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23 20:55
신령한 젖
본문 : 벧전 2:1-5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 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 너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많은 해석을 못 하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새김질을 잘 해야 거기 있는 은혜를 받을 것입니다.
1절에 '다섯 가지를 버리고' 했습니다. 악독, 궤휼, 외식, 시기, 비방 이 다섯 가지를 버리라 그러면 이 다섯 가지가 우리 사람들에게 나타날 때에 별별 아름다운 옷을 갈아 입고 나서고, 또 별별 화장을 하고 나서기 때문에 참 알기 어렵습니다.
이 순전한 젖인 이 젖 외에 세상에 있는 모든 말이나 사상이나 주의나 지식이나 그것은 껍데기는 그 색깔이 별별 것으로 나다나서 사람들이 혹하고 이야말로 참 따를 만한 것이라고 대단히 아름답게 보지마는 그 본질과 본성을 해부해 보면 전부 이 다섯 가지입니다.
한 말로 말하면 사람을 속여서 멸망케 하는 것뿐입니다. 거기서는 인생에게 구원되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천하의 박애주의자라고 해도 그것이 지옥을 면케 하지 못합니다. 하늘나라에 가게 하지 못 합니다. 그걸 한마디로 여러분들이 가서 연구하면, 왜 이런 종교가, 이런 철학이, 이런 도덕이, 이런 사상이 왜 악독이며, 비방이며, 시기이며, 외식이고 궤휼일까? 그거 여러분들이 조금만 생각해도 다 알 것입니다.
그걸 버리고 '갓난 아이들같이' 먹기는 젖 떨어지는 아이가 어머니 젖 먹어도 되고 안 먹어도 되고, 더 좋은 음식 있으면 그것 먹고 그런 게 아니고, 갓난 아이-갓난 아이는 젖 외에 딴 거는 못 먹습니다.
'갓난 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구원이 무엇이 구원인가? 우리의 구원은 우리 자체 행위의 구원인데, 우리 구원은 주님의 사죄를 완전히 입은 자 되고, 칭의를 완전히 입은 자 되고, 하나님과 완전한 화친을 가진 자 되는 이것이 구원의 완성입니다.
'이것이 이루어지도록 젖을 사모하라. 젖을 먹어라.' 이 젖은 사모로만 먹어지지 어린 아이들 모양으로 빨아가지고 먹어지는 것 아닙니다. '먹어라' 그리하면 네가 생명도, 힘도, 발육도 강건해지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평강과 기쁨이 오게 된다.
기독자는 하나님과 관계인 이 생명이 튼튼해야 또 모든 속성들이 힘이 있어야 믿음의 힘이, 믿음이 강해지고, 소망이 강해지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바라고 맡기는 것이 강해지고 이런 게 모두 강해져야 평강도 오고 기쁨도 오는 것입니다.
이게 없이 오는 평강이나 기쁨은 있는 것 같지마는 좀 있으면 그것이 변해집니다.
그리 되면 무엇이 되는고 하니 하나님이 거하실 수 있는 집이 된다. '예수님이 산돌이라' 말은, 돌은 피조물입니다. 돌은 피조물인데, 예수님의 인성은 피조물이지마는 하나님이 영원히 그 안에 내주하시는 하나님의 성전이 됐습니다.
우리도 비록 피조물이지마는 자존하시고 주재이신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 생각 안에 계시고, 우리 소원 안에 계시고, 우리 경영 안에 계시고, 우리 모든 활동 안에 계셔서 그분이 주관하셔서 이루십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성전이라 말합니다. 너희도 산 돌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되어 하나님의 거할 수 있는 집이 지어져 가라. 하나님의 성전이 되어져 갑니다.
그리 되면 예수님의 대속을 완전히 입어 구원이 완성돼. 그러면 하나님이 그 자체 안에, 행동 안에, 사상 안에, 그의 하는 모든 사업안에 하나님이 내주하시게 되니 성전이 되어지고, 이렇게 되면 하나님과 모든 피조물 사이에 예수님으로 인해서 중보자 된 것이 예수님이 중보자 된 것처럼 모든 만물의 제사장이 된다.
거룩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된다.
하나님은 그를 통해서 당신이 모든 걸 주시고 받으시고, 사람은, 만물은 그를 통해서 하나님의 것을 받고 하나님에게 바치고, 예수님이 중보자되신 이 중보자를 인하여 거기에 속한 중보자가 된다 하는 그말입니다.
이러니까 순전한 신령한 젖을 사모하든지, 1절에 기록한 다섯 가지 이것을 사모하든지 인간은 둘 중에 하나입니다. 다섯 가지.
악독이라는 말은, 악은 자기 중심이라 말이오. 독은 자기 중심으로 다른 이를 해롭게 하는 것을 가리켜서 독이라 이럽니다.
궤휼은 지금은 위하고 안 속이는 것이 되지마는 마지막 인생이 척 죽어 심판 앞에 가 서고 보니까, 홍포입은 부자 그 형이 동생들한테 모든 걸 잘했지마는 그거는 속인 것밖에 안 됐어. 꾀운 것밖에 안 됐어. 그러니까 후회를 하면서 동생을 부탁했습니다. '궤휼과' 외식, 알맹이 진실이 없는 껍데기 지니는 것뿐이라. 서로 적개심 가지고 시기해서 다른 사람 잘 되니까 나도 잘 돼 보겠다. 잘 되니 배 아프고 이래서 시기, 또 다른 삣고 깎는 것 그 본질 본성 그 이외의 말은 이 젖 외에는 한 마디도 없습니다. '왜 이런 도덕이, 이런 종교가, 이런 사상이 어찌 그럴까?' 깊이 분석해 보면 이 말씀이 맞을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세상에 생각할 것 많고, 연구할 것 많고, 그저 빈틈없이 우리 머리를 차지하려고 마귀 이놈이 와 가지고 '이게 필요하다, 조게 필요하다 지금은 이거라야 된다.' 이렇게 하지마는 통틀어서 한 말로 말하면 여기 말한 다섯 가지 그것들이다.
이러니까, 해 봤자 결과적으로는 자타를 속이고 속는 것뿐이니까 이것 버리고 갓난 아이같이 순전한 젖을 사모하라 순전한 이 도리를, 순전한 기독교를 네가 사모하라. 연구하라. 이 젖을 빨아 먹어라.
신령한 젖은 하나님의 도를 말하는데 간추려 말하면 다섯 가지를 들 수가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자존하심, 하나님이 제일 커 하나님이 제일 어른이라, 제일 강한 자라, 하나님이 제일 커. 이것도, 이 젖도 세게 빨면 젖이 나옵니다.
연구하면 하나님이 제일 크신 분, 세계의 강대국이 강한 것이 있지마는 그것이 뭐 이분에다가 비할 수 없어 이분이 다 한시간 동안에 지은 것이오. 한 손가락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오.
이분의 지극히 크심을 사모하고 사모하고 연구하고 연구하고, 이 분이 정하신 목적, 하나님의 목적, 우리의 선택, 우리 구원인 하나님의 목적을 사모하고 사모하고, 이 목적에서 하나님이 주권적 의지로 모든 것을 영원까지를 예정하신 이 예정을 생각하고 생각하고, 예정한 대로 하나님의 주권의 능력으로 이 모든 것을 성취하시는 주권의 능력 성취, 거기는 창조도 들었고 섭리도 들었고 다 들었소.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 성령과 진리와 피의 보증 이 다섯 가지를 자꾸 생각합니다. 자꾸 이 다섯 가지만 생각합니다.
'사장이 회사는 생각지 않고 이것만 생각하면 어쩝니까?' 회사도 생각지 말고 이 다섯 가지만 생각해라. '남편이 가정도 안 돌보고 이 다섯 가지만 어찌 생각하노?' 다섯 가지만 생각해라. '학생이 공부도 안 생각하고 이 다섯 가지만 생각하면 어쩌노?' 다섯 가지만 생각해라.
다섯 가지만 자꾸 생각하면, 자꾸 빨면 처음에는 안 나와도 젖이 흘러 나옵니다.
자꾸 사모하고 연구하면 거기서 젖이 나옵니다. 이 젖통을 가지고 계시는 분은 하나님이시오. 하나님에게서 젖이 돌아 나옵니다. 거기서 진리가 나와서 자기에게 깨달음이 하나씩 둘씩 생겨집니다. 또 거기 덧붙여서 성신의 감화가 옵니다.
'아! 내 구원은 자존하신 당신이 정하신 목적이지. 이 구원이 얼마나 든든하나? 이 구원이 얼마나 크나? 모든 존재는 이 구원 위해서 지으신 것들이지. 모든 존재는 이 구원에게 이용당하려고 기다리고 있지. 모든 움직임의 순서는 이 구원 위해서 예정한 그대로지. 양성일위가 대속하셨지. 성령과 진리와 대속의 공로가 예정과 창조를 전부 활용해 가지고 이 구원을 이루지.' 이걸 몇천 번 몇만 번이라도 생각에서 생각으로, 연구에서 연구로 깊게 넓게 들어가니 하나씩 둘씩 깨달음이 나오니 이는 정말로 옳은 진리요, 이치요.
깨달음이 나올 뿐만 아니라 그 깨달음을 강하게 하는 영감이 옵니다. 이 영감과 깨달음 이걸 먹고 자랍니다.
이 영감과 깨달음을 가지고 영감과 깨달음대로 이제는 사장 노릇도 하고, 호주 노릇도 하고, 아내 노릇도 하고, 남편 노릇도 하고, 친구 노릇도 하고 원수에게 대할 때도 이 깨달음과 영감대로 대하고, 큰 일을 당해도 적은 일을 당해도 이 깨달음대로 영감대로 그대로 모든 일을 합니다. 하니까 예수님이 나를 대속해서 사죄 입힌 것이, 사죄된 확신이 점점 생겨서 확신이 강해집니다. 대속의 칭의가 강해집니다. 하나님과 나와 화친의 부자간 된 것이 점점 강해집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은 내 말 속에도 당신이 계시고, 내 생각 속에도 당신이 계시고, 내 소원 속에도 당신이 계시고, 내 모든 경영 속에도 당신 이 계시고, 내 활동 속에도 당신이 계셔. 왜? 당신에게 맞으니까 당신이 계셔. 당신이 계셔 당신이 주관하시고 당신의 능력이 함께 하셔.
이러니까 성전이 점점 되어져 가니 만물의 중보인 거룩한 제사장이 자꾸 이루어져 갑니다. 이러면 이로 인해서 스스로 생겨지는 평강, 생겨지는 기쁨 이것은 세상이 빼앗아 가지 못해. 이 젖만, 젖 줄기만 떼 버리면 시들어갑니다.
뻐드러져요.
그러나 신령한 젖 다섯 가지 그 해석은 여러분들에게 많은 시간에 걸쳐 했기 때문에 생각하면 나옵니다.
하나님이 제일 크신 분 제일 크신 분 그분을 자꾸 생각하니 제일 크신 분인데 그분이 뭘 어찌 하려고, 그분이 어쩔려고, 나를? 일국의 대통령이 나와의 관계를 가지고 날 좋아하고 나를 위한다 해도 이는 참 기쁨이 될 터인데. 이분의 큼을 제가 앎에 따라서, 이 크신 분이 내게 관심을 가지시고 세밀히 간섭함을 깨달아 가는 데 따라서, 이분이 목적하신 목적을 연구하고 연구하고 이 목적 위해서 모든 것이 예정되어 있고 이 목적 위해서 모든 것이 창조되어 있으니 이것도 저것도, 다 이것을 자꾸 사모해서 연구를 하니, 이 하나님이 나를 대속하신 이 대속을, 십자가의 대속을, 대형 대행 대화친으로서 세가지 대속함을 연구를 할수록 점점 내게는 힘이 납니다.
이뿐만 아니라 이 일을 이루려고 하나님의 성령이 보증을 책임을 졌고, 진리가 책임을 졌고,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가 책임을 졌고 이 셋이 책임지고 나섰으니, 모든 피조물은 존재 목적이 이 세 분이 책임진 여기에 이용당하고 이 일을 위해서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몰라서 어두워지니까 마귀 이놈이 주먹으로 옆구리를 찢고 이걸 꺾고 칼로 찔러서 놀라게 하지 이것을 깨달으면 마귀 그것도 귀한 보배요 이용물의 귀한 이용물이요, 해할 자가 하나도 없어.
그런고로 두말 할 것 없이 모든 악독과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비방하는 그 본질 본성의 세상 말 지껄이는 것은 필요한 것 같아도 다 그거라. 이거 다 버리고 갓난 아이같이 되어서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로 먹어라. 자꾸 사모해라, 연구해라, 자꾸 연구하라.
연구에서 연구로 깨달음에서 깨달음으로 이러면 거기서 깨달음의 젖방울이 나올 것이고 영감의 젖방울이 나올 것이고, 이러면 그 깨달음의 영감의 그것 가지고 사람도 대하고, 그것 가지고 사업도 하고 그것 가지고 일을 판단도 하고, 이러니까 이루어지는 거는 구원이 이루어집니다. 세 가지 대속이 완전히 내게 이루어져서 믿어지게 됩니다.
이는 해 보지 아니하면-우리가 다 알기 때문에 그렇지 짐승이 나면, 젖꼭지 보면 쭈굴쭈굴한 데서 거기서 뭐이 나오겠소? 우리는 다 많이 봤기 때문에 나오는 줄 알지. 빠니까 자기의 구비한 양식이 나오는 것처럼, 이렇게 이 순전한 신령한 젖을 사모하고 사모하면, 사모하면 그 젖통은 신령한 도이지마는, 젖통이 달리기는 어디 달렸는가? 자존자 하나님에게 달렸습니다. 거기서 우러 나옵니다.
마구 하나님에게서 나옵니다.
이러니까 자꾸 사모하면 생각이 달라집니다. 뜻이 달라집니다. 소원이 달라집니다. 생각하면 시기가 곯아 떨어져 뒈지고, 시기가 죽어지고, 훼방이 비방이 죽어지고, 궤휼이 점점 시들어 죽어지고, 악독이 시들어 죽어지고, 거기서 나오는 깨달음. '아, 나는 지극히 크신 분이 나를 책임지고 계신다. 나는 이분 앞에 선다. 이분과 맺은 계약이 있다.' 뭐 그것 생각하니 천천만만이라. 자꾸 생각하니까 깨달음이 나옵니다. 그 깨달음은 성신의 감화라. 감화입니다.
이대로 하니까 구원이 이루어집니다. 구원이 이루어지다니? 구원이 뭐인데? '사죄받아 죄와 완전히 관계가 끊어져 다시는 털끝만치라도 죄 안 짓고 살 수 있다. 죄 안 짓고 살 수 있다. 죄 안 짓는다 절대 안 짓는다.' 할 수 있는, '죄 안 짓는다.' 나 이번에 아프고 난 다음에 내가 죽어도 죄는 안 짓습니다. 죄 안 짓습니다.
이래도 허물을 몰라서 바딱 실수가 있어 바딱 실수하다가 즉시 돌아서. 죄 안 짓고 살 수 있어. 털끝만치도 죄를 지을 필요가 없어. 의에서 살 수 있어.
하나님과 동행으로 살 수 있어.
이러니까, 거기서 나오는 젖을 먹으니까 점점 사죄의 은총이 견고해지고, 칭의의 은총이 견고하고, 하나님과 화친의 은총이 견고하고, 이러니까 사람도 변하고, 행위도 변하고, 모든 게 변해져. 이러니까 하나님은 내 안에 계시기를 원하시고, 내가 하는 것이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내 안에서 해.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주관하시는 이는 당신이시요 내가 움직이는 거는 그분이 움직여 일하시는 대로 따라서 움직이는 그분의 지체 노릇하는 것뿐이라. 이러니까 '만물의 중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제사를 드릴 수 있는 거룩한 제사장이 되어져 간다' 했습니다.
이러니까, 참 이치에 맞지 않는 것 같지마는 세상에 돈을 생각해야 돈이 나오고, 세상에 무슨 기쁨을 생각해야 기쁨이 나오고, 인간을 생각해야 뭐 인간과 무슨 인간 관계가 나오지.
'아! 다섯 가지. 지극히 크신 하나님, 하나님의 목적, 하나님의 주권-주권의 의지 예정, 주권적 능력의 성취, 하나님의 주권-하나님의 대속, 세 가지 보증 그것만 자꾸 생각하는데 무슨 돈이 나와?' 그것만 생각하면 돈 나올 때 돈 나오고, 능력 나올 때 능력 나오고, 은이 나올 때 은이 나오고, 냉정 나올 때에 냉정이 나오고, 끊어야 할 때에 끊을 거 나오고, 맺어야 할 때에 맺을 거 나오고, 거기서 나오게 되는 것은 곧 하나님의 전입니다. 하나님이 내주하시게 돼.
점점 그러니까 하나님이 그 안에 계셔서 하나님은 내 안에 주인처럼 계시고 내 전신 전체는 당신의 집과 같애 당신이 이 손을 통해서 나타나시고, 이 눈을 통해서 나타나시고, 이 입을 통해서 나타나시고. 그러니까 전부가 만물의 중보라, 만물의 제사장이라.
그런고로 어쩌든지 세게 빱시다. 신령한 젖을 젖꼭지를 놓지 말고 빱시다.
젖꼭지가 어떻게 되든지 빱시다. 이거 다섯 가지를 연구하고 연구하고 연구하면 영과 육의 모든 성공과 능력과 형통과 평강과 기쁨이 여기서 나옵니다.
금년에는 우리는 그 전에 1절에 말한 이 다섯 가지 흉측한 것, 선한 척 하고 도덕가인 척 하지마는 보면 종말은 지옥 갈 자를 지옥 더 가게 했지 하늘나라 가지 못하게 했기 때문에 다 궤휼이라. 궤휼 아닌 게 어디 있소? 전부 서로 서로 시기해서, 서로 시기 질투해서 적개심에서 나온 그것뿐이라. 또 껍데기 뿐이라.
조물주는 따로 있는 데 조물주 놔두고 저거끼리 날뛰니까 외식이지, 껍데기지.
무슨 소용 있는가? 그런고로 1절에 다섯 가지에 붙들려 가지고 우리가 분망하게 속았던 것입니다.
그것 다 버리고 갓난 아이같이 되어 순전한 신령한 젖을 사모합시다. 여기 우리 사는 게 다 있습니다. 여기 우리 가정의 행복도, 개인 행복도, 교회 행복도, 세상 행복도, 하늘나라의 행복도 여기 다 있습니다.
왜? 거기서 젖이 나와. 그 젖 먹으면 사람이 성공하는 힘은 있고 실패하는 힘은 없어져. 그 젖 먹으면 영광과 칭찬 받을 수 있는 힘은 있고 힘은 자꾸 강해지고, 남한테 멸시 천대받을 그 요소는 자꾸 죽어져.
그런고로 금년 첫주일에 주신 이 말씀을 가지고 이 젖을 사모합시다. 하나님, 자존하신 하나님이요, 지극히 크신 하나님이오. 만경 창파의 넓은 것이 위엄스러우냐? 그것을 한 마디로 만드신 그분이 우리의 구주시요 우리의 주이십니다.
이분을 무엇으로 사귈 건가? 한 달에 여러 억억억 원을 드려도 그거 가지고 그분 매수 못합니다. 그것 다 당신의 것이오. 몸뚱이를 갈아 바쳐도 그거 가지고 당신 얻지 못합니다. 안돼요.
당신은 어린 아이가 어머니에게 젖이 나오니까 그 젖의 맛을 알고 젖을 필요하게 해서, 어머니가 자기에게 필요한 분이요 필요한 걸 주니까 어머니에게 얻는 게 좋아서 어머니만 만날 사모하고 바라보고 좋아하는 이것이 들어서 어머니다 뺏들어 버렸소.
그 뭐 대접해서 뺏든 거 아닙니다. 어머니 아니면 죽을 줄 알고 어머니에게 모든 거 맡겨 놓고 어머니만 바라보고 어머니가 주는 게 아니면, 주는 거 안 먹으면 죽고, 그분이 안먹이면 죽고, 그분만 바라 보는 것 이것이 어머니에게 책임을 지우는 것이요, 이것이 어머니의 마음을 다 뺏든 것입니다.
우리가 신령한 젖을 사모하여 젖의 맛을 알고 이 젖을 빨고 이 젖이 달려 있는 하나님을 사모하고 거기서 나오는 이 은혜를 사모하면서 갈급해서 그분을 사모하고 그분에게만 소망하는 이 한 방편이 하나님 차지하는 방편입니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깊이 새깁시다. 자기의 지식 정도에 따라서 이 신령한 젖은 점점 커질 것입니다.
여러분들 이 젖꼭지에서 나오는 거 외에는 다 먹으면 죽습니다. 이 젖꼭지에서 나오는 거 외에는 다 먹으면 죽습니다. 여기서 나오는 것만 먹어야 육도 살고, 영도 살고, 사업도 살고, 명예도 살고, 지위도 살고, 권세도 살고, 평강도 삽니다.
여기서 나오는 이 젖방울, 젖, 이거 안 먹고 다른 거 먹은 것은 다 죽었습니다.
우리가 다 다른 걸 많이 먹었던 것입니다. 다 토하고 그것 때문에 창자까지 토해지려 합니다. 참 후회 후회, 철천지 후회입니다.
여기서 나오는 이 젖만이 우리의 양식입니다. 양식입니다. 밋밋밋밋하게 쭈굴쭈굴하게 이래 달렸지마는 자꾸 빨면 그것은 내 양식 나오는 것처럼 이 다섯 가지를 사모하고 사모하고 연구하고, 모자라면 성경보고 또 연구하고 연구하고 하니 거기서 깨달음이 나오고 거기에 깨달음의 성신의 감화가 오고 그거 먹으니까 힘 납니다.
이 힘 가지고 강건해지고 이러니까 기쁨은 절로 옵니다. 평강이 절로 옵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은 날 안 떠납니다. 안 갑니다. 하나님은 나를 당신의 집으로 삼고 내 안에 거처하시오. 내 안에 계셔. 하나님의 전이 이루어져. 신령한 집으로 지어져 가고, 거룩한 제사장이 되어져 가고.
올해는 꼭 다섯 가지, 그 모든 세상 말 버리고 '이 다섯 가지만 생각하는 데서 뭐이 나올까?' 하지마는 나와서 맛을 보면 점점 그만 족한 것을 알 것이고 그 외에는 다 필요 없다는 것을 인생 경험을 하고 난 다음에는 압니다. 다 그 모든 것이 다 궤휼이었습니다. 다 시기였소. 외식이었소. 다 인간이, 이 사람 악독 아니면 저 사람 악독에서 나왔소.
<기도> 83년 새해 첫 주일을 주시고 신령한 젖을 우리에게 주신 것을 다시 한번 밝혀 먹을 수 있게 하신 주님 앞에 감사를 드립니다. 주의 구속인 도리의 피조물에게 없는 지극히 크신 다섯 가지 구원의 근원을 사모하고 생각하고 연구하고 알고져 하며 이로 인해서 은혜를 입고져 하는 자에게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깨달음과 영감을 주시는 이 은혜를 입어 이 두 가지 은혜대로 언행심사의 전 생애가 이루어 성전도, 제사장도, 구원의 완성도 이루어지는 지극히 큰 축복을 다 받아 누리는 저희들 되게 하시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