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여기라

 

1988. 4. 24. 주일오후

 

본문 : 야고보서 1장 2절-4절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오후에는 간단하게 설교하고 말 건데 그리 될란가 모르겠습니다. 오전에 너무  시간 많이 길어서.

 ‘내 형제들아’ 하는 말씀은 살아 있는 전 성도들을 다 총칭해서 한말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도 해당된 말씀입니다.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여러 가지는 그 사람의 말을 시험하는  시험도 있고 ‘보자, 이 말을 믿음 말 하느냐?’ 믿음 말은 어떤게 믿음 말인고  하니 하나님 따르는 말이 믿음 말이니 하나님이 시키시는대로 하는 말이 믿음  말입니다. 주님은 믿음 말만 했습니다. 아버지께서 말씀하시는 그대로 발표했지  당신의 독단으로 말 한 마디도, 한 일이 없습니다. 그런고로 내가 하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내 아버지께서 하시는 말씀이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여러 가지 시험은 ‘보자, 네가 믿음 말 하나 보자.’ 믿음 말 시험도 있고, 말  시험도 있고, 또 욕심 시험도 있다, 욕심 시험도. 하나님을 따른 욕심만 네가  가지는지 네 단독 그 사욕을 가지는지 욕심 시험도 있고, 또 행동 시험도 있고,  또 성질 시험도 있고,  또 저 O집사, O 치과 한 번 해 봐. 무슨 또 시험이 있겠어? 무슨 시험,  뭐이든지, 하나 주 대봐. 뭐라 하노? 옳지, 성격. 인제 알기는 아는 모양이라.

 성격 시험도 있고, 그 사람의 이성 판단 시험도 있고, 또 그 사람의 정서  시험도 있고, 평가 시험도 있고, ‘보자, 저거 평가하는 것이 내가 평가하는  대로 그대로 하나 보자.’ 주님 평가하신 따라서 평가하면 그 평가는 무슨  평가입니까? 단독 평가요 믿음 평가요?  너? 이걸 지금 알도록 하기 위해 지금 하고 있는 거라, 자꾸. 줄줄 말하면  알지도 못하면서 자꾸, 물어보면 하나도 몰라요. 믿음 평가. 평가도 믿음 평가.

 ‘또 보자, 네가 기뻐하는 네 기쁨을 한 번 시험해 봐야 되겠다.’ 그 기쁨을  시험하는데 주님 따라 기뻐하는 기쁨은 믿음 기쁨이고 마귀 따라서 기뻐하는  기쁨은 반역 기쁨 범죄 기쁨이고 모든 걸 주님이 다 우리를 시험해 가지고서  우리에게 틀렸다는 것을 알리고 모자라는 것도 알리고 없는 것도 알리고 또  조그매라도 옳은 거 있으면 옳은 것도 알리고 온전한 것도 알리고 여러 가지  시험입니다. 여러 가지 시험이라 하는 그 시험인 줄 알아야 돼요.

 여러 가지 시험. 그 시험은 뭣이 시험인고 하니 시험은 나쁜 것을 정리하고  좋은 것을 이것을 조장시켜 가지고서 온전케 하려는 그 시험이라. 뭐 쉬워요.

 가정에서 가정교사가 아이 공부를 가르칠 때에 그 시험을 자주 치르면 좋아요,  그 부모가 좋아요 자주 치르면 학생이 좋아해요? 학생이 어떻게 해요? 학생은  싫어해요. 부모는 좋아해요. 왜? 그거 자꾸 시험을 치르면 삐뚤어진 거 잘못된  거 모자란 거 없는 거 그거 다 알아 가지고서 차차 차차 준비해서 실력을 갖추는  사람이 되기 때문에 좋다 그 말이오.

 가정교사가. 만날 아이 모르는 것만 자꾸 시험쳐 놓으면 아이 그만 그  억압당해서 버려버려. 좋은 걸 아는 걸 시험 쳐 가지고 사기도 돋궈 주고 또  모르는 걸 시험쳐 가지고 교만도 꺾어 주고 또 알쏭알쏭한 그런 걸 가지고서  열심을 내서 알도록 고렇게 참 이 시험 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공부를 가르치는데 가정교사가 그저 매일 여러 가지 시험을 치르는데 시험을 잘  가르쳐 놓고 시험 치르고 잘 가르쳐 놓고 시험 치르고 이라면 뭐 다른 학생들 석  달 공부해야 될 걸 한 보름만 공부해도 확 올라 갈 수가 있어. 다 될 수 있어.

이러니까 이 시험은 참 보배입니다.

 모든 시험이 안에 있는 실상을 드러내는 것이 시험이라. 드러내는 목적이 그  사람 꺾을라고 우사 줄라고 하는 것이 아니고 사랑으로 기르기 위해서 속에 있는  내용이 삐뚤어졌으면 삐뚤어졌다, 또 옳으면 옳다, 모자라면 모자란다 이렇게  시험해 가지고 하시는 것이니 사랑하시는 주님이 우리를 시험하시는 목적이 어데  있습니까? 우리를 시험하시는 목적이 뭐이라고 했지요?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사람 되도록 하기 위해서 시험한다 했어.

 이 시험하는 목적이 어데 있느냐?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자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 사랑하시는 주님이 시험하시는 것이니까 이 시험을  우리가 기뻐해야 됩니다. 이런 시험도 기뻐하고 저런 시험도 기뻐하고 낙제가  돼도 기뻐하고 합격이 돼도 기뻐하고 기뻐해야 됩니다.

 왜? 시험 치르는 그분이 기어코라도 나를 온전한 자 만들라고 이렇게 애쓰는  역사이기 때문에 그분의 그 사랑의대상이 돼 가지고 지금 준비하는 것이니까 뭐  이래도 저래도 좋다 그거야.

 우리를 시험하는 고 시험을 여러 가지 시험합니다. 어떤 사람은 환난은 잘  이기요. 환난 시험은 닥치면 막 이를 갈아 붙이고 죽어도 딱딱해서 이기는데  고만 좋은 것 평안한 것 기쁜 것 영광스러운 것 호강스러운 것 고만 그놈 줘  놓으면 그만 더부랭이 떠 가지고 그만 헛일되고 말아.

 환난에 용감한 그런 실력도 있고 이 사람은 환난만 닥치면 꼼짝 못하지마는  평안하고 좋고 기쁘면 또 그럴 때 믿음 잘 지키는 그런 사람 있어요. 이러니까  주님이 다 아셔.

 주님이 아시는데 우리를 시험할 때에 몇 가지로 시험하느냐 하면 두 가지로  시험한다 했어. 하나는 우리에게 장점을 시험해 가지고서 ‘아따 잘했다  합격이다’ 이래 가지고 우리를 그 사기를 돋궈 주기 위해서 우리에게 형편 좋고  기쁘고 쉬운 그런 형편도 해 주고 우리에게 나쁜 단점을 고쳐 주시기 위해서  어려운 그건 시험도 준다 그거요.

 주님이 아셔서 고걸 선택해 가지고 시험하시는 것이니까 우리는 참 기뻐해야  돼요.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말은 자기 자체에 전부가 기뻐해야 된다 그말이오. 어떤 사람은 입으로는  기쁘다고 하는데 속으로는 근심이야. 또 입도 마음도 행동도 기뻐하는데 그 사람  속에, 입도 마음도 행동도 다 기뻐합니다. 기뻐해서 해. 그라면 양심도  기뻐할까요 기뻐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을까요? 양심은 기뻐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어. 그러니까, 네 지식도 기뻐해야 되고 성질도 기뻐해야 되고 마음도  기뻐해야 되고 또 입술도 기뻐해야 되고 모든 얼굴도 기뻐해야 되고 양심도  기뻐해야 되고 성령도 기뻐해야 되고 이래야 그 기쁨이 온전한 기쁨이야.

 ‘온전히’ 온전히 하는 이 온전의 해석을 이제 여러분들이 온전은 했으니까  인제 이거는 안 배워도 알아야 돼. 온전, 온전히. 또 자체 온전이 있고 시험  온전이 있어. 이 시험이든지 저 시험이든지 무슨 시험이든지 그저 낙제가 되든지  합격이 되든지 나를 사랑하셔서 온전케 하기 위해서 하는 시험이기 때문에 어떤  시험이든지 다 기뻐해라. 네 기분에 맞은 시험은 기뻐하고 낙제되는 시험은  싫어하고 그라면 온전히 기뻐하는 게 아니라. 다 기뻐해야 돼요. 그러면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하는 것은 두 종류가 들어 있는 것을 말했습니다.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시험은 무슨  시험인고 하니 믿음 시험이라, 믿음. 이 시험은 믿음 시험. 수학 시험도 아니고  어학 시험도 아니고 이거는 믿음 시험입니다. 믿음 시험.

 믿음 시험은 뭣을 가리켜 믿음 시험이라 하는가? 믿음 시험은 주님을 따라서 그  명령에 순종하나 안 하나, 순종하나 안 하나 그 시험, 또 네가 주님을 지금  닮아가고 있나 안 있나 하는 그 시험, 주님을 본받나 안 받나 하는 그 시험,   시험중에 제일 알맹이 시험은 무슨 시험이라 했지, 오전에? 시험중에 제일  알맹이 시험은. 알맹이 시험은 무슨 시험? OOO 선생. 그래. 하나님의 형상 닮는  그 시험이 제일 알맹이 시험이라.

 이래 가지고서 그뭐 명령 순종도 또 그분의 인격을 닮아갈라고 하는 것도 그거  다 믿음이야. 그분의 뜻을 따라서 그분의 비판 따라서 그분의 지식 따라서 모든  거 따라갈라 하는 게 믿음인데 제일 믿음 중에 알맹이 믿음은 뭐이냐 하연  그분의 온전하신 그 신격과 같은 온전한 인격으로 그 분을 닮아가는 거 그분과  같이 온전해져 가는 그것이 시험 중에 제일알맹이 믿음입니다.

 그런데, ‘믿음의 시련이’ 지금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좇아가나 안가나 그것을  시험하는 시험이라. 그러면 주님이 하시는 대로 따라서 하나 안 하나 이래  보고서, 하나 안 하나 이래 보고, 사람들은 자기가 주님을 따라서 행동할 수  있는 그런 시험이 어려운 시험입니까? 자기가 따라서 할 수 없는. 그런 시험이  어려운 시험입니까? 따라서 할 수 없는 그런 시험이 어려운 시험이지. 쉬운  시험은 주님 시키는 대로 척척 다할 수 있는 그런 시험이 쉬운 시험이라.

 그 쉬운 시험은 사람들이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자기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할  수 없는 그런 현실을 딱 만나면 그런 거는 고통스럽게 여기고 어렵게 여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우리를 다 아시기 때문에 너무 어려운 거 해 가지고서 그만  시험에 뚝 떨어져서 낙망할 상 바르면 그래 안 하고 그저 하면은 겨우 한  이점이나 삼 점 할 수 있도록 해 가지고서 자꾸 백점까지 올리도록 하는 거 있고  그 사람이 되게 교만하면 아예 장점 맞는 시험을 딱 내 버립니다. 장점 맞는  시험을 딱 내 백점 맞는 현실을 때 주면 뭐 완전히 예수 믿는 거 다 벗어 버리고  예수 안 믿는 사람인데, 그만 안 믿는 사람 행동 해 버린다 말이오. 그라면 나면  뒤에 ‘나는 참 오늘은 예수 믿는 행동이 쪼매 남아 있지도 안했다’  교만한 자에게는 장점 맞는 시험하고 또 약한 자에게는 자꾸 조금씩 조금씩 그  미달되는 시험을 해 가지고서 온전한 데 도달 되도록 그렇게 하나님이 하십니다.

 그러면 시험하는 데에, 시험하는 데에 남아 있는 거는 어떤 게 남아있어요?  시험하는 데에 남아 있는 것은 어떤 게 남아 있지? 시험하는데 남아 있는 것은  그 시험에 딱 들어맞아서, 믿음 시험인데, 믿음시험 인데, 주님에게 순종  시험인데 그러면 남아 있는 것은 순종한 것이 남아 있습니까? 순종 못 한 게  남아 있습니까? 순종한 게 남아 있습니까? 순종 못 한 게 남아 있습니까? 순종한  게 남아 있지.

 그 사람이 그 현실을 줄 때 그때 현실을 지키면, 현실에서 믿음을 지켰으면  고거는 남아 있고 현실에 믿음을 지키지 못했으면 그만 그 믿음이 깨져 버렸다  그말이오. 그 현실 만나기 전까지는 제가 믿는 줄 알았지마는 그 현실을 만나고  나니까 고 현실에서 그만 믿음을 지키지 못하니까 그 믿음이 바싹 깨져 버렸다  그말이오.

 또, 시련이라, 연단이라, 연단이라 하는 것은 이 철물에 대해서 하는 건데  연단인데 그 연단에서 남아 있는 것은 그 불에 탄 것이 남아 있습니까? 안 탄  것이 남아 있습니까? 안 탄 것이 남아 있다 그말이오. 연단이라 시련이라 말인데  시련, 시자는 시험하는 것이고 ‘련’자는 연단한다는 그 ‘련(鍊)’인데 그러면  이 믿음의 시련에 마치 시험 쳐 가지고서맞은 것은 합격이라 남아 있고 안 맞은  것은 작대기 그어서 없애지 않습니까? 옳은 건 남아 있고.

 또, 금을 연단할 때에는 주먹덩이 같은 이 금덩이를 자꾸 불로 ‘연단해도 안  타고 남아 있는 거, 엔간히 굽고 나면 뭐뭐 남아요? 구리쇠도 남고 신주도 남고,  쇠는 다 타 버렸지마는 구리쇠도 남고 신주도 남고 뭐 은도 남고 다 남아요. 더  바짝 뜨겁게 하면 구리쇠도 타고 신주도 타고 다 타 버리요. 주석도 타고 다  탄다 말이오.

 주석도 타고 다 타는데 그라고 난 다음에 마지막에 뭐 남아있는데 그거는 암만  불에 구워도 안탑니다. 남아 있어. 그거 뭐입니까? 금이라.

 이와 마찬가지로 주님이 우리가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거 하나님을 따라가는 거,  명령 따라가는 것도 있고 그분의 인품 따라가는 것도 있고 또 그분의 속성  따라가는 것도 있고 그분의 형상 따라가는 것도 있고 모두 따라가는 게 있는  거라.

 따라 가는데. 따라가는 것이 없어지는 것도 있고 있어지는 것도 있고, 그러면  따라가는 데에 없어지지 않는 그게 있어. 따라가는 데도 없어지지 않는 거 있고  철물로 말하면 타지 안하고 남아 있는 것도 있고 또 시험에는 다 합격이 돼서  남아 있는 것도 있고, 있는데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그러면 여기 인내를 만들어 낸다 하니까 뭘 만들어 낸다 말이지요. 그 시련이 뭣  만들어 낸다 말이요? 그 시련이 뭘 만들어 낸다 말이지요? OOO 조사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했으니까 인내를 만들어 낸다 하는 것은  인내를 만들어 낸다는 그 인내는 뭐인고? 금덩이. 합격된 그거? 답이 맞았소  틀렸소? 맞았어요 틀려요? OOO 집사님. 맞았어 맞았어. 맞았어. 백점이라.

 요걸 말이오.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앎이라’ 자꾸 시험을 하니까 처음에는  합격이 하나였었는데 한 여남은 번 시험 치고 나니까 맞은 게 한 대 몇 개  됩니다. 또 여남은 번 시험치니까 맞은 게 그만 열 개가 다 맞습니다. 그리  돼져요 안 돼요? 자꾸 준비를 하거든.

 이러니까, 금도 연단을 하니까 보니까 금은 지금 쌓여 있는데 이거 보니까 또  다 타 버리고 금이 조금밖에 안 된다 말이지. 또, 또 연단하고 연단하고 자꾸  연단하니까 남는 금이, 자꾸 남는 금이, 연단을 여러 번 자꾸 하고 또 새것 또  연단하고 새것 연단하고 자꾸 연단하면은 남는 금이 많아집니까? 적어집니까? 한  번 연단하는데 정금이 솔방울만치 나왔다고 하면은 백번 연단 하면은 정금이  솔방울만합니까 짚동만 하겠습니까? 짚동만 해. 그럴 거 아니겠어? 고걸 말하는  거라.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앎이라’ 자꾸 그렇게 믿음을 시험하고 연단하고 이라고 하니까 불에도 타지  안하고 이런 유혹 저런 미혹에도 빠지지 안하고 이런 어려움 저런 어려움을  당해도 없어지지 안하고 이런 환난 저런 환난 있어도 없어지지 안하고 막 죽인다  해도 없어지지 안하고 배를 곯려도 없어지지 안하고 오만 거 다 해도 없어지지  않는 그런 믿음이 차차 차차 생겨진다 그거요.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요 인내라는 요걸 해석을? 잘 못  하면 안 돼요. 인내라 말은 참을 인(忍)자 견딜 내(乃)자이니까 참고 견디는  일이거든. 이 잘못하면, 참고 견디는 그게 뭐이냐 하면은 그 불에 타지 안하고  남는 거라 말이오. 또 시험에 낙제, 시험에 떨어지지 안하고 합격돼 남아 있는  거라 그거요.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시험에 합격된 것을 온전히 이루라. 불로 태워도 타지 안하고 남는  정금을 온전히 이루라 그 말입니까 그 말과 다릅니까? OOO 집사. 그 말과 다르요  같소? 저 봐. 똑똑하게 앉았기는 앉았는데 모르는 모양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인내 온전히 이루라 말은 뭐 온전히 이루라 말이지? 합격을 온전히  이루라. 합격을 온전히, 합격. 합격을 온전히 이루라. 불로 태워도 타지 안하는  그 정금을 온전히 이루라 하는 그런 말입니다. 맞습니까? 이라면 해석이 맞아요?  우리 O 장로. 이 작은 O 장로, 맞아요? 이 해석이 맞아요? 맞으면 맞다고 좀  머리만 고떡하지 말고 ‘예’ 해 좀, 크게. 그래 맞아요.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라면 온전하고 구비하여 너희들이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그러면 자, 불 시험, 돈 시험, 칼 시험, 또 세상 영광 시험, 명예 시험, 지위  시험, 행락 시험, 정욕 시험, 유흥 시험, 또 자존심 시험, 쓱 시험 오만 거 다  오고 억울한 애매한 소리도 많이 듣지 그런 시험 다 오는데 그래도 처음에는  그만 없어졌지마는 서도 ‘요번에는 당하고 난 다음에는 내가 인제는 안 진다’  하도 여러 번 시험해 놓으니까 어떤 시험이 와도 그 시험에 떨어지지 안하고  요동치 않는,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도 요동치 안하지 닮아가는 것도 요동치 안하지,  본받아가는 것도 요동치 안하지, 하나님같이 되어지는 고 작업도 요동치 안하지  요동치 않는 거 죽음이 와도 공산주의가 와도 요동치 않는 거 그건 것만 주 남아  놓으면 그게 뭐 사람이 되겠소? 안 되겠소? 그런 것만 남아 놓으면, 그것만 남아  놓으면 그게 사람 될까 안 될까? 누구한테 물어 볼꼬? 자, 우리 OOO 집사님.

되겠어? 그게 뭐 온전한 사람 돼? 그게 온전한 사람이 되겠습니까? 이는 죽인다  해도 진리대로, 돈을 줘도 진리대로, 돈을 뺏들어도 진리대로, 어떤 미남 미인이  와서 꾀어도 진리대로. 어떤 게 와도, 그 어떤 게 온 거 그 시험 아니오? 어떤  게 와도 진리 생활, 순종 생활, 하나님의 형상 생활, 속성 생활, 의로운 생활,  깨끗하고 곧은 생활, 온전한 생활 이것이 도무지 없어지지 안하고 고것만  따글따글 남아 있습니다.

 그러면, 남아 있는 그것을 남은 그것이 이제는 하나 둘 주 모으니까 나중에  그게 모여 가지고서 온전한 뭉텅이가 돼졌으면 온전한 뭉텅이 그것이 뭣 돼지요?  온전한 뭉텅이 그게 뭐입니까? OOO 권사님. 뭐라 하노? 젊은 사람들 고함 좀  질러 봐. 뭐? 그 남아 있는 그게 인내지. 남아 있는 게 인내라. 남아 있는 그게  인내요. 남아 있는 거 이런 거 저런 거 해 도 없어지지 안하고 불타지 안하고  변해지지 안하고 고대로 남아 있는 고것이 인내입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그래 가지고서 없어지지 안하고 온전한 것이 완전이 다  남아서 구비하게 남아 가지고 있으면은 그거 뭣 돼요? 그게 돈 돼요 그게 뭐이요  그게? 사람이라. 사람. 이해가 돼요?  그까짓 거 제가 암만 잘났다 해도 공산주의가 와 가지고서 너 이놈 죽일란다  예수 내놔라 하면은 ‘아이구 그거 뭐 내가 그라면 안 믿지요’ 그까짓 건  온전한 사람이 아니라. ‘너 이 신사참배 안 하면, 국기배례 안 하면, 단군 신사  절 안 하면 너는 직장도 떨어뜨리고 감옥도 가고 너 면직도 하고 네 신세 간다.

학교서 퇴학을 한다.’ 이라니까 ‘아이구 그라면 이 계명에 우상 숭배 말라  했지마는 어짤 수 없지요. 그러면 단군 신사에 절하지요. 국기 보고 절하지요.’  자, 그 사람 하나님의 계명 지키는 시험이 왔는데 그 시험에 합격했습니까?  낙제 했습니까? 낙제 됐지. 낙제한 것만 뚤뚤 뭉쳐서 한 무더기 뭉쳐 놓으면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겠소? 그 사랑 어떤 사람이라? 창기같은 아무짝도 쓰지 못할  그 잡 신앙을 가진 아주 창기신앙이라. 아주 잡신앙 여자로 말하면 뭐 잡여자.

남자로 말하면 잡남자. 아무짝도 못 쓰는 남자라.

 이게 와도 저게 와도 변하지 안합니다. 뭐 무력이 와 가지고 협박을 해도, 좋은  게 와 가지고 막 들어 올리면서 달콤하게 해 줘도, 또 지루하고 까끌까끌하고 영  고단하고 피곤하고 영 아주 참 견디지 못하는 지루하고 피곤해도 권태나는 일이  와도 믿음 만큼은 요동치 안하고 고대로 남아 있는, 남아 있는,  자, 고것만 남아 있으면 불에도 공산주의에도 민주주의에도 또 ‘하나님이 네  이놈 보자’ 바짝 가난을 혀 가지고 배가 고파 죽을 지경입니다. 배가 고파도  아브라함 모양으로 저 밑으로 기어 내려가는 그짓 안하고 배가 고파도 ‘굶어  죽었으면 죽었지 내가 어떻게 하나님의 계명을 어길 수가 있겠느냐?’ 이거는  배를 곯려도 요동치 안하고 타지 안하고 돈을 그라다가 뭉떵 줘도 타지 안하고  권세를 줘도 이 신앙이 요동치 안하고,  자, 그렇게 여러 가지 믿음의 시련 받는 데에서 따글따글하게 합격 합격으로  남아 있는 것만 똘똘 뭉쳐 있으면 그 사람이, 그 사람이 무슨 사람이요? 그  사람이 어떤 사람 되겠어? 한 번 저 대답해 봐요. OOO집사님 대답해 봐. 온전한  사람이라. 온전한 사람. 온전한 사람은 여기에서 온전한 사람 만듭니다. 온전한  인격은 어데서 만듭니까? 온전한 인격을? 시련에서 만듭니다. 믿음의 시련에서  만드는 것입니다.

 이게 뭐 조그만한 취직자리만 있어도 변동되고 명예 권세만 있어도 변동되고  공연히 주일 지키면 큰 이제 애로 있을 것이다. 그래도 주일 퍽퍽 범하는 그런  신앙 가지고, 이것이 천지를 모르고 하루 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걸로  말이지 천지도 모르고 제가 제일 독실자고 뭐이 잘 믿는 사람이고 또 제가  진리고 정통이고 떠들어 쌓습니다.

 수많은 연단과 모든 수십 년의 경험을 겪어서 흠과 점이 없이 모든 걸 다  연단해서 남아 있는 그 인내 뭉텅이 돼 가지고 있는 이 인내 뭉텅이도 뭐인지도  모르고 하루 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떠들어 쌓는 그런 사람이 많습니다.

 이러니까, 그런 시험이 오든지 안 오든지 하나님은 알고 있소. 이런데 하나님이  사랑하시면 남한에 있는 이 모두 출출 장군이라고 전부 다 자기가 성자요 자기가  성녀요 자기가 독실한 신자요 자기가 정통이요 진리요 하는데 뭣이 하나님께서  한 번 시험을 턱 치러서,   자, 너거 주일날 주일날 여기에 안 모이면 이 사람은 다 빨갱이인 줄 알고  우리가 빨갱이 취급하겠다. 그것만 하나 나와도 아마 주일 다 빼고 다 갈  것이오. 어제는 전화가 왔는데 이 국회의원 지금 투표하는 것을 이걸 교회가  좋다고 교회서 투표장을 만들어 놓고 지금 투표한다고 이래 결정이 됐는데,  결정이 됐는데 여기 가서 투표를 해야 됩니까 안해야 됩니까? 우리 목사님 어떤  목사님이 전화가 왔어.

 내가 있다가서 ‘그거 투표 그거 안 할라 하면 그거 큰일이네요.’ ‘어째야  될까요?’ ‘그러면 그만 슬그머니 기권을 하지’ 내가 이래.

 ‘기권을 하지’ 내가 이래 놔. 기권을 하지요 이라니까 ‘아, 목사님 이게  옳은 일입니까 그른 일입니까? 이거 예배당을 빌려서 투표하구로 만들어 놓은 게  이게 옳습니까? 그릅니까? 이거나 좀 말해 주이소,’ ‘그거야 뭐 하나님 앞에  예배 보는 장소를 그런 일 하면 안 되지.’ ‘그라면 됐습니다.’ ‘그러면  어쩔랍니까? 그라면? 살며시 기권하고 빠져 버리지 그만. 어데 출타를 하든지,  그라든가.’ 이라니까 ‘아닙니다. 내가 갈랍니다. 가 가지고서 이거는 예배당을  이와 같이 하면 지금 안 되니까 이거 죄가 되는 거니까’당장 그런 일 취소해  버리라고. 하는 거 말라고서.’이래 하는 길도 있어. 그래 하는 길도 있고,   그래 나는 그라면 그럴 때 나 같으면 그래요. ‘이거 하면 이거’ 안됩니다’  이렇게 하는 것보다도 여기에 그 삐라를 붙이는데 그래 우리 교인들이 뭐 싸웠다  해. 잡아 뜯고 이라니까 왜 뜯느냐고서 보자고, 막이 쌓는다 하는데 그래 내가  있다가 ‘그랄 게 뭐 있나? 그 진리를 증거하지. 이 하나님의 성전에 선거지  발라 놓으면 하나님이 노해서 그 사람 낙제해 떨어진다. 당선 못 한다. 하나님이  축복해야 되지 축복 안하면 되나? 그러니까 그 당신들이 위한다 하는 것이 그  사람 낙제하게 만드는 거다. 그래 말해라. 그라면 그거 그러니까 다른 데  아무데도 교회일랑 그거 붙이지 마십시오 그래 말해라.’ 한 마디에 다 교회 다  안 붙일 거야. ‘아이구, 고렇습니까? 감사합니다.’ 그 감사하다 하면 가요.

망할 거 못 망하게 한다 하니까.

 그래 이런 것도 그런 시험만 와도 고만 뚝 뚝 떨어져. ‘예배당 그거 좀 투표  장소로 좀 빌려 주십시오’ 안 된다 하니까 그라면 그 어째 그때 우리 전국이  이래 하고 있는 건데 협동을 안 하고 도무지 그 어째 협력심이 없습니다. 공연히  벌어서 아이구 그라면 뒤에 무슨 압력이나 뭐 있을까 싶어서 아 예예예 뭐 그만  주일날 아니니까 그만 다 하지요 그만 이래 버린다 말이오.

 6·25 때에 예배당 안 빌려 준, 점령지에서는 예배당 안 빌려 준 교회가 몇 교회  없었습니다. 몇 교회 없었어. 위협과 협박이 오거든. 그게 뭐이냐? 불을 좀  뜨겁게 하니까 바싹 탄 내나 짚뿍더기고 그게 흙덩어리지 금덩이는 아니라  말이오. 금덩이는 암만 그래도 안 빌려 줘.

 저도 위천교회 있었는데 그들이 와서 그렇게 빌려 달라 해도 안 빌려줬어요. 안  빌려 주고 아 보니까 와서 풍금을 타. 풍금 타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구인데  이런 거 풍금 타면 안 됩니다. 어라. 안 됐다. 이거 뿌숴라.’ 바싹 뿌숴  버렸어. 바싹 뿌수고 풍금 없애 버렸어. 그거 안 빌려주어. 그런데 그 부근에서  거창 지방 아닌 데는, 거창 말고 다른 데서는 거의 다 빌렸어요.

 또 이거 환자들이 이러니까 이거는 착한 일 아닙니까? 이 상이 군인들이 모두  생겼으니까 이거 뭐 치료할 데가 없으니까 또 예배당에 와서 치료를 해야  된다고서 예배당에 눕힐라 하는 거 ‘여기에는 하나님 앞에 경배 드리는 곳이지  육신의 전쟁하다가 상이군인들 치료하는 데가 아닙니다.’ 하나도 안 빌려 줬어.

 이렇게, 이런 시련 저런 시련 이런 연단 저런 연단 모든 믿음의 연단, ‘보자.

네가 하나님을 참으로 무엇보다도 제일 두려워하나? 하나님을 사랑하나?  하늘나라를 바라보나 네가 죄를 정말로 예수님이 죽기까지 하셔 가지고서 죄를  사죄해 주셨으니까 죄를 참말로 네가 안 지을라고 하느냐? 예수님이 칭의해 주신  의를 네가 안 내주고 팔지, 안하고 그대로 보존하느냐? 하나님하고 예수님이  죽기까지 화평해 놓았는데 하나님 배반하지 안하고 하나님하고 한통이 돼 가지고  살겠느냐?’ 조고매만 시험하면은 다 내놓고 다 떨어져 다 타 버리고 만다  말이오. 불탈 신앙.

 따라합시다. 불탈 신앙! 불탈 신앙! 낙제되는 신앙! 낙제되는 신앙! 이런 가 다  버리고! 이런 거 다 버리고! 정금 같은 신앙! 합격된 신앙! 이것만 오늘에  준비해서 가져야 돼요. 알지도 못하고 큰소리 뻥뻥하는 사람들 다 낙제하는  사람들이라.

 오늘도, 보니까 어떤 사람이 말했는데 그 말해서 뭐 뭘 했어. 우리 탈퇴한 뭐  탈퇴한 사람들이 뭐 어떻고 해 놨는데 그거 좀 마음에 안됐어. 안됐는 것이 뭐  욕을 해서 안됐는 게 아니고 ‘그분이 하나님의 심판도 모르고 무책임하게  말했으니 그거 참 안됐다. 여기 있었으면 좀 잘 배워서 괜찮을 것인데.’  이러니까,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가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만치도  부족함이 없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매일 생활에서 뭣을 저축할랍니까? 매일 생활에서 뭣을 저축할 랍니까?  OOO 집사님. 뭘 저축할라요, 매일? 매일 생활에서 뭐 저축할 거라? 저 똑똑한  사람인데. 정금을? 정금이 어데 있는데? 자, 인내를 저축해야 돼요, 인내를.

인내. 요거 꼭 잡아요. 매일 생활에서 인내를 저축하자.

 이래서, 인내를 저축해 가지고서 인내를 하나님께서 너는’ 열 가지 인내를, 백  가지 인내를 이 말한 대로 고 인내를 온전히 그릇에 가뜩 채워 놓으면 이 사람  온전한 사람이라.

 우리 현실은 인내를 만들 수 있고 현실에서는 신앙이 불탈 수 있고, 현실에서는  신앙이 불탈 수도 있고 신앙이 인내를 만들 수도 있으니 이 현실에서 아니면 딴  데서는 못 만들어요.

 이러니까, 매일 생활 현실에서 ‘요게서는’ 이 시험이 오고 저 시험이 오고  오는 시험에서 고게서 모든 시험 다 합격하고 모든 그 시련에서 불타지 안하고  인내해서 인내를 만들어 내는 요 인내 만드는 일에 요 진리를 깨닫고 요것만  깨닫고 ‘인내만 만들어 내면 되겠다. 인내만 만들어 내면 되겠다.’  그 현실에서 어떤 현실이 와도 없어지지 않는 믿음. 어떤 현실이 와도 변동  않는 순종, 어떤 현실이 와도 하나님의 형상을 버리지 안하고 보존할 거, 어떤  현실이 와도 하나님 오시고 하나님과 연결을 끊지 말 것. 어떤 현실이 와도  죄짓지 말 것, 어떤 현실이 와도 의를 팔지 말 것. 이래 가지고 그 현실에서  모든 거 이기고 남는 인내, 보존되는 거, 연단에서 불로 연단하는 데서 보존되는  것은 금만 보존되고 시험쳐 가지고서 보존되는 것은 뭐이 보존된다 하더라? 자,  학교 선생님 잘 아시겠지. 저 O장로님. 시험쳐 가지고서 시험지에 보존되는 거는  뭐이 보존돼요? 맞는 것만 보존됩니까? 맞는 것만 보존된대. 맞는 것만. 우리  현실에서 하나님을 본받아 우리가 따라가는 게 믿음인데 하나님과 꼭 맞는  고것만 남아 있으면 고것이 인내입니다. 고것이 모이면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현실은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는 현실이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 현실에서, 우리 믿음은 여러 가지 믿음이 있어요. 말씀 순종하는  믿음, 그만 크게 말해서 현실에 믿음이라 하는 거는 죄짓지 않는 믿음, 의롭게  사는 믿음, 하나님하고 하나가 돼 가지고사는 믿음. 그만 세 가지 말하면 다  들어갔습니다.

 이러니까, 그 현실은 시험하는 현실이기 때문에 어떤 현실에서든지 요 세  가지를 잘 보존해서 세 가지 합격, 죄 안 지으니까 합격, 의를 보존하니까 합격,  하나님과 화친을 계속하고 있으니까 합격, 그러면 요것이 거기에서 불타지  안하고 없어지지 안하고 남아 있는 것이라. 요것을 가리켜서 뭐 이라고요?  요것을 가리켜서 뭐이라고? 뭐이라고? 한목 다 말해 봐요. 뭐이라고요? 인내.

고게 인내라. 남은 거라 말이오. 인내는 없어지지 안하고 남아 있는 거라, 남아  있는 거. 인내 요 현실에서 인내 만들었으면 요 현실에는 벌이 했다. 성공했다.

고 현실에서 고만 벌로 덤비다가서 그만 남는 거 없고 그만 다 타 버렸으면  없어져 버렸으면 요라면 나는 그만 현실에 다 불타 버리고 말았다. 나는 현실에  믿음 팔고 말았다.

 요 수지, 계산을 맞춰 가지고서 우리가 살아서 ‘인내에 온전함을 이루라’  이런 시험에도 저런 시험에도, 단군 신사 시험에도, 또 국기배례 시험에도, 주일  범하라 하는 시험에도, 예배당 달라 하는 시험에도, 또 주일날 나오라 하는  시험에도, 교회 이름으로서 선거 운동하는 시험에도,   여러분들이 선거 운동은 개적으로 얼마든지 하십시오. 그러나 교회이름으로는  안 돼. 교회 이름으로 하면 그 사람 낙제돼요. 큰일나요, 교회 이름으로 하면 안  돼. 개인으로서는 뭐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개인으로. 자기가 좋은 사람  운동도 할 수 있고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서부교회 이름으로는  하면 안 돼. 또 강단에서 그런 광고 하면 안 돼. 이런 것을 다 바로 알아야 되지  바로 알지 안하면 안 돼요.

 이래서, 오늘은 이제 오전 오후에서 우리가 불시험을 만나도, 불시험을 만나도,  또 우리가 어떤 꿀보다 달콤한 시험을 만나도, 막 사람이 쭉쭉 끌려갈 만한  그렇게 아름답고 보기 좋은 아주 화려하고 찬란한 시험을 만나도 이 믿음을 팔지  않고 남아 있는 요것을 가리켜서 인내라 말한 것입니다.

 그러면, 요렇게 어떤 모든 시험과 연단 속에서도 고대로 따글따글하게 보존해  가지고 있는 요 신앙의 인내를 자꾸 저축해서 요것이 온전해지면 그러면 그  사람이 온전한 사람이라.

 뭐 이것이 아니고 예수 믿어 좋을 때는 예수 믿는 척 해 다 혼자 열심 다 하고  예수 믿어 나쁘면 예수 믿는 거 없어지고, 왜정 말년에는 제가 거창읍에 가  가지고서 이 장로들도 만나고 조사들도 목사들도 만나는데 먼데서 오면  안녕하십니까? 나는 반가워서 악수하러 갈라고 안녕하시오 이리 손을 가지고  안녕하시오 하면 그만 ‘저, 아! 나는 바빠서 갑니다’ 그만 저리 가 버려. 왜?  악수하면 그때 형사들이 막 깔려 가지고 있으며 저 악수하는 것 보니까 저거  예수 믿는 사람이라 하고서 잡을 터이니까 안 되겠다 그말이오. 그라니 도망쳐  버려. 저 백집사 저거하고 악수하면 지금 다 그만 잡혀가고 이라니까 그만 슬슬  피해 가 버립니다.

 그 해방이 지나가고 나니까 그 뒤에 만나니까 아이구 뭐 어떻습니까 하며 손을  거머쥐고 팔이 떨어질라 해. 막 어떻게 대고 흔들어 재끼는지.

여러분들, 우리가 믿음의 시련에서 남아 있는 그 신앙을 가져야 됩니다. 믿음의  시련에서 남아 있는. 믿음의 시련에서 남아 있는 고것이 모여 가지고서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이고 하늘나라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시련 안 받은 그거는 흙인지 돌인지 몰라. 나무인지 몰라. 시련  받아 가지고서 남은 그것이라야, 은도 타고 구리쇠도 타고 쇠도 타고 돌도 타고  다 탔는데 남아 있는 그거라야 정금이지. 아직까지 불로 굽기 전에는 뭐이  금인지 몰라요.

 그런고로, 어짜든지 오늘 오전 오후 말씀에서는 우리는 현실은 전부  뭐이라고요? 우리 현실은 뭐입니까? 시험. 우리 현실은 시험이오. 그 시험인데  그 시험은 무엇을 시험하는 시련입니까? 믿음을 시련하는 시험입니다. 그러면 그  시험에서 인내를 이루라. 그 시련에서 없어지지 안하고 남아 있는 그것은  뭐이라요, 그게? 온전한 사람이오. 그게 온전한 사람입니다.

 이래서, 온전한 사람을 만드는 것을 알고 평가해야 되지 입술로만 말하면 전부  그게 온전한 사람인 줄 알아. 입술로만 그라면 거짓말인지 참인지 자꾸, 말만  하면은 인정하는 그 사람은 등신이라. 말을 인정할게 아니라 그 사람의 이력을  보고 행동을 보고 그 사람의 사람을 보고 이렇지 말만 듣고 따라가는 사람은  마귀에게 다 끌려가고 말아요. 다 속고 말아요.

 이러니까, 어짜든지 우리 현실은 믿음을 시련하는 시련이다. 우리 모든 현실은  믿음을 시련하는 시련이다. 이 시련에 남아 있는 것은 온전한 것이다. 이것이  합해 가지고서 온전하고 구비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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