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망,단일심,계속 기도

 

1987. 11. 6. 밤 (금)

 

본문:누가복음 18장 1절∼8절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저희에게 비유로 하여 가라사대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관이 있는데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주께서 또 가라사대 불의한 재판관의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1절로 5절까지에 비유가 있고 또 6절로 8절까지에 비유의 말씀이 있습니다. 1절로 5절까지에는 아주 냉정하고 또 강퍅하고 불의해서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안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그런 강퍅한 재판관이 하나 있고 또 아주 자녀도 없고 가족도 없고 재산도 없고 건강도 없는 아주 가련한 과부 하나가 있었는데 그 과부가, 여기 성경에 과부라고 말한 것은 남편 없는 것만을 말하는 것 아닙니다. 아주 가련한 사람을 말합니다. 그 과부가 재판관에게 가 가지고 내 원수가 나에게 이렇게 못할 일을 하고 있으니 이 원수의 원한을 갚아 달라고 그렇게 늘 가서 졸랐습니다.

이러니까 그 재판관이 얼마 동안은 듣지 아니하고 있다가 나중에 속으로 생각하기를 이 과부가 이거 말하는 거 그까짓 거 뭐 들을 것도 볼 것도 없지마는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니 내가 귀찮아서 못 견뎌서 아무래도 이 원한을 갚아 줘야 되겠다 하는 그 비유입니다.

아주 불의한 재판관이요 불량한 재판관이요 무자비한 재판관이요 강퍅한 재판관입니다. 아주 뚝뚝해서 뭐 동정이 하나도 없는 그런 아주 불의한 재판관에게 아주 인간으로서는 가장 힘없고 가련하고 천하고 참 아주 천한 그런 과부가 지금 호소합니다.

이 재판관은 아주 불의하고 악하고 강퍅하고 무자비한 재판관이요 또 호소하는 이 여인은 인간 중에 가장 천하고 아주 형편 없는 그런 아주 무능하고 천한 인간입니다. 사람 중에 제일 무능하고 천한 사람이, 제일 불량하고 강퍅하고 불의한 자에게 지금 간청합니다.

그랬는데 이 재판관이 듣지 안하다가 나중에 들어 줄 때에는 왜 들어 줬느냐 하면 늘 와서 이렇게 괴롭히니 괴로와서 들어 줬습니다. 아주 괴로와서 들어 줬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계속해서 이 재판관에게 늘 와서 호소하니까 아주 뚝뚝하고 그 불의하고 무자비한 악한 재판관이요 또 이 사람은 인간 중에 가장 천대받는, 재판관에게 뭐 조그마치라도 마음을 움직일 만한 그런 요소가 하나 없는 그런 아주 천한 사람입니다. 천한 사람이요 아주 불의한 강퍅한 재판관이지마는 계속 와서 부르짖는 그 열심이, 그 재판관에게 자기의 소원을 이루어 주도록 했습니다.

요것을 처음에 비유로 말했습니다.

아주 사람으로서 가장 멸시 천대 받는 그런 아무런 힘없는 그런 가련한 그런 아주 천대받는, 인간 중에 제일 천대받는 사람이 아주 강퍅한 사람에게 이렇게 간청을 하니까 그 일이 될 리가 없습니다.

그 일이 될 리가 없지마는 하도 심히 계속해서 이렇게 와 가지고 호소하니까 나중에는 동정이 돼서 들어 준 것도 아니고 그 여인이 이렇게 하는데 안 들어 주면 무슨 사고라도 있을 것이라서 두려워서 들어 준 것도 아니고 못 견뎌서 들어 주고 귀찮아서 들어 줬다 하는 것을 여게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6절에, “주께서 또 가라사대” 또 새로 인제 또 말합니다. 그래 비유를 처음에 한번 해 놓고, 비유를 이리 해 놓고 난 다음에 “주께서 또 가라사대 불의한 재판관의 말한 것을 들으라” 불의한 재판관의 말한 이것을 들으라. 그러면 이제 우리가 말했습니다. 재판관의 말을 들으라. 밤낮 와서 괴롭히니 내가 이것 못 견뎌서 어서 원한을 갚아 줘야 되겠다 하고서 갚아 줬다.

이 재판관의 말을 들으라.

그리고 7절에 “하물며” 하는 말 있습니다, 하물며. 7절에 “하물며” 위에 이 두 상대방, 호소하는 자와 호소를 듣는 자 그 둘의 그 관계에 이 두 관계에 아주 그는 뭐 될 희망이 없는 이런 두 관계에도 밤낮 와서 부르짖으니까 밤낮 늘 와서 계속해서 부르짖는 이 호소가 힘이 이렇게 있었다.

아주 불의한 그 재판관이요 또 인간 중에 제일 천대받는, 그까짓 거야 사람으로도 여기지 안하고 아주 천대받는 그런 인간인데도, 그러면 그런 인간이 소원하는 그 소원이 이 강퍅하고 불의한 자에게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이것은 참 천부당 만부당이라더니마는 얼토당토 안하고 이것은 도무지 이 일은 될 수가 없는 일입니다.

그렇지마는 밤낮 와서 부르짖는 이 열심이, 계속 부르짖는 이 부르짖음이라는.

계속 부르짖음이라는 이 부르짖음은 아주 이것은 얼토당토 안한 일이지마는 그 일이 이루어졌다. 그 일이 이루어졌다.

이렇게 거리가 멀고 도무지 될 만한 그 이치가, 될 만한 그 이유가 하나도 없는데, 될 만한 그런 이유가 하나도 없는 사이지마는 열심히 늘 와서 부르짖는 이 열심히 부르짖는 이것이 들어서 이 일을 성공을 시키고 말았다.

그걸 지금 5절까지 비유로 여기 말해 놓고 6절에 또 다시 말씀하시기를 “이 재판관의 말을 들으라” 이랬는데 “하물며” “하물며” 이런 거리 멀고 이렇게 얼토당토 안한 이런 일에도 그 열심이 들어서 해결을 지웠는데 “하물며” “하물며 하나님께서” “하물며 하나님께서” 독생자도 애끼지 아니하고 주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원한 형벌에서 구출하시기 위해서 대신 형벌받아 죽기까지 하신 이 하나님께서, 우리 대신 모든 우리가 행하지 못한 것을 대신 행해서 죽기까지 해서 행하신 이 하나님께서, 하나님과 원수된 것을 우리를 화친해 가지고 행복되게 살도록 하기 위해서 죽기까지 하셔 가지고서 이 화친의 이 역사를 이루신 이 하나님께서 “하물며 하나님께서” “하물며 하나님께서” 하나님이 이런 하나님인데 “이런 하나님께서” 그러면 법관과 이 하나님과 비교를 해 봐라. 불의한 법관과 이 하나님과 비교를 해 보라.

“하나님께서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이 택하신 자들은 어떤 자들인데, 그러면? 택하신 자들은, 하나님이 영원 전 택했고 이 택한 자들의 구원을 위해서, 택한 자들을 복되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친히 사람되어 오시기까지, 또 하나님이 죽기까지, 또 다시 인간으로 인간을 입고 부활하시기까지 이렇게 하신, 이렇게 큰 공을 들인, 이렇게 큰 공을 들여 놓은 “택하신 자들이” 이렇게 큰 공을 들여 놓은 “택함을 입은 자들이” 무슨 공을 들였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사람되시기까지 하셨습니다.

죽기까지 하시고 부활까지 하셨고 영원히 창조주가 피조물을 입고 이렇게 천하게 영원히 살기까지 하시기로 작정하시고 부활하셨습니다.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러면 이 불의한 법관과 과부와 그 관계와 하나님과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구속받은 성도들과의 그 관계를 비교해 봐라 그말입니다. 비교해 봐라. 불의한 아주 무자비한 악한 법관과 아주 멸시 천대 받는 천한 이 과부와의 그 관계에도 열심히 부르짖는 것이 기어코라도 달성을 시키고야 말았다. 열심히 부르짖는 것은 이렇게 힘이 있다. 이런데 하물며 하나님과 택하신 자들의 그 관계가 어떠하냐?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당신이 피조물 되기까지 낮아지시고, 죽기까지 하시고, 영원히 또 피조물을 입고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창조주가 피조물의 천한 형상을 영원히 입고 부활하시기까지 하신 이 하나님께서, 이렇게 택한 자들의 구원과 그 행복을 위해서 당신의 소유와 몸과 생명을 다 기울여 구원하신 이 하나님께서 이렇게 택한 자들을 애끼시고 사랑해서 어짜든지 구원하고 행복되게 하려고 하시는 이 하나님께서 이런 사랑과 이런 은혜를 입고 있는 택한 자들이 밤낮 부르짖는데 어떻게 하겠느냐 하는 것을 말씀합니다.

이 택한 자들이 밤낮 부르짖을 때 이 부르짖음이 어떻게 되겠느냐? 불의한 법관과 과부 사이에도 쉬지 않는 계속 부르짖는 이것이 이렇게 능력이 있어서 억지로 해 주기 싫고 귀찮고 안 들으려고 이와같이 지금 강퍅을 부린 데도 이 열심히 부르짖는 것은 이 일을 달성하고야 말았다. 하물며 하나님과 택한 자들 사이에 열심히 부르짖는 이 부르짖는 이 호소는 그 호소의 능력이 어떻겠느냐 하는 것을 우리에게 비유로 가르쳐서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오랫 동안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너희들이 답답해 하고 있는 일을 풀어 주시리라. 너희들이 어려워하고 있는 일을 다 해결해 주시리라. 너희들에게 지금 그 기막히는 어려운 일, 낭파되는 일, 곤란스러운 일, 너희들에게 지금 불행스러운 일, 고통스러운 일 그런 것을 다 해결해 주시리라, 말씀했습니다. “주리시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하는 것은 예수님이 오실 때에 말이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가 가까울수록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세상에서 이렇게 하나님과 택한 자들의 이 사이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이 기도는, 이것은 한 마디도 빠짐이 없이 다 하나님이 원하시고 계시고 들어 주시기로 약속하셨고 이렇게 듣기를 원하시고 또 들어서 이루어 주시기를 원하시는 이 하나님이신데 이 불의한 재판관과 이 과부와 그 사이를 보라. 그 사이에도 열심히 쉬지 않는 호소가 이렇게 능력 있어 해결했거든 하물며 못 견디는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온갖 이 구속을 받은, 하나님의 모든 것을 다 받기로 약속하고 하나님 앞에 사랑을 받고 있는 이 성도들이 호소할 때에 얼마나 그것이 속히 이루어지고 빨리 해결이 되겠느냐? 그러나 내가 올 때에 세상에서 이 사실을 믿는 사람을 내가 보지 못할 것이다.

이것을 탄식했습니다 “인자가 올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이 말씀을 요새 늘 자꾸 이 말씀만 자꾸 읽습니다. 우리가 주님이 하신 이말씀을, 불의한 법관과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도 애낌이 없이 주시고 모든 것을 예정하시고 창조하시고 우리를 구원하려고 전체를 움직이시는 이 하나님 아버지와 불의한 법관과 한번 비교를 해 봅시다. 불의한 법관과 아버지와 얼마나 다릅니까? 또 그 과부와 대형 대행 대화친의 대속을 입은 우리 성도들과 비교할 때에 얼마나 다릅니까? 그러면 처음에 불의한 재판관과 과부의 그 관계와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와의 그 관계가 어떻게 다릅니까, 얼마나 다릅니까? 뭐 하늘과 땅 같은 그런 차이가 있지 않습니까? 차이가 있는데 불의한 재판관과 과부 사이에도 쉬지 않고 열심히 부르짖는 그 호소가 이렇게 능력이 있어서 목적 달성을 했거든 하물며 성도와 하나님 아버지 그 사이에 쉬지 않는 그 호소하는 기도라면 그 기도의 힘이 얼마나 있으며 그 기도가 얼마나 달성되고 속히 달성이 되겠느냐 하는 것을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예수님의 재림 때가 가까워지면 점점 믿는 사람은 많지마는 정말로 믿는 사람은 없다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보겠느냐” 아주 희귀한 것을 말합니다. 믿는 사람은 많지마는 정말로 믿는 사람은 희귀하게 된다.

이래서,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는 노아의 때와 같을 것이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노아 때에 많은 사람들이 믿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어.

그러나 껍데기는 하나님 믿는 것 같고 하나님 하나님 말씀 순종하는 거 같지마는 알맹이는 순종하지를 안해. 순종하는 사람은 노아의 여덟 식구밖에는 없었습니다.

다 하나님 믿는다고 해도 그저 유전으로, 습관이 있어서, 하나의 버릇으로, 하나의 형식으로, 하나의 습성으로 이렇게 하고 있지 정말로 하나님이 약속하신 이 약속을 ‘이는 틀림 없다. 이대로 된다.’ 하나님의 말씀하신 이 말씀을 요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는 사람은 내가 보겠느냐 말씀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은 그는 소망이 없는 사람이라 세상으로써 끝납니다. 그 다음에는 심판받아 가지고 가는 곳이 음부입니다. 그러나 택함을 입은 사람들은 다 하늘나라 가기는 다 갑니다. 하늘나라 가기는 다 가지마는 그 나라에 가서 영광은 심히 차이가 있습니다.

세상에서도 천한 사람은 사람이기 때문에 천합니다. 아무리 천한 사람이라도 개가 그만하면 굉장히 존귀할 것입니다. 아무리 인간 중에 제일 못난 인간이라도 개가 그만치 지능이 있고 말을 할 줄 안다면 그 개는 뭐 요새 돈으로 아마 수억만 원 갈 겁니다. 인간이기 때문에 천합니다.

인간 중에, 인간은 인간이지마는 인간 가운데에 기능이 없으면 몸에 기능이 없어서 살은 짚동같이 쪄 가지고 있지마는 이것은 앉지도 못하고 서지도 못하고 둥글둥글 구불고, 내가 어떤 사람 말 들으니까 살은 되게 쪘는데 못 일어나니까 아주 앞에서 두 손을 거머쥐고 장정이 버텨야 겨우 일어나 가지고 앉아 가지고 또 이래 한참 이래 흔들어야 좀 있다가, 또 못 견뎌 또 뒤로 누울라 하면 눕히면 사람이 힘 모자라면 꽝 그러며 뒤로 또 툭 부딪히고, 이래 가지고서 돌아 누울래야 돌아 눕지도 못하고 살은 찌고 이런데 그것은 몸의 기능입니다. 그거는 몸의 기능이오.

오늘 내가 저 산에서 일곱 살 먹는 조그맨한 꼬마가 일곱 살 먹는 게 하나 따라갔는데 그게 내가 올라가니까 앞에 가니까 뒤에서 내 뒤에서 밀어. ‘야 밀지 마라. 네까짓 게 뭐 날 민다고 하느냐? 그러면 네가 앞에 가 봐라.’ 앞에 보내 놓으니까 이게 뽈랑뽈랑 달아나는지? 저 천막에 있다가서 담요를 이렇게 하니까 담요를 제가 가지고 간다고, 담요를 똘똘 말아서 들고서 뭐 번개같이 달아납니다. 나는 그거 아마 체중으로 말하면 그 아이 그거 한 네 배나 될련지 세 배나 될련지 모르겠어. 이런데도 옳게 걸음을 못 걸어. 그것은 인제 몸의 기능이 없어 그래, 몸의 기능이.

또 마음의 기능은, 마음의 기능은 지혜가 없지, 계산할 수도 없지, 어학도 할 줄 모르지, 이 마음의 그 모든 실력 말이오. 온갖 실력. 그게 없어. 없으면 그거 뭐 쓰겠습니까? 다 같은 사람인데 한 사람은 하루 뭐 몇백만 원 줄라 해도 안 옵니다. 우리 나라에서 몇백만 원 줄라 해도 안 와. 하루 몇천만 원 줄라 해도 잘 안 옵니다.

그 나라에서 허락도 안 되고 잘 안 와. 만일 우리가 하루 일억씩 줘서 그 사람을 청하고 싶은 대로 다 청한다면 뭐 우리 나라에서 청할 사람 쌨습니다. 일억 아니라 십억을 줘도 안 옵니다. 그뭐 사람이 체중이 커서 그렇습니까? 머리에 기능이 있어 그래, 머리에 기능.

이렇게 우리가 인간 중에 인간으로 천한 것은 기능이 약하고 강하고 없는 데에서 존비 귀천이 다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택한 자면 하늘나라 가기는 가지마는 부활할 때에 기능이 조금 가지고 부활하는 사람 있고, 많이 가지고 부활하는 사람 있고, 여러가지 구비해 가지고 부활하는 사람 있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그때 부활할 때에 기능을 가지고 부활한 것만치 그 사람은 영광스러워지고 존귀해집니다.

이러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어떻게 하든지 예수님이 부활하실 때의 부활의 능력과 같이 자기도 그런 능력 있는 부활을 하려고서 일생 동안 그는 결혼도 안 하고 달음질 했었습니다.

우리는 이 영이 하늘나라 가는 것은 다 택한 자면 가지마는 몸에 기능 이 기능이 참 영원한 영광이요 존귀요 권세요 실력이요 가치인데 이것을 가리켜서 건설구원이라, 성화구원이라, 행위구원이라, 기능구원이라 이렇게 말하는 것인데 이 구원을 이루는 이 일이 우리에게는 제일 가치 있는 일입니다. 이 기능 구원을 이루는 데에 필요한 것, 어떨 때는 돈도 필요하고 또 이 세상에서 인간도 필요하고 뭐 필요한 것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행복된 행복이 있고 무궁세계에 행복된 행복이 있고, 이 세상에 곤궁한 게 있고 무궁세계에 곤궁한 게 있으니까 어짜든지 우리가 곤궁한 것 이런 것은 면해야 되겠고 우리에게 필요하고 행복스러운 것은 우리가 다 갖추어 가져야 되겠습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할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어.

자, 이 세상에는 마귀의 세상이라 죄악만 가득히 차고 있으니까 우리가 정직하게 깨끗하게 살라 하니까 살 도리가 없지, 또 이렇게 깨끗하게 살라 하니 악한 세상이 같이 죄 짓고 이 세상 풍속대로 인간 생각대로 살도록 하려고 우리를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게 하는 일들이 많지, 또 우리가 몸에도 여러가지 어려움이 많지, 경제적으로도 어려움이 많지, 사건적으로도 어려움이 많지, 이 어려움이 많은데 이 어려움을 우리가 어떻게 할 것입니까? 이 어려움을 자기 힘으로 해결해 보려고 하는 사람은 다 헛일하고 말았습니다.

불택자들은 으례히, 해결하려고 해도 해결을 못 합니다. 해결해 봤자 홍포 입은 부자와 같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 있다가 죽으면 그만 불쌍하게 가련하게 돼 버리는 그것뿐이고 믿는 사람은 금생과 내세 영원 무궁토록 해결할 수 있는 길은 있습니다.

해결할 수 있는 길은 있는데 우리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으니까 하나님께서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아라 만날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열릴 것이니라” 이렇게 “무엇이든지 너희들에게 기쁜 일이 있거든 찬송하고 어려운 일이 있거든 기도해라” 하나님이 기도하면 다 들어 주신다고, 구하는 자마다 얻는다고 이렇게 말씀하시고, 오늘밤에 봉독한 이 말씀도 “보라 이 불의한 이 법관과 이 과부와 그 두 사이는, 이것은 절대로 이 합의가 될 리가 없는 것이고 이 과부의 소원을 이 불의한 이 뚝뚝한 이것 불량하고 악한 교만한 이 법관이 들어 줄 리가 없다. 없지마는 열심히 부르짖는 그것에는 못 견뎌서 들어 줬다.” 택한 자들과 하나님과의 이 관계는, 그 관계야 어떤 관계냐? 하나님은 선하신 하나님이시요 주고 싶어서 못 견디시는 하나님이요 또 우리는 얼마든지 달라고 하면 받을 수 있는 우리들이요, 이런 관계인데 우리들이 그 어려운 과부와 법관 사이도 열심이 해결했는데, “너희들이 이 열심을 품고 계속해서 이렇게 무엇이든지, 악한 거 죄되는 것 이런 것은 안 되지마는 죄되지 않는 것은 뭐이든지 너희들이 이렇게 쉬지 않고 기도만 하면 하나님이 다 속히 들어 주실 터인데 이 사실을 믿고 기도하는 자를 내가 보겠느냐?” 주님이 재림하실 때가 가까와 올수록 이렇게 믿는 자가 없습니다.

전부 외식자요. 껍데기로 외식만 하지 참 믿는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세상에서, 안 믿는 사람들은 말할 것 없고 그것은 소망이 없는 사람이요 하나님도 없는 사람이요, 그러면 믿는 사람 중에 누가 제일 부자입니까? 믿는 사람 중에 누가 제일 부자입니까? 믿는 사람 중에 누가 제일 실력 있는 사람입니까? 믿는 사람 중에 누가 제일 행복스러운 사람입니까? 믿는 사람 중에 누가 제일 구비한 사람입니까? 믿는 사람 가운데에 제일 영육이 행복되고 금생 내세가 전부가 행복되어서 존귀한 사람이 누굽니까? 제일 존귀하고, 행복스럽고, 모든 것이 풍부하고, 풍성하고, 조금도 부족함이 없고, 자기에게는 뭐 여게가 좀 근지럽다 하는 그런 것도 없이 전부가 다 온전하고 깨끗해서 행복스러울 사람이 누굽니까? 이 사람이 누굽니까? 이 사람이 누구겠습니까? 이 사람이 이 과부의 호소와 같은 이 호소를 가진 자입니다.

불의한 재판관과 과부에 대한 비유를 주님이 하신 이 비유를 듣고 ‘하나님 아버지와 나 사이에는 불의한 법관과 과부와의 그 사이 요량하면 천천만 배도 더 된다. 천천만 배도 더 존귀하다. 이러니까 내가 이 과부와 같이 계속 내 소원을 호소한다면, 과부의 성공한 천천만 배도 더 성공하고 더 소원을 달성할 수 있다.

또 말씀하시기를 오래 참으시겠느냐 속히 갚아 주시리라 이래 말씀했으니 주님이 속히 갚아 주실 것이다.’ 하고 이 사실을 믿고 요렇게 호소하는 요 사람이 기독자로서 제일 구비하고 행복스러운 사람이 되겠는데, 왜? 그렇게 호소하면 하나님이 다 들어 주시니까 모든 것이 구비하고 완전한 자 될 것 아니겠습니까? 이런데 이렇게, 하나님은 말씀 한 마디도 어누리도 안 하고 거게서 과장도 안 했고 거짓말도 없고 요렇게 정확하게 요렇게 말씀하시지마는 이 사실을 믿는 자들을 내가 보겠느냐? 인자가 올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면서 탄식했습니다.

우리가 요걸 좀 생각해 봅시다.

이렇게 참 하나님의 독생자가 피흘려 구속해서 이렇게 대속하셔서 만반의 준비를 다 해 놨는데 우리가 믿기만 하면 되는데 안 믿는다 그거요.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이것 얼마나 우리가 참, 아이들 얘기로 부자 망방이, 부자 방망이가 있어서 방망이로 뚜드랑 땅 그라며 돈 나오라며 뚜드리면 돈이 나오고, 또 뭐 뭣이 원수 갚을라고 원수를 갚아 달라고 뚜드랑 땅 하면 원수 갚아 주고 이렇게 부자 방망이인가 소원 성취 방망이가 있다 하는 그런 걸 어릴 때 우리가 얘기를 들었는데 이것은 참 우리가 하나님과 계약된 이 기도는 소원 성취 이 방방이요, 소원 성취 방망이. 그만 요대로만 믿고만 기도하면 다 되는데 믿지 않기 때문에 그래.

언제 여게 미국에 척 스미스 목사라고 그 목사님이 설교한 테이프를 가져와서 내가 한번 들었는데, 여기 교역자들하고 같이 들었는데 그 목사님 지금 미국에서 어떻게 부흥을 일으키고 있는지 그분이 시작한 교파가, 혼자 시작했소. 혼자 시작했는데  거게서 은혜받고 또 교회 세우고 교회 세워서 지금 교회가 아주 큰 교회가 뭐 수십 교회가 돼서 큰 교회가 돼서 굉장히 지금 부흥돼서 도무지 뭐 사람은 자꾸 늘어나가는데 앉을 자리가 없어서 모두 다 예배당 지을 일이 문제라고서 그런 말 합디다. 하는데, 그분이 말해. 자기가 어데를 가는데 어떤 사람이 병신이 와 가지고서, 뭐 앉은뱅이라더나 무슨 병이라든가 무슨 병인지 그것은 내가 잊어버렸습니다. 그 병신이 와 가지고 ‘아이구, 스미스 목사님 아닙니까?’ `예, 그렇습니다.' ‘내가 이렇게 병이 들어서 죽을 지경인데 나를 위해서 기도 좀 한번 해 주십시오.’ 그 목사님은 평생 한번도 기도하면 병낫는다 하는 그런 소리는 믿지를 안했대요.

그렇게 부흥을 하고서 이러지마는 믿으면 기적이 나와서 병낫는다 그것은 믿지를 못했어. 믿지 안하고 ‘그것은 옛날 그렇지 지금도 그런가?’ 제가 고신에 다닐 때 고신에서는 ‘지금은 기적이 없다. 기적 있는 그것은 다 잘못된 것이지 기적은 없다.’ 이래서 나는 그만 그때 그걸 은혜를 많이 뺏겨버렸어. 나는 집사로 지금 시골에 있을 때에 기도해 가지고 앉은뱅이를 일으킨 것도 있었고 또 문둥이가 깨끗해진 것도 있었고 오만 병이 낫고 이랬었는데 고신에 와 보니까 고려신학교 오니까 ‘그것은 다 잡탱이 신앙이지 그것 올바른 신앙 아니라’ 이래 말하는통에 그만 그거 부끄러워서, 어데 기적이 나타났다 할까봐 부끄러워서 기도를 안 해 줍니다. 기도를 안 해 줘요. 기도해 낫으면 또 아무것이 기도해 가지고 나았다 하면 이제 그 무슨 똑 죄 지은 것 모양으로 수치스러울 것이라서 안 했다 그거요. 지금 깨닫고 보니까 그때 왕창 속았어, 참 아이들 말로. 왕창 마귀에게 속아버렸다 말이오. 그게 아니라.

스미스 목사도 이분이 늘 안 믿었는데 그 환자가 그러는데 그때 자기에게 이상하게도 ‘어데 병은 병원에서 치료를 하든지 하지 병이 무슨 하나님께 기도해 가지고 낫는다고 그러고 있겠느냐?’ 내치 그래 가르쳤는데, 그 환자가 그럴 때에 그 마음에 그렇더래요. ‘이 환자 위해서 기도하면 낫겠다’ 그렇게 믿음이 생겨지더래요. `낫겠다’ 낫겠다 하는 그 믿음이 생겨지더랍니다.

‘기도하면 틀림없이 낫는다' 그 믿음이 생겨져. 그 믿음을 평생 처음 봤어.

그 믿음이 생겨져서 그래 ‘그러면 기도합시다’ 길을 가다가서 길가에서 길가에 서 가지고서 기도하는데 기도하고 나니까 당장 싹 나아버렸어. 처음 봤다 그래.

‘그분도 경험이 있구나.’

우리가, 여러분들도 경험이 많을 것입니다. 그래서 요새 늘 이것 가르치고 있는 중에 세 가지를 내가 가르쳤어요, 세 가지를. 뭐 가르쳤느냐? 기도는 제일 중요한 것이 믿고 바라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기도에 제일 중요한 것은 믿는 것과 바라보는 것이다. 소망하는 것.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어 주신다’ 믿는 것, ‘반드시 내가 소원하는 것이 이루어진다’ 믿음과 소망, 믿음과 소망이 제일 중요하다.

척 스미스 목사님도 그때 믿음과 소망이 생겨졌어. ‘내가 기도하면 하나님이 들어 주신다’ 요렇게 믿어지기 때문에 기도해 보니까 딱 낫거든. 이것은 뭐 도무지 나을 수 없는 병인데 딱 낫는다 말이오. 그래 가지고 이제 하나님을 믿고 소망하고 기도하면 된다 하는 것을 그때부터는 장담을 해 가지고서 많이 외치고 자기가 또 그렇게 기도도 하고 그래 한다 합디다.

그런데 우리 경험에, 이래 가다가 ‘아무것이 그이를 위해서 기도해야 되겠다’ 기도해야 되겠다 하는 그런 마음이 안 생깁디까? ‘누구를 위해서 기도해야 되겠다. 무슨 사건을 위해 기도해야 되겠다. 내게 이 일에 대해서 기도해야 되겠다.’ 기도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나고 기도하면 또 하나님이 들어 주실 걸로 믿어지고, 어째 우연히 기도해야 되겠다는 생각나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들어 주실 거라 믿어지고 믿음과 소망이 일치가 되고 내가 딱 기도한다. 기도하면 당장 이루어져.

그것을 하도 여러번 많이 겪어보니까 인제 그게 뭐이냐? 어느 때든지 믿고 바라고 기도하면 되는데, 믿고 바라고 기도하면 되는데 껍데기로 믿는다 하지 마음이 딴데 흩어지고 이래 놓으니까 믿음이 안 되는 거라. 믿음이 안 되니 그래.

믿음과 소망 이 두 가지는 뭣하는 거라 했습니까? 믿음과 소망은 뭣하는 거라 했습니까? 하나님을 상대하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여기 불의한 재판관에게 과부가 가서 말할 때에 과부가 불의한 재판관은 저 구덕산에 있는데 여기 지금 뭐 자갈치가? 자갈치 가 가지고서 호소하면 그 법관이, 재판관이 듣겠습니까? 재판관은 지금 서울 있는데 그 사람이 부산서 저 부산 대신동 어떤 집모퉁이서 고함을 지르면 들립니까? 이것은 꼭 불의한 재판관에 가 가지고 불의한 재판관을 딱 대해 가지고서 하니까 불의한 재판관 귀에 들렸어. 불의한 재판관의 귀에 들리니까 귀찮아서 ‘이것은 안 들어 주면 이거 내가 괴로와 못 견디겠다.’ 얼마나 귀에 쏙쏙 들어오고 자꾸 불의한 재판관을 보고 말했기 때문에 됐다 그거요.

이러니까 요것은 뭘 가르칩니까? 우리의 기도에 제일 중요한 것은 우리가 기도를 사람 보고 기도합니까? 왕을 보고 기도합니까? 불교 모양으로 나무둥치나 흙덩어리나 돌덩어리를 보고 기도합니까? 누구를 보고 기도합니까? 누구를 보고 기도합니까? 살아 계시는 하나님,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그분이 왜 보이지 않느냐? 완전이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보이면 벌써 형체가 있기 때문에 완전이 아니라. 완전은 보일 수 없는 거라. 이 하나님을 딱 상대해서 상대해 가지고 기도해야 되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상대해 가지고 기도하는 것.

그러면 하나님을 상대할려 하면 하나님이 눈에 보여야 뭐 볼끈 붙잡지? 볼끈 붙잡고 할라 해도 하나님이 손에 붙잡구로 붙들립니까 눈에 보입니까? 하나님을 우리가 꽉 붙드는 방편은 뭣이 붙드는 방편입니까? 뭣이 붙드는 방편입니까? 왜? 고함을 질러요. 왜, 뭐 부끄러워? 뭣이 붙드는 방편입니까? 믿음과 소망이라.

당신을 믿어. ‘주님은 나에게 이런 계약하지 안했습니까? 전능자가 아닙니까? 전지자가 아닙니까? 하나님이 아니십니까? 거짓말 하지 않는 하나님 아니십니까? 하나님께서 기도하면 다 들어서 구하면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지 안했습니까?’ 이제 하나님의 모든 계약과 약속과 교훈과 하나님의 자체의 지극히 크심을 내가 믿고, 당신이 약속했기 때문에 당신을 소망하고 바라보고 ‘내가 구하면 된다’ 바라보고, 믿고 바라볼 때에는 하나님은 떠나지 못합니다. 우리가 믿을 때에 바라볼 때에 당신은 내몰라라 하지 못해요. 그런 하나님이 아니시라.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고 ‘당신이 해 주시면 해 주실 수 있다’ 이것도 할 수 있고, 내 힘으로도 할 수 있고, 누구의 힘으로도 할 수 있고, 배경으로도 할 수 있고, 또 이것 뭐 세상에 내 배경 인물도 할 수 있고, 정권도 할 수 있고, 뭣도 할 수 있다 하는 그 할 수 있는 것이 많은 것은 소망하는 것이 많지요. 믿는 것도 많지요. 하나님 한 분만 믿고 한 분만 바라볼 때에는 그분이 안 해 주고 가지를 합니다. 우리를 버리고 못 가시요. 믿음과 소망으로 하나님을 볼끈 붙잡고, 믿음과 소망으로 하나님을 볼끈 붙잡고,

둘째 실력은 뭐라고 했습니까? 둘째 실력은 뭐입니까? 또 다 잊어버렸나? 둘째 실력은 뭐이요? 자, 큰 소리로 말해 봐. 둘째 실력은 뭐입니까? 내 마음과 몸을 다하는 것. 마음을 다해요. 마음과 몸을 다해요. 다하는 것. 마음과 몸을 다하는 것. 이것이 둘째 실력입니다.

마음을 나누지 말아요. 내 마음이, 아무리 손으로는 일을 합니다. 손으로는 일하고 뭐 이것 손으로 일하니까 마음이 안 갑니까, 아무래도? 손으로 일하고 마음이 가지마는 속으로 마음은 하나님에게 지금 기도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그것도,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 한 가지만 해야 됩니까, 열 가지만 해야 됩니까, 백 가지 해야 됩니까, 천 가지라도 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몇 가지든지 기도할 수 있습니까, 한 가지만 해야 됩니까? 몇 가지든지 기도할 수 있습니까 한 가지만 해야 됩니까? 또 모르네. 천 가지라도 할 수 있고 만 가지라도 할 수 있습니다. 만 가지라도 할 수 있고 천 가지라도 할 수 있어요. 몇 가지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을 열 쪼가리 천 쪼가리로 나눠 가지고 하나님에게 구할 수 있습니까? 안 됩니다. 우리 마음은 똘똘 뭉쳐서 하나 만들어야 됩니다. 똘똘 뭉쳐서 한 마음을 만들어 가지고 한 마음 만들어 가지고 만 가지도 구할 수 있어요. 똘똘 뭉쳐서 한 마음된 이 한 마음을 가지고 쪼개지 말고 똘똘 뭉쳐서 한 마음된 요 마음 가지고 만 가지도 구할 수 있어. 똘똘 뭉친 요 마음 가지고 요것도 구하고 조것도 구하고 조것도 구하고 얼마든지 구할 수 있어.

그러나 구하는 것마다 내 마음이 똘똘 뭉쳐서 하나가 돼야 그 구하는 것을 하나님이 들어 주시지 내 마음을 나눠 가지고서 쪼갱이를 가지고서 이와같이 하는 것은 하나님이 듣지를 안하십니다. 그것은 가르치기가 좀 힘이 듭니다.

하나님이 들을 수가 없습니다.

마음이 만일 다섯 쪼갱이 났습니다. 하나님께 구하고, 또 사람에게 구하고, 또 과학에 구하고, 자기 힘에 구하고, 또 무슨 자기 자원이나 그 모든 재물이나 그 힘으로 하려고 구하고, 그러면 자기 소원하는 것 하나 있는데 이 다섯 가지가 다 할 수 있어. 다섯 가지가 다 할 수 있다고 하면 하나님에게 오분지 일을 가지고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오분지 사는 지금 딴게 차지했습니다. 이러면 하나님이 이루어 줄 수가 없어요.

이루어 주시면 마귀란 놈은 떡 와서, 하나님이 이루어 주셨지마는 마귀란 놈이 얼른 와서 ‘이게 이루어 줬다 이게 이루어 줬다 이게 이루어 줬다.’ 이러니까 이루어 주고 난 다음에는 결국은 영광은 딴게 따먹고 다른 게 이루어 줬다 하기 때문에, 그러면 하나님이 이루어 주셨는데 ‘이것은 사람이 이루었다. 내 배경이 되는 아무 권세 있는 그분이 이루었다.’ 그러면 하나님이 이루어 줬다 하면, 이루어 주셨는데 그 사람을 마귀가 미혹해 가지고서 다른 사람이 이루어 주었다고서 그렇게 그 사람에게 오해해서 깨닫도록 하면 그 사람은 점점 사람의 사람이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사람이 되겠습니까? 사람의 사람이 됩니다. 그럴 것 아니겠소? 사람의 사람이 되니까 하나님은 그걸 이루어 줘야 됩니까 안 이루어 줘야 됩니까? 이루어 줄 수가 없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너희들이 두 마음을 품어 정함이 없는 자로다. 마치 바다 물결이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것과 같이 두 마음을 품어 정한 데가 없는 인간이니, 네 마음이니 받을 수가 없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마음을 나누지 안하고 한테 집중시키는 이것이 둘째로 중요합니다.

둘째로 중요해요. 이것을 암만 말해도 사람들이 믿지를 안해. 말하니까 그것 속에 마음에 박혀 듣지도 안하거든. 자기가 이 교훈이 자기 속에 먹혀 들어가서 자기가 이 교훈의 사람이 되지 않는다 그말이오.

마음을 나누지 말고 마음을 한 뭉텅이로 묶어 가지고서 하나님께 구하면 한 가지뿐 아니라 열 가지고 백 가지고 천 가지고 다 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것도 구할 때에 하나님께만 제 마음을 다 똘똘 뭉쳐 가지고 그것 구하고 저것도 구하고 자꾸 그러니까 그 마음을 전부 그래 가지고 하나님에게 구했으니까 하나님이 이루어 주시면 그 사람이 다른 데서 자기에게 줬다는 그런 생각을 가지겠소 안 가지겠소? 마음을 다 뭉쳐 가지고 하나님께만 구했기 때문에 다른 것이 해 줬다는 그런 영광을 딴데 돌리지 안하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구원이 이루어질 것이니까 이루어 주십니다.

그러면 우리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구할 때에 하나님이 그러면, 하나님이 직접 공중에서 뭘 뚝 떨어뜨려 줍니까 하나님이 주실 때에는 공중에서 뚝 떨어뜨려 주십니까 뭘로 주십니까? 하나님이 주실 때에는 사람을 통해 주실 수도 있고, 짐승을 통해 주실 수도 있고, 또 이 모든 사회를 통해 주실 수도 있고, 분위기를 통해 주실 수도 있고, 공기를 통해 주실 수도 있고, 이것 뭐 자연을 통해 주실 수도 있고 하나님이 그 모든 것을 통해서 당신이 우리에게 주십니다. 여러가지를 통해 주십니다.

이러니까 나는 하나님 한 분에게 구할 때에는 하나님께서 이걸 통해서 주실 때도 있고 저걸 통해서 주실 때도 있는데 주실 때에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 어떨 때에는 사람을 통해서 주셨고, 누구를 통해 준지도 모르고 자기가, 그것 이루어졌고, 이럴 때에 뭘 통해 주시든지, ‘내가 하나님께 기도했더니만 하나님께서 이것을 통해서 주셨다.’ 이러니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요 하나님이 내게 주실 때에 은혜의 기관으로 도구로 사용한 것은 사람일 수도 있고 자연일 수도 있고 과학일 수도 있으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은혜를 주실 때에 사용하셔서 도구로 사용하셔 가지고 주셨으니까, 사용해 주셨으니까 그것은 은혜 기관으로 내가 귀중히 여깁니다.

소중히 여기고 귀중히 여겨서 대접을 합니다.

귀중히 여겨 대접하지마는 외나 근본은 하나님이 주셨기 때문에 근본 주신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이 주신 거니 하나님에게 감사하고 이러니까 모든 걸 하나님에게 이렇게 구하면 하나님께서 이것 저것을 통해서 당신이 주실 것을 주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에게 기도할 때에 마음을 나누어 하지 말고 전부 마음을 똘똘 뭉쳐서 다 기울여서 하나님께 기도하라 하는 요것이 둘째로 중요합니다. 여게도 구하고 저게도 구하고 그러면 헛일입니다.

하나님 한 분이, 혹 모자랄 때는 사람 같으면 그렇겠소. ‘야, 나한테만 말하지 말고 나 혼자 하는 것보다도 아무것이 그 사람이 좀 협력을 했으면 좋을 터이니까 네가 나한테만 하지 말고 그 사람한테도 가 말해라. 그러면 그 사람에게도 말하고 아무것이한테도 말해라. 그러면 우리 서이 합해 가지고서 이루면 잘되지 않겠는가?’ 사람은 그렇지마는 하나님이 혼자는 안 되니까 누구하고 협동을 해야 된다는 그게 협동해야 될 그런 것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어. 하나님은 없어.

없는데 하나님은 그걸 싫어하시요. 왜 싫어하느냐? 하나님이 당신이 안 하시면 털끝만큼도 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이 믿음은 하나 가지고 안 돼.

이 믿음을 세밀하게 이래 가르치면 세밀하게 실컷 가르쳐 놓으면 엉뚱이같이 ‘그렇게 뭐 까다롭게 그런 게 뭐 있는가, 믿으면 되지.’ 이 등신 같은 것들이.

세밀히 가르쳐서 실상으로 할려 하면 그와 같이 배우기가 어려워도 그와같이 배워 가지고 해야 되는데 쉽게만 말하니까, 쉽게만 말하니까 쉬운 게 좋다 해 가지고 그렇게 말을 해 가지고서 하기 때문에 믿음 실컷 가르쳐 만들어 놓으면 파삭 망그라 버렸습니다. 요게 다 목사들이라.

하나님은 크나 작으나 하나님이 하지 안하는 일이 없습니다. 개미 한 마리가 수염을 요리 조리 흔드는 것도 하나님이 다 주권적으로 그것을 다 역사하셔 가지고 하나님의 뜻대로 모든 것을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합시다.주권! 개별 섭리!주권 개별 섭리!주권 개별 섭리!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크나 작으나 모든 걸 섭리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안 해 주시면 안 됩니다. 인간이 한 것도 하나님이 다 그에게 하셔서 마치 쥐새끼가 열 대여섯 마리도 낳는데 쥐 그놈이 새끼를 만든 게 아니라 하나님이 쥐를 통해서 새끼를 만들었어. 제가 만든 것 아니라. 제까짓 게 뭘 알겠소?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모든 것을 만드셨고 모든 것을 섭리해 가지고서 이와같이 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에게 구하면 이거 저거 다 주시고, 또 우리가 구할 때는, 하나님이 주실 때는 이것 저것 여러가지를 이용해 가지고 우리에게 주시지마는 우리가 구할 때는 하나님 한 분이  주실 수 있습니다.

한 분에게만 구하고 ‘한 분이 주시고자 할 때에 한 분이 이런 것 저런 걸 통해 가지고 우리에게 주신다’ 하는 그걸 믿고 구할 때는 한 분에게만 내 마음을 다 기울여서 구하고, 구하면 하나님이 주실 때는 여러 수백 가지를 통해서 나에게 주시는 것이니까 내가 구한 것이 됐으면 하나님이 그를 통해서 주시는 것인 줄 알고 먼저 하나님에게 감사하고 영광을 돌리고 또 그 은혜의 기관으로 삼은 건 내가 고맙게 소중하게 생각하고 요렇게 이 살아 나가면 우리가 모든 것이 형통해지는데 이렇게 기도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에게 마음을 집중시키지 못하는통에 이 기도가 헛일입니다. “내가 올 때 믿음을 보겠느냐?” 이거 이 집중 기도라야 되는데 마음을 집중시키는 이 일을 하지 안하고 그저 ‘구하라, 하나님께 기도하면 되지 뭐 마음에 집중이니 뭐이니 그런 소리 해?’ 이 마음을 집중시킬라고서 혀가 닳도록까지 해 가지고서 여러 해를 실컷 가르쳐 가지고서 집중 기도해야 된다 이라면 이 엉뚱이같은 망령된 이 속화자들이 떡 와 가지고서 ‘하나님께 구하면 되지 뭐 집중 기도니 마음을 집중하니 뭐이니 그런 걸 가지고, 마음을 다 그래 마음을 다해서 기도하면 되지.’ 이러니까 쉽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전부 기도가 다 헛일되고 만다 말이오.

이러니까, 첫째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딱 만나 가지고 기도하는 이것 중요해요.

이게 없으면 안 돼요. 이것 없으면 안 됩니다.

둘째로는 우리 마음을 똘똘 뭉쳐서 한 뭉텅이를 만들어 가지고 하나도 마음을 나누지 말고 가르지 말고 나누지 말고 마음이 똘똘 뭉쳐서 하나가 돼 가지고 하나님께 구해야 되지 그렇지 안하면 암만 기도해야 평생 기도해야 헛일입니다.

요것을 알아야 됩니다.

셋째로 중요한 것은 뭣이냐? 하나님 만나 가지고 마음을 한테 집중시켜서 하나로 만들어 가지고서 기도하는데, 하나로 만드는 게 그렇게 쉬운 줄 압니까? 기도하면서도, 기도하면서도 나는 주여 주여 기도하는데 내 마음은 지금 대신동 갔다가, 저 극장에 갔다가, 내 마음은 또 시장에 갔다가, 뉘 돈 줄 것, 또 돈 받을 것, 어데 동무, 이 마음 이놈은 기도하는데 마음은 여러 수십 군데 돌아다닙니다.

그런 걸 체험 못 합니까? 찬송하는데 벌써 마음은 양사방으로 흩어져 있습니다.

안 된다 그거요. 마음을 한테 똘똘 뭉쳐 가지고 기도하는 것 이것 쉬운 게 아니라. 오래 동안 공을 들이고 들여야 됩니다.

들여 가지고서 마음을 똘똘 뭉쳐 하나님께 기도하지. 하나님 만나 기도하지.

기도하면 다 돼. 기도하면 다 돼.

되는데 그 기도한 것이 언제든지 다 이루어 주시는데 때가 있어. 지금 이루어 주면 나쁠 것도 있고 좋은 때도 있고, 자식에게 돈을 주는 것도 이놈이 한창 바람 들어 가지고 야단지길 때에 재산 넘겨 주면 다 써 버리고 헛일이라. 바람 피우다가 바람이 그치고 배를 쫄쫄 곯고 돈 귀한 줄 알 때에 넘겨 주면 그걸 재산을 귀하게 쓸 수 있다 말이오. 그렇지 않습니까? 사람도 말이지요. 그 뭣이든지, 뭣이든지 그 사람이 그것 줄 때 그것 감당할 수 있을 때에 줘야 되지 감당 못 할 때 주면 다 헛일이라. 이러니까 우리가 기도하는 것 다 마음을 합하고 하나님을 상대해서 기도하면 다 들어 주시는데 즉시 이루어지는 것도 있고 더디 이루어지는 것도 있으니 이루어 주시는 것은 우리에게 이루어 주시면 가장 좋을 시기를 만나 가지고 이루어 주신다 그말이오.

자, 셋째로 실력은 뭐입니까? 계속.

그러면, 그러니까 우리 믿는 사람은 제일 성공이 뭐이냐 하면 항상 자나 깨나 하나님만 바라봐.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만 믿고 바라보는 요걸 요동치 안해.

눈은 하나님만 딱 뜨고 하나님만 딱 바라보고, 눈을 감아도 하나님, 길을 가도 하나님, 말하면서도 하나님, 항상 하나님을 상대하고, 이러기 때문에 우리를 하나님의 신부라 그말은 하나님만 바라본다 그말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배우라. 그러기에 배우자라.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만 바라봐. 밤낮으로 하나님만 바라보고, 둘째로는 우리 마음을 똘똘 뭉쳐서 우리의 소원을 하나님께 구하고, 셋째로는 이것을 이 시간 하고 난 다음에 좀 있으니까, 처음에는 또 간절히 하나님께 모여 가지고 기도하다가 이제는 저 춤 추는 데 가 가지고 마음 그리 다 가 버렸습니다. 마음 그리 솔빡 다 가 버렸어. 저리 다 가고 저리 가고 이라니까 그게 창기라. 이러니까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상대할 수가 없고 들어 줄 수가 없어.

여러분들, 기독자로서 제일 능력 있는 사람이 누굽니까? 기도에 응답 받는 사람입니다. 기도에 권위가 있는 사람이라. 제일 잘난 사람이 누굽니까? 기도에 권위가 있는 사람이라. 제일 영육이 행복스럽고 성공스러운 사람이 누굽니까? 기도에 권위가 있는 사람이라. 기도해 가지고 기도한 대로 다 들어 주시면 그 사람 소원 성취 다 되니까 못 할 게 뭐 있습니까? 자, 기도에 대한 실력이 몇 가지입니까, 손가락으로? 녜, 세 가지. 요것 잃지 마십시오. 암만 말해도, 말했지마는 오늘 요것 아마 한 시간 가진 사람도 없을 거라. 오늘 이 세 가지를 생각해서 하루 종일 가진 사람 손 한번 들어 봐요. 요 세 가지 하루 종일 가진 손 한번 들어 봐요. 한 시간 가진 사람 손 들어 봐요. 한 시간 이상 가진 사람 손 들어 봐요, 한 시간 이상? 한 시간 이상 가진 사람. 아, 너 한 시간 가졌구나. 한 시간 이상 가진 사람 저 없을 거라.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헛일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것을 하나님이 들어 주실 수가 없고 우리는 기도에 응답받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일을 하나님이 해 주셔야 되는데 하나님이 해 주시려면 우리가 기도해야 해야 해 주실 터인데 우리가 기도를 안 하니 안 된다 말이오.

기도 한다 하지마는 기도 이 시간에 하고 그만 또 저 모두 다, 그 모든 창기 모양으로 다 이 세상하고 또 음행해 버리고 하나님께 또 마음 있으면 찾아오고, 이러니까 뭣이 됩니까? 어짜든지 요것 계속합니다.

하나님만 믿고 바라보는 것. 하나님만 믿고 바라보는 것 요게 제일 실력.

둘째로는 내 마음을 똘똘 뭉쳐서 하나님에게만 기울일 것. 기울여 가지고 돈이 필요하면 돈 달라 하고, 권세 필요하면 권세 필요하면 권세 달라 하고, 지위 필요하면 지위 달라 하고, 뭐 건강 필요하면 건강 달라 하고 뭐이든지 달라 해요.

사업이 성공 필요하거든 사업 성공 달라 하고, 다 돼요. 다 줄 수 있어요.

그까짓 것은, 땅의 것은 뭐 구하는 대로 다 돼. 저도 예수 믿은 지 삼 년 만에 땅에 거는 구해 가지고 구하는 대로 다 돼요. 땅의 것은 구하는 대로 다 돼. 이것 내가 개명 있다 왔으니까 개명 사람을 여기 많이 왔는데, 뭐.

땅의 것은 그까짓 것은 구한 데는 삼 년 되니까 다 돼, 뭐. 나중에 가서는 그까짓 것 구하지 안해요. ‘주여, 이것은 내가 필요 없습니다. 성령의 충만함과 진리의 충만함과 주님의 피공로에 충만함을 주시옵소서.’ 인제 그것만 구하지 그런 것은 뭐 구할 필요도 없어.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만 믿고 바라볼 것. 둘째로는 내 마음을 똘똘 뭉쳐서 하나님에게, 뭐이든지 달라 해요. 조아요. 달라 해요. 구하는 거를 좋아해요, 하나님께서.

이러는데 구하는 것을 계속해라. 구하는 요 마음을 계속해라. 계속하는 데 요게 능력이 있어. 계속하는 데서. 계속을 언제까지 합니까? 이루어질 때까지 계속해.

이루어질 때까지. 저 먼저, 기도는 언제까지 해요? 기도는 언제까지? 이루어질 때까지 기도하라고 가르치고 했어. 그거 몇 가지에 그게 쓰였지? 오늘 요 세 가지. 요거 잃지 말아요. 요 잊어버리지 말아요. 요 세상에는 마구 마귀들이 꽉 찼습니다. 요렇게 예수님을 바로 믿도록 요렇게 까다롭지, 까다롭게 예수를 바로 믿도록 까다로운 요게 까다로운 게 아니라 바로 믿을라 하니까 힘이 들고 거기서 세밀히 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이런데 요 까다로운 요걸 말해 놓으면 백지 별스럽게 한다 해 가지고 확 뭉케버려. 실컷 가르쳐 놓으면 가 가지고 뭉케버리고 헛일하고 만다 말이오. 그래 가지고 여러분들이 헛일이라.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주일학교 광고입니다.

이번 주일 십일월 팔일에는 종전과 같이 주일학교 오전예배는 아홉시에 시작합니다. 오전 예배는 아홉시에 시작합니다. 그런데 요번 주일날 오전에 광고하고, 광고하고 월요일날부터는, 주일날 오전 광고하고 월요일날부터는 전부 반 시간씩을 당겨서 합니다. 왜? 반 시간씩 늦추니까 주일학교도 줄고 다 줍니다.

게을해지거든. 이러니까 하나님이 노여워하셔. 그래 가지고서 다시 우리가 고치기로 했습니다.

이러니까 다음 주일은 종전같이 아홉시에 하지마는 다음 주일 오전예배 때에 삼십 분 당기기로 광고하고 난 다음 그 다음 월요일부터 새벽기도 주일 오전 오후  수요일 금요일 전부 반 시간씩 당겨서 그렇게 합니다.

반사들은공과를 다 외우도록 하시고 또 하루 삼십 분 기도 꼭 계속합시다.

새벽기도 빠지지 말고 나와요. 새벽기도 어떻게 게을한지 안 나와. 이것 시간이 늦거든. 그 보니까 다섯시라 하니까, 다섯시라 하니까 잠이 깼다가 ‘다섯시니까 또 좀 더 자야 되겠다’ 이랬는데, 네시 반이 되면 좀 더 나오지요. 어짜든지 인본주의 쓰지 말아요.

지하철 공사 위해 기도하고, 또 십 분 지난 후에 오전 오후 설교 재독이 있는데 재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 왜 그러냐 하면 재독할라 해야 찍해야 한 두서 사람 앉았는데 그것 보고서 지금 그렇게 자꾸 하고 있어? 테이프 가지고 재독하든지 하고 앞으로 재독을 듣는 사람이 한 이십 명 이상 되면 하지마는 한 이삼 명 그래 있으면 재독을 안 할 것입니다. 그러고 남구역장님께서는 보고서를 다 내고 가시기 바랍니다.

까다로와도 성공하는 믿음을 가져야 됩니다, 까다로와도 성공하는 믿음을 가져야 돼요. 수월하게만 믿을라 하는 그것은 마귀가 유혹 주는 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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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94 신들-십계명/ 출애굽기 20장 3절-11절/ 790902주후 선지자 2015.11.23
2793 신령과 진정의 예배/ 요한복음 4장 20절-26절/ 840402월새 선지자 2015.11.23
2792 신령한 결혼/ 마태복음 22장 1절-14절/ 861124월새 선지자 2015.11.23
2791 신령한 몸/ 고린도전서 15장 44절/ 881202금새 선지자 2015.11.23
2790 신령한 양식/ 베드로전서 2장 1절-3절/ 820331수야 선지자 2015.11.23
2789 신령한 양식/ 베드로전서 12장 1절-3절/ 1982년 14공과 선지자 2015.11.23
2788 신령한 젖/ 베드로전서 2장 1절-5절/ 830102주후 선지자 2015.11.23
» 신망, 단일심, 계속기도/ 누가복음 18장 1절-8절/ 871106금야 선지자 2015.11.25
2786 신본계명과 인본계명/ 야고보서 2장 10절 11절/ 881116수새 선지자 2015.11.25
2785 신본주의 독재와 인본 민주주의/ 출애굽기 20장 1절-3절/ 881128월새 선지자 2015.11.25
2784 신본주의와 인본주의/ 요한계시록 17장 14절/ 871018주새 선지자 2015.11.25
2783 신본주의와 인본주의/ 아가 4장 6절-9절/ 881103목새 선지자 2015.11.25
2782 신본주의와 인본주의-독재/ 출애굽기 20장 1절-3절/ 881127주후 선지자 2015.11.25
2781 신본주의와 인본주의 구별법/ 요한복음 8장 31절-40절/ 861126수새 선지자 2015.11.25
2780 신부의 인격/ 아가 4장1절-5절/ 830805 지권찰회 선지자 2015.11.25
2779 신부의 인격/ 아가 1장 2절/ 531110화새 선지자 2015.11.25
2778 신앙공동체/ 에베소서 5장 15절-16절/ 851227 지권찰회 선지자 2015.11.25
2777 신앙노정의 순서/ 신명기 28장 1절-19절/ 811009금새 선지자 2015.1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