히 위했을 것이며 사랑했고 그렇게 아주 참 꿀같이 단 그런 애정을-가지고서 요셉에게 그렇게 기울었을 것입니다. 그럴 때에 그러니까 그 요셉에게 대해서 실수를 하기 쉬운 실수케 하는 넘어지게 하는 하나님의 그 계명을 어기게 하는 그 세력이 아주 강했습니다. 그것이 곧 열 처녀의 밤중 같은 그런 밤중으로 비유한 거와 같은 그런 어려움이겠습니다. 그렇게 어려움을 당했을 때에 요셉이는 그 때에 기쁘지 안하고 즐겁지 안하고 고민스러웠습니다. 고민스러운 것은 누가 고민을 줬는가? 하나님께서 고민을 줬습니다. 하나님의 법도 때문에 내가 이렇게 여기에 서 이 칠계를 범하면 안 되겠고, 또 그 주인이 발표하기를 나를 이 가정을 다 맡겨 주었는데 나를 믿고 맡겼는데 내가 그이의 아내를 내가 취한다는 것은 이 큰 죄가 되는 건데 하나님 앞에도 큰 죄가 되고 인간적으로도 큰 죄가 되니까 이럴 수가 없다 하는 하나님의 법도를 지킬라고 하므로 고민했습니다.
그 때에 나중에 다급한 그 수단을 가지고서 요셉에게 달라들었을 때에 요셉이가 그것을 거부하니까 그 거부하니 자기는 감옥에 투옥됐습니다. 감옥에 집어 넣는 그런 결과를 만나게 됐습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일은 얼마나 쉬우며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일은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하나님의 계명을 어겨서 보디발의 아내로 더불어 그렇게 관계, 보디발 아내의 요청에 응했다면 굉장히 환영도 있었을 것이고 대우도 있었을 것이고 뭐 굉장한 그 참 뜨겁고 깊은 아주 고급의 정이 왔다 갔다 하고서 굉장히 좋았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때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기는 참 심히 어렵고, 그렇게 그래 쌓았는데 거절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여인의 그 욕구에 응하지 안 하기도 어렵고 또 그렇게 친절하게 달콤하게 하니까 그 달콤한 것을 버리기도 어렵고, 거절하기도 어렵고, 달콤한 애정을 버리기도 어려웠고, 또 그라면은 그 여인이 거기에 서 뭐라고 공작해서 결국은 그것이 다 폭로될 터이니까 자기는 거기에 서 사형을 당할 터이니까 또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한다는 것은 그 생명을 빼앗기는 그런 일이 됐었고 심히 어려웠습니다. 그런 어려움을 당했는데 아브람이 당한 어려움이나 요셉이가 당한 어려움이나 다 그 사건은 다르지마는서도 그 속에 심리 역사라든지 생사 역사라든지 어려운 문제라든지 순종하기 심히 힘드는 문제라든지 그런 거는 꼭 같습니다. 같았는데 그때 만일 요셉이가 하나님의 뜻을 버리고 제 욕심대로 제 생각대로 제 감정대로 제 하고 싶은 대로 또 그 여인이 원하는 대로 하나님으로는 생각지 안하고-저거 인간들 일만 생각하고서 그때에 범죄했다면 어떻게 됐겠느냐 그것도 우리가 또 한 번 생각해야 됩니다. 그때 범죄했다고 하면 아무래도 그게 보디발이 모를 리가 없습니다. 필연적으로 알게 됩니다. 그리 되면 그게 끊어질 거냐? 끊어지지 안하고 필연적으로 알게 될 것이고, 또 이제까지 요셉이가 그 보디발 집에서 대 환영을 받고 일개 그 상품되어 있는 그 종이 들어와 가지고서 그렇게 대 환영과 존대를 받게 된 그것이 순전히 하나님의 그 능력의 축복으로 그리 됐는데 그 요셉이가 범죄했으면 하나님이 그 축복이 끊어졌을 것이고 하나님의 특별 역사는 그에게 끊어졌을 거라 말이오. 끊어졌으면 그 다음부터 하나님이 그를 붙들지 안했으면 다른 사람이 볼 때에 태도도 나타났을 것이고 행동도 자연히 어두워졌을 것이고 마음도 어두워졌을 것이고 또 거기에 끌려서 그렇게 보디발을 통해서 요셉이를 넘어 뜨리려고 하는 악령의 역사가 보디발의 아내에게도 강하게 역사했을 것이고 요셉이도 강하게 역사했을 것이고 하면은 그거 뭐 아무 것도 모든 것도 다 잊어버리고 자기 죽을 노름만 했을 거라 말이오. 그 모든 식구들이 다 봐도 아, 저 요셉이와 저 우리 보디발 대장의 그 부인과 좀 이상하다. 뭐 관계도 또 자꾸 엿보게 될 것이고 다 알게 될 것이고 보디발 눈에도 띄일 만침 또 그렇게 그 행동하게 될 거라 말이오. 행동하게 되지. 하나님이 요셉이를 모든 사람 앞에서 존귀히 보이도록 그렇게 하니까 모든 사람이 요셉이를 존귀히 봤는데 감옥에 들어 가서도 보니까 존귀히 보고 존대를 했는데 하나님께서 그렇게 모든 사람에게 미웁게 보이면 미웁게 볼 수 밖에 없다 그말이오. 그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를 거두웠으면 잘 밉게 보이고 마지막에는 필연적으로 요셉이가 보디발 아내의 간부라 하는 것을 폭로가 되지 필연적으로 폭로되지 안 될 수는 없다 그 말이오. 안 될 수도 있겠느냐?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의 은혜가 아니면 안될 수 없다 그말이오. 그러면 그 요셉이가 하나님의 뜻을 버리고서 제 뜻대로 했다고 하면은 그 걸음이 필연적으로 요셉이는 거기에 서 죽는다 거기에 서는 뭐 두말할 것 없이 죽는다. 필연적으로는 그는 안 죽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가 거기에 서 깨달아야 됩니다. 이거를 모르고 안 잡으면 소용이 없소. 안 죽을 수 없다.
그러면 안 죽을 수 없다는 것. 그렇게 믿는 사람이 믿음을 따라서 갈때에 참 아주 극히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기 어렵고 하나님 명령을 저버리지 안할 수 없는 그런 어려움의 역경을 당할 때에 아브람도 그랬고. 요셉이도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다고 하면 그는 틀림없이 죽는 길이라. 하나님이 그렇게 특별 섭리로 아브람과 같이 그렇게 특별 섭리로 역사할 헌지 안 할는지 누가 압니까? 그거는 하나님의 뜻이지. 우리가, 하나님이 그래도 우리에게는 아브람 같이 그렇게 역사하리라 생각하고 하는 그것은 벌써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기 때문에 시험하다가는 죽었습니까 살았습니까?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하듯이.나도 이렇게 들어가면 빠져 들어가면 하나님 뜻을 어기고 가면은 하나님이 특별 섬리를 하셔 가지고서 구원하실 것이라 하는 것을 알고 그 길을 가면은 그것은 뭐입니까? 그게 자기가 몰랐으나 몰랐으나 뭐 그렇게 해서 짓는, 그것이 고범죄가 되겠습니까? 그것이 허물이나 실수가 되겠습니까? 허물이나 실수가 됩니까 고범죄 됩니까? 고범죄가 됩니다. 그러면 그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 되겠습니까? 하나님을 그냥 배반한 것이 되겠습니까?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 됩니다.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 되면 시험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죽였습니까 살렸습니까? 고린도전서 10장에 보면 시험하다가 하나님 앞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멸망을 받았습니다. 이러니까, 그 길을 알고 그 길을 가는 자도 멸망이라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그럴 때에는 이 길로 가는 것은 죽는 것이다 하는 그것만 우리가 가지지 딴 거는 가지면 다 사망입니다. 어겨서 제 마음대로 갔으면 반드시 그는 사망했을 것이라. 또 뭐 거기에 그런 역사들이 많고 우리 개인들에게도 그런 역사가 많습니다.
다니엘에게도 한번 생각해 봅시다. 다니엘이 그렇게 하나님 말씀을 순종 하지 안하고 기도 안 하겠다 그렇게 만일 했다고 하면 다니엘은 그때에 사자 구덩이 들어가지 안하고 왕의 보호를 입지요. 왕의 보호를 입으면 나니엘이 그 뒤에 하나님의 말씀을 어겨서 왕의 보호를 입고 하나님 말씀을 어겼으면 다니엘이 죽습니까 삽니까? (이 청년. 요 청년 요 옆에, 그 옆에 앉은 사람. 눈은 떠도 속 잠은 잤는데. 산 개가 죽은 사자보다 더 강해. 눈 감으면 죽은 건데 뭐. 눈 감으면 잠들면 죽었어.) 그때에 다니엘이 만일 하나님 말씀을 어겼으면 죽을 수 있겠습니까 필연적으로 죽습니까? 녜? 안 죽을 수 있겠습니까? 만의 하나라도 안 죽을 수 있겠습니까? 혹 안 죽을 수 있겠소? 안됩니다. 안 죽을 수가 없습니다.
왜? 다니엘이 그 높은 지위에서 모든 사람이 우러러 보고 그렇게 형통하고 권위가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다니엘에게 함께 했기 때문에 그렇지, 뭐 다니엘이 별 사람입니까? 이러니까, 하나님의 권능 빠져나갔으면 마치 그것을 우리에게 하나 형식으로 보여줬는데, 삼손이가 그렇츰 힘이 세어서 삼손이를 죽일 수가 없소. 그를 칼로 찔러도 소용이 없고 그를 뭐 매로 두드려도 소용없고 암만 해야 소용이 없어요. 그거는 그 힘뿐이니까 아무리 해 봤자 소용이 없다 그말이오.
없는데 힘이 빠져 나가고 나니까 얼마나 비참해. 힘 빠지고 나니까 소용없어요.
그와 같이 하나님의 권능의 그 역사가 다니엘에게 빠져나갔으면 당장 그 지위에서 누구보다 뛰어난 것이 없을 터이니까 하나님이 가져 왔던 것을 줬던 것을 다 뽑아 버리고 배반했으니까 뽑아 버리면, 아마 사무 보다가도 사무에 착오가 될 것이고, 그렇게 높은 지위에서 판단하는 그 판단도 꺼꾸로 판단했을 거고 잠깐 무능한 사람 될 거라 말이오. 하나님이 나가실 때 무능한 사람되어지지. 거기에 있는 그 통관들은 다니엘 저놈 때문에 우리가 지금 이렇게 멸시와 천대를 받고 만날 꾸중듣고 이러는데 저놈 어째 죽일고, 죽일라고 애썼었는데 그 다니엘이 그만 하나님을 배반함으로써, 그때는 죽이지 못했지마는서도, 그러면 하나님 떠나 버리고 난 다음에는 다니엘이 무능해질 터이니까 왕이 다니엘을 그렇게 존귀하게 여길 것도 없지. 또 그들은 악심을 품고 다니엘을 죽일라고 모해하면은 다니엘은 그 다음에 뭐 어떻게 암살 당해도 그 치워서 없애 버리지. 그 애굽 전체의 고관 대작들이 다 다니엘을 죽일라고 하는데 하나님의 능력으로 구해 받았지. 그렇지 안하면 그 다니엘은 죽을 수밖에 없다 말이오. 안 그렇겠습니까? 필연적으로 죽는다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다니엘 같은 어려움이나 요셉같은 어려움이나 아브람같은 어려움이나 그 믿는 사람이 믿음 따라가다가 어려움을 닥치는 그 어려움을 닥칠 때에 그때에 하나님의 뜻을 어겨서 제 생각대로 인본으로 나가는 길은 그런 백이면 백 천어면 천 다 사망하는 길이라 하는 것을 요것을 확고히 잡아야 됩니다. 확고히! 오늘 아침에 요거만 확고히 잡고, 우리가 앞으로 그런 일을 당할 때에 그런 어리석은 일을 하지 맙시다. 지금 이것을 확고히 잡아서 깊이 깊이 생각합니다.
눈을 감고 명상해서 '아무래도 그렇다 안 죽을수 없다 아무래도 안 죽을 수 없다 이거는 틀림이 없다 이거는 뭐 만의 만이 다 죽지 이거는 틀림 없다' 하는 요것을 확고히 잡아서 이 다음에 신앙으로 나가다가 어려움을 당할 때에 그때에 내 생각대로 하나님의 인도 버리고 내 마음대로 나가면 이 길은 뭐 틀림없는 이런 사망의 길이라 하는 것이 우리에게 평소에 여러 수천 번 새기고 되새기고 되새기고 깊이 인식 인식 해서, 그럴 때에 깊이 평소에 인식해 놓은 그 인식의 그 지식과 확신이 그럴 때에 그 하나님의 법을 어길 수 없게 만들고. 자기 생각을 거기에 서 주장을 세우지 못하게 만들고 이렇게 하는 그것이 뭐이냐 하면 준비한 기름이라 그거요. 이것이 준비한 기름입니다. 그것이 실력이오. 그것이 아니면 안 된다 그거요.
그런고로, 오늘 아침에는, 가다가 어려움 당할 때에 그때에 하나님의 인도를 받지 안하고 자기 생각대로 나아가면 반드시 사망한다. 그때에 우리 할 일은 뭐입니까? 우리가 첫째 할 일은 뭐이라고 우리가 오늘 아침에 배웠지요? 그래도 어려움을 당할 때에 우리 할 일은 뭐입니까? 예? 누구든지 대답해 봐요. 그렇게 어려움을 당할 때에 우리의 할 일은 뭐이지? 예? 와 여기에 남반은 다 뭐 귀가 먹었어. 그럴 때에 하나님에게 우리 할 일은 간구지요. 믿음이 어리면 간구요.
믿음이 어리거든 하나님에게 여기에 서 구원해 달라고 살펴 달라고서 그 간절한 애원을 할 것이고, 믿음이 있는 사람이면 하나님에게 맡겨 놓고 모든 염려를 맡겨 놔라 했기 때문에 맡겨 놓고-주여-이래 덜렁덜렁 이러니까 아이들 마치 그네 위에 갓난 아이나 뭐 그네 위에 얹어 놓고 흔들어 놓으면 쩔렁쩔렁 흔드니까 시원한 것처럼 이 세상에 이리저리 하느니마는서도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이제 주님만 바라보고 의지하고 떡 아무 말도 안하고 가만히 있으면은 주님도 '아 이놈 잘 노는구나' 아주 참 잘 놀고, 그라면 소화도 잘 꺼질 거 그 아주 좋을 거라 그말이오. 믿음이 있으면 아무 말도 안하고 '모든 시험을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기뻐하면서 참고 견딜 것이고 믿음이 없으면 그 때 부르짖을 것뿐이지 딴 거는 할 일이 없다 말이오. 제 생각만 나오면 죽습니다. 제 생각 제 마음, 제 욕심. 제 형편 생각하고 제 뜻대로 제 좋은 대로 하면은 사망하는 그 길 외는 딴 길이 없습니다. 요걸 견고히 잡고.
요 다음에는 또,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와 같이 왜 성도들이 어려움을 닥치게 했느냐? 닥치게 안 할 수 없는 어려움입니다. 닥치지도록 안 할 수 없는 어려움이라. 그 닥쳐지는 그것이 하나님께서 괴롭게 할라고 그런게 아니라 그것이 하나님이 축복주는 그 순서라 그 말이오.
그러면 오늘 아침에는, 우리가 신앙 걸음으로 가다가 어려움 당할 때에 그 어려움에서 인본이 나오기 쉬운데 인본은 멸망이다. 그러니까 우리 할 거는 믿음이 약하면 하나님에게 마구 부르짖어서 죽자야 부르짖어 하나님에게 애원할 것이고 그렇지 안하면은 좀 든든히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은 나를 돕는 자시니' 뭐라 했습니까?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하나님은 나를 돕는 자시니 사람이 내게 어찌 하리요' 하고 이렇게 있는 그런 믿음을 하나님이 원하신다 그 말이오.
그런고로 이 아브람에게 대해서 배울게 많습니다. 그 아브람의 그 실수. 이랬기 때문에 아브람은 그 뒤에 회개에 독특한 그 회개를 했습니다. 아주 깊이 느끼고.
오늘 아침에는 요 말씀을 생각하면서 앞으로 우리는 어떤 그 뭐 어려움. 물질로 어려움도 있을거고 지위로 어려움도 있을거고 직장의 어려움도 있을거고 부부간의 어려움도 있을 거고 애정의 어려움도 있을 것이고. 남이 또 그렇게 말을 해서 그 말을 듣지 안할려면 어려운. 다른 사람이 '야, 도장 하나 찍어 달라' 할 때에 그거 안 찍어 주면은 어려움 그런 것도 어려움에 들어가. 별별 종류의 어려움이 있으나 실은 다 같은 진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고로 믿는 걸음에는 반드시 어려움이 만나게 된다. 어려움 만날때에 인본으로 행하면 그는 사망한다. 하나님의 인도를 지키고 있어야 거기에 서 생명과 평강이 온다 하는 그것을 굳게 잡읍시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