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

 

1981. 11. 9. 월새

 

본문 : 야고보서 1장 13절 - 18절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찌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또 이 안에 짧은 줄에는 오지 안하고 어짜든지 그만 뒤에 그 가까운데 거기에 다  앉아버리네 저 나쁜 습성 고쳐 주려면 다 일으켜 세워야 되겠고 또 그리 하려면  시간이 너무 많이 가게 되고 그것을 명심 못하면 이제 딴 거는 어찌 됩니까?  한번만 들었으면 그것은 그 다음에는 으례히 짧은 줄은 가야 되지 안되겠습니다.

자꾸 한 줄기 길게 나오면 뒤에 오는 사람이 그 많은 사람의 안면을 거쳐서, 저 저 저 누가 앉았노? 저 이름이 뭐이지? 또 저도 그만 금방 그 앉는거라. 저  뭣이지? 음 뭣이가? 성현 선생 누고? 유선생 누군가 잘 안보이는데 그 뒤로 앉지  말고 저리 가.

우리가 마음을 써서 무엇이든지 바로 하려고 애를 써야 마음이 밝아지지. 그렇지  안하면 마음이 자꾸 어두워집니다. 어두워지면 하나님은 바로 인도하시는데  우리가 어두워지면 하나님 인도와 우리와 마찰이 되기 때문에 저 혼자 외톨이요.

그렇다고 하나님 인도를 변동합니까? 오늘 아침에 본 말씀이 바로 고 말씀이오. 하나님의 인도는 언제나 옳고  바릅니다. 하나님의 인도는 옳고 바른데 우리의 생각이 삐뚤어져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인도가 우리에게 거슬려집니다. 거슬려져서 그래 고통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고통스러운 자리로 인도해 주시는 그때문에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은 당신도 쓸데없는 고통을 당하지 아니하시고 또 사람도 고통을  주지 않습니다. 고통을 주시는 하나님이 아니요, 하나님은 언제나 바로  인도하십니다. 옳게 바로 인도하시는데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인도가 자기  비위에 딱 맞습니다. 비위에 딱 맞아서 그저 아멘 아멘이고 ○○○씨 ○○○씨도  그 앉네.

참 하나님의 인도가 첫째로 자기 비판과 평가에 딱 들어 맞습니다. 아 나를  이렇게 이리 인도하시는구나 아 과연 이 인도하시는 이 인도가 이것이 내  생각에도 제일 좋고 옳고 바르고 유익될 길이다 하는 그것을 자기가 깨달아  비판이 되면 마음에 만족하겠습니까 불만하겠습니까? 만족스럽지. 하나님의  비판과 자기 비판이 같은 사람은 하나님의 인도가 항상 기쁘고 즐겁습니다. 또  그 평가가 같은 사람은 (평가가 같은 사람은) 비판이 같은 사람은 옳다 바르다  긍정이 되어서 좋고 평가가 같은 사람은 어떻게 해서 내게는 요 길이 제일  유익된 길인데 제일 유익된 요 길을 택해서 나에게 인도하실까 감사와 기쁨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비판과 자기 비판이 다르고 하나님의 평가와  자기 평가가 다를 때에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길은 다른 것만치 거슬려질  것입니다.

사람이 신앙생활 해 나가다가 어려움을 당하면 하나님이 나를 어렵게 어렵게  고생스럽게 고통스럽게 한다 그렇게 하지 말아라 그것은 하나님이 너를 그렇게  인도하시는 것이 아니고 네게 네 잘못된 욕심 잘못된 욕심으로 인해서 잘못된  생각 잘못된 비판 평가 그게 있어 너는 망할 길을 좋아하고 실패할 길을  좋아하고 뒤에 가서 네가 손해볼 그런 길을 제일 좋다고 생각을 하고 있으니  하나님이 옳게 바르게 인도하시는 그 길이 너희에게는 거슬림이 된다 하는  그것입니다.

제가, 어떤 목사인데 와 가지고 불평을 불만을 품고 불만을 품고 나는 아무래도  이 직책을 감당을 못할 사람인데 이거 내가 공연히 이 직책을 감당해 가지고  감당한다고 해 가지고 구원만 크게 손해를 보겠다고 그래서 내가 그러면 사면을  해라 하면서 있는대로 제 단점을 다 말해버렸어. 다 말하면서 네가 이렇고  이러니까 네 그렇지 않느냐 너 사면해라 사면하고 네야 뭐 이 진영에서 믿든지  가든지 마음대로 해라 그러면서 제 단점을 다 말해서 내가 고함을 질러서 그때  어떻게 뭐 분한지 아마 믿은 이후로는 고함은 그렇게 크게 지르기는 처음일  것입니다. 고함을 지르면서 네가 이렇고 이렇고 이런 나쁜 게 있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니냐고 이러니까 그러면 나는 뭐 성낼줄 알았는데 그러니까 속에서부터  기쁨이 충만해 가지고 웃으면서 예 그러면 제가 지금 충성하겠습니다. 목사님이  절 그래주지 안하시니까 내가 그렇지 않습니까? 내게 무엇이 있어도 말해주지  안하고 이러니까 내가 그래 지금 하는 것 아닙니까 이렇게만 해 주시면 나는  만족입니다. 이러면서 기쁨이 충만해. 충만하면서 그 다음부터 열심히 합니다.

내가 그전에 이야기 해싸서 어떤 짐작하는 사람은 어떤 목사인 것 같다 생각할  것입니다. 자기가 내게 이런 점이 있으면 이걸 이 점을 지금 나를 책망해주실  것인데 책망을 안해준다. 나는 그만 버린 자식 모양으로 내게 대한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이렇게 생각을 저 줄줄로 이렇게 생각을 했는데 그것을 말해주니까  아멘이 되어서 기쁘하고 즐거워하면서 하더라.

또 어떤 사람이 나를 이렇게 하라고 이걸 시켜야 될건데 요렇게 하면 요 일 이  요 일 요래 시키면 내게 대해서 손해가 가고 저렇게 시키면 내게 대해서 손해가  안 가겠는데 어떻게 지도하는가 보자 이러니까 자기가 손해가는 그 길이 바로  옳은 줄 아는데 손해가는 길을 시키지 안하고 유익된 길을 시키니까 속에 마음에  그 자리에서는 암말도 안해도 섭섭하다 그말이오. 분명히 저 길이 옳기는 옳은데  내게 손해갈상 하니까 내게 유익되게 이렇게 이 길로 인도한다 내게 대해서 이  인도가 사적이고 공적이 아니고 바르지 않다 그 마음이고 그 사람이 의심을  가지고 섭섭하게 그 자리에선 말 안해도 아 내게 대해서는 사를 두고 인도하니  내게 대한 인도가 앞으로는 지금 바르지 못하겠으니 이러니 염려다 이렇게 이제  그 사람이 생각이 되어지는 것이 그게 정상이요 이랬는데 그렇지 않고 내게  분명히 손해가고 저 사람이 내게 손해가는 일이라도 딱 말할 때에 야 그러면  그리 하면 안되니까 네가 손해가지마는 그래도 이렇게 해야 된다 이러니까 아 예  그리하겠습니다. 아주 기쁘고 즐겁게 보니까 내게 손해가도 옳게 바르게 인도를  하니 참 내가 이분의 인도를 받으면 내가 성공하고 실패가 없겠다 기쁘다  그말이오.

그러면 바른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옳고 바르게만 인도를 하시는데 왜 우리에게  고통이 되어지느냐? 그것은 우리 의사와 하나님 의사가 달라서 하나님은 최선의  좋은 길로 인도하시고 최고로 성공할 내게는 성공할 길로 인도하시는데 그것이  내 마음에 맞지 않는 것과 내게 불평스러운 것과 불만스러운 것 내게 고통스러운  것 그리 되는 것은 우리가 틀려 그렇지 하나님이 틀려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걸 가리켜서 시험을 받을때 하나님이 너를 공연히 괴롭힌다고 하지 말아라  네가 네게 잘못된 욕심 그놈에게 끌려 가지고 (잘못된 욕심 그놈에게 끌려  가지고) 네가 비판하는 것이나 평가하는 것이나 그것이 틀려서 인도하는 길이  네게 고통되어지는 것이지 내가 인도하는 것이 나빠서 그런 것이 아니다. 너를  해지는 게 아니다.

그런데 그러면 내 의사와 네 의사가 다르고 내 의견과 네 의견이 다르고 내  판단과 네 판단이 달라 나는 네게 가장 좋은 길로 인도를 하는데 너는 그것이  네게 거슬려지는 그것이 뭐이냐 네게 잘못된 욕심 그것이 있어 그놈에게 꼬임을  받아 가지고 네가 고통스러워지는 것이고 오해가 되어지는 것이고  불만스러워지는 것이고 손해가겠다 하는 그런 착각의 마음이 너에게 있는  것이다. 그러면 내 인도에 거슬리게 하는 네 욕심 내 인도에 거슬리게 하는 네  생각 내 인도가 너희에게 만족되지 않고 도로 원망스러운 그 생각 그 지식 그  생각 그 마음 그 욕심 그것이 네게 어떤 것을 주는가 말해주마 그것이 너희에게  무엇을 주는지 말해주마 그것이 너희 속에 시작이 되면 그놈이 차차차차 자란다  그것이 자라면 무엇을 만들어 내느냐 뭣 만들어 내겠습니까? 그것이 자라면 뭣  만들어내겠지요? 녜 삐뚤어진 것 만들었지. 그럴 것 아니겠습니까? 그것이  자라면 삐뚤어진 것 만들어냈지. 삐뚤어진 것이 점점 많게 되면 뭣 되겠습니까?  예 사망놓지 뭐 딴 거 뭐 있겠소 있기를.

그것을 가리켜서 "네 욕심에 끌려 미혹함"인데 네 욕심 그것이 그러면 제게  욕심에게 거슬리니까 네가 하는데 욕심 그놈이 네게서 무슨 작용을 하는 놈인고  하니 그놈은 너를 모든 일에 삐뚤어지게 한다 하나님이 너에게 하나님이 이렇게  옳고 바르고 인도하는 그것도 네게 거슬려지고 삐뚤어지는데 거슬려지는데 네가  거슬려지는 그놈 주장대로 그대로 따라가면 네 가는거는 삐뚤어질 것 아니냐 그  삐뚤어진 것이 많으면 그 다음에 어찌 되느냐 망하고 죽는 것 밖에 없다  어리석지 말아라 모든 좋은 것은 하나님만이 너희에게 줄 수가 있지 다른 이는  주지 못하는데 네 욕심에 이거 붙들면 되겠다 저거 붙들면 되겠다 이러면 되겠다  저러면 되겠다 하는 것이 네 욕심에 끌려서 네가 꼬여지고 네가 미혹받는 것이지  그것이 너희에게 유익주는 것은 아니다. 미혹받는 것이지 그것이 너희에게  유익주는 것은 아니다. 그것을 말씀합니다.

그 다음에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그 사랑이 변하지 아니하고  그 진실이 변하지 않는다. 사람을 인도하는 것은 언제든지 옳고 바르게만  인도하지 이거 삐뚤어지게 인도해 가지고 고생을 시키자 소용없는 고생을 하고  성공을 하도록 하자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될 수 있는대로 고생이 없고  성공하게 하는데 고생이 없으면 성공이 안될 때에는 부득불 그 고생을 통과해  가지고 하도록 그렇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18절에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대로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살리셨느니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살렸다. 그러면 진리의 말씀이라면  이것이 어데서 나왔습니까? 진리 말씀이 어디서 나왔다고 말했지요? 진리 말씀이  어디서 나왔지요? 진리 말씀이 어디서 나왔지요? 예 여반. 영감. 영감에서  나왔지요. 영감은 어디서 나왔습니까? 하나님에게서 나왔지요. 진리의 말씀으로  살렸느니라 낳으셨느니라 말은 진리의 말씀으로 살렸느니라 그말은 하나님이  영감과 진리로 살리셨다 하는 말입니다.

진리의 말씀으로 낳았다 말은 살아다 말이오. 새로 없는데 탄생하는 것이 아니고  출생시킨 것이 아니고 진리 말씀으로 다시 살렸다 그말입니다. 진리의 말씀으로  살렸다 그말은 하나님이 영감으로 된 그 진리의 말씀으로 살렸다 하는 말이오.

하나님이 당신의 감동이 영감이요. 당신의 마음 영감하면 당신의 마음이요.

영감하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마음 진리로 살렸다 그말입니다.

"진리로 낳으셨느니라" 그말은 그러면 우리가 여기에서 살리는 것은, 살리는  것은 하나님과 진리로만 살아납니다.

죽은 것이 살아나는 것은 하나님과 진리로만 살아나지 하나님과 진리가 아니고는  살아나지 못합니다. 하나님으로 살아나고 진리로 살아나는데 그 살아나는 것이  살아난 것이 하나님과 연결되고 진리와 연결되어서 연결됐으면 그것이  살아났습니다. 그 연결이 끊어지지 안하면 그 모든 것은 진리대로요  하나님대로기 때문에 그것은 전체가 살았고 죽지 않습니다.

그러면 살아나는 것은 하나님과 진리와 연결되는 요걸로만 살지 딴것으로는  살아나지 못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피공로는 네 하나님과 진리로만 살아날 수  있는데 주님의 피공로가 없는 데에는 하나님과 진리가 역사를 못합니다.

우리가 피공로를 입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와서 역사하실 수 있고 진리가 역사할  수 있습니다. 이 세 가지 공로가 없이는 이는 하나님과 원수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접하면 그를 멸하지 그를 구원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과 진리가 와서  그 사람과 이렇게 접선해 가지고 결합이 되려고 하면 그는 이 세 가지 공로로  보호를 입은 자가 아니면 이 세 가지 공로로 법적 해결을 받은 자가 아니면  죽어버립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세 가지 이 대속의 공로를 입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입고  있는 사람들이요. 이러기 때문에 이 대속의 공로를 입어야 되겠다 이렇게 우리가  안해도 법적으로 벌써 입혀져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정죄함이 없다 하는 말이 그말입니다.

로마서 8장 1절 이하에 그러니까 우리는 예수님의 공로를 입은 자들이니  하나님과 진리 요 둘로만 우리는 살아난다 요것을 확고한 지식으로 우리가  가지고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살아갈 때에 하나님이 이런 현실을 주시면  이 계명을 지켜야 되고 저런 현실을 주시면 저 계명을 지켜야 되고 그러면  우리가 계명 지킬 계명이 우리 마음대로 택해서 그 계명을 지키게 됩니까?  그러면 우리가 계명 지키게 되는 것이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그 인도가 요  계명지키게 하시고 저 계명 지키게 하시니까 이 계명 저 계명 지키게 하시는  그분이 누구십니까? 하나님이시지요. 하나님이신데 그러면 그 현실을 줄 때에  반드시 그 현실마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그 계명이 있고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건 계명인데 영감과 진리가 인도하는 그 인도는 곧 우리에게 계명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인도인데 그때에 하나님의 주시는 이 법칙 이 법칙대로 사는  길과 성신의 감화대로 사는 길, 그 길이 조금 성신의 감화대로 가는 길은 가는,  걷는 길은 조금 더 좁고 진리대로 사는 길은 그보다 조금 넓고 세상에서는  세상보다는 좁습니다. 세상이 이렇게 넓은데 진리가 인도하는 길은 요만합니다.

그보다는 좁지 않습니까? 거기에서 가리고 선택을 해야 되지 않습니까? 좁은데  여기에서 또 영감이 인도하는 것은 더 좁습니다. 영감이 인도하는 길에 좀  탈선이 되어도 진리 인도길에는 탈선되지 안합니다. 진리 인도길에 탈선이 돼도  세상이 인도하는 그 길에는 탈선되지 않습니다. 넓으니까 그렇지 안해요. 그런데  그때에 사람들이 이리 갈까 저리 갈까 방황하는 것이 왜 방황을 하느냐,  방황하는 그 이유는 하나님 인도하시는 그 길 외에는 좋은 길이 있다 하는  그것이 자기에게 있기 때문에 이래 가볼까 저래 가볼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그 길 외에는 좋은 길이 없다. 그 길 외에는 전부가 다  망하는 길이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그 길 외에는 탐스럽고 가고 싶고 하는  욕심나는 것은 그것은 뭐이냐? 그것은 나를 삐뚤어지게 할 욕심이요 삐뚤어지게  할 마음이요, 그건 삐뚤어진 게 죄입니다. 죄짓게 하는 마음이요. 죄짓게 할  소원이요. 그것이 심하면 뒤에 가서 망하게 된다 요것이 확고하게 있어서  하나님의 인도하는 길 외에는 생명과 평강의 길이 없다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길  그 외에는 전체가 죽고 망하는 것뿐이다.

요 지식이 확고하게 있으면 그 현실을 당할 때에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그 길을  못찾아서 지금 염려가 되고 걱정이 되지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그 길을 확실히  찾았다고 하면은 그거는 염려할 필요도 없고 뭐 그렇게 주저할 필요도 없고 그  길로 달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길은, 그 길은 성령이 인도하는 길이요, 진리가  인도하는 길인데 그 길은 사는 길이요, 평안한 그 길인데 그 길대로 가려고  할때에 그 길대로 가면 자기에게 깨질 것이 있습니다. 그 길대로 가면 자기에게  깨질 것이, 깨질 생명이든지 깨질 사업이든지 깨질 소유든지 깨질 성질이든지  깨질 행복이든지 깨질 기쁨이든지 깨질 가정이든지 그 길대로 가면 깨질 것이  있습니다. 깨질 것이 있으니까 사람들은 걱정하는데 깨질 것 그것은 그러면 그  길대로 가면 깨어질 그것은 그것이 지금 어데 있습니까? 사망 안에 있는  것입니까 생명 안에 있는 것입니까? 그것이 그리스도의 구속 안에 있습니까 구속  밖에 있습니까? 예 구속 밖에 있소 구속 안에 있소? 구속 밖에 있지요. 구속  밖에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인도는 진리인데 그 진리 안에 있소 진리 밖에  있소? 진리 밖에 있지요.

그러면 성령의 영감 하나님 안에 있소 하나님 밖에 있소? 밖에 있는 것이지요.

밖에 있기 때문에 마찰이 되어지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밖에 있으니 마찰이  되어지지 그러면 밖에 있는 그것을 그것이 그것을 아껴서 지금 그게 아까와서  하나님 진리 인도를 따라가지 못하는데 그 밖에 있는 그것은 그것대로 둬두면  그것이 보존이 됩니까 나중에 자연법칙에 따라서 그것이 없어질 때에 없어져서  망해지는 것입니까? 어찌 됩니까? 그대로 두면 어찌 됩니까? 그대로 두면  망해집니다. 이미 죽어 있는 것입니다.

육체로 심은 자는 썩어진 것을 거둔다 그말은, 썩어졌다 말은 죽어 가지고 있는  것이라 그말이오. 그건 죽어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생명이 없는 것이요,  하나님과 연결되지 않기 때문에 죽어 있는 것입니다. 진리와 연결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죽어있는 것입니다. 죽어있는 그것 자기가 하나님이 요 현실을 주실 때에  고 현실에서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고 하니까 거기에서 거슬림이 있습니다.

마찰되는 것이 있소 마찰되는 사업이 있다든지 마찰되는 직장이 있다든지  마찰되는 가정이 있다든지 마찰되는 재미가 있다든지 마찰되는 권위나 명예가  있다든지 마찰되는 자기의 목숨이 있다든지 생명이 있다든지 뭐이든지 있을  때에는 고것은 하나님의 고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요 현실에서 고게  나타나지 안했는데 새로 하나님의 현실을 주시니까 고 현실에서는 하나님의  뜻대로 할라고 하니까 마찰이 된다 그말이오.

그전에 마찰이 안됐는데 마찰이 됩니다. 마찰되면 고걸 마찰되도록 하기 위해서  현실을 하나님이 인도했습니다. 그렇게 고거 죽어야 죽기 때문에 마찰이 되니까  그때에 우리가 생각하기를 요게 마찰이 되니 요것은 진리 밖의 것인데 요 현실을  주시기 전에는 요게 진리의 밖에 것인줄 몰랐는데 요 현실을 닥치고 보니까 요게  하나님의 진리고 거슬리는 것이 진리의 밖의 것이로구나 영감 밖의 것이로구나  요 하나님 밖의 것이요 진리 밖의 것이요.

요것이 주님의 대속의 공로 밖의 것이로구나 대속의 공로나 하나님이나 진리나  요 셋은 하나입니다. 성령과 물과 피 요 셋은 하나라 했습니다. 하나입니다.

밖의 것이라.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 현실을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  인도인데 그 현실을 주실 때에 현실에 하나님의 법칙인 이 법칙을 따라서 영감을  따라서 사는 이것이 하나님의 인도인데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가려고 할때에  거치는 것,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갈 때에 마찰이 되는 것 하나님 인도를 따라갈  때에 갈라 할때에 이것이 인도를 따르려면 이게 절단나고 이게 절단 안날려면  인도를 버려야 되겠고 요렇게 마찰이 돼 가지고 있는 고것은 여러분들이 어떤  것으로 인식을 해야 되는지 인식을 확고히 가져야 됩니다.

고 요동치 안하고 가져야 됩니다. 그 마찰되는 고것을 주님의 인도를 영감과  진리의 인도를 따르려고 하면 예수님의 피공로와 사죄와 칭의와 새생명과 연결이  되려고 하면 요것이 그것을 이 세 가지를 가지려고 하면은 요것을 버려야 되겠고  요것을 버리지 안하고 가지려고 하면 요거 버리지 안하고 가지려고 하면 요 세  가지를 버려야 되고 이렇게 대립이 마찰이 되어질 때에는 하나님의 이 세 가지,  피 진리 하나님 요 세 가지, 요 세 가지가 세 가지와 내가 가지고 있는 이것과  마찰이 되어지면 어느 것이 틀렸습니까? 요것 여러분 똑똑히 가져야 돼요. 어느 것이 틀렸지요? 입만 벌리고 붙이고 있지  말고 다 말해요. 여러분 지금 모른다 그말이오. 이것을 아는 것 같지마는 현실을  닥치면 자꾸 넘어지기 때문에 자꾸 지금 말하는 것입니다. 어느 것이 틀렸지요?  하나님 편이 틀렸습니까 내것의 편이 틀렸습니까? 내것의 편이 틀렸지요.

내것에는 요것을 확고히 가져야 됩니다. 이것이 중대합니다. 확고히 가지고  그러면 틀렸으면 틀린 그것은 이것은 산 것입니까 죽은 것입니까? 이것은 중생된 내가 이것을 내것으로 가질 수 있는 것입니까? 이것은 내것이  안돼 가지고 옛사람의 것이기 때문에 이것이 내것이 되지 못해 가지고 있습니까  내것이 돼 가지고 있습니까? 내것이 되어 있지 못하는 것이지요.

그러면 이것은 지금은 내가 가진 것같이 어리석게 생각하지마는 제가 옛사람  자기요 이 심신이 가지고 있으니까 심신이 가지고 있는 걸로 생각하지마는 이  심신은 나중에 부활한 것인데 기능만 부활하지 못하지 그 부활한 것인데 이것을  뒤에 그 세월이 지나감에 따라서든지 마지막 죽을때든지 이것은 결국은 완전히  빼앗기고 말 것입니까 가지고 있을 것입니까? 빼앗기고 말 것이지요. 빼앗기고  말 것인데 지금은 완전히 빼앗겼습니까 지금은 빼앗겼습니까? 지금 안뺏기고  가지고 있습니까 빼앗겼습니까? 안빼앗겼습니까? 빼앗기지도 안하고  안빼앗기지도 안하고 양쪽에 다 거물고 양쪽을 다 물고 있는 것입니다. 양쪽을  다 물고 있는 것이요. 물고 있는 것인데 이것이 지금 잘 되면 이 하나님편에  서서 있는 있는 내것이 될 수 있고 잘못하면 옛사람의 것이 되어서 영원히  멸망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내것인데 이것을 영원히 내것을 만들 수도 있고 이것은 영원히 빼앗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이것을 내것으로 만드는 데에는, 내것으로 만드는 데에는  이것을 살리는 것인데 살려야 내것이 되는데 진리에 속해야 되고 하나님께  속해야 되고 예수님의 피공로 안에 들어와야 되고 그래야 그 재물도 없어지지  안하고 지위도 없어지지 안하고 자기의 사업도 없어지지 안하고 행위도 없어지지  안하고 기쁨도 가정도 없어지지 안하고 이래야 살아나는 것인데 여기에 접선이  되어야 살아나는 것인데 그럴 때에 자기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가는 마찰되는  그것은 마찰되는 것은 이 안의 것이 되지 안하고 밖에 있기 때문에 마찰되는  것이니까 요것을 살리는 데에는 어떻게 하면 살립니까? 양쪽에 지금 잡고 있는데  붙들어 매여 있는데 살리는 데에는 요것이 그러면 하나님과 진리를 아주 똑  떨어져 버리면 요거는 어찌 됩니까? 완전히 죽었습니다 (완전히 죽었습니다) 요것이 하나님과 진리에도 연결돼 있고 저것도 연결돼 있는데 요것이 세상과  완전히 끊어져 버리면 어찌 됩니까? 세상과 완전히 끊어지면 어찌 됩니까?  완전히 살아나지요. 그러면 완전히 살아날 수도 있고 완전히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요것이 완전히 살아나는 데에는 진리의 것이 돼야 되겠고  하나님의 것이 돼야 요것이 완전히 살아나겠습니다.

그러면 진리의 것이 되고 또 하나님의 것이 되려고 하면 고것이 어떻게 되면  진리의 것이 되고 하나님의 것이 되겠습니까? 그것은 진리를 버리지 안하고  세상을 버리면 세상과는 이별을 하고 진리와 합해 가지고 진리의 것이  되겠습니다. 그러면 그렇게 하는 데에는 주인이 둘이니까 시비가 납니다. 시비가  나서 세상은 세상이 당기려고 하고 진리는 진리와 하나님과 하나님 인도로  당기려고 하고 이렇게 시비가 납니다. 그 사이에 끼어서 시비가 날 때에 그때에  요 세상이 당기는 그 줄을 끊으려고 하면은 어떻게 해야 됩니까? 세상이 흔들  때에 흔들어도 진리를 놓지 않해야 될 것 아닙니까? 또 세상이 두드려 패면 어찌  됩니까? 두드려 팰 때에는 어째야 됩니까? 두드려 패도 진리와 영감에 놓지  안해야 되겠지요. 안해야 되겠지요.

그러면 마지막에 이래 죽이려고 하면 어찌 됩니까 죽이려고 하면 어찌 됩니까?  죽어도 진리와 영감을 놓지 안하려고 해야 그걸 떼고 하나님과 진리에게 속할 수  있겠지요. 그럴 때에 죽이려고 할 때에 아이구 여기에까지 와서는 죽을 수는  없다 안죽으려고 하면 그때 뭘 떠나야 되지요? 진리와 영감과 떨어져야 되지요.

떨어지겠지요. 금하게 되겠지요. 그때에 죽어도 진리와 영감에 떨어지지  아니하려고 함으로 죽었습니다. 맞아 죽어버렸소. 진리와 영감을 떨어지지  아니함으로 안떨어지려고 함으로 인해서 맞아 죽어 버렸습니다. 죽었으면 고것이  뭐하고 싸우다 죽었지요? 세상하고 싸우다가 죽었지요. 죽었으면 고것은  뭐입니까? 세상과 싸우다가 죽은 전사자입니다. 알겠습니까? 세상하고 싸우다가  죽었습니다. 죽었으면 그 시체가 하나님과 진리의 것입니까 세상의 것입니까?  죽은 시체가 하나님과 진리의 것이 됐습니다. 그렇지 않소? 죽은 시체는 죽기는 죽었지마는 하나님과 진리의 것이 됐고 예수님의 피공로의  것이 됐습니다. 그러면 고것이 죽은 것으로 되어 죽은 것으로 진리와 영감과  하나님의 피공로에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연결이 되어 있으면은 진리와  연결되어 하나님과 연결되어 피공로에 연결된 그것이 거기에도 죽음이 있습니까?  (죽음이 있습니까?) 진리와 연결된 그게 죽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과 연결된  죽음이 있습니까? 하나님과 한덩어리된 것이 죽음이 있을 수 있습니까? 진리와  연결된 것이 죽음이 있을 수 있습니까? 사죄와 칭의와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친한  요거와 한덩어리된 것이 죽을 수 있습니까? 죽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전사자, 전사자 고것이 죽어도 떨어지지 아니함으로 세상이 세상이  그를 죽였지 여기에는 합해서 살았습니다. 그러면 고 죽은 것이 세상에서  죽었습니까 진리에서 죽었습니까? 어데 죽었소? 세상에서 죽었소 하나님과 진리  편에서 죽었소? 세상에서 죽고 하나님과 진리 편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면 이것이 세상에서는 죽었으니까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어졌지요.

없어졌는데 어데 가 있습니까? 주님의 공로 안에 하나님 안에 진리 안에 거기에  가서 살아 있습니다. 그래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깁니다. 옮긴 것입니다. 그것이  뭐이냐? 세상이 해할래야 해할 수 없는 그 지경을 통과해서 하나님과 진리로  살아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진리로 살아났소. 하나님과 진리의 것이 됐소.

그러기 때문에 세상은 이제는 하나님과 진리의 것이 되어 있는데 진리의 것이  되어 있는 것을 세상이 지금도 잡아 흔들 수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녜 손을 댈라  하니까 손이 데여집니까 안데여집니까? 손을 델 수 없는 것 돼버렸소. 손을  못데는 것 돼버렸소. 그것이 죽어도 살고 그런 거는 세상편으로 볼 때에는  죽었는데 그것이 완전히 살아난 것입니다. 세상편으로 죽기까지 해서 세상에서  죽기까지 싸워 가지고 이것이 진리의 것이 되고 말았고 하나님 것이 되고 말았고  주님의 구속의 것이 되고 말았지요.

이러니까 그 사람은 세상이 그렇게 고문과 고행을 하는 거기에서 지지 안하고  세상을 이겨서 세상을 이기고 이것이 됐지요. 이러면 그 사람은 전사인데 승리의  장병입니다. 승리한 사람으로서 주님의 것이 됐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싸우다가  세상이 죽였는데 세상이 깨트렸는데 없앴는데 그것이 세상이 아무리 뗄라 해도  죽여도 떨어지지 안하고 깨트려도 떨어지지 아니하고 이래서 결합이 돼서 세상은  더할래야 더할 수 없이 죽여도 떨어지지 않는, 죽여도 진리와 영감 버리지  안하고 그들은 죽고 남은만치 매를 때렸는데 죽고 남을만치 형법을 줬는데 그  사업이 깨질만치 저거 할대로는 했는데 그래도 깨지지 안하고 죽지 안하고 남아  있는 것입니다.

남아 있는 이것은 세상을 이기고 남아 있는 것입니까 세상에게 지고 남아 있는  것입니까? 세상을 이기고 남아 있는 것이지요. 이것은 하나님과 진리와의  한덩어리가 돼 가지고 남아 있는 것입니까 지금 양쪽으로 세상하고 하나님하고  이제 양쪽으로 다 거머쥐고 남아 있는 것입니까? 완전히 하나님의 것이 되고  하나님 편에만 속한 것으로 남아 있는 것이지요. 남아 있는 것 이게 뭐이냐?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 하는 고것입니다. 고게 살아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것은 고 껍데기 고 사람이 살았는데 껍데기가  안죽는다 말이 아니고 껍데기가 살아납니까 속에 기능이 살아납니까? 속에  기능이 살아납니다.

그러면 그 사업에 외부의 형체, 외부의 형체 그것이 살아납니까? 그 속에 사업의  그 기능 (사업의 기능) 사업의 권위 사업의 영광 그것이 살아납니까 알맹이가  살아난 것입니다. 앨맹이가 살아난 것이요. 내나 사람과 마찬가지입니다.

껍데기는 그렇지마는 그 사람이 그 사업할 기능 사업하는 기능 사업하는 권위 그  사업하는 그 영광 그 지위 권세 영광, 다니엘의 파사나라의 총리된 그 총리의  파사나라의 총리가 없어지지 안하고 있다는 말이 아니고 파사나라는 없어져도  다니엘이 파사나라에 총리한 그 권위 그 영광 그 지능 그것은 그대로 하늘나라  갑니다.

우리가 돈을 하나님의 뜻대로 쓰면 그 보물이 하늘에 쌓인다고 했지요. 그러면  만원짜리 천원짜리면 천원짜리 그것이 하늘나라 가 있다 말입니까 돈의 물질의  그 권위 그것이 가 있다 말입니까? 물질의 권위 그것이 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거기에 가서 있는 그것이 이 세상에서 있는 그것은 그 사람이 물질에  대해서 재량이 이 사람은 물질을 천원을 관리할 그 물질의 권위가 있다 억대를  다스릴 권위가 있다 물질에 대한 그의 물질 실력 물질에 대한 물질 권위 그  권위도 천층 만층입니다. 그런데 그 권위요.

어떤 사람은 십만원까지는 이 사람이 권위가 있어서 십만원에는 종이 되지  안하고 십만원으로 인해서 실수하지 안하지만 백만원이 되면 그만 그 범위는  자기가 실력이 없기 때문에 자기 실력에 역량 밖의 것이 되기 때문에 백만원  되면 실수한다 그말이오. 그 사람이 천만원이 되면 더 실수합니다. 이 사람은  백만원의 역량을 가졌기 때문에 백만원 가지고는 그 사람 흔들지 못한다. 이  사람을 천만원의 역량을 가졌기 때문에 천만원 가지고는 흔들지 못한다. 이  사람은 억대의 역량이 있어서 억대 가지고는 그 사람을 흔들지 못한다. 이  사람은 물질에 대한 것은 완전히 권위가 있기 때문에 물질은 억억 아니라 온  천하를 준다고 해도 그거 가지고는 흔들지 못한다.

예수님에게 온 천하의 영광을 다 줄 터이니까 절 한 번만 머리만 한 번 꼬박  해라 했는데 주님이 거기에 대해서 어쩔까 욕심이 나서 흔들렸습니까 흔들리지  안했습니까? 흔들리지 안했소. 그래 이 물질에 대한 권위, 물질에 대한 역량  이것이 하늘나라에 있다 말입니다.

이것이 하늘나라에 있다 말은 이것이 벌써 생명 세계로 들어왔소 진리 속에  들어왔소? 그러면 그 사람은 그만치 주님 안에서 물질의 권위는 그만치 가지고  있습니다, 가지고 있어. 그 무궁세계 가보면은 물질의 권위는 백원 권위 밖에는  못가진 사람 있고 억대권위 밖에는 못가진 사람 있고 이 사람은 물질의 권위는  완전히 가진 사람이 있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이것이 살아 믿는 것입니다. 살아 믿는, 살아난 이것은 살아나 진리와  영감과 하나님의 대속의 공로와 연결이 되어서 떨어질 수 없는 연결이 된 그것은  죽지 않습니다. 연결된 그 마음을 가지고 살고 욕심을 가지고 살고 뜻을 가지고  살고 감정 가지고 이렇게 사는 사람은 그 사람은 그 마음이 자기에게는 마음의  모든 움직임이나 몸의 움직임입니다. 그 기능들이 살아 가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살아 가지고 있는 그것은 하나님하고 의견이 다릅니까 같겠습니까? 녜  같지, 그러면 살아있는 그거는 소원이 소원이나 욕심이나 뜻이나 그 소원이  하나님과 같겠습니까 다르겠습니까? 같지요.

그러면 하나님의 인도가 그이에게는 다행스럽게 생각되겠소 불만스럽겠소?  다행스럽게 생각해집니다. 다행스럽게 생각해져. 다행스럽게 생각해지기 때문에  이제 있는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쓰여지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쓰여지고 이러니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데에는 납작 들어누움으로  기쁘시게 하는 것이든지 일어섬으로 기쁘시게 하는 것이든지 또 자기가  꺼꾸러짐으로 기쁘시게 하는 것이든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데에는 자기가  늘어짐으로 기쁘시게 하든지 자기는 맞아 죽음으로 기쁘시게 하든지 언제든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원해서 있는 것이면 이 모양으로 기쁘시게 하든지 저  모양으로 기쁘시게 하든지 기쁘시게 하면 만족하게 되는 것이고 불만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살아서 믿는 이것을 이 양이 많은 사람은 주님이 인도하시는 그  인도를 걸어갈 때에 수월하고 또 이게 살아서 믿는 것이 없고 죽은 부분이 많은  사람은 하나님이 인도하시는데 마찰이 많고 마찰이 많으면 마찰 많은 그것은  죽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죽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살아나야  되겠는데 살아나는 데에는 세상줄을 끊어야 되는 것이니 세상줄을 끊는 데에는  거기에는 고난이 없을 수 없는 것입니다. 고난이 없을 수 없어.

고난이 있는 그것은 누가 고난 있을 수 있습니까? 이 진리 밖에 있는 것이  고통을 당합니까 진리 안에 있는 게 고통을 당합니까? 진리 밖에 있는 자기가  고통스럽습니까 진리 안에 있는 자기가 고통스럽습니까? 진리 밖에 있는 자기가  고통스럽지요. 그만 진리 밖에 있는 자기 것은 살아야 될 자입니까 죽어야 될  자입니까? 이거는 죽어야 될 자입니다. 이건 자기 아닙니다.

요것을 여러분들이 굳게 잡고 자꾸 키워요, 요런 현실을 닥칠 때에 살펴보고  조런 현실에서 살펴봐서 요 현실에는 자기에게 죽은 자기가 없는 줄 알았는데 조  현실 닥쳐보니까 죽은 자기가 있습니다. 또 요 현실에 갈 때에는 주님과 마찰이  없었는데 조 현실을 닥치니까 마찰이 생깁니다. 자꾸 마찰이 생겨지고 그게  뭐이냐? 이것이 자기에게 죽어있는 것이라 그말이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살리는 것은 영입니다. 살리는 것은 말씀입니다. 말씀 외에는 살리는 수가  없소. 그러니까 사랑하는 살리고자 하는 자면 그자가 공부한다고 늦게까지  공부하고 이러니까 학교 다니고 공부하며 이러니까 공부하니 이 뭐 공부하는  데에는 이거는 어찌할 수 없다. 내비두지 말고 사랑하면 공부를 해도 깨워  가지고 새벽기도 오는 게 좋습니다. 이 말씀이 공부보다 뛰어나. 이 말씀은  살지, 세상 말씀 그거 가지고는 죽이는 것입니다. 이 말씀 가지고 살고 세상것은  죽이는 것인데 그것을 죽이는 그것이 이 말씀에게 지배를 받으면 죽은 지식이  살아납니다.

모든 죽은 것이 필요한 거는 죽은 것이 살아날 희망이 있기 때문에 필요한  것인데 죽은 지식 그것만 자꾸 가지고 그것이 왕노릇하면 그 사람 죽고 망하지  않겠습니까? 이러니까 그 동정은 이 이거 지금 곤할 터이니까 아마 깨우기가  애처롭다 하는 그것이 죽이는 것이라 말이오. 그것이 혈육의 사랑이요. 평가적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라 이거요.

아무래도 진리 말씀을 들어야 됩니다. 자꾸 흔들어 깨워요. 자꾸 말해 깨우고  깨워서 성낼 사람은 못깨워. 이제 그만 싸우면 그는 성내면 날 뭣 때문에  깨우노, 난 싫어하면은 다시는 원수가 반대되는 사람 어쩔 수 없어. 그렇지마는  암만 깨워도 될 수 있는 그 사람은 깨워라야 된다 말이오. 그렇지 않소? 옆에  사람이 같이 예배보는데 좁니다. 교인은 이래 깨우면 성을 냅니다. 왜? 다른  사람 자든지 말든지 건방스럽게 참말로 성을 내고 성을 내도 그라고 난 다음에는  뒤에 가서 '이거 미안합니다 참 깨워줘서 고맙습니다' 할 수 있으면 하지마는  끝까지 깨우면 원수같이 여겨서 딱 원수가 되는 사람은 깨우면 안된다 그말이오.

그러나 암만 깨워도 원수가 될 수 없는 그 사람은 자꾸 깨우라 그말이오. 깨워  가지고 이 새벽기도 참석해야 되지 이 진리를 모르면 예수를 못 믿습니다.

그러니까 총회니 노회니 이단체니 이런 많은 하나님 일꾼들이 모여 가지고 하는  것도 모르는 것은 삐뚤어져 갑니다. 모르는 것은 삐뚤어진 판단해요. 이러기  때문에 사이비한 것으로 요새 뭐 사이비한 종교니 뭐 사교니 신흥종교니 하는  신흥종교 하는 그 사람 자체가 이상합니다. 또 그때 가서 그거는 옳으냐 하면은  그것도 또 틀렸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참 달아맨 돼지가 눈돼지 나무랜다는 격으로 이렇게 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얼마나 지금 암만 가르쳐도 모르는데 이러기 때문에 자기 현실 닥쳐서  사적으로는 다 양보하고 다 죽었지마는 그건 다른 사람에게는 표나지 안하지마는  표가 안나지마는 공적으로 나타낼 때에는 전부 쏵 다 죽었더라 말이오.

왜정 말년에 신사참배 공적으로 나타낼 때에는 자기 현실이 하나님 인도와  마찰이 되니까 전부 다 하나님의 인도 전부 집어던져 버리고 전부 저거들  세상으로 다 가지 안했습니까? 그것이 그때는 공적이기 때문에 나타났지마는  사적으로 나타나지 안해 그렇지 사적으로 다 그거라 그말이오.

어떤 목사를 만나 가지고 보니까 그 유명한 목사인데 뭐 접촉해 보니까 하나로  열까지 열이면 열 백 가지가 다 틀렸어. 그때에 이것이 '이게 어떻습니까'  하면은 그때사 '아 그게 옳습니다 이게 틀렸습니다' 만날 때마다 하는 것이  한번도 옳게 간 것이 없어 전부 다 틀렸습니다. 그 인본주의라 말이오. 666이요.

고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몰라.

중간반 반사들도 처음에 올 때에는 그게 어북 이렇지마는 차차 있으면 등신이  되어갑니다. 등신이 왜 되어갑니까? 뭘로 지혜로 왔는데 지금 등신 됩니까?  처음에 뭘로, 지혜로 왔지요. 666으로 지혜로 왔어. 이게 죽으니까 이게 다  없어져 버리니까 등신이 됐어. 등신 그것이 자랍니다. 하나님으로 진리로 자라야  돼.

이러니까 자꾸 있는데에 코방맞고 자꾸 책망받고 이리 이렇고 하니까 이  여반사들은 중간반 남반사에게 시집을 안갈라 합니다. 왜? 보니까 허무하거든,  아 보니 책망받고 이러니 허무하다 그말이오. 이 중간반 반사에 들어오지 안한  이 청년들 많이 있지마는 그거는 들어오면 새까맣습니다. 새까매. 하나에서  열까지 전부가 다 틀렸어, 다 틀렸어.

이렇게 빛에 안나오면 그 삐뚤어진 게 어찌 압니까? 빛에 나오면 삐뚤어진 거 알  수가 있지. 가까이 접촉을 해보면 알아. 왜? 가까이 접촉해 보면 다 틀렸어.

이러나 이제 차차차차 이렇게 되어져서 고쳐져가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믿으면서 새벽기도 나와. 자기네들이 모릅니다. 분명히 내가 담대히  말합니다. 여러분들이 스스로 이래 깨달은 것 깨닫지 못해요. 이렇기 때문에  이걸, 이 깨달은 걸 가르쳐 줄 때에 배워서 알아야 되는데 가르치는 것도 이거  모르기 때문에 이것은, 어떤 사람은 애가 터질거라. 아 저렇게 자꾸 아는 저는  실행하면 되는거고 아는 저는 실행하면 되기 때문에 뭐 애터지게 하지 안하지  알았으면 또 자기가 요만한 일에 요만한 범위에서 이겼는데 요런 범위에 앞으로  지금 생명이 공산주의가 와도 이렇게 하는 것, 앞으로 큰 생명문제가 일어나는데  과연 그때 이길 수가 있느냐 자기로서는 지금 자기 앞으로 걸어갈 길 자꾸  속으로 마음으로 걸어가지 생각으로 걸어가보지 예 그 말하는 대로 걸어가 보면  또 틀렸고 얼마든지 그런데 뭐 애터질 필요가 없는 것이지 또 가르쳐도 못알아  듣는데 알아듣지도 못하는, 못알아듣는 그 사람이 어떻게 그 길을 걸을 수가  있소. 마지막에 참 이 세상이 깨지는 것인데 깨지는 그 길을, 이 깨지는 것이  산다. 깨지는 것이 사는 것이다, 죽어도 산다 이러니까 죽어 사는 길이 있고  살아 죽는 길이 있습니다. 살아 믿는데 죽었소 죽었는데 살았소? 실패에 성공이  있고 성공에 실패있어 성공인데 실패요 영원히 실패요. 실패인데 영원한 성공이  있습니다. 그럴때에 그것을 바로 가지고 알기 어려워.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좀 깨워서 좀 숫자가 많아지는데 어짜든지 참석해야 됩니다. 배워야 돼요.

안배우면 몰라요. 안배우면 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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