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령한 양식

 

1982.  3.  31. 수야

 

본문: 벧전 2:1-3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 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오늘밤에는 공과를 한번 재독 하는 밤입니다. 반사 선생님들은 잘 듣고 또 공과  필기에 다른 것이 있으면 고치면 좋겠습니다.

 제목은 신령한 양식.

 첫째. 우리 사람은 영육으로 된 사람이며 육은 마음과 몸이 둘로 되어 있는  육이요, 영은 진리와 영감으로 단번에 중생 되었고 육인 심신은 법적 구속은  받았으나 실상은 종자적으로만 살았고 죄 아래에 죽어 있는 부분이 많다. 몸은  식물을, 공기를, 햇빛 등을 입과 코와 피부로 먹는다. 그러나 마음인 심령은 이런  물질을 먹지도 못하고 또 먹고 살지도 못한다. 육이 마음과 함께 물질 양식을  먹는 것처럼 심령은 중생 된 영과 함께 심령의 양식을 먹는 것이다. 아무리  강건한 몸이라도 양식을 먹지 아니하면 기진해지고 독약은 먹으면 쓰러진다.

 둘째. 우리의 심령 곧 영혼 육의 인격도 신령한 양식을 먹지 아니하면 심령이  쇠약해지고 마지막은 병들고 또 독약은 먹으면 죽거나 약해지기 쉽다. 신령한  양식은 하나님의 말씀과 영감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하나님과 연결되는  것이다. 이는 영양이 많은 참된 양식이다 그러나 악용할 지식으로만 가지면  독약도 되고 음행의 포도주도 되고 부풀어 썩게 하는 누룩도 된다. 진리와 영감과  구속의 양식을 위하지 않는 모든 지식, 사상, 주의들은 다 쑥물이요 독약이다.

 셋째 참된 양식을 먹으면 하나님의 속성대로의 참사람이 힘을 얻고 자란다.

하나님의 역사를 배격하는 모든 세상 운동은 먹으면 죽는다. 참 양식을 먹는 것은  마음으로 성경 말씀과 성령의 감화와 주님의 대속의 공로를 성경대로 생각하고  또 깨닫고 인정하고 그대로 행하는 이것이 먹고 소화하여 자기도 자라고 자기  힘도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자는 직관과 직감에서 행동하지 말고 말씀을  근거하여 깊이 넓게 길게 생각하여 영감대로의 판단 인도를 따라 살아야 한다.

 믿는 사람이 믿음의 모든 부분이 힘을 잃는 것은 신령한 양식인 성령과 물과  피를 생각하고 명상함이 적고 이 깨달음에서 인정하고 움직이는 양식 먹는 일을  하지 않는 데서 생겨진 것이다. 신자가 지상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원인은 여기  있다. 신앙은 한없는 기쁜 길이다.

 한 번 더 읽습니다. 자세히 들으십시오.

 신령한 양식.

 첫째. 우리 사람은 영육으로 된 사람이며 육은 마음과 몸이 둘로 되어 있는  육이다. 영은 진리와 영감으로 단번에 중생되었고 육인 심신은 법적 구속은  받았으나 실상은 종자적으로만 살았고 죄 아래에 죽어 있는 부분이 많다. 몸은  식물, 공기, 햇빛 등을 입과 코와 피부로 먹는다. 그러나 마음인 심령은 이런  물질을 먹지도 못하고 또 먹고 살지도 못한다. 육이 마음과 함께 물질 양식을  먹는 것처럼 심령은 중생 된 영과 함께 심령의 양식을 먹는 것이다. 아무리  강건한 몸이라도 양식을 먹지 아니하면 기진해지고 독약은 먹으면 쓰러진다.

 둘째. 우리의 심령 곧 영혼 육의 인격도 신령한 양식을 먹지 아니하면 심령이  쇠약해지고 마지막은 병들고 또 독약은 먹으면 죽거나 약해지기 쉽다. 신령한  양식은 하나님의 말씀과 영감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하나님과 연결되는  이것이다. 이는 영양이 많은 참된 양식이다. 그러나 악용할 지식으로만 가지면  독약도 되고 음행의 포도주도 되고 부풀어 썩게 하는 누룩도 된다 진리와 영감과  구속의 양식을 위하지 않는 모든 지식 사상 주의들은 다 쑥물이요 독약이다.

 셋째. 참된 양식을 먹으면 하나님의 속성대로의 참사람이 힘을 얻고 자란다.

하나님의 역사를 배격하는 모든 세상 운동은 먹으면 죽는다. 참 양식을 먹는 것은  마음으로 성경 말씀과 성령 감화와 주님의 대속의 공로를 성경대로 생각하고 또  깨닫고 인정하고 그대로 행하는 이것이 먹고 소화하여 자기도 자라고 자기 힘도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자는 직관 직감에서 행동하지 말고 말씀을 근거하여  깊이 넓게 길게 생각하여 영감대로의 판단의 인도를 따라 살아야 한다.

 믿는 사람이 믿음의 모든 부분이 힘을 잃는 것은 신령한 양식인 성령과 물과  피를 생각지 않고 명상하지 않는 까닭이다. 이를 생각하고 명상하여 깨달음에서  인정하고 움직이는 양식 먹는 일을 하면 힘을 얻는다. 신자의 지상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원인은 여기에 있다. 신앙 걸음은 한없이 기쁜 걸음이다.

 광고합니다. 예배 마치고 30분 기도 후에 남반은 1층 신관에서 여반은 1층  구관에서 철야기도회가 있습니다. 많이 참석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철야기도회 때에 옷을 따뜻하게 입고 오시고 이불은 가져 오지 마시기  바랍니다. 몸이 약한 분이나 애기를 데리고 오신 분은 담요를 한 장 가지고  오시고 교회에는 두지 마시기 바랍니다. 또 지금 교회에 두고 간 침구는 다  가져가시기 바랍니다. 잊어버리는 사람도 많고 마구잡이로 누구든지 이렇게  사용하는 그런 폐단들이 있어서 그럽니다.

 철야기도회 있는 날 외에는 교회에서 자지 못합니다. 특별한 사정이 있어 철야할  경우에는 목사님의 허락을 받으셔야 합니다. 행정실에 허락을 받으면 됩니다.

저는 만나기 어렵지만 행정실에 허락을 받아 가지고 다른 날은 철야하도록 하고  예배당에서 허락되지 않은 분들은 자지를 못합니다.

 또 대구집회에 대해서 미리부터 직장문제 또 가정문제 모든 사업 문제 경제문제  또 자기의 신상에 관한 것 기도하고 준비해서 은혜 받는 데에 아무 어려움이  없도록 미리부터 준비해야 될 것입니다.

 오늘 이 공과는 간단합니다. 우리가 영육으로 된 사람인데 영은 진리와 성령으로  완전히 살아났습니다. 다시 죽지 않는 영생으로 살아났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육이라고 하는 마음과 몸으로 되어 있는 이 육은 법적으로는  예수님의 구속을 받았지마는 실상으로는 종자만 받아 가지고 있지 죄 아래에  그대로 있는 우리 마음이요 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마음과 몸 이것을 구원해야  되는 것이 우리의 할 일입니다.

 중생 된 영은 영 자기의 영원한 소유인 자기 마음과 몸을 세상에 있는 동안에  중생 된 영이 구원해 놓은 것은 무궁세계에 자기의 마음과 몸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자기의 도구로 사용할 수 있고, 자기의 거처하는 집과 같이, 타고  다니는 이 승구와 같이 편리한 기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에 있는 동안에 중생 된 영이 이 심신의 기능을 살리지 못한 것은  세상을 떠날 때에 영원한 죽음의 유황불 구렁텅이로 다 몰려 들어가 버리고  부활할 때에는 몸만 부활하고 마음의 형체만 부활합니다. 마음과 몸의 기능은  부활할 때에 부활하지 못하고 그저 이 형체만 부활하게 됩니다.

 세상에 있는 동안에 이 심신의 기능을 많이 구출한 영은 무궁세계의 부자요  권세있고 실력있는 영이요, 세상에 있는 동안에 자기의 심신의 기능을 구출하지  못한 영은 무궁세계에 가난한 영이요 실력없는 영이요 천한 작은 영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영은 자기 육을, 자기 육을 만들어 가지고 무궁세계에 가져가려고 애를  쓰고 악령은 우리의 심신을 빼앗기지 않고 제것을 삼으려고 애를 쓰는고로, 중생  된 영은 성령의 도우심을 입어 이 심신을 구출하려고, 구출해서 제것 삼으려고  애쓰고 악령은 빼앗기지 아니하려고 애를 쓰는 것이 이 세상살이인 것입니다.

 이래서 악령을 이기면 중생 된 영의 것이 되고 지면 악령에게서 빼앗지 못했기  때문에 그 심신의 기능은 살아나지 못하고 악령으로 더불어 함께 유황불  구렁텅이로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살리고 빼앗기고, 빼앗아서 살리고 빼앗지 못하고 빼앗겨 죽이는 것은  언제 되는가. 그것은 언제든지 현실에서만 되어지는 것입니다. 현실에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심신이 살게 되면 중생 된 영의 것이 되고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고 악령의 뜻대로 살게 되면 심신은 둘째 사망의 해, 영원한 해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의, 심령이라고 말하면 영이 아니고 우리의 신령한 마음을 말하고,  또 영혼이라 하면 영혼은 영이 아닙니다. 영혼은 육에 속한 영과 관련을 가진  그런 마음을 가리켜서 영혼이라 그렇게 말을 합니다.

 우리가 심신의 구원은 종자적으로는 우리가 받아 있습니다. 종자적으로 받아서  다시 말하면 심신의 구원이 시작됐다 말입니다. 구원이 시작은 됐지마는 완성은  아닙니다. 시작된 이것이 한 현실 한 현실에서 잘 구원을 이루어 가면 이 심신의  성화 된 부분이 점점 커지고 강해집니다. 그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믿음을  지키지 못하게 되면 이미 자기가 성화 되어 있는, 구원되어 있는 심신의 기능은  그대로 있지마는 클 것이 크지 못하고 클 수 있는 요소가, 살아 날 수 있는  요소가 둘째 사망의 해로 영원히 죽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약해도 어려도 그 식물을 잘 먹이면 잘 자랍니다. 그렇지마는 그것이  음식을 잘 먹지 못하고 병들고 이러면 햇수만 지나가지 자라지를 못하는 것처럼  꼭 우리의 심령도 그러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마음의 기능과 몸의 기능 성화 된 부분이 제법 장성한 사람도  있습니다. 장성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이 계속해서 음식을 잘 먹여서  가꾸지 않으면 그 장성한 것도 그만 약해집니다. 마치 우리의 몸이 아무리  건강체라 해도 음식을 안 먹으면 기진해지고 오랫동안 못 먹으면 영양실조로  마지막에는 병들고 나쁜 그런 독약이나 중독 되는 식물을 먹으면 큰 병에 걸리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심령도 그러합니다. 우리의 심령이라 말은 우리의  마음이 중생 된 영으로 더불어 살아날 것을 가리켜서, 살아난 것을 또 가리켜서  심령이라 영혼이라 그렇게들 표시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심령이 육체와 같이, 몸과 같이 건강해도 양식 안 먹으면  약해지고, 나쁜 것 먹으면 병들고, 아무리 어려도 잘 먹이면 잠깐 장성하고, 또  약해도 잘 보호해서 모든 것을 잘 조절하는 위생을 하면 병든 몸이 나아서  강건하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몸의 위생을, 몸의 위생으로 마음의 위생을 우리는 미루어  알아야 하고 또 껍데기 육에 대한 이 모든 형편으로 심령의 형편을 우리가  깨달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대개 예수 믿는 사람이 어리든지 장성하든지 또 약하든지 병들든지 그것이  상관이 없습니다. 잘만 가꾸어서 잘 먹이면 당장 강건해지는데 안 먹이고 안  가꾸면 그만 약해지고 병들고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심령을 강건케 한다 말은 의지가 강해진다, 마음이 견고해진다, 깨달음이  명철하다, 감정이 풍부하다, 사랑의 속성이 진실의 성품이 강건하다, 그 사람이  작년에 만날 때보다 올해 만나니까 진실성이 휠씬 자랐다, 또 그 사람의 구별성이  훨씬 자랐다, 몇 해전에는 그 사람이 참 독사와 같은 그런 독종의 사람이었는데  몇 해만에 보니까 놀랄 만침 인자의 사람이 됐다 그런 것이 다 치료된 것이요  자란 것입니다.

 영은 하나님의 형상을 받아서 된 것이 영이요, 마음은 영의 형상을 받아서 영의  모형으로 된 것이기 때문에 영과 같은 그 인격성을 가진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마음을 잘 가꾸어서 강건케 해야 됩니다. 마음의 온갖 요소를 강건케 해야  됩니다. 판단력을 명철케 하는 것도 이것도 심령을 강건케 하는 것이요 자라게  하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이런 일에 대해서는 비판도 평가도 할 줄 몰랐는데 지금은 그런 것을  정평정가할 수 있다고 하면 그 사람의 심령은 자랐습니다. 또 그 사람이 이렇게  어려운 일을 당했으면 그전 같으면 아주 흔들려서 근심 걱정에 파묻혀서  파김치가 됐을 터인데 그런 일 당해도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유유하게 모든 일을  정평정가해서 후회없는 그런 처리를 해 나간다 하면 그것도 그 심령이 장성한  것이요 강건해진 것입니다.

 또 다 같이 두려운 일을 당했는데 다른 사람들은 모두 두려워서 어쩔 줄을  모르고 상대방이 요구하는 대로 응하는 사람이 되는데, 다니엘 같은 사람은  상대방들이 요구하는 대로 조금도 응해지지 않고 사자구덩이 들어가는 일이  있어도 조금도 요동치 않고 온유하고 겸손하고 진실하고 강하고 담대했습니다.

그것도 평소에 심령을 잘 길러 놔서 그 심령이 강건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사람이 저는 참으로 원수이기 때문에 저런 원수에 대해서 사람이 미워하지 않을  수 없고 원수에 대해서 언제든지 복수하는 그런 마음을 가지지 않을 수 없는데,  이 사람은 오히려 그 사람을 불쌍히 여겨서 측은히 여겨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그 사람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그 사람이 회개해서 올바른 사람이 되어지도록  노력하는 그런 일을 하는 그런 사람은 심령이 장성한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런 원수에 대해서 사랑한다고 그 원수에 대해서 오만 후대를 다  베풀고 너무 걱정하지 말고 염려하지 말아라, 내가 거기 대해서는 다 이해하고  용서하니까 너무 마음에 근심하지 말아라. 그 사람 마음만 실컷 좋게 해서 예수  믿는 것들은 아무리 해치워도 상관이 없구나 이런 사람이 되어지도록 한 사람은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사랑하는 것 같았지마는 실은 사랑이 못되었습니다.

 그 사람을 너무 용서도 않고 사랑도 미워하지도 않고 어쨌든지 그 사람이  회개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그런 방향으로 잘 취급해서 그 사람이 정말 그  죄에서 해방되어 회개하도록 그렇게 만드는 그 일을 한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실력있는 사람이 됩니다.

 이렇게 우리는 중생 된 영과 꼭 같은 심령이 되어지고 또 중생 된 심령과 같은  몸의 기능들이 되어지면 이것이 이제 완전한 인격이요 완전한 구원을 이룬  것입니다.

 우리가 다 이것을 원하고 있습니다. 원하고 있으나 왜 우리의 마음이 죄에  대해서 강하지를, 죄에 대한 대적의 힘이 강하지를 못하는가. 의를 건설하는 데에  강하지 못한가. 하나님의 속성대로의 사람으로 사는 힘이 왜 약한가. 악령의 이  모든 미혹을 꺾어 이기는 힘이 왜 약한가. 이것은 다 두말할 것 없이 심령의  양식을 먹이지 않아서 그런 것입니다. 심령의 양식을 먹이지 않아서 그런  것입니다.

 그러면 육신의 몸의 양식은 공기도 먹고 햇빛 먹고, 공기는 코로 먹고 햇빛은  피부로 먹겠고 식물은 입으로 먹습니다. 그러나 심령은 이런 물질은 먹지를  못합니다. 아무리 공기 좋은데 가도 심령은, 햇빛 잘 받는데 가도, 고량진미 속에  파묻어 놔도 심령은 그것 가지고 양식이 되지를 않는 것입니다. 먹을 수도 없고  그런 것 가지고는 또 힘을 얻지 못합니다.

 심령의 양식은 어떤 것이 심령의 양식인가. 크게 말해서 신구약 성경 말씀이  심령의 양식입니다. 또 이 성경 말씀을 깨달으려고 애를 쓸 때에 성신의 감화  감동이 오는 성신의 감화 감동이 또 신령한 양식이요 심령의 양식입니다. 또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나 같은 죄인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대속의 공로를 베푸신  이 사랑과 이 은혜와 이 대속의 지극히 큰 것과 이 대속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지극히 큰 또 소망을 허락해 줬습니다. 예수님의 구속으로 말미암은 이 구속의  은혜를 예수님께서는 참된 양식이요 참된 음료라고 말했습니다. 이 구속의 은총의  우리에게 양식입니다.

 그러면 성경 말씀과 성신의 감화 감동과 주님의 구속이 우리 심령의 양식이요,  영혼의 양식이요, 중생 된 영은 그 속에 있고 연결됐기 때문에 그것은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 세 가지가 우리의 심령의 양식이요 영혼의 양식입니다.

 그러면 이 양식은 입으로 먹는가 코로 먹는가 피부로 먹는가. 그런 것으로 먹는  것 아닙니다. 이 양식은 우리가 읽어 보고, 들어 보고, 생각해 보고, 또 연구해  보고, 눈을 뜨고 눈을 감고 이렇게 생각하면서 깨달으려고 바로 알려고 애를  쓰면, 양심을 가지고 애를 쓰면 성신의 감화가 와서 바로 깨닫게 해 주십니다.

 바로 깨닫게 해 주시면 어떤 사람이라도 깨달음의 정도가 약해 그렇지 깨달음의  도수가 강하면 순교 안 할 사람 하나도 없습니다. 주를 위해서 살지 않을 사람  없고 주님에게 노가 되어지는 세상 죄악의 행동을 할 사람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모두 심령들이 양식을 먹지 못하고 비틀 비틀 하면서 기진맥진해서  그런 것입니다.

 그러기에 일차적으로는 성경 말씀을 보고 깨달으려고 하는 것이 양식을  먹으려고 달려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고 깨달으려고 할 때에 자기가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서 양심을 써서 성경 말씀을 깨달으려고 하면 성신의  감화가 옵니다. 성신의 감화가 와야 참 양식을 자기가 입에 넣고 지금 씹으니까  맛이 나는 것처럼 맛이 납니다.

 이러면서 성경 말씀과 영감을 가지고 예수님이 누구시며 예수님이 나 위해서  대속의 공로를 베푸신 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대속의 사랑과 대속으로 말미암아  지극히 큰 영원한 소망을 자기가 생각하고 생각하고 깨달아지면 속에서 힘이  납니다.

 이것이 깨달아지면, 영양이 돌아오면 드러누웠던 기진맥진한 자가 주사를 맞든지  음식을 먹으면 털털 털고 일어나는 것처럼 이제는 털털 털고 일어나서, 주여  이제는 내가 범죄하지 않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주의 뜻대로 살겠습니다. 이 힘이  속에서 나옵니다.

 이것이 이제 심령의 힘이요 영혼의 힘인 것입니다. 그 힘이 강해지면 몸뚱이도  비록 약해도 몸의 의를 행할 수 있고 죄를 이길 수 있는 그런 힘이 생겨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경 말씀과 성신의 감화와 주님의 피공로는 우리에게  신령한 양식입니다.

 또 이 세 가지 양식을 먹고 어떤 성도들이 아름다운 행동하는 그것도  우리에게는 간접적인 양식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원 식사가 있지마는 식사  외에 다른 간식으로 주전부리하는 것 모양으로 성도들의 옳은 행실 그것이  우리에게 들려지면 보면 우리가 그로 인해서 힘을 얻습니다. 그것도 양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 말씀과 영감과 주님의 구속을 자기가 참된 마음을 가지고 양심을  써서 자타의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연구하는 사람에게는 입에 씹어서 먹는 것이  되고 그대로 실행을 하면 이제 뱃속에 들어가서 소화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실행할 때에는 소화가 되는 것이고, 진실한 마음으로 양심을 써서 궁구할 때는  입으로 씹어서 음식을 삼키는 것입니다. 씹을 때 벌써 영양을 다소 취하고 안에  들어가서 소화되면 영양을 완전히 취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성경에 "입에는 꿀같이 다나 배에는 쓰더라" 그말은 성경 말씀과 영감과  구속의 도리를 자기가 연구해서 깨달으니까 어떻게 감사하고 감격해서 견딜 수  없는 그런 힘이 나지마는 막상 그대로 실행을 하려 하니까 참 씁니다. 실행을  하려 하니까 참 고통스럽다 그말입니다. 그래도 실행을 하면 이제 자기 영양이 와  가지고 실행함으로 말미암아 그 진리와 영감과 하나님의 구속이 자기 자체도  되어지고 자기의 힘도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구원을 위해서 진실된 마음으로 연구하고 생각하고 깨닫고  실행하려고 애를 쓰지 않고 이것을 자기를 위해서 하나, 자기를 위하는, 이 세상  지식을 가지는 사람들이 그 지식을 다 자기 위해서 가지는 것처럼 이것도,  구속하신 주님을 깨달아 자기는 주를 위해서 살 뿐만 아니라 죽는 것도 마땅하고  사는 것도 마땅하고 주만 위해 살아야 된다는 이것이 깨달아져서, 주를 위함으로  주님이 소원하신 이웃을 위함으로 하는 것이 안 되고 이 세상 것과 같이 자기를  위한 사욕적으로 이렇게 가지게 되면 이 성경 말씀도 그에게는 독약이 되고 또  영감도 그 사람에게는 독약이 되고 예수님의 구속도 그 사람에게는 독약이  됩니다. 이것으로 인해서 자기가 죽고 자기만 약하고 죽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도 약하게 만드는 그런 일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에 나와도 자기가 참 예수를 바로 믿어서 참 구원을 바로 이루어 보려고  하는 이 진실과 양심을 쓰지 않고 예수 믿는 것까지 자기를 위해서 이용해  먹으려고, 자기 위해서 예수를 이용해 먹고 예수교를 이용해 먹고 성직을 이용해  먹으려고, 성경학교, 신학교 다녀 가지고 자기를 위하는, 이용해 먹으려고 이렇게  하는 사람은 그것이 다른 사람을 해하는 것보다 먼저 그 쑥물을 먹었어. 계시록에  쑥물이라 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그 쑥물을 먹고 그 독약을 먹고 제가 먼저  병들고 상하고 죽게 되는 것입니다.

 이번에 방화사건이 신문에 보니까 ○○신학교 학생들 또 무슨 뭐 ○○교회  ○○교회라든가 어디 뭐 집사들 모두 이런 사람들이라고 하는데 그 사람들이  처음부터 나쁜 것 아닙니다. 다 쓴물과 독약을 먹어서 그렇습니다.

 제가 며칠 전에도, 요새는 병이 광문다학이라 하는 그런 병이 들었습니다.

광문다학이라 말은 많이 듣고 많이 배운 그것이 위대하다 하는 광문다학의 병이  들어서 이 무슨 책을 들고 있으면 그것이 위대한 줄 알고 어쨌든지 독서 독서  독서를 이렇게 권장하고 독서가 귀한 것이라고만 말을 하지, 독서가 귀한  것이라는 말을 한 번 하면 독서를 잘 선별치 않고 하면 죽는다 하는 그말은 열  마디나 해야 될 터인데 서적 선택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안 하고 독서 하라고만  주장하는 그런 인간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그것이 다 마귀  일꾼들이요 다 죽이는 것들입니다.

 이번에도 보니까 사회주의 서적, 사회주의 서적이라는 것은 박애주의 비슷하기  때문에 유혹받기 쉽습니다. 이런 서적을 그럴 듯한 서적을 줘 가지고 취미있게  보도록 해 가지고, 글을 보니까 뭐인지도, 그 글을 보면 뭐이 될 줄은 생각지  못하고 우선 취미 있으니까 한 권 보고 두 권 보고 자꾸 보니까 자기도 모르게  끌려가 가지고 결국은 그만 공산주의 앞잡이가 된 것입니다.

 그러기에 얼마 전에도 독서를 벌로 하지 말라는 그것을 제가 두 시간인가  얼마인가 강하게 말한 일이 있어. 며칠 전입니다. 며칠 전에 독서를 벌로 하지  마라. 또 다른 교회에서 공문, 뭐 날마다 오는 것이 휴지통에, 이런 휴지통에 매일  한 휴지통입니다. 한 번 보낸 돈이 상당히 많이 들것인데 그렇게 오는가. 마구  짓뜯어 버립니다. 쑤셔 넣어. 하나도 볼 것이 없어. 혹 볼 것 있지.

 이래 가지고 사람을 마구 독약을 먹이고 음행의 포도주를 먹이고 누룩을 먹이고  해서 사람들을 죽이는 그런 역사를 악령이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서부교회 청년들은, 남녀들은, 교인들은 성경 외에 다른 서적을 보지  마십시오. 공부하는 사람은 자기 학과를 보겠지마는 그 외에는 성경 보면 그것들  다 알아집니다. 옳은 것만 알면 삐뚤어진 것은 천 가지고 만 가지고 옳은 것이  아니거든 그만 틀렸다 하면 되어 버려요, 그만. 그것이 지름길로 가는 지혜와  지식을 얻는 방편인 것입니다. 이렇게 구별하지 아니하고, 성경 말씀과 영감과  예수님의 대속도 이것을 어찌 하든지 바로 깨달아, 바로 가르쳐 주옵소서. 죽든지  살든지 바로 깨닫게 해 주시면 그대로 하겠습니다. 하는 이것이 있어야 바로  깨달아집니다. 몸으로 산 제사를 드려라 그래야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한 뜻을 구별할 수가 있다 이랬습니다.

 내게 유익되고 내 하고 싶은 내 성미에 맞으면 하고 안 맞으면 안 하렵니다. 할  때에 성경 말씀은 그에게 바로 깨달아지게 해 주지를 않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자기를 부인치 않고, 사욕과 주관 이것을 부인하지 않고  사욕과 주관을 가지고 성경 읽은 사람 예수님의 대속을 말하는 사람, 목사가  예수님의 대속을 말하고 영감을 말하고 성경 진리를 말해도 그 속이 도적질한  이리라 말이요 절도요 강도라 말이오. 그 하는 것이 돈벌이 하고 내나 장사꾼들  하는 것이 세상 뭐 하는 것처럼 그렇게 할 수도 있다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우리 믿는 사람이 자기의 사욕과 이기주의 자기주관, 이것이 한  말로 말하면 자기인데, 이 자기를 부인하지 아니하는 사람은 예수 믿는 것이 그  사람은 최고등 범인이요 고등 마귀의 일꾼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기 부인치 않고 이것을 자기 위해서 이용해 먹으려고, 이 세상 것  모양으로 이용하려고 그런 생각 가지고 설교를 듣고 성경을 연구하는 것은  대단히 어리석은 사람인 것입니다. 그런 데서 다 실패가 옵니다. 여러분들이 요새  아무나따나 서적을 읽으면, ○○대학의 학생들이 전부 미혹을 받아 가지고 그  앞잡이가 됐소. 거기에 있는 사람들이 거의. 거기 또 집사들도. 이것 모양으로  벌로 서적이나 문서를 읽으면 자기도 모르게 자기는 그 서적과 같은 사람이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위험합니다. 그저 신구약 성경 읽고 아는  대로 실행하면 그만 후회할 것 없이 바로 돼 나갑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하도록  하고.

 그 위에 공과에 육이 마음으로 더불어 먹는다 그말은, 마음의 기분이 나쁠  때에는 음식을 먹으면 소화불량이 됩니다. 마음에 기분이 좋을 때에는 좀 험한  음식이라도 맛도 있고 영양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심령과 육의 양식, 심령으로 더불어 육의 양식을 먹게 되고 이 심령의  양식은 중생 된 영으로 더불어 먹는다는 그말이 그말입니다. 중생 된 영, 영과  연결이 돼야 신구약 성경이 양식이 되고 영감이 양식이고 예수님의 대속이  양식이 되지 영과 떨어진 거기에서는 양식이 안 된다는 말입니다.

 그런고로 이것을 다 말하지는 못하지마는, 우리 믿는 사람의 믿음생활이 왜  기쁨이, 예수 밖에 있는 기쁨이 예수 안에 있는 기쁨보다 낫다고 생각하고 또  예수님 안에 있는 이 소망이 예수 밖에 있는 세상 소망만 못하게 보여지는  그것은 이것은 전부 심령이 다 기진맥진하게 병들었고 약해져서 그런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항상 기쁘고 항상 기쁩니다. 항상 기쁘고 항상 담대하고 항상  평안하고 항상 소망에 넘치고 이런 것인데, 왜 예수 믿는 사람이 예수 안에 있는  이 행복을 세상에서 누리지를 못하느냐. 누리지를 못하는 것은 다시 말하면, 쉽게  말하면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누리지 못합니다. 생각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눈에  보이는 대로 그만 받아들이고 귀에 들리는 대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그것이 좋아 보이지 아무리 세상과 세상에 있는 그것이 좋다  할지라도 좀 생각해 봐야 됩니다.

 좀 생각해 보고 좀 생각하면 멈춤 할 것이오, 그러고 난 다음에는 성경 말씀대로  좀 생각해 보십시오. 구속의 도리에 비추어서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다가 어찌  영감에 걸리거든 영감을 받아 생각하면 깜짝 놀라고 돌아설 것입니다. 내가  사약을 내가 지금 먹으려 했구나 왝왝 거리며 튀어 나올 것입니다.

 제가 웅양교회 있을 때에 여기 ○○○집사님이라고 있습니다. 그때 제가 거기  가서 집회 할 때에 그분이 예배시간에 밤예배 때인데, 그만 고함을 지르며 왝왝왝  밤새껏 막 속에 있는 것 처음에는 뭐 게워 내더니 마는 나중에 아무 나올 것  없으니까 마구 왝왝 이러며 밤새도록 그래요. 저 사람 아마, 모두 아마 큰  급성병이 들렸으니까 큰일났다 이러는데 내비두라 했습니다. 그런 것이 아니고 그  사람이 영감이 잠깐 비추어서 깨달아지는 것이니까 잘 되면 좋고 그렇지 않으면  다시 옛날로 돌아갈 터이니까 내비두라. 그래 물으니까 간신히 말하는 것이 뭘  말하고 왝 게워. 어떻게 더러운 것을 먹었는지 과거 일을 생각하니까 구역질이  나서 견디지 못하고 확확거리며 그래요. 그래 그러고 난 다음에 그 사람이 올바른  신앙생활 했습니다. 그래 나중에 정신이 조금 돌아오고 난 다음에 물으니까, 뭐  이런 것을 그런 일 했다고 그저 자꾸 침을 뱉아. 침을 뱉고 왝왝 무슨 말을 과거  무슨 일을 생각하며 왝왝 게워내고 성령으로 깨달아지면 그렇게 구역질이 납니다.

구역질이 나고 그 자기가 미워서 자기를 얼마나 저주를 하고 얼마나 미워하고  그렇지만 예수님의 구속 때문에 그리 갈 수 없고.

 이러니까 그때는 우리는 자기를 통으로 통 털어서 미워했는데 요새같이  깨달았으면 옛사람 그놈만 미워하고 새사람만 사랑했으면 얼마나 좋을 것인데  이것을 갈라 주지 않으니까 마구 통털어 자기를 미워하다 보니까 모순이라서  도무지 번민 고민이라 그말이오.

 우리가 왜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에 미련이 있느냐 생각을 하지 아니하고 직감  직관에서 껍데기로 항상 머물고 있기 때문에 유혹을 받는 것이고, 왜 예수님 안에  있는 이 신령하고 한없는 이 영광스러운 것을 우리가 누리지 못하느냐. 누리지  못하는 것은 이것도 생각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기독자의 기쁨은 생각 속에서 나옵니다. 기독자의 행복은 연구 속에서 나옵니다.

기독자의 담력과 힘은 그것은 명상 속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명상 속에서 나오면  아무라도 그거는 자기 하나의 주관인 그거는 관념이다 주관이다 이러지마는  주관과 객관이 함께 움직이는 것입니다.

 바울이 빌립보 옥중에서 매를 맞아서 전신이 조아 붙이니까 얼마나  아프겠습니까. 아픈데 이 성경 말씀을 가지고 주님의 구속과 주님의 구속으로  인하여 자기 책임과 무궁세계를 심판을 생각하니까, 명상하니 처음에는 아야 아야  했지마는 나중에는 명상하니까 아픈 것도 어디로 가고 생각하니까 기쁘고 즐거워  기쁘고 기쁘고 감사하고 즐거워서 자기도 모르게 그만 찬송 소리가 터져 나와  버렸습니다. 찬송 소리가 터져 나오니까, 이 바울이 심령의 양식을 먹으니까  심령이 힘을 얻어서 강건하게 되어지니까 찬송이 터져 나왔단 말이오. 찬송을  하니까 바울의 주관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찬송하는 동시에 하나님의 능력이  또 역사해서 빌립보 옥 있는 그 지역에 큰 지진이 나 가지고 옥이 떨리고 옥문이  다 열리고 죄수들의 붙들어 맨 것이 다 풀려 버렸어. 그것이 바울이 그 옥중에서  하나님의 이 계약의 말씀과 영감과 예수님의 대속을 명상하는 이 세 가지 양식을  먹는 데에서 그런 기쁨도 나왔고 그런 평강도 나왔고 그런 담력도 나왔고, 또  하나님의 무한하신 능력의 역사도 배후에 함께 하셨고 이로 말미암아 자기를  뚜드린 옥사장이 그 시간에 어찌해야 구원 얻겠습니까 하고 와서 자복을 하고  회개하고 그날 밤에 자기 집으로 초대해 가 가지고 온 식구가 다 믿고 세례 받고  그 이튿날 떠났는데 하루밤도 채 안 되는 몇 시간 동안에 교회를 세운 교회가  빌립보 교회입니다. 위대한 교회고 깨끗한 교회입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양식을 먹지 않는 데에서 기독자의 행복도 영광도 존귀도  평강도 기쁨도 담대도 능력도 우리가, 다 우리에게 있는 것인데 이것을  소생시키지 못해 가지고 기진맥진해 있지. 이러니까 이 세상이 와서 들이 덮치니  꼼짝 못하고, 장사라도 기진없는 자 그까짓 것 가마니에 들고 가면 가마니에 넣어  가고 리어카에 끌고 가면 끌고 가고 끌려가지 제까짓 것이 무슨 소용있소.

이러니까 마귀라는 놈이 고기덩어리 이것을 이용해 가지고 악령과 악성을  이용해서 리어카에다 싣고 가 끌고 가니까 끌려간다 그말이오.

 바울이 이것을 생각하고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사랑하고 육체 속에 다른  법이 있어 그 세력이 나를 원치 않는 데로 끌고 간다, 고기덩어리를 끌고 갔다가  엉뚱한 일 하니까 심령은 지금 원치 않지만 끌려간다 그말이오. 그래서 오호라  곤고한 사람이라 이렇게 말씀한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 믿는 사람들이 왜, 예수 안에 있는 이 행복은 산 행복이요  영원한 행복이요 무한한 행복인데 왜 이 행복을 우리가 누리지 못하느냐.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인데 하나님의 아들로 영광있게 존귀있게 씩씩하게 권위있게,  우주와 영계가 장차 내것 될 상속자인데 왜 이 사람으로, 이 행복한 사람으로  살지 못하느냐. 그러면 우리가 이런 행복을 가지지 못해서 그러냐. 가졌지마는  양식을 먹지 않기 때문에 기진맥진해 있으니까, 아무리 억만장자라도 굶어 있어  숨이 깔딱 깔딱거리는 데에야 뭐 억만장자 아들이 무슨 소용있소. 그 뭐 진미를  압니까, 부강을 압니까, 뭘 압니까. 기진맥진한 것뿐이지. 꼭 이와 같습니다.

 이러니까 악의 세력들이 와 가지고 우리를 점령하고 미혹을 시키니까 거기에 이  심령이 미혹을 받아 가지고 성화되지 않은 요소 그것 들이 세력이 강해 가지고  성화 된 그 부분을 사로잡아 끌고 도망을 치니까 울면서도 안 끌려갈 수 없어  죄를 짓는데 끌려간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이 해결은 어쨌든지 양식을 먹는데  있습니다. 그런고로 양식은 뭘로 먹느냐. 읽고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성경  말씀을 읽고 듣고, 또 영감을 자기 마음으로 원하고, 예수님의 구속의 이 은총과  구속으로 말미암은 소망을 이것을 성경을 근거해 가지고 연구해 보고 생각해  보고 하는 이것입니다. 이것이 먹는 것이오. 생각하는 이것이 먹는 것입니다. 자꾸  생각해야 됩니다.

 성경이 뭐라 하는지 성경 말씀이 가르쳐 주는 것을 배우면서 생각하고 예수님의  구속도 성경대로 생각하고 세상도 성경대로 생각하고 돈도 성경대로 생각하고  사람도 성경대로 생각하고 나도 성경대로 생각하고 이 현실도 성경대로 생각하고  전부 성경대로 생각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양심을 써서 영감대로 자기가 생각하고  이러면서 예수님의 대속의 은총을 생각하고 하면 자기가 어떤 처지에 있든지  속에서 차차 차차, 이 생각하는 것이 신령한 양식을 먹는 것이니까 먹으면 눈이  훤하이 뜨일 겁니다. 눈이 훤하이 뜨여요. 감옥에 가서 들어 앉았는 사람들에게  누가 몰래 사탕을 들여보내서 그 사탕 한 개를 먹으니까, 신문을 봐도 신문이 잘  안 보였는데 사탕 한 개를 먹으니까 그만 눈이 훤하이 뜨이는 것이 신문이  보여지더라고. 그 사람은 단 것이 그렇츰 효력있다 그래 가지고 그 뒤에 단 것을  많이 먹였어요. 이것 모양으로 이제 신령한 이 심령의 양식을 먹으면 눈이 훤하이  뜨입니다. 마음의 눈이 뜨여요. 생각의 눈이 뜨여요. 눈에 무엇이 좀 무엇이 좀  생각이 떠오릅니다. 세상도 좀 바로 보여지고, 모든 것이 바로 되고 보여지고,  예수님의 구속도 보여지고, 뭐 할 것 안 할 것도 보여지고, 참 행복도 보여지고,  행복 아닌 것이 행복 같은 그런 거짓 것도 보여지고 이렇게 보여집니다.

 눈이 뜨이고 난 다음에는 그 다음에는 자기가 알아지니까 그대로 행하고 싶고  행하게 됩니다. 행해 보면 거기서 경험에 체험에서 양식이 또 나와 가지고 또  힘을 얻게 됩니다.

 이러니까 어쨌든지 예수를 잘 믿으려면, 예수를 잘 믿으려면 생각해야 됩니다.

그만 세밀한 것 다른 것 다 냅두고 예수를 잘 믿으려면 생각해 봐야 됩니다.

생각해야 돼요. 신구약 성경 말씀대로 모든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아무리 내  앞에 많은 돈이 부딪혀도 성경 말씀대로 생각해 보고 그 돈을 만지십시오. 자기  앞에 아무리 산 벼락 같은 일이 떨어졌더라도 공연히 놀라지 말고 성경 말씀대로  일단 좀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생각하면 이 심령이 양식을 먹어서 심령이 힘을 얻기 때문에 그  다음부터 눈도 뜨이고 뭐 기동도 되어지고 이래서 냄새도 맡게 되고 자기가 지금  불 구덩이에 드러누운 것도 알게 되고 똥 구덩이 드러누운 것도 알게 되고 알게  됩니다.

 그러면 처음에 눈이 뜨이고, 그 다음에는 코에 미감이 생겨지고, 그 다음에는  자기 몸뚱이가 보여지고 이러면 자기 몸을 간수하게 됩니다. 아이고, 내가 못  누울 데 누웠다. 이거 안 갈 길 지금 가고 있다. 내가 뭐 하고 있노. 정신 차려서  부시시 떨고 일어나고, 일어나면 비틀거리면서라도 자기 길을 가게 되고 그렇게  되면 또 가면서 양식 먹고 이러면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밤에도 이것 하나를 말하는 것입니다.

 자, 따라합시다.

 어떤 것이든지,  성경대로,  먼저 생각하고,  그 다음에 동하라,  이거 합시다. 생각 버리면 죽습니다. 생각 버리면 죽소. 뭐 공연히 눈에 보이는  대로 귀에 들리는 대로 그만 그대로 움직이지 말고 어려움을 닥칠수록 좋은  영양있는 양식을 많이 먹어야 됩니다. 어려움을 닥치면 영양있는 양식을 많이  먹어야 돼요. 제일 영양있는 양식이 뭐입니까. 한번 대답해 보십시오. 제일 영양  많은 음식이 뭐입니까. 뭐. 제일 영양 많은 양식이 뭐입니까. 여반에 한번 대답해  보십시오. 제일 영양 많은 양식이 예수님의 피와 살입니다.

 그 양식은 먹으면 그만 하나님 됩니다. 그 양식은 내가 먹으면 하나님하고 딱  들어 붙어서 하나님의 전부가 자기 것 되어 버립니다. 제일 영양 많은 양식이  주님의 피와 살이오. 이래서 "내 피와 살은 참된 양식이요 참된 음료로다"  말했습니다.

 그 다음에 그 다음 영양있는 양식은 뒤입니까, 남반에. 큰 소리로 해야 들리지.

그 다음 양식은 성신의 감화입니다, 성신의 감화. 그 다음 양식은 뭐입니까.

신구약 성경 말씀입니다. 그 다음에 부스러기 양식은 뭐입니까. 성자와 성녀, 선지  사도들의 그들의 행위입니다. 이웃의 좋은 행위 그것이 이제 부스러기 양식이오.

그러기에 부스러기 양식도 생각으로 먹고, 성경 양식도 생각으로 먹고, 영감  양식도 생각으로 먹고, 주의 피와 살도 생각으로 먹고 성경대로 생각해요.

 믿는 사람들이 생각하면 먹고 죽을 쑥과 쑥물 독약을 벌떡 벌떡 먹지 않을  것인데 생각 없기 때문에 마구 둘러 마시고 나자빠진다 그말이오.

 생각 없이 먹기 때문에 우리 한국 기독교에 큰 지금 침해를 줬다 그말이오.

공산주의 앞잡이가 되어 가지고. 얼마나, 그거 다 우리 지체요 한 몸인데 얼마나  기막히는 일이오. 위해서 기도해요. 그 사람들 회개하도록 기도해야 되고 우리  서부교회도 그런 것들이 많이 끼어 있는지 모릅니다.

 오늘 오전 직원회도 말했소. 우리 서부교회도 그런 자가 있는지 모르니 우리가  기도해야 되고 또 살펴야 돼요. 첫째는 백목사가 그런 사람이 100프로 안 되면  그 다음에 직원들은 한 80프로 안 될 것이고, 직원들이 80프로로 안 되면  교인들은 겨우 한 30프로, 20프로, 한 10프로 안 될 수 있습니다.

 이러니까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생각하라 생각해서 지혜없는  자같이 되지 말고 지혜있는 자 같이 되라" 말씀했습니다. 생각 없이 예수 믿는  사람이 살기 때문에 약물과 독약을 먹고 넘어지고 쓰러지지. 저것도 넘어지고  쓰러진 것이라 그말이오. 어떤 유력한 목사님이 해방 직후에 그 유력한 목사님이  고등고시 위원장 하고, 목사 사면하고 고등고시 위원장 한 그도 쑥물을 먹어  그렇다 그말이오. 생각지 않기 때문에 쑥물 먹어서 그만 넘어졌다 그거요. 해방  직후에 목사들이 정계에 들어가 가지고 야단을 지기는 것도 쑥물 먹어 그래.

세상이 하니까 어쩔 수 없지마는 목사들이 모두 박사 학위를, 목사 버려 버리고  박사 학위를 그거 앞세워서 아무 박사 이거 내세우는 것이 다 모두 쑥물 먹고  약물 먹어 영의 양식을 먹지를 못해서 그래요, 기진 맥진해서. 그러면 박사만  목사가 못합니까. 좀 생각하고 해야 됩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근거해서 생각으로 영감의 양식도 먹고  예수님의 피와 살의 양식도 먹고 이러면 어떻게 약하고 병든 어린 심령이라도  잠깐 강건해집니다. 잠깐 강건해져서 세상을 능히 이길 수 있는 그 심령들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직관으로 직감으로 살면 저는 병들고 넘어집니다. 성경을  근거해서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야 되고 눈 감고 생각하는 명상하는 시간이  많아야 됩니다. 날뛰기만 하면 안 됩니다.

 이 시간 과거도 생각하고 해서 참 그 집사님 모양으로 왝왝 게우는 것이 되어야  돼. 다 그런 순서를 통해서, 너무 징그러워서 속이 미끈거려서 확확 게워지고  침을 뱉고 정신 이상자 같이 일시에 그리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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